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소쇄원의 풍경과 소쇄원 48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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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글

2019. 9. 27.






                          

책으로 보는 소쇄원의 풍경과 소쇄원 48영


소쇄원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에 있는 소쇄원.

조선시대의 정원 소쇄원瀟灑園은 조선 중종때의 학자 양산보가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를 당하여 죽게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시골로 은거하러 내려가 지은 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

소쇄원이라 한 것은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에서 비롯되었으며,

맑을 소瀟, 깨끗할 쇄灑, 동산 원園 이라 하여 맑고 깨끗하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이는 곧

인품이 맑고 깨끗해 속기俗氣가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동산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소쇄원으로 가는 길>

책을 펼치는 순간 먼저 소쇄원의 사진 풍경이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짙은 초록잎이 무성한 나무 그늘아래 정자의 지붕이 보이고 그 옆으로 늘어선 긴 담벼락, 정감어린 투박한 돌계단 그리고,

돌담위에 늘어진 노란꽃과 화사하게 핀 분홍의 꽃들이 고향에라도 온 듯 반겨주고, 굉음을 울리며 하얗게 쏟아지는 천상의 폭포수..

나뭇잎들이 노랗게 빨갛게 물들다 스르르 떨어져 동산엔 온통 붉은 융단을 깔아 놓는가 싶더니 어느새 하얀 세상으로 변했다.

사진으로 보는 풍경과 함께 마치 꿈을 꾸는듯 소쇄원으로 들어가는데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빠져 나오지 못하는 묘한 매력이 온몸을 감쌌다.



대 숲 사이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지나면 소쇄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은 정자를 보게된다.  

기다릴 대待, 봉황새 봉鳳, 집 대臺 ..봉황(귀한 손님)을 기다리는 집 대봉대.

제비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태양이 빛났고, 비도 내렸다. 사계절이 순환했고, 소쩍새도 울었다.

온 우주가 동원되어 핀 제비꽃 한송이는 우주의 주인공이 되었다.

제비꽃 한 송이가 우주의 주인공이 되듯, 소쇄원 입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대봉대에 발을 딛는 순간

좋은 소식을 전해 준다는 봉황새인 귀한 손님이 되었고, 우주의 주인공이 되었다.

「소쇄원 48영」의 주요한 시점의 하나인 대봉대에서 귀한 손님이 되어 또 다른 귀한 손님을 기다리니 마음은 벌써부터 선계에 있는 듯 하다...


햇빛을 사랑하는 단이란 뜻이 담긴 애양단愛陽檀은 소쇄원의 담장으로 그 평온함이란 이루말 할 수 없고

어서 들어오시라 손짓하는 듯 반가이 길을 안내하니 담을 따라 연이어 오곡문五曲門이 나온다.

예전에는 담장 밖으로 오가는 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한다.


오곡문 아래로 흐르는 개울물을 건너면 어느 땅 하나도 손댄 것이 없는, 언덕을 깎은 곳도 없는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물이 흐르고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 소리 들리는 곳. 비 갠 하늘에 밝은 달이 떠오른다는 제월당霽月堂이 나온다.

비 갤 제霽, 달 月월, 집 당堂. 비 갠 하늘에 떠오르는 달과 같은 집이 있으니 사람이 지었어도 사람이 지은 집 같지가 않은

자연 위에 얹혀 있는 제월당 마루에서 양산보와 뜻을 같이하던 그의 벗이자 사돈인 하서 김인후 선생을 만나게 된다. 


하서 김인후 선생이 남긴 「소쇄원 48영」에는 소쇄원의 모습을 마흔 여덟 가지로 나누어 자세하게 설명해 놓으셨는데,

하나하나 뜻을 알아가며 그 풍경을 상상으로 그려보니, 소쇄원의 모든 풍경이 그 속에 다 담겨 있었고,

김인후 선생이 진심으로 이루고자 했던 세상「이상으로 그리는 가장 완벽하고 평화로운 사회」가 그 속에 담겨 있었다.

 






소쇄원 48영瀟灑園 四十八詠


1영. 소정빙란小亭憑欄

작은 정자의 난간에 기대어                                                                 <작가님의 설명과 나의 느낌>

瀟灑園中景(소쇄원중경)           소쇄원 안에 있는 모든 경치는

渾成瀟灑亭(혼성소쇄정)           하늘이 빚어 만든 천국의 모습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미 이 곳은 세상이 아니다.

擡眸輸颯爽(대모수삽상)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흐뭇해지네               눈에 보이는 것이 천국의 모습이고,            

側耳聽瓏玲(측이청롱령)           천상의 소리 아롱아롱 귀에 들리고              귀에 들리는 것이 모두 천상의 소리이니..)


2영. 침계문방枕溪文房

시냇가 글방에서

窓明籤軸淨(창명첨축정)           창문이 밝아도 근심 걱정 하나 없어

水石暎圖書(수석영도서)           물 바위에 어른거리는 하느님 얼굴            (여기서는 고민해야 할 일이 하나도 없고, 일체의 불만도 없다.

