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교수 박사는?/새마을박사

유토피아 2010. 1. 23. 23:08

 

백기완의 박정희 전대통령에대한 평가

 

 

 


              

   새마을 ♬새벽종이 울리네 

 
    백기완의 박정희 전대통령에대한 평가
 
  『 박정희는 우리 같은 사람 3만명을 못살 게 했지만

    김영삼 김대중은 3천만 명을 못살게 했다.』고 하는

    신산의 세월을 딛고 나서야 떨림의 음성으로 절규하는

    백기 완 선생의 충심어린 고백을 들어보고 유신을 비난하라. 

    젊은이들아!!
   금세기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
    세종대왕보다 더 존경받는 사람, 그것도 무려 20%가 넘는
   최고의 인물로 존경받는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

   국민소득 76불에서 1,500 불, 인류 역사상 그 유래가 없는 
   단기간에 20배 성장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정치 꾼'이 아닌
   진정한 지도자이며, 애국자가 과연 누군지 아느냐 말이다.

  실의 도탄에 빠져 나태한 국민에게 우리도 하면 된다는
  새마을 정신혁명으로 잠재력을 일 깨워 자신감을 안겨준 지도자,
  그가 바로 박정희 대통 령이다. 

  젊은이들아!!
  그런 그가 독재자였음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그 어느 지도자들보다도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 물,
  가장 친근감이 있어 대화하고 싶은 지도자가 박정 희라며
  그리워하는 이유는 또, 왠지 아는가?

  '행복지수'라는 것이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새벽부터
  손이 부르트게 일을 하였지만 내일의 희망과 비전이
  있었으며 삶의 의욕이 충만해 즐겁고 행복했었다는 것을
  젊은이들은 알아야 한다.

  독재자 박정희라?? 
  젊은이들 아, 당시 독재 시대라 해도 일반 대다수 국민은
  생활하 고 살아가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과 불편함이 없었다.

  다만, 독재니 자유니 하며 이론적 정의만을 내세우는
  소수의 사람들과 정치를 하겠다는 극소수의 '정치꾼'들을
  제압하였으나 그 또한 누구를 위한 억압적 제압이었겠느냐?

  부정 축재하려고 그랬느냐?
  자식들과 친인척을 도와 주려고 그랬느냐?
  아니면 출세하여 족보에 남기려고 억압적 제압을 하였느냐?

  젊은이들아!!,
  1960년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대한민국 그때에서,
  자유, 독재, 민주주의를 생각해 보고 박대통령을 생각해 봐라!!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 식욕, 성욕, 금욕, 지배욕, 이라 했 다.
  그 첫째 '식욕', 먹는 것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우선 될 수 없다고 본 다.

  경제력이 뒷밭임 없는 민주주 의!,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는 민주주 의!,
  모래사막 위에 탑을 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

  당시 우리보다 몇 배를 더 잘 살던 필리핀과 북 한을 보고,
  타이, 말레이시아를 봐라, 지금 이들 국가 들이 어떤가를…….
  한 나라의 발전이 지도자가 누구냐 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 아니겠 나.

  그래도 독재자 박정희라 폄하 하 며,
  그의 업적과 공을 깎아내리려 애쓰는 젊은이들이 많다.

  왜, 그럴까?
  16,000불에서 살다 보니 76불의 삶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이 다.

  보릿고개가 뭔지 모르고 다이어트에 신경 쓰다 보니
  과거 60년대가 실제로 어땠는지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유니 독재니 하며 교과서적 정의만 을 내세워 따진다.

  젊은이들아!!
  우리나라 정부 일 년 예산의 80%를 미국의 지원으로 살았고
  춘궁기가 되면 굶어 죽는 사람이 흔하게 발생했지 만,
  뉴스거리조차 안되던 때가 바로, 60년대였 다.

  배를 곯아 봐야 인생이 뭔지 삶의 철학도 깨우 칠 수 있음에
  너무나 잘 먹어 뱃살 빼기를 고민하는 젊 은이들아!!

  그때는 여성은 살이 쪄야 맏며느리 감 이라 인기가 있었고,
  남자는 살이 찌고 배가 나와야 사 장이며 인격, 신분 상승으로 여겨
  겨울이면 옷을 많이 입고 살쪄 배 나온 시늉을 하던
  그때를 아느냐 말이 다.

  오늘의 시각에서 본다면 웃긴다고 할까?
  눈물겨운 일이라고 할까?

  젊은이들아!!
  과거가 없는 현 재가 있을 수 없으며, 과거를 모르면 현재의
  풍요로움 또한, 그 가치를 모르는 법!!.

  1960년 4월19일 학 생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장면 과도정 부가 들어섰을 때, 각종 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노 동자, 농민, 상인, 이발사, 식당주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길거리로 몰려나와 데모…….

  학생들도 교장 선생님 조회 시간이 너무 길다 데모,
  짧 은 머리 기르자 데모, 공부시간 단축하자 데모,
  하다못 해 초등학생, 선생들까지도 데모, 데모,…….

  온 나라가 일 년 열두 달 365일 데모로 지새워 오죽하면
  데모를 하지 말자고 데모를 하였으니, 나라가 어떻게 되였겠는가?

