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과 정보/중남미

황소 2009. 1. 6. 11:02

아카풀코 해변의 '오두방정' 자전거 여행자

 


 

           ▲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아카풀코 편의시설이 잘 되어 있는 까닭에 미국인들이 많이 방문한다. 





마사뜰란, 푸에르토 바야르타와 함께 멕시코에서 태평양의 3대 리조트로 꼽히는 아카풀코. 2월이라는 시기가 무색하게 엄청난 더위는 바다에 풍덩 빠지라며 파도를 통해 유혹해 온다. '나 맥주병이거든?'·간단히 대꾸하고 해변이나 걸을 요량으로 무심코 모래사장에 발을 내딛었다.


'앗 뜨거뜨거 앗 뜨거뜨거~.'


자전거를 도로에 잠시 세워두고 모래를 밟는데 그 열이 초고속 광랜으로 머리끝까지 전달된다. 호들갑 떠는 나에게 시선이 일제히 쏟아진다. 다들 미국에서 한가로운 휴가를 즐기러 오신 노인양반들이다.


 

                                      ▲ 열대 해변 바다가 나를 부른다. 




"이봐, 자전거 자네건가? 여기 함부로 세워두면 위험하네. 도난당할지 몰라."


생각해 보니 그랬다. 자전거와 파도까지의 거리는 30m정도에 중간은 모래. 대놓고 훔쳐가면 따라잡을 수도 없는 노릇. 다들 염려해 주는 통에 파도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다시 자전거를 세워둔 도로 쪽으로 가야만 했다. 하지만 뜨거운 모래밭에 발바닥 화상 입을라.


"스승님, 어찌하여 물에 빠지지 않고 걸어갈 수 있사옵니까?"


"왼발이 물에 닿는 순간 오른발을 내딛으면 되느니라."


참으로 명쾌한 지혜로다. 왼발이 물에 닿는 순간 얼른 몸의 중심을 오른발로 이동시키고 또 오른발이 물에 닿을라치면 얼른 왼발을 옮겨 걸을 수 있다는 이 긍정적 마음가짐. 물이나 뜨거운 모래나 다를 바가 없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 그렇다면 나도 도전해 보자.


 

           ▲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여행자를 위해 상인들은 부지런히 타코와 샐러드를 팔러 다닌다. 




 

                                       ▲ 해변의 도너츠! 정말 먹고 싶었다. 




자, 지금부터 여기 뜨거운 모래밭을 맨발로 깃털처럼 날아가는 신통방통 쇼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최면을 걸면 마늘도 달다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마음의 컨트롤부터 했다.


'안 뜨겁다, 안 뜨거울걸, 안 뜨거울까, 안 뜨겁겠지, 안 뜨거웠으면, 안 뜨겁다고 믿어, 안 뜨겁…아잉, 몰라. ……뜨악.'


"앗 뜨거! 엄마야!"


파라솔 그늘을 벗어나 살포시 한 발짝 내딛자마자 발바닥에 불이 났다.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자 다시 한 번 주변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쏠린다. 때문에 창피하게 가만있을 수 없어 무작정 내딛었다. 그리고 발바닥에 모터를 단 듯 달려 버렸다.


겨우 10m 남짓 되는 거리. 하지만 그 몇 초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엄살 비명이 쩌렁쩌렁 메아리친다. 내 모습은 의심할 여지없이 한 마리 목도리 도마뱀 그것이었다. 뒤에서 저것 좀 보라며 깔깔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색함을 무마시키기 위해 멋쩍게 손 한 번 흔들어 줬다. 곧바로 몇 명의 노인들이 답례로 손을 흔들어줬다. 잠잠한 해변, 작은 에피소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보인다.


샌들 하나만 있어도 되는데.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나는 왜 천둥벌거숭이처럼 뜨거운 태양아래 맨발로 모래밭을 헤매며 주책없이 날뛰는지 심각하게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이 화끈거려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단지 얼음과자 하나 입에 물고는 바로 옆 백사장으로 걸음을 옮기는 게 최선이었다.


