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0. 6. 26. 08:31

2020.3.27. 함안군 군북면 가덕동 진주강씨 덕산재德山齋 모습

군북면 박곡리 783-2(박곡1길 21-5)는 진주강씨晉州姜氏 박사공파博士公派 계용啓庸의 후손이 호남湖南의 영광靈光에서 이곳으로 이주한 안태헌按泰軒 강극양姜克良을 모시고 있는 덕산재德山齋가 있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28m이고 「위도 35°16'00"N 경도 128°16'56"E」를 표시한다. 덕산재德山齋의 옆에 이 재실을 관리하는 분이 계시고 뒤쪽에는 은열공파殷列公派 둔옹처사遯翁處士를 모시는 영모재永慕齋가 접해 있다. 덕산재德山齋의 대문에는 영사문永思門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본재의 이름은 덕산재德山齋라 편액했으며 기둥에는 주련이 달렸다. 대청마루의 문미에는 덕산재기德山齋記와 덕산재사실기德山齋事實記 및 덕산재상량문德山齋上樑文 등이 있으며 덕산재운德山齋韻도 걸려 있다.

 

2020.3.27. 함안군 군북면 가덕동 진주강씨 덕산재德山齋 대문 영사문永思門 편액
덕산재德山齋 전경
덕산재德山齋 편액

德山齋記

郡之北防山下濂江之上 有村曰加德 村之陽有一齋閣 爲故敦寧府按泰軒姜公而作之也 而扁之曰德山者 盖因地名而取焉者也 公之後孫達秀琫秀訪余 屬揭楣之文 余以文拙辭 其請益固終不獲辭 按其家傳 公諱克良字而性按泰軒號也 高麗元宗朝國子博士晋山府院君諱啓庸之后 自湖南之靈光 移寓巴陵防禦山下 不肯與世俯仰淡白 自守讀之而明 吾心耕之而守 吾分囂囂而卒歲 玆山下鱉嶝某原 即公之幽宅也 而龍蛇之亂 雲仍離散各地 竟不的考其眞 則世無深目之人 雖欲祭先致誠 其奈依憑無所 何玆乃築壇建碑 每霜露之節 敬薦芬苾 而恨無齋宿之所 粤戊戌十月日遠邇後孫 團聚謀議竭膂構齋 追遠報本之誠其至矣 然永思之義不惟在於 建築齋閣亶在乎 念祖修德 願姜氏諸仍 日處其中掃灑不懈 耕讀自守 以祖先明心守分之意 效之則之念念存存 則德之蓄 如山之高 而門之運 亦如山之壽矣 齋之名德山豈偶然也哉書 此爲諸姜氏勉焉辛丑臘月上澣 南平 文泰瓘記

 

덕산재기 德山齋記

함안군의 북쪽 방어산 아래 염강濂江(남강) 위에 마을이 있으니 가덕加德마을이다. 마을 남쪽에 한 채의 재각齋閣 있으니 돈녕부敦寧府 안태헌按泰軒 강공姜公을 위하여 창건한다. 편액의 이름을 덕산德山이라 한 것은 지명地名을 본떠서 한 것이다. 공公의 후손 달수達秀 봉수琫秀가 나를 방문하여 처마 밑에 높이 게시할 글을 청하였다. 내가 글을 잘하지 못하므로 사양하였으나 그의 부탁이 더욱 강경하여 끝내 사양하지 못하고 가전家傳을 살펴보니 공公의 이름은 극양克良이시고 자字는 이성而性이요 안태헌按泰軒은 호號이다. 고려원종조高麗元宗朝 박사 진산부원군博士晋山府院君이시며 이름이 계용啓庸이신 분의 후손이다.호남湖南의 영광靈光에서 파릉巴陵(함안) 방어산防禦山 아래로 이주하여 세상에 나아가서 명예나 재산을 얻고자 하지 않았고 담백하게 사시면서 글을 읽어 마음을 밝히시고 밭을 갈아 분수를 지켜 일생을 마치니 이 산 아래 별등鱉嶝의 모원某原에 곧 공의 유택이 모셔져 있다. 임진왜란 때 자손이 각지에 흩어져 드디어 공의 실상의 무덤을 상고할 수 없었고 세상에 깊이 눈여겨 보아둔 사람 없으니 비록 선조에게 제사를 모셔 정성을 바치고자 하였으나 의빙依憑할 곳이 없어 이에 단을 모아 비석을 세워 상로霜露가 내리는 절기에 향기롭게 공경히 올리는 제사를 모시고 재숙齋宿할 곳이 없어 원망했으나 무술 10월에 원근에 살고 있는 자손들이 둥글게 모여 의론한 결과 힘 모아 재실을 지었으니 선조를 추모하고 근본을 갚는 정성이 지극하였다. 그러나 선조를 길이 생각하는 것이 오직 재실을 짓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진실로 선조의 아름다운 덕을 닦는데 마음이 있어야 되므로 원컨대 강씨의 모든 후손들은 날마다 재실에 거처하면서 청소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고 농사짓고 독서하며 스스로 지켜 선조의 명심 수분한 뜻을 본받고 지켜 항시 생각을 갖는 즉 덕의 쌓임이 태산같이 높고 문운이 또한 태산같이 영원할 것이다. 재실 이름을 덕산이라 한 것은 어찌 우연한 연유이리오? 이러함으로써 모든 강씨들은 근면하고 조상의 은덕을 길이 보전할지어다.

