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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엄익희와 함께 하는 마음산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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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23T14:39:28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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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32. 글을 마치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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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23T14:39:28Z</updated>
	    <published>2008-05-23T14:39:2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인간이 기계와 뇌를 진지하게 비교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후반이었는데 워렌 매컬로크는 인간의 뇌에 존재하는 뉴런 수만큼의 진공관을 탑재한 컴퓨터를 만든다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만큼의 공간이 필요하고, 나이아가라 폭포만큼의 전력이 필요하며, 또 그만큼의 냉각수가 필요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런 추세는 1960년대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뉴런과 전기회로의 유사함에 매료되어 뇌를 컴퓨터에 비유하는 시대가 오게 되었고 그것은 인지과학의 플로 차트를 훌륭히 그려내게 되었다. 하지만 점차 뇌의 감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면서 컴퓨터와 다른 뇌의 모습이 연구되었고, 그것과 더불어 비약적으로 발전한 유전학으로 인해 기존에 존재했던 인간 심리의 해석들은 새로운 양상을 맞이하게 되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1970년대부터 과학자들은 유전자라는 단어를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확대하여 묘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성향이 몇 십 년간 지속되어 오면서 대중의 인식 속에서도 이제 유전자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게 되었다. 유전자 위주의 설명은 데카르트 시대의 기계론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요컨대 요즘은 유전자 기계론의 시대인 것이다. 근래에는 뉴런이나 시냅스 같은 단어들로 인간의 정신을 묘사하는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유전자라는 단어처럼 이들도 더 먼 미래에는 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서술체계이지 그것이 감각질을 설명하는 결정적이고 절대적인 체계는 아니라는 것이 보편화될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식견처럼 유전자와 뉴런 그리고 시냅스는 감각질의 부품일 뿐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21세기 초반 현대 유전학은 19세기말 고전 물리학자들이 그러했듯이 예측 가능한 미래의 모습을 그럴듯하게 그리고 있다. 휴먼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되고 이제 남은 것은 유전자 코드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만 알아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부흥으로 고전 물리학자들의 꿈이 깨어졌듯이, 유전학이 꿈꾸는 미래상에는 또 다시 어떤 장막이 드리워져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천재적인 과학자들은 항상 그러했듯이 대중의 뜻과 무관하게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자식을 더욱 우성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려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술은 분명히 엄청난 고가의 비용을 치러야만 가능할 것이며, 초창기에 그것은 돈이 많은 사람들만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과학의 발전은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유전자 조작은 현대에 키를 키우는 수술이나 얼굴 성형처럼 절대로 불가능해 보일 것 같았던 선천적인 모습을 바꾸는 미래의 핵심 치료가 될 지도 모른다. 과학은 종종 대중이 원치 않는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대중은 핵폭탄을 원한 적도 없고, 변종 바이러스를 원한 적도 없다. 실험실의 소수의 과학자들은 항상 역사를 좌지우지할 발명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소수의 전전두피질에서 만들어 내는 가공할 발명품 앞에 대중은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과학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에 사회적 견제 장치는 그 속도가 매우 느리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1979년 WCC(World Council of Churches)가 주최한 국제회의가 그나마 적극적인 유전학자들을 견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회의에서 WCC는 유전질환의 치료를 위한 체세포 유전자 치료만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있으며, 질병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생식세포 유전자치료와, 인간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어떠한 유전자 조작도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권고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외모와 건강, 심지어 지적 능력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을 볼 때 더 나은 유전자를 자식에게 선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부모들은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그런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런 방법이 건강 보험에 들거나 성형수술을 시키거나 장기간 과외 시키는 것보다 더욱 확실한 수단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가의 암 치료 비용을 국가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세상이 온 것처럼 이런 시술도 국가 경제 발전의 주된 목표로 설정될 지도 모른다. 국가는 더 이상 질병에 대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상을 뛰어넘는 변화가 우리 앞에 지속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희랍인들이 흐르는 강물로 변화하는 세상을 묘사하기 이전 시절부터 지금까지 모든 외부 세계는 변화를 거듭해 왔다. 항상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는 그런 의미에서 과학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슴 속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급변하는 외부의 정보를 따라가기에도 숨이 차게 되었고 그런 속도는 나날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서 더 많은 돈을 벌 방법을 살피느라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시간은 하루에 단 1분도 할애하지 않게 되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는 우리가 태어나서 바라본 세상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항상 대한민국에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했었던 것 같고, 항상 인권이 잘 확립되었던 것 같으며, 항상 생존이 해결된 사회가 지속되었던 것처럼 생각한다. 인류가 과거에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며, 얼마나 무지했으며, 얼마나 비상식적이었으며,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실감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되돌아볼수록 현실의 만족감은 커질 수 있는데 우리는 미래만 바라보고 살고 있다. 주변을 바라볼수록 우리의 삶은 풍성해질 텐데 우리는 일방적인 모니터의 정보만 바라보고 살고 있다. 타인의 따뜻한 속마음을 볼수록 사랑은 커질 텐데 우리는 그들의 겉모습만 바라보고 살고 있다. 내가 잠자는 집과 내가 일하는 직장이 천국이 되어야 하는데 머나먼 타국의 해변이나 하늘 저 어딘가가 천국인 줄 알고 있다. 내가 살아있는 이 시간이 기쁨이 되어야 하는데 미래에 기쁨이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조리 불안에 떨고 있어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키워야 하는데 세파에 휘둘려 작은 일에도 불안감을 느낀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줄 최고의 선물은 돈이 아니라 나의 따뜻한 미소인데 돈 때문에 울상을 지으며 일생을 살아간다. 사회제도를 원망하며 불만 섞인 나날을 살기보다는 자신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바라보지 않고 살았음을 원망해야 한다. 지금 당장 고칠 것은 사회제도도 국회도 대통령도 아니다. 나를 바라보는, 가족을 바라보는, 직장을 바라보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바꿔야하는 것이다. 우리 뇌는 ‘이미’ 이런 아름다운 시각을 형성하기 위한 가소성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 남은 것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상층부의 뇌로 사고하고, 중층부의 뇌로 느끼고, 하층부의 뇌로 행동하는 것. 그것뿐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엄익희와 함께 하는 마음산책 (자연과학적으로 살펴보는 우리의 뇌와 마음)&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 끝 -&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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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31. 글을 마치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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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23T14:37:55Z</updated>