 

▲ 아카풀코 만의 온다 비치(Playa Honda) 넉넉한 여행자들이 주로 찾으며 아카풀코의 5개 비치 중 유일하게 요트선착장이 있는 곳이다. 






옆 해변에는 한 곳에 집중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지만 자전거를 놓고 해변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 때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걱정 말고 다녀오슈. 내가 자전거 잘 보고 있을테니."


맨발의 남자, 옷은 때로 가득하고, 누런 이를 드러내는 몰골은 오래 전부터 영양실조에 시달린 듯하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술냄새까지 폴폴 풍기는 그의 눈은 결정적으로 맥이 풀려 있었다. 그를 신뢰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호기심은 더욱 억누를 수 없었다.


"고마워요. 근데 손 대면 알죠?"


남자는 문제없다고만 한다. 그러고는 배시시 웃는다. 나는 카메라만 챙겨들고 해변으로 급히 달려갔다. 물론 이번엔 신발을 신은 상태. 까칠까칠한 모래가 신발로 들어가는 게 영 마뜩찮지만 뜨거운 열기에 맨발로 고생하는 것보단 낫다. 뒤를 돌아보니 남자가 문제없다며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 어기영차 그물을 당겨라! 




'대관절 무슨 일로 사람들이 이리 모여든 걸까?'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다름아닌 수많은 펠리컨들이 해변에 몰려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을 전혀 경계하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아마도 오랜 시간동안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체득한 듯 보였다. 주위에는 수영하다 말고 이 광경을 보러 몰려든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잠시 후, 어부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뭍으로 그물을 끌어당기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합심해서 도와주기 시작했다. 덕분에 수월하게 끌린 그물에는 살이 통통 오른 물고기들이 제법 많이 걸려들었다. 이것이다! 펠리컨들이 몰려든 이유. 행여 콩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녀석들은 부지런히 주위를 맴돌았다.



그 때 맘씨 착한 어부가 고기 한 마리를 던져주니 한 녀석이 바로 입으로 꿀꺽. 고기수확이 풍족했는지 연이어 몇 마리 더 던져주니 서로 먹이를 먹으려고 물살을 헤치고 때론 낮게 날아오르는 등 일장풍파가 따로 없다. 어떤 녀석들은 아예 사람들 옆에 붙어 세월아 네월아 먹이만 기다리기도 한다.


만화에서는 부리 속에 새끼를 넣고 잘도 날아다니던데 정말일까? 그리고 모 치킨 광고에 나오는 펠리컨, 대체 닭과는 무슨 관계이기에? 어쨌든 부리 아래로 늘어진 피부가 포인트인 펠리컨을 가까이서 이렇게나 많이 보는 건 처음이었다. 조류는 완전 징그러워하는 하는 성격(특히 닭)이지만 그저 희극적으로 묘사된 펠리컨을 실제로 보는 게 신기해 가까이 다가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 해변에 펠리컨이 모여든 이유는? 




 

▲ 바로 먹이 그물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생선을 얻기 위해서다. 종종 어부들이 펠리컨들에게 고기를 던져주면 귀신같이 받아 먹는다. 




'아차! 내 정신줄!'


그렇게 사람들 틈에 정신없이 구경하고 나니 별안간 자전거 생각이 났다. 황급해진 난 순간 뒤로 돌아 맹렬히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컥컥 막힐 정도로 뛰어오니 다행히 자전거와 그 남자 모두 제 자리에 있었다.


십년감수했다. 어쩌자고 그런 무모한 짓을. 남자는 여유롭게 웃으며 '네 자전거를 봐라, 무사하다'라는 표정으로 손으로 자전거를 가리켰다. 검사해 보니 자전거와 짐 모두 이상 없었다. 남자는 자신이 이렇게 지켜줘서 덕분에 펠리컨 구경을 잘했을 거라며 공로를 인정해 달라는 분위기였다.


