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봉수대

천부인권 2020. 5. 7. 07:00

 

 

 

2020.5.5. 시락산에서 본 창포곶串의 망대望臺 위치

 

진전면 창포리 산8번지에 “봉수대烽燧臺 같은 흔적이 있다.”고 아는 분이 제보하여 창포곶串에 있는 그 장소로 갔다. 이곳은 개인 사유지라 주인에게 연락하고 방문을 하니 봉수대의 흔적이 있다는 곳 바로 아래까지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 했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35m, GPS고도계는 74m롤 표시하고 위도 35°04'37"N 경도 128°28'27"E를 표시한다.
창포곶串은 시락산時樂山이 진해만鎭海灣을 만나 고성군 당항포唐項浦로 갈 수 있는 입구에 요새要塞 같은 작은 만灣을 형성한 곶串부리 지역이다. 이 작은 만灣을 창포만昌浦灣이라 이름하고 지금부터 창포곶에서 발견한 창포망대昌浦望臺 이야기를 한다.
창포곶昌浦串은 진해만의 바다가 당항포로 깊숙이 이어진다는 것을 속일 만큼 고성군 외산리 쪽으로 휘어져 창포만昌浦灣을 형성하고 고성군 외산리의 곶부리가 창포만의 안쪽으로 들어와 두 육지의 거리가 300m도 되지 않는 지역이다. 지금은 이곳에 동진교를 건설하여 창원시와 고성군이 연결된 곳으로 바뀌었다. 이 창포만昌浦灣을 지나야만 외해外海인 진해만에서 당항포로 갈 수 있다. 이곳 창포만에서 동진교 아래 물목을 봉쇄하면 당항포로는 배가 들어갈 수 없고 나오기도 어렵다. 그 요충지에 창포망대昌浦望臺 터가 위치한다.

 

 

 

 

창포만昌浦灣의 창포곶串의 망대望臺 위치와 당항포 해전지가 있는 다음 지도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당항포에서는 두 번의 전투가 벌어지는데 1차 해전은 1592(선조 25)년 6월 5일부터 6일까지 이틀 동안 일어났고, 2차 해전은 갑오甲午(1594)년 3월 4일 하루 벌어져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승전을 이룬 곳이다. 『난중일기亂中日記』와 장계에는 그날의 이야기를 이처럼 전하고 있다.

 

初五日癸卯 朝發 到固城唐項浦 則倭大船一隻 如板屋船 船上樓閣巍巍 賊將坐其上 中船十二隻 小船二十隻 一時撞破 逢箭死者不知其數 斬倭將七級 餘倭下陸而走 然餘數甚少 軍聲大振
6월 초5일 [양력 7월 13일]<계묘><<해문>>
아침에 출항하여 고성땅 당항포에 이르니, 왜놈의 배 한 척 이 판옥선과 같이 큰데, 배 위에
누각이 높고 그 위에 적장이 앉아서, 중선 열두 척과 소선 스무 척(계 서른두 척)을 거느렸다. 한꺼번에 쳐서 깨뜨리니, 활을 맞은 자가 부지기수요,  왜장의 모가지도 일곱 급이나 베었다. 나머지 왜놈들은 뭍으로 내려가 즉시로 달아났다. 그래봐야 나머지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 군사의 기세가 크게 떨쳤다.

 

初六日甲辰 晴
探賊船 宿于同處​​
6월 초6일 [양력 7월 14일]<갑오> 맑다.
적선의 동정을 살피며, 거기서 그대로 잤다.

 

