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0. 3. 30. 18:17



2020.3.27. 함안군 군북면 가덕동 진주강씨 영모재永慕齋


군북면 박곡리 784(박곡1길 21-7)는 진주강씨晋州姜氏 둔옹처사遯翁處士 강공姜公 이름이 언성彦省이신 분을 모시고 있는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위치기반고도계는 해발 30m이고 「위도 35°16'02.4"N 경도 128°16'58.2"E」를 표시한다.
처음 함안누정록咸安樓亭錄에 기록된 진주강씨 재실을 확인하던 중 군북면 박곡리와 가덕리에 각각 1개씩 있다는 기록을 보고 남해 창선면에 다녀오면서 둘러보게 됐다. 가덕리加德里에 도착하여 찾게 된 재실은 덕산재德山齋였는데 그 뒤쪽에 재실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박곡리朴谷里에 있는 강씨 재실을 찾아가 보니 가덕리加德里에 2개의 강씨 재실이 있고 박곡리에도 1개의 재실이 있어 총 3개의 재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마도 함안누정록을 만들면서 착각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박곡리에 있는 우모정寓慕亭은 함안누정록의 기록에 없다. 우모정寓慕亭과 덕산재德山齋는 박사공파博士公派의 재실이고 영모재永慕齋는 은열공파殷列公派의 재실이다.
되돌아가 만난 영모재永慕齋는 대문에 경원문敬原門이라 편액 했고 본실本室은 영모재永慕齋라 했으며 주련과 기문 및 상량문과 운문韻文이 걸려 있다.




2020.3.27. 함안군 가덕동 진주강씨 영모재永慕齋 대문 앞 전



2020.3.27. 함안군 가덕동 진주강씨 영모재永慕齋 대문의 경원문敬原門 편액



2020.3.27. 함안군 가덕동 진주강씨 영모재永慕齋



2020.3.27. 함안군 가덕동 진주강씨 영모재永慕齋 편액




重建如今雖恨晩
중건여금수한만
始基先祖大恩功
시기선조 대은공
地久天長與未窮
지구천장 여미궁
隨時永慕盡微衷
수시영모 진미충





永慕齋記
祖先之撤于廟矣 而報本之誠不可撤矣 於是乎墓祭起焉旣祭矣 於是乎墳庵創焉 是天理人情之所 不容己也 由是而士大夫之閥閱著者 相勸於奉先追遠之道 必即丘墓之前 而爲齋或就邁軸之墟 而起享以虔享而寓慕 否則歉然若未伸於其誠也 嗚呼懿哉 巴陵有曰永慕齋 我族先祖遯翁處士 姜公諱彦省之丙舍也 其先出于晋陽 而以殷列公上祖 修撰秋湖公爲中祖 而有若執義旣持平 公爲高祖 若考盖儼乎 其域中之望也 處士生乎簪履之舊 而不喜名利 遂隱居于晋東咸西之間 其里曰加德 杜門隱几 以仁義之說 孝友之政求其志 而篤其行間 以登防山 而歌桐栢之義臨乎 錦湖而慕桐江之風 其德足以濟世 學足以成物 而含章不施沒世 而無悶焉 盖其當日隱德 懿行猶可像想於今日 而人所仰慕也 況其後孫乎 遺墟起齋 而可以見於墻也 泉洞有封 而可以見於墻也 老松之蒼柯濃陰若庇庥乎棟樑也 地下之精靈 悅豫若陟降乎庭際也 然則是齋也 不以尋常燕息而取華美 適凉燠之可此也 凡爲處士公之後 而夙夜於斯齋者 豈惟以肯構肯堂 爲足盡追遠報本之誠哉 必須勅躬修行 心存孝友繼述乎 祖先之志行 而光大其隱德 則是眞能爲永慕 而以克永其世矣 詩不云乎 言永孝思孝思維則 處士公之謂矣 又不云乎 孝子不匱永錫爾類 是不能不祝於 處士公之世世子孫也 若夫春秋而謹蘋藻之禮 月朔而盡花樹之懽 自是齋中常事玆不贅陳 然請余文者 其後孫慶瑞也
丁巳之殷春節 族後孫相弼謹記
                   族後孫錫殷謹書