	    <published>2008-05-23T14:37:55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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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20세기 초반 유전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인간의 정신은 문명사회 속에서 노출되는 후천적인 환경과 교육의 영향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으로 주로 여겨졌다. 하지만 유전학의 발전이 지속될수록 학자들은 인간의 정신에서 선천적인 모습들을 수없이 발견해내기 시작하였다. 그런 경향은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너무나 유명한 문구가 등장하면서 정점에 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유전자에 내재된 A, T, G, C의 네 글자 어디에도 ‘이기적’이라는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이런 표현이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시대적 배경에는 후천적인 것만을 강조했던 시대에 대한 반동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유전자는 절대로 혼자서 존재할 수 없으며, 주변의 세포 성분과 함께 협력해야 하고, 또한 수많은 모체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역사적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전자가 발현되는 패턴 또한 바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선천적인 유전자만을 강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후천적인 환경을 벗어나 있는 유전자는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사람의 정신에 대한 선천성과 후천성은 이제 인종의 구분처럼 큰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가 생물학적 종을 나눌 때는 2세를 지속적으로 출산할 수 없는 유전학적 차이가 존재해야만 한다. 인류는 황인종이건 백인종이건 흑인종이건 간에 서로 2세를 출산할 수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더 이상 인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는 추세이다. 그들은 모두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에 대한 내용도 유전학이 더욱 발전하면서 선천성과 후천성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유전자가 후천적인 환경에 따라 다른 식으로 활동하는 것을 연구하는 후생학(Epigenetics)이라는 학문의 발전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폭력 유전자를 타고 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후천적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그 사람은 온순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을 단지 4비트 유전자 코드로 한정지어 이야기할 수 없듯이 이제 선천성이나 후천성이라는 이분법으로도 인간을 한정지을 수 없게 되었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하지만 이 글에서는 최근의 경향과 비슷하게 선천성에 대한 시각으로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런 의도는 인간의 선천성이 우리 정신세계에서 실제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 아니고, 그것에 대하여 우리가 느끼고 있는 것이 후천성보다 적었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차원에서 강조된 것이다. 인류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지만 개개 인간은 차별성 또 한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유전학적인 보편성을 주로 강조한 것일 뿐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인간의 선천성을 강조하는 유전학의 시작은 역사적으로 매우 불행한 것이었다. 1883년 우생학(Eugenics)을 창시한 프란시스 갈턴은 열악한 유전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구의 증가를 막기 위해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주장은 미국에서 정신이상자, 정신박약아, 강간범, 상습 범죄자, 마약 중독자, 알코올 중독자, 간질병자 등이 20세기 초반 강제불임 시술을 받도록 법적으로 제도화 하는데도 영향을 미쳤고 실제 이 법으로 50000여명이 강제 불임을 당했다. 심지어 어떤 주에서는 이 법이 1970년대까지도 존재했었다. 우생학이 악명을 떨친 결정적인 계기는 히틀러가 아리안 인종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열등 인종인 유대인을 학살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학살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인간의 정신에 대한 우생학적인 해설은 거의 금기시 되었다. 하지만 우생학은 유전학으로 이름을 바꿔 지속적으로 발전하였고 1970년부터 다시 인간 정신과 유전자 사이의 관련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절에 하버드 대학에서 아이들의 억압된 기질 예를 들어 낯선 사람과 장소를 꺼리는 아이들의 성향이 선천적인 영향과 관련 있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미국에 있던 많은 부모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모들이 자식 교육을 잘못시키거나 학대해서 그런 기질이 발현된 것이 아니었음에도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이처럼 정신의 후천성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런 후천성 성향 중에 유아기 경험에 큰 비중을 두는 학설로 막대한 사회적 영향을 끼쳤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20세기 초까지 물리학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물리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정확한 결론을 이끌어냈고 그런 결과물들은 너무나 정밀한 것이었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이 보기에 생물학은 아직도 비과학적인 것이었다. 특히나 소파에 앉아 자신에게 떠오르는 이야기를 말하는 내성법에 의존한 심리학은 더욱 비과학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192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서로 다른 말을 하게 만드는 심리학의 말장난에 반동을 걸고, 실제 관측할 수 있는 객관적인 행동만을 대상으로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려는 행동주의가 절정에 달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심리학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라고 알려졌던 내성법에 대한 반동이었다. 그 첫 물꼬를 튼 사람은 고전적 조건 반사를 밝혀낸 파블로프였고, 손다이크와 헐이 이런 자극-반응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켰으며, 존 웟슨은 내성법에 의한 심리탐구를 심리학 밖의 영역으로 밀어냈다.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화처럼 객관적 실험에 의해서 인간의 심리를 탐구하기 위한 노력은 기존의 관념적 추론을 마음에 대한 주류의 학설에서 몰아내게 되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하지만 행동주의가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사이먼 배런-코헨은 이것을 이야기로 들려준다. “메리는 침실로 들어가 방 안을 돌아다니다 밖으로 나왔다. 당신은 그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당신은, 메리는 어떤 물건을 찾고 있었고 그것이 침실에 있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고, 메리는 침실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고 그래서 그 소리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려 했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으며, 메리는 아래층으로 내려갈 생각이었지만 잠시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를 잊었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메리는 매일 이 시간에 그런 행동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물리학자처럼 시간, 거리, 질량의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잘못된 일이다. 내일 다시 한 번 가설을 시험하면 잘못이라는 것이 분명히 밝혀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사람들의 믿음과 욕구에 기초해 그들의 행동을 설명한다. 행동은 실제로 행위자의 믿음과 욕구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이다. 행동주의는 틀렸다. 우리는 누구나 직관적으로 그것을 안다.” 어쨌든 행동주의는 틀렸을지 몰라도 행동주의가 가지고 온 논리실증주의적인 태도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학자들의 태도에 큰 영향을 끼친 것만은 사실이다. &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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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30. 인간은 지구의 암적 존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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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amickey</name>
	    </author>
	    <updated>2008-05-22T16:18:47Z</updated>
	    <published>2008-05-22T16:18:4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인간이 사는 곳은 지구의 매우 겉부분에 해당한다. 인간이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에 서 있다고 했을 때도 전체 지구 반지름인 6400km의 0.13%에 해당되는 껍데기에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천체들의 숫자를 생각했을 때 아마도 지구는 사막의 모래 하나 정도에 해당하는 천문학적 위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래 겉을 0.13% 둘러싸고 있는 아주 희미한 먼지처럼 인간은 존재하고 있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다른 지적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들은 사막 여행을 할 때, 나그네가 모래 하나의 0.13% 껍질에 존재하는 미생물을 무시하면서 지나가듯이 지구를 지나갈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하지만 가장 깊은 바다 영역까지 포함해서 0.3%에 해당하는 지구의 겉껍질은 40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로에게 생태적으로 도움을 주며 공생하는 관계를 만들어 왔으며, 각자의 3차원 공간에서 유전자가 살아가면서 다른 유전자의 생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면서 균형을 이루어 왔다. 하지만 인간의 등장으로 이런 균형은 매우 빠른 속도로 깨지고 있다. 한 가정이 일 년간 배출하는 쓰레기양만 따져 봐도 인간이 자신의 일시적인 편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을 소모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인간은 지구의 껍질에 지속적으로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덮씌우고 있는데 이처럼 인간의 건물에 점유된 장소에서는 그 어떤 다른 유전자도 생존할 수 없다. 인간은 지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끊임없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3차원 공간을 점유하는 피부암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불과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인간의 주변에서 많은 다른 종류의 유전자를 볼 수 있었다. 초가집 앞을 나서면 마당을 기어 다니던 벌레들과, 집 주변 나무에 존재하는 수많은 새들과 곤충들, 냇가에 살던 그 많던 생물들이 지금은 대부분 우리 주변에서 보이지 않는다. 생태적 균형이 점차 깨져가고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 후손들은 어느 시점에 가서 치명적인 지구 환경에 노출될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만을 위한 개발의 유혹에 환경론자의 목소리는 대중에게 별 호소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환경론자들의 전전두피질에서는 실제로 더욱 먼 미래에 대한 예측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눈앞의 이득만 따지는 개발업자들은 자신의 전전두피질에 이기적인 목표 지향성 행동만을 장착시켰다. 