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을 기다리며~~

관재 2015. 3. 30. 15:11













홍동화-황칠장




황칠장



 


 


 


 








 


 


 


 


 


 


 


 


산림과학원, 황칠나무 통해 고부가 벌꿀 수확 가능 이미지1

황칠나무 통해 고부가 벌꿀 수확 가능
- 국립산림과학원, 도료-식,약용-밀원 자원 등 다목적 소득 예상 -

국립산림과학원(원장 윤영균)은 밀원이 부족한 한여름에 양봉 농가의 시름을 해결해줄 황칠나무의 밀원적 특성을 구명했다고 밝혔다.
이는 우리나라 벌꿀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아까시나무가 노화 등으로 쇠퇴해 2003년 3만352톤이던 벌꿀 생산량이 2014년 2만1,500톤으로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대체 밀원을 발굴한 것이다.
황칠나무는 뚜렷한 밀원이 없는 7~8월 무밀기에 개화한다. 개화량이 많아 꿀벌 선호도가 매우 높다. 꽃 하나당 화밀분비량은 3.7㎕로 아까시나무 2.2㎕보다 1.7배 이상 많아 밀원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뿐 아니라 황칠나무는 천연도료 및 식 약용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매우 큰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황칠나무에서 채취한 전통도료 황칠은 삼국시대부터 황제 국왕 제왕의 갑옷, 투구, 기타 금속장신구 등의 황금색을 발하는 진귀한 도료로 이용돼 왔다.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도료인 황칠은 다른 천연도료는 물론 수많은 인공도료에서도 발현하기 힘든 수려한 황금빛 색감과 안식향이라는 천연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신경 안정, 우울증 치료, 전립선비대증 치료, 황산화활성, 항암활성 등에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산림과학원 김세현 특용자원연구과장은 “화밀분비량이 많은 황칠나무 품종이 육성, 보급되면 황칠나무를 이용한 밀원자원 및 천연도료, 식 약용자원 등으로 소득다원화가 가능해 재배 농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국립산림과학원은 재배 농가의 소득 증대에 기여하기 위해 대체 밀원 개발에 대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다.









황칠나무의 잎, 열매모습

황칠나무의 열매, 수액의 모습

▶ 진통작용, 혈액순환촉진작용, 풍사를 몰아내는데, 습사를 없애는데, 근육과 힘줄을 푸는데, 통을 완화시키는데, 중풍, 사지마비동통, 반신 불수, 관절염, 염좌상, 안식향, 풍습비통, 편두통, 황금색의 천연 도료, 월경불순을 다스리는 황칠나무

황칠나무(
Dendropanax morbifera Lev.)는 두릅나무과(오갈피나무과) 황칠나무속으로 동아시아, 말레이 반도, 중앙 및 남아메리카에 약 75종이 분포되어 있으며, 한국, 일본, 중국, 대만에 분포 아열대 활엽 상록수로 우리나라에는 1종이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 남쪽 및 제주도의 바닷가와 섬의 그늘지고 습한 늘푸른 활엽수림 또는 산비탈의 관목림 속에 자라는 늘 푸른 큰기나무이다. 키는 15미터 가량 자란다. 잎은 표면에 털이 없고 매끈하며 어긋나고 달걀형~타원형으로 잎몸이 전혀 갈라지지 않거나 3~5갈래로 손가락처럼 깊게 갈라지는 것도 있으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오래된 노거목의 잎들은 보통 둥근 형태인데 반해서 새로 나온 잎들이 갈라지는 현상이 많이 발생한다. 여름에 가지 끝의 산형꽃차례에 자잘한 황록색 꽃이 모여 핀다. 핵과 열매는 거의 타원형이며 5개의 모서리가 있으며 각 모서리에는 또 세로의 모서리가 3개 있다. 검은색으로 익는다. 개화기는 6~8월이고 결실기는 10월이다. 꽃은 양성화이고 꿀샘이 있으며 꽃자루는 길이 5~10mm이고 꽃받침은 종 모양이며, 끌이 5갈래이며 꽃잎도 5장이다. 수술은 5개이고 씨방은 5실이며, 암술머리는 5갈래이다.

우리나라 황칠나무의 분포도를 보면 제주도, 전남 완도, 대흑산도, 거문도, 외나로도, 전북 어청도, 경남일대 바닷가 등에서 자라고 있다.  

황칠나무라는 뜻의 학명은
<나무인삼>이라는 뜻(Dendro-panax Morbifera Nakai)을 가지고 있다.

황칠(黃漆)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황칠나무껍질에 상처를 내면 노란색의 액체가 마치 옻나무의 옻칠처럼 나온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황칠나무를
<노란옻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잎이 마치 오리발을 닮았다고 하여 압각목(鴨脚木) 또는 압각판(鴨脚板), 압장시(鴨掌柴)라고도 부르며, 황금색 닭발을 의미하는 금계지(金鷄趾)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 황금색이 나는 칠을 옛날에 가구에 칠하였는데 번쩍거리는 황금색의 이 도료(
塗料)는 귀중한 칠 재료로 사용되어 온 나무이다.  

황칠나무의 다른이름은
풍하리[楓荷梨=
fēng lí=, 편하풍:偏荷楓, 압각목:鴨脚木, 이하풍:梨荷楓, 반하풍:半荷楓: 강서초약(江西草藥)], 이풍도[梨楓桃, 목하풍:木荷楓, 오가피:五加皮, 풍기수:氣樹, 압각판:鴨脚板, 반변풍:半邊楓, 변하풍:邊荷楓, 압장시:鴨掌柴, 백산계골:白山鷄骨, 금계지:金鷄趾: 절강민간상용초약(浙江民間常用草藥)], 수삼[樹參: 중약대사전(中藥大辭典)], 황칠나무, 노란옻나무 등으로 부른다.

[채취]


황칠나무의 뿌리 및 줄기를 가을 또는 겨울에 채취한다.

[성미]


<강서초약>: "맛은 달며 성질은 따뜻하다."

[효능]


풍사(風邪)를 몰아내고 습사(濕邪)를 없애며 혈맥을 잘 통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풍습 비통, 반신 불수, 편두통, 월경 불순을 치료한다.

1, <강서초약>: "풍사를 몰아내고 습사를 없애며 월경을 조절하고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는 효능이 있다."

2, <절강민간상용초약>: "풍사를 몰아내고 습사를 없애며 근육과 힘줄을 풀고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며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능이 있다."

하루 20~40그램을 물로 달여서 복용한다. 또는 술에 담가서 복용한다.

[주의사항]


<강서, 중초약학>: "임신부는 금기이다."

황칠나무에 대해 안덕균의
<한국본초도감>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풍하리(楓荷梨)

두릅나무과의 늘푸른큰키나무 황칠나무(Dendropanax morbifera Lev.)의 뿌리와 가지이다.

성미: 맛은 달고 성질은 따뜻하다.

효능: 거풍습(祛風濕), 활혈맥(活血脈)

해설: ① 풍습성으로 인한 반신불수, 사지마비동통에 유효하며, ② 생리불순에는 이 약물 20그램에 물 500ml를 넣고 달여서 복용한다.]

황칠나무와 비슷한 변종에 대해서 중국에서 펴낸
<중국본초도록> 제 10권 121면 4767호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백반풍하(白半楓荷)   

기원: 오갈피나무과(두릅나무과;Araliaceae)식물인 변엽수삼[變葉樹參: Dendropanax proteus (Champ.) Benth.]의 뿌리이다.

형태: 소교목이다. 잎은 단엽(單葉)으로 어긋나며 혁질(革質) 또는 지질(紙質)이고 선점(腺點)은 없으며 잎의 형태는 변이가 많아서 분열하지 않는 잎은 타원형(橢圓形)이거나 타원상(橢圓狀) 피침형(披針形) 내지 선상(線狀) 피침형(披針形)이며, 분열하는 잎은 도삼각형(倒三角形)이고 2∼3갈래로 얕게 갈라지며 양면에는 털이 없고 기출맥(基出脈)은 3개이며 뚜렷하지 않을때도 있다. 화서(花序)는 산형화서(傘形花序)로 단생(單生)하거나 2∼3개가 취생(聚生)하며 꽃잎은 5장이고, 암술대는 합생(合生)하여 주상(柱狀)을 이룬다. 열매는 구형(球形)으로 세로로 된 능선이 없고 직경은 5∼6mm이다.



분포: 산골짜기나 시냇가의 숲속 또는 산비탈 길가에서 자란다. 중국의 화남(華南) 및 호남(湖南), 복건(福建)에 분포한다.

채취 및 제법: 가을과 겨울철에 채취하여 햇볕에 말린다

효능: 거풍제습(祛風除濕), 서근활혈(舒筋活血).

주치: 풍습비통(風濕痺痛), 반신불수(半身不垂), 염좌상(捻挫傷), 편두통(偏頭痛).

용량: 하루 15∼30g을 물로 달여서 복용한다.

참고 문헌:
<광서약용식물명록(廣西藥用植物名錄)>, 331면.]


