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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2009. 12. 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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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2009. 11. 8. 15:31

 

 

 

중앙일보 / 조인스닷컴 박교수박사 '파랑도 블로그' 가기

http://blog.joins.com/media/index.asp?uid=parangd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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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2009. 11. 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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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아트센터, 친일인명사전 보고대회 대관 일방 취소 박교수 박사의 궤적

2009/11/07 13:37

복사 http://blog.naver.com/ecoutopia/30073227722

숙명아트센터, 친일인명사전 보고대회 대관 일방 취소
일부 수구단체 대회 당일 기자회견 개최 이유로... 연구소 예정대로 강행 예정
09.11.07 12:12 ㅣ최종 업데이트 09.11.07 12:12 이경태 (sneercool)
  
스펠네트웍스 측은 6일 저녁 공문을 통해 "금일 현재 현실적으로 공연장 사무실로 내방하거나 연락을 취해오는 여러 단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민족문제연구소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단체 집회 형태로 발전되리라 예측하지 않을 수 없어 대관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라고 대관 취소 이유를 밝혔다
ⓒ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 발간보고대회가 파행적으로 치러지게 됐다.

 

앞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남일보 장자연 주필의 유족 등이 낸 가처분신청이 모두 기각되면서 사전이 온전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선 보일 것으로 보였으나 발간보고대회를 이틀 앞둔 지난 6일 오후 7시, 대회 장소인 숙명아트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는 (주)스펠네트웍스가 민족문제연구소와 맺은 대관계약을 취소한다고 통보해왔다.

 

스펠네트웍스 측의 대관계약 취소 사유는 발간보고대회 당일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등 일부 수구 단체들이 숙명아트센터 앞에서 민족문제연구소 해체촉구 기자회견을 여는 것이었다.

 

스펠네트웍스 측은 공문을 통해 "당사는 민족문제연구소의 학술행사에 대관을 허락하였고 현재도 당 행사의 성격을 판단하여 대관을 철회할 이유도 의지도 없다"면서도 "금일 현재 현실적으로 공연장 사무실로 내방하거나 연락을 취해오는 여러 단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민족문제연구소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단체 집회 형태로 발전되리라 예측하지 않을 수 없어 대관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또 "본 아트센터는 공연장이 있는 3층 이외에 1층과 2층에 문화재 보관 및 전시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어 문화재 손실 및 기타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본 대관을 취소할 수밖에 없음을 결정했다"며 "운영의 첫 번째 목표가 관람객의 안전인 점을 민족문제연구소가 십분 이해해달라"고 밝혔다.

 

스펠네트웍스 측의 대관계약 취소 의사를 지난 5일 저녁 처음 접한 연구소 측은 보고대회가 2~3일 밖에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대체 장소를 구할 수 없고 당일 행사를 최대한 평온한 분위기에서 치러 시설 보호와 참가자 안전에 만전을 기할 것임을 거듭 약속하며 철회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스펠네트웍스 측은 끝내 이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일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정책실장은 "지금 이 상황이야말로 현재 대한민국의 자화상이고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어야 하는 이유라 생각한다"며 개탄을 금치 못했다.

 

또 다른 연구소 관계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와 장지연의 유족들이 제기한 게재 및 배포, 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이 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어 친일인명사전의 정당성이 법적으로 확인된 상태에서 이 같이 어이없는 사태가 발생해 당혹스러울 뿐이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수구단체와 보이지 않는 과도한 압력행사와 치졸한 방해공작은 역사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이성을 찾고 합리적 토론의 장에 나서길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대관계약 취소 통보에도 예정대로 숙명아트센터에서 행사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숙명아트센터를 보고대회 장소로 알리는 초청장도 5천 장 이상 발송된 상태다.