  이를 지켜본 세계에서는 KOREA는 '데모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최루탄 가스를 소비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워 밤이면 마음 놓고 밖을 나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치안은 여기서 이 루 다 말할 수가 없이 무법이 판을 치던 그때,
  하다못 해 깡패도 주먹으로 정치를 하던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더욱이 기가 막힐 노릇은 이승만 독재로부터 자유를 찾았으니,
  모든 것이 자유라며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런 이유 없이 발로 차거나
  주먹을 휘둘러대며 '자유'가 뭔지도 모르는 어처구니 없는
  무지의 국민들이 많았으며, (당시에는 초등학교 무학자가 대다수였다.)

  더더욱 기가 막힐 노릇은 서울 광화문에서 데모하는 모습을 북한에서
  라디오로 생중계하여 현장 실황을 남한에서도 들을 수 있었으니,
  얼?떨? 많은 남파 간첩들이 포진되어 안보가 위태로웠는지,
  그때를 아느냐 말이다.

  김일성 자서전에 당시 남침하지 못한 것 후회한다 했지 않은가.
  그때,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젊은이들아!!

  이렇듯, 굶어 죽지 않으면 공산화되기 일촉즉발의 풍전등화였던
  나라를 구하고자 구국에 일념으로 박정희가 나타난 것 아닌 가.

  역사에 만약 이란 없다 하지만 당시에 박정희 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당리당략과 사 리사욕, 출세욕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고 보면 지금 쭘 이 나라는 어떻게 되였을까?

  너희들이 제일 좋 아하는 축구가 월드컵 세계 4강에 올라 대한민국,~,
  짝 , 짝, 짝~, 하며 즐거움을 맞볼 수가 있었을 것이며,
  올림픽을 개최하여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릴 수가 있었을까?
  또, OECD 경제 대열에 오르는 오늘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아,
  사업가는 10년, 정치가는 최소한 10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지혜가 있어야 하며 냉철한 판단력과 결단력, 추진력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

  당 시 일본으로부터 대일 청구권으로 받은 돈으로 동남아 국가들은
  호텔 짓고, 백화점 짓고, 선박 구입 등, 비생산적인 곳에 썼지 만,
 
  박대통령은 10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하며
  이승만정권 때부터 14년간이 나 지지 부진하게 끌어 오던 한일수교를,
  결단, 결행, 단행하여

  산업의 쌀이라 일컫는 제철공장 짓고, 고 속도로 등, 경제 재건을 위한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여 지금은 조선업, 철강업, 기타, 중공업 분야에서
  세계 1, 2위로 일본과 경쟁하고 있으며

  경부고속도로는 지역간 격차를 줄이고 산업의 동맥으로 토목 건설
  기술 축적으로 지구촌 곳곳에 건설수주 외화 획득, 매년 고도성장을
  30년 이상 지속, 지금은 세계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박대통령의 업적을 기반으로 가 아닌 가.

  젊은이들아!!
  그런 그를 사후 2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친일파청산이란 명제하에
  알 수 없는 정치적 잣대로 재고 재단하여 매도하고 자,

  공(功)은 빼고 과(過)만 조명하는 '친일파 박 정희' 만화책 만들어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 세뇌시키려 하고 살인범 김재규를
  민주화인사 운운하며

  세계 수십여 개 국가, 수만 명이 하루가 멀다 날 아와
  가르쳐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며 배워간 새마을운 동까지도
  사실 왜곡되게 가르치고 있다 하니 도대체 이 럴 수가 있느냐 말이다.

  이웃 나라 중국에서도 박 대통령에 탁월한 지도력을 배우고자 연수용
  교재로 '박 정희 전기'란 책이 중앙 위원회 산하 당정 고위 간부들의
  교과서가 되였으며 서점에서는 베스트에 올라 인기리에 팔리고 있어
  중국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에 비유하며 높이 평가함인 데,

  이 나라에서는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인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악독한 독재자 김정일에게는 '님'을 꼬 박꼬박 붙여가며
  존칭을 쓰고 통큰 지도자라며 추켜 세 우면서도

  박대통령에게는 '님'은 커녕, 그가 쓴 친 필이라 해서 광화문,
  운현각 현판을 뜯어내 부시고 빠 개고, 하다못해 그 시절에
  심어 젓 다해서 나무까지 뽑 아내 그의 흔적까지 지워버리려 하니
  이런 기가 막힐 노릇이 어디 또 있는가 말이다.

  또, IMF 때보다도 살기 힘든다고 아우성인 경제는 뒷전이요,
  진보라 자칭 하며 개혁하겠다고 과거 캐기에 국론 분열을 일삼으며

  국민 80%가 반대하는 국보법을 김정일이가 원하는 대로 폐기하겠다고
  발버둥치는 그들!! 그래서 국민들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드는 그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전직 국무총 리, 대법원장, 국회의장 등을 비롯해
  대한민국 건국이 래 사상 최대 규모의 사회 각계 원로 9,000여 명이
  시 국선언을 하였으니 도대체 이들이 누구며,
  왜 이러는 지 진짜 알 수 없는 노릇 아니냐?.

  세대 간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좌파들에 부화뇌동하는 젊은이들아!!,

  한 번의 실수는 5년이 아니라 10년이 갈 수도 있으며
  한번 잘못 선택한 지도자로 겪어야 할 고통의 대가는
  자손 대대로 후회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라!!.