주전성(走錢性) 현세주의는 자손의 내세를 망가뜨리고 있다. 결국 개발업자의 후손 유전자들도 미래에 그 업보를 그대로 떠안게 될 것이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한 끼 식사를 할 때 몇 백 년 동안 자란 나무를 베어 젓가락으로 한 번 쓰고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대”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우리 후손들은 하게 될 것이다. 마치 고대 로마의 귀족들이 다른 음식을 맛보기 위해 먹은 음식을 토해내면서 흥청망청 살다가 멸망하였듯이, 우리가 벌이는 문명의 파티는 지구 환경의 입장에서 따져보면 흥청망청에 가깝다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달아야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인류의 미래는 환경론적으로 봤을 때뿐만 아니라 우주론적으로 봤을 때도 매우 비관적이다. 수만 년 내에 지구 전체에 빙하기가 도래할 수도 있고, 수백만 년 안에 공룡을 멸망시켰던 큰 규모의 운석이 떨어질 확률도 과학자들은 거의 100%라고 말한다. 50억 년 쯤 후에는 태양이 적색거성으로 변하면서 크기가 지구 궤도를 삼킬 정도까지 확장되기 때문에, 그 전에 우리 후손들이 지구를 탈출하지 못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유전자는 타버릴 것이다. 또한 최근의 관측 결과는 우주가 10&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UP&gt;117&lt;/SUP&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년 후에 결국 꽁꽁 얼어붙을 것이라는 예상을 많이 내놓고 있다. 이렇게 우주가 동사(凍死)하는 변화를 걷는다면 우리의 자손은 아무리 지구 밖 행성으로 옮긴다 하더라도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이처럼 먼 미래에 다가올 우리 후손의 운명은 비극적으로 정해져 있다. 결국 과학적으로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만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백 년 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의 삶에서 그런 요원한 미래까지 생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 당장 우리 모두는 잘해야 백 살 근처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그러했듯이 우리는 우리 자손에게 우리의 생태적 지위와 서식처를 넘겨주고 노화와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하지만 결국 모든 이들이 이 생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절박한 현실 앞에서도, 인류는 곧 닥쳐올 종말을 준비하는 종교단체처럼 큰 소란에 빠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곁에 있는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며, 사랑으로 결합된 아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력 넘치는 우리 아이의 미소는 우리 생의 가장 커다란 의미이자 축복이고, 따뜻한 우리 가정은 우주에서 가장 안락한 천국이다.&lt;SUP&gt;&lt;FONT color=#0000ff&gt;1)&lt;/FONT&gt;&lt;/SUP&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1) 인간이 가진 감정의 뇌는 먼 미래에 태어날 후손의 안위보다는, 현생에 만나게 되는 후손의 안위에만 신경을 집중한다. 현생에서도 유전적으로 거리가 먼 호모 사피엔스(인류)보다는 유전적으로 가까운 호모 사피엔스(가족, 친족, 민족)에만 신경을 집중한다. 우리는 시공간 속에서 유전적 가계도가 가까운 대상에 한해서 애정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태어날 이 땅의 후손들은, 현생의 머나먼 타국 아이들처럼 큰 관심을 끄는 대상이 아니다. 그들 또한 유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취급을 받고 있다. 이렇게 유전적으로 가까운 자손에 집중하는 특성은 직계 자손의 생존율은 비약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것이 현생의 자손만을 위한 환경 파괴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우리의 근시안적인 본능이 암유전자처럼 파국을 가져올 뇌관이라는 것 또한 명심하여야 한다. &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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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29. 인간은 지구의 암적 존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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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amickey</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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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22T16:16:00Z</updated>
	    <published>2008-05-22T16:16:0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생물들은 자신이 살아있는 시기에 특정 공간을 점유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나무 위에는 새가, 나무뿌리에는 벌레와 미생물이, 나무 밑에는 토끼가, 그 옆에 사람이 자신의 시공간에 해당하는 생태적 지위를 확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동일한 생태적 지위를 놓고 서로 다른 생물종이나 심지어 같은 종끼리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것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유전자가 벌이는 적자생존의 전쟁이다. 이런 전쟁은 수시로 다른 종의 침입과 방어를 반복하며 수많은 시간 동안 균형 잡힌 생태계의 모습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식물이 태양광으로부터 유기물을 만들고, 그 유기물을 섭취한 동물들이 먹이 사슬을 형성하며 살아가게 되고, 결국 동물들은 노화를 거쳐 죽게 되는데, 그 시신은 미생물로 인해서 분해가 되고, 그 분해산물을 다시 식물이 이용하는 사이클을 형성하게 되었다. 즉 동물과 식물과 미생물들이 각자의 시공간 속에서 적절한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공존의 형태를 이루면서 살아온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숲이나 강가의 모습은 유전자들이 전리품으로 각자 3차원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며, 이들의 위치는 절묘하게도 서로의 유전자 생존에 도움이 되고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유성생식을 통해 자신과 유전적으로 다른 자손을 만든 부모들은, 자손에게 자신이 살던 생태적 지위와 서식지를 양보하고 노화를 거쳐 죽게 된다. 우리 조상들은 자신은 계속 살아남으면서 자손을 출산시키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유전자는 세포에 누적되는 손상과 노화를 계속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에 주력하기 보다는, 새로운 유전자 세트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화를 거쳤기 때문에, 자신은 장엄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방식은 현재 우리 몸 안의 세포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결국 노화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특정한 횟수만큼 분열을 끝내면 더 이상 분열을 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우리 몸속의 유전자 시계는 분열 횟수를 기억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면 더 이상 똑딱거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분열 횟수를 무시하고 계속 분열하는 세포도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암세포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 몸의 세포들은 자신이 속한 시공간을 점유하면서 다른 세포들과 유기적으로 도움을 주며 살아가고 있다. 이 모습은 흡사 지구 위의 생태계의 축소판처럼 서로의 유전자에게 도움을 주면서 개체 생명에 전체적으로 기여를 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결국 지구의 거시적 생태계의 모습이나 한 인간의 신체 내부 모습이나 모두 유전자의 생존을 서로 돕는 체제이다. 우리 몸의 특정 세포가 손상을 입었을 때 그 부분은 다시 원래의 설계도를 따라서 회복되기 마련이다. 피부가 헐면 다시 그곳에 피부세포가 재생하여 큰 흉이 지지 않는 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게 된다. 간에서 주먹만큼 큰 영역이 손상을 입는다 하여도 간세포가 재생하여 다시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게 된다. 이것은 숲에 불이 나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곳에 숲이 자리 잡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 몸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에는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 대한 유전적 정보가 담겨져 있다. 즉 피부세포에도 간세포에 해당하는 유전적 정보가 담겨져 있으며, 간세포에도 피부세포에 해당하는 정보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피부가 손상된 영역에서는 피부세포만이 재생되고, 간이 손상된 영역에서는 간세포만이 재생된다. 그리고 이 세포들은 손상된 부분이 원래의 크기만큼 재건되면 더 이상 증식하지 않게 된다. 즉 세포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3차원 공간에서 어떤 유전적 정보를 사용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으며, 자신들이 재건한 부분이 3차원 공간에서 어느 정도 공간을 점유해야 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만일 피부세포나 간세포가 원래의 크기를 넘어 지속적으로 증식하게 된다면 그 부분은 점차 부피가 커질 것이며, 그 부피가 커지는 만큼 우리 몸속에서 기존에 3차원 공간을 점유하고 있던 다른 조직들을 침범하게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무차별적인 증식이 일어나면 결국 생명 유지에 필요한 다른 조직들의 공간을 점점 더 침범하여 전체 생명 활동에 큰 장애가 초래된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식으로 활동을 하는 세포가 실제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암세포이다. 즉 암세포는 옆세포와 협력하여 일정한 공간만 차지하려는 성질이 없으며, 일정한 횟수만 분열하는 과정도 고장 난 세포이다. 결과적으로 암세포 자신만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다른 세포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차지함으로써 결국 암세포 자신도 개체의 사멸과 함께 사라질 운명이 되는 것이다. &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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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28. 무성생식과 유성생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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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amickey</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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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20T16:00:16Z</updated>
