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18. 3. 20. 20:40



2018.3.20 진전면 양촌리 개양마을 거연정 입구


진전면은 갈 때마다 느끼지만 전통마을의 형식을 잘 갖춘 곳이며 사람의 도리를 버리지 않고 지키려는 정신이 살아 있는 박물관 같은 지역이다. 마을 곳곳에 전통형식의 재실과 사당 및 정려와 포창비를 세웠으며 도심에서는 사라진 노거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우연히 시작한 노거수의 정리가 거의 끝나는 시점이라 창원시에 산재한 비문들을 찾아보면서 함께 재·루·정(齋·樓·亭) 등을 살피고 있다. 한문을 많이 몰라 어려움이 있지만 모르니까 공부하는 것도 점점 재미를 더한다.
거연정(居然亭)은 변상용(卞相瑢)이 자신의 선조를 그리며 지은 정자로 창원시 진전면 개양길 9-24에 위치한다. 개양마을은 양촌리에 속해 있지만 양촌리와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으며 마을규모는 작다. 이 마을의 가장 위쪽 산자락에 위치한 거연정은 적석산을 정면으로 마주 본다. 거연정의 입구에는 분홍빛이 도는 만첩매화나무가 화려한 꽃을 피워 운치를 더한다.




담장 넘어로 본 거연정


* 거연(居然)은 주자의 시 정사잡영(精舍雜詠) 12수 중에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딴 것으로 물 과 돌이 어울린 자연에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琴書四十年(금서사십년)  거문고와 책읽기 사십 년
幾作山中客(기작산중객)  거의 산중의 나그네 되었네
一日茅棟成(일일모동성)  하루에 띠집 지을 수 있으니
居然我泉石(거연아천석)  그렇게 나는 천석 사이에서 사노라


[출처] 누정기행(樓亭紀行)_선비문화 탐방/작성자 엽토51




외삼문인 대문 정문에서 마주한 거연정



측면에서 거연전 전경을 담았다.



거연정의 동백나무에 꽃이 피었다.


동백나무는 조매화(鳥媒花)다. 그 새는 동박새라 부른다. 동박새는 꽃의 꿀을 찾다가 머리와 부리에 묻은 꽃가루를 암술에 묻혀 수정을 하게 된다. 동백나무와 동박새에 대한 전설이 전하는데 "옛날 어느 왕국에서 자식이 없는 왕이 동생의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 줘야 했지만 권력을 주기 싫은 왕은 동생에게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했고 동생은 아들을 죽이지 못하고 자살을 했다. 화가난 왕은 조카들도 죽여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벼락이 왕의 머리에 떨어져 왕도 즉사했다. 동생이 죽은 자리에 한그루의 나무가 자랐는데 그 나무에 꽃이 피자 하늘에서 동박새 두마리가 내려와 나무 가지 위에 앉자 살았다한다." 그 나무가 동백나무이다.




거연정의 정면



거연정 편액




거연정기(居然亭記)


