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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속사프레서의 이야기 마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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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11T02:11:40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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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49-5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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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11T02:11:40Z</updated>
	    <published>2009-10-11T02:11:4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49.&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lt;BR&gt;학교 바로 정문 앞에서 좌판행상처럼 '창작과 비평' 영인본을 팔고 있었다. 유신시대에 '창작과 비평' '사상계'와 같은 계간지는 불온서적처럼 평가받고 있었다. 왜 그런 책들은 체제비판 내용을 싣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러니까 더욱 내용이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문학비평 계간지 잡지로만 알고 있었는데 '창비'라면 무언가 반체제 학생운동권 학생이나 사보는 잡지 정도로 알고 있던 석근이도 내심으로 호기심이 일어 그만 충동구매로 그 좌판행상 책장수로부터 10년간 발행한 잡지본을 묶어놓은 영인본을 사고 말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문학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대학생이라면 이런 책정도는 접근할 수 있어야한다는 겉멋도 좀 작용했다. 무언가 대단한 지성인의 그룹에 당당히 낄 수 있다는 그 등용문의 표식처럼 시커멓게 장정된 그 영인본을 사고 말았다. 그런 것을 읽어야 한규 선배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도 알아 듣거나 사회 변혁에 관한 자신만의 이론을 밀고 나갈 수 있으리란 유치한 생각도 함께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계약금 조로 일단 돈을 걸어놓고 나머지는 할부로 변제하는 방식이라 부담은 없었지만 그 책의 내용이 부담이 되었다. 왜 많이 배운 사람들의 비평문은 그렇게도 어려운 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책 말미에 나오는 문제의식이 있는 작가들의 중편이나 단편소설만을 무언가 큰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을 따름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대충 사회의식이 생기는 그런 내용의 소설이라 읽으면 왜 우리가 미군 기지촌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일의 패배자로 인식되며 여의도 개발에 따른 한강변의 빈곤층들의 소외 등을 그런 소설은 다루고 있었다. 다소 비판의식이 강한 자들의 사회비판이 작품마다 배어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군부독재시절에 정부의 개발사업에 딴지를 거는 그런 소설이 올라오는 잡지라서 아마 문제시하는 것 같았다. 아직 저녁식사 시간 전이라서 석근이는 누워서 그 두꺼운 영인본 잡지를 사전 들추듯 이리 저리 읽고 있었다. 고향 부산이라면 지금 시간이면 모친은 부엌에서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를 내며 저녁을 하고 있었고 자신은 문간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을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만 지역이 부산에서 서울로 바뀌었고 고향집에서 하숙집으로 바뀐 차이뿐이었다. 시간대도 똑 같았고 누워 책을 읽고 있는 모습도 똑같았다. 룸메이트 치과 예비의사 선생은 아직도 학교에 남아 실습을 하는 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진주댁 아줌마는 한동안 술은 입에도 대지 않고 하숙집 아주머니로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덕에 정말 저녁식사는 기다려지는 그런 진수성찬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저녁식탁의 다리가 휘어질 정도였고 몇몇 반찬은 올릴 위치가 모자라서 상 밑에 차려지는 경우도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여름이면 보신탕도 만들어 하숙생에게 대접한다는 그 전설의 하숙집에서 석근이는 대단한 호식의 기회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조기구이, 참기름 바른 김구이, 아욱된장국, 콩이 섞인 밥, 계란부침, 각종 젖갈에 상에는 오를 수 있는 반찬은 몽땅 차려져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유복자 아들과 하숙생들은 함께 식사를 하는 법이 없었다. 웬지 아들은 하숙생들과의 사이에서도 소원했다. 아마 학교를 다니지 못한 열등감이랄까 아니면 동년배가 아닌 나이를 더 먹은 탓인지 웬지 모를 위축감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아비 얼굴을 못 보고 자란 그는 원래 심성이 여린 그런 사나이였다. 그런데다 진주댁 아주머니의 기가 워낙 세어 좀처럼 기를 펴고 살아본 시절이 없어 보이는 그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물에 기름처럼 아주머니의 눈치만 살피며 겉도는 그를 바라보는 석근이의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아주머니가 한동안 주사가 없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것만으로도 행복한 하숙생활이었다. 다만 그 평화가 오래지 않아 한번은 깨어지겠지만 그 깨어짐도 일주일 정도면 다시 평범으로 돌아가는 불화였기에 더욱 위태위태한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숙집 노총각은 집주위에서 늘상 담배만 피웠다. 오직 담배만이 그의 고독의 친구인 셈이다. 제대로 한번 집을 떠난 기억도 없이 제대로 자립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그는 엄한 모친의 기에 눌려서 그렇게 반평생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가정의 언밸런스의 원인(遠因)도 한국전쟁에 있었지만 바로 그 전쟁이 끝난 것도 20여년이 지난 그때에는 사람들은 그 전쟁이 있은지도 잊어버린 듯 생활하고 있었다. 다만 이 하숙집에선 아직도 그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서 영속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세월은 60년대의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고 이제 70년대에는 집안에 쌀 떨어지는 걱정을 하는 집들이 현격히 줄어들고 있었고 60년대의 하숙집이란 그저 얻어먹기에 급급한 그런 하숙집이란 인상에서 70년대의 하숙집은 어느 정도 서비스개념이 들어와서 어느 하숙집이 더 반찬이 좋은지, 심지어 하숙생들의 빨래까지 몽땅 해주는 그런 하숙집도 등장하는 마당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숙집 가족 구성원 자체가 최소 기본단위인 모자(母子)가정이라 단촐했고 싸이클을 타는 아주머니의 술버릇으로 인한 암울한 분위기가 집주위에 맴돌아서 오늘같은 잔치상임에도 언제나 이 잔치상이 다시 푹 퍼진 라면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가변적인 불안이 깔린 그런 분위기의 하숙집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석근이도 언제나 되풀이되는 그런 불안일 바에야 다소 반찬이 하숙집 냄새가 나는 싸구려식이라 하더라도 마음편한 그런 집으로 언젠가는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학생, 저녁먹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안방에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팔이 무거운 그 창비 영인본책을 내려놓고 마당으로 나섰다. 문간방에 하숙들었기에 식사때면 언제나 마당을 가로지르는 불편이 있었지만 본채와 떨어져 호젓한 문간방이 되려 조용하여 나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당시에는 따로 식당방이 없는 재래식 구조라서 언제나 식탁은 하숙집 안방에 차려지게 마련이었다. 마당은 시멘트를 바른 마당이었지만 한가운데는 작은 꽃밭이 있었다. 아직은 추석전이라 꽃밭에는 여름의 추억이 깃들어 있었다. 진주댁 아주머니는 어릴 적 담장을 장식한 많은 여름꽃을 기억해 작은 꽃밭에 옮겨놓았다. 이제 여름꽃은 시들었고 코스모스와 국화가 탐스럽게 피어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전쟁의 상흔은 이 아주머니를 대로는 인사불성에 가까운 술꾼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런 모친 아래서 무기력하게 자란 유복자 아들은 30이 넘어도 자립하지 못하는 반사회성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제 세월이 가면 또 잊혀지겠지만 아직도 아주머니는 아들하나를 뱃속에 남겨두고 떠나간 남편과의 생이별을 늦게 배운 소주로 풀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들은 담배로 모친은 술로 세월을 달래며 남은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고 그런 마주보는 인생의 틈바구니에 끼어들 어떤 사람도 여지껏 없었던 것이었다. 그 누구라서 이 두 모자의 한(恨)속에 기꺼이 들어오려고 하겠는가 하는 슬픔이 그 유복자 아들의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주머니의 한이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질 때면 시작되는 폭음은 거의 한풀이에 가까운 것이라서 무슨 행사나 사람들을 만나서 마시는 술이 아닌 그냥 부엌간에서 막소주를 마시고는 인사불성이 되어 소리소리 지르며 시작되는 한풀이의 뒤는 저고리끈을 질끈 머리에 동여 매고는 아래칸에 모로하여 누워버리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면 아들은 다 자신의 출생으로 모친의 인생이 꼬여버린 것같은 그런 태생적 자학감이 체화된 듯한 몸놀림으로 부엌에서 솥으로 라면을 끓이는 것을 석근이는 한번 언뜻 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끓인 라면으로 사나흘 먹고나면 다음에 올 진수성찬이 조금도 기다려지지 않게 되고 그러면 이 하숙집을 떠날 때가 된 것이 불문율로 굳어진 그런 하숙집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60년대 하숙집은 그야말로 어떤 집에 식객으로 들어서 그 집안의 한 멤버가 되는 하숙이었다면 70년대는 이제 선택의 하숙집, 취사선택의 하숙집으로 하숙집이 인식되는 시절이었다. 가수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의 가사에 나오는 그런 하숙생은 아마 60년대의 하숙생이었을 것이다. 사람 모두는 이 지구에 잠깐 식객으로 기거하는 하숙생에 불과한 존재이지만 70년대의 하숙집은 그런 스타일의 하숙집이었고 아직 고시원이나 원룸이 등장하지 않은 하숙집의 풍경은 바로 70년대에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저 군대에 가도, 서울 하숙집에 가도 밥을 많이 주더냐는 그런 질문들이 이제 사라지고 어떤 서비스가 나오느냐하는 질적인 질문으로 넘어가는 그런 시대가 바로 70년대였다. 양적 팽창과 함께 질적 성장도 함께 이루어진 이 시대는 그러나 빨리 성장하는 통에 우리들 본연의 모습까지 바꾼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나중에 일게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먹거리에 골몰했던 세월을 보내자마자 우리는 좀더 멋진 무언가를 염원했고 여지껏의 가난의 멍에를 애써 지우려는 듯이 더 크고 더 좋고 더 화려한 무언가를 추구하며 내세우기 시작한다. 그래서 파이는 크게 키워놓고 본다는 성장제일주의 신화가 곳곳에서 탄생하고 월남전쟁에서 벌은 외화획득의 노하우를 이제 중동의 열사 사막에서 건설업으로 빵을 키우고 영남지역을 중심으로한 중공업 단지 건설로 성장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바로 그 시점의 서울 어느 하숙촌에서 대학 시절을 보내는 석근이는 주위의 그런 용솟음치는 변화는 일체 모른채 아직도 갓 고교를 졸업한 애송이로서 서울 생활을 불편하게 적응해 나가는 중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직도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때와 지금의 대학 시절, 그러니까 60년대와 70년대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 석근이는 하숙이라면 아직도 눈치밥을 먹는 그런 시절이라는 생각과 하숙집도 이제 경쟁시대에 들어갔다는 현실감의 괴리에서 어리둥절한 상태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유복자 아들이 아무말없이 끓여내어 놓은 라면이라도 그저 미안한 생각에서 얼른 먹고 학교로 달려나가는 그런 학생이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학생, 밥 안먹고 무슨 생각을...&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숙집을 옮겨볼까하는 궁리를 들킨 것같아 깜짝 놀라며 석근이는 앞에 놓인 밥상으로 돌아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닙니더. 잠깐...&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내가 미안타. 내 한이 깊어 나도 모르는 중에 소주 마시는 버릇이 들어서..어린 학생들에게 추한 모습 보이기도 싫은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숙집 아주머니는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그 한풀이에 대한 미안함을 하숙생인 석근이에게 털어 놓는다. 나머지 하숙생들도 다들 알고 있었지만 관심없다는 듯 밥만 꾸역꾸역 입에 넣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50.&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대학 캠퍼스를 한번 돌아보며 허억은 과연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며 이런 암담한 시대에 자신이 이곳에서 세월을 보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 반면, 자신은 무슨 소영웅주의에서 이런 사회개혁에 대한 열망이랄까 그런 것을 품게 되었을까하는 생각과 이쯤에서 포기하고 자신도 취업공부나 할까하는 현실주의적인 생각도 들었다.&lt;/P&gt;
&lt;P&gt;이제 추석을 지난 캠퍼스의 색깔은 연노란색으로 바뀌고 있었고 대운동장에는 추석연휴로 인근동네의 조무래기들이 들어와 연을 날리고 딱지치기를 하는 등 요란스레 놀고 있었다. 철권통치란 말이 무색하게 야당의 정치활동도 소리소문없이 탄압하는 유신의 시절에 젊은 청년이 한 세상 바꾸겠다는 포부를 지닌 것이 참으로 무색하게 생각되는 것이었다.&lt;/P&gt;
&lt;P&gt;하지만 아무리 먹고사는 경체부흥의 길이 우선이라고 해도 사람은 공평하게 대우받으며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그런 사회를 꿈꾸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자신만 이렇게 불공평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차별의식이 두드러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 그 생각.&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부질없는 생각이라고 자처했지만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떨쳐내려해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캠퍼스의 단풍색은 이미 허억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상념만 가지고 사는 자신이야말로 냉전체제의 떨거지가 아닌가하는 회의도 들었지만 국민들의 눈과 귀는 이미 틀어막혔고 정치활동은 자신의 아버지가 설친 그 시대, 바로 해방전후의 그 시대보다 뒷걸음질치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유신이라니...무슨 일본놈들의 메이지유신이라도 한단 말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젊은 지성인의 고뇌라고 손가락질해도 좋지만 허억은 아무리 생각해도 암담한 현실을 그냥 그대로 가져가기란 어렵다고 생각했다. 군사작전처럼 전개되는 경제개발계획은 수시로 차수를 거듭하며 채찍을 가하고 있었지만 과연 그 발전모델이 어디로 향하는지, 이제 좀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 북한보다 훨씬 잘 살 수 있다는 그 논리만이 만능의 척도인지 정권을 잡은 사람은 지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허억의 견해로는 그 지도의 종착역이 미지수로 보이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혼자서 가만히 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스탠드에 앉았다. 시멘트 스탠드의 찬기운이 이내 엉덩이에 전해오는 걸 보아 머지않아 첫눈이 시작되는 겨울로 접어들 기세이다. 세월은 속절없이 흐른다지만 허억의 머리속의 이념전개는 조금도 흐르지 못하고 정체된 느낌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싸우는 남편보다 말리는 시어미가 더 밉다.'란 말처럼 섣부른 아이들의 한국의 독재정권이 미워 북쪽의 그 말도 되지 않는 체제에게 정통성이 있다는 얼토당토않는 짓거리로 지하로 숨어서 무슨 일제시대 항일 투쟁의 흉내는 혼자서 다 내는 그런 어설픈 짓을 하고 있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암담해지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아버지, 아버지가 바라던 세상이 이런 것이었나요? 이 세상 얻으려고 그렇게 찬바람 쐬며 아시아 전역을 나그네처럼 떠돌았나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머니와 단 둘을 남기고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시대를 바꾸려는 그 나약한 인텔리겐챠의 전형을 보인 아버지를 자신도 그대로 닮지 않았나하는 암울한 생각이 들었다.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입에 물고 붙였다. 담배연기는 습기가 없는 늦가을 공기를 닿아 새파랗게 타고 올라 공중으로 흩어졌다. 맛도 없었다. 적당한 온습도가 있어야 담배맛도 좋은 법이다. 이렇게 바삭 매마른 공기는 신선한 느낌을 주지만 실외에서 피우는 담배는 연기도 잘 보이지 않고 빠는 맛도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긴 겨울이 오면 나는 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며 그 준비를 누구를 위한 준비가 될 것인가? 나를 위한, 아니면 못다이룬 이상향의 꿈을 가지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아니면 군사정권하의 암울한 국민을 위해?&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차피 답이 없는 공상을 이어가다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껐다. 마치 자신의 어설픈 생각을 비벼서 꺼버리듯. 머리를 들어 멀리 석양빛이 물든 운동장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뭇 사람들이 겪는 사소한 일상이 왜 자신에게는 언제나 이념적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모른다. 태생적 반체제주의자의 피를 이어받아서인지 아니면 어릴 적부터 원만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개인적인 한을 사회적 불평등에 투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 허억은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그런 불만적인 시각을 타당하게 피력할 그런 시공간을 찾지 못한다는데 우리나라의 정치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노모를 편케 모시며 남은 학업에 더 매진할 도리밖에는 자신에게 남겨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시 바람이 불더니 운동장에는 여남은 꼬맹이들도 사라지고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다. 이제 추워질 모양이다. 따뜻한 가정이 더욱 그리운 그런 계절이 돌아왔지만 언제나 혼자 남은 몸으로 아들의 무사귀환만을 기다리는 노모만 있을 뿐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밖으로 나도는 남편을 기다리다 늙은 어머니는 나이들어서는 단 하나 남은 아들의 무사일생만을 기다리는 그런 상황에 놓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마 사람에겐 숙명이란 것이 있나보다. 자신도 어릴 적에는 그렇게 뜬금없이 나도는 정치적 이상주의자인 아버지를 그렇게 싫어했지만 나이들어감에 비슷해지는 자신을 둘러보고는 놀랄 때가 있다. 피는 물보다 분명 진하며 그 피는 이어지는 모양이고 그것 또한 업(業)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학교 앞의 소주집이라도 들러서 늦가을의 으스스한 몸을 좀 녹여볼 심산으로 아제 아무도 없는 학교 정문을 향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학생, 오랫만이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식당 겸 소주집 아주머니는 단골 손님인 억을 아는체 한다. 저녁무렵이라 소주집은 학생들로 붐비는 편이었다. 이른바 뜨근한 국물이 그리워지는 늦가을이 왔으니 삼삼오오 무리지어 술국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날씨가 싸늘해졌어요. 오뎅국물하고 소주 한병 주세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리에 앉으려니 옆좌석의 일행중 어느 여학생이 아는 척을 한다. &quot;허억, 선배 혼자서 술맛이 나요? 우리 함께 해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얼른 고개를 돌리니 서클 후배인 말숙이가 여럿 어울려 술을 마시다 아는 척을 하는 것이었다. 내심 적적하기도 했고 혼자만의 상념에 너무 빠져 있는 것도 좋은 것이 없어 나머지를 쳐다 보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안경낀 범생이 타입의 남학생과 여학생 셋이 여럿 안주를 앞에 놓고 술을 마시다 쳐다본다. &quot;혼자가 옮기는 것이 수월하겠지.&quot;란 말을 붙이며 억이 술병을 들고 그 좌석으로 다가가니 얼굴이 발그레한 신입생 여학생처럼 보이는 여학생들이 흠칫 놀라며 좌석을 내어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미안합니다. 초면에. 말숙이 선배인 허억입니다. 함께 마셔도 되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늙다리 선배가 다가오며 말을 거는 것조차 처음인 여학생들과 병욱이는 돌발상황에 그저 벙벙한 표정이었지만 말숙이만 병욱이의 지리한 학구적인 논리전개에 식상한 터라 반갑게 술잔을 준비하며 부산을 떤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애, 네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야. 행동하는 양심, 행동하는 지성인.&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말숙아, 사람 앞에 놓고 농담하는 것 아냐.. 무슨 행동?&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자리는 마련되어 이제 새내기 신입생들과 복학생인 병욱, 그리고 휴학과 학생운동을 번갈아 하다가 거의 10년을 넘게 학생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아저씨뻘 학생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병욱이는 그래도 예비역 학생이라 고참인 척하다가 때아닌 이상한 신분의 선배뻘을 만난 격이라 내심 호기심도 들었다. 무언가 말숙이가 그리도 존경하는 지하 서클의 대장격인 그런 운동권 골수분자를 만난 것 같아 경쟁심도 발동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사회학과 이 병욱입니다. 잘 부탁합니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부탁까지 할 것 있나. 다 자기 몸하나 추스리지 못하는 세월인데... 대학다니느라 수고 많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허름한 목소리의 허억은 무슨 이념 서클의 대장이라기보다 그냥 하숙집에서 몇년간 고시공부만 파는 그런 늙다리 학생과 같은 분위기였다. 이런 사람에게서 무슨 투쟁성이 있으랴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만 느껴오는 것이 일반 학생과는 분명 다른 것이 있어 보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허억은 말해놓고 보니 자신이 무슨 이 학교 총장이나 되는 듯한 말투라서 부끄러웠다. 이렇게 후배들과 있으면 자신은 괜히 부끄러워지고 초라해지는 듯한 감이 드는 것 또한 자신이 지닌 태생적 컴플렉스가 아닌 듯 싶었다. 남들은 내숭떤다 괜히 젠척한다 아니면 겸손한 투쟁가라 칭송하는 듯한 말을 하기도 하지만 진정 자신은 이렇게 무엇 모르는 아이들과 같은 학생을 만나면 수줍어지는 것이었다. 이들을 자신의 개혁의지를 실천케하는 선발대로 만든다는 것이 무슨 죄라도 짓는 기분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과연 그럴 자격이 있으며 이 아이들의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다만 낭만적인 생각만으로 이들에게 사회비판의식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심히 괴로웠다. 자신은 어차피 아비로부터 이어온 피의 숙명이라고 쳐도 이들 아이에게 군부정권에 대항하여 정치적인 자유까지 이끌어내는 그런 막대한 책임을 지운단 말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허 선배, 무슨 생각을 그리 해요? 우리 술집에선 술만 마셔요. 그런 다음에 허선배 자취방이라도 가서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말숙이가 운을 떼어서야 억은 술을 급히 입에 털어넣고 잔을 병욱이에게 건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51.&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최씨는 이제야 그 동네를 떠나서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천형이라 여겼던 결핵도 세상이 좋아져 말끔하게 나았지만 그 동네에선 언제나 폐병장이란 오명을 달고 다닌 마당에 보상이라고 몇푼받고 말많은 그 동네를 떠날 수 있어 되려 마음이 편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여태 그곳을 떠난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조용한 동네가 시끄러워진 것도 알고 실익도 없는데 그런 소란의 중심에 자신이 있고픈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만 장쇠를 중심으로한 의견이 있어 동참한 것 뿐이었는데 처음부터 역부족이나 아니면 중과부적으로 여기고 있었다. 대세가 개발중심으로 전개되는 마당에 자신의 집이 알박기로 그 개발예정지의 방해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어릴 적부터 살고온 그 터가 그토록 개발의 장애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기막혔을 따름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최의원이 다행이 보상금으로 녹록치 않게 내어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쫓겨났다...'란 자괴감마저 지울 수는 없었다. 월남전 초기에 참전하여 입은 상처로 상이군인이 되었고 그 이후에는 결핵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마당에 느지막에는 살던 집조차 민간개발업자들의 득살로 내어주어야 되다니 언제나 쫓겨나는 그런 피해의식에서 최씨는 자유롭지 못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회의 소외계층으로 낙인찍히면 우리 사회에서는 좀처럼 그 꼬리표를 뗄 수 없는데 이제 살던 고향에서조차 내몰린 판이니 차라리 시원함을 느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간살이 몽땅 고물상에게 넘긴 날, 최씨는 바닷가에 혼자 밤늦게 나와서 좌판 횟집에서 가져온 아나고회를 안주삼아 소주를 내리 두병이나 마셨다. 혼자서 마시는 술은 더욱 취하는 법이라 홀로 두어병을 마신 것은 어울려 마시는 술 서너병 꼴이었다. 그리고는 울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피지않는 집안이야 내력이라 쳐도 좀처럼 피지 않는 자신의 팔자가 서글퍼서 혼자 눈물짓기는 처음이었다. 중년의 나이로 이제 피붙이도 없이 어디론가 낯설은 곳으로 떠나야되는 자신의 팔자가 너무 외롭고 앞으로의 남은 생에서 겪어야 할 그 고독이 눈에 보이는 것같아 그토록 보아왔던 송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울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장쇠 녀석도 노모를 홀로 남겨두고 어디론가 외항선을 타고 돈벌러 나간다는데...'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신은 이제 나이가 들어 중동건설현장이나 외항선 선원으로도 나갈 팔자가 되지 못한다. 개발의 광풍에서 철저히 소외되는 그 부류의 첫 시범케이스가 자신인 것 같았다. 차라리 이참에 멀리 서울이나 올라 가볼까하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과거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사나이가 중년에 다시 과거를 지우는 낯선 길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왔다. 인생에는 더러 분수령이 될 만한 일이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러기에 인생은 알수없는 여정인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폐병장이 최씨는 이제 여지껏 살아온 인생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그런 순간을 맞아 이제는 두번 사는 그런 다른 인생을 살아보려는 의지를 타의에 의해 가지게 된 것을 감사히 여기고 마지막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곧장 버스 종점으로 나가서 부산역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밤이라서 종점에서 출발하는 버스에는 사람하나 없었다. 피곤에 찌든 마지막 버스노선의 늙다리 기사만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마지막 배차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종점에서 머리하나만 내어밀면 보이는 자신이 살던 집터를 바라보았다. 저 터에서 수많은 시간과 고뇌가 있었나 싶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시 고개를 돌려고 자신도 어느덧 배차시간을 쳐다보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만추의 늦은 밤은 깊어갔고 행선지를 모르는 밤열차가 자신을 실어가려고 부산역에 대기하고 있을 터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라디오에서는 내장산의 단풍관광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느덧 전라도의 내장산이 가을에는 빠질 수 없는 명소로 다가와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조금 눈을 달리 돌려 어떻하면 인생을 즐기는가하는 레저에 관심을 기울이는 그런 세월이 왔나보다. 떠나는 고향에서 누군가에게는 작별을 남겨야하는데 그런 사람 한사람 생각나지 않는다는데 최씨의 비극이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들 접촉해서는 안될 사람, 즉 불가촉(不可觸) 천민(賤民)이 다름아닌 자신이 아니겠는가. 심은대로 거둔다고 다 인과응보의 업이라 생각하며 최씨는 그간 살아왔던 동네를 마지막 버스가 종점을 벗어날 때 마지막이 될거라는 심정으로 찬찬히 살펴보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살면서 그렇게 무덤덤한 동네가 마지막으로 떠날 땐 전혀 낯선 동네처럼 보이는 것도 또한 이상했다. 다른 동네와 같은 낯선 느낌!&amp;nbsp; '아..이렇게 낯선 동네에서 나만 홀로 낯설게 살았나보다...'하는 만시지탄의 자괴감이 엄습했다. 이미 눈물같은 감정이 남아있을 나이는 훨씬 지난터라 다만 가슴만 먹먹해져 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버스가 송도윗길로 힘겹게 올라가서야 아랫마을, 자신이 태어나 오십년을 넘게 산 그 동네가 송두리째 눈아래로 펼쳐졌다. 아버지는 어부로 일평생을 마쳤지만 어차피 백사장을 낀 해안이라 일제시대에 이미 어촌이라기보다 유원지로 인식되던 그런 동네였다. 소나무 송(松)자가 이름으로 남았지만 이미 70년대에 들어서자 그 이름난 소나무는 누가 베어가는지 듬성듬성 보일 뿐, 소나무 숲이 우거진 그런 송도는 이미 아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시 버스는 송도윗길의 중턱에 들어섰고 밤늦은 시각에도 무언가 할일이 있는 사람 여남은명이 그 버스에 올라있었다. 아마 밤늦은 시각에도 자갈치 어시장에는 밤일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월남전의 훈장 아닌 훈장으로 국가보훈처에서 나오는 얼마되지 않은 연금으로 그간 버틴 것이 일견 대견했다. 단 한명의 입이라도 50평생이 넘게 건사해준 그 동네를 이제야 밤늦게 떠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버스가 남부민동 초등학교를 지나서야 자신이 살던 동네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후련한 해방감이 느껴졌고 버스가 공창(公娼) 지역인 완월동을 지날때는 밤늦은 시간이 오히려 더 빛나는 밤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수많은 밤의 공주들이 오늘밤에도 하루동안의 서방을 찾느라 불을 밝히고 있었고 허기진 수컷들은 각양각색의 이유를 가지고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와서 하룻밤 품을 색시감을 찾느라 물밑작업이 요란한 시간이 전개되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제시대부터 청루(靑樓)였던 그 지역은 아직도 전쟁의 상흔에서도 부산 뱃사람들의 마지막 배출구 역할을 끈질기게 하고 있었고 바야흐로 해외로 나가는 사람,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그곳도 더욱 활성화되는 그런 시대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휘황찬란한 밤의 세계가 펼쳐지는 그 완월동언덕을 빠져나가서야 버스는 곧장 자갈치 남포동을 거쳐 중앙동으로 나아갔고 이내 부산역 간판이 밤에도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국토의 끝자락인 항구도시 부산에서 기차를 타면 어떤 기차이든 북상을 하게 마련이라. 그 언젠가는 신의주까지 만주까지 이어졌겠지만 이제는 기껏해야 400킬로남짓한 서울이 북상의 종점이기 마련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다면 내가 갈곳은? 남쪽 바다의 끝에서 자리잡지 못하는 사람이 어딘들 가지 못하랴. 두발달린 짐승이 어딘들 가지 못하랴. 남의 끝에서 탔으니 당연히 북의 끝에서 내리리라. &lt;/P&gt;
&lt;P&gt;평일의 밤 마지막 열차의 표는 남아돌고 있었다. 가까운 벤치에 앉아 열차 시각표를 찬찬히 읽었다. 처음엔 기차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한 적이 너무나도 오래되어 그 시각표의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다. 보고 또 들여다보니 어렴풋이 어떤 모양이 떠오른다. 하나는 요금을 나타내고 또 하나는 출발시각을 나타내는 모양이었다. 한글로 표기된 지역이름은 출발지나 도착지를 나타내는 것이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나는 홀로 서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열차부터 타는 법을 알아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뚫어지라 그 판을 보고 있으려니 무언가 알 것도 같았다. '그래, 그런 거야. 처음부터 아는 법은 없지. 다만 익숙치 않아 시간이 더 걸리고 불편할 따름이지 인간이 사는 세상은 어딘들 다 같은거야. 군생활에서 그 낯선 남십자성의 나라 월남에서 전쟁도 치룬 내가 아닌가...'하는 엉뚱한 자신감도 들어 자신도 흠칫 놀랐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개구리가 우물안에서 나오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최씨는 부산역과 자신이 어떤 인연으로 관련성을 가지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느닷없이 무계획적으로 이 열차역과의 조우를 어떻게 해석해야는지 난감한 만큼 그 어색함을 풀려는 첫시도가 열차출발시각표와 요금표를 읽어내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담배를 하나 꺼내어 피워 물며 다시 그 시각표를 쳐다보았다. 어떤 한 시각대의 열차편이 점점 압축되어 왔다. 지금의 시각과 그리 큰 편차를 가지지 않고 도착지가 부산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그 열차편 한편에 시선이 차츰 모아지고 있었다. 정리하면 '가장 가까운 시간내로 가장 멀리 가는 열차편' 그것이 지금의 최씨가 찾는 열차편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49-51)&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49-51)&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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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46-4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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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속사프레서</name>
	    </author>
	    <updated>2009-09-30T00:06:01Z</updated>
	    <published>2009-09-30T00:06:0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46.&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lt;BR&gt;한창 젊은 청춘이라 비록 가께우동과 유부초밥을 먹고 나이트에 들어갔지만 밤새 마른 오징어류의 안주와 맥주만 들이키고 난 속은 새벽이 되자 허기져 왔다. 영필이는 아직도 표정변화없이 자신을 따라오는 성미란 아가씨가 조금 묘하다란 느낌은 받았지만 의례 저런 류의 논다리 여대생은 머리속에 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lt;/P&gt;
&lt;P&gt;새벽참을 먹고나서도 미기적거리면 어디 여관에나 데리고 들어가서 피로나 풀겸 한탕 즐기면 그만이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디서 밤을 새며 보냈는지 수많은 청춘들이 이미 그 오래된 국밥집에서 새벽 해장술과 함께 선지해장국을 먹고 있었다. 파전과 부추전을 잘 부쳐내어 소문난 그 집은 새벽에는 부침개를 팔지 않고 24시간 해장국을 파는 특이한 집이었다. 소문은 전통을 만들고 독재하의 엄한 세월이었지만 새벽의 열기는 그 집안에서는 특이한 상황이 아닌 언제나 있어온 그런 상황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막 야경꾼들이 철수한 새벽녘의 거리를 어디선가 몰려든 많은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이 해장국 한그릇과 깍두기로 속을 달래고 있었다. 영필이도 성미를 이끌고 좁디좁은 나무계단을 올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엔 그래도 여유 좌석이 남아있었다. 얼른 해장국 두그릇과 소주 한병을 시켰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안 피곤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별로.&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무슨 계집애가 감정이 없는 로봇처럼 짤막짤막하게만 대답한다. 맨정신이라면 어디 데려가서 귀싸대기라도 한대 쳐올려야 정신이 화다닥 나려나부다. 하지만 데리고 살 년도 아닌데 싶어서 그냥 눈감아 준다. 하룻밤 인연도 인연인데 얜 당최 붙임성이 없나 보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가정교육이 잘못되어서인지, 아니 가정교육이 잘되었다면 통금을 어겨가며 밤새 나이트에서 생면부지의 젊은 남학생과 춤추며 보내진 않을터였다. 하나마나 한 생각이라며 혼자 피식 웃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웬 웃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정말 지치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 눈이 아직도 밝아서 혼자 살짝 웃는 웃음을 감지하는 걸 보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니..아니 그냥 우스워서..&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내 해장국이 날라져 왔고 머쓱한 대화보다는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 둘은 바쁘게 숟가락을 움직였다. 언제 먹어도 얼큰하면서도 밤사이 피곤이 싹 가시는 듯한 이집 해장국은 일품이었다. 특히 밤새 술마시며 진을 뺀다음날의 해장국이란 술꾼들에겐 절대로 잊지 못하는 코스가 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특히 독한 소주라도 마신 날이면 아침이면 저절로 생각나는 것이 이집 선지해장국이었다. 선지는 더 달라는 대로 국물과 함께 채워주는 덤이 있어 영필이와 같은 한창 먹는 나이의 젊은이에게는 그저 그만인 집이었다. 다만 명동에 위치하여 자주 갈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태원쪽에서 밤을 지샌 날이면 의례 이집을 찾는 것이 고정되어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밥을 말은 해장국을 게눈감추듯 먹고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직도 반그릇을 못 비우는 앞에 앉은 아가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quot;해장국같은 것 안좋아하나 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별로..&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별로 좋아한다는 말이야 아님 안 좋아한단 말이야. 밤새워 같이 있어도 뜻이 잘 안통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분히 신경질적인 어투로 대꾸했지만 성미란 이름의 이 아가씨는 여전히 무표정이다. 영필은 속으로 부아가 났다. '그래 너까짓 거 떨어져도 그만이다 이제부터 막 대할테니 각오 좀 해봐' 이렇게 생각하며 담배를 비벼 껐다. 숙녀가 아직 식사를 마치지 않았는데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 자체가 아무리 남존여비의 사상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좀 무례한 행동이었는데 이 아가씬 도대체 별로 반응이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우리 아직 버스도 잘 다니지 않은데 어디서 눈이라도 잠깐 붙일까.&quot; 아니면 말고식으로 툭 던진 말에 냉큼 대답이 돌아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럴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대체 이 아가씬 집이 어디며 무얼하는 집구석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영필이가 날라리로 노는 학생이래두 이런 아가씬 처음이다. 아직도 군사정권하의 엄하디 엄한 통금이 있는 시대인데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만, 날밤을 새우며 함께 술먹고 춤추다 새벽녘에 잠시 눈을 붙이자는 노골적인 유혹에 냉큼 승락을 하는 이 아가씨는 어떻게 만들어진 인간이란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단 근처 가까운 여관 골목에 접어들었다. 아직 동이 틀려면 두어시간은 기다려야 되니 어차피 어디에선가 눈을 붙여야만 했다. 다만 이 두 청춘이 만난 것은 불과 일주일 전이었고 지금이 두번째로 서로 밤을 새운 그런 인연이 전부였다. 하지만 어차피 모르는 남녀가 만나는 것이 남녀의 만남이니 그리 까다롭게 살필 이유도 없었건만 아직도 유신체제하의 딱딱한 사회에선 무언가 모를 엄격한 잣대가 언제나 적용하고 있었다. 사회의 전반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필은 접수대의 할아범에게 키를 받아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어차피 따라 나선 판이니 구슬리고 할 필요도 없었지만 내심으론 이 성미란 아이가 어디까지 나오나 싶은 궁금증도 있었다. 자기를 언제 만났다고 언뜻 여관까지 따라나서는 겁없는 이 여자는 과연 백치인가 아니면 닳고 닳은 걸레와 같은 여자인가 가늠할 수가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쨌든 방에 들어가서는 무언가 판가름이 나겠지하는 생각과 남자인 자신으로선 손해볼 것이 없는 장사라는 배짱이 있었다. 손해가 있으면 여자가 손해보지 남녀가 여관방에 들러서 딴짓거리를 한들 남자야 무슨 손해냐하는 그런 배짱을 부리는 것이었다. 아니 이렇게 헤픈 여자가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난봉꾼 선배들에게 듣기는 들었지만 제 아무리 거센 여자라도 여자임에는 틀림없으니 그런 잔걱정은 무시하기로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게다가 해장으로 마신 소주 한병이 힘을 더욱 실어 주어 영필이는 까짓거 계집애가 어떤 성향이면 어떠리 그냥 품어서 순종하면 그만이다라는 숫컷의 본능을 믿기로 했다. 달라붙는 여자애 떼는 방법은 선배로부터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성미같은 똘아이류의 여자아이가 그런 춘향이 계열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많은 비법(?)들을 알고 있으니 걱정은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성미도 이층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런 새벽녘에 별로이 갈 곳이 없을테고 지난 밤에 그냥 날밤을 샌 것도 아니고 하드락이 울리는 나이트에서 땀께나 흘렸었고 얼큰한 해장국도 먹었으니 졸립기도 할 터였다. 그래 이 오빠가 잘 도닥거려 재워주마하며 또 한번 피식 웃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담배냄새에 찌든 여관 특유의 냄새가 났다. 깨끗한 호텔이 아닌 마당에 그런 냄새따위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냥 작업을 개시하고 얼른 눈을 좀 붙이고 나서 오후에 시작되는 전공 필수 시간에 맞추어 어슬렁거리며 등교하면 그만이었다.&lt;/P&gt;
&lt;P&gt;먼저 화장실에 들러 고양이 세수만 조금하는 시늉을 하고 타올로 얼굴을 닦으며 나와보니 성미는 방한켠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뭐해 잠자러 왔음 이불이나 펴 놓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주 서방님이 새댁에게 말하듯 하며 다가가니 그제서야 느린 동작으로 일어나더니 세면실로 들어간다. 세면실에서 이빨딲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 세수하는 소리까지 났다. 영필은 자신이 이부자리를 펴면서 얼른 누워서 성미가 나오길 기다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면실 문이 열리며 성미가 나왔다. 영필이는 혼자 누운채 담배를 피우다가 성미에게 이불에 들어오라고 했다. 아무말 없이 성미는 여관방 문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quot;뭐해, 이리루 와...&quot; 조금은 느끼한 어투로 이렇게 말했지만 아예 대답이 없었다. 방에 들어오니 아예 벙어리 행세를 하는 지 모르겠다. 영필은 혼자 자려도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성미와 무언가를 남겨둔 사람처럼 조바심이 났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이리 오래두!&quot; 이불을 박차며 일어나 성미곁으로 다가갔지만 성미는 미동도 없었다. 얼레레 이 여자 이렇게 여관방에서 쭈그리고 잘 셈인가. 그렇다면 왜 여관에는 따라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영필은 성미의 손을 찾아 잡고 끌었다. 성미는 용을 쓰며 거절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아예 완력으로 밀어버려?' 이런 생각이 들자 영필은 쪼그리고 앉은 모습 그대로 두팔로 들어서 이부자리 녘으로 던져버렸다. 오뚜기처럼 발딱 일어나더니 이부자리 옆켠에 같은 자세로 쪼그리고 앉는 성미였다. 포기하고 잘까부다 했다가 은근히 부아가 나서 한번 더 시도해보려고 다가가자 이제는 흠칫 놀라며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안 잘거야? 그렇담 왜 따라왔니?&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냥 쪽잠 좀 자다가 갈거야. 그러니 자긴 편할대로 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남녀가 여관에 들어와서 편할대로 하라니. 그래 편할대로 해줄께 하며 영필은 이성을 잃은 야수처럼 성미에게 달려들었다. 치마속으로 손을 쑥 들이밀어 팬티끈을 잡으니 성미는 요동을 치며 두손으로 팬티끈을 사수한다. 그렇다고 포기할 영필이가 아니었다. 이제는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었다. 재미는 커녕 사나이가 칼을 뺐으면 썩은 무우라도 베어야지 이게 뭐야 새벽녘에 여관방에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필은 이제 레슬링처럼 전개되는 상황이 우습기도 한심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성미란 아이가 참으로 요상했다. 여지껏의 경험으로는 못이기는 채 끌려오는 것이 관레려니 했지만 이렇게 완강한 저항은 처음 겪는 것이었고 움직이는 바늘귀에 실을 꿰지 못한다고 여자가 단김을 내쉬며 저항하는데야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마지막은 주먹을 쓰는 방법인데 영필은 그처럼 모질지는 못했다. 명색이 바람둥이라하더라도 자신은 신사적이라는 그런 자평을 하곤 했는데 이 마당에 주먹으로 얼굴을 쳐서까지 여자아이를 범할 잔인성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사실까지 알고 따라오지는 않았을 것인데 당최 이 성미란 여자아이는 수수께끼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단 구슬리기로 작전을 바꾸었다. &quot;성미야, 이름이 성미랬지. 이름대로 성미내지 말고 이 오빠 말 들어. 잠 좀 붙여야 학교를 가든, 직장을 가든 할 것 아냐...&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미는 잠깐 손을 놓은 틈을 타서 다시 요새화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영필은 그 옆에 딱 붙어 이제 머리결도 쓰다듬고 얼굴도 매만지며 페팅을 시도했다. 그러다 얼굴을 가까이대고 키스를 하려했지만 입술을 딱붙이고 있는 성미의 모습에 그만 질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에잇!&quot; 이런 기합과 동시에 유화책을 버리고 다시 강공으로 급선회하고는 왼쪽 팔을 성미의 뒷통수로 가져가서 성미의 왼쪽팔을 꽉 잡았다. 그리고 몸을 성미 몸에 붙이면 성미의 오른쪽 팔은 영필의 몸에 눌려져 결과적으로는 한손으로 두팔을 못쓰게 한 꼴이 된다. 그러면 남은 오른쪽 손으로 성미의 몸을 마음껏 유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야비한 몸동작도 놈팽이 선배들의 음담패설로 알게된 것인데 이것을 성미에게 처음으로 적용하는 것이었다. 효과는 놀라웠다. 오른손으로 성미의 브래지어를 뚫고 자그마한 유방을 움켜잡았다. 생각보다 유방은 작았다. 브라우스 단추를 오른손으로 다 끌러자 유방이 드러났다. 오른손으로 유두를 만지작거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미는 소리하나 내지않고 오직 힘으로만 저항하고 있었다. 영필도 이제는 이마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발이 문제였다. 발을 우당탕거리며 사력을 다하여 저항하는데 오른손만으로는 버둥거리는 발사이로 팬티를 벗기기가 어려웠다. 문을 차며 이부자리를 들추며 둘이서 레스링을 한참을 하는데 옆방에서 버럭 소리가 들려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어이, 그기 잠좀 자자! 잠 쪼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냉수를 끼얹는듯 그만 열기가 순식간에 사그러 듦과 동시에 영필은 한껏 성미를 노려보며 혼자서 이불로 들어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47.&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민화는 처음 들어간 대학생활이 만족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고교시절 그렇게 하고픈 것이 많았지만 모든 것을 대학입학 후로 미룬 것의 댓가를 톡톡하게 받는 것같아 하루 일과가 모자랐다. 엄마에겐 언제나 귀가 시간이 늦다고 야단맞았지만 그게 대수가 아니었다. 동생들과 함께 놀아주지 않는다고 엄마와 동생들은 함께 자신을 비난하지만 이제 대학생이 꼬맹이 동생들과 소꿉장난이나 할 것은 아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빠도 저녁식사는 가족과 함께 하라고 넌즈시 명령했지만 이제 맛보는 과외활동이라 써클 활동이 언제나 저녁시간을 뺐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중간고사라도 보면 집에 가서는 동생들이 올망졸망인데 어떻게 공부가 되냐고 핑계를 대며 아예 저녁은 밖에서 해결하는 것이 일반사가 되어 버린 나날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엄마와 가족들 모두 처음엔 퉁퉁거렸으나 이제 대학생이란 의례 그러는가부다하고 익숙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싶었다. 이제 가족만의 단위에 묶여 있었던 세월에서 다른 시대로 넘어간 것이다. 마치 애벌레가 탈피하고 부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듯 대학이란 장소와 낯선 사회생활에 그만 시간가는 줄 모르는 세월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암울한 세상이 되었다고 깊이 침잠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민화는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마음껏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체험하며 즐기고 있었다. 이제 세상도 많이 변하여 여자들이 참여하는 그런 세상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처럼 아이들과 남편에게 예속된 듯한 그런 인생은 별로 흥미가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딸만이 있어 언제나 부족한 듯한 표정인 아빠의 모습도 불만이었다. 이제 아들만 원하는 그런 사회는 후진적인 사회라고 민화는 믿었다. 능력과 경험만 있으면 남자 여자가 무슨 차이가 있으랴하는 마음으로 배우고 체득하며 인생을 개척할 뿐이라는 실용주의적인 생활철학만을 가질 뿐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그런 대학 일학년이 어느덧 여름방학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2학기 중간고사를 치를 즈음이면 캠퍼스 곳곳에서도 가을 느낌이 진하게 배이기 시작한다. 여름기운이 지난 주만하더라도 한낮이면 느껴졌는데 이제는 가을 햇살이 비치는 운동장 한가운데를 지나도 그렇게 햇살이 따갑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교문에서 인문대학 본부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민화는 버스에서 내려서 대학 정문까지 걸어오는 것만으로도 꽤 걸리는 시간이었는데 정문에서 찾아가는 강의실까지는 더욱 멀어 보였다. 그래도 이제 가을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캠퍼스가 있기에 기분은 여간 좋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이제 이번 학기만 마치면 후배를 보게 되니 이제 신입생으로서 느끼는 그런 설렘도 이 가을이 가면 끝날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플라타너스의 넓적한 잎사귀가 누렇게 변하여 떨어져 있었다. 인문대학 본부의 고색창연한 건물은 그 낙엽들과 잘 조화된 그런 건물이었다. 이런 면학분위기를 얻으려 그토록 치열하게 입시공부를 하였나 싶었다. 그리고 감사했다. 이 모든 것이. 아빠의 사업이 요즘 불안하여 집안 분위기가 이전같지는 않았지만 성실한 아빠이기에 어려운 사업여건을 잘 극복하리라 믿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신이 장녀인 관계로 책임감도 느끼지만 그래도 이제 갓 대학입학한 일학년생이고 보면 어른들의 세계는 아직 멀어보였다. 선배 언니들이 취업문을 두드린다며 이곳 저곳으로 이력서나 입사지원서를 넣는 것을 보면 자신에게는 관계없는 먼 훗날의 일로 보였지만 이 찬란한 가을이 두어번만 지나면 자신도 곧 그런 입장에 서게된다는 사실은 틀림없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도 오늘은 오직 이 가로수 낙엽을 밟으며 캠퍼스의 가을만을 즐기기로 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얘, 민화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병인이와 말숙이가 숨을 헐레벌떡 몰아쉬며 뒤따라 오고 있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같이가. 강의시간 남았는데 뭘 그리 서둘러.&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셋은 입학후 같은 과에서 단짝이 된 사이였다. 말숙이와는 학과 공부이외에 사회에 대한 관심이랄까 그런 여성운동과 같은 새로운 우먼파워를 느껴서 좋았고 병인이는 그야말로 현모양처의 표본이래서 좋았다. 셋은 제각각 같으면서도 다른 개성을 서로 어울리며 느끼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말숙이 너 병인이 사촌오빠랑 연애한다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놀리자 말숙이는 얼굴이 새하애지며 펄쩍 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렇게 뛸 것은 없구. 병인이 사촌오빠가 '레닌'이나 '트로츠키'같은 혁명아를 닮았다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또 한번 더 놀리니 뒤로 나자빠질듯한 표정으로 변한다. &quot;트로츠키이?&quot; 놀란 토끼눈을 하며 말숙이는 그런 소리는 난생 처음 들어본다는 표정이었다. 병인이 사촌 오빠라? 그 범생이 책벌레 병욱이가 레닌이나 트로츠키같은 사회혁명가란 말야? 이 세상에 수많은 놀람이 있다지만 자신의 이해 한계범위를 넘어간 그 농담에 숨이 막힐 듯한 웃음이 튀어나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개나 소나 혁명가네? 사회과학 책 한번 안읽는 청춘이 요즘에 있남? 그렇다고 다들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재목이란 말야...호호..옆에 병인이가 있어 이 정도 해준다. 너 민화 나중에 두고 보자, 응.&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병인이는 그래도 사촌오빠가 무어 그리 맹숭맹숭한 사람인가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래도 레닌이니 트로츠키같은 혁명아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어 심한 부정의 표현은 삼가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왜 그래, 너희들. 그래도 우리 오빠 이념적으로는 상당히 과격한 사람이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렇지. 이불속에서 만세부르는 타입이지.&quot; 말숙이가 시니컬하게 또 받으며 웃음을 참지 못한다. 셋은 인문학부 건물의 현관을 들어서며 서로 지냈던 일을 더 나누다가 강의실에서 나란히 뒤쪽 좌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과목은 교양과정부 국사시간이었다. 고교시절 내리 외웠던 그 국사를 대학에 입학하고도 또 배울 줄은 몰랐다.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 여겼는데 그래도 대학 국사시간은 고교때의 암기식 위주의 강의가 아닌 심층적인 실증사관적인 접근으로 강의하는 것이라 생소하고도 재미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근본적인 이유부터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교양학부의 국사시간은 그것으로 의미가 있었지만 워낙 객관식 위주의 암기로 이미 질려버린 이후라 국사라면 빾빽하게 연대별로 외우던 그 수많은 뜻모를 한자어만 머리에 떠올라 도리어 새론운 역사인식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오후시간이라 졸리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래도 민화는 졸지는 않고 강의에 집중하려 했다. 앞좌석의 남학생은 그저 강의 처음부터 꺼덕이더니 끝무렵에는 아주 기절한듯 움직임이 없었다. 캠퍼스에서도 가장 뒤쪽에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건물까지 점심먹고 난 후에 땀흘려 올라오면 마치 등산을 오른 기분이라 모노톤으로 음색에 전혀 변화가 없는 노교수의 강의는 바로 자장가로 들리기 십상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도 출석 점수를 채우려는 그 열의만으로도 가상한 그런 강의실 모습이었다.&lt;/P&gt;
