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여정

삶과 여행 그리고 흔적!

목포 옥단이길

댓글 0

▣ 위대한 여정/포토 에세이

2020. 9. 21.

목포에 살면서 아직까지 옥단이 길을 가보지 못해서 오늘은 마음먹고 가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목포역에서 시작하는게 원칙이지만 주차 문제가 복잡해 유달산 무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트레킹을 시작했네요.

 

유달산과 목포역, 남교시장을 기반으로 발달한 목원동은 조선인들이 만든 목포 근대문화의 1번지이자 상권의 중심지이다.

 

목포의 심장 목원동에는 옥단이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목포 출신 극작가 차범석의 작품《옥 단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옥단이 가 누비고 다녔던 목원동의 이곳저곳을 걷다 보니 처음 가보는 곳도 여러 곳이 있었으며, 어느새 대한민국 근대역사의 길을 밟게 된 것 같아 얼떨떨 하였다.

 

초행길이라 옥단이길을 잘 찾아가려고 신경을 많이 썼으나 자꾸 헤매었으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를 반복하면서 전구간을 다 돌아보았다.

 

원도심 활성화 차원에서 많이 발전시키려고 애쓴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보였으나 도로변에 무질서하게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 때문에 구경하는데 불편함이 많았으며 사진 찍기도 힘이 들었다.

 

목포시에서 관광지 앞에는 주차를 못하도록 하여 구경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으며 이정표도 군데군데 해놓았으나 글자 표시가 너무 작아 찾아가기가 힘이 들었으므로 좀 크게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건의를 해본다.

 

아무튼 목포에 살면서 새로운 곳을 발견하여 공부도 많이 하고 역사를 배운것 같아 밀린 숙제를 끝낸 기분이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목포역에서부터 시작하여 제대로된 코스로 한번 더 발걸음을 해 볼계획이다.

 

 

▣ 일자 : 2020. 09. 21(월요일)

▣ 이름 : 옥단이길

▣ 위치 : 전라남도 목포시

▣ 날씨 : 맑음(15℃~25℃ → 미세먼지 : 보통)

▣ 동행 : 그림자 벗 삼아

▣ 코스 : 목포유달산무료주차장노적봉→만인계터→구종명 비→콩나물동네→목포청년회관→불종대터→벽화골목→유달예술타운→북교동성당→북교초등학교→박화성생가터→차없는거리→로데오광장→노라노미술관→정광정혜원→목포역→오거리→동본원사→노적봉→목포유달산무료주차장

▣ 거리 : 8.6km(Gps 측정 기준)

▣ 시간 : 2시간 55분 소요(휴식시간 없음)

▣ 교통 : 자가용

▣ 지도 및 Gps 트랙

 

▣ 촬영사진

▲유달산무료주차장

 

▲옥단이길 안내도

 

▲영화촬영지 롱러부더킹

 

▲유달산 등구

 

▲노적봉 큰바위얼굴

 

 

 

 

 

▲이순신 장군의 전술과 강강술래의 전설이 담긴 곳 노적봉

노적봉은 목포시 유달산에 있는 거석 봉우리를 말한다.

 

이 봉우리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적을 물리치기 위해 이용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순신 장군의 지형을 이용한 고도의 심리전이 돋보인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 이엉을 엮어 바위를 덮었는데, 마치 그것이 군량미를 덮어놓은 노적처럼 꾸며서, 군량미가 대량으로 비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또한, 주민들에게 군복을 입혀서 노적봉 주위를 계속 돌게 해서 마치 많은 대군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게 했으며 영산강에 백토 가루를 뿌려 바다로 흘러드는 물줄기가 쌀뜨물로 보이게 하여 왜적들에게 아군의 군세를 위장하여 왜장이 군사를 돌려 후퇴하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노적봉을 돌던 전술은 훗날 문화예술로 승화되어, 강강술래로 발전하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시민종각

 

▲유달산

노령산맥의 큰 줄기가 무안반도 남단에 이르러 마지막 용솟음을 한 곳, 유달산은 면적 140ha, 높이 228.3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노령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땅끝인 산이다.