	    <published>2008-05-20T16:00:1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두 벌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개체가 자손을 낳기 위해서는 유전자를 한 벌로 줄여야 한다. 만일 자손을 낳기 위한 생식 세포가 감수분열이라 불리는 유전자를 한 벌로 줄이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그 개체의 자손은 몇 세대 못가서 너무나 많은 유전자가 세포 핵 내에 누적되어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유성생식을 하는 개체는 무성생식을 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자신과 크기나 모양이 비슷한 후손을 즉각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훨씬 작은 생식세포 즉 정자나 난자처럼 매우 작은 세포의 형태로 유전자를 전달하게 된다. 즉 단세포 생물이 자신과 비슷한 크기의 후손으로 이분 되는 것과 달리 유성생식을 하는 대부분의 다세포 생물들은 실제 자신의 크기보다 훨씬 작아서 눈에도 보이지 않는 작은 크기에서부터 후손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간의 연결 과정에 극히 좁은 깔때기를 통과하는 듯한 과정이 존재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유성생식을 하면서 이런 깔때기 과정을 거치려면 적절한 환경에서 그냥 몸이 둘로 나눠지는 무성생식과 달리 너무나 복잡한 다른 유전적 투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남성이 자신과 같은 남성으로 무성생식을 한다고 가정하면, 몸무게가 충분히 두 배로 늘 만큼 먹은 다음 조용한 곳에서 혼자 누워 반으로 쪼개지는 과정을 거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 남성들은 여성을 유혹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과 자원과 시간을 소모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결혼을 해야 하며, 자녀를 위해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만 한다. 다른 남성보다 더욱 나은 이성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해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깔때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자손은 작은 크기로 태어나 매우 긴 양육과정을 거쳐야만 하며, 특히 인간의 경우 물질적인 신체 발달뿐만 아니라 밈의 업그레이드 또한 해줘야 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게다가 유성생식의 또 다른 부산물인 노화와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즉 유성생식은 무성생식에 비해 외견상 훨씬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우리 조상들이 이처럼 무성생식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고 복잡한 유성생식을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과 다른 유전적 구성을 갖춘 자녀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무성생식은 결국 자신과 똑같은 형질의 자손을 만들기 때문에 특정 환경 변화에 매우 취약하게 된다. 무성생식을 하는 세균들은 스트렙토마이신 같은 특정 항생제에 노출되면 같은 유전적 형질 때문에 모조리 죽게 된다. 만일 세균들이 인간과 같은 유성생식을 한다면 항생제에 의한 대량 사멸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유전자 자체는 원시 지구의 초기 복제자 수준에서부터 항상 돌연변이를 거듭해 왔다. 하지만 무성생식으로 인해서 돌연변이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 많은 세대를 내려가면서 조금씩 이뤄지는 매우 느린 적응과정이다. 하지만 유성생식은 당장 한 세대만 내려가도 부모와 매우 다른 유전적 정보를 갖추게 되며, 따라서 매우 다양한 후손을 만들어 자연계에서 빠른 적응을 보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중에 적응을 제일 잘 한 개체가 살아남아 그 비슷한 형질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유전자는 우리를 같게 만드는 요소이면서 우리를 모두 다르게 만드는 요소이다. 우리는 부모와 닮았지만 부모와 다르다. 유성생식을 하는 유전자는 항상 자손과 다르지만 특정 형질은 더욱 잘 발현되도록 진화상에 선택 압력을 받아왔다. 우리가 침팬지와 외모부터 오장육부, 신경계, 세포 모양까지 닮은 것은 유전자가 98.8% 같기 때문이며 우리가 침팬지와 다른 것은 유전자가 1.2%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침팬지와 인간이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그 수많은 시간 동안 진화압력을 받으며 멸종하지 않고 생존해냈기 때문인데, 이런 생존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 바로 다양한 자손을 만들어내는 유성생식인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이런 다양한 후손을 만들기 위한 유성 생식의 필수 과정이 바로 ‘감수분열에 의한 생식세포 형성’이며 이 과정 중에 유전자는 매우 큰 다양성을 확보하게 된다. 즉 개개의 정자와 난자는 서로 다른 유전형질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모두 부모와 다른 모습이다. 수학적으로 지구상에 존재했을 800억 명 정도의 호모 사피엔스 중에 동일한 유전적 구성을 가진 인간이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고 존재할 확률은 거의 없다. 인간의 전체 유전자군은 지금도 새로운 유전적 조합을 위해 작동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카드를 섞은 뒤 게임을 한 판 벌이고 다시 카드를 섞는 것과 비슷하다. 전체 유전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런 개인 유전자 재조합 과정은 한 판의 게임과도 같은 순간일 뿐이다. 전체 유전자는 지속적으로 카드 게임을 하면서 매회 다른 게임이 벌어지게 만들면서 어쨌든 카드 게임 자체는 영속되게 만든다. &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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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27. 무성생식과 유성생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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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amickey</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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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20T15:58:16Z</updated>
	    <published>2008-05-20T15:58:1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생명의 지속적 존재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자신과 똑같은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만들어 지속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과 다른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만들어 지속하는 방법이다. 바이러스나 세균, 아메바나 히드라 같은 단순한 생물은 간단히 세포분열에 의한 무성생식으로 번식을 하는데 이런 경우 자신과 똑같은 유전적 체계를 가진 자손을 만들게 된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대부분의 식물도 곁가지를 만들고 나중에 모체로부터 독립하는 무성생식에 의해 번식할 수 있는데 이것도 자신과 똑같은 유전적 체계를 가진 자손을 만드는 것이다. 동물의 경우 일부 원충들은 몸을 둘로 나누는 방법으로 번식을 하는데 이것도 무성생식이다. 무성생식은 이처럼 그 과정이 유성생식에 비해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그들의 자손은 유전적으로 모체와 동일하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이처럼 무성생식으로 자신과 똑같은 유전적 자손을 만들게 되는 개체는 노화와 죽음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개별적인 특정 개체의 노화와 죽음이 존재할 수 있지만, 그와 똑같은 유전적 정보를 지닌 개체가 훨씬 더 많이 다른 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유전학적으로 봤을 때’ 그 개체는 다른 곳에 살아있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무성생식과 반대되는 유성생식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전해 받은 두 벌의 염색체를 지닌 이배체의 생물에서 일어나는 생식 방법으로 약 3억 년 전에 이런 생식 방법이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성생식을 하는 개체들이 일반적으로 한 벌의 염색체를 가진 것에 비해 유성생식을 하는 개체들은 두 벌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쪽 부모에서는 푸른 눈의 유전자를, 다른 한 쪽 부모에서는 갈색 눈의 유전자를 동시에 물려받을 수 있는데, 이 때 자손이 갈색 눈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푸른 눈 유전자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갈색 눈으로 태어난 자손도 갈색 눈 유전자와 푸른 눈 유전자가 함께 존재해서 결국 눈 색깔에 대한 유전적 정보는 두 벌 존재하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이렇게 두 벌로 유전적 정보가 존재하게 되면 한쪽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생기는 치명적인 손상을 다른 유전자의 정보로 보상할 수 있게 된다. 즉 우리 세포의 설계도면을 하나만 가지고 있는 것보다 두 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어느 한쪽 설계도가 엉망이 되었을 때 다른 설계도를 참고할 수 있어서 안전한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세균이나 바이러스도 통상 무성생식을 하다가 자신의 유전자에 손상이 있을 경우,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성교를 하여 유전자의 복구를 도모한다. 유전자는 항상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렇게 손상된 부분에 대한 회복 과정은 안정된 유전자를 구비하기 위해 필수조건이었고, 그 결과 이처럼 무성생식 생명체조차도 유성생식처럼 성교를 하여 유전자를 수선하는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다. &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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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26. 바람직한 교육을 위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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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amickey</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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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19T16:17:36Z</updated>