&lt;P&gt;졸고 있는 남학생이 있는가 하면 여학생이지만 그래도 사회의식이 일찍 턴 말숙이와 같은 아이는 벌써 지하서클에서 우리나라가 왜 분단되었는지 그리고 왜 아직도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왜 한반도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지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정권연장인 이 유신체제란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독재체제를 우리는 언제까지 겪어야하는지 하는 우리사회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수업이 마치는 종이 울리자 앞좌석의 남학생은 거꾸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런 역사의식이나 사회의식이 없어보이는 새내기 일학년짜리 남학생들은 눈아래로 보이는 말숙이였다. 아직도 고교생 티가 나는 그런 남학생들을 보면 한심하기 찍이 없어 마치 자신이 그들의 누나라도 되는 것같은 안쓰러움이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강의실을 나오다보니 앞좌석의 그 남학생이 본부 건물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자식들, 그저 담배만 피우면 다 어른이 되는 줄 아는 모양이야.'이렇게 생각하며 측은한 듯 시선을 그 남학생에게 주고는 다시 병인이와 민화에게 말을 건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끝났네. 우리 병인이 사촌오빠 불러서 뭘 사달래서 얻어먹을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트로츠키가 돈이 있나 모르겠네?&quot; 민화가 여전히 우스개로 받으니 다시 말숙이가 농담으로 받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quot;그래도 트로츠키가 '로스께-러시아 사람을 비하하여 부르는 말'인데 얼마나 짠돌일까, 그렇지 병인아.&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공부벌레 사촌오빠를 둘이서 돌아가며 놀려먹는 것에 다소 기분은 상했지만 그래도 심성이 좋은 병인이라 내색은 하지 않았다. &quot;그래 아마 오빠도 휴강일거야, 내가 한번 연락해볼께. 하숙집에 있다면..함께 할 수 있을걸?&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학교앞의 분식집 겸 가벼운 안주거리를 파는 식당에서 셋은 병욱이를 기다렸다. 병욱이는 오후에 휴강이라 저녁을 먹고 도서관에 가려던 참에 하숙집에서 사촌누이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가까운 거리이니 지름길로 걸어서 지정된 장소까지 가는 것이 둘러가는 버스보다 빠른듯하여 걷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되바라진 말숙이를 또 보게 되는군하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점퍼를 서둘러 입고 하숙집을 나선다. 아주머니가 문앞에서 시장바구니를 들고 들어오는 걸 보고는 자신은 저녁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는 골목으로 사라졌다. 가을이라 참으로 걷기에도 좋은 날씨였다. 게다가 여대생 세명이나 자신을 기다린다니 이런 여복(女福)이 있을까하는 흐뭇한 생각까지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오늘에야 내가 여지껏 정리한 설(說)을 좀 풀려는 참이었다. 교과서라고 날 경멸해도 좋다. 언제나 사람은 교과서적으로 배우고 실천해야하는 것이지 다들 편법이나 속성법따위로 삶을, 사회를, 국가를 경영하려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병욱은 생각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게 교과서에 나오는 것을 경멸할 바에야 무엇하러 비싼 돈들여서 그 교과서를 배우려고 학교따위를 다니는 불편을 감수하는 것일까. 교과서가 있기에 기본이 있고 원칙이 있는 것이지 교과서가 없다면 전부다 제각각의 이론만으로 무장한 궤변론자(소피스트) 투성이의 사회가 되고 언뜻 들으면 흥이 나고 신이 나는 그런 약장수와 같은 입담좋은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독배를 들지언정 자신은 그 소피스트들 무리와는 다른 침묵하는 소크라테스류의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며 사는 병욱이로서는 섣부른 혁명사상에 고취된 그런 어리석은 무리들에게 언제나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밖에는 할 것이 없다고 여겼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교차로' 분식집에는 늦오후의 나른함이 있었다. 한가한 홀 구석에 세명의 여학생이 무언가를 이미 시켜놓고 열심히들 먹으며 떠들고 있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 트로츠키가 등장했다. 이 아가씨들아.' 병욱이도 자신을 트로츠키라고 놀린다는 말을 병인이에게 들어서 아는지라 이렇게 마음속으로 말하며 그 자리로 갔다. 처음 보는 아이도 있었다. 민화라고 병인이가 소개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불과 두살 많은 오빠라서 그냥 친구처럼 지내라. 나는 그런 고리타분한 '트로츠키'가 아니니...&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말하자, 그 말의 의미보다는 '트로츠키'란 별명을 자신이 알고 있구나 싶어 말숙이와 민화는 얼굴이 붉어지며 웃음이 돌았다. 그래도 대학 신입생에 불과한 여대생의 입에서 러시아혁명의 산파역인 트로츠키 혁명가의 이름이 오른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사회변혁이 필요한가를 나타내는 것 같아 병욱이는 새삼스러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왜 우리 대학생들이 철지난 그런 구식 혁명가의 이름이나 떠올리며 대학생활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그 소비에트 혁명이 그 사회에 무엇을 가져다 준 것인지. 다만 짜르 통치하의 제정러시아를 무너뜨렸지만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를 그 동토의 땅에 가져다 주었는지는 아직은 모를 따름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너희들 지금 저녁 먹고 있니? 아님 술을 먹는거니?&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오빠가 사주는대로.&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말숙이는 먼저 오빠라는 말에 힘을 주며 친숙함을 표시했다. 지난번 거칠게 몰아부친 미안함을 표시하려는 마음에서였다. 말숙이의 예상치 못한 호의에 병욱은 약간 어리둥절했지만 새로운 친구 민화도 있어 기분은 한껏 고조되었다. 평소에도 강의하고픈 생각이 많은 차라 이제 신입생 여대생 3명을 앞에둔 교수의 친절한 강의처럼 자신이 품고 배우는 그런 사회참여에 대한 지성인의 태도에 대하여 일장연설을 할 생각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디선가 꼼장어 굽는 냄새가 났다. 문득 예전에 한번 찾아간 부산 자갈치 시장의 꼼장어 구이가 생각났다. 이제 이 수도 서울에서도 그 꼼장어구이가 대학가 선술집에 등장한 모양이다. 바야흐로 전국은 일일 생활권이 된 모양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문득 식탁을 살피니 떡뽂기 접시와 만두, 그리고 김밥이 놓여져 있어 병욱이는 몇번 먹어보지 않은 꼼장어 구이를 주문하고 소주도 함께 주문했다. 그리고는 앞의 신입생들에게도 무슨 콜라와 같은 음료를 권할까하다가 그냥 맥주를 주문해 주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민화는 처음 먹어보는 맥주맛에 인상을 찡그렸지만 말숙이와 병인이는 이제 맥주정도는 가볍게 마시는 그런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술이 몇순 돌아가자 이내 오후도 깊어졌고 이른 저녁을 찾는 손님들도 들어왔다. 손님이래야 전부 이웃 하숙촌의 하숙생이랑 도서관에 드나드는 학생이 전부였다. 병욱이는 서너잔의 소주를 꼼장어 안주와 함께 마시고 먹고 나서야 취기가 올랐다. 이제 장광설을 풀려는데 말숙이가 먼저 말문을 연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트로츠키 오빤 그 많은 사회과학책 읽어 뭐해? 실천없는 지식이 무슨 소용이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실천할 때 하더라도 일단은 알고 있는게 낫지 않을까? 모든 학문이 전부 실용적인 목적만은 아니지. 그렇담 우리가 왜 기초학문이나 돈안되는 수학따위를 풀고 있을까. 사회과학이란 과학이란 단어는 붙였지만 사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지. 다만 학문의 접근법이 과학적이란 뜻이지 사회현상은 과학이 아니니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소 현학적으로 들려 민화는 어리둥절했지만 말숙이나 병인이는 이런 토론성 대화를 많이 가져본 느낌이 들었다. 전혀 낯선 세계, 즉 학교 강의실이 아닌 꼼장어 안주가 놓인 곳에서 젊은이의 토론이 벌어지는 이런 분위기야말로 민화가 바라는 그런 것이었다.&lt;/P&gt;
&lt;P&gt;병욱이는 한잔 더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사실 공부해서 뭐하냐는 말이 있지. 호의호식을 위한 공부라면 일찍 기술을 배워 돈벌이에 나서는 것이 더 빠를 지도 모르지. 부모 등골 빼내서 이런 학교앞에서 허황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런 대학생활이 과연 무슨 실용적이며 실천에 도움이 될까.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대학이 필요한 것인지도 몰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소 엉뚱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사실 인생에서 제일 허황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이 대학생활인지도 몰라. 누구는 암담한 정치상황에서 공부하면 무엇하냐면서 마치 투사가 된 듯이 바로 투쟁전선에 선열에 서겠다고 혈기를 부리지만 나는 생각이 달라. 겁쟁이래도 좋고 샌님이라고 불러도 좋아.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할애되어 있는 시절이 과연 인생에서 이 대학생활만큼 좋을 때가 있을까. 하긴 아직 졸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웃의 생활인들을 살펴보아도 엉터리 이론서라도 끼고 있을 때가 바로 이 대학생활이 아닌가 싶어.&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실천이나 생활은 자연히 하게 마련이라 먹는 중에 미안하지만 화장실에선 볼일만 보아야지 다른 일을 해선 곤란한 것 아냐? 그리고 식당에 나가면 먹어야지 화장실 일을 생각해선 안되듯 대학도 바로 학교란 점에선 중학교나 고교나 마찬가지이지. 그런데 4.19 혁명때의 대학생의 선도역할이 하나의 전통이 되어 마치 대학생이 의례 이 사회의 선두그룹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착각이 우리 대학사회에 팽배한 것 같아.&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난 그 점에서 분명 잘 못되어 있다고 봐. 4.19혁명이 일어나서 얻은 것은? 바로 지금의 현실밖에 더 있어. 무슨 차이야. 이승만 영감탱이의 독재나 지금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말하는 부분에서 병욱이는 언성을 낮추었다. 그땐 그러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48.&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장쇠는 한동안 배나 타려고 선원 브로커들을 만나고 다녔다. 자신이 동네를 지킨다는 명목도 이제 없어진 마당에 그 동네 어귀에서 어기적 거려보았자 사람 체신머리만 없어지는 법이었다. 한때는 애착을 가진 동네였지만 이제 이곳도 다들 무언가 변화를 일으켜서 기존에 살던 그런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탈바꿈하려는데 자신은 태어나서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변화가 없는 듯 해서 이제 대양으로 훌훌 털어버리고 살고 싶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남겨진 모친이 마음에 걸렸지만 결혼 적령기가 되어도 천하의 백수건달인 자신에게 시집올 여자는 없어보였다. 한때 귀련이를 마음에 둔 적도 있었지만 그 귀련이마저도 자신을 발샅에 때정도로 여기는 마당이라 이제는 태어난 동네를 한번 떠나보고 싶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더러 경험이 없어도 지원만 하면 중동건설 현장으로 취업이 가능하다는 말도 들었지만 어릴 적부터 바다를 보고 자란 장쇠로서는 열풍이 부는 사막에서의 작업보다는 오대양을 떠도는 원양어선이나 화물선같은데가 더 맞을 듯 싶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모친에게는 그런 뜻을 전했고 승낙도 받아놓았다. 거느린 처자도 없는 놈이기에 모친도 이곳에 있은들 아들 장쇠에게 맺어질 인연은 없어 보여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돈벌이도 해보는 것이 더 나아보였던 것이다. 이 동네에 있어 보았자 길거리 패싸움질에 말려들어 좋지 않은 소문만 달고 다니는 아들이 딱해 보였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번 그런 이름표가 붙으면 떼지 못하는 좁은 동네를 떠나서 이 세상 한번 달리 살아보는 것도 남아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야야.. 장쇠야. 장쇠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네, 어무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미는 장성한 아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허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편모슬하에 자라서 형제도 없는 놈을 별로이 공부까지 시키지 못한 마당에 그를 의탁하여 붙잡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릴 적부터 주먹이 세어 온갖 싸움판에서 명성을 날린 것까지는 좋은 데 그래도 깡패 조직에 들어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모친은 장쇠가 과부집 수캐처럼 도움도 되지 않는 여러곳에 불려가서 댓가도 없는 일에 동원되는 것보다 자신만의 일에, 그리고 주위에서 장쇠의 그런 인간적인 의리를 이용하지 않는 곳으로 가길 바라기도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이 어미가 마음이 쓰여 이번 기회를 놓치는 그런 실수는 하지 마래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만 말하며 높은 산꼭대기에 볕이 잘드는 어느 가을날 모친을 마당으로 쏟아지는 가을 햇살을 바라보았다. 그 햇살 너머로는 저 아래로 등대를 거쳐서 수많은 선박들이 오가는데 그중 하나에 장쇠가 타고 있을 것을 상상해 보았다. 그래도 태어나서 엄마곁을 내내 지켜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이제 어촌이나 농촌이나 부모를 모시며 농업이나 어업을 이어가는 그런 세월이 아님을 모친도 알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원양어선이나 중동사막의 건설현장으로 떠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판에 좁디좁은 동네에서 반실업상태로 늙어가는 아들의 생활에 어미로서 걸림돌이 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선원은 아무런 과거를 묻지도 않고 채용하는 세상이니 몸성한 장쇠라면 어디라도 들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듯이 한때 어린 장쇠를 데리고 남녘으로 난 바닷마을에서 보낸 한세월이 이제는 지났구나하는 생각이 깊어지자 아들 나이먹는 것만 알았지 자신이 이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 장쇠 모친은 원양어선을 타면 2-3년에 한번씩 들어온다는 사실을 생각하자 아득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마 자신은 장쇠가 바다에 나가 있을 동안에 혼자서 살다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죽는 것보다 더 서러운 것이 혈육이라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옆에 있지 않을 때 죽을까 그것이 더 두려웠다. 정든 마을을 떠난 것도 서러운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지구 어느편에 있을 지도 모르는 그 순간에 임종을 맞을까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람이 태어나서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의 구성원들과 함께 나이먹고 늙어가기도 어려운 세상이 된 모양이다. 장쇠 모친이 자랄 적만해도 대가족을 이루고 그저 논밭 아니면 어선을 부려서 먹고 사는 그런 사회였던 관계로 무슨 변동이 없는 한 가족이 태어나 집 테두리를 떠나는 일은 많지 않았는데 이제 세상에 사람들이 불어나자 그러한 작은 규모의 농어업으로는 다들 먹고 살기가 어려워진 모양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람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도 달라지고 있었고 심지어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환경마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장쇠모친은 자라난 해안마을의 정경이 눈에 박혀있듯이 변함이 없었는데 이제 이 산꼭대기 마을에 올라온 이후로는 아래를 바라보며 '아...저곳이 내가 자란 그 해안이었나?'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제하에 어린 세월을 보낸 장쇠 모친으로서는 작은 어촌에 불과한 그 해안마을이 이제는 어업은 커녕 작은 밭떼기도 보이지 않고 전부 주택으로 뒤덮였고 바다는 무슨 케이블카니 구름다리니 하는 유흥시설로 얼키고 설켜 자기가 자란 그 어촌 마을과 같은 분위기가 멀리 산위에서 보아도 들지가 않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월은 유수같이 흐른다더니...하는 한숨과 함께 아들의 작별이 시시각각 다가오매 장쇠모친은 어떡하든 장쇠가 한두어번은 원양어선을 타고 나가 목돈을 벌때까지는 살아있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번에 배를 탈 수 있을 지도 미지수이지만 이미 70줄을 넘긴 자신의 나이로 미루어 외아들의 장기외유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살 수 있는 여건이 점차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는 비단 장쇠모친의 경우만이 아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국전쟁으로 많은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산업화로 인한 공단건설과 중공업단지의 등장으로 많은 인력이 필요함에 따라 사람들은 이제야 가족보다는 직장에 더 의존하는 존재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가장 기본적인 가족구성인 모자가정의 전형인 장쇠가족만해도 이전같으면 두 식구가 그냥 동네언저리에서 허드렛 일이라도 도와서 살 수 있으련만 이제 이 두 구성원마저 헤어져야 하는 이별이 우리에게 산업화 근대화란 이름으로 다가왔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장쇠모친은 멀리 궤적을 그리며 나가는 배를 바라보며 그래서 이 산동네에 이사와서 언제나 장쇠가 타고 있는 배를 바라다 보라는 뜻인가하며 마음을 다스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바닷물의 색깔도 해안가에 살적엔 변화무쌍한 줄을 몰랐는데 오히려 이 산동네에 이사온 이후로는 계절마다 날씨마다 변하는 것이 바다색깔이란 것을 평생처음 알게 되었다. 우린 너무 가까이 있을 때에는 그 가까운 존재를 알지 못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46-48)&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46-48)&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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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43-4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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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속사프레서</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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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24T06:53:07Z</updated>
	    <published>2009-09-24T06:53:0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43.&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lt;BR&gt;식모 귀련이라고 사람들은 말을 하였지만 귀련이 자신은 한번도 자신이 식모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이 집 마나님은 좀 둔한 것인지 아니면 어진 것인지 당최 싫은 말을 하지 않는 성품이었고 귀련이가 이집에 온 이후로도 귀련이를 부엌데기 취급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성식이 도련님도 점잖치 최의원나리야 바깥일이 바빠서 당최 집의 가장인지 아니면 손님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사람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만 성애가 좀 성가시게 할 적은 있지만 나이도 연하인데다 어릴 적부터 자신을 언니라 부른 덕인지 자신을 하인으로 보고 막 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릴 적부터 성식이 친구로 함께 붙어 다닌 장쇠만이 자신을 식모 취급하여 주인과 하인으로서의 구분의식을 은연중에 심어주려 하는 것 같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신의 등급을 억지로 낮추어 자기와 비슷한 등급으로 만들려는 동류의식이랄까, 아니면 일찍 집을 떠나 남의 집살이하는 자신에게 어떤 연민의 정을 느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언제나 단둘이 있게 되면 그런 구분의식을 일깨우다가 넌즈시 자기와 급수가 비슷하니 잘 지내보자는 식으로 끝을 내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기가 동네 똥강아지처럼 바닥인생을 가니 만만한 사람을 자기처럼 만들어버릴려는 심사는 또 무슨 심뽀인지 몰랐다. 이제 나이가 들어 총각 처녀가 되었는데도 자기만 보면 웃기려 들고 막 대하려드는 것이 익숙하기도 뒤틀리기도 하는 묘한 감정은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는 귀련이 자신도 다른 사람보다는 장쇠가 만만하여 막 대하는 정도를 넘어 구박까지 연상케하는 행동도 서슴치 않는 것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더 놀란 적도 있었다. 초등교를 겨우 마치는 둥 마는 둥하고 떠나온 집에서 투정을 부린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물설고 산설은 동네에 와서 그 누구에게라도 투정 비슷한 것을 부리는 배짱은 없었다. 아무리 주인댁 사람들이 잘 해준다고 해도 주인은 주인이고 부엌데기는 부엌데기인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인간관계에서 단 한사람의 예외가 장쇠이니 오빠이전에 남동생같고 남동생이전에 돌보아주어야 하는 선머슴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마음이었다. 다만 성식 오빠와 비교하여 너무 볼품없이 세상을 사는 것같아 속이 상하고 그럴수록 정신을 차리게끔 한다는 마음이 왜 자신에게 드는 지는 모르지만 철없는 남동생 꾸짖듯 나서는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그랬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도 무료한 식모살이를 접고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자신도 여공으로 어딘가로 공장생활이나 하며 대처생활을 경험하고픈 생각도 들었으나 오래된 식구와 같은 주인댁 식구들과 장쇠가 있어 낯선 곳으로 선뜻 나가겠다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다 이제 세월이 가서 십여년이 넘는 세월을 해안마을 뒤편의 적산가옥에서 빛 좋은 목터의 고양이처럼 살아왔어니 이제는 귀련이도 스물을 넘겨서 다 큰 처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처신도 이제 철부지가 아니었고 자신의 삶터도 이제 이곳 부산 해안가 마을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동병상련의 의식이 있어서인지 곰보할멈댁에 살짜기 놀러가면 그 할머니가 여간 곰살맞게 대해주는 것이 아니었다. 한바탕 의원나리가 들러서 이전 과거사가 다 튀어 나와서 그 할머니가 의원 나리의 배다른 여동생이란 것이 쫘악 퍼졌으니 이제는 그 댁에 놀러가는 것이 예전보다 더 어렵게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주인 마님이 유독 그 할멈댁에 마실가는 것만은 아주 호되게 야단을 쳤던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비밀이 이제 다 까발려지고 나니 오히려 더 눈치를 봐야하는 묘한 형편을 맞게 되었다. 귀련이는 찾아갈 곳 하나를 잃은 것 같은 공허감을 느꼈고 시간이 다소 지나서 그런 묘한 잔금같은 감정들이 가라앉기만 기다릴 뿐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추석도 되어가니 나머지 친척맞이에 정신이 없었고 곰보할멈과의 그 옛날의 애증관계에 대하여 그 누구하나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 귀련이는 곰보할멈이 집을 비워주고 어디로 갈지 그리고 앞으로의 생활은 어떠할지 궁금하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삽짝을 밀고 들어가니 집은 고요했다. 언제나 소리없은 할멈이라서 늘상 그러니했지만 막상 이렇게 조용하자 이미 집을 비우고 어디론가 떠난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할무이, 할무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누고 바깥에?&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귀련임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니 우짤라꼬, 여기에. 어쨌든 너 볼 날도 얼마 없어니 들어오니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시절인연이 다 되어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차리는 할멈은 참빗으로 곱게 머리를 빗고 있었다. 요즘에는 저런 빗도 구경하기 힘들어지고 저렇게 쪽을 쪄서 빗는 머리형태도 드물어졌다. 얼굴은 험상궂게 얽었어도 그래도 사대부 양반가문에서 자란 할멈은 태도는 여느 아낙과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곰보만 되지 않았더라면 그래도 곱게 늙어갈 할멈이 불쌍해 보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귀련아, 니가 의원댁에 온지도 십년이 넘었제, 아마... 세월이 빠르다. 너를 처음 보았을땐 마치 어릴 적 나와 같은 처지의 너를 보는 것같아 그저 안쓰러웠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서늘한 계절에 어디론가 떠나야할 할멈이 되려 남게되는 귀련이를 걱정스러워 했다. 귀련이도 피붙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의원댁과의 관계에서 완전한 남이라고 할 수는 없는 사이라서 유독 곰보할멈의 거처는 궁금했다. 이제 바닷물의 빛깔도 좀 더 짙은 색으로 변했으니 얼마 있지 않아서 추운 계절이 올 모양인데 이런 스산한 계절에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도 시원찮은데 일가친척 하나없는 할멈과 자신은 더욱 의지해야 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함께 마을에서 살 적엔 덤덤했지만 막상 곰보할멈댁이 헐리고 할멈은 어디론가로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할 적에 오는 공허감은 생각보다 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할머니 언제 떠나게 되는데요? 이 근방에 갈 거예요? 아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귀련아, 할멈 얘기를 들어봐라. 사람은 말이야 다들 자신의 앞날을 아는듯하고 살지만 사실 알고 사는 이는 드문 것 같아. 나도 너만한 적에는 대체 내가 왜 태어나 이런 고생을 하며 이 고생의 끝에는 무엇이 있으며 과연 고생의 보람이란 것이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었지.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서 돈이라도 생길량이면 용하다는 점쟁이를 비롯해서 깊은 산속의 고승들도 찾아다녔었다. 못배운 나지만 그래서 내린 결론은 공부많이 한 그들도 자신의 앞날을 모르고 사는 것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 짓도 그만 두었지. 그래서 바닷가나 산책하며 보내는 그런 인생을 선택하여 지금까지 온 거지. 그런데 이런 팔자에도 굴곡이 있는 모양이야. 시대가 바뀌었다고 야단들이니 대세를 거스릴 수는 없는 모양이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니 귀련아, 너도 지금의 나이로는 무언가 막막하고 답답하기도 하여 그 어떤 변화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들 적도 있을게다. 하지만 그런들 결과는 세월이 지나보면 마찬가지일터니 이 할멈의 말을 새겨듣고 있던 집에서 시집이나 가려무나.&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할멈은 고향땅을 떠난 적이 없으니 달리 먼곳이야 가겠냐마는 그래도 이 바닷가 언저리에서 살아야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송도 시장에서 사온 홍시 감을 껍질째 맛나게 먹으면서 곰보할멈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고는 떠나서 여지껏 소식이 없는 것이다. 단출한 세간을 짐차에 싣고는 어디론가 떠난 것으로 아는데 하마 그런지가 몇달이 지났건만 곰보할멈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 의붓오빠인 최의원이 뒤를 보아준 것으로는 알지만 그 내역은 그 누구라도 알 수 없었다. 이제는 대형 포크레인이 들어와서 그 집터를 아예 싸그리 뭉개고 있으니 한때 곰보할멈이 수십년을 두고 살아온 그 집터는 이제 형체는 물론 그런 기억조차 사람들에게 남아있지 않으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게 떠난 할멈이 궁금하기는 해도 귀련이는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근에 살적에도 언급을 해서는 안되는 그런 인물이었는데 이제 자취도 없이 사라진 마당에 생뚱맞게 물었다간 무슨 화를 당할 지 모르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살갑게 지낸 할멈의 소식이라도 전해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점차 커져 갈 적에 생각해 낸 것이 장쇠 오빠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 그래 마당발 장쇠 오빠라면 곰보할멈의 소식을 알고 있을 지 몰라, 내가 여태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그리고 폐병장이 최씨 아저씨 소식도 오빠는 분명 알고 있을거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데 개똥도 약에 쓰려면 안 보인다고 뭘 물어보려고 기다리는 장쇠마저 요즈음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것이었다. '장쇠 오빠까지 따라갔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럴 리는 없고 산꼭대기 어디엔가 산다는 말만 들었지 정확한 거처를 모르는 귀련이로서는 장쇠를 찾아나서기도 어려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다 세월이 좀 더 지나자 문득 장쇠 오빠까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더더욱 망연해졌다. 이웃인 할멈과 최씨 아재는 불과하고 장쇠 오빠마저 시장통이나 바닷가 그 어느 곳에서라도 여느 때 같으면 서너번은 마주쳤을텐데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함께 할 때는 쥐어박고 싶던 그 장쇠 오빠의 존재가 자신에게는 무지 막연한 사이였구나하는 생소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런 감정을 무어라고 하는 지 모르겠다. 있으면 귀찮고 없어지자 아쉬운 그런 요상한 마음의 상태, 그런 상태의 관계가 자신과 장쇠와의 관계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날은 이제 차지기 시작했고 바닷물로 더욱 퍼런 빛을 띄고 파도도 더욱 많이 일었다. 이제 한여름의 왁자지껄한 해안에서 서글프기 그지없는 겨울해안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귀련이는 자신만이 남아서 더욱 서글픈 감정이 들었는데 곰보할멈이 자신에게 해준 어딜가도 마찬가지라는 그 말한마디를 붙잡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44.&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규 선배는 달변이었다. 다만 술을 먹었을 때 그랬다. 평소에는 오히려 과묵한 편이었다. 한규 선배와 학교 서클 룸을 나와서 찾아 간 곳은 학교앞의 식당겸 술집을 하는 그런 집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이제 저녁식사 손님은 없었고 다만 몇몇 어울려 안주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둥그런 알미늄 식탁 중앙은 연탄불로 찌게랑 심지어 고기까지 구워 먹을 수 있게 동그랗게 구멍이 뚫렸고 그 주위로 반찬이랑 안주거리가 놓여지는 그런 식당이었다. 소주와 삼겹살을 2인분 시켰다. 석근이는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 삼겹살요리를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먹어보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평소에도 돼지고기라면 겨울날 삭힌 김장김치에 몇조각 썰어서 김치돼지고기 볶음이나 먹었고 아니면 명절에 편육으로 된장에 찍어 먹어 보았지 얇다랗게 썰어서 석쇠에 구워서 상추쌈으로 해서 먹는 삼겹살구이는 이제 서민들의 안주거리로 호평을 받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돼지고기가 그런 맛을 내는 지는 몰랐다. 고소하면서도 돼지고기 특유의 느끼한 맛이 없어 술안주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술이 순배가 돌아가자 한규 형은 예의 '사자후'를 토했다.&lt;/P&gt;
&lt;P&gt;&quot;너 병욱이 형 알지? 내 친구말야. 너에겐 선배되는 녀석인데 그 녀석이 요즘 학생운동에 기웃거리는 것같아. 불안해. 누구는 나보고 겁많은 이론가니 무어니 하지만 나는 어설픈 학생운동은 군사정권에게 도리어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야. 무조건 길거리에서 구호나 외치면서 짱돌 몇개 던진다고 정권타도 투쟁의 투사라도 되는 양 까불지만 독재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어릿광대 짓이라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게다가 남미의 정치이론가들이 주창하는 해방신학 비슷한 것을 가지고 와서는 파쇼 정권 타도 어쩌구 저쩌구하는데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을 감안해야지 그런 게릴라식 투쟁으로는 안되는 거야. 그런게 다 소영웅주의인 것이야. 다들 민족과 국가를 위한다지만 파고들면 개인 한(恨)이나 아니면 부모의 한을 푸는 그런 푸닥거리의 일종일 수가 많아.&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누가 완전한 이타주의(利他主義)식 사회운동을 할 자격이 있냐는 말이지. 알고보면 다 이기주의식 자기 발로(發露)가 많은 거야. 전부는 아니라고 해도...내가 아직 나이는 젊었지만 학교를 오래다녀 그런 것을 많이 보아왔지.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이 지랄같은 시대가 사이비 가짜 영웅을 만들고 있을 지도 모르지.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하지. 태평천국하에서 영웅이 날 수가 없는 거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니 우리는 이 시대에 날뛰는 자칭 민족주의자, 민주주의자, 애국지사 중에서 쭉정이와 알곡을 가려야 하는데 그 가리는 판세마저 거두어버리는 이 암울한 시대가 문제인거지. 애시당초 정치가 어쩌니 사회가 어쩌니 하며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하는거지. 구데기 무서워서 장을 못담그는거지. 무언가 독재비판에 이어질까보아 아예 주둥아리를 꿰매는 것이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니 날뛰는 망종(亡種)들은 지하로 숨게되고 더욱 그 자가 가진 이념과 사상을 검증하지 못하고 그냥 겉모습만 보아서 그런가부다하고 아이들은 따라가는 것이지. 그 끝이 자기자신의 한풀이나 개인의 입신영달에 있는 지도 알 수 없는 것이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니긴 해도 세월이 지나 한20년만 지내봐. 이런 지하세계의 투사들이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있을 걸. 그 화려한 경력을 내세우며 민주화에 혁혁한 공로가 있다는 둥 온갖 소리로 치장하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삼겹살이 일단 노릇노릇하게 익어가자 김치그릇을 통째로 구이판에 올려서 삼겹살과 김치를 골고루 구워서 상추쌈에 싸서는 입에 가져가며 한규형은 말을 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러니 일단 입시지옥을 뚫고 대학이란 낭만가득한 곳으로 들어온 새내기 신입생들은 한부류는 여지껏 못 놀던 것을 한풀이라도 할 듯 미팅이다 나이트 클럽이다 마구 뛰어다니는 유한족과 그러려고해도 밑천이 딸리는 무한족들로 나뉘는데 문제는 이 무한계급인 이 무한족들 중에서 유독 학생운동에 빠지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알고보면 가지지 못한 자들의 반대 운동이랄까? 생각해봐. 고교시절에 코박고 공부하느라 저놈 집안이 좋은지 아니면 우리 집안이 좋은지 구별을 할 겨를도 없었지만 일단 대학에 입학하면 달라져. 고관대작의 집안의 아이들은 노는 판이 다를 수밖에 없지. 지금 석근이와 내가 이 허름한 학교앞 식당술집에서 삼겹살로 소주 마시지만 그런 유한족의 아이들은 아마 이태원쪽으로 아가씨들과 나이트클럽에서 밤새워 놀잖아.&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노는 물이 다른거지. 그러니 더구나 차별의식과 계급의식에 민감한 나이인 20대가 되면 자연히 자신이 속해야 할 앞으로의 사회가 보이게 되는 거지. 민주주의를 향해서 한 몸 불사른다고 야단들이지만 그런 아이일수록 부모 잘 만나서 용돈 두둑하게 받거나 미국 유학이라도 갈 형편이 되면 절대로 그런 가시밭길에 가지 않지. 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못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그런 심정에서 아이들이 지하서클에 들어가고 사회가 불공평하니 갈아엎자는 식의 달콤한 평등사상에 도취되기 시작하는 거야. 그러는 사이에 유한족 아이들은 실컷 놀다가 나이차면 외국으로 나가서 학위 하나 따가지고 들어와 자리를 꿰차는 거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게 민주주의인 거야. 그런 것도 모르면서 민주주의 한다고 독재정권 타도한다며 설치는 부류들은 난 딱 질색이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네들이 찾는다고 야단인 그 민주주의가 바로 '신화'를 만들어낸다고. 있지도 않은 신화를. 누구든 잘나서 노력하면 신분의 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그 기막힌 신화를. 사실 이 민주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인민의..어쩌구 저쩌구가 알고보면 말짱 거짓말이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난 그것을 알아내려고 대학다니는 거야. 학비를 내어가며. 생각해봐. 신분사회에선 태어난 그대로 그 신분이 고정되었어. 부정하지 못하지. 그럼 민주화된 미국은 그렇지 않은가? 엇비슷해. 그곳에도 잘난 인간들의 입지전적인 도약이 있지만 민주주의란 그 얄팍한 기회를 뻥튀기처럼 확대하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실 확률은 작은 거야. 과거 시대와 비슷하다고...다만 그 기회가 봉쇄되지 않고 열려있다는 차이이지만 그 차이가 민주주의의 신화이지. 이 신화를 보고 부나비처럼 마구 달려드는 꼴이라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니 파쇼다 파시스트다 군바리 정권이 욕을 얻어먹지만 효율성 측면에선 군바리 체제를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야. 내가 군정을 지지한다는 말이 아니라 나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그 민주주의가 진정 우리가 바라는 바를 모두 이루어준다는 그 신기루를 경계하는 것이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난 민주주의를 믿지 않지.왜냐면 민주주의에 필적하는 그 어떤 정치체제가 나오지 않아서이지 민주주의가 최선, 최상의 제도는 아니라고 나는 믿고 있지. 그 민주주의가 탄생한 그리스는 그럼 그 민주주의가 대대로 이어졌나? 그것도 직접민주주의의 본산인 그 고대 그리스에서도 민주주의라는 이름 밑에서 수많은 암투가 벌어졌고 중우정치로 전락되어 우왕좌왕한 역사가 있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서 플라톤같은 철학자는 '철인(哲人)'이 통치하는 '철인정치'를 동경한 것이지. '철인(鐵人)28호'와 같은 무쇠팔 로보트가 통치하는 정치가 아닌 좀 밝은 사람이 다스리는, 쉽게 말해서 무언가 통찰력있는 그런 사람이 다스리는 그런 정치가 무식한 중우가 날뛰는 정치보다 낫다고 본 것이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 철인그룹이 바로 지금은 일단의 군바리 정치인 그룹이 자임(自任)했다며 설치는 것이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도 민주주의의 최대 강점은 일단 정권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다는 점인데 그 점에선 나도 민주주의가 가장 나은 정치제도라고 본다. 그래서 이놈의 군사정권은 절대로 정권을 내놓으려 하지도 않는 것이지. 일단 내놓으면 다시는 잡을 기회가 없다고 보는 것이지. 자신이 없는 것이지. 쉽게 말해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내 말은 정치학 교과서에 나오는 말인데 우린 그래도 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일단 아이들이 무산계급으로 지하로 들어가면 의식화되는 것이 나는 더 두려워. 그것도 어떤 의미로는 정반대의 일종의 독재야. 그곳에서도 반대의견이 없어. 어떤 카리스마를 지닌 놈의 지령만 있는 거지. 그것이 어쩜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몰라. 경계해야는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규 형을 주위에서 '교과서'라는 말로 빈정대는 이유를 알 것도 같고 자신도 그렇게 자평하는 것을 보니 자신의 그런 점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형의 말은 또 이어졌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런데 우스운 것은 이런 전통의 학생운동에 몸담은 자들의 사회진출이야. 그렇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이 일단 기성사회에 진출하면 그 고상한 이념추구는 어디로 내팽개 쳤는지 그렇게 지독하게 조직에 아부 잘하고 승진 잘 한다. 너 아니? 돈도 아주 기막히게 잘 벌고. 고급 룸쌀롱에 가서 학생운동 경력을 호스테스에게 자랑질하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때 그런 운동을 하다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단 사회생활에 충실한다며 구라란 구라는 다까는 거야. 난 여럿 보았어. 학교 데모대의 선봉에 선 놈들치고 취직해서 못 먹고 사는 놈을 보지 못했다구. 범생이처럼 주둥이만 까발리는 내가 오히려 고상하게 교과서를 아직 붙잡고 있지. 하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실 그랬다. 한규 형 말도 일리가 있었다. 대학이라고 오고보니 일부 많이 배웠다는 교수들은 유신체제야말로 우리 민족의 장래가 달려있는 유일한 체제라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며 정권에 아부하는 교수도 있으니 아이들은 '어용교수' 물러나라며 야단을 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억눌린 상황에서 무엇 하나든 바른 표현이 나오리랴마는 반대목소리는 반대목소리대로 뒤틀리고 지지 목소리는 지지 목소리대로 한자리 얻으려는 비루한 구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런 판국이었다. 어쨌든 술집에서도 마구 정부 정책을 비난이나 비판하지 못하고 될수 있으면 정치이야기쪽으로는 가지 않는 것이 만수무강에 지장이 없는 그런 세월이었다.&lt;/P&gt;
