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창원시 봉림동 이야기

천부인권 2017. 9. 14. 05:42



봉림공원 내 봉림사지 문화유산 배치 위치


1.봉림사지3층석탑-이 위치는 산책로 보다 1.5m높은 위치에 있어 탑을 우러러 볼 수 있고 아름다운 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2.진경대사보월능공탑 및 탑비-공원광장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제례를 지내거나 많은 사람을 모아 놓고 설명이 용이한 장소이다.
3.부처고개마애석불-조선시대의 고속도로였던 부처고개의 옛 길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면서 볼 수 있는 위치이다. 봉림동의 탄생 의미와 유물들이 집중 되어 관광의 효과가 높을 것으로 보여 진다.




상북초등학교 화단에 위치한 봉림사지3층석탑



용지공원에 위치한 진경대사보월능공탑과 탑비 모사품



봉림동 골프장 내에 위치한 부처고개마애석불


8월 29일 안상수 시장은 “2018 창원방문의 해” 선포식을 하면서 ‘세계인이 가고 싶은 관광도시 창원’을 표방했다. 특히 관광 마케팅 및 홍보강화와 새로운 관광 콘텐츠 및 관광 상품 개발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아무것도 담은 것이 없는 헛공약이며 홀로 고함지르는 메아리 같은 것에 불과 하다. 이처럼 창원시가 가지지 못한 문화를 외부에서 찾는 다고 헛돈 쓰지 마시고 창원의 근본을 이루는 뿌리에서 찾아 활용함이 백번 옳은 일이다.
그 중 창원의 근간이 되고 유구한 역사성을 드러내는 봉림사지(鳳林寺址)와 그 유물들을 활용함은 창원의 문화유산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하는 사안이다.


오늘날의 봉림사지를 존재케 했던 분은 진경대사 심희(855년 ~ 923년)로 888년 강릉에 있을 때, 창원에 복림(福林)이라는 길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창원을 찾아오게 되는데 처음에는 동굴에서 생활하다 봉림사지에 이르러 이름을 봉림이라 칭하며 초옥을 짓고 5종9산 중 제8선문을 창원 봉림사에서 열게 된다. 선문(禪門)을 열다함은 국가를 이루는 사상을 만들고 설파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신라 진성여왕은 대사를 불러 법회를 열고 신라의 국운을 세계만방에 떨쳐 줄 것을 요청했고 국사라는 칭호를 내렸다.

이러한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진경대사보월능공탑과 탑비는 국립중앙박물과에 있고, 창원에는 그 모사품을 만들어 봉림사지에 세운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용지공원 한켠에 세워두어 그 의미가 반감 되었다. 또한 봉림사지에서 출토된 봉림사지3층석탑(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6호)은 왜인에게 팔려가던 것을 당시 주민들이 되찾아 왔으나 놓아둘 곳이 없어 현재 상북초등학교 화단에 세워 두었다. 이들 봉림사지의 유물들은 봉림사지에 세워두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을 볼 때 봉림공원에 함께 옮겨 두어야 그 문화적 가치가 극대화 되고 관광 상품으로서 유무형의 가치도 창출될 것이다.


또한 창원에서 조선시대의 고속도로 역할을 했던 부처고개에 세웠던 ‘봉림동부처고개마애석불’은 창원시의 재산인데 창원골프장 내에 있어 사람들의 접근이 어렵다. 따라서 창원골프장 내에 둘 것이 아니라 봉림공원으로 옮겨와 옛 역사성을 더하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면 창원시가 관광 상품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들이 봉림공원의 유물들을 찾게 될 것이다.

지정 문화재와 비지정 문화재를 봉림공원으로 모으는 것에 어려움은 있겠으나 문화유산의 활용이라는 측면을 볼 때 봉림사지 인근에 위치한 봉림공원 내에 집중적으로 모아 두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이후 봉림사지를 찾는 사람들은 역사적 유물이 집중 되어 있는 봉림공원에서 봉림사지의 역사와 문화의 해설을 듣고 봉림동 둘레길을 따라 산행을 하게 된다면 그것으로 관광 상품의 역할을 충분히 하리라 생각한다.


‘창원방문의 해’와 봉림동 문화유산의 활용 방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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