<<장계해문>>

初五日。朝霧四塞。至晩乃捲。欲討巨濟遁泊之賊。懸帆出海。而巨濟居向化金毛等七八人。同騎小艇。欣迎來說曰。唐浦被逐倭船。由巨濟移泊固城地唐項浦云。故促到同浦前洋。而南望鎭海城外數里許野中。甲兵千有餘騎立幟結陣。遣人探問。則咸安郡守柳崇仁。率兵一千一百騎。追賊到此云云。仍問唐項浦海口形勢。則遠可十餘里。廣可容舟。故先使數三戰船。往審地理。而賊若追逐。則佯退引出事。嚴飭以送。臣等舟師。潛形隱迹。以爲狙擊之計。而所送戰船。旋出海口。放神機報變促赴。留戰船四隻於浦口。使之伏兵後。促櫓以入。則兩邊山麓挾江二十餘里。其間地形。不甚狹窄。可與容戰之地。而諸船魚貫齊進。首尾連接。至召所江西岸。則黑質倭船大如板屋者九隻,中船四隻,小船十三隻。依岸到泊。其中最大一船。船頭別設三層板閣。丹靑粉壁。有若佛殿。前立靑盖。閣下垂黑染綃帳。帳面大畫白花紋。帳內倭人無數列立。又倭大船四隻。出自內浦。聚于一處。皆揷黑幡。而各幡白書南無妙法蓮花經七字。及見臣等兵威。亂放鐵丸。如霰如雹。諸船圍立。先使龜船突入。放天地字銃筒。貫徹大船。諸船迭相出入。銃筒箭丸。發如風雷。良久接戰。益振威武。臣之妄意以爲彼若勢窮。棄船登陸。恐未盡殲。而我當佯示退兵。解圍却陣。則彼必乘隙移舟。而左右尾擊。庶可盡殲事。傳令後。退開一面。則層閣之船。果由開路而出。黑染布帆。兩竹俱懸。他船翼挾層閣。中流促櫓。故諸船四面圍匝。挾擊猶亟。突擊將所騎龜船。又衝層閣之下。仰放銃筒。撞破其閣。諸船又以火箭射中其紗帳與布帆。則烈焰遽熾。閣上所坐倭將。中箭墜落。他倭船四隻。乘此蒼皇之隙。懸帆北走。臣與李億祺等所率諸將。分運接戰。又盡圍抱。許多舟中賊徒。或投水不暇。或攀緣岸下。或登山北走。戰士等持槍劍挾弓矢。各盡死力追捕。斬頭四十三級。倭船全數焚滅後。故留一船。以開歸路。日已曛黑。登陸之倭。未盡殲捕。乃與李億祺。乘昏還出海口。結陣經夜。

 

5일은 아침 안개가 사방에 쫙 끼었다가 해질 무렵에야 걷히기에 거제로 도망쳐서 숨은 왜적을 토멸하려고 돛을 올려 바다로 나가는데 거제에 사는 귀화인 김모 등 7~8명이 조그마한 배에 함께 타고 매우 기뻐하면서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포에서 쫓긴 왜적선이 거제를 지나고 고성땅 당항포로 옮겨 대었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당항포 앞 바다에 이르러 남쪽으로 진해를 바라보니 성城 바깥 몇 리쯤 되는 들판에 무장한 군사 1,000여명이 깃발을 세우고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탐해 봤더니 함안 군수 유숭인이 기병 1,100명을 거느리고 왜적을 추격하여 이곳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곧 당항포 바다 어귀의 형세를 물어보니 ‘거리는 10여리나 되고 넓어서 배가 들어갈만 하다.’고 하기에 먼저 전선 3척 정도로 하여금,
『지리가 얼마나 편리한지를 조사해 오되 만약 왜선이 추격해 오면 짐짓 물러나 왜적을 끌어내도록 하라.』라고 엄하게 지시하여 보내고 신들의 수군은 몰래 숨어 있다가 저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자 포구로 들여보냈던 전선이 바다 어귀로 돌아 나오면서 신기전神機箭을 쏘아 변고를 알리며 ‘빨리 들어오라.’고 하므로 전선 4척을 바다 어귀에 머물러 복병伏兵하도록 지시한 뒤에 노를 바삐 저어 들어갔습니다.
양편 산기슭이 강을 끼고 20여리나 되며, 그 사이의 지형은 그리 좁지 않아 싸울만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전선이 물고기를 꼬챙이에 꿴 것처럼 일제히 나아가면서 이물을 고물에 줄지어서 소소강召所江 서쪽 기슭에 이르자 검정 칠을 한 왜적선은 크기가 판옥선과 같은 것이 9척과 중선 4척, 소선 13척(모두 26척)이 언덕을 따라 대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배 1척은 뱃머리에 따로 3층 판자집을 만들었고 벽에는 단청을 칠했는데 마치 불전과 같았으며 앞에는 푸른 일산을 세우고 누각 아래에는 검게 물들인 비단 휘장을 드리웠고 그 휘장에는 흰 꽃무늬를 크게 그렸는데 휘장 안에 왜놈들이 수없이 벌려서 있었습니다. 또 왜대선 4척이 포구 안쪽에서 나오더니 한곳에 모여서 모두 검은 깃발을 꽂고서 깃발마다 흰 글씨로 『남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이라는 일곱자가 씌어 있었습니다.
우리 군사의 위세를 본 왜적은 철환을 마구 쏘는데 마치 싸라기눈 같기도 하고 우박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러 전선이 에워싸고서는 먼저 거북선을 돌입케 하여 천자·지자총통을 쏘아 왜적의 대선을 꿰뚫게 하고 여러 전선이 번갈아 서로 드나들면서 총통에 대전과 철환을 바람같이 우레처럼 쏘았습니다. 이렇게 한참 동안 싸웠더니 우리의 위무威武를 더욱 떨치었습니다.
그런데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 저 왜적들이 만약 형세가 너무 몰리게 되면 배를 버리고 상륙하여 모조리 섬멸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우리들이 짐짓 군사를 퇴각하는 모습을 보이며, 에워싼 것을 풀고 진형을 해산하면 저들이 반드시 그 틈을 타서 배를 옮길 것이니 그때 왼쪽 오른쪽 뒤쪽에서 공격하면 거의 섬멸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령한 뒤에 물러나 한쪽을 터주자 층각선이 아니나 다를까 터놓은 길을 따라 나오는데 검은색 돛을 둘씩이나 달았으며 다른 배들은 날개처럼 벌려 층각선을 끼고서 노를 바삐 저어 바다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여러 전선은 4면으로 에워싸면서 재빠르게 협격하고 돌격장이 탄 거북선이 또 층각선 아래로 돌파하면서 총통을 치쏘아 층각선을 마구 부딪쳐 깨뜨리고 여러 전선들도 화전으로 그 비단 장막과 돛베를 쏘아 맞혔습니다.
그러자 맹렬한 불길이 일어나고 층각 위에 앉았던 왜장은 화살에 맞아 떨어졌습니다. 다른 왜선 4척은 이 창황한 틈을 타서 돛을 올려 북쪽으로 달아나다가 신과 이억기 등이 거느린 여러 장수들이 패를 갈라서 싸우면서 또 싹 포위하자 왜적선 가운데 그 많던 왜적의 무리들은 물에 뛰어들기 바쁘고 혹은 기슭을 타고 올라가며 혹은 산으로 올라 북쪽으로 도망하였습니다.
군사들은 창·양날칼을 잡고, 활·화살을 가지고 저마다 죽을 힘을 다해서 추격하여 머리 43급을 베었으며 왜적선은 몽땅 불태워 버린 뒤에 일부러 배 1척을 남겨두고 왜적들의 돌아갈 길을 터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해가 저물어서 어둑어둑하여 육상에 오른 왜적을 다 사로잡지 못하고 이억기와 함께 어둠을 틈타서 그 바다 어귀로 나와 진을 치고 밤을 지냈습니다.