&lt;P&gt;올챙이가 이제 개구리가 되어 대학사회, 그리고 지방에서 서울로 진출하고 보니 다양한 인간들이 삶의 모습을 보게 되고 또 다양한 인간들의 생각을 얻어 들을 수 있게 되어 이것이야말로 대학에 진학하는 진짜 이유가 아닌가하는 그런 생각을 언뜻하며 취기에 못이겨가는 자신을 석근이는 발견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45.&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송도해수욕장도 이전의 명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겨우 소나무 몇그루가 당산(堂山)을 지키고 있었고 낡아빠진 다이빙대는 일제시대부터 있어왔지만 수리를 할 수 없어서인지 아니면 볼썽 사납다고 폐기해버린 것인지 이제 그 존재는 흑백사진에만 남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여름이면 해수욕객으로 넘치고 가을이나 겨울 봄이면 보트놀이객들이 넘쳐났던 그 시절의 풍경은 사라지고 이제 백사장에 보트대여업으로 남은 상인들은 겨우 손가락으로 셀 만큼 줄어들었다. 여름 한철이 지나면 송도 보트 저으러 오는 연인들이 줄을 이었는데 이제는 보트놀이보다 훨씬 재미난 유흥들이 많이 생겨났고 보트놀이는 육체적인 피로도를 가져오는 스포츠 성격이 짙어 점차 쉬운 놀이문화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이 그리 찾지를 않게 된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곰보할멈은 사람뿐 아니라 자연도 세월따라 변한다는 것을 요즘 들어 너무나 실감을 하는 것이었다. 소나무 숲 우거졌던 그 송도 당산에서 겨우 벤치 몇개만이 그곳이 당산제를 올렸던 그 당산이라는 것을 지키고 있었고 일제시대 소나무 숲에서 내다본 그 앞바다는 푸르기가 창창했었는데...&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시멘트바른 골목길만이 그 곳 당산을 오르는 표시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떠나며 그 젊은 시절의 마을 제사가 있을 때면 온 동네사람들이 금줄을 만들고 당산에 모여 뱃사람의 안녕과 마을의 복락을 빌었던 그 자리에 올랐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참으로 그때는 백사장도 넓었고 모래가 참으로 고운 아름다운 해안이었는데 사람들이 어디서 그렇게들 몰려왔는지 특히 천마산 꼭대기까지 뒤덮은 판자촌이 이루어지자 그 곱던 해안도 사람들의 발자욱에 몸살이 났던 모양이었다. 모래는 거칠어지고 온갖 쓰레기로 뒤덮였고 하수처리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 인근 횟집에서 흘리는 오물로 바다는 냄새가 났고 심지어 어린아이들 똥덩어리가 여름 바닷물에 떠다니는 처지에 이르러 송도는 '똥물' 해수욕장이라는 오명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급격한 인구증가는 급격한 사회변화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불과 몇십년을 두고 이렇게 변하는가 싶었는데 급기야 같은 피를 나눈 오빠의 등쌀에 단한번 떠난 적이 없는 마을을 떠나게 된 심정이야 말로 다할 수 없었다. 설혹 말을 한다고 해도 자기와 같은 비루한 운명을 지닌 음지의 노파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 줄 사람이 없었다. 귀련이에게나 말을 할까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처지를 말하지 못하는 곰보할멈은 그래도 당산에나 올라 멀리 혈청소 길을 바라다보며 서쪽으로 지는 해를 쳐다보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최의원은 그래도 의붓오빠로서의 뒷바라지는 해준 턱이었다. 그래도 쌀걱정하지 않고 살은 것도 사실 그 최참판댁 뒷방살이가 모태가 된 꼴이었다. 자라나며 부모없이 큰 고아도 아니면서 그럭저럭 하인도 아니면서 살은 그림자같은 인생길이었지만 전란이 피해간 부산에서 자랐고 큰 변혁이 없는 삶이었다 싶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오빠도 늙어가지만 그래도 마지막 이루지 못한 그 무언가를 인생을 걸고 벌겋게 덤벼드는 그 막무가내식의 개발을 자신이 뭉갤 수는 없는 노릇이고 오빠이지만 오빠라 부르지 못한 억하심정(抑何心情)을 지금에 와서 부릴 이유도 없었다. 잘 되길 바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못되길 바라는 마음도 조금도 없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쬐그마한 집터가 개발의 장애가 된다면 완전한 남도 아닌 마당에 들어주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다만 남과 같은 삶을 단한번이라도 살지 못한 할멈으로서는 그 어떤 변화가 지금의 황혼녘에 큰 충격이 될 수 있었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할멈은 아주 어릴 적에 깨달은 그런 사람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미친 광풍같은 시대의 변화도 일개인이 어찌 할 수 없는 그런 큰 물결과 같은 것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오빠가 알음알이로 마련해준 돈과 새 집터로 노후의 생활이야 한몸 거두는 것에 불과하니 문제는 없었고 다만 눈에 익다못해 일부분과 같은 이 지역을 떠난다는 마음은 겪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람은 지역연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즉 어떠한 환경에 놓여도 그 환경에 곧 익숙해져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무슨 민감한 생물체처럼 자신이 자라고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면 아무리 노력해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불가능한 그런 사람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할멈에게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할멈은 자신은 후자임에 틀림없다고 여겼지만 그래도 앞에서 말한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체념이 이런 환경부적응을 앞서는 것이었다. 다 팔자소관이라 여기며 또한번의 인생을 접으면 그만이다라는 초탈에 가까운 체념이 있었기에 할멈은 살아가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당산을 둘러보며 그래도 몇그루 튼실한 소나무가 남아있슴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반가움이 앞섰다. 속으로 '그래, 이 소나무 몇그루는 그래도 이 지역의 역사를, 사람들의 삶을 보았을거다.'라며 주름잡힌 손으로 쓰다듬었다. 할멈은 여지껏 태어나 색상이 물든 옷감으로 된 옷을 입은 적이 없었다. 더러 그 나이에 신식 양장을 하는 여인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사대부 출신의 여념집 여인이라는 꼿꼿한 자세를 지닌 할멈은 하얀 모시옷을 즐겨입은 구한말 그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60년대에는 거의가 나이든 사람들은 의례 흰 한복차림이었는데 70년대 들어 합성섬유의 대량생산으로 값싸고 질긴 나이롱 섬유제품들이 마구 쏟아졌었다. 버선을 만들어 신을 겨를도 없이 한번 신으면 이빨로 물고 뜯어도 이빨이 뽑힐지언정 양말이 빵구가 나지 않는 그렇게 질긴 양말이 들어오자 모두들 정신없이 때많이 타고 불편한 버선쪼가리를 집어 던져버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버선발에 흰고무신의 마지막 세대로 곰보할멈은 이제 남은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터에 새로운 시대의 걸림돌만 되는 자신을 알고 있는 듯이 혼자서 조용히 가을 어느날 해질 녘에 송도 당산에 올라 하염없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해안도 구비구비 자갈치 해안을 굽어돌아 독골라미, 독골라미 해안을 구비돌아 송도 백사장이 펼져지고 혈청소 마을 구비돌면 백지포로 이어지고 이내 감천만에 도달하고 그 감천만을 돌아서는 다대포가 나오는 그 해안 구비길을 이제 공장이 들어서고 조선소가 들어서고 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온갖 매연을 뿜어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람들이 마치 겨울 누비옷의 틈새마다 일은 이처럼 갑자기 불어났으니 무언가 일자리나 먹고 살 직장이 있기는 있어야 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람떼가 무섭다는 것은 예전에는 바다였던 자리를 쓰레기를 버리는 진개장(塵芥場)이라고 부르며 그곳에 지어진 수많은 판잣집에서 조선 팔도에서 피난온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숨가쁜 삶을 이어가던 시절이 불과 10여년 전의 일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많은 사람들이 또 어디론가 흩어졌고 그 자리에는 이제 냉동창고와 수산센터가 들어선다고 하니 이제 이 손바닥만한 고운 송도 해안도 멀지않아 매립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마을 사람들도 버스 종점이 생겨서 외지인들이 송도로 놀러나오는 마당이니 횟집이라도 하나 만들어 생업을 이어가려는 마음뿐이지 그 이전의 삶의 형태를 지키려는 사람은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오죽하면 일제시대부터 있어온 여관급 호텔을 까부수고 레저 호텔을 만든다고 저 난리일까. 이제 선점하여 시대의 이익을 가져오느냐 아니면 있던 이점을 새로운 물결에 내어주고 퇴장하느냐하는 생존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할멈의 일사불란한 의식세계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해는 생각보다 빨리 저물었다. 그만큼 가을이 깊어간다는 뜻이었다. 해가 서산으로 지는가 싶더니 이내 쑥 들어가버리자 기온도 생각보다 빨리 서늘해졌다. 추석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떤 세대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별로 변함이 없는 그런 세대가 있는가하면 온갖 변화란 변화는 다 겪는, 게다가 전쟁의 아픔까지도 겪는 기구한 세대가 있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세대가 그런 세대가 아닌가하는 좀 알기 어려운 생각까지 들었으나 할멈으로선 언제나 피동적인 삶을 이어왔고 그러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론을 체득하며 살아온지라 그 이상의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옆 벤치에는 젊은 연인들이 아까부터 무슨 수다를 그리 떠는 지 할멈이 초라하게 앉은 벤치는 안중에도 없는 듯 마구 노닥거렸다. 이제 떠나는 순간까지 호젓하게 있지는 못하는 세태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곰보할멈은 이제야 여기를 떠날 때이구나 싶었고 이제야 이 당산을 떠날 때가 되었구나하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왜소한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42-45)&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42-45)&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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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40-4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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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속사프레서</name>
	    </author>
	    <updated>2009-09-22T06:11:30Z</updated>
	    <published>2009-09-22T06:11:3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40.&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광복동은 부산의 중심지였다. 미화당 백화점을 통하여 윗층에서 바로 용두산 공원으로 건너가는 철간다리가 놓여져 있어 백화점 구경을 하다가는 공원으로 빠져서 이순신 장군상을 볼 수도 있었고 그 이순신 장군의 눈길은 앞에 펼쳐진 부산 남항을 내려다 보는 곳에 조성되어 있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예로부터 일본인들과의 왕래가 잦았던 부산은 그래서 해방이후에도 한동안 일본문화의 잔재가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생선 이름부터 각종 서류나 심지어 나무젓가락까지도 우리는 한동안 '와리바시'라 불렀고 때로는 그런 일본말을 섞어 쓰는 것이 그 분야의 전문성을 나타내는 척도가 되지 않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한세대를 필적하는 일제시대를 겪었다고 하지만 유독 부산지역은 그 일본풍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중앙동에는 일본우동 가게를 비롯하여 각종 초밥집들이 있었고 해방 당시에는 왜색문화를 몰아낸다며 설치던 사람들도 그 광기의 장단이 끝나자 언제 그랬냥 이제 그 일본문화가 판치는 그 당시를 그리워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젊은 한시절을 일제시대에서 보낸 많은 이들이 중장년의 나이로 남아있었고 그들 모두에게 국수주의적인 애국관을 요구하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친일이다 반일이다 해방정국에서는 요란을 떨었지만, &quot;여기서 친일(親日)하지 않은 놈 있으면 나와봐. 일제당시에 친일하지 않았으면 이 자리에 어떻게 살아서 앉아있는가?&quot; 이렇게 초대 경찰청장의 발언처럼 친일과 반일의 그 경계를 우선 정할 수도 없었고 당장 건국에 필요한 고급인력들이 고스란히 일제하의 고등관리였기에 우리들은 먼 훗날까지도 그 친일의 잔재를 청산한다 못한다하며 싸우게 되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서 친일경력을 트집삼아 싸운다고 해도 일반 서민들의 삶속에 녹아있는 일본문화의 찌꺼기는 씻어내기가 쉽지 않았고 그렇게하기에는 우리만의 문화가 있어야하는데 이미 구한말 이후에 단절되어 버린 문화전승에다 일본문화가 더 고급문화라는 인식의 차이까지 붙어서 부산지역은 근대화가 이루어지기까지, 혹은 이루어진 이후에도 일본문화가 각계층에 배어있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최의원집도 살고 있는 집 자체가 아직도 '적산가옥(敵産家屋)'이라 불리는 일본식 집이었고 물려받은 토지와 호텔 건물도 모두 일제시대부터 이어진 것이었다. 아직도 다다미방에서 살고 있는 의원 자신도 과연 해방전과 해방후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였고 바다로부터 들어오는 일본방송은 줄곧 TV수상기로 볼 수 있어 어떨 땐 일본뉴스가 더 실상을 잘 전달하고 있다는 판단까지 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정부에선 일본측에서 들어오는 방송전파를 막는다며 영도섬 정상에 전파 송출 센터를 세워서 한국 방송채널을 주요 일본 TV채널에 넣어 막았지만 자정을 넘긴 시간이면 일본 방송은 어느 가정에서도 쉽사리 볼 수 있어 일본말을 알아듣는 중장년층은 70년대 내내 일본문화속에 들어있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한국방송의 질이 당시에는 일본방송의 질보다 현격한 차이를 보였고 일부 인기 연속극을 제외하고는 유치한 편성이 시청자를 일본방송 시청유혹에서 풀려나지 못하게 했다. 방송 프로그램 자체를 베끼는 그런 아류가 등장하였고 심지어 해운대 지역의 호텔은 주말이면 서울에서 방송관계자들이 일본방송을 보고 배우려고 예약을 한다는 말까지 나돌았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우선 문화가 발전되어 더 이상 일본방송이 더 유익하고 재미있다는 유혹에서 빠져나오게 해야하는데 방송 프로그램 작성 예산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였고 일본의 경제 급성장은 모든 분야에서 독주를 하는 판이라서 이제 새마을운동으로 근대화의 시동을 건 70년대로서는 역부족인 감이 있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오로지 정부가 시민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일본방송 시청 금지' 캠페인 아니면 '왜색문화 몰아내기'와 같은 홍보뿐이었다. 당장 재미있고 편리하고 유익한데 몰아낸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 바로 일본문화였던 시기가 70년대의 부산 문화 풍토였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미군정이 들어서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주둔하는 통에 이제 서서히 미국문화가 상륙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주류가 왜색문화였던 거리가 바로 광복동 거리였다. 70년대의 경제성장으로 돈을 벌은 일본인들은 가까운 부산지역을 자기들의 연휴 놀이터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서울만해도 기생관광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터라 주말이면 일본인 단체관광객들이 김포공항을 떼지어 내렸고 이어 관광버스로 종로3가 뒤편에 나열된 요정으로 몰려가서는 또 다른 신조어인 '기생파티'를 하곤 했다. 일본 농촌지역의 농부까지 일본화폐의 가치가 오른 터라 싼값으로 관광코스를 한국으로 택하여 단체로 몰려왔으니 종로3가 요정골목은 밤이면 장구소리 요란한 술판이 벌어지곤 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무식한 일본인 관광객들은 술이 취하여 관광가이드에게 남대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웠다는 망발을 부리는 장면이 당시의 고발성 뉴스에 나오곤 했었다. 그렇게 70년대는 나라간의 빈부격차가 뚜렷하게 비쳐진 시대였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런 사회상이 전개되었지만 이제 막 부산지역의 여자대학에 들어간 성애에겐 하등 관심을 끌 수 없었다. 성애는 단지 막 시작된 대학생활을 어떻게 하면 즐길까하는 원초적인 재미만이 관심이 있었다. 태어나서 그럭저럭 빈곤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그런 세대였고 부친 최의원댁은 일제시대부터 만만한 자산가였으니 그런 집안의 외동딸로서 사회의 변화와 시대의 바뀜 따위는 애시당초 관심밖의 일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학교가 파하면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가 남포동에 닿을 즈음이면 오늘은 어느 다방에서 누구와 만나서 수다를 떨다가 저녁으로는 어떤 식당에 들러서 먹고 집에 가나하는 그런 즐거움만이 관심이었다. 그러다 보기 힘든 외국영화라도 개봉이 되면 바로 보지못하면 마치 병이라도 나는 모양으로 수선을 떠는 그런 얼치기 여대생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당연히 학교 공부따위는 겨우 학점이나 펑크내지 않으면 다행으로 전공따위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다만 하기싫은 입시과외를 피한 것만으로도 만세를 부르고픈 그런 세대였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오늘도 친구 명숙이와 영화 한편을 보기로 약속을 하고 황태자 양과점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찹쌀모찌를 유독 좋아하는 명숙이를 '팥죽할멈'이라고 놀리는 성애는 왜 명숙이가 할머니처럼 팥을 넣은 찹쌀 모찌를 좋아하는 지 언젠가 꼭 물어보려했는데 오늘이야 물어보았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명숙아, 넌 할매들처럼 찹쌀 모찌를 그렇게 좋아하니? 양과자점에서 '모찌'가 다 뭐야?&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뭐 어때, 어릴 적에 엄마 아빠가 결혼식장에 다녀오면 꼭 모찌가 든 떡상자를 가지고 왔거던. 그런 풍습이 이제 피로연이라며 곰탕 한그릇 대접하는 걸로 바뀌어서 얼마나 섭섭하다고. 너 기억나니? 그 옛날 결혼식장에서 하객들에게 답례품으로 돌리던 그 모찌 말야? 형형색깔이 곱던 그 모찌류가 아마 일본풍이라서 바뀌었나? 요즘은 한번도 그런 걸 구경도 못하다가 이런 양과점에서 발견했잖니.&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한번 먹어봐. 옛날 생각나게?&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너가 먹어. 난 케이크 한조각과 커피 한잔이면 돼. 얼마전에 내가 미팅에서 만난 좀 바보같은 남자애가 있었거던 그 앤 처음 본 나를 글쎄 '할매집 회국수'집에 데리고 가는거야. 입술 벌겋게 해가지고 가오리회가 들은 그 양푼 그릇을 맛있게 비우던 그 남학생이 그날은 한대 쥐어박아 주고 싶더니만, 날이 흐르자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아...&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애프터 하지 않았구나? 넌 언제나 그 모양이더라. 왜 좀 진득하게 만나보면 남자애들도 괜찮은 애들이 있다구...&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연분홍 빛으로 물들인 모찌를 입술가에 흰 가루를 묻혀가며 명숙이는 우유와 함께 저녁으로 먹고 있었고 난 모카향 케이크 한조각과 커피 한잔으로 저녁을 때우고 저녁 상영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는 미국 헐리우드 영화로 목빠지라 개봉되길 기다렸던 영화였다. 외화 한편이 들어오려면 꽤 시간이 걸리던 세월이었고 게다가 국내 흥행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던 그런 시대였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신문에서 외화란에 떠들던 그 유명한 영화도 수입업자의 채산성이 맞아야 들어오게 되고 그것도 지방 극장까지 내려오는 시간도 걸리게 마련인 그 시절이었지만 자칭 '영화 빠꾸미'란 단어에 걸맞는 신작 외화는 하나도 놓치지 않는 성애로선 저녁을 사먹고도 충분히 기다릴 만한 그런 대작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언뜻 생각난 그 미팅때 만난 촌스런 서울 유학생인 그 남학생과 함께 본다면 더욱 좋으련만 그는 아마 개학과 동시에 서울로 떠났을 것이고 설령 부산지역에 있다손치더라도 남학생 집에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기란 꺼려지는 그 시절이었다. 물론 전화번호를 물은 적도 없었지만.&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하루에도 꼬박 자정 직전까지 상영되는 극장에는 구름같이 사람이 몰렸다. 예매를 해놓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통금 직전까지 상영되는 마지막 상영을 그래도 하지 않고 그 전 상영회 입장권을 구입한 것만도 운이 좋았다. 좌석에 앉으니 대한뉴스가 상영되고 예고편이 흘렀다. 때론 예고편도 생략한 채 상영회수를 늘인 대작도 있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번 영화는 칼질이나 많지 않았슴 좋겠다 싶었지만 아직도 일반인에게 대놓고 방영되어선 안될 장면들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영화도중에 그만 스킵 내지는 점프하는 듯 장면이 넘어가고 여자배우가 옷을 벗는 듯 싶다가는 다른 장면으로 바로 이어지는 그런 경험이 숱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금욕사회인 것처럼 굴었지만 밖으로 나가보면 지천으로 깔린 것이 음란이었다. 정치적인 숨통이 죄여 있는 만큼 일반 국민들은 다른 곳에서 그 억압을 풀어야 했던 모양이었고 한국은 마치 일본인 관광객들의 배출구나 되는 것처럼 일본인들의 난잡한 관광코스가 되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좀 섹시한 장면이 나오면 관객들은 나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음미해야 했던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 검열이 더욱 흥분을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르면 누를수록 탄성계수는 높아지는 용수철과 같은 압축이 점점 깊어지던 그런 세월이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lt;BR&gt;41.&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친구들이 다 떠나버린 등대 앞바다를 혼자서 밤에 나와서 바라보며 광호는 생각했다. '왜들 태어난 곳을 다 떠나려하지? 그냥 살면 안되나? 먼곳에는 무언가 색다른 삶이 있는걸까?' 이제 고교를 졸업하고나니 대학진학과 관계없는 자신과 같은 많은 젊은이는 군입대전에 무슨 경력을 가지든지 아니면 회사라도 적을 두어야 할 것같은데 딱히 나서는 직업과 회사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답답하기만 했다. 이미 돌아가신 부친이 몰던 연안어업의 목선은 구식 선박이 되어 목선을 고치거나 개조해 주는 조선소도 없어 부친 자신만해도 간단한 수리는 뭍에 올려놓고선 직접 수선해야 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나무로 만들어진 배가 나다니는 시대는 지났구나하는 생각이 들자 아무리 방수처리를 하여도 목선이란 기관선실 밑바닥에 고이는 바닷물을 펌프 모터를 작동하여 퍼내는 그런 기억들이 떠올랐다. 배가 앞바다를 향해 새벽에 출발하면 의례 서너시를 지나면 포구로 돌아왔다. 그러면 잡아온 생선은 적당히 분류하여 포구 상인이나 아니면 집의 모친이 재래시장에 내다 팔았고 그러면 부친은 담배를 피워가며 기관실 밑바닥에 고인 바닷물을 펌프를 이용하여 퍼내었고 때로는 바가지를 이용하기도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배 밑창이 따개비나 작은 조개류들이 잔뜩 달라붙으면 배의 속도가 느려지기 마련이라 그럴 땐 목선 밑바닥을 기름 토치로 불을 붙여서 떼어내는 작업도 정기적으로 해주었다. 배의 심장이라고 할 엔진은 고물 일제 화물차에서 떼어낸 디젤 엔진을 개조한 것으로 그 엔진에다 벨트를 걸어 프로펠러를 돌리는 간단한 목선 구조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배의 운항은 순전히 손으로 조작하는 것으로 배 뒷꽁무니에 키를 달아서 그 조종으로 배의 진로를 잡기도 했다. 이런 보트보다 조금 더 큰 그런 연안어선들이 이제는 좀더 육중한 철선으로 바뀌고 엔진도 선박용 엔진으로 바뀌어 속도도 빨라졌다. 당연히 속도차이에서 어획량도 결정나기 마련이었다. 느린 목선으로는 좋은 어장에 빨리 도달할 수 없으니 재빠른 철선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시대는 60년대의 못살던 시대에서 이제 기를 좀 펴기 시작하는 70년대로 넘어왔고 그런만큼 연안 어업자원들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인구도 늘어나서 수요량도 많아져 많이 소모되기도 했지만 점점 수질이 탁해져서 그만큼 어족들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때로는 갯가의 홍합을 따도 휘발유 냄새와 같은 기름냄새가 나는 통에 삶아먹지 못하는 일까지 생기는 요즘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예 등대안쪽의 남항은 초겨울이면 따뜻한 수온을 찾아 몰려드는 눈가에 기름이 잔뜩 끼어 시력이 약해진 숭어들이 '후리낚시'라는 이름의 큰 바늘낚시를 건 낚시질로 몸뚱아리 아무곳이든 걸려 올라왔는데 역시 기름냄새가 나서 상품으로 팔지도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냥 미끼도 없이 낚시바늘만으로 멀리 던져서는 릴 낚시처럼 얼른 낚시줄을 감아올리면 그 스피드에 갈고리처럼 생긴 낚시바늘에 몸통이나 머리 심지어 꼬리에라도 꼽혀서 끌어올려지는 낚시법이었는데 올라오는 숭어마다 냄새가 진동하니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직 환경보호 개념은 그렇게 사회에 퍼지지 못한 까닭이었다. 무조건 대량생산의 규모의 경제에만 매달린 개발경제의 폐단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환경은 무슨 얼어죽을 환경이냐하는 의식조차 없이 무조건 개발하여 빵을 키우기에만 급급한 시대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광호는 또 다시 혼자만 남게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다들 달려가는데 자기만 옛자취가 남은 이 등대마을에 남아있는 것을 생각했다. 혼자서 소주를 마시기도 딱해보여 소주 마실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 그래도 거취는 서울에 두고 있지만 학업때문에 그러한 석근이가 방학을 맞아 내려오기만을 기다릴 셈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가을이었지만 밤바람은 찼다. 매립지가 아직은 다들 건물이 들어오지 않아서 휑한 구석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 매축지에서 아이들이 놀고 축구하고 야구했던 시절이 엊그제같은데 이제 다들 장성하여 전국으로 삶의 기반을 찾아 떠난 모습에 자신은 부친의 연안어업을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직 나이가 어린 자신이 낚시점이라도 차고 앉아 앞바다를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규식이라도 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봄에 입대하여 독한 신병훈련을 마치고 전라도 어디엔가 특전여단에 배속되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그 이상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녀석 이럴 때 있음, 울매나 좋아..친구란 게 별 것 있나 한동네서 한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존재.' 이런 생각이 들다가 이내 말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바람만 휑하니 부는 그 매축지는 더 이상 어릴&amp;nbsp;적의 놀이터가 아니었고 어릴 때의 친구들은 더 이상 조무래기 친구들이 아니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건널목을 거너갈 즈음에야 저 멀리 안면이 있는 사람이 지나간다. 걸음을 빨리하여 뒤를 따라가서 보니 유민이였다. 반가웠다. 일단 유민이도 옛친구의 범위에 드는 친구였다. 절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도 이즈음 어디에라도 소속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유대감이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얌마! 유민이 아니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만난 유민이와 둘은 인근 좌판 생선회집에 걸터 앉았다. 유민이는 같은 초등학교 친구였지만 운동선수 출신이라 그렇게 보통아이들과의 조우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의례 운동부란 감독의 감시아래 놓여 있어 같은 부원끼리만의 결속이나 훈련이 중요했지 다른 교유가 많은 시간도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도 같은 동네서 자란 사이라서 만남의 횟수는 그리 상관이 없었다. 그는 고교까지 줄곧 운동만 해왔지만 능력의 한계인지 대학이나 실업팀 어느 곳에서도 러브콜을 받지 못하여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되어 버린 꼴이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광호와 다를 바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씨발, 십년 넘게 볼만 만졌는데 오갈 데가 없다니...뭐 남 탓해 무얼 해? 소질이 없는 본인이 죄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유민아, 그렇게 생각하지 마라. 나도 어정쩡하게 입대 날짜만 기다리는 신세인데 뭘, 우리 나이에 대학 진학이 아니면 사회에서 취직이 되든가 해야는데 아직도 그런 시대는 아닌 모양이라. 빽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능력이 없어서인지.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지. 대기업 위주로 성장한다지만 대기업에서 우리같은 고졸자를 뽑기나 해주남? 이제 한국은 대학물을 먹지 않고선 취직도 운동도 못하는 세상이 되는기라.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돈없는 부모만난 죄인가 아니면 돌대가리라서 공부 못한 죄인가 잘 모르겠어. 다들 대학졸업하면 이제 택시기사도 대학졸업자여야 하게? 농촌에선 논밭가는 소까지 팔아서 대학공부 시킨다고 오죽하면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 하겠어. 소뼈 무덤이란 뜻이지. &lt;/P&gt;
&lt;P&gt;소가 농촌에서 얼마나 필요한 존재야, 도시에선 쇠고기로만 보이지만 농촌에선 바로 농업의 원동력 아닌가베. 그 소를 팔아서 자식 대학공부를 시킨다는 말이야. 요즘 트랙터가 들어오니 소가 필요없게 될 날도 멀지 않았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평소에 과묵한 광호는 매축지에서 혼자 찬바람을 쐬다가 횟감과 함께 마신 취기에 갑자기 말수를 늘였다. 그렇게 말하는 자신도 속으로 놀라며 혼자남게된 소외감이 의외로 깊었나보다 싶었다. 광호는 소주잔을 유민에게 넘기며 말을 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우리같은 떨거지들은 전공도 경력도 필요없는기라. 우선 집안이 턱하니 버텨주어야 하는데 쥐뿔도 없으니 우린 이렇게 덜렁 살던 곳에 남아 있는기라. 마...&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말꼬리가 살짝 굽어짐을 자신도 느끼며 광호는 되돌아오는 술잔을 받아서 마셨다. 해안가에서 마시는 술은 천천히 취하는 법인데다 평소 주량이 있는 광호는 오늘밤에는 흠뻑 취하고 싶었다. 아마 유민이도 같은 마음이라 여기며 별로 만나지 않은 사이를 술이 알아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우리 오야지, 보기도 민망해. 어릴 때 운동시켜서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면 내가 더 죽고 싶어.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란게 이런 것인 모양이야. 초등학교땐 무조건 재미있어 운동을 했지만 결과가 이렇게 되고 보니 무엇하나 쓸 것이 없어. 배운게 있어 기술이 있어. 책 한번 들여다보지 않고 죽어라고 운동만 한 결과가 다들 스카우트 되었는데 나만 남더라구.&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유민이도 여지껏 꺼내지 못한 말을 꺼내기 시작했고 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통금이 아직 있는 시절이었지만 해안마을의 방범대원들 모두 다 알고 지내는 사이이니 그렇게 걱정도 하지 않았다. 4시간 더 마시면 새벽이 오는 것이지 통행금지 4시간 그따위 것에 겁을 낼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무엇하나 가진 것도 빼앗길 것도 없는 백수처지라서 기다리는 사람도 기다려야 할 사람도, 할일도 찾아갈 곳도 없으니 오로지 남은 것은 청춘에다 시간밖에 없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군입대까지의 이태정도의 시간은 무엇을 하기에도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다만 군제대 후에는 무언가 길이 열리겠지 하는 막연한 기다림만이 남았었고 이십대의 중반에야 이들에게는 사회적응이라는 과제가 추후에 던져지는 것이었다. 지금은 신체검사 일짜만 기다리는 처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군입대를 위한 시간보내기의 시절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차라리 일찍 자원입대한 규식이가 부럽기도 한 이들에게 단 하루밤이라도 술이 있기에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나날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42.&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용철은 엄마가 마련해준 돈을 가지고 경부선을 탔다. 툭하면 무작정상경이 영화의 최초 장면으로 잘 인용되던 시대라고 해도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 누구나가 낯선 수도 서울로 지방에서 입성하면 무작정상경이란 단어에서 자유롭지 못한 감정을 가지게 되는 70년대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한양으로 간다는 그런 고상한 말은 낯간지러운 것이었다. 무슨 사연을 가지고 중앙으로 향하는 부나비와 같은 무리라고 욕을 할지라도 태어난 땅을 박차면 그 누구나가 일단 기차역으로 달려가서 사람들이 제일로 많이 몰려가는 그 지역으로 가게 마련인지도 모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미 서울은 만원이다란 말이 퍼지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지만 그 무리들의 움직임을 막을 도리는 없어 보였다. 일단 시작부터 굶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부산역 매점에서 김밥 한줄을 사서 배낭에 집어넣고 개찰구로 나섰다. 미련은 없었다. 다들 떠나온 고향을 잊지 못한다고 하지만 용철에게는 적응이 문제지 그따위 과거에 얽매이는 그런 못난 짓은 아니할 작정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나운스멘트가 흘렀다. '서울행 13시 30분 비둘기호 개찰구...' 이 방송이 아마 고향 부산을 떠나며 듣는 마지막 방송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엄마는 나에게 각오를 단단히 해라는 충고의 말을 해주었지만 아버지에겐 자신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마 부친은 자신이 고향을 언제 떠난 지도 모를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만 집은 잠자리일 뿐 부친은 언제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다. 도통 가정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부친을 대신하여 엄마가 일인이역, 삼역을 했을 뿐이었다. 형제들은 많지만 그 누구도 제 앞길이 바빠서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겨우 고교를 졸업하여 그 집에서 얻을 것이라곤 잠자리와 음식밖에 없었지만 사람은 앞날을 바라보아야지 숙식만 해결한다고 사는 것은 아니라고 용철은 생각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차피 가지 못할 대학이라면 그리고 사회가 대졸자 이외는 출세의 길을 막는다면 일단 생활부터 자립해보고 자신의 진로는 자신이 개척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진즉 알고 있던 용철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부모가 더 이상 베풀어 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자신이 사회에 진출하여 부모의 몫을 챙겨주어야 할 판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신의 입이라도 하나 덜고 자신의 잠자리라도 하나 없어지는 것이 나머지 가족에게 해주는 자신의 몫이었고 그러다 자신이 여유가 생기면 도와주는 편이 더욱 나으리라 생각하니 고향을 떠나는 것은 손해볼 것 없는 일이었고 자신이야말로 잃을 것이 없는 신세라 생각하니 홀가분해졌다. 집의 돈을 얻어서 떠나는 것도 아니고 지켜야 할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닌바에야 잃을 것이 없는 자는 단지 얻을 것이 있을 뿐이라 생각하니 앞으로의 낯선 생활이 기대까지 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용철은 용수철처럼 튀어나갔다. 일단 먼저 움직이면 무언가 걸릴 것같은 그런 움직임이었다. 서울생활에서 살아남는 법은 그것밖에 달리 없었다. 먼저 기회가 보이면 그 누구보다 빨리 그것을 잡아야 한다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는 생존법을 용철이는 본능으로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기차가 삼랑진을 빠져나갈 즈음에야 이제 부산하고의 인연은 끝났다라는 홀가분한 생각과 함께 앞으로 닥칠 여러가지의 일이 두근거림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스스로 생존에는 자신있다는 용철의 태도는 이제 자라난 고향 부산과의 단절은 바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시작에 불과하고 그것은 두려움보다는 무언가 흥미진진한 그런 것으로 다가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익숙한 것에서 떠나는 것보다는 아직 나이가 젊어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고 잃을 것이 없는 즉, 영어로 말해서 'Nothing to lose'이고 한국말로 '잃어봐야 본전'이란 배짱이 생기는 것이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는 그야말로 젊어 고생이니 꿩먹고 알먹고 식의 서울생활은 어서 빨리 시작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 생각이 들자 앞에 앉은 못생긴 아가씨까지 곱상하게 보여 무언가 말이라도 붙여봐야겠다는 생뚱맞은 여유까지 생기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저..아가씨 서울까지 가십니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런데예, 와예?&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못생긴 것이 맛은 좋다는 말도 있지만 꼬라지가 못생긴 것이 말투마저 정이 떨어진다. 이래서 여자는 경상도 여자가 싫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떠나는 부산의 토박이 말씨가 벌써부터 귀에 역겨워지는 것이었다. 여자는 말투가 고와야지 일단 호감이 생기지 무슨 토박이 말투로 그것도 경부선 상행 열차에서 툭한 말투의 대답에 흥이 팍 식어버렸지만 말을 건 이상 대답은 해야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서울까지 비둘기호로 가자면 열두어시간은 족히 가야는데 심심해서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여자는 별꼴이라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되돌아간다. 속으로 용철이는 '못생긴년이 싹싹하기라도 해야지. 무심하게 돌아가서 다행이다.'싶었다. 창밖을 내다보다가 이내 점심 시간이 되자 역매점에서 사가지고 온 김밥이 생각나서 풀어서 입속에 하나씩 넣으며 차창을 스치는 풍경을 내다보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들은 이제 모내기 준비로 들어가야겠고 이내 농부들은 논에 물대기에 바빠질 터이다. 용철이도 이제 먼저 하급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서울 어느 지역 세무서 말단 공무원짓을 하는 고교 동창부터 일단 찾아갈 요량이었다. 어떻게서라도 어느 놈이라도 앵겨붙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숙식부터 해결하고 나서 자신의 진로를 모색할 생각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김밥도 오늘따라 더 맛있는 것같았다. 집떠나는 순간부터 배가 고파지는 법에다가 평소에 먹성이 좋은 용철이라 한창 나이라서 쇠덩어리라도 소화시킬 것만 같은터라 역전 매장에서 파는 김밥 몇쪼가리를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먹어치웠다. 지나가는 열차 매판원에게 콜라 캔을 사가지고 마시면서 보니 앞에 앉은 못난이가 삶은 계란을 까먹는다. 한번 쪽팔리나 두번 쪽팔리나 매한가지다 생각하며 말을 다시 건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 계란 맛나게 보이네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맞장구를 쳐 준다. &quot;처녀요. 이 아재가 아까부터 마음에 있는갑소. 계란도 좀 건네고 말도 좀 부쳐보소. 처녀 총각이 마주앉아 서울까지 가는 것도 인연아이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자 못난이도 달리 방법이 없다는 듯 계란을 내민다. 용철이는 기회다 싶어 얼른 두개를 집어서 익숙한 솜씨로 의자 난간에 대고 탁탁 계랸을 두드려서 얼른 까고는 입에 밀어넣었다. 목이 막혀 좀 고생하는데 옆 아주머니가 또 거들어 준다. &quot;총각, 천천히 먹으소. 삶은 계란은 소금에 찍어서 먹어야 잘 넘어가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자 마지못해 못난이는 소금이 놓인 신문종이를 내민다. 용철이는 두손가락으로 얼른 소금을 집어서 입에 털어넣자 그제서야 한번에 넣은 삶은계란이 입에서 녹아내린다. 캔콜라로 다시 입을 헹구고서야 두번째 계란을 이제는 두어번씩 나누어서 베어물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총각은 어디까지 가노? 서울 가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예, 처음으로 서울갑니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학교다니러? 아니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뭐, 찾아봐야지예.&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전개된 이야기보따리는 거의 조치원역까지 이어졌고 그 덕분에 못난이와 아주머니로부터 용철이는 여러가지를 얻어먹었다.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다고 일단 시작이 잘 풀리는 듯하여 기분은 더 좋아졌다. 마치 서울이 자기만을 위하여 기다리고 있는 그런 장소이고 그 장소에서의 인연은 무조건 좋은 것으로 맺어질 것 같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집을 떠난 마당이니 무조건 앵겨붙고 이익있는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갈 작정을 했다. 생존의 방법을 연마하거나 실행하려면 모름지기 사람은 서울로 가야는 법,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한양으로 란 말도 있으니 나는 그 광활한 기회의 땅, 서울로 입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대학다니는 친구 하나도 부럽지가 않은 기분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기차가 영등포를 지나고 한강철교를 넘자 누구나가 다 그러하듯 종착역 서울역을 향하는 이상야릇한 흥분과 기대로 차안은 술렁였다. 용철은 처음인데다 서울 생활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커서 거의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차장밖으로 보이는 낯선 거리나 사람들이 신기하기도 했고 자신도 저 무리에 속한다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어서 이곳이 마치 고향인 것같은 착각마저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물론 마중나온 이는 없었지만 누구보다 일찍 짐을 챙겨서 개찰구로 나섰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40-42)&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40-42)&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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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우리시대(37-3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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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cho3237.184</id>
	    <author>
		    <name>속사프레서</name>
	    </author>
	    <updated>2009-09-18T06:04:13Z</updated>
	    <published>2009-09-18T06:04:1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37.&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오늘도 학교 앞에서 작은 시위가 있었다. 민도는 왜 대학생들이 데모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아직 고1에 불과한 자신이 정치에 대한 관심도 없었지만 날로 심해가는 최루탄 가스 냄새는 맡으면 맡을수록 익숙할 법도 하지만 마실 때마다 화가 났다. 함부로 남의 코에 이런 지독한 가스를 집어넣는 그 사람들에 대하여 화가 나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어느쪽이든 빨리 항복을 하든지 아니면 따로 여의도 광장같은 곳에서 시위를 했으면 했다. 혜화동 로터리에서 벌어지는 시위때면 언제나 바람의 방향에 따라 집쪽으로 최루가스가 불려 오곤 했던 것이다. 무엇으로 배합을 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최루가스는 어떨 땐 피부마저 따끔거리는 것 같았고 오뉴월과 같은 더운 계절이면 더더욱 냄새가 사라지지 않거나 땀이 나는 통에 정말로 지겨웠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초등교나 중등학교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TV나 신문에서도 종종 시국관련 뉴스가 나오고 '긴급조치'라는 무서운 낱말까지 등장하는 통에 평소에도 잔걱정이 많은 민도는 가스냄새가 솔솔 날때면 연이어 무슨 사변이라도 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럴 때면 아랫동생 민옥이와 함께 서로 놀란 토끼모습을 하고 불안해 하기도 했다. 막내 민숙이는 아직 어려서 초등교를 다니고 있어 가끔 여린 코를 문대며 &quot;언니, 무슨 냄새야?&quot;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민옥이와 함께 막내를 골려주기도 했다. 혜화동 로터리 빵집에서 빵타는 냄새라고 놀리며.&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빵이 왜 매워?&quot;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마늘빵이거던.하하..&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렇게 우스개로 놀다가도 TV에서 무서운 자막이라도 뜨면 이내 엄마에게 야단맞을 걸 알면서도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는 엄마에게 달려가서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네딸들의 수다에 시끄럽지만 가족들이 사는 것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민화는 아직 학교에서 안 왔니? 요즘 대학가가 시끄럽다던데 얘는 학교가 파하면 어서 오지 않구.&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민화 언니는 언제나 바빠요. 마당발이래나 자기가.&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제 자신도 얼마있지 않으면 가게 될 그 대학에 갓 들어간 민화언니가 부럽기도 하여 민도는 흉을 보았다. 민도는 대학생활이 낭만이 가득한 그런 곳으로 보았는데 요즘 들어서는 불안하고 무섭기도 한 그런 곳으로 비추어져서 입시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게 될 내년이면 좀 조용해지길 바랐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성균관대학이 인근에 위치하여 이들이 혜화로터리를 점거할까 로터리 인근의 골목길에는 언제나 전투경찰버스가 상주해 있었다. 가끔 무전기를 든 늙은 직업경찰도 눈에 띄었지만 머리를 짧게 깎은 군인모습의 그들은 언제나 지쳐보였다. 사과처럼 생긴 최루탄을 목에 두른 고참스런 복장의 전경도 보였다. 아마 지독하게 매운 가스 냄새는 저렇게 빨갛게 보이는 수류탄처럼 생겨먹은 일명 '사과탄'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보기에는 예쁜 그 사과탄을 투석으로 나오는 시위대에게 던져서 터뜨리는 것으로 아는데 빵빵하고 터지는 그 소리도 기분나빴다. 민도는 이제 가을학기로 접어드는 고2생활에서 오며가며 겪는 로터리 횡단이 조금은 더 수월해졌으면 하는 바램을 해보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엄마는 부엌에서 카레라이스를 만들고 있었다. 민옥이는 공부에 열중하고 있고 민숙이는 만화책을 보고 있는 작은 한옥집에서의 생활이 안정적이라서 참 좋았다. 다만 아빠의 사업이 번창일로에서 그만 사장이 미국으로 달아나는 불운을 겪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 시국못지 않게 어두움을 깔지만 그래도 딸만 네자매인 식구들이 복닥거릴 땐 아빠도 사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잊어버리곤 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민도의 부친 문형도 사장은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실향민이었다. 실향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겪은 고생담이야 각 가정마다 하나의 대하소설감이었으니 문사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향에 남겨둔 노모와 아내를 생각하며 겪은 세월이야 분단 한국의 피난민이 의례 겪은 것이었기에 문사장은 이남에 내려와 만나 이룬 이 가정에서 북에 두고온 가족들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아내도 역시 같은 지역의 실향민이었다. 하마 하마 기다리던 통일이 점차 멀어지자 느지막히 두사람이 만나서 이룬 가정이었기에 천금을 주고도 바꾸지 않을만큼 소중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시국과 맞물려 수출기업으로 막 발돋움하던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았다. 처음엔 동업관계로 사촌동생과 시작한 회사의 자금담당겸 총무일을 하고 있는 문사장은 졸지에 사촌동생이 경영권에서 빠지면서 사장직함까지 맡았던 것이다. 수출입국을 내세우며 정부에선 수출산업을 독려한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관료화된 은행이 도와주는 것은 정부가 지정한 몇개의 대기업뿐이었다. 알찬 중소기업을 육성한다고 소리는 자자했지만 점차 자금줄이 막힌 회사는 더욱 어려워졌고 급기야 사촌동생이 자기자금을 회사에서 빼어내고는 미국으로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지자 문사장이 그 회사를 맡게 된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워낙 선비형인 문사장은 야전사령관으로서 험한 수출산업의 역군으로는 미흡했다. 은행에 가서도 굽신거리고 그래도 안되면 막생기는 강남의 룸싸롱에라도 은행 대출담당을 불러내어 노골노골하도록 구워 삶는 편법을 구사할 줄 알아야하는데 초등학교 교감선생 타입의 문사장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직원들에게 언제나 송구스런 마음으로 진력을 다하여 내핍경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함께 피난 온 부친이 남겨준 혜화동 한옥 한채뿐인데 이 집도 은행에 저당을 잡고는 회사 운영자금으로 대출을 일어켰으니 소유권 표시만이 문사장 이름으로 되어 있을 뿐, 사실상의 주인은 은행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오늘도 힘없이 대문을 두드리니, 마당 안쪽에서 딸들의 왁자한 소리와 함께 대무이 열렸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아빠, 오셨다. 엄마, 아빠가 오셨어요.&quot; 언제나 밝은 딸들의 요란함이 파김치가 된 문사장에게는 활력소였다. 아이들이 이방 저방으로 우당탕거리며 뛰어다녔고 아내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사장은 내심, 이런 평화가 계속 이어지기만을 바랐다. 더 이상의 욕심도 없었고.&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여보, 씻고 식사하세요. 준비할께요.&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아내는 서른이 넘어 노처녀로 늙다가 홀아비 아닌 홀아비가 된 문사장을 소개로 만나서 별로이 준비도 없이 가정을 채렸었다. 마당에는 작은 우물이 있었지만 이집에 처음에 올 적엔 그 물로 밥도 지었지만 어째 요즘은 탁해져서 여름이면 수박이나 담구어 놓는다든지 아니면 등물을 할 적에 퍼올려 몸에 부을 따름이었다. 겨울에도 물은 나왔지만 찬기운은 없지만 마당에서 그리 쓸 일이 없기에 여름에만 이용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래도 세숫대야에 담아서 윗통을 벗어던지고 세수를 하노라면 시원한 물은 찬 얼음물과 같아서 시원했고 대청마루에 나앉으면 여름나기는 그만이었다. 한옥이 주는 시원함이랄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민화는? 언제나 민화가 저녁에는 보이지 않구려.&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갠 대학들어가더니 선머슴애가 되었는지 밖으로만 나도는구려.&quot; 부엌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민도가 맏언니 노릇을 하는 모양이다. 민옥이 민숙이를 데리고 언제나 3명만 놀다가 이제 고교 고학년으로 진학하더니 독서실이나 보충수업으로 민도가 늦어질때면 민옥이가 민숙이를 데리고 놀 뿐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아들 본다면 내리 딸만 네명을 낳고는 말았다. 아들 복은 없던 모양이었다. 이북에 둔 마누라와의 사이에서도 딸이 둘있었으니 도합 여섯의 자녀를 보았지만 아들은 없었다. 그것이 언제나 죄스러움으로 남는지 아내는 미안해했지만 아내의 탓은 아니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자아, 우리 공주들 오늘도 학교 생활 이야기 들어보자꾸나. 먼저 누가..&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제비 주둥아리처럼 &quot;저요, 저요..&quot;하는 것이 마치 초등학교의 교실에서 선생님이 질문하고 아이들이 답하는 광경과 같았다. 푸짐한 저녁상에서 아이들과 왁자하니 맞이하는 이 저녁의 행복이 이어지길 바라는 문사장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lt;BR&gt;38.&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규식이는 특전사 입대를 앞두고 모친과의 냉전을 한동안 이어갔다. 결국엔 아들의 결정에 따라올 수밖에 없었지만 엄마는 단한번도 흔쾌히 허락한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을 하여도 아들의 결정과 생각하는 바를 인정할 수없다는 식이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서 떠나왔건만 오늘같은 날에 밤깊은 연병장에 남아서 누워 별빛을 바라보노라면 그래도 그 집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군대가면 다들 효자가 된다지만 그것도 지독한 훈련으로 악명높은 특전여단에 소속되어 하사계급을 달려고 올챙이 포복을 하노라면 이제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냥 태어나 자라며 가정을 떠나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사춘기를 겪으며 자아가 확립된다지만 이 과정에서 규식은 어린 마음에 너무 섣부른 결정을 한 것은 아닐까하는 후회가 들었다. 천리행군이라는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장시간 장거리 훈련뒤의 후련함보다는 이렇게 청춘을 단체생활로 옥죄는 군생활로 다 보낼 것같은 기막힌 생각이 들자, 그토록 떠나고픈 엄마의 가정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낮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는 연병장에 대자(大字)로 누워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 그래서 사람들은 유핼가 가사에 뜨거운 눈물이라는 말을 썼구나.'하는 감탄이 드는 그 뜨거운 눈물이 늦여름인데도 눈자위가 느껴지도록 흘러 내리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특전사는 특수부대라서 훈련장소와 훈련기간을 외부에 잘 알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입대후 처음으로 가족들이 친구와 함께 면회온 김해공병학교에서의 면회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훈련을 하노라면 언제나 머리속은 텅비게 되어 태어나 20년간 보내온 그 시절은 삭제되어가는 느낌이라서 역순으로 규식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과의 최후의 만남으로 그 면회날을 기억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엄마는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여자였다. 이북에서 피난온 여느 여인처럼 생활력도 강했고 이남사람들이 멸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일 적이면 단호하게 대처하기로 유명한 엄마였다. 규식이 초등교를 졸업하고 명문 중학교 입학을 했을 때도 그 누구보다도 마음속 깊이 피난민의 한이 아들의 명문교 입학이라는 결과로 나타남을 기뻐했을 것이다. 그런 엄마가 고교생활을 실패로 끝내버리고 낭인생활을 거쳐 특전여단의 '단풍하사' 계급을 달려는 철없는 아들을 대학입학을 한 아들친구들과 함께 면회를 온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천천히 먹어라. 체하겠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특전사 대원들은 자갈도 소화한댔어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엄마에게 특전대원들의 소리없는 그 훈련의 고생담이 그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 생각하니 다른 아이들이 다 가는 그 평범의 길을 자진해서 거부해버린 그 오만과 독단의 댓가가 오늘이야 느껴져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들에게 첫 면회를 간다고 바리바리 싸가지고 간 음식들을 보자기에서 풀며 엄마는 속으로 또 얼마나 울었을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날은 덥지 그늘은 없었던 그 김해공병학교에서의 첫 면회는 다들 더워서 어쩔 줄 모르는 날씨였지만 울음따위는 결코 보이지 않았던 그 강철같은 엄마의 눈자위도 벌겋게 된 것은 단지 더위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들이 측은하다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아들 친구들의 평범한 진로가 더욱 엄마의 가슴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3년에 마치는 군생활을 4-5년을 보내는 하사계급장이 무엇 그리 대단하며 아들은 평범함을 거부한 자신의 선택을 부풀리며 허풍을 떨었지만 그럴수록 엄마의 가슴 한(恨)은 더 깊었을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날은 동네친구들이 그 또래의 친구의리를 과시하는 양 죄다 몰려왔었다. 아마 자신들도 얼마있지 않아 가게될 군생활에 대한 궁금증도 있어 그렇게 몰려들 왔을 지 모른다. 인문계 고교를 졸업하여 대학에 입학한 친구, 실업계 졸업하여 사회에 진출한 친구, 그도저도 아닌 아직도 낭인생활 중인 친구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막 스물살이 지나자 그 이전에는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이제 제법 각도가 벌어지는 그런 길을 제각각 걸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자신만이 어떤 커다란 덫에 걸려서 십년 세월의 반인 5년, 이제 막 입대했으니 남은 세월이 5년이라는 긴 시간만이 남아있음을 알아차리자 그 후의 생활이 보이는 것 같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서 경험많은 부모님의 말씀을 들어라는 옛사람들의 충고가 있었나 보다 생각하니 더욱 울적해졌고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찾아 물었다. 밤은 깊어 적당한 온도에 연병장 모래는 기분좋은 따뜻함을 몸에 전해주었다. 언뜻 언뜻 스쳐가는 밤하늘의 구름사이로 찬란한 별세상이 엿보였다. 이곳은 주위 불빛이 없는 편이라 별구경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고 게다가 밤까지 깊어가니 별구경만 해도 날새는 줄 모르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또 내일이면 내일대로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팔도에서 떠돌다 무슨 기막힌 사연으로 독한 군대에 자원입대한 개성강한 청년들을 한곳으로 정신을 집중시키려면 혹독한 훈련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을 지도 모른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이번에 마친 천리행군을 제대할 때까지 몇번을 더 해야하는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생각을 마지막으로 규식은 풀어젖힌 군복과 군화를 입고 신기 시작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39.&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상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난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며 때로는 역사의 기록이 그것만을 기록한 것이라고 알고 있지만 허억(許憶)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태양빛에 바랜 것만이 역사가 아니라 월광(月光)에 물든 것도 엄연한 역사라고 자신은 믿어마지 않았다.&lt;/P&gt;