황칠나무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풍습비통(風濕痺痛)

황칠나무뿌리, 구등근(鉤藤根), 각 37.5그램, 우슬초뿌리, 계지(桂枝) 각 12그램, 홍당(紅糖), 미주(迷酒) 등을 섞어 달여서 차처럼 만들어 마신다. 연속 3일 복용하고 2일 중지한다. 이것을 1치료 기간으로 하여 5치료 기간을 계속한다. [강서초약(
江西草藥)]

2, 진상(陳傷), 풍습성 관절염

황칠나무뿌리, 호장근(虎杖根), 홍총목근(紅
木根: 서향나무의 뿌리), 발려근(菝葜: 청미래덩굴뿌리) 각 600그램, 목통(木通: 으름덩굴줄기) 300그램을 소주 3600그램에 담가 7일 동안 두면 풍습주(風濕酒)가 된다.  이것을 하루에 한 작은 술잔씩 복용한다. [강서민간상용초약(江西民間常用草藥)]

3, 편탄(偏
癱: 사지마비, 중풍)
황칠나무뿌리 20~40그램을 물로 달여 3개월 동안 계속 복용한다. [강서민간상용초약(
江西民間常用草藥)]

4, 편두통

황칠나무 줄기 75그램을 물로 달여서 찌꺼기를 버린 후 계란 한 개를 넣고 끓여서 즙과 계란을 복용한다. [강서초약(
江西草藥)]

5, 월경 불순

황칠나무 뿌리 19그램을 술로 볶은 후 달여서 1일 1컵씩 빈속에 복용한다. [강서초약(
江西草藥)]

황칠나무는 종자로도 번식이 되며 꺽꽂이로도 번식되므로 잘 가꾸기만 하면 용도가 매우 다양한 나무로써 조경수, 공원수, 약용 및 천연도료 등 그 가치가 대단히 뛰어난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라남도
완도 정자리의 황칠나무(Dendropanax morbifera Leu.)는 수령이 400년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황칠나무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서의 학술적 가치는 물론 황칠나무를 대표하는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효능이 뛰어나고 귀해 주로 왕실이나 황실에서 사용해 왔던 전통도료 황칠과 관련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황칠도료의 우수성에 대해 백제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은 기록이 있으며, 신들린 나무로 인식해 마을 가까이 위치한 유용자원인데도 보존해 온 역사적 및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하여 2007년 현재 천연기념물 지정 예고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그 나무의 서식지는 정확히 전남 완도군 보길면 정자리 산115-7번지, 전라남도 기념물 제 154호, 수고 15m, 밑동둘레 1.8m, 흉고둘레 북쪽가지 0.9m, 남쪽가지 1.24m, 문화재보호구역 1필지 1256㎡(나무주위 반경 20m)이다.

황칠나무의 향은 안식향으로 향기가 좋아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와 동시에 아름다운 황금빛 천연 투명 도료인 황칠을 많이 심고 가꾸어 옛정신을 되살리고 냄새도 역겹고 인체에 해로운 화학 페인트을 대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간절히 고대해 본다.







남해안 황칠나무

두릅나무과 식물은 세계적으로 80여속 900여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8속 14종 5변종 1품종으로 모두 20종류가 자생하고 있다.

그 중 황칠나무속(Dendropanax)은 동아시아속으로 30여종이 분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황칠나무 1종이 자생하고 있다.
황칠나무는 1910년 Leveille에 의해 Dendropanax morbifera로 명명되었으며, Nakai는 제주도 및 완도 식물조사 보고서에서 이곳에 자생하고 있는 황칠나무를 일본에 자생하는 Gilibertila tripida와 동일하게 취급하였으나,
그 후 1927년 조선 산림식물편에서 Textoria morbifera로 속을 달리 명명하고, 제주도, 완도, 보길도, 주도, 대흑산도에 분포하다고 보고하였다.

한반도의 식물상과 식생에 관한보고는 많으나 상록활엽수에 관한 보고는 Uyeki의「조선식물대」와 1941년「조선 상록활엽수 북한대에 관하여」에서 시작되었으며,
정태현은 황칠나무를 Nakai가 명명한 학명으로 한국식물도감 상권에 수록하고 제주도, 완도, 대흑산도, 어청도, 경남의 도서지역에 자생한다고 보고하였다.
임형탁은 식물지사학적으로 볼 때 제 3기 이후 빙기와 간빙기의 주기적 교대에 의한 한랭한 시대와 온난한 시대가 되풀이 되면서 그에 따른 종 이동으로 인하여 제주도와 Tokara해협 이남의 일본난대, 아열대 및 타이완에서 황칠나무가 분화되어 제주도를 비롯한 한반도 남․서해안 및 도서지역에 분포하게 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최근의 황칠나무 분포에 관한 연구는 어청도, 거제도 갈곶도, 완도, 보길도, 거문도, 해남, 주도, 홍도, 외연열도, 제주도, 고흥 등에서 보고되고 있다. 또한 Yang은 남부지역의 상록활엽수는 울릉도, 거제도, 남해도, 완도, 진도, 제주도, 대흑산도 등을 포함하여 전체적으로 89종이 분포하고 한랭지수 -15℃선의 해안도서 지역이 대체로 그 분포의 북한계라고 밝혔다.

황칠나무에서 채취한 황칠은 옛부터 진귀한 도료로 이용되어 왔으며, 그 도료적 가치가 현대의 어떠한 도료로도 흉내 낼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는데다 최근 국민생활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고급공예품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어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으로서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농촌인구의 감소 및 농업채산성의 악화로 농한지, 유휴지 및 한계경작지의 면적이 늘어감에 따라서 농가에서는 다양한 대체 작목들에 대한 수익성 조사와 특산 수종에 대한 관심을 갖는 등 자구의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분야의 하나는 보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자생식물을 활용하여 우리 기후풍토에 알맞은 식물을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식물 중에는 그 특수성을 비롯한 품질의 우수성이 매우 뛰어남은 물론 세계적인 희귀성과 함께 개발 가능성이 높은 식물들이 많으며, 이들 이용 가능한 유용 식물자원을 검색하고 그의 용도 개발을 위하여 그 식물이 갖는 식용, 약용, 도료, 기호식품 등의 다양한 가치를 개발하는 것은 자원의 합리적인 관리 및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 특산식물인 황칠나무의 유전자원을 보존하고 이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황칠나무의 천연도료적 가치의 우수성은 재인식되고 있으나 이를 산업적으로 육성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황칠의 충분한 물량 확보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즉, 수요의 급격한 증가에 대비한 소득 작목으로 개발하기 위하여서는 가장 먼저 칠액 생산량을 증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하여서는 우선 황칠나무 자생지의 생육환경을 면밀히 파악하여야 하고 다음으로 황칠생산량이 많은 황칠나무 집단과 우량개체를 선발하여 이들에 대한 외부 형태적특성, 유전인자들을 파악하고 나아가 황칠분비촉진 방법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황칠나무 자생지의 생육환경조사 결과에 의하면 황칠나무 천연분포지는 남․서해안의 일부 도서지방 및 제주도 지역의 남서․남동향 및 북동향의 비옥하고 수분이 많은 계곡의 일부지역에 국소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나 생육범위가 제한적이며 조림적지 또한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황칠나무는 우리나라 특산 수종으로 우리나라 해안지방과 도서지역에서 재배지를 넓혀간다면 세계시장을 겨냥한 소득작목으로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

황칠나무 특성
황칠나무는 난대상록활엽수이고 우리나라 전통 도료자원 및 조경 수종의 하나로 남․서 해안 및 일부 도서지역에 제한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우리나라 특산수종이다.
황칠나무의 어린가지는 털이 없고 윤택이 나며, 잎은 호생하고 길이는 8~10㎝로 양면에 털이 없다.
주로 성숙지의 잎은 난형이고 가장자리가 분열되지 않지만 맹아지나 미성숙지는 장타원형으로 가장자리가 3~5개로 크게 갈라지는 특징이 있다.
엽병의 길이는 3~5㎝로 털이 없고 뒷면이 평평하거나 홈이 파여 있다.
꽃은 산형화서 또는 복합산형화서로서 7~9월에 황백색으로 가지끝에 달리며 화경의 길이는 3~5㎝, 소화경의 길이는 5~10㎜정도이다. 양성화인 꽃은 꽃잎과 수술이 각각 5개이며 꽃받침은 종형 또는 도란형으로 끝이 5개로 갈라진다.
화반에는 밀선이 있고 자방은 5실, 암술대는 5개로서 윗부분까지 합쳐져 있다. 열매는 장과인데 타원형으로서 8~11㎜정도이고 11~12월에 검정색으로 성숙한다.

