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생활/2014년감상영화

워프드라이브 2014. 12. 22. 01:22

가라앉은 진실은 무엇을 부력으로 삼아 떠오르는가?

 


다이빙벨 (2014)

The Truth Shall Not Sink with Sewol 
6.7
감독
이상호, 안해룡
출연
이종인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77 분 | 2014-10-23

 

이야기, 스토리텔링의 목적은 무엇일까?

대부분은 '재미'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덧붙여 '교훈' 같은 것이 있겠지.

하지만 <다이빙벨>의 경우에는 '알리기'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 '알리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리라...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영화적인 재미도 있다.

마냥 설교하고 가르치려 드는 게 아니라 구성도 잘 되어 있다는 말이다. (적어도 내 눈엔)

적절한 편집과 자막으로 이해도를 높였고,

보통의 뉴스에서는 볼 수 없는 '활어'같은 현장감도 느껴졌다.

포스터도 잘 만들었다. 다이빙벨이라는 글자를 거꾸로 배치한 것이 이색적이다.

(누가 저걸 벨빙이다라고 읽진 않겠지...)

 

 

 

2014년 한 해, 늘 그러했듯 다사다난했지만

올 한 해 가장 큰 이슈를 꼽으라면 대부분이 세월호 침몰 사건을 꼽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 <다이빙벨>은 바로 그 세월호 침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부분인 '다이빙벨'에 대한 이야기다.

다이빙벨이라는 잠수용 도구?를 사용하느냐 마느냐, 했느냐 안했느냐, 성공이냐 실패냐...

 

사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참 조심스럽다. (블로그 주인장은 새가슴이다... 아주 소심하다)

이 영화를 보기 직전까지, 나 역시도 다이빙벨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었다.

대단한 도구 가지고 온 것처럼 굴더니 사람 하나 못 건졌더라, 괜히 시간과 돈만 축냈더라...

이런 이미지가 강했지. 지금도 그 부정적인 생각들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자세한 내막을, 완전히 안다고 말할 자신이 없으니까.

(사실 그 누가 100%를 알수 있겠는가. 아마 이상호 기자도 100% 예스라고 답은 못할듯)

하지만, 이 영화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이런 이야기들은, <다이빙벨>에 나오는 이야기는 언론에서 다룬 적이 없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대형 매체들이 떠다먹여주는 정보만 받아 먹던, 그래서 그냥 지나쳐버렸던 이야기들을

이상호 기자가 열심히 발로 뛰어 알려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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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다이빙벨>을 보며 나는 '다이빙벨'에 집중하지는 못했다.

바지선이라든가 앵커라든가 그런 말들이 쉽진 않았으니까.

내가 주목했던 건 언론의 태도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언론이 가진 태도.

요즘 언론은 뭘 하고 있는 걸까?

언론이란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이다.

(표준대국어 사전 2번의 뜻이다.

1번의 뜻은 '개인의 말이나 글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일. 또는 그 말이나 글'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뜻은 2번의 뜻이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나라 언론은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는 활동보다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에 치중하는 것 같다.  

다이빙벨이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전에, '실패' '낭비' 이런 말들로 '호도'하면서 말이다.

다수가 내놓은 '호도'에 대한 반발로 '저항'을 하거나 반대 의견을 내면,

요즘은 이상하게도 '선동'이라는 말로 공격당한다. 누가 누굴 보고 선동이라는지.

 

표면상 다이빙벨은 '실패'라는 말을 써도 무방하다. 일단 뭘 해낸 건 없으니까.

이 영화는 왜 다이빙벨이  그렇게 '실패'하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실패는 실패지만 왜 실패했나.

실패가 아니라 시도도 못한 게 2번. 그리고 겨우 1번의 잠수.

일이 이렇게 된 것이 '나는 실패했어요' '사업에 도움될까봐 그랬어요'라고 자진해서 말한

이종인 사장 탓일까? 아니다. 영화는 정부를 겨누고 있다.

이종인 사장이 실패라고 인정했고, 사업에 도움될까봐 그랬다는 말을 했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그 말도 자의로 한 것은 아닌 걸로 보인다.

('보인다'고 한 까닭은, 앞서 말한대로 100%의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새가슴이다 ㅋㅋ)

 

 

현대는... 통신이 발달하고 누구나 SNS를 하는 시대라

뭔가 감추고 숨기는 일이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서 우리는 여전히 '눈먼 자들의 도시'에 사는 기분일까.

오히려, 보고 듣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진실'을 지나쳐버리는 건 아닐까.

당장 나만 보더라도 신문의 헤드라인만 대충 읽고 넘기고,

그 기사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곱씹어보지 않으니 말이다.

사실이 사실을 덮고, 그 뒤에 따라오는 사실들이 또 사실을 덮는다.

쏟아지는 팩트에 가려 진실이 질식사 당하고 있다.

 

<다이빙벨>을 다 보고 나니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드라마 <피노키오>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을 믿는다. 기자들의 말을 믿는다.

<피노키오>의 대사처럼 기자들 모두,  

자신의 말이 얼마만큼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 좀 해줬으면 좋겠다.

100명이 맞다고 해도, 1명이 아니라고 하면 그 말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다.

앞면을 다뤘으면 뒷면도 다뤘으면 좋겠다.

어떤 기사를 어떻게 소화하느냐는 독자나 시청자들의 몫이지만,

최소한, 골고루 정보를 주는 일은 기자가 해야하는 일이 아닐까?

 

 

끝으로...

<카트> 감상문을 쓰면서도 말한 것 같지만,

'전사' '투사'가 되고 싶어서 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상황이, 세상이, 한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전사로 살면 뭐가 좋지? 세상에 맞서는 게 폼나고 멋있나? 아니, 피곤하기만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사가 되고 투사가 되는 건,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거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때론 생계가 되기도 하고, 명예나 자존심이 되기도 한다.

이상호 기자 같은, 고발성 강한 언론을 이끄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건

아마도 '사명감'이 아닐까 싶다. 사명감. 이건 뭐, 신내림도 아니고. 힘들고 버겁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기계가 좋아질수록, 편리한 도구들이 쏟아질수록

머리를 쓰지 않고, 비판의식도 줄어드는 것 같다.

알아봐야 피곤하니 알고 싶지도 않고, 나와 관계없으니 모르고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럴 때 제일 많이 인용되는 게 마틴 니묄러의 시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함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다.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진실을 떠오르게 하는 첫번째 부력은 관심일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낸 두 번째 힘은 비판의식일 것이고.

호모 사피엔스답게, 생각하며 살아야겠다.

귀찮거나 번거롭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것들에 관심을 가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