&lt;P&gt;그런 사람이 자신이었다. 아마 그것은 가족사에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제시대부터 숨은 가족의 기록만이 전해왔고 자신의 아비마저 왜경의 그 끈질긴 추적의 피해자였고 그런 부친의 과거가 단 한번도 존경스럽게 인정받지 못한 사회에서 자신마저 숙명적으로 그런 숨은 역사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지레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모친에게서 간간히 들은 이야기가 전부인 그 얼굴 모르는 아버지의 그 헛수고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기는 커녕 헛웃음이 날 뿐이다. 왜 그랬을까? 무엇을 위하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단지 한여름 한낮의 메뚜기가 어떤 목적없이 이리 저리 펄쩍 펄쩍 뛰듯이 거대한 우주의 눈으로 보면 아버지의 그 고난의 투쟁과 도피도 마치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저항하며 무언가 불만족스럽게 이 세상을 보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모친의 그 후의 고생담은 듣고 보고 자라서 달리 꺼내어 되씹고 싶지도 않았지만 허억은 분명한 사실하나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같았다. 타협없는 그 어떤 추구. 부친을 기억하는 사람도 보고싶어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단 하나의 혈육으로 남은 자신에게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부친은 언제나 말하는 것 같았다. '타협하지 말라.'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남들은 시대정신이 피폐해지고 기회주의자들만이 득세한다고 하지만 그런 말 정도를 꺼내는 이들조차 밥상에 숟가락은 걸쳐놓은 자들이 아닌가. 단지 자신의 밥그릇이 맞은편 사람보다 작다는 그런 말에 불과한 것이었다. 부친은 무엇을 위해 독립운동을 해가지고 밥그릇 싸움판에서 판세가 우세한 사람들의 세상으로 만들었을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생각에서 허억은 타고난 머리로 대충 대학생활은 하지만 해방이 된지 30년, 한세대 세월이 흘른 요즘을 생각해보았다. 호의호식이 삶의 목적의 전부라면 왜 아버지는 그렇게 숨어다니다 인생 종을 쳤을까. 그 종을 어디서 어떻게 친 줄도 허억 자신으로서는 알지 못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갑갑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서 집에서 말없이 살림만 살며 자신 하나만을 바라고 사는 엄마의 모습에서 더욱 답답함을 느꼈다. 독립투사로 그리고 사회주의자로 이리저리 숨어다니다 인생을 끝낸 그림자의 인생을 부친은 살고 갔다. 자신만을 모친에게 남기고. 그렇게 자란 억이였기에 여느 집 자식과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도 그렇게 여겼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부선망 독자'라고 군생활도 면제를 받은 억이었지만 대학생활을 십년을 두고 하고 있었다. 때로는 갑갑하여 휴학을 한 뒤에 전국을 돌기도 하였고 산사에서 불경을 외며 엉터리 절간 식구노릇도 했었다. 마치 왜정때 판사로서 사형선고를 내리고선 전국을 돌다가 입산수도한 '효봉'선사의 흉내나 내는 것처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 타협하지 않는 그 성격은 절간에서도 문제를 일어켰다. 이미 자신의 눈으로는 절에까지 세속의 탐욕논리가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절이 싫어면 중이 떠나라고? 그래서 억은 떠났던 것이다. 억의 눈으로는 세간의 개발논리가 절간을 물들었고 세간의 논리가 정치나 사회를 이미 잠식해 보였던 것이다. 이런 세상을 위해서 아버진 그렇게 이념을 가지고 돌아쳤는지 살아있다면 묻고 싶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바야흐로 이제는 민주화의 시대였다. 정치적인 민주화는 멀어 보였지만 여기서의 민주화 개념은 누구라도 드러나지 않는 불법이 아니라면 머니게임으로 부를 만들 수 있는 약육강식의 장(場)이 활짝 열려 있는 셈이었다. 60년대만해도 어떤 일정한 사회적인 룰, 그것이 구한말을 거쳐 왜정시대를 거친 사회적 암묵적인 관습이라고 해도 좋았고 사회이성이랄까 무언가가 있어 보이지 않는 정서적인 합의가 있었는데 이제 개발을 위해서는 이런 구습의 룰이 파기되어야만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 것의 첨예한 드러남이 바로 검은 안경을 낀 군복차림의 일단의 무리 등장이었다. 방법은 강력했고 어김없는 군대식이었지만 눈에 드러나는 결과는 그런 모임에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고 우리는 훗날에 그 과정을 '근대화'라 불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미군의 들여온 민주주의가 파산을 거듭하는 이상 사람들은 다른 체제를 불렀고 외견상으로는 민주주의 탈을 쓰고는 있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판이한 내용, 즉 사람들이 전혀 본 적이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 알수없던 그 힘이 작동했고 사회는 숨을 죽이며 그 힘을 따라서 배고픔을 이겨낸다는 그 믿음 하나가 모든 것을 합리화 해준 덕택에 우리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이런 발전을 부정하고 딴지를 걸거나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은 모두 긴급조치로 다스려져야 할 일종의 정치범이었다. 일제시대 부친이 꼬리표을 단 그 '불량선인(不良善人)'이 되어 추적을 당했듯이 다른 이념을 허용치 않는 분위기는 그 다른 이념에 시간과 능력을 빼앗길 수 없다는 희한한 독선논리로 미화되어 무조건 '나를 따라라.'식의 선도적 근대화 이론을 들먹이며 일단 '파이(Pie)'부터 키워놓고 나서 나누어 먹는 방법을 논하자는 식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누구든 파이를 키우는 과정의 방해물은 민족과 국가의 반역자였고 보릿고개를 넘은 민족적 영도자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아주 못된 유신시대의 '불량선인'이 되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반도 위쪽에선 '대를 이어 충성하자.'며 부자세습을 가지고 공산주의를 농단하고 있었고 아래쪽 남한에선 새마을운동이라는 사회경제적 혁명을 가지고 독재논리를 펴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흔히들 반골기질이라는 말을 하지만 억이 부친에게서 받은 이 반골기질은 이땅에 사는 '삐딱이'들의 한사람으로서 사는 억이에게는 유전자와 같은 의미였기에 필연적으로 억은 이런 땅의 획일적인 이념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일종의 자생적 반체제랄까 어쨌든 20세기에 들어 민주주의를 빙자한 여러 이념들이 난무했고 심지어 '파시스트'의 등장으로 국가지상주의까지 들어와서 두번의 세계대전을 겪었지만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생소했고 왕조를 이어 36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식민지시대라는 단절이 있었지만 바로 민주주의니 공산주의니 넘어가는 것에는 서투른 면이 있음이 틀림없다고 억은 생각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 이념이 돌아가신 부친의 그것과는 어떤 차이를 가지는지는 물어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아마 부친도 다만 '이것은 아닌데...'하는 부정심리의 결과로 해방후까지도 그림자와 같은 항거를 한 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좌익활동을 했다느니 빨갱이 운동을 했다느니 이분법으로 나누었지만 자식으로서, 또 한 지성인으로서 보는 부친의 이념은 그렇게 쉽게 분류되는 그런 것은 아니었고 지금 억이 가지고 있는 이른바 신념체계인 정치이념도 정치학에 나오는 그런 쉬운 분류법으로 딱 나누어지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실 혼돈스러웠고 아직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방황하며 몸으로 배우고 있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바로 '이것은 아닌데...'하는 비판의식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선배님 계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누가 써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갓 들어온 사회학과 후배였다. 아무도 없는 써클룸을 지금 시간에 들린 사람도 생소하고 아직도 써클 룸에 웅크리고 있는 억도 생소한 사람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누구...아..석근이구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네, 지나다 불이 켜져 있길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래 학교 생활 만족스러워? 프레쉬맨적에는 모두가 생소하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래요. 이런 어수선함을 위해 그렇게 입시공부했는지 모르겠어요. 속았다는 느낌이랄까 실망했다라고 할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어수선한 것이 사람사는 세상이지, 그래서 이 써클도 만들었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선문답같은 선배의 답변에 더욱 어리둥절해진 석근이가 물었다. &quot;선배님은 대학생활을 그렇게도 오래 하셨다면서요? 왜 빨리 졸업하지 않구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왜 빨리 졸업해서 대기업 취직해서 고속승진에 알콩달콩 살라구? 석근아, 그 요즘 한창 번창하는 교회사람들이 즐겨보는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지. 예수가 빌라도의 심문에 답하는 말, 'I do not belong to this world. 나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이렇듯 나도 예수 흉내를 낸다면 '나는 이 미친듯 달려가는 이 사회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이쯤 말할 수 있을까, 하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쨌든 재미나고 무언가 사회 변혁 의지를 가진 선배로서 보이는데 시절이 하 수상하니 석근이의 눈으로도 좀 불안해 보였다. 그래도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어떻게 보면 시시한 강사나 교수들보다 나아보이는 학교 선배로서 무언가 토론해보고픈 그런 사람이었다.&lt;/P&gt;
&lt;P&gt;&quot;저녁은 먹었겠지? 나는 여지껏 저녁도 안먹고 궁상을 떨고 있었네. 학교앞 실비집이나 가자.&quot; 이렇게 말하며 이름도 발음이 이상한 '허억' 선배는 나서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37-39)&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37-39)&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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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34-36)</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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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속사프레서</name>
	    </author>
	    <updated>2009-09-15T05:22:39Z</updated>
	    <published>2009-09-15T05:22:3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34.&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lt;BR&gt;말숙이는 친구 병인이의 오빠 병욱이와의 만남을 생각하면 할수록 분했다. 학교만 시계추처럼 다니게 보인 그 병욱이는 사회학도라는 것을 책속에서만 찼으려는 범생이였다. 말숙이는 여자대학을 다니지만 여느 학생과는 다르다고 자신은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 앞의 수많은 양장점에서 맞춤옷이나 고르는 그런 여대생의 한 사람으로 자신도 비춰질까 어떻게 보면 너무 지나치리 만큼 다른 티를 내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암울한 시대에 태어난 것만도 억울한데 정신이 치장에만 팔리거나 아니면 고교시절의 연장인 것처럼 받아쓰기 열심인 그런 학점에 민감한 학생, 그 둘중에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만의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며 타학교와의 서클 연합등에 부지런히 참석하는 그런 참여정신이 강한 지성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만 이론공부만 한 그 범생이에게 일종의 모독을 당한 것으로 그날의 만남을 기억하고는 병인이에게 졸라서 병욱이의 하숙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병욱이 학생, 병욱이 학새앵~~&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침부터 하숙집 아주머니가 큰소리로 문간방에다 대고 고함을 친다. 병욱이는 전날 과모임의 여파로 아침 늦게까지 자려고 했는데 웬일이람하며 문을 여니 안방에서 아주머니가 전화가 왔단다. 부산 부모님과는 통화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전화 올 곳이라곤 없는데 싶어 얼른 안방으로 건너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예, 병욱입니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저, 기억하시겠어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누, 누구신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처음 온 여자 전화라며 아주머니와 아저씨도 의미있는 웃음을 지으며 방안에 계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닌데 자신이 누구라고 얼른 소개도 하지 않아 더욱 민망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병인이 친구 말숙이요. 아시겠어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당돌하게 하숙집까지 전화질을 하는 것부터 마뜩찮은데 웬 볼일도 없는 사촌여동생 친구라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첫 만남이 이루어진 곳은 신촌로터리 부근의 어느 찻집이었다. 당시의 찻집은 팝송을 주로 디스크 쟈키가 LP판으로 선곡하여 다방손님의 신청곡 위주로 틀어주는 젊은 아이들이 이용하는 곳과 일반인들이 드나드는 쩔쩔끓는 보리차가 나오며 커피 주문을 받는 다방 레지들이 설치는 그런 노땅 다방이 있었는데 말숙이와 만난 곳은 그 중간 형태쯤 보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마 서울지리에 익숙치 않은 병욱이를 배려하여 선택한 약속장소이었다. 잔잔한 노래가 낮게 깔려있는 지하다방을 병욱이는 들어가서 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말숙이를 발견했다. 말숙이는 지난번 첫 만남보다는 더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여대생이라기보다 엄마 심부름으로 잠깐 동네 구멍가게에 뭘 사러 나온 그런 딸아이와 같은 차림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심 병욱이도 만만한 생각이 들기도 하여 편안해 졌다. 얼른 자리에 말도 없이 앉았다. 다시 한번 말숙이 얼굴을 살피니 그런대로 귀염성이 있고 아직 덜 자란 구석이 엿보이는 그런 얼굴이었다. 자신은 다른 여대생과의 차별을 내려고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아도 군생활까지 마친 병욱의 눈으로는 아직도 설익은 고만고만한 여자동생같은 또래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병인이 친군데 별안간 이 아저씨는 웬 일로 보제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약간의 농담을 섞으며 친숙함을 드러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저씨? 구태의연한 사고 그대로 딱 맞는 표현이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돌아오는 대답은 짧지만 무언가 가시가 숨어있는 공격성을 띄고 있었다. 병인이 말대로 지하서클 활동하는 '무서운' 친구라더니 과연 다름이 있었다. 이런 좀 의식화가 되어 있는 천둥벌거숭이같은 여대생이 무서운 법이라는 것을 병욱이도 익히 알았지만 사촌동생 친구라는 이 아이에게는 동생같은 어떤 친숙감이 들었고 왜 이들이 학교생활과는 어떤 의미에서는 무관한 학생운동에 빠졌고 이들이 생각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하는 호기심도 동시에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같은 학생처지에 그렇게 세대차이로 나눌 필요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병욱씨, 먼저 세대차이로 접근한 사람은 당신이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섬뜩한 반격에 더욱 기가 질렸지만 가시는 날카로와야 하는 법이라 호기심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병욱씨이? 너무 낯설게 들린다. 무섭기도 하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럼 '허니이'나 '오빠' 정도로 부를까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또한번의 비꼼이 잇고 나서야 차를 주문하고 일상사로 돌아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병인이 말로는 말숙이의 성장환경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편모와 단둘이서 살아온 아이로 아마 가정적으로 부친에 대한 원망이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연결된 것인지도 몰랐다. 그것은 심리학자나 사회학자의 몫이고 병욱이는 일단 말숙이와의 만남에서 느껴지는 단 하나의 막을 제거하기 위해서도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두시에 만난 만남이 오후 늦게 찾아간 술집으로 이어졌다. 어지간 해서는 남학생들의 술집에 선뜻 따라 나서지 않는 법인데 아마 말숙이는 이런 경험이 있는 듯 어색하지 않고 따라왔다. 병욱이는 말숙이라는 이 여대생이 왜 자길 만나자고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도 점차 자신의 세계와 다른 곳에서 생활하는 듯한 이 학생에 대하여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항간에는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평가가 분분했다. 반체제 운동을 주도하는 그들이야말로 기성세대가 못해주는 그런 역할을 한다는 긍정적인 평가에서 지뿔도 모르는 것들이 그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말썽만 일어킨다는 부정적 평가가 두 부류였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아직은 서슬퍼런 정권의 정점에서 부러지기 쉬운 학생운동은 자칫하면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반체제운동이라며 정권연장 시도자의 사회 탄압 구실만 제공할 뿐이라는 부정적인 면과 학생이 이럴 때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냐는 4.19혁명때의 학생역할에 기인한 선도적인 학생운동의 역할론을 들고 나오는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 극히 평범한 학생생활과 군입대로 이어진 체제수호론적인 환경에서만 자란 병욱이에게는 아직은 학생운동은시기상조가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쟌 다르크'처럼 독기오른 모습의 여대생 학생운동가는 특히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존재가 아닌가하는 불신감이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신이 가지 못하는, 감히 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길을 겁없이 가고 있는 천둥벌거숭이로 보이는 말숙이는 되려 이런 꼰대들의 연장선에 있는 이런 병욱이와 같은 학생은 무엇을 위해 학교생활을 하는지 알 수 없어 보이는 존재로 두 극점은 서로 통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양쪽은 서로의 궁금증을 향해 공동의 매체로 알코올을 선택한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직 가을 문턱이라 해는 길어 늦오후였지만 밖은 밝았다.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텅비어 있었다. 부친을 닮아서 술이 강한 병욱은 말숙이와 오늘은 한껏 마시며 무엇이 이 어린 여자아이를 투사로 만들었나 한번 살펴 볼 작정이었다. 부침개를 안주로 우선 소주 한병을 시키고 담배를 물고 피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나도 한대 펴도 돼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당시에 여대생들도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에서 멋부린다고 담배를 꼬나물고는 했지만 그래도 기성도덕율이 아직도 살아있는 그때에 날도 어둡지 않은 선술집에서 나잇살 어린 여자가 남학생과 맞담배를 피우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심 깜짝 놀랐지만 술까지 함께 마시는 마당에 기호품인 담배까지 피우라 마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제 지성인 정도이면 남녀가 공히 담배정도는 나누는 것이 선각자(?)의 자세가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술은 관대하여도 담배에 대해선 아직까지 화류계 여성아닌 담에야 무척 보수적인 입장인 병욱이는 느닷없는 말숙의 태도에 한번 당한 꼴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담배는 몸에 안좋은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럼 오빤 왜 피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얼랠레, 이젠 병욱씨에서 오빠라고 하네. 술도 들어가기도 전에 말부터 놓으며 담배갑을 집어서 한대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불 붙이는 폼을 보니 초보는 아닌 듯하여 과연 이 아이에게 어떤 내면세계가 들어있나 더욱 궁금해 지는 병욱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맞다. 몸에 안좋으면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 함께 늙어가니 술인들 담배인들 함께 못나누리, 싶었다. 병욱이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마시다가도 이렇게 나이어린 여대생과 함께 술잔을 나눌 줄이야 생각지 못했고 하숙집에 느닷없이 전화가 온 것도 이상한데다 술까지 연결된 이 상황이 만들려도 만들어 질 수 없는 것이어서 인연인가하는 생각이 들어 픽하고 혼자 웃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왜 웃어? 오빤 담배 피고 술마시는 여자 첨 봤나 봐.&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래 너희들이 내세우는 민주화 얘기나 들어보자. 민주화 좋은 이야기지만 지금같이 엄동설한에는 조금 숨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 너희들이 주장하는 것이 '맑시즘'이냐? 이런 이바구 대놓고 술집에서 하는 이 상황 자체도 위험한 게 지금 이때야. 아직 새벽도 오지 않은 캄캄한 밤인데 닭이 우는 것 아냐?&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보다는 답답한 상황을 깨는 그 역할을 대학생이면 지성인답게 행동해야는 것 아냐? 오빤 이제 군복무도 마쳤겠다 입도선매(立稻先賣)식으로 대기업들 입사유치 작전에 말려 취직만 하면 된다는 거야. 요즘 경제발전이 빨라 명문대생 서로 스카웃하려 대기업 인사팀들이 설친다며? 그렇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거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럼 잘먹고 잘 사는 것 이상의 이념 있으면 함 말해봐. 너네들이 말하는 원시적 공동사회를 이 현대사회에서 꿈꾸겠다는 거야 뭐야? 그리고 한번 물어보자. 대체 너네들에게 그렇게 행동하라는 권리를 누가 준 것이래? 일반 시민들이 너희들에게 대표권이라도 주었단 말이냐?&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럼 박통은 대표권을 받아서 군사혁명 일어켰남?&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쉿! 못말리는 애네. 남자같음 군대서 머리에 김이 나도록 한번 돌아쳐야 정신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얼빠진 꼰대같은 남자야. 대체 군대가 뭔데 군대, 군대 하는 거야. 남자가 군대갔다 온 게 무슨 벼슬이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우리들은 자웅을 결하듯 소주와 함께 몇시간을 용호상박(龍虎相搏)식 논쟁을 이어갔다. 물론 끝은 없었지만 그런대로 서로의 젊음을 그렇게 토해내듯한 시간이 필요한 시대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35.&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용철은 더 이상 졸업 후에 부산에서 할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리 사회반이라도 우열은 있는 법이라서 상위권에 드는 아이들은 이내 시중은행에 팔려 나갔고 이어 지방은행까지 팔렸지만 진학반 아이들을 부러워 하랴 친구들 부러워하랴 기웃거리는 통에 용철에게는 그 흔한 기업체 입사도 쉽지 않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집안도 쪼들리는 판국에 다시 재수를 하여 대학진학을 하려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학교선배 몇몇에게 추천을 받아 취직한 작은 사무실 근무는 혈기 왕성하고 성취욕 강한 그를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이렇게 몇몇 군데를 전전하다가는 경력관리에서도 좋지 않았고 그렇다고 마냥 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회는 이제 마구 변하는 모양으로 일단 동네모습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아둔하게 발전되지 못한 지역으로 남은 해안마을이 이제는 하숙이나 세를 놓을 방이 부족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바로 신작로라 불린 해안도로는 이제 내륙도로로 전락(?)한 꼴로 길 옆 양쪽 모두를 육지가 되어 해안도로란 명칭조차 바뀌어야 될 지경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더 이상의 해안도로가 아닌 것은 바다쪽의 매립으로 바다가 한참을 물러났고 그 매립된 토지에 건물이 들어서서 그 건물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이 필요했기에 이제 이 마을의 사람만으로 그 냉동창고 필요인원을 메꿀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외지에서 직업을 찾아온 이가 이 마을에서 방을 빌리기 마련이고 기존 주택들은 블록으로 이층을 올리고 세를 받아먹는 그런 세입주택이 늘어났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동네 발전과는 상반되게 이 마을을 용철이는 떠날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한때는 월부 책장사도 좀 하여 친한 친구들을 꼬셔서 팔기도 했지만 어떻게 그 월부 책장수가 자신의 직업이 될 수 있나 싶어서 곧 그만두었다. '헤르만 헤세'전집을 마음여린 석근이에게 강매한 적이 있을 뿐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수와 광호를 해안가 선술집에 불러내어 억지 흥을 돋우며 태어난 고향을 떠나는 장부(丈夫)의 이별사를 밤바다와 함께 나눌 뿐이었다. 내일이면 일종의 무작정 상경을 할 참이니 그래도 고향 친구라고 두엇을 불러 송별회를 갖는 밤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광호, 넌 아직 직장도 못잡고 웅크리고 있나? 자석아. 너거 형이 서울서 산다며? 함께 올라가자.&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광호는 아직 마음을 못 정하고 집떠나는 용철을 부러움 반, 두려움 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대꾸한다. &quot;우리 동네보다 좋은 곳이 어딨노?&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수가 맞장구친다. &quot;맞다. 동네가 좀 시끄러워 졌어도 그런대로 편한 동네다. 할 것만 있다면 역부러 서울까지 갈 필요는 없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용철은 이런 이무기같은 친구들이 있기에 이 동네는 앞으로 많은 세월이 흘러도 이전의 냄새를 간직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이 동네는 이제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무엇하나 된 적도 없었고 집에 있는 한 언제나 발목잡힌 생활밖에 없었기에 엄마에게 잡혀 지내는 규식이가 오죽하면 특전사 지원입대를 했을까 싶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예 김해공병학교에서 특전사 입교훈련을 하며 첫 면회를 받아서 규식 모친과 친구들이 어울려 방문했던 이야기를 꺼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규식이는 한번 휴가 나올 때가 되어가나? 작년인가 특전사 자원입대 직후에 김해공병학교 면회때 간 이후로 소식이 없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왕지사 군입대하려면 시시한 일반군대는 마다하고 아주 독종들만 모이는 특전사를 일부러 자원입대한다며 거품물고 자랑하던 규식이를 떠올리며 말했다. 자랑반, 두려움반, 체념반, 포기반의 심정일거라고 술잔을 입에 가져가며 용철이는 생각했다. 지금의 나의 심정과 같은 것이라는. 서울로 올라가서 세무공무원 시험이라도 칠 작정이라는 막연한 생각뿐인 지금의 자신의 입장과 특전사 입대를 앞두고 진학의 길이 막힌 젊은 청춘이 가지는 막연한 심정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배에 넣듯 술을 목젖 아래로 부어 넣었다. 짜르르한 소주의 자극이 목울대 아래까지 전해졌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해안가 밤바다에서 마시는 술은 평소보다 덜 취한다. 아마 바다내음과 밤공기와 해안특유의 싱싱함으로 취기가 이내 가시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생선회가 취기를 덜 느끼게 하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막연한 불안감과 설렘을 쫓기에는 친구들과의 소주마시기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짜식, 새카맣게 타서 지옥훈련하듯 몸부림치는 모습이 안되어 보이더라.&quot; 평소 말이 없고 술을 마셔도 말수가 그리 늘어나지 않는 광호가 한마디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더운 여름날 김해공병학교 뙤약볕에 특전용사들의 훈련 무용담을 땀을 닦아가며 자랑스레 늘어놓던 규식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 김해공병학교 훈련을 마치고 어느 부대로 이동한다고 말한 기억이 나고 또 한지역 부산인근의 어느 부대에서 훈련을 한다고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마 반여동 쪽인가 대우실업이란 장차 대우그룹의 산모역할을 한 그 봉제공장이 있던 지역을 말하는 듯 했다. 그렇게 우리들의 친구 규식이는 4년 내지 5년의 청춘을 국가에 저당잡힌 채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졌고 이제 용철이도 태어난 고향을 떠나 거대 도시로 탈바꿈하려는 서울로 향하여 출사표를 던지는 순간인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이런 '아나고'회를 어디서 실컷 먹어보랴 싶은 마음에 다시 한번 아나고 꼬리부분을 골라서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고소한 뒷맛이 느껴졌다. 이제 우리동네의 바다를 빼았아 간 여러 냉동창고에서 얼려진 냉동생선들이 전국각지로 판매되는 세상이 왔다. 어릴 적 내륙지방에선 기껏해야 간고등어나 말린 조기 밖에 맛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원양어선들이 북태평양에서 잡아온 명태, 대구 등으로 반찬을 올리게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바다생선을 양식한다는 그 어려운 기술도 이제 착착 진행되어 양식으로 까다롭다는 생선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이제 서울에 가서도 잘만하면 아나고회 정도는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온다는 것을 그날 바닷가 횟집에 모여 술잔을 기울였던 세명은 알지 못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릴 때 갓 잡은 생선을 항구에 풀어놓으면 어부의 아내가 '다라이'에 생선을 담아서 적당히 분류하여 이내 돈되는 생선은 횟집으로 넘기고 아니면 직접 재래시장에 나가서 팔곤하던 그 연안어업들이 이제는 부가가치를 내지 못하게 되고 이어 낚시꾼들의 여흥을 도와주는 낚시배로 전락하는 그 전환의 시기가 바로 이 시점이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참, 서울에서도 '할매집 회국수' 분점이 생겼다더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누가 그러더노.&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서울로 대학간 석근이가 접때 그러더라. 명동 중앙극장 뒤편엔가 생겼다더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희한한 놈. 서울에 먹을 것이 없어 할매집 회국수를 찾아?&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용철이는 부러움이 섞인 어조로 말하며 그래도 대학에 적을 두고 낯선 서울살이를 하는 팔자좋은 석근이가 부러웠다. 자신은 이제 서울 어느 곳 어느 독서실 비슷한 곳에 둥지를 틀고 공무원시험 일정표를 총무처에 가서 얻어서 그 일정대로 공부하여 지원하려는 막연한 계획에 비하면 부모가 보내는 등록금 하숙비로 학교생활만 하는 학삐리들이 부럽기 그지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멀리서 취객들이 떠들며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시비라도 붙은 모양이다. 이처럼 이전에도 해안마을이라 선술집과 작부집들이 유독 많아서 밤이면 소란했는데 이제 냉동회사까지 들어와서는 아예 밤이 없어진 느낌이다. 밤이면 냉동창고의 냉동기가 돌아가는 저주파 소음이 밤새 들려왔고 교대근무로 이어지는 냉동업무로 시끌벅적한 마을이 되어버렸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게다가 어릴 적의 낭만이 깃든 등대마저 태풍이 오면 파도가 자갈치까지 밀려든다고 자갈치 횟집에서 로비를 했는지 별안간 대공사가 벌어져서 아담한 등대에서 우람한 등대로 탈바꿈한지가 몇해나 된다. 그 몇개월이나 이어진 등대 현대화 공사에 특전사에 입대한 규식이가 답답한 젊음을 불살라 노가다로 막일을 했다던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녀석도 오죽 답답하면 그토록 자기 몸을 혹사시키다가 이어 독한 부대에 입대한다며 떠난 지도 이제 일년이 되어간다. 이제 성인이 된 우리 젊은 청춘들은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디론가 떠날 때가 된 모양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떠나는자 말없이 떠나고 남는자 또한 언젠가는 떠나게 되리란 싯귀 비슷한 말이 머리에 떠오르며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을만큼 취기가 올라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36.&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게 서울은 늘어났고 이제 한양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한강 이북지역을 말하는 그 강북만이 서울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의도가 개발되면서 시작된 아파트 짓기는 이제 강북에서의 좁은 땅에서 아직 개발이 되지 않은 강남땅을 개발하기 시작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강남에 산 적도 없는 사람들이 언제부터인가 부자촌의 의미로 '강남'이라는 말을 들먹거리기 시작한 것이 아마 강남개발의 붐이 일고도 한참 후의 일일 것이다. 그래도 인수봉이 사람 대갈통 모양을 하고 멀리 보이는 그 강북지역이야말로 70년대의 서울 풍경과 맞을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직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기 전인 70년대에는 강남을 가려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곧장 가는 지하철이 없으니 환승을 거듭해야 겨우 목적지에 도달하는 곳이 바로 강남 구역이었다. 한강 이남이라고 전부 강남은 아니었고 원래부터 있은 관악구나 구로구 등도 한강 이남의 지역이지만 개발이 시작되어 땅투기, 아파트투기의 본산인 강남구, 서초구와는 다른 의미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때는 아직 강남이라는 단어가 뚜렷이 부각되지 않은 시대였다. 그리고 그 시대가 좋았다. 그 어떤 누구의 입을 빌려도 강남개발에서 큰 이득을 본 자가 아니라면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이 생기기 전인 서울역 인근의 시외버스 터미널 시대에는 강남으로 고속버스 터미널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레이하운드' 로고가 옆구리에 새겨진 그 고속버스가 줄지어 서울역을 돌아서 양동 인근의 자그마한 고속터미널에서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서울로 싣고 다닐 적이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해태제과에서 본격 시판 아이스크림인 '브라보콘'이 등장하던 시절, 은행에서 막 '온라인'서비스로 지방에서 송금한 돈을 서울 통장에서 찾아쓰기 시작하던 그 시절이 바로 70년대였다. 70년대 이전엔 우체국을 통한 '전신환'으로 돈을 주고 받았다고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석근이도 부산에 계신 부친으로부터 하숙비를 송금받을 때면 부산 국제시장에 있던 전자기계 부속품 가게인 부친 가게의 서울 거래처인 세운상가의 'ㅈ'전자상회로 송금된 돈을 받으러 갔다. 아마 부친이 거래처에게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들의 하숙비를 전하는 그런 송금법을 쓴 모양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겸사겸사 매월 25일이 오면 석근이는 지정된 세운상가의 그 가게로 나가서 부친이 거래처에게 맡겨둔 하숙비를 받곤 했다. 세운상가에 들어서면 각종 앰프에서 나오는 음향소리가 시끄러웠다. 이제 음향기기는 '모노'의 시대에서 '스테레오'시대로 이전하고 있었고 '소니'를 비롯한 각종 일본제 음향기기나 미군에서 흘러나온 밴드용 '앰프'가 그 웅장한 소리로 사람들을 부르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직 아날로그 일색이었던 그 세운상가의 전자음향기기 상가에는 이름도 무수한 전자가게들이 즐비했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난간밑에는 먹거리 좌판들이 죽 줄을 이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부산에서는 잘 보지 못한 돼지껍질무침을 비롯하여 감자탕, 떡볶기가 서울 하숙생인 석근이의 침샘을 자극하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탁주나 소주의 안주용인 그 음식들을 혼자서 시켜서 먹을 여유는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가끔 세운상가 입구에 있는 염가로 먹을 수 있는 그 설렁탕집에서 분식집 라면값정도로 설렁탕을 먹을 수 있었는데 찬이라곤 깎두기뿐인 그 설렁탕집은 언제나 만원이었다. 그래도 허기진 배를 빨리 달래기는 그만한 집도 없을 듯하여 혼자서 외식하는 양으로는 딱 맞는 그 집을 세운상가 들릴 때면 빼놓지 않고 들러서 뚝배기 설렁탕을 달게 비우곤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처음으로 하숙생활로 구한 하숙집은 아주머니가 35살되는 아들 한명과 꾸려가는 집이었다. 한국전쟁도 남편을 잃은 그 아주머니는 전쟁터로 끌려간 남편이 남긴 것이라곤 배속에 든 유복자인 지금의 노총각 아들 한명뿐이었다. 유복자로 태어난 그 집 아들은 이미 삼십대 중반의 나이였건만 편모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집에서 얌전한 아들노릇을 할 뿐이었다. 때로 그런 아들의 모습과 자신이 지나온 그 기구한 인생이 못내 서러워 아주머니는 폭음을 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유복자로 자라서 순하고 용맹없는 그 집 아들이 엄마를 대신하여 부엌에서 큰 솥에 하숙생들에게 먹이는 저녁으로 라면을 끓이곤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평소에는 진수성찬에 가까운 화려한 식탁이었지만 아주머니의 홧병이 꼭 한달에 한번꼴로 일어나는데 그럴때면 2-3일 어떨 땐 근 일주일가량을 라면만 먹어야하는 좀 하숙집의 서비스로는 기복이 큰 하숙집이었다. 술병이 나면 아주머니는 머리에 끈을 동여매고 머리아프다며 누워있기만 했는데 그럴 때면 하숙생들은 끼니거른 강아지들처럼 밖을 나돌든가 아니면 그집 아들이 끓인 라면을 함께 죄지은 듯 먹어야만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주머니는 기운을 차리면 여지껏 못한 서비스를 한꺼번에 갚는 듯 상다리가 휘게 차리곤 했는데 그럴 땐 반찬그릇을 채 식탁에 둘 곳이 없어 그냥 방바닥에 놓을 정도였다. 조기구이를 비롯하여 온갖 것들이 질리도록 먹은 퍼진 라면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라도 할 듯 마구 차려졌고 그럴 때면 우리는 좋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는 야릇한 마음이 들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럴 때 먹어두자며 한껏 먹지만은 또 언제 저 아주머니의 깊은 한이 터져나와 소주를 안주도 없이 들이키고 드러누워 유복자 아들을 고래고래 고함치며 욕을 해댈 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하숙생의 일원인 석근이도 그저 변함없는 여느 하숙집과 같은 서비스를 원할 뿐, 어떨 땐 고향집 명절 부럽지 않은 상을 받다가 어떨 땐 미적지근하게 식은 라면만 잔뜩 먹는 그런 하늘과 땅 차이의 식탁에 그저 어리둥절 할 뿐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럴 때면 하숙비가 올라오는 25일이 기다려지고 그 하숙비에서 남은 용돈으로 한그릇 외식을 하는 것이 바로 그 세운상가 입구의 염가의 설렁탕 집이었다. '박리다매(薄利多賣)'의 원조격인 그 설렁탕집은 아예 셀프였다. 아마 '셀프 서비스'의 원조격도 아닌가 싶었다. 깎두기도 먹을 만큼 퍼서 먹고 달랑 설렁탕 그릇만이 나오고 입을 닦는 휴지는 입구에 매달아놓은 신문용지 짤라놓은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소금과 고추가루도 한곳에 놓여져 입맛대로 쳐서 빨리 먹으면 한 3분이면 비우고는 나가면서 신문지 쪼가리로 입을 닦고 나가는 그야말로 70년대 서민들이 이용하는 바로 박리다매식 설렁탕집이었다. 맛은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싸게 이용하니 식재료는 싱싱한 것으로 언제나 푹 끓여서 국물은 쩍쩍 입에 달라 붙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기막힌 서울식 설렁탕을 먹는 재미로라도 세운상가행 하숙비 수령일을 기다리기도 했다. 하숙 동료는 아직 만으로 20살밖에 되지 않은 석근이에 비하면 아저씨뻘인 예비역 복학생, 그것도 인근 대학의 치과대학 본과3학년생인 전주사람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양반인 그는 별로 말이 없었고 다만 치과대학을 다니느라 언제나 흰가운을 옷걸이에 걸어두고 책상 위에는 사람들의 입모양과 이빨모양의 모형이 놓여져 있었다. 거의 학교에 붙어있는 터라 석근이는 잠잘때라야 겨우 대화를 나누는 정도였고 평소에는 거의 독방을 쓰다시피 했다. 그 치과대학 아저씨는 일반 책걸상을 가졌지만 석근이는 앉은뱅이 책상을 인근 가구점에서 샀다. 그냥 앉아서 공부하는 용이었지만 다큰 학생이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노라면 이내 발이 저려서 다음 하숙을 구할 적에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운상가로 들어서니 귀가 먹먹해졌다. 특히 미군으로부터 흘러나온 나이트클럽용 대형 스피커나 앰프가 내는 소리는 들으면 심장이 벌렁벌렁하는 것도 있었다. 수많은 전자용품가게들이 미로처럼 들어앉아 있어 겨울에도 여간해서는 춥지 않은 세운상가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왠만한 집들은 전축세트정도는 들여놓고 음악을 즐기는 시대가 되었고 이전의 라디오에만 귀를 쫑긋거리며 듣는 시대는 지나갔다. 심지어 '포 채널(Four Channel)'스피커라고 뒤에도 설치되어 서라운드 음향을 내는 첨단기기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때 전자기술자였던 부친도 아이들의 교육도 생각하여 상경하여 세운상가에 점포를 낼려는 마음도 훗날 들으니 있었다지만 과감성이 없던 부친이라 그러질 못했던 모양이다. &lt;/P&gt;
&lt;P&gt;석근이는 두어바퀴를 돌고서야 가게를 찾았다. 마침 가게에는 주인아저씨가 계셨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저어, 부산 국제시장 '삼희사'에서 보낸...&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 너가 이번에 ~~대학에 입학한 아이구나. 축하한다. 하숙비타러 왔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저씨는 대학에 다니는 것을 축하한다며 미리 준비해둔 부친 가게의 이름과 주소가 인쇄된 돈봉투를 건넸다. 나는 그 아저씨가 장학금이라도 주는 모양으로 공손하게 그 봉투를 받고는 깍듯이 인사를 하고 나왔다. 언제나 하숙비를 받으러 갈때면 의당 받을 돈인데도 좀 미안한 생각이 들며 마치 그 아저씨가 나에게 하숙비를 주는 듯 착각이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관습은 석근이가 군입대를 하기전까지 이루어졌고 군제대후에는 은행의 송금업무는 '온라인'세상을 맞게되어 이제 사람들은 이 '온라인'이라는 이상한 표기의 영어명이 뜻하는 의미를 은행업무에서 배웠고 훗날에는 '인터넷'이란 괴물을 만나서 그저 '온라인'세상만이 처음부터 있어왔던 양 살게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저씨 앞에서는 감히 세어보지도 못하고 화장실에나 들어가서 얼른 세어보고 숨을 돌렸다. 그만큼 갓 집을 벗어난 지방출신의 학생들은 사회생활이 서툴었고 이제 개학이 되어 선후배가 어울려 술도 먹고 사고도 치면서 서울생활의 재미를 느끼면서 대담성도 함께 자라나 역으로 이제 하숙비가 올라오면 서로 뜯어먹으며 술마시는 하숙생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34-36)&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34-36)&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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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31-33)</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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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속사프레서</name>
	    </author>
	    <updated>2009-09-12T04:51:56Z</updated>