	    <published>2008-05-19T16:17:3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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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하지만 이런 시각이 바뀌었다고 해서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 바뀐 것은 아니다. 어떤 유전자들이 이타적 행동에 가장 가까운 답을 해줄 수 있는지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전 세계적으로 뉴스를 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때 사람들이 지금의 사람들과 전혀 색다른 본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때도 자신을 희생하면서 숭고하게 이타적인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 대중은 아낌없는 격려와 칭찬을 할 것이다. 이기적 집단이 큰 대립 없이 이타성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은 더욱 발전하려 할 것이며, 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시절에도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적 충동을 잘 조절하고, 남의 감정을 잘 이해하며,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잘 관찰하여, 그것을 자신의 행동에 반영할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ARS에 전화를 걸어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조금의 돈을 기부하는 행위는 사람들이 자신의 선행을 남이 인식하거나 기억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이타적 행위 그 자체에 큰 기쁨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모습 또한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아이가 ‘아앙’하고 큰 소리로 울 때 부모는 아이의 뇌회로에 입력된 공포 회로를 이용해서 아이의 충동을 억제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즉 아이가 큰 소리로 자신의 감정적 충동을 억제시키지 못할 때 “뚝! 계속 울면 혼낸다. (또는 때린다, 화낸다)”처럼 아이 유전자에 더욱 혹독한 환경을 제시함으로써, 아이의 안와전두피질이 울음을 유발하는 발성 기관의 움직임을 억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이의 전전두피질은 장난감을 못 얻어서 우는 것보다, 아빠나 엄마에게 맞아서 우는 상황이 더욱 안 좋은 것임을 계산하고, 감정의 관성이 계속 울도록 얼굴 근육과 발성 기관을 충동질 하는 것을 억압하도록 만든다. 울음을 참으려 얼굴 근육을 꿈틀대고, 입을 꽉 다물려는 아이의 표정은 이성의 뇌가 감정의 뇌를 억압하려는 순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감정의 뇌를 이성의 뇌가 조절할 수 있는 교육은, 나중에 아이의 경쟁자가 회사에서 승진이 좌절되었을 때, 감정의 뇌가 시키는 대로 “우하하하”하고 즐거움을 표현하려 하는 것을 이성의 뇌가 곧바로 정지시키는 모습으로 발전할 것이다. 아이는 같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힘내. 나중에 잘 되겠지.”하면서 위안할 수 있는 사회적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미래에 아이가 사회에서 보여줄 모습은 사소한 것 하나도 현재 부모의 실제 모습을 많이 닮을 것이며, 이는 부모가 언어로 지시한 내용(예를 들어 “착하게 살아라”, “열심히 살아라” 등)을 닮지는 않을 것이다. 언어로 아무리 자세히 잔소리하고 고전을 읽게 만들어도 자신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다. 아이의 뇌는 가식적으로 말만 멋지게 하는 부모의 모습을 판별하기에 너무나 충분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바람직한 모습을 ‘몸으로’ 솔선수범하면서, 그것에 대한 언어적 이유를 적절히 설명해주는 것은 때로 필요 없는 경우도 많지만, 그것을 말해줘야만 할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언어적 설명에는 기교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걸인에게 동전을 넣으면서 “이것은 이기적 유전자가 전략적 이타행위를 시행할 때 스스로 만족을 주는 신경 과정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란다”라는 설명보다는 “우리도 어렵게 살지만 우리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등의 설명이 아이에게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한 편의 시를 읽을 때 문법적으로 갈가리 찢어 읽는 것보다 그냥 그대로 읽으면서 감동을 받는 것이 제대로 시를 읽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껏 과학자들이 밝혀 놓은 기전으로 우리의 감각질을 갈가리 찢어 바라보았다. 물론 이것도 전혀 안 해보는 것보다는 한번쯤 시도해보는 것이 낫다. 하지만 ‘정석은 익힌 뒤 잊어라’라는 바둑 격언처럼 우리는 다시 인간적인 언어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딱딱한 과학 단어보다는 삶 속에서 인간미 묻어나는 언어로 소박한 설명을 해주는 것이 아이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갈 것이다. 따라서 모든 부모들은 전문 용어는 모르더라도 아이를 훌륭하게 이끌 수 있는 아마추어 철학자가 되어야 하며, 아마추어 사회학자, 아마추어 심리학자, 아마추어 교육학자가 되어야 한다. 부모는 생의 최일선에서 직접 경험하면서 아이를 가르치기 때문에 어쩌면 아마추어가 아닌 진정한 프로페셔널리스트가 되도록 쉼 없이 노력해야 하는데, 이 때 전문 단어를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아름다움을 통상적인 단어로 그것도 환한 미소와 함께 설명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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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25. 바람직한 교육을 위하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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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amickey</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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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19T16:15:29Z</updated>
	    <published>2008-05-19T16:15:29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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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1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을 지능지수IQ로 분류하여 보직을 정해주는 에드워드 손다이크의 방식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IQ가 높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회적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시대가 일시적으로 존재했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IQ가 증가된 사회에서는 IQ만으로는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는데 그런 분위기에서 강조되던 우리 뇌의 다른 능력은 감성지수EQ였다. 즉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감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않다면, 사회 집단에서 동일한 IQ를 가졌으면서 보다 안정적인 감정 상태를 가진 사람과의 경쟁력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경험하기 마련이며 이런 스트레스 상황에서 보여주는 행동 양식 중에, 인내를 갖추어 자신의 감정 상태를 잘 다스리는 사람과 충동적 성향을 곧바로 드러내는 사람 간에 벌어지는 장기 레이스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요 근래에 강조되는 다른 능력은 사회성지수SQ라 불리는 타인의 심리를 읽어내고 그 사람과 사회적으로 보다 원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리드하는 능력이다. 물론 이외에도 도덕성지수MQ, 창조성지수CQ, 공존지수NQ 등 다양한 모습의 인간 심리 분석 지수가 있다. 결국 이런 다양한 지수가 나온 이유는 뇌가 이성적 뇌, 감정적 뇌를 가지고 있으면서 사회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지능지수IQ, 창조성지수CQ는 이성적 뇌의 작용을, 감성지수EQ는 감정적 뇌의 작용을, 사회성지수SQ, 도덕성지수MQ, 공존지수NQ는 사회적 뇌의 작용을 의미한다. 하지만 뇌에는 사회적 기능만을 위한 특별한 회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지능을 위해서는 남의 감정을 나의 것처럼 느끼기 위한 EQ와 더불어 타인의 언어적 이성톤과 비언어적 감정톤의 표현 방식을 잘 인식하기 위한 IQ+EQ의 결합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실제 SQ를 위한 검사 항목들로 밝혀지는 능력치는 IQ, EQ 검사로부터 유추되는 결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즉 사람은 이성의 뇌와 감정의 뇌를 상황별로 적절히 조합하여 자신의 감정적 충동을 컨트롤 하고, 타인에게 적절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런 능력의 일면들을 그때마다 사회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자신의 이기적인 본능적 충동과 이를 억압하여 사회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능력은, 요즘의 신경과학 발전이 있기 전에는 철학과 심리학의 주된 논점이었다. 서양에서는 프로이트가 이드, 에고, 슈퍼에고를 끌어들여 이를 설명하려 했고, 동양에서는 성선설과 성악설이 그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했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단어들은 주류 과학자들에게서 외면되고 있고 과거에 그런 학설이 대중에게 영향력을 미쳤다는 정도로만 다뤄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급속하게 편도체나 안와전두피질, 거울신경 시스템 등의 신경학적인 단어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아이들은 자신의 웃음도 잘 참지 못하고, 자신의 울음도 잘 참지 못한다. 자신의 화도 잘 참지 못하고 어른에 비해 두려움도 심하다. 그래서 조용해야 할 음악회나 기차 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게 된다. 이런 아이들의 행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감정의 뇌’의 충동을 ‘이성의 뇌’가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이런 현상을 예전에는 부모님의 도덕 교육이나 가정, 학교의 후천적 인성 교육 관점에서 묘사를 했지만, 지금은 ‘편도체의 충동을 안와전두피질이 억제한다’ 등의 신경생리학적 묘사를 더욱 선호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나중에는 이것보다 더욱 세분화된 해부학적 묘사나 유전자의 묘사로 바뀌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인간의 정신 분석의 역사는 비물질적인 존재였던 영혼이나 신명에서 뇌의 국소 부위로 그리고 신경과 유전자의 수준으로 묘사 체계가 바뀐 역사이다. 그리고 거기에 유전자가 과거에 어떤 생존 과정을 거치면서 이런 회로가 입력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해석이 가미된 역사이다. &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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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24. 공명하는 한국 사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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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amickey</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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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17T12:01:12Z</updated>
