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천부인권 2020. 11. 26. 12:52

2020.11.25. 구산면 수정리 전주이씨 숭모재 崇慕齋
2020.2.2. 구산면 수정리 전주이씨 숭모재崇慕齋 전경


구산면 수정리 954(수정4길 41)에 위치 하는 전주이씨 숭모재崇慕齋는 가선공嘉善公 이제인李齊麟이을 향사하는 재실이다. 임곡산荏谷山 아래 자리한 이곳은 구글지도에서 「위도35°11'75"N 경도128°57'81.3"E」을 가르킨다.
『마산문화지』에는 숭모재崇慕齋의 사진을 잘못 넣어 두어서 2020년 2월 2일에 탐방을 하고도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는데 이번에 다시 찾아보고 숭모재崇慕齋의 건물이 이 사진 속의 건물임을 확신하게 됐다. 당시에 숭모재崇慕齋에는 기문記文이 걸려 있지 않아 내용을 몰랐는데 그 기문을 아래에 옮겨 둔다.

 

숭모재崇慕齋 대문 방향

 

숭모재崇慕齋 본실

崇慕齋記
五世則禮當裰忌祭故 於是乎有墓祭焉 旣祭墓則不可無齊宿之所故 於是乎有菴焉 以寓追慕之誠 此天理人情之不容已者也 豈不懿哉 古龜山鎭之南荏谷山下 有村 曰水晶 李之全州氏 居之 我太宗王弟二子孝寧大君 靖孝公之裔也 其流落海鄕 胥宅于是 自嘉善公諱齊麟 始而殆爲二百年于今矣 世世衣履之藏 壘壘於指點之內 雲仍 歲奉香火無替惟虔而皆貧而力之 尙未營齊明宮 相輿咨嗟飮恨者久矣 至近年 有廷順甫者朝晡僅繼而慨然自任以肯構之責 土購材 創建四楹三架 扁曰崇慕齋 取崇祖敬慕之意也 於是 洞府 改觀 雲林 增媚 登臨眺望 邱壟 密邇 宛乎先靈之陟降也 未幾 君病 將死以未畢之役 托族孫孝信 及親友朴性奎 訪不佞而責以記 盖四五至而不懈焉 余曰慕先之道 豈專在於掃霜露禁樵牧 侈棟宇疊俎豆而已哉 當念吾身之出於父而溯而上之則雖百世之遠 皆是父也 自上而下則雖萬體之分 皆是子也 子之於父 豈有遠近親疎之分乎 且以體魄之在此而慕之 不在而不慕乎 居是齋者當先知此意 講敦睦 勉孝悌 思其血脈之流貫而致愛殼之孝 慕其業蹟之偉美而勤紹述之誠 念焉在玆 惟恐則祖先之靈 豈不悅椽而曰余有後乎 窃念李氏之盛也 孝寧君 與兄讓寧 隱遯於儲嗣之際 有姬周大伯仲雍之德 爲薦苗裔者最宜尊仰者也 望諸李氏之克溯濬源而念念加勉也 余衰病固陋 不敢爲闡發之辭而感廷順君爲先之誠 至死尤篤 遂嗟嘆而記之
丁未一月驚蟄節 廣州 安鍾禧 撰

숭모재기 崇慕齋記
5세는 곧 예도禮道에 당연히 기제사忌祭祀에 챙겨지는 고로 이에 있어서 제사를 묘에서 지내니 즉 재계하고 묵을 장소가 없으면 불가한 고로 이에 구역내에 집이 있어 가까이 붙어 살면서 추모의 정성을 들이니 이는 천리天理와 인정人情에서 비롯되지 아니하면 용서가 아니됨이니 어찌 아름답다 아니하랴 구산龜山고을 남쪽 임곡산荏谷山 아래 마을이 있으니 이르기를 수정水晶이라 하고 전주 이씨들이 살고 있으니 우리 선조조 태종임금의 동생 둘째 아들 효령대군 정효靖孝공의 후예라 그들은 바닷가 고을로 내려와 모든 집들은 가선공 이름이 제인齊麟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 2백년이 되었다. 향불 사름을 바꾸지 아니하고 오직 경건한데 모두가 재력이 빈약하여 오히려 제계를 밝게할 집을 짓지 못하여 서로 슬퍼하면서 한이 맺힌지 오래 되었다. 근년에 이르러 정순廷順이란 분이 있는데 아침밥도 근근이 이어가면서 슬퍼하며 스스로 재실을 지을 책임을 맡아 땅과 재목을 사들여 3칸집을 창건하며 편액을 숭모재崇慕齋라 하였다. 선조를 경건히 숭모하는 뜻에서 취하였다. 
이에 마을의 경관은 바뀌고 운림雲林은 아름다움을 더하더라 재실에 올라 멀리 바라보면 산소들이 가까이 하며 완연히 선령께서 오르내리리라 그 후 얼마되지 않아 정순군이 병을 앓아 공역을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 족손 효신孝信이가 맡아 친우 박성규와 같이 나를 찾아와 기문을 맡기고 네 번 다섯 번이나 찾아 오면서 게을리 하지 않더라 내가 말하기를 선조를 숭묘하는 도道가 어찌 상로절에 산소를 우르러 보며 소제하고 초동목동들의 침입을 금하고 재실을 꾸미고 거듭 제사 지내는 전행에만 있겠는가 마땅히 내몸이 태어남은 부모이고 거슬러 올라가면 곧 먼 백대이다. 모두가 아는 부모요 위로부터 아래에는 비록 만체萬體로 나누어졌으나 모두가 자식이다. 자식이 부모에 멀고 가깝고 친하고 성금의 나눔이 있겠는가. 또 몸과 혼이 있으니 이를 사모하고 있지 아니하며 사모하지 아니함이라 이 재실에 산다는 것은 당연히 먼저 그 뜻을 알고 돈독히 화목을 강講하고 효제에 힘써서 그 혈맥이 흘러 통해졌음을 생각하면 사랑과 정성의 효심이 이르고 그 업적의 큰 아름다움을 사모하여 부지런히 이를 지키려는 정성과 생각이 이에 있으니 혹은 떨어뜨릴까 오직 두려워하면 곧 이는 선조의 큰 덕을 이어받아 닦음에 욕됨없는 자손인 것이다. 진실로 그러하면 곧 선조의 령靈이 어찌 재실을 기뻐하지 아니할 것이며 이르기를 나도 후손이 있다고 할 것이다. 가만히 생각건대 이씨들이 무성함에는 효령군이 형 양녕과 더불어 황태자에서 제외 되었으나 주나라에 버금가는 화락한 덕이 있으니 제사드리는 후손된 자는 가장 존앙尊仰하는 자이다. 모두 이씨들에게 바람은 거슬러 올라가면 깊은 근원이니 항상 힘씀을 더하여라 나는 병으로 쇠하고 고루하여 감히 열어 밝힐 말을 못하고 정순군廷順君의 선조를 위한 정성에 감동하였고 죽음까지 이르렀으니 더욱 두터워 한탄하면서 기록하노라.
1967년 2월 경칩절 광주 안종희安鍾禧 지음

 

숭모재崇慕齋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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