 

연구소 측은 "당일 저녁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지만 천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참여할 예정이라 장소를 옮길 수도 없다"며 "일반 시민분들도 행사에 많이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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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은 외면한 '박정희 혈서'...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친일 행적’ 신문 공개! videolog

2009/11/06 18:59

복사 http://blog.naver.com/ecoutopia/30073180660

조중동은 외면한 '박정희 혈서'
"기존 편향적 시각과 무관치 않아"…일각에선 원본공개 요구
2009년 11월 06일 (금) 14:11:34 김종화 기자 ( sdpres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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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가 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혈서까지 쓰며 만주군에 지원했다는 내용의 옛 신문기사를 공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5일 지상파·케이블 방송과 인터넷언론, 6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들이 이를 보도했으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보도하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5일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박 전 대통령의 '혈서 지원' 기사가 실린 만주신문 1939년 3월31일자 사본을 공개했다. <혈서 군관 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교사)로부터>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 따르면, 당시 스물세살이던 박 전 대통령은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교사로 재직 중 만주국 군관을 지원했으나 자격연령(16∼19세) 초과로 떨어졌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1939년 다시 지원하면서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라는 혈서를 지원서류와 동봉해 당시 군관 모집 담당자를 감격시켰다는 것이다.

   
  ▲ 한겨레 11월6일자 1면.  
 

   
  ▲ 세계일보 11월6일자 8면.  
 

5일 연합뉴스 뉴시스 노컷뉴스 YTN MBC KBS에 이어 6일에는 경향신문과 국민일보 세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내일신문 등이 1면 또는 내부 지면에서 이를 전했다. 하지만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문화일보는 단신으로도 보도하지 않았다.

한편 이번 공개로 여러 누리꾼이 박 전 대통령의 혈서설이 사실로 밝혀졌다며 박 전 대통령의 행적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특히 조중동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편향적인 시각을 취해온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반면 일각에서는 혈서 원본이 공개된 것은 아니라며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향후 민족문제연구소가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할 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한국일보 11월6일자 12면.  
 
이런 가운데 독립신문은 <민족문제연구소 폭로에 문제는 없는가?>라는 칼럼에서 "식민지 조선출신 청년이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학 한 것이 친일이면 왜왕에게 동궁요배를 하고 덴노헤이까 반자이(天皇陛下萬歲)를 불렀을 (민족문제연구소장) 임준열 씨 부형을 비롯한 식민지 조선 백성들은 친일파인가 여부도 따져 볼 일이 아닌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초입력 : 2009-11-06 14:11:34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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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육사 졸업 뒤 항일연합군 공격
“임정 입장서 박정희는 적군 장교”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친일 행적’ 신문 공개
권오성 기자
.article, .article a, .article a:visited, .article p{ font-size:14px; color:#222222; line-height:24px; }
»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소위에 임관하기 직전인 1944년 6월 말, ‘견습 사관’으로 있을 때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두고 나눠져 다툴 정도로 여전히 살아 있는 쟁점이다. 그가 1939년 대구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에 혈서까지 써가며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한 사실이 5일 당시 신문 보도를 통해 확인되면서,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의 한 축은 그의 친일 여부다. 민족문제: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연구소 등이 오는 8일 내놓을 <친일인명사전>에 담긴 그의 행적(에이(A)4 4쪽 분량)을 보면, 그는 일본인 신분으로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했다. 군관학교는 일본계와 만주계로 나눠 뽑았는데, 박 전 대통령은 일본계로 시험을 치렀다.

그는 자격미달로 두 차례나 군관학교에 떨어진 뒤 세 번째 도전으로 입학했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만주국 ‘마지막 황제’ 푸이가 주는 금장시계도 받았다. 그래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편입할 수 있었고, 졸업 뒤 일본군 소위로 예비역에 편입됨과 :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동시에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일본군 예비역 소위는 일본군이 언제든지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는 사실상 일본 장교”며 “만주국이 일본의 괴뢰국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군 소위’라는 지위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요즘 군대의 소위와 비슷한 계급으로 보아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당시 일본군 소위는 ‘고등관’으로서 판사와 비슷한 등급”이라며 “일본 육사의 조선인 입교자는 매년 1명꼴로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고 만주군관학교도 사정은 비슷했다”고 말했다.