자식(子息)된 사람이 효를 하는 것은 그 일이 다단(多端)한데 부모의 뜻을 잘 계승하고 사업을 잘 전술(傳述)하는 것이 크다. 덕선(德善)과 청취(淸趣)로 어버이가 일찍 하고 자 하는바에 마음을 쓰는 것은 자식이 그 선세(先世)에 욕됨이 없게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부모에 있어서 어질게 되고 효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진양(晉陽)의 양전(良田)은 산수가 넉넉하고 풍토(風土)가 아름답다. 변공 기연(卞公 箕淵) 자 응서(應瑞)가 그 속에 은거(隱居)하면서 선(善)을 행하였다. 공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하였는데 열심히 농사를 지어 가정을 이루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봉양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여 편모(偏母)를 모심에 그 정성을 다하였으며 선대를 받듦에도 정성을 다하였으며 사람을 구제(救濟)하는 것을 좋아하여 의리로서 당연히 하여야 할 일에는 어렵게 반평생에 이룬 재산을 즉석(卽席)에서 천금(千金)을 내 놓는 것을 아끼지 않아 고을 사람들이 다 한결같이 그 어짊을 칭송(稱頌)하였다. 공은 일찍 한 구역(區域)의 경치(景致) 좋은 선영(先塋) 아래에 터를 잡아 놓고 매년 성묘하고 나면 그 사이를 거닐면서 즐거이 세속의 더러움을 잊었다. 견씨(甄氏)의 사정(思亭)과 주자(朱子)의 한천(寒泉)과 같은 정자를 지을 것을 생각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시자 그 아들 상용(相瑢)이 선대의 법을 지켜 잘못하지 아니하며 잊지 아니하였다. 또 선공(先公)의 청취(淸趣)의 자취가 없어져 가는 것을 차마 견디지 못하여 경치(景致) 좋은 곳에 좌우(左右)가 넓은 정자를 지으니 산수가 채색(采色)을 더하고 마룻대 위에 얹은 기와와 서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데 거연정(居然亭)이라고 현판(懸板)한 것은 주자의 시에서 취한 것이다. 상용군(相瑢君)이 천리를 달려와서 나를 보고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일찍 나의 선인과 지헌(持憲) 일가 어른과 함께 정성(精誠)을 다한 것이 진실로 오래 되었는데 선조의 사당을 지을 때에는 천리를 멀다 않고 몸소 와서 찬양(贊襄)하셨는데 지금 선인의 정자를 짓는데 어찌 한 말씀으로 기문을 지어 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내가 일어서서 말하기를 「아버지가 착하고 아들 또한 착하며 아버지가 성품(性稟)이 깨끗하고 아들 또한 성푼이 깨끗하니 이는 선인의 뜻을 장 이어 일을 잘 전술()하는 뜻 있는 선비의 아름다움이니 어질도다 아버지여! 효자로다 아들이여! 내가 이 세상에서 이와 같은 일을 이 사람에게 보게 되었으니 이 또한 대행(多幸)이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남의 부자(父子)된 사람들은 다 이를 본받으면 어찌 인륜(人倫)이 없어지고 사람이 사람답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더니 상용군(相瑢君)이 안색(顔色)을 변하며 감(敢)히 당치 않는다고 사절(謝絶)하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또 말하기를 「군의 겸손(謙遜)도 또 착하다. 군의 집에 아들 여덟 사람이 훌륭한 사람의 뒤를 이었으니 때를 만나면 창대(昌大)하여질 것이다. 요(堯)임금과 같은 성인도 아들이 많으면 오히려 근심이 많다고 하였는데 지금 여덟 아들 된 사람들이 부조(父祖)의 선을 이어 전술(傳述)하면은 그 몸과 마음이 청백(淸白)하여져서 좋은 천석(泉石)을 대하여도 부끄럽지 않아 거연정(居然亭) 가운데에 아름다운 자손이 어진 아버지의 두터운 마음이 풀어질 뿐만 아니라고 장차 변씨가문(卞氏家門)의 으뜸가는 문중이 되어서 세상에 무궁(無窮)하게 뻗어 나아갈 것이다.」하니 상용군(相瑢君)이 기뻐하면서 「선생님의 말씀이 또한 훌륭합니다. 돌아가서 편액(扁額)을 사치(奢侈)하게 꾸미겠습니다.」하였으니 부자가 서로 느낌이 있을 것이다.

丙子(1936)年 가을에 首陽 오운영(吳雲泳)이 서운산(瑞雲山)의 망화재(望華齋)에서 쓰다.

