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봉수대

천부인권 2014. 11. 4. 09:35

 

 

<2014/10/28 진동 가을포봉수대-연변봉수>

 

용소산(龍沼山 404.7m)의 능선 중 하나인 요장리 방향으로 내려 오다보면 용소산 능선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169호인 가을포 봉수대(加乙浦 烽燧臺 : 해발 125m)를 만난다. 자동차로 찾아간다면 요장리 127-1번지에 위치한 가르멜 수도원을 찾아가 주차하고 뒷산으로 약 8분 정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가을포라는 이름이 정겨워 진동 일대의 지명을 찾아 봤지만 그런 지명을 가진 곳은 가을포봉수대 밖에 없었다. 가을포(加乙浦)란 우리 말 을 한자식으로 적은 것인데 부산 송정이 갈대가 많았기에 가을포라 하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 아마도 광암 일대에도 옛날에는 갈대가 많아 이곳에 봉수대를 만들면서 가을포라는 이름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봉수대는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수단으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으며,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으로 실시되었다. 이 땅에는 기록상 고려 중기부터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봉수대의 신호 방법은 평상시에는 불꽃이나 연기를 한번만 올리고, 적이 나타나면 두 번, 해안에 접근 해오면 세 번, 바다에서 접전이 이루어지면 네 번, 육지에 상륙하면 다섯 번을 피워 올렸다.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가을포 봉수대(加乙浦 烽燧臺)는 조선시대 다섯 곳의 중심 봉수로(烽燧路) 중에서 동래 다대포(東萊 多大浦)에서 시작하여 서울에 이르는 제2 봉수로에 속하는 곳이다. 남쪽으로는 곡산봉수대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함안 파산봉수대에 연결되어 있다. 봉수대의 규모는 지름 13m, 높이 23m의 자연석축 담장이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그 내부에는 1986년 복원된 화덕 1기가 있으나 고증을 거치지 않고 복원을 하여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어 옛 모습에 대한 것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가을포 봉수대에서는 매년 31일에 봉화 재현 행사가 진동면 민속문화보존회에 의해 열린다고 한다.


경상남도에서 지방의 중요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해 1996년 이를 복원하여 원래의 형태를 알 수 없다. 복원된 봉수의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현재 연대, 방호벽, 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봉수대는 10~100cm에 해당하는 다양한 크기의 석재로 막돌허튼층쌓기하였다.

연대는 둘레 l8.8m, 높이1.8m, 너비2.lm이며, 10~70cm크기의 석재를 사용하였다. 서쪽 방호벽과의 거리는3.6m이다. 연대의 동쪽 하단부에는 화구가 있으며, 서쪽 하단부에는 통풍구가 있다. 화구는 60×87cm, 통풍구는 27×42cm의 크기이다

방호벽은 둘레62.5m, 높이 1~1.8m이고, 너비는 동쪽 23m, 서쪽 1.2m, 남쪽 2.9m, 북쪽3.5m로 북쪽이 비교적 넓다. 방호벽의 남동쪽에 너비 0.8~1.3m의 출입시설이 있다. 방호벽을 쌓은 석재의 크기도 차이가 나는데, 대체적으로 20~30cm 크기의 석재를 사용하였고 북쪽은50~100cm내외의 큰 석재들을 사용하였다. 현재 방호벽주위로 기단과 같은 시설이 존재하는데, 이 시설은 토석 혼축으로 하부는 비교적 석재를 이용하여 잘 쌓은 형태이고 상부는 흙 사이에 일부 돌들이 보인다. 높이는 0.8~1m이다 10~50cm크기의 석재를 사용하였으며 특히 남쪽 석축이잘 남아 있다. 방호벽으로부터의 경사도는 45정도이다 방호벽과의 간격은 동쪽 이3.7m, 서쪽3.5m, 남쪽 48m, 북쪽3m이다.

이 시설의 북동쪽에는 너비 3.9m6단으로 된 계단이 있는데, 20~100cm크기의 석재를 사용하여 시설하였다. 계단의 서남쪽 일부와 동남쪽 석축단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방호벽의 북쪽 일부에서는 호가 확인되었으나 정확한 규모는 파악하지 못하였다

이전 조사에서는 봉수대의 남쪽에 연조기 설치되어 있다고 하였으나, 이번 조사 시 확인하지 못하였다. 연조는 4기로 봉수대 진입부에 남북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토석 혼축으로 지름이1.5~2.8m이고, 지표에서 0.7~1.3m의 높이로 남아있으며, 걱 연조간 거리는 평균 4m라고 한다. [출처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경남지역 봉수]


 

 

 


또한 창원부읍지(昌原府邑誌)의 여음포봉수(餘音浦烽燧)기록을 보면 창원도호부에서 서쪽으로 60리에 있다. 동으로 웅천 사화랑봉수에 응하고 서쪽으로 진해가라포에 보고한다. 서로의 거리가 30리이다. [餘音浦烽燧 在府西四十里 東應熊川沙火郎 西報鎭海加羅浦 相距三十里]



 


가덕도 천성연대봉수웅천 사화랑봉수→고산봉수→창원 여음포봉수진해 가을포봉수함안 파산봉수의령 가막산봉수초계 미타산봉수→합천군 미숭산봉수[봉수노선은 제2거 간봉(2)]


鎭海-李詹
海天孤鎭戌旗斜 바닷가 외로운 진에 깃발이 비스듬한데
驅馬南來若赴家 말을 몰아 남쪽으로 오니 집에 가는 것 같구나.
看取夕烽傳一炬 저녁 봉화가 한줄기만 전하는 것 보았으니
欲乘漁艇宿蔖花 고기배 타고 갈꽃 속에 자리라.


鎭海-金銚
海畔孤城勝槪多 바닷가 외로운 성에는 뛰어난 경치가 많고
傍邊村店盡漁家 인접한 시골 가게 어부의 집에서는 정성을 다한다.
島夷納款兵戈息 섬나라 오랑캐가 귀순 하고 병사는 창을 놓고 쉬니
處處猶聞擊壤歌 이미 곳곳에서 격양가 소리 들린다.


鎭海-趙端康
滄溟無際亂山多 크고 넓은 먼 바다에는 어지러운 산이 많은데
一片孤城數十家 한 조각 외로운 성에는 겨우 수 십 호 뿐이네
客子夜深猶不寐 나그네는 밤이 깊어도 잠들지 못하는데
月明南浦聽漁歌 달 밝은 남쪽 포구에는 어부의 노래 들린다네.


鎭海-安騰
八鎭會經數戌多
炊烟十里有人家
江風吹送兩三曲
日暮漁村長短歌

출처
동국여지승람-경상도/진해현
창원군지(1962)-김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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