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꿈 유토피아꿈

유토피아 2009. 12. 29. 15:47

[연합뉴스취재부장]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 박교수 박사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 박교수 박사 | 2009.11.19 02:59
- 세계최초 줄기세포 이용한 천재과학자 박교수 박사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 박교수 박사 | 2009.11.19 02:59

연합뉴스 기획취재부장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 박교수 박사

세계최초 줄기세포 이용한 천재과학자 박교수 박사

줄기세포 유전자 복제기술로 그린혁명을 일구겠습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얘기로 또다시 세상이 시끄럽다. 2005년 줄기세포 배아복제연구의 허위 논란으로

우리나라 과학계를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던 황 교수가 자신이
대표연구원으로 있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이 지난해 12월에 신청한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보건복지부가 지난 8월1일 불허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체세포 복제 배아연구의 논문조작, 실험용 난자 취득, 난자 불법매매 등으로 학계와 대다수의 국민들로부터 퇴출당한 황우석 교수를 연구 책임자 자격으로 인정 할 수 없음을 미승인 근거로 제시했다. 후생동물의 조직 분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세포인 줄기세포는 근육·뼈·뇌·피부 등 신체의 어떤 기관으로도 전환할 수 있는 만능세포로 2004년과 2005년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사이언스지에 게재 되면서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그렇다면
줄기세포를 세계최초로 연구-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황우석 교수를 꼽을지 모르지만
정답과는 거리가 멀다.
세계적인 육종학자인 박교수 박사는 세게최초로

20대였던 60년대 중반에[ 줄기세포와 유전자 복제기술을 연구 발명 이용]하여
축시법 에의한 신품종 속성 유실수를 개발하여 세계육종학계를 충격에 몰아넣었으며,
박정희 대통령과 의기투합하여 새마을 운동을 탄생시켰다.
이후 육종연구를 위해 자신의 행적을 감추었던 그는
다기능 식물인 ‘월드팍유토피아트리(World Park Utopia Tree)'개발에 성공하여
 화려한 복귀를 하였다.
월드팍유토피아트리는 박교수 박사가 착안하고 창조한
최첨단 바이오테크 기술에 의하여 장기간 연구 끝에 육종된 신품종으로
 갖가지 멀티기능을 갖춘 환경자원이다.

유전자복제기술을 응용한 축시법

박교수 박사는 밤나무를 1년 만에 열매를 맺게 하는 축시법을 연구․ 개발하여 1960년대 농가의 소득증대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당시 일반적인 유실수의 수확 시기를 보면 밤나무는 심은 지 10여년 후, 호두나무 20년, 은행나무 35년, 잣나무 30년 등의 시간이 걸려 굶주림에 직면한 농민들에게 유실수의 수확은 당장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러한 유실수의 특징을 알고 있던 박 박사는 유실수의 수확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수많은 문헌과 논문을 섭렵하였다. 이후 그는 ‘줄기세포와 유전자 복제 기술을 응용하면 키가 작은 난쟁이 밤나무에서 1년 만에 열매를 수확 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수많은 실패를 맛본 끝에 줄기세포와 유전자 복제 기술을 이용해 ‘난쟁이 품종 육종법’,‘유근위 접목법’, ‘극성교정분화설’을 증명해 내었고 이를 실용화 하는데 성공했다. 박교수 박사가 창안한 ‘유근위접목법’은 새로 난 어린 뿌리에 거꾸로 접을 붙이는 방식으로 식물의 극성을 거꾸로 이용할 때 개화 호르몬과 영양이 뿌리가 아닌 지상 부위에 우선적으로 축적되어 개화와 결실을 촉진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불과 나이가 20대 밖에 되지 않은 박교수 박사가 개발한 축시법은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혁신적인 학설이며 그린혁명(Green Revolution)으로까지 불리었다. 이처럼 역위접목을 한 밤나무는 심은 지 1년 만에 높이 25㎝의 고추나무 크기가 되었고, 한 그루에 최고 일곱 송이의 주먹만 한 알밤송이가 열렸으며 수확시간을 15년에서 1년으로 단축시켰다. 그의 연구결과가 학계에 발표되자 정부에서는 이것을 가난한 농어촌의 소득증대 방안으로 채택되었다.