	    <published>2009-09-12T04:51:5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31.&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렇게 우리들의 수험생활이 마쳐졌고 우리는 해방되었다. 다들 캠퍼스라고 불리는 또 다른 교정으로 옮겨갔을 뿐이었다. 석근이도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 있는 자그마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난생 처음으로 집을 떠나 혼자서 생활하는 경험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도 바라는 생활이었지만 막상 서울이라는 거대한 집단속에 들어간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기대감은 열차가 영등포역에 도착했어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대전을 지나 천안을 지날 적만해도 집을 떠났다는 기분보다는 먼시간 그냥 열차를 타고 있다는 느낌뿐이었다. 그러다 열차의 종착역에선 다시 송도 윗길 버스를 타고 태어나 자란 그 산기슭의 동네로 찾아들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사람들이 부산스레 영등포역에서 마구 하차하기 시작하고 열차내 방송에서 십여분후면 종착역인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들렸을 때야 '아..내가 집을 떠났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열차는 천천히 움직이고 이어 서울의 거리가 나타나고 사람들이랑 차랑 오토바이 자전거가 나다니는 낯선 거리가 시야에 들어왔다.아마 노량진 인근이나 아니면 한강변의 흑석동 근처였는지 모른다. 아직 군데군데 그늘에는 잔설(殘雪)이 남아있었다. 낯설었다. 눈구경은 부산지역에션 여간해선 보기 힘들었고 왔다해도 금방 녹아서 2월 말경까지 남아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 남아있던 잔설이 더욱 집을 떠났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열차는 덜컹이며 레일 소리가 달라졌는데 고개를 드니 한강철교를 넘고 있었다. '아...한강이구나. 내가 서울에 들어간다아..'&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서울을 제외하고 어떤 지역에서 살더라도 이렇게 한강철교를 넘는 순간에는 서울의 느낌이 바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러다 이내 서울역전의 얼씨년스런 모습이 보이면 '서울가면 조심해라 코베어간다.'란 무서움이 확 밀려드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학생, 여가 서울역이가?&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노파 한사람이 묻는다. 난들 서울에 처음 도착했어 알겠냐마는 짐짓 서울에 익숙한 사람처럼 힘있게 대답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예, 서울역입니더.&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렇게 말하고보니 서울이 낯선 곳이 아니라 이제는 살아가야 할 곳임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듯 했다. 석근이도 짐을 챙겼다. 짐에는 읽을 책이랑 모친이 짜준 고소한 참기름 한병이 병마개를 굳게한채 들어있었다. 별로 입에 맞지 않는 하숙집 반찬이라도 이 참기름만 있으면 달게 비벼 먹을 수 있다며 모친이 굳이 넣어준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개찰구로 사람들이 몰려 나갔다. 모두들 짐을 들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향한다던가. 한국의 모든 물류는 서울로 향하리라. 이런 생각을 하며 학교 인근의 하숙집을 찾아나서려면 해가 길지 않는 2월이라 서둘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 생활 처음부터 여관신세를 져야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제 서울도 지하철 시대를 맞이해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는 지하철로 연결되었다. 처음 타보는 지하철이었지만 땅속 밑을 달리는 열차라는 점말고는 특별한 것은 없어 보였다. 처음부터 너무 신기해 할 필요는 없다며 부러 자신감을 가지려 노력하며 석근이는 무거운 책보따리를 들고 낑낑댔다. 학교는 정해졌고 등록도 한 마당이라 이제는 거처만 정하면 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청량리역에 도착하여 지하철역에서 위로 올라오니 청량리를 거쳐가는 버스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대체 무슨 노선버스를 어느 쪽에서 타야할 지를 한참을 망설이는데 아직 해도 지지 않았지만 겨울이라 스산하기만 했다. 모두들 바쁜 듯 오가는 사람들 중에 자신만이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도착하는 버스의 노선 번호만 보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드디어 눈에 익은 동네이름이 적힌 버스가 왔다. 나는 얼른 올라탔다. 아직 3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점심을 걸러서 배가 고팠다. 버스는 낯선 거리를 휘돌아서는 마침내 내가 응시했던 대학 인근에 도착했다. 나는 대충 눈짐작으로 하숙촌이 이루어져 있을 것 같은 동네에서 하차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우선 마실 것이라도 찾을 요량으로 구멍가게부터 들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담배와 우유를 가져와서 마시며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아주머니 이곳 근처에 하숙집을 구하려는데 혹 복덕방이 어딘 줄 아십니까?&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보아하니 신입생같은 데 하숙 구할려면 천지인데 뭘 복덕방까지 가슈? 내가 구해 줄까?&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렇게 나의 첫 하숙집은 구해졌다. 개량기와를 얹은 똑같이 생긴 집들이 전철역으로부터 쫙 깔려 있는 모습에서 아연했는데 구해보고 나니 나의 하숙집도 그런 집 가운데 하나였다. 대문은 철문이었지만 지붕은 기와집인 전형적인 서울 강북의 서민주택이었다. 기와집도 아니고 양옥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의 집들이 당시에는 참으로 많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사랑채 개념으로 본채와 떨어진 마당을 사이에 둔 별채와 같은 방이었는데 독방은 하숙비가 비싸므로 전부 방하나에 둘이 사는 합숙이었다. 방 파트너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이었고 어떤 파트너가 걸릴 지는 아무도 몰랐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아직은 파트너가 정해져 있지 않아 당분간은 독방형태로 사용하는 문간방을 정하고는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하숙비를 건네주며 인사를 나누었다. 간단한 호구조사 비슷한 것이었지만 하숙집 들어가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고 단지 하숙비만 꼬박꼬박 잘내는지 그리고 너무 부산스럽지 않은 하숙생활을 하는 지가 제일 중요한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아직 하숙 경험이 없는 새내기 하숙생에게 무슨 부산스러운 일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집 떠난 섬머슴과 같은 아이들은 갓 배운 술주정부터 온갖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아직 입학식 전이라서 하숙집은 조용했다. 날씨는 아직도 찬기운이 감도는 2월이라 방은 연탄불로 물을 데워 순환하는 온수보일러식이었다. 쩔쩔 끓는 맛이 없어 미적지근한 온기만이 온돌밑을 감돌 뿐이었다. 새삼 저녁이 되자 집을 떠나 처음 맞는 서울의 밤이 낯설고 추웠다. 다행히 하숙집에서 이부자리를 빌려주어 첫날밤은 그런대로 지냈고 내일부터는 앉은뱅이 책상이라도 장만하여 서울의 학교생활에 대비해야 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생각보다 하숙집 반찬은 푸짐했다. 첫날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면 외려 집에서 먹는 것보다 낫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하숙집 찬은 그렇고 그런 것이라 언제나 먹어도 배고픈 그런 식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눈치밥 아닌 눈치밥이니 살로 갈 것도 없었고 한창 먹을 나이라서 밤늦은 시각이면 근처 분식집이라도 기웃거려야 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캠퍼스 구경을 갔다. 밤이지만 그래도 이 대학을 오기 위해 그렇게 난리를 쳤었나 싶었고 이 건물이 주는 느낌이 과연 나에게 어떤 위안이 될 지는 알 수 없었다. 태어나서 살고 있던 곳을 떠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이트한 학교생활이 아닌 자신이 책임지는 그런 분위기의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인데 무한 자유는 오히려 사람을 더 어리둥절케 하거나 아니면 더 두렵게 하는 지도 몰랐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가정에서 엄마 아버지란 존재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거두었고 학교에서 무섭디 무서운 선생들에게 휘둘리기만 했던 경험에서 모두 해방된 무한 자유감은 오히려 밤에 찾아간 캠퍼스의 건물처럼 무겁고 어둡게 생각되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석근이는 하숙집 인근의 슈퍼에서 산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참을 물고는 운동장 계단에 앉았다가 엉덩이가 시려와서 일어서며 불을 붙였다. 밤바람이 조금 일어 담배연기는 흩어졌다. 연기가 나오다가 이내 흩어지면 담배맛도 없는 법이다. 돌아가도 낯선 방이 기다릴 뿐이고 오늘 아침에 부산역을 출발했는데 만 하루가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사람의 일생에서 변화는 많은 시일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단 하루만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석근이는 그날 처음 느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았다. 군입대도 하루만에 이루어지고 취직도 결혼도 그 모든 것이 전날과 그 다음날의 차이뿐이라고 생각되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분명히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32.&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식이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곰보할멈의 긴 사연을 들었다. 할멈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고모는 그간의 한을 구구절절 타령조 읊듯이 조카인 성식이 앞에서 늘어놓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많은 이의 한풀이는 끝이 없겠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는 한번은 들어주는 이가 필요했다. 그 역할을 성식이가 하게 되어 오히려 양쪽 모두에게 다행이었다. 성식 모친은 그 누구라도 동네사람 이야기라면 질색을 했고 특히나 곰보할멈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도 못하게 하였다. 집에 옛날에 대문칸에 온 적이 있는 문둥이 거지보다도 더 질색을 하는 통에 그간 살고 있는 동네 이야기는 올리지 않는 다는 것이 타부(Taboo)처럼 금기시되어 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래 니가 성식이제. 난 처음부터 내 조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니는 내가 고모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예, 집안 모두는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었음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들어보라고 시작한 이야기는 끝도 없었고 맞장구 칠 일이나 대답할 일도 없었다. 피붙이인 조카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이런 자리마저 있으리라 생각한 적이 없었던 곰보할멈의 한은 깊고 길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당시에는 세도가면 의례 축첩을 하곤 했는데 두번째 부인으로 정식으로 맞이하지도 않은 채 아들본다고 최참판이 딸을 낳았고 그만 곰보할멈의 생모는 한가하게만 살다가 딸을 낳고 본처와 그밖의 시집식구들과 어울려 살 배포가 없었던 것이었다. 아직 핏덩이에 불과한 딸을 맡기고 더 정들기 전에 떠나버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긴 생모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남의 첩살이도 못할 주제였는지 아니면 최참판이 여자를 잘못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들을 더 낳으려는 시도도 없이 남의 식구처럼 얹혀 지내며 살아낼 많은 나날들이 무서웠던 지도 모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애시당초 최참판과 어떤 연분이 생긴 것도 아니고 그냥 아들만 낳으려는 '씨받이' 비슷한 것으로 시작된 것이 아들 대신에 딸을 낳은 죄책감과 다시 최참판의 마음을 끌어당길 요량도 없는 여자였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사라진 생모 대신에 어중쭝한 아이로 그냥 눌러앉아 자라던 할멈은 급기야 천연두를 앓게 되고 주위에선 그 참에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란 지도 몰랐다. 그런 아이로 명(命)은 하늘이 정한대로 살기 마련이라 죽지는 않고 마마자국이 심한 아이가 되었으니 이미 본처가 낳은 아들딸들 사이에서 막내딸 노릇하기는 글러버렸던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침모나 식모들 사이에서 하녀아닌 하녀 비슷하게 자라며 아버지를 단 한번도 아버지로 부르지 못했고 최참판도 그냥 낳은 여식에게 그것도 생모가 어릴 적부터 내팽개친 아이에게 줄 정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소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그냥 허드렛 일만 하며 뒷채에서 살다가 온 인생의 막판이 요즘이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무슨 배포나 기술이 있어 가출을 할 것이며 그 낯짝에 빌어먹을 팔자밖에 되지 않으니 그 누구라도 눈길을 줄 리도 없는 여자의 일생인데 한이 깊을 수 밖에 없었다. 다 조상들이 벌려 놓은 것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나 부당했지만 사람의 인생이란 것도 태어나는 순간에 결정되는 숙명론(宿命論)적으로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래 성식이 너 엄마가 시집올 적에도 나는 소개조차 되지 않았으니 아마 너의 모친도 모를거다. 아니면 알고도 모른채하고 있거나. 너가 태어났고 아장아장 걸어다닐 적에 속으로 '저놈이 내 조카다.'하는 귀여운 생각을 했었다. 한번도 너를 안아보지는 못했지만. 너는 그래도 돌아가신 참판어른을 쏙 빼어닮아서 그 어른의 꼬마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너를 눈으로나마 얼마나 귀여워 했는지는 너는 모를게다. 배는 다르지만 너와 나는 분명 같은 피를 나눈 친척이니까 어찌 남보듯 했을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리고 나는 애당초 남사당패조차도 눈길을 주지 않는 신세이고 보면 시집가서 옥동자 낳고 살 팔자는 아닌기라. 그래서 첫 아이로 낳은 오라버니의 자식인 너가 그렇게 귀여워 보였다. 누가 널 내게 한번이라도 안겨 줄 사람이 있었을까?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게 저렇게 이 동네를 떠나지 못했는데 이제야 어디론가 떠나달라는 너거 애비의 부탁을 직접 받다보니 참으로 청천벽력같기도 하고 무심하기도 하고 그랬다.&lt;/P&gt;
&lt;P&gt;지금 니가 올해 몇살이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스물 일곱입니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장가들 나이구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곰보할멈의 일생이 있었던 이 자그마한 집터를 빼았아 무엇하리마는 별관건물의 설계를 이 집터로 인하여 변경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레저 호텔이 되든 말든 그것은 시류의 변화에 맞기고 지금은 건물터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고모, 이렇게 부를께요. 어릴 적에 누가 내게는 말해주었어요. 내게는 고모뻘이라고. 알고보니 고모뻘이 아니라 고모였구만요. 고모, 함께 지낼 사람도 없는 차에 살던 터까지 내어달라는 말을 하기가 참으로 고약합니더. 하지만 작은터라도 공사설계에 ...&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성식아, 알았다. 설명해서 내가 알아묵나. 알았으니 너거 아부지 시키는대로 니는 하몬 된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닦다가 이어 말을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장거리며 동네 돌아다니던 니가 이제 서른을 보는데 다 늙은 내가 무슨 고집을 부리겠노. 이제는 너거들 세상이다. 성식이 니 편한대로 하거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말을 마지막으로 곰보할멈댁을 나서는 성식이는 한편으론 두 난관중 하나가 풀려서 시원한 반면, 고모 할멈 말대로 이런 개발이 지금 나에게 이로운 것일까하는 의문이 동시에 드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33.&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최씨 아재와 곰보할멈이 양보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장쇠는 들었다. 이해당사자 축에도 끼지 못한채 툭하면 자신이 방해꾼인양 몰아세우다가 당사자들이 합의하에 결정보았다는 소리에 허탈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의례 시류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니 지금 촌동네 처녀 총각들이 모두 도회지로 몰려나온다는 말은 들었어도 도회지에서 오래 살던 사람이 쫓겨난다는 말은 아직 들은 바가 없는데 도농(都農)지역 모두 회오리바람과 같은 개발바람이 불긴 부는 모양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담 아랫동네 해안마을에 살다가 이렇게 천마산 꼭대기 정상부분 바로 코밑까지 밀려난 자신은? 하고 생각하니 푹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주먹하나 믿고 산 댓가가 이것인가 싶기도 하고 만사에 무능력한 놈이 바로 자신이다 싶은 자괴감이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냥 옛날대로의 삶이 이제는 무슨 징역살이나 한 과거처럼 무겁게 보여 모두들 화들짝 놀라서 다른 삶으로 달려가는 것같았다. 이제 흙파먹고 산다는 말도 다 옛말이다. 이제는 무엇을 만들어서 배에 실어 팔러다니며 돈을 벌어 나라를 살찌우는 수출역군들의 세상이 되어 간다는 어렴풋한 인식이 자신의 머리속에도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전의 방법으로 논밭 가꾸어서 먹고 살기는 이제는 틀린 모양이었다. 부산이라고 해도 장쇠가 어릴 적만해도 집집 사이에는 텃밭이 즐비했고 아주 바닷가에만 어선이 매달려 있었지 한칸만 내륙쪽으로 들어와도 전부 논밭으로 이루어진 마을이었는데 한국전쟁으로 팔도사람들이 부산쪽으로 내리 밀려 온통에 온갖 것이 이전과는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피난민들이 일부는 정착하고 일부는 수복지역인 고향으로 서울로 되돌아갔지만 그렇게 이루어진 변화의 흔적은 그 변화가 있기 전의 마을형태는 이미 상당부분 지웠었다. 그러다 이제는 자진하여 그 남은 흔적마저도 지우려 드니, 잘하면 산을 깎아 바다를 메우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가 일어 날지도 모르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신을 털털 털어신고는 천천히 시멘으로 포장한 산마을 길을 내려왔다. 한눈에 저 아래 등대를 돌아서 충무, 남해로 나가는 여객선의 모습이 아스라히 보였다. 경치 하나는 산동네가 제일이다. 뒤로는 저 멀리 낙동강 하구가 보이고 해 질 무렵에는 을숙도까지 보였다. 앞으로는 영도섬이 턱하니 가로막았지만 그 사이 남항으로 자그마한 배들이 무리지어 마치 자신의 꼬리를 그리듯 바다에 흔적을 달고는 먼바다로 드나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겨울이면 겨울대로, 봄이면 봄대로 바다와 산이 주는 그런 풍경은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 동네의 모습인데 점점 갈수록 살던집은 누추하니 일단 새로짓고 보자는 식의 개발바람이 어느곳하나 내버려두지 않는 것 같다. 이제는 60년대의 진짜 '하꼬방'에서 살림을 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슬레이트와 블록들이 지천이라서 아무라도 뚝딱하면 집칸이 생기는 통에 판자쪼가리로 이어서 바람막이만 겨우하던 그런 판잣집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곳 산기슭까지도 버스가 들어오게끔 산복도로까지 건설된 마당이니 이제는 저 아래동네서 버스에서 하차하여 숨이 턱에 차도록 기어올라오는 그런 판자촌은 아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단은 송도마을에 내려가서 오늘의 일거리라도 알아보련다 생각하고 담배 한개피를 새로 물고 불을 붙이고는 가속도가 붙은 발걸음으로 신나게 산마을 밑으로 내려갔다. 산에 사는 좋은 점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높이 날아오른 독수리가 목표물로 향하여 내리 하강하듯 아랫마을의 어느 지점을 찍고는 순식간에 그곳으로 하강할 수 있다는 점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물론 하강한 뒤에 다시 올라오려면 때로는 용을 쓰기도 하지만 어쨌든 내려갈 적의 그 상쾌함은 산동네 사는 사람들의 유일한 특권이었다. 어느 곳으로 내려갈까하는 코스만 정해지면 가속도가 점점 붙어 내려가는 것이었지만 그날도 장쇠는 언제나처럼 익숙한 송도마을쪽으로 코스를 잡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성식이와 티걱태걱할 일도 없어졌지만 그간 성식이와 자신과의 대결에서 남은 상처의 흔적은 그대로 있었다. 장쇠는 함께 자란 성식이와 이리도 원수지간처럼 으르렁거리게 된 그 원인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태어난 집안이 다른 터라 성식이는 교육과 문화의 혜택을 받았다손 치더라도 그렇게까지 생각이 사람사이를 갈라놓을 줄은 미처 몰랐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러니 한민족이라고 한반도에 살더라도 생각이 달라지는 순간 사람들은 달라질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일이었고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상처의 흔적이 있는 이상 다시는 어릴 적의 그 꼬맹이로 돌아가서 땡볕에 백지포해안가를 장난질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런 것은 별로이 없는 듯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서글픈 생각도 발끝은 이미 가속도가 붙었고 그저 몸의 하중을 지구의 중력에 반하여 멈춰서게 하려는 또 다른 몸의 힘을 느끼며 가노라면 이내 사라졌다. 송도 윗길의 커브 구간인 송도성당 입구쪽은 그야말로 남항과 먼바다 양쪽 모두를 볼 수 있는 장소였다. 일제시대때 일본놈들도 그 위치의 풍경을 감탄했다고 했다. 그만큼 그 위치는 명당자리였지만 어린이 장님들의 학교인 '맹아학교'가 들어서고 난 이후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자리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기가 막힌 자리를 정말로 눈이 먼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법이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서 버스종점에 이르자 앞에서 시장바구니를 든 어떤 처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첫눈에 귀련이임을 알아보았다. 이제 부산에 식모살이 온 지도 몇해가 지났으니 부산처녀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래도 내륙지방에서 온 이질감을 아직도 귀련이는 가지고 있었고 어투도 경상도 본토발음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 점이 특히나 매력으로 다가왔지만 어릴 적부터 보아온 터라 장쇠를 아주 만만하게 여기는 것은 여전했다. 장쇠도 장난끼가 동했다. 이제 처녀가 되어 궁뎅이가 부풀대로 부풀어 올랐는데 지나치며 툭 한번 건드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어맛! 왜 이래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고 쳐다보니 익히 아는 얼굴이 보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우이씨, 장쇠오빠 몇살인데 아직 장난질이야.&quot; 눈을 곱게 흘기며 보는 귀련이는 이름 그대로 묘한 분위기의 여자였다. 자신처럼 배우지 못한 주제였지만 그래도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어떤 귀티가 귀련이에게는 있었다. 마구잡이식으로 살아온 장쇠에겐 그 분위가 주는 묘한 느낌이 좋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대낮부터 장을 다 보구나. 잔치하냐? 그집?&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장쇠를 아는 척이라도 하면 귀련이는 혼쭐이 났다. 어릴 적에는 마구 어울려 놀았지만 장쇠가 커서는 도의원나리가 하는 일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매사 앞장서 반대만 한다고 집안에서 얼마나 이를 가는데 식모인 자신이 그를 만나 노닥거린다는 것이 알려지기나 하면 주인 아주머니에게 아주 혼쭐이 날 일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우리 모른 척해요. 누구 잡을려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해결났잖아? 곰모할멈 최씨 아재 모두 손들었는데 이 장쇠를 잡아서 무엇한다고? 성식이에게 축하한다고 알려주고 언제 빚진것은 꼭 갚는다고 알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능글거리며 다가오는 장쇠가 싫지만은 않았지만 귀련이는 묘하게 장쇠를 자신도 집안사람을 닮았는지 무시하는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마구 대하는 자신이 통쾌하기도 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장쇠는 또한 귀련이 정도는 나와 동급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허물없이 마치 연인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으시대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쥐뿔도 없으면서 허랑방탕하게 굴다간 뼈도 못추려요. 시대가 언젠데 아직도 주먹하나 믿고 사남?&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입술을 삐죽이 내밀고 짐짓 모른채 하며 걸으며 귀련이는 약을 올렸다. 그런 귀련이는 더욱 얄밉기도 하고 좋기도 하여 장쇠는 어떤 소리를 해도 벙글거리며 헤헤거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주먹이라도 믿고 살 수 있음 울매나 좋아? 이제 믿고 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귀련이라도 곁에 있으면 몰라도.&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말조심해요. 오빠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해욧.&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깨를 나란히 붙이며 다가오는 장쇠를 남자라면 한방 칠 듯한 눈매로 흘기며 귀련이는 발걸음을 더욱 빠르게 옮겼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귀련아, 그러지 말고 한달에 한번은 쉬는 날을 준다며? 그날이 언제야. 오빠하고 놀러가자.&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이구, 나이가 몇살인데 놀러가? 오빤 아직도 초등학교 다니는 줄 아는 모양이야. 그러니 시대가 변한 줄도 모르고 언제나 난장에서 주먹질이나 하지. 주먹으론 딱 밥 빌어먹는 세상이 온 줄 모르는 모양이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모르니 귀련이가 좀 갈켜 줘. 응~~&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귀련이라도 볼 수 있는 날은 그래도 흥겨웠다. 격없이 나누는 농담도 유쾌했지만 경상도 가시나들 특유의 멋대가리없는 대꾸보다는 그래도 감칠 맛 나는 귀련이와의 대화는 더 없는 즐거움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31-33)&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31-33)&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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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28-3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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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속사프레서</name>
	    </author>
	    <updated>2009-09-11T01:40:15Z</updated>
	    <published>2009-09-11T01:40:1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28.&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아무래도 용철이는 대학진학은 어려웠다. 인문계 고교도 아니고 더구나 집안 형편으로 보아서도 자신에게 학자금을 대어줄 형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업고교였지만 그래도 한반은 '진학반'이란 명칭으로 대학진학을 목표를 하고 있었다. 자신은 사회진출을 목적으로 하는 반에 편성되어 있으니 대학 진학과는 무관하게 학교생활을 해온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나름 인문계 고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조숙한 그는 사회에 진출하여 얼른 돈을 벌어 좀 뻐기고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지 고리타분한 입시과목에 매달리긴 싫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학교는 그래서 설렁설렁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이번 겨울방학만 마치면 고3이 되지만 몇군데 기업체에 상고졸업생으로 입사하여 다니게 될 것이고 아마 경리과같은 데서 일하게 되리라는 눈에 보이는 미래였다. 사회반에서도 성적이 좋은 학생만이 은행정도에 입행할 것이고 공부도 고만고만한 용철이로서는 은행의 문턱은 높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하긴 고리타분한 은행보다는 역동적인 사기업체에서 사회의 첫발을 딛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우수한 학생이 은행에 입행하여 은행창구에서 넥타이매고 종일토록 앉아서 은행손님이나 받는 그런 사회생활이라면 사양하고 싶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심심한데 광호녀석이나 불러내자.'&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렇게 생각하고 광호네로 어슬렁거리며 걸어갔다. 바로 뒤골목 몇칸을 지나면 광호네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왠일고?&quot; 광호는 아직 잠을 자지는 않았다. 광호 역시 대학진학과는 별 무관한 학생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둘은 자동적으로 걸어서 바닷가로 나갔다. 이제 앞바다는 완전히 매립되어 신축건물이 서길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이제 바다로 나가려면 신작로를 건너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전과는 달랐다. 이전엔 신작로에서 바다쪽은 서너걸음에 불과했다. 바로 해안도로라서 차가 핸들이라도 잘못 꺾으면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형국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 바다가 훨씬 멀어져 버렸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광호야, 니는 졸업하면 뭐 할래? 아마 너거 아버지처럼 고기잡으러 배 탈래?&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형들이 줄을 섰는데 내가 탈 배가 어딨노?&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랬다. 광호네는 선대로부터 연안어업에 종사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던 해안마을 토박이였다. 일명 '방배'라고도 불린 목선으로 이전엔 노를 저어 어업을 했겠지만 60년대부터 일본화물차 기관을 개조한 '얌마 디젤'과 같은 동력장치를 장착한 어선이 있었다. 70년대들어 더욱 개선된 디젤엔진으로 속도가 개선되어 더 먼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내야 고대구리 배 한척만 있으면 만사 걱정없다. 아직 바다에는 고기들이 많다. 옛날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형제섬이나 멀리 충무쪽으로 가면 감성돔이나 돌돔-이시다이, 흑돔-구루다이, 광어까지 올라온다. 고기가 줄어들면 낚시배로 전환하면 된다. 요듬 일본놈들 가시나 끼고 도미잡으러 많이 나간다. 기생관광에다 도미까지 낚아서 쿨러에 꽉 채여서 일본으로 간다카이. 예쁜 가시나는 일본놈이 다 따묵고 돌돔, 감성돔은 일본놈들이 다 잡아 가는기라. 김해공항에 도착하면 낚시점에 연락이 온다카이. 크릴 새우 얼린 것을 미끼로 마구 풀어놓는데 고기들이 그곳에 다 모이는기라. 우리처럼 이제 '청개비'나 '갯지렁이' 몇마리 끼워서 미끼로 해봤자 상대가 안되는기라....&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언제나 광호는 바다이야기라면 신이 났다. 태어나 단 한번도 바다를 떠난 적이 없는 그는 선대로부터 전해받은 노하우란 오직 배부리는 법과 고기잡는 법뿐이었다. 이제 이 바다만 있는 한 자신에게 불안한 미래는 없어 보였다. 오로지 그 옛날 어느 새벽 처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고기잡이 배를 타고 나무섬까지 가서 낚시로 온갖 생선을 잡아 올린 그날을 잊지 못한다. 비로 바다는 저금통이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바보 새끼야! 옛날 바다같은 소리하네. 이제 원양어선들이 공해상에서, 심지어 태평양, 대서양에서 고기를 대량으로 잡아서 냉동보관해 오는 시대인데 꼴랑 이 앞바다에서 고기잡아서 묵고 살겄나? 태평한 소리하고 있네. 그래 낚시배로 전환하는 것은 쪼매 일리가 있어 보이네.&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안다카이, 일본놈들 새벽에 가시나끌고 와서 배태우는 것, 보기가 좀 안좋아서 그렇지. 돈은 되는기라. 그런 식으로 낚시배를 운영하며 낚시점 하나 가지면 끝내준다카이. 월급쟁이 안부러워.&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그러니까 니는 안된다카이. 어째 이 동네를 벗어나서 살 궁리는 없이 언제나 등대앞바다 이야기뿐이니. 좀 꿈을 키우라 자슥아.&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답답하여 불러낸 광호는 용철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정치적 자유가 없어 이제 정치이야기는 몰래 소리죽여서 하는 수밖에 없다며 답답하다고 했지만 애시당초 용철이는 그런 정치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정치가 밥먹여 주는 것도 술을 마시게 해주는 것도 아닌 마당에 왜 사람들은 돈안되는 정치이야기에 그리도 쌍심지를 켜는지 알 수 없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석근이와 근서는 보충수업이다 학원수업이다 눈에 불을 켜서 대학입시 공부한다며 바쁘지 영수는 이미 공장일을 나가서 사회진출을 한셈이니 오로지 광호녀석뿐인데 이 녀석은 온갖 생각이 앞바다에 매여있어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차라리 동네 순찰이나 한바퀴도는 것이 낫지 광호는 괜히 불러냈다 싶었다. 속으로 광호를 비웃으며 그래도 불러낸 이상 할수없이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이었다. 매축지는 온갖 쓰레기들이 무단으로 방기(放棄)되어 있었다. 때로는 불로 태우는 사람도 있어 언제나 매캐한 냄새가 가시지 않는 곳이 매축지였던 것이다. 어릴 적엔 진개장(塵芥場)이라고 불렀는데 바로 그 진개란 말은 먼지와 쓰레기란 뜻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 진개장에는 이북에서 피난온 아이들이 사는 판잣집들이 즐비했다. 마치 쓰레기더미에서 사는 사람들로 이곳 토박이들은 애써 그들을 차별했다. 학교에서도 진개장에 사는 아이라면 거의 거지취급을 한 기억이 난다. 온갖 잡쓰레기와 같은 피난민들은 오직 생존이라는 절대절명의 과제를 눈앞에 두고 살고 있었고 그런 세월이 언제 지났나 싶더니 이제 그 진개장이란 낱말도 사라지고 그들도 사라지고 텅빈 공터만 남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니는 대학간다고 하는 놈들 안 부럽냐? 나는 말은 안하지만 속으론 부럽다. 대학이 뭐하는 데인줄은 모르지만 갈 수 있는데 안가는 것하고 애시당초 못가는 것하고는 다르단 말이다.&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용철이가 모처럼 속에 있는 말을 했다. 좀처럼 이런 말은 꺼낸 적이 없는 그였기에 이렇게 말하는 자신이 초라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같은 처지인 광호는 이해해주리라 생각하며 꺼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나는 하나도 안부럽다. 그까짓 대학 다니면 뭐하노. 기껏 월급쟁이 아니가. 얽매여서 월급받아 묵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노. 나는 시원한 바다로 배나 부리며 사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더라.&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애써 꺼낸 자신이 무색하게끔 이렇게 장단을 못맞추는 광호를 바라보며 용철은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년이면 이 동네를 벗어나게 되어있다. 별로 미련도 없고 애착도 없다. 용철에게는 단지 경제적인 독립만이 의미가 있기에 향수라든지 애향심같은 것은 애당초 남의 몫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할수있으면 서울에라도 올라가고픈 마음이었지만 태어나서 줄곧 살아온 동네가 아니라서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다. 학교에서 추천하는 기업에 취직하여 열심히 사회생활하며 돈을 모을 작정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lt;BR&gt;29.&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오빠가 웬일인교?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제.&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쉬잇! 사람들 듣겄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곰보할멈은 이 말에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quot;가소! 사람들 들을까봐 쉬쉬거리며 여기는 왠 일인교?&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등잔밑이 어둡다고 바로 곰보할멈은 최 도의원 나리의 배다른 여동생이었다. 일제시대의 세도가였던 최의원의 부친인 최참판은 법조계에서 알아주는 이로서 일정시대에도 법원쪽 일을 하는 한일 양쪽에서 필요한 사람이었고 그렇길래 양쪽 모두에서 적당히 인심을 얻어가며 재산과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때는 총독정치가 무단정치에서 유화책으로 바뀔 즈음이었다. 3.1만세운동에서 얻은 바는 일본측이 더 많았다. 적당하게 풀어주며 오래동안 다스리는 그런 유화책으로 식민지 통치가 바뀌는 순간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최참판은 본부인에게서 얻은 외아들이 언제나 불안하여 자손을 더 얻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아들에 이어 딸만 내리 셋을 낳은 본부인에게 이제 아들 운은 없는 듯 보였다. 그래서 여자를 들여서 얻은 것이 또 딸이었는데 그런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딸을 낳은 그 여자는 스스로 아이를 두고 사라지고 말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배다른 딸은 천덕꾸러기로 집안에서 길려졌는데 막내딸이었지만 애당초 귀여움을 받는 운을 전혀 타고나지 못한 아이였다. 게다가 일곱살이 되던 해 천연두를 앓아 심하게 얼굴이 얽어져 곰보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아예 있어도 없는 아이로 뒷칸에서만 길러진 그 아이가 바로 이 곰보할멈이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얼마나 한이 많은 아이였는지 알아주는 이도 없었고 낳은 엄마조차 포기해버린 아이는 그렇게 길려졌는데 아예 법적으로도 이름을 올리지도 못하고 어디서 주워온 식모아이로 주위는 알고 있었다. 그런 과거가 있었길래 곰보할멈은 어릴 적부터 존재감을 가지지 못했고 그래도 오빠라고 있던 최의원이 동정심이나마 알은 척 해주는 존재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 인연인데 왜 그 참판이 남긴 그 오래된 적산가옥 근처를 떠나지 못하는 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심하게 얽은 얼굴을 가지고 어디 다른데라도 무슨 영화가 기달리랴 싶은 마음이었는지는 모르나 태어나 그 해안가 마을에서 단 한발짝을 떠난 적이 없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손위로 배다른 누이들은 다들 출가하여 멀리 일본으로 만주로 서울로 흩어졌지만 단지 남은 식구라곤 배다른 오빠인 최의원과 자신뿐이었다. 명절이라도 감히 친척들 가운데로 나가보지도 못한 존재로 컸고 그러다가 뒤채 채마밭에다 따로 살림을 낸 것이 지금의 집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땅을 지금에 와서 비우라니 말라니 생짜 야단들이니 도대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래 내 무심했다. 그래도 최씨 가문인데 긴 이야기 집어치우고 이제 오빠 말 들어라. 돈은 줄라는 대로 줄터이니..&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최씨 가문? 언제는 문둥이 보듯 멀리 하더니..&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긴 이야기 꺼집어 내면 말이 안된다카이. 말 좀 들어라. 숙아.&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남이 자기 이름의 끝자인 숙(淑)자를 부르는 것이 하도 오래되어 자신의 이름이 아닌 타인의 이름을 부르는 듯하여 귀에 설었다. 할망구가 되어 이름자를 불리다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바빴기는 바빴는갑다. 오빠가 직접 나를 다 찾아오고. 최씨 족보에도 없는 나를 우째 동생이라고 하요? 긴 아바구하지 말라고 못부터 박는데 긴 이바구 하기 싫기는 나도 마찬가지요. 차라리 여지껏 죽은 개보다 못하게 취급해 놓고 긴 이바구 짧은 이바구를 찾는 거요. 이바구 자체를 하지 않음 되지. 텃밭에 집칸 겨우 짓게 해놓고 이제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네. 내 집터가 그렇게도 방해가 되는 모양이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도 천성이 착한 곰보할멈은 직접 찾아온 오라버니를 대접하느라 무언가를 챙기려 부엌간으로 나선다. 기사와 함께 대청마루에 걸터앉은 최의원은 짐짓 말리려다 내버려두었다. 이야기나 실컷 들어주면 무언가 해결이 보일 지도 모른다. 어차피 토지소유가 곰보할멈으로 되어있는 이상 몇십년전에 우리가 준 땅이라고 말하며 뺏는 것은 죽은 자식 고추만지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할멈은 소주 한병과 묵은 김치 한사발을 내어온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오빠라고 이 누추한 집구석에 찾았으니 대접할 것은 없고 소주나 나랑 한잔 하고 가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이로도 터울이 상당히 졌지만 워낙 얼굴이 얽어 최의원보다 외려 더 나잇살이 들어 보이는 할멈이 말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래 쌓인 이바구도 있을 터이니 한잔 하자꾸나. 집도 엎으지면 코닿을 때이니 마신들 어떠리.&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올케는 내가 오빠 동생인 것도 아즉 모르지요. 성식이나 성애는 말 할 것도 없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래 처음부터 숨긴 것 그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고 지금와서 이야기하겄노.&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서방도 자식도 없는 년이 코앞에서 조카들이 나다녀도 조카라 부르지도 못하고 살았소.&quot;&lt;/P&gt;
&lt;P&gt;&quot;어허. 또 그 소리. 언제는 오빠 동생하고 지냈나. 다 지나간 세월, 니가 한번 숨었으면 그런대로 한세상 살면 그만이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어째 자기가 당치 않았다고 그런 말을 하능교. 사람이 살아도 죽은듯 사는 것이 차라리 죽는 것보다 힘들다는 것을 당하지 않음 모르는 법이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두손으로 술을 따르며 이렇게 말하는 곰보할멈의 작은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이릴 적부터 모친과의 생이별과 친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배다른 형제로부터 철처히 무시당하며 살아온 한평생이 그 눈물에 있었다. 그기다가 당시에는 천형(天刑)이라고 한 마마호환의 자국까지 얼굴에 가지고 살아온 여자의 한평생이라면 눈물 몇 방울로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도 자신의 존재를 오직 한사람인 지금 자신 앞에 늙고 고집스런 모습을 한 영감의 모습을 한 오라버니 한명뿐이었다. 나머지 형제인 언니 세명은 아예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했고 집에 일하는 식모취급만 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니 뒤늦게라도 찾아온 오라버니에게 보인 눈물은 원망과 고마움이 뒤섞인 그런 눈물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최의원은 그뒤로 별 말이 없이 술잔만 비웠다. 가끔 여동생에게도 술잔을 건네었을 따름이었다. 아직 대청마루에 멀거니 앉아있는 운전기사에게 눈길을 주며 마지막으로 곰보할멈에게 말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만 갈란다. 내가 온 뜻은 말않해도 알리라 생각하고 간다. 성식이 보낼끼구마. 이제 숨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니나 나나 살만큼 살았다. 성식이에게 못할 말 숨길 말 없으니 니 하고잡은 말 다해라. 간다...어이 김기사, 내 나간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30.&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영필이는 그날 어처구니없이 둘이 날을 샜던 그 나이트의 밤을 생각하면 황당했다. 무슨 계집애가 머리에 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그냥 나이트만 데리고 가주는 그런 사람을 찾는 것뿐인 것 같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맥주를 마시며 춤까지 추면서 그냥 그대로 새벽의 통금해제를 기다린 것까지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진행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가 엉뚱했다. 밤이 깊어지면 나이트클럽의 분위기도 열기를 더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새벽 3시를 넘기면 피곤이 몰려와서 주로 얼싸안고 반은 조는 듯한 발라드풍의 블루스곡을 틀어댄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무리 청춘들이지만 그래도 밤을 꼬박 새는 그런 논스톱 에너지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대충 연인들이 몰려와서 시간을 보내다 새벽녘이면 해장국집이라도 찾아서 해장술로 다시 피로를 푼 다음 전날의 여운을 가지고 흩어져 어디서든 이부자리에 쳐박히게 마련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미 몸이라도 섞은 관계이면 단골 여관을 찾아 새벽의 정사를 가지고는 이내 널부러져 자든가 아니고 처음 만난 관계이면 그런 진한 관계로의 발전 전단계로 서로 탐색을 하다가 좋으면 부부연(然)하듯 잠자리까지 함께 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였다. 물론 통행금지 4시간이란 공백이 가져다 준 필요, 불필요의 결과이겠지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필도 의례 그런 코스대로 따라 가고 있었다. 어차피 가정에서 통금이 없는 여자애라면 내놓은 딸이거나 아니면 가출한 아이 그렇지도 않으면 자기나름의 이유를 대고 독립(?)한 아이일 것이다. 그런 뒷조사까지 처음 본 사이에서 필요치는 않고 다만 이 계집아이가 진드기냐 아니냐란 그런 중차대한 심사를 함께한 4시간동안 결론을 내려야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직도 사회에는 남자가 여자의 몸을 가졌을 때는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불문율이 시퍼렇게 살아있었는데 그 날선 도덕의 끝이 조금씩 조금씩 무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 여자들이 달라붙는 경우인데 이 판단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필이에게도 그런 작은 교훈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래도 몸조심하는 영필이는 한번도 오리지널 진드기타입의 여자를 만나지 않은 것은 행운이었다. 행운은 얼마든지 불행으로 급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조심할 일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무대는 더욱 사람수가 줄어들었고 더욱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판을 트는 디스크 쟈키도 연방 하품을 하는 것을 숨기고는 있지만 속으로 얼른 통금이 해제되어 홀안이 밝은 불이 들어오고 지겨운 짝들이 삼삼오오 흩어져가기만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속으로 얼마나 욕을 해댈까? '야, 너네들은 집도 없냐, 부모님들도 없어 허구헌 날 어디서 그렇게 날밤을 샌다니?' 이렇게 묻고 싶을 것이다. 영필이도 서로 몸을 부비며 블루스까지 친 앞의 아이를 두고 얼른 날이 새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단둘이만 오는 나이트는 생각보다 더 지루할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별히 마음에 쏘옥 드는 구석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몸이 안달하느라 시간이 지루하지 않은데 앞에 앉은 성미라는 이름의 아이처럼 그렇고 그런 류의 아이에겐 시간이 여간 아까운 것이 아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성미씨, 이제 정리합시다. 홀에 불들어 오면 더 서먹서먹해지니..&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래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쫄랑 쫄랑 따라오는 성미를 보고있노라면 시대도 변하고 계집애들의 몸가짐도 많이 변하는구나 싶었다. 이런 세계에 발 들이민 지도 3년은 족히 되었지만 이미 3년전하고도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이 여자들의 정조관이 아닌가 싶었다. 숫제 그런 의식조차도 없어 보이는 '신인류(新人類)'의 등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적이면 옛날 어릴 적의 신문에서 본 카사노바 '박인수 사건'이라든지 더 이전의 '자유부인'의 등장을 알린 무슨 장편소설 등은 이제 박물관에 갈 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 사회학적 접근은 학자들에게 맡기고 나이트 클럽 입장요금과 술값이라도 빼려면 요놈의 가시나를 어떻게 요리하나하는 현실적인 계산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하루밤을 샌 사이인데 그냥 보낼 수는 없고 해장국이나 먹으며 생각할까 아니면 단도직입적으로 그냥 여관에서 좀 노닥거릴 까 궁리중인데 성미가 불쑥 말을 꺼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우리 그냥 가는거예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의문문인지 긍정문인지 애매모호한 물음이다. &quot;그냥 가지 그럼 버스타고 가나? 이 새벽녘에 첫차라도 있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농담인지 뻔히 아는 답을 하고는 성미의 손을 잡았다. 물론 손을 빼지 않는 것은 단지 술기운만이 아닐 것이다.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필이같은 전문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신사도를 지킨다. 그냥 초보 나이트 족이나 입술빨고 치마밑으로 손을 집어넣고 난리블루스를 치지 그런 짓거리는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지 그냥 신사적으로 해도 줄 년은 스스로 벗고 눕는 법이니 안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주지 않을 년이면 끝까지 무슨 노력을 해도 이쪽으로 다가오지 않고 설령 끌어당긴다고 해도 움직이는 바늘귀는 실을 꿸 수가 없는 법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배 고프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약간&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서 우린 나이트 앞에 통금해제 시간에 맞추어 대가힌 택시에 몸을 실었다. 나이트 앞에도 예의 '가께우동'집이 불을 밝히고 있었지만 어제 먹은 우동을 또다시 먹을 수는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명동입구에 택시는 멈추었다. 계산기에 찍힌 요금을 치루며 잔돈은 팁으로 운전기사분에게 양보했다. 중늙은이 아저씨가 새벽부터 한참을 일할 모양인데 첫 손님부터 후하게 받아야 하루의 운이 피차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미가 앞장을 선다. 이미 많이 다녀본 솜씨가 분명했다. 어쩌면 나이트 꾼인지도 몰랐다. 영필이는 내버려두었다. 굴러가는 대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선지해장국으로 유명한 집이었다. 이제 5시가 다되어 가지만 그 집안은 손님이 꽉 들어찼다. 찬은 잘 삭은 멸치젖갈에 시큼한 깍두기 뿐이었지만 그 집은 선지해장국은 무한 리필이 되어 젊은이들이 밤을 새워 놀은 다음의 위를 꽉 채워주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참으로 밤을 막어놓으니 더 밤을 새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네.' 속으로 이렇게 감탄하며 영필이도 성미와 한켠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28-30)&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28-30)&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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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25-2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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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속사프레서</name>
	    </author>
	    <updated>2009-09-10T03:27:05Z</updated>