 

유달산은 예부터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이라 불렸으며 도심 속에 우뚝 솟아 목포시와 다도해를 한눈에 굽어보며 이곳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예혼을 일깨우고 있다.

'호남의 개골' 이라고도 하는 유달산에는 대학루, 달성각, 유선각 등의 5개의 정자가 자리하고 있으며, 산 아래에는 가수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기념비 등이 있다.

 

1982년 발족된 추진위원회의 범시민적인 유달산 공원화 사업으로 조각 작품 100점이 전시된 조각공원과 난공원 등이 조성되어 볼거리가 많으며 산 주변에 개통된 2.7km의 유달산 일주도로를 타고 달리며 목포시가와 다도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영혼이 심판을 받는다 하여 이름 붙여진 해발 228m의 일등바위(율동 바위)와 심판받은 영혼이 이동한다 하여 이름 지어진 이등바위(이동 바위)로 나뉜 유달산은 갖가지 기암괴석과 병풍처럼 솟아오른 기암절벽이 첩첩하며 그 옛날 소식을 전하기 위해 봉수를 올렸던 봉수대와 달성사, 반야사 등의 전통사찰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임진왜란 때 이엉으로 바위를 덮어 아군의 군량미처럼 가장해 왜군의 전의를 상실케 하였다는 이순신 장군의 설화가 전해오는 노적봉을 비롯하여 유선각, 오포대 등 역사상 의미 있는 곳이 많으며, 특히 유달산에는 이곳에서 멸종되면 지구 상에서 영원히 소멸되는 왕자귀나무가 서식하고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다도해의 경관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오가는 크고 작은 선박들의 모습이 충분히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목포의 뒷산 유달산.

 

그 위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일몰이나 목포항의 야경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노적봉 여자나무

 

 

▲노적봉예술공원미술관

 

 

 

 

 

 

 

 

 

 

 

 

 

▲만인계터

죽동 육거리 주차장 언덕 부위를 통칭하는 지명이다.

 

현재 주소명은 ‘마인계터로’인데 ‘만인계(萬人契)’가 발음하기 편한 마인계로 변형된 것이다.

 

1897년 목포 개항 후 성행했던 ‘만인계’는 사람들에게 계표를 판매한 후 추첨을 통해 순위에 따라 배당금을 나눠주는 일종의 복권계였다.

 

그 수익금으로 목포 원도심의 도시 건설에 필요한 공적자금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목포 도시 건설의 출발지로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구종명 비(최초 목포경찰서 터)

이곳에는 대한 제국의 마지막 경찰이라고 할 수 있는 총순 구종명을 기념하기 위한 작은 비가 남아 있다.

 

비의 전면에 ‘총순 구종명 영세불망비(總巡具鍾鳴永世不忘碑)’라 새겨져 있다.

 

구종명(具鍾鳴)은 경무서(警務署) 소속 경찰로 당시 직책이 총순(總巡)이었다.

 

1897년 개항 이후 목포에서는 일본인과 조선인들 사이에 크고 작은 분쟁이 자주 일어났다.

 

이 구종명이라는 인물은 당시 총순의 신분으로 일본인과 조선인과의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조선인을 위해 앞장섰으며, 법률 지식이 없는 조선인들을 대변하여 재판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여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스스로 조선인들의 방패막이되었던 인물이다.

 

비가 건립된 1906년 당시 목포 사회상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한편 구명종은 일제강점기 군수를 지낸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어,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콩나물동네

구종명 비에서 우측으로 약 50여 미터 걸어가면 ‘콩나물 동네’ 골목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이 일대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곤궁한 삶을 극복하기 위해 콩나물을 재배하여 인근 남교 중앙 식료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을 생업으로 하였다.

 

그래서 목포 사람들은 이 골목길을 콩나물 동네 혹은 콩나물 공장이라고 불렀다.

