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0. 6. 28. 20:16

2020.6.28. 함안군 여항면 좌촌동 진주강씨 대문 여재문如在門 편액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 677(주서2길 130-2)에는 진주강씨晉州姜氏 어사공파御使公派 생원공生員公 강함姜涵을 기리기 위해 지은 경모재敬慕齋가 있다.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188m이고 「위도 35°12'06"N 경도 128°25'16"E」를 표시한다.
여항산 아래 별천의 입구 마을인 좌존동左村洞은 여항산艅航山(770m) 등산로의 입구 마을이다. 여항산이라 이름을 붙인 사람은 한강 정구선생으로 함안고을이 북쪽이 낮고 남쪽이 높은 역류의 기세를 가진 곳이라 남쪽을 ‘낮아서 배가 넘어갈 수 있다’는 뜻으로 '배이름 여艅', '배 항航' 자를 써서 여항산이라 했다.

 

2020.6.28. 함안군 여항면 좌촌동 진주강씨 대문 여재문如在門
2020.6.28. 함안군 여항면 좌촌동 진주강씨 경모재敬慕齋


敬慕齋記
敬祖遠慕即敬賀追慕之情也 霜露旣降歲一祭由 遠近宗員來集 或當天候不調必有齋宿乎 不備甚感積年之恨也 先山咸安郡艅航山麓所藏以下左村洞也 是洞吾祖諱涵生員公之定坐 旣過歲流四百星霜也 後裔十二代嗣孫益中 又十一代孫大川 仝代孫大均等 爲主役遠近宗員會同 或而尋訪祭閣逮立 推進集念十餘星霜募誠也 竟於丙辰(一九七六)春翌年丁巳三月日 數間齋舍遂完成也 不亦樂乎 瞻仰須深久願盤桓也 特而在日日龍 釜山鎬暻 釜山龍中等 爲多額盡誠 先山下鎬明執拗拘勞銘記後傳 生員公行狀諱涵字君直號栗里居士明宗甲子生也 五代祖世宗朝諱希孟號私淑齋 經國大典載功諡文良公晉山府院君 高祖諱鶴孫號八龍 司憲府監察司評公 曾祖諱亨壽別提公 祖考諱五福處士公 考諱克溫字以直司果公之三子也 公自幼時聽明天品闊達志操堅直 宣祖己卯初試選生員(十六歲)也 壬亂從軍功臣也 光海正亂昏朝隱德參政不仕伋 己酉淑人商山金氏率子諱時碩 帶同逾越入咸安艅航竝谷 種栗成林(栗田)專生涯草野也 顯宗辛丑卒 栗田酉坐 右文章 而不文不能只但爲門之記
丁巳仲春 後孫大均 謹記

 

경모재기 敬慕齋記
조상을 공경하고 멀리 후손을 사모함은 곧 돌아가신 조상님께 조심성 있게 심신을 깨끗이하여 제사를 모시고 그 자손들에게 잘 가르쳐 번영과 충정을 다함이라 그러므로 햇곡식이 추수되고 서리가 내리니 시제를 모시는데 재실이 없어 늘 아쉬워 해왔다. 오늘 원근 제객이 모였으나 일기 불순하여 편하게 머물 곳이 없어 불편이 막심했다. 우리들의 선산은 함안군 여항산 기슭에 소장所藏되어 그 산 밑이 좌촌동左村洞이라. 이곳이 우리 선조 이름이 함涵이며 생원공生員公이 자리 잡은 곳이라 후예로 12대 종손 익중益中 또한 11대손 대천大川과 같은 항렬의 대균大均 등이 주역이 되어 멀고 가까운 일가를 방문하여 제각祭閣 건립을 권장하고 추진한 결과 제족이 십여년 동안 근검 적금하여 병진丙辰(1976) 봄에 착공 정사丁巳 3월에 몇 간의 재사를 완성했다. 어찌 즐겁지 않으리요. 우러러 바라보니 오랫동안 원했던 집이 넓고 크다. 우리의 조상을 섬기며 후손을 훈육하는 번영의 기틀이 될 것이다. 특히 일본에 있는 일용日龍, 부산에 있는 호경鎬暻과 용중龍中 등은 많은 성금을 냈으며 선산 아랫동네 호명鎬明은 일심전력 정성을 다했으므로 훗날을 위해 전하는 바이다.
생원공生員公의 행장行狀에 이름은 함涵이요, 자는 군직君直이며, 호는 율리거사栗里居士라. 명종明宗 갑자생이다. 5대조는 세종 때의 선조로 이름은 희맹希孟이고 호는 사숙재私淑齋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실려 있는 공적을 보면 시호가 문량공文良公은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이다. 고조의 이름은 학손鶴孫이요, 호는 팔용八龍이고,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사평공司評公이다. 증조의 이름은 형수亨壽이고, 별제공別提公이다. 조부의 이름은 오복五福 처사공處士公이다. 공의 아버지 이름은 극온克溫이요, 자는 이직以直으로 사과공司果公의 3번째 아들이다. 공公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천품이 활달하고 지조는 굳건하고 선조宣祖 기묘년 때 초시初試에 합격하여 16세에 생원이 되었다. 임난壬亂의 종군 공신이다. 광해光海 정난 때 정치 질서가 혼란하여 짐을 보시고 은덕隱德 참정參政을 사양하고 기유己酉(1610)에 숙인 상산 김씨의 슬하 자식인 이름이 시석時碩과 같이 동반해서 극한을 넘어 함안 여항 병곡竝谷의 종種 율성림栗成林(栗田)에서 남은 여생을 초야에서 지냈다. 현종顯宗 신축辛丑에 생애를 마쳤다.
묘소는 율전栗田 유좌酉坐에 있다. 위의 글은 넉넉하지 못하나 문중을 위하여 성의를 다 쏟아 기문記文을 지었음을 일러 두노라.
정사丁巳(1977) 봄이 한창인 음력 2월에 후손 대균大均이 삼가 지음.