황칠나무 이용특성
전통도료 황칠은 삼국시대부터 황제, 국왕, 제왕의 갑옷, 투구, 기타 금속장신구의 황금색을 발하는 진귀한 도료로 이용되어 왔으며, 고려시대에 쓰여진 중국의 鷄林類事, 鷄林志, 海東繹史에 우리나라 전남 도서지방에서 나는 황칠의 산지, 채취시기, 사용목적 등이 기록된 것으로 봐서 그 당시 중국에서도 황칠에 대하여 상당한 인식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황금색 색감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온 황칠은 다른 천연도료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현대의 수많은 인공도료에서 발현하기 힘든 황금빛 수려한 색감과 안식향이라는 천연향을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도료이다.
이러한 귀중한 문화유산인 황칠에 대하여는 전통 칠장인들도 지식과 정보가 전혀없고, 황칠공예 장인도 현존하지 않고 있어 사실 그 맥이 끊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최근 국민생활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고급공예품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어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으로서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으며, 황금빛의 수려한 색깔을 발현하며, 향기까지 더불어 지닌 황칠 재현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재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국 특산식물인 황칠나무 수지액의 특성과 천연도료적 가치의 우수성을 재인식시키며, 이를 산업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 배경
(1) 중국의 기록
중국 당태종이 백제에 사신을 보내 金漆을 구하여 투구ㆍ갑옷 등을 황금빛으로 치장(冊俯元龜, 당태종 정관 19년 백제 의자왕, 서기 645년)
명나라때는 도료 및 약용으로도 사용하였다고 기록(本草綱目, 1590년)
고려숙중(1095-1105)때 송나라 사신으로 온 손목(孫穆)이 기록한 鷄林類事에 ⌜漆日黃漆⌟이라고 기록, ‘고려 황칠은 섬에서 난다, 본래 백제에서 산출 되는데, 신라칠이라고 부른다’고 소개
고려도경(高麗圖經) 인종 1년(1123년)에 황칠이 나주의 조공품이라고 소개

(2) 삼국시대의 기록
해동역사(海東繹史)에는 ‘황칠은 백제 서남해에 나며 기물에 칠하면 황금색이 되 고 휘황한 광채는 눈을 부시게 한다’ 하여 삼국시대부터 귀중한 특산물임을 알수 있다.

(3) 고려시대의 기록
고려 원종 12년(1271년) 왕은‘우리나라가 저축하였던 황칠은 강화도에서 육지로 나올때 모두 잃어버렸으며, 그 산지는 남해 바다의 섬들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일본왜적들이 왕래하는 곳이 되었으니 앞으로 틈을 보아서 가져다가 보내겠다.
우선 가지고 있는 열 항아리를 먼저 보낸다. 그 역즙(癧汁)을 만드는 장인은 황칠이 산출되는 지방에서 징발하여 보내겠다’하였으며,
고려 충렬왕 2년(1276년)에는 직접 사신을 파견하여 황칠을 보냄.

(4) 조선시대의 기록
조선왕조 정조 18년(1794년) 호남 위유사 서용보가 올린 글 중에 ‘완도의 황칠의 산출은 전보다 못한데도 추가로 징수하는 것이 해마다 더 늘어나고, 관에 바칠 즈음에는 아전들이 농간을 부리고 뇌물을 요구하는 일이 날로 더 많아지니 실로 지탱하기 어려운 폐단이 되고 있습니다.
과외로 징수하는 폐단은 엄격히 규제하여 영원히 섬 백성들의 민폐를 제거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라고 기록.

조선후기에 小盤항목 중 ‘통영의 紋木盤으로서 황칠한 것이 명품 이라’고 소개, 또한, 부채에 황칠을 칠하여 사용하였으며, 다산 정약용의 글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목물이나 화선지 등에도 사용하였다.
그 외, 삼국사기, 고려사절요 등 여러 문헌자료에 기록

(5) 최근의 기록
寺田(1993)는 Dendropanax trifidus는 황칠 수액을 채취가 가능하나, Acantho-panax sciadophylloides는 수액이 채취되지 않았다고 보고 하였고.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1928년)에서 ‘황칠의 성분 및 함유하는 정유의 성상에 대한 연구결과 소개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 중앙시험소(1937년)에서 “황칠의 정유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보고하였다.

홍사준교수(1972년) “백제산업” 이라는 논고에서 황칠을 중국과의 중요한 교역품으로 소개하였으며, 문화재 위원 이종석(1979년)은 고고미술에 기재한 “조선칠의 특성에 관하여” 라는 논고에서 문헌상의 황칠을 더 구체적으로 소개 하였다.

o 동국대 정명호교수와 옻칠 연구가 홍동화(1988년) 등이 황칠나무 조사를 위한 현장답사 등을 실시하여 완도에서 황칠나무의 수액을 채취 확인하였으며, 데라다(寺田, 1988년)는 한국 황칠의 주성분은 세스퀴테르펜이라고 보고하였다.

나. 황칠의 도료적 특성
황칠나무의 수지액인 황칠은 투명한 황금빛의 천연도료로 목공예품의 가치를 높이는데 우수한 재료이다.
옛날에는 주로 전투용갑옷, 산문갑 등 궁중의 귀중품을 만드는데 이용하였으나 현재에는 그 활용도가 높아 목공예는 물론 금속, 가죽, 종이 등의 다양한 공예분야의 도료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황칠에는 정유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를 옛날에는 안식향이라고 불러왔으며 천연향수나 약용으로서도 가치가 매우 크다.

다. 황칠의 주요성분
황칠의 주요 구성 성분은 크게 나누어 황금색의 도막을 형성하는 도료성분인 비휘발성분과 방향성성분이 약 77%를 차지하고 그 나머지는 수분과 고형분으로 되어 있다.
또한 황칠을 이루고 있는 주요 성분으로는 α-Cubebene, β-Elemene, β-Gurjunene, Germacrene D, Elixene, β-Cubebene, β-Selinene, γ-Selinene, α-Muurolene, γ-Cadinene, δ-Cadinene, Juniper camphor 등과 같은 sesquiterpenoid 화합물과 steroid인 β-sitosterol 등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스퀴테르펜류의 β-Cubebene(30.1%), γ-Selinene(,16.1%), δ-Cadinene (13.5%)이 주성분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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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의 비밀 ‘황칠’ 세상을 눈부시게 하다
세계가 먼저 눈 뜬 한국의 美
UN재활기구 세계무형문화재 기능장인 구영국 명인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흔한 구호이기는 하나 그만큼 실현되기 어려
운 말이기도 하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여기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를 놀
라게 한 주인공이 있다. 바로 백제황칠명인 1호 백사 구영국 명인이다.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초로 UN재활기구(WRO) 세계유산보전위원회(WorldIntangible Cultural Heritage, World Heritage Preservation Commission)
에서 지정한 세계무형문화재(WICH)가 탄생했다. 그 영예의 주인공은 백제시대의 황칠(黃漆)문화를 오늘날에 되살린 백제황칠명인1호 구영국 명인으로 지난 2월 16일 세계무형문화재(WICH) 황칠분야(Golden lacquered areas) 세계무형문화재 기능장인으로 선정됐다. 세계무형문화재 기능장인 1호다.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유산이나 인류무형문화유산(세계무형문화재)이 관습이나 종목 등에 부여됐다면, 유엔재활기구 세계무형문화재는 그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직접 지정하는 것으로 의미가 크다. 더욱이 UN재활기구에서 정한 세계무형문화재가 되기 위해서는 15개나 되는 항목을 모두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힘든 일이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향해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겠다고 수상소감을 전한 구영국명인의 삶속으로 들어가 보자.
 





200년 만에 되살아난 백제황칠

2년 전 처음 만난 황칠은 아름다웠다. 검은 옻칠밖에 몰랐던 기자에게 황금빛이 도는 황칠은 생소하기만 했다. 백제황칠명인 1호 백사(白士) 구영국(具永國) 명인을 만나면서 황칠을 알게 됐다. 낯설기만 했던 황칠의 매력과 그 제작과정을 알고 나니 금보다 더 귀하게 느껴졌다. 구영국 명인과의 인연은 지금껏 이어져 세계무형문화재 기능장인 1호로 선정됐다는 소식도 제일 먼저 들을 수 있었다.

명맥이 끊겼던 백제황칠을 200여 년 만에 되살린 백사 구영국 명인. 그는 “오래 두고 보면 볼수록 금빛의 깊이가 느껴지는 것이 황칠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황칠은 결코 짧은 시간 내에 신기함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옻은 천년, 황칠은 만년이라고 해요. 황칠은 한 번 칠하면 천년만년 간다고 해서 천금목(千金木)이라고도 불렀어요.” 
 
옻칠보다 오래가고 그 색감도 아름다운 황칠(黃漆). 황금빛을 띠는 데다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불가나 왕가에서만 사용했다는 황칠은 귀한 만큼 그 아름다움도 빛을 발한다.

백제시대부터 사용됐다고 전하는 황칠은 황칠나무에서 얻어지는 수액을 정제해 칠을 입히는 것으로 북한에서는 노란 옻나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옻나무의 수액이 공기와 접촉하면 갈색으로 변하는 반면, 황칠나무는 금색으로 변한다. 바로 이런 특성과 소량밖에 채취하지 못한다는 진귀함에 한때는 중국에 조공으로 바치는 수난까지 겪어야 했다.





전통공예부터 황칠까지

구영국 명인이 처음부터 황칠공예(黃漆工藝)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나전칠기부터 옻칠, 전통공예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먼저 거쳤다.
그가 전통공예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고등학생이었을 당시 친구 집에서 보게된 나전칠기 장롱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어느 날 친구 집에서 우연히 나전칠기 장롱을 보게 됐는데 정말이지 눈이 황홀할 정도였어요. 머리카락처럼 세밀하게 조각되고 주름질 된 나전칠기를 보면서 탄복했다고나 할까. 그 순간 ‘저 걸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우연처럼 다가온 전통공예의 길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돌아보니 “운명적이었다”고 말하는 구영국 명인. 하지만 전통공예의 길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1979년에 전통공예에 입문하면서 참 많이 힘들고 어려웠어요. 당시에는 전통공예에 대해 딱히 가르쳐주는 곳이 없어서 도제식으로 배웠죠. 심부름부터 시작해 맞기도 하면서 고생 참 많이 했어요.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하라고 하면 엄두가 안 날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다시 살리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배울 수 있는 기술은 다 배우고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나전칠기, 옻칠, 전통공예디자인까지 당대 최고 스승 세 분 밑에서 도제식으로 배웠어요. 디자인 작업만 10여 년을 넘게 했죠. 배워야 할 건 너무 많고, 일도 고되고, 도무지 앞이 보이질 않았어요. 매일 일이 끝나면 술을 마실 정도로 앞날이 캄캄했다고나 할까요.”