 

居然亭記

人子爲孝其事多端而繼述爲大德善之與淸趣皆親之所嘗致力而成之其人父子之爲賢爲孝孰大焉晉陽之良田饒山水風土之景卞公箕淵字應瑞隱居行善於其中盖公早孤貧力穡成家痛不逮嚴君養偏慈無所不用其誠誠於爲先樂於濟人義所當爲則以其艱難半生所成之財不惜立地用下千金鄕人咸一口誦其賢公嘗卜一區淸泉白石於先壟下每省楸餘徜徉其間樂而忘歲之塵穢也準擬置一亭如甄氏之思亭晦翁之寒泉而不及就而卽世克家子相瑢遵先法而不愆不忘又不忍先公之淸趣無跡有亭翼然臨于泉石爲之增色棟甍相與稱美而扁以居然盖取諸晦翁詩也因千里而見余曰子嘗於吾先人與持憲族公盡誠誠久先祠之役不惜千里躬榮而贊之今此先人之亭又惡可不一言以記之余興曰尊公之善而子又善尊公之淸而子又淸是以繼述志士之懿美賢者父也孝哉子也吾猶及見斯人斯事於斯世不其亦幸歟世之爲人父子者咸斯之法焉則安有倫亡而人不人相瑢甫忧然謝不敢自當若無所容其身余又曰子之謙又善矣子之家有八龍善人之後宜其有時昌大堯之聖猶懼有多男子今不爲八龍者若又克繼述父祖之善而淸白其身心不愧對好泉石而爲居然亭中佳子孫不但賢父之釋露心將卞門甲於世而無窮相瑢甫喜曰子之焉亦善矣歸而侈之楣父子相感戒

時柔兆困敦之蕭晨首陽吳雲泳書于瑞雲山之望華齋

[출처] 마산문화지(2004)-마산문화원





거연정기(居然亭記)2
진양의 한 시골에 변처사(卞處士)가 계셨는데 은거(隱居)하면서 의(義)을 행한지 79년에 종족(宗族)이 그 효성(孝誠)에 감복(感服)하고 향당(鄕黨)에서 그 덕을 칭송(稱頌)하였다. 처사가 돌아가자 아들 태견군(泰見君)이 흙을 높이 쌓아 무덤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묘역(墓域)을 표시하고 또 제유(祭儒)를 정결(精潔)히 장만하여 경건(敬虔)하게 제사(祭祀)를 받들며 가문을 이어 칭송(稱頌)이 있었다. 처사가 넉넉한 마음으로 한가(閑暇)로이 반환(盤桓)하던 곳에 자못 경치의 아름다움을 아끼어 정자(亭子) 한 채를 지으려다 끝내 이루지 못하고 드디어 몇 간(間)을 얽어매고 돌아가시자 그 아들들이 집을 완공하고 거연정(居然亭)이라 현판하였으니 그 뜻은 주자의 시어(詩語)를 취(取)하였으며 천리를 달려와서 나에게 기문을 요구하였다. 내가 보건대 남의 자손된 세상 사람들이 널리 전원(田園)을 두고 높이 담을 쌓아 집을 짓고 또 물 맑고 산 높은 곳을 택하여 별도(別途)로 정대(亭臺)를 농고 스스로 효도를 지극히 다하였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자손들이 호화(豪華)에 익숙(益熟)하고 뜻이 방자(放恣)하면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전옥(田屋)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고 정대(亭臺)에는 잡초(雜草)만 무성(茂盛)하게 되는 것이 열 사람 중에 팔·구명은 될 것이다. 그러니 후손들에게 넉넉함을 물러준 계책(計策)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듣건데 처사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집이 가난하여 힘써 농사를 지으며 편모를 봉양하면서 남루(藍褸)한 옷을 입고 험(險)한 음식(飮食)을 먹으며 궁한 사람들에게는 변통(變通)하여 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구휼(救恤)하여 그 후손들로 하여금 보고 듣게 하며 성실하게 법도(法度)를 행하여 비록 윤리와 도덕이 없을 때를 만나도 홀로 고가(古家)의 풍도(風度)를 보존하게 하였다. 아아! 처사는 참으로 덕을 쌓아 후손들에게 넉넉함을 물러 주는 도를 알았다고 할 수 있다. 청천(淸泉)과 백석(白石)이 어느 곳인들 있지 않으리요마는 현자(賢者)의 아름다운 발자취는 숭상(崇尙)할만 하구나 이에 그 덕을 칭송하여 거연정의 기문(記問)으로 삼는다.
戊寅年 四月 20일에 안동 김영한(金寗漢)은 벽오산(碧梧山)의 와운소(臥雲巢)에서 쓰다.