  천하에 사기꾼 김대업을 이용하고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정권을
  휘어잡고선 탄핵 땐 예수 부활을 비교하면서 다시 태어났다고
  자랑하는 좌파정권, 그 배후세력들이 지금까지의 언행 을 보면,

  아마도 언젠가는 독재자 부인 육영수여사 살해했다고
  살인범도 의인으로 추대하여 광화문에 이순 신 동상 철거하고
  문세광 동상 세우자고 촛불 든 젊은 이들 선동할까 정말 걱정된다.

  똑바로 알아라!!
  비록 한 인간이 죄가 있다고 하여도 그 죄를 불공평하 게 들추어내는
  행위는 죄악이며 어떤 사회든 부조리가 있고 사회적 병리가 없는
  문제없는 사회가 없는 데,

  역사 바로 세워야겠다며 유독, 하나만 싸잡아 성토하고, 그래서
  갈아 치우고자 한다면 이는 인정될 수 없는 반, 민주적 행태가 아닌가.

  개혁이란 명제 하에 법을 현실보다 고도의 도덕적 가치 기준에
  매달아 놓고 그 기준에 걸리면 모조리 갈아 엎어 버린다면,

  칼자루를 쥔 쪽에서 의도적으로 휘둘러대는 알 수 없는 심판의 잣대로
  매장시키려 한다면 이 어찌 민주를 부르짖던 자들의 행태란 말인가!!

  그런 기형적 사고의 두뇌로 개혁 이다 역사 바로 세우겠다 한다면
  그 누구도 '왕따' 시 켜 매장시킬 수 있으며,

  세종대왕도 독재자로 몰아 세우고 그분의 많은 업적을 모조리 비판하여
  쓰레기통 으로 집어넣어야 하며 한글도 때려 치워야 되는 것 아닌가.

  젊은이들아!!
  사람의 가치관은 정권이 바 뀌고 물질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며
  세월이 아무리 흘러 간다 할지라도 바뀔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라!!.

  권좌, 출세를 위한 일이면 그 어떤 가치와 업적도 부정하려 드는
  부도덕한 정치인들과 그 배후 세 력들, 그리고 이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젊은이들이 오늘 의 잣대로 비판하려 애쓰는 것을 지켜보면서,

  두 손을 불끈 쥐고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오늘을 살던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는 민족중흥의 신앙을 굳게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노라고 떳떳하게 대답하자.'라고 한 민족중흥의 시 조,
  박정희 대통령, 서거 30주년이 되어 생각해 본 다.

젊은이들아!!
고박정희 대통령을 제대로 알자!!

 

 救國300正義軍決死隊長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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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낙원

 
 
 

박정희대통령싱크탱크/청와대새마을강의

유토피아 2009. 11. 14. 16:27

고 박정희 대통령 92회 탄신제 박근혜 의원의 갈길 ?

       세종시 문제에 대하여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사연은 너무나 간결 명확하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분명하게 얘기했잖아요. 또 질문을 하신다고 제 말이 달라지나요

        제 생각을 분명히 말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박 전 대표는 기자들을 향해 세종시에 대한 질문 대신 다른 질문이 이어지자 다음 질문을 눈치 챈 듯

       “질문을 억지로 만드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라며 웃었다.

     박 전 대표는 이어 “이승에 안 계신 지금 저와 여러분이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생일 선물은

     그 유지를 받들어서 아버지께서 꿈꾸셨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박근혜 의원의 대구 구미 생가 에서 잇엇던 사연들이 간결하게 기사화되엿다

 

     2009 ,11 ,14 .  팍스월드 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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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질문을 하신다고 제 말이 달라지나요` [조인스]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9/11/14/3539480.html?cloc=nnc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14일 세종시 문제에 대해 종전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일을 맞아 경북 구미시 상모동 생가에서 거행된 ‘박정희 대통령 92회 탄신제’에 참석해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분명하게 얘기했잖아요. 또 질문을 하신다고 제 말이 달라지나요? 제 생각을 분명히 말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들의 질문은 전날 국무총리실이 “현행 세종시법은 정부 중앙부처 9부를 옮기는 사실상의 수도 분할로 이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세종시의 성격을 행정 중심에서 기업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법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한 것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입장을 듣기 위한 것이었다. 그 동안 박 전대표는 “(정부 부처 이전) 백지화는 안되고 만약 자족기능이 부족하다면 원안을 지키면서 ‘플러스 알파’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다음은 탄신제 행사 후 박 전 대표와의 일문일답.

-1년 만에 박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했다. 오늘 행사는 어떠했는지.
“아까 행사에서 다 얘기를 했는데…. 오늘이 아버지의 생신이기는 하지만 나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날이기도 하다.”

-최근 연설에서 ‘소외된 사람들도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 등 선진 복지 국가에 대한 대한 언급이 많다.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이어 박 전 대표는 기자들을 향해 세종시에 대한 질문 대신 다른 질문이 이어지자 다음 질문을 눈치 챈 듯 “질문을 억지로 만드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네요”라며 웃었다.

