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 김금자

又泉 김금자 2018. 10. 28. 19:48


모래시계 /이익준

시간이란 우주의 형상이 저럴거다.
그 우주의 밑바닥으로
부러질 듯 좁은 통로를 지나
위층의 우주에는
크로노스가 통치하고
아랫층에는 죽은 시간의 무덤일거다.

크로노스의
잘디잔 시간 입자는
저 좁은 길목을 통과하는 순간
죽음의 우주로 떨어져 내린다.
털끝만한 오차도 단절도 없이
아래로 흘려보내는 시간들의 찰나

크로노스 우주에 가득한 생명들
때를 따라 꽃피우는
식물들의 왁자한 웃음이 있고
빼앗기 위해 서로 잡아먹는
피 냄새 낭자한 맘몬의 전장도
제몫의 입자가 저 종말의 구멍에 다가가도

스르륵 아무 기미도 없이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뱀처럼
죽음의 경계에 이르기 전에
한번쯤 하늘 쪼개듯 천둥 번개 내려
후다닥 정신 돌아올 수 있다면
두 손에 움켜진 허욕은 놓아버리고

별빛이 영롱한 밤에
스르르 미끄러져 내리기를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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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의 독백 /이익준

다 벗고 당신 앞에 섰습니다.
펄럭이던 푸른 가지도
뜨거운 욕망으로 피워냈던 꽃과
마지막 화려한 불꽃도
당신의 책벌 앞에
속수무책으로 다 내려놓았습니다.

굴곡진 욕망에 허리 뒤틀리고
험한 세윌 갈라터진 몸둥아리
우듬지 꺾여나간 상처에
종양 같은 검버섯이 살을 파먹어도
매서운 삭풍에 다 드러내 놓았습니다.
당신의 노여움이 끝날 때까지.

언제까지 입니까
징벌의 분량을 채우지 못하였습니까
악업의 무게가 그리도 무겁습니까
밤마다 살을 에는 서릿발과
매서운 칼바람의 채찍 견디겠습니다
악취 풍기는 몸둥아리만 가려주신다면

마침내 펼쳐진 순백의 제단
온 세상이 정결의 바다가 되고
호된 징벌을 거두시는
용서의 손길이 나를 덮었습니다
이제 조용히 새 생명의 움을 키우며
겸손히 봄을 기다리려 합니다.

순결의 정령이 내속에 뿌리내리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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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무덤 /이익준

 

당신 누구였소
누가 물었으랴
덕양산 기슭에 뉘인 후...
무시로 지나가는 바람조차도
눈길 주어 본적 있으랴

 

임자 없는 생이 스러진 날
누군가 여기 모태로 돌려보낸

그루터기
창검 쟁강거리던 어느 전장에서
무쇠칼 휘두르던 승군(僧軍)이였을까
세상 막장 살던 후레자식의 아비였을까

 

절벽아래 한강은
아득한 시간의 원천에서 부터
회색 침묵으로 잠잠히 흐르고
세월의 강풍에 다 삭아
흔적조차 흩어버린 풍장(風葬) 끝에
번호석만 무상을 꽂고 있다

 

너 죽으면
이름이야 돌판에 새겨 주겠지
아서라
한낱 족적 없이 사라지는 그림자인 것을
돌판에 새긴 이름인들
후미진 시간의 뒷길에서
세월의 풍장에 이끼 될 것을

 

다만 영원의 나라에 새겨질 영혼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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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저리도... /이익준

단풍이 저리도 붉게 타는 것은
한 생의 절정에서 피워내는 꽃인 줄 알았습니다
산호빛 잎새로 영롱해지는 것은
그리움 넘쳐 투명해진 사랑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일렁이던 오색 잎새들
벗어내고 쓸쓸해진 가을 끝자락
나무아래 갈색 보료가 덮이고 나서야
단풍이 드는 까닭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랬었구나
그렇게 붉게 노랗게 잎새들이 뜨거웠던 건
출렁이던 삶의 몫 끝내고도
그 푸르던 서늘함 지워내려는
불잉걸이였구나


생을 마친 주검으로도
온몸 눕혀 땅을 덮고 뿌리를 덮어
설한 녹이려는
사랑이구나
사람아, 죽어서라도 한뼘 땅을 녹여 볼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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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익준

마산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졸업
베트남전 참전(육군)
동아건설, 효성물산 링크시스템(역)
(주)라벨라 대표이사(역)
샘터문학상 수상(최우수상)
문학저널 신인문학상 수상
(사)시인들의샘터문학 대외협력이사
사계속시와사진이야기그룹 회원
백제문단 회원
송설문학 회원
한국문인그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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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시인들의 샘터문학
글쓴이 : 송청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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