산림녹화 효과를 거둔 내충성신품종

세계육종학계에 일대파란을 일으킨 박교수 박사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독점하지 않고 농민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유실수종의 줄기세포 이용한 ‘유실수류의 새로운 유대접목법’,‘ 조기다수확(早期多收穫)을 위한 밤나무 재배법’, ‘조기다수확(早期多收穫)을 위한 호두나무 재배법’등의 책자를 발간하고 한국최초로 칼라영화로 제작해 전국 각 행정기관을 통해 배포하고 상영하여 내충성 신품종을 대대적으로 보급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밤나무는 1950년대 후반 일본에서 유입된 ‘밤나무혹벌’이 창궐하여 전국의 밤나무들이 거의 초토화 되어 제사상에 올려놓을 밤조차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때에 박 박사가 개발한 밤나무혹벌에 강한 신품종 밤나무에서 주먹만한 밤이 출하되자 밤 한 되가 시장에서 쌀 서 말과 교환 됐다. 박 박사가 개발한 신품종 밤나무 수목을 구해간 사람들이 엄청난 소득을 올렸다는 소문이 퍼지자 박교수 박사의 연구소는 내충성신품종 묘목을 구해가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는 가난한 농민들에겐 무료로 2~3그루씩 나누어 주었고, 넉넉한 사람들에겐 묘목 값을 받아 자신도 큰 소득을 올렸다고 한다. 소득을 올려 좀 더 잘 살기를 원했던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내충성밤나무의 묘목을 구해 심었고, 민둥산이 녹화되는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박대통령과의 만남

1965년 박교수 박사는 자비로 국내 최초의 사설 민간 연구소이자 벤처기업인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을 설립하고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을 이용한 신품종 연구에 돌입했다. 이때 박 박사는 내충성밤나무 묘목에 이어 잣나무, 은행나무등의 신품종을 개발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박정희 대통령은 박교수 박사를 찾아오라는 지시를 내려 박 박사는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첫 대면을 하였다. 당시 박 대통령은 “아무런 자원이 없는 이 땅에서 어떻게 해야 국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느냐”고 물었고, 박교수 박사는 2차 대전 당시 패전국들의 위급식량 대책을 이야기 하며 밤의 기능과 대체식량자원으로서의 가치를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박 대통령은 밤의 가치를 인정하였고 대대적인 농어촌 소득증대사업을 펼쳤다. 물론 그 사업의 핵심은 돈과 식량이 되는 유실수를 민둥산과 유휴지에 심는 운동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박 박사를 불러 농어촌 소득증대를 위한 실천적 방법론을 놓고 대화를 나누었으며, 박 박사가 설립한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에 전폭적인 지지를 해 주었다.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은 민간 연구소였으나 청와대의 중앙정부정책수행연구기관으로 설립되어 재정자금특별회계 자금에 의한 15년 상환이라는 파격적인 융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박 박사는 전 세계에서 각종 묘목과 샘플을 도입하여 재배하고, 유전자은행을 만드는 등 신품종 육종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박 박사는 한국의 헐벗은 산림을 녹화하기 위해 전 세계 육종학자․ 연구소․대학을 비롯한 관련분야를 조사하여 5만 여명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였다. 국가 유실수 연구팀장 이었던 그는 유실수뿐만 아니라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여 산림녹하 10개년 계획을 8년 만에 끝을 내는 기적을 이루었다. 박교수 박사는 60년대 말 ‘우리나라 산지의 입체적 곡수농업․ 식량증산과 목재생산 및 환경자원화를 위한 녹색혁명’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전국에서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사계절 다모작 농업, 속성 채소재배 등과 같은 새로운 농사기술이 시도되었다. 유실수 심기 운동, 하우스 농업 등은 차츰 농촌으로부터 도시로, 전국 각층으로 이어져 새마을 운동의 효시가 되었으며, 새마을금고․ 정신문화연구원 설립에도 그의 제안이 크게 작용했다. 박 대통령은 이러한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대통령상과 더불어 새마을 PickUp차량을 선물하였다. 3인용 승합트럭인 새마을 PickUp은 망치로 철을 두들겨 만들고 휘발유 엔진인 2,500CC 시보레 엔진이 장착된 한국에서 첫 번째로 생산된 것이다. 또한 박대통령은 그에게 직사각형 연분홍빛의 신분증도 발급해 주었는데 청와대 출입은 물론 원자력 발전소도 무사통과 할 수 있는 것으로 박교수 박사에 대한 박 대통령의 믿음과 신뢰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알 수 있다.