 

 

 

2020.5.5. 창포망대 석축 모습

 

<<장계해문>>

初六日曉頭。防踏僉使李純信。以唐項浦登山之賊。必乘所留之船。乘曉潛出。率其統船。移進海口伺其出。而全船捕獲飛報內。當日曉頭。移到唐項浦外口。俄有一倭船。果自海口而出。僉使不意突擊。則一船所騎幾至百有餘名。而我船先放地,玄字銃筒。一邊長片箭,鐵丸,蒺藜砲大發火等。連續射投。賊倭等奔遑罔措。退遁設計。以要鉤金。牽出中洋。半餘投水沈死。其中倭將。約年二十四五歲。容貌健偉。服餙華麗。杖劍獨立。與其餘黨八名。指揮拒戰。終不畏忌。故僉使極力射中。杖劍者。逢箭十餘度後。失聲墜水。卽令斬頭。他倭八名。軍官金成玉等。同力射斬。當日辰時焚船時。慶尙右水使元均,南海縣令奇孝謹等。追到同處。沈死之倭。廵覓拯出斬頭。多至五十餘級。倭船之頭。別作凉房。房內帳幕。皆極侈麗。傍有小樻。內盛文書。取見則倭人三千四十餘名分軍記。而各其列名之下。着名塗血。必是歃血同盟之書。件記六軸及甲胄,槍劍,弓弦,銃筒,豹皮,鞍甲等物上使云。
故臣親審其分軍件記。則着名血染之迹。果如所報之辭。其爲兇狀。不可形言。倭頭九級內。倭將頭。李純信別標上使。倭人旗幟。染色相殊。前日玉浦則赤旗。今日泗川則白旗。唐浦則黃旗。唐項浦則黑旗。原其所自。必分其衛部而然矣。歃血盟章。又致如是。曾懷叛侮之心。備設軍兵之狀。益加想焉。同日。雨下雲瞑。海程莫辨。移屯唐項浦前洋。休撫戰士。夕向固城地亇乙于塲洋中經夜。