精思隨偃仰(정사수언앙)           마음을 가다듬고 위아래를 살펴보니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고, 태어나는 것도 자연이고, 

妙契入鳶魚(묘계입연어)           솔개 날고 물고기 뛰는 여기가 천국             자라는 것도 자연이며, 죽는 것도 자연이니 시냇가의 깨달음이라)


3영. 위암전류危巖展流

높은 바위에서 펼쳐 흐르는 물

溪流漱石來(계류수석래)           흐르는 시냇물에 돌이 씻겨 깨끗하다

一石通全壑(일석통전학)           온 골짜기에 깔려 있는 하나의 통반석

匹練展中間(필련전중간)           하얀 베 한 폭이 그 중간에 펼쳐 있네          (맑디 맑은 물이 흘러 흐르는 돌을 씻어주니 온 골짜기에

傾崖天所削(경애천소삭)           비스듬한 저 벼랑도 하늘이 만든 작품이고      깔려 있는 통돌. 하얀 비단을 펼쳐 놓은 듯 반석 위 흐르는 물.)


4영. 부산오암負山鼇巖

산을 등지고 있는 자라 바위

背負靑山重(배부청산중)           등 뒤의 푸른 산은 듬직도 하고

頭回碧玉流(두회벽옥류)           눈앞에는 벽옥 같은 시냇물 흘러                (그림같은 풍경이다. 듬직한 푸른산, 파르스름한 옥돌의 빛 시냇물

長年安不抃(장년안불변)           긴긴 세월 이 자리에 넘치는 기쁨                 잠깐만 봐도 흐뭇한 풍경을 억만 년을 쉬지 않고               

臺閣勝瀛洲(대각승영주)           여기 있는 집들 보니 선계보다 좋아라            함께 있는 자라 바위. 이는 세상의 풍경이 아닌듯 하다.) 


5영. 석경반위石逕攀危

돌로 된 오솔길을 높이 오르며

逕連三益(일경연삼익)          외줄기 오솔길에 벗들이 늘어섰다

攀閒不見危(반한불견위)          오를수록 한가하고 마음 편안해                  (한가로운 오솔길을 걸으면 돌, 나무, 풀 한 포기도 모두가 벗이고

塵蹤元自絶(진종원자절)          속세 사람 발자취 아예 없으니                      속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니 발에 밟히는 이끼조차 더욱

苔色踐還滋(태색천환자)          이끼의 빛깔조차 밟을수록 더욱 고와              고와지는 것은 행복하기 때문이다.)


6영. 소당어영小塘魚泳

작은 연못에 고기떼 놀고

方塘未一畝(방당미일무)          한 이랑이 다 못되는 네모진 연못

聊足貯淸漪(료족저청의)          맑은 물 모으기엔 넉넉하구나                    (참으로 작은 연못에 맑은 물. 연못에 노니는 물고기들이

魚戱主人影(어희주인영)          물고기들 즐거워서 내 그림자 따르네             나를 좋아하는듯 내 그림자를 따르니 나도 물고기가 좋아

無心垂釣絲(무심수조사)          낚싯줄 드리울 마음 아예 없어라                   모두가 벗이 되어 함께 어울리고 싶어라)


7영. 고목통류刳木通流

나무 홈통을 타고 흐르는 물

委曲通泉脈(위곡통천맥)          홈을 판 나무통으로 샘 줄기 흘러내려

高低竹下池(고저죽하지)          높고 낮은 대숲 아래 연못 생겼네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마치 얼굴에 닿는 것 같은 이 느낌은..

飛流分水碓(비류분수대)          물줄기 쏟아져 물방아에 흩어지고                 하얗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퍼지니

鱗甲細參差(인갑세참치)          피라미 가재들이 어지러이 노니네                 작은 연못에 그림은 더욱 평화롭다.)


8영. 용운수대舂雲水碓

구름 찧는 물레방아

永日潺湲力(영일잔원력)          하고 한 날 좔좔 흘러 떨어지는 힘

舂來自見功(용래자견공)          구름을 찧고 찧어 천국을 연출하네              (폭포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을 하시다니..

天孫機上錦(천손기상금)          하늘 자손이 짜서 만든 베틀 위 비단              구름을 찧어서 흘러내리는 폭포는 천상의 직녀가 짜서

舒卷擣聲中(서권도성중)          절구질 소리에 펼쳤다가 말렸다가                 만들어 놓은 한 폭의 비단.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인가)


9영. 투죽위교透竹危橋

높이 걸쳐 있는 대나무 다리

架壑穿脩竹(가학천수죽)          골짜기에 걸쳐 있는 대나무 다리

危似欲浮(임위사욕부)          높기도 하여라 하늘 위에 떠 있는 듯

林塘元自勝(임당원자승)          숲 속의 연못 원래 빼어난 절경                   (깊은 숲 속에 연못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得此更淸幽(득차갱청유)          이를 얻어 더욱 맑고 그윽해졌네                   높은 골짜기에 걸쳐 있는 대나무 다리로 절경이 더욱 깊어졌으니)


10영. 천간풍향千竿風響

대나무가 연주하는 바람교향곡

已向空邊滅(이향공변멸)          하늘가 저 멀리로 사라졌다가

還從靜處呼(황종정처호)          다시 고요한 데서 일어나는 소리                 (대 숲에서 듣는 자연의 소리..서로 스치며 일렁이는 대 잎들..