두 번의 죽음고비를 넘고

박교수 박사가 세계최고의 유실수 육종학자가 되는 데에는 50여 년 전 하나의 큰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충북 옥천이 고향인 그는 집안 대대로 서원을 운영하여 세 살 때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 했었다. 그의 나이가 12살이 되던 해 6.25전란이 발생하였는데, 전란 중에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는 미 공군 트럭에 온몸이 빨려 들어가면서 왼쪽 대퇴부가 탈골되고 뼈가 으스러져 쇼크 상태에서 일주일 만에 깨어났다. 당시 의술로서는 썩어 들어가는 그의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쪽 다리를 잃는다는 절망감에 어린 박교수는 죽기로 작정하고 아무도 몰래 쓰레기통에 음식을 버리며 굶기를 지속하다 2차 쇼크 상태에 빠졌다. 그때 그를 살린 것은 미군부대에서 구해온 페니실린 이었다. 쇼크 상태에 빠져있던 어느 날 “이것이 페니실린이다. 이제 다리를 절단하지 않아도 되니 죽을 생각은 하지 말라”는 병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신의 소리처럼 들렸다고 한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그는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두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제가 살아있는 것은 저 혼자만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덤으로 받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의사가 될 것인지, 우장춘 박사와 같은 학자가 될 것인지를 고민하였는데 당시는 먹을 것이 없어서 나무껍질을 벗겨먹거나 들판에서 풀을 뜯어먹는 겨우 목숨을 연명했습니다. 또한 영양실조로 부황이 들어 누렇게 뜬 얼굴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산에 나무를 가득심고, 그 열매를 수확하면 굶주림은 면할 수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육종학에 첫발을 내딛은 계기입니다.”라고 박교수 박사는 말했다. 이렇게 육종학을 통해 굶주림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겠다는 결심한 박교수에게 우연한 기회가 찾아온다. 옥천농고에 재학중이던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원예학을 가르치다 전란을 피해 피난을 내려온 교수를 만나 그로부터 접목법을 배우게 된다. 박교수는 친구 집의 복숭아 과수원 2000평을 실험삼아 접붙이기를 시도하였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후 그는 감나무 한그루에 여러 종류의 감이 열리게 하는 아접에도 성공하여 훗날 세계적인 육종학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였다.

지구 3대 위기 해결을 위한 팍유토피아 트리

박교수 박사는 2004년 9월,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의 연구단지를 경기도 양평의 자그마한 섬으로 이전하였다. 10여만 평 규모의 이 섬의 이름은 ‘파랑도’이며 청정지역이라는 뜻으로 박교수 박사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파랑도는 박 박사가 유토피아 숲을 만들겠다고 나선 곳으로 30~50톤이나 되는 나무 수백그루를 수원에서 옮겨왔다. 유토피아 숲의 나무는 미국 미시시피강 하류 일대에서 발견한 히코리피겐 목의 나무로, 최첨단 바이오테크 기술에 의하여 장기간 연구 끝에 육종된 품종이다. 유토피아 나무는 다 자라면 지름 3.5m, 키는 40~58m에 이르는 거대목이 된다. 한 번 심으면 1,000년간 자라고, CO2를 빨아들이고 O2를 내뿜는 탄소동화작용과 물을 머금는 능력, 토양 정화기능이 완벽한 친환경품종으로 식량, 의약품, 바이오에너지와 목재 및 각종 산업용 자원과 자연 재앙을 방지 할 수 있는 갖가지 멀티 기능을 갖춘 환경자원인 것이다. 그동안 박교수 박사가 축시법을 통해 개발한 신품종의 유실수들은 헐벗고 굶주린 우리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유토피아 나무는 세계 최초 솔라바이오테크 사이언스(Solar Biotech Science)라는 학설을 통해 멀티게놈을 활용한 신품종을 육성하여 과잉인구로 인해 한계에 직면한 지구의 부양능력과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박교수 박사는 50여년전 부터 지구촌의 물리적 환경적 면적이 한계에 부딪쳐 유발되는 지구 3대위기 즉, 자연자원 고갈, 환경파괴와 오염, 지구온난화 및 기상이변에 의한 자연대재앙에 맞서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멀티게놈 육종에 의한 월드팍유토피아 나무를 창조하고 멀티게놈 기능에 의해 지구의 기능을 10배, 100배, 1000배...N배 가능케 하는 지구 확장론을 정립한 것이다.

