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내안의 정원 2007. 2. 7. 17:23
        

                         

 

 

 

                          어느 섹스에 대한 기억
 

                                                 김나영




        온 동네가 가난을 식구처럼 껴안고 살던 시절
        언니와 나는 일수(日收)심부름을 다녔다.
        우리 집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일수(日收),
        월곡동을 지나 장위동을 거쳐 숭인동까지
        카시오페아좌처럼 뚝뚝 떨어져 있는 다섯 집을 다 돌면 
        일수 수첩 사이에서 돈의 두께가 부풀어 오르고
        내 가슴에 도장밥 빛깔의 별들이 철없이 떠올랐다.
        일수 수첩 속에는 각각 다른 여러 겹의 삶들이
        붉은 도장의 얼굴을 하고 칙칙하게 접혀져 있었다.
        어느 날 추위를 툭툭 차며 집에 도착했을 때
       `벌써 갔다 왔니?' 하던 엄마의 이마에 송송 
        맺혀있던 땀방울과 아버지의 헝클어진 머리칼과
        파도처럼 널브러진 이불, 들킨 건 나였다.
        아무 것도 못 본 척 문을 닫고 나오던 내 뒤통수를
        쌔리며 사춘기는 내게로 다급하게 휘어들었다.
        삼십 대 후반의 젊은 부모에게
        꼭 묶어두어도 터져나오던,
        때론 밥 생각보다 더 절박했을, 
        한 끼의 섹스가 가난한 이불 위에
        일수 도장으로 찍혀있던, 겨울 그 단칸방.
        언니와 나는 일수(日收) 심부름을 다녔다.

 

 

 

                                            

 

 

 

시인 이승훈 인터뷰/ 김나영

  

       



 

  약속 시간, 10분 전, 지하철 안에서 이승훈 선생에 관한 굵직굵직한 정보를 다시 읽어 본다.

 

시인, 비평가, 시력 43년에 시집 14권과 시론서 20권 등, 기타 서적 총 50여 권,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백남학술상, 강원도문화상, 시와시학 평론상 등 수상, 한국 현대시의 독보적인 모더니스트, 현 한양대 교수 


 



 

  현재 우리 시단에서 독보적인 길을 걷고 있는 모더니스트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의 선두주자인 이승훈 선생의 약력이다. 등단(1963년)이래 지금까지 줄곧 내면의 자아탐구에 집착해온 선생의 행적을 이미 여러 잡지에서 수차례 추적하고 있다. 그만큼 그의 시세계는 새로운 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추적을 따돌리기라도 하듯이 지금도 여타 잡지에 쏟아내는 선생의 행보는 멈출 기색이 없다. 언어학, 정신분석학, 철학, 종교, 미술 등 예술전반을 매개 삼아 그의 시세계는 우리 현대시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가고 있다. 실험과 실험을 거듭하는 선생의 아방가르드적인 시정신과 그 의지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오늘 선생님을 만나면 내 시세계에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주실까. 이미 준비한 취재내용보다 내 개인적인 갈증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강남역 6번 출구 뉴욕제과 건물 안쪽 프레스코건물 14층 타키원” 이틀 전 정공량 주간으로부터 급하게 받아 적은 메모지를 꺼내 들고 뉴욕제과 건물 안쪽 길로 더듬더듬 접어들 때였다. 한 남자가 내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오늘 대담자이신 이승훈 선생이었다. 선생의 손에도 위의 장소가 입으로 후- 불면 금방 쓰러질 것 같은 글씨체가 되어 들려 있었다. 선생의 글씨체는 이렇다. 힘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빈혈을 앓는 글씨 같다. 모처럼 뵙는 선생의 몸도 글씨체와 닮아 있었다, 닮아도 많이 닮아 있었다.


