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과 느낌

도시선비 2012. 10. 18. 10:48

■ Freddie Aguilar ... !

 

프레디 아귈라 (Freddie Aguilar) 는 필리핀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로서 1953년 2월 5일 필리핀에서 태어났다. 그는 필리핀의 국민가수로서 마르코스 독재정치시덜 저항음악가이기도 했다. 그의 데뷔는 1978년 자작곡인 "아낙 (Anak, 아들)" 으로 하였다.


프레디의 아버지 살루드 아귈라 (Salud Aguilar) 는 필리핀의 시골 경찰서장이었다고 하는데 그의 아버지는 프레디가 음악에 심취해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했고 프레디가  법학을 전공해 훌륭한 법률가가 되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전자공학을 선택했고 또한 공부하는 시간을 줄여 그가 좋아했던 음악을 위해 밤무대를 떠돌며 무명가수생활을 전전하게 되었는데 이 때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만든 노래가 바로 이 "아낙 (Anak)" 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했던 그의 대표곡인 "아낙 (Anak)" 은 "아들 또는 자식" 이란 의미인데 지금의 40 ~ 50대면 Pop 팬들이라면 누구나 많이 들었었던 곡이다.

 

 

 

 

"아낙 (Anak)" 은 1978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1회 "메트로 마닐라가요제" 에서 우승한 음악이다. 이 우승으로 후, "아낙 (Anak)" 음반은 그해 필리핀에서만 50만장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약 1000만장 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기록을 세운 필리핀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으며 영어버전으로 미국에서 빌보드싱글챠트 5위에 랭크되었었고 독일에서도 산레모가요제 우승자였던 "바비 솔드 (Bobby Sold)" 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고 한다,


프레디 아귈라 (Freddie Aguilar) 는 민중가수, 저항가수인데 그 이유는 그의 지나온 시간들에서 잘 알수가 있다. 프레디의 지나온 삶을 살펴보면 와 닿는 부분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아침이슬", "상록수", "님을 위한 행진곡" ... 이런 노래들을 대학에 다닐 때 좋아했었다. 프레디도 그 당시 그런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그 시기 필리핀은 마르코스 독재정치하의 암울한 시대였는데 프레디는 마닐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한칸의 교실에서 그 지역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인 아귈라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그의 공연수입으로 구입해 주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때 프레디와 필리핀 전체를 충격속으로 몰아넣은 대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사건은 마르코스 독재를 피해 망명중이던 니코이 아키노가 필리핀으로 돌아오던 중 공항에서 암살을 당한 것이었다.


그러자 이 사건에 분노한 필리핀 국민들은 거리로 나섰고 마르코스 정권에 격하게 항거하게 되었는데 프레디는 이러한 것들을 지켜보며 자신의 외국진출과 성공가도을 접어두고 거리에서 필리핀 민중들의 자유와 민주주의을 열망하는 곳에서 필리핀 민중들의 울분을 달래며 그도 저항의 한복판에 서서 "Bayan Ko (나의 조국)" 을 부르며 혁명의 복판에 서서 필리핀의 아들로서 거듭나며 필리핀 국민들의 사랑과 신뢰을 쌓아가며 피리핀 민중들과 함께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후로 프레디는 그들의 중심에 서서 그들의 숨결로 노래를 했으며 필리핀 국민들의 삶을 노래하는 민중가수가 되었고 "자유를 외치는 곳",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민중속" 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단지 가수가 아니라 필리핀 국민들로부터 깊은 사랑과 존경을 받는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항쟁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였지만 프레디의 노래는 여전히 필리핀 사회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는 여전히 술집여자, 해외 이주노동자, 감옥에 같힌 이들의 아픈 삶을 노래하고 어루만지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 출세길이 보장된 그리고 성공가도을 달리던 가수였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필리핀의 자유와 민주주의 마르코스의 독재에 항거한 것이다. 1986년, 그 유명한 피플파워로 마르코스의 독재정치가 끝장나던 곳에서 그는 필리핀의 아들로서 자신의 조국 필리핀의 자유와 함께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프레디는 필리핀 혁명이 끝난 지금도  아름다운 삶을 잊지 않고 있다. 자신의 조국을 위해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실천하는 따뜻함을 잊지않고 있어서 이 또한 필리핀 국민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프레디 아귈라 (Freddie Aguilar) 의 대표곡인 "아낙 (Anak)" 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그린 노래이다. 아낙 (Anak)은 보통 제3세계 가수들이 셰계시장을 목표로 해서 영어로 음반을 취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노래는 필리핀 고유어인 "타갈로그어" 로 녹음되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유례가 드문 곡이다. 물론 그의 음반에는  "아낙 (Anak) " 의 영어버전도 수록되어 있지만 "타갈로그어" 로 녹음된 것보다 그 깊은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지는 못할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 김소월의 시를 영어로 번역할 경우나 아니면 ... 조지훈의 승무 (얇은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 를 영어로 번역할 경우, 그 깊은 의미나 감정이 그대로 서양인들에게 전달할 수가 없는 것돠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 "아낙 (Anak)" 은 "프레디 아귈라 (Freddie Aguilar)" 의 자전적 노래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감동이 더 클지도 모른다. 이 노래의 가사는 "네가 태어났을 때 엄마, 아빠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 " 로 시작해서 아들이 집을 나가는 과정을 그린 후, "부모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지 ?" 로 끝을 맺는다.

 

프레디가 필리핀 가수이면서도 독보적인 존재가 된 이유는 아시아 가수로써 최초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낙 (Anak)" 이후에도 "Magdalena", "Bayan Ko" 등의 주옥 같은 곡을 발표하며 빌보드 싱글 챠트에도 그의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 아낙 (Anak)은 필리핀에서 성공한 노래일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20여개국 언어로 번안되어 불려졌는데 약 천만장이상 음반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황은미, 정윤선 등이 번안해서 불렀다고 한다.

 

 

■ 곡명 : Anak (Freddie Aguilar) ... !

 

 

정말 감동스럽고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담아가요^^
감사합니다.
자서전 쓰기에서 어르신들과 자녀 이야기하면서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