	    <published>2009-09-10T03:27:0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25.&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시대는 변해가고 있었다. 변할 때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은 의례 잘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그 무엇이 분명 그 시절엔 있었다. 누구나가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그 어떤 두근거림. 어떤 이는 이를 자신감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할수 있다는 불굴의 새마을 정신이라고도 했지만 그 말이 그 말인 셈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학생들은 좋은 머리만 타고 나면 배를 굶어서라도 서울대 합격이라는 의외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도전정신을 가지기 시작했고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누구나 잘하면 자신도 공장주가 되는 날을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의 시대였다. 막 보급된 컬러 TV는 두자리 숫자의 경제성장에 진입한 나라의 변천을 연일 보도하고 있었고 작달막한 키의 민족의 영도자는 가는곳마다 테이프 커팅 행사와 폭파 버튼 누르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수출신장력은 매년 신기록을 작성중이었고 각 지방자치단체 앞에는 수출액 목표달성 숫자가 게시되기도 했다. 가발가공으로 시작된 수출은 '수출만이 살길이다.'란 표어처럼 어떻게든 수출해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이 국부(國富)의 지름길로 인식되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의 학비가 없어 엄마가 머리를 잘라서 책값을 대고 잘라진 머리는 수건으로 질러매었다는 이야기는 지천으로 늘린 그런 감동스토리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희생에 따른 보답이 분명히 있는 그런 세월이었기에 힘들어도 보람차게 시작되는 나날이었다. 길거리 자동차의 숫자는 날로 늘어갔고 이제 조립식 자동차가 국산자동차의 이름으로 등장되는 그런 시기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60년대의 화물트럭 조수가 시동 크랭크로 일본산 '도락꾸' 앞에서 크랭크를 돌려 시동을 거는 그런 장면은 이제 싹 사라지고 온갖 종류의 차들이 모양을 뽐내며 거리를 메워갔고 이제 부를 모은 사람들은 자가용을 가지는 그런 시대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아직은 비포장도로가 많아서 도시의 변두리는 그래도 '마누라없인 살아도 장화없인 못산다.'란 말이 있을 정도여서 비가 오면 진창으로 연탄재로 메꾸어야 겨우 다닐 수 있는 동네도 많았다. 도시는 점차 그 변경을 넓혀갔고 농촌에서의 뻔한 생활을 팽개친 남녀들은 도시로 도시로 일거리와 직장을 찾아 몰려든 세월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런 거대 도시화의 과정이 근대산업국가에선 백여년을 두고 이루어진 반면에 우리는 불과 이십년만에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그 속도감을 그 속도의 와중에 있던 사람들은 미처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버스안의 사람들이 시속 70킬로나 90킬로나 잘 느끼지 못하듯이.&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분명 우리는 전 사회가 모두 어느곳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함께 맞물려 변하고 있었고 사람들의 내면까지 변하고 있는 것을 외부 속도감이 빨라서 미처 인식을 못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쌀을 구경하기 쉽지 않았던 60년대를 지나 이제 굶어죽는 사람이 여지껏 있나하는 딴청을 부리기 시작하는 시대가 또 70년대였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60년대의 그 수많은 각설이들이 70년대에는 거짓말처럼 희소해졌다. 60년대에는 꼭 저녁밥을 지어서 식구수대로 둥근 나무식탁에 둘러 앉을때면 대문간에서 낮은 저음의 각설이들이 밥을 구걸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70년대 들어선 아직도 그런 각설이 짓을 하면 천성이 게을러서 못쓴다며 마구 어른들한데 야단맞는 그런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제 가난은 바로 게으름에서 나오는 것이고 근면성만 가지면 누구나 부유하게 살 수 있다는 그런 시대정신이 사회전반에 깔리기 시작한 것이다. 각설이 타령이 이 시대에는 숨어서 80년이 되어서야 연극무대에서나 부활하게 되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넝마주이, 각설이, 문둥이, 사당패와 같은 천민 부류들이 군사정권이 들어서 '국토건설단'으로 흡수되어서인지 죄다 사라진 것이다. 물론 서민들이야 밝은 사회가 이룩되고 이제는 서민들이 꿈을 가지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며 스스로의 발전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하루하루를 힘차게 사는 그런 국가재건의 틀이 확고하게 되고 서구사회가 수십년이 걸려 이룩한 근대화를 우리는 군사작전처럼 후다닥 해치운 그런 시대가 바로 70년대인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 흥분되고 보람된 십년에서 서서히 우리는 여지껏 우리가 살아온 방식인 60년대 이전의 방식을 지워가기 시작했다. 바로 뒤돌아보면 마주치는 그 과거를 마치 우린 그 시절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듯 지워가기 시작한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바로 60년대만 해도 머릿니가 바글대던 아이들이 이제는 언제 옷에 이가 있었냐는 듯 내숭을 떨기 시작했고 '산토닌'이란 이름의 회충약을 학교에서 무상으로 공급받아 몸의 회충을 몰아낸 그 60년대를 아예 떠올리는 것 자체를 서로들 꺼려하기 시작한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길거리에서 가끔 볼 수 있던 아이들의 똥무덤에서도 발견되던 그 회충이 채식을 주로 했던 우리네에겐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맛난 음식을 보면 '회(蛔)가 동한다'는 표현을 했던 것이다. 채변검사때면 미처 준비를 하지 않은 아이는 학교 화장실로 달려가서 나오지도 않는 생똥을 누느라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때론 옆의 놈 대변을 찍어서 채변봉투에 담기도 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런 거북살스런 준비물들이 당시엔 참으로 많았다. 파리를 잡아서 빈 성냥통에 담아오는 숙제가 있는가하면 쥐를 박멸한다고 쥐꼬리를 잘라서 가져오는 숙제들도 있었다. 해충과의 싸움이 극렬했던 60년대가 지나고 주거환경과 식생활이 개선되는 70년대에 가면 언제 우리가 그런 지저분한 일에 시달렸다는 듯 입을 싸악 닦고는 너 내 할것없이 모던 보이, 모던 걸로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집도 초가집에서 일부 기와집들이 있었고 일제하의 일본놈들이 살던 적산가옥이 남아있었다. 다다미방이라면 의례 적산가옥을 떠올렸다. 그런 다다미방이 산재했던 시절이 60년대이고 70년대에 들면 다다미 자체가 공급이 되지 않고 적산가옥들은 모두 양옥으로 바뀌는 이른바 집장사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초가나 기와집에서 적산가옥을 거쳐서 도달한 것이 블록이란 말로 대변되는 '블록집' 즉, 양옥(洋屋)이다. 서양식 집을 본떠서 그냥 베란다를 만들고 시멘블록으로 뚝딱 지은 것이다. 이런 양옥에 사는 사람들을 우린 모두 부러워했다. 대궐같은 기와집도 필요없고 그저 양옥 이층집에서 자기 방 하나 따로 가지는 것이 모든 학생들의 꿈이기도 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서둘러 기와집을 부수기 시작했고 판에 박힌 설계도로 시멘트 콘크리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저 물, 모래, 자갈, 시멘트의 적당한 배합과 거푸집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였다. 때로는 철근이 들어가면 더욱 견고하겠지만 철근도 필요없는 시멘트 블럭집이 지금 아이들의 '레고' 블럭처럼 착착 쌓여갔고 그 외면을 미장이가 시멘트를 곱게 바르면 완성되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런 집장사들의 집들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인구 도시집중화로 턱없이 모자란 집을 공급하기에 아파트형 주거형태가 나은 것을 발견한 사람들은 아파트형 주거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70년대의 강남개발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분양방식이 채 정해지기도 전이라서 하루에도 몇채씩 분양을 받아서 윗돈을 얹혀서 되파는 아주머니들이 '복부인'이란 별명과 함께 검은 선글래스를 썬 모양으로 묘사되기 시작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왜들 개발에 관련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선글래스를 쓰는 지는 알 수 없다. 민족의 영도자, 보릿고개의 해결사인 박대통령도, 복부인으로 대변된 초창기의 투기아주머니들도 검은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아마 개발현장이라면 햇빛이 눈부셔 선글래스를 썼는지 아니면 자신들의 하는 행위가 그렇게 떳떳치 못했서인지, 아니면 정반대로 되바라진 자부심을 가지고 하는 행위라고 카리스마라도 주는 모양으로 쓴 것은 아닐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개발의 주역들은 그렇게 등장하고 이런 등장은 모두 70년대에 이루어졌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부산 해운대 그 넓은 백사장의 귀퉁이에도 '극동호텔'이란 자그마한 호텔이 달랑 하나 들어서 있었던 세월이고 보면 그 개발이 가져온 변화는 엄청났다. 지금은 마치 마이애미 해변과 달라 보이지 않지만 당시의 해운대는 신라의 최치원이 바라본 해운대와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런 변화의 물결이 소나무가 푸른 송도(松島)에도 불어오는 것이었다. 일제시대부터 있어온 작은 여관급 호텔에서 송도레저타운 정도의 변모를 꿈꾸기 시작한 이가 바로 도의원 나리인 최창조였다. 창조 어른은 동네 유지급으로 작은 호텔을 가지고 시내 극장과 주유소를 가진 자산가였지만 자칭 개혁의지를 가진 계몽세대로 자신을 소개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일제때 친일세력이었던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산과 자신의 배포로 일군 자산에만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욕구의 단계를 올려 명예욕까지 넘나보는 그런 단계의 인물이었다. 지인들과 어울려 해운대 극동호텔 커피샾에 들러서 우연히 서울 이야기를 듣다가 10년을 내다보아야 기업가란 소리를 듣는다는 부친이 늘상 해오던 말과 함께 구상한 것이 바로 별관 공사계획건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일단 해변 뒤로 나앉아서 손님을 맞는 현재의 위치로는 바다를 바라보며 피서를 하는 피서철의 호텔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현재의 위치를 포기하기도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별관 개념으로 증축을 시도하여 해안도로에 접하는 그런 호텔을 짓는 것이 그 구상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바다의 흰 포말을 바라보며 객실 손님들이 휴식하고 파도소리와 함께 잠들며 커피도 마시는 그런 휴양지의 호텔으로서 손색이 없는 호텔을 지어서 마냥 기다리는 호텔업이 아닌 수요를 창출하는 그런 적극적인 마케팅을 가진 그런 호텔로 탈바꿈해야한다는 생각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벌써 일본에선 전후의 어려움을 이곳 한국전쟁으로 떼돈을 벌어서 국민들이 레저에 눈을 떴고 그 여파로 이곳 부산지역을 위시하여 서울등지로 얼마나 단체관광객이 몰리는 지 모른다. 이런 특수를 한껏 수용하며 도약의 발판으로 삼자는 것이 최의원 나리의 구상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일본 단체 관광객이 몰려온다는 소리만 들으면 마음이 바빴다. 그저 그들이 돈뭉치로만 보이는 것이었다. 이미 부산 남포동 숙박업소는 휴일이면 객실이 만원이 되어 이곳 송도까지 밀려서 관광객이 올 정도였다. 이들은 동래 온천장의 요정으로 직행하는 편이라서 단지 숙박만이 목적이었지만 이들보다 더 수준높은 관광객이 올때면 아마 레저용 호텔을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빨리 빨리 해라. 터만 잡으면 공구리 치는데 시간 얼마 안 걸린다. 요즘 건설자재가 오죽 좋나.&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렇게 닥달을 해가며 사업을 진행시키는데 마음처럼 진행이 되지 않는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어이, 여기 맥주 몇병 가져온나.&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날라온 찬 맥주를 몇잔 거푸 들이키고 나니 갈증이 좀 내려간다. 그제서야 앞에 놓인 서류를 챙긴다. 일은 서류로만 진행되지 도무지 현장에서 공사소리가 나지 않으니 속에서 불이 나는 것이다. 또 다시 두어잔 맥주를 마신 다음에 전화기를 잡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어이, 김상무 성식이 오라케라.&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믿는 것은 아들뿐이다. 속이 여린 것이 똑 지엄마를 닮아서 모진 구석이 좀 없어 탈이지만 그래도 피붙이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성식은 부친이 부른다는 소리에 급히 달려왔다. 호텔일만 하지 다른 사업에는 관여치 않지만 이번 증축건은 호텔건과 직결되어 있기에 자신이 맡은 일과 다름이 없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회장님, 불렀습니까.&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집에선 아버지라도 회사에선 깍듯이 직함을 불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그래. 진행은?&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인자 두집만 남았슴니더.&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알겄다. 폐병장이는 니가 맡고 곰보할멈은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그럴 필요까지는..&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시끄럽다 고마. 그 할마씨는 다른 목적이 있는기라. 내가 나서야만 되지..암.&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오늘은 이렇게 상의하달(上意下達)식 회의가 끝났다. 그러니 이제 한집뿐이다. 폐병장이 최씨 아재집으로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회장실 문을 나섰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lt;BR&gt;26.&lt;/P&gt;
&lt;P&gt;&lt;BR&gt;&quot;아재 계신교? 아재.&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누고 성식이가? 들어와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최씨 아재는 집에 있었다. 소주 대엿 병하고 안주꺼리를 들고 최씨댁 삽짝 문을 열었다. 이전엔 개도 한마리 있었는데 그사이에 늙어 죽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요즘들어 개짖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삽짝에 사람들어도 개가 짖지 않을 리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재, 개는 없는교?&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글마 죽은 지가 하매 얼만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무심했심더. 미안함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니가 미안할 것 있나. 아부지 밑에서 수발들랴 동네개발하랴 니가 울매나 바쁘겠노?&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최씨 아재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장쇠와 성식이에겐 그 누구보다 좋은 아저씨였다. 월남가지 이전부터 알고지낸 동네 아저씨로 어릴 적에는 군에서 휴가라도 나오면 꼭 군대건빵을 가져와서 성식이와 장쇠에게 나누어 주었다. 말년에 자원했는지 차출당했는지 월남전에 참전한 이후로는 영 사람이 망가져서 제대했었다. 누군 월남에서부터 병이 도져서 개지랄을 했다고 했고 누구는 베트콩에 잡혀가서 죽을 고생을 한 이후에 사람이 살짝 돌았다고도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 장쇠와 성식이에겐 언제나 군대 휴가때 나오면 둘이를 불러서 건빵이랑 별사탕을 나누어주고 군대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던 좋은 아저씨였다. 이제 오십줄에 든 아재는 툭하면 동네 건달과 맞붙어 싸우든지 아니면 술이 취해 새벽녘에 고래고래 고함질로 파출소에 드나들기를 제 집 드나들듯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최씨 아재는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저녁으로 라면 드십니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라면이면 됐지, 진수성찬아니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소주를 내밀며 사가지고 온 안주거리를 밥상에 차렸다. 최씨는 라면을 다 끓였는지 석유 곤로불을 껐다. 확하니 석유기름냄새가 났다. 석유곤로는 기름심지를 잘 손봐야 기름냄새가 없는데 남자만의 살림이라 제대로 된 것이 없어 보였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순하고 좋은 아재가 월남전의 상처로 정신이 약간 돌아서 결혼까지 한 아주머니를 그렇게 학대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갖은 학대를 견디다 못한 아주머니는 차곡차곡 모아둔 돈을 몽땅 털어 달아났다고 했다. 누군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가지고 시집을 왔느니 본 남편을 둔 아낙으로 다시 그 남편에게 돌아갔다느니 말들이 무성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 지금은 그런 소문조차 돌지 않는 잊혀진 사람으로 동네 한켠에서 살고 있는 최씨였다. 갖은 악담은 아마 그 아주머니가 자신의 줄행랑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미리 퍼뜨린 악소문인지도 몰랐다. 담배불로 성기를 지진다든지 아니면 의처증이 극에 달해서 매일 발가벗겨서 돋보기를 들이대고 훑는다는 등의 새디스트적인 악담이 주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설령 최씨 아재가 그런 변태적인 행동을 했더라도 그것을 입에 올린 아주머니도 정상적인 사람으로 볼 수 없고 그렇다면 단 한번의 도주로 영영 나타나지 않는 행동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지 궁금했다. 그것도 그냥 내뺀 것이 아닌 전재산을 통털어 달아난 꼴이니 사람 망신주고 돈만 빼간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자아, 술을 사왔으니 마셔주는 게 예의지. 장쇠가 있으면 더 좋을텐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재는 장쇠만 찾고 나는 안찾는 모양이데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식이가 불만인듯 이렇게 말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내 눈엔 장쇠나 니나 마찬가지다. 꼬맹일 적 그대로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소주를 맥주잔에 한컵 따라서는 내민다. 성식은 얼른 받고는 다른 잔에 가득 따라서 아재에게 드렸다. 튀김 닭은 찢어서 먹기좋게 접시에 올려놓았다. 한컵을 단숨에 들이킨 최씨는 말을 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꼬맹이들이 어릴 적에도 투닥거리더니 커서도 여전하구나. 내가 어느편에 들어줄꼬.&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내편에 서이소. 대세가 내편임더. 장쇠 그 자슥 쪼매는 변하야제 시대가 변하는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성식아 그럭하자. 내 너거 부친도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내가 너거 발전에 알박이로 방해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오랫동안 산 동네이고 이 부지가 내가 살던 땅이니 그런 것이제.&quot;&lt;/P&gt;
&lt;P&gt;&quot;고맙심더. 장쇠 녀석이 뭐라 해도 아재 지금 한 말 믿겠심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장쇠가 너거 확장공사를 방해하는 줄 아는 모양이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안 그렇습니까? 매사 엉뚱하게 방해하는 기 아니면 뭡니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방해가 아니고 사는 방식을 바꾸기 싫다는 말이제.&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기 그 말 아니고 무엇입니꺼? 세상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사람이 바뀌면 쓰나? 사람은 안 바뀔수록 좋은 법이지. 너나 장쇠가 어릴 적 그 모습에서 바꾸지 않는 것이 좋듯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래도 장쇠처럼 도통 말이 들어가지 않아서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성식아, 말은 바로 하자. 바뀐 사람은 장쇠가 아니고 니와 너거 아부지가 바뀐 것이지. 좋게 바뀌면 좋지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말을 끝으로 현안에 걸린 대화는 더 이상 진행이 없었다. 그래도 최씨 아재가 집을 내놓고 떠날 의사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파악한 이상 성과는 기대이상이었다. 모처럼 부친에게 희소식을 전할 기대감으로 성식이는 술을 마음껏 마셨다. 최씨 아재는 기대이상으로 잘 대해주었으며 장쇠와의 우정 변치 않기를 기대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밤은 그런대로 깊어갔고 이제 가을도 꽤 깊어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27.&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우리들은 이제 이번 겨울이 오면 고3으로 올라간다. 학창시절, 그것도 의무교육의 끝이다. 대학에 진학하면 그야말로 자유천지에 도달이나 하는 것처럼 우리는 마지막 악전고투의 1년을 눈앞에 두고 어서 이 지겨운 고교생활이 끝났으면 하고 바랐다. 두개씩이나 도시락을 싸가지고 보충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면 밤9시가 코앞에 오는 그런 지옥같은 나날이 되풀이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때로는 학교 식당에서 라면에 도시락을 통째로 쏟아넣고는 김치와 함께 우적거리며 먹어대는 식욕만이 유일한 낙인 그런 집단수용소와 같은 고교생활은 더 이상 매력이 없었다. 이런 지옥훈련이니 먼 훗날 더 생각날 것이라는 선생님들의 위로 아닌 위로가 있었지만 직접 당하는 학생입장은 졸업후에는 모교를 향하여 오줌도 눌 것같지 않는 생각이었다.&lt;/P&gt;
&lt;P&gt;석근이는 이런 생각이 지나쳐 '왜 하필이면 대한민국에 태어나 청소년기의 좋은 때를 이렇게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기계처럼 보내어야 하는지..'하는 생각이 마침내 '아...다시 태어난다면 차라리 인도나 아프리카같은 나라가 더 좋을 것 같다.'란 엉뚱한 생각으로 발전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마디로 얼른 벗어나고픈 그런 기억만이 있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해서 대학에 진학하면 전공이 정해져서 과목도 줄어들고 심도있는 공부를 하는 줄 알았고 대학만 가면 축제랑 미팅이랑 온갖 낭만이 찾아들 것 같았다. 그런 공상이라도 없으면 늦은 시각에 잠들어 새벽단잠을 억지로 깨어서 도시락 두개를 가방에 집어 넣고 영어사전, 독일어사전까지 산더미같은 책가방을 들고 통학을 하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에 굳은 살까지 생기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거 열댓가지가 넘는 과목을 암기하느라 진땀을 빼는 행군은 고교 시절 후반에 가면 그야말로 체력전으로 전개되어 '사당오락(四當五落)'과 같은 말, 즉 4시간 자면 합격이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이 나돌았다. 고만고만한 지능으로 오직 체력으로 수면시간을 줄여서 하루 온종일 공부만 해야 목표로 한 대학에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정말로 지겨운 계절이었다. '자주색 가방'이니 '여고 삼학년'이니 하는 앳된 가요로 고교시절을 미화하는 노래도 나왔지만 생각하면 징하기 짝이 없는 세월이었다. 게다가 교련과목이나 든 날이면 땡볕에서 열병훈련을 하느라 목총을 들고 교련복을 입고 운동장에서 한나절을 돌았다. 시험준비도 바쁜 차에 교련으로 열병식까지 준비하노라면 책가방은 각반에 교련복에 도시락에 책과 참고서로 한보따리가 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도 교과목 도중의 유머가 넘친 선생님들의 우스개 한마디가 유일한 낙이라면 낙이었다. 그리고 한반의 친구들과 학교외에서 만나서 담배나 나누어 피우는 그런 불량기로 달래던 나날이었다. 그래도 착한 학생이라 담배를 책가방에 넣고 다니는 막나가는 학생들과는 달랐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저 돌파구로 배운 담배를 몰래 만나서 피우는 도둑 담배로 지루한 고3 수험생활을 이겨내고 있었다. 현규와 민수가 단짝이었다. 나중에 이 둘과는 석근이가 서울로 진출하느라 대학시절의 우정이 이어지지 못하지만 그 짧은 고3시절의 짜투리 만남에서 대학진학과 앞으로의 인생에 대하여 갓 배운 담배를 줄창 피워가며 보낸 시절은 암울했던 고3에서 유일하게 아쉬움으로 남는 시간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제대로 술한잔 나누지 못하며 헤어진 그 친구들을 생각할 때면 석근이는 언제나 좋은 친구들을 길게 사귈 기회를 빼았긴 것같이 아쉬웠다. 나중에 서울로 와서 하숙집에서 사귄 그 팔도사나이에 비하면 고향친구와 같은 현규와 민수가 언제나 생각났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날도 현규네 집에 들러서 셋은 모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민수는 바로 내 짝이었다.약간 말을 더듬는 민수는 정말 순한 아이였다. 공부는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집에선 이미 서울에 진출하여 대학시절을 보내고 있는 형을 따라 서울로 진출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성적이 그렇게 나오질 못했다. 현규는 장남으로 아래로 동생들이 많이 있었다. 바로 아래로 둘은 남형제로 같은 엄마의 동생이었지만 아직 유치원생인 남매는 배다른 동생으로 지금의 새엄마가 낳은 아이들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외항선원이었던 부친이 오랜 기간 선원생활로 원만한 가정을 이루지못한 복잡한 가족사가 있는 모양이었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쓸 만한 이유도 여유도 없는 고3이었던 것이다. 다만 작은 빌딩의 꼭대기층에 있는 현규네 방은 우리들의 담배피우는 장소로 안성맞춤인 오소리굴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도 어른들 몰래 고3시절의 그 숨막혔던 답답함을 풀 돌파구로서 우리들은 곧잘 시간이 나면 현규네 아지트에 모여서 수험생활의 고충을 서로 나누며 담배를 나누어 피웠다. 그러다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도시락을 두개씩이나 싸가지고 등교하는 그런 일상을 되풀이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반찬은 멸치볶음이나 김치였는데 김치의 보관이 언제나 문제였다. 김칫국물이 배어나서도 않되고 냄새도 풍겨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60년대라면 그냥 책보따리나 책가방은 언제나 한귀퉁이가 김칫국물이 배어나서 생긴 자국을 가지기 마련이었지만 70년대에 오면 아기 이유식으로 팔리는 미군용 물자인 '거버(Gerber)' 이유식 유리병이 재래시장에서 도시락 김치통으로 팔릴 정도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완벽한 방수로 김치를 담아서 도시락 반찬통으로 사용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너도 나도 그 거버 유리병에 김치를 담아서 가방에 넣어 학교로 다녔다. 그래서 이런 우스개 꽁트를 읽은 기억이 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느 남학생이 만원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중이었다. 뒤좌석으로 겨우 밀고 들어가서 좌석칸을 붙들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버티는데 옆좌석에 앉은 여학생이 가방을 받아준다. 그땐 서로 가방정도는 앉은 사람이 받아주는 때였다. 바로 그때 김치를 담은 그 아기모습 상표가 붙은 거버 유리병이 떼구르르 굴러 버스 복도에 떨어진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창피하고 부끄러워 남학생은 얼른 그 김치통을 주워서 자기 가방에 쑤셔넣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자 옆에 앉아 자신의 가방을 받아준 그 여학생이 자신을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빤히 쳐다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쳇, 지는 김치 안먹나? 고상한 척하고 있네. 왜 남의 얼굴을 민망하게 쳐다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속으로 화도 나고 부끄럽기도 했는데 학교에 가서 마침내 기다리던 점심 시간이 되어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는데...아뿔싸 이게 무슨 일이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똑같이 생긴 김치 유리병이 두개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바로 버스칸 복도에 떨어진 그 김치유리병은 그 여학생의 가방에서 떨어진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꽁트를 읽으며 누군가 몰라도 참으로 당시의 그 똑같이 생겨먹은 김치반찬병을 소재로 만원버스에서 일어남직한 꽁트라고 웃은 기억이 난다. 부산 국제시장 뒤편의 '케네디'시장에는 미군으로부터 흘러온 그런 식품류가 팔렸다. 일종의 암(暗)시장인 셈인데 그곳에선 아기 이유식, 버터, 치즈, 냉동쇠고기등 온갖 제품이 미군 PX로부터 나와 팔리고 있었다. 그중 하나인 거버 아기 이유식병은 우리들의 고교 생활내내 김치병으로 가방한구석에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25-27&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25-27&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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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22-24)</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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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cho3237.178</id>
	    <author>
		    <name>속사프레서</name>
	    </author>
	    <updated>2009-09-08T23:27:17Z</updated>
	    <published>2009-09-08T23:27:17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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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22.&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렇게 우리들의 여름은 지나고 가을이 찾아왔다. 이제부터 10월유신이 선포된다. 유신이란 낯선 글자를 해석해내느라 신문들은 바빴다. 그 누가 이런 단어를 어디서 찾아냈단 말인가. 일본의 메이지유신에서 따왔다는 사람도 있었고 또 다른 이는 중국의 옛 고전에 나오는 말이라고 했다. 이른바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말로 대변되는 유신의 시절은 그렇게 막이 올랐는데 뜻풀이가 재미있었다. 서양화초를 한국토양에 심어면 제대로 자라나지 못하듯 서양식 민주주의도 우리의 정치토양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엉터리 정치논리전개에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팔을 걷어부치고 지지했다는 점이다. 누군가 정치를 연구하는 이보다는 농사나 짓는 농군이 보는 정치가 하 수상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게 정치현황을 평하는 말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른바 어용학자의 등장인데 견강부회(牽强附會)하여 이런 엉터리 민주제도도 찬양하는 식으로 가르쳐 지식을 왜곡하느니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일반 농사꾼이 정치판을 읽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만큼 현실 정치와 학문으로서의 정치는 괴리감을 지녔던 것이다. 아주 이런 70년대 초반의 세월에선 어떤 것이 정치냐 하는 그런 의문을 품는 것조차 불경스런 짓이었다. 그저 민족의 영도자가 이끄는 대로 박수부대처럼 몰려가는 것이 만수무강에 지장이 없는 처세의 방법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참으로 입이 있어도 좋은 말만 할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권불십년이라고 이제 대통령직선제로 가면 국민들이 식상하여 정권을 바꾸고 싶어한다는 것을 위정자들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실을 호도(糊塗)하고 무언가 큰 일을 하는 것처럼 포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유신'이란 말의 등장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제 선거는 다 한 것이었다. 이렇게 언제가 끝인지 모를 그런 통치체제가 바로 우리 눈앞에 턱하니 다가왔던 것이다. 이승만정권의 1공화국도 하지 못한 총통제 비슷한 것을 온갖 정치역사를 뒤져서 의미를 부여하고는 '유신만이 살길이다'란 관제 구호로 사람들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 집권의 밧테리가 언제 꺼지는 가를 기다릴 뿐, 스스로 그 미친 불을 끌 사람은 없어 보였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런 무소불위의 대통령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그를 대통령이라 부르기보다 '박의장' 아니면 '박소장'이라 불렀다. 군사혁명 후에 만들어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의장으로 아니면 그가 몸담았던 군대의 계급을 따서 소장이라 불렀던 것이다. 이렇게나마 빈정대는 것이 숨도 못쉬는 체제에 대한 항거로 생각하며 자위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정치인이 정치를 하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훨씬 후의 일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전 군관민이 통합된 그 체제는 겪어본 사람이 알 것이고 그런 체제를 부정하는 사람이 당한 고통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저 초등교 시절부터 박정희각하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라는 것만 배워온 석근이로서는 왜 그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집에서 부친이 '박의장, 박의장'하며 부르는 것도 처음엔 알아 듣지 못했다. 혹간은 '박소장'이라고도 했는데 두 스타 계급자에 검은 선글래스 낀 사진을 보면 틀림없는 소장이었던 것이다. 군부쿠데타를 통하여 정권을 잡았고 국가가 바로 서면 언제든 민정이양을 실천하고 군으로 돌아간다는 그 말은 처음부터 거짓말이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군인이 정치를 하는 군부정권을 오랜 기간 맞게 되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 땅에 다시는 자신과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는 전별사를 눈물로 마친 그는 신사복의 대통령으로 돌아갔고 그 이후에도 자신과 꼭 빼닮은 후배가 군인으로서는 불행한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였다. 아니면 국민들이 재수가 없었던가.&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선거가 없어진 세월은 표면으론 평온하게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다수의 먹고사는 것에 골몰한 사람들은 그날이 그날이었지만 정치적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은 암흑의 세월 그 자체였다.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였고 그러길래 의사표현의 자유를 갈망하고 정치적 자유를 그리워하게 되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탄압정치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대학 캠퍼스에는 언제나 긴장감이 맴돌았다. 반정부 운동의 선두에 서는 학생운동이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긴급조치 몇호로 시작되는 초 헌법적 조치로 입은 봉했지만 마음까지 봉하지는 못하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닭의 목아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란 말이 바로 그 70년대의 정치적 자유를 갈망하는 대표적 표현이었다. 그렇게 긴 터널을 들어가던 바로 그 입구가 70년대의 초반이었다. 앞으로 언제까지 정권이 연장되며 이제는 정권교체란 걸 우리시대에서 과연 볼 수 있을까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던 그런 세월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래도 아직 고교를 벗어나지 못한 석근이는 근서를 만나 좋아하는 레코드 판을 사러 가기로 했다. 입시가 코앞에 다가 왔지만 그래도 그땐 그런 낭만을 가지고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팝송 중에서도 때로는 하드락을 때로는 컨트리 스타일의 노래를 찾아 들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근서는 그런 점에서 나와 취향이 맞았다. 유독 친구중에서도 마음을 터놓고 좋아하는 것을 서로 찾아서 들려주고 듣곤 했다. 특히 CCR과 같은 비트는 소리로 부르는 밴드를 좋아했고 '브라더스 포'와 같은 중창단도 좋아했다. 우린 암울한 정치와는 무관한 나이였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때로는 극장에 들러 영화를 볼 때면 대한뉴스를 봐야만 하던 귀찮음이 있었지만 지루한 뉴스내용은 앞으로 전개될 본영화의 촉진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오히려 당연시 했다. 대한뉴스와 애국가를 들어야 영화재미가 나는 것이었다. 영화보고 할매집에 들러 맵디매운 회국수 한그릇을 사먹고 돌아오면 행복한 나날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근서야, 공부 잘 되나?&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그저 그렇지 뭐. 빨리 시험보고 고등학교 마쳤으면.&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언제나 우리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때는 한번 지나간 그 세월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고 그 세월이 언제까지 갈 듯 보였다. 마치 그 유신의 세월이 언제나 지속될 것처럼.&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고교시절에도 '교련'이라고 목기 총검을 들고 총검술과 제식훈련을 하던 시절. 일본식 각반을 교련화에 두르고 얼룩덜룩 교련복을 입고 땡볕에서 운동장의 먼지를 마시며 제식훈련을 했다. 교련선생은 각 군부대에서 예편한 퇴역 군인들이었는데&amp;nbsp; 여러학과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 교련과목은 선생도 예편군인이라서 학교 생활과 영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지만 군부정권하에서 북한의 침입에 대비한다는 그 반공, 보안을 정권유지차원에서 이용하는 한 방편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학생들이 총검술과 제식훈련한다고 국방이 튼튼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들을 대상으로한 일종의 '얼차려' 훈련과 같은 맥락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긴박한 입시환경과 교련같은 훈련에도 틈틈이 우리는 머나먼 이국의 노래인 팝송을 즐겨들으며 그 시절을 낭만적으로 보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23.&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개학을 하자 해는 더욱 짧아지고 아침 저녁으로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졌다. 따라서 해의 그림자도 더욱 길게 늘어나고 운동장에는 오후 늦게 마지막 교시가 끝나면 저녁의 기운이 완연해 졌다. 그래도 개강과 동시에 과대항 축구대회와 온갖 행사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교문에 나붙었지만 대학의 청춘이 낭만을 가지고 참여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의례 대학생활이니까 하는 것은 할 수 밖에 없다는 그런 분위기 밑으로는 무겁게 청춘을 짓누르는 그런 무거움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대학생들이야말로 정권에 투쟁하는 선봉대였다는 4.19의 침묵의 전통이 이어져 이제라도 대학생들이 무언가 움직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일종의 의무감이 숨어있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생업으로 바쁜 사회인이나 농어촌의 일꾼들이 직업을 팽개치고 반정부 투쟁을 나설 그런 분위기도 그런 움직임도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독재정권의 연장으로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민주화는 요원하다는 그런 절망감이 깔려 대학 캠퍼스의 분위기는 무거웠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대학 앞에 즐비한 소주집들도 얼굴은 술에 취해 벌겋지만 마냥 기분좋은 취함이 아닌 무언가 울고싶은 마음을 한껏 드러내지 못한 그런 울음을 참는듯한 젊음의 숨죽임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70년대의 캠퍼스는 2학기를 맞이했고 표면상으로는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학사일정도 무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한규도 여느때와 같이 하숙집을 나와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법대생이라면 의례 가는 코스인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사회에 나가서 변호사나 판,검사로 출세해보겠다는 그런 의도는 없었다. 단지 법학도로서 학과 공부와 병행하여 꾸준히 도서관에서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그런 다른 목적이 없는 단순 의도였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과연 법이 인간사회에서 왜 필요하며 우리가 지켜야하는 법정신은 어떤 것이어야하는 지를 학문을 통해, 시험을 통해 알려고 노력할 뿐이었다. 사법시험을 대비하는 서클모임이나 도서관 무리들도 있었지만 한규는 단한번도 노크를 하지 않았다. 일종의 조선시대의 과거처럼 양반사회의 등용문으로서 과거 준비하듯 법학도의 출세코스의 입문노릇을 하는 사법시험이라면 한규는 별로이 관심이 없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조선조의 어사화(御賜花)를 머리에 꽂고 금의환향하는 그런 입신양명의 유전자가 당시에도 펄펄 살아있었고 그저 전국의 법대생이라면 사법고시를 패스하여 가문을 빛내고 마을을 빛내주기를 주위에선 바라고 바라마지 않았던 것이다. 학교 교문에도 사법고시 패스를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동네나 출신학교에선 경사중에 경사라고 졸업생중에 누구누구가 이번 사법고시 몇회를 패스했다는 것을 알리지 못해 안달이 날 정도였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별로 유명한 대학도 아닌 평범한 법대생에 불과한 한규로서는 확률적으로도 어려운 시험이기도 했지만 그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런 대가로서 고시를 택한 학생들은 동기 자체가 불순하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무조건 대학생이라면 삼시, 즉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중 하나는 대학 재학중에 도전해야 남아로서 가문의 영광을 빛내는 훌륭한 과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우리네의 풍토가 무언가 잘 못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렇게 지론이라도 펴는 날이면 &quot;짜아식, 자신없다면 자신 없다고 툭터놓고 말할 것이지, 무어 동기가 어쩌구 저째?&quot;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날아올까 발설은 하지 않았다. 고시에 일단 발을 들여다 놓으면 '결과가 과정을 합리화한다.'는 명제를 가지고 아무리 자신이 밤잠 아껴가며 시험준비를 했다손 치더라도 낙방하면 변명할 구실이 없는 것이라는 입막음이 있는 통에, 결과도 보기 전에 시험 준비 동기 운운했다가는 고시생으로서 기본도 갖추어져 있다고 사방에서 힐난할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무조건 낙방하며 '패장은 말이 없다.'고 합격하면 모든 과정을 보상받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The Winner takes All.)'이라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논리가 사실상 그때부터 심어져 있었던 것이다. 동기고 무어고 일단 붙고 나서 말하라는 결과 제일주의가, '모로가도 서울로 가면 장땡이다.'이라는 편법 승인주의가 팽배하기 시작한 때였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위에서 시키면 시킨대로 두말없이 잘하는 무조건 복종하는 딸랑이 근성이 '좆 몽둥이로 밤송이 까라면 깔 것' 아니면 'XX로 침상 못대가리를 뽑으라면 뽑을 것'으로 대변되듯이 당시에는 '결과만이 말한다.'는 결과 제일주의가 판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른바 '할수있다(Can Do Spirit)' 정신이 앞서 '어떻게(How) 해야?'하는 의문을 싸그리 무시하는 그런 시대정신으로 새벽종이 울렸다하면 무조건 튀어나가는 그런 근면을 넘어 일중독에 빠지는 감투정신을 최고의 미덕으로 권장하는 그런 시대였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런 살벌한 고시분위기에서도 한규는 흔들림없이 마치 참기름 다 짜내고 남은 깻묵만 씹듯이 육법전서를 끼고는 오늘도 저녁을 먹고는 하숙집을 시계추처럼 나와서 도서관으로 향하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학교 앞 건널목을 건느려고 빨간불에 대기하고 있었다. 빨간불이었지만 그 누가 바쁜듯 차가 없자 그냥 건너서 교문을 들어선다. 두 놈이다. 낯이 익다 생각했는데 바로 병욱이와 영필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얌마! 빨간불에 건너?&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소리쳐 불렀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하이구, 보안관 나리.&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영필이가 자신을 알아보고 뒤를 쳐다보며 웃는다. 병욱이도 돌아섰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법대생이 교통신호 하나 못 지키고선..&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마아..마, 일절만 합쇼. 보안관나리.헤헤..&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개학하고 처음 본다. 다들 여름방학 잘 지냈어?&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개학하고 정말 처음 만난 친구들이다. 그래도 다 지방 출신이라 하숙촌에서도 만나지만 이렇게 학교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다들 고시공부는 하지 않으면 안되는 필수코스처럼 목에 걸고 있지만 매진한다고는 결코 볼 수 없는 친구들이었다. 병욱이는 무언가 지하로 잠적하여 내숭떠는 것처럼 보였고 영필이는 편입생인데다 하숙집에도 잘 붙어있지 않은 날나리였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세명을 엮어 주는 끈이라고는 같은 법대에 몸을 두었다는 것과 집이 서울이 아니라는 점 뿐이었다. 공부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영필이는 그렇다고 쳐도 병욱이 이 녀석은 학교보다는 사회개혁, 그중에서도 정치개혁에 뜻을 둔 놈이었다. 지가 무슨 '레닌'이나 '트로츠키'나 되는 것처럼 돈안되는 사회과학서를 언제나 끼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지난 학기 학점 다들 이상없었어?&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정시 졸업하긴 날쌨다. 어쩌면 코스모스졸업이 아니라 일년을 꼬박 더 다니게 생겼다.&quot; 영필이가 우는 상을 하며 말했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대학졸업만이 능사냐, 이 암울한 시기에..&quot; 병욱이는 무슨 구한말 지사처럼 나왔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나서니 나의 할일이 무엇이냐?'하고 시조라도 읊을 기세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한규는 간단하게 결론을 내고 도서관으로 곧장 향한다. &quot;학생의 본분은 공부다. 다른 것은 나중에.&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네이...보안관 나리.&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평소에도 자로 잰듯이 학생의 표본으로 보이는 한규를 그들은 늘상 보안관이라 불렀다. 군기를 잡는 보안관이란 뜻이었다. 어쩌면 저렇게도 융통성없게 될 확률도 보이지 않는 사법시험에 열정도 없어 보이면서 빈틈없이 흔들림없이 준비를 할 수 있는지 자세하나만 두고보면 한규는 단연 합격감이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어이! 컨튜리 맨~~&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같은 학과 서울 토박이 녀석이 지나치며 셋을 두고 이렇게 불렀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영필이가 감자를 먹이며 투덜댄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지랄을, 자식들 서울 촌놈인 주제에.&quo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지방과 서울의 차이는 이미 이 시절에도 분명 엄존하고 있었고 지방출신의 대거 서울 진입이 시도된 시기이기도 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lt;BR&gt;24.&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말숙이는 친구 병인의 사촌오빠라는 남학생을 생각하고 또한번 화가 치밀었다. 곱상하게 안경이나 쓴 주제에 말끝마다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구시대적인 사고가 묻어나는 것같아 자신이 남자라면 한대 쳐 주었으면 싶었다. 꼴에 사회과학서라도 읽은 모양으로 뭘 안다는 식의 태도도 건방져 보였다. 친구 사촌오빠만 아니었더라면 실컷 면박을 주고 싶은 그런 남자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가 한번이라도 정권타도의 선봉에라도 서 본 적이 있어. 기껏 19세기 사회개혁가의 전기나 읽은 주제에. 범생이면 범생이답게 주둥아리라도 닥치고 있던가, 무슨 선동가 기질이 있다고 지랄이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숙집이라도 알면 직접 찾아가 단판이라도 내고 싶은 말숙이였다. 이름 그대로 여자다움보다는 다혈질적인 혁명투사 아니면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란 영화에 나오는 짚시 여두목과 같은 기질을 가진 그녀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 반면 날카로운 인상에 금속테 안경을 쓰고 예리하게 논리를 앞세우며 따지는 병욱이는 차디찬 외과의사의 메스와 같은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이론에서 논리에서 밀린 말숙이는 학생운동의 병폐가 바로 이것, 현학적인 자세로만 흐르는 나약한 '인테리겐챠'들의 자세라고 믿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뒤집지는 못해도 일단 문제를 폭발시켜 의식이라도 깨우는 식의 투쟁방법이야말로 행동하는 양심이 가지는, 행동하는 지성인의 태도이지 골방에서 담배피우며 허구헌날 고양이 목에 어느 쥐가 방울을 달 것인가를 따지고 있은 들, 사회는 요동도 하지 않는다는 실천적 혁명이론을 말숙이는 신봉하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무리 시대가 얼어붙어 있어도 무언가 크랙, 즉 틈을 내는 그런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론과 논리는 그런 와중에서 해도 늦지 않고 또 사실 이론무장과 이론투쟁이 별로이 실익이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숙은 보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언젠가 자신의 클럽에 들러 짧지만 강력한 메세지를 두고간 그 학생운동의 전설도 그런 말을 했었다. 수많은 서적에서 장기군사정권에 대항하는 힘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말숙이는 특히 '여자가 나서서..'하는 남존여비식 사고가 묻어나는 말이나 행동은 참을 수가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짜식들 시대가 어떤 때인데. 대체 남자가 이 나라를 이렇게 끌고온 책임은 고사하고..'&lt;/P&gt;
