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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목탁소리(www.moktaksori.or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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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9-18T21:45:22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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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음공부 이야기 - 경향신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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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news01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5px&quot; colSpan=2&gt;&lt;SPAN id=title&gt;[책읽는 경향]강원에서 - 마음공부 이야기&lt;!-- TITLE END --&gt;&lt;/SPAN&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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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color=#666666&gt;입력: 2008년 09월 02일 18:32:38 경향신문&lt;/FON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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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news04 vAlign=top colSpan=2&gt;&lt;SPAN id=content&gt;&lt;!-- BODY START --&gt;&lt;!-- SUB_TITLE_START--&gt;&lt;STRONG style=&quot;COLOR: #6b6b6b&quot;&gt;ㆍ실타래 같던 마음의 끈이 끊어지다&lt;/STRONG&gt;&lt;!-- SUB_TITLE_END--&gt;&lt;BR&gt;&lt;BR&gt;2005년도 달력도 거의 넘어갈 때쯤이었다. 40대 중반으로 접어들게 되니 여러 가지 변화가 따르게 되었다. 몸이 망가지는 곳이 늘게 되었고, 더불어 까닭 모를 허무함도 자꾸만 밀려왔다.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실장으로서 사람을 다루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느끼는 외로움의 탓도 컸을 것이다. &lt;BR&gt;&lt;BR&gt;&lt;!--imgtbl_start_4--&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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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imgsrc_start_4--&gt;&lt;IMG hspace=1 src=&quot;http://img.khan.co.kr/news/2008/09/02/20080903.01100101000001.04L.jpg&quot; vspace=1&gt;&lt;!--imgsrc_end_4--&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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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tyle=&quot;FONT-SIZE: 9pt; LINE-HEIGHT: 130%&quot; color=#616588&gt;&lt;!--cap_start_4--&gt;&lt;!--cap_end_4--&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tbl_end_4--&gt;이미 불혹(不惑)의 나이건만, ‘내가 왜 이렇게 사는 건지’ ‘내가 추구하는 것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자연히 경주 보문호수를 찾는 시간이 늘어났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면서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법상 스님의 ‘마음공부 이야기’(불광출판사)라는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손에 잡힐 정도의 작은 크기에 300쪽이 넘지 않는 분량의 책이었다. &lt;BR&gt;&lt;BR&gt;처음에는 스님의 수행이야기려니 하고 쉽게 접근했다가 우리의 근본을 이루는 ‘마음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다룬 것을 알고 진지하게 읽어 나갔다. 하지만 처음 접하는 용어와 내용이 많아서 하루에 한 쪽을 넘기기도 어려웠다. 어떨 때에는 겨우 한 단락을 읽고 좌정과 묵상을 통해 되뇐 후에야 이해를 한 적도 있다. 그렇게 깨어있는 삶, 지혜로운 삶, 조화로운 삶, 평화로운 삶을 생각하며 읽어가다 보니 6개월이 지나버렸다. &lt;BR&gt;&lt;BR&gt;그 이후에도 반복하여 읽다보니 언젠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던 마음의 끈이 툭 끊어져 버렸다. 수많은 미혹(迷惑)이 해소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내 마음의 실체를 접하게 되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각종 의문에 스스로 답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lt;BR&gt;&lt;BR&gt;&lt;유병하 국립춘천박물관장&gt;&lt;!-- BODY END --&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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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음공부 이야기 - 경향신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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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법상</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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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9-18T21:45:1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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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news01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5px&quot; colSpan=2&gt;&lt;SPAN id=title&gt;[책읽는 경향]강원에서 - 마음공부 이야기&lt;!-- TITLE END --&gt;&lt;/SPAN&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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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5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5px&quot;&gt;&lt;FONT color=#666666&gt;입력: 2008년 09월 02일 18:32:38 경향신문&lt;/FON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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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news04 vAlign=top colSpan=2&gt;&lt;SPAN id=content&gt;&lt;!-- BODY START --&gt;&lt;!-- SUB_TITLE_START--&gt;&lt;STRONG style=&quot;COLOR: #6b6b6b&quot;&gt;ㆍ실타래 같던 마음의 끈이 끊어지다&lt;/STRONG&gt;&lt;!-- SUB_TITLE_END--&gt;&lt;BR&gt;&lt;BR&gt;2005년도 달력도 거의 넘어갈 때쯤이었다. 40대 중반으로 접어들게 되니 여러 가지 변화가 따르게 되었다. 몸이 망가지는 곳이 늘게 되었고, 더불어 까닭 모를 허무함도 자꾸만 밀려왔다.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실장으로서 사람을 다루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느끼는 외로움의 탓도 컸을 것이다. &lt;BR&gt;&lt;BR&gt;&lt;!--imgtbl_start_4--&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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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개월간의 인도 순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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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법상</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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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9-17T02:20:58Z</updated>
	    <published>2008-09-17T02:20:58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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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8월 28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출발을 앞두고,&lt;BR&gt;인사를 드립니다.&lt;BR&gt;&lt;BR&gt;공지해 드렸던 것 처럼&lt;BR&gt;약 3개월 동안&lt;BR&gt;인도, 네팔 등 불교 국가로&lt;BR&gt;성지순례를 떠납니다.&lt;BR&gt;&lt;BR&gt;그동안&lt;BR&gt;도솔사 법우님께&lt;BR&gt;일주일에 두 편 정도씩&lt;BR&gt;'부처님 말씀과 마음공부'를&lt;BR&gt;이어서 올려드리도록 해 두었으니,&lt;BR&gt;꾸준히 공부하시면 되겠습니다.&lt;BR&gt;&lt;BR&gt;부처님의 숨결을 따라&lt;BR&gt;안거하는 마음으로&lt;BR&gt;기도하는 마음으로&lt;BR&gt;잘 다녀오고,&lt;BR&gt;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lt;BR&gt;또 비우고 오도록 하겠습니다.&lt;BR&gt;&lt;BR&gt;다녀 와서&lt;BR&gt;소식을 남겨 드리도록 하겠습니다.&lt;BR&gt;&lt;BR&gt;때때로&lt;BR&gt;인도 현지에서&lt;BR&gt;시간이 된다면&lt;BR&gt;안부라도 올려 드리겠습니다.&lt;BR&gt;&lt;BR&gt;그럼 다녀오는 동안&lt;BR&gt;목탁소리를&lt;BR&gt;향기나는 공간으로 &lt;BR&gt;잘 지켜 주십시오.&lt;BR&gt;&lt;BR&gt;법우님들 모두의 염원을&lt;BR&gt;인도에서 잘 회향하고 오겠습니다.&lt;!--&quot;&l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9월 17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잘들 지내고 계시는지요.&lt;/P&gt;
&lt;P&gt;여기는 바라나시.&lt;BR&gt;가트 주위에 있는&lt;BR&gt;골목의&lt;BR&gt;한 작은 인터넷방입니다.&lt;/P&gt;
&lt;P&gt;인도에 도착해서&lt;BR&gt;델리와,&lt;BR&gt;달라이라마가 계시는 맥그로드 간즈, 다람살라와&lt;BR&gt;마날리,&lt;BR&gt;그리고 티벳불교가 여전히 살아 숨쉬는 &lt;BR&gt;라다크, 레 지역을 돌아보고,&lt;BR&gt;지금은 바라나시에 머물고 있습니다.&lt;/P&gt;
&lt;P&gt;이 곳의 인터넷 사정은&lt;BR&gt;워낙 느리고,&lt;BR&gt;다운도 심하고,&lt;BR&gt;어려워서&lt;BR&gt;글을 하나 올리는 것이 &lt;BR&gt;아주 어려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lt;/P&gt;
&lt;P&gt;그래서 아예 포기를 하고 있다가&lt;BR&gt;이렇게 조금 빠른 인터넷 방을 만나&lt;BR&gt;글을 올려 봅니다.&lt;BR&gt;혹시 안 올라갈 지도 모르겠네요.&lt;/P&gt;
&lt;P&gt;인도에 대한 이야기는&lt;BR&gt;너무나도 장황하고, 무겁고, 또 &lt;BR&gt;몇 마디로 다 할 수 없을 만큼,&lt;BR&gt;아니 글로는 다 쓸 수 없을 만큼&lt;BR&gt;뭐 그런 곳이라,&lt;BR&gt;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lt;BR&gt;하나 하나 이 곳에서 느끼고&lt;BR&gt;보고 얻은 것들에 대해&lt;BR&gt;나누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lt;/P&gt;
&lt;P&gt;그저 잠시 안부나 드리고자&lt;BR&gt;이렇게 들어 왔습니다.&lt;/P&gt;
&lt;P&gt;이제 본격적으로&lt;BR&gt;불교 성지순례가 시작됩니다.&lt;BR&gt;부처님께서 태어나고 자라고&lt;BR&gt;출가하고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었으며&lt;BR&gt;수많은 가르침을 펴시면서&lt;BR&gt;무수한 이야기와 가르침과 에피소드를 남긴&lt;BR&gt;그 장소, 그 곳들을 돌아보면서&lt;BR&gt;내 삶의 &lt;BR&gt;내 인생의 생노병사와 &lt;BR&gt;먹고 눕고 자고 숨쉬는 일상에 대해&lt;BR&gt;돌아보고자 합니다.&lt;/P&gt;
&lt;P&gt;이 곳에서&lt;BR&gt;내 그간의 삶의 자취를&lt;BR&gt;돌아보건데,&lt;BR&gt;어떤 하나의 틀 속에,&lt;BR&gt;그것이 스님이라는 틀이 되었든,&lt;BR&gt;군승이라는 틀이 되었든,&lt;BR&gt;아니면 그 어떤 틀이 되었든,&lt;BR&gt;하나의 아상, 하나의 에고에&lt;BR&gt;갇혀&lt;BR&gt;그것이 나인 것으로&lt;BR&gt;착각하면서 지낸 것이 아닌가 하는&lt;BR&gt;'바라봄'이 생겨나곤 합니다.&lt;/P&gt;
&lt;P&gt;삶이란,&lt;BR&gt;또 진리란 과연 무엇인가.&lt;/P&gt;
&lt;P&gt;연극을 하면서&lt;BR&gt;그 연극에서 벗어나고,&lt;BR&gt;그것을 하면서&lt;BR&gt;그것에서 놓여나는 삶이란&lt;BR&gt;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해&lt;BR&gt;성찰 아닌 성찰을 하게도 됩니다.&lt;/P&gt;
&lt;P&gt;뚝 떨어져 본다는 것의 의미,&lt;/P&gt;
&lt;P&gt;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과,&lt;BR&gt;그동안 살아 온 사회적인 의미로서의 나 자신 사이에&lt;BR&gt;놓여 있는 '괴리감' 혹은 '공간' '빈 틈' &lt;BR&gt;같은 것들이&lt;BR&gt;여기 바라나시의 강가 강 보다 더 깊이&lt;BR&gt;더 넓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lt;/P&gt;
&lt;P&gt;삶이란 하나의 연극이요,&lt;BR&gt;그 연극은 &lt;BR&gt;꿈과도 같고, 신기루와도 같은 것...&lt;/P&gt;
&lt;P&gt;하루 하루&lt;BR&gt;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고,&lt;BR&gt;불확정적이며, 불확실한&lt;BR&gt;이 여행, 만행, 순례가 주는 의미...&lt;/P&gt;
&lt;P&gt;어쩌면 이것이 바로 인생이며,&lt;BR&gt;그렇기에 삶도 여행도&lt;BR&gt;불확실한 가운데,&lt;BR&gt;끊임없이 변화하는 가운데,&lt;BR&gt;순간 순간의 존재감,&lt;BR&gt;매 순간의 완전한 살아있음,&lt;BR&gt;그 곳에 분명하게 그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lt;BR&gt;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lt;/P&gt;
&lt;P&gt;불확실한 삶, 불투명한 삶에서&lt;BR&gt;바로 그 순간을 분명히 살아간다는 것이야말로&lt;BR&gt;우리가 목숨걸고 지켜나가야 할&lt;BR&gt;아주 중요한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lt;BR&gt;여행지에서의 불확실한 그리고 액티브한 장면들이&lt;BR&gt;내게 주는 숭고한 가르침처럼 다가옵니다.&lt;/P&gt;
&lt;P&gt;이제 하룻밤&lt;BR&gt;잠시의 보금자리로&lt;BR&gt;돌아가 하루를 마감해야 할 것 같습니다.&lt;/P&gt;
&lt;P&gt;너무 늦었네요.&lt;BR&gt;내일은 또 떠나야 합니다.&lt;/P&gt;
&lt;P&gt;어떤 경험이, 어떤 사람이, 어떤 의미가&lt;BR&gt;내일 또 나타날 지 &lt;BR&gt;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면서,&lt;BR&gt;그 불분명함을 즐기고&lt;BR&gt;받아들이면서&lt;BR&gt;이 생명력 넘치는 만행을 이어가고자 합니다.&lt;/P&gt;
&lt;P&gt;법우님들께서도&lt;BR&gt;지금 그 자리에서&lt;BR&gt;삶의 여정을,&lt;BR&gt;여행과도 같은 불분명한 삶의 여정을&lt;BR&gt;깨어나서 지켜보며&lt;BR&gt;받아들이며 &lt;BR&gt;매 순간을 보내 보신다면,&lt;/P&gt;
&lt;P&gt;지금 법우님께서 계시는 그 곳이&lt;BR&gt;인도가 되고,&lt;BR&gt;아프리카가 되고,&lt;BR&gt;달라이라마가 계신 곳이 되고,&lt;BR&gt;불교 성지가 되고,&lt;BR&gt;저 드높은 희말라야가 되며&lt;BR&gt;깨달음의 바로 그 순간이 되지 않을까요?&lt;/P&gt;
&lt;P&gt;눈이 감기웁니다.&lt;/P&gt;
