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천부인권 2016. 4. 21. 22:47




 

<2016.4.17. 선진리왜성 가는 길에 만난 이순신장군 동상>

 

아들과 함께 했던 각산에서의 남해바다와 창선·삼천포대교의 그림 같은 풍광을 가슴에 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천 船津里倭城(선진리왜성)을 답사하기로 했다. 조금 늦은 점심을 간이휴게소의 중국집에서 짜장면으로 해결하고 船津里城(선진리성)으로 가는 안내판의 안내를 따라 차를 몰았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편도 2차선엔 차량이 거의 없어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사천시 용현면 통양리 9-1’에 다달았을 때 길옆 공터에 구국의 영웅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동상 아래의 비석에는 임진왜란 때 일신을 바쳐 나라를 지키신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애국정신을 흠모하고 받들어 모시기 위하여 용현면 연호리 출신인 윤익성이 충무공 동상을 건립한 것이다. -중략-”고 적었다. 윤익성씨는 일본에 건너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임진왜란 때 거북선을 출동시켜 왜적선을 격파한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사천해전 승전지인 자신의 고향 선진리 입구에 동상을 건립한 것이라고 기록했다.





또한 선진리성을 가는 길 우측에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80호로 지정이 된 사천 조·명군총이 있다. 먼저 선진리성을 보기 위해 사천 조·명군총을 지나며 선진리성에 도착했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4호로 지정이 된 泗川 船津里城(사천 선진리성)’이라 명명하는 이 성은 고려시대의 버려진 토성 위에 건설한 倭城(왜성)이다. 보통의 경우 왜성은 왜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선진리왜성은 선진리성이라 표현을 하고 있어 조선의 진성 위에 왜성을 축조해서 왜성이라는 표현을 않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런것이 아니라 완전한 왜성이다. 앞으로는 일반적인 왜성에 붙이는 이름처럼 안내판이나 문화재청에서는 船津里倭城(선진리왜성)’이라고 표기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선진리왜성 앞에 세워져 있는 내용을 모르는 비석>





선진리왜성(船津里倭城)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745-1에 위치하며, 丁酉再亂(정유재란) 때 축성 지휘관 모리 요시나리(毛利吉城)에 의해 15971029일부터 1227일까지 축조한 성곽으로 수비대장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10,000명 정도의 병력과 함께 주둔했다. 성의 둘레는 약 1,000m. 현재 門址(문지), 將臺址(장대지)로 추측되는 시설이 있으나 대부분의 石壘(석루)는 붕괴되었다.


 




사천읍에서 남쪽으로 600m 되는 거리로 선진항(船津港북쪽에 위치하여 서··북 3면이 바다에 임하고 있고 동쪽만 육지에 접하고 있는 지형을 이용하여고지의 정상에 동서 약 18m, 남북 약 20m의 아성(牙城)을 두고그 남쪽으로 동서 약 18m, 남북 약 40m의 장방형 딸림성곽副郭을 한층 낮게 연결하였다아성의 북단에는 동서 약 10m, 남북 약 15m, 높이 4m의 천주각(天主閣)이라는 장대(將臺)를 높다랗게 쌓아올렸다석축의 성벽이 완성된 곳은 이 장대뿐이고딸림성곽의 서반부는 12m의 성벽이 남아 있으나 동반부는 일부 초석만 남아 있어 겨우 그 규모를 추측할 수 있는 정도이며그 밖의 대부분은 토성으로 축조된 것이다.





<성문 입구의 치 부분에서 본 풍경>


정유재란 때 왜장 시마즈가 수비하고 있었는데, 15989董一元(동일원) 휘하의 명나라 군사가 이 성을 공격하여 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조·명연합군의 군영에서 화약이 폭발하여 대오가 흐트러지는 바람에 왜에게 패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때 죽은 사람들의 무덤이 선진리왜성 앞에 있던 것을 이후 악취가 심하여 현재의 사천 조·명군총이 있는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이 사천 선진리왜성은 왜장 가토(加藤淸正)가 쌓은 학산왜성(鶴山倭城),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왜식산성의 하나이다.




<성문 입구 앞에 건설된 분리된 성곽>



<성 내에서 성문 밖을 본 풍경>



<성문 밖에서 바라 본 모습>





<이충무공사천해전승첩기념비>


한편 사천 앞바다는 1592529일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2차 출병에서 거북선을 처음으로 선보였고, 실전에 배치하여 왜적선 13척을 파괴하고 왜구들을 섬멸한 사천양해전(泗川洋海戰)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곳 선진리왜성 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충무공사천해전승첩기념비를 세웠으며, 1974년과 1975년 식수와 사방공사를 하고 현재 선진공원으로 조성하여 사천시민과 관광객들의 휴식처로 제공하고 있다.




<자연지형과 토성을 쌓은 후 석성을 만든 모습>




<천수각 터로 추정하고 있는 곳>


일제강점기인 1918년 시마즈 가문의 후손들이 성을 매수 또는 기부 받아 공원으로 정비하고 그 위에 조상을 기리는 석비를 세웠다. 하지만, 해방 후 석비는 마을 주민에 의해 파괴되었다. 1978년 공원 내에는 이충무공 사천해전승첩비가 세워졌으며 현재 시마즈 가문이 세웠던 비석 터에는 한국전쟁 중 순국한 공군장병의 위령비인 충령비가 세워져 있다. 충령비가 세워진 이곳이 2005년 발굴과정에서 天守閣(천수각)이 있던 자리로 추정하고 있다.[출처 : 위키백과]





忠靈碑(충령비) 안내문에 의하면 “19506·25전쟁 발발부터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종료 시까지 나라의 영공을 수호하는 임무 중 장열히 산화한 66명의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공군 제1훈련비행단(현 제3훈련비행단)에서 건립한 전적기념비로 200311월까지 사천기지(3훈련비행단)에서 임무수행 중 꽃다운 청춘을 바친 47명의 공군 장병의 영령들을 추가 봉안하여 현재 113명의 호국영령이 잠든 곳이다.”라 기록하고 있다.





<천수각 터에서 바라 보는 풍경>




<충령비가 세워진 천수각 터>



<선진리왜성을 나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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