居然亭記2
晋之鄙有卞處士焉隱居行義七十九年宗族服其孝鄕黨薫其德及其歿也哲嗣泰見甫旣固封樹且潔烝嘗有克家稱矣處士於薖軸之地頗愛泉石之佳嘗欲置一亭而竟未就也故遂締構幾間以卒其志取朱夫子詩語扁之曰居然千里而徵余文余觀世之人未嘗不爲其子孫廣置田園高起垣屋又点泓崢別築亭臺自以爲至矣盡矣然若子若孫習於豪華放意肆志一瞚之頃田屋屬之別人亭臺鞠爲茂草如是者十居八九矣然則裕後之計果安在哉盖聞處士蚤孤而貧耕稼養母縮衣貶食通窮而恤匱能使其子孫習熟規矱雖逢閉寒之會獨保古家之風鳴呼處士眞智裕後之道者也淸泉白石何處士有賢者芳躅是可尙焉乃頌其德以爲居然亭記黃虎乾之再吉
安東金寗漢書于碧梧山之臥雲巢中

[출처] 마산문화지(2004)-마산문화원





居然亭銘
亭在晋陽之良田卞君相瑢爲其先大人處士公作也 處士公諱箕淵嘗卜一區泉石於先隴之下擬置一亭 不幸未就而卽世君克承其志竭心力以成之扁曰居然 居然盖取晦前詩中語也 君旣沒之二年其孤仁燮曳衰來請以銘銘曰 有亭有亭良田一方維此良田卞氏之庄 君大人公行著家鄕爰卜一區齎志未遑孝哉 惟君一意承先肯構爲亭扁以居然 此亭何有我石我泉白石齒齒淸泉涓涓 詩云桑梓必恭敬止矧伊先人菟裘之地謦欬如聞 杖屨如侍來孝不匱益追以誠嗣葺用光永觀厥成
晉山河謙鎭


거연정명 居然亭銘[해문-백촌거사/김창현]

거연정居然亭은 진양晋陽의 양전良田마을에 있으며, 변군卞君 상용相瑢이 그의 선친 처사공處士公을 위해 세운 정자이다. 처사공處士公 휘諱 기연箕淵은 일찍이 천석泉石 한 구역에 터를 잡고 선영 아래 정자 하나를 마련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불행히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바로 세상을 떠남에 변군 그대가 그 뜻을 계승하여 마음과 힘을 다해 정자를 이루었고, 편액을 거연居然¹⁾이라 하였다.
변군卞君<卞相瑢>이 세상을 떠난 지 2 년 되던 해 그 아들 중에 첫째 아들 인섭仁燮이 상복을 입고 찾아와서 거연정居然亭에 새길 글<銘>을 부탁하였다. 새길 글의 내용을 말하기를 ‘정자亭子가 있고, 정자는 양전良田마을 한쪽에 있으며, 이 양전良田마을은 초계 변씨의 경작지가 있다.’고 하였다.
변군(卞君)의 선친께서는 고향에서 두드러진 일을 행하였으며, 이에 한 구역에 터를 잡아 공경의 뜻은 있었으나 효성을 행할 겨를이 없었다. 오직 군은 한 가지 뜻으로 선친이 시작한 일을 계승하여 정자의 편액을 거연이라 하였다.
이 정자는 어찌해서 내 돌과 내 샘이 있고 흰 돌이 줄지어 있고 맑은 샘물이 졸졸 흐르는가.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삼가 공손히 섬긴다.’하였는데, 하물며 조상님 은거하신 곳에서 살아가니 기침소리 들리는 듯하구나.
조상을 모시는 듯 정자에 와서 효성을 다 하고, 더욱 조상을 기리면서 정성으로 지붕을 잇고  오랫동안 공사하여 길이 그 완성을 보게 되었다네.
진산晉山 하겸진河謙鎭²⁾