&lt;P&gt;안녕히&lt;BR&gt;편안히 주무세요.&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장경동 목사, 불교국가 가난 발언에 대한 반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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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법상</name>
	    </author>
	    <updated>2008-08-27T08:38:16Z</updated>
	    <published>2008-08-27T08:38:1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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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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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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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20/blog/2008/08/27/08/44/48b4953382bca&amp;filename=pDSC_6064.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482&quot; width=&quot;482&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불교를 믿는 나라는 다 가난하다?&lt;/P&gt;
&lt;P&gt;이 문제에 대해서는,&amp;nbsp;&lt;/P&gt;
&lt;P&gt;아마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일 것 같고,&lt;BR&gt;&lt;/P&gt;
&lt;P&gt;또 이번 장경동 목사님 뿐 아니라,&lt;/P&gt;
&lt;P&gt;종종 타종교인들은 이 점을 예로들면서 &lt;/P&gt;불교를 믿는 나라는 다 가난하다고 폄하하는데 쓰이는 논리이기도 하지요.&lt;BR&gt;&lt;BR&gt;그런데 이 논리에는 커다란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lt;BR&gt;이 논리가 성립하려면,&lt;BR&gt;지금 돈 많은 부자 나라들, 그리고 개발과 발전으로 경제적 부국이 된 나라들은&lt;BR&gt;'잘 산다' '잘 살고 있다' '아주 잘 해 오고 있다'란 말이 되는데요.&lt;BR&gt;&lt;BR&gt;과연 부자 나라들, 소위 선진국들이&lt;BR&gt;그렇게 잘 사는 나라일까요?&lt;BR&gt;&lt;BR&gt;잘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lt;BR&gt;잘 산다는 것은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고,&lt;BR&gt;또 지혜롭게 산다는 것 아니겠어요?&lt;BR&gt;잘 산다는 것을 단순하게 부자로 산다고 생각한다면&lt;BR&gt;지금 위에서 말씀하신 논리가 맞을지도 모릅니다.&lt;BR&gt;&lt;BR&gt;그러나 잘 사는 것이 단순하게 '돈' 많은 경제적 부유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lt;BR&gt;실제 가장 가난한 나라, 혹은 원시적으로 사는 원주민이나 인디언들의 행복지수가&lt;BR&gt;부유한 선진국 사람들의 행복지수보다 훨씬 높다는 것은&lt;BR&gt;이제 새삼스런 일이 아닙니다.&lt;BR&gt;&lt;BR&gt;그리고 지금 부자 나라들, 강대국이 만들어 놓은&lt;BR&gt;이 개발과 발전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lt;BR&gt;우리는 개발과 발전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었고, 편리하게 해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lt;BR&gt;그러나 그 편리함과 달콤함 이면에는&lt;BR&gt;엄청난 전 세계적인 환경오염과 파괴, 기상이변 등&lt;BR&gt;수많은 환경 위기의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그 위기는 가히 재앙적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며,&lt;BR&gt;어떤 보고서에는 어쩌면 지구의 생명이 다할 날이 몇 십년, 몇 백년도 안 남았을 지 모른다고&lt;BR&gt;경고하고 있습니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경제발전이라는 것은&lt;BR&gt;그만큼 그 이면에 파괴와 종말적인 어리석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lt;BR&gt;즉, 지속가능한 편리함, 지속가능한 행복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lt;BR&gt;&lt;BR&gt;개발과 발전이라는 경제논리, 과학기술과 산업화라는 논리는&lt;BR&gt;산과 나무와 숲과 지구의 모든 구성요소들을 파괴시켜&lt;BR&gt;그것들을 인간이 편리한대로 조합하는 기술일 뿐입니다.&lt;BR&gt;&lt;BR&gt;그러니 개발과 발전이 더해가면 더해갈수록&lt;BR&gt;환경파괴는 더해질 뿐더러,&lt;BR&gt;훗날 더이상 파괴할 지구가 남아 있지 않을 때는&lt;BR&gt;그 때는 개발도 발전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일 뿐입니다.&lt;BR&gt;&lt;BR&gt;이를테면 석유, 석탄 문제만 보더라도&lt;BR&gt;우리가 생활 속에서 쓰는 것에 석유, 석탄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어요?&lt;BR&gt;플라스틱, 자동차, 각종 연료에서부터 시작해서&lt;BR&gt;가히 석유, 석탄의 세기라고 할 만 합니다.&lt;BR&gt;그런데 이 석유와 석탄이라는 것도 언젠가는 소멸해 버리는 것일 뿐입니다.&lt;BR&gt;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이란 말입니다.&lt;BR&gt;&lt;BR&gt;그러나 아직도 어리석은 사람들은&lt;BR&gt;개발과 발전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lt;BR&gt;너도 나도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기를 쓰고 있습니다.&lt;BR&gt;&lt;BR&gt;중국과 인도 30억 가까운 인구가&lt;BR&gt;우리나라 처럼 앞으로 20년 쯤 후에&lt;BR&gt;너도 나도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lt;BR&gt;지구의 모든 기름은 금새 바닥이 날 것이고,&lt;BR&gt;기름말고 다른 것으로 가는 자동차를 만들게 됨으로써&lt;BR&gt;그 다른 지구 자원까지 파괴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lt;BR&gt;&lt;BR&gt;그래서 작금의 세기는&lt;BR&gt;가히 '환경' 문제처럼 중요한 이슈가 없는 시대입니다.&lt;BR&gt;바로 이 환경문제의 원인이 과연 무엇일까요?&lt;BR&gt;&lt;BR&gt;현대 생태학이나 환경학계에서는&lt;BR&gt;그 원인을 산업화, 도시화, 과학기술의 발전, 인구증가, &lt;BR&gt;인간의 탐욕, 성장위주의 가치관 등으로 보고 있는데,&lt;BR&gt;그러한 산업화 도시화 등의 사상적인 배경을&lt;BR&gt;'유대-기독교적(성서적) 자연관'과&lt;BR&gt;'근대 기계론적 자연관' 이 두 가지에서 찾는 것이 &lt;BR&gt;거의 일치된 견해입니다.&lt;BR&gt;&lt;BR&gt;다시말해,&lt;BR&gt;성서적인 자연관은&lt;BR&gt;하느님과 인간을 둘로 나누고&lt;BR&gt;인간과 자연을 둘로 나누는&lt;BR&gt;철저한 이원론적 자연관이라는 것입니다.&lt;BR&gt;&lt;/DIV&gt;
&lt;DIV&gt;린 화이트라는 학자가 사이언스지에 &lt;BR&gt;'환경적 위기의 역사적 근원'이란 논문을 실으면서부터&lt;BR&gt;기독교적 성서의 자연관이 현대 환경문제를 촉발시킨 원인이라는 연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lt;BR&gt;&lt;BR&gt;그에 따르면,&lt;BR&gt;인간은 자연과 달리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들어 졌기에,&lt;BR&gt;인간이 자연과 다르다는 우월감을 낳았고,&lt;BR&gt;나아가 인간은 신으로부터 피조물인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았으므로&lt;BR&gt;자연을 정복하고 착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합니다.&lt;BR&gt;&lt;BR&gt;특히 창세기 1장 28절에&lt;BR&gt;'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라.&lt;BR&gt;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다스려라'에서 보이듯이&lt;BR&gt;기독교는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을 확립했을 뿐 아니라,&lt;BR&gt;인간이 자기 자신의 목적에 따라 자연을 착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일반적으로 환경오염이 주로 서양 문명의 소산이고,&lt;BR&gt;서양문명이란 것이 곧 기독교 문명이라고 보여지는 점,&lt;BR&gt;또 기독교가 융성한 지역일수록 과학 기술문명이 발달하고 산업화가 진전되어&lt;BR&gt;환경파괴의 문제는 더욱 심각한 곳이었다는 점 등을 보더라도&lt;BR&gt;이런 진단은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으며,&lt;BR&gt;
&lt;P&gt;실제 이런 설은 보편적인 이론이 되었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22/blog/2008/08/27/08/44/48b494da0b2d8&amp;filename=p20060212-140853.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482&quot; width=&quot;482&quot; /&gt;&lt;BR&gt;&lt;/P&gt;&lt;BR&gt;이 때문에 요즘 기독교계에서는&lt;BR&gt;성서를 다른 쪽에서 해석하는,&lt;BR&gt;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하는,&lt;BR&gt;또 환경파괴의 원인이 된 기독교적 자연관을 극복하려고 하는&lt;BR&gt;새로운 신학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생태신학입니다.&lt;BR&gt;&lt;BR&gt;생태신학에서는 불교적인 자연관,&lt;BR&gt;즉 인간과 자연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lt;BR&gt;그리고 자연과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존재는&lt;BR&gt;서로 인연따라 맺어졌기에, 상의상관성에 따라 만들어 졌다는,&lt;BR&gt;연기적이고 자비적인 불교의 자연관에 근접하게 다가서고 있습니다.&lt;BR&gt;&lt;BR&gt;즉, 기독교계 내에서도&lt;BR&gt;한 편으로는 기독교적 자연관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발달했고 좋아졌다고 하지만,&lt;BR&gt;다른 한 쪽으로는 오히려 그러한 자연관으로 인한 발달과 개발 때문에&lt;BR&gt;이제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그렇다면 법우님의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지요.&lt;BR&gt;기독교적 사고방식이 사회를 발달시키고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 진실일까요?&lt;BR&gt;아니면 그로인해 환경파괴가 일어나고 &lt;BR&gt;지금 전 세계적으로 이미 일어나고 있는 환경적 재앙들,&lt;BR&gt;이를테면 각종의 기상이변과 환경호르몬 문제, 환경병 문제들,&lt;BR&gt;토양오염, 사막화, 황사, 수질오염, 물부족 문제, 산성비문제,&lt;BR&gt;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에너지 오염, 대기오염, 생물다양성 감소,&lt;BR&gt;열대우림 파괴 등 말로 다 나열할 수도 없을 정도의 환경적인 재앙들이&lt;BR&gt;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진실일까요?&lt;BR&gt;&lt;BR&gt;이미 환경 관련 서적으로는 고전이 된 책,&lt;BR&gt;[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lt;BR&gt;그 책에 보면 티벳의 라다크라는 곳은 불교적인 삶을 사는 곳으로,&lt;BR&gt;처음에는 가난하고 자원도 없고 개발과 발전이라는 것이 전혀 들어오지 않은&lt;BR&gt;오지 중의 오지였습니다.&lt;BR&gt;그 때는 사람들이 모두 너무도 행복했고, 평화로왔으며, 지혜로왔고, 마음은 늘 풍요로왔습니다.&lt;BR&gt;&lt;BR&gt;그러나 그 불교의 땅, 오지의 땅, 원시적인 곳 라다크에&lt;BR&gt;개발과 발전의 바람이 불고, 과학기술과 산업화의 물결이 들어오면서부터&lt;BR&gt;그 곳은 더이상 행복이 넘치는 곳도, 지혜로운 사람들이 사는 곳도 아니고,&lt;BR&gt;오직 괴로운 사람들, 못 사는 사람들이&lt;BR&gt;서양 문물과 발달된 사회와의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lt;BR&gt;척박하고 괴로운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lt;BR&gt;&lt;BR&gt;그 책에서 보면&lt;BR&gt;불교적인 자연관, 또 소박하고 가난한 삶이라는 것이&lt;BR&gt;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lt;BR&gt;얼마나 진리와 맞닿아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lt;BR&gt;&lt;BR&gt;뿐만 아니라,&lt;BR&gt;서양적인 개발과 발전의 논리가&lt;BR&gt;얼마나 사람의 정신을 황폐화시켜 놓았는지,&lt;BR&gt;얼마나 현대의 지구라는 땅을 오염시키고 파괴시켜 놓았는지&lt;BR&gt;그 결과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지 여실히 볼 수 있습니다.&lt;BR&gt;&lt;BR&gt;실제로 인도나 네팔, 티벳 같은 나라 사람들이&lt;BR&gt;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스스로를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여긴 것은&lt;BR&gt;기독교적인 문명, 서양적인 문명이 그 나라들을&lt;BR&gt;무자비하게 파고들면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불행하게도 기독교적 서양 문명이 &lt;BR&gt;못 사는 나라를 잘 살도록 해 주겠다고 했지만&lt;BR&gt;결국 더 큰 괴로움만 안겨 준 꼴이 되었습니다.&lt;BR&gt;그러면서 그 선진국이란 나라들이 후진국에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lt;BR&gt;후진국의 자연을 개발과 발전이란 이름으로 파괴시키고,&lt;BR&gt;후진국의 온갖 자원들을 도둑질해 감으로써&lt;BR&gt;선진국은 더욱 부유해지고, 후진국은 더욱 가난해 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그리고, 선진국에서 환경오염으로 인해 나온 온갖 폐기물들을&lt;BR&gt;후진국들에게 돈을 받고 팔아 넘기고 있는 실상입니다.&lt;BR&gt;&lt;BR&gt;기독교를 숭상하는 나라들은 &lt;BR&gt;오로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 자연을 누리면서 살고 있다고 하셨지요?&lt;BR&gt;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연을 누리며 산 것이 아닙니다.&lt;BR&gt;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연을 파괴시키고, 오염시켜 놓음으로써&lt;BR&gt;
&lt;P&gt;결국 인간의 정신까지도 황폐화시켜 놓은 것이지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7/blog/2008/08/27/08/44/48b4951aaeb32&amp;filename=paDSC_5683.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696&quot; width=&quot;696&quot; /&gt;&lt;BR&gt;&lt;/P&gt;&lt;BR&gt;우리의 가치관이 기독교 원론적인 인간중심주의나 &lt;BR&gt;자연을 함부로 쓰겠다는 생각등을 버리지 않는 이상,&lt;BR&gt;앞으로 세계적인 기상이변이나 환경오염으로 인한 위기는 계속될 것입니다.&lt;BR&gt;&lt;BR&gt;그래서 수많은 생태학자, 환경 전문가들은&lt;BR&gt;불교적인 자연관, 연기와 자비의 생태학, 시스템 이론, 가이아 이론 등&lt;BR&gt;불교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하고&lt;BR&gt;불교적인 가난하고 환경친화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lt;BR&gt;이 지구의 미래는 그 누구도 보장해 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심지어 경제학자인 E. F. 슈마허는,&lt;BR&gt;하나뿐인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으로&lt;BR&gt;작고 적은 것, 소박한 것에서 만족할 수 있고,&lt;BR&gt;인간 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폭력까지도 행사하지 않는 비폭력적인&lt;BR&gt;불교적인 경제학을 지목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지금 전 세계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lt;BR&gt;그러면서도 여전히 개발과 발전의 꿈을 접지 못하고 있어요.&lt;BR&gt;그래서 지구에서 사는 사람들을,&lt;BR&gt;큰 빙하에 이제 곧 부딪혀 배(지구)가 파손될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lt;BR&gt;배 안에서의 달콤한 것들에 빠져 배를 구할 생각은 못 하고 있다는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lt;BR&gt;&lt;BR&gt;과연 어떤 가치관이 더 지혜로운 것입니까?&lt;BR&gt;자연과 인간이 둘로 나뉘지 않으며,&lt;BR&gt;자연의 생명이, 동식물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과 동등하게 존귀하다는 가르침인가요?&lt;BR&gt;아니면 인간을 우월하게 놓고 자연이나 동식물은 &lt;BR&gt;인간을 위해 마땅히 희생되어도 좋다는 가르침인가요?&lt;BR&gt;&lt;BR&gt;그래서 인간의 식욕을 위해&lt;BR&gt;화학비료, 재초재, 농약에 버무려진 하우스 식물들을 먹거나,&lt;BR&gt;철창에 갇혀서 꼼짝도 못하며&lt;BR&gt;항생제, 성장촉진제, 호르몬제 등을 잔뜩 투여받아가면서&lt;BR&gt;30년 이상을 살 생명을 단 한 달 만에 죽인 닭을 후라이드치킨으로 먹는 등의,&lt;BR&gt;그러고도 전혀 생명에 대한 자비심 하나 없이&lt;BR&gt;식욕만을 챙기는 그런 생명관, 자연관이 옳은 것입니까?&lt;BR&gt;&lt;BR&gt;기독교적 자연관은&lt;BR&gt;신과 인간 그리고 자연이 상하관계를 맺는 수직적인 자연관인데 반해,&lt;BR&gt;불교적인 자연관은&lt;BR&gt;부처와 인간과 동식물, 자연에 이르기까지 일체모든 존재 모든 생명을&lt;BR&gt;평등하게 보는 수평적인 자연관입니다.&lt;BR&gt;&lt;BR&gt;언뜻 보면 불교적 자연관은&lt;BR&gt;시대에 뒤떨어진 듯 느껴집니다.&lt;BR&gt;그러나 가난과 청빈과 비폭력과 생명존중&lt;BR&gt;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lt;BR&gt;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자연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그런 불교적 가치관이야말로&lt;BR&gt;지금 한없는 위기로 치닫는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생명관이요 지혜관이 아닐까요?&lt;/DIV&gt;