無情風與竹(무정풍여죽)          바람 소리 대나무에 정이 없을까                   바람 소리, 새 소리, 물 흐르는 소리. 하늘 저 멀리로 사라졌다가

日夕奏笙篁(일생주생황)          밤낮으로 연주하는 피리와 젓대                    다시 일어나는 바람과 대나무의 정. 밤낮없이 연주되는 교향곡)  

 

11영. 지대납량池臺納凉

연못가 집에 앉아 더위 식히네

南州炎熱苦(남주염열고)          남쪽 나라 여름 더위 지독하지만

獨此占凉秋(독차점량추)          이곳만은 유달리 서늘한 가을                     (무더운 여름날 연못가 정자에 앉아 한가로이 풍경을 즐기니 

風動臺邊竹(풍동대변죽)          집 가의 대숲에서 바람이 일고                      남쪽 나라에 더위가 와 괴롭지만 대숲은 늘 바람을 일으키고

池分石上流(지분석상류)          못물이 돌 위로 나눠 흐르네                         연못에 물이 흘러 더위도 식히니 이곳은 언제나 서늘한 가을이라)


12영. 매대요월梅臺邀月

매화 핀 집에 앉아 맞이하는 달

林斷臺仍豁(임단대잉활)          숲 끊어져 트인 곳에 자리 잡은 집

偏宜月上時(편의월상시)          달 떠오를 그때가 유달리 좋아                    (숨이 멎을것만 같은 아름다운 소쇄원의 풍경이다.

最憐雲散盡(최련운산진)          어여쁘라 검은 구름 다 흩어지고                   달밤에 피어 있는 매화꽃 한 잎 한 잎이 얼마나 매혹적인지

寒夜映氷姿(한야영빙자)          차운 밤에 비치는 맑은 그 모습                     차가운 밤 하얀 달빛을 받아 더욱 맑고 어여뻤을 것이다.)


13영. 광석와월廣石臥月

넓다란 바위에 누워 바라보는 달

露臥靑天月(노와청천월)          푸른 하늘 달 아래 나와 누우니

端將石作筵(단장석작연)          넓다란 돌 하나가 돗자리 되어 주네

長林散淸影(장림산청영)          긴 숲에 흩날리는 맑은 그림자                    (아! 잠을 이룰수 없을만큼 아름다운 달밤이여..

深夜未能眠(심야미능면)          밤이 깊어져도 잠 이룰 수 없어라                  넓다란 돌 위에 누워 맑은 달과 벗이 되어 긴 밤을 보내리) 


14영. 원규투류(垣竅透流)

담장 밑을 뚫고 흐르는 물

步步看波去(보보간파거)          걸음 걸음 물결 보며 올라가면서

行吟思轉幽(행음사전유)          시 읊으니 생각이 더욱 그윽해                    (깊은 지하수에서 흘러나온 물은 졸졸 흘러도 바다에 이르지만,

眞源人未沂(진원인미소)          참 근원을 사람들은 찾지를 않고                   소나기가 온 뒤에 흐르는 큰물은 금방 마르고 만다는 말이 있다.

空見透墻流(공견투장류)          담장 뚫고 흐르는 물만 멍하니 보네               모든 물은 근원에서 흘러오지만 사람들은 그저 흐르는 물만 본다)


15영. 행음곡류杏陰曲流

은행나무 그늘 아래 굽이 도는 물

咫尺潺湲地(지척잔원지)          지척에서 졸졸 찰찰 흐르는 소리

分明五曲流(분명오곡류)          오곡에서 흘러오는 물결이로다

當年川上意(당년천상의)          그 옛날 냇가에서 말씀하신 뜻                    (물은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고 사라지지만 근원의 물은 영원하다

今日杏邊求(금일행변구)          지금 찾아봅니다 은행나무 가에서                  늙고 죽어가는 사람도 삶의 근원은 변함이 없다는 것..)


16영. 가산초수假山草樹

가산의 풀과 나무

爲山不費人(위산불비인)          힘들이지 않고도 산이 되었네

造物還爲假(조물환위가)          조물주가 만들어 낸 산 같은 돌                   (수많은 돌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풀과 나무는 다 어디서 왔을까?

隨勢起叢林(수세기총림)          군데군데 풀숲이 우거져 있어                       산 모양을 한 돌이나 나무가 우거져 있으니 조물주가 만들어낸

依然是山野(의연시산야)          의젓한 산이요 버젓한 들판                          풀숲의 웅장함은 산이 되고 들판이 되었다.)