 

  길에서 잠깐 헤매다가 선생과 나는 <타키원>에 도착했다. 미리 도착해 있던 정공량 주간과 최준 시인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차를 주문했다. 웨이트레스가 여긴 술집이란다, 음악 볼륨을 낮춰달라는 주문도 통하지 않는 곳, 사전 답사가 잘못 된 것을 알고 우리는 그곳에서 일어나 5번 출구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영혼의 안식처란 이름을 가진 작은 찻집, 주인보다 향기로운 커피향이 먼저 우리를 맞이 했다. 이곳은 선생이 이따금 들리는 곳이란다. 날 좋은 날엔 노천에 앉아서 차를 주문할 수 있다는 곳, 보란 듯이 창가에 다탁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이곳에 와서 선생의 영혼은 몇 차례나 쉼을 맛보고 갔던 걸까, 의자에 앉자 선생의 안색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검은색 실크 바탕에 회색 문양의 큼지막한 꽃이 박힌 드레스셔츠를 선생은 입고 오셨다. 보통 남자들이 잘 소화해내지 못할 소재의 옷이 선생의 몸엔 제법 잘 어울려 보였다. 그 많은 꽃 중에 회색 빛깔의 꽃이라니,,,선생의 내부에도 저 특이한 빛깔의 회색 꽃이 와와 고개를 들고 있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다소 지체되어 선생도 나도 마음이 바빴다. 차를 주문하고 서둘러 대담에 들어갔다.


 

김나영 : 현재 우리 시단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모더니스트이신 선생님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은 여전히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등에 관한 이론과 시를 발표하시면서 지속적인 다양한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고 계십니다. 선생님께서는 맨 처음 어떻게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을 쓰게 되셨는지, 그로부터 발전 되어온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대한 입지를 다시 정리 피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승훈 : 감사합니다. 흔히 내가 모더니즘의 전달자랄까, 매개자라고 하는데 나는 사실 이론을 위해서 모더니즘을 한 것이 아니고 내가 처음부터 시를 쓰면서 사유한 것, 즉 내 시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한 것이죠. 내가 초기에 쓴 시들,『사물 A』와『환상의 다리』에서 주로 쓴 시가 전통적인 한국시와 비교해 봤을 때, 내가 봐도 낯설어요. 나는 당시 자연을 노래하지도 않았고, 문명을 비판하지도 않았고, 사회를 비판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보이는 세계를 노래한 게 아니죠. 그게 뭔가 돌아봤더니 20대의 억압된 나의 내면과 어두운 청춘, 무의식을 견디지 못해서 밖으로 표출한 것이어요. 한국현대시사를 죽 훑어보니까 그러한 내면의 존재문제를 대상으로 시를 썼던 시인이 이상과 김춘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비대상시를 쓰면서 이상과 김춘수가 했던 작업의 그 끄트머리를 심화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모더니즘을 받아들인 것이죠.

 

모더니즘이라고 하면 흔히들 오해를 하는데, 모더니즘은 자연과 관계없이 도시적인 삶 속에 상처받는 현대인의 내면의식을 그리는 것입니다. 내면의식이라는 것은 리얼리즘으로는 노래할 수 없죠. 그러니까 모더니즘이란 anti-리얼리즘이죠. 언어라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내면의 있는 그대로를 노래한 것이죠. 그래서 모더니즘이란 것은, 자아찾기다. 이 자아찾기는 내 시의 화두죠.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끝난 것이 아닙니다. 80년대 후반, 포스트모던 바람이 불었고 그때 나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그것은 자아찾기란 것이 잘못된 게 아닌가, 바꿔 말하면 자아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이 80년대 말에서 90년대의 주 테마가 되는데 이 자아소멸 채널로 들어가면서 내가 이것을 이론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 후기구조주의, 즉 데리다, 라캉 등의 포스트모더니즘과 관계를 시키게 됩니다. 그것은 자아소멸 문제 즉, 내가 없으니까 언어만 있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한국적인 것이죠. 즉 서구는 서구 문맥 속에서 포스트모던 한 것이 있고 한국에는 한국적인 것 문맥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때 나는 불교와 만나게 됩니다. 자아소멸의 문제와 동시에 최근에까지 생각하는 것은 선적 사유, 즉 선불교적인 사유와 후기구조주의를 어떻게 결합시키는가하는 것이죠. 그래서 요즘 모 잡지에 연재하고 있는 글이 <선과 아방가르드>인데, 아방가르드라는 것을 동양의 선불교 시각에서 읽는 것, 이것이 내가 앞으로 좀 더 심화시킬 부분입니다.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선불교 이 삼단계로 이어지면서 나는 40년 동안 시를 쓴 셈이죠. 그리고 내가 이론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내 시에 대한 반성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시를 쓰면서 전통적인 시에 대한 관심 보다는, 나는 왜 쓰는가? 언어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끊임없이 내게 왔어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시와 더불어 이론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론을 위해서 모더니즘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고 나에 대한 성찰의 한 방법으로 모더니즘, 언어학, 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를 섭렵하게 된 것입니다.