【주석】
거연居然¹⁾ : ‘거연居然’이라는 말은 주자朱子의 시 가운데서 취한 말이다.<정사잡영精舍雜詠12수중 정사精舍에 있는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을 취함>
하겸진河謙鎭²⁾ : 고종 7(1870~1946)년 생으로 본관은 진양晉陽. 자字 숙형叔亨 호號 회봉晦峯 외재畏齋이고 아버지는 하재익河載翼이며, 어머니는 김해허씨金海許氏다. 『주어절요』, 『도문작해』, 『동유학안』 등을 저술 했고 문집으로 회봉집晦峯集이 있다. 진양의 덕곡서당(德谷書堂)에서는 1957년부터 사림들이 매년 석채례(釋采禮)를 행하고 있다.








居然亭原韻
屹立金崗古色靑  금강에 높이 선 정자 고색이 창연하니
經營十載築斯亭  경영한지 10년 만에 이 정자 세웠노라.
軒窓靜對玄猿窟  마루와 창이 고요히 마주하고 검은 원숭이 굴속에 있으니
徑路廻通白鷺汀  지름길은 돌아 통하고 흰 백로 물가에 있구나.
四壁圖書心界淨  네 벽면에 쌓인 도서 심기가 조촐하며
一區泉石耳根醒  한 구역의 천석은 귀뿌리까지 깨우치네.
微誠敢曰追先志  작은 정성으로 감히 말하니 유훈을 따름이라
汎掃朝朝不暫停  매일 아침 넓게 쓸어 잠시도 쉬지 않으리.
不肖子 相瑢     불초자 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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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고맙습니다. 그렇게 배우시는 큰 정성과 사랑에 감동입니다. 서로 도와 가며 배워 갑시다. 자료 고맙습니다.
무례가 되지 않는 다면 혹 어디에 사시는지요?
경기도 부천시에 산 지가 올해로 5년째 됩니다. 거연정의 화답시를 번역해 보려 합니다.
번역이 되면 저에게도 보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거연정 관련 자료 잘 읽었습니다. 특히 거연정 원운 번역내용은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자료라 더욱 반갑게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次居然亭
卞相瑢 韻
심상복 (沈相福) : 1876~1951.
본관 청송(靑松). 호 치당 (恥堂). 경남 산청군 단성(丹城) 출생 󰡔치당문집󰡕
石白泉明岳色靑 菟裘晩計適成亭
煙花呈態簾間月 魚鳥忘形野外汀
南極星增年壽久 北牕風灑夢魂醒
絃歌暢亮流雲戛 洞口時多客馬停
‣ 측기식 7언 율시의 형태로
九靑平聲운인 <靑亭汀醒停>운을 바탕으로 쓴 시.
변상용 선생님의 운자를 바탕으로 한 귀중한 시입니다.물론 위 그림의 편액에는 없는 시입니다. 변 선생의 생몰연대
구체적인 자료를 못 얻어 해석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돌샘 님의 블로그에 들어가도 매우 상세한 이력은 안 보입니다.
거연정을 화운한 시가 모두 7 편이 되는 셈입니다. 더 구체적인 자료를 얻고 난 뒤에 모두를 번역해 보려고 합니다.

백촌거사님 변상용 할아버지의 생몰연대는 1879~1941년 입니다. 그리고 원운에 나오는 金崗은 정자의 뒷산으로 해발 300~400m의 산이고, 정자 앞에는 멀리 진전천이 흐르고 건너편 적석산이 빤히 바라보입니다.

백촌거사 님의 의문을 돌샘님께서 올려 두셨군요
안녕하세요 천부인권님. 블로그에 좋은 내용이 많아 종종 들리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희 증조부님 관련 사항이라 올렸는데 인사도 없이 실례했습니다. 보람된 나날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저 역시 돌샘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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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연정시를 번역하다보니 거연정에 관련이 되는 글에서 오자도 보이더군요, 해석도 더듬어 봐야 하는데, 선생님 사진은
그래도 선명해서 선생님 것을 보고 있지요. 번역이 끝나는 대로 보내드리지요. 제 가문에 관련되는 글도 번역할 일이 있어 조금은 시간이 걸립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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