&lt;DIV&gt;&amp;nbsp;&lt;/DIV&gt;
&lt;DIV&gt;... 물론 이상에서와 같은 답변이&lt;BR&gt;불교와 기독교를 나누고&lt;BR&gt;그 가운데 불교를 우위에 두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lt;BR&gt;&lt;BR&gt;생태신학에서 말하듯이,&lt;BR&gt;기독교 사상, 성서의 가르침을&lt;BR&gt;문자그대로 파악하기 보다는&lt;BR&gt;지혜로운 시선으로 이해하게 된다면&lt;BR&gt;성서 속에서도 아름답고 지혜로운 구절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lt;BR&gt;&lt;BR&gt;그러나 위에서 말했던 비교는&lt;BR&gt;갇혀있거나 보수적인 기독교라고 할까요?&lt;BR&gt;옛날의 문자주의적인 닫혀 있는 기독교의 시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lt;BR&gt;그러나 제가 아는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들 가운데는&lt;BR&gt;그러한 이원론적이고, 자연 위에 인간을 두는&lt;BR&gt;
&lt;P&gt;그런 것은 참된 성서의 이해가 아니라고 보는 분들도 많습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DIV style=&quot;WIDTH: 94.28%; HEIGHT: 71px; TEXT-ALIGN: center&quot;&gt;
&lt;FIELDSET style=&quot;BORDER-RIGHT: #a1b0db 1px solid; PADDING-RIGHT: 0px; BORDER-TOP: #a1b0db 1px solid;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MARGIN: 0px auto; BORDER-LEFT: #a1b0db 1px solid; WIDTH: 312px; PADDING-TOP: 0px; BORDER-BOTTOM: #a1b0db 1px solid; POSITION: relative; HEIGHT: 63px; TEXT-ALIGN: left&quot;&gt;&lt;LEGEND style=&quot;BORDER-RIGHT: 1px; PADDING-RIGHT: 3px; BORDER-TOP: 1px; PADDING-LEFT: 3px; PADDING-BOTTOM: 0px; MARGIN: 0px 0px 0px 10px; BORDER-LEFT: 1px; PADDING-TOP: 0px; BORDER-BOTTOM: 1px&quot;&gt;&lt;A href=&quot;http://bloggernews.media.daum.net/&quot; target=_blank&gt;&lt;IMG height=13 alt=&quot;Daum 블로거뉴스&quot; src=&quot;http://img-section.daum-img.net/blognews/common/bl_news.gif&quot; width=94 border=0&gt;&lt;/A&gt;&lt;/LEGEN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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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img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1/blog/2008/08/27/08/44/48b4956445f4c&amp;filename=pDSC_8550.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696&quot; width=&quot;696&quot; /&gt;&lt;/P&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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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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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법상</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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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8-21T22:33:03Z</updated>
	    <published>2008-08-21T22:33:03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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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 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32/blog/2008/08/21/22/30/48ad6ddc83b0d&amp;filename=aaaDSC09215.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00&quot; width=&quot;700&quot; /&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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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세상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평생가도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자연의 소리는 아주 작고 여리기 때문에 아무나 들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그 살뜰한 소리는 고요한 법계&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INE-HEIGHT: 210%; LETTER-SPACING: 0.3pt&quot;&gt;法界&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의 울림과 모든 존재 내면의 쩌렁쩌렁한 깨우침을 담고 있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보통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세상사에 찌든 온갖 소음들만 귀 고막이 터져라 듣고 산다. 세상의 소음에 익숙해지다 보면 작고 여린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 본래의 청음 능력을 상실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내 삶 속에 자연이라는 경이와 축복이 들어오게 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매 년 반복되는 계절을 그냥 저냥 흘려보내다가 어느 순간인가 자연 속에 깃들어 자연 그 자체가 되는 듯한 심연&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INE-HEIGHT: 210%; LETTER-SPACING: 0.3pt&quot;&gt;深淵&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의 떨림을 느끼면서부터 내 삶에 자연은 더없는 신비요 스승이며 벗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지리산 종주길에 올라 하염없이 떨어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아무도 없는 산길을 걷다가 문득, 아주 문득 자연의 가녀린 그러나 청청한 소식을 들었다. 그 작은 자연의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마치 지리산 전체가 아니 이 우주가 그대로 내게 속삭이는 듯, 침묵 속에서 쩌렁쩌렁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그러면서 자연은 둘도 없는 내 벗이요 도반이 되었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우리들 여섯가지 감각기관인 눈, 귀, 코, 혀, 몸, 뜻, 육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INE-HEIGHT: 210%; LETTER-SPACING: 0.3pt&quot;&gt;六根&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이라는 것이 본래는 세상의 작고 여린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고 우주와 자연의 작지만 커다란 울림과 공명할 수 있었지만, 감각적이고 자극적인데 서서히 익숙해지다 보니 그 본래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고 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lt;img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29/blog/2008/08/21/22/30/48ad6df7941d0&amp;filename=aaaDSC09296.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00&quot; width=&quot;700&quot; /&gt;&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동물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공인까지 받았다는 호주의 트리샤 맥카라는 분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녀의 말을 빌자면 ‘인간은 원래 텔레파시 능력을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언어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이 능력은 퇴화돼 버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무탄트 메시지』에서도 참사람 부족 사람들은 ‘인간은 본래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하도록 창조되었다’고 말하며 실제 생활에서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않고 거짓을 없앰으로써 부족 사람들은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자유로이 하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그뿐인가. 『물은 답을 알고 있다』나, 『식물의 정신세계』같은 책에서는 물이나 식물 또한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받고 영향을 받는다는 기록과 과학적인 증명을 담고 있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그 뿐인가. 얼마 전에 지진해일이 있었을 때 동물들은 미리 알고 피했다고 했고,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원시적으로 사는 원시 부족인들 또한 미리 피함으로써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동물들이나 원시 부족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며, 자연의 미세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현자들이다. 분명 대자연은 그러한 큰 피해에 앞서 그 어떤 힌트를 보냈을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자들은 몸을 피했지만 듣지 못한 자들은 고스란히 그 아픔을 감당해야 했다. 자연에 깃들어 삶을 살 때 대자연은 어머님 품처럼 우리를 품어준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사람들은 본래부터 사람들 서로간 뿐만 아니라 동식물이나 자연의 무정물과도 미세한 마음의 공감과 대화를 텔레파시로써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을 만큼 감성적인 예민한 감각이 발달되어 있었고, 자연 속에서 신의 소리,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순수하고 청명했다. 그러나 인류역사 속에서 어느 때부터인가 그 모든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건 우리 스스로 작고 미세한 감각의 소중함을 버린 채 외부의 자극적이고 강렬한 것들에만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마음을 돌이켜 정신을 내면의 미세한 느낌에 집중하고, 외부의 소박한 자연에 집중하며 관찰할 수 있다면 다시금 그 본래의 능력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lt;img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13/blog/2008/08/21/22/30/48ad6de3f0706&amp;filename=aaaDSC09217.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00&quot; width=&quot;700&quot; /&gt;&lt;BR&gt;&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봄이 오니 한겨울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그러면서 봄나물이며 봄꽃들이 얼마나 신이 나 있는지 모른다. 나도 처음엔 수필가들이 얘기하는 눈 녹는 소리며 바람 스치는 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서걱이며 온산을 놀라게 한다는 그런 표현들을 그저 시적인 표현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귀를 닫아 놓고 살아서 그렇지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정말 그 소리가 성성한 깨우침으로 귓전을 맑게 스치운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조용한 가을 낙엽이 떨어지면 뒷산 전체가 서걱이고, 산 속 나무 그늘에 덥석 누워있다 보면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만큼이나 선명하게 들리고, 초봄의 산사에는 눈 녹는 소리가 꿈틀거리듯 세속에 찌든 귀를 맑게 씻어준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이러한 자연의 소리는 아주 작은 것이라 사소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건 결코 작은 소리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그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런 작은 것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깨어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만큼 내 마음이 맑게 비워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자연의 맑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는 내 안에 복잡한 소음이 너무 많기 때문이고, 해야 할 일들로 마음이 꽉 차 있기 때문이며, 또 머리 속은 정신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내 안이 맑게 비어 있어야 비로소 이 법계의 작지만 우주를 울리는 이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고 듣지 말아야 할 것들만 듣고 사는 우리이고,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들만 보고 사는 우리이며, 먹어야 할 것은 먹지 않고 먹지 말아야 할 것들만 먹고사는 우리들이다. 그러니 우리의 육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INE-HEIGHT: 210%; LETTER-SPACING: 0.3pt&quot;&gt;六根&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인들 어디 좀처럼 온전할 수 있겠는가.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잘 다스려야 몸도 마음도 경쾌하게 추스릴 수 있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육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대상인 육경&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INE-HEIGHT: 210%; LETTER-SPACING: 0.3pt&quot;&gt;六境&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작고 소박한 데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자연이 가져다주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랬을 때 고요하게 앉으면 내 안에서 울려나오는 쩌렁쩌렁한 속 뜰의 메아리를 들을 수도 있고, 이 우주의 작은 한 켠에서도 전 법계의 소리 없는 거대한 울림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가만히 앉아 마음을 맑게 비우고, 속 뜰의 소리며 대자연이 전해주는 맑고 밝은 소식을 들어보자.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컴바탕'&quot;&gt;&lt;BR&gt;&lt;img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10/blog/2008/08/21/22/30/48ad6e0830640&amp;filename=aaaDSC09282.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00&quot; width=&quot;700&quot; /&gt;&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gt;현재 교보문고에서&lt;BR&gt;'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는 책을&lt;BR&gt;8월 한달간 40% 특별할인하여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는&lt;BR&gt;그간의 목탁소리 글들을 &lt;BR&gt;핵심적인 것들만 모아 엮은 책입니다.&lt;BR&gt;&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height=220 hspace=0 src=&quot;http://www.moktaksori.org/bbs/icon/member_image_box/3197/buja.jpg&quot; width=148 border=0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lt;A style=&quot;COLOR: #333333&quot; href=&quot;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amp;mallGb=KOR&amp;barcode=9788972201854&amp;orderClick=LAH&quot; target=_blank&gt;&lt;B&gt;&lt;FONT face=굴림 color=#800080&gt;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교보문고) 5,700원&lt;/FONT&gt;&lt;/A&gt;&lt;/B&gt;&lt;BR&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타종교에도 보시를 하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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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8:buda1109.13476877</id>