-(이에 기자들이) 정부에서 세종시를 행정도시가 아닌 기업도시로 만들려고 하는데…
“생각을 분명하게 얘기했잖아요. 또 질문을 하신다고 제 말이 달라지나요? 제 생각을 분명히 말했어요.”

박 전 대표는 이 질문을 마치자 곧바로 차에 올랐다.
이에 앞서 박근혜 전 대표는 탄신제 행사에서 유족 대표 인사를 통해 “대도약의 꿈이 싹텄던 이곳 생가에 올 때마다 저는 지도자와 국민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나라가 얼마나 바뀔 수 있고, 국민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새삼 느끼곤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허태열·박종근·김태환·이해봉·이인기·서상기·이정현·이한성·김태원·조원진·정해걸·손범규·이종혁·김옥이 의원 등 친박 의원 17명과 청중 3000여명이 참석했다. 또 김범일 대구광역시장, 김관용 경북도지사,남유진 구미시장도 자리를 했다.
박 전 대표는 이어 “이승에 안 계신 지금 저와 여러분이 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생일 선물은 그 유지를 받들어서 아버지께서 꿈꾸셨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모든 정성을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생신상 제례, 박 전 대통령 영상물 상영, 남유진 구미시장의 기념사, 김관용 경북도지사, 한나라당 허태열 최고위원, 김성조 정책위의장, 김태환 의원의 축사, 박 전 대표의 유족대표 인사와 이어진 기념공연 순으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박 전 대표는 이어 친박계 의원들과 오찬을 함께 한 뒤 시내 박정희 체육관에서 열린 ‘제10회 대한민국 정수 미술·서예·문인화·사진대전’에 참석해 축사하고 전시 작품을 둘러봤다. 박 전 대표는 축사에서 “경제도 중요하지만 문화·신뢰·법치 등 무형 인프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는 국격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루아침에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종시에 대해 종전 입장을 재확인한 박 전 대표는 당분간 침묵 모드를 이어갈 전망이다. 한번 밝힌 자신의 세종시 구상에 대해 이날 밝혔듯 종전 입장을 고수하면서 당분간 정부의 움직임과 여론 추이를 지켜볼 것이란 얘기다. 박 전 대표는 이달초 자신을 찾아온 주호영 특임장관에게도 “제 입장은 이미 밝혔고 할 말은 이미 다했다”고 했었다. 친박계도 박 전 대표의 세종시 입장은 과거나 현재나 변함이 없으므로 지금으로선 정부의 대안을 기다리는게 순서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하지만 친박 내부에서는 정부가 세종시를 기업도시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한 친박 의원은 “정부가 이제 민간합동위원회를 만들고 여론을 들을 듯 하더니 미리 기업도시 추진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며 “여론을 듣기는 커녕 모든 것이 자신들이 생각한 바대로 움직여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구미=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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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2009. 11. 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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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아트센터, 친일인명사전 보고대회 대관 일방 취소 박교수 박사의 궤적

2009/11/07 13:37

복사 http://blog.naver.com/ecoutopia/30073227722

숙명아트센터, 친일인명사전 보고대회 대관 일방 취소
일부 수구단체 대회 당일 기자회견 개최 이유로... 연구소 예정대로 강행 예정
09.11.07 12:12 ㅣ최종 업데이트 09.11.07 12:12 이경태 (sneercool)
  
스펠네트웍스 측은 6일 저녁 공문을 통해 "금일 현재 현실적으로 공연장 사무실로 내방하거나 연락을 취해오는 여러 단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민족문제연구소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단체 집회 형태로 발전되리라 예측하지 않을 수 없어 대관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라고 대관 취소 이유를 밝혔다
ⓒ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친일인명사전 발간보고대회가 파행적으로 치러지게 됐다.

 

앞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남일보 장자연 주필의 유족 등이 낸 가처분신청이 모두 기각되면서 사전이 온전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선 보일 것으로 보였으나 발간보고대회를 이틀 앞둔 지난 6일 오후 7시, 대회 장소인 숙명아트센터를 위탁 운영하고 있는 (주)스펠네트웍스가 민족문제연구소와 맺은 대관계약을 취소한다고 통보해왔다.

 

스펠네트웍스 측의 대관계약 취소 사유는 발간보고대회 당일 '박정희바로알리기국민모임'·'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등 일부 수구 단체들이 숙명아트센터 앞에서 민족문제연구소 해체촉구 기자회견을 여는 것이었다.

 

스펠네트웍스 측은 공문을 통해 "당사는 민족문제연구소의 학술행사에 대관을 허락하였고 현재도 당 행사의 성격을 판단하여 대관을 철회할 이유도 의지도 없다"면서도 "금일 현재 현실적으로 공연장 사무실로 내방하거나 연락을 취해오는 여러 단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민족문제연구소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단체 집회 형태로 발전되리라 예측하지 않을 수 없어 대관을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또 "본 아트센터는 공연장이 있는 3층 이외에 1층과 2층에 문화재 보관 및 전시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어 문화재 손실 및 기타 관람객들의 안전을 위하여 본 대관을 취소할 수밖에 없음을 결정했다"며 "운영의 첫 번째 목표가 관람객의 안전인 점을 민족문제연구소가 십분 이해해달라"고 밝혔다.