» ‘친일인명사전’에 나타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





박 전 대통령이 44년 임관해 근무한 만주국군 보병 제8단도 사실상 일본군 히노 다케오 소장이 만든 부대다. 히노 소장은 만주국 국경경비대의 :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해산 과정에서 일본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사람들을 따로 모아 38년께 부대를 창설했고, 그 뒤 제8단으로 재편성됐다. 이 부대는 주로 동북항일연군 또는 소련과 전투를 벌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부대에서 인정받는 ‘엘리트’였다. 그는 단장 부관실의 ‘을종부관’을 맡았다. 을종부관은 현재의 작전장교에 해당하는 중요 보직이다.

박한용 연구실장은 “한국 사회에서 공인의 친일 여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공적인 영역에서 인물 평가의 요소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며 “박 전 대통령의 공과를 평가함에 있어 그의 친일 문제도 평가의 한 축이 돼야 하고, 이럴 때 비로소 합리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1939년 3월31일치 <만주신문> 7면 기사 전문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 그리고 ‘한목숨 다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쓴 종이와 함께 동봉된 등기로 도착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모든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스러운줄 아오나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할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이 다하도록 충성을 다 바칠 각오입니다. (중략) 한 사람의 만주국 군인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도 바라지 않고.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고자 해도 자격 연령이 16살 이상 19살까지이기 때문에 23살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同君)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滿洲新聞』1939.3.3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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血書▶◁軍官志願
 半島の若き訓導から

 二十九日治安部軍政司徵募課へ朝鮮慶尙北道聞慶西部公立小學校訓導朴正熙君(二三)より熱烈なる軍官志願の手紙が戶籍騰本、履歷書、敎練檢定合格證明書とともに"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と血書した半紙を封入、書留で送付されて?く係員を感激せしめた、同封の手紙には

 (前略)

 日系軍官募集要綱を拜讀しますと小生は凡ての條件に不適合の樣であります。甚だ僭濫にて恐懼の至と存じますけれども御無理を申しあげて是非國軍に御採用下さいませんてせうか

 (中略)

 日本人として恥ちざつだけの精神と氣魄とを以て一死御奉公の堅い決心でこざいます。しつかりやります。命のつ?く限り忠誠を盡す覺悟でこざいます。

 (中略)

 一人前の滿洲國軍人として滿洲國のため延いては祖國のため何で一身の榮達を欲しませう、滅私奉公、犬馬の忠を盡す決心でこざいます

 (後略)

 とペンで達筆に認めてあり同君の軍官志願の手紙はこれで二度目であるが軍官なるには軍籍のある者に限られてをり、軍官學校へ入れるにしても資格年齡十六歲以上十九歲であるため二十三歲では年が多過ぎるので同君には氣の毒ではあるが鄭重に謝絶することになつた=寫眞 朴君

 

»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군 혈서 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31일치 <만주신문> 사본.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박정희 만주군관학교 지원때 “목숨바쳐 충성” 혈서 사실로
민족문제연구소, 당시 신문 공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만주국 군관에 지원하면서 “죽음으로써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의 혈서를 써냈다는 당시 신문 기사가 발견됐다.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박 전 대통령의 ‘혈서 지원’이 객관적 방증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친일인명사전>의 전면 공개(8일)를 사흘 앞둔 5일, 이 사전에 친일인사로 수록된 박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와 함께 박 전 대통령이 1939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에 응모하면서 지원서류와 함께 ‘충성’을 다짐하는 혈서와 청탁 편지 등을 보냈다고 보도한 당시 <만주신문> 기사를 함께 공개했다.

만주국에서 일본인들이 발행한 <만주신문>은, 1939년 3월31일치 7면에서 ‘혈서 군관지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29일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교사)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 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목숨 다 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고 보도했다.

