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천부인권 2018. 9. 16. 11:00



2018.8.31 의령 충익사 견내 동편에 위치한 강언룡 선생 기공비


 의령군 의령읍 동동리 1491-2번지에 위치한 『草亭姜彦龍先生紀功碑(초정강언룡선생기공비)』는 의령 충익사 동편에 있다. 이 비는 강씨문중에서 1974년에 강공 언룡의 공적을 기록한 비(碑)로 용두와 비신 및 귀부를 갖추었으며, 비의 총높이는 330cm, 비폭은 86cm, 비신높이 230cm, 두께 54cm의 완전한 모습의 비이다.
강언룡(姜彦龍)은 1545년(인종 1)에 출생하여 1613년(광해군 5)에 서세(逝世)했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문(汝文), 호는 초정(草亭)이다.
선조 때 유곡도찰방(幽谷道察訪)이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항쟁하여 의령·삼가(三嘉)·합천(陜川) 등을 수복하는 데 크게 공을 세웠으며, 이를 계기로 하여 정인홍(鄭仁弘)·김면(金沔) 등이 의병을 일으키게 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의령 덕림사(德林祠)에 제향(祭享)되었다.






강언룡선생 비 뒷면에는 한자 혼용으로 이처럼 새겼다.
난초(蘭草)가 깊은 골짜기에 피어도 보는 이 없다하여 꽃 아름다움을 멎지 않듯 이 구름과 안개 극성(極盛)을 부려도 해와 달이 영원한 빛을 빼앗지 못하듯이 국난(國難)이 접종(接踵)되고 악의 무리가 도량(跳梁)하여도 남이야 알든 모르든 꾸준히 일하고 흔연(欣然)히 희생(犧牲)되는 의인열사(義人烈士)가 아니었던들 오늘도 저렇게 태양이 찬란한 빛을 발하고 묵묵(默默)히 돌보고 있지는 못하리라. 여기 심산유곡(深山幽谷)에 피었다 지는 난초와 같이 고절(高節)의 70평생을 외로이 사셨으니 덕망(德望)이 오늘에 더욱 꽃답고 향기(香氣)로운 의사(義士) 한 분이 계시니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 진양 강공(晉陽 姜公) 언룡(彦龍)이 바로 그 어른이시다. 공은 1545년 을사인종원년(乙巳仁宗元年)에 통계공 회중(通溪公 淮仲)의 8세손이요, 첨정공 복휴(僉正公 復休)의 장남으로 탄생(誕生)하시니 소시(少時)로부터 극진(極盡)한 효도로써 섬기심과 돈독(敦篤)한 우애로써 형제간에 오가심이 원근(遠近)의 칭송과 선망(羨望)의 표적(標的)이 되셨다. 뿐만 아니라 처세함에 있어 이익(利益)을 탐(貪)냄이 없고 언제나 마음이 단아(端雅)하여 선비의 표본으로 흠영(欽迎)을 받으셨으며 문학의 깊은 조예(造詣)와 비범한 필법(筆法)으로 인구의 회적(膾炙)하는바 되셨다. 왜란(倭亂)으로 임금께서 경사(京師-서울)버리신 지금에 신자(臣子)된 자(者)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랴.
마땅히 충성(忠誠)을 다할 때가 왔다 하시고 천명을 아실 연세(年歲)를 무릅쓰고 홍의장군 곽재우 휘하(紅衣將軍 郭再祐 麾下)에 드시니 정진(鼎津)에서 적을 막으시고 기강(岐江)에서 싸우셨으며 화왕산성(火旺山城)에 진을 쳐서 힘겨운 싸움을 하시면서도 물러나지 않는 전공(戰功)을 올리셨다. 김학봉(金鶴峯)의 계달(啓達)로 유곡도찰방(幽谷道察訪)을 명받으셨으니 임지(任地)로 바로 오령요충(烏嶺要衝)의 길목이 되는 곳이었다.
그러나 전후(戰後)에 곧 벼슬을 하직(下直)하시고 향리(鄕里)로 돌아가서 낮이면 밭 갈고 저녁이면 글 읽는 평화스러운 나라를 보내셨다. 계축 광해5년(癸丑 光海五年) 69세를 일기로 서세(逝世)하시니 공을 아끼는 지사(志士)들의 애도(哀悼)가 그칠 줄을 몰랐다. 이로부터 200년이 흐른 1847년 정미 헌종30년(丁未 憲宗三十年)에 충효사(忠孝祠)에 배향되시고 1861년 신유 철종12년(辛酉 哲宗十二年) 유생(儒生)들의 계주(啓奏)로 좌승지에 추증(追贈)되셨으니 이는 공의 공덕(功德)을 역사(歷史)가 잊지 않고 있음을 말하는 증좌(證佐)라 하겠다고 알지 못하리라.
한글학회이사 민족문화추진회이사 서울대학교교수 한갑수(韓甲洙) 찬서(撰書)
단기 4307년(1974) 갑인 삼월 세우다. (檀紀 四千三百七年 甲寅 三月 竪立)