 

2020.6.28. 함안군 여항면 좌촌동 진주강씨 경모재敬慕齋 주련
경모재기 敬慕齋記

敬慕齋記
嶺南咸安艅航山東主西敬慕齋者 惟我傍祖考生員公歲事室也 謹按通亭公載愍公文良公 三世之文章道德勳列昭載史承 爲東方華閥文良公 私淑齋先生 寔公之五代祖也 高祖諱鶴孫號入龍亭 掌隷院司評 與寒暄堂金宏弼 朱溪君深源 文平公李繼孟等 同修國史忤旨罷謫灵光子孫因家焉 有子入人俱 有文藻善養志 故時人比荀氏入龍 曾祖諱亨壽尙衣院 別提年二十入以白衣 參選書狀官隨 申相用漑入燕京文章蔚爲華士所推 祖諱五福忠佐衛副護軍 考諱克溫忠佐衛副司果 從弟號睦隱 亦文噫於世綿綿世德 爲湖南望族矣 公諱涵字君直 明宗甲子生于 佛甲西峯第天性 兼靜耿介 宣廟朝與仲氏 生員公早登國庠行誼見稱士林 而光海政亂挈家踰嶺入 艅航山種栗成林 自號栗里居士 臨澗濯纓逍遙山間優遊終老 其遺躅地至令稱栗里事載嶠南誌 顯宗辛丑卒 享年九十七 墓在栗里西坐而失傳 惟以子且孫先公歿而然也 耶雲仍設壇歲一祭之齋 建於壇下而扁 以敬慕敬尊也 慕思也 凡爲後裔者 夙夜斯堂而繩祖武 則實以爲追遠敬慕之道矣 盖常勉之公之後孫大川 請余以記余忝在族列義不固辭 是雖不文謹書如右
歲丙辰菊秋節 傍孫 吉遠謹記
                  順興 安商律謹書

 

경모재운 敬慕齋韻

敬慕齋韻
數間齋舍今始成
瞻仰順湥敬慕情
吾祖當年遺躅地
薦嘗胡不盡修誠
丙辰十一月 日
十二代孫 益中謹撰

 

경모재운 敬慕齋韻 2

敬慕齋韻
艅麓群峰篷谷成
錦谿流域水自淸
層層畔野歷然勞
隴下涌泉有舊情
嶝越㗀鹿夕陽促
子規亂啼念蜀聲
吾祖遺躅思杳昔
敬先慕遠義復榮
丙辰十一月 日
十一代孫 大均謹撰

 

盤桓灵地慶南成
一帶長江水靜淸
遺訓無量航麓吃
力耕有德栗田情
手藏文物千秋史
口頌仁和萬歲聲
淑氣自生君子宅
滿庭寶樹領春榮
傍孫 吉遠 謹記

 

출처 및 참조
함안누정록-함안문화원/대보사(201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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