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0. 6. 24. 06:41

2020.6.23. 함안 칠원읍 달전동 진주강씨 영모재永慕齋 전경


칠원읍 유원리 1090-1(유원길 583-9)에는 진주강씨晉州姜氏 박사공파博士公派로 좌랑佐郞의 벼슬을 한 매곡梅谷 철경哲慶의 후손이 설매곡雪梅谷에 있는 묘의 재실를 이곳에 지어 추모하게 된 것이 영모재永慕齋이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87m를 알리고 「위도35°17'04"N 경도128°29'44"E」이라 표시한다.
대문의 편액은 귀후문歸厚門이라 하고 재실의 이름을 영모재永慕齋라 편액했다. 기둥과 문설주에는 주련을 달았고, 대청의 문미門楣에는 2기의 영모재기永慕齋記와 영모재상량문永慕齋上樑文이 걸렸으며 후손 대갑大甲이 쓴 재성지감齋成志感의 시詩도 걸려있다.

 

2020.6.23. 함안 칠원읍 달전동 진주강씨 귀후문歸厚門 편액
2020.6.23. 함안 칠원읍 달전동 진주강씨 영모재永慕齋 본재 모습
2020.6.23. 함안 칠원읍 달전동 진주강씨 영모재永慕齋 편액
진주강씨 영모재 주련

[해문-전문]

遙望先塋建此堂 멀리 선영이 보이는 곳에 이 집을 지으니
可爲子孫齋宿場 자손들이 재계하고 묵는 장소로 적당하네
設會迎賓儀秩秩 모임 열어 손님 맞으니 의절이 정연하고
誦詩講禮樂陽陽 시를 외고 예를 강론하니 즐거움이 양양陽陽¹⁾하네
庶幾蘋藻薦誠所 바라건대 정성 담아 제수를 올리노니
精靈宛若降洋洋 정령께서는 완연히 양양洋洋²⁾하게 강림하소서

 

【주석】
양양陽陽¹⁾ : 기분이 좋은 모양.
양양洋洋²⁾ : 성대한 모양.

 

영모재기 永慕齋記

永慕齋記
慕之於人大矣 慕莫切於慕 其祖先本吾之所 自生也祖先遠矣 而慕之將無窮 可不謂之永乎 詩云永言孝思孝思維 則其斯之謂 歟漆原之達田村姜氏居之 其先晋陽故族御史公師瞻之後 有府院君昌貴文敬公君寶 恭穆公㖈幷著奕葉至 通亭公淮伯 山海曺先生所詠政堂梅者是也 自通亭七傳 而有梅谷諱哲慶擢第官至 佐郞蔚有名行 佐郞公五世孫柱翊號茂隱 始自晋移卜于漆 而其弟柱甲及從叔 與溥正溥並從 與偕焉今且六七世于玆矣 而後承若不振作重因災燹 迭經先跡幾盡蕩佚諺傳移鄕 則賤殊可憫也間者 茂隱之后大喆 與柱甲之后大瓚 正溥之后景秀詢議門族 以爲佐郞公之墓 舊在晋北雪梅谷 而迄無齋閣由 其窮約致然 而現居達田便成鄕里姑可即此營眞一舍 以寓追慕之誠因爲識別聿胥之故是 或一道於是相與鳩財僝功旣年 而成名其齋曰永慕 大瓚景秀二君來請余記 其顚委禮不云乎不忘 其本首邱仁也 若姜氏之流落世久猶能追繹緖 而篤念邱園如是是可謂慕之得 其道者矣此以逞 其將慕之愈永 而世厥維則則所謂民德之歸厚者 亦不可外是乃復 其門曰歸厚
歲辛丑仲春下浣
義城 金榥記

 