17영. 송석천성松石天成

소나무 바윗돌도 하느님 작품

片石來崇岡(편석래숭강)          높은 뫼서 굴러 내린 조각 바윗돌

結根松數尺(결근송수척)          뿌리 얽혀 서 있는 작은 소나무                   (바위 조각 틈에서 자라나고 있는 작은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 

萬年花滿身(만년화만신)          영원토록 온몸 가득 꽃을 피우고                   비바람 맞으며 오랜세월 역경을 이겨내고 아름다움을 창조하여 

勢縮參天碧(세축참천벽)          몸을 낮춘 푸른 모습 하늘 되었네                  온몸에 푸른꽃을 가득 피우니 그 생명의 우러러봄이 영원하리..)


18영. 편석창선遍石蒼蘚

바위를 덮고 있는 푸른 이끼들

石老雲烟濕(석로운연습)          늙은 돌에 안개구름 축축하더니

蒼蒼蘚作花(창창선작화)          파릇파릇 이끼들이 꽃을 이뤘네                  (선계의 세상에서 무슨 욕심이 있으랴!

一般丘壑性(일반구학성)          산골짜기 가득한 하나의 생명                       하나의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산골짜기엔 파릇한 이끼조차

絶意向繁華(절의향번화)          번화한 속세엘랑 미련 없어라                       꽃보다 아름다우니 아옹다옹 세상사 경쟁은 참으로 부질없다.)


19영. 탑암정좌榻巖靜坐

평상 바위에 고요히 앉아

懸崖處坐久(현애처좌구)          벼랑 위에 오랫동안 앉았노라니

淨掃有溪風(정소유계풍)          깨끗해진 마음에 바람 소리 들리네              (평평한 바위에 고요히 앉아 명상에 잠기노라면 욕심없는 마음에

不怕穿當膝(불파천당슬)          맞닿는 무릎이야 뚫리건 말건                       들리는건 바람 소리 뿐. 마음을 비우고 나면 욕심과 집착이 

便宜觀物翁(편의관물옹)          관물하는 늙은이에겐 가장 알맞아                 사라져 그저 이몸도 자연임을..)    


20영. 옥추횡금玉湫橫琴

옥빛 물가에서 거문고 비껴 안고

瑤琴不易彈(요금불이탄)          옥 거문고 함부로 못 타는 것은

擧世無鍾子(거세무종자)          세상에 종자기가 없기 때문에                     (거문고의 달인 백아는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는 종자기가 죽자 

一曲響泓澄(일곡향홍징)          한 곡조 맑은 물에 메아리치니                      거문고를 타지 않았지만 모두와 하나가 된 사람이 거문고를 타면

相知心與耳(상지심여이)          마음과 귀가 통해 하나 되었네                      맑은 물도 마음으로 귀로 듣고 하나 되어 울려 퍼진다.) 


21영. 복류전배洑流傳盃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우며

列坐石渦邊(열좌석와변)          빙빙 도는 물가에 둘러앉으니

盤蔬隨意足(반소수의족)          소반의 나물안주 넉넉하구나                      (벗들과 물가에 둘러앉아 술을 주고 받으니 갖은 산나물 안주에

洄波自去來(회파자거래)          돌아드는 물결이 절로 오가니                       즐거움이 더하고 돌아드는 물결에 스르르 술잔이 앞에 와 닿으니

盞斝閒相屬(잔가한상촉)          옥 술잔 한가로이 앞에 와 닿네                     그 흥겨로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22영. 상암대기床巖對棋

평상 바위에서 바둑을 두며

石岸稍寬平(석안초관평)          돌 언덕 약간 넓고 평평한 곳에

竹林居一半(죽림거일반)          대 숲이 그 절반을 차지했구려                    (손님과 평평한 바윗돌 위에서 바둑을 두고 있으니 

貧來一局碁(빈래일국기)          손님 맞아 바둑 한판 두고 있으니                  대숲의 바람 소리는 마치 공중에서 흩어지는 우박 소리인 듯

亂雹空中散(란박공중산)          우박이 공중에서 흩어지는 듯                       주위는 오로지 바람 소리 뿐..무성한 잎들이 춤을 춘다.)


23영. 수계산보脩階散步

긴 섬돌을 거닐며

澹蕩出塵想(담탕출진상)          티끌 생각 벗어난 맑은 마음이        

逍遙階上行(소요계상행)          섬돌 위를 오가며 소요를 한다 

吟成閒箇意(음성한개의)          읊을수록 마음이 한가해지고                      ('나'라는 집착 덩어리가 없으면 이 몸은 자연이고,

吟了亦忘情(음료역망정)          읊고 나면 몹쓸 정들 깨끗해지네                    자연의 몸으로 왔다갔다 하는 것이 소요라 한다.)


24영. 의수괴석倚睡槐石

홰나무 바위에 기대 졸다가

自掃槐邊石(자소괴변석)          홰나무 가 바윗돌을 쓸어 내고서

無人獨坐時(무인독좌시)          사람이 없을 적에 혼자 앉았네                    (홰나무 가 바윗돌에 앉아 명상을 하는데 찾아오는 졸음이

睡來驚起立(수래경기립)          졸음 오자 깜짝 놀라 일어서는 건                  눈앞에 기어가는 왕개미에게 조차 부끄러우니

恐被蟻王知(공피의왕지)          왕개미 행여 알까 두렵기 때문                      아무도 보는이 없으나 참으로 겸손한 마음이다.)