이 비의 우측면에는 허전선생이 남긴 비문이 아래와 같이 새겨져 있다.

贈左承旨草亭姜公廟碑銘 

章甫學俎豆之儀。靺韋習弓戈之事。所學不同。而所習各異。則固齟齬矛盾。未可與相通。然往往有處如龍蟄。出如鷹揚。奮不顧身。以先國家之難。而建功立名者何哉。非惟資兼智勇。才全文武。抑亦忠孝之性。得之天。擩染於家庭者。有所本焉爾。傳曰求忠臣於孝子之門。其草亭之謂乎。謹按草亭諱彥龍字汝文。姜姓系出晉陽。高祖諱孝貞司憲府監察。燕山時從姪大司諫詗以忠直敢言。與三子同日被禍。遂棄官南歸宜寧。戒子孫勿仕。祖曰瑀。叔祖曰瑞。俱進士。兄爲母死。弟爲父死。幷㫌孝。父諱復休。亦以孝行聞。公自少事親孝。友于弟。恬雅有志氣。加以文學自勵。龍蛇島夷之亂。州郡風靡。公慨然曰王京失守。 大駕蒙塵。此非臣子效忠之時耶。卽赴郭忘憂倡義軍。禦賊于鼎津。戰于歧江。陣于火旺山城。輒立奇功。招諭使金鶴峯錄 啓褒之。拜爲幽谷察訪。使當鳥嶺要衝之路。錄宣武原從功二等。亂靖後角巾歸第。癸丑卒。享年六十九。憲宗丁未。配享孝忠祠。初公之弟起龍。從金千鎰諸義將守晉陽。城陷之日。同時立慬。 哲宗辛酉。因儒疏公 贈左承旨。弟 命㫌閭。又 贈吏曹參議。公之從祖叔父壽男。以兵曹正郞。爲畿伯沈公岱從事官。與倭戰于朔寧。同沈公死之。 宣祖親製誄文。 贈都承旨。 肅廟加贈吏曹判書謚忠烈。又 命㫌閭。嗚呼。姜氏之門。一何多孝子忠臣也。列聖朝哀榮之典。又何其備至也。余讀曺南冥,姜慵齋,權蒼雪,洪樂泉,李星湖,權濟南所撰行狀墓表孝門銘謚狀神道碑忠烈記。不覺三復而擊節曰盡美矣。更何敢贅一辭。謹按其槩。以爲廟碑。公有子四人。得璜,得球,得珠,得璐。後孫震永,基馨不遠數百里。來乞銘。益童其賢祖之行。亦可謂不匱之孝也。銘曰。粤自羅麗。姜爲著姓。炳炳奕葉。逮我 列聖。昔在壬辰。蠻夷猖獗。公時布韋。敵愾奮發。佐戎紅衣。保有江右。勒伐鼎彝。帶礪悠久。超秩六品。縻爾好爵。解紱勇退。琴書林壑。後王紀功。 貤贈承宣。四旌忠孝。一祠祖孫。臣子之勸。百世是則。瞻仰德林。名存石泐。
正憲大夫吏曹判書 陽川 許  傳 撰
                          星山 李憲柱 書


출처 및 참조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 - 증 좌승지 초정(草亭) 강언룡(姜彥龍) 사당 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다음
의령의 금석문화-의령문화원(2015.12)-의령향토문화연구소





2018.8.31 강언룡 선생 비 귀부 모습



2018.8.30 초정 강언룡 선생 기공비 용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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