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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늑대 2016. 3. 3. 09:26

1.LG그룹과 GS그룹



LG그룹 창업주 구인회는 1942년 백산 안희제 선생을 통해 당시 금액 1만원을 독립자금으로 희사하였으며 

이 사실은 1943년 순국한 백산 선생 유가족을 백범 김구 선생이 만나는 과정에서 밝혀진 이야기이다. 

연암 구인회는 1942년 조부 만회 공의 대상을 마친 직후 독립운동에 기여하였다. 

백산 선생과 조부 만회 공은 대한제국 시절 한양에서 함께지냈고 낙향한 이후에도 자주 찾아와 

연암 구인회도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백산 선생이 만주로 돌아가기전에 독립자금을 요청하자 당시로써는 큰 돈이였던 

1만원을 백산에게 전달하였다. 

당시 전국 지명수배 인물이였던 백산 선생에게 1만원인 거금을 기부한것은 

사업가로서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걸어야하는 모험이였지만 연암 구인회는 흔쾌히 지원하였다. 

하지만 백산 선생은 이듬해 만주에서 일경에게 잡혀 혹독한 고문 끝에 1943년 8월 3일 세상을 떠났다.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에는 '금강산'이라는 이름의 돌더미가 쌓여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할아버지 효주(曉州) 허만정 선생이 곤궁한 소작농과 주민들에게 

쌀을 나눠줄 때 인근 방어산에서 돌을 가져오게 해 마당에 쌓게 했는데 작은 돌산이 됐다.

그는 '재화를 얻을 때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노동의 가치를 일깨워주려 했다. 

효주는 허투로 돈을 쓰는 법이 없었다.
독립운동 자금도 그렇게 나왔다. 진주 만석꾼이던 그는 은밀히 독립운동 활동을 지원하는가 하면 

독립과 '민족 부흥'의 원천은 교육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 진주여고를 지었다.

허만정의 아버지 지신정(止愼亭) 허준은 경주 최부자, 백산 안희제 등과 공동 출자해 

만주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한 백산상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2. 동화약품


임시정부 조직을 위해 작성 배포한 국민대회선포문에는 

민병호 선생의 아들 민강 동화약품 전 사장이 참여했다.


독립운동사를 얘기할 때 '까스 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을 빼놓을 수 없다. 

활명수는 상품 종류를 막론하고 한국기네스가 인증한 국내 최고(最古) 브랜드다. 

118년 역사의 까스 활명수는 1897년 궁중 선전관이던 민병호 선생이 개발했다.

1920년대 활명수는 설렁탕 두 그릇 값인 50전에 팔렸다. 

비싸게 팔아 남긴 마진은 독립운동 자금으로 흘러갔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동화약품 본사인 '서울연통부'는 상하이 임시정부 연락책이었다. 

민병호 선생의 아들 민강 사장은 독립운동에 연루돼 두 차례 옥고 끝에 48세에 숨을 거뒀다.

동화약품 현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5대 사장 보당 윤창식 선생은 

민족경제 자립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체 조선산직장려계(朝鮮産織奬勵契)를 조직했으며,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新幹會) 간부로도 활동했다. 

윤창식 사장의 아들인 윤광렬 현 회장도 일제 말기 학도병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해 

광복군 중대장으로 활약했다.


3. 효성그룹


효성은 중국 저장성 자싱시에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피난처 보존과 

임시정부 기념활동 지원을 위해 2007년 지원금을 전달했다.


경남 함안 출신인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는 열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에 고등보통학교(지금의 중학교)에 

입학, 스무살인 1926년 순종황제가 의문을 죽음을 맞자 '6·10' 만세운동을 주동했다. 

그로 인해 종로경찰서와 서대문형무소에서 수주일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조홍제 창업주는 1945년 8월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라디오 방송을 듣고 아들인 조석래 회장을 

무릎에 앉히고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랭사인'에 맞춘 애국가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4. 유한양행



1926년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도 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다. 

유 박사는 1930년 후반부터 미국에 체류하면서 유럽과 중국 시장개척에 노력하는 한편,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해외한족대회’를 개최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일제 말기에는 미군 전략정보처 OSS(현 CIA의 전신)의 한국담당 고문으로 재미 한인들을 훈련시켜 

국내에 침투시키는 ‘냅코(NAPKO)작전계획’에 참여했다. 

유일한 선생은 1936년 유한양행에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민족자본 형성에도 앞장섰다.


5. 교보생명



창립자의 집안은 일제시대에 항거한 뿌리 깊은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그는 1917년 8월 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솔안마을에서 아버지 고 신예범 선생과 

어머니 고 유매순 여사의 6남 가운데 5남으로 태어났다. 
첫째인 고 신용국씨는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했고 광복 후에는 청년 노동운동을 했다.
민족의식이 충만했던 아버지는 야학을 열고, 소작쟁의에 앞장서며 일제에 맞섰다. 

맏형도 항일운동에 나서, 아버지와 형은 번갈아 옥고를 치렀다. 

생활이 어려워 어머니가 하숙을 치며 생계를 맡았다.?

신용호는 20세가 되자, 돈을 벌기 위해 중국으로 갔다. 

1940년 24살 나이에 베이징에 곡물회사 ‘북일공사’를 설립했다. 

청년 신용호는 민족시인 이육사와 운명적으로 만나 사업을 통해 독립운동을 돕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육사는 감격했다. ‘대사업가’가 되어 동포들을 구제하는 ‘민족자본가’가 될 것을 당부했다. 

사업은 번창했다. 신용호는 기회가 올 때마다 육사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건넸다. 

안타깝게도 육사는 해방을 앞둔 1944년 일제의 지하감옥에서 순국했다.



출처 : 썰풀닷컴 http://m.www.ssulf.com/bbs/board.php?bo_table=funny&wr_id=147750&sst=wr_hit&sod=desc&sop=and&page=5974




이게 전부인가? 설마 더 있겠지.. 휴 살아 남은 곳이 없나 보군
근데 삼성은? 이병철은 천석꾼 아들로 아주 부유한 집안의 아들 출신인데
그때가 일본강점기 때라 친일의 의혹도 있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