초6일 꼭두새벽에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이 “당항포에서 산으로 올라간 적들이 필시 남겨둔 배를 타고 새벽녘에 몰래 나올 것이다.”고 하여, 그가 거느린 전선을 이끌고 바다 어귀로 나가 적들이 나오는 것을 모조리 잡아 놓고서 급히 보고했다.
“오늘 새벽에 당항포 바다 어귀에 이르러 잠깐 있으려니까, 과연 왜선 한 척이 바다 어귀에서 나오므로 첨사가 불시에 돌격하였다. 한 척에 타고 있던 왜적들은 거의 백여 명이었는데, 우리 편 배에서 먼저 지자ㆍ현자총통을 쏘고, 또 장전ㆍ편전ㆍ철환ㆍ질려포ㆍ대발화 등을 잇달아 쏘고 던질 적에 왜적들은 마음이 급한지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지둥 도망하려 하였으므로, 요구금으로써 바다 가운데로 끌어내자 반이나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그중에서도 스물너댓 되어 보이는 왜장은 용모가 훤출하며, 화려한 군복을 입은 채 칼을 집고 홀로 서서 나머지 부하 여덟명과 함께 지휘하고 항전하면서 끝내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첨사가 그 장수를 맞히자 화살 여나믄 대를 맞고서야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몹시 울며 물에 떨어졌다. 곧 목을 베게 하고, 다른 여덟 명은 군관 김성옥 등이 합력하여 쏘고 목을 베었다.
이날 오전 여덟 시에 적선을 불사르자, 경상우수사 원균과 남해현령 기효근 등은 그곳으로 뒤쫓아 와서 물에 빠져 죽은 왜적을 모두 찾아내어 목을 벤 것이 50여 급이 넘거니와, 왜선의 맨 앞쪽에는 별도로 햇볕을 가리는 차양 달린 집을 만들었는데, 방안의 장막이 모두 매우 화려하였으며, 옆에 있는 작은 궤 안에는 문서를 가득 넣어 두었기에 집어 보니 왜놈 3,040 여 명의 분군기였는데, 각기 이름 아래에 서명하고 피를 발라둔 것이 필시 삽혈하여 서로 맹서한 문서인 듯했다. 그 분군기 여섯 축을 비롯하여 갑옷ㆍ투구ㆍ창ㆍ칼ㆍ활ㆍ총통, 범 가죽으로 된 말안장 등의 물건을 올려보낸다“고 하였다.
그 분군기를 살펴보니, 서명하고 피를 바른 흔적이 과연 보고된 바와 같았다. 그들의 흉포한 꼴을 형언할 수 없다. 왜의 머리 아홉 급 중에서 왜장의 머리는 이순신 별도로 표하여 올려보냈다.
그런데 왜놈들의 깃발에 물들인 것이 서로 다르다. 전일 옥포는 붉은 깃발이었고, 이번의 사천은 흰 깃발이고, 당포는 누런 깃발이고, 당항포는 검은 깃발인 바 그 까닭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들의 부대를 분간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을 뿐 아니라, 삽혈하여 맹서한 글이 또 이와 일치된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우리를 깔보고 침범하려는 마음을 품고서 군대를 준비한 상황이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구름이 끼어 바닷길을 분간하기 어려워서 당항포 앞바다로 옮겨 군사들을 위로하고, 저녁 무렵에 고성 땅 마루장(고성군 동해면)으로 옮겨서 밤을 지냈다.

 

 

 

 

2020.5.5. 창포망대 석축 모습

 

初四日壬午 晴 到鎭海前洋 倭船六隻 追捕焚滅 楮島 二隻焚滅 召所江 十四隻入泊云 故助防將與元水使進討事傳令 固城境阿自音浦 結陣經夜
3월 초4일 [양력 4월 23일]<임오> 맑다.<<해문>>
밤 두 시쯤에 출항했다. 진해 앞바다에 이르러 왜선 여섯 척을 뒤쫓아 잡아 불태워 버렸고, 돝섬(저도: 창원시 구산면 저도. 용두산 해발 203m)에서 두 척을 불태워 버렸다. 또 소소강 에 열네 척이 들어왔다고 하므로, 조방장과 경상우수사 원균에게나가 토벌하도록 전령했다. 고성땅 아잠포(아자음포;고성군 동해면 당거리)에서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장계해문>>

당항포 승첩을 아룁니다. 唐項浦破倭兵狀

兼三道水軍統制使行全羅左道水軍節度使臣李舜臣 云云 謹 啓爲焚滅事。
巨濟。熊川之賊。數多作綜。鎭海。固城等處。恣意出入。焚蕩閭家。殺掠人物是如爲白去乙。乘其往來。相勢勦捕次。以各處通望峯頭望將定送。瞭察賊船登時馳告亦爲白有如乎。
今三月初三日。未時到 付固城境碧方望將諸漢國馳報內。