이건 십중팔구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고마움에 대한 답례로 사례를 하리라 마음먹었지만 하도 동양인을 떠보는 흉흉한 사기에 여러 번 당한 터라 남자의 입에서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몰랐다.


"나도 나름 여기서 자전거 지키느라 고생 많이 했는데. 용돈 좀 주면 안 될까?"


"얼마요?"


"음…."


남자는 제법 고민하는 듯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을 보는 순간 긴장했다. 잘못 걸려든 걸까? 그가 잠깐의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글쎄, 그래도 한 2페소(한화 260원)는 주셔야지."


'2페소? 겨우 2페소라니! 정말인가? 오, 믿을 수가 없군.'


나는 속으로 '지화자!'를 외치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 대꾸했다.


"제 자전거 봐 주느라 고생했어요. 당신 참 좋은 사람이로군요."


마침 주머니엔 5페소 짜리 동전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자비를 끌어모은 듯한 중후한 표정으로 동전을 쥐어줬다. 마지막에 어깨를 두드려 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주는 액션 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남자는 희희낙락하며 얼굴이 활짝 펴졌다.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요?"


"저요? 한국이요."


"꼬레아노! 정말 좋은 사람들이죠. 암튼 고맙수다."


그저 침 바른 소리요, 한국 사람은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을 성 싶은 남자는 동전 한 닢 움켜쥐고는 만선의 꿈을 이룬 어부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제야 긴장이 확 풀어진 난 길가 돌의자에 앉아 마음을 추슬렀다. 아무리 그래도 낯선 남자에게 자전거를 맡기는 건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지금은 다만 운이 좋았을 뿐.


 

                         ▲ 횡재! 뜻하지 않게 복어를 잡았다. 멕시칸들도 복어 좋아하려나? 




바다하면 갈매기인데 여기는 펠리컨의 천국인지 갈매기가 한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는 여전히 펠리컨들이 모여 아직 다 끌지 않는 그물만 주시하고 있다. 의자에 앉아 신발에 양말까지 벗어 모래를 털어내며 생각해 본다.


경치 끝내주는 태평양 연안의 3대 휴양도시라더니 나는 뭔가? 자전거 내팽겨 쳐두고 분위기 있게 해변 걸을까 했는데 난 맨발일 뿐이고, 비키니 입은 미녀를 살짝 그려보았지만 여긴 죄다 노인들일 뿐이고, 아카풀코 해변의 즐거움은 그저 펠리컨 보는 건데 난 닭튀김 생각날 뿐이고.


'안습' 자전거 여행자는 오늘도 목 놓아 부른다. 


"이 세상 위엔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 뿐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여행은 때론 가혹한 떡밥으로 여행자의 가슴을 흔든다. 그리고 영혼을 홀린다. 하지만 여행자는 알면서도 흔들린다. 한 장의 사진, 한 편의 여행기에 홀라당 맘을 뺏긴다. 그래서 마치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대책없다. 그러면서 모두 꿈꾼다. 내 인생은 남들과는 달라 나방이 아닌 나비라는 걸.


그리고 여행을 결심한 순간 세상은 이미 꽃밭이 되어있다. 그리고 나비가 되는 마법에 걸려든다. 바로 자신의 상상 속에서. 낯선 그리움이 가져다주는 여행 바이러스는 활력과 무력을 위태롭게 오가며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비타민 한 알 먹고 상쾌한 기분이 되든지, 마약 한 알 먹고 끝없이 현실을 도피하든지, 그 선택은 여행자 자신의 몫이다.    

 

              ▲ 오르노스 비치(Playa Hornos)의 야간 풍경 2월인데도 날씨가 후끈후끈하다. 




[오마이뉴스 문종성 기자]Copyrights ⓒ 오마이뉴스,/네이버뉴스에서 옮겨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