또 이 신문은 박정희 훈도가 편지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라고 적었다고 전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게재·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며 “불필요한 논란이 정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민족문제연구소 “일본장교가 만주군 지휘”
박지만 “아버지는 만주국 용병” 주장에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서 군관 지원’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공개한 5일, 공교롭게도 이 연구소에는 법원에서 보내온 서류가 배달됐다.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51)씨가 <친일인명사전>의 배포를 막으려고 법원에 낸 ‘친일인명사전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 서류가 송달돼 온 것이다. 박씨는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 “아버지에 관한 내용을 <친일인명사전>에 실어선 안 된다”며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만약 법원이 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오는 8일로 예정된 ‘친일인명사전 국민보고대회’는 무산될 수도 있다. 또 이미 인쇄에 들어간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자체가 중단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씨는 게재 금지를 신청한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국의 용병이었을 뿐 일본군이 아니었고 △만주국군의 주적이 마오쩌둥의 팔로군이었던 만큼 조선인 또는 독립군에 위해를 가한 사실이 없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민족문제연구소 쪽은 이날 “박 전 대통령이 ‘일본군 예비역 소위’로 사실상의 일본군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박 전 대통령의 후손들이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박씨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에 있을 때 역시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국으로 일본 관동군의 통제를 받았고, 만주국군은 일본군 장교의 지휘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며 “대일선전포고를 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입장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적국의 장교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만주국의 주적은 마오쩌둥의 팔로군’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팔로군도 다수의 조선 청년들이 포함된 항일 연합군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관련기사
박지만 “아버지 친일사전 게재 안돼”
박정희 만주군관학교 지원때 “죽음으로 충성” 혈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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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기사
박정희는 적군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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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육사 졸업 뒤 항일연합군 공격
“임정 입장서 박정희는 적군 장교”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친일 행적’ 신문 공개
권오성 기자
.article, .article a, .article a:visited, .article p{ font-size:14px; color:#222222; line-height:24px; }
»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소위에 임관하기 직전인 1944년 6월 말, ‘견습 사관’으로 있을 때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두고 나눠져 다툴 정도로 여전히 살아 있는 쟁점이다. 그가 1939년 대구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에 혈서까지 써가며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한 사실이 5일 당시 신문 보도를 통해 확인되면서,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의 한 축은 그의 친일 여부다. 민족문제: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연구소 등이 오는 8일 내놓을 <친일인명사전>에 담긴 그의 행적(에이(A)4 4쪽 분량)을 보면, 그는 일본인 신분으로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했다. 군관학교는 일본계와 만주계로 나눠 뽑았는데, 박 전 대통령은 일본계로 시험을 치렀다.

그는 자격미달로 두 차례나 군관학교에 떨어진 뒤 세 번째 도전으로 입학했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만주국 ‘마지막 황제’ 푸이가 주는 금장시계도 받았다. 그래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편입할 수 있었고, 졸업 뒤 일본군 소위로 예비역에 편입됨과 :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동시에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일본군 예비역 소위는 일본군이 언제든지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는 사실상 일본 장교”며 “만주국이 일본의 괴뢰국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군 소위’라는 지위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요즘 군대의 소위와 비슷한 계급으로 보아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당시 일본군 소위는 ‘고등관’으로서 판사와 비슷한 등급”이라며 “일본 육사의 조선인 입교자는 매년 1명꼴로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고 만주군관학교도 사정은 비슷했다”고 말했다.

» ‘친일인명사전’에 나타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





박 전 대통령이 44년 임관해 근무한 만주국군 보병 제8단도 사실상 일본군 히노 다케오 소장이 만든 부대다. 히노 소장은 만주국 국경경비대의 :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해산 과정에서 일본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사람들을 따로 모아 38년께 부대를 창설했고, 그 뒤 제8단으로 재편성됐다. 이 부대는 주로 동북항일연군 또는 소련과 전투를 벌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부대에서 인정받는 ‘엘리트’였다. 그는 단장 부관실의 ‘을종부관’을 맡았다. 을종부관은 현재의 작전장교에 해당하는 중요 보직이다.