 

 

 

▲목포청년회관

콩나물 동네 입구에서 구 신안군청 방향으로 15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목포청년회관 건물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목포 청년들의 문화사랑방이자, 목포 최초의 시민회관 성격을 지닌 근대건축물이다.

 

목포 청년회에서 성금을 모아 1925년 완공하였다.

 

1927년 신간회의 목포지부 창립식을 비롯하여 목포청년들의 지덕 함양과 민족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공간이다.

 

박화성의 단편 『헐어진 청년회관』이 만들어진 배경이기도 하다.

 

건물 앞은 일제 강점기 희성 유치원과 광복 후 원진 극장이 있던 곳이며, 인근에 무안 감리서 터가 있다.

 

 

 

 

 

 

 

▲차범석 생가

 

 

 

 

 

 

 

 

 

 

▲이난영과 김시스터즈 전시관

 

 

 

▲벽화골목

구 달성초등학교 아래에 자리한 골목 마을이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길에 지역 예술인들이 아기자기한 벽화를 그려 알려지기 시작했고, 목포시 도시재생 선도지역 사업을 통해 추가적으로 벽화와 체험 시설이 설치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벽화 골목을 지나면 유달 예술타운으로 연결되며, 유달산 달성사를 거쳐 유달산 등산로와 둘레길을 이용할 수 있다.

 

 

 

 

 

 

 

 

 

 

 

 

 

 

▲화가의 집

화가의 집은 김대중 대통령이 가정교사를 했던 곳으로써 안에 들어가 보니 텔레비전도 켜져 잇고 쉬었다가 갈 수 있게 잘 꾸며 놓았다.

 

 

 

 

 

 

▲북교동 성결교회

 

▲화신약국

 

 

 

 

 

 

 

 

 

▲북교동 한옥거리

 

 

 

 

 

 

▲열린우정길

 

 

 

 

 

 

 

 

 

 

 

 

 

▲북교동 성당

무안 감리를 지낸 김성규의 대저택 ‘성취원’이 있던 곳이다.

 

김성규의 큰 아들이자 우리나라 최초로 서구 근대극을 연구하고 직접 무대에 올린 김우진(1897~1926)이 이곳 성취원 내 양옥 건물인 ‘백수재’에 머물면서 여러 작품을 집필하였다.

 

이후 성취원 자리는 천주교 교구에 기부되어 1958년 현 북교동 성당이 자리하게 되었다.

 

성당 내에 ‘김우진 문학의 산실’ 기념석이 있다.

 

 

 

 

 

 

 

 

 

 

 

 

 

 

 

 

 

▲북교초등학교

북교초는 1897년 목포 개항과 함께 설립된 전남 최초의 초등학교이다.

 

유달산 쪽에서 보면 정삼각형 형태의 모래 운동장이 인상적이다.

 

정문에는 학교의 역사를 상징하는 기념석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교임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교내에 시 문화유산인 느티나무와 석탑이 있고, 북교 역사관이 조성되어 있다.

 

 

 

 

 

 

 

 

 

 

 

 

 

 

 

 

▲양동교회

양동교회는 남도 근대문화의 1번지를 상징하는 목포의 문화공간이다.

 

목포의 개항이 예견되자 미국의 선교사들은 목포를 새로운 선교기지로 선택하였다.

 

목포는 지리적 특성상 내륙과 도서지역을 오가면서 선교활동을 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해당하기 때문에 서남부 선교의 중심 지역으로 급성장하였다.

 

그 중심이 된 교회가 바로 전남 최초의 교회인 양동교회(陽洞敎會)이다.

 

 

 

 

 

 

 

 

 

▲중앙식료시장(먹통시장)

개항 이전부터 있었던 ‘쌍교 장터’가 발전한 목포 최초의 공설시장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공설시장이 있던 곳에는 트윈스타 건물이 들어섰고, 주변 시장은 현재 중앙 식료 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일명 ‘먹통 시장(먹거리로 통하다의 약칭)’로 특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진생가

가수 남진은 이난영의 뒤를 이은 목포 출신의 인기가수이다.