25영. 조담방욕槽潭放浴

작은 연못에서 미역을 감고


潭淸深見底(담청심견저)          못이 맑아 깊어도 바닥이 보여

浴罷碧粼粼(욕파벽린린)          미역을 감고 나도 맑고 푸른 물                   (소쇄원에 있는 작은 연못의 물은 늘 맑고 푸르다.

不信人間世(불신인간세)          믿을 수 없는 것은 인간들 세상                     욕심이 가득찬 인간들 세상사는 더러운 때들로 가득하니

炎程脚沒塵(염정각몰진)          뜨거운 길 때 먼지에 다리가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림이 안타까운 세상이다.)


26영. 단교쌍송斷橋雙松

다리 가에 서 있는 두 그루 소나무

㶁㶁循除水(괵괵순제수)          섬돌 따라 콸콸콸 물이 흐르고

橋邊樹二松(교변수이송)          다리 가에 서 있는 소나무 둘                      (섬돌 길을 따라 물이 흐르고 다리 가에 서 있는 소나무 둘은

藍田猶有事(남전유유사)          옥이 나는 남전에는 일이 복잡해                   다툼이 없이 하나가 되었건만 세상사 싸움은 끝이 없으니

爭及此從容(쟁급차종용)          그 다툼 조용한 여기 미칠라                         25영과 26영에는 당시의 혼탁함이 많이 담겼다.)  


27영. 산애송국散崖松菊

산기슭에 자라는 소나무와 국화

北嶺層層碧(북령층층벽)          북녘 고개에는 층층이 푸른 솔                    (욕심이 없으니 돈과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명예 앞에서도

東籬點點黃(동리점점황)          동녘 울타리엔 점점이 노란 국화                   꿈쩍을 않으니 북쪽 고갯마루에 자라고 있는 푸른솔과 같고,

緣崖雜亂植(연애잡란식)          기슭을 따라 어지러이 섞여 있어                   동쪽 울타리에 점점이 피어 있는 국화와도 같다. 이는 곧

歲晩倚風霜(세만의풍상)          늦가을 바람서리에 잘도 버티네                    하서 선생의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소나무와 국화에 비유했다.)


28영. 석부고매石趺孤梅

돌 받침대 위의 외로운 매화

直欲論奇絶(직욕론기절)          기이한 절개를 말하려거든

須看揷石根(수간삽석근)          돌에 박힌 매화 뿌릴 보아야 하지                (돌 틈에 뿌리박고 있는 외로운 매화. 먹을 것도 없어 앙상하니

兼將淸淺水(겸장청천수)          맑고 얕은 물까지 아울렀으니                       잎은 성글어도 태연하고 초연해                                   

疎影入黃昏(소영입황혼)          황혼에 갓 들어선 성긴 그림자                      욕심을 버린 마음 작은 물이라도 함께 아무런 불만이 없다.)


29. 협로수황夾路修篁

좁은 길에 뻗어 있는 긴 대나무

雪幹摐摐直(설간창창직)          눈 속의 대나무 줄기 찌를 둣 곧고

雲稍嫋嫋輕(운초뇨뇨경)          구름 서린 잔가지는 곱고도 연해

扶藜落晩蘀(부려낙만탁)          지팡이 짚고서 낡은 껍질 벗겨주고              (오래된 대나무는 묵은 껍질을 벗어야 새로워지고, 연약한

解帶繞新莖(해대요신경)          허리띠 풀어서 새 줄기 동여주네                   대나무는 튼튼해야 겨울을 견디고 그래야 생명이 이어진다.)


30. 병석죽근迸石竹根

돌 위로 뻗어 나온 대나무 뿌리

霜根恥染塵(상근치염진)          하얀 뿌리 먼지 묻음 부끄러워서

石上時時露(석상시시로)          이따금 돌 위로 뻗어 나오네                       (흙먼지 묻을까 부끄러워 돌 위로 나온 하얀 대 뿌리

幾歲長兒孫(기세장아손)          몇 해나 아이 손자 길러 내었나                     얼마나 많은 대나무를 길러 냈을까?

貞心老更苦(정심로갱고)          곧은 마음 늙을수록 더욱 고달파                   하얀 대 뿌리가 자식키우는 우리네 어머니 마음이어라.)


31. 절애소금絶崖巢

낭떠러지에 깃 들인 새

翩翩崖際鳥(편편애제조)          파닥파닥 날개 치는 벼랑가의 새

時下水中遊(시하수중유)          이따금 물속에도 내려 와 노네                    (연약해 보이는 작은 새가 깎아지른 절벽에 깃을 틀고

飮啄隨心性(음탁수심성)          제 마음을 따라서 쪼고 마시며                      이따금 물속에 내려와 놀기도 하는데 훨훨 나는 갈매기 조차 

相忘抵白鷗(상망저백구)          백구에게 덤비는 건 아예 잊었네                    부럽지 않으니 욕심없는 마음은 모든 것이 행복할 뿐이다.)


