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창원시 봉림동 이야기

천부인권 2014. 6. 13. 06:00

 

 

 

봉림동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존재하고 가야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 봉림산(鳳林山) 자락을 따라 펼쳐져 있는 역사가 살아있는 땅이다. 532년 밀양의 이궁대(離宮臺)에서 가야국 10대 구형왕(仇衡王, 521~532)이 왕비 및 세 아들 노종(奴宗), 무덕(武德), 무력(武力)과 함께 국고(國庫)의 모든 보물을 받치며, 신라 법흥왕 19(532)년에 나라를 선양하자 가락국을 사랑한 많은 무리들이 이곳 퇴로촌(退老村)에 들어와 정병산(精兵山)에서 병사를 조련하고 말을 키우며 가락국 복구를 위해 힘을 키웠던 곳이다. 그래서 퇴로촌을 진촌(眞村)이라 불렀는데 지금의 퇴촌동(退村洞)이 그곳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물러날 퇴(退)’라는 글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숙명적인 뜻이 담겨 있는 말이다. 퇴계 이황선생이 자신의 호에 사용한 이유도 같은 의미이다.

 

 

 

 

 

조선 중기까지도 태복산(太福山)은 태백산(太白山)으로 불렀고, 그 아래 작은 산은 소백산(小白山)으로 불렸으며, 지귀동 뒷산 봉우리를 구산봉(龜山峰)이라 하였다. 김해 가야국에 구지봉이 있다면 창원 봉림동에는 구산봉이 있어 신령스러운 기운으로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선현들의 뜨거운 정신이 살아있는 땅이다.

조선시대 당시 명곡(明谷)에 살았던 분으로 지금은 마산회원구 내서읍 첨두서원(瞻斗書院)에 배향된 명암 노경종 (明庵 盧景宗 , 15551625)의 비문과 유당 김종하씨가 기록한 창원군지(1962) 하권 비지(碑誌) p81에는 김해부사를 지낸 허전(許傳, 1797~1886)이 찬한 첨지중추부사노경종묘갈명(僉知中樞府使盧景宗墓碣銘)’이 기록되어 있는데 묘갈명의 내용에는 년방십일 종장자상태백산 망견정병산 문왈 대장산안재 즉부시왈 '해국정병출 남만불감침 장군응재비 특립기천심'(年方十一 從長者上太白山 望見精兵山 問曰 大將山安在 卽賦詩曰 海國精兵出 南蠻不敢侵 將軍應在比 特立幾千尋’) 이라고 적혀 있다.

즉 노경종이 11세 때 어른을 따라 태백산에 올랐다가 앞에 우뚝 솟은 산을 보고 산 이름을 물으니 어른이 정병산(精兵山)이라고 하자, ‘정병(精兵)이 있는 곳에 대장(大將)이 없을 수 있느냐, 즉석(卽席)에서 望精兵山(정병산을 바라보며)이라는 시를 지으니 해국(海國)에 정병(精兵)이 출국하니, 남만(南蠻)이 감()히 침략(侵掠)하지 못하네. 대장(大將)이 응당(應當) 여기에 있으니, 우뚝함이 몇 천 길이나 되느냐라는 글을 남겼다.

 

 

 

가락국의 정신이 살아 있는 터에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사람들의 뜻이 하늘에 닿았는지 가야국이 멸망한지 약 350년 후 임나국의 왕족이었던 진경대사가 봉림산문을 열어 나라를 만드는 사상적, 정신적 기틀을 마련했던 곳이 봉림사지이다.

봉림동은 봉림선문을 개산한 진경대사(眞鏡大師 : 김유신의 후손으로 본명은 김심희, 853~923)가 명주(溟洲 : 지금의 강릉)에 머물 때 김해 서쪽에 복림(福林)이 있다는 말을 듣고 김해 진례(進禮)를 거쳐 효공왕 때 이곳 봉림사지(鳳林寺址)에 도착하니 수석이 기이하고 풍광이 빼어나며, 준마가 서쪽 봉우리에서 노닐고 올빼미가 옛터에서 우는” ‘鳳凰下降形 吉地라 가마를 멈추고, 이름을 봉림(鳳林)이라 고쳐 선방을 중건하니 봉림사(鳳林寺)가 되었고, 봉림사를 품은 산은 봉림산(鳳林山)이 되었으며, 그 산 아래 두 마을을 봉림(大鳳林, 小鳳林)이라 부르며 천년을 이어왔다.

 

근대 봉림동 지명 변천을 살펴보면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에서 1972년 창원공단의 개발로 인하여 공단의 분지지역만 197371일 마산시 상북동(上北洞)으로 변경되었다. 당시 개발의 주체인 수자원개발공사의 현장 사무소가 있던 곳이 상북동 이었기 때문에 상북동이 부각되었다. 이후

1976. 9. 1 : 경상남도 창원지구 상북지소

1980. 4. 1 : 창원시 상북동, 봉림동으로 개칭된 후

1991. 8. 1 : 창원시 상북동, 사림동이 등장하는데 창원대학이 퇴촌동 일대에 들어오면서 사림동(士林洞)이 탄생하게 된다.

1991. 8.28 : 인구의 증가로 인해 창원시 사림동, 봉곡동으로 분동이 이루어지는데 원래 이름도 없던 봉곡동의 탄생은 명곡사거리 즉 봉림상가지역이 명곡동에서 봉림동지역으로 편입되면서 봉림동의 ()’과 명곡동의 ()‘의 한자씩을 따서 봉곡동이란 지명이 생겼다. 현재의 지명은 1997. 7.14 : 대동제의 실시로 인하여 봉곡동+사림동+봉림동이 합쳐져 진경대사가 나라를 만들기 염원했던 봉림동(鳳林洞)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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