문득 그의 아호 백사(白士)에 담긴 뜻이 궁금했다.

“80년 초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세상이 어지럽던 시절, 작업에 전념하기 위해 서울 아차산의 깊숙한 암자를 찾았어요. 그때 한 노스님이 ‘어지러운 세상이라도 하얀 선비처럼 깨끗이 세상을 살라’며 내려준 아호가 바로 백사(白士)였어요. 후에 법정스님께서도 작품을 만들어내는 모습과 성품, 전통 미래와 보존가치에 있어 인품과도 잘 어울린다고 말씀해주셨지요.”

1985년 한남동에서 공장을 하기 시작할 때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던 그는 머리도 식힐 겸 길을 나섰다. 의도하지 않은 발걸음이 그를 전북 김제 금산사로 이끌었다. 바로 그곳에서 구 명인은 ‘황칠’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날 제가 왜 금산사에 갔는지는 모르겠어요. 우연히 간 그곳에서 한 노스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때 노스님이 조그만 호리병 같은 것을 하나 주셨는데 그게 바로 황칠이었어요.” 인연과 필연은 꼭 우연처럼 다가온다는 말이 있던가. 그날 그곳에서 만나 그를 황칠의 세계로 들어서게 한 노스님 또한 금산사에 잠깐 들른 길이었다고 한다.
 
“노스님께서 제게 황칠을 건네며 던진 한 마디 말이 ‘평생의 화두로 삼으라’는 것이었어요. 그때는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 없었죠. 그러면서 ‘이 놈이 이제야 주인을 만났다’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봐도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옛날 고승(高僧) 중에는 ‘천리안’을 가진 분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 노스님이 그런 분이 아니었나 싶었다는 구 명인. ‘이제야 제 주인을 만난 것 같다’는 노스님의 말에 뭔가 모를 사명감이 생겼다. 황칠이 제 주인을 만났기 때문인가. 노스님은 구 명인에게 황칠을 건넨 이듬해 거짓말처럼 입적하셨다고 한다.





황칠의 부활, 새로움을 입다

구 명인이 전통공예를 배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길잡이가 돼줄만한 스승(멘토)이 많지 않았던 것과 제대로 된 기록이 없었다는 점이다. 의궤는 있었어도 장인(匠人)들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시피 했기에 후대에 와서 그 전통을 되살리는 일이 어려웠다고 한다.
“황칠공예의 맥이 끊어진 게 한 200년 정도 돼요. 일제강점기 때는 황칠나무 잎만 따가도 잡아간다고 할 정도 황칠은 정말 귀한 재료였어요. 일제가 우리네 황칠나무를 가져가 심기도 했지만 기후가 안 맞으니 잘 자랄 수가 없었죠.” 황칠은 원래 한국, 중국, 일본 삼국에 있었지만 종이 다르다. 1속1종의 황칠은 전 세계에 우리나라밖에 없는 순수 토종이다. 옻은 중국에서 넘어온 것이지만 황칠은 오롯이 우리네 땅에서 자란 우리 민족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당나라 때 황칠 맥이 끊어졌고 일본도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해요. 한국 황칠이 좋다고 소문이 나니 뺏어가려고 안달이 났던 거죠. 병자호란때는 청나라에서 ‘조선은 황칠을 쓰지 말라’고 명령까지 내렸었다고 하니 황칠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죠.”

이토록 귀했던 황칠. 너무도 진귀해서 중국의 황제만 사용하려 했던 황칠이 오늘날 구 명인에 의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금산사에서 만난 노스님께 황칠을 건네받은 지 15년의 세월이 흐른 뒤다.
“노스님이 당부하신 말씀이 있었어요. 비밀리에 연구하라는 말씀이었죠. 제대로 된 황칠을 선보이기 전에는 함부로 내보이지 말라는 당부였죠. 황칠이 왕실공예였기에 더욱 신중을 기하라는 약조였어요.”
옻, 나전칠기, 전통공예 디자인을 하면서 남몰래 황칠을 연구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술도 많이 먹었다. 누구에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연구하면서 비밀을 지키는 일이라 그야말로 곤욕이었다. 그렇게 인고의 세월을 거쳐 황칠을 세상에 처음 선보인 게 2000년도 초반이다.

“황칠의 어려운 점이 어떻게 칠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 황칠을 연구하며 터득한 비밀을 다 기록해놓았어요. 나중에 이 황칠을 이어갈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그 길을 제대로 닦아야 해요. 그게 후대를 위해 오늘날 우리와 같은 전통공예 장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지러운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올곧은 선비처럼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백사 구영국 명인. 그는 전통의 맥을 이어가는 것 못지않게 전통에 바탕을 둔 창작 또한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골프퍼터의 세계명품 브랜드 칼라미티 제인(Calamity Jane)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스페셜에디션 황칠 퍼터를 제작하기로 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이는 또한 한국전통공예의 세계화의 일환으로 구 명인은 퍼터로 시작해서 다양한 골프용품을 황칠과 접목할 계획이다.
그는 골프퍼터 이전에 이미 서울디자인센터에서 일부 연구비를 지원받아 전통공예디자인 콜라보레이션과 공예디자인 접목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황칠자동 차핸들을 개발, 제품화하기도 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전통공예 장인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배우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구영국 명인. 발명특허 2개와 디자인 등록 1개를 소유하고 수십 회에 달하는 초대 개인전을 열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그이기에 세계최초로 UN재활기구 세계무형문화재 기능장인이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가 앞으로 세계를 향해 선보일 우리의 전통문화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하다.



 황칠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황칠 제작품이 한점도 없던 전무한 상태였지만 사라져가는 고유의 황칠법을 최초로 소목장에 도입해 완성시킨 황칠 제1호품이다. 황칠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황칠가구 재현에 참여한 자료가 기록되어 있는 소호산림문화  연구보고서 제3집(한국의 옻칠과 황칠, 구자운 서, 소호문화재단, 1992.6)의 일부를 발췌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호산림문화  연구보고서 제3집]

 1. 황칠에 대한 옛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1005~1013년(年) 왕유약(王鍮若), 양억(楊億), 두 사람이 지은 1000권의 책으로, 중국 육조, 당, 오대의 사료집인 책부원귀(冊府元龜)에 당태종이 정관(貞觀) 십구년(十九年)<백제(百濟) 의자왕(義慈王) 5년(年) 645년(年)> ?사신을 백제에 파견하여 무딘 갑옷에 도장 할 용도로 나라 안에 있는 금칠을 채취케 했다.

 

 견사어백제국중채취금칠용도수갑(遣使於百濟國中採取金漆用塗銖甲?이란 글귀가 보인다.

 

나. 1095~1105年 고려 숙종 때 송(宋)나라 사람 손목(孫穆)이 지은 어학서(語學書)인 계림류사(鷄林類事)에 ?칠왈황칠(漆曰黃漆)?이란 글귀가 보이고, 계림공(鷄林公) 즉 숙종시대의 기록인 계림지(鷄林志)에 ?고려의 황칠은 섬에서 생육한다. 음력 6월 자상하여 뜨물을 채취한다.

 

 색깔은 금빛과 같고 햇빛에 내놓으면 즉시 건조한다. 원래는 백제에서 나온 것인데 지금의 중국절강성 사람들은 신라 칠이라고 한다.

 

고려황칠생도상육월자취반색약금일폭즉건본출백제금절인호신라칠(高麗黃漆生島上六月刺取潘色若金日瀑則乾本出百濟金浙人號新羅漆)?이란 글귀가 보인다.

 

다. 1145년 고려 인종 때 김부식(金富軾)이 지은 50권의 책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백제때 갑옷에 금옻칠을 했다. 또 검은 금으로 갑옷을 꾸몄다.

 

시백제상금휴개우이현금위문개(時百濟上金?鎧又以玄金爲文鎧?또 삼국사기(三國史記) 제21권 고구려 본기 제9에 ?27년 당나라 사신이 돌아갈 때 밝고 빛나는 갑옷을 선물했다.

 

이칠년견사인당헌명광개(二七年遣使人唐獻明光鎧)?이란 글귀가 보인다.

 

라. 1824年 조선 순조 때 유희(柳僖)가 지은 물명류고(物名類考) 권사목조(卷四木條)에 ?황칠나무는 작은 싸리나무와 유사하나 크고 음력 6월에 즙을 채취하고 칠을 보면 황색의 광택이 금빛 같다.

 

 황칠수사소가이대육월취즙칠물황택여금(黃漆樹似小?而大六月取汁漆物黃澤如金)?이란 글귀가 보이는 것으로 봐서 황금(黃金)이란 단어의 황(黃)과 금(金)을 딴 황칠과 금칠은 같은 것으로, 삼국시대 이전에는 금칠이라 하였고, 고려시대는 금칠과 황칠이 혼재하고, 조선시대는 완연히 황칠이라 하였는데, 일본에서는 아직도 금칠이라 한다.

