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 공릉1동 서울북부지방법원 형사제1단독판사실. 윤종수(43) 판사의 일터다. 올해로 법복을 입은 지 14년째. 매주 화·목요일이면 그도 어김없이 검은 법복을 입고 법정에서 각종 형사사건과 씨름하며 판결을 내리는 2천명의 대한민국 솔로몬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법정을 벗어나면 윤 판사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난다. CCL 전도사. 법의 테두리 안에서 디지털 콘텐츠를 자유롭게 나누고 공유하게 해주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선스(CCL·Creative Commons License)를 널리 소개하고 퍼뜨리는 일이다. 윤종수 판사는 2005년 3월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코리아(www.creativecommons.or.kr)를 국내에 설립하고 CCL을 한국에 처음 소개한 주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CCL은 디지털 시대에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창작물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으로 각광받는 저작권 국제규약이다. 저작자가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동일조건 변경허락 등 4가지 조건 가운데 원하는 조건을 선택하면, 이용자는 이 규정을 지키는 선에서 자유롭게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CCL을 기존의 저작권을 의미하는 ‘All Rights Reserved’와 완전한 정보공유를 뜻하는 ‘No Rights Reserved’ 사이에 위치한 ‘Some Rights Reserved’라고 정의한다.
CCL을 붙여놓은 저작물은 말하자면 ‘정해둔 규칙만 지킨다면 마음대로 퍼가거나 공유해도 법적으로 문제삼지 않는다’는 저작권자의 표시나 다름없다. 만약 CCL을 붙여놓지 않았다면, 누군가 해당 저작물을 개인적인 용도로 이용하고 싶어도 법에 위배되지 않을까, 혹은 이용자가 문제삼지 않을까 고민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일일이 해당 저작권자를 수소문하고 연락을 취해 동의를 받는 것도 번거롭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일정한 조건만 지키면 마음껏 써도 좋다고 공지하면 서로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CCL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저작권법의 틀 안에서 인터넷의 기반인 나눔과 공유의 철학을 지키자는 뜻이다. CCL을 가리켜 ‘UCC 시대의 저작권의 대안’이라 일컫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윤종수 판사는 “독점적으로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는 저작물은 그대로 두되, 그러지 않을 것들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의사를 확실히 밝히는 일”이라고 CCL을 설명했다. ‘저작물로 돈을 버는 사람과는 무관한 정책 아니냐’는 물음에는 “CCL도 얼마든지 비즈니스 모델로 활용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현직 판사이면서 법정과 사이버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끊임없이 IT분야의 현상을 연구하고, 의문을 던지고, 바람직한 해법을 모색하는 윤종수 판사를 만났다.
▲CCL을 국내에 도입한 주역으로 알고 있다. 도입 당시 얘기를 들려달라.
발단은 2003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한국정보법학회란 모임이 있는데, 지적재산권을 포함해 사이버 스페이스에 관한 영역들, 방송·통신 같은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는 연구모임이다. 내가 간사를 맡고 있다.
학회에서 2003년에 국제심포지엄을 했는데 당시 주제가 ‘디지털 정보의 공유와 전유 : 갈등은 존재하는가?’였다. 주제발표를 위해 외국 강사를 물색했는데, 당시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교수와 같이 활동하던 미국 크리에이티브 커먼스(CC) 사무총장이 섭외가 됐다. 그 친구가 와서 보니까 우리나라의 정보법학회가 꽤나 괜찮아 보였던 모양이다. 우리에게 먼저 제안을 했다. 한국에서 CC를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그래서 그 자리에서 MOU를 맺었다. 당시엔 현장에 내가 있지는 않았지만.그러고 나서 한동안 진척이 안 되다가 2004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는데, 당시 나도 준비팀에 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니 라이선스를 일일이 번역하고, 국내법에 맞게 라이선스를 고치고, 한국판 홈페이지도 만들고… 할 일이 보통 많은 게 아니더라. 그래서 2005년 3월을 목표로 부지런히 진행을 해서 CC코리아가 탄생하게 됐다. 그때 준비하면서 공부 많이 했다. (웃음)
CC코리아를 만들면서 느낀 건데, 단순히 라이선스 하나를 내놓고 끝내는 게 아니라 CCL이 가진 참뜻을 살리고 이를 적용한 콘텐츠를 많이 나오게 해서 일정한 조건 아래 자유롭게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창작활동을 고취시키는 문화운동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학문적 차원에서 접근했지만 이를 사회운동, 문화운동으로 승화시키고자 여러 계층의 자원봉사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CC코리아를 움직이고 있나.
