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봉수대

천부인권 2018. 11. 28. 07:29



2018.11.27 사천 각산봉수와 케이블카


2016년 4월 17일 아들과 함께 각산(角山 해발 408m) 정상에 올라 각산이 보여주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자 봉수대에 올랐다. 그때는 봉수대가 목적이 아니라서 주위 풍경을 담고 문화재로서의 봉수를 기록했는데 오늘 방문은 봉수대 기록이 목적이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봉수대 주변을 관광자원화 했고 조금 아래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여 초양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을 오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곳 각산은 정상부까지 차량의 접근이 가능하고 등산이 목적인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따라서 케이블카의 설치가 경제적으로 효과를 낼지는 의문이 든다. 케이블카 운행을 하고는 있었지만 적자는 아닌지 궁금하다.





전망대로부터 400m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각산의 정상부에는 각산봉화대(角山熢火臺)가 위치해 있다. 사천 각산의 해발 고도는 408m이고 정상에 봉화대가 설치되어 있다. 지도상 위치는 위도 35°56′39″N 경도 128°03′25″E이다.
각산봉수는 동으로 11.94km에 위치한 고성 좌이산봉수에 응하고, 서쪽으로 14.75km에 위치한 곤양 우산봉수에 연락한다. 남쪽으로는 11.45km에 위치한 남해 대방산봉수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10.87km에 있는 사천 봉대산(안점산봉수)에 연락한다. 각산봉수의 운영은 남쪽으로 300m 아래에 있는 각산산성(角山山城)에서 했을 것이다.




동쪽 좌이산봉수 방향 모습


유구의 기단은 남서쪽을 제외하고 시설되어 있는데, 너비 l.6m이고‘ 지형에 띠라 높이0.1~0.6m이다. 남서쪽은 큰 암반을 이용하여 기단을 만들었다, 북쪽 및 남쪽은 산정으로 기단이 낮고 북동쪽은 기단이 높게 시설되어 있다. 북동쪽에서 동남쪽으로는 등산로가 지나가고 있다.
연대는 높이 1.O~2.3n1, 둘레 34m이다. 20~5Ocm 크기의 석재를 이용하여 막돌허튼층쌓기를 하였다. 연대의 북쪽 하단부에 0.8×05m의 장방형의 통풍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내부 연소실까지 관통한다. 통풍구의 시작점부터 연소실까지 관통되는 길이는 4.4m이며, 단을 지고 1m를 내려가면 연소실이 있다 연대의 남쪽 하단부 또한 북쪽 하단부와 같은 통풍구가 설치되어 있다. 연대의 북서쪽에는 너비 1.1m 높이 1.3m의 4단으로 된 계단시설이 있다.
연통은 말각장방형으로 2O~3Ocm 크기의 석재를 사용하여 막돌허튼층쌓기를 하였다. 연통의 너비는 3.3×4.Om이며, 높이는 2.3m이다. 연통의 북서쪽에는 화구시설이 설치되어 있는데, 크기는 0.8×0.7m이다. 연통 내부 화구시설 아례에서 l.2m정도 내려가게 되면 연소실과 맞닿는다. 




남쪽 대방산봉수 방향 풍경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6호로 지정이 된 이 봉화대의 내력을 문화재청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각산의 정상인 해발 408m 고지에 있는 봉화대이다.
봉화는 ‘봉수’라고도 하며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써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연락방식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였다. 국가의 정치, 군사적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기록상 우리나라 봉수제의 확실한 출발은 고려 중기로 보고 있다.
각산 봉화대는 수많은 자연돌을 모아 둥그렇게 만든 형태이다. 널찍하고 둥그런 단위의 중앙에 또다시 둥근 단을 쌓아올렸는데 아랫단보다 높직한 모습이다. 2개의 단에는 불을 지피기 위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이는 사각의 뚫린 공간이 남아 있으며, 아랫단 한쪽에는 위로 오르는 계단을 두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 설치된 것으로, 남해 금산에 있는 구정봉의 연락을 창선도의 태방산을 거쳐 받았다. 고려 때는 이를 다시 용현면의 침지 봉수와 곤양면의 우산 봉수로 보냈다. 조선시대 세종 때에는 봉수망의 정비로 침지 봉수와 서낭당 봉수를 폐지하고 용현 안점봉수를 설치하여 연락하였다. 또한 사량도의 공수산봉수를 고성 좌이산봉수에 전달하기도 하였다.』




2016.4.17 각산봉수대 모습


신증 동국여지승람 晉州牧에 기록된 봉수는
[臺方山烽燧 在州南一百十四里南應南海縣錦山北應角山]
대방산봉수 주(州) 남쪽 1백 14리에 있다. 남쪽으로 남해현 금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각산에 응한다.
[望晉山烽燧 南應泗川鞍岾北應廣濟山]
망진산봉수 남으로 사천 안점에 응하고 북으로 광제산에 응한다.
[角山烽燧 在州南七十六里南應臺方山西應昆陽牛山北應泗川鞍岾]
각산봉수 주(州) 남쪽 76리에 있다. 남으로 대방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곤양 우산에 응하며, 북쪽으로 사천 안점에 응한다.
[廣濟山烽燧 在州北三十一里南應望晉山北應丹城笠巖山]
광제산봉수 주(州) 북쪽 31리에 있다. 남으로 망진산에 응하고 북으로 단성 입암산에 응한다.





세종실록 150권, 지리지 경상도 진주목 사천현
城隍堂石城在縣南二里 【高險, 周回五百八十八步。內有泉一、池二, 有軍倉】 성황당 석성(城隍堂石城)은 현 남쪽 2리에 있다. 【높고 험하며, 둘레가 5백 88보인데, 안에 샘 1, 못 2개소가 있고, 군창(軍倉)이 있다.】
驛二, 灌栗、新驛。 烽火二處, 針枝在縣南, 【南準晋州 角山鄕主山, 北準縣城隍堂】 城隍堂。 【北準晋州 望津山】 역(驛)이 2곳으로, 관율(灌栗)·신역(新驛)이요, 봉화가 2곳이니, 침지(針枝)는 현 남쪽에 있다. 【남쪽으로 진주(晉州) 각산향(角山鄕)의 주산(主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본현 성황당(城隍堂)에 응한다.】 성황당(城隍堂) 【북쪽으로 진주(晉州) 망진산(望津山)에 응한다.】
越境處, 晋州亡鄕末文角山越入縣南村 월경처(越境處)는 진주(晉州)의 없어진 향(鄕) 말문(末文)의 각산(角山)이 현(縣) 남촌(南村)으로 넘어 들어왔다. 





거제 강망산봉수 거제 옥녀봉봉수거제 가라산봉한산도 한배곶봉수 통영 미륵산봉수 통영 우산봉수 고성 좌이산봉수 사천 각산봉수


남해 납(원)산봉수

남해 설흘(소흘)산봉수

남해 미조 망운산봉수


남해 금산봉수


창선도 대방산봉수


사천 각산봉수


사천 안점산봉수

사천 우산봉수

 ⇔

 진주 망진산봉수



진주 광제산봉수 ⇔ 단성 입암산봉수 ⇔ 삼가 금성산봉수 ⇔ 합천 소현봉수 ⇔ 거창 금귀산봉수 ⇔ 거창 거말흘산봉수 ⇔ 상주 지례현 구산봉수





출처 및 참고
경남지역의 봉수Ⅱ-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2013.11.30.)/강순형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Ⅳ-고전국역총서43/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32권(1971.2.20.)
조선시대의 연변봉수-김주홍(2010.11.5.)
경남의 성곽과 봉수-도서출판 선인(201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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