겸 삼도수군통제사 행 전나좌도수군절도사 신 이순신은 삼가 왜적선을 불태워 무찌른 일을 아룁니다.
거제 및 웅천의 왜적들이 많이 떼를 지어 진해 및 고성 등지를 함부로 드나들면서 여염집을 불사르고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한다고 하므로 그들이 오가는 기회를 이용하여 형세를 보아 쳐서 사로잡으려고 3도의 여러 장수들에게 명령하여 ‘배를 정돈하고 무기를 엄히 갖추고 한편으로 각처 산봉우리 꼭대기를 다니면서 보도록 망장望將을 파견하여 멀리 적선을 살피고 즉시 달려와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이 달 3월 3일 미시未時(13시~15시)에 도착한 고성땅 벽방산의 망장望將 제한국諸漢國 등의 급보에

 

當日平明。倭大中船幷三十一隻。永登浦始出。二十一隻段固城境唐項浦。七隻段鎭海境吾里梁。三隻段猪島爲等如指向。是如馳報是白乎等用良。臣卽發傳令于慶尙右水使元均。全羅右水使李億祺等處。更嚴申約。一邊巡邊使李薲處。依前約束。領軍馬進。勦下陸之賊亦移文後。同日戌時。三道諸將。無遺率領。閑山洋中發船。乘暗潛行。二更。量巨濟內面紙島佯中經夜。

『당일(3일) 날이 밝을 무렵에 왜적의 대선 10척, 중선 14척 소선 7척(모두 31척)이 영등포에서 나오다가 21척은 고성땅 당항포唐項浦로 7척은 진해땅 오리량吾里梁에, 3척은 저도로 모두 향해 갔습니다.』고 한 내용이 있습니다.
신은 즉시 경상 우수사 원균元均과 전라 우수사 이억기 등에게 전령하여 다시금 엄하게 약속하고 한편으로는 순찰사 이빈李薲에게도 전날에 이미 약속한 대로 ‘육군을 거느리고 빨리 달려와서 육지에 내린 왜적들을 모조리 쳐서 사로잡아라.’고 통고하였습니다.
그날 술시戌時(21시~23시)에 3도의 여러 장수들을 남김없이 거느리고 한산閑山 바다 가운데에서 출항하여 어둠을 타고 몰래 항해하여 이경二更(21~23시)쯤 거제의 내면內面 지도紙島 앞바다 가운데에서 밤을 지냈습니다.

 

初四日曉頭。留●(賊)戰船二十隻於見乃梁。以備不虞。又抄三道輕銳船三十隻。全羅右(左)道 左斥候將蛇渡僉使金浣 一領將盧天紀 二領將曺將宇 左別都將前僉使裵慶男 判官李渫 左衛左部將鹿島萬戶宋汝悰 步駐統將崔道傳 右斥候將呂島萬戶金仁英 一領將尹鵬 龜船突擊將主簿李彦良 全羅右道 鷹揚別都將虞候李廷忠 左鷹揚將於蘭萬戶鄭聃壽 右鷹揚將南桃萬戶姜應彪 助戰統將裵胤 前部將海南縣監魏大器 中部將珍島郡守金萬壽 左部將金甲萬戶李廷彪 統將郭好信 右衛中部將康津縣監柳瀣 左部將木浦萬戶田希光 右部將主簿金南俊 慶尙右道 彌助僉使金勝龍 左遊擊將南海縣監奇孝謹 右突擊將蛇梁萬戶李汝恬 左斥候將固城縣令趙疑道 先鋒將泗川縣監奇直男 右斥候將熊川縣監李雲龍 左突擊將平山浦萬戶金軸 遊擊將河東縣監成天裕 左先鋒將所非浦權官李英男 中衛右部將唐浦萬戶河宗海等三十一將抄擇 舟師助防將。魚泳潭定將。同唐項浦。吾里梁等賊船駐泊處。潛師馳送爲日遣。

