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미 우표

한암 2015. 7. 12. 06:09

 

추억의 인물 시리즈우표(두 번째 묶음)    발행일 : 2014. 4. 9.

디자인 :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우표크기 : 각 26 × 36mm 액면가격 : 영원우표

 

 

추억의 인물 시리즈우표(두 번째 묶음)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그들이 모국어로 써 내려간 아름다운 詩는 상실의 슬픔 을 달래고, 넘어진 민족을 다시 서게 하는 힘이었다. 추억의 인물 두 번째 묶음으로 일제 치하 시를 통해 민족의 울분을 달래주었던 민족시인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를 소개한다.

 

한용운 (韓龍雲, 1879~1944)

3·1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이자 군국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던 사상가였고, 뜨거운 조국애를 노래하던 시인이었다. 1879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난 그는 26세 되던 해 불교에 귀의하여 종교를 기반으로 독립운동에 힘썼다. 그의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고, 그 의 강연은 좌중을 압도하는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1926년 민족문학에 길이 남을 시집 《님의 침묵》을 발행한다. 조선 총독부가 있는 남쪽으로는 주춧돌조차 놓지 말라 했던 그는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1944년 생을 마쳤다.

 

이육사 (李陸史, 1904~1944)

시와 수필, 평론을 발표하며 조국의 독립을 부르짖은 문인이었으며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서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 간부학교의 군사훈련을 통해 무장 투쟁에 나선 독립운동가였다. 1904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전통적으로 저항성이 강한 가풍과 지역을 배경으로 자랐다.

 

1939년 詩《청포도》를 발표한 그는 많은 시작활동을 보여주었다. 17번에 걸친 체포와 구금, 투옥 끝에 그는  1944년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 사관 감옥에서 40년의 짧은 삶을 뒤로 하고 숨을 거뒀다.

 

윤동주 (尹東柱, 1917~1945)

서정적인 시어로 조국의 독립을 노래한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 대에 북간도로 이주 하였다. 1917년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소학교 때 급우들과 잡지를 발행하는 등 어릴 적부터 문학에 소질을 보였다. 평양 숭실학교 시절 신사참배가 강요되자 자퇴한 그는 일본경찰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서시》를 비롯하여 수많은 작품을 썼던 그는 연희전문학교를 거쳐 일본유학길에 올랐는데 1943년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 투옥되었다. 그리고 1945년 2월 그가 옥에서 사망했다는 전보 한 장이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그의 나이 만27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