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0. 7. 13. 06:00

2020.7.11.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 진주강씨 모의재慕義齋 대문

진주 대곡면 마진리 639(마진한실로257번길 34)은 진주강씨晉州姜氏 공조참의工曹參議 검儉을 사모하여 건설한 모의재慕義齋가 있다. 이곳의 위치를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23m를 알리고 「위도35°13'18"N 경도128°13'14"E」라 표시한다.
강씨姜氏의 재실 찾아보기 두 번째 행선지로 진주시 대곡면을 선택하고 첫 번째 목적지로 정한 곳이 대곡면 마진리에 있는 모의재慕義齋와 압산재鴨山齋였다. 재실의 지번을 모르니 마을에 도착하여 주민들에게 물어서 찾을 수밖에 없는데 그나마 이 마을 입구에는 주민들이 정자나무 그늘에 나와서 바둑을 두며 놀고 있어 쉽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모의재 대문에는 현판이 없고 길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아 지나쳤다가 다시 찾아가니 문이 잠겨 있어 재실 관리를 하시는 분을 찾아 열쇠를 가지고 왔지만 열쇠가 맞지 않아 결국 담을 넘어 마당까지 진입했지만 모의재 샤시문을 열지 못해 결국 내부의 글은 보지 못했다.

 

2020.7.11.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 진주강씨 모의재慕義齋

慕義齋
晉治東西十里 麻津之蘇道坊 有慕義齋 齋故 贈通政大夫工曹參議 晉陽姜公諱儉 號牙湖 及其配烈婦淑夫人 晉陽鄭氏之丙舍也 凡齋五楹四架 而盖以洋瓦規模制度 雖不侈麗 而儉朴雅潔 足以供祭祀也 日其十世孫壽進彙祚兩君 言於余曰 吾祖參議公 則問津齋先生諱應奎之中子也 承襲庭訓 才行俱高 淑夫人鄭氏士人舜烘之女也 當壬辰之亂 遇賊山中罵不絶口 竟被遇害 全節以殉 事聞于朝 仁祖朝特 贈工曹參議 鄭氏淑夫人 職牒 命旌其閭 閭在村西松月崖 墓在村後槐榜山雙封 而欲築室於墓下 以爲墳菴者 屢世之久矣 而殘孫綿力有志未就 逮我不肖往藏戊午 董構一屋 而經始數年 尙未完了 記文且闕 願吾子同閈之人也 稔聞吾家來歷詳知事勢形便勿惜一言 記其顚末以示來後 則千萬幸甚 余以不文 固辭不獲 因問慕義之義 曰但後孫慕先之慕先祖 有行義之義而已 無他義也 余曰善先祖有懿行卓義 而後孫永慕不忘萬善至矣 盡矣 復何求焉 苟或不慕 雖侈麗宏閣頹廢 一時慕之不已 儉約小屋 永保萬年 諸君不恨齋之儉約 勤勉灑掃 慕先祖而獻泂酌之奠 會宗族而講花樹之誼 則豈不善哉 豈不美哉 始役也渾宗同心協力鳩財出役 出巨財者壽烈 董其役者壽成 二人已作古人 惟其幹事者 壽進彙祚二君也 而二君亦老矣 携其衰軀 强來慇勳 敢其誠懇 忘拙爲記
民國七十三年 辛未立冬節 載寧 李暢浩 謹記

 