	    <published>2008-05-17T12:01:12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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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불교가 전수되기 직전까지는 샤머니즘의 영향 하에 있던 무속신앙(무교)이 우리나라의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무교는 현세의 문제점이 초월적인 영역의 혼 때문이라고 보았다. 무교에 있어서 내세는 조상 혼이 그냥 돌아갈 곳이었으며 현세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곳이 아니었다. 무교는 철저히 현세의 장수와 재복, 득남, 결혼, 풍작, 치병을 위한 종교였으며 내세를 기약하는 종교가 아니었다. 무교의 중요한 목표는 액을 내리는 원혼을 달래서 현세의 복을 충분히 누리는 것이었다. 이런 액을 달래기 위해서 무속인은 역대 왕, 장군, 기생, 북두칠성, 해, 달, 호랑이, 신선, 선녀 등과 접신하였다. 영매가 보이는 이러한 ‘다양한’ 초월적 매개체의 모습은 한국인의 종교적 혼합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서구 역사의 주된 흐름은 다신론의 사회 속에서 유일신만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의 ‘차별’과 ‘정체성’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유일신으로 대표되며 단 하나의 정통성을 강조했던 서구에 비해 한국 종교는 그 근간을 이루고 있던 무교의 영향으로 ‘혼합’주의적 성격&lt;SUP&gt;&lt;FONT color=#0000ff&gt;1)&lt;/FONT&gt;&lt;/SUP&gt;을 띄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사찰에는 다른 나라와 구별되게 산신전이나 칠성각이 있는데, 산신령이나 북두칠성의 힘을 빌려 소원을 비는 행위는 불교가 무교의 혼합주의적 성격과 함께 공명한 결과이다. 기독교도인들도 부적을 사거나 점을 보는데 큰 거부감이 없으며, 부흥성회나 신유집회에서 보이는 감정을 폭발하는 모습들은 무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서로 다른 종교가 한 집안에 존재하여도 서구처럼 큰 분란이 없는 것은 유교가 기타의 종교들과 혼합한 모습이며, 불교도나 기독교도 또는 천주교도인들이 명분으로는 천국이나 해탈 같은 내세지향적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기도 내용에는 현세의 복락을 더 많이 기원하는 모습들은 바로 이러한 무교의 현세주의와 이들 종교가 혼합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생활이 현세주의로 흐르게 되면 내세와의 긴장감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현실에서 재물을 모으고 출세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종교 의식을 치르러 가는 한 두 시간만 신앙심이 머리 속에 자리 잡고 대부분의 나머지 시간은 현세적 목표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현재 우리나라의 도시들을 구성한 1세대는 모두 식민지와 전쟁을 체험한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농촌 출신이었다. 이들은 유교적 사회질서를 통해 규율과 절제를 몸에 익혔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거치며 근검과 절약을 생활화했던 시대였다. 이들의 자녀들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경험하면서 한글로 교육을 받고 서구의 가치관을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첫 세대들이다. 이들은 새마을 운동과 산업화의 역군으로 한국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물질적인 풍요를 점차 이루게 되었다. 이들의 자손이 현재의 젊은 층을 구성하고 있으며 전쟁을 겪지 못한 이들은 반공과 친미 성향이 그 전 세대보다 약하며, 성장 과정 중에 풍요로워진 물질문명을 누리며 소비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진 세대이다. 현재의 도시를 만든 사람들은 모두 유교적 농촌 문명을 가지고 도시로 왔기 때문에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도시는 모두 농민들이 만든 도시이다. 완전히 국토가 황폐해진 전후 반세기만에 한민족은 전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른 고속 성장을 이루었다. 이런 빠른 속도 때문에 세대간의 물질문명 혜택은 크게 차이가 생기게 되었고, 한 도시 안에 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손자 간에 현격한 세대차이가 존재하게 되었다. 한국의 경제 발전 속도가 매우 느렸다면 현재 도시에서 느껴지는 세대차이는 별로 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한국 사회는 이처럼 세대간의 차이점이 공명하고, 무교-도교-유교-불교-천주교-기독교가 공명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한국의 대도시들은 세상 그 어떤 곳보다 빠른 발전 속에서 서로 다른 구성원들이 혼합되어 공명하는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이런 혼합적 공명은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접하기 때문에 그것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으며, 심지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져서 그 실체를 타국에 가서 살지 않는 한 구체적으로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그리고 이런 공명은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선택적으로 피할 수조차 없다. 예를 들어 자신이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기독교적 영향이 물결치는 한국 사회의 사회적 공명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혼합적 공명은 과학 또한 예외일 수 없었다. 무교로부터 기원한 혼합주의는 과학을 기존의 사상 체계들과 손쉽게 혼합시켰지만, 과학 또한 그 중 그 일부로서만 존재하게 되어, 다른 비과학적인 요소들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하고 그들과 공존하는 형태로 정착하게 되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유전자에 의해서 뇌세포가 생겨나고, 뇌세포들의 공명에 의해서 역사가 생겨나며, 역사 속에서 우리는 타인의 뇌와 공명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현재의 공명에는 진화가 이루어지던 시절의 공명에서부터 근현대사의 한반도 역사까지 포함되어 있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긴장, 종교와 과학의 긴장, 신세대와 구세대의 긴장감이 함께 퍼져가는 도시 속에서 우리는 또 다시 어떤 창조적인 새 물결을 만들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나의 삶 속에서 녹여낼 것이며, 자녀에게 전수해줄 것인가? 귓속이 윙윙거릴 정도로 소음으로 가득 찬 갈등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연 세계사에 남을만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종소리를 울릴 수 있을 것인가?&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1) 이런 성향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동남아와 인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권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 현상이다. 아시아에서는 유일신이 강조되는 역사적 흐름이 없었다. 즉 배타적 전도주의(exclusive evangelism)가 서유럽처럼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루지 않았다. 인도에서 그토록 찬란한 발전을 이뤘던 불교마저도 힌두교의 엄청난 수의 신들 속에 파묻히게 되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혼합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인도이다.&lt;/SPAN&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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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23. 공명하는 한국 사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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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amickey</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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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17T11:55:57Z</updated>
	    <published>2008-05-17T11:55:5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이기성을 강조하는 개인주의와 이타성을 강조하는 집단주의의 긴장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꾸준히 변화해 왔다. 실상 개인주의가 현대처럼 정착된 것은 서구 유럽에서의 여러 가지 혁명적 변화 때문이었고, 그런 체제를 우리나라는 재빨리 도입했을 뿐, 창조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계사에 제시하지는 못했다. 서구에서도 개인주의는 대부분의 역사 속에서 신권(神權)과 왕권에 짓눌려 꽃을 피우지 못하였고, 시민사회의 성장과 함께 왕족과 귀족이 몰락하면서 비로소 개인주의는 싹틀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개인주의의 의미는 집단의 발전을 저해하는 이기주의적인 뉘앙스로 다가오지만 이 단락에서 묘사하는 개인주의는 개인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인권주의적 의미로 사용한다. 개인주의(individualism)라는 단어 자체에 더 이상 나눌 수 없는(indivisible) 단위로서의 인간의 위상을 묘사한다. 개인주의는 집단주의 때문에 역사적으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희생당하도록 강요되어 왔다.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국가주의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전쟁이나 폭정이 이루어졌으며, 그에 비례하여 개인의 존엄성이 얼마나 핍박을 받았는지, 우리는 어느 시대 역사책을 펼쳐 보아도 그 예시를 금세 찾아낼 수 있다. 조선시대 유교적 가족주의 제도 하에서 여성이나 장손이 아닌 사람들의 권위는 낮게 평가되었는데, 이것 또한 유교적 가족주의가 개인주의를 억압하는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유교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집권계층에서 서민층까지 체계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전수되었다. 성직자나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서 시대의 패러다임이 독점되었던 서구와 달리 유교는 긴 시간 동안 통치자로부터 지방의 서민에까지 충분히 그 내용들이 전달된 편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이타주의는 유교적인 덕행의 모습으로 주로 여겨지고 있다.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의 향약은 이러한 이타주의가 유교식 표현을 빌려 더욱 구체화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이타주의는 유교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범인류적이 현상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유교는 학문의 추구대상이었고, 수신의 방식을 제시하였으며, 교육에 대한 중시 뿐 아니라 당시의 세계관과 통치체계, 윤리체계, 법체계, 생활양식을 포함하고 있었다. 유교는 유대교의 율법처럼 개개인의 사회적 행동양식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유대교처럼 초월적 세계(유일신)와의 긴장감은 유발하지 못하였다. 유교에서 현실의 긴장감은 오로지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윤리적 규칙뿐이었다. 따라서 구약성서에서 아브라함이 가족의 구성원인 아들을 신께 바치는 모습이 유림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행동처럼 여겨질 것이다. 이처럼 유교는 철저히 현세주의적인 성향만을 강조하고 있다. 