세계천재과학자 그랑프리 수상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세계천재과학자 발명회 교육학회(The 21st World Genius Convention & Education Expo 2007)에서 박교수 박사는 세계천재과학자대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그는 2006년 대상(Genius Gold Medal)과 2007년 그랑프리(Grand Prix)를 수상하였는데, 2006년도는 줄기세포 유전자복제 기술과 극성역이용 축시법 발견과 발명으로 대상을 수상 했고 2007년도는 멀티게놈육종학에 의한 월드팍유토피아트리를 육종 발명하여 지구환경3대위기를 해결하게 되어 그랑프리를 수상한 것이다. 세계천재회의는 3천건이상의 발명특허를 내 ‘일본의에디슨’으로 불리는 IG-노벨상 수상자인 나카마스 요시히로 박사가 총재로 있는 단체로 노벨상을 받은 석학 30여명이 회원으로 있다. 이처럼 권위 있는 단체로부터 한국의 생명과학자가 대상에 이어 최초로 그랑프리까지 수상했다는 것은 그가 전세계적인 과학계의 발견과 발명을 이룬 천재과학자로서 대한민국의 미래성장 동력과 국부창출(國富創出)신화를 이룬 주인공임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자신의 안의보다는 국가와 민족, 전 인류의 미래를 위해 한 우물만을 파온 박교수 박사.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 말라는 외할머니의 가르침을 인생의 밑거름으로 삼고 살아온 박교수 박사가 한국인임에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고 제2,제3의 박교수 박사가 배출되기를 기원해 본다.

연합뉴스       취재 김영권 부장



 
 
 

우주의꿈 유토피아꿈

유토피아 2009. 12. 1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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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의섬  파랑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  물속을 거니네! 물위의 팍 유토피아숲에는 아침 햇볓 정기 받아 오는봄을 반기는가 ?

 

파랑도 물 과  땅 과  하늘은  황금알 을 잉태하며  봄 여름 거쳐 

또 다시 일천년을 무레방아처럼 돌고 돌며 쉴새없이 튕겨내는 물방울처럼

일천년 이상을 온누리 인류에 황금알을 낳으려 는가? 

물속과 하늘에 황금 알 빛나고 호반의 거위는 낳은알 거두러 가는가 ?

 

  팍 유토피아 나무 숲  그 꿈이 구현되는 초 자연적 풍경 아 !!

 

 

 

 '낙원예감'의 새 품종…열매 50종 맺는 신비의 나무

                                        


"'유토피아 숲' 으로 위기의 지구 구한다"



유실수 육종 연구로 반세기를 바친 박교수 박사가 최근 수원에 있던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을 경기도 양평 파랑도로 이전해 유토피아 숲을 조성하겠다고 나섰다. 1960년대 초부터 호두나무·밤나무 신품종을 육종하고 새로운 접목 기술을 개발해 식량난 타개에 이바지했던 老교수가 이제 새로운 숲으로 지구의 위기를 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가 전하는 인생론과 유토피아 숲 이론.


강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경기도 양평군 대심리의 용문사 가는 길을 달리다 보면 오른쪽 강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섬이 하나 나온다. 팔당댐의 담수로 인해 만들어진 섬으로, 중앙선 철도인 신원 역에서 국수 역으로 가는 터널이 있는 산줄기의 산허리 낮은 곳이 물에 잠겨 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 섬이 바로 유실수 육종 연구로 한평생을 보낸 박교수(朴敎秀·69·전 동국대 교수) 박사가 최근 ‘유토피아 숲’을 만들겠다고 나선 곳이다. 그는 1960년대 초부터 호두나무·밤나무 같은 신품종을 키우고 접목하는 기술로 산림녹화와 보릿고개 타개책을 마련하는 데 기여한 육종학자다.

