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말고

워프드라이브 2020. 10. 17. 22:57

코로나19가 한창 확산된다고 난리났을 때 쓴 짧은 소설이 있어서 한 번 올려본다. 

뭐... 당연히 아마추어 실력이니 좋을 리는 없지만 

써둔 건데 묵혀두기 아까워서(?) 올려봄. 

좋은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줍게 내놓는 내 새끼(?)니까 예쁘게 봐주세요... ㅎㅎㅎ

재미없더라도 걍 넘어가주세요... 원래 영화 후기 블로그니깐요!!! -_-;;; (땀 나네...)

 

 

 

 

 

 

 

 

 

 

제목: 영화관 데이트

 

하나 둘 셋. 벌써 3년이나 됐나. 연희는 손가락셈을 하다가 새삼 놀라고 만다.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오랜만에 화장대에 앉아 달력을 보다가 영화관에 못 가본 지 3년 가까이 됐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극장을 갔던 게 임신 7개월 즈음이었고 아이들은 세상에 나온 지는 30개월이 넘었다. 아이들. 연희는 쌍둥이의 엄마다. 세상 누구보다 소중하고 예쁜 존재지만 역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쌍둥이 엄마 생활은 고되고 힘들었다. 결혼 전에, 아니, 결혼하고도 1주일에 한 번 꼴로 갔던 영화관을 3년 가까이 못 갔을 정도로.

 

“준비 다 됐어?”

 

남편 석주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며 물어본다. 오늘은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영화관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석주를 보고 연희는 싱긋 웃어 보인다.

 

“응, 거의. 오랜만에 극장 가려니까 너무 좋다.”

“너 좋다니까 나도 좋다.”

“애들은 잘 있겠지?”

“당연하지. 저번 달에 형네 애들 봐줬으니까 이번에 신세 좀 지는 거지 뭐.”

“그렇지?”

“그럼!”

 

아이들은 석주와 잘 알고 지내는 형의 집에 맡겼다. 석주와 친형제처럼 친한 사람이라 그 집 아들을 맡아서 봐준 적도 있고, 반대로 석주네 쌍둥이를 그 형이 돌봐준 적도 있다. 이렇게 상부상조해줄 사람이 있는데도 부부가 시간 맞춰 근사한 데이트를 하기가 어찌 그리도 힘든 건지. 쌍둥이를 키워서 그런가. 연희는 혼자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거린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나 극장 간 지 3년 됐어. 임신 7개월 때 가고 안 가서.”

“그래? 그럼 나도 그렇다는 거네. 우리 둘 다 안 갔으니까.”

“마지막으로 극장 간 게 2034년이었나? 그 때 갔으니깐.”

“그럼 맞네. 올해가 2037년이니까. 시간 참 빠르다.”

“그지?”

“생각해보니까 너무 했다 싶네... 베이비시터 로봇 요즘 괜찮으니까 맡기고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석주가 미안하다는 듯 연희의 어깨를 꾹꾹 주무른다.

 

“극장 안 가도 되는 시대니까 아쉬울 건 없지. 그리고 애들도 그래. 아무리 로봇이며 AI가 있어도 사람이 봐줘야 안심된다니까.”

“하긴...”

“생각해보니까 우리 예전엔 참 극장 자주 갔는데. 영화관에서 처음 손도 잡고... 자기 어깨에 처음 기댈 때 생각하니까 지금도 좀 두근거리네?”

 

연희는 자신의 말에 석주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 하며 힐끗 남편을 쳐다본다. 연희의 어깨 쪽을 바라보던 석주는 고개를 들어 거울을 통해 연희와 눈을 마주친다.

 

“오늘 너 내 와이프 아니다.”

“뭐?”

 

석주의 말에 연희는 금세 인상을 찌푸린다.

 

“무슨 소리야 그게?”

“와이프 아니고, 애들 엄마도 아니고. 그냥 내 애인. 오늘은 그러는 거다.”

“나참... 어디서 이런 느끼한 멘트를 배웠을까?”

“너한테 작업 걸려고 배운 멘트지.”

 

석주가 연희를 뒤에서 감싸 안자 연희는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그렇지만 내심 속으로는 석주가 건넨 말이 싫지 않다. 그녀의 웃음 속에는 설렘 반, 기대감 반이 섞여있다.

 

 

“00영화관 00점. 얼마나 걸리지?”

 

석주가 운전석에 앉으며 차에 말을 걸자, 차에 내장된 인공지능 시스템이 곧바로 작동된다.

 

“안녕하세요, 석주 님. 안녕하세요, 연희 님. 오늘은 영화관에 가시는군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현재 교통상황을 봤을 땐 10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응, 오랜만이지.”

“오늘 데이트하시나 봐요.”

 

자율주행자동차는 자율주행만 잘하는 게 아니라 말도 잘한다. 심지어 분위기 파악도 잘한다. 석주가 이 차를 운전한 5년 동안, 차는 석주에게 최적화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끊임없이 스스로를 업데이트해왔다. 석주는 인공지능의 반응에 살짝 미소를 짓는다.

 

“어, 데이트. 그러니까 분위기 안 망치게 운전 잘해줘.”