4일에는 꼭두새벽에 전선 20척을 견내량에 머물게 두어 불의의 사태에 대비하게 하였습니다. 또 3도의 가볍고 빠른 배를 가려내어 전라좌도에서는 좌척후장인 사도첨사 김완金浣, 1장령 노천기盧天紀, 이장령 조장우曺將宇, 좌별도장이며 전첨사 배경남裵慶男·판관 이설李渫,  좌위좌부장 녹도만호 송여종宋汝悰, 보주통장 최도전崔道傳, 우척후장 여도만호 김인영金仁英, 1령장 윤붕尹鵬, 거북선돌격대장 주부 이언량李彦良
전라우도에서는 응양별도장인 우후 이정충李廷忠, 좌응양장 어란만호 정담수鄭聃壽, 우응양장 남도만호 강응표姜應彪, 조전통장 배윤裵胤, 전부장 해남현감 위대기魏大器, 중부장 진도군수 김만수金萬壽, 좌부장 금갑만호 이정표李廷彪, 통장 곽호신郭好信, 우위중부장 강진현감 류해柳瀣, 좌부장 목포만호 전희광田希光, 우부장 주부 김남준金南俊 경상우도 미조첨사 김승용金勝龍, 좌유격장 남해현감 기효근奇孝謹, 우돌격장 사량만호 이여념李汝恬, 좌척후장 고성현령 조의도趙疑道, 선봉장 사천현감 기직남奇直男, 우척후장 웅천현감 이운룡李雲龍, 좌돌격장 평산포만호 김축金軸, 유격장 하동현감 성천유成天裕, 좌선봉 장소비포 권관權官 이영남李英男, 중위우부장 당포만호 하종해河宗海 등 31명의 장수를 선발하고 수군 조방장 어영담을 인솔 장수로 삼아 위의 당항포와 오리량 등지의 왜적선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몰래 급히 보내었습니다.

 

臣與李億祺。元均等段。統率大軍。永登場門賊陣前洋是白在。甑島洋中。鶴翼列陳。橫截一海。前示兵威。後遏賊路次。倭船十隻。出自鎭海船滄。緣岸行舟爲白去乙。助防將魚泳潭所率諸將等。一時突進。左右挾攻。六隻段鎭海境邑前浦 二隻段古城境於善浦 二隻段鎭海柴仇叱浦爲等如 棄船登陸 竝只無遺 鹿島萬戶宋汝悰段。倭船被擄人固城正兵沈居元。鎭海官婢孔今。咸安良女南月等奪還。又被擄二名段。賊倭斬頭棄去爲白有齊。
신臣은 이억기 및 원균과 함께 대군을 거느리고 영등포와 장문포 적진 앞바다의 시루섬(甑島:창원시 구산면)해상에서 학익진을 형성하여 한바다를 가로 끊어서 앞에서는 군사의 위세를 보이고 뒤로는 적의 퇴로를 막았습니다.
그러자 왜선 열 척이 진해 선창(창원시 진동면 진동리)에서 나와 연안에 바싹 붙어서 항해하므로 조방장 어영담이 거느린 여러 장수들이 한꺼번에 돌진하여 좌우로 협공하자, 여섯 척은 진해땅 읍전포(창원시 진동면 고현리)에서, 두 척은 고성땅 어선포(於善浦 통영시 용남면)¹⁾에서, 두 척은 진해 땅 시굿포(柴仇叱浦 창원시 구산면)에서 모두 배를 버린 채 뭍으로 올라가므로 모두 남김없이 쳐부수고 불태워 버렸습니다. 녹도만호 송여종은 왜선에 사로잡혀 있던 고성 정병 심거원과 진해 관비 예금과 함안 양가집 딸 남월 등을 빼앗았다. 그리고 사로잡혔던 두 사람은 왜적들이 머리를 베어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唐項浦入泊倭船 大中小二幷十一隻。望見煙焰。莫不摧心。自知勢窮。下陸結陣是如爲白去乙。巡邊使李薲處。更良催促移文爲白遣。又令魚泳潭。領其所率諸將。直向同處次。適音汐水已退。日且奄暮。進擊不得 同唐項浦江口把截經夜。
당항포에 들어와 정박한 왜선은 대ㆍ중ㆍ소선을 아울러 21척인데, 불타는 연기를 바라보고는 모두들 기운이 꺾이어서 스스로 세력이 궁함을 알고 상륙하여 진을 치는 것이었으므로, 순변사 이빈에게 다시금 육군의 지원을 독촉하는 공문을 보내고, 어영담에게 명령하여 인솔한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바로 그곳으로 향하게 하였으나, 마침 저녁 조수가 이미 나가고 날조차 어두워서 진격하지 못한 채 당항포 포구를 가로막고 밤을 지냈습니다.