바지선을 타고 봄바람이 살랑대는 섬에 들어서자 그는 직접 지었다는 섬의 이름 ‘파랑도’에 대한 설명으로 운을 뗀다.

“파랑도는 청정지역이라는 뜻입니다. 물에 이는 파도는 소용돌이치면서 공기 중의 산소를 안게 되는데, 이로 인해 물속의 산소량이 증가합니다. 제가 만들 유토피아 숲의 청정산소 방출량이 극대화되고 청정수가 소용돌이치니, 이 섬은 맑은 청정지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경기도 수원에 있던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의 연구단지를 이곳 파랑도로 이전하기 시작했다는 박 박사는 이 섬 사람이 다 되어 있었다. 그는 기자를 9만 평 남짓한 이 섬의 구석구석으로 안내했다. 섬 동쪽을 둘러보며 박 박사는 분노했다.

“과거 토사 채취 때문에 파랑도 전체 3분의 1 정도의 토사가 유출되었습니다. 이런 토사 채취 때문에 매년 섬 전체 둘레가 2∼3m씩 침식되고 있습니다.”

박 박사는 유토피아 숲을 만들기 이전에 침식되는 부위를 복원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거대하고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나무를 섬 둘레에 심을 계획이다. 또 가능하다면 파랑도 외에 양평군 대심리·국수리·신원리의 한강과 도로 인접 지역에 종합연구단지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있다고 밝혔다.

이 섬에 조성하려고 하는 유토피아 숲은 어떤 개념인지 궁금했다. 유토피아 숲의 핵심 개념은 크리아일리노엔시스(Cryillinoensis)라는 이름의 ‘유토피아 나무’다. 박 박사는 미국 미시시피강 하류 일대에서 이 나무를 발견해 지난 40여 년 동안 계속 품종을 개량하고 있다.

2만 년 전 처음 뿌리내린 유토피아 나무

2만 년 전 지구가 빙하기에서 벗어나면서 육지의 판(板)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때 이 지역에 난대성 식물이 뿌리를 내렸다. 그는 원래 열대성이던 이 식물이 지구 북쪽으로 퍼져나간 사실을 처음 알아내고 변이품종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아냈다. 그 후 40여 년 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복합 다기능 신품종으로 육종한 것이 ‘유토피아’라는 설명이다. 이 이름은 그가 지상낙원을 그리며 직접 붙인 것이다.

이 나무는 다 자라면 지름 3.5m, 키는 38∼40m에 이르는 거대목이 된다.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내뿜는 탄소동화작용과 물을 머莩?능력, 토양 정화 기능이 다른 품종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한다. 또 한번 심으면 1,000년 이상 건재하며, 여기서 열리는 열매는 피부 노화 방지와 회춘, 면역계와 신경계 강화뿐만 아니라 단백질·지방·탄수화물 등 각종 영양소도 풍부하다고 한다.

이제 이곳 파랑도가 유토피아 나무의 묘목을 생산하는 본거지가 된다. 여기서 키워낸 유토피아 나무 묘목을 한국의 산야에 심어 새로운 산림혁명을 이루겠다는 계획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밤나무에는 밤만 열립니다. 감나무에는 감만 열리죠. 하지만 유토피아 나무는 50여 종의 서로 다른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유토피아 숲이 조성되면 여기서 열리는 열매로 식량·의약품·화장품을 생산할 수 있고, 목재 및 바이오 에너지·산소를 1,000년간 지구에 공급할 수 있게 됩니다. 가령 의약품으로 활용할 목적이면 의약품 성분이 함유된 열매를, 화장품이나 식품 원료로 쓸 목적이라면 이에 맞는 특수 성분이 들어있는 열매를 마음대로 열리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숲은 또 자원고갈, 자연환경 파괴, 자연재해 같은 지구의 위기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단순한 숲 조성뿐만 아니라 이 섬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갖는 다양한 식물을 육종해낼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생물은 다양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섬에서 육종 기술을 통해 수십여 가지의 기능성 성분을 갖는 품종을 육종해낼 것입니다.”

