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솔한 이야기/살아가는 이야기

Genie 2013. 6. 16. 08:12

 

 

 

에밀리 디킨스의 울새가 그리워지면서 런던에서 경험했던 테러가 떠오르는 새벽의 소박한 바람

 

 

무척이나 평화롭고 청아하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기분을 청아하고 개운하게 해주어 새벽 산책길에 나섰다가 불쑥 어느 책에선가 밤새 휴식을 취하던 새들이 여명이 밝아오면 배가 고파 하늘을 분주하게 날아다니며 자신은 물론 가족들 먹이거릴 찾아나선다고 적혀있던 내용이 떠올랐다.

 

문득 무의식 중에 누군가의 절실한 절규가 단지 나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이유로 보여지는 외양만으로 판단하려는 오류를 범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 하는 당혹감이 들었다. 마치 매일 새벽 새소리를 들으면서 그지없이 기분이 상큼하고 상쾌해서 그들이 마냥 행복해할 거라고 여기는 거처럼.  

 

런던에서 체류할 당시 매우 위협적인 테러가 발생하는 걸 직접 자주 목격하게 되었고 주로 지하철이나 건물에서 발생하는 사제폭탄 테러가 선량한 시민들을 얼마나 분노케 하며 사회전반을 어떻게 공포로 몰아가는지 몸서리치고 사무치게 체험하게 되었다.

 

물론 휴일 아침부터 정치적 이슈나 테러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거나 분석하자는 건 아니며 단지 내가 경험했던 소소하지만 무척 진지하고 심각한 일화가 떠올라 짤막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영국은 모든 의료시설이 국유화 되어 있어 소위 국가보건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라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병원을 찾아가는데 자신의 신분증(여권)만 가지고 있으면 되며 특히 치료가 끝난 다음엔 별도의 수납이나 행정절차 없이 그대로 병원을 나서면 모든 게 완료된다.

 

물론 좀더 상세히 들어가면 GP(General Practioner) 등록절차와 Specialist(전문의) 배정, Private Insurance (개인 보험) 등을 살펴봐야 하지만 여기선 생략을 하고자 한다.

 

언젠가 지인이 심하게 다쳐 911에 긴급전화를 걸어 병원에 입원하게 됨에 따라 처음으로 영국병원을 접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이런저런 사유가 생겨 소위 동양인들을 정신상담하는 병원에서 무료봉사자로 잠시 일을 하게 되었다.

 

GP에서 정신상담진단을 내리면 담당병원을 지정해 4주간 무료상담을 해주는 시스템이었으며 그 정도가 심하면 입원을 하거나 자비를 들여 매우 고가의 사립병원에서 진료받는 게 일반적 관례였다.

 

그 당시 제일로 놀란 건 상담을 받으러 오는 대부분이 아랍계 영국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물론 일부 과격주의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선량한 영국시민으로 잘 살아가고 있었는데 미국이 911테러 이후 대 테러전쟁을 선언한 후에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곳곳에서 매일 같이 테러 위협이 일어나고 실제로 발생했고 특히나 영국에 사는 아랍계 영국인들이나 심지어 영국에서 태어난 2세들은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순수(?) 영국인으로부터 매순간 공격 위협을 느끼며 공포스럽게 하루하루를 영위하고 있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두려움으로 정신상담소를 찾게 되었다.

 

실제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폭탄테러에 버금가는 공포 속에서 언제 어디서 누가 자신을 공격해올지 모르는 심각한 두려움으로 24시간 초긴장으로 위태로운 불면의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하루에도 끊임없이 방문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진정한 전쟁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하는 자문을 수도 없이 했고 꽤나 열린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내 스스로가 얼마나 편협한 선입관을 가지고 세상의 한편만 치중해서 보며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살았는지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늘 자신이 보는 시각을 중심으로 세상을 응시하며 받아들이고 분석하며 판단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누구나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한계적 모순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위험하고 위협적인 건 세상을 자신의 잣대로 구분해서는 성급하게 옳고 그름을 차별하고 보편화해서 심지어는 무의식 중에 그러한 자신의 판단에 무조건 맹목적으로 옳고 맞다고 스스로 세뇌시키는 무척이나 위험한 사고를 너무도 쉽사리 해버리지는 않나 하는 우려섞인 의구심이다.  

 

누군가 사랑을 갈망하며 진실된 마음으로 애절하게 노래를 부르는데 단지 자신과 무관하다고 무시하고 그냥 지나쳐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관심어린 애정을 가지고 잠시나마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느긋한 삶의 여유를 가슴에 품고 산다면 세상이 훨씬 정감 넘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지금 이순간에도 청아하고 평화롭게 하늘에서 지저귀는 새들이 단순히 아침이 오는 걸 기뻐하며 환희의 노랠 부르는 게 아니라 물론 어느 정도 그런 부분도 있으리라, -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부지런히 사력을 다해 날아다니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문득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떠올라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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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 에밀리 디킨슨

 

내가 만약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된 것이 아니리...

내가 만약 한 생명의 아픔을 달랠 수 있다면,

혹은, 하나의 괴로움을 위로할 수 있다면,

혹은, 헐떡이는 작은 울새 한 마리 도와

둥지에 올려줄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 

 

  .....

 

If I can... 

- Emily Dickinson

 

If I can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help one fainting robin

Unto his nest again

I shall not live in vain

 

 

     ..... June/16/2013 ..... 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