 

‘가슴 아프게’, ‘마음이 고와야지’, ‘님과 함께’, ‘빈 잔’, ‘둥지’ 등을 히트시켰고, 6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는 등 배우로도 성공했다.

 

본명은 김남진이고, 그의 부친은 목포의 유지였던 김문옥이다.

 

현재 가옥은 김문옥이 지은 것으로 남진이 태어나고 자란 근대건축물이다.

 

내부에 노래 연습을 위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있다.

 

생가 건물의 건너편에는 부친이 운영하던 일제강점기 정미소 건물이 남아있다.

 

▲옥단이길 안내도

 

▲목포세무서

 

 

 

 

▲박화성 생가터

박화성(1903~1988)은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장편소설 『백화』를 발표한 신여성이다.

 

목포 죽동(현 목원동)에서 태어났다.

 

표지석이 있는 곳이 옛 생가터 지역이다.

 

목원동은 박화성의 작품 『하수도 공사』, 『헐어진 청년회관』 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현재 목포시에서는 그의 작업실이 있던 용당동 세한루 터에 박화성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용해동 목포문학관 내에 박화성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로데오광장

목포역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오거리에서 차 없는 거리 쪽으로 걷다 보면 좌측에 소규모의 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쇼핑객과 젊은이들의 도심 속 휴식공간으로 조성된 일명 ‘로데오 광장’이다.

 

이곳은 지난 2008년 목포시가 원도심 중심상권인 목포극장 인근에 조성한 것이다.

 

로데오 광장에서는 연중 크고 작은 문화축제가 열린다.

 

 

 

 

 

▲죽동의 유래

 

 

 

 

 

 

 

 

 

 

▲노라노미술관

이 일대는 원래 조선시대에 통신용으로 사용하던 말을 키우고 관리하던 ‘마방 골(말방골)’이 있던 곳이다.

 

목포 개항 이후 대한제국 정부가 1897년 12월 ‘우체사’와 1898년 2월 ‘전보사’를 개설하여 운영하였다.

 

우편과 전보의 발달은 근대문물의 상징이다.

 

때문에 목포 도시화와 근대문화의 발달에서 이곳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노라노 미술관은 ‘노라노 패션 양재학원’으로 사용되다가 빈 건물로 오랫동안 방치되던 곳이 지난 2015년 주민들과 예술인들이 뜻을 모아 공공미술관으로 재탄생하였다.

 

 

 

 

 

 

 

 

 

 

 

 

▲정광정혜원

원래는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건립된 일본 불교 ‘흥선사(興禪寺)’였다.

 

당시 건립된 일본식 목포 사찰 건물이 지금도 남아 있다.

 

법당에 겨우 남산 불석으로 조성한 관음상이 모셔져 있고, 건물 안쪽에 작은 정원이 있다.

 

이곳은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 스님과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고은의 만남이 이루어졌던 낭만의 공간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후 당시 승려였던 고은이 정혜원으로 포교활동을 왔다가 대학생이던 박재철을 만나 불교에 귀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후 수필을 써서 ‘현대문학’에 발표하도록 주선하기도 하였다.

 

 

 

 

 

 

 

 

 

 

 

 

 

▲목포역

1914년 개통된 호남선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이다.

 

다도해와 내륙을 연결하는 호남의 동맥이다.

 

목포역 광장은 동춘서커스단이 처음 시작된 곳이며, 목포시민들의 민주화 운동 중심 공간이다.

 

지금도 각종 집회와 문화행사가 열린다.

 

주변 5분 거리에 멜라콩 기념비, 오거리 문화센터, 호남은행 건물 등이 있다.

 

 

 

 

 

▲목포오거리

목포역에서 걸어서 3분 정도 거리에 있다.