파랑도에 자리 잡는 한국유실수과학연구원은 1965년 경기도 수원에 처음 설립되었다. 이 연구원의 최고 후원자는 고 박정희 대통령. 연구기관이라면 국가연구소가 전부였던 시절,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는 민간 연구소가 절실하며 무엇보다 농업과 산림에 관심이 많았던 박 대통령은 이 연구원을 전격 후원했다.

유실수과학원은 민간 연구소이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중앙정부정책수행기관으로 설립되어 ‘재특(재정자금특별회계)자금에 의한 15년 상환’이라는 파격적인 융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이 연구원에서는 유실수와 특수 품종의 원종을 세계 각국 대학 및 전문 연구기관에서 도입해 재배하고 유전자은행을 만들어 신품종 육종 연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박 박사의 그린혁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마을운동을 말해야 한다. 그는 축시법(縮時法)을 연구개발해 1년생 나무에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함으로써 1960년대 농가의 소득 증대에 크게 이바지했다. 당시 그의 연구 결과가 학계에 발표되자 정부는 이것을 가난한 농어촌의 소득증대 방안으로 채택했다. 박 박사는 이 조치가 새마을운동의 씨앗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박 박사는 연구 결과를 농민들이 따라 할 수 있도록 유실수종의 유대 접목법을 천연색 영화로 제작해 전국 각 행정기관을 통해 배포하고 상영했다. 또 이 영농기술에 관한 전문서적을 만들어 새마을운동의 교과서로 쓰도록 했다. 이와 함께 그를 찾아온 전국 각지의 독지가들에게 이 신품종과 육종 기술을 전수해 1∼2년 사이에 산지의 묵은 밭에서 엄청난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했다고 한다.

페니실린으로 목숨 건지다

밤나무가 전멸할 위기에 놓여있던 1950∼60년대, 박 박사가 개발한 밤나무혹벌에 강한 신품종 밤나무 같은 유실수 대량 증식과 개발은 놀라운 것이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60년대에는 청와대 지하 상황실에서 인구증가와 자연재해에 따른 식량난 대책에 대해 강연하기도 했다. 또 1972년에는 과학기술정책과 보급에 헌신한 공로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그가 유실수를 육종하는 데 몰두하게 된 계기는 열두 살 때 죽을 고비를 겪으면서 비롯되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트럭에 치여 의식을 잃었다 1주일 만에야 깨어났다. 10개의 트럭 바퀴가 짓누르고 간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왼쪽 대퇴부는 부러졌고 뼈가 으스러져 있었다. 의사로부터 살기 위해서는 썩어 들어가는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죽기를 작정하고 단식했다. 며칠을 굶었을까? 다시 병원 침대에서 깨어났을 때 의사는 구세주 같은 처방을 냈다.

“이게 페니실린이라는 거다. 이 약 한 방울이면 다리를 안 잘라도 된다. 미군부대에서 어렵게 구해 왔다. 너를 위해 이 한 병을 다 쓰겠다.”

죽음에서 살아난 순간 그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자신을 살려낸 의사처럼 다른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칠 痼寬? 아니면 가난 때문에 굶어 죽는 사람들을 위해 우장춘 박사 같은 학자가 되어 그들을 기아에서 구할 것인가?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2만 평의 농지를 소유했던 우리 집안이 해방 후 토지개혁으로 하루아침에 몰락했어요. 그때 닥쳐온 지독한 가난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우리 가족도 그랬지만 주변에 영양실조로 부황이 들어 누렇게 뜬 얼굴로 죽어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죠.”

부지런한 성미로 야생마처럼 동네를 활보하던 열두 살 소년의 가슴에 평생 뿌리내릴 씨앗은 이때 뿌려졌다. 당시 산에는 밤나무와 호두나무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고 한다. 또 집집이 감나무나 대추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이 열매를 팔아 버는 돈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서울사람들이 산을 통째로 입도선매하는 바람에 돈은 전부 그들 몫이었다.

어린 박교수의 꿈은 이런 것이었다. 국토의 70%에 이르는 산에 아름드리 나무를 심고 그 열매를 따면, 적어도 굶어 죽을 가난은 면하지 않을까? 이왕이면 고추나무처럼 나무 키를 작게 하고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면 누구라도 쉽게 배불리 따먹을 수 있지 않을까?