영모재기 永慕齋記
선조의 위패位牌를 가묘家廟에서 거두었다 하여도 근본에 보답報答하는 정성精誠은 마땅히 거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여 묘제墓祭가 생기게 되었고 이미 제사를 지내게 되자 여기에 분암墳庵(齋室)을 창건하게 되었으니 이는 천리天理나 인정상人情上으로 용납容納하여 말지 못할 바이다.
이로 말미암아 사대부의 문벌門閥이 저명著名한 가문에서 서로 선조先祖께 봉사奉祀하고 먼 조상을 추모하는 도리道理로서 권勸하여 반드시 구묘丘墓의 앞에 나아가 재실齋室을 짓기도 하고 혹은 선조가 수레를 타고 지나시던 터에 나아가 정자亭子를 세워서 경건敬虔하게 향사享祀하여 우모寓慕하기도 하며 아니면 허전한 듯 마치 그들의 정성精誠을 펴지 못한 듯하였으니 아! 아름다운 일이로다.
파릉巴陵(咸安)에 영모재永慕齋라는 재실齋室이 있으니 우리 집안의 선조先祖 되시는 둔옹처사遯翁處士 강공姜公이요 이름이 언성彦省인 분의 병사丙舍(齋室)이다. 그분의 선조는 진양晋陽에서 이곳으로 오신 은열공殷列公을 상조上祖로 삼으시고 수찬修撰(正六品官)이신 추호공秋湖公을 중조中祖로 삼으셨으니 공公의 고조高祖와 선친先親이시다. 이 같이 엄연하게 이 지역사회地域社會에 명망名望이 높으신 분이셨다.
처사공處士公께서는 벼슬을 대대로 이어온 옛 가문家門에서 출생하시어 명예名譽나 이익利益을 가까이하지 아니하셨고 드디어 진주晋州의 동쪽이요 함안咸安의 서쪽 되는 중간역中間域에서 은거隱居하셨는데 그 마을을 가덕리加德里라고 하였다.
문을 닫고서 책상에 기대시어 인의仁義 학설學說과 효우孝友의 정담政談으로서 그 뜻을 구하고 그 행실行實을 돈독敦篤히 하셨으며 때로는 방어산防禦山에 오르시어 동백桐栢의 의義를 노래하시기도 하시고 금호강錦湖江에 나가시어 동강桐江의 풍風을 사모思慕하기도 하셨으니 그분의 덕德이 족足히 세상을 구제救濟할 만 하였고 학문學問은 만족하게 사물事物을 성사成事할 수 있었는데도 아름다움을 감추시고 시행施行하지 아니하시면 서도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도 민망悶亡히 여기지 아니하셨으니 대개 그분의 살아계실 때의 덕德을 감추심과 아름다운 행적行蹟을 오히려 가可히 오늘날에 상상하여 보건대 他人들도 우러러 사모思慕하는 바이거늘 하물며 그분의 후손後孫된 자들에 있었으랴!
남기신 터에 재실齋室을 세웠으니 가히 갱장羹墻의 사모함을 볼 수 있으며 천동泉洞에 봉분封墳이 있으니 가히 갱장羹墻의 사모함을 볼 수 있다. 노송의 푸른 가지와 짙은 그늘이 기둥과 대들보를 가리고 덮고 있는 것들은 지하地下에 계시는 정결精潔하신 영혼靈魂이 기뻐하시며 마치 뜰 앞을 오르내리시는 듯하리라. 그렇다면 이 영모재永慕齋야 말로 심상尋常(보통)하게 잔치나 휴식처로 삼기 위하여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민 것이 아니고 선조先祖 영혼靈魂들의 추위와 더위를 가히 막을 만 하였다.
무릇 처사공處士公의 후손되는 분들이 밤낮으로 이 재실齋室에 와보면 어찌 즐거이 집과 당실堂室을 꾸민 것만으로 추원追遠하고 보본報本하는 성의誠意를 다하였다 하리요 모름지기 몸을 청결히 하여 행실을 닦으며 마음에 효우孝友를 지어서 선조님의 지행志行을 계술繼述하여 그 은덕隱德을 빛내고 키워간다면 이것이야 말로 능能히 길이 사모思慕하는 것이 되는 것이며 능히 그들의 세대世代가 영원하리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언영효사효사유칙言永孝思孝思維則(영원한 효사를 말함이여 효사만이 오직 법이 되도다.)”하였으니 처사공處士公을 두고 하는 말이로다. 또 그렇지 않았던가. “효자불궤영석이류孝子不匱永錫爾類(효자는 그 행실이 감추어지지 아니하니 길이 너와 같은 참신한 자손을 주리라)”하였으니 이는 능히 처사공處士公을 칭송稱誦하여 하신 말씀이 아니었던가 하겠다.
공公의 세세世世 자손子孫들이 가령 춘추로 제사祭祀를 모시는 예절을 삼가이 하고 달마다 화수회花樹會의 즐김을 다하는 것은 저절로 이 재실 안에서 상사常事로 행할 것이므로 여기에 구구하게 뜻을 붙여 설명하지 않노라
나에게 기문記文을 지어 줄 것을 청언請言한 사람은 그분의 후손인 경서慶瑞였다.
정사丁巳 은춘절 일족 후손 상필相弼 삼가 기록하고
                        일족 후손 석은錫殷 삼가 쓰다.







永慕齋原韻     영모재 처음 운
水曲山回洞壑幽 물이 굽이치고 산이 둘러있어 골짝 마을 조용한데
遯翁先祖隱斯區 둔옹遯翁 선조 이사해서 숨은 거처네.
漁樵耕讀須成樂 물고기 잡고 땔나무하며 농사짓고 독서하는 즐거움을 이루더니
富貴功名不欲求 재물 많고 귀하며 공을 세워 이름 내는 욕심 없더라.
持己良規能守愼 어진 본보기로 처신하니 능히 삼가며 지키고
治家彛訓遠宣猷 가정을 다스리는 떳떳한 가르침은 널리 모든 이에게 베풀었네.
孱孫肯構輸誠力 나약한 자손이 업을 이어 정성과 힘을 다하니
齊宿年年祀事休 제숙하는 해마다 제사 지내며 휴식을 할 수 있구나.
十世孫慶瑞謹稿 10세손 경서慶瑞 삼가 짓다.





永慕齋重建韻    영모재 중건 운
加里世墻吉運成  가덕마을에 대대로 살 곳인 복된 곳으로 옮겨 이루고
先齋重建向陽明  먼저 재실을 중건하니 밝은 양지을 향하 였네.
群山載月垂祥氣  무리지은 산들엔 달빛 가득 싣고 상스러운 기운 드리우니
萬壑舍風振玉聲  첩첩 골짝은 재실의 바람을 막고 아름다운 소리 떨치도다.
忠孝必承先祖德  충효는 반드시 이어가니 선조의 덕이고
詩書惟啓後孫情  시와 글로 생각을 열어가니 후손의 뜻이로구나.
肇基恩澤何時極  은택으로 토대를 닦으며 어느 때나 극진하니
升降昏朝益盡誠  혼탁한 조정에 오르내리며 정성을 다하여 이롭게 하네.
後孫鍊九謹稿    후손 연구鍊九 삼가 짓다.


출처 및 참고

함안누정록-함안문화원/대보사(201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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