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0. 6. 27. 11:43

2020.6.26. 함안군 가야읍 신암리 진주강씨 일신재日新齋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1128(신암2길 12-6)에는 진주강씨晉州姜氏 어사공파御使公派 신암공新菴公 강태수姜台叟를 추모追慕하는 일신재日新齋가 있다. 일신재日新齋가 위치한 곳의 마을 이름은 가야읍伽倻邑 신음리新音里 신암新庵마을이다. ‘신암新庵마을’은 처음 이 땅에 정착한 신암공新菴公의 호에서 명칭한 마을이다. 신암공新菴公은 인조 때에 화란의 조짐을 보고 의령괴진宜寧槐津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살게 됐다.
일신재日新齋의 대문에는 이름이 없고 본재는 ‘일신재日新齋’라 편액하고 기둥과 문주에는 주련이 달렸으며 시운과 일신재기 및 일신재상량문이 걸려 있었으나 샤시문이 잠겨있어 촬영할 수 없었다.

 

2020.6.26. 함안군 가야읍 신암리 진주강씨 일신재日新齋 대문
2020.6.26. 함안군 가야읍 신암리 진주강씨 일신재日新齋 본재
2020.6.26. 함안군 가야읍 신암리 진주강씨 일신재日新齋 편액

日新齋記
餘航山北走逶迤 二十餘里西闢 而有村曰新音 姜氏所庄 自新菴公諱台叟而始也 其諸後孫慕 其祖起丙舍二間名之曰日新齋 己亥春萬永君踵余門而語曰 吾先祖當仁祖朝慮 其禍亂之將至 自宜寧槐津來奠于 新音者已十世矣 而因世貧今纔建是齋 願吾尤記之余 惟新菴公因村名 而取爲號今斯齋因新庵而扁 以是夫日新者是繼續不己之意也 自古聖賢之爲聖賢 皆由於新新其德業也 故湯銘曰 荀日日新日新又日新 是示人萬世 爲善者之準的也 讀者如是則 多識前言往行 慥慥體驗 以成光明正大之業 耕者如是則必不失農時 百穀日茂 終見秋穫之孔多 公之取意不其在玆乎 易曰君子終日 乾乾多惕 若鄒聖云鷄嗚而起 孳孳爲善盖人也 今日孝友忠信 而明日少有間斷 則非孝友忠信者也 雖或有過失即悔 而改之舊染之汚滌 而去之是 自日新之道也 然新有善否舊亦然矣 於此精擇而愼行之不亦可乎 姜氏諸君 以是惕念 相與樂善好義日新 其德 則是無愧於聖訓 而不負其先祖 取號之義矣 朂之哉
己亥三月下浣
巴山 趙鏞極 謹撰

 

일신재기 日新齋記
여항산餘航山¹⁾이 북北으로 비스듬히 뻗어 20여리를 빙 돌아 서西쪽으로 확 트인 곳에 신음新音이라는 마을이 있다. 강씨姜氏들이 대대로 모여 사는 이 마을은 신암공新菴公 이름은 이수台叟로부터 살기 시작 했다.
그 여러 후손들이 조상을 추모追慕하여 재실 3칸을 세우고 일신재日新齋라 이름 했다. 기해년己亥年(1959) 봄에 만영군萬永君이 나의 집 문에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 선조께서는 조선 인조仁祖 대代에 화란禍亂²⁾이 장차 미칠까 염려하여 의령괴진宜寧槐津으로부터 신음新音으로 와서 정착한 것이 이미 10대가 되었으나 대대로 가난해서 이제야 겨우 이 재실齋室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어르신께서는 기문을 좀 지어 주시옵소서.”라 했다.
내가 생각해보니 신암공新菴公은 마을 이름을 공公의 호號로 택하였을 것이고 지금 이 재실은 신암新菴에 창건하여 재실 이름을 달았을 것이다. ‘일신日新’이라는 말은 계속하여 그만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부터 성현聖賢이 성현聖賢이 된 까닭은 그 덕업德業을 날로 새롭게 한데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大學의 탕명湯銘에 “만약 하루만이라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라.”고 한 것은 만세에 착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준 준칙이다.
글을 읽는 사람이 이와 같이 한다면 옛날 훌륭한 사람들의 언행言行을 많이 알아 성실하게 체험하여 광명정대光明正大한 학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고 밭가는 사람이 이와 같이 한다면 반드시 농사철을 잃지 않아 백곡이 날로 성하여 결국 추수의 풍성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공公이 ‘신新’자를 취한 뜻이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군자는 종일토록 부지런히 일하고 저녁에 삼간다.”라고 했고 맹자孟子는 말하기를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착한 일을 한다.”라고 했다.
대게 사람들이 오늘은 효우충신孝友忠信 하다가 그 다음 날 조금이라도 중단한다면 효우충신孝友忠信한 사람이 아니다. 비록 혹 잘못이 있을지라도 즉시 뉘우치고 고치고 옛날에 물든 오점을 씻어 없애는 것이 스스로 새로워 이는 길이다. 그러나 새것에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고 옛날 것도 또 그러하니 이에 잘 가려 신중히 행한다면 또한 옳지 않겠는가.
여러 강씨姜氏분들이 이점을 두려워하고 명심하여 착한 것을 즐기고 옳은 일을 좋아하며 그 덕을 새롭게 한다면 이는 성인의 가르침에 부끄러움이 없고 그 선조께서 호號로 삼은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니 힘쓸지어다.
기해己亥(1959)년 3월 하순에
파산 조용극趙鏞極³⁾ 삼가 짓노라.

 

【주석】
여항산餘航山¹⁾ : 여항산餘航山(770m) 함안의 진산으로 낙남정맥洛南正脈을 이루는 산이기도 하며 6.25동란 때 미군의 폭격으로 산 높이가 5m나 낮아졌다고 전하는 낙동강 전선의 격전지이다.
화란禍亂²⁾ : 재앙과 난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
조용극趙鏞極³⁾ : 조용극趙鏞極(1885∼1967)은 함안 학곡리 사람으로 호는 경암敬庵이고 문집으로 『경암집』이 있다.

 

2020.6.26. 함안군 가야읍 신암리 진주강씨 일신재日新齋 주련

戶臨仁塘寶鑑
軒照九峯明月
家殷詩書禮樂
世德忠孝官勳

 

가선대부신암진주강공유허비 嘉善大夫新菴晉州姜公遺墟碑

출처 및 참조
함안누정록-함안문화원/대보사(2017.12.30.)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