 

김나영 : 위에서 말씀해 주신 부분과 중복되기도 한 질문이지만 좀 더 심화된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최근 작품 경향이 모더니즘을 토대로 하면서도 동양의 불교, 특히 선(禪)사상에 대해 유독 관심이 깊으신 것으로 압니다. 그것은 작품 안에서는 동 ․ 서양이론의 만남이란 점에서 독특하게 여겨지고 있는데요, 이에 관한 특별한 의도가 있으신지요? 


 

이승훈 : 나는 여태까지 시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무슨 목적도 프로젝트도 없어요. 그냥 그날 그날 허무해서 쓴 것이죠. 그러니까 불교에서도 내가 처음 선불교를 접하게 된 것은 개인적인 것이었는데 장모님 49재 때, 법당에서 우연히『금강경』을 펼치게 되었죠. 그때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불교의 바른 뿌리)이라는 사상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으로 보살이 지켜야 할 사항들을 말하는 것인데, 불교에서는 이 네 가지를 다 버리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아상(我相), 즉 나를 버리란 말 앞에서 나는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자아찾기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그걸 읽는 순간 나는 완전히 허물어지게 됩니다. 그동안 나는 나라는 게 없는데 나를 찾아 헤맨 게 아닌가, 하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걸 계기로 나는 자아탐구에서 다시 자아소멸로 다시 자아불이(不二)의 세계로 내 시세계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선적사유는 이렇게 내게 온 것이고 특별히 공부한 것은 없습니다. 그 선적 사유를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이 있다면 작년에 낸『선과 기호학』입니다. 이 책은 스님들의 화두를 언어학적으로 분석한 것이죠.

 

선에 관해서는 그 정도에서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선(禪)에 이르기 위해서는 실천 수행이 따라야 하고, 언어의 차원이 아닌 몸소 수행의 차원에서 완성되는 것인데 나는 수행을 할 수도 계율을 지킬 수도 없습니다. 나는 선을 공부하면서도 여전히 술 먹고 담배 피고 하는 데 그걸 어떻게 그만두나, 거기에 내 한계를 느꼈죠. 나는 수양과 계율과 참선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불교에 대한 내 개인적인 관심에서 금강경을 만났고, 그 금강경 가운데서도 아상(我相)에 해당하는 <나>라는 상을 버리라는 그 선적 사유가 나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김나영 : 선생님은 앞에서 말씀하셨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이수자로서 이에 걸맞은 다양한 작품세계를 구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선생님께 조심스런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이 쓰시는 작품이 문학 미학적 측면 혹은 문학의 긍정적인 효용의 측면에서 비춰볼 때,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은 문화적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있거나, 문화적 나침반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작품이 본질보다는 <현상>과 <보여주기>에 치중되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 대해서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만약 이에 대한 대안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승훈 : 나는 지금도 포스트모더니즘의 큰 흐름 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내 과제라 생각 합니다. 내가 90년대 발표한 포스트모던한 기질의 시집,『나는 사랑한다』에서 주로 나타된 것도 표면성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장점이라 생각하죠. 바꿔 말하면 표면성이라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입니다. 그동안 한국 시인 예술가들이 깊이, 진리, 본질 등을 찾아왔는데 못 찾았습니다. 이것에 대한 대안으로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수용했고, 이것은 후기구조주의와 선불교와 맞물린다는 생각이죠.