 

 

마. 1834~1845년 조선 순조 때 서유구(徐有?)가 지은 농업백과사전인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권이등반제구(卷二登槃諸具)에 ?통영(統營)의 무늬가 있는 나무 소반은 황칠(黃漆)을 한 것으로 품질 또한 좋다

 

 통영문목반지황칠자역가(統營文木槃之黃漆者亦佳)?이란 기록으로 봐서 조선후기까지 황칠이 계승된 사실을 알 수 있으나, 지금은 절멸(絶滅)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도 황칠로 도장된 나무접시 하나 없다.

 

바. 1928,1937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중앙시험소(中央試驗所) 야수다호우오기수(安田경 譽技手)가 黃漆の精油就にて란 연구보고(硏究報告) 2편(編)을 발표(發表)하였는데, 황칠은 상쾌(爽快)한 향기(香氣)를 방출(放出)하고 쓴맛을 나타낸다. 주성분은 세스키테르펜(SEEQUI TERPENE)으로서 물, 검(GUM), 알콜, 에스테르 등도 함유한다고 한다.

 

 

사. 1988년 일본(日本) 구주공업대학(九州工業大學) 공학부(工學部) 테라다아끼라교수(寺田晁敎授)는 古代漆料金漆の硏究란 논문에서 우리 나라의 황칠(黃漆)에 대해 기록하였고,

 

 그 외 여러 논문에서도 황칠에 대하여 연구 증진하여 황칠의 주성분 (-)-9Z-1, 9-Heptadecadiene-4, 6-diyn-3-o1을 모태로 황칠합성에 주력하였으나, 어디까지나 임학자(林學者)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무에서 나오는 황칠을 받아 내어 고대도료 황칠을 재현하는 연구는 손대지 못하였다.

 

 

 2. 황칠에 대한 옛 기록을 종합하고, 여러 학자들과 촌로들의 말을 종합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가. 황칠나무(Dendropanax morbifera Leveille)는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난대상록활엽수로서 잎은 타원형과 삼지창과 같이 생긴 것이 섞여 있고, 내한성(耐寒性)이 약하고 내음성(耐陰性)과 내조성(耐潮性)이 강하며, 계곡 부위의 토심(土深)이 깊고 비옥(肥沃)하고 적윤(適潤)한 곳을 좋아하는데, 제주도, 보길도, 완도, 대흑산도, 어청도 등에 자생한다.

 

나. 칠의 채취는 수간의 수피를 칼로 상처를 내고나서 10일쯤 지나 분비된 액즙이 서서히 수분을 잃고 황색으로 변할 때 채취하여 도료의 원료로 사용하는데, 이때 모아둔 그릇에 침전하는 것은 광택도와 투명도가 떨어지는 하질(下質)이고 상층액이 상질(上質)의 칠이다.

 

다. 채취 시기는 옻칠과 마찬가지로 가장 더울 때 7월부터 9월사이가 좋다.

 

라. 부채에 칠 할 때는 먼저 들깨기름을 바르고 말린 후에 솔로 칠하고 햇빛에 말리는 일을 3번 반복해서 광택을 낸다. 목제품에는 들깨기름을 칠하지 않고, 황칠을 바로 칠하는데 칠한 후, 햇빛에 말리는 일을 부채와 마찬가지로 3번 반복한다.

 

마. 칠의 가격은 구주공업대학 테라다아끼라(寺田晁) 교수의 古代漆料金漆の硏究란 논문<11p>에서, 쇼우와 1年(1926年) 1관(貫)(3.75kg)에 25~50원(圓)했다 한다.

 

 다이쇼우(大正) 6年(1917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서 발행한 조선한방약료식물조사서(朝鮮漢方藥料植物調査書)(59p)를 보면 인삼(人蔘) 1근(斤)(600g)에 5원(圓)했다하니, 황칠(化漆)은 인삼(人蔘)과 맞먹는 비싼 값이었다.

 

 

 3.황칠의 특징을 네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 황칠은 향기가 아주 귀막히다.


조선충독부 중앙시험소 야수다호우요기수(安田?譽技手)는 상쾌(爽快)한 향기를 방출한다고 하였는데, 황칠은 옻칠과는 달리 옻이 타지도 않을뿐더러 향긋한 향기로 인해 코를 진동시킨다.

 

나. 황칠은 현대 최고급 합성락카(LACQUER)와 마찬가지로 투명도료이다.


옻칠은 처음부터 검기 때문에 목재의 문양(文樣)이 나타나지 않으나 황칠은 락카와 같이 투명하므로 목재의 문양이 똑똑히 나타난다.

 

다. 황칠은 황금빛 찬란한 천연도료이다.


황칠은 황금빛을 띠므로 목재의 문양(文樣)을 황금빛을 띠게 하며 목공예품을 화려하게 보이게 하기 때문에 목재용 화장도료(化粧塗料)로는 최적격이다.

 

라. 황칠은 칠의 수명(壽命)이 매우 길다.
옻칠이 천년(千年)이면 황칠은 만년(萬年)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황칠은 칠이 매우 무른 만큼 수명이 길다.

 

 

 4. 황칠목공예품을 단 두 마디로 말하면 이렇다.

 

가. 조선시대의 목공예는 자연적인 목리(木理)효과를 귀중하게 여기는데, 이 효과를 최고로 돋보이게 하는 화장도료(化粧塗料)로는 황칠(黃漆)이 적격이다.

 



 특히 향기가 좋기 때문에 여인네들의 손때가 묻는 안방가구에 적합하므로 통영소목장(統營小木匠)의 수작(秀作)인 목화뇌문롱(木畵雷紋籠)은 이 황칠(黃漆)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 1990年 농진회(農振會)에서 펴낸 한국(韓國)의 자생식물(自生植物)<목본류(木本類) 267p>에 보면, 황칠수지(黃漆樹脂)는 거풍습(祛風濕), 활혈(活血)의 약효(藥效)가 있다 하므로 노인(老人)들이 즐겨 사용하는 합죽선(合竹扇), 목침(木枕)에 황칠(黃漆)을 칠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한국의 전통목가구는 의복을 보관하는 장과 농이 전체 가구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머릿장은 장의 일종으로 머리맡 가까이에 두고 중요한 서류나 열쇠 또는 손쉽게 사용되는 소품들을 넣어두며, 천판에는 필통, 연갑, 서류함 등을 올려 장식하기도 하는 용도의 다목적 가구이다.

 

곁에 두고 늘 사용하게 되므로 주인의 취향과 용도에 따라 개성이 강한 다양한 형태를 보이는 것이 또한 머릿장이라 할 수 있다. 


  이 황칠 머릿장은 일반 장롱의 분할법을 직선적인 면을 탈피하여 적용하여 제작되었는데 부드러운 인상을 주기 위해 전면의 복판문 중 알판재, 서랍, 쥐벽간, 머름칸, 골재목 등의 모서리를 둥글게 하고, 그 사이에 먹감나무로 판재에 상감처리를 하였다.


  가구의 재료는 천판(天板), 옆널, 전면은 느티나무를 사용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부드럽고 섭도 조절이 잘 되는 오동나무로 사용하였고, 장석은 광채가 나는 백동장석을 부착하였다.


 칠의 경우 황칠을 하였는데 황칠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난대상록활엽수인 황칠나무 액즙으로 향기롭고 투명한 도료이다.

 

목공예의 자연적인 목리효과를 가장 돋보이게 하여 옻칠이 천년이면 황칠은 만년이라는 말처럼 칠의 수명도 매우 길다. 특히 향기가 좋기 때문에 여인네들의 손때가 묻는 안방가구에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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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진주시 인사동 120-7, 휴대폰 : 011-596-2714, 전화번호 : 055-743-2714













황칠관련논문

 