 

스펠네트웍스 측의 대관계약 취소 의사를 지난 5일 저녁 처음 접한 연구소 측은 보고대회가 2~3일 밖에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대체 장소를 구할 수 없고 당일 행사를 최대한 평온한 분위기에서 치러 시설 보호와 참가자 안전에 만전을 기할 것임을 거듭 약속하며 철회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스펠네트웍스 측은 끝내 이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일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정책실장은 "지금 이 상황이야말로 현재 대한민국의 자화상이고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어야 하는 이유라 생각한다"며 개탄을 금치 못했다.

 

또 다른 연구소 관계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와 장지연의 유족들이 제기한 게재 및 배포, 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이 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어 친일인명사전의 정당성이 법적으로 확인된 상태에서 이 같이 어이없는 사태가 발생해 당혹스러울 뿐이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수구단체와 보이지 않는 과도한 압력행사와 치졸한 방해공작은 역사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이성을 찾고 합리적 토론의 장에 나서길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소는 대관계약 취소 통보에도 예정대로 숙명아트센터에서 행사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숙명아트센터를 보고대회 장소로 알리는 초청장도 5천 장 이상 발송된 상태다.

 

연구소 측은 "당일 저녁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지만 천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참여할 예정이라 장소를 옮길 수도 없다"며 "일반 시민분들도 행사에 많이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 포스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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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은 외면한 '박정희 혈서'...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친일 행적’ 신문 공개! videolog

2009/11/0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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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은 외면한 '박정희 혈서'
"기존 편향적 시각과 무관치 않아"…일각에선 원본공개 요구
2009년 11월 06일 (금) 14:11:34 김종화 기자 ( sdpress@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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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가 5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혈서까지 쓰며 만주군에 지원했다는 내용의 옛 신문기사를 공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5일 지상파·케이블 방송과 인터넷언론, 6일자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들이 이를 보도했으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보도하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5일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박 전 대통령의 '혈서 지원' 기사가 실린 만주신문 1939년 3월31일자 사본을 공개했다. <혈서 군관 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교사)로부터>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 따르면, 당시 스물세살이던 박 전 대통령은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교사로 재직 중 만주국 군관을 지원했으나 자격연령(16∼19세) 초과로 떨어졌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1939년 다시 지원하면서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라는 혈서를 지원서류와 동봉해 당시 군관 모집 담당자를 감격시켰다는 것이다.

   
  ▲ 한겨레 11월6일자 1면.  
 

   
  ▲ 세계일보 11월6일자 8면.  
 

5일 연합뉴스 뉴시스 노컷뉴스 YTN MBC KBS에 이어 6일에는 경향신문과 국민일보 세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내일신문 등이 1면 또는 내부 지면에서 이를 전했다. 하지만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문화일보는 단신으로도 보도하지 않았다.

한편 이번 공개로 여러 누리꾼이 박 전 대통령의 혈서설이 사실로 밝혀졌다며 박 전 대통령의 행적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특히 조중동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편향적인 시각을 취해온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반면 일각에서는 혈서 원본이 공개된 것은 아니라며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어 향후 민족문제연구소가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할 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한국일보 11월6일자 12면.  
 
이런 가운데 독립신문은 <민족문제연구소 폭로에 문제는 없는가?>라는 칼럼에서 "식민지 조선출신 청년이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학 한 것이 친일이면 왜왕에게 동궁요배를 하고 덴노헤이까 반자이(天皇陛下萬歲)를 불렀을 (민족문제연구소장) 임준열 씨 부형을 비롯한 식민지 조선 백성들은 친일파인가 여부도 따져 볼 일이 아닌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초입력 : 2009-11-06 14:11:34   최종수정 : 0000-00-0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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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육사 졸업 뒤 항일연합군 공격
“임정 입장서 박정희는 적군 장교”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친일 행적’ 신문 공개
권오성 기자
.article, .article a, .article a:visited, .article p{ font-size:14px; color:#222222; line-height:24px; }
»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소위에 임관하기 직전인 1944년 6월 말, ‘견습 사관’으로 있을 때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두고 나눠져 다툴 정도로 여전히 살아 있는 쟁점이다. 그가 1939년 대구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에 혈서까지 써가며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한 사실이 5일 당시 신문 보도를 통해 확인되면서,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의 한 축은 그의 친일 여부다. 민족문제: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연구소 등이 오는 8일 내놓을 <친일인명사전>에 담긴 그의 행적(에이(A)4 4쪽 분량)을 보면, 그는 일본인 신분으로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했다. 군관학교는 일본계와 만주계로 나눠 뽑았는데, 박 전 대통령은 일본계로 시험을 치렀다.

그는 자격미달로 두 차례나 군관학교에 떨어진 뒤 세 번째 도전으로 입학했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만주국 ‘마지막 황제’ 푸이가 주는 금장시계도 받았다. 그래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편입할 수 있었고, 졸업 뒤 일본군 소위로 예비역에 편입됨과 :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동시에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일본군 예비역 소위는 일본군이 언제든지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는 사실상 일본 장교”며 “만주국이 일본의 괴뢰국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군 소위’라는 지위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요즘 군대의 소위와 비슷한 계급으로 보아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당시 일본군 소위는 ‘고등관’으로서 판사와 비슷한 등급”이라며 “일본 육사의 조선인 입교자는 매년 1명꼴로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고 만주군관학교도 사정은 비슷했다”고 말했다.