 

선불교에서도 나의 본질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예를 들어 여기 있는 이 컵이라는 물질은 컵이라는 언어와 유리물질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죠. 컵은 하나의 시니피앙이지만 언어세계는 질서가 아니라 파편이죠. 이런 관점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미학적, 철학적 토대가 되죠. 그래서 나는 모더니즘에 지쳐서 선불교, 데리다를 만나면서 현상과 본질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왜 꼭 진리나 본질을 찾아야 하나? 본질과 진리가 없는 데 왜 찾아야 하나? 없는데,,,


 

  그리고 앞으로 방향은 나도 모릅니다. 언제나 모든 예술은 소수의 독자가 참여할 뿐이다.


 

굳이 방향이라면 나는 작년과 올해 들어 <멀티시>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아래 시는 가장 최근에 발표한 시 인데 시론, 언어에 대한 이야기, 시 쓰는 방향을 이야기 하다가, 평론, 자질구레한 일상적 이야기, 전통서정시를 쓰는 이야기, 그리고 비 내리는 이야기 등,,, 8개의 이야기를 중첩하여 쓴 다중적 multi 구조로 되어 있죠. 이것은 딱히 시랄 수도 편지라고도 할 수 없죠. 나는 이 중첩된 구조를 <다중시>라고 부릅니다.


 



 

현대시는 끝났어 이젠 모두가 시이고 모든 게 가능해 신문 광고 사진 만화 모두가 시야 그러나 우리 시단은 아직도 무슨 순수 서정 정신만 고집하고 내 친구 오세영은 최근에 시조를 쓰네 김수영 이후 우리시는 서정시 일색이야 이젠 우리 현대시의 역사도 끝나고 모든 게 자유야 역사의 끝이 역사의 목적이지 마음대로 쓰자


 

문을 열고 들어온 준이는 스프레이가 만원이라고 하네 지금 밖에 비가 오니? 내가 물었지 내일은 인제엘 가야지 박인환 문학상 시상식은 오후 네시 내일도 비가 오겠지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가면 좋겠어 중요한 건 色卽是空 空卽是色 현대시는 끝났어 현대시의 역사가 끝난 거야 최근의 우리시는 쓰레기 잡종 얼마나 좋아? 난 지금 시론을 쓰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쓰지는 아니 편지를 쓰는지 몰라 몰라도 좋아 몰라도 좋아 이 무지가 좋아 황홀한 무지 무지의 황홀 내일도 비가 오겠지 방향은 없어 어디로 가도 되니까!


 

                                      -「나는 다른 누구일 뿐이다」『시와 세계』(2006년, 여름호)


 



 

  이것은 아무 의미 없는 삶의 이야기죠. 해석이 나는 싫어요. 그저 의미 없는 상황이나 일상적 이야기, 살아가는 그 자체죠. 우연히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 등, 이런 작업을 거의 2년 동안 해왔습니다. 이것은 선적사유로 생각합니다. 삶의 의미를 굳이 해석을 않는 것이죠. 나는 시적 의미든 사회적 의미든 모든 의미는 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에도 시에도 본질이나 실체는 없습니다. 그저 있는 것이고, 그저 사는 것이고, 그저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 아무 것도 없는, 그게 사람 사는 이야기란 걸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이것이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상대적으로 의미를 주면 좋고 또 모르면 몰라도 관계 없는 것 아닌가. 꼭 의미를 찾아야 하나! 삶과 시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고 이 모순 자체가 삶이고 진리입니다.


 

김나영: 지금까지의 질문이 선생님 작품세계에 대한 대외적인 질문이었다면 이 질문은 선생님께 드리는 개인적인 질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시인들에게 있어서 시 쓰기의 기쁨 중 하나가 시를 쓰거나 발표할 때 어떤 형태로든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동안 작품을 발표해 오시면서 어떤 때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요?


 

이승훈 : 나는 글을 쓰고 난 후 나의 트라우마들이 더 크게 부각 됩니다. 이것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얘기하면 개인의 어떤 상처나 증상, 그 증상을 언어화시킴으로써 소멸시키는 방법이 곧 글쓰기입니다. 그러니까 시 쓰기는 억압된 내면의 트라우마를 드러내는 작업이죠. 최근에는 이러한 트라우마로부터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합니다. 즉 나로부터의 해방, 자아해방을 추구하는 것이죠.

