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0. 7. 16. 06:36

2020.7.11. 대곡면 와룡리 진주강씨 앵산재鶯山齋 전경

진주 대곡면 와룡리 292-3(대화로105번길 101-21)은 진주강씨晉州姜氏 죽유헌공竹柳軒公 두흠斗欽과 둔암공遯菴公 일영日永을 향사享祀하기 위해 후손이 건설한 앵산재鶯山齋가 있다. 이곳의 위치는 위치기반 고도계가 해발 67m를 알리고 「위도35°16'15"N 경도128°10'59"E」라 표시한다.
앵산재의 대문은 방이 딸려 있으며 문미門楣에는 덕후문德厚門이라 편액했고 본재의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고 앵산재鶯山齋의 편액과 좌우의 방에는 죽유헌竹柳軒 둔암遯菴이란 편액이 달렸으며 대청마루 위에는 앵산재기鶯山齋記와 앵산재건조사실기鶯山齋建造事實記가 걸려 있다.

 

2020.7.11. 덕후문德厚門 편액
2020.7.11. 대곡면 와룡리 진주강씨 앵산재鶯山齋
2020.7.11. 대곡면 와룡리 진주강씨 앵산재鶯山齋 주련

앵산재鶯山齋 주련柱聯-[해문]백촌 김창현
齋宿以事祖先 사당에 묵어 조상님들을 섬긴다.
詩書以敎子弟 시서로 자제들을 가르친다.
和翕以會宗族 화목하게 종족들이 만나다.
杯尊以邀賓友 술잔으로 손님과 친구들을 맞이한다.
齋之爲用大矣 사당은 그 쓰임이 큰 것이다.

 

【주석】
* 재숙齋宿 : 제관祭官이 재소齋所에서 밤을 지내는 일. 제사나 전례 전 하루 먼저 홀로 머물며 재계齋戒하는 일. 공경하면서 정성의 뜻을 표시함. 사당에 제사를 지낼 때 제관祭官이 전날 밤에 재소齋所에서 밤을 지내던 일. 나라의 중요한 제사祭祀를 지낼 때 임금이 친히 재궁齋宮에 나와 묵으면서 재계齋戒하는 것
* 재계齋戒 : 신령, 부처 등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부정을 타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며 행동을 삼가다
* 계빈戒賓 : 빈(賓, 존경받고 귀감이 될 만한 분)
* 숙빈宿賓 : 하루 전 빈을 다시 청함
* 삼재三齋하고 칠계七戒하여 : 제사 지내기 전 3일 동안 재숙齋宿하고 7일 전부터 경계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제의〉에 “칠일 경계하고 삼일 재숙하는 것은 삼감을 지극히 한 것이다.〔七日戒, 三日宿, 愼之至也.〕”라고 하였다.

• 때 맞춰 목욕재계하고 / 齋宿以時
• 해마다 제사 올리리라 / 歲薦我祀

* 조선祖先 같은 혈통을 이어받은, 돌아가신 어버이 위로 대대의 어른 선조·조상. 민족이나 가족의 상대 선배.

《参同契》:“子繼父業,孫踵祖先” = 자계부업,손종조선 아들이 아버지의 이룬 일을 이어받고 손자가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계승하다.

• 선조로부터 이어받고 / 襲之祖先
• 천명으로 품부받았다오 / 賦之天明
• 구구한 망상으로 조상을 더럽히랴 / 妄意區區忝祖先
✶ 시서詩書 : 시와 글씨. 詩經과 尙書. 서적. 시를 짓고 글을 쓰는 법. 시를 짓는 일과 서신.
✶ 시서기詩書氣 : 마음에 시서詩書를 품으면 기氣가 저절로 일어남
✶ 시서예악詩書禮樂 : 시와 서, 예법과 음악 詩書 禮義 예절과 의리
✶ 시서육경詩書六經 : 〈시경 詩經〉·〈서경 書經〉·〈예기 禮記〉·〈역경 易經〉·〈춘추 春秋〉 〈악경 樂經〉

• 학문 속에 흥취를 돋우었지 / 詩書氣味長
✶ 시서육예詩書六藝 : 六藝.禮.樂.射.御.書.數.
✶ 시서화詩書畫 : 미악시서화[米嶽詩書畫] - 미악은 송(宋) 나라 때의 명필 미불(米芾)
✶ 시서화삼절詩書畫三絶 : 시·서·화에 모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
✶ 시서분설詩書焚爇 : 시서를 불태워 없애다 = 소훼燒毁 
✶ 焚書坑儒분서갱유 =진화(秦火) : 진 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와 같은 재앙=焚典坑儒분전갱유 : 중국의 진시황이 학자들의 정치적 비판을 막기 위하여 의약, 점복, 농업에 관한 것을 제외한 민간의 모든 서적을 불태우고, 이듬해 유생들을 생매장 한 일<秦始皇 三十四年(公元前213年)>