» ‘친일인명사전’에 나타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





박 전 대통령이 44년 임관해 근무한 만주국군 보병 제8단도 사실상 일본군 히노 다케오 소장이 만든 부대다. 히노 소장은 만주국 국경경비대의 :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해산 과정에서 일본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사람들을 따로 모아 38년께 부대를 창설했고, 그 뒤 제8단으로 재편성됐다. 이 부대는 주로 동북항일연군 또는 소련과 전투를 벌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부대에서 인정받는 ‘엘리트’였다. 그는 단장 부관실의 ‘을종부관’을 맡았다. 을종부관은 현재의 작전장교에 해당하는 중요 보직이다.

박한용 연구실장은 “한국 사회에서 공인의 친일 여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공적인 영역에서 인물 평가의 요소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며 “박 전 대통령의 공과를 평가함에 있어 그의 친일 문제도 평가의 한 축이 돼야 하고, 이럴 때 비로소 합리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1939년 3월31일치 <만주신문> 7면 기사 전문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 그리고 ‘한목숨 다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쓴 종이와 함께 동봉된 등기로 도착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모든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스러운줄 아오나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할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이 다하도록 충성을 다 바칠 각오입니다. (중략) 한 사람의 만주국 군인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도 바라지 않고.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고자 해도 자격 연령이 16살 이상 19살까지이기 때문에 23살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同君)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滿洲新聞』1939.3.3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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血書▶◁軍官志願
 半島の若き訓導から

 二十九日治安部軍政司徵募課へ朝鮮慶尙北道聞慶西部公立小學校訓導朴正熙君(二三)より熱烈なる軍官志願の手紙が戶籍騰本、履歷書、敎練檢定合格證明書とともに"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と血書した半紙を封入、書留で送付されて?く係員を感激せしめた、同封の手紙には

 (前略)

 日系軍官募集要綱を拜讀しますと小生は凡ての條件に不適合の樣であります。甚だ僭濫にて恐懼の至と存じますけれども御無理を申しあげて是非國軍に御採用下さいませんてせうか

 (中略)

 日本人として恥ちざつだけの精神と氣魄とを以て一死御奉公の堅い決心でこざいます。しつかりやります。命のつ?く限り忠誠を盡す覺悟でこざいます。

 (中略)

 一人前の滿洲國軍人として滿洲國のため延いては祖國のため何で一身の榮達を欲しませう、滅私奉公、犬馬の忠を盡す決心でこざいます

 (後略)

 とペンで達筆に認めてあり同君の軍官志願の手紙はこれで二度目であるが軍官なるには軍籍のある者に限られてをり、軍官學校へ入れるにしても資格年齡十六歲以上十九歲であるため二十三歲では年が多過ぎるので同君には氣の毒ではあるが鄭重に謝絶することになつた=寫眞 朴君

 

»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군 혈서 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31일치 <만주신문> 사본.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박정희 만주군관학교 지원때 “목숨바쳐 충성” 혈서 사실로
민족문제연구소, 당시 신문 공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만주국 군관에 지원하면서 “죽음으로써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의 혈서를 써냈다는 당시 신문 기사가 발견됐다.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박 전 대통령의 ‘혈서 지원’이 객관적 방증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친일인명사전>의 전면 공개(8일)를 사흘 앞둔 5일, 이 사전에 친일인사로 수록된 박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와 함께 박 전 대통령이 1939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에 응모하면서 지원서류와 함께 ‘충성’을 다짐하는 혈서와 청탁 편지 등을 보냈다고 보도한 당시 <만주신문> 기사를 함께 공개했다.

만주국에서 일본인들이 발행한 <만주신문>은, 1939년 3월31일치 7면에서 ‘혈서 군관지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29일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교사)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 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목숨 다 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고 보도했다.

또 이 신문은 박정희 훈도가 편지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라고 적었다고 전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게재·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며 “불필요한 논란이 정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민족문제연구소 “일본장교가 만주군 지휘”
박지만 “아버지는 만주국 용병” 주장에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서 군관 지원’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공개한 5일, 공교롭게도 이 연구소에는 법원에서 보내온 서류가 배달됐다.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51)씨가 <친일인명사전>의 배포를 막으려고 법원에 낸 ‘친일인명사전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 서류가 송달돼 온 것이다. 박씨는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 “아버지에 관한 내용을 <친일인명사전>에 실어선 안 된다”며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만약 법원이 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오는 8일로 예정된 ‘친일인명사전 국민보고대회’는 무산될 수도 있다. 또 이미 인쇄에 들어간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자체가 중단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씨는 게재 금지를 신청한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국의 용병이었을 뿐 일본군이 아니었고 △만주국군의 주적이 마오쩌둥의 팔로군이었던 만큼 조선인 또는 독립군에 위해를 가한 사실이 없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민족문제연구소 쪽은 이날 “박 전 대통령이 ‘일본군 예비역 소위’로 사실상의 일본군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박 전 대통령의 후손들이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박씨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에 있을 때 역시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국으로 일본 관동군의 통제를 받았고, 만주국군은 일본군 장교의 지휘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며 “대일선전포고를 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입장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적국의 장교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만주국의 주적은 마오쩌둥의 팔로군’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팔로군도 다수의 조선 청년들이 포함된 항일 연합군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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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만 “아버지 친일사전 게재 안돼”
박정희 만주군관학교 지원때 “죽음으로 충성” 혈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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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적군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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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육사 졸업 뒤 항일연합군 공격
“임정 입장서 박정희는 적군 장교”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친일 행적’ 신문 공개
권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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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소위에 임관하기 직전인 1944년 6월 말, ‘견습 사관’으로 있을 때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두고 나눠져 다툴 정도로 여전히 살아 있는 쟁점이다. 그가 1939년 대구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중에 혈서까지 써가며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한 사실이 5일 당시 신문 보도를 통해 확인되면서,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의 한 축은 그의 친일 여부다. 민족문제: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연구소 등이 오는 8일 내놓을 <친일인명사전>에 담긴 그의 행적(에이(A)4 4쪽 분량)을 보면, 그는 일본인 신분으로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했다. 군관학교는 일본계와 만주계로 나눠 뽑았는데, 박 전 대통령은 일본계로 시험을 치렀다.