 

오거리는 목포 원도심 상권과 예향의 뿌리를 이룬 상징적인 공간이다.

 

목포역, 선창, 개항장, 유달산, 조선인 마을을 연결하는 다섯 개의 길이 만나는 교차점이자 일제강점기 조선인과 일본인 거주 지역의 경계 공간이었다.

 

극장, 서점, 사찰, 은행, 여관, 카페 등이 발달했으며, 목포 문화예술이 꽃 피는 낭만의 공간으로 목포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소이다.

 

주변에 호남은행, 구 동본원사 목포 별원 건물 등이 현존하고 있다.

 

 

 

 

▲목포근대민속박물관

 

 

▲목포문화원

 

 

▲구 목포 화신 연쇄점

 

▲건해산물 상가거리

 

 

▲초원실버타운

 

 

▲달빛언덕 게스트하우스

 

▲목포 청년 일자리 통합센터

 

 

▲차없는거리

목포역 앞쪽에 발달한 대표적인 원도심 상업지구이다.

 

코롬방 제과점에서 창평동 농협까지 연결되는 길을 일명 ‘차 없는 거리’라 부른다.

 

특히, 다양한 브랜드의 의류 업종이 발달해 있으며, 주말에는 문화 마켓과 문화행사들이 열린다.

 

세계 마당 페스티벌과 크리스마스트리 출제의 주요 장소로 활용되는 목포의 명소이다.

 

 

 

 

 

 

 

 

 

▲동본원사

오거리문화센터의 건물은 1897년 목포가 개항된 이후 가장 먼저 목포에 진출한 일본 불교사원인 동본원사(東本願寺)의 목포 별원으로 건립된 곳이다.

 

정식 명칭은 ‘진종 대곡파 동본원사’이다.

 

개항장 쪽 일본 영사관 부지 근처에 포교소를 설치했다가 1904년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현 건물이 자리한 곳은 목포 원도심에서 제일 번화가인 오거리이다.

 

이 곳은 당시 일본인들이 살았던 개항장 지역과는 약간 벗어나 있지만 조선인과 일본인이 만나는 접경지에 위치하여 사찰이 입지 하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광복 후 정광사의 관리를 받다가, 1957년부터 중앙교회 건물로 사용되었다.

 

2007년 등록문화재 제340호로 등록되었고, 현재 예향 목포시민들을 위한 오거리문화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 마당에는 이곳이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사적지임을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세계여술벽화

 

 

 

 

 

 

 

 

 

 

 

 

 

 

 

 

 

 

 

 

 

 

 

▲유달산무료주차장에 도착하여 트레킹 종료

 

 

▲북어국밥으로 점심 식사 후 일정 마무리

 

 

◈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인생 ◈

 

세월이 빠르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는 사실이죠.

 

나이를 먹으면

그 사실이 더욱 확연해집니다.

 

프랑스 로망롤랑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인생은 왕복표를 발행하지 않기 때문에

한번 출발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무심결에 잊고 지내왔던 말이어서 그런지

우리 가슴에 따끔한 충고로다가 옵니다.

 

지금도 우리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언제라도 쉽게 돌아올 듯이

가볍게 가고 있습니다.

 

이 길로 가는 것이 맞는지

이 사람과 함께 가도 괜찮은지

우리는 여러 가지 것을 생각해봐야 하는데도

기분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합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아, 그때 그 사람 얘기를 듣는 것이 아닌데,

하면서 후회하게 되지요.

 

그때 비로소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큰 상실감과 견딜 수 없는 불행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행보는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해야 합니다.

 

인생 길은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일방통행로입니다.

 

오늘 따라 나의 한 친구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자고 나니 어느 친구가 떠나고 없더라"는 말

그래요.

 

우리는 모두가

붉게 불타는 황혼이지요!

 

언제 헤어진다는 기약 없는

우리의 하루 하루

서로 위로하고,

용서하고

안아주면서

아름다운 세월을

만들어 가야겠지요.

 

【-*** 좋은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