팀원이라고 굳이 말한다면, 9명 정도 된다. 정보법학회에서 출발했던 프로젝터 리더들이 나를 포함해 3명이고, 이후 CC 운영을 위해 개별적으로 만나면서 모은 미디어 종사자들과 블로거들, 교수들이 6명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소식을 알려주는 사교모임 형태의 메일링 리스트가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분이 30~40명 된다.
▲CC코리아가 별도 법인인가.
아니다. 현재로선 한국정보법학회라는 사단법인의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돼 있다. 별도 법인을 내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예전에는 미국에서 CC를 만들면서 각 나라별로 접촉해 CC를 런칭할 사람들을 물색하곤 했다. 처음 CC코리아 런칭을 준비할 때만 해도 미국 외에 CC를 둔 곳은 일본과 브라질 뿐이었는데, 요즘은 전세계 33개국에서 CC가 설립되고 10여곳이 현재 설립을 진행중이다. 그러다보니 각 나라의 CC가 모인 국제조직도 만들어졌다. 아이커먼스(iCommons)란 조직인데, 영국에 근거를 둔 법인이다. 예전에는 CC가 미국CC의 국제 사업처럼 돼 있었는데, 지금은 규모가 커져서 영국에 아이커먼스 법인을 두고 각 나라 CC들이 여기에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형태다. 미국 CC도 그 안에 들어간 형태로 바뀌었다.
▲아이커먼스는 언제 결성됐나.
2004년부터 얘기는 나왔는데, 정식 법인화한 것은 2005년이다. 아이서밋(iSummit)이라는 활동가 모임도 매년 열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각국 CC 활동가만 모였는데 올해 6월 브라질 아이서밋에선 비슷한 취지로 일하는 활동가들에게 개방해서 규모가 더 커졌다.
▲CCL의 존재 의의를 설명한다면.
CCL 자체는 저작권 라이선스 제도이다. 저작권법의 라이선스 제도는 기본적으로 영리적인 이용을 위한 개별적인 계약을 염두에 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저작물을 남들과 자유롭게 공유하고 싶은 경우에는 그러한 개별적인 라이선스 계약은 적절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이런 저작자들을 위해 자신들의 의사를 명확히 표시해 줄 수 있는 간편하고 개방적인 라이선스 제도를 만들어 이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 CCL이다.
사실 CCL은 매개체라 할 수 있다. 라이선스는 이용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CCL을 이용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누군가는 이를 이용해 비즈니스를 할 수도 있다.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내 콘텐츠를 일정한 조건아래 나누면 된다’는 취지를 만족시키기만 하면 된다.
비슷한 조건의 라이선스는 많다. 정보공유 라이선스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어떤 라이선스를 쓰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지는 ?CCL이 의도하는 바다. 왜 CCL이 필요하고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많이 생각하고 많이 시도하고 많이 생산되도록 사회적인 커넥션을 만들어주는 것이 CCL의 존재 의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CCL을 비즈니스에 활용한다는 얘기는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게 ‘비영리’ 옵션때문에 많이들 오해하시는 것 같다. 비영리란 게 콘텐츠 이용자가 영리 목적으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뜻이지, 저작권자가 상업적으로 못 쓴다는 얘기는 아니다. 얼마든지 CCL을 적용하면서도 비즈니스 모델로 활용 가능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10곡을 넣어 음악 CD를 만든다고 하자. 그 중 1곡만 CCL을 붙여 마음대로 공개하고 뿌리는 것이다. 그러면 음악을 듣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머지 곡도 듣기 위해 음반을 사는 식이다. 실제로 외국의 어떤 음반사는 출시하는 모든 곡을 MP3로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그러면서 CD로도 따로 파는데, 실제로 그 CD가 팔린다는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한 챕터만 CCL을 붙여 공개하고 책 전체는 파는 방법도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유명한 영화감독들 보면 무명시절에 습작으로 만들어둔 단편영화 같은 게 한두개씩 있다. 그걸 CCL을 붙여 공개하고 누구나 편집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영화감독을 꿈꾸는 아마추어에겐 유명 영화감독의 작품을 합법적으로 손에 넣는 기쁨을 주고, 여러 사람의 창의성이 더해져 새로운 작품이 탄생할 수도 있다. 원저작자는 반드시 표시해야 하므로, 아무리 여러 명이 변형하고 개작해도 저작자 정보도 끝까지 간다.
<약력> 198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91~1993년 사법연수원 22기 1993년 판사로 임용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판사 역임 현재 서울북부지방법원 판사 현 법원 지적재산권커뮤니티 총무 현 법원 지적재산권국제규범연구반 총무 현 사단법인 한국정보법학회 간사 현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코리아 프로젝터 리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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