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근교산

전우석 2015. 10. 26. 16:05

 

아차, 용마산(峨嵯, 龍馬山)  287m / 348m  중랑구 면목동 소재

 

 

▶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峨嵯山)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 한강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287m의 야트막한 산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아 인근 시민들이 가벼운 산행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며. 1973년 5월 25일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한눈에 한강을 훤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아차산(峨嵯山, 혹은 阿且山)의 원래 이름은 ‘아단(阿旦)’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조선조에 태조 이성계의 이름에 ‘단’(旦)자가 들어있어, 이 글자와 비슷한 ‘차(且)’로 변경해서 ‘아차’가 되었다는 유래도 있고, 혹은 《삼국사기》에서 보듯 ‘차’와 ‘단’이 서로 섞여 쓰이다가 어느 틈엔가 ‘차’로 정착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중랑구 신내동에 돌출된 봉화산을 포함하여 망우산(281m, 공동묘지 지역)과 용마봉(龍馬峯, 348m) 등의 광범위한 지역 모두 아차산으로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차산은 삼국시대의 전략요충지로 백제와 고구려 간의 세력 다툼의 현장이기도 하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아차산성은 백제에게도 고구려에게도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백제는 개로왕 20년(474)에 아차산성에서 고구려 3만여 군과 힘겨운 전투를 벌였다. 백제와 고구려의 치열한 공방이 오고간 끝에 백제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개로왕은 아들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고구려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로써 백제는 한성을 포기하고 웅진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한편 당시 고구려군은 고구려 평원왕(559~589)의 딸 평강공주의 남편인 온달 장군이 이끌고 있었는데, 그는 그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이러한 내용은 <삼국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차산에는 ‘온달샘’이라 불리는 약수터와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지름 3m의 거대한 공기돌이 있다.


특히 아차산 일대에는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보루 20여개가 있는데, 발굴조사 결과 고구려 군사유적으로서 알려졌다. 이것은 곧 한강을 놓고 백제와 고구려 간에 치열하게 공방이 전개되었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 이곳에서 발견된  고구려, 통일신라 토기와 기와조각, 철기류와 철제 무기류, 여러 건물터와 우물, 배수구, 연못 등이 이곳에서 발굴됨으로써 2004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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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파일

아차_용마산.z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