 

모든 시 쓰기는 자기 방어인데, 최근에 이런 방어 메카니즘이 아니라 해방, 자아해방, 욕망이나 무의식로부터의 해방을 생각하고 있죠. 이것이 내 시 쓰기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있어 쓴다는 행위는 위안, 자아도취 보다 쾌락과 고통이 같이 있는 세계죠. 그런 공간, 시 쓰는 그 순간만큼은 나를 잊어버릴 수 있어서, 순간적인 망각, 나를 잊는 그 순간이 좋아서 나는 그동안 시를 써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각이 바뀌어서 그런 것도 느끼지 않은 상태, 즉 행복, 불행의 개념도 없는, 무심(無心) 이랄까, 자유자재, 마음 없음, 행복, 불행도 없는 세계를 생각하고, 한번 쓰면 고치지 않고 나오는 데로 일필휘지 하는, 나 없이 그냥 흘러가는, 그런 시 쓰기까지 가야되지 않겠는가, 생각 합니다.

 

나를 빼고, 자유자재로 그냥 흘러가는 무아(無我)의 경지에까지 이르고 싶습니다. 모더니즘의 속성이란 뭔가를 만드는 것인데, 그것은 시 따로 인생 따로 가게 합니다. 그걸 허무는 작업이 아방가르드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일상이 곧 시가 되는, 일상과 시의 경계가 없는, 미학적으로 해체되는 그런 점에서 아방가르드를 옹호 합니다.      


 

김나영 : 이번에는 선생님께서는 우리시에 문제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그리고 우리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하여 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승훈 : 내가 볼 때 한국현대시는 근대, 현대, 후기현대 이 세 시기가 공존하고 있다고 봅니다. 지금도 여전히 전통 서정시로의 퇴행성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여전히 꽃노래, 산 노래하는 것은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왜 이렇게 촌스러운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낭만주의를 노래하고, 1920년대 김소월류의 시들을 여전히 양산하고 있는가. 요컨대 그것은 이론가들, 평론가들, 잡지사 주간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들이 공부 안 하는 것 아닌가, 이에 대한 평론가들의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최근 큰 문제로 부각하고 있는 젊은 환상파(여기서 선생이 말하는 환상파란 요즘 시단에서 주목받고 있는ꡐ미래파ꡑ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선생은 미래파란 말은 적합하지 않다고 이렇게 부른다)들이 그래도 낫습니다. 나는 이들을 두고 언급한 바는 없지만, 그들은 내가 긍정하건 긍정하지 않건 일단 새롭지 않은가. 시행착오도 있을 것 같고,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봅니다. 촌스런 서정시는 아니니까. 물론 조작은 아니겠는가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나 전통서정시를 쓰는 시인들 보다는 낫다고 봅니다. 젊은 세대들의 분열된 악몽, 분열된 의식, 순진과 치기가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어 그래도 낫습니다. 이제 현대시는 미적자율성, 현대시의 평가기준, 언어의 응축, 질서 등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현대시는 끝났다고 봅니다. 이 환상파들의 시는 진보(?)하는데 새로운 시각의 평가기준이나 이론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들의 시를 기존의 시각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현대시는 끝났다고 보는 것이죠.


 

  그러나 현대시의 죽음이 시의 죽음은 아닙니다. 시는 지금도 계속 쓰여지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현대시는 끝났다는 것은 현대시의 역사가 끝났다는 것. 결국 지금 21세기 우리의 현대시는 제멋대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방향이 없다는 것은 멋대로 쓰고 있는 것이고, 시론이 없다는 것이죠. 이것은 젊은 평론가나 이론가들이 해결해 나가야할 숙제라고 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은,,, 나도 모르겠습니다. 내 시도 내일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멋대로 가자. 방향이 없는 것, 그게 방향입니다.(실소)


 

김나영 : 선생님은 3-40년 동안 시창작과 이론을 겸하고 계신데 창작과 이론 사이의 갈등이나 함수관계(?)를 어떻게 조율해 나가고 계신지요?