모의재기 慕義齋記
진주 동쪽 40리 마진麻津의 소도방蘇道坊에 모의재慕義齋가 있으니 재실은 옛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돌아가신 후 받은 벼슬은 공조참의工曹參議이고, 진양강공晉陽姜公의 이름은 검儉이며, 호號는 아호牙湖이며, 그의 부인은 열부烈婦 숙부인淑夫人으로 진양정씨晉陽鄭氏이며 무덤 가까이에 집이 있다. 무릇 재실은 5개 기둥에 4개의 처마도리를 얹었고 양와洋瓦로 된 지붕이라 그 규모와 제도가 비록 사치스럽고 아름답지는 못하지만 검소하고 순박하며 바르고 깨끗하여 제사祭祀를 받들 수 있을 정도는 갖추어졌다. 하루는 그 10세손 수진壽進과 휘조彙祚 두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우리 선조 참의공參議公, 즉 문진재선생問津齋先生의 이름은 응규應奎이고 둘째라 정훈庭訓¹⁾을 이어받아 재주와 행동은 고결하였고 숙부인淑夫人 정씨鄭氏는 선비 순홍舜烘의 딸이시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왜적을 산중에서 만나게 되자 꾸짓어 나무라다 마침내 순절하니 이 일이 조정에 들리어 인조仁祖께서 특별히 공에게 공조참의工曹參議와 정씨鄭氏에게 숙부인淑夫人 직첩職牒²⁾을 증贈³⁾하시고 정려旌閭⁴⁾를 명하시니 동네 어귀에 세운 문은 마을 서쪽 소달애松月崖에 있고 묘는 마을 뒤 괴방산槐榜山에 쌍봉雙封으로 계시니 집을 묘 아래에 지어서 제사 지내는 집으로 삼고자 한지가 많은 세대를 거치며 오래되어 미약한 자손이 뜻은 있으나 따르지 못했고 우리의 못나고 어리석음으로 이르지 못하다가 무오년戊午年(1978)에 겨우 집 한 채를 얽었으나 시작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완료치 못하고 또한 기문이 없으니 원컨대 “자네는 이웃 마을에 사는 사람이라 우리 집 내력을 오래 들었고 사세형편事勢形便⁵⁾을 자세히 알 것이니 한 말씀 아끼지 마시고 그 이야기의 모든 것을 기록하여 미래에 보여 주시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하거늘 내가 글 못한다 하여 굳게 사양했으나 동의를 얻지 못해 모의慕義의 의義를 묻는 대로 말하기를 단지 후손이 선조를 생각하는 모자慕字요 선조의 행의行義를 아는 의자義字 뿐이요 다른 이의는 없구나. 내가 말하기를 착하다 선조의 훌륭한 행실과 뛰어난 의로움을 후손들이 길이 생각하여 잊지 않고 온갖 착한 일을 다했으니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진실로 혹 생각 않으면 꾸며서 아름다운 굉장한 집이라도 일시에 퇴폐頹廢할 것이요 한시라도 생각을 그만 둠이 없으면 검약儉約한 작은 집이라도 길이 만년을 보존 하리니 여러분들은 재실의 검약함을 한恨하지 말고 근면히 쇄소灑掃⁶⁾하고 선조를 생각하여 깊은 잔에 술을 제사에 올리고 종족들이 모여서 화수花樹⁷⁾를 강론하면 어찌 착한 일이 아니며 어찌 아름다운일이 아니겠는가. 이 역사役事를 시작할 적에 다양한 집안이 한 마음으로 협력하여 돈을 모으고 부역을 했다. 큰 돈을 낸 사람은 수열壽烈이요 역사役事를 감독한 사람은 수성壽成이더니 두 사람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오직 남아 일 볼 사람은 수진壽進과 휘조彙祚 두 사람인데 이 또한 늙은지라 쇠구衰軀⁸⁾를 끌면서 구태여 찾아와서 은근히 청하거늘 그 정성 간절함에 감동하여 졸열拙劣함을 잊어버리고 기문記文하노라.
1984 1991년 11월 7일 재령 이창호李暢浩 삼가 짓다.

 

【주석】
정훈庭訓¹⁾ : 집안의 조상 대대로 그 자손들에게 지키도록 가르쳐 주는 교훈. 여기서는 부모의 집을 물려받은 것.
직첩職牒²⁾ : 예전에,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 사령서를 이르던 말
증贈³⁾ : 사람이 죽은 후에 보내는 벼슬.
정려旌閭⁴⁾ : 예전에,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그 동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는 일을 이르던 말
사세형편事勢形便⁵⁾ : 일의 형세나 살림살이가 되어가는 모양과 그 결과
쇄소灑掃⁶⁾ : 물을 뿌리고 비로 쓺
화수花樹⁷⁾ : 꽃이 피는 나무. 화수花樹의 어원은 하겸진河謙鎭(1870~1946)의 문집 『회봉집(晦峰集)』에 의하면, “옛날 위씨(韋氏) 일가가 꽃피는 나무 밑에서 모여 술을 마시고 친목을 도모하였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쇠구衰軀⁸⁾ : 몹시 약한 몸

 

2020.7.11.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 진주강씨 모의재慕義齋 편액


출처 및 참조
대곡면지-대곡면지편찬위원회/도서출판 대보사(2019.4)

85226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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