박한용 연구실장은 “한국 사회에서 공인의 친일 여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공적인 영역에서 인물 평가의 요소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며 “박 전 대통령의 공과를 평가함에 있어 그의 친일 문제도 평가의 한 축이 돼야 하고, 이럴 때 비로소 합리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1939년 3월31일치 <만주신문> 7면 기사 전문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 그리고 ‘한목숨 다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쓴 종이와 함께 동봉된 등기로 도착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모든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스러운줄 아오나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할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이 다하도록 충성을 다 바칠 각오입니다. (중략) 한 사람의 만주국 군인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도 바라지 않고.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고자 해도 자격 연령이 16살 이상 19살까지이기 때문에 23살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同君)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滿洲新聞』1939.3.3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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血書▶◁軍官志願
 半島の若き訓導から

 二十九日治安部軍政司徵募課へ朝鮮慶尙北道聞慶西部公立小學校訓導朴正熙君(二三)より熱烈なる軍官志願の手紙が戶籍騰本、履歷書、敎練檢定合格證明書とともに"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と血書した半紙を封入、書留で送付されて?く係員を感激せしめた、同封の手紙には

 (前略)

 日系軍官募集要綱を拜讀しますと小生は凡ての條件に不適合の樣であります。甚だ僭濫にて恐懼の至と存じますけれども御無理を申しあげて是非國軍に御採用下さいませんてせうか

 (中略)

 日本人として恥ちざつだけの精神と氣魄とを以て一死御奉公の堅い決心でこざいます。しつかりやります。命のつ?く限り忠誠を盡す覺悟でこざいます。

 (中略)

 一人前の滿洲國軍人として滿洲國のため延いては祖國のため何で一身の榮達を欲しませう、滅私奉公、犬馬の忠を盡す決心でこざいます

 (後略)

 とペンで達筆に認めてあり同君の軍官志願の手紙はこれで二度目であるが軍官なるには軍籍のある者に限られてをり、軍官學校へ入れるにしても資格年齡十六歲以上十九歲であるため二十三歲では年が多過ぎるので同君には氣の毒ではあるが鄭重に謝絶することになつた=寫眞 朴君

 

»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군 혈서 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31일치 <만주신문> 사본.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박정희 만주군관학교 지원때 “목숨바쳐 충성” 혈서 사실로
민족문제연구소, 당시 신문 공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만주국 군관에 지원하면서 “죽음으로써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의 혈서를 써냈다는 당시 신문 기사가 발견됐다.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박 전 대통령의 ‘혈서 지원’이 객관적 방증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친일인명사전>의 전면 공개(8일)를 사흘 앞둔 5일, 이 사전에 친일인사로 수록된 박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와 함께 박 전 대통령이 1939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에 응모하면서 지원서류와 함께 ‘충성’을 다짐하는 혈서와 청탁 편지 등을 보냈다고 보도한 당시 <만주신문> 기사를 함께 공개했다.

만주국에서 일본인들이 발행한 <만주신문>은, 1939년 3월31일치 7면에서 ‘혈서 군관지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29일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교사)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 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목숨 다 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고 보도했다.