 

이승훈 : 나는 그것이 현대성의 문제와 연관을 맺고 있다고 봅니다. 예전 시인들은 시만 쓰면 됐죠. 그런데 현대 시인은 창작을 하면서 왜 이론을 겸하느냐? 그것은 미적 현대성과 결합이 되는 것이죠. 자신이 쓰고 있는 시에 대한 질문, 곧 이론은 자기 성찰의 방법이라고 보는 것이죠. 자기에 대한 반성입니다. 그러나 이론 없이도 시는 쓰는 것입니다. 김종삼 시인이 이론에 강했는가, 천상병 시인이 이론을 공부했는가. 아니잖은가, 그래도 그들의 시가 좋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창작과 이론을 병행한다는 것은 자신의 창조 작업에 대한 질문, 성찰, 반성이 됩니다. 나아가 우리 시론의 역사에 대해 기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작은 상상력이나 환상의 세계이고, 이론은 이성과 논리의 세계죠. 상상력과 논리란 따로 가는 세계입니다. 상상력은 자유를 찾아가는 것이고, 이성은 구속을 찾아가는 것. 그래서 공부를 하건 창작을 하건 이 두 가지를 어떻게 결합시키는가가 어려운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내 시를 연구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러니까 이 두 가지를 그때그때 잘 조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작업이 실제적으로는 매우 어렵죠.


 

  그런데 나는 체질적으로 두 가지가 다 좋았어요. 나는 방황하고 고민하면서 시 쓰는 것 도 좋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수학문제 푸는 것도 좋아했으며, 지금도 이론, 철학, 논리가 참 좋습니다. 그게 내 체질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두 가지를 조화롭게 병행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 나는 그저 적당히 해 온 것 같습니다.


 

김나영 : 우리나라에 현재 인터넷 등에 수많은 시애호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시는 아직도 현실과 유리된 감이 있다고 봅니다. 이에 관한 해결점을 어떻게 마련해가야 할지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승훈 : 인터넷 매체란 언어와 다르죠. 인터넷이란 상호정보를 주고 받는 매체입니다. 그러나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지만 모두 혼자 쓰는 것 아닌가. 인터넷이란 가상공간입니다. 그러니까 전통적으로 생각했던 시, 그걸 노래해서는 안되겠지요. 매체가 다르니까. 인터넷 매체의 속성이란 파편적이고, 즉흥적 입니다. 그걸 현실과 굳이 결합시킬 필요가 있을까. 나는 시도 현실과 관련시키는 게 뭐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현실이란 게 환상인데,,,그러니 인터넷 상의 시들도 시로 인정을 하자는 게 내 생각이죠.


 

김나영 : 선생님은 대학교와 문화센터 등에서 시 잘 쓰는 시인들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배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시인이 되려는 예비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 몇 마디를 부탁 드립니다.


 

이승훈 : 시라는 건 곧 삶인데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고,,, 물론 문창과 같은 데서 시 창작 훈련을 많이 받는 건 좋죠. 축구선수가 축구를 잘 하려면 매일 훈련을 받아야하는 것처럼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작법에 관련된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되죠. 삶이 동반할수록 좋은 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결국 공부인데 공부라는 것이 시 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 소설, 기타 무엇이든 다양한 분야를 섭렵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시만 공부하죠. 잔재주를 부리는 건 잠깐입니다. 시를 오래 쓸려면 자기만의 세계의 추구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을 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김나영 :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제 대학 정년을 몇 년 남기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승훈 : 1년 반 남았습니다. 아이들 가르치면 나도 배우는 게 많으니까 대학은 내게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재미도 있고,,, 그리고 가르치는 게 내 업이란 생각도 들죠. 내가 다른 데 갔으면 뭘 했을까 싶습니다. 때론 아이들 앞에 거짓말도 해가면서 이렇게 살아온 것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엔 몸이 안 좋아 종합검진을 받고 서 너 군데 정밀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래 여태까지 살았으면 몸 좀 망가지는 거 당연한 것 아닌가 싶고, 그냥 살 때까지 살다가 갈 때 되면 가면 되는 거라 생각 합니다. 젊었을 때는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죠, 내가 허무주의자라서,,,(실소) 그렇게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획은,,,건강이 허락하는 한 쓰고 싶은 글이나 좀 쓰고, 어디서 강의 좀 해달라면 강의 하고,,, 그러나 그냥 그날 그날 내가 좋아하는 맥주 먹고, 담배도 피우고 놀고 싶습니다. 뭐 특별한 계획이란 없습니다.