	    <author>
		    <name>법상</name>
	    </author>
	    <updated>2008-08-21T09:54:41Z</updated>
	    <published>2008-08-21T09:54:4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image/13/blog/2008/08/21/09/53/48acbc715c186&amp;filename=DSC_0228.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0&quot; width=&quot;75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image/26/blog/2008/08/21/09/53/48acbc7891aee&amp;filename=DSC_0236.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750&quot; width=&quot;75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춘천 청평사]&lt;BR&gt;&lt;BR&gt;&lt;BR&gt;&lt;B&gt;상인이여,&lt;BR&gt;당신은 오랫동안 &lt;BR&gt;자이나교의 교도들에게&lt;BR&gt;공양물을 채워주는 희망의 샘물과도 같았다.&lt;BR&gt;그러므로 그들이 다시 오더라도&lt;BR&gt;공양을 베풀어 주도록 하라.&lt;BR&gt;[중부경전]&lt;/B&gt;&lt;BR&gt;&lt;BR&gt;&lt;BR&gt;자이나교도로써 &lt;BR&gt;자이나교에 많은 공양과 재산을 보시한 상인이 &lt;BR&gt;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를 하여 &lt;BR&gt;불교로 개종을 했다. &lt;BR&gt;&lt;BR&gt;그러나 부처님께서는 &lt;BR&gt;평소 행하던 자이나교에 대한 보시를 딱 끊어버리고 &lt;BR&gt;불교의 수행자들에게만 보시를 해선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lt;BR&gt;&lt;BR&gt;불교로 개종하였으니 &lt;BR&gt;이제 불교에만 보시를 하고, &lt;BR&gt;타종교에는 보시하지 말라고 하지를 않고 &lt;BR&gt;지금까지 하였듯이 &lt;BR&gt;타종교에게도 넓은 마음으로 베풀도록 이끌고 있다.&lt;BR&gt;&lt;BR&gt;참된 불교의 정신, &lt;BR&gt;모든 참된 종교의 정신이 &lt;BR&gt;이와 같이 열려 있고, 유연하며, &lt;BR&gt;내 종교 안에서 만의 사랑과 자비가 아닌 &lt;BR&gt;종교라는 틀을 툭 털어 버린 &lt;BR&gt;대자대비 큰 사랑이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lt;BR&gt;&lt;BR&gt;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보라. &lt;BR&gt;내 종교만 옳고 다른 종교는 그르다는 편견으로 인해 &lt;BR&gt;벌어진 수많은 인류의 종교 전쟁들을 보라. &lt;BR&gt;&lt;BR&gt;내 종교를 믿는 사람들만 사랑하고 &lt;BR&gt;타종교를 믿는 이는 미워하고 &lt;BR&gt;심지어 죽이도록 이끄는 종교라면 &lt;BR&gt;그것은 진리일 수 없다. &lt;BR&gt;&lt;BR&gt;이 세상 그 어디에도 &lt;BR&gt;참된 진리를 설하는 종교라면 &lt;BR&gt;그런 가르침을 행하지 않는다. &lt;BR&gt;&lt;BR&gt;다만 인간의 어리석음이 &lt;BR&gt;진리를 편협하게 해석하고 나누기 때문에 &lt;BR&gt;일어나는 일들이다. &lt;BR&gt;&lt;BR&gt;불교를 믿든, 타종교를 믿든 &lt;BR&gt;배고프면 똑같이 먹어야 하고, &lt;BR&gt;옷이 없으면 옷을 입어야 하며, &lt;BR&gt;약이 없는 이에게는 약을 베풀어야 한다. &lt;BR&gt;&lt;BR&gt;거기에 무슨 종교가 필요한가. &lt;BR&gt;오늘날처럼 종교간의 갈등과 &lt;BR&gt;배타적인 종교의 행태가 행해 질 때 &lt;BR&gt;부처님의 화합과 대자비의 가르침은 &lt;BR&gt;한 줄기 시원한 감로가 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부처님 말씀과 마음공부] 중에서...&lt;BR&gt;&lt;BR&gt;***&lt;BR&gt;&lt;BR&gt;종교라는 것이&lt;BR&gt;오직 순수하게 참된 진리만을 &lt;BR&gt;생각하고 실천하도록 이끌어야 하는데,&lt;BR&gt;오히려 종교를 통해&lt;BR&gt;어떤 새로운 울타리를 치고&lt;BR&gt;새로운 차별과 분별과 갈등을 만들어 냄으로써&lt;BR&gt;이 사회에 일정부분 폐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lt;BR&gt;&lt;BR&gt;때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lt;BR&gt;종교라는 울타리를 완전히 걷어 버리고,&lt;BR&gt;내 종교, 네 종교라는 울타리고 걷어 치우고,&lt;BR&gt;나아가 목사 신부 스님이며,&lt;BR&gt;성직자와 신도며,&lt;BR&gt;이 모든 울타리를 걷어 버린&lt;BR&gt;아주 자유롭고 &lt;BR&gt;텅 비어 있으며&lt;BR&gt;완전히 이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lt;BR&gt;그 어떤 틀로도 가둘 수 없는&lt;BR&gt;오직 진리, 순수한 진리 그 자체만을 위한 '어떤 것' 말이지요.&lt;BR&gt;&lt;BR&gt;그것이 꼭 어떤 특정 종교일 필요도 없고,&lt;BR&gt;그것이 꼭 어떤 '종교'라는 이름을 붙일 것도 없이,&lt;BR&gt;오직 진리와 진리의 실천이라는&lt;BR&gt;아름다운 삶의 모습 안에서&lt;BR&gt;그 어떤 틀이나 나뉨도 없이&lt;BR&gt;모두가 함께, 모든 종교인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lt;BR&gt;그런 새로운 '깨어있는 삶의 장' 같은 것 말이지요.&lt;BR&gt;&lt;BR&gt;종교 본연의 모습으로&lt;BR&gt;되돌아가는&lt;BR&gt;귀의의 모습들이&lt;BR&gt;점차 잊혀져 가는 이 때&lt;BR&gt;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lt;!--&quot;&lt;--&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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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너에게서 나를 만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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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법상</name>
	    </author>
	    <updated>2008-08-19T10:40:13Z</updated>
	    <published>2008-08-19T10:40:13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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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moktaksori.org/bbs/data/menu2_1/DSC_0220.JPG&quot; width=539 border=0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moktaksori.org/bbs/data/menu2_1/DSC_0222.JPG&quot; width=539 border=0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IMG src=&quot;http://www.moktaksori.org/bbs/skin/f2plus_bbs1/t.gif&quot; width=10 border=0&gt;&lt;BR&gt;&lt;!-- 프린트 영역 시작 --&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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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class=list_han vAlign=top&gt;
&lt;P&gt;[봄, 춘천 청평사 가는 계곡길에서]&lt;BR&gt;&lt;BR&gt;&lt;B&gt;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lt;BR&gt;얼굴을 찡그리면 &lt;BR&gt;동시에 지옥의 문이 열린다. &lt;BR&gt;[보살본행경] &lt;/B&gt;&lt;BR&gt;&lt;BR&gt;&lt;BR&gt;나에게로 와서 구걸하는 사람, &lt;BR&gt;그 사람에게서 내 안의 업을 본다. &lt;BR&gt;나에게로 와서 찬탄하고 축원해주는 사람, &lt;BR&gt;그 사람에게서 내 안의 업을 본다. &lt;BR&gt;&lt;BR&gt;법계는 언제나 나의 업을 &lt;BR&gt;내 곁에 다가오는 인연으로 &lt;BR&gt;거울처럼 비추어 주곤 한다. &lt;BR&gt;&lt;BR&gt;내가 만나는 사람이야말로 &lt;BR&gt;나의 숨겨진 모습들이요, 내 업의 나툼이다. &lt;BR&gt;그들이 곧 나고, 나의 또 다른 숨겨진 모습이다. &lt;BR&gt;&lt;BR&gt;그렇기에 내가 만나는 &lt;BR&gt;모든 사람이며, 모든 일들은 &lt;BR&gt;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lt;BR&gt;나를 돕기 위한 배려로써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lt;BR&gt;&lt;BR&gt;그것이 아무리 힘겹고 고된 일일지라도, &lt;BR&gt;아무리 악연일지라도 &lt;BR&gt;그것은 내 깊은 존재의 선택이다. &lt;BR&gt;&lt;BR&gt;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lt;BR&gt;구걸하는 사람을 보더라도 얼굴을 찡그리지 말라. &lt;BR&gt;그가 바로 나를 돕기 위해 나타난 불보살의 화신이니.&lt;BR&gt;&lt;BR&gt;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고 &lt;BR&gt;뒤늦게 문을 열어 보니 &lt;BR&gt;문수보살이 떠나가더란 이야기. &lt;BR&gt;&lt;BR&gt;때때로 지혜의 문수보살은 &lt;BR&gt;바보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lt;BR&gt;자비의 관음보살은 &lt;BR&gt;무자비한 폭군으로 나타나며, &lt;BR&gt;대행 보현보살은 &lt;BR&gt;게으른 수행자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lt;BR&gt;&lt;BR&gt;지혜와 어리석음, &lt;BR&gt;자비와 무자비, &lt;BR&gt;성실함과 게으름은 &lt;BR&gt;언제나 나의 서로 다른 모습의 나툼이다. &lt;BR&gt;내 안에 그 두 가지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lt;BR&gt;&lt;BR&gt;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면 &lt;BR&gt;내 안의 거지를 향해 찡그리는 것이고, &lt;BR&gt;미워하는 사람을 보고 화를 내면 &lt;BR&gt;내 안의 화를 향해 화를 내는 것이다. &lt;BR&gt;&lt;BR&gt;그 순간, 내 안에서는 지옥의 문이 열린다. &lt;BR&gt;세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면 &lt;BR&gt;동시에 내 안의 천상이 열린다.&lt;!--&quot;&lt;--&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table key=&quot;9788956012094&quot; category=&quot;book_detail&quot; openpost=&quot;false&quot; width=&quot;374&quot; height=&quot;105&quot; cellpadding=&quot;12&quot; cellspacing=&quot;0&quot; border=&quot;0&quot; style=&quot;border:1px #F3F3F3 solid; background-color:#ffffff; line-height:16px !important;&quot;&gt;
&lt;tbody&gt;&lt;tr&gt;&lt;td style=&quot;padding-bottom:0px&quo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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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td width=&quot;68&quot; valign=&quot;top&quot;&gt;&lt;a href=&quot;http://book.daum.net/bookdetail/book.do?bookid=KOR9788956012094&quot; target=&quot;_blank&quot;&gt;&lt;img width=&quot;55&quot; height=&quot;80&quot; src=&quot;http://photo-book.hanmail.net/images/book/medium/094/m9788956012094.jpg&quot; border=&quot;0&quot;/&gt;&lt;/a&gt;&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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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font style=&quot;font-size:12px; font-weight:bold; color:#333333; font-family:굴림,gulim,sans-serif;&quot;&gt;&lt;a style=&quot;color:#333333 !important;text-decoration:none !important;&quot; href=&quot;http://book.daum.net/bookdetail/book.do?bookid=KOR9788956012094&quot; target=&quot;_blank&quot;&gt;부처님 말씀과 마음공부&lt;/a&gt;&lt;/font&gt;
    &lt;/th&gt;
   &lt;/tr&gt;
   &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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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font style=&quot;font-size:12px; color:#999999; font-family:굴림,gulim,sans-serif; line-height:1.4;&quot;&gt;카테고리&lt;/font&gt;
    &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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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span style=&quot;display:block; float:left; height:14px; overflow:hidden; text-overflow:ellipsis;&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x; color:#333333; font-family:굴림,gulim,sans-serif; line-height:1.4;&quot;&gt;종교&lt;/font&gt;&lt;/span&gt;
    &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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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font style=&quot;font-size:12px; color:#999999; font-family:굴림,gulim,sans-serif; line-height:1.4;&quot;&gt;지은이&lt;/font&gt;
