이마을 저동네/볼거리

다옴 2019. 10. 5. 15:16




열한 집의

오래된 기억

북촌

(The memories of Eleven Families in bukchon)


2019. 7.19.FRI - 10. 6.SUN

종로구 새문안로 55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Seoul Museum of History Exhibition Hall)



북촌의 공간


北村은

경복궁과 창덕궁을 좌우로 두고, 아래로는 율곡로를 경계로 한 지역이다.

예부터 背山臨水의 주거 조건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도성 내 최고의 주거지로 손꼽혔다.

특히 궁궐과 가까워 왕족과 권문세가들 그리고 주요 관청들이 일찍부터 자리 잡았다.


백악과 응봉에서 내려오는 3개의 능선은 삼청동, 가회동, 계동, 원서동을 공간적으로  구분하고

그 사이를 흐르는 4개의 물길을 중심으로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능선을 따라 높은 지대에는 넓은 필지를 가진 대갓집들이, 물길을 따라 밀집된 작은 필지에는

양반들의 심부름을 하는 傔人과 奴僕들의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지금도 북촌에는 맹현, 계산, 홍현, 관현, 안현 등의 고갯마루를 의미하는

지명과 삼청동천, 원동천, 계생동천, 북영천 등의 물길 이름이 남아 있다.



북촌의 역사


 조선시대 이래 오랫동안 양반들의 주거지로 변화없이 유지되던 북촌의 위상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숨 가쁜 변화를 겪었다.

고종 즉위 후 왕권 강화를 위한 개혁이 추진될 무렵 조선은

외세의 침략과 개항이라는 시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북촌의 지식인들은 개화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갑신정변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 했으나 '3일천하'로 끝났다.

주도 세력이 거주하던 넓은 집터는 몰수되고 근대 교육기관과 시설들이 들어섰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북촌과 일본의 남촌은 민족차별의 공간이 되었다.

 북촌은 민족운동의 진원지 였고, 교육의 중심지였다.

 권세가들의 집터에는 도시한옥 주거단지가 조성되어 중산층의 터전이 되었다.

광복과 6.25전쟁은 북촌에 또 한 번의 변화를 가져왔다.

   피란과 납북, 생활기반을 잃고 떠나는 사람들과 새로 들어오는 주민들로 

예전과는 다른 북촌의 모습으로 변하였지만,

여전히 권력과 문화의 중심이었다.



    북촌 11家


북촌의 변화를 이끌어 낸 역사적 사건은 지난 100년간 촘촘히

일어났다. 구한말·일제강점기·광복과 6.25전쟁, 이 시대는 북촌의

거주민뿐만 아니라 도시공간도 바꿔 놓았다.

그리고 이 시기를 살아온 '북촌 사람' 들은 다양한 기억을 통해 대중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생생항 북촌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가회동의 왕실 종친 완순군 이재완가,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 백인제가,

 조선미술관 설립자 오봉빈가, 종군 사진작가이자 북촌의 사진기록가 임인식가,

북촌 도시한옥의 박한기가, 안국동을 지킨 100년의 가문 윤보선가, 계동과 재동의 사랑방

계산한의원 홍성학가, 대한제국기 대외 활동에 앞장섰던 민영환과 민영찬가,

1900년대 초에  원서동 빨래터 인근에 자리 잡은 이종열가, 이왕직아악부  대금연주자 봉해룡가,

6.25전쟁후 원서동에 들어와 원서이발소를 운영하며 살아온 김창원가 등

북촌의 각각 다른 공간과 시간을 살아온 열한 가문의 '오래된 기억'은

개인의 일상이자 북촌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