 

【주해】

고성땅 어선포(於善浦 통영시 용남면)¹⁾ : 어선포는 통영시 용남면이 아니라 '고성군 회화면 어신리'로 수정해야 할 부분

 

 

 

 

2020.5.5. 창포망대 석축 모습

 

지인이 말한 창포곶昌浦串의 현장을 방문하니 1m 높이의 돌로 축대를 쌓아 산등성의 윗부분을 편평하게 두었는데 다른 곳을 살펴봐도 봉수대 연조의 흔적은 없었다. 산이 서북방향으로 있고 입구쪽에는 돌축대가 무너진 모습이고 바다쪽으로는 돌축대는 없었으며 편평하게 된 무덤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마도 돌축대는 망대를 세우기 위해 평탄작업을 한 것으로 보아 “창포망대昌浦望臺”라 이름한다.
서북 방향으로 놓은 돌축대는 직사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위에 창포망대昌浦望臺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20.5.5. 창포망대 석축 모습

 

앞으로 이 창포망대昌浦望臺는 이순신 장군의 전투지 선정에 대한 많은 지혜를 줄 것으로 보이며 긴 만의 안쪽에서 퇴로가 유일한 곳에서의 경계태세에 대해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2020.5.5. 창포망대를 고성군 외산리 동진교 방향에서 본 모습

 

 

 

2020.5.5. 고성 외산리 방향에서 본 창포망대와 양도 모습

 

 