    &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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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span style=&quot;display:block; float:left; height:14px; overflow:hidden; text-overflow:ellipsis;&quot;&gt;&lt;font style=&quot;font-size:12px; color:#333333; font-family:굴림,gulim,sans-serif; line-height:1.4;&quot;&gt;법상 (무한, 2008년)&lt;/font&gt;&lt;/span&gt;
    &lt;/td&gt;
   &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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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a style=&quot;padding:0px 5px 0px 0px; background:url(http://deco.daum-img.net/contents/info/ic_more.gif) no-repeat 100% 3px; font-size:11px; color:#999999 !important; font-family:돋움,dotum,verdana; text-decoration:underline;&quot; href=&quot;http://book.daum.net/bookdetail/book.do?bookid=KOR9788956012094&quot; target=&quot;_blank&quot;&gt;상세보기&lt;/a&gt;
    &lt;/td&gt;
   &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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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td&gt; 
 &lt;/tr&gt;&lt;/tbody&gt;
 &lt;/table&gt;
&lt;/td&gt;&lt;/tr&gt;&lt;/tbody&gt;
&lt;/table&gt;&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대자연의 성품을 따르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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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8:buda1109.13464081</id>
	    <author>
		    <name>법상</name>
	    </author>
	    <updated>2008-08-17T15:35:52Z</updated>
	    <published>2008-08-17T15:35:5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artFragme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1/blog/2008/08/17/15/33/48a7c6391d137&amp;filename=pdsc_0044.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1/blog/2008/08/17/15/33/48a7c6391d137&amp;filename=pdsc_0044.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10/blog/2008/08/17/15/33/48a7c64000263&amp;filename=pdsc_0009.jpg')&quot;&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32/blog/2008/08/17/15/33/48a7c64a3f54f&amp;filename=pdsc_0037.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32/blog/2008/08/17/15/33/48a7c64a3f54f&amp;filename=pdsc_0037.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6/blog/2008/08/17/15/33/48a7c65379708&amp;filename=pdsc_0053.jpg')&quot;&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비가 온다. 방안 널찍한 창문을 활짝 열고 빗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앉아 있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기 힘든데 오늘은 아침부터 우울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거친 파도처럼 밀려오다 밀려가다 그러고 있다. 이른 아침 저 숲 위로, 나무 위로, 들풀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있자니 차 한 잔 생각도 나고 감성이 더 여리고 새록해 진다. 저렇게 떨어지는 비를 그대로 맞고 있는 나무들은, 저 숲의 생명들은 참 의연도 하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절 주위는 얕은 산이라 온갖 나무들이며 들풀, 꽃들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잠시도 쉬지 않고 너가 지면 또 내가 피어나고 핀 꽃이 지면 또 다른 꽃이 피고 그런다. 풀들도 처음 여린 잎의 생김새와 한참 물이 올라 피어오른 모습은 전혀 다르다. 처음엔 작은 풀이거니 했는데 비 한 번 오고 나면 꼭 나무처럼 쑥쑥 자라나 나를 당황케 하는 녀석도 있고, 처음엔 예쁘고 귀엽던 것들이 얼마나 생명력이 강하고 번식력이 강한지 무서울 정도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기도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채소밭에 너무 큰 풀들은 뽑아 주는데 한참 풀들을 뽑아주다 보면 뿌리가 얼마나 깊고 굵은지 세상 위로 올라온 것의 몇 배 이상은 됨직한 뿌리를 보면 섬뜩 이네들의 생명력에 놀라게 될 때가 있다. 이렇게 뽑아낸다는 것이 어떨 때는 참 미안하기도 하고 저 녀석들도 다 이유가 있어 피어오르는 것인데 하고 생각하면 풀 뽑는 일도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그래서 될 수 있다면 풀도 그대로 함께 자랄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 너무 커서 채소들 키를 웃자랄 때가 되면 그런 녀석들만 뽑아서 옆에 놓아둘 뿐 될 수 있다면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저 채소들에게도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도 될 것이고, 그 경쟁력이 더욱 채소들을 생명력 있게 가꿀 것이며, 또한 함께 자라주는 따뜻한 이웃이 될 수도 안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이렇게 여러 가지 풀들이 함께 자라고 이웃 풀들과 함께 경쟁도 하고 또 서로 도와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자라난 채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부실하고 열매가 적을지 몰라도 그 생명력은 더욱 강인하며 실제로 병해충으로부터의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채소도 생명인데 우리 사람들하고 사는 것이 다를 리야 있겠나!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10/blog/2008/08/17/15/33/48a7c64000263&amp;filename=pdsc_0009.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10/blog/2008/08/17/15/33/48a7c64000263&amp;filename=pdsc_0009.jpg&quot; border=0&gt;&lt;/A&gt;&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사람도 늘상 온실 속에서 자란 채소들처럼 온갖 시련과 힘겨운 경계를 당해 보지 못하고 늘 풍족하게만, 늘 보호 속에서만 자란다면 그 사람의 내적인 생명력은 빛을 잃고 말 것이다. 시련과 역경 속에서 실패도 맛보면서 주춤주춤 거리다가 그래도 딱 버티며 일어서기를 몇 번이고 반복할수록 우리들의 내적인 삶의 빛은 더 생기를 띨 수 있는 법이다. 본래부터 아무리 큰 시련이며 역경이라도 꼭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만큼만 오고, 또 꼭 필요한 바로 그 때 오지 내가 이겨내지도 못할 일이 도저히 이겨내지 못할 때 찾아오는 법은 없다고 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채소도 키워 보니까 우리하고 똑같다. 처음에 자랄 때 오이에 진딧물이 자꾸 붙기에 손으로 떼어 줘도 보고 담뱃재를 모아 우린 물도 줘 보고 했는데 그래도 끊임없이 생기는게 아닌가. 그래서 그래 너도 먹고 살아야지 싶어 그냥 내버려 두었더니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진딧물도 양심은 있는지 전체 오이를 다 괴롭히는 건 아니고 그 중에 몇몇 오이에만 가서 붙어 있으니 그래도 다행한 일이구나 싶었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우리 사람들이야 어디 그런가. 될 수 있으면 좋은 것, 많은 것 더 가지려고 하고 그것도 모자라 최대한 많은 양을 모아 축적하려고 안달이지 양심이란 것이 우리들 욕심 앞에 맥을 못 추지 않는가. 진딧물에게도 배울 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보니까 진딧물이 많이 붙은 오이에만 무당벌레들이 모여 진딧물을 처리 해 줌으로써 내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가만히 보니까 내가 할 일을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잘 해 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다가 진딧물 싫다고 농약을 막 쳐 놓았다면 그 농약에 무당벌레도 또 다른 익충들도 모두 함께 전멸했을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사람의 일도 마찬가지다. 시련과 역경이, 힘겨운 일이 생기면 그걸 이겨내려고 발버둥 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그냥 주저 않아 버리지만, 그 상황이 아무리 최악이다 싶더라도 대자연 법신 부처님의 숨결에, 또 신성&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INE-HEIGHT: 210%; LETTER-SPACING: 0.3pt&quot;&gt;神性&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 충만한 하느님의 뜻에, 어머니 대지에 일체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 수 있다면 분명 이 우주 어딘가에서는 해답을 내려 줄 것이다. 아무리 관찰해 보아도 자연은 참으로 신비롭고 또 정확하다는 걸 느낀다. 정확하게 필요한 일이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생겨나고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우리들 머리로 그 위대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려고만 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그 이치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갈 수 있다면 저 숲 속의 생기어린 생명력과 포근함을 우리 사람들 내면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의 이치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산다는 것은 곧 삼라만상인 법신 부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이고, 하느님의 신성한 뜻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산다는 말과 같다. 대자연 우주가 그대로 법신불이요 신성의 피어남이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이 대자연의 숨결에 일체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면, 그래서 내 일로 ‘잡고’ 살지 말고 대자연의 진리 성품에 ‘놓고’ 살면 우리 사람들에게서도 저 대자연의, 저 청청한 숲의 향기가 피어오를 것이다.&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컴바탕'&quot;&gt;
&lt;P class=HStyle0&gt;&lt;BR&gt;[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 중에서&lt;/P&gt;
&lt;P class=HStyle0&gt;&lt;FONT face=한컴바탕&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6/blog/2008/08/17/15/33/48a7c65379708&amp;filename=pdsc_0053.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6/blog/2008/08/17/15/33/48a7c65379708&amp;filename=pdsc_0053.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class=HStyle0&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gt;현재 교보문고에서&lt;BR&gt;'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는 책을&lt;BR&gt;8월 한달간 40% 특별할인하여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는&lt;BR&gt;그간의 목탁소리 글들을 &lt;BR&gt;핵심적인 것들만 모아 엮은 책입니다.&lt;BR&gt;&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height=220 hspace=0 src=&quot;http://www.moktaksori.org/bbs/icon/member_image_box/3197/buja.jpg&quot; width=148 border=0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amp;mallGb=KOR&amp;barcode=9788972201854&amp;orderClick=LAH&quot; target=_blank&gt;&lt;B&gt;&lt;FONT color=#800080&gt;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교보문고) 5,700원&lt;/FONT&gt;&lt;/A&gt;&lt;/B&gt;&lt;BR&gt;&lt;BR&gt;&lt;/P&gt;&lt;/SPAN&gt;
	    </content>
	    	</entry>
    	<entry>
	    <title>지금 이 순간, 현존의 기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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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8:buda1109.13464075</id>
	    <author>
		    <name>법상</name>
	    </author>
	    <updated>2008-08-17T15:31:37Z</updated>
	    <published>2008-08-17T15:31:3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tartFragme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2/blog/2008/08/17/15/26/48a7c4a592bce&amp;filename=DSC_0167.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2/blog/2008/08/17/15/26/48a7c4a592bce&amp;filename=DSC_0167.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아침저녁으로 날씨가 많이 포근해 졌다. 그리고 벌써 이렇게 들녘엔 새봄을 맞이하는 꽃들이며 봄나물이 한창이다. 이렇게 세월은 하루가 다르게 흘러가는데 내 속 뜰의 공부는 얼마만큼 그 흐름에 부응하며 보내왔는지, 하루 이틀, 일분일초 이렇게 흐르는 시간을 너무 쉽게 소모해 버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날이 갈수록 단순한 아쉬움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뻐근한 가슴앓이로 다가온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이 소중한 기회 이 소중한 순간을 놓쳐버리면 다음 순간이란 그다지 소중하지 못하다. 이 순간, 내게 주어진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에 가장 소중한 때다. 백일 천일 공부할 것도 없고, 전생이나 다음 생을 논할 것도 없으며, 과거나 미래를 논할 것도 없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내가 그렇게 찾던 '바로 그 순간'임을 알아야 할 것.&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우리는 끊임없이 바라고 또 바란다. 돈을 벌기 바라고, 지위가 오르길 바라고, 성공하기 바라며 계속해서 무엇인가 이루길 바란다. 그러나 바라는 순간 그 마음은 '지금 여기'에 없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을 최선으로 살아가는 길이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그 모든 일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자꾸 어디로 가려고 애를 쓰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우린 이미 도착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아주 사소한 일상일지라도 그 일을 하는 순간 온전히 거기에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작은 일이 내 삶의 완전한 목적임을 알아야 한다. 작은 일상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집중하며 소중히 여길 수 있을 때, 수많은 어려운 일, 큰일들 또한 쉽게 이루어 낼 수 있는 선&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INE-HEIGHT: 210%; LETTER-SPACING: 0.3pt&quot;&gt;禪&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적인 수행의 힘이 생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1/blog/2008/08/17/15/27/48a7c4ce90cd6&amp;filename=DSC_0220.