“그럼요. 그럼 출발할까요?”

“오케이, 출발!”

 

석주의 시원스러운 대답과 함께 차는 부르릉 소리를 내며 시동을 걸더니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영화관의 분위기는 3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키오스크가 쭉 늘어서 있고, 드문드문 사람이 보인다. 청소하는 사람이 따로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청소는 로봇이 담당하고 있다. 어렸을 땐 영화관에서 일하는 직원이나 알바생이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그 자리를 로봇이 대신 차지했다. 로봇을 관리하는 관리자 한 명이 모든 걸 다 지켜보고 관리하고 있다.

 

“아, 나 이 영화 너무 보고 싶었는데. 봉준호 감독 진짜 대단해. 내일 모레 칠순 잔치할 사람인데도 아이디어며 열정이 넘치더라고.”

 

연희는 한껏 신이 난 목소리로 포스터를 가리키며 영화 얘기를 꺼낸다.

 

“그러게. 3년 만에 극장에서 보는 영화가 봉준호 감독 신작이라니 뭐 좀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지?”

“그러게. 근데 요즘 극장 내부 많이 바뀌었다던데.”

“내부가?”

 

석주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눈을 깜빡이며 연희를 바라본다.

 

“작년 12월이었나...? 그 때 공사하네 뭐네 그랬는데. 3년이나 극장에 오질 않았더니 어떻게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어.”

“아, 나도 들은 것 같다. 한 3년에 한 번씩 전염병이 도니까 그거 막겠다고 멀티플렉스들이 극장 싹 고친다고 했는데. 뭐, 어떻게 고쳤다는 거지?”

“그러게, 좌석 간격을 넓혔나? 아니면... 요즘 야구장 같은 데 가면 마스크 준다더니 그렇게 마스크 주나?”

“에이, 마스크야 당연히 주겠지. 티켓 가격이 괜히 올랐겠어? 마스크 값 포함이지.”

“하긴 마스크는 필수지. 지금 우리처럼.”

 

연희는 자신이 쓴 마스크를 가리키며 석주에게 답한다.

사스를 잡으면 신종플루가, 신종플루를 잡으면 메르스가, 메르스를 잡으면 코로나19가 기세등등하게 세상을 뒤흔드는 시대. 전염병이 창궐하는 일이 몇 년에 한 번은 닥치는 21세기에 마스크는 필수품이 됐다.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마스크도 개발되긴 했지만 너무 무겁거나 복잡했다. 무엇보다 매일 마스크를 바꿔주는 것이 더 위생적이고 안전할 거라는 인식 때문에 대부분은 일회용 마스크를 선호했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는 어디나 마스크가 비치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물론 석주와 연희처럼 극장에서 주는 일회용 마스크보다 KF94 같은 방역 마스크를 집에서 쓰고 오는 사람이 더 많지만.

 

“극장 내부 바뀐다고 우리 데이트까지 바뀌겠어?”

“응?”

 

석주의 말에 연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다. 어느새 두 사람의 손에는 팝콘과 음료수가 들려있다.

 

“내부 공사 하면 뭐 얼마나 했겠어. 같이 팝콘 먹고, 음료수 마시고, 손도 잡고, 어깨 기대고, 뽀뽀도 좀 하고...”

“으이구! 남들 들어!”

“들으면 어때~ 극장에서 다, 그러는 거 아닌가?”

“오늘 작정하고 느끼하다?”“어, 팝콘의 느끼함에 한 번 이겨볼라고. 흐흐.”

 

석주가 장난스럽게 웃자 연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가끔 저렇게 개구쟁이같이 구는 게 좋아서 사귀긴 했지. 양손에 팝콘을 든 석주가 자신의 팔로 연희의 팔을 툭툭 치자 연희는 못 이기는 척 석주의 팔을 잡는다.

 

 

“두 분이신가요?”

 

상영관 입구에 미소를 띤 노년의 알바생이 서 있다. 전국에 100개가 넘는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 멀티플렉스는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 마련에 동참하고 있었고, 마지막 인간미가 남아 있을 만한 곳으로 상영관 입구를 택했다. 덕분에 영화관 알바생하면 이제 청년이 아닌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떠올리게 된다.

 

“네!”

 

석주는 웃으며 모바일 티켓을 보여주었다.

 

“오... 두 분이... 나란히 앉으시는 거죠?”

“네... 문제라도 있나요?”

“아뇨, 커플석이 아니라서요.”

 

알바생은 원래 얼굴이 있는 주름이 살짝 더 패일 정도로 인상을 찌푸렸다. 석주는 그런 알바생의 표정을 눈치 채지 못하고 바로 답했다.

 

“커플석이 1.5배는 비싸니까요. 뭐... 잘못한 건 아니죠?”

“아... 음... 그럼요. 즐거운 관람 되세요.”