32. 총균모조叢筠暮鳥

저물어 대밭에 날아드는 새

石上數叢竹(석상수총죽)          돌 위에 뻗어 있는 저 대나무 숲엔

湘妃餘淚斑(상비여루반)          두 따님의 눈물자국 아롱져 있네                 (상비湘妃 : 요임금의 두 따님으로, 순임금의 부인이 된 아황과

山禽不識恨(산금불식한)          산새는 서린 한을 알지 못하고                      여영. 순임금이 죽었을 때, 아황과 여영이 슬피 울어 떨어진

薄暮自知還(박모자지환)          저물면 돌아와서 깃에 드누나                       눈물이 대나무에 배어 얼룩이 졌다고 한다.)      


33. 학저면압壑渚眠鴨

골짜기 물가에서 졸고 있는 오리들

天付幽人計(천부유인계)          하늘이 유인에게 주신 선물은

淸冷一澗泉(청랭일간천)          맑고도 서늘한 산골짝 샘물                        (혼탁함으로 가득찬 세상을 피하여 그윽한 곳에서 숨어 지내니

下流渾不管(하류혼불관)          아래로 흐름은 자연 그대로                          흐르는 샘물은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태고의 모습이요,

分與鴨閒眠(분여압한면)          오리들 그 속에서 한가히 졸고                      한가로이 졸고 있는 오리들도 세상걱정 없어라.)


34. 격단창포激湍菖蒲

세차게 흐르는 여울 가 창포

聞說溪傍草(문설계방초)          이야기를 들으니 시냇가 창포

能含九節香(능함구절향)          마디마디 향기를 머금었다고                      (시냇가에 피어있는 노랑꽃창포가 마디마다 향기를 품고 있다.

飛湍日噴薄(비단일분박)          여울물 튀어 날마다 뿜어 주니                      여울물에서 튀는 하얀 물방울이 창포잎을 씻어주니 더우나

一色貫炎凉(일색관염량)          더우나 추우나 고운 한 빛깔                         추우나 푸른 한 빛을 자랑한다... 그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35. 사첨사계斜簷四季

비스듬한 처마 밑에 핀 사계화

定自花中聖(정자화중성)          꽃 가운데 으뜸으로 치는 사계화

淸和備四時(청화비사시)          사계절을 한결같이 맑고 온화해                  (초가지붕 처마 끝에 비스듬히 자라고 있는 사계화.                   

斜更好(모첨사갱호)          초가 처마에 비껴 있어 더욱 좋아라               낙엽관목으로 월계화라고도 한다. 맑고 온화하게 피어 있는

梅竹是相知(매죽시상지)          매화와 대도 알아주고 치하를 하네                자태를 매화와 대나무도 알아주니 꽃 중에 꽃이로다.)           


36. 도오춘효桃塢春曉

복사꽃 피는 언덕 봄날의 새벽

春入桃花塢(춘입도화오)          복사꽃 피는 언덕에 봄 찾아왔네

繁紅曉霧低(번홍효무저)          새벽안개에 깔려 있는 붉은 꽃잎들              (이 곳은 말로만 듣던 무릉도원이다. 자욱한 안개 속에 어렴풋이

依迷巖洞裡(의미암동리)          흐끔하고 어렴풋한 바위 골짜기                    보이는 붉은 꽃잎들.. 어느 봄날 새벽에 꿈인듯 걸어가는

如涉武陵溪(여섭무릉계)          무릉의 계곡을 건너가는 듯                          흐드러진 복사꽃 동산..)


37. 동대하음桐臺夏陰

오동나무 언덕 여름의 그늘

巖崖承老幹(암애승노간)          바위 비탈에 뿌리박은 늙은 등걸이

雨露長淸陰(우로장청음)          비이슬에 맑은 그늘 길게 뻗쳤네                 (봉황이 깃드는 오동나무에 비가 내리고 이슬도 적셔 주어  

舜日明千古(순일명천고)          순임금의 밝은 태양 천고에 빛나                   가지와 잎이 길게 뻗혔으니 태양처럼 나타나 암흑의 세계를 밝게

南風吹至今(남풍취지금)          남녘바람 지금도 불어오는 걸                       비춘 순임금. 그때의 훈훈한 바람이 지금도 불어오고 있으니..)


38. 오음사폭梧陰瀉瀑

오동나무 그늘에서 쏟아지는 폭포

扶疎綠葉陰(부소록엽음)          다정하게 감싸주는 푸른 잎 그늘

昨夜溪邊雨(작야계변우)          어젯밤 시냇가에 비가 내려서                     (오동잎 그늘 사이로 폭포가 쏟아져 내리니 하얀 봉황이 춤을

亂瀑瀉枝間(란폭사지간)          가지 새로 폭포가 어지러이 쏟아지네             추는듯 하다. 봉황을 기다리는 마음..이는 대봉대에서

還疑白鳳舞(환의백봉무)          하얀 봉황들이 춤을 추나 봐                         귀한 손님을 기다리는 애틋함과 간절함이 담겨 있다.)