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1/blog/2008/08/17/15/27/48a7c4ce90cd6&amp;filename=DSC_0220.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BR&gt;&lt;/P&gt;&lt;/SPAN&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내 밥 먹는 사소한 일상을 돌이켜 본다. 매일 같이 하루 세 번을 나누어 공양&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INE-HEIGHT: 210%; LETTER-SPACING: 0.3pt&quot;&gt;供養&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을 하면서도 공양을 위한 공양을 한 적이 얼마나 있었나 싶다. 밥을 먹으면서 늘 다른 것을 계획하고, 신문을 보거나, TV를 켜거나 무언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고 밥 먹는 것은 소홀한 뒷전의 일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밥 먹을 때 온전히 밥만 먹지를 못했다. 밥 먹는 그 사소한 일상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깨달음의 순간임을 늘 그렇게 놓치고 산다.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그 순간이 온전한 ‘지금 여기’의 순간이자 내 생의 전부가 된다는 사실을 쉽게 망각한다. 몸은 밥상 앞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무언가 다른 것을 찾아 헤매곤 하는 것을 본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밥을 먹는 순간, 일을 하는 순간, 운전하는 순간, 걷는 순간, 대화하는 순간, 그 어떤 사소한 일상일지라도 매 순간 순간 몸과 마음은 온전히 거기에 있어야 한다. 매 순간 도착해 있어야 한다. 어느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달려 갈 필요는 없다. 우린 이미 도착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착하려고 애쓸 것도 없고, 깨달으려고 애쓸 것도 없고, 이 괴로운 세상 잘 살아 보려고 애쓸 것도 없이 매 순간 순간 도착해 마친 것임을 알면 된다. 그랬을 때 더없이 평화롭고 향기로울 수 있고, 낱낱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 좌선이고 명상이며 깨어있음이 된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사람 성격은 운전대를 잡아 봐야 알 수 있다고 하던데 맞는 말 같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도 운전대를 잡으면 갑자기 급해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아는 스님도 평소에는 정말이지 그렇게 여유가 있고 차분한데, 운전대만 잡았다 하면 그냥 폭주족 저리가라 하고 질주를 한다. 물론 내 경우도 비슷하다. 가만 보면 운전대를 잡을 때 참 공부가 많이 된다. 마음이 얼마나 바쁜가, 마음에 얼마나 일이 많은가가 평소에는 숨겨져 있다가 운전대만 잡으면 고스란히 드러나 스스로에게 들키고 만다. 그래서 더욱 내면의 뜰을 잘 지켜볼 수 있을 때가 운전을 할 때가 아닌가 싶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운전을 할 때도 운전이 어디까지 도착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만 운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도착하기 위해 운전을 하게 되면 내 마음은 도착지라는 목적에 가 있기 때문에 운전하는 순간순간에는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다. 마음은 목적지에 가 있는데 몸은 도중에 있으니 얼마나 조급한가. 운전하고 가는 순간순간 그대로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운전하는 그 자체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운전하는 순간순간 알아차림을 놓쳐선 안 된다는 말이다. 운전하는 순간 알아차리게 되면 내 마음은 '지금 여기'에 있다. 그랬을 때 비로소 온전히 운전할 수 있게 된다. 운전을 위한 운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걷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걸어서 어떤 목적지에 가려고 할 때 우리 마음은 걷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직 도착하는 데만 마음이 가 있다. 빨리 도착하는 일만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 때 길을 걷는 일은 시원찮은 일이 되고 만다. 그러나 걷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빨리 도착하려는 조급한 마음도 비워지고 오직 걷는 그 자체로써 온전한 순간이 되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우리의 삶 속에 펼쳐진 그 어떤 일이라도 모두가 마찬가지다. 오직 '지금 여기'에서 그 순간순간이 그대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랬을 때 마음은 분열을 멈추고, 내적인 평화를 맞이할 수 있다. 마음이 즉&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INE-HEIGHT: 210%; LETTER-SPACING: 0.3pt&quot;&gt;卽&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한 순간 깨어있으면 그 순간 우리는 온 우주와 하나가 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들이 그렇게 찾아 나서던 궁극의 순간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린 지금까지 오랜 시간 세상을 살아왔지만 사실 우리가 산 세상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요, 오직 ‘지금 이 순간’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그 순간만 놓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놓치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14/blog/2008/08/17/15/28/48a7c4ef18afc&amp;filename=DSC_0228.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14/blog/2008/08/17/15/28/48a7c4ef18afc&amp;filename=DSC_0228.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lt;/SPAN&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 마음을 돌아보자. 늘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려 하고, 무엇인가 목적 달성을 위해 애쓰고,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과 집착의 사슬에 빠져 한 시도 만족하지 못하며, 한 시도 도착의 평화로움을 맛보지 못하는 이 마음을.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우리 삶이란 것이 그렇게 끊임없이 목적지를 향해 남들을 더 많이 재끼면서 달려가는데 혈안이 되어있지 한 시도 멈추고 비우며 자족하는 도착의 삶, 순간의 삶을 산 적이 없지 않은가. 단 한 순간만이라도 이 모든 욕망과 집착에 얽매인 마음, 결과와 목적을 향해 치닫는 마음에 제동을 걸어 보자. 그 목적지를 향한 삶의 속도를 멈추는 순간, 이미 행복의 정원에 도착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빨리 달릴수록 더 빨리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더 빨리 멈출수록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자동차가 생겨나고, 기차며 비행기가 나날이 빨라지고 있지만 우리 삶의 속도는 점점 더 바빠지고 있다. 빨리 도착하도록 해 주는 운송수단이 생겨나면 빨리 도착한 만큼 더 많은 휴식과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 반대로 우리의 삶은 더 빨라지고 정신이 없어지며, 목적지는 더 멀게만 느껴진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세상이 부유해졌고 편리해졌지만 나는 여전히 가난하다고 느낀다. 세상의 부유함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세상 사람들의 부유함에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죽을 때 까지 할 수 있는 최고 속도로 내달려도 힘겨울 판이다. 그러니 어찌 멈출 수 있는가. 죽을 때 까지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어찌 마음을 비우고 ‘지금 여기’라는 순간에 멈춰 설 수 있겠는가.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그러나 그렇게 달려서 결국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 뿐이다. 그렇게 달려가는 목적지가 성공에 있는 줄 알겠지만 사실 그 속도감은 우리에게 죽음이란 목적지에 더 빨리 다다르게 할 뿐이다. 우리의 속도전은 죽음 앞에서 겨우 멈춰 서게 될 것이다. 삶에 대한 한없는 후회와 함께. 죽음의 목적지에서 모든 사람은 지난 삶을 되돌아 볼 것이다. 왜 매 순간의 삶을 온전히 누리며 느끼며 즐기며 살지 못하고 이 순간만을 향해 달려왔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왜 그 때에 가서야 깨달아야 하는가. 지금이라도 당장 멈추기만 한다면 행복과 평화, 고요함과 깨어있음이라는 참된 목적지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현존&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LINE-HEIGHT: 210%; LETTER-SPACING: 0.3pt&quot;&gt;現存&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12/blog/2008/08/17/15/28/48a7c50dd3692&amp;filename=DSC_0253.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12/blog/2008/08/17/15/28/48a7c50dd3692&amp;filename=DSC_0253.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25/blog/2008/08/17/15/28/48a7c51bab279&amp;filename=DSC_0244.JPG')&quot;&gt;&lt;/A&gt;&lt;/P&gt;
&lt;P align=left&gt;&lt;/SPAN&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수행이며 명상, 기도란 것도 사실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깨어있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렇기에 모든 수행과 명상의 궁극도 깨달음을 향해 달려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멈춰 서는 깨어있음에 있다. 그러니 참선·염불·독경·진언·절 등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려고 해선 안 된다. 참선하는 바로 그 순간이 이미 본래성품을 드러내는 순간이고, 깨달음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참선수행을 하기 위해 선방에 가는 순간도 그것이 절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기 위한 준비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절로 가는 그 걸음 걸음의 순간 또한 그대로 본래 성품을 드러내는 순간이고, 깨달음을 위한 과정이 아닌 바로 깨닫는 그 순간임을 알아야 한다. 절에 가는 순간 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한걸음 한걸음 걷고 있음을 알아차리면 그것이 그대로 경행수행이 된다. 그랬을 때 절에 가는 과정도 참선이며, 절에 가서 앉아 있는 것도 참선이다. 법당에 들어서는 순간, 경전을 꺼내어들고 방석을 펴는 순간 매 순간순간을 놓치지 말고 깨어있으면 수행과 생활이 따로 없고, 과정과 목적이 따로 나뉘지 않는다. 주말에 있을 참선모임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무엇하러 그 긴 시간을 기다리느라 소모해야 하는가. 기다림을 버리고 ‘지금 여기’에 도착했을 때 모든 순간이 온전한 참선의 순간이 된다. 수행을 위한 준비는 필요 없다. 바로 그것이 수행이 되어야 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이처럼 모든 수행의 순간이 깨달음의 순간이지 깨달음을 위한 과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은 명상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중생'이 수행이라는 '마음' 닦는 과정을 통해 깨달은 '부처'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 말은 방편일 뿐이다. 중생이나 마음이나 부처가 그대로 하나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세 가지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이며, 중생이 그대로 부처다. 그랬을 때 우리 삶의 그 어떤 순간도 우리를 괴롭게 만들지 못한다. 모든 순간이 다 온전한 순간이고,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깨달음의 순간이라면 온전한 만족만이 있을 뿐이다.&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지난 내 삶을 돌이켜 보라. 내 삶의 속도를 느껴보라. 시간이란 것이 다 우리가 만들어 낸 조잡한 관념에 불과하지만, 너무나도 빨리 스쳐 지나가는 이 시간 속에 내가 온전히 살고 있는 순간은 얼마나 되는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amp;nbsp;&amp;nbsp;순간을 살면 시간은 없다. 과거가 없고 미래가 없는데 시간이 어디에 붙을 수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을 살 때, 매 순간 도착해 있으며, 매 순간 현존의 깨어있음이 빛을 피워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잡는 것은 ‘그 순간’만을 잡는 게 아니라 ‘삶 전체’를 잡는 것이다. 이 새로운 순간. 이 소중한 시간 시간을 결코 소홀히 흘려보내지 말자.&lt;/SPAN&gt;&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 style=&quot;LINE-HEIGHT: 210%&quot;&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4pt&quot;&gt;[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 중에서&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 '한컴바탕'&quot;&gt;
&lt;P class=HStyle0&gt;&lt;BR&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25/blog/2008/08/17/15/28/48a7c51bab279&amp;filename=DSC_0244.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25/blog/2008/08/17/15/28/48a7c51bab279&amp;filename=DSC_0244.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class=HStyle0&gt;&lt;FONT face=한컴바탕&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gt;&lt;FONT face=한컴바탕&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HStyle0&gt;&lt;FONT face=한컴바탕&gt;현재 교보문고에서&lt;BR&gt;'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는 책을&lt;BR&gt;8월 한달간 40% 특별할인하여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lt;BR&gt;&lt;BR&gt;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는&lt;BR&gt;그간의 목탁소리 글들을 &lt;BR&gt;핵심적인 것들만 모아 엮은 책입니다.&lt;BR&gt;&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height=220 hspace=0 src=&quot;http://www.moktaksori.org/bbs/icon/member_image_box/3197/buja.jpg&quot; width=148 border=0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lt;A href=&quot;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amp;mallGb=KOR&amp;barcode=9788972201854&amp;orderClick=LAH&quot; target=_blank&gt;&lt;B&gt;&lt;FONT color=#800080&gt;부자보다는 잘 사는 사람이 되라(교보문고) 5,700원&lt;/FONT&gt;&lt;/A&gt;&lt;/B&gt;&lt;BR&gt;&lt;BR&gt;&lt;/P&gt;&lt;/FONT&gt;&lt;/SPAN&gt;
	    </content>
	    	</entry>
    	<entry>
	    <title>중도의 삶, 중도의 수행</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buda1109/13460846"/>
		<id>tag:blog.daum.net,2008:buda1109.13460846</id>
	    <author>
		    <name>법상</name>
	    </author>