옥천농업학교에 다니던 그는 그런 꿈을 실현할 기회를 우연하게 잡을 수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원예학을 가르치던 교수가 한국전쟁 통에 피난 와 있었는데, 그로부터 접목법을 배웠던 것이다. 그 후 친구집 복숭아 과수원 2,000평을 연구소 삼아 접붙이기에 나선 그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감나무 한 그루에 여러 종류의 감이 열리게 하는 ‘아접’에도 성공하자 그는 고향마을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유실수뿐 아니라 닭·돼지·토끼 등 수천 마리의 가축을 기르며 중·고등학교에 다닌 그에게는 ‘대학생’이라는 별명이 붙어다녔다고 한다. 새벽같이 일어나 풀을 베고 과수원과 가축 돌보는 일을 혼자 힘으로 해야 했기에 학교에 번번이 지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큰아버지는 대목(大木)이어서 그의 집에는 이런저런 연장이 굴러다녔고, 그는 이것을 이용해 쟁기 같은 농기구를 곧잘 만들어 쓰고는 했다.

박 박사는 이때 갈고 닦은 솜씨로 연구원에서 쓰는 6종의 농기계를 직접 개발했다. 그 중 2개는 특허출원 중이다. 당시 농장 일꾼들은 나무 가꾸는 일은 물론 기계 다루는 솜씨도 뛰어난 그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충북대 농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온기도 없는 자취방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공부에 매달렸다. 이루고자 하는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었기에 배고팠지만 그 시절은 즐겁고 행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죽음’과 ‘성공’ 외에는 관심을 끊고 살겠다고 작심한 터여서 욕도 많이 먹었다. 연구비로 몇십 억 원을 날리는가 하면 가족은 젖혀두고 얼마 남지 않은 땅까지 팔아 연구에 몰두할 때는 염치없고 냉혹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졸업 후 농촌진흥청 임목육종연구소에 근무할 때도 그는 극심한 견제와 질시를 받았다. 기능성이 있는 특용수와 유실수를 연구하겠다고 연구팀장으로 들어갔는데 수십 개 연구팀 전부를 특정 명문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텃세와 따돌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지어 연구비를 타는 방법조차 가르쳐 주지 않았다고 한다.

새마을운동과 연결

그는 만 2년이 지나서야 연구소 생리를 터득했고, 어릴 때부터 희망하던 ‘고추나무 키만 한 유실수’에 맞먹는 ‘난쟁이 나무’를 개발했다. 이를 필두로 수많은 연구실적을 쏟아내며 입지를 다져 나갔다. 이 시기 그의 연구가 새마을운동과 연결된 것이었다.

서울 구기동에 있는 그의 집 지하 30평 공간은 약리학·분자학·유전공학·생물공학 등 신품종 나무를 개발하기 위해 섭렵한 다양한 분야의 책으로 가득하다.

“관련 학문을 통합해 연구하지 않으면 자신의 전공 분야를 개척할 수 없습니다. 공부는 할수록 모르는 것투성이입니다. 저는 지금도 제자나 후배 같은 젊은 학자들과 많은 것을 토론하고 가르칩니다.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는 오늘날에는 자만은 곧 낙오를 의미합니다. 젊은이들의 번쩍이는 착상과 토론하는 노련한 석학 원로가 큰 것을 건져낼 수 있습니다. 원로 석학일지라도 배우려고 애쓰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서재에서 박 박사는 ‘미래에 산다’는 제목의 30년 전 <동아일보> 기사 하나를 꺼내 보였다. 유력 학자들의 미래 예측을 담은 기사였다. 거기서 박 박사는 “분자생물학의 발달과 함께 유전자 조작이 가능해지는 날, 미래의 과일 애호가들은 자기가 원하는 빛깔·크기·향기·영양을 갖춘 맞춤식 과일을 한껏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던 기록이 있다.

박 박사는 1960년대부터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을 이야기했던 학자다. 그의 예측이 현실화되는 지금 박 박사의 유토피아 숲 건설의 성과를 기대할 만하다.


2005.05.06 10:3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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