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천부인권 2014. 2. 10. 06:30

 

 

<2014/2/7 주차장에서 바라 본 중원봉황리마애불상군 위치>

 

충주시 가금면 봉황리 산27번지에 가면 보물 제1401호인 중원봉황리마애불상군(中原鳳凰里磨崖佛像群)이 있다. 중원봉황리마애불상군은 남한강의 지류인 한포천을 약 1.76km 거슬러 오르면 야트막한 햇골산(321m) 자락의 가파른 산기슭에 위치한다. 자가용으로 찾아가려면 한포천의 상류지역인 충주보훈휴양원 앞 도로를 지나서 묘곡내동길을 가다보면 내동대교를 만난다. 내동대교 입구에서 좌회전 하여 한포천의 둑을 따라 330m 정도를 내려가면 꽤 너른 주차장이 있는 곳에 차를 세우면 정면 산기슭으로 가는 계단이 보인다. 80여개의 계단을 오르면 절벽에 세운 철제계단을 오르게 되는데 이곳의 깨어지고 금이간 바위에서 먼저 마애불상군(磨崖佛像群)을 만나게 된다. 예전에 이 철제계단이 없었을 때에는 이 마애불 앞은 절벽이라 마애불에 붙어서 사람들이 다닌 길의 흔적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불상을 만나면서 알게 된 중원(中原)이라는 지명이 1978년 처음 이 마애불상군이 발견될 당시에는 충주가 아니라 중원군(中原郡)이었음을 알게 한다.

 

 

 

<2014/2/7  중원봉황리마애불상군에서 바라본 봉황리>

 

 

<2014/2/7 중원봉황리마애불상군에서 본 봉황리 들판>

 

 

<2014/2/7 중원봉황리마애불상군의 옛 길과 절벽>

 

 

 

<2014/2/7 중원봉황리마애불상군의 철제계단에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 처음 만나는 바위에는 한쪽 다리를 내린 채 생각하는 자세로 앉아 있는 반가사유상과 좌우에 서있는 5구의 보살들을 도드라지게 양각한 불상군(佛像群)을 보게 된다. 물론 얼굴이 사라진 것도 3개나 된다. 이 바위와 붙은 좌측 바위에는 허리아래 부분이 깨어져 사라진 여래상(如來像)이 조각되어 있다. 여래상은 당당한 어깨와 가슴, 두꺼운 옷주름, 오른손은 손바닥을 펴 하늘을 향한 손이 밖으로 보이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편 채 땅을 향하게 하는 시무외인과 여원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그 좌측에는 왼쪽다리를 세우고 오른쪽다리를 꿇고서 무언가를 부처에게 받치는 공양상(供養像)이 새겨져 있다. 공양상의 고리양식과 허리띠 처리는 삼국시대불상에서 보이는 특징이라 하며, 특히 팽이모양의 좌대(座臺)나 보살상의 갸름한 얼굴은 고구려 양식이라고 한다.

 

 

 

<2014/2/7 반가사유상과 5구의 보살>

 

 

<2014/2/7 여래상과 공양상>

 

 

<2014/2/7 중원봉황리마애불상군 중 여래좌상 풍경>

 

 

 

조금 떨어진 위쪽에는 규모가 큰 마애여래좌상이 동쪽을 향하여 조각 되어 있는데 무릎에 비하여 상체는 짧고 네모났으며 얼굴도 4각형에 가까운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마애불로 추정된다고 안내표지판에는 적어 두었다.

여래좌상의 오른쪽 옆구리 부분이 깨져 없지만 먼저 본 여래상처럼 시무외인과 여원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여래좌상의 두광(頭光)에는 5구의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는데 경직된듯하나 귀엽고 친근감을 준다.

 

 

 

 

여래좌상 앞에는 약간의 공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도자기와 기와 파편이 수습되고 있어 오래전에 절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석불 중에서는 이른 시기에 조성 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기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봉황리 마애불상군의 위치로 볼 때 불교의 전파 경로가 남한강을 따라 이루어 졌을 것으로 보여 지는 자료로서의 가치와 불상 모습이 변하는 역사적 가치로도 높이 평가되어 보물로 지정된 것 같다.

 

 

 

<두광의 화불>

 

 

햇골산 자락의 바위들은 대체로 깨어진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마애불상들도 그러한 재질의 돌에 새긴 것이라 1000년의 풍상을 겼으면서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특히 바위들이 조각조각으로 떨어진 흔적들이 많아 앞으로도 보존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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