 

김나영 : 오랜 시간 대담에 응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대담을 끝내고 선생과 우리는 앞 노천카페로 나와서 맥주와 안주를 주문했다. 거리에는 시원한 바람 몇 줄기가 만장처럼 너울거리고 있었다. 밖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지만 어둠을 밀어낸 도시의 밤이란 낮보다 더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 틈에 앉아 우리는 맥주잔을 기우렸다. 모 잡지에 소개된 바대로 술을 드시는 선생의 손은 다른 안주에는 손도 안댔다. 마른 멸치와 김에만 손이 쏠렸다. 꽤 까다로울 것 같은 선생의 식성은 의외로 소박하고 검소했다. 40여 년간 자아찾기에 오로지 집착해온 세월이 선생의 식성마저도 그리 한쪽으로만 쏠리게 만들어 놓았을까.


 

  선생은 스스로의 삶을 무계획적이고 무목적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정신의 자유를 맛 본 자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소리인 게다. 선생의 그 자유로움이 독보적인 시세계를 만들고 지금도 새 길을 향해 서 있게 만들었으리라. 비우고 또 비우고, 쓴다는 생각도, 언어도 다 비운,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정신의 그 자유로움이, 곧 삶과 시의 경계가 해체된 경지가 되어 도시 한가운데로 아무도 내지 않은 길을 내고 있는 것이리라. 체질상 기꺼이 외로움을 껴입고 길 없는 길을 가는 선생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아도 바람처럼 길을 갈 것이다. 그게 선생의 자유이고, 비움이고, 나 없음이고, 자아찾기의 긴 여정이며, 목적 없는 목적이다.


 

  나는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선생은 이 물음 하나 해결하기 위해 전 생애를 몽땅 다 바쳤다. 어쩌면 그는 이 물음 때문에 세상에 왔으며, 필연적으로 시인이 되었으며, 비평가가 되었으며, 모더니스트가 되었다. 40여 년간 이 문제 하나에 세월을 바쳤지만 지금도 그의 여정에 쉼표가 없는 것은, 세상에 있는 수많은 길 중에 인간의 내부로 가는 길은 가장 멀고도 먼 길인지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스스로 말한다. …영원은 없다. 소멸이 진리다. 삶이 시이고 시가 삶이다. 아니 삶과 시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이 모순을 사랑하자. 모순 자체가 삶이고 진리이다. 시는 써도 되고 쓰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선생은 그 긴 세월의 강 위에 삶을 싣고, 학문과 예술을 싣고 이 도시를 향해 오랫동안 노 저어 온 걸까. 선생의 생애가 이 도심 한가운데로 기꺼이 몸 바친 번제(燔祭)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선생의 검정색 드레스셔츠에서 회색 꽃들이 한 송이, 두 송이,,, 어두운 도심의 하늘을 향해 둥둥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나영)


 



 

                                                                          -계간, 『시선』(2006년, 가을호)    


 



 

 

 


 

김나영 

충북 중원 출생

88년  《크리스찬신문》신인문예상 수상 (‘가시나무새’)

94년  《동서문학》가을호 신인상 수상 (‘가벼운 섬’ 외 4편)

96년  4월, 첫시집 『화려한 망사버섯의 정원』출간-문학과 지성사

중앙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박사과정 수료

경인여대 강사.

              1998년 6월 <예술세계> 신인상 등단

              2005년 <문예진흥기금 수혜>

              계간 문예 <다층> 편집 동인

                 개인 홈페이지:http://ckd6300.kll.co.kr/

                 
 

 

ㅋㅎㅎ.. 시 재밌네요.^^ 언제인가 읽은 기억은 있는데.. 가져갑니다.
작가가 문예진흥기금 수혜자였군묘?! ^^=
초롱이 읽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