제목 저자 및 발행처
황칠나무 추출물의 항산화 기능성에 관한 연구 문창곤, 인제대학교 첨단산업기술대학원,[2007] [국내석사]
위염 동물 모델을 이용한 황칠 추출물의 항염증 효과에 대한 연구 신종민, 원광대학교 일반대학원,[2014] [국내석사]
황칠나무 [Dendropanax morbifera Lev.]
우수개체의 선발 및 증식에 관한 연구
김민영, 전남대학교 대학원,[2002] [국내석사]
황칠나무와 일본황칠나무에 관한 분자유전학적 연구 한상현, 제주대학교 대학원,[1999] [국내석사]
황칠나무 잎의 화학성분 및 항미생물 활성 김형량, 전남대학교 대학원,[1997] [국내석사]
황칠나무의 생장특성과 산칠량에 관한 연구 임도형, 순천대학교,[2001] [국내석사]
한국 특산품 황칠의 생리활성 연구 백운봉, 경희대학교 대학원,[2003] [국내박사]
황칠성분의 분리 및 분석에 관한 연구 최용환, 한밭대학교 산업대학원,[2003] [국내석사]
황칠나무와 혈통령 추출물에 의한 항암 및 항염증 효과에 관한 연구 유해양, 동아대학교 대학원,[2012] [국내박사]
천연도료를 이용한 기능성 고분자의 합성 및 특성 연구 백운창, 한밭대학교 산업대학원,[2004] [국내석사]
황칠나무 추출물의 항산화 효과 및 Streptozotocin 유발 당뇨 흰쥐의 항당뇨 효과에 미치는 영향 안나영, 부산대학교,[2014] [국내석사]
황칠나무의 군락생태학적 연구 김남희, 전남대학교,[1996] [국내석사]
황칠나무의 생물학적 효과 : 15-Hydroxyprostaglandin Dehydrogenase 억제 및 항 안드로젠 효과 문영숙, 조선대학교 대학원,[2012] [국내박사]
황칠나무(Dendropanax morbifera lev.)의 생태와 우량개체 선발에 관한 연구 김세현, 경상대학교,[1998] [국내박사]
전통 황칠도료의 정제 및 도막특성 김부곤, 전남대학교 대학원,[2000] [국내석사]
주요 상록활엽수종의 시설양묘 및 난대림의 인공갱신에 관한 연구 김종영, 전남대학교 대학원,[2010] [국내박사]
시스플라틴이 유발하는 신장독성에 대한 황칠나무 잎 추출물의 보호효과 김은선, 한양대학교대학원,[2014] [국내석사]
Effects of Korean citrus junos and medicinal herb extracts on liver protection and lipid metabolism of alcohol fed Rats 송하영, 건국대학교,[2002] [국내석사]
통일신라의 대일교역품 연구 이종석,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한국미술사전공,[1983] [국내석사]
Dendropanax morbifera Leveille와 D. trifidus (Thunberg) Makino의 분류학적 재검토 문명옥, 제주대학교 대학원,[1999] [국내석사]
붙박이 가구 디자인에 관한 연구 : 라전칠 가구 디자인을 중심으로 정석, 한양대학교,[1993] [국내석사]
한국과 중국의 전통가구 양식의 비교 : 14C~19C 중심으로 이순희,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1984] [국내석사]
고려시대 대외무역에 관한 연구 강글온, 창원대학교,[2009] [국내석사]
통일신라~조선시대 지진구의 변천과 지진의례 연구 : 건물지 지진의례를 중심으로 오샛별, 용인대학교,[2013] [국내석사]
한국 고대 칠기 연구 :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 시대를 중심으로 이종석,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한국미술사전공,[1983] [국내석사]
대한제국기 궁중 연향용 가구 연구 조시내, 홍익대학교 대학원,[2007] [국내석사]
삼국시대 목제용기 제작방법 연구 오난영, 전남대학교 대학원,[2010] [국내석사]
인간골육종세포에서 덴드로파녹시드에 의한 자가포식 유도기전 이지원, 동아대학교,[2014] [국내석사]
한국산 오가과 식물에 관한 본초학적 연구 조범연, 원광대학교,[2008] [국내석사]
서ㆍ남해안 도서지역의 식물상 박양규, 호남대학교 대학원,[2003] [국내석사]
지형특성에 따른 붉가시나무림의 군락구조 및 천이 이은주, 제주대학교 대학원,[2003] [국내석사]
완도군 도서지역 방풍림의 식물상 및 식생구조에 관한 연구 오찬진, 전남대학교 대학원,[2003] [국내석사]
국내산 족제비싸리의 부위별 유용 생리활성 탐색 김정화, 강원대학교,[2006] [국내석사]



1. 정혈 작용

 

만병의 원인은 피의 흐름이 원활치 못한 탓입니다.

황칠은 혈액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은 감소시키는 반면, 몸에 좋은 콜레스테롤은 증가시키는 등

피를 맑게 하여 혈류ㆍ혈압ㆍ동맥ㆍ생리

기능을 증진시키고, 관련 질병의 발생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2. 간기능 개선  

간은 해독, 영양소의 대사, 저장 등의 작용을 하는,

생명 유지에 불가결한 장기입니다.

황칠은 간의 기능을 증진하여 숙취 해소,

피로 회복, 각종 해독작용,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을 때 도움이 됩니다.

 

3. 항산화 작용

호흡으로 들여 마신 산소 중 일부분은 활성산소라고

하는 유독물질로 전환되어 면역체계를 파괴하고

노화 및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됩니다.

황칠은 항산화 작용이 있어 노화 방지, 피부 미백,

주름 방지 기능을 증진시키고, 관련 질병의 발생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4. 경조직(뼈와 치아)재생

황칠은 뼈와 치아의 기능을 증진시켜 충치ㆍ치주질환ㆍ골다공증ㆍ관절염의 발생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되고, 조골세포(뼈를 만드는 세포) 증식을 도와

어린이 성장에 도움이 됩니다.

 

5. 면역력 증진

면역은 침입한 유해물질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방어작용입니다.

황칠은 면역세포 생육을 촉진시켜 각종 질병을

야기하는 원인들에 대한 조기 면역체계 및

생체방어체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6. 신경 안정

황칠은 신경 안정 효능이 있어서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잠을 편히 못자거나, 짜증ㆍ

스트레스가 심한 분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안식향이 나오므로 우울증 환자에게 좋다고 전해진다.

 

7. 항균 작용

식중독 원인균인 황색포도상구균, 클로스트리듐

퍼프린젠스, 비브리오균 등의

생육을 저해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8. 암세포 증식 억제

실험 결과 간암ㆍ폐암ㆍ위암ㆍ유방암ㆍ

백혈병 세포의 증식 억제 효과가 있어서

암 발생 위험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나무인삼`이라는 뜻의 학명을 가진 황칠나무.

 

황칠은 세계에서 딱 한 곳 한국에서만 나며 그것도 난대림이

펼쳐진 해남 완도 등 서남해안에서 생산된다.

찬란한 황금빛을 내는데다 은은한 안식향을 풍기기 때문에

대대로 귀하게 쓰였으나 워낙 구하기가 힘들고 그 채취나

정제법이 까다로워 100년 전부터는 자취를 감추었다.

 

황칠의 주성분은 세쓰키테르펜으로서 물,

검(gum), 알콜, 에스테르 등을 함유하고 있다

황칠 수지액은 거풍습(풍-신경마비, 습-신경통을 제하고) 및

활혈(혈액순환)에 효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그래서 생리 불순에도 효능이 뛰어나다고 한다.

근래에는 간기능과 암예방, 중풍 등의 황칠나무 진액효과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술독을 풀어주고 간세포를 재생시키며 세포의 노화를 억제시키고,

정혈작용과 간을 살린다는 신비의 약재가 발견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새순이나올쯤,덖음차로마셔도좋은황칠차,,,

1;가지와,잎을착착이썬다,

2;깨끗이씻는다,

3;약재에 시럽을만들어넣어준다,

4;10개월간숙성시킨다,

5;10개월후약재을건진후 원액은2차발효한다,..

6;2-3년후 음료로,약성으로복용하면좋다,

 

 




 황칠씨앗 담근주

 황칠나무 껍질 담근주

 

 





황칠(黃漆)나무 (Dendropanax morbifera Leu.)

학명은 라틴어로 만병통치약을 지칭하는 인삼나무를 의미하는 말이다.


황칠은 세계에서 딱 한 곳, 한국에서만 나며 그것도 난대림이 펼쳐진 해남 완도 등 서남해안에서 생산된다. 한때 한반도의 황칠나무 중 70%가 자생했다는 제주도는 도민들 대부분이 황칠나무를 잘 몰라 땔감이나 부목용으로 벌채를 해 지금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계곡(서귀포시 상효동의 자생군락지)에만 남아 있다.

황칠은 옻칠처럼 나무의 표면에 흠집을 내고 받아낸 수액을 정제해 만드는 도료이다. 성질이 맑고 투명하여 장식물이 가진 본연의 재질을 살려주면서도 스스로 화려한 황금 빛을 내뿜는다. 그 빛은 매혹적이나 천박하지 않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황칠나무에서 채취하는 황칠액에는 그 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있다.

아름다운 '황금빛을 내는 금빛 수액'으로 천연투명도료로서 매우 귀하게 사용된다.
그 향은 베타큐버빈’이라는 방향성 정유성분인 '안식향'으로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머리를 맑게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200도를 견뎌내는 내열성과 내구성, 내습성, 빛깔의 우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외선 흡수도 뛰어나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황칠은 예전엔 도료로서의 가치를 우선하였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원료 물질로서의 가치도 중요시 되고있다. 또한 항산화성이 뛰어난 생약성분을 가지고 있어 여러가지 치료제로도 한창 개발중이다.





황칠나무의 역사

황칠나무는 적어도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우리 고유 수종이다.

삼국이 정립한 이래, 백제는 활발한 무역을 통하여 인삼과 황칠, 모시저포를 중국과 일본 등지에 수출하였다. (홍사준1972) 따라서 백제에서 산출되는 황칠은 이미 인접국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백제 무왕 25년(627), 당고조는 백제 땅에 사신을 보내어 황칠을 채취하게 하였고, 그것을 철갑에 칠하니 모두 황금색으로 빛났다. (책부원구, 외신부 조공조)

당시 당고조는 618년에 일반 백성들이 의복을 적황(赤黃)으로 염색하는 것을 금지 시킨 상태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금빛으로 우러나는 갑옷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 위엄과 권위를 가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아들 당태종도 백제가 만든 금칠 갑옷에 다섯 가지 색깔로 칠하여 갑옷을 만들어 입으니, 그 갑옷 또한 햇빛에 빛났다. (신당서, 동이 고려전)

황칠나무에서 나오는 금칠에 대한 중국인의 인상은 아주 깊었다. 당나라 때 두우(枓祐)는 『통전(通典)』에 “황칠나무는 백제의 서남해안과 탐라 즉 제주도에서 자라며, 음력 6월 무렵에 채취하는데 워낙 소량이긴 하지만 기물에 칠하면 금색 광채를 띤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이후 ≪당서≫를 비롯한 숱한 기록들이 금칠에 주목하였고,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등 황실과 이 땅에 온 많은 사신들이 황칠을 요청했던 것도 신비로운 금칠나무였기 때문이었다.