&lt;P&gt;불알찬 남자가 여자보다 못한 놈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숙은 익히 알고 있었다. 자신의 가족만 대충 살펴보아도 그러했다. 평생을 남자 잘 못만나서 일생을 한을 품고 살아온 모친과 그 모친을 발샅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은 부친이 그러했다. 일제말기에 독립운동하는 것까진 좋은데 가정을 내팽개치고 자신의 발밑도 챙기지 못한 아버지는 언제나 말숙 모녀에게는 가까이 가지 못하는 그런 존재이자, 미흡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대부집 출신이라며 진정으로 민중의 편에 서서 독립운동을 한 것인지, 아니면 사내대장부가 답답한 시절을 만나서 더 큰 포부를 독립운동에 둔 것인지 말숙은 발밑은 못살피고 사회개혁 운운하는 서생식 개혁가의 모습에서 늘상 부친의 모습을 보기에 증오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위에 오빠를 두었지만 왜정말기의 궁핍한 생활과 독립운동가의 아내에게 가해진 고난으로 잃어버리고 느지막히 해방후에 나타나서 둔 딸 하나가 바로 말숙이었다. 생전에 아비의 정을 담뿍 받지 못하고 자란 말숙이였고 해방후 좌우논쟁의 틈바구니에서 병까지 얻은 부친은 채 오십줄을 넘기지 못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기에 아버지의 모습을 투사하고는 연약하고 이론무장한 그런 사회과학도라면 그저 마구 때려주고픈 그런 가학성을 자신도 모르게 지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오늘 만난 친구 사촌오빠인 병욱이가 그러했다. 딱히 잘못한 것이 없었는데 그냥 얄밉다가 불쌍하고 보호해주고 싶은 연정마저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이 더욱 싫어 책상앞에 앉아서 딱 한번 만난 그를 증오하고 있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양반집이 망해도 삼년을 간다했지만 해방후에도 말숙모녀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살림살이라면 잼병이였던 부친은 그저 나라걱정만 했지 자신의 가정 걱정은 하지 못했다. 그저 뜬구름같은 정국 이야기로 날밤을 세웠지만 집에 쌀이 떨어졌는지 소금이 떨어졌는지는 아예 몰랐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니 모친의 몫은 더욱 늘어났고 급기야 두동강으로 나누어진 나라가 마치 자기 잘못인양 술로 날을 새는 통에 부친의 간은 견디지 못했고 그 병수발까지 맡아야 했던 모친이었다. 한국전쟁의 말기에 태어난 그 베이비 부머의 일세대인 1953년생인 말숙은 그런 가정사를 가지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터울이 많이 났던 보지 못한 오빠는 불과 서너살인 건국의 해인 48년에 잃었다 했다. 그러니 만나지 못한 오빠가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자란 외동딸이었지만 사대부집 외동딸의 호강은 말숙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고 형제가 많지도 않았지만 왜 자신의 이름에 끝을 뜻하는 말(末)자를 붙였는지도 불만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차피 남성들에 대한 증오를 가지고 태어난 듯한 말숙의 성장기는 그렇게 이어졌고 모친은 가끔은 그런 말숙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네 오빠가 있었더라면 너 야단맞았을거야..'란 자탄에 가까운 질책을 했다. 보지도 못한 오빠에게 야단맞다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말숙은 그 말이 더욱 남자들, 특히 손위로서의 남자에 대한 강력한 적개심을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군제대를 한 이후에 복학한 병욱이니 아마 학년은 같지만 족히 두어살은 많을게다. 그러니 더욱 야멸차게 쏘아부치지 못하고 끝난 오늘의 만남이 미흡하고 신경질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음에 내가 한번 직접 찾아가마. 섣부른 이론으로 나오다간 독립운동가의 막내딸의 무서움을 보여주고 말테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무슨 병욱이가 철천지 원수라도 대듯 이빨까지 부드득 갈며 호전의식을 다잡는 말숙이었다.&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22-24)&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22-24)&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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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19-21)</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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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속사프레서</name>
	    </author>
	    <updated>2009-09-06T04:44:45Z</updated>
	    <published>2009-09-06T04:44:4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19.&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담쟁이 넝쿨이 무성하다 못해 진한 검은빛을 띠는 것이 팔월말쯤이다. 5-6월의 새잎순이 돋을 땐 담쟁이 넝쿨도 아리아리하더니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 할 즈음이면 진한 녹색이 검은빛조차 띄며 잎 하나가 어른 손바닥만해진다. 이때가 되면 담쟁이 넝쿨이 참 못생겨진다. 그저 가을에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거추장스런 이파리들의 나열처럼 여겨지고 깎지 않은 수염들이 마구 자란 것같은 구차한 느낌이 든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러다 여름 한철의 광합성을 마친 담쟁이 넝쿨의 그 잎사귀들이 떨어지는 늦가을이 오면 마침내 시멘트 벽을 휘감은 담쟁이 줄기들이 더러나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벽면을 뒤덮은 담쟁이들은 진한 빛을 띠며 건강함을 내보이는 강인함을 보이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동네서는 담쟁이집이라고 불렀다. 의례 여름이면 담쟁이덩쿨이 덮을대로 덮은 벽면이 골목을 향해있는 그런 집이어서 그렇게 불려진 모양이다. 그 담쟁이 넝쿨이 언제 없어졌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석근이가 두어살때 이사온 적산가옥인 그 집은 희한하게도 골목을 면한 응접실벽면은 담쟁이가 덮여있었다. 그 담쟁이는 석근이가 자라서 초등, 중등시절 그리고 고교시절에도 기억이 남아있는데 언젠가 나이들어 새로 증축된 그 집에는 그 담쟁이 흔적이 보이지를 않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 누구도 담쟁이가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묻는 사람도 없었고 그러기에 아무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식물이 담쟁이 넝쿨이 아니었나 싶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채 석근이가 자라는 동안 언제나 집의 바깥 벽면을 일년에 한번 여름철이면 푸짐한 방석두께로 잎으로 뒤덮어 주곤 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석근이가 중학교 고교를 다니던 그 70년대에는 분명 거미줄같이 엉긴 담쟁이 줄기가 벽면을 휘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 시절에선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없어짐을 놀람으로 느낀 단 한사람이 없었다는 그 사실도 지나고 보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우린 그 시절에 정말 자신만의 일에 몰두하며 삶을 살았든지 아니면 자신말고의 모든 일은 아무런 상관없이 살았던 것은 아닐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 여름이 지나고 다시 고교시절 마지막 여름을 마치고는 서울로 유학을 갔고 그러다 서울 체류중에 군입대를 했고 군시절 첫휴가 나와서 귀대 마지막날에 석근 할머니의 임종이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흰색옷만 입고 살은 석근이 할머니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언젠간 세월이 지나서 석근이는 그 담쟁이 덩쿨의 집 역사가 깃든 앨범을 펼쳐보니 군생활중에 돌아가신 그 할머니의 사진은 몽땅 흰옷만 입고 있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 석근이가 당시에 '우리문화의 수수께끼'란 문화사적으로 우리들의 풍습을 풀이한 책을 읽어서 발견한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불과 두어세대 이전의 사람인 할머니는 구한말 사람으로 명백한 '백의민족'이었던 것이다. 무언가 착색한 천은 불결한 것으로 믿어서일까 아니면 천성이 물들이는 것 자체를 싫어해서일까 하여튼 석근 할머니의 사진은 모조리 흰모시 옷만 입고 있었다. 석근이도 어릴 적 생각을 하면 당시의 아주머니들은 몽땅 흰 모시적삼만 입고 다녔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석근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석근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기에 할아버지의 존재는 모르고 자란 석근이였지만 어릴 적부터 할머니의 손에 길러진 석근이는 자연히 혼자 소리로 집안 내력을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구술에 의해 집안의 그 누구보다 할머니의 구식 문화에 익숙했던 석근이었다. 당시에는 할머니들은 유독 사설조의 타령형식으로 운율을 타는 이야기를 어린 손자를 등에 업고 흥얼거렸다. 자장가일수도 있고 혼자 신세타령일수도 있었다. 아마 두가지 모두일 수도 있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석근이가 제대하고 난 뒤에 본가인 그 담쟁이 덩쿨집에 와서 처음 느꼈던 감정이 '아! 이제 제대하고 집으로 돌아왔구나!'하는 안도감보다는 '집에 할머니가 더 이상 계시지 않구나!'하는 허전함이었다. 아마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 집이면 자연히 담쟁이 덩쿨도 어느덧 사라지고 없어진 것은 아닌가 싶다. 이처럼 언제나 함께한 존재는 언제나 있는 듯 싶어 없어졌다는 무존재를 의식하기 싫은 것은 아닐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할머니는 어린 석근이를 보면 언제나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꼭 빼닮았다고 넌저리를 쳤다. 특히 명절이 지나고 명절 음식이 남아서 제사지내고 남은 청주라도 한잔 하실 때면 어린 나는 꼭 어른들의 술마시는 흉내를 내곤 했는데 술을 허리에 짊어지고는 못가도 마시고는 간다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어린 나의 모습에서 찾아내곤 넌저리를 치곤 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요놈, 커면 틀림없이 유명한 술꾼이 될거다.&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런 소리를 숱하게 들으며 자란 석근이는 예상과는 다르게 전혀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예상은 결과와 사뭇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이 체험적으로 석근은 느꼈다. 다들 외모뿐 아니라 행동거지도 돌아가신 조부와 닮았다고 했지만 석근이는 커면서 완전히 다르게 되어갔던 것이다. 때로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석근이가 제대한 이후에도 살아계셨다면 물어보고 싶었지만 익숙한 그 담쟁이 덩쿨이 덮힌 그 집에는 할머니가 계시지 않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물론 담쟁이가 그때까지 집에 붙어있었는지도 지금 생각하면 애매모호하다. 어느때부터였을까 담쟁이가 사라진 것이...&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20.&lt;/P&gt;
&lt;P&gt;&lt;BR&gt;병욱이는 한참을 찾다가 겨우 골목길에 숨어있는 듯한 찻집을 찾아내었다. 오늘도 아침부터 하숙집을 나서려는데 주인집 아주머니가 전화가 왔단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병욱 학생 전화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의 하숙집 전화번호를 알고있는 사람이 몇 안되는데 아침부터 무슨 전화냐 싶었다. 특히나 안방에 놓인 전화를 받으려 하숙집 내외분이 거처하는 안방으로 들어가야하는 번거러움으로 오는 전화를 극히 삼가하는데 누구 전화인지 모르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여보세요, 병욱인데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오빠, 나 병인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으응, 너가 어떻게 내 하숙집 전화번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응, 청주 큰아버지댁에 전화로 물었지 뭐, 안 가르쳐 주면 모를까봐?&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뚱딴지 같은 병인이, 나의 사촌여동생 전화를 아침부터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균관대학 인근의 어느 찻집으로 나가게 된 것이었다. 아직 학교 인근은 개학전이라 조용한 편이었고 낮 볕은 곡식이 잘 여물어라고 따끈거리고 있었다. 학교 옆 담벼락에는 전투경찰 버스가 두어대 한가하게 정차해 있었고 더운 버스안을 피해서 전투경찰 대원들은 담벼락의 그늘에 모여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오가는 사람보다 그늘에 모여앉아 학생도 없는 대학을 분담맡아 지키느라 땡볕에 그을린 젊은 청춘들이 3년씩이나 군복무로 폭동진압 차원에서 늘 대기하고 있던 차였다. 같은 과 친구도 전투경찰로 지원하여 지금은 경남도청 산하의 동해안 해안초소에 근무한다고 들었다. 차라리 해안초소를 지킬 지언정 저렇게 기동대로 차출되어 주야장천 서울의 도심 길바닥에서 군생활을 마치는 그네들이 딱해 보였다. 나이도 병욱이와 같은 또래의 청년들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들과 같은 나이로 같은 나라에 살면서 다른 세상에 속해 있는 미안함에서인지 아니면 어쩌면 개학하면 저들과 대치하여 돌팔매질을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쑥스러움에서인지 병욱이는 갑자기 불편한 마음이 들어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얼른 약속장소인 지하다방으로 내려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하라서 의외로 햇빛이 닿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에어컨이 가동되어서인지 기분좋게 서늘했다. 때마침 노래도 하이웨이를 덧없이 방랑하는 히피들이 즐겨듣는 그런 류의 컨튜리스타일의 노래가 퍼지고 있었다. 길바닥의 노숙인생과도 같은 전투경찰대원들과는 불과 몇십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여긴 미국의 하이웨이가 펼쳐진 길을 오토바이에 침낭을 싣고 비스듬히 누워서 달려가는 길위의 인생과 같은 장면이 얼른 머리를 스쳐갔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냥 골치아프게 살지 말고 그들처럼, 그 60년대의 히피들처럼 사회제도나 국가의 의무, 세속 출세나 그런 것 몽땅 내팽개치고 저런 음악이나 틀어놓고 오토바이로 선인장이 뒤덮인 그 황야를 외줄기 고속도로를 따라 하염없이 내달리고픈 생각이 들었다. 이리 저리 병인이 얼굴을 찼는데 다리를 누가 툭 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오빤 앞에 두고도 못 찾아?&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 미안&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앞에 앉은 사촌 여동생 병인이 옆에는 두꺼운 안경을 쓴 여학생이 한명 더 있었다. 나중에 소개받은 말숙이였다. 그녀는 학생운동의 여걸이었다. 나중에야 알게되었지만 투철하게 의식화된 여전사였지만 나와의 관계에서 많은 갈등을 느낀 그녀였다. 숙명이라기보다 암울한 학생시대에 억눌린 두 청춘이 학생운동을 전제로 엮기게 되는 운명체가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내 친구, 말숙이. 말숙아 본명 말해도 되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럼 가명을 소개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병욱을 직시하며 두꺼운 안경너머로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말숙이란 촌스런 이름을 가진 그 여학생은 남학생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말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병욱입니다. 성은 옆친구하고 같구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우리는 대면했다. 그 팔월하고도 마지막날이었다. 그날은 그렇게 시시한 학교 이야기나 하며 헤어진 걸로 기억된다. 그후로 병욱이는 말숙이와 동거까지 해가며 때로는 같은 배를 탄 투사로 때로는 연인으로 아마 20대에만이 가질 수 있는 격렬한 사랑을 하게 되는 데 나중에 병욱이가 나이가 들어 생각하니 사랑이라기보다 서로 상채기가 난 늑대 두마리가 서로의 상처를 더 내어가며 어쩌지 못하는 젊음을 발산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 그 때는 그것을 모르고 앞으로 두사람이 걷게될 험난하고도 아찔한 길이 얼마나 길고 얼마나 힘드는지는 상상도 못한 만남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21.&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천마산 기슭에는 60년대까지만 해도 '하꼬방'이라고 불린 많은 판자집이 있었다. 일본말로 '하꼬'가 종이상자를 뜻하니 바로 종이상자로 지어진 방이라는 뜻일게다. 서러움도 많은 피난살이의 대표적 주거형태가 바로 하꼬방인데 산으로 높이 오를수록 이런 하꼬방이 즐비하여 거의 정상이 얼마남지 않은 그런 곳까지 판자집이 형성된 적도 있었다. 이제 70년대들어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도 안정을 찾아감에 따라 피난지를 떠난 사람들이 다시 되돌아가거나 혹은 서울로 이전하기도 하여 바닷가 따개비처럼 붙어 있던 피난민촌들도 이제는 슬슬 해체되던 시점이 바로 70년대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바로 '보릿고개'를 해결했다는 새마을운동이 도농(都農)지역을 불문하고 삶의 양태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었다. 언제나 돌이켜 보면 서로 민망하게만 보였던 그 60년대를 지나서 그래도 기와집 허물고 양옥 번듯하게 짓기 시작한 것이 70년대이고 보면 이어서 서민들의 주거개선사업으로 시작한 것이 아파트라는 공동주거형태였다. 이 아파트라는 주거양식이 70년대에 소개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주목할 만하다. 사회학자가 아닌 그 어느 누구라도 이 70년대와 아파트의 대거 등장이 우리사회에 끼친 영향을 부정할 수가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 천마산 기슭은 그야말로 산허리를 둘러서 겨우 버스 두대가 나다니는 왕복차선 놓기도 버거운 그런 공간이라서 그야말로 아파트 무풍지대라 여겨도 좋았다. 상대적으로 훨씬 개발이 더딘 하단이나 사하구 쪽은 그래도 공터가 있어 아파트개발이 이루어진 반면에 해안을 끼고 산이 바로 코앞에서 바다로 내딛는 형국의 천마산 기슭마을은 애시당초 아파트개발은 무리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서 60년대의 모습이 그래도 간직된 곳이기도 했다. 남항 앞바다를 매립하여 생긴 공터에는 주거시설이 아닌 산업시설인 냉동창고가 그 모습을 드러낸 시대도 바로 이 70년대였다. 이 난개발과 같은 마구잡이 개발에서 그래도 피한 곳이 바로 천마산 기슭 동네였다. 기껏해야 연립주택 정도나 더 들어선 이 마을은 그래도 오르기가 숨이 가빠서 그렇지 멀리 남항을 벗어나 외항쪽으로 나가는 수많은 선박들이 물위에 궤적을 그리는 것도 보이고 산을 오르면 멀리 다대포 넘어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것도 석양나절이면 볼 수 있었다.&lt;/P&gt;
&lt;P&gt;바로 그곳에 장쇠와 장쇠 모친은 판잣집에서 살고 있었다. 60년대 갯가였던 송도 해안에 살다가 어쩐 연유로 피난민이 떠나는 70년대에 도리어 이 산꼭대기로 올라온 것인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고 다만 생활에 쪼달려서 싼 주거환경을 찾다보니 자연히 이곳 천마산 기슭까지 오르게 된 것이었다. 감천쪽으로 나갈 수도 있었지만 아직도 그곳은 당시에는 미개발의 지역에 불과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송도 윗길에서 감천마을까지 연장운행하는 버스를 타야만 들어가는 감천마을은 그때까지는 외진 마을이어서 시내에서 들어가기가 힘든 곳 중 하나였다. 세월이 흘러서야 되려 천마산 산기슭마을보다는 더 교통이 편리한 곳으로 탈바꿈되었지만 그때까지는 감천이라면 외진곳이란 인식이 강했다. 모든 버스 노선이 송도를 종점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간혹 꾸불거리는 산길을 더 가는 연장버스노선만이 감천만에 도착했기 때문이었고 감천화력발전소가 있어 매연이 많이 날리는 사람살 곳이 못된다는 인식이 강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직 석탄화력발전소로서 집진시설이 발달하지 못했던 60년대의 감천화력은 전기생산이란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는 있었지만 화력발전의 부산물로 나오는 매연들이 공해를 발생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동란 중의 유일한 발전시설이었던 그 발전소가 70년대들어서는 애물단지로 변한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 화력발전소의 매연도 닿지 못하는 높은 천마산 기슭에 장쇠네가 살고 있었다. 송도 토박이였지만 이제 송도를 굽어보는 그런 지역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침이면 해안에서 피어나는 바다안개가 자욱해도 늦오후면 걷혀서 맑은 송도해안선이 보이는 그런 마다에서 두 모자는 살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어릴 적부터 주먹이 강해서 싸움꾼이라는 별명까지 듣는 장쇠였지만 천성이 착해서 깡패짓하고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판잣촌이나 매립지 양아치들이 벌이는 치사한 싸움판은 쳐다보지도 않는 그런 싸움꾼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동네 협객이란 단어가 제일 잘 어울리는, 그러니까 서울의 동대문이나 종로까지 진출하지 않은 지방 토호 주먹계를 잇는 마지막 건달이란 표현이 맞겠다. 서울의 깡패세력이 이승만정권때 정치깡패로 변질되었지만 아직도 지방 동네깡패들은 일제시대의 일경에 맞서며 치고 도망치는 그런 순수한 싸움판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부친은 한국전쟁후 얼마되지 않아서 장쇠를 유복자로 두고 떠났다. 자세한 부친의 이야기는 잘 모른다. 다만 막 휴전이 된 시점에 자신이 태어났다는 것만 알 뿐이다. 그러니 모친을 두고 살아가려면 남처럼 공부에만 전념하는 그런 가정 분위기는 아니었다. 몸 하나는 건강하여 막일이나 동네 잡일을 거들며 살아가는 장쇠는 그래도 언제나 평안한 마음을 가진 타고난 장골이었는데 그저 요즘들어 아랫동네인 송도쪽이 개발지역에 포함된다는 헛소문에 자신이 말려들 줄이야 상상도 못하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루에 한번은 옛동네로 내려가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즐비한 횟집들도 개발파와 보존파가 나누어져 싸운다니 그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어이, 장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송도횟집 털보 아재가 불러세웠다. 마을을 한번 돌아나오기도 이제 순조롭지 않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마아 동네개발되도록 모른척 해라. 와 자꾸 나누어서 싸움질이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모르는 소리 마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대꾸는 해주었지만 자신이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해 버티기는 꼴이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일전에 폐병장이 최씨 아재를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알듯 말듯한 설명이었고 그런 설명에 왜 자신이 연루되는 지도 모를 판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도 한쪽으로 치부된 이상 고집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그로서는 무조건 밀어부치고 있는 판국이었다. 모르기는 털보아재나 자신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변해가며 그 변화는 어떤 것이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가를 누구하나 예측할 수 없는 처음의 경험이었기에 누구는 '찬성!'하고 누구는 '반대!'하고 외치고만 있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마치 극장에 가서 활극을 보노라면 어떤 사람 한명이 세차게 박수를 치면 덩달아 박수소리가 이어지는 그런 꼴이랄까 제각각 주관이 형성되지 않은 개발도상의 사회라서 어느쪽으로 쏠릴 지 모두다 알 수 없는 그런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판국의 정점에 초등학교 동창인 성식와 맞서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성식이와는 초등학교 시절엔 친하게 지냈다. 부유한 녀석은 곧잘 어려운 형편인 자신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어릴 적의 물질적인 도움이라는 것이 도시락 반찬아니면 군것질거리였지만 그래도 배고픈 시절을 보낸 이들은 그런 고마움이 평생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란 것을 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니 더욱 괴로운 것이었다. 심정적으로는 성식이를 밀어주어도 시원찮은데 그 녀석과 대립각을 세우다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리고 내가 얻는 것이 또 무엇이며 이 송도 하잘것 없는 똥골마을을 내가 무슨 수호신이라도 되듯 지키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 어떤 누구가 나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다는 말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생각이 들때면 당장이라도 성식이에게 달려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다가도 '그러면 성식이는 그 누가 자신에게 개발하라는 권리를 주었나?'하는 반론이 마음에 이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동네사람이라면 대부분이 변화없이 살던대로 살자는 그런 뜻이 아닌가. 방금 전의 송도횟집의 털보아재같은 있는 사람들 편을 드는 알랑방귀쟁이들을 제외하면 도리어 그냥 그대로 살던대로 살자는 개발반대가 더 많은 것 아닌가하는 반발심이 일어나는 것이었다.&lt;/P&gt;
&lt;P&gt;그럴 때면 초심으로 돌아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움직이지 않는 그런 쇠말뚝 마음이 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 &lt;/P&gt;
&lt;P&gt;&lt;BR&gt;&amp;nbsp;&lt;/P&gt;
&lt;P&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19-21)&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19-21)&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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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16-1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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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속사프레서</name>
	    </author>
	    <updated>2009-09-05T05:36:36Z</updated>
	    <published>2009-09-05T05:36:3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16.&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멀리 신작로(新作路)가 보였다. 왜 하필이면 일제시대 용어인 이 도로를 뜻하는 말을 아직 사람들은 쓰고 있는 지 모르겠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이곳 해안마을이 송도나 들리는 피서객들이 지나다니는 해안도로를 끼고 있는 마을에서 점차 등대 신축공사로 이어지는 매립지가 완성되면 이곳 송도 아랫길은 이전의 경유하는 마을이 아닌 사람이 필요한 마을이 될 것이다. 등대입구에서 자갈치까지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왕복하던 기관선 나룻배도 버스노선이 생기고 난 이후에 사라졌고 그 나룻배 선창이 메워지면 그곳에 냉동창고가 들어선 다는 말이 있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아직은 해안도로 바깥쪽은 내항인 바다이고 내륙쪽은 선술집들이 외항선원을 노려서 죽 줄을 서듯이 문을 열고 있지만 아마 매립지 공사가 완공되고 땅이 굳으면 공장이 서게 될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러니까 이제는 이 등대입구 마을도 인구가 늘어나게 마련이니 집집마다 칸을 지어서 공장에 출근하는 외지사람들을 받아야 돈을 벌 수 있게 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여기까지가 이 해안마을 촌로들이 만나기만 하면 시국담을 끝내고 늘어놓는 소리였다. 천마산 기슭에서 바로 바다에 면해 있는 마을의 공간은 넓지 않았다. 그래서 천마산으로 집들은 올라 갈 수밖에 없었고 그래도 축구장만한 평지로 이어진 해안마을은 그래도 서너집들이 이어져 평지를 이루었고 이내 계단을 올라야만 산허리를 두른 송도 윗길로 갈 수 있었다. 송도 아랫길이 완성되기도 전에 이미 송도 윗길은 차가 다니는 길이었고 포장을 끝낸 송도 아랫길은 그래서 일제식 용어인 '신작로', 즉 새로 만든 길이란 별칭을 마을사람들에게 얻게 된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 신작로길은 충무동에서 송도로 이어지는 길이라서 집을 나서면 언제나 송도쪽 아니면 충무동쪽 둘 중 하나를 강요하는 듯하여 용철이는 싫었다. 길은 사통팔달(四通八達)로 어디로든 갈수 있어야하는데 두 방향으로만 나있는 외길이고 보니 언제나 답답한 감을 느꼈다. 밤이면 해안도로는 온갖 사람들로 시끄러웠는데 단지 연안어업을 주로 하는 마을사람이라기 보다 외항선을 타려고 부산으로 온 각지의 사람들이 우리 마을까지 어슬렁대는 이유는 이 길에 연달아 생긴 색씨를 둔 선술집이 많아서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통금에 가까운 시간이 되면 인근 여인숙으로 술집아가씨를 데리고 가서 회포를 풀려는 뱃놈들의 술취한 소리는 거의 매일밤에 들려왔다. 그 시간이 되면 일반버스도 노선이 끊어지고 송도로 가는 차들이 많지 않아 한적하기 마련인데 술취한 뱃사람들의 시비소란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오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담배나 하나 피우려고 용철이는 밤이 깊었는데 집문밖을 나섰다. 저 멀리 등대불만 외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저 등대도 이제 얼마있지 않으면 파도막이 공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래도 저 등대가 있어 언제나 사람들에게 휴식을 주었고 등대위로는 자판식 술집들이 칸을 지어놓고 해산물을 안주로 술을 팔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해안가란 원래부터가 술로 시작하여 술로 끝나는 그런 마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어떨 땐 더운 여름공기중에도 소주냄새 아니면 생선회를 찍어 먹는 초고추장 냄새가 나는 것같았다. 신작로를 접한 집에서 나오면 곧장 해안도로라서 바람쐬기는 무척 좋았다. 내항을 건너 바라보면 이내 밤바다에서 취객들에게 생선회 한접시 더 팔려는 등대자판 술집 아주머니들의 호객소리까지 조용한 밤이면 들려올 정도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담배는 배웠지만 아직 술맛은 모르는 용철은 언제나 졸업하면 어디서 다른 생활을 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을은 너무나 좁은 것이었다. 나오면 너무나 뻔한 동네 구성이 어디서 숨어 담배 한대 마음대로 피울 수도 없는 공간처럼 느껴질때면 의례 등대쪽을 향하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매립지 공사도 이젠 마무리지어져 밤에는 불량한 양아치들이 출현한다고도 했지만 어릴 적부터 자란 이 동네는 친숙함을 넘어 너무도 만만한게 탈이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혼자 피우기가 심심하니 밤이 늦었어도 앞집 영수라도 꼬드겨서 등대쪽으로 나갈 마음으로 골목으로 나왔다. 영수는 일찌감치 사회진출을 한 불알친구였다. 사람좋은 영수는 학업을 일찍 접고 노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영수야&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아무런 대답이 없어 관둘까하다가 다시 불러보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벌써 잠들었나? 짜식 공장에 다닌다고 일찍 술맛 들이더니 한잔 한 모양이네'하고 돌아서려는데, &lt;/SPAN&gt;&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lt;BR&gt;&quot;문밖에 누고?&quot;하는 영수 모친의 목소리가 들렸다.&lt;/P&gt;
&lt;P&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용철임더..영수 자능교?&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하자 이내 영수가 수건을 목에 두르고 문을 연다. &quot;웬일고? 바람쐬자꼬?&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둘은 등대입구에 접어들었다. 언제나 같은 동네서 마주치는 둘은 달리 할 말은 없었다. 막 배운 담배피우는 맛에 밤만 오면 어딘가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아직 70년대는 고교 졸업전에 담배를 대놓고 피우다간 동네 어른이라도 만나면 혼쭐이 나는 세월이었다. 내놓은 양아치 아닌 다음에야 어른들 눈밖에서 피울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매립지 아니면 등대쪽으로 발길을 옮기게 되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요새 공장 잘 다니나? 열심히 배워서 독립해서 하나 차리라.&quot; 용철이가 영수에게 근황을 물으며 격려성 발언을 했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뭐 그렇지.&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일찌감치 기능인의 길로 접어든 영수는 대답하며 한대 더 담배를 빼어 물었다. 소주 내음이 끼쳐왔다. 퇴근길에 한잔 걸쳤는지 아니면 집에서 저녁먹으며 반주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공장일을 하다보면 일마치고 술을 걸치는 일이 잦다고 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소주 한잔 했나보네.&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응, 저녁 먹으며 김치찌게가 맛있어 남은 소주, 마저 마셨다.&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술한잔 걸치면 더욱 담배맛이 나는 법이라 둘은 밤바다를 바라보며 길게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바람도 없는 늦여름의 밤이라 담배연기는 뿜는대로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등대위는 11시를 넘긴 파장이라 여기저기서 펌프모터로 바닷물을 끌어올려 하루동안 생선회를 떤 곳을 청소하고 텐트 안을 정리하느라 부산했고 아직도 시국담을 마치지 않은 중년배 여럿이 취기오른 얼굴로 떠들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손님, 마칠때임니더. 조금 지나면 통금시간이라..&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알고 있소. 그놈의 통행금지 좀 안없어지남..&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언제나 되풀이되는 취객들의 마지막 희망은 통행금지 해제였다. 막으면 뚫고 싶고 금지시키면 해제하고픈 것이 사람의 마음인 모양이다. 자정이면 앞으로 4시간동안은 길거리를 다닐 수 없다는 제약은 일반 사람에게는 그리 불편한 것이 아니었지만 늦게까지 술잔을 나누는 재미로 살고 있는 주당들에겐 정말 악법 중에서 악법이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아예 술집에서 날밤을 새며 새벽녘이 되어서 나오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마누라의 입이 잡아먹을 듯 기다리고 있으니 그저 한껏 마시지 못하는 주당들은 11시만 넘어면 초조하고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역설적으로 그런 통금 다될때까지 술마시고는 통금 1분을 남기고 야구선수가 홈플레이트로 헤드 슬라이딩으로 파고들듯이 집문으로 대쉬하는 그 재미가 그때는 있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17.&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귀련이는 모처럼 학생잡지 뒤편의 펜팔난 찬구들이 아닌 충청도 생가로 편지를 쓰고 있다. 어차피 글을 모르는 엄마는 편지를 가지고 온 우체부 아니면 읍내로 나가서 중학교에 다니는 아랫집 아들에게 읽어 다랄고 하고 편지 대필도 시키겠지만 이번 추석에도 고향집을 찾기는 힘들것 같아 미리 인사겸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아버지 산소야 집 뒤편에 있으니 어련히 알아서들 성묘를 가겠고 또 딸년이 있다하여 성묘에 그리 중요한 역할도 하는 것이 아니니 그냥 추석 용돈을 우체국에서 붙이려 한다는 내용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도 비을 떠난지가 5년이 넘어가니 초등교도 채 마치지 못하고 집에서 살림만 돕다가 서울로 부산으로 수삼(水蔘)을 팔러다니던 금산 할머니가 부산 어느 대가집에서 일할 아이를 찾는다고 하여 따라 나선것이 벌써 5년이 넘어 햇수로는 6년이 되어간다. 남겨진 동생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처음엔 아주머니 몰래 울기도 했지만 이제 올망졸망 남겨진 동생들도 중고등학생이 되어 이제라도 보면 되려 서먹서먹할 지도 모르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마을의 친구들은 마산으로 서울로 공단이 생겼다고 다들 떠났는데 나는 도리어 촌스럽게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밖에 못하고 있다는 자격지심이 들때도 있었지만 달리 생각하면 좋지않은 주거환경에서 공장일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대가집에서 살림살이나 잘배우는 것이 도리어 나중에 더 도움이 될 지 모른다는 자기위안을 가졌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처음 올 적엔 까까머리 고교생이던 이 집 아들 성식은 공부는 시원찮았는지 어느 대학 청강생인가 무언가 한다더니 졸업도 없이 사회에 나와선 아버지 일을 돕고 있다. 자기에겐 언제나 오빠처럼 잘 대해 준 성식 오빠는 마음속으로나마 믿음을 주었고 그 아래로 외딸인 성식 아가씬 귀련이 자기보다도 두살이 어렸다. 이제 갓 졸업하여 어느 단과대학에 다니며 한껏 청춘을 만끽하느라 집에 붙어있을 시간이 없는 말괄량이 아가씨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마 칠칠한 것이 이집 아주머니를 꼭 빼어닮았나보다. 아주머니는 이제 환갑을 넘긴 나이였지만 언제나 양장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주책기가 있었다. 사람은 좋았지만 지시한 내용을 언제나 잊어버리고 언제 그런 것을 지시했더냐는 듯이 생짜로 나무랄 적이 있어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벌써 치매가 온 것도 아닌데 언제나 엉뚱한 소리를 잘해서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애 아가씨야 속옷 빨래도 자기손으로 하지 못하는 말괄량이인데 밖으로 나갈 때면 얼마나 외모에 신경을 쓰는 지 그럴 때면 귀련이 자신을 불러놓고 언제나 평을 해달란다. 패션에 대하여 귀련이가 알리 없었지만 그래도 입바른 소리를 해주어야만 안심을 하고 외출하는 버릇이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집에서 단 한명만이 자신을 피곤하지 않게 하는데 바로 성식이 오빠가 그렇다. 언제나 말이 없는 오빠는 너무 무심하다싶게 귀련이에게 말을 거는 법이 없었다. 귀련이가 되려 무얼 물어보아야 건성대답을 할 뿐인 오빠는 때로는 아무리 남의 식구라 하여도 한솥밥을 먹은 지 5년이 넘고 그래도 남녀간의 사이인데 너무 하다싶어 미울 때도 있지만 속으로는 언제나 귀련이편을 들어 주는 유일하게 이집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편 이집의 가장인 의원나리는 이 집으로선 하숙생에 불과했다. 밤에 자는 시간만 이 집에 있을 뿐 어디로 무슨 일이 그리도 바쁜 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청장년이 부럽지 않은 활동력을 보였다. 부부가 따로 외출하는 법을 본 적이 없고 언제나 운전기사를 대동한 채 어디론지 나다니는 것이었다. 남자란 원래 바깥 일을 보는 법이란 구식 의식에 꽉 차있는 그는 가부장적인 가장의 표본이었다. 단지 외딸 성애 말이라면 꼼짝 못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약점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 바로 이 댁의 아주머니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실 아주머니나 나나 의원나리의 눈으로는 동급 그 이상 그 이하가 아니었다. 자기 부인을 홀대하는 사람으로 아마 이 집 주인만한 사람도 없으리라. 때로는 성식이나 성애까지도 그런 부친을 나무라는 듯 말하지만 성애라면 몰라도 아들 성식이의 말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는 사람이 이 집 주인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에겐 직접 말하는 기회조차 드물었고 부엌 반장격인 아주머니에게 지시할 뿐이었다. 아주머니는 그래도 바깥 양반이 벌어다주는 넉넉한 돈으로 항상 태평스레 지내는 이 생활에 만족하는 듯 별로히 추구하는 어떤 생활 자체가 없어 보였고 다만 해가 빨리 저물어 저녁나절에 시작하는 연속극 시간만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실생활이 무덤덤하니까 가상현실인 그 연속극 안으로 빨려들어갈 듯 연속극이 시작되어 끝나는 시간은 이 아주머니에겐 시간이 멈추어 선 시간과 다름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초등교 5년을 마치고 그만 둔 귀련이로서는 한글로 편지나 작문을 한 기억이 없어 처음엔 성식오빠에게 부탁하여 편지를 썼지만 이제 펜팔란으로 알게된 펜팔주소로 편지를 주고받아 이제 편지작문은 그 누구의 부탁없이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여자가 편지 한장 자유롭게 쓰게 되면 그만이지 대학공부 한답시고 나다니는 이 집 딸 성애도 한글편지 한장 제대로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로 보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귀련이의 일과는 아침에 일찍 나서는 의원어른 배웅으로 시작하여 통금시간이 다돼서야 들어오는 마중으로 끝이 나기에 언제나 밤잠은 부족했지만 달리 식구가 많은 편이 아닌 식모살이는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심심해서 탈이었지 바빠서 안절부절한 적은 없었다. 명절이나 다가오면 회사 사람-의원나리는 호텔과 극장, 그리고 주유소등을 소유한다고 들었다-들의 인사방문으로 명절음식을 장만하느라 부산했지만 연중의 평일은 언제나 오늘이 내일같고 내일이 오늘같은 평탄한 일상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초등학교 단짝인 미선이는 읍내의 중학교를 마치고 마산자유수출단지의 일본사람이 운영하는 공장에 취직이 되었다고 했다. 언젠가 주소를 알아내어 한번 연락하고 부산과 마산은 가까운 편이니 한번 부산으로 나오는 일이 있으면 한번 만나자고 약속을 할 작정이었다. 이곳 송도 해안도 구경시켜주고 가능하면 내가 일하는 집도 구경시켜주고 싶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멀리서 고향친구를 만나는 즐거움은 생각만 해도 기다려진다. 태어난 곳에서 줄곧 살아온 사람들은 객지생활의 어려움을 모르니 친구만남도 고만고만하겠지만 우리네와 같은 어릴 적에 고향을 등진 객지 인생은 만나는 것 자체가 얼싸안고 싶은 그리움이었다. 객지생활이 다 어렵겠지만 그래도 큰 공장에 근무하면 동년배라도 있어 덜 심심할 것만 같아 미선이가 때로는 부럽기도 했다. 한번 미선이를 만나면 자기도 그 공장에 다닐 수는 없는 지 물어볼 참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주머니나 성애를 생각하면 미련없이 이 집을 떠날 수 있겠지만 의원나리에게 언제나 야단만 듣고 풀이 죽어 있는 성식오빠를 생각하면 마치 남동생이라도 살피듯 자신이 있어주어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성식오빠를 좋아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남녀간의 그런 사랑으로서가 아니라 성장기를 함께 겪은 사람으로서 느끼는 특별한 감정일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보호자가 없이 집에 있지만 외톨박이같은 오빠의 뒷모습을 보면 언제나 마음이 짠해지곤 했던 것이다. 심지어 엄마인 이집 아주머니조차 그런 성식 오빠를 좀 한껏 위로해주지 않거나 못하는 것을 보면 진짜 엄마가 맞는 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지만 조금도 귀하게 여겨주지 않는 집분위기를 보면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것이 제각각의 집문화이구나 싶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리숙한 막내딸만 귀여워하느라 부산을 떠는데 그럴수록 조금도 철이 나지 않는 성애 아가씨는 여동생이라는 생각이 눈꼽만큼도 들지 않고 그냥 정말 여동생이라면 한대 쥐어 박아 주고픈 마음만 드는 것이었다. 이 집 딸네미가 철이 나려면 아마 군밤에 싹이 틀 것같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귀련이의 판박힌 생활에서 유일한 나들이는 잠깐 잠깐 시장을 보거나 심부름을 가는 자투리 시간에 바로 같은 동네의 '곰보할멈'댁을 놀러가는 것이었다. 얼굴이 심하게 얽어서 시집은 커녕 친척들에게도 소외당한 채 생활하는 독거(獨居) 할머니였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나이가 많은 노파는 아니라고 했지만 워낙 심하게 곰보자국이 얼굴에 뒤덮여서 나이짐작이 정말로 어려웠다. 아예 목소리까지 왜곡되었는지 듣기에 거북한 발음이어서 더욱 사람들이 꺼려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몇해를 같은 동네에서 눈인사를 하고 이야기도 나누니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해주는 사이가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할멈도 찾아주지 않는 사람보다 인근에서 식모살이하는 어린 처녀가 딱하기도 하여 서로 많은 위로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곰보할멈은 이상하리만큼 의원댁에 관심이 많았다. 그냥 오래 함께한 이웃으로서의 관심, 그 이상의 것이 분명 있는 것같은 데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리고 귀련이 자신이 이 곰보할멈과 이야기를 나눈다는지 집에 찾아가는 것을 주인 아주머니는 특히 싫어했다. 아예 어울리지 못하게 엄명을 내리거나 무슨 천형(天刑)이라도 걸린 전염병 취급을 하는 것과 같은 혐오를 보였는데 귀련이 자신으로서는 곰보할멈이 그런 존재가 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되려 칠칠한 주인 아주머니보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인자하고 아는 것도 많은 분이었던 것이다. 그날도 시장에 들러서 저녁거리를 사고나서 한 삼십분 시간이 남아서 곰보할멈댁에 들러 이야기를 나눴다. 시장통에서 산 참외도 몇개 깎아서 나누어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할머니, 혼자 사신 지 오래되었어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럼, 나같은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왜요. 난 할머니가 좋은데요. 마음이 얼마나 따뜻하신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알아주니 고맙구나. 그래도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걸 좋아하는 법이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할머니는 고단한 인생길을 이렇게 덤덤하게 말은 했지만 일제시대를 거쳐 한국동란통에 누구하나 추스려 주는 사람이 없이 혼자 살아낸 인생역정이 묻어나는 어투였다. 멸시받고 천대받은 것을 다꺼집어 내면 아마 고구마줄기처럼 연이어 나올 것 같아 이렇게 아무런 감정없이 말하고 마는 투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귀련이 역시 오죽하면 중학교도 올라가지 못하고 객지로 생활비나 벌려고 식모살이 왔을까하는 동병상련의 유대감이 서로에게는 있었다. 좀처럼 할머니의 과거는 나오지 않았고 귀련이도 묻지 않았지만 때로 지나치듯 의원댁 상황을 곰보할멈은 묻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특히 성식이의 근황은 꼭 물어봤는데 같은 동네의 일개 청년의 근황을 물어볼 이유가 없는터라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그런 연유가 있나보다 여겼다.의원나리도 동네 주민들을 언급할 때면 꼭 고집불통에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의 예로서 드는 사람이 꼭 이 '곰보할멈'이었던 것이다. 귀련이 생각으론 그렇게 고집스럽다는 구석이 전혀 없고 오히려 너무도 연약한 심성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아마 보기싫은 곰보얼굴이 그만 고집불통을 연상하기 때문일까하는 의혹이 들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소설이나 연속극에서도 곰보가 고집을 뜻한다는 그런 설정은 본 적이 없는 데 왜 고집불통을 말할 때면 이 곰보할멈을 입에 올리는 지 알 수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쨌든 귀련이에겐 먼 친척과 같은 느낌이라 객지생활의 서러움과 힘듦이 있을 때면 살짝 살짝 찾는 이웃이자 친구격인 할머니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18.&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통금이 있는 시대였지만 나이트클럽은 밤새 놀기는 안성맞춤이었다. 자정을 넘기면 꼼짝없이 새벽 4시가 되어야 통금이 풀리는 관계로 그 4시간동안은 오히려 노는데 열중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영필은 카페서 만난 아직 이름도 묻지 않은 사진과 여대생을 10시까지 우스개로 웃기다가 시계를 보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대체 이 아가씨 집은 통금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집구석인 모양이다. 당최 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그 때는 밤의 데이트라도 10시를 넘기면 여자들은 집에 들어가는 생각으로 마음 한켠은 불안과 초조로 상대방에게 집중을 할 수 없었는데 이 아가씨는 달랐다. 아예 오늘도 나이트에서 밤새 춤추며 놀 생각뿐인 것 같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숙집에서 먹은 저녁이 시원찮아 무엇이라도 밤참을 챙겨먹고 나이트인지 데이트인지 할 요량이었다. 카페를 나와서 보니 이태원의 호텔 나이트 앞에 일본식 우동집이 불을 켜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저 성함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성미예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은 없나보지'하며 시큰둥하게 듣고는 말을 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일본식 가께우동 한그릇 어때? 성미?&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약간 닭살이 돋았지만 이렇게 운을 떼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좋아요.&quot;하고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구, 맹추야. 저 일본우동가게는 나이트 손님 전용으로 밤새 열어놓는 가게야. 지금 시간이 몇신데 식당이 문을 열어. 우동먹고 밤새 흔들겠어?'&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문을 열고 들어서니 홀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직 여름기운이 남아있는 계절이라 해안가에서 아직 사람들이 죄 돌아오지는 않았나보았다. 어설픈 일본식 요리사 복장을 입은 중년 남자와 카운터를 보는 아주머니밖에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가께우동 둘하고 유부초밥 2인분&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미란 '성함'을 가진 아가씨에겐 묻지도 않고 영필은 주문을 했다. 턱보니 얻어먹고 나이트로 밤샐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인데 뭘. 10시가 넘었는데 집이 강북 저쪽이라면 지금이라도 뛰어서 막차타기 바쁠텐데 시간을 아주 너끈하게 잡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지금 시간의 아가씨라면 나이트족이라고 불러도 될 그렇고 그런 여자아이임에 틀림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카페에서 호구조사가 다 이루어진 마당에 다시 비위를 맞출 아량은 없어지고 시간이 자정을 향해 갈수록 이 여자아이가 영필에게 기대는 의존도는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비록 내일 새벽 4시경엔 달리 나올 지언정. 유부초밥이 먼저나왔다. 영필은 먼저 먹는다는 말도, 먼저 먹으라는 말도 없이 하나를 집어서 통째로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가씨도 빼지 않고 반을 배어 물었다. 말도 없이 그냥 그렇게 유부초밥을 먹으려니 이내 뜨거운 국물을 담은 우동이 나왔다. 이 여름에 모밀국수도 아니고 뜨거운 우동이라니. 영필도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싶었지만 어차피 자정에서 새벽까지 권투선수가 트레이닝으로 땀을 빼듯 사이키델릭 조명아래 흔들 참이니 미리 땀 좀 흘린다고 억울할 것도 없었다.&lt;/P&gt;
&lt;P&gt;부산의 부모들은 미리 올라가서 개강준비를 한다는 나의 말에 흐뭇해하셨는데..하는 생각에 갑자기 죄책감이 밀려들었지만 공부에는 이전부터 뜻이 없었고 대학시절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만 들었다. 취직을 하려면 한살이라도 더 적을 때부터 하는 것이 더 이로울 것이고 장가를 가려도 한살이라도 더 어릴 적에 가는 것이 나으리라 싶었다. 그런데 대학시절이 20대의 전부를 차지하는 이 현상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번 학기도 학점 펑크나 나는 과목이 없어야 할텐데 하는 생각뿐이었다. 군대까지 부친의 노력(?)으로 면제받은 터에 꼼짝없이 학교를 다녀야 하는 영필이로서는 학점 펑크가 최대의 적이었다. 가을 졸업이 코스모스 졸업식이라는 이름으로 있었지만 한학기 더 다녀도 학점이 획득된다는 보장이 없었기에 더욱 싫었고 어서 어서 세월이 흘러 대학시절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영필이로서는 시간죽여내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잘하면 이번 학기는 뭐랬나 이 앞에 앉아서 우동국물 후루룩이는 이 아이 이름이? 들어놓고 또 묻는 실례는 너무 큰 것이라 분명 조금전에 들은 이름을 기억하느라 한동안 인상을 썼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왜 그러세요? 너무 뜨거우신가 보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 아니, 서.. 성미랬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햐 참으로 신통했다. 그 순간에 이름이 튀어나올 줄이야. 성미랜다. 이름이&amp;nbsp;그렇담,&amp;nbsp;성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이름만 알고 성을 모르면 좀 이상하지 않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본명?&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마음대로&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느덧 우린 서로 말을 놓고 있었다. 나이까지 물을래다 마음속으로 '나이는 웬걸, 데리고 살 거냐?'하는 자멸적인 냉소를 지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 뜨거운 것을 맛보았으니 찬 생맥주 마셔가며 체력단련이나 할 수 밖에. 사운드 좋기는 이태원 나이트클럽만한 곳이 없지. 아마 외국인들이 많이 찾으니 좋은 오디오가 다모여있는 듯 소리 자체가 지방 나이트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저 소비문화라면 이태원부터 들어오는 모양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오늘도 '팝의 황제'들이 온갖 펑크락으로 온몸이 저절로 진동하도록 해 줄 것이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야 내일은 좀 정신이 차려질 지도 모른다. 이제 2년, 아니 아직도 1년반이나 남은 대학시절을 이렇게나마 보내어야 돈들이고 힘을 써서 편입까지 시켜준 부모님의 은공을 조금이나마 갚으리라. 어쨌든 졸업은 해야하니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16-18)&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16-18)&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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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13-1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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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속사프레서</name>