 

커플석이라 하면 둘이 붙어 앉을 수 있게 된 자리다. 그리고 의자에 차양 같은 게 달려 있어서 그걸 손으로 잡아 끌어내리면 두 사람의 얼굴까지 완전히 가려진다. 가운데는 팝콘을 함께 먹을 수 있게 간이 테이블도 설치돼 있다. 좋은 자리지만 굳이 1.5배 비싼 돈을 주고 볼 필요는 없다고, 석주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연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두 사람이 상영관에 들어선 후 곧 바뀌었다.

 

“이... 이게 뭐야?”

 

극장 내부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3년 전, 그 모습이 아니었다. 석주는 극장 좌석을 본 순간 인큐베이터가 떠올랐다. 아기 한 명 한 명을 뉘어놓은 인큐베이터. 연희는 어린 시절 아빠와 봤던 로봇 만화를 떠올렸다. 거대한 로봇을 움직이는 조종사들이 유리벽 같은 걸로 서로의 영역을 나눠놓은 그런 모습을.

영화관 좌석이 3년 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모든 좌석이 완벽한 1인석이라는 점이었다. 완벽하게 구분된 나만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흡사 투명한 도시락통 같기도 했다. 석주와 연희가 입구에서 어물대는 동안,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다른 관객들이 이들을 짜증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지나갔다. 길을 막고 서 있다는 걸 깨달은 두 사람은 얼른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그 자리로 향했다.

 

“여기... 인가?”

 

자리에 앉으려면, 모바일 티켓을 좌석에 가져다대야 한다. 삑 소리와 함께 좌석의 투명 뚜껑이 열렸다.

 

“무슨... 놀이동산...같기도 하고...”

“전투기 조종석 같다...”

 

석주는 고개를 빼고 주변을 둘러봤다. 평일 낮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커플석으로 배정된 자리는 텅 비어있다.

 

“안 돼.”

 

석주의 마음을 읽은 연희가 얼굴을 살짝 찌푸린다.

 

“어차피 안 돼. 티켓을 좌석에 찍어야 되잖아.”

 

그렇다. 해당 좌석의 티켓이 인식되지 않으면 좌석 뚜껑도 열리지 않을 것이다. 석주는 짧게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 연희와 석주는 나란히 붙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다음 상영을 기다리며 쉬고 있던 스크린이 환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00영화관 00점을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좌석 이용 안내입니다. 좌석은 반드시 예매하신 지정 좌석에만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상영이 시작되면 고객님의 안전을 위한 커버가 고정됩니다. 안전 커버는 신종 바이러스가 에어로졸 형태로 퍼져나갈 위험이 있다는 지적에 따라 00월부터 설치됐습니다...”

 

그래서 커플석 얘기를 꺼냈구나. 석주는 그제야 왜 알바생이 부부로 보이는 석주와 연희 두 사람이 커플석을 이용하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는지 이해가 됐다. 같이 팝콘을 먹을 수도, 어깨에 기댈 수도 없다. 요즘은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얘기는 얼핏 들었다. 코로나19 이후 OTT 서비스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연인끼리 가족끼리 영화관을 찾는 일이 줄었다. 정말 영화를 좋아하는, 큰 상영관에서 영화를 즐기는 사람만 영화관으로 발걸음한다고 하던데.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안전 커버가 고정됩니다!”

 

석주가 혼잣말로 투덜거리는 사이, 안전 커버가 머리 위에서 쭉 내려오고 발 아래서도 유리 커버 같은 것이 올라오더니 그 두 개가 이내 합쳐져 좌석 하나를 완전히 차단했다. 옆에 앉아 있는 연희를 힐끗 쳐다보니 마치 인큐베이터에 갇힌 것만 같다.

 

“J열 5번 좌석, 안전 커버 고정됐습니다. 현재 내부 공기 상태 양호합니다. 상영 도중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거나, 자리를 이탈해야 할 경우 좌석 오른쪽 팔걸이 아래 있는 버튼을 눌러주십시오. 버튼을 누르면 커버 고정이 해제됩니다. 커버 해제는 10분 간 가능합니다. 다음은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정부 지침 안내입니다. 최근 해외에서 신종 바이러스 감염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겹게 들어온 신종 바이러스 소식. 연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아주 어렸을 적엔 안 그랬던 것도 같은데. 2020년 즈음이었나. 그 때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크게 어려움을 겪고 난 뒤로는 2-3년에 한 번씩 감염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백신 하나가 겨우 개발되면 또 다른 변이가 생겨나고, 또 다른 바이러스가 일상을 뒤흔들었다.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오늘 처음 경험한 영화관의 ‘안전 커버’ 만큼이나 신종 바이러스를 마주하는 일은 답답하고 어색하다.

옆에 앉은 석주는 이런 어색함을 달래보려는 듯, 팝콘을 우걱우걱 혼자 먹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석주가 팝콘을 가져갔고 연희가 음료수 2개를 가지고 있다. 연희가 안전 커버를 툭툭 치자 옆에 앉았던 석주가 고개를 돌린다. 양손에 음료수를 들고 흔들어 보이니 석주가 쓴 웃음을 지으며 팝콘통을 팔로 감싼다. 마치 연희와 팔짱 낀 채 영화를 보지 못하게 된 것을 아쉬워하는 것처럼.

연희가 3년 만에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본 그날의 영화는 어쩐지 지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