	    <updated>2008-08-16T14:02:38Z</updated>
	    <published>2008-08-16T14:02:3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moktaksori.org/bbs/data/menu2_1/DSC_0167.JPG&quot; width=539 border=0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moktaksori.org/bbs/data/menu2_1/DSC_0169.JPG&quot; width=539 border=0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IMG src=&quot;http://www.moktaksori.org/bbs/skin/f2plus_bbs1/t.gif&quot; width=10 border=0&gt;&lt;BR&gt;&lt;!-- 프린트 영역 시작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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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class=list_han vAlign=top&gt;[춘천 청평사 계곡에서]&lt;BR&gt;&lt;BR&gt;&lt;BR&gt;&lt;B&gt;&quot;스로나야, 너는 전에 거문고를 타 본 적이 있느냐?&quot; &lt;BR&gt;&quot;예, 부처님. 집에 있을 때 거문고를 타 봤습니다.&quot; &lt;BR&gt;&quot;스로나야, 어떻더냐? &lt;BR&gt;거문고의 줄을 너무 팽팽하게 조이면 좋은 소리가 나더냐?&quot; &lt;BR&gt;&quot;아닙니다. 부처님.&quot; &lt;BR&gt;&quot;그러면 거문고 줄을 너무 느슨하게 하면 좋은 소리가 나더냐?&quot; &lt;BR&gt;&quot;아닙니다. 부처님&quot; &lt;BR&gt;&quot;스로나야, 거문고 줄이 너무 팽팽하지도 않고 &lt;BR&gt;느슨하지도 않게 해야 좋은 소리가 나지 않더냐?&quot; &lt;BR&gt;&quot;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quot; &lt;BR&gt;&quot;바로 그것이다. &lt;BR&gt;너무 부지런히 정진하면 들뜨고, 너무 적게 정진하면 게을러진다. &lt;BR&gt;알맞게 정진하여 무리하지 않도록 해라.&quot; &lt;BR&gt;[사분율] &lt;/B&gt;&lt;BR&gt;&lt;BR&gt;&lt;BR&gt;세상 모든 일의 실천에는 중도의 법칙이 있다. &lt;BR&gt;그 어떤 일도 너무 과하거나 너무 못 미치면 좋지 않다. &lt;BR&gt;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lt;BR&gt;일도 그렇고, 수행도 그러하며, &lt;BR&gt;세상사 모든 일이 &lt;BR&gt;너무 과해도 안 되고, 너무 부족해도 안 된다.&lt;BR&gt;&lt;BR&gt;아무리 좋은 음식일지라도 &lt;BR&gt;과해서 좋은 것은 없으며, &lt;BR&gt;아무리 좋지 않은 음식일지라도 &lt;BR&gt;그 나름대로의 필요와 존재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lt;BR&gt;&lt;BR&gt;아무리 좋은 운동일지라도 &lt;BR&gt;과하게 되면 몸에 무리를 가져오며, &lt;BR&gt;그렇다고 운동을 너무 하지 않으면 &lt;BR&gt;몸이 허해져 병이 생기고 만다. &lt;BR&gt;&lt;BR&gt;수행이나 명상, 기도 같은 &lt;BR&gt;성스러운 종교적인 의식도 마찬가지다. &lt;BR&gt;제 아무리 성스럽고 고귀한 의식일지라도 &lt;BR&gt;그것이 과하면 성스러움을 잃고 만다. &lt;BR&gt;&lt;BR&gt;모든 것은 거문고 줄을 조율하듯 &lt;BR&gt;너무 팽팽하지도 &lt;BR&gt;그렇다고 너무 느슨하지도 않아 &lt;BR&gt;중도를 지켰을 때 최상의 조화를 이룬다. &lt;BR&gt;&lt;BR&gt;불교라는 종교는 &lt;BR&gt;불교 그 자체에도 집착하지 않도록 이끌고 있다. &lt;BR&gt;불교라는 틀에 얽매이지 말고, &lt;BR&gt;불교 그 자체에 집착하지 않으며, &lt;BR&gt;수행에도 너무 집착을 하면 뜻을 이루기 어려움을 설하고 있다. &lt;BR&gt;&lt;BR&gt;그것이 아무리 진리라고 할지라도 &lt;BR&gt;마음이 진리에 얽매여 있고, 결박되어 있다면 &lt;BR&gt;그것은 진리의 성품을 잃고 만다. &lt;BR&gt;&lt;BR&gt;그래서 참된 진리는 &lt;BR&gt;진리 그 자체에도 집착되어 있지 않으며, &lt;BR&gt;참된 불교는 불교 그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 &lt;BR&gt;참된 수행은 수행이라는 그 말에 얽매여 있지 않은 것이다. &lt;BR&gt;아무리 좋은 것도 과하면 중도에서 어긋난다. &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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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늘, 백중(우란분절)의 의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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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법상</name>
	    </author>
	    <updated>2008-08-15T09:05:36Z</updated>
	    <published>2008-08-15T09:05:3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13/blog/2008/08/15/09/04/48a4c7bb019e5&amp;filename=pdsc_0009.jpg')&quot;&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32/blog/2008/08/15/09/04/48a4c7fb1a1e4&amp;filename=DSC_0267.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32/blog/2008/08/15/09/04/48a4c7fb1a1e4&amp;filename=DSC_0267.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19/blog/2008/08/15/09/04/48a4c806911fa&amp;filename=DSC_0288.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19/blog/2008/08/15/09/04/48a4c806911fa&amp;filename=DSC_0288.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gt;음력 7월 15일은&lt;BR&gt;백중절(百中節), 중원일(中元日), 백종일(百種日)&lt;BR&gt;백종일(白踵日), 망혼일(亡魂日), 머슴날&amp;nbsp;&amp;nbsp;&lt;BR&gt;그리고 불교에서는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 하여&amp;nbsp;&amp;nbsp;&lt;BR&gt;우리 조상들의 소중한 민족 명절로 내려오고 있습니다.&amp;nbsp;&amp;nbsp;&lt;BR&gt;&lt;BR&gt;먼저 이렇게 많은 이름이 붙여진 연유부터&amp;nbsp;&amp;nbsp;&lt;BR&gt;살펴보겠습니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백중(百中)이란 음력 7월 15일이&amp;nbsp;&amp;nbsp;&lt;BR&gt;24절기의 중심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amp;nbsp;&amp;nbsp;&lt;BR&gt;중원(中元)이란 도가(道家)에서 나오는 말로&amp;nbsp;&amp;nbsp;&lt;BR&gt;도교에서는 천상의 선관(仙官)이 일년에 세 번&amp;nbsp;&amp;nbsp; &lt;BR&gt;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 때를 ‘원(元)’이라하 며,&amp;nbsp;&amp;nbsp;&lt;BR&gt;1월 15일이 상원(上元), 7월 15일이 중원(中元),&amp;nbsp;&amp;nbsp;&lt;BR&gt;10월 15일이 하원(下元)으로 이를 삼원이라해서&amp;nbsp;&amp;nbsp; &lt;BR&gt;초제(醮祭)를 지내는 세시풍속이 있습니다.&amp;nbsp;&amp;nbsp;&lt;BR&gt;쉽게 말해 1년 365일 중 중간이 되는 날이라 해서 중원(中元) 인 셈이지요.&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백종(百種)이란 이 무렵이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오는 때이므 로&amp;nbsp;&amp;nbsp;&lt;BR&gt;백 가지 씨앗을 마련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며,&amp;nbsp;&amp;nbsp;&lt;BR&gt;백 가지 햇곡식으로 조상의 사당에 올리는 날이라는 의 미,&amp;nbsp;&amp;nbsp;&lt;BR&gt;그 외에도 불가에서는 우란분회(盂蘭盆會)를 행할 때&amp;nbsp;&amp;nbsp;&lt;BR&gt;백 가지 곡식과 과일을 공양 올린다는 의미에서&amp;nbsp;&amp;nbsp; &lt;BR&gt;이런 이름이 생겼다고 합니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음(音)은 같으나 한자로 백종(白踵)이라 쓰는 경우는&amp;nbsp;&amp;nbsp;&lt;BR&gt;이 때가 농사일이 거의 끝나는 때이므로&amp;nbsp;&amp;nbsp;&lt;BR&gt;그동안 농사일을 하느라 더러워진 발뒤꿈치(踵)가&amp;nbsp;&amp;nbsp;&lt;BR&gt;모처럼 하얗게(白)된다는 뜻에서 그렇게 불러졌다고 합니 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망혼일(亡魂日)이란 이 날 밤에 술과 안주,&amp;nbsp;&amp;nbsp;&lt;BR&gt;밥, 떡, 과일 등을 차려놓고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의 혼을 불 러들여&amp;nbsp;&amp;nbsp;&lt;BR&gt;재를 지낸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입니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머슴날이란 7월이 되면 논밭일이 거의 끝나고 한가하여&amp;nbsp;&amp;nbsp;&lt;BR&gt;지주들이 마련해준 술과 음식으로&amp;nbsp;&amp;nbsp; &lt;BR&gt;한바탕 흥겹게 즐길 수 있는 날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 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무엇보다도 불가에서는 우란분절이라 하여&amp;nbsp;&amp;nbsp;&lt;BR&gt;석가모니 부처님의 성탄절, 성도절, 열반절과 함께&amp;nbsp;&amp;nbsp;&lt;BR&gt;불교의 4대 명절로 꼽히고 있을 만큼 중요한 날이기도 합니 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이 날이 불교의 큰 명절로 자리잡은 것은&amp;nbsp;&amp;nbsp; &lt;BR&gt;부처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인 목련존자가&amp;nbsp;&amp;nbsp; &lt;BR&gt;자신의 어머니를 아귀지옥에서 구하기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 을 받아&amp;nbsp;&amp;nbsp;&lt;BR&gt;스님들의 하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 자자일(自姿日)에&amp;nbsp;&amp;nbsp; &lt;BR&gt;여러 스님들에게 공양했다는 『우란분경』의 이야기에 기인합 니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목련존자는 출가하기 전 대단한 부호의 외아들이었습니 다.&amp;nbsp;&amp;nbsp;&lt;BR&gt;그러나 갑자기 아버지 상전장자가 돌아가셔서&amp;nbsp;&amp;nbsp; &lt;BR&gt;많은 유산을 받게 되었습니다.&amp;nbsp;&amp;nbsp;&lt;BR&gt;목련은 유산을 3등분하여 일부는 어머니 청제부인의 생활비로 드리고,&amp;nbsp;&amp;nbsp;&lt;BR&gt;일부는 돌아가신 아버님의 망령을 위해&amp;nbsp;&amp;nbsp; &lt;BR&gt;3년간 매일 재를 지내 천도하도록 어머님께 부탁을 하고,&amp;nbsp;&amp;nbsp; &lt;BR&gt;나머지는 목련 자신이 가지고 타국으로 장사를 하러 떠났습니 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떠날 때, 목련은 어머님께 아버님의 천도재를 당부하였지만&amp;nbsp;&amp;nbsp; &lt;BR&gt;3년만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천도재는 지내지 않고&amp;nbsp;&amp;nbsp;&lt;BR&gt;살생과 음주 등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후에 목련이 출가한 뒤, 육신통을 얻어&amp;nbsp;&amp;nbsp; &lt;BR&gt;혜안(慧眼)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보니&amp;nbsp;&amp;nbsp; &lt;BR&gt;안타깝게도 어머니가 그러한 과보로 아귀지옥에 떨어져&amp;nbsp;&amp;nbsp;&lt;BR&gt;거꾸로 매달린 채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 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목련이 가슴 아파하며 신통력을 발휘하여&amp;nbsp;&amp;nbsp;&lt;BR&gt;어머니를 아귀지옥에서 구해내고자 음식을 가져가 어머니께 올 렸으나&amp;nbsp;&amp;nbsp;&lt;BR&gt;그 음식은 어머니의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뜨거운 불길로 변 해 버렸습니다.&amp;nbsp;&amp;nbsp; &lt;BR&gt;어머니는 생전에 지은 죄업이 너무 두터워&amp;nbsp;&amp;nbsp; &lt;BR&gt;아라한이 된 목련존자도 어떻게 손을 써 볼 도리가 없었던 것 입니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이에 목련은 석가모니 부처님께 간청하며&amp;nbsp;&amp;nbsp; &lt;BR&gt;어머니의 영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여쭈었습니다.&amp;nbsp;&amp;nbsp;&lt;BR&gt;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amp;nbsp;&amp;nbsp;&lt;BR&gt;“너의 어머니는 죄의 뿌리가 깊어 너 혼자의 힘으로는 구제 할 수 없구나.&amp;nbsp;&amp;nbsp;&lt;BR&gt;음력 7월 15일 하안거가 끝나는 자자(自姿)일,&amp;nbsp;&amp;nbsp; &lt;BR&gt;곳곳에 있는 많은 스님들이 모였을 때&amp;nbsp;&amp;nbsp;&lt;BR&gt;지극한 정성으로 공양을 올리면 불보살과 여러 스님들의 위신 력으로&amp;nbsp;&amp;nbsp;&lt;BR&gt;어머님께서는 해탈할 수 있을 것이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라고 하시며&amp;nbsp;&amp;nbsp;&lt;BR&gt;“이와 같이 성현대중께 공양을 올리면&amp;nbsp;&amp;nbsp;&lt;BR&gt;선망조상과 현세의 부모님, 친족 영가들이 악도에서 벗어나&amp;nbsp;&amp;nbsp; &lt;BR&gt;즉시 해탈하여 복락을 누릴 것이다.&amp;nbsp;&amp;nbsp;&lt;BR&gt;부모가 생존해 있는 사람은 부모의 여생이 행복하게 되 고,&amp;nbsp;&amp;nbsp;&lt;BR&gt;부모가 이미 떠났다면 좋은 국토에 태어나서&amp;nbsp;&amp;nbsp;&lt;BR&gt;무량한 복락을 받게 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우란분의 ‘우란(盂蘭)’은 도현(倒懸)&amp;nbsp;&amp;nbsp; &lt;BR&gt;즉,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뜻입니다.&amp;nbsp;&amp;nbsp;&lt;BR&gt;‘분(盆)’은 ‘구제한다, 여의게 한다’는 뜻으로&amp;nbsp;&amp;nbsp;&lt;BR&gt;재(齋)를 베풀어 지옥과 같은 악도에 떨어져 고통받는&amp;nbsp;&amp;nbsp;&lt;BR&gt;선망부모를 구제한다는 뜻입니다.&amp;nbsp;&amp;nbsp; &lt;BR&gt;&amp;nbsp;&amp;nbsp;&lt;BR&gt;그래서 우란분절에는 재를 베풀어 온갖 영가들을 천도하는&amp;nbsp;&amp;nbsp; &lt;BR&gt;천도재를 베풀게 되기에 우란분재(盂蘭盆齋)라고도 부르 며,&amp;nbsp;&amp;nbsp;&lt;BR&gt;우란분공(盂蘭盆供)이란&amp;nbsp;&amp;nbsp; &lt;BR&gt;현재의 부모와 과거 일곱 생의 부모 영가를 위해서&amp;nbsp;&amp;nbsp;&lt;BR&gt;꽃, 과일, 각종 음식을 갖추어서 여러 스님들께 공양을 올려 그 공덕으로&amp;nbsp;&amp;nbsp; &lt;BR&gt;부모 및 조상 영가의 고통을 없애준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 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이와 같이 우란분절은&amp;nbsp;&amp;nbsp; &lt;BR&gt;목련존자의 어머님에 대한 효행(孝行)의 발로로 시작됩니 다.&amp;nbsp;&amp;nbsp;&lt;BR&gt;여기에서 보듯 부처님이 가르치시는 효행이란&amp;nbsp;&amp;nbsp;&lt;BR&gt;다만 살아계신 부모님께 잘 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 닌,&amp;nbsp;&amp;nbsp;&lt;BR&gt;부모님을 비롯한 선망조고조상과 일체중생&amp;nbsp;&amp;nbsp;&lt;BR&gt;그리고 법계의 일체 고혼을 천도하여 바른 길로 이끄는 것까지 를&amp;nbsp;&amp;nbsp;&lt;BR&gt;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범망경에서는&amp;nbsp;&amp;nbsp;&lt;BR&gt;“끝없는 옛적부터 금생에 이르는 동안&amp;nbsp;&amp;nbsp;&lt;BR&gt;육도 중생이 나의 부모와 형제 아님이 없었다“&amp;nbsp;&amp;nbsp;&lt;BR&gt;라고 말하고 있습니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수 억겁을 윤회하고 또 윤회하면서&amp;nbsp;&amp;nbsp;&lt;BR&gt;우린 수없이 많은 이들과 숯한 인연을 지어 왔습니다.&amp;nbsp;&amp;nbsp;&lt;BR&gt;한 겁만을 보더라도 수 억만명 이상과&amp;nbsp;&amp;nbsp;&lt;BR&gt;부모 형제, 그리고 자식의 인연을 맺어 왔을 터이거늘,&amp;nbsp;&amp;nbsp;&lt;BR&gt;억겁을 윤회하며 만난 인연이란 어떠하겠습니까.&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지금에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 사람들&amp;nbsp;&amp;nbsp;&lt;BR&gt;나와 부딪치고 싸우는 사람, 사람들&amp;nbsp;&amp;nbsp;&lt;BR&gt;하다못해 짐승들에서 파리 한 마리, 하찮은 미물까지 모두가&amp;nbsp;&amp;nbsp; &lt;BR&gt;어느 전생에 나와 부모, 자식, 형제지간이었을지 모를 일입니 다.&amp;nbsp;&amp;nbsp;&lt;BR&gt;아니 분명 어느 한 생은 함께 한 인연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 닐 것입니다.&amp;nbsp;&amp;nbsp;&lt;BR&gt;그러니 일체 중생이 그대로 나의 부모요 형제인 것입니 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그렇기에 ‘효심(孝心)이 바로 불심(佛心)’이란 말은&amp;nbsp;&amp;nbsp;&lt;BR&gt;부처님의 효심은 내 부모 형제뿐만 아니라&amp;nbsp;&amp;nbsp;&lt;BR&gt;일체 중생에게 베푸는 보살심(菩薩心)이기 때문입니다.&amp;nbsp;&amp;nbsp;&lt;BR&gt;일체 중생이 바로 나의 부모이며 형제이기 때문입니다.&amp;nbsp;&amp;nbsp;&lt;BR&gt;&amp;nbsp;&amp;nbsp;&lt;BR&gt;우란분절은 대자대비의 효심을 밝히는 날입니다.&amp;nbsp;&amp;nbsp;&lt;BR&gt;작게는 부모님과 선망 조상님들의 극락 왕생과 해탈을 기원하 고,&amp;nbsp;&amp;nbsp;&lt;BR&gt;크게는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서원을 실천하는 날인 것 입니다.&amp;nbsp;&amp;nbsp;&lt;BR&gt;그래서 불교 4대 명절 중 하나로 이 날을 꼽는 것입니 다.&lt;BR&gt;&lt;/P&gt;
