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말고

워프드라이브 2020. 10. 3. 22:47

쓴다고 했으니 써봄 ㅎㅎ

 

 

 

 

 

인생 덜 망하는 방법 1편: 허세 부리는데 돈과 정성을 들이지 말자. 

이왕이면 프롤로그를 보고 오시길 권해드린다. 
우선 자신이 예망인(예비 망한 인생) 인지 아닌지 체크부터 하고 읽길 바란다. 
물론 이 글 자체를 읽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다음이개편된 후, 포스팅마다 조회수를 알 수 있게 됐다. 
어떤 글은 매일 조회수 0이다. 보통은 케이블 TV에서 어떤 영화를 방영하면 
그 날은 그 영화 후기 조회수가 올라가곤 한다. 대부분 조회수는 그런 식으로 올라간다.)

최근 내 자신의 능력치와 앞날을 대충 간파한 후 시작한 일이 있다. 
가지고 있던 책을 처분하는 일이다. 
벌이가 시원치 않은 나로서는 중고책을 팔고 나면 식비라도 벌었다 싶을 때가 있지만 
사실 중고서적 판매라는 게 엄청나게 손해보는 일이라는 건, 아마 팔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나마 직거래라면 조금 가격을 더 쳐서 받을 수 있지만 
그마저 귀찮은 예망인은 주로 인터넷서점을 통해 판매를 하게 된다. 
책값의 10%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참으로 어리석은 거래다. 
그럼에도 책을 중고 시장에 내놓은 까닭은 '어차피 읽지 않을 책'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떤 글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책이라는 것은, 일단 사두면 언젠가는 보게 된다는 것이다. 
집안에 굴러다니던 책이 언젠가는 내 손에 들어오게 되고 읽게 될 거라고.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책을 고르고, 구매하는 것도 독서하는 행위에 포함된다고 그랬던가, 
아무튼 그런 비슷한 말을 했더랬다. 
그 말을 너무 믿었던지, 나는 책을 꽤 많이 사들였다. 
(여기서 '꽤'라는 부사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경제사정에 비해서 많이 샀다는 것이지 아마 일반적인 책 애호가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 것이다.)
문제는 내 수준을 너무 높이 평가한 책들을 사들였다는 점. 
예를 들어 물리학... 물리학이라는 단어를 타이핑하면서 절로 탄식이 나온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들에 대한 지식을 갈구하면서 나는 참 많은 책을 사왔다. 
그 책들은 그저 책장에 꽂혀있을 뿐이었고 먼지만 쌓여갔으며 
심지어 책날개 부분이 바래어 되팔기도 미안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럴 경우 못 팔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왜 샀을까? 
허세를 부리고 싶어서다. 
아는 거 많아보이려고. 있는 척 하려고. 
사실 인터넷에서 '미리보기'로 1페이지 한 줄만 읽어봐도 
도저히 내 수준에서 소화할 수 없는, 내 머리가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 멋있다, 아, 있어보인다 하면서 산 것이다. 
그 책들이 책장에도 다 꽂지 못할 정도가 되어 결국은 옷장에 쌓아두기까지 했다. 
어느 날은 수학, 어느 날은 천문학, 어느 날은 심지어 무기까지... 
참 많이도 멍청한 소비를 해왔다. 

그럼 그 책들을 전부 다 읽지 않은 걸까. 
양심상 극히 일부의 책은 읽었다. 일부는 억지로 읽기도 했고, 몇몇 책들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문제...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허세 부리고 싶어서 읽은 내용을 어디서 허세 떨 기회도 없지만 
어디서 아는 거 나왔다고 떠들어봤자 설명蟲 소리만 듣게 된다. 
왜? 말이라도 잘하면 설명蟲 소리 듣지 않을 수 있겠지만 
지식의 깊이가 얕고 말재주가 없으니 모두가 지루해하는 얘기를 혼자서 떠들 뿐이기 때문이다. 
눈치 없고, 분위기 못 읽는 것은 인생을 덜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더' 망하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분위기 못 맞출 것 같으면 말을 안하는 게 낫다) 

100을 읽으면 3-4를 건지는 건 그래, 그렇다 치자. 머리에 지식이 쌓였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자. 
하지만, 먹고 사는 데에는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된다. 안타깝지만 그러하다. 
지금까지 예망인으로서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잡지식을 쌓기 위해 애써왔다. 영화를 보는 일도 그 중 하나다. 
어디 가서 아는 척 하는 건 좋은데, 인생에 도움은 별로 안 된다. 
그 영화 봤다! 그 책 읽었다! 하고 자랑하기만 좋을 뿐. 

혹시 잡스러운 지식을 쌓아서 그걸로 강의를 하거나 책을 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정도 되려면 한 분야에서 전문가 소리 들을 정도로 지식을 많이, 잘 쌓아야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가공하고 술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러려면 정말 열심히 한 분야를 들이 파야 한다. 
아니면 좀 덜 쌓인 지식이라도 남들 앞에 서서 잘 포장해서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든가. 
이도 저도 아니면 포기할 것. 

나이는 먹어가고 잡스러운 지식은 늘어난 것 같은데 
먹고 사는 일은 힘들다. 왜?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지식만 쌓았으니까. 
박학다식이라는 말은, 정말, 내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 정통하거나 
제대로 돈을 벌고 있거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칭찬일 것이다. 
그러나 제 할 일도 제대로 못하고, 벌이는 시원치 않고,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까딱하면 목이 날아가버릴 것 같은 불안한 존재들에게는 
욕이다. 참으로 쌍욕이다. 

예망인 여러분.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명제는 참이다. 
영화는 지적, 정서적 쾌감을 선사하는 고마운 문화 영역인 것도 맞다. 
그러나 쓸데없는 지식을 쌓는 일에 너무 공을 들이진 말자. 시간과 돈을 그 쪽으로 쏟지 말자. 
그냥 스몰 토크가 가능한 정도의 잔지식은 좋지만 
허세 부리고 싶어서 책사고 영화보고 TV보고 유튜브 파다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나이만 먹어가는 늙은 예망인인 주인장처럼 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가급적 돈이 되는 일에 정성을 쏟고, 허세 떠는 일은 지양하면 좋겠다. 
책을 봐도 인생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봐야 한다. 
어떤 책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고민은 좀 더 해봐야겠지만 
적어도 물리학이나 천문학은 아닐 듯... 나한테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처럼 어쩌다 알게 된 지식이 거액의 상금을 주는 일은 
소설이나 영화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첨언: 
아직 자신이 젊은 세대라고 생각된다면 
이 얘기들을 너무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다. 
2030세대는 아직까지 머리로 다양한 지식을 흡수해야 하고 그것으로 삶의 태도나 지표가 바뀔 수도 있다. 
나 역시 젊을 때는 남들이 보는 '자기계발서'도 보고 그랬다. 
왜냐하면 그런 책에서 말하는 지식들이 조금은 도움이 될 나이였으니까. 
그러니, 앞날 창창한 젊은이들이라면 아직 자신을 예망인으로 생각하진 않았으면 싶다. 

사실 이 블로그에 젊은 사람은 별로 오지도 않음 ㅋㅋㅋ 
방문해도 영화 후기를 읽지 잡글은 안 읽지... 

그리고 자기 일을 열심히 잘 하고, 돈도 잘 벌고, 건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잡지식 쌓아도 된다. 독서와 영화 감상으로 교양 쌓아도 된다. 
혹은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지식의 바다에 뛰어들어도 된다. 
내가 허세 떨기를 경계하라고 말하는 대상은 나와 같은 예망인들에 한정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