신축 섣달초순에 남평 문태관文泰瓘 기록함.

 

덕산재德山齋 주련

遠近支派根源同
孫致誠而祖上佑
祖積德而孫支昌
水保源而派流長
木培根而枝葉茂
千百子孫氣脈一

 

덕산재기德山齋記 편액

德山齋記
德山齋在咸安郡郡北面朴谷里加德村 參奉晉州姜公諱渭墓下祭室也 墓在防禦山右麓 濂滄江上 藪津鱉嶝負巽原 與后孫奠居 有間每歲一芬苾 有難於升降一門齊力胥于 墓左相望數武之堧 而築齋一新 卽加德村前也 董役則后孫學秀 而蓋公自少有慷慨志當壬燹 自武靈之問禮村從父命參戰于 晉州城亂後仍居于咸安 云爾公以簪組閥閱之后 文良公希孟 司評公鶴孫敦勇校尉克讓 爲三世有男時天 以司憲府執義贈禮判承上貽下 公之爲公推可槪矣 后孫亦克趾先美迄今十餘世文行業家念斷榮利吁 亦可尙已齋之建 已爲四十有六年紀實 尙稽公之事行齋之顚末類能誦說不待乎記 而見今滄桑累變嘉言懿迹恐與浮雲流水 日就泯泯后孫鎬增成中面長好根介 其族大炯誤以請學庸余 已年迫九耋神精裏眊 人亦迷文亦下 文墨非其任 而揆以先外裔之末曠慕 有深不能終辭者也 第念齋之扁 則從地名 而進立門之 永思二字之扁 則蓋取諸葩經 而甚著雲仍之後於 公者入門而絃誦入齋 而思如在豈有不永言孝思者 思踐其祖武也必矣 遂書所感于 中者俾歸揭諸扁楣之左方
癸未月日全州李學庸謹記

 

덕산재기 德山齋記
덕산재德山齋는 함안군 군북면 박곡리 가덕마을에 있다. 참봉參奉 진주강공의 이름은 위渭이며 묘지는 재실의 위에 있다. 묘지는 방어산 우측 구릉이며 염창강濂滄江(남강)의 수진藪津나루의 위쪽 별등鱉嶝 부손원負巽原 자리에 묻혔고 후손이 제사를 지내며 거주하고 있다. 매년 한번은 향기로운 -중략-

 

덕산재상량문德山齋上樑文 편액
덕산재운德山齋韻 편액

德山齋韻
濂滄水自淵源到
方丈山從道脈來
孝思湥追先祖感
規模今爲後昆開



肯構斯堂妥魄魂
庶乎惺懼報湥息
誰非人子由於祖
木本其根水本源
十一世孫 達秀謹稿

 

출처 및 참조
함안누정록-함안문화원/대보사(201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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