39. 유정영객柳汀迎客

버드나무 물가에서 손님을 맞아

有客來敲竹(유객래고죽)          손님이 찾아 와서 사립문 두드리매

數聲驚晝眠(수성경주면)          두어 마디 소리에 놀라 낮잠이 깼다.            (그리운 사람이 와서 문을 두드리니 반가운 마음에 관도 제대로

扶冠謝不及(부관사불급)          관 붙잡고 쫓아 나가도 보이질 않아               쓰지 못하고 쫒아 나갔지만 사람이 보이질 않으니 얼마나  

繫馬立汀邊(계마입정변)          말을 매고 개울가에 서 있었구나                   놀랐을까? 아! 버드나무 개울가에 말을 매고 서 있는 그리운 이)


40 .격간부거隔澗芙蕖

개울 건너 피어 있는 연꽃 

淨植非凡卉(정식비범훼)          깨끗하게 피어 있는 비범한 송이송이

閒姿可遠觀(한자가원관)          멀리서 바라보니 어찌 저리 포근할까           (개울 건너 연못에 피어있는 연꽃. 멀리 있어도 향기가 바람을

香風橫度壑(향풍횡도학)          향기 바람 가로 질러 골짜기 건너                 타고 방 안 까지 스며드니 그 은은함의 향기 얼마나 포근한지  

入室勝芝蘭(입실승지란)          방에 드니 지란보다 오히려 낫네                  향기로운 난초보다 낫다고 하니 지극한 사랑이다.) 


41. 산지순아散地蓴芽

연못에 흩어져 있는 순채 싹

張翰江東後(장한강동후)          장한이 강동으로 떠나간 뒤에

風流識者誰(풍류식자수)          풍류를 아는 자 누구이든가                       (진나라 장한이라는 사람이 아귀다툼의 도시생활을 포기하고 

不須和玉膾(불수화옥회)          맛있는 농어회를 바라지 말고                      농어회가 먹고 싶다는 핑계로 귀향을 하였으니, 하서 선생은

要看長氷紗(요간장빙사)          길쭉한 이 빙사 맛이나 보소                        연못에 흩어져 있는 순채 싹이 훨씬 낫다고 한다.)


42. 츤간자미櫬澗紫薇

오동나무 물가에 핀 백일홍

世上閒花卉(세상한화훼)          세상에 피어 있는 모든 꽃들은

都無十日香(도무십일향)          열흘 가는 향기가 도대체 없네                   (뜨거운 여름날 무성한 초록잎 사이로 핀 붉은 꽃                  

何如臨澗樹(하여임간수)          어찌하여 시냇가의 이 백일홍만은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 또 피워 올려 

百夕對紅芳(백석대홍방)          백일 내내 붉은 꽃을 대하게 하지                 백일 내내 환하다. 그리운 인연의 꽃 백일홍.)


43. 적우파초適雨芭蕉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錯洛投銀箭(착락투은전)          어지러이 떨어지네 은 화살 던지네

低昻舞聚綃(저앙무취초)          그에 따라 춤을 추는 푸른 비단 폭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은빛 화살처럼 하얗게 튄다. 

不比思鄕聽(불비사향청)          고향에서 듣던 소리 안 떠올려도                   춤을 추는 푸른 잎. 눈앞에서 펼쳐지는 물방울 장단..

還憐破寂廖(환련파적료)          적막을 깨트리는 소리 너무 어여뻐                잎과 물방울의 춤사위, 떨어지는 방울 소리가 너무 예쁘다.)


44. 영학단풍映壑丹楓

골짜기에 비치는 단풍 

秋來巖壑冷(추래암학랭)          가을 오니 바위 골짝 서늘해지고

楓葉早驚霜(풍엽조경상)          단풍잎 일찌감치 서리에 놀라                    (서리에 놀란 잎들이 빨갛게 물이 들어 노을이 되었으니

寂歷搖霞彩(적력요하채)          고요히 흔들리는 노을 고와라                      너울너울 춤을 추는 단풍노을, 골짜기 고인 물에 비치어

婆娑照鏡光(파사조경광)          너울너울 거울에 비치는 그 빛                     깊어가는 가을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45. 평원포설平園鋪雪

동산에 내린 눈

不覺山雲暗(불각산운암)          어느덧 산 구름 끼어 어두워졌네

開窓雪滿園(개창설만원)          창을 여니 동산에 눈이 가득해                   (가을인가 싶더니 동산엔 어느새 겨울이 되었다.

階平鋪遠白(계평포원백)          섬돌까지 골고루 흰 빛 널리 깔렸어               골고루 하얗게 세상을 덮은 눈이 그저 마음이 흐뭇하다.)  

富貴到閒門(부귀도한문)          한적한 집안에 부귀 찾아 왔구나                  


46. 대설홍치帶雪紅梔

눈 덮인 붉은 치자

曾聞花六出(증문화육출)          치자 꽃은 여섯 잎으로 핀다고 하데 

人道滿林香(인도만림향)          온 숲 가득 향기로 덮인다 하데                  (눈서리를 뚫고 올라오는 꽃들은 더욱 경이롭다.