&lt;P&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4/blog/2008/08/15/09/04/48a4c7ce02367&amp;filename=pDSC_0553.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4/blog/2008/08/15/09/04/48a4c7ce02367&amp;filename=pDSC_0553.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백중 천도에 임하는 마음자세]&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람이 죽고 나면 &lt;BR&gt;생전에 지은 업식에 따라 제 갈 길을 찾아 간다고 합니다.&lt;BR&gt;스스로 생전에 지은 업식에 따라 윤회를 하는 것입니다.&lt;BR&gt;&lt;BR&gt;그러나 이 생에 집착이 강한 사람일 경우&lt;BR&gt;인연따라 제 갈 길을 찾아 가지 못하게 됩니다.&lt;BR&gt;집착되는 마음이 장애가 되어 발길을 붙잡고 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lt;BR&gt;&lt;BR&gt;그래서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lt;BR&gt;곡을 하며 구슬피 울지 말라고 조언합니다.&lt;BR&gt;나를 위해 슬피 울어주는 그 사람에게 집착을 하여&lt;BR&gt;가야할 길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이 생을 떠돌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lt;BR&gt;&lt;BR&gt;이렇게 갈 길 몰라 헤매이는 영식들은&lt;BR&gt;괴로운 나날을 이 생에 머물며 보내게 됩니다.&lt;BR&gt;그렇게 되는 것을 막아 바른 길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lt;BR&gt;우리는 사십구재(四十九齋)를 지내줍니다.&lt;BR&gt;&lt;BR&gt;혹은 사십구일 동안의 사이에 결정되게 될 다음 생에 대해&lt;BR&gt;보다 밝은 부처님 법을 들려줌으로써 보다 좋은 몸을 받아 가거나&lt;BR&gt;극락 국토에 왕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사십구재를 지냅니다.&lt;BR&gt;사십구재는 죽은 이의 명복을 빌고 &lt;BR&gt;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49일 동안 하는 천도 의식입니다.&lt;BR&gt;&lt;BR&gt;그러므로 사십구재며 천도재는&lt;BR&gt;영가들에게 밝은 부처님 법을 들려주어&lt;BR&gt;보다 밝은 지혜로써 밝은 길 찾아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데 &lt;BR&gt;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lt;BR&gt;&lt;BR&gt;죽은 영가는 생전에 가지고 있던 온갖 습(習)들과&lt;BR&gt;생전의 의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lt;BR&gt;죽어서도 생전에 집착하던 모든 것에 착을 둡니다.&lt;BR&gt;물론 생전의 마음자리 또한 그대로 가지고 있게 됩니다.&lt;BR&gt;&lt;BR&gt;그렇기에 천도재를 할 때에는&lt;BR&gt;돌아가신 분의 영식이 생전의 의식 그대로이기에&lt;BR&gt;생전에 모시는 것처럼 그대로 상을 차려 놓고 절하는 등 예를 다해야 하며,&lt;BR&gt;마음 또한 생전의 마음자리 그대로이기에&lt;BR&gt;그 참주인공 마음자리가 서로 하나임을 바로 보게 하여 보다 밝은 지혜로&lt;BR&gt;밝게 이끌어 주려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합니다.&lt;BR&gt;&lt;BR&gt;천도재(薦度齋)란&lt;BR&gt;생전의 업식(業識)으로 인해 생에 집착하여 괴로워하고 있는 영가에게&lt;BR&gt;무상(無常), 무아(無我)로 일체가 공(空)하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일러주고,&lt;BR&gt;참주인공 마음자리는 너와 나, &lt;BR&gt;부처님 마음자리가 서로 하나임을 바로 깨치게 하여&lt;BR&gt;생전의 업식에 끄달려 집착하지 않고 밝은 지혜를 얻어 &lt;BR&gt;바른 길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lt;BR&gt;&lt;BR&gt;그러므로 천도하는 이의 마음은 &lt;BR&gt;영가의 마음과 천도를 지내는 이의 마음이 &lt;BR&gt;밝은 불성 주인공으로써 근본이 하나임을 바로 알고 굳게 믿어야 합니다.&lt;BR&gt;그렇듯 주인공 본바탕이 하나이기 때문에 &lt;BR&gt;산 사람이 죽은 사람 천도를 해 줄 수 있는 도리가 나오는 것입니다.&lt;BR&gt;&lt;BR&gt;그렇게 영가와 나의 근본이 하나임을 바로 믿기 때문에&lt;BR&gt;내가 부처님의 법을 영가에게 들려주고&lt;BR&gt;경전을 독경하며 염불해 줌으로 인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lt;BR&gt;&lt;BR&gt;그러니 천도를 하는 이의 마음은&lt;BR&gt;'영가님 좋은 곳에 가십시오' 라고 하기 보다는&lt;BR&gt;'영가님과 저의 마음 둘이 아니니 &lt;BR&gt;참주인공 마음자리를 바로 보고 깨우치십시오.'&lt;BR&gt;'부처님 가르침인 무상(無常), 무아(無我), 공(空)의 도리를 바로 깨쳐 &lt;BR&gt;어디에도 착을 둘 바가 없음을 바로 깨쳐보십시오'&lt;BR&gt;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lt;BR&gt;&lt;BR&gt;'내가 영가를 천도해 준다'가 아니고&lt;BR&gt;'나와 영가의 마음이 둘이 아니기에 그 한마음 도리를 굳게 믿고&lt;BR&gt;한생각 돌이켜 일체의 끄달림을 턱 하고 놓아버린다'는 마음이라야 합니다.&lt;BR&gt;이 이치를 알고 보면 나의 수행하는 삶이 그대로 천도가 될 수 있습니다.&lt;BR&gt;내 마음 바로 잡아 수행하는 것이 최고의 천도가 됩니다.&lt;BR&gt;참생명의 근원은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lt;BR&gt;&lt;BR&gt;천도재를 하는데 비용은 얼마가 들고&lt;BR&gt;상은 어떻게 차려야 하는지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lt;BR&gt;형식에만 치우치고 마음도리를 도외시한다면 그건 한참 잘못된 것입니다.&lt;BR&gt;천도에 임하는 이의 마음자세 그 하나가지고도 이미 천도는 되는 것입니다.&lt;BR&gt;&lt;BR&gt;물론 형식적인 부분 또한 쉽게 넘기기만 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lt;BR&gt;겉에 드러난 상차림 그 자체에 이미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lt;BR&gt;상을 차릴 때에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말고&lt;BR&gt;오직 지극한 마음으로 스스로 준비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lt;BR&gt;절에서 다 해주니 절에 잠깐 와서 재에 참석하고 &lt;BR&gt;차린 음식 먹고 돌아가면 되지 하는 마음 가지고는 될 수가 없습니다.&lt;BR&gt;&lt;BR&gt;또한 천도를 할 때에는&lt;BR&gt;내 스스로 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lt;BR&gt;천도 시작 하는 날 와서는 '스님, 스님만 믿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lt;BR&gt;하고는 잠시 참여했다가 훌쩍 가 버린다면 &lt;BR&gt;되려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lt;BR&gt;&lt;BR&gt;무엇보다도 영가와 인연이 깊은 &lt;BR&gt;당사자의 정성이 가장 중요함을 아셔야 합니다.&lt;BR&gt;그래서 천도를 할 때에는 가족 몇 명만 와서 하지말고&lt;BR&gt;모든 가족, 친지가 함께 모여 밝은 정성으로 동참하라고 하는 것입니다.&lt;BR&gt;&lt;BR&gt;또한 그렇게 끝내놓고 나서 &lt;BR&gt;'이렇게 했으니 이제 천도가 되었겠지',&lt;BR&gt;'천도했으니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겠지' 하는 &lt;BR&gt;유소득(有所得)의 마음은 경계해야 할 또 하나의 마음가짐입니다.&lt;BR&gt;&lt;BR&gt;우선은 바라는 바 없는 청정한 무소득의 마음으로 천도에 임해야 하며,&lt;BR&gt;자신 스스로 경전을 독경하고, &lt;BR&gt;염불 해 주는 수고로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lt;BR&gt;&lt;BR&gt;천도에 임하는 기간동안이나 천도재가 있기 몇 일 전부터&lt;BR&gt;기간을 정해두고 금강경 독경이나, 나무아미타불 염불,&lt;BR&gt;혹은 광명진언 등을 지극한 마음으로 염해야 합니다.&lt;BR&gt;쉽게 하루 해서 끝내려는 마음은 깊은 정성이 아닐 터입니다.&lt;BR&gt;&lt;BR&gt;이렇듯 천도재를 할 때에는&lt;BR&gt;천도를 하는 이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합니다.&lt;BR&gt;깊은 마음과 정성을 담아 천도재를 준비한다면&lt;BR&gt;그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천도는 끝난 것입니다.&lt;BR&gt;천도를 준비하는 과정 하나 하나가 바로 천도 그 자체인 것입니다.&lt;BR&gt;&lt;BR&gt;이와 같이 천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lt;BR&gt;그렇지만 우리는 날짜와 시간을 정해두고 하는 천도재 보다는&lt;BR&gt;살아있는 모든 순간 순간이 천도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lt;BR&gt;살아있을 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우고 마음을 닦았다면&lt;BR&gt;더 이상 천도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lt;BR&gt;&lt;BR&gt;순간 순간 집착을 비우며 방하착 하고 살아야 &lt;BR&gt;목숨 끊어지는 순간 저절로 방하착이 되는 것입니다.&lt;BR&gt;죽는 그 순간 바로 놓을 수 있다면 그것이 참된 천도입니다.&lt;BR&gt;그래서 불교 공부는 죽음을 준비하는 공부라고 하지 않습니까.&lt;BR&gt;&lt;BR&gt;법구경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lt;BR&gt;&quot;백 년 동안 다달이 천 번씩 제사를 지내기 보다는&lt;BR&gt;한 순간 바른 법 생각해 갖는 그 복이 더 뛰어나다.&quot;&lt;BR&gt;&lt;BR&gt;영가를 천도해 주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lt;BR&gt;순간 순간 나와 영가가, 또 부처님이 둘이 아님을 바로 알아&lt;BR&gt;굳은 믿음으로 한생각 돌이켜 크게 놓아 버릴 수 있다면&lt;BR&gt;상을 차리고 절을 할 것도 없이&lt;BR&gt;찰나 찰나의 마음이 곧 천도가 될 것입니다.&lt;BR&gt;&lt;BR&gt;그러나 우리 또한 바로 깨치지 못한 중생이라 그렇게 되지 않으니 &lt;BR&gt;상을 차리고 절을 하고 스님을 모셔 의식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lt;BR&gt;&lt;/P&gt;
&lt;P&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13/blog/2008/08/15/09/04/48a4c7bb019e5&amp;filename=pdsc_0009.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13/blog/2008/08/15/09/04/48a4c7bb019e5&amp;filename=pdsc_0009.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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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style=&quot;MARGIN: -30px 0px 0px 246px; POSITION: absolute&quot;&gt;&lt;A href=&quot;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1062551?rec=1&quot; target=_blank&gt;&lt;IMG style=&quot;BORDER-RIGHT: medium none; BORDER-TOP: medium none; BORDER-LEFT: medium none; BORDER-BOTTOM: medium none&quot; height=30 alt=추천하기 src=&quot;http://img-section.daum-img.net/blognews/common/bl_recom.gif&quot; width=54&gt;&lt;/A&gt;&lt;/DIV&gt;&lt;/FIELDSET&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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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빈틈'을 늘리는 명상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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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법상</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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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8-08-13T08:04:19Z</updated>
	    <published>2008-08-13T08:04:19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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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gt;&lt;!--&lt;font class=list_eng&gt;- &lt;b&gt;SiteLink #1&lt;/b&gt; : &lt;/font&gt;&lt;br&gt;--&gt;&lt;!--&lt;font class=list_eng&gt;- &lt;b&gt;SiteLink #2&lt;/b&gt; : &lt;/font&gt;&lt;br&gt;--&gt;&lt;IMG style=&quot;CURSOR: hand&quot; onclick=window.open(this.src) src=&quot;http://www.moktaksori.org/bbs/data/menu2_1/dsc_0117.jpg&quot; width=539 border=0 name=zb_target_resize&gt;&lt;BR&gt;&lt;BR&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20/blog/2008/08/13/08/02/48a2168bbd0fd&amp;filename=dsc_0105.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20/blog/2008/08/13/08/02/48a2168bbd0fd&amp;filename=dsc_0105.jpg&quot; border=0&gt;&lt;/A&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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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class=list_han vAlign=top&gt;흔히 명상이라는 것은&lt;BR&gt;생각과 생각 사이의 빈틈을&lt;BR&gt;늘리는 것이라고 말하곤 합니다.&lt;BR&gt;&lt;BR&gt;[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의 지혜]를 읽다보니&lt;BR&gt;이에 관한 아주 자상한 설명이 나와 있어&lt;BR&gt;함께 나누어 봅니다.&lt;BR&gt;&lt;BR&gt;&lt;B&gt;일상의 마음에서 우리는 &lt;BR&gt;생각의 물줄기가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을 알고 있다. &lt;BR&gt;그러나 실제로 결코 그렇지 않다. &lt;BR&gt;당신은 각각의 생각들 사이에 빈틈이 있음을 스스로 발견할 것이다. &lt;BR&gt;&lt;BR&gt;과거의 생각이 이미 지나갔을 때, &lt;BR&gt;그리고 미래의 생각이 아직 떠오르지 않았을 때, &lt;BR&gt;당신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