백동 장식에 입힌 황칠


금칠은 자금성(태화전, 건녕전, 황제의 용상 , 어탁 등)부터 경복궁까지 사용되었고, 궁궐 이외에도 갑옷과 무기류, 임금의 책상, 공주비녀에 이르기까지 아주 귀하게 이용되었다. 또한 황칠은 귀신을 쫓는다하여 의례에도 썼고, 선비들도 황칠을 지니고 있으면 대망을 이룰 수 있다고 믿어 행랑주머니에 지니고 다닐 정도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황칠나무는 수액(水液)과 수지(樹脂)를 분리하여 수액은 금칠로 이용 하였고, 수지는 안식향(安息香)으로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순조때 유희는 여러 사물을 설명한 《물명고(物名攷)》라는 책에서 황칠나무를 설명하면서 “기름같이 맑은 것은 수안식향(水安息香)으로 삼고, 말려서 덩어리된 것은 건안식향(乾安息香)으로 삼는다”라 하였다.

안식향은 사람 몸을 편하게 하고 여러 종류의 역기(疫氣)를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어 안식향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를 향으로 피우면 피로가 풀리고 남성에게는 신장을 강화 시켜주고 여성에게는 생리불순 등을 해소해주며, 갑작스런 심장병이나 어린이 복통, 어린이가 놀랐을 때, 관절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본초강목》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특히 중풍과 치매에 효과적인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황칠나무의 정혈 효과


이러한 효과로 인해 안식향은 많은 약재로서도 사용되었는데 명나라때 주숙은 그의 저서《보제방》에서 안식향으로 만들 수 있는 약재를 무려 100여 가지가 넘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숙종 때에 이미 안식향으로 ‘지보단(至寶丹)’을 만들었는데, 이 약재는 열을 내리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세가지 보약인 온병삼보(溫病三寶): 우황안궁환, 지보단, 자설단)에 들 정도이다.

이 약재는 효과가 현저하고 약품이 귀중하여 ‘지극한 보배(지보 : 至寶)로 불리게 되었는데, 열을 내리고 독을 없애는데 사용되었고 안정제의 효과가 있으며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 들어가 답답한 경우나 어린 아이의 경기, 중풍, 더위 먹은데 효과가 크다 하였다. (진사문(陳師文), 《태평혜민화제국방(太平惠民和劑局方)》).

이처럼 안식향은 향 뿐만이 아니라 약재로서도 중요했기 때문에 왕실의 건강을 담당하는 전의감이나 백성의 병을 돌보는 혜민서에서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약재였다.

약초연구가 전동명의 치료제로서의 황칠나무



하지만 황칠나무는 이러한 가치 때문에 도리어 수난을 받게 된다. 특히 공물로서 많이 요구되었는지라 지방 관원들은 농민들을 채근하여 구하려 하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러한 당시의 현실을 '황칠'이라는 시에서 잘 나타내고 있다.

《茶山詩文集》권4, 詩 黃漆

공물로 지정되어 해마다 실려가고 〔貢苞年年輸匠作〕
징구하는 아전들 농간도 막을 길 없어 〔胥吏徵求奸莫防〕
지방민들 그 나무를 악목이라 이름하고〔土人指樹僞惡木〕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네 〔每夜村斧潛來?〕

* 이 시는 당시 명나라의 공물로 중요시 되었던 황칠 때문에 백성의 수난을 적은 것이다.

이처럼 농민들은 공물 수탈을 피하고자 나무를 베어내고 또 있는 곳을 감추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제주도와 완도, 보길도 등에 있던 황칠나무는 서서히 잊혀져 갔던 것이다.

고문서에 등장하는 황칠


일제 강점기 때부터 황칠나무에 대해 다시 연구되기 시작했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도료와 염료, 건강식품과 음료, 생의약 등 많은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과물로서 20여건의 특허가 등록을 마친 상태다.
일천여년 동안 내려온 우리 수종 황칠나무가 21세기에 이르러 서서히 그 신비한 모습을 과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황칠 특허 및 임상자료


출원번호/등록번호
상 태
내 용
1020020018063
등록

간세포 보호효과를 갖는 황칠 추출물, 황칠 분획

1020020015621
등록

경조직 재생 및 증식효과를 가지는 황칠 추출물

1019980025942
등록

항암활성을 가지는 황칠나무 추출물

1020050051743
등록

생리활성이 뛰어난 황칠나무의 종실추출물

1020020009933
등록

황칠을 이용한 티백의 제조 방법

1020020009932
등록

황칠 원액을 이용한 건강음료의 제조 방법

1019950048158
등록

황칠의 다량채취 방법 및 채취하기 위한 이식판

1019980057019
등록

황칠이 함유된 합성 도료의 제조 방법

1019990000469
등록

은제품용 고온 경화형 천연 황칠도료의 제조 방법

1020020024713
등록

황칠 나무 수지액으로부터 황칠 도료 및 정향 성분

2020060020430
등록

살균 및 제독기능을 가지는 황칠 회접시

1020030071653
공개

황칠나무 수액을 유효성분으로 하는 자외선 차단제

1020030038493
공개

피부 미백효과가 있는 황칠 추출물과 황칠 분획물

1020030038494
공개

에탄올 유발 간손상을 억제하는 황칠 추출물

1020050089701
공개

황칠 덖음차 및 그 제조 방법

1020070013250
공개

황칠나무 수액의 다량 추출 및 천연염료 제조 방법



황칠나무의 발굴

중국의 사서에 백제에서 가져다 썼다는 기록으로부터 시작하여 많은 문헌에 황칠이 등장하지만 정작 우리 땅에서는 100여년 전부터 명맥이 완전하게 단절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칠은 한반도의 서남해지방에서만 자생하는데다가 그 생산량도 미미하기 짝이 없어, 그 희소성으로 인해 엄청난 수탈과 노역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다산 정약용의 시에 씌어 있기를 ‘백성들은 이 황칠나무를 악목(惡木)이라 하여 모두 베어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그 전통 또한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또한 찬란한 황금빛을 내는데다 은은한 안식향을 풍기기 때문에 대대로 귀하게 쓰였으나 워낙 구하기가 힘들고 그 채취나 정제법이 까다로워 100년 전부터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그 동안 숨겨졌던 황칠나무가 그 ‘비밀’의 빗장을 풀고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기까지에는 황칠에 ‘미친’ 한 농부의 20여 년의 추적과 집념이 있다. 전남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 ‘아침재 산막’ 주인 정순태씨가 그 주인공이다.

‘아침재 산막’ 주인 정순태씨의 황칠나무 발굴이야기


다산은 황칠나무의 ‘멸종’을 중국 황실의 횡포와 1801년에 내린 소금비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다산에서 시작해서, 그에게 절망하고, 다산에서 다시 희망을 얻었습니다.”

정씨는 다산의 시 모음집인 탐진촌요(耽津村謠) 제8수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 지난해 황칠 공납이 없어진 뒤 베어낸 밑둥치에서 새싹이 나고 가지가 뻗었다.’

1803년에 쓰인 이 시가 해남 유배 당시 쓰인 점에 착안한 그는 해남 지역 산지를 샅샅이 훑었다. 그 당시에 다시 싹이 났다면 대단위 군락지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지난 95년 그는 해남 모 지역에서 200년 이상 된 3000여 그루의 황칠나무 군락을 발견한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죠. 허리까지 다쳐 한 달 동안 기어다니다시피 하다가, 이제 오늘까지만 하고 집어 치우자 하고 산으로 올라 갔어요.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 굴렀는데 깨어나 보니,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수백년생 황칠나무 숲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거요. '아! 이제 내가 죽었구나, 그토록 만나고자 했더니 저승 가는 길에서야 만나는구나' 하는데 멀리 절에서 저녁공양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는거요. 이게 꿈이 아니라니! 3백년생 황칠나무를 끌어 안고 원없이 울었소."

▲ 정순태씨가 황칠나무 기르기를 포기하기 직전에 발견한 3백년생 황칠나무.
수백년 전에 수액을 채취했던 흔적이 또렷이 남아 있다.




 

제주에 대한 애착이 강한 구씨는 한미FTA체결로 생명산업에서 위협받고 있는 감귤을 황칠나무가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단연 최고품질의 제주황칠은 수입창출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차원에서 전략사업으로 추진하고 연구소 설립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구영국씨는=1978년 나전칠기의 화려함에 이끌려 공예계에 입문 후 장인들을 사사하며 전통공예디자인에 몰두했다. 그러다 1985년, 금산사 노스님에게서 “백제 때부터 전래되던 신비의 도료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마음을 사로잡힌 그는 구체적 기록도 없는 열악한 조건에서 연구에 매달린 끝에 복원에 성공했다. 1990년 이후 각국 박람회에 황칠공예품을 출품했다. “금칠과 달리 편안하고 질리지 않는 빛”이라고 호평 받았다.