絳實交靑葉(강실교청엽)          붉은 열매 푸른 잎과 서로 어울려                 차가운 눈서리에 묻혔어도 붉은 열매와 푸른 잎이 사이좋게

淸姸在雪霜(청연재설상)          눈서리에 묻혔어도 맑고 고와라                   어울려 있으니 치자의 자태가 얼마나 곱고 아름다웠을까?)


47. 양단동오陽壇冬午

애양단의 겨울 낮 

壇前溪尙凍(단전계상동)          단 앞의 시냇물은 아직 얼어 있는데

壇上雪全消(단상설전소)          단 위에 쌓인 눈은 모두 녹아 버렸네            (팔 베고 따뜻한 햇볕을 맞으니 마치 어머니 품인냥 세상 고달픈

枕臂迎陽景(침비영양경)          팔을 베고 따뜻한 햇볕 맞고 있으니               마음 스르르 다 녹고 멀리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도 여기선

鷄聲到午橋(계성도오교)          닭 울음소리 이 별천지에 들려오네                그저 딴 세상 이야기일 뿐..햇볕이 그리운 계절이다.)


48. 장원제영長垣題詠

긴 담에 써 붙인 시편들     

長垣橫百尺(장원횡백척)          백 척의 긴 담장이 가로 질러라

一一寫新詩(일일사신시)          하나하나 새 시를 써 붙였구나                   (제월당으로 가는 긴 담장에 마치 한 폭의 병풍을 펼쳐 놓은 것

有似列屛障(유사열병장)          영락없이 병풍을 벌려 놓은 듯                     같은 시들을 써 붙여 놓았으니                                      

勿爲風雨欺(물위풍우기)          비바람에 속아선 안 되고 말고                     세상에서 험한 꼴을 많이 보았어일까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다시는 속아선 안된다고 다짐한다.)


      



제월당에서 보이는 광풍각은 소쇄원의 하단에 있는 별당으로 손님이 머무는 곳이다. 

빛 광光, 바람 풍風, 집 각閣.. 맑은 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같은 집이고, 그런 바람을 맞이하는 집이기도 하다.

제월당에서 맞이한 손님을 광풍각에서 머무르게 하였으니,

주인의 마음 헤아리며 마루에 올라 앉아 흐르는 물을 보며 잠시 편안한 쉼을 가져본다.

사방에 마루가 있고 속에는 온돌방이 있으며,

마루에 앉아 있다가 추워지면 언제라도 들어와 몸을 데우라는 뜻이 담겨 있는것 같고

손님을 배려하는 주인의 따뜻한 마음에 마치 어머니의 품인냥 오랫동안 머물러 본다.

   


                                                               이기동 지음 | 사진 송창근


우연히 들런 소쇄원에서의 시간들은 꿈처럼 흐르고, 광풍각에서 보낸 따뜻한 마음도 어느새 가사문학관으로 향하는데..



그 곳에서는 연못이 있고 구름을 찧는 물레방아도 있다.

마음을 씻는 세심정,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것 같은 물고기들이 반기는 천국의 난간 반월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식영정息影亭은 또 어떠한가?  이곳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지고 있었던 무거운 짐도 다 내려놓고 탐욕에서 벗어나

너도 나도 산도 물도 바람도 구름도 모두가 자연이 되어 한 몸이 되니 식영정에서의 홀가분함이란 참으로 욕심없는 행복한 마음이다.


우러러 보아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내려다 보아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 행복의 조건.

지금의 면앙정俛仰亭은 기와집이지만,원래는 초가삼간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달도, 청풍도, 사방에 둘러 있는 강산도 모두 친구이니

그렇게 모두가 하나가 되면 진정한 행복이고, 곧 아래로 굽어 보아 부끄러움이 없고, 위로 우러러 보아 부끄러움이 없는 것,

면앙정에서의 발걸음은 환벽당으로 이어진다.


환環은 옥으로 만든 고리다. 고리가 둥글기 때문에 빙 둘러 있다는 뜻이기도 한다. 벽碧은 푸른 옥돌을 뜻하며, 당堂은 집이다.

환벽당은 옥처럼 푸른빛으로 둘러 싸여 있는 집. 나주 목사를 지낸 사촌 김윤제 선생이 영재를 가르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식영정이 본래의 마음을 찾는 곳이라면 면앙정은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게 되는 곳이고, 환벽당은 영재를 기르는 곳이다.


송강정에서 송강은 사미인곡을 썼다. 스승 하서의 열정을 가사문학으로 꽃을 피웠으니,

이는 하서 선생이 하늘 같은 임금 인종을 만나 잊지못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 

송강의 마음에도 그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임을 향한(하늘 같은 임금을 만나는 것) 그리움의 절절함은 사미인곡으로 남겨졌으며,

현재 정각 바로 옆에는 1955년에 건립한 「사미인곡」시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