또 이 신문은 박정희 훈도가 편지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라고 적었다고 전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게재·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며 “불필요한 논란이 정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민족문제연구소 “일본장교가 만주군 지휘”
박지만 “아버지는 만주국 용병” 주장에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서 군관 지원’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공개한 5일, 공교롭게도 이 연구소에는 법원에서 보내온 서류가 배달됐다.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51)씨가 <친일인명사전>의 배포를 막으려고 법원에 낸 ‘친일인명사전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 서류가 송달돼 온 것이다. 박씨는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 “아버지에 관한 내용을 <친일인명사전>에 실어선 안 된다”며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만약 법원이 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오는 8일로 예정된 ‘친일인명사전 국민보고대회’는 무산될 수도 있다. 또 이미 인쇄에 들어간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자체가 중단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씨는 게재 금지를 신청한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국의 용병이었을 뿐 일본군이 아니었고 △만주국군의 주적이 마오쩌둥의 팔로군이었던 만큼 조선인 또는 독립군에 위해를 가한 사실이 없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민족문제연구소 쪽은 이날 “박 전 대통령이 ‘일본군 예비역 소위’로 사실상의 일본군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박 전 대통령의 후손들이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박씨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에 있을 때 역시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국으로 일본 관동군의 통제를 받았고, 만주국군은 일본군 장교의 지휘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며 “대일선전포고를 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입장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적국의 장교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만주국의 주적은 마오쩌둥의 팔로군’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팔로군도 다수의 조선 청년들이 포함된 항일 연합군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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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 > 특집 > 박교수 박사 ! 월드팍유토피아혁명

2009/11/0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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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4일 오전 5시 0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좋은글 좋은생각

2009/11/04 05:01

복사 http://blog.naver.com/ecoutopia/30072973784



기사입력 2009-11-03 07:24:11

"스님들 신뢰도·청렴성 낮아"
불학연구소, 조계종 스님 1000명 대상 설문조사

 한국사회에서 조계종 스님들은 타 종교 성직자들에 비해 신뢰도와 이미지ㆍ사회적 영향력ㆍ전문성 등이 낮다고 자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불교가 당면한 시급한 사회적 과제로 신뢰회복을 꼽았고 청정한 계행의 실천을 승려가 갖춰야 할 중요 자질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가 지난 7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조계종 스님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서 '한국사회에서 스님에 대한 이미지가 좋게 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그렇다' '매우 그렇다'라는 대답에 비해 10% 이상이 높았다.

스님들은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종교로 개신교(64.3%)와 가톨릭(18.4%) 다음으로 불교(16.4%)를 선택했다. 또 한국불교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신뢰회복(50.1%)을, 이웃 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제기되는 과제로는 불교의 정체성 강화(54.2%)를 꼽았다.

승려의 신뢰도 전문성 등을 묻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평가가 긍정적인 평가보다 많았다. 특히 스님들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높다(13%)'는 답이 '낮다'(49.7)는 답의 20% 수준에 불과했다.
승가의 위상 강화를 위해서는 승려 개인의 자질 함양(29.4%)과 양질의 승려교육(28.9%), 출가정신의 강화(23.2%) 순서로 답했다. 결국 스스로 교육과 출가정신 회복을 통해 청정한 승가를 이룰 때 사회적인 위상도 강화된다는 것이다.

또한 불교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참여불교운동(60.4%)과 복지 구호사업(23.9%), 환경보호(20.7%)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뜻을 보였다. 그러나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의견이 지배적(55%)이었다.

최근 사회적인 문제로 손꼽히는 종교갈등과 종교편향에 대해서도 심각성을 나타냈다.

응답자의 81%가 '한국사회의 종교간 갈등이 심하다'고 답했고, 이 중 개신교와 불교의 갈등(75.3%)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람직한 포교 방법으로는 '봉사와 자비행의 실천(43.1%)' '신도교육(19.6%)' 등을 선호했으며,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해서는 '전담인력 양성(44.7%)'과 '종단의 국제역량 강화(22.2%)'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존경하는 스님은 원효 스님(80명)ㆍ성철 스님(57명)ㆍ달라이 라마(23명) 순이었으며, 타 종교인으로는 고 김수환 추기경(63명)ㆍ테레사 수녀(34명)가 압도적이었다.

/ 김수미기자
지방제휴사 / 충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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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4일 오전 4시 31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videolog

2009/11/04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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