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천부인권 2015. 1. 4. 05:40

 

 

 

<2014/12/31 합포구 구산면 반동리 쌍효각>

 

창원시 합포구 구산면 반동리 519-20번지에는 월성 최씨 신광과 그의 처 청송 심씨의 효행을 기리는 쌍효각이라는 정려각이 세워져 있다. ‘반동리 쌍효각(盤洞里 雙孝閣)’이라 불리는 이 정려각(旌閭閣)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부부가 부친상을 당하여 3년을 시묘하는데 호랑이가 와서 여막을 지키고, 시묘하는 곳에서 우연히 샘이 솟아 갈증을 면하게 하였다는데 하늘이 감동하여 영물인 호랑이가 와서 지켜주고 효성에 감동하여 샘이 생겼다는 전설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 샘을 효자샘으로 불렀다고 한다.”[출처 : 디지털창원문화대전-박태성]

 

 

 

 

쌍효각 앞에는 효행이 탁월하고도 경이로우며 공경을 위주로 생활하고 의를 지키며 살았네. 학문은 정밀하고도 깊으니 유림들이 사표로 삼았네.”라는 뜻의 孝行卓異 主敬浹義 學問精深 儒林師表(효행탁정 주경협의 학문정심 유림사표)라 새긴 최근에 세운 비가 있다.

 

 

 

 

정려각은 정면 2, 측면 1칸의 돌기둥을 세웠고, 지붕의 형태는 팔작지붕이며 와가이다. 정려각 앞에는 雙孝閣(쌍효각)이라는 편액이 있고, 각 안에는 비는 없고, 정면에 편액이 붙어 있는데 贈淑夫人靑松沈氏之閭(증 숙부인 청송 심씨지려) 上之乙巳命旅(상지을사명려), 贈通政大夫秘書監丞月城崔公信光之閭(증 통정대부 비서감승 월성 최공 신광지려)라는 글이 쓰여 있다.

 

 

 

 

<쌍효각 편액>

 

 

 

<숙부인 편액>

 

 

<최신광 효자 정려 편액>

 

 

 

 

 

 

<2014/12/31 반동리 열부 경주최씨 창적비>

 

반동리 330번지에는 애향비갈과 비 담장 안에 士人密陽朴公浩淳配 孝烈婦慶州崔氏彰蹟碑’(사인밀양박공호순배 효열부경주최씨창적비)가 서 있다.

 

 

 


거룩하도다 이 현명한 부인이여 효성과 우애 하늘에서 타고 났어라.

휼륭한 선비와 작배하여 그 가정 화락했는데 갑자기 남편이 죽음을 당하여 매서운 서리가 일찍 내렸구나. 의리는 높아 백주를 읊은 공강같고, 지조는 투철하여 송죽이로다. 시부님 봉양하고 어린 자식 길러 집안 살림 번창하게 하니 효성은 신명을 감동시켰고 덕행은 종족을 비호했도다. 흠 없는 옥과 같아 뭇 사람 칭찬 자자하고 여경(餘慶)이 끊이지 않아 하늘의 보답 변함 없구나 탁월한 효열이여 뉘 능히 견주리오.

우뚝 선 비석이여!

어찌 정려보다 못하랴 내 붓으로 찬양하오니 천년에 길이 전하리


 

 

비 옆에는 以敬孝易(이경효역) 공경함으로 효도를 하는 것은 쉽지만, 以愛孝難(이애효난) 사랑으로 효도를 하기는 어렵다.”라는 장자의 이야기를 새기고, 壬戌春三月(임술춘삼월) 昌原鄕校 典校 李鍾德(창원향교 전교 이종덕)이 증거인이 되어, 雪松 鄭相九(설송 정상구)가 글을 쓰며, 慶州 金都煥(경주 김도환)이 세운 비석이 하나 더 있다.

 

 

 

 

반동리에는 언제나 마르지 않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마을공동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을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매년 우물을 청소하여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아침에 만나 우물에는 사진으로는 표현 되지 못했지만 물안개가 피어나고 있었다.

 

 

 

 

이날 만난 아주머니는 얼마 전 반동마을로 어장을 하기 위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하면서 우물의 물을 떠서 서리가 앉은 자동차의 유리창에 물을 뿌리니 서리가 녹아 운전이 가능한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골목길에는 고인돌이 있으니 구경을 하고 가라며 먼저 떠났다. 꼬불꼬불한 옛 정취가 물씬 나는 골목길을 들어서니 고인돌이 보인다. 고인돌의 크기는 작은 편이지만 먹을 것도 변변찮은 이 작은 어촌에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고 지배자가 살았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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