그는 자격미달로 두 차례나 군관학교에 떨어진 뒤 세 번째 도전으로 입학했으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만주국 ‘마지막 황제’ 푸이가 주는 금장시계도 받았다. 그래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편입할 수 있었고, 졸업 뒤 일본군 소위로 예비역에 편입됨과 :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동시에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일본군 예비역 소위는 일본군이 언제든지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는 사실상 일본 장교”며 “만주국이 일본의 괴뢰국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군 소위’라는 지위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요즘 군대의 소위와 비슷한 계급으로 보아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당시 일본군 소위는 ‘고등관’으로서 판사와 비슷한 등급”이라며 “일본 육사의 조선인 입교자는 매년 1명꼴로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고 만주군관학교도 사정은 비슷했다”고 말했다.

» ‘친일인명사전’에 나타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





박 전 대통령이 44년 임관해 근무한 만주국군 보병 제8단도 사실상 일본군 히노 다케오 소장이 만든 부대다. 히노 소장은 만주국 국경경비대의 :clear_pop_hidden_delay()" style="Z-INDEX: 999">해산 과정에서 일본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사람들을 따로 모아 38년께 부대를 창설했고, 그 뒤 제8단으로 재편성됐다. 이 부대는 주로 동북항일연군 또는 소련과 전투를 벌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부대에서 인정받는 ‘엘리트’였다. 그는 단장 부관실의 ‘을종부관’을 맡았다. 을종부관은 현재의 작전장교에 해당하는 중요 보직이다.

박한용 연구실장은 “한국 사회에서 공인의 친일 여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공적인 영역에서 인물 평가의 요소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며 “박 전 대통령의 공과를 평가함에 있어 그의 친일 문제도 평가의 한 축이 돼야 하고, 이럴 때 비로소 합리적인 평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1939년 3월31일치 <만주신문> 7면 기사 전문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 그리고 ‘한목숨 다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쓴 종이와 함께 동봉된 등기로 도착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모든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스러운줄 아오나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할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이 다하도록 충성을 다 바칠 각오입니다. (중략) 한 사람의 만주국 군인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도 바라지 않고.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고자 해도 자격 연령이 16살 이상 19살까지이기 때문에 23살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同君)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滿洲新聞』1939.3.3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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血書▶◁軍官志願
 半島の若き訓導から

 二十九日治安部軍政司徵募課へ朝鮮慶尙北道聞慶西部公立小學校訓導朴正熙君(二三)より熱烈なる軍官志願の手紙が戶籍騰本、履歷書、敎練檢定合格證明書とともに"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と血書した半紙を封入、書留で送付されて?く係員を感激せしめた、同封の手紙には

 (前略)

 日系軍官募集要綱を拜讀しますと小生は凡ての條件に不適合の樣であります。甚だ僭濫にて恐懼の至と存じますけれども御無理を申しあげて是非國軍に御採用下さいませんてせうか

 (中略)

 日本人として恥ちざつだけの精神と氣魄とを以て一死御奉公の堅い決心でこざいます。しつかりやります。命のつ?く限り忠誠を盡す覺悟でこざいます。

 (中略)

 一人前の滿洲國軍人として滿洲國のため延いては祖國のため何で一身の榮達を欲しませう、滅私奉公、犬馬の忠を盡す決心でこざいます

 (後略)

 とペンで達筆に認めてあり同君の軍官志願の手紙はこれで二度目であるが軍官なるには軍籍のある者に限られてをり、軍官學校へ入れるにしても資格年齡十六歲以上十九歲であるため二十三歲では年が多過ぎるので同君には氣の毒ではあるが鄭重に謝絶することになつた=寫眞 朴君

 

»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군 혈서 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31일치 <만주신문> 사본.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박정희 만주군관학교 지원때 “목숨바쳐 충성” 혈서 사실로
민족문제연구소, 당시 신문 공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만주국 군관에 지원하면서 “죽음으로써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의 혈서를 써냈다는 당시 신문 기사가 발견됐다.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박 전 대통령의 ‘혈서 지원’이 객관적 방증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는 <친일인명사전>의 전면 공개(8일)를 사흘 앞둔 5일, 이 사전에 친일인사로 수록된 박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와 함께 박 전 대통령이 1939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의 군관에 응모하면서 지원서류와 함께 ‘충성’을 다짐하는 혈서와 청탁 편지 등을 보냈다고 보도한 당시 <만주신문> 기사를 함께 공개했다.