• 시서가 사람을 저버리지 않음을 믿겠도다 / 始信詩書不負人
36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 것을 말한다. 송나라 왕십붕(王十朋)의 “이름 이룸 늦다고 한탄하지 마오, 시서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으니까.〔莫恨成名晩 詩書不負人〕”라는 시구가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梅溪集 前集 卷2 至樂齋讀書》

• 시서랑 예악이랑 남자의 일 다 배우고 / 禮樂詩書男子事
* 자제子弟 : 남을 높여 그의 자녀를 이르는 말
주희(朱熹)의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에 “사람이 태어나 8세가 되면, 왕공 이하로부터 서인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에 입학시켰다. 그리고는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답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과 예ㆍ악ㆍ사ㆍ어ㆍ서ㆍ수에 관한 글을 그들에게 가르쳤다.〔人生八歲 則自王公以下 至於庶人之子弟 皆入小學 而敎之以灑掃應對進退之節 禮樂射御書數之文〕”라는 말이 나온다.국자제(國子弟 왕세자와 공경대부의 자제 )를

* 화흡和翕 : <翕 화합할 흡>=화락和樂 화평(和平)하고 즐거움
* 화목和睦 :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
* 환락歡樂 : 유쾌하다 安樂 근심이나 걱정이 없이 평안하고 즐겁다
* 안괄安适 : 안정되고 쾌적하다. 조용하고 편안하다

• 인친의 정이 푸근해서 봄날 누대에 오른 듯 / 姻親和翕似登臺
노자(老子)》 20장에 “사람들 즐거워하는 것이 마치 푸짐한 잔칫상을 받은 듯도 하고, 봄날 누대에 올라 노니는 듯도 하다.[衆人煕煕 如享太牢 如春登臺]”라는 말이 나온다.

• 화락하게 지냄이 봄 날씨와 같았네 / 和翕如春
* 杯尊배존 : 술잔

• 비록 한 항아리의 술이 있은들 누구와 마주하리 / 縱有盃尊誰共對
• 술잔은 능히 나를 흥기시켜 주네 / 杯尊能起余
* 종족宗族 : 성과 본이 같은 겨레붙이
부계 가족의 성원(成員) . 부계(父系)의 일족(一族) 동종(同宗)의 겨레붙이 同宗=한 조상에서 시작된 성과 본이 같은 일가

✶ 종문宗門 : 종가의 집안 宗族 同族
✶ 종실宗室 : 임금의 친족
* 以邀 이요 <邀 맞을 요>

• 양구를 맞이했네 / 以邀羊求
羊求 한나라 애제(漢哀帝) 때 사람들로, 양중(羊仲)과 구중(求仲)의 병칭(竝稱)이다. 당시에 왕망(王莽)이 섭정을 하자, 그들의 벗 장후(蔣詡)가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외부와 통하는 세 가닥 길을 터놓고 하나는 자기가, 나머지는 그들이 각기 다니는 길로 삼아 서로 왕래하며 살았다 한다.
* 빈우賓友 : 손님과 친구

• 글을 서로 얘기하러 모여든 손님과 벗 / 以文會賓友
• 한가로운 날 손님과 벗들 찾아와 / 暇日來賓友
* 위용대의爲用大矣 : 쓰임이 크다.

• 예악(禮樂)은 나라에 있어 그 쓰임이 큰 것이다 禮樂之於國, 爲用大矣,
• 풍악의 쓰임이 큰데"樂之爲用大矣
• 악(樂)이 나라에 소용됨은 크다 樂之於國, 爲用大矣。

 

2020.7.11. 대곡면 와룡리 진주강씨 앵산재鶯山齋 편액

 

鶯山齋記
晉陽姜信德 訪余海上寓舍 請曰 吾爲吾高祖竹柳軒公曁曾祖遯菴公 建齋于柳谷世居之傍 盖竹柳軒公之墓 在介也洞 遯菴公之墓 在楮田洞 家貧不能各置丙舍 故就此世居約其制 而合其力 不知於義當否 且齋尙未有名 今將何以榜額 余應之曰 介也楮田去柳谷里餘而近 況世居直二公 舊物之守也 齋因所守何害於義 至如名柳谷有所謂鶯山 特立村右分西支爲介也 南支爲楮田是介也 楮田之靈氣 注自鶯山 而鶯山於柳谷 實其眉目也 則榜額宜無善於鶯山者 君喜又請曰 子幸已敎我義與名矣 願卒惠以記 噫呼 余聞二公遺稿 故存君姑歸而讀焉 若有上述博士通溪東湖 諸先民之猷 以與後孫講明者 齋於時 必爲慕祖敦族 敎孺少之大道場 余可書而竣之以爲記乎 然君同堂弟信才客遊歸 輒輸鉅緡 令君夾宗子錫泰 經紀數年 而齋及齋之維護之方 乃成 君之弟 信渙又特效賢勞之力 於其間附書篇末 不泯 故寔亦作記之一法也 竹柳軒公 諱斗欽 遯菴公 諱日永
丙辰 二月 日 載寧 李一海 記