1991년 청와대 신축본관과 영부인 접견실에 문갑, 문장대, 이층장 등을 전시했다. 2002년 신미술대전 대상, 2003년 대한민국전통공예대전 특별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파리국제박람회, 벨기에 왕국전통공예, 미국 세계예술페스티벌 등에 초대됐다. 서울산업대 평생교육원에서 황칠공예를 강의중이다


일제는 1930년대부터 한국의 황칠나무 분포와 성분 등을 조사해 자국에 이식하려 했으나 기후가 안맞아 실패한 걸로 알려졌다. 1928년과 1937년에 조선총독부 중안시험소 야스다구니가 <황칠의 정유에 대하여>라는 연구논문 2편을 발표하였는데, 황칠은 상쾌한 향기를 방출하고 쓴맛을 나타낸다고 적혀있다.

 

황칠나무와 일본 그리고 스텔스

황칠나무와 일본 그리고 스텔스

파를 완전히 흡수해버리는 일종의 스텔스 원료이자 이를 가공한 도료는 매우 환상적인 금빛색상을 일구어내기에 '신비스런 종'으로 알려진 원료.

'황칠'(黃漆).

옻칠에만 익숙한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국의 역사가들은 이를 한결같이 한반도 서남해안에서만 나는 '신비의 도료'라고 적고 있다.

중국 25사와 영파사지(英坡寺誌), 책부원구(冊府元龜) 등 각종 역사책들은 진시황제가'불로초'라 믿으며 해동국에서 가져온 나무가 바로 '황칠나무'이며 통일신라 때 해상왕 장보고의 교역상품 중 최상품이 황칠액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황칠나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자파를 완전히 흡수한다는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발견임과 동시에 한국에게는 최고의 호기가 될것이다.

지금의 전장은 진화하고 있다. 차츰차츰... 스텔스화된 병기로 육-해-공 전장에 배치 되어질것이다.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것은 스텔스 기능..그중에서도 단연 스텔스화 시키기위한 원리.. 즉, 스텔스의 원리인것이다.. (현재 스텔스 기술을 완전히 보유한나라는 미국과 일본 두나라 뿐이다. 프랑스와 독일,영국등은 기초적인 스텔스 기술을 보유 했을뿐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제 그 답을 일부 얻어 내었다.
황칠이란 나무가 스텔스 효과가 아주 탁월한 완전한 전자파-흡수재이기 때문이다.

스텔스 폭격기의 원조 도장사가 일본인인것을 아는 사람은 다들 아실것이다.
(최초로 스텔스 기술이 나온곳은 다름 아닌 일본이다.)

일본은 1930년대 후반에 군비를 확장하면서 자신들의 취약점인 레이더에 잘 노출되지않는 항공기를 제작하기 위해 가볍고 전파의 흡수능력을 가진 재료의 발굴에 힘을 쏟게 된다. 그 결과 당시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서 자생하는 나무에서 그답을 얻게 된다. 그리고 황칠이란 나무를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져가서 성분분석과 그 효능을 테스트하게 된다. 또, 이 나무를 이용하여 레이더에 잘 걸리지않는 항공기, 이른바 스텔스 항공기를 개발 하기위해 노력을 한다.

그러나, 그당시의 일본의 공업력으로서는 그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제 일본이 일제시대를 거쳐 1970년대까지 황칠을 훔쳐간 사실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왜? 일본은 '황칠'이란 나무를 그리도 꾸준히 도둑질하였을까?

황칠나무란.. 위에서 밝힌바와 같이 전자파 즉, 모든 전파를 완전히 흡수하는 타고난 전파 흡수재이니 만큼... 그들은 레이더에 잘 포착되지 않는 항공기를 제작하기 위해 '황칠'이란 재료를 사용하여 항공기의 스텔스도료로 사용하고자 수십년간 암암리에 도둑질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그들은 이미 황칠의 비밀을 풀었지만, 그들이 훔쳐간 일본의 황칠나무에서는 더이상의 수액이 나오지 않고있다.. 이는 지질학상으로 한반도의 지질과 화산재로 주로 구성된 일본지질과의 차이가 엄격히 나기때문에 더이상의 수액이 나오지 못하는것이다.

한국에서 자생하는 황칠같은 경우에는 수백년간 계속 수액이 나왔던것과 비교해서 일본의 것이 1세기도 안되어서 수액이 더이상 안나온다는 것은 일본의 지질이 한국의 황칠이 주로 자생하는"전라남도 완도 상황봉"과 "보길도","진도 첨찰산","해남군 두륜산"등 '전남도서지역'과 '해안 일대' 19개 지역의 토양과 지질 특성이 판이하게 차이가 났으므로 일본의 황칠나무는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이제 '종의 운명'을 다하게 된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앞으로 스텔스화된 병기가 육-해-공 전장에서 활약하게될 가까운미래에도 우리는 '황칠'이란 원료를 잘만 활용하면 우리의 기술로 우리 나름대로의 스텔스 기술을 보유하고 활용할 날도 머지않을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의 종'에서 보는것처럼 '황칠'나무가 고갈되지 않도록 '황칠나무'를 보호하고 장려-재배해야 할것이다.







황칠작업

황칠은 [唐書]를 비롯한 중국 고대의 문헌과 [계림유사][고려도경][동국여지승람] 등 국내 문헌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특수한 도료로서, 칠하면 황금빛이 감도는 매우 특이한 칠이며, ‘백제칠’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지기도 했을 만큼 중국에서도 성가가 높았다.

특히 삼국시대의 문헌에는 갑옷에 칠할 경우 그 빛이 눈부셔 적의 기세를 꺾을 수 있었다고 기록될 만큼 각광을 받았던 우리나라 고유의 칠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후 말기,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그 기술은 철저히 단절되고 말았다.

황칠의 특성은 투명성 도료로서 종이와 같은 유연한 재료에 칠한 경우에도 박락이 되지 않는 항파단성(抗破斷性)을 지녔으며, 다갈색 또는 암흑색의 옻칠과 달리 재료가 가진 본래의 재질감을 드러내면서도 칠빛이 황금색을 뛰는 매우 독특한 성질을 지녔다.

황칠장 보유자



황칠나무에서 진을 채취 황칠진을 잘 저어서 황색을 발색시킨다 고운 망으로 잘 걸러서 깨끗하게 한다.


진을 고운망으로 여러번 거른다. 진을 2번 3번 거른다 진을 여러번 걸러 칠할 수 있게 된 황칠.


칠할 바탕을 사포로 곱게 갈고난 뒤, 귀얄로 조금씩 칠을 찍어 얇게 펴서 곱게 바르고, 건조시킨 후 여러번 반복하여 황칠을 한다.



덴드로파낙스 종(Dendropanax 種)
Species

Dendropanax affinis
Dendropanax alberti-smithii
Dendropanax amplifolius
Dendropanax arboreus
Dendropanax bilocularis
Dendropanax blakeanus
Dendropanax bolivianus
Dendropanax borneensis
Dendropanax bracteatus
Dendropanax brasiliensis
Dendropanax brevistylus
Dendropanax burmanicus
Dendropanax caloneurus
Dendropanax capillaris
Dendropanax caucanus
Dendropanax chevalieri
Dendropanax colombianus
Dendropanax compactus
Dendropanax confertus
Dendropanax cordifolius
Dendropanax cuneatus
Dendropanax cuneifolius
Dendropanax dariensis
Dendropanax dentiger
Dendropanax elongatus
Dendropanax exilis
Dendropanax fendleri
Dendropanax filipes
Dendropanax glaberrimus
Dendropanax globosus
Dendropanax gonatopodus
Dendropanax gracilis
Dendropanax grandiflorus
Dendropanax grandis
Dendropanax hainanensis
Dendropanax heterophyllus
Dendropanax hoi
Dendropanax hondurensis
Dendropanax inflatus
Dendropanax kwangsiensis
Dendropanax lancifolius
Dendropanax langbianensis
Dendropanax langsdorfii
Dendropanax larensis
Dendropanax latilobus
Dendropanax laurifolius
Dendropanax lehmannii
Dendropanax leptopodus
Dendropanax macrocarpus
Dendropanax macrophyllus
Dendropanax macropodus
Dendropanax maingayi
Dendropanax marginiferus
Dendropanax maritimus
Dendropanax monogynus
Dendropanax morbiferus
Dendropanax neblinae
Dendropanax nervosus
Dendropanax nutans
Dendropanax oblanceatus
Dendropanax oblongifolius
Dendropanax oliganthus
Dendropanax oligodontus
Dendropanax pachypodus
Dendropanax pallidus
Dendropanax palustris
Dendropanax panamensis
Dendropanax parvifloroides
Dendropanax pendulus
Dendropanax poilanei
Dendropanax populifolius
Dendropanax portlandianus
Dendropanax praestans
Dendropanax productus
Dendropanax proteus
Dendropanax punctatus
Dendropanax querceti
Dendropanax ravenii
Dendropanax resinosus
Dendropanax selleanus
Dendropanax sessiliflorus
Dendropanax siamensis
Dendropanax stellatus
Dendropanax swartzii
Dendropanax tessmannii
Dendropanax trifidus
Dendropanax trilobus
Dendropanax umbellatus
Dendropanax venosus
Dendropanax weberbaueri
Dendropanax williamsii
Dendropanax yunnanensis
출처 : [Daum우수카페]귀농사모/한국귀농인협회
글쓴이 : 유토피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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