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천부인권 2020. 7. 2. 08:53

2020.6.28. 진북면 대현마을 김해김씨 표효각 表孝閣 전경

진북면 정현리 564(대현길 12-1)번지 앞에는 김해김씨金海金氏 삼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표효각表孝閣이 있다. 절효공節孝公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으로 아버지 김현호金顯昊를 극진히 모신 득명得命, 득추得秋, 득해得海 삼형제의 효성을 후대의 사람들이 본받기 바라며 세운 비각이다.
비각 입구의 협문은 삼악문三萼門이라 편액 했고 본각은 표효각表孝閣이라 이름했다.

 

표효각 입구 협문
삼악문 三萼門 편액
김해김씨 표효각 전경

表孝閣記
金得命字輝遠 有二弟 仲曰得秋字光遠 季曰得海字德天 金海人節孝公克一之后 父顯昊妣慶州金昌默女 以英廟己卯 金氏生伯于咸安竝谷坊鼎峴村 弟以戊子癸巳 而姜氏生仲季 自兒時兄弟式好不知爲分刑也 迨其長成 幷心事親 養志養禮 一遵小學 父年八十遘瘧 八年委牀 三兄弟晨夕侍側間可曰惟思 雉炙蟹漿 時天寒無求路 三兄弟出門仰天而泣登山 有雉在前 臨溪水蟹自躍氷得面供之 病忽癒 里人咸曰異哉天出之孝也 父自是體益康健 享九十五歲而終 三兄弟喪葬盡禮 廬于墓有虎來護 服母喪亦如之 於是鄕咸曰五州今見眞孝子 具狀告營監司 遺吏存問饋以米肉 狀告繡衣亦如監司之爲 郡守以煙戶蠲滅報營 題敎有日依所報以爲激勤之方 但旌褒之興以爲孝子之生 前末擧於當日 沒後鄕人士更請于朝 贈童蒙敎官 後孫竪三昆季 表閭碑于里門
光州盧根容撰碑文

 

표효각기 表孝閣記
김득명(金得命)의 자(字)는 휘훤(輝遠)인데 두 아우가 있다. 둘째는 득추(得秋)로 자는 광원(光遠)이고 막내는 득해(得海)로 자는 덕천(德天)이다. 김해인(金海人) 절효공(節孝公) 극일(克一)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현호(顯昊)이며 어머니는 경주(慶州) 김창묵(金昌默)의 딸이다. 영조(英祖) 기묘(己卯)년에 김씨(金氏)가 함안(咸安) 병곡(竝谷)마을 정현촌(鼎峴村)에서 맏이를 낳았고 아우들은 무자(戊子)년과 계사년(癸巳)에 태어났는데 강씨(姜氏)가 둘째와 셋째를 낳았다. 어려서부터 형제가 서로 우애있게 지내면서 분쟁이 없었고 차츰 장성하여 마음을 합쳐 어버이를 섬기기를 뜻과 예를 다하며 하나같이 소학의 법을 따랐다. 부친 나이 팔십에 학질에 걸려 팔년 동안 침상에 누웠을 때 삼형제가 아침저녁으로 곁에서 시중들고 먹을 것을 물었더니 오직 생각는 것이 꿩복음과 게장이라 하였다. 이때 매우 추운 겨울이어서 구할 길이 없어 삼형제가 문밖에 나가 하늘을 우러러 울며 산에 오르자 꿩이 앞에 나타났고 개천에 나아가니 게가 얼음에서 뛰어올라 당면하니 구하여 공양하였더니 병이 홀연히 차도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하늘이 내린 효자라 일컬었다. 부친이 이로부터 체력이 더욱 건강해 져서 95세를 향수하고 돌아가셨다. 삼형제는 장계를 치르는데 예를 다하였고 묘 곁에 여막을 짓고 여묘살이를 할 때 호랑이가 와서 보호하였다. 모친상을 당해서도 그와 같이 하였으니 고을 사람들이 ‘우리 고을에 참된 효자가 났다.’하고 장계를 갖추어 감영(監營)에 알렸더니 감사 서리(胥吏)를 보내어 위문하고 쌀과 고기를 내리고 다음 수의어사(繡衣御史)에게 알려 또 감사에게 한 것과 같이 하며 군수가 연호군(煙戶軍) 군역(軍役) 감하여 병영에 알리는 제교(題敎)가 있었다. 날이 있어 그 보답에 의하는 것은 사람들은 격려하고 힘쓰게 하는 방편으로 삼는 것인데 다만 정려고 포상하는 것은 효자의 일생의 전말을 당일에 드러낸 것이다. 삼형제가 세상을 떠난 뒤 고을 인사가 다시 조정에 알려 동몽교관(童蒙敎官)의 증직을 받고 후손이 삼형제 표려비(表閭碑)를 마을 앞에 세웠다.
광주(光州) 노근용(盧根容)이 비문(碑文)을 지었다.

 

출처 및 참조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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