유교의 현세주의적 모습 중에 하나인 가족주의는 부모님이 아무리 불합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그것을 따르도록 가르친다. 가족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원인 장자에 의해서 거행되는 제사는 장유유서&lt;SUP&gt;&lt;FONT color=#0000ff&gt;1)&lt;/FONT&gt;&lt;/SUP&gt;로 표현되는 남성주의와 권위주의를 고착시켰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서구의 유일신 사상이 중세를 거치면서 신을 초월적이며 추상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그런 이상적인 신과 개인의 관계를 신앙으로 구축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신 앞에 동등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후기까지 우리 조상들은 만물일체설을 주로 믿고 있어서, 실학자들이 개인과 만물을 구체적으로 구별하기 전까지, 개인의 위상은 천지인이 융합된 모습일 뿐, 천지와 구별되는 위상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가족 내에서 파악되는 개개인도 신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닌 서열 아래 차별적인 것이었다. 유교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평등한 개인주의를 탄생시킬 만한 역량이 구조적으로 없는 체계였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유교는 조선인의 우주론과 형이상학, 윤리학과 사회학, 통치학을 포괄하는 체계였고, 그것이 주자학이라는 이름으로 매우 단단히 묶여 있었기 때문에, 삼강오륜과 사서삼경의 법칙을 넘어서는 예외는 용인되지 않았다. 유교라는 거대한 풍선에 담겨 있는 물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구멍 하나도 용납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조선 사회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서구에서 교황이 파문을 내리는 것과 같은 혹독한 사회적 박대를 면할 수 없었다. 현대인은 조상의 제사를 안 지내는 것이 무슨 큰일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조선시대에 천주교인들은 단지 조상신에게 제사 지내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무자비하게 관리들에 의해 순교를 당하였다. 제사를 안 지내는 것은 사형을 시킬 만큼 거대한 범죄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제사는 현대인에게 일회성 의식일 뿐이지만 조선사회에서 제사는 가톨릭의 미사처럼 유교의 틀을 떠받치는 대들보였다. 가족 구성원이 모두 모여 장자를 중심으로 조상을 기리는 행위는 국가 기본 구성단위인 가족관계를 강화하는 주된 의식이었고, 통치자는 가족 내의 서열관계에 절대복종하는 권위주의를 왕에게까지 연장하도록 강요하였다. 따라서 제사를 거부하는 것은 한 가정의 문제일 뿐 아니라 국가의 이념 체제를 붕괴시킬 심각한 상황이며, 어찌 보면 왕권에 도전하는 행위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북한의 가정에서 김일성 수령의 사진을 남들처럼 방안에 걸지 않고 화장실 한 곳에 처박아 놓은 사람을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와 같은 맥락의 상황이었다. 한 때 서구에서 이상 천문 현상을 체제붕괴와 연관된 것으로 생각하였듯이 조선 사회에서 제사의식 거부는 체제붕괴와 연관된 것이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과학적으로는 인과관계가 없는 천문현상과 체제붕괴, 마찬가지로 과학적 인과관계가 없는 제사의식과 체제붕괴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말도 안 되는 연관성이다. 하지만 이런 자세한 구분이 이뤄지기 전 시절, 그러니까 과학이 싹트지 못하고, 개인주의가 싹트지 못하던 시절에 우리 조상들의 뇌속에서 이들은 구분되지 않고 ‘연합’함으로써 개인을 그 체제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1) 이는 주로 남성에 의해 주도되는 서열화의 유교적 표현이다.&lt;/SPAN&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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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22. 錢者天下之大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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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amickey</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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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16T13:19:49Z</updated>
	    <published>2008-05-16T13:19:49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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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사실 많은 돈처럼 풍족한 자원이 행복감을 주는 신경학적인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신경계에 새로운 자극을 줄 확률이 증가시키기 때문이다.&lt;SUP&gt;&lt;FONT color=#0000ff&gt;1)&lt;/FONT&gt;&lt;/SUP&gt; 새로운 자극이 더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에 대한 기대감이 보상체계를 가동시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돈이 많을수록 더욱 많은 새로움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의 구체적인 사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 즉 돈이 은행에 있어서 내가 현재 직접 사용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도 두둑한 통장을 들고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사람은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할수록 복잡한 외부 세상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이 정보로 전전두피질에서 더 나은 목표지향성 행동을 계산해낼 수 있다.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조상들은 항상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얻을수록 더 나은 미래 예측을 할 수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한 장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형으로 더 움직여 봄으로써 더 안전하거나 더 음식이 많은 장소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서 자신들의 시선을 움직여 왔다. 돈과 같은 자원은 이런 미래 예측과 그를 통한 목표지향성 행동을 풍성하게 만드는 새로움에 우리 시선을 더욱 많이 노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사람들이 생존이 해결된 현 시점에서도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한가지 이유인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우리들이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은 푸주, 술집 또는 빵집의 박애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때문인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회적 집단이 커지면서 분업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자원 교환을 통해 집단의 결속력과 발전 속도를 증가시켰고, 결국 이것을 기반으로 현대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집단의 생존력도 높이면서 개개인의 자원획득에도 도움이 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해 왔다. ‘개인의 이기성과 집단의 경쟁력’ 이 양자간의 절묘한 절충을 위해 현대 사회는 발전해 왔지만 아직도 이들은 완전한 합의점을 찾고 있지 못하며 때로 이들은 현대에서도 갈등을 보이는 주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구소련처럼 공산주의라는 집단의 경쟁력만을 강조하다가 개인의 이기성에 무너진 역사는 이 둘을 조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잘 보여준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우리나라에서 굶주림이 사라지고 직업적 자립도가 급증한 시기는 500년을 내려온 유교적 전통이 급격히 사라지는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유교적 전통이 생생하게 살아있던 시절 아이들을 가르치던 기초 유교서적인 四字小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써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어른이 서서 계실 때는 그 분의 발치를 보고, 앉아 계실 적에는 그 무릎 부분을 바라보며, 어른 앞에서 함부로 주저앉지 말 것이며, 어버이의 얼굴을 똑바로 치켜보며 면대치 말라. 어른이 앉은 채로 명령하시면 꿇어앉아서 듣고, 서서 명령하시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들으며, 부모님께서 누우신 채로 명령하시더라도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말씀을 경청하라”, “부모님이 밥상을 대하시고 맛있게 잡수시지 않으면 보다 좋은 반찬을 구해 올릴 생각을 하고, 만일 진귀하고 특이한 물건을 얻게 될 때에는 잘 가지고 돌아가서 부모님께 드리도록 하라. 비록 음식이 내가 먹기 싫은 것이라 하더라도 부모님께서 내려주시면 반드시 그 맛을 보고, 그릇에 더 먹고 싶은 음식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어른이 내려주시지 않으면 함부로 넘보지 마라.”, “비록 한 낟알의 작은 곡식일지라도 얻게 되면 반드시 고르게 나누어 같이 먹고, 가령 사소한 맛볼 것이라도 얻으면 반드시 똑같이 나누어 함께 먹어야 한다. 형이 굶주리고 있는데 아우만 배를 채운다면 저 미물인 새나 짐승 따위가 하는 행실이니 형제간에 먹는 음식을 사사로이 한다면 야만족속 무리들이나 다를 바가 없느니라.”, “젊은이에게 함부로 굴거나 연장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사람의 분수를 무너뜨리는 망령된 행실이다. 형제끼리 노여움이나 원망을 품는 것은 천륜의 도리를 패망시키는 행위이다”, “스승에게 질병이 있을 때에는 반드시 약을 지어 성심껏 치료해드려야 한다”, “상대방의 나이가 자기보다 갑절 이상 많으면 어버이를 받드는 도리로써 대우해 섬길 것이며, 상대방의 나이가 자기보다 열 살 이상 많으면 손위 형의 도리로써 상대방을 섬길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부모-자식간, 형제-친척간, 스승-제자간, 연장자-연소자간에 극진한 예를 표하는 것은 현대에 와서 더 이상 자신의 유전자 생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유전자는 철저히 자신의 목표지향 행동의 보상 정도를 예상해 그 ‘경제성’에 해당하는 만큼의 노력만 기울이려고 한다. 유교적 행동의 경제성 즉 유교적 행동으로 얻어지는 실제 자원량은 예전에 비해 훨씬 줄어들어 버렸다. 오히려 훌륭한 인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드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과학자들은 동물과 인간의 세계를 연구하면서 이기적 유전자가 이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결국 자신의 이기성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타적인 모습도 결국 이기적인 전략의 일환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이 발표되던 초기에는 이런 과학적 발견이 전 세계적으로 도덕적 붕괴를 일으킬 학문적 기반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이기적 유전자나 이타적 유전자에 대한 내용이 대중의 머리 속에 침투되어도 세상은 그렇게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인간은 하루 대부분의 삶을 그것이 분업의 형태가 되었건, 가사의 형식이 되었건 간에 이타적인 행동을 하며 살게 된다. 