 

앵산재기 鶯山齋記
진양의 강신덕姜信德이 바닷가에 있는 내 집에 방문하여 청하여 말하기를 내가 우리 고조高祖 죽유헌공竹柳軒公과 증조曾祖 둔암공遯菴公을 위하여 유곡柳谷 근처 대대로 살아온 곳에 재실을 건립했으나 대개 죽유헌공竹柳軒公의 묘는 개야동介也洞에 있고 둔암공遯菴公의 묘는 저전동楮田洞에 있는데 집안이 빈곤하여 각각의 재실을 두지 못한 고로 이 대대로 사는 곳에 그 제도制度를 간략히 하고 합하려 힘썼으나 이것이 의리義理에 합당한지 알 수 없으며 또 아직 재실의 이름이 없으니 장차 현판懸板을 어떻게 할꼬 하거늘 내가 답하여 말하기를 개야介也와 저전楮田이 유곡柳谷에서 1리 쯤 가까웠으며 앞으로 세거지世居地는 곧 2공의 구업舊業을 지키는 곳이니 재실을 여기에 두는 것이 무엇이 의리에 맞지 않겠는가. 재실의 이름에 있어서는 유곡柳谷에 앵산鶯山이 마을 우측에 우뚝솟아 한 가지는 서쪽으로 개야동介也洞이 되었고 한 가지는 남쪽으로 저전동楮田洞을 이루었으니 개야介也와 저전楮田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앵산鶯山으로 붙어왔으니 앵산鶯山은 실로 유곡柳谷의 얼굴이라 할 수 있으니 마땅히 앵산재鶯山齋가 가장 좋을 것이라하니 군君이 또 청하여 말하기를 “자네가 다행히 의리와 재실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으니 원하건데 기문까지 하여다오” 한다. 오호라! 내가 듣건대 2공의 유고遺稿¹⁾가 옛날부터 있다하니 자네가 돌아가 읽어서 만약 위로 박사博士와 통계通溪와 동호東湖의 여러 옛 현인의 모유謀猷²⁾를 기록하여 후손들을 강명講明³⁾하게 하는 것이 있으면 재실이 그때 그때에 반드시 조상을 그리워하고 일족一族와 도탑게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대도장大道場이 될 것이니 내가 가히 글로 적어서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것으로 기문記文을 할까한다. 그러하니 자네 사촌동생 신재信才가 타향에서 돌아와 거금巨金을 헌성獻誠하여 자네 가까운 종가宗家의 맏이 석태錫泰으로 하여금 집안을 꾸려온지가 수년만에 재실과 재齋를 유지하고 보호할 방책方策을 성취 시키었으며 자네의 동생 신환信渙이 또 특별히 공로가 있기에 책의 끝쪽에 부록附錄하여 뒤섞이지 않도록 하였다. 이것 또한 기문 짓는 하나의 법法이다. 죽유헌공竹柳軒公의 이름은 두흠斗欽이요 둔암공遯菴公의 이름은 일영日永이다.
병진丙辰(1976) 2월 재령 이일해李一海 짓다.

 

【주석】
유고遺稿¹⁾ : 죽은 사람이 살아 있었을 때 써서 남긴 원고
모유謀猷²⁾ : 어떠한 일을 이루기 위해 세우는 원대하고 담대한 꾀
강명講明³⁾ : 연구하고 조사하여 사리를 밝힘

 


鶯山齋建造事實記
我柳谷之姜 自竹柳軒公以下累世 丘墓無丙舍心窃恨焉 當爲再從弟信才語 而信才慨然請以其海外〇蓄謀之 則遂以乙卯三月擧役 而顧不於墓下 而於里中且建止於一屋 盖里是竹柳軒公所 始奠而子孫因喪辭 分散舊物己無其太半 與其分其力專 治墓域無寧集其力幷守里墟 然則不惟歲時齊宿而己也 闔族聚會極爲便利在遠離 而間歸者尤 然是於慕先之道 不其兩全而無闕乎 役訖於丙辰閏八月 爲屋之制燠室 三廳事一凉軒一合而名之曰 鶯山齋 嗚呼 古人於天下事皆言刱易而守難 而吾齋刱易不亦而難而守難 故自如是重難也 將如之何而可余意出者 念其飛輪輸貲之艱關居者 念其負〇供力之勞 若各勵必守之志 共設獨立之方 以〇之庶幾刱雖難 而守反易矣 不知諸宗其肯聽之否乎 諸宗勸余識建造事實 玆謹畧述其顚末 而附以所感于 後如右云
檀紀四三〇九 丙辰寒露節
玄孫 信德 謹識
全州 李丙烈 書

 

죽유헌 편액
둔암 편액

 

출처 및 참조
대곡면지-대곡면지편찬위원회/도서출판 대보사(2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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