영모재기 永慕齋記
사모思慕함이 사람에게 있어 막중하거늘 하물며 사모함이 그 조선祖先을 사모함 보다 더 간절함이 없음은 나의 자출自出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조선祖先이 멀다하지마는 사모함이 무궁하니 어찌 멀다아니할까. 시전詩傳에 이르기를 언제나 효도孝道할 찌라.
효도孝道는 선조를 본 받음이라 함은 이를 일컫는지라 칠원漆原 달전達田마을에 강씨姜氏가 사는데 그 선조는 진양晋陽의 옛 족벌族閥로 어사공御史公 사첨師瞻의 후에 부원군府院君 창귀昌貴와 문경공文敬公 군보君寶, 공목공恭穆公 기耆에서 분명하게 큰 갈래로 이루어졌다. 통정공通亭公 회백淮伯에 이르러 산해山海 조선생曺先生은 이른바 정당政堂의 매화梅花라 했다. 통정通亭의 7세에 전하여 매곡梅谷 이름은 철경哲慶이 급제로서 좌랑佐郞에 올라 명행名行이 높았다. 좌랑공佐郞公의 5세손 주익柱翊은 호號가 무은茂隱인데 진양에서 칠원으로 이거하였고 그 아우 주갑柱甲과 그 종숙從叔 여부與溥 정부正溥가 같이 와서 6~7세에 이르렀건만 후손이 번영치 못할 뿐 병선兵燹도 많이 지나 질적迭跡을 유실하였으니 민망할 일이이라 무은茂隱의 후손 대철大喆과 주갑柱甲의 후손 대찬大瓚과 정부正溥의 후손 경수景秀가 의론議論하여 좌랑공佐郞公의 묘가 진북晋北 설매곡雪梅谷에 있는데 아직 묘각墓閣이 없음은 빈약貧約한 소치인데 현재現在 달전達田에 우리가 사는 곳에 재실을 지어 추모함도 옳지 않겠나 하고 돈을 모으고 재목을 구해 1년 만에 준공하고 재호齋號를 영모永慕라 하고 대찬大瓚 경수景秀 두 명이 나에게 기문記文을 청請하니 예禮에 이른바 그 근본을 불망不忘함이 인仁이라 하였으니 강씨姜氏는 타향他鄕에 전거轉居한지 오래 되었건만 선조先祖의 독념篤念함이 이러하니 이로부터 더욱 사모하여 선조의 유덕을 본받으면 이른바 민덕民德의 귀후歸厚가 이에 더함이 있으리오. 이에 그 문을 귀후歸厚라 하노라.
신축년 음력 2월 늦은 날
의성 김황金榥 기록하다.

 

 

永慕齋上樑文

隨所居而起慕何必衣履之攸蔵 費積營而構堂聿硯洞府之改觀 是可曰克念乃祖 亦足爲垂裕後昆 粤惟梅谷堂姜公 晋山華冑 代達人 捷巍科而場名早登雲路 謝流俗而退卧晩愛林樊 惟彼堂斧之封遠在廣石熊谷 其事行之懿著邑史家桑 睠玆武陵之達田 實是雲孫之居里 傷貧連世縱之人 安土守常頗孝 文之蔚彬 友之敦睦 寓慕無所幾經雲仍之咨嗟 遂事有時何論世道之嬗變 爰相一區爽塏 迺建數間齋宮 大壯成艱哉累世攸紀 同人協力居然不日告功 凉軒燠室各得其冝儘乎寬矣敞矣 梲桷欂櫨咸稱其制美哉輪焉奐焉 式陳短詞 庸助偉唱

抛樑東 窓櫳軒豁日輪紅

微塵纖穢逃窿盡 頃刻當中掃廓空

抛樑西 汾陽楸柏望中迷

羹墻寓慕於斯在 要與來昆共提携

抛樑南 匡廬山色碧如藍

祥雲瑞靄長時鎻 磅礡扶興積氣舍

抛樑北 塵雨天関塞黑

天道好還香無期 斯民疹瘁將何極

抛樑上 玉宇蒼蒼氣正爽

最是風淸月白時 憑欄長嘯誰能賞

抛樑下 凝凝寒泉流不舍

君子於斯玩意 漸進盈科者

伏願上樑之後 風雨不撓 鳥鼠永除 時和景明叙行葦花樹之樂 風美俗厚溢春絃夏誦之聲

歲丁酉 瑞陽節 盆城 金鍾河 撰

 

글자의 색이 다른 부분은 정확치 않음.

 

후손 대갑大甲이 쓴 재성지감齋成志感


齋成志感

遙望先塋建此堂
精靈宛若降洋洋
庶成蘋藻薦誠所
可爲子孫齋宿場
設舍迎賓懷耿耿
誦詩講禮樂陽陽
多年積意今纔遂
豈敢云全示不忘
後孫大甲敬識
西紀一九七五年度

 

출처 및 참조
함안누정록-함안문화원/대보사(201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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