翌日是日在初五日曉頭。臣及李億祺段結陣大洋。以應外變。魚泳潭段領諸將。直入同浦爲白有如乎。同日未時到付魚泳潭馳報內。賊倭盡爲逃遁。倭船二十一隻良中。蓋瓦及王竹滿載爲有去乙。竝只撞破焚滅爲乎所。馳報及全羅右水使。李億祺段。置其諸將所報據。亦爲一樣馳報是白置有亦。假島殘孼。莫敢抗戰。棄船宵遁爲白有臥乎所。當此之時。水陸相應。一時合攻。則庶可殲滅。而水陸駐兵。相距隔遠。未易馳通。使籠中之賊。未●(易)得全捕。極爲痛憤爲白在果。固城。鎭海。橫行之賊。自是以後。度有顧忌之慮。未能恣意出入是白齊。同舟師一軍。全數合勢。充滿大洋。炮聲震天。東西變陣。佯
示掩擊之狀。則永登。場門。薺浦。熊川。安骨浦。加德。天城等地。雄據之賊。恐其直擣。伏兵假幕乙。盡數自焚。畏縮窟穴。頓絶形影有白如乎。初六日。固城境阿自音浦發船。從風懸帆。首尾相接。巨濟邑前胸島前洋直向次。南海縣令。奇孝謹馳報內。當日午時量。倭小船一隻。固城邊下陸。招呼我船爲去乙。觀其形狀。則或着紅衣。或着靑衣。唐人二名。倭人八名是乎所。馳報及唐人所持牌文。竝以輸送爲白有去乙。臣看審則 天朝都司府譚爲宣諭事。照得本府齎捧 皇帝聖旨。前來宣諭。日本諸將莫不傾心歸化。忠順
效誠。昨已具表奏請。聽候 明旨冊封。卽■大事垂成。日本各將俱欲捲甲息兵。盡歸本國。爾 朝鮮亦免兵戈之擾。獲昇平之樂。豈非兩國之利益乎。近據哨報云。爾朝鮮兵船。近駐日本之營。且將伊採柴之人殺死。船隻燒毁。日本諸將俱要出兵。與爾相殺。本府與行長將軍。再三禁止。故不發兵。擬合遣牌禁諭。爲此牌仰 朝鮮各官知悉。爾各兵船速回本處地方。毋得近住日本營寨。攪擾生事。以起釁端。若爾等止來斫取竹木。幷無他意。斫完速回。若執迷不省。駐箚于此。仍復追殺零倭。奪取船隻。本府卽具呈
經略宋總督軍門。顧提督李摠兵劉及移文于爾 國王。嚴行査究。各官軍召禍起釁之罪。莫可逭矣。爾朝鮮各官。俱通文達理。暗曉時務者。故本府讀日曉諭。牌到卽具文回報。須至牌者。右牌仰 朝鮮各陪臣。準此是如施行牌文是白去乙。唐兵二人招致。問其所由。則前年十一月分。都司府譚老爺等。到熊川至今仍留。以待 天朝許和之命爲如乎。近日倭人等。恐劫舟師之威。喪心落膽。都司老爺前百般哀乞。牌文成送是如爲白臥乎所。黠詐倭奴。百生奸計。與同處天兵。自作牌文。乞寄唐人判然爲白沙餘良。實可禁斬倭奴。則經略。提督。摠兵府。尙無分付之令爲白乎。
所。萬無爲白在果。同牌文乙。 唐兵二人。業已齎來。南海縣令奇孝謹。成公事一時輸送爲白有去等。拒而不受。亦似未穩。叱分不喩。初六舟師未及畢至。兵勢似爲孤弱乙仍于。牌文回答成給。佯不停止之意爲白遣。今三月初七日。還到閑山陣中。更探賊情。乘機進討計料爲白齊。同本牌文段。●(大)天朝以監封上送。其回答曰。朝鮮陪臣等。謹答呈于 天朝宣諭都司大人前。倭人自開釁端。連兵渡海。殺我無辜生靈。又犯京都。行兇作惡。無所紀極。一國臣民。痛入骨髓。誓不與此賊共戴一天。各道舟艦。無數整理。處處屯駐。東西策應。謀與陸地神將等。水陸合攻。使殘兇餘孼。隻櫓不返。擬雪
國家之讐怨。本月初三日。領先鋒船二百餘隻。將欲直入巨濟。蕩滅巢穴。次次殲剿。俾無遺種。而倭船三十餘隻。闌入于固城。鎭海之境。焚蕩閭家。殺戮遺民。又多擄去。輸瓦斫竹。滿載其船。原其情狀。尤極痛憤。撞破其船隻。追逐其兇徒。馳報于舟師都帥府。領大軍合勢。直擣之際。都司大人宣諭牌文。不意到陣。捧讀再三。諄諄懇懇。極矣盡矣。但牌文曰。日本諸將。莫不傾心歸化。俱欲捲甲息兵。盡歸本國。爾各兵船。速回本處地方。毋得近駐日本營寨。以起釁端云。倭人屯據巨濟。熊川。金海。東萊等地。是皆我土。而謂我近日本之營寨云者。何也。謂我速
回本處云。本處地方。亦未知在何所耶。惹起釁端者。非我也。倭也。日本之人。變詐萬端。自古未聞守信之義也。兇彼之徒。尙不稔惡。退據沿海。經年不退。豕突諸處。劫掠人物。有倍前日。捲甲渡海之言。果安在哉。今之講和。實涉詐僞。然大人之敎。不敢違越。姑寬程限。馳啓
國王。伏惟大人。通曉此意。俾知逆順之道。千萬幸甚。臣及元均。李億祺同狀。着名成送爲白有在果。同譚都司稱號之人。某月某日間。熊川下來與否。都元帥權慄處。探問回答。亦移牒爲白有齊。上項唐兵一時出來爲白有在。我國被擄人。尙州接私奴希順。亦能解倭語。兼通事出來爲白有去乙。唐兵茂火。同希
順乙不可還率去事。擧理開諭爲白乎矣。持搖未決。又爲開說曰。乞降來此。則我國人乙。豈可還率去乎云。則唐兵辭塞不答。因以棄歸爲白良去乙。賊中形勢及唐兵出來犯因乙。竝以推問招內。尙州西門外居人。以前年四月分。京城下來。賊倭處被擄到釜山之後。倭奴等晉州陷城。還到釜山。同年七月分。唐兵十五名。一時移到熊川。同處賊將。默甘屯陣中。至今留在爲有在果。又於唐兵三十餘名。去十一月分追到爲有齊。節唐兵持牌文出來事段。我國舟師蔽海齊進。賊將卽默甘。恐其直擣。懇乞于唐將前。成文出送時。倭將亦矣身茂火。汝往 朝鮮陣中說導曰。日本之人。不欲與
戰。而 朝鮮何以出戰乎云云事。言送爲去乙。出來爲有齊。熊川之賊三陣。以每陣或千餘名。或八九百名。而病斃者數多。逃還本土者亦多。船隻段。三陣幷所見三百餘隻。將帥段。一陣則卽默甘屯。一陣則沙古汝文屯。一陣則阿里萬屯是齊。前年十一月分。年老唐將一員。到熊川仍留。率倭三名。持書契。發向中原乙仍于。同倭人回還卽時。盡還本土云云爲齊。賊倭日役段。或鐵丸打造。或築城造家。軍糧段。今月初生中船六隻良中。滿載出來。新倭或二十名。或三十名載來。他餘事段。迷劣人以的知不得爲臥乎所。招辭是●置有亦。上項奴希順。亦爲賊被擄。久留賊中。巧黠情謀乙。無不詳知爲白乎矣。
反覆窮問。諱不直告。思還賊中。露於言色。嚴刑機物。備設其前。則大略納招內。亦多修飾之狀爲白臥乎所。必于下賊之徒是白良置。旣還我土。少無仍留之計。其叛 國之罪。不可頃刻待時是白乎矣。慮有更問之端。興陽縣移囚。以待 朝廷命令爲白臥乎所。大朝以一樣馳啓爲白臥乎事。
 萬曆二十二年三月初十日統制使臣李。

 

 

출처 및 참조
완역 난중일기-해군사관학교/해군인쇄처(1994.8.31.)

충무공이순신전집 3-최두환/도서출판 우석(1999.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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