만주국에서 일본인들이 발행한 <만주신문>은, 1939년 3월31일치 7면에서 ‘혈서 군관지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29일 치안부 군정사 징모과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교사)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 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목숨 다 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고 보도했다.

또 이 신문은 박정희 훈도가 편지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라고 적었다고 전했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게재·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며 “불필요한 논란이 정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민족문제연구소 “일본장교가 만주군 지휘”
박지만 “아버지는 만주국 용병” 주장에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서 군관 지원’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공개한 5일, 공교롭게도 이 연구소에는 법원에서 보내온 서류가 배달됐다. 박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51)씨가 <친일인명사전>의 배포를 막으려고 법원에 낸 ‘친일인명사전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 서류가 송달돼 온 것이다. 박씨는 이에 앞서 지난달 26일 “아버지에 관한 내용을 <친일인명사전>에 실어선 안 된다”며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만약 법원이 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오는 8일로 예정된 ‘친일인명사전 국민보고대회’는 무산될 수도 있다. 또 이미 인쇄에 들어간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자체가 중단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씨는 게재 금지를 신청한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국의 용병이었을 뿐 일본군이 아니었고 △만주국군의 주적이 마오쩌둥의 팔로군이었던 만큼 조선인 또는 독립군에 위해를 가한 사실이 없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민족문제연구소 쪽은 이날 “박 전 대통령이 ‘일본군 예비역 소위’로 사실상의 일본군 신분이었다는 사실을 박 전 대통령의 후손들이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박씨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연구소는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에 있을 때 역시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국으로 일본 관동군의 통제를 받았고, 만주국군은 일본군 장교의 지휘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며 “대일선전포고를 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입장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적국의 장교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만주국의 주적은 마오쩌둥의 팔로군’이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팔로군도 다수의 조선 청년들이 포함된 항일 연합군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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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 > 특집 > 박교수 박사 ! 월드팍유토피아혁명

2009/11/04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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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4일 오전 5시 0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좋은글 좋은생각

2009/11/04 05:01

복사 http://blog.naver.com/ecoutopia/30072973784



기사입력 2009-11-03 07:24:11

"스님들 신뢰도·청렴성 낮아"
불학연구소, 조계종 스님 1000명 대상 설문조사

 한국사회에서 조계종 스님들은 타 종교 성직자들에 비해 신뢰도와 이미지ㆍ사회적 영향력ㆍ전문성 등이 낮다고 자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국불교가 당면한 시급한 사회적 과제로 신뢰회복을 꼽았고 청정한 계행의 실천을 승려가 갖춰야 할 중요 자질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가 지난 7월 1일부터 9월 15일까지 조계종 스님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에서 '한국사회에서 스님에 대한 이미지가 좋게 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그렇다' '매우 그렇다'라는 대답에 비해 10% 이상이 높았다.

스님들은 한국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종교로 개신교(64.3%)와 가톨릭(18.4%) 다음으로 불교(16.4%)를 선택했다. 또 한국불교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신뢰회복(50.1%)을, 이웃 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제기되는 과제로는 불교의 정체성 강화(54.2%)를 꼽았다.

승려의 신뢰도 전문성 등을 묻는 질문에는 부정적인 평가가 긍정적인 평가보다 많았다. 특히 스님들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높다(13%)'는 답이 '낮다'(49.7)는 답의 20% 수준에 불과했다.
승가의 위상 강화를 위해서는 승려 개인의 자질 함양(29.4%)과 양질의 승려교육(28.9%), 출가정신의 강화(23.2%) 순서로 답했다. 결국 스스로 교육과 출가정신 회복을 통해 청정한 승가를 이룰 때 사회적인 위상도 강화된다는 것이다.

또한 불교의 사회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참여불교운동(60.4%)과 복지 구호사업(23.9%), 환경보호(20.7%) 등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뜻을 보였다. 그러나 정치참여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의견이 지배적(55%)이었다.

최근 사회적인 문제로 손꼽히는 종교갈등과 종교편향에 대해서도 심각성을 나타냈다.

응답자의 81%가 '한국사회의 종교간 갈등이 심하다'고 답했고, 이 중 개신교와 불교의 갈등(75.3%)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람직한 포교 방법으로는 '봉사와 자비행의 실천(43.1%)' '신도교육(19.6%)' 등을 선호했으며,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해서는 '전담인력 양성(44.7%)'과 '종단의 국제역량 강화(22.2%)'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존경하는 스님은 원효 스님(80명)ㆍ성철 스님(57명)ㆍ달라이 라마(23명) 순이었으며, 타 종교인으로는 고 김수환 추기경(63명)ㆍ테레사 수녀(34명)가 압도적이었다.

/ 김수미기자
지방제휴사 / 충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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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4일 오전 4시 31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videolog

2009/11/04 04:43

복사 http://blog.naver.com/ecoutopia/3007297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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