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글 마당

한암 2015. 6. 28. 16:55

 

한대(漢代)의 닭싸움 그림이 새겨진 화상전(畵像磚)

긴 옷차림에 모자를 쓴 두 사람이, 손을 앞으로 들고 고함을 지르며 응원하는 가운데,

키 크고 꼬리 긴 수탉이 상대 목을 쪼는 장면이다.

 

 

최고의 싸움닭은 뽐내지 않는다

 

위대한 리더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눈초리는 부드럽고, 외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통제할 줄 알고, 상대방에게 매서운 눈초리나 빛나는 광채를 보여 주지 않더라도 무언가 근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동양에서는 이런 사람을 목계지덕(木鷄之德)을 지녔다고 말한다. 목계는 나무로 만든 닭이란 뜻으로, 나무로 만든 닭처럼 완전히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장자(莊子) ‘달생(達生)’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왕이 투계(싸움닭)를 좋아해 기성자(紀渻子)라는 사람에게 최고의 싸움닭을 구해 최고의 투계로 만들도록 훈련을 맡겼다.

 

맡긴지 열흘이 지나고 나서 왕이 물었다.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 사육사는 단호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아직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 교만을 떨치지 않는 한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헛된 교만과 기운을 믿고 뽐내는 자세를 버리지 못하였다는 대답이었다.

 

열흘이 또 지나 왕이 물었을 때 사육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급함을 버리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열흘이 더 지나 왕이 또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직 멀었습니다.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입니다.” 상대방을 질시하는 공격적인 눈초리를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열흘이 지나고 또 묻자,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마음의 평형을 찾았습니다. 나무와 같은 목계(木鷄)가 됐습니다. 이제 어느 닭이라도 모습만 봐도 도망갈 것입니다.”

 

이 고사에서 말하는 최고의 투계는 목계다. 자신이 제일이라는 교만함을 버리고, 남의 소리와 위협에 쉽게 반응하지 않으며,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인 눈초리를 버린, 나무와 같은 목계는 인간으로 말하면 완전한 자아의 성취와 평정심을 이룬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광채와 능력을 상대방에게 드러내지 않기에 그 빛은 더욱 빛날 수 있다. 노자가 말하는 ‘자신의 광채를 누그러뜨리고 이 풍진 세상의 눈높이와 함께 하라’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겸손함이다.

 

상대방의 행동에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강자의 여유로 맞이하기에 그 여유는 조직을 든든하게 한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부동여산(不動如山)의 여유다.

 

함부로 상대방을 위협하는 눈초리를 보이지 않기에 그 마음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외경을 느끼게 만든다. 노자가 이야기하는 ‘부드러움과 유약함이 결국 강하고 센 것을 이길 것’이라는 유약승강강(柔弱勝强剛)의 부드러움이다.

 

 

-  좋은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