보통 사람이 일생에 반사회적인 행동을 벌여 감옥에 갈만한 행위를 하는 횟수는 극히 적지만, 그 나머지의 시간에 사회에 도움이 될만한 행동을 벌이는 횟수는 반사회적 행동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의 결속력을 해치는 행위를 하게 되어 자신의 평판이 나빠지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며, 그런 심리기전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보통 사람은 죄책감에 빠지게 되고, 오히려 자수를 함으로써 그 정신적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사회적 분업은 역사적으로 개인의 이타성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자신이 잘 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하는 행위 자체가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만든 분업은 집단의 결속력과 발전 속도를 비약적으로 증가시킨 훌륭한 밈의 업그레이드였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1) 물론 대뇌피질하 구조물이 느낄 말초적인 쾌락을 쫓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이겠지만, 여기서는 대뇌피질의 수준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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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21. 錢者天下之大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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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amickey</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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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16T13:16:17Z</updated>
	    <published>2008-05-16T13:16:17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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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錢者天下之大本 - &lt;SPAN style=&quot;FONT-SIZE: 12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돈이 천하의 커다란 근본이다&lt;/SPAN&gt; &lt;/P&gt;
&lt;P class=HS1&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주성(走性)은 생물이 외부의 자극에 따라 이동하는 성질을 의미한다. 빛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주광성, 화학 물질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주화성, 중력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주지성이라고 한다. 양성 주광성은 가로등에 날벌레가 모이고, 오징어잡이 배의 환한 불빛에 오징어가 모이는 것과 같이 빛을 향해 움직임이 일어나는 성질이고, 음성 주광성은 지렁이나 바퀴벌레처럼 빛을 피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성질이다. 사람들은 한 때 자신이 태생적으로 속한 부족 유전자풀을 따르는 주성을 보였지만 이제는 자신의 유전자를 통해 발현되는 정신의 공명을 따라 주성을 보인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밈의 업그레이드 과정 중에 인간은 다양한 모습의 사회적 환경을 경험하였고 그것에 맞는 주성을 보였다. 주광성이나 주화성, 주지성처럼 이름을 짓는다면 인간은 항상 주자원성(走資源性) 즉 유전자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자원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보였는데 최근에 그것은 주전성(走錢性)으로 귀결되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농경-목축이 일어나기 전의 시대에는 수렵-채집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이동을 하였기 때문에, 남는 잉여의 자원이 거의 없이 필요에 의해 즉각적으로 식량 자원을 구해야만 하는 시절이었다. 소수 공동생활을 하던 이 시대에는 사유재산이라는 개념도 매우 미비하였기 때문에 이를 원시 공산사회라고 불렀다. 원시 공산사회에서는 정착 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농경을 위한 다양한 도구나 장비의 개발도 없이, 이동하면서 가지고 다니기 쉬운 간단한 원시 사냥 도구나 원시 채집 도구만을 지녔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그러나 일만 년 전 인간의 해마에 씨앗을 심은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수확을 할 수 있다는 정보가 반복 기록되면서 농경문화가 시작되었고, 수렵은 목축의 형태로 전환되게 되었다. 정착이 장기화될수록 같이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였고 이런 부족 인원의 증가는 생산력의 증가와 다양한 분업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런 분업은 원시 전문가들을 낳았으며 이들에 의해 점차 기술의 발전과 도구의 발명이 가속화되어 잉여 자원이 쌓일 계기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정착을 통해 집단은 더욱 커져갔으며 점차 다른 집단과 전쟁을 벌이는 일이 빈번하게 생기기 시작하였다. 전쟁을 통해 약탈을 자행하고 진 부족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면서 계급별 노동 분화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노예에 의한 생산성 증가로 잉여 생산물이 남는 계급은 생존이 해결되면서 잉여의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주로 상류층에 해당하는 이들은 남는 시간에 생존 자체의 문제가 아닌 다른 즐거움 즉 선조체에 도파민을 분비시킬 다른 보상꺼리를 찾기 시작하였고, 이는 타인과 공유되면서 다양한 문화를 꽃피워 밈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하였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중세 봉건 사회에서 구체적 물질 자원을 화폐와 교환하는 체계가 본격화되어 돈이 세포의 공용 화폐인 ATP처럼 자원의 거래를 대표하는 체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근대에는 제국주의와 공산주의를 거쳐 자본주의가 정착되었고 이를 통해 사유재산이 인정되면서 개인 영리추구와 자유 경쟁이 정착되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인간은 이처럼 다양한 사회적 자원획득 환경을 경험하였고 그 환경에 맞는 행동학적 반응을 선택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인 주자원성을 추구하였다. 예전처럼 농경문화가 주된 자원획득 환경일 경우에는 한탕주의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었다. 농산물은 항상 주린 배를 부여잡고 참는 시간이 지난 후에 획득되는 것이었으며, 땀을 흘려 노력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협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돈은 이처럼 신체적 노력과 기다림의 인내가 꼭 필요하지만은 않다. 그리고 주변 사람과 반드시 협력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세월의 숙성이나 인내, 협력과 상관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획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자원획득에 대한 이 기본적인 입장의 차이가 현대인들을 한탕주의에 빠뜨렸다.&lt;/SPAN&gt;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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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20. 農者天下之大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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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5-15T15:32:29Z</updated>
	    <published>2008-05-15T15:32:29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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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스포츠 경기장이나 정치판, 전쟁 등에서는 항상 집단 편 가르기가 존재한다. 집단간의 경쟁에서 승리했을 때는 긍정적인 감정 반응이 폭발하는데 이것은 부족간 전쟁으로 생존이 오락가락했었던 옛 시절에 승리했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태어나자마자 부족내에서 보호받으며 자라기 때문에 요즘 국적을 바꾸는 것처럼 다른 부족을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무조건 자신이 태어난 부족에 소속되어 활동해야만 했고 그 부족에 전쟁이 일어나면 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움을 했어야 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하지만 자본주의가 정착되어 국가간 교역이 강한 전쟁 억제력으로 작용하는 요즘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결속은 전쟁 중인 나라의 군부대에서나 볼 수 있을 현상이 되었다. 전쟁도 없고 생존도 해결된 안정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전전두피질과 같은 공명을 보이는 사람들과 집단 선택을 일으키게 된다. 같은 사상이나 같은 종교, 같은 지역,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서로 모이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자신과 비슷한 공명을 보이는 사람들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예전에는 부족내에서 같이 생존하고 있음에 안정감을 느꼈지만 생존이 해결된 요즘 인간은 전전두피질이 같이 공명하는 부족을 형성하여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ALIGN: justify&quot;&gt;20세기 초반 미래학자들은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여 인간의 생존이 확보될수록 종교가 힘을 잃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교통과 통신이 발달할수록 소수 개인들의 성향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종교는 전 세계적으로 그 어느 시대보다 큰 위상을 떨치고 있고, 개인 성향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큰 변화 속에 놓일수록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공명을 보이는 집단을 찾아 안정감을 얻으려 한다. 그래서 더욱 자신들의 색채를 고수하며 자신과 다른 색채의 사람들을 배타하고 경계한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내에서는 이런 배타적 성향과 경계성 대신 집단선을 위한 희생과 노력을 보여주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10만 년 전 우리 조상은 아프리카 한 군데에서 출발하여 전 세계에서 퍼졌다는 이야기를 해도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유전학적으로 동일한 자손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현 시대의 필요에 의해 다시 부족을 나누고 다른 부족을 배타하는 것이다. 유대교와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는 동일한 유일신을 믿고 있지만 서로 융합하지 못했다. 이처럼 사람들은 종교에서 취미활동까지 개개인의 전전두피질에 맞는 공명 단체를 찾아다니며 분파를 계속 나눌 것이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돋움'; T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