	    </author>
	    <updated>2009-09-04T02:36:44Z</updated>
	    <published>2009-09-04T02:36:4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13.&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동대문 야구장 인근은 아직도 여름이 한창 남은 듯 싶었다. 냉차 장수를 비롯하여 운동장 스탠드 밑으로 꽉차게 들어선 각종스포츠 용구가게들은 성업중이었다. 고교 야구가 인기 절정이라지만 이렇게 열기가 운동장 바깥까지 뜨거울 줄은 몰랐다. 전국의 명문 야구부를 가진 고교들의 메카는 70년대에서 정점을 맞이하고 있었고 정치로 억눌린 향토정서는 야구장에서만큼은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병욱은 여름 방학을 조금 일찍 마치고 고향 청주에서 올라왔다. 청주라해서 서울과는 많이 떨어진 곳이 아니라 방학중이라도 누나네 가게가 바쁠 때면 올라와서 돕고 하니 개학전에 올라왔다고 새삼스런 것도 없었다. 단지 무료한 하숙집에서 밤낮으로 붙어서 일주일을 보낸다니 너무 따분할 것 같아 딱히 야구부도 없는 고교 출신이었지만 예선을 거치지 않고 모든 고교 야구가 참여하는 봉황대기 고교 야구대회를 시간 죽이는 겸에 보러 온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예선을 거치지 않는 전국대회 규모라서 게임수가 많을 수 밖에 없어 이른 아침인 오전 8시부터 게임에 들어가서 토너멘트식으로 전개되는 방식이라 한게임 한게임이 바로 결승과 다름없는 박진감이 있었다. 그래도 평준화가 이루어지기 전이라 까까머리 고교생들의 자신의 학교에 대한 자긍심은 대단하여 출전 학교마다의 특색있는 응원전도 볼 만했다. 지금과 같은 치어리더들은 생기지도 않은 시대였지만 애교심으로 결속된 응원을 보노라면 사람들에게 소속감이라는 것도 참으로 소중한 것이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병욱은 그들이 가진 그 소속감이 야구장을 찾을 때마다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어느 한 학교에 소속되지 않고 게임 내용만 충실하게 볼 수 있는 자유로운 입장의 자신이 더욱 야구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속으로 자위했다. 상대편의 에러에만 열광하는 그런 응원보다는 명장면이 나올 때마다 특정 학교를 불문하고 박수 칠 수 있는 순수 야구팬의 위치였기에 야구를 더 잘 볼 수 있다고 믿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 언젠가 부산 친척집에 여름에 들러 본 일본 방송의 '고시엔(갑자원)' 고교 야구 장면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무슨 사무라이식 훈련을 받은 것과 같은 투철한 감투정신이 돋보이는 그야말로 일본 고교야구의 메카이니 각 지방에서 수많은 예선을 거쳐 고시엔구장을 밟은 고교 야구부로선 그 본선무대에 한번 뛰는 것만으로도 일생의 영광이 될 것이에 승리를 하여도 패배를 하여도 다시는 밟을 수 없는 그 구장에 대한 애착을 구장 흙 한줌을 가져가는 것으로 평생의 기념을 삼는 그런 장면이 정말 감동적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런 지방에 대한 신앙적 태도와는 다르지만 동대문에는 나름으로 향토색 짙은 응원과 학교들이 나오기에 병욱은 여름이면 동대문 구장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물론 유신시절이라 산발적인 대학생들의 반정부 거리 시위가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동대문만큼은 여러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북적이기에 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숨을 쉴 수가 있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일체의 주류는 구장에 반입이 금지되어 있기에 입장권을 보이며 들어갈 때면 간단한 소지품 검사도 함께 이루어진다. 무슨 테러방지 목적으로 공항 출입이라도 하는 것과 같은 장면을 70년대의 동대문구장에서는 볼 수 있었고 그래도 동대문 야구장 벽아래서 줄을 매달아서 미리 입장한 패가 그 줄을 당겨서 소주를 구장내에 살짜기 반입하여 장사를 하니 오징어와 소주는 구장에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가 있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아마 취객이 많으면 구장질서과 관람질서에 방해된다는 설명이었지만 지방색이 짙은 고교 야구장에서 술이 곁들어지면 반정부 구호라도 튀어나올까 두려운 치안담당부서의 배려(?)였을 것이다. 금지한다고 금지되는 것이 술이 아니듯, 술은 억눌린 70년대, 활기찬 70년대의 대표적 국민 소일거리였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아직 잠실 야구장이 개장하기 전이라 모든 야구게임의 빅카드는 당연히 동대문구장의 몫이었다. 바로 옆의 동대문 축구장은 효창운동장과 함께 축구의 메카였고. 두 운동장에서 동시에 게임이 있을 땐 동대문은 바로 사람들의 홍수를 연상케 했다. 특히나 게임이 마치는 시간이 충돌할 때면 정말 거리시위라도 벌어지는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밀리면 밟혀죽지나 않을 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을 정도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양대 운동장이 맞붙어 있어 야구장에서 게임이 지루할 때면 인근 축구장에서 벌어지는 축구경기를 야구장 외야 펜스에서 야구장에는 등을 돌리고 축구만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안타라도 터지면 이내 야구장의 장면으로 되돌아오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시골스런 그런 장면을 동대문구장은 가지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제는 프로야구도 연륜이 쌓여 각종 진기록이 차곡차곡 이루어지지만 그땐 고교야구의 진기록만 존재할 뿐 아마야구의 실업야구는 그리 인기가 없었다. 유독 향토색을 띤 고교야구가 지금의 연고지 개념을 가지고 해당 지역의 고교가 우승이라도 하면 전 도시가 함께 경사를 맞는 그런 풍토였다. 당연히 고교생으로선 그 지역 대표라는 자긍심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지역 프라이드는 지금도 프로야구의 틈새속에서 엄연히 지켜지는 일본 고시엔대회와 견주면 한국고교 야구의 그 70년대 전성시대를 끝으로 고교야구에서 그런 향토 프라이드를 느낄 수는 없어졌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병욱이는 친구도 없이 연고도 없이 찾은 야구장에서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는 별로 상관없는 존재감을 느끼며 야구게임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학교에서도 요주의 학생으로 분류되어 있어 군입대나 할까 망설이고 있지만 자진 입대가 아닌 어떤 식의 힘으로 강제입대라도 이루어 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시선과 힘이 사방에 깔려있는 듯한 서울거리를 힘겹게 걸어서 동대문구장으로 이어지는 감자탕 골목에 들어서야 시끌벅적한 사람들 사이에 자신도 끼여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오늘도 어차피 입장권 구입을 했으니 점심은 간단히 구장내 매점에서 파는 김밥으로 때우며 내리 서너게임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찾아갈 곳과 만나볼 사람들은 죄다 그들의 레이다권에 들어있으니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장소와 사람으로 의심받는 세상이니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해야 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14.&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필은 마음이 바빴다. 그저께 산 캥거루 구두가 날렵하게 닦여진채 기다리고 있었다. 이태원 나이트에서 만난 여대생과의 애프터가 오늘 저녁에 있었기 때문이다. 자칭 ~~여대 다닌다고 했지만 그런 것은 관심이 없고 단지 술집에서 하나 낚았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애프터라는 통념상의 확인단계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학교생활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었다. 그냥 갈 수밖에 없는 코스였기에 갔을 뿐이고 부친이 사바사바해서 더 유명한 대학으로 편입절차를 밟아놓았기에 그대로 갔을 뿐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뺏지만 바꿔달았지만 그래도 옮긴 대학의 뺏지값을 오늘에야 하는 모양이다. 나이트에 뺏지달고 드나드냐고 험담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모르는 소리다. 다들 몸값을 은근슬쩍 내보이는 것도 기술중의 하나라서 대학생 좋은 것은 십분활용하기 나름이다. 메뚜기 한철이라고 대학시절이래야 고교시절보다 불과 일년밖에 길지 않는 것이다. 다들 도중에 군문제로 3-4년 쉬다가 다녀서 근 10년을 대학생활한다지만 나같은 사람은 군문제로 시간을 뺏기지 않으니 단지 4년밖에 없다고 보면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냥 쇠가죽 구두보다는 가볍고 질감이 좋은 캥거루 구두는 아는 사람만 알아본다니까.&lt;/P&gt;
&lt;P&gt;손으로 다시 한번 살짝 구두코를 쓰다듬고는 날세운 검정색 바지를 입고 뒤에 도끼날 머리빛을 꽂았다. 이태원행 버스를 타고 나이트 맞은 편 카페형 커피숖에서 만나기로 했다. 가다가도 한두어번 머리결을 뒤로 넘겼다. 밤바람이 아직도 더운 열기를 머금어 버스 창문은 모조리 열려 있어 머리결이 날리기 때문이었다. 서울 도심은 한여름철이면 피서간다고 한가하더니 이제 팔월도 끝무렵이라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짜식들, 바캉스 좋은 줄은 알아가지고. 언제부터 바캉스 다녔다고. 집에서 수박이나 짜개먹지 않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속으로 이렇게 빈정대며 서울거리를 내다보니 어느듯 버스는 남산3호 터널을 들어서고 있었다. 터널에 들어서면 버스 창문을 닫아야 하는데 저녁 8시 무렵이라 버스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아직 여름 휴가철인가 싶었는데 앞 창문으로 남산 터널의 지독한 매연이 막 들어온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애써 다듬은 머리칼 다 날리고 시커먼 매연에 옷맵시가 엉망이다. 얼른 가서 창문을 닫으니 이제는 터널 벗어날때까지 바로 찜통으로 돌아간다. 아직 버스에는 에어컨 시설이 없었다. 고속버스나 에어컨이 장착되었지 시내버스가 에어컨을 달려면 아직도 먼 모양이었다. 터널을 빠져 나오면 이내 이태원이었다. 다시 창문을 여니 이태원의 밤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왜 서울의 멋장이는 이태원을 벗어나지 못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서울에서 멋께나 부리는 청춘이라면 이태원 언저리를 나다녀야 하는 시절이었다. 약속 장소가 보여서 버스에서 내려 카페에 다가갈 동안에 버스칸에서 흐트러진 맵시를 최종적으로 다독거렸다. 속으로 '무슨 입사 면접보려 가냐'하고는 킥 웃었다. 아마 만나게 될 아가씨도 똑같은 순서를 밟았으리라.&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좋다. 아버지가 돈들여 좋은 뺏지까지 마련해 주었으니 그 뺏지값 한번 해보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마음먹고 카페문을 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별로 친하지도 않는 과친구들과 우연히 엮인 나이트 순례에서 삼대 삼으로 만나서 자연스레 파트너가 정해졌고 살짝 애프터했는데 그냥 '오케이'싸인이 들어와서 만나게 된 인연이었다. 우린 인연이란 구닥다리 말보다는 그냥 '썸씽'이 통했다는 말을 썼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안녕하세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엉거주춤 나를 알아보고 아가씨가 일어선다. 약속시간보다 여자가 먼저 나오다니 몸이 달았나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네, 안녕하세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시작되는 미팅이 있는가 하면 그냥 어느 대학 어느 과하고 미팅이 있다고 몇놈 나와라하고 과대표가 말하면 순서대로 나가서 소지품을 다방 탁자위에 올려놓으면 그 소지품을 상대편 여자애들이 마음에 와닿는 것을 하나씩 골르고 그러면 자연스레 짝이 이루어지는 그런 미팅이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6명씩 나오기인데 일부러 7명이 나와서 한명은 짝을 구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그런 미팅이 있었고 그런 퇴짜 녀석에게는 돈을 갹출하여 위로금을 전달하는 장난질도 쳤었다. 영어회화 시간에 양놈 강사가 이런 우리식 미팅문화를 형편없이 깎아내렸다. 바로 '블라인드 데이트'라고. '미팅'이란 말 자체에는 남녀간의 만남보다는 회의같은 의미가 짙고 그냥 무작정 만나서 짝을 짓는 그런 것은 '장님식 데이트'라는 말인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 낫다고 그런 것은 시험에 안나오네 바보같은 자식.&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흐으. 술마시고 어두컴컴한데서 보는 것보다 훨~~&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무슨 그런식으로 농담을.&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저 띄워주는 것은 여자라면 몽땅 좋아들하지. 동서고금의 철칙(鐵則)이니까, 너무 좋아하지 말어, 말하는데 돈드는 것도 아니니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농담이라니 진담인데..킥&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시작된 만남이었다. 이름이 미연이라나? 미장원 종업원 이름같았지만 내색은 하지 못했다. 그냥 마구마구 농담따먹기를 전개할 뿐이었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다 걸린 여대생이 다 그렇고 그렇지했다. 아마 상대도 나를 그렇게 볼 것이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피차 알만한 룰은 가지고 만나는 것이 오히려 홀가분할 때가 있다. 자식들 그날 나온 놈중에서 살짝 애프터를 한 놈은 나밖에 없을거야하는 승리감이 앞섰지 앞에 앉은 미연인가 무언가 하는 여대생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나를 생각하는지는 알 바 없었다. 그냥 즐기다가 여차직 운을 띄보고 통금 넘길 수 있나 없나만 살피면 그만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골치아픈 만남도 아니고 아직 개강날짜도 남았겠다. 생맥주나 한잔하면서 나이트 가고싶다면 둘이서 춤한번 추는거지 뭐. 이렇게 생각하니 만사가 잘 풀릴 것 같았다. 계집애 한명에 목매다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만나서 머리에서 나오는 대로 시시끌렁한 농담따먹기를 하다가 시간을 때울 참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전공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사진학과예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으잉, 사진찍는 것도 학과가 있남?' 속으로 뜨끔했다.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자신도 사진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전무했기 때문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래요. 오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왜 그러세요? 여자가 사진 전공하는 걸 처음 본 모양이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왜 이래 아가씨 여자나 남자나 사진을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사실 자체가 처음이야, 처음.' 속으로 이렇게 간단히 정리하며 이내 본연의 표정으로 돌아와,&lt;/P&gt;
&lt;P&gt;&quot;아니, 좀 드문 편이라, 헤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러는 영필씨는 전공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대화가 진행되면 수도없이 해온 모범답안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일사천리였다. 가끔 생각지도 못한 의외성 질문을 해대는 몹쓸 암캐도 있지만 하도 변수를 많이 겪어본 영필의 입장에선 이제 눈감고도 질의응답식 답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15.&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송도 U호텔의 로비는 초라했다. 아직 해운대 극동호텔이 유일한 오성급 호텔인 반면에 무궁화 세개짜리 호텔이라지만 규모면에서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연전에 서울가서 살펴본 조선호텔이나 워커힐 호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뭐 조선호텔이나 워커힐 호텔도 미국이나 그밖의 선진국의 호텔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긴 매한가지라 도의원 나리는 그렇게 위로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생각같으면 좀더 해안쪽으로 확장하여 툭 터서 별관이라도 짓고 근사한 커피숖을 해안도로변에 설치하여 밤에 나오는 데이트족들에게 명물로 부상시킬 자신이 있는데 글쎄 그만 지지부진한 확장계획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런만큼 그 옛날의 모습에서 단 한발치도 나가지 못한 선대의 유산인 호텔의 면모만 보아도 집안에 가둬둔 고리짝 병풍이라도 보는 것같은 구닥다리감을 느끼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다 자신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는 거의 방치하다시피 한 것을 요즈음에 들어서 호텔 경영학이 새로운 영역이니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사실 숙박업에 불과한 호텔이 무슨 산업이 되랴 싶었는데 선진국들의 호텔 경영에 대하여 얻어듣고 난 이후는 너무도 방치한 듯한 죄책감마저 드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단지 잠자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 휴양문화의 선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경영에 더욱 매진해야겠다는 심중을 굳힌 것도 불과 얼마전의 일이었다. 해방이후 미군정 시대에 미군속들이 잠잘데가 마땅찮을 때 이용한 시설의 일부로만 인식한 것이 호텔경영의 전부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하실에 일본식 파친코 기계 서너대 들여다 놓은 것이 호텔 문화의 전부였다. 침대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사람들이 온돌식 방을 호텔에 와서 요구하는 둥 짜증나는 일만 생기는 애물단지쯤으로 치부했는데 이제 돌아보니 너무도 태만하게 선대의 유산을 경영한 것 같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쩌면 선대의 칙칙한 과거와 연관되기 싫은 마음에서 였는지 모른다. 유산으로 받은 것이니 가질 수 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호텔 영업은 그 이후에 전적으로 마누라가 맡아서 했으니 그리 신경썼다고도 볼 수 없었고 다만 호텔 뒤편의 적산가옥은 그 이전에 살던대로 살고 있을 뿐이었다. 마음같아선 그 동네를 떠 버리고도 싶었지만 선대부터 살던 곳을 떠나기는 싶지 않았나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성식아..&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네, 아버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좀 돌아가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예 노력하고 있습니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노력하는 것보다는 결과가 중요한기다. 특히 별관부지 선정이 끝났으니 미기적거리는 동네주민들 말 안들으면 쫓아내버려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식이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 돈주어도 팔지 않는다는데 우째 쫓아내능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특히 그 곰보할멈은 고집이 여간 세지 않으니 니가 더욱 신경쓰얄끼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도의원 부친의 엄명이었으니 대꾸는 할 수 없었지만 언제나 말미에 곰보할멈을 강조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별관 예정부지에 사는 사람이 곰보할멈 말고도 여럿인데 아버진 언제나 곰보할멈을 지칭하여 말을 하는 것이었다. 형편없이 홀로 사는 그 곰보할멈이 무어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언제나 빼놓는 법이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예 구청직원과도 상의중이고 장쇠놈 모친도 회유중이니 조만간..&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날 새겠다. 얼른 얼른 해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모처럼 들른 호텔 사무실에서의 부친 접견은 그것으로 끝났다. 운전기사 대동하고 나타나서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엄명만 남기고 사단장 현지부대 순찰하는 것처럼 휭하고 나가버린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식이는 담배 한개피를 꺼내 물고는 한참을 기다리다 불을 붙였다. 불과 객실 50실도 되지 않는 여관급 호텔도 근 몇십년을 방치하다가 요즘 들어 개발바람이 분다지만 왜 그리 별관 증축을 서두르는 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릴 적엔 모친이 언제나 여관 심부름 아주머니처럼 리셉션에 붙어있었다. 생전에 호텔 현장에 들른 적도 없던 아버지가 이제 내가 장성하여 호텔 로비를 운영하고 난 이후부터 가끔씩 내다보더니 별안간 해안통에 별관 신축을 검토하라며 시작된 채근이 이제는 정기점검 항목이 되어버린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 정말 머리에 부하가 걸리네. 이거 촌동네가 갑자기 관광명소가 되는 것도 아니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생각하며 호텔 문을 나서 산허리를 돌아서 혈청소 마을로 들어가는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투벅투벅 걸어가며 그 이전에 신나게 놀던 이곳이 갈등의 현장으로 바뀔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장쇠랑 나랑 대나무 낚시대를 들고는 걸어서 산허리를 돌아 백지포까지 가면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 자갈해안 옆의 갯바위는 정말 낚시의 명소였다. 바로 낚시꾼들이 말하는 '포인트' 자리였던 것이다. 감성돔과 흑돔 등 온갖 연안 물고기가 미끼를 채 갈아끼우기도 전에 물려 올라왔고 그 재미로 날이 새는 지 저무는 지 몰라 늦게 집에 들어가서 엄마에게 매를 맞은 기억도 났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연산 흑돔에다 감성돔을 낚아도 매를 맞는 세월이 있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그 백지포도 이전 같지 않다. 산길로 내려오는 통에 닭백숙 집들이 두어개 생기고 외지 사람들이 백지포까지 피서를 들어오는 통에 우리만의 비밀 낚시터가 외부에 공개된 것같아 속으로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장쇠녀석도 같은 심정이었을까? 하도 말이 없는 녀석이라 감정 자체가 없는 놈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든 적이 있으니...&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작은 승합버스로 된 혈청소 마을버스에는 낚시꾼과 마을주민만이 타고 다녔다. 가끔 내가 마음이 답답할 때면 이 버스를 이용하여 혈청소 마을을 찾을 뿐이었다. 난 혈청소 마을에 하차하여 아직 포장된 되지 않은 산길을 타고 오른다. 고갯길인데 이 고갯길을 올라야 탁 터인 감천만이 눈아래 펼쳐지고 멀리는 머리섬(頭島)를 돌아 남해안까지 나가는 연안조업선들이 보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루에 한번 정도는 이 길을 걸어야 제대로 된 일과를 보낸 느낌이 들었다. 전망좋은 혈청소 고갯길에 올라서면 아래는 혈청소 마을이 보였고 멀리는 감천만이 펼쳐져 있었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다시 동양시멘트가 자리잡은 감천만쪽으로 약간 가다보면 백지포 자갈해안으로 내려가는 숲길이 나타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인적이 드문 길이라서 양 길섶에서 자란 풀들이 수북하여 마치 정글 속을 팔로 진로를 만들어서 나아가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손에 생채기가 난 적도 있었다. 풀잎중에는 가시가 돋아난 것도 있어 이런 풀잎을 손으로 마구 휘젓다가는 생채기가 난다. 백지포 해안에 다다르는 길도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이 아니라서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났다. 특히 경사가 심하여 내려가는 속도를 자기마음대로 조종할 수가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가속도가 붙어 마구 뛰다싶어 내려가노라면 순저히 자갈로만 이루어진 작은 해안에 도달하게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자로 무슨 뜻이 있는지 어릴 적부터 그냥 '백지포'라 불렀다. 그 해안은 모래사장을 싫어하는 해수욕객들에겐 안성맞춤의 해안이었는데 규모가 너무 작았다. 그냥 평수 큰 집의 안뜰만한 해안이었다. 그래도 파도가 조용한 날이면 인공풀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환경이 된다. 자맥질이나 잠수를 하여 고둥이나 성게도 딸 수 있고 갯바위 낚시질도 알맞은 해안이었다. 양푼이나 하나 걸어놓고 불을 지피고는 생고둥이나 게, 성게를 심지어 전복까지 따서 삶아서 먹을 수도 있는 해안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만의 '비밀화원'과 같은 그곳에 갯바위에 미리 온 아이녀석들이 두엇 보였다. 아마 이 지역을 아는 녀석들인 모양이다. 대나무 낚시대를 들고는 갯지렁이를 미끼로 낚시질에 여념이 없다. 바닥을 보니 초고추장을 담은 플라스틱 반찬통도 준비한 걸보면 낚시질로 생선회까지 챙겨 먹을 작정인 모양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속으로 대견한 생각이 들어 말을 걸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야, 무엇이나 올라오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한낮이라 그런지 입질도 없심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포인트는 좋은데 물때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무작정 낚시대만 드리운다고 고기가 무는 법은 아니지. 시간과 장소가 맞아야 되고 그날의 날씨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낚시였다. 강태공의 고사만 기억하고 한나절 보내다간 그늘 피할데 없는 갯바위에서 벌겋게 몸만 태우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도 사람 한사람없는 해안보다는 천둥벌거숭이같은 아이놈들이라도 있으니 눈길 둘 데가 있고 더 좋은 것 같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13-15&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13-15&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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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10-12)</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cho3237/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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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속사프레서</name>
	    </author>
	    <updated>2009-09-03T02:38:27Z</updated>
	    <published>2009-09-03T02:38:2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10.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랬다.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간 그 시절 이전의 시절과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닌 60년대는 내가 태어난 50년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딱히 꼽으라면 뒤칸에 가서 볼일보고 난 후에 짚이 많던 50년대는 아직도 농경사회라서 새끼줄이나 짚으로 밑을 닦았다면 60년대는 매스컴의 발달로 신문용지가 생산되어 그 정보전달의 첫기능을 마치고난 다음의 신문용지는 가위로 곱게 잘라져 화장실-사실 이 곱디고운 단어가 널리 사용되기 전에는 그냥 변소 혹은 뒤칸이라고 했다.-문걸이에 걸려있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요즘도 종이신문을 읽다보면 손가락이 새카맣게 변할 때가 있는데 그 종이신문으로 밑을 닦았으니 치질 예방에 도움이 되었는지 방해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전적으로 시대구분을 하는데 화장실문화를 기준으로 삼는 사람도 혹간 있는 모양이더라. 나도 이런 화장실의 변모를 생각해보니 정화조란 하수처리 장치가 우리 생활에 어느 시점에 등장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시대구분의 한 방법이 되리라 본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쉽게 말해서 언제부터 '푸세식-그냥 똥칸에 똥을 누는 방식'에서 '수세식-물을 흘려서 정화조로 똥을 가두는 방법'으로 바뀌었는가는 시대구분의 결정적인 척도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적만해도 장마철에 학교를 가려면 지난밤에 온 비로 주택가의 개천을 넘쳤고 그냥 그 비가 똥칸을 훑어내려 지독한 냄새가 났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나는 지금도 그 주문과 같은 중얼거림을 기억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60년대 후반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때의 일이다. 6월 어느 장마철에 등교하는 길 중간에 못사는 집이 한채 있었는데 그 집은 아예 화장실을 집옆의 하수개천 위에 설치하여 그야말로 커다란 수세식 변소를 가지고 사는 집이었다. 아이들도 무척 많은 그 집의 화장실은 나무로 개천위에 발칸만 만든 뒤에 가마떼기로 엉성하게 가린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골목길을 올라가면 그 화장실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 집아이가 변을 보며 중얼거리는 소리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내 배가 들어가게 해주소. 내 배가 들어가게 해주소...&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런 주문아닌 주문소리가 들렸다. 횟배-회충이 많아서 배가 수박덩어리처럼 부풀어 올라 올챙이 배처럼 되는 배-를 앓던 그 아이가 배가 좀 들어가게 해달라는 주문을 외며 변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렇게 원시적 화장실을 우리는 70년대가 가면 얼른 외면하고 만다. 그래도 60년대의 화장실문화를 우리들의 삶에서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비가 오면 사방에서 똥구린내가 진동하던 그 시절이다 보면, 아예 비오기만 기다려 똥칸 청소를 한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도 비데에 올라타서 똥구멍을 씻고 있다마는 그들이 어렸을 60년대에는 공공장소가 아닌 일반 가정집은 거의 '푸세식'이었다. 내가 중학교 진학을 했을 70년대 초반에 읽은 학교 작문이 생각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단체영화관람으로 모처럼 극장에 들른 아이의 이야기였다. 태어나서 줄곧 푸세식 변소만 본 그 아이는 영화관람 도중에 똥이 마려워 극장 화장실로 갔는데 공공시설부터 수세식 변기가 놓여지고 있던 그 당시의 변화를 그 아이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똥은 마렵지 화장실 문을 열고 급히 들어갔는데 도대체 어느곳에 똥을 누어야 할 지를 순간 그 아이는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냄새나는 똥칸이 있어야하는데 구멍은 사라지고 하얀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세숫대야같은 변기에 물만 약간 고여있었다. 대체 똥이 내려가야할 구멍이 보여야는데 구멍은 없고 물만 살포시 채워져 있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기까지만 생각한 아이는 급한 통에 일단 벗고 변을 누고 나서야 눈앞에 무언가 당기는 줄같은 것이 보이는 것이었다. 속으로 '얼렐레..이 줄을 당겨란 말야?'하고는 손으로 그 줄을 무심코 당겼는데, 생전 처음 변소칸에서 쏟아지는 물소리에 그만 무엇을 잘못 건드려 고장이라도 낸 것으로 생각한 그 아이는 밑닦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냥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는 그 우수 작문을 깔깔대며 읽은 기억이 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한마디로 그 아이에겐 문화충격(Cultural Shock)였던 것이다. 지금에야 이렇게 회상하니 '몰라도 그렇게 몰랐을까'하며 내숭들을 빼고 있지만 사실 처음 본 그 수세식 화장실에서의 첫 충격은 다들 한번씩은 가졌을 것이다. 신문지도 귀하여 단한장이라도 모아서 가위나 편지봉투 칼 따위로 반듯반듯 잘라서 닦을 때는 마구 구겨서 나들나들해져야 요즘의 화장지 티슈 마냥 곱게 똥을 닦을 수 있었던 것이다. 똥구멍에 신문인쇄 잉크 묻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시절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 후로 한참을 지나서야 티슈라는 고급 화장지가 나왔고 그 때는 자가용시대가 도래하여 자가용 차 뒷좌석에는 언제나 곱게 티슈 박스가 올려져 있었다.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한다. 무엇을 그리도 닦을 것이 많은 지 왜 차 뒷좌석에 너네 할것없이 그렇게 화장지 박스를 올려다 놓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다. 뒷 좌석에서 그리도 카 섹스를 많이들 한 것인지...&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흑백 TV에서 칼러 TV의 변환기를 시대의 구분선으로 여기는 분류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그저 화면에서 비가 오듯 노이즈가 깔리든 말든 소리가 들리고 움직임만 느껴져도 좋다하던 그런 60년대에서 총천연색 TV가 나온다는 소리는 아마 누구라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으리라. 서울서 열린 복싱게임을 부산에서 중계한다는 뉴스만으로도 '와아..'하던 사람들에게 TV화면이 색칠까지 하고 나온다는 것은 거의 구라성 뉴스와 같이 들렸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에이..영화라면 몰라도 어떻게 테레비가 자연색으로 나온담..'&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렇게 생각이 든 지가 불과 얼마되지 않은 세월이었고 그 세월이 바로 70년대였던 것이다. 우리는 7080하면 의례 지금의 수준이었는데 가수들이 통키타에 집착한 그런 세월이었다고 단순히 생각하는데 70년대의 초반과 후반의 차이는 단순히 10년의 차이를 훨씬 넘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1951년과 1959년의 차이라든지, 아니면 1961년과 1969년의 차이와 엇비슷했으리라 생각하면 안된다. 사실 50년대 내내 60년대 내내 별무 차이가 없었다. 그저 세월만 흘렀지만 1970년대 들어서는 초반과 후반은 현격한 차이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물질적으로 인간 내면적으로.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물질적인 것은 보이니까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적인 차이는 똥닦는 종이의 차이를 짐짓 모른체 했듯이 모른체 하거나 아니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이 시대는 분명히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lt;BR&gt;11.&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광호는 나를 보자마자 따지고 들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너네들 등대서 나만 빼고 어디로 갔었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니가 하도 안 오길래 영수가 튜브를 가지고 왔길래 그것 믿고 송도 백사장까지 헤엄쳐 갔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뭐라고? 등대앞 바다를 돌아서 송도까지? 돌았 놈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돌기는 재미만 있더라.&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규식이가 한때 팔목에 찬 시계를 맏기고 밤중에 먼바다로 수영을 나가서 애를 태우더니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규식이는 좀 괴퍅한 구석이 있는 친구였다. 매사 통제받기를 싫어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엉뚱한 짓을 간헐적으로 해서 친구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엄격하게 간섭해온 모친에 대한 반발심이 있어 그러는 지 모르지만 툭하면 깜짝 뉴스를 만들곤 했는데 광호가 겪은 일은 이러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루는 술을 먹고는 와서 밤에 등대로 나가자 했다. 다들 진학한 고교를 도중에 마음에 차지 않는다고 포기하더니 이것 저것 해보다가 마음에 차지 않던 모양이었다. 대학 진학을 앞둔 아이들보다 이제는 군입대부터 먼저 해결한다 나서질 않나 그렇게 모친 마음을 괴롭히다가 불쑥 술을 먹고 밤에 찾아와서 등대로 바람을 쐬러 나가잔다. 광호도 딱히 거절할 만한 이유를 찾기 귀찮아 그러자고 했던 것이 바로 애를 태웠다는 표현을 쓴 바로 그 사건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둘사이서 밤등대에서 이루어진 일이니 전적으로 둘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지만 들을수록 황당한 해프닝이었다. 고교 중퇴로 이어진 항거로 매사 하는 일마다 보이지 않는 모친의 간섭에 답답하긴 한 모양이었다. 한동안 운동으로 이름을 날리겠다며 체육관에서 무척 땀을 빼더니만 그러더니 특전하사관으로 자원입대한다며 모친 속을 긁은 모양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다 밤중 등대 실종미수 사건이 터지고 말았는데 전말은 간단하다. 술이나 깨려한다며 광호를 데리고 밤등대로 나가더니 차고 있던 팔목시계를 건네며, &quot;줄것은 없고 고맙게 받아라.&quot;더니 이내 밤바다를 뛰어 들더랜다. 술먹고 밤바다에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라 홀연히 사라진 친구를 미처 잡지도 못하고 받은 시계만 손에 쥔채로 밤등대를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녔다는데 아무리 보아도 물속으로 들어간 친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정말 어쩔 줄 모르고 한동안을 밤바다만 응시하고 있었는데 근 십분이 지나서 이제 규식이는 황천길로 떠난 것이란 생각이 들자 이 친구가 왜 나를 불러 이런 정황을 만드는지 괘씸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하여 황망하여 그곳을 떠나지도 못하고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는 어쩔 줄 모르는 지경이 지나서 이젠 될대로 되라며 포기하며 등대를 걸어나오는데 밤바다 저 먼쪽에서 사라진 친구가 나타나더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반갑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여 물속에서 나오자마자, &quot;너, 이 새끼 죽으려고 환장했나?&quot;고 소리치니 술은 깬 모양이지만 자신이 바다에 뛰어들어 그렇게 오래동안 나오지 않은 사실을 잘 모르더라고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무슨 몽유병환자도 아니고 '진실 아니면 거짓'과 같은 황당한 이야기는 우리 친구들 사이에서만 전해질 뿐 그 누구에게라도 말을 옮기면 그 말을 옮긴 사람만 뻥쟁이로 매도당하는 애매한 이야기를 달고 있는 친구가 바로 규식이란 놈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번 이렇게 당한 친구라면 그 어떤 사람도 다시는 규식이를 쳐다보지 않을텐데 광호는 사람이 좋은 건지 아니면 무른 건지 등대 실종 미수사건에 그토록 놀람을 당했지만 그 이후로 그 이야긴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주고 떠난 그 시계는 물론 다시 규식이가 가져갔다고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규식이네는 원래 이북에서 피난온 사람들이었다. 어떤 연고로 한반도의 제일 남단인 부산에 정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회의 격변기에 이곳 부산지역은 60년대만 해도 많은 피난촌이 있었던 것이다. 산꼭대기 바로 밑까지 지어진 판자촌들은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생활력이 강한 그들은 70년대 들어선 어리숙한 원주민(原住民)인 부산사람들보다 더 잘사는 사람들이 많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부산 국제시장 상권도 많은 부분을 이런 실향민들이 차지했다고 한다. 규식이네도 그 실향민 중 한가족이었지만 모친의 강한 생활력에만 기댈 뿐 사람만 좋은 아버지는 가정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툭하면 돈심부름을 자청하고는 그 돈을 가지고 사라지기 일쑤인 그 부친을 철저하게 못 믿는 모친은 그 불신의 범위를 장남인 규식이까지 넓혀 학업 중도 탈락한 이후로 규식이를 더욱 믿지 못하게 되고 그럴수록 규식이의 모친에 대한 반항은 엉뚱한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등대 실종 미수사건도 그 맥락에 닿아있었던 것이다. 이런 규식이는 이후 특전하사관으로 자원입대하게 되고 20대 중반의 나이까지 무려 5-6년의 청춘을 군생활에 바치게 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 규식이를 늘 가까이에서 그래도 말동무를 해주는 것은 진짜로 암하석불(巖下石佛), 암벽 밑의 돌부처와 같은 숙맥인 광호였다. 그래서 그날도 술취한 규식을 달래다가 봉변을 겪게 된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 광호였기에 함께 등대서 수영하다가 잠깐 집으로 양푼을 가지러 간 사이에 4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실종한 그런 상황을 맞이하였기에 얼마나 놀랐겠는가. 한놈은 차고 있던 시계를 남기고 밤바다로 뛰어들지 않나 함께 수영하던 네놈은 옷만 뱀껍질 벗어놓았듯 땡볕에 남기고 죄다 사라졌으니 얼마나 놀랐을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생각이 들자 석근이는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을 뱉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왜 규식이 사라진 것처럼 우리 모두도 사라져 간이 콩알만 했겠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가면 간다고 규식이는 말이라도 하고 갔지, 너네들은 옷만 남기고 갔잖아?&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럼 옷은 벗고 수영하지 입고 하는거야? 쪽지라도 남겨두어야 했남. 볼펜이 있어, 메모지가 있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놀려먹다가도 순한 숙맥같은 광호를 보면 좀 마음이 안쓰럽기도 했다. 언제나 변함없는 광호는 때로 그 변함없음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카멜레온같은 변색을 자주하는 인간들이 늘어나는 한가운데서 언제나 그 색깔 그대로 바다지킴이 노릇을 하는 그를 보면 변하지 않는 인간을 보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12.&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규식아, 너 전날 밤 어디서 무얼 했니?&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모친의 심한 닥달이 또 시작되는가부다하고 덮고 있던 이불을 귀위까지 끌어당겼다. 며칠 전 아버지가 또 얄궂은 사고를 내고 잠적한 이후로 저리도 분풀이를 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돈심부름으로 가져간 돈은 몇푼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늘상 있어오던 일이라도 모친은 생각할수록 분이 나는 것이다. 그 분풀이를 학교도 다니지 않는 나에게 몽땅 둘러씌우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묻잖아, 지금!! 일어나란 말이야. 지금 시간이 몇신줄이나 아니?&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쇳소리는 갈수록 금속성이 강해져 갔고 배길래야 배길 재간이 없는지라 규식이는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술이 떡이 되고는 밤수영까지 신나게 한 후라 몸이 자근거렸지만 그래도 엄마의 잔소리는 초기진압이 제일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그리고 호미로 막을 수 있을 때 호미로 막자는 심정으로 가래로 막을 때가 되어선 막지 못한다는 것을&amp;nbsp; 알고 있기에 얼른 일어났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또, 또오..왜 그래요. 나도 나이로 치면 대학생인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대학이라도 다니고 그런 소리해. 왜 시키잖은 자퇴는 불쑥해가지고는..그렇담 학원이라도 다니든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또, 또오...국군의 방송!&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얼렁뚱땅 입막음을 하며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연다. 참 세상 좋아졌다. 언제나 시원한 냉수가 냉장고에 들어있으니... 초등학교 다닐 적의 산비탈 판자집에 살적엔 여름이면 이틀이면 김치가 다 시어빠져 그 신김치를 먹어내느라 이빨까지 시큼거린 적이 있었다. 여름 내내 미적지근한 물만 마실 수 밖에 없던 그 시절, 허기진 배로 학교 마치고 운동까지 한 후에 집으로 오를 때면 언제나 시원한 냉수 한사발만 생각해었지하는 얼토당토않은 기억이 언뜻 머리에 스쳤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고 보면 그래도 이렇게 집칸에서 시원한 냉수사발이라도 들이킬 수 있는 것도 다 엄마가 노력하여 이룬 것이란 고마운 생각이 들자, 이내 엄마를 구슬려야겠다고 생각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마마, 아침 먹었어? 나와 함께 먹자.&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얼씨구. 시간이 몇신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몇시면 아침 먹었으면 점심 좀 일찍 먹는 셈치고 아들하고 함께 먹자는거지...아버지 일로 그만 속 끓이고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래 그 인간 아침부터 생각하면 날씨도 더운데 더 열불 나. 찬 오이냉국 만들어 놓았으니 가져와서 먹자꾸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되면 만사가 정리가 된 것이다.이제 엄마 찬거리 솜씨가 세상에서 제일이다라면 판에 박힌 레코드만 틀면 된다. 그렇게 하고 나서 엊그제 결심한 이야기나 꺼낼 기회를 엿보면 된다며 눈치를 살금살금 살피며 밥을 퍼넣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얼마 가져갔슈? 이번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전화요금 그런 것으로 입금시킨다며 얼마되지는 않지만...&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내버려두슈. 아빠도 여간 답답..&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이 녀석이 불난데 부채질이냐? 너도 아빠 닮아서..&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마, 마아...밥먹는데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는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동안 뜸하던 부친의 나쁜 버릇이 모처럼 나온 모양이었다. 이제 쉰을 훨씬 넘긴 나이로 그냥 하는 일도 없이 마누라 일만 옆에서 거들며 일생을 보내기에는 아직도 못다한 미련이 남았나 툭하면 그 놈의 대박을 향한 확률도 없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는가 보다. 부친은 이북에서 내려온 이후에 별다른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살았다. 그저 동네사람에게 천하의 호인으로 평판을 받는 부친을 모친입장에선 정반대의 시각을 가지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람좋은 것보다는 가정에 실익을 가져오는 편이 백번 낫다고 모친은 믿는 것이다. 그런 모친이 심하다 느껴질 때도 있지만 많은 식구를 먹여살리는 일을 오로지 아내에게만 미루고 자신은 편한 일만 찾으려는 부친을 모친은 남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었다. 규식이도 때로는 그런 아버지가 싫어서 엄마의 편에 서다가도 숨 쉴 기회를 주지 않고 일거수 일투족을 믿지 못하는 엄마의 남자에 대한 근원적인 불신의 벽에 막히면 되려 아빠를 이해하기도 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언제나 이렇게 오늘은 엄마편, 내일은 아빠편 들다가 정작으로 자신의 일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눈떠자 전개되어 온 끝나지 않는 전투의 한가운데 서 있는 자신이 너무 싫어서 어디론가 독립하고픈 마음만 굴뚝같이 솟아나면 엄마가 늘상 입에 달고다니는 검정고시 학원에서 다시 시작하는 그 블록쌓기는 너무나 아득하게 보이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피난시절을 겪느라 초등교 입학까지 늦어진 통에 또래보다 나이가 한두살은 많은데다 고교 중퇴까지 한 지금은 정상 나이로는 대학생이 되건만 다시 고교 검정, 예비고사 그리고 본고사를 보아서 대학가라는 말처럼 아득하게 들리는 말은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학교 다닐 적에도 공부보다는 운동에 더 관심이 많았던 규식이로서는 다시 책을 잡는다는 것은 너무 늦은 일이었고 자신은 후회를 하지 않지만 엄마로선 장남인 자신이 학업을 포기한 것이 만시지탄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학업을 중도포기한 일이 못내 안쓰러워 규식이를 볼 적마다 모친은 가슴을 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럴수록 무언가 하고픈 것이 있어도 말을 꺼낼 수 없고 꺼내보았자 지지는 커녕 '기껏 구상한 것이 고것이냐?'는 핀잔만 듣기 일쑤라 더욱 주눅이 드는 규식이었다. 부자(父子)가 모두 속썩이는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판박이로 보이는 엄마의 눈에는 언제난 규식의 존재 자체가 '부전자전(父傳子傳)'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 사실이 너무나 숨이 막혔고 달리 20살도 채 되지 않은 규식의 안목으로 자립자체도 곤란하게 보이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다 그 언젠가 길을 가다 벽에 붙여진 '공수특전 하사관 모집'이란 포스터에서 하나의 탈출구를 보았던 것이다. 별로 자원입대의 자격은 까다롭지 않았다. 게다가 몸으로 하는 훈련이나 운동에는 소질이 있는 규식이로서는 안성맞춤인 도피처 겸 군문제 해결이라는 일석이조의 해결법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걸 두고 꿩먹고 알먹고란 말이 있지. 바로 님보고 뽕도 따고.' 내심 이렇게 쾌재를 불렀는데 엄마에게 의논을 한다고 이야기를 꺼낼 생각을 하자 막막한 것이었다. 거대한 산맥이 턱하니 버티고 있는 그런 중압감이랄까. 날은 저무는데 넘을 고개는 너무도 높아보이는 그런 막연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중요한 결정에 있어 단 한번도 엄마의 허락을 받아본 기억이 없는 규식이로서는 이번의 시도도 그런 결론으로 그칠 것 같아 술을 먹지 않고는 못 배기다가 터진 것이 등대 실종 미수사건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물론 엄마는 등대서 밤바다로 사라진 그런 일은 모른다. 광호 녀석이 입이 가벼운 놈이 아니라 발설했을리도 없고 더구나 친구 모친인 엄마를 어려워하는 편이라서 엄마가 등대서 일어난 밤 해프닝을 알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들이 오죽 답답했으면 하고 이해해 줄 엄마는 더더욱 아니고 그럴수록 믿지 못하는 행동만 하는 아들이라고 치부해 버릴 뿐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니 아버지도 오죽 답답하면 오락실 기계를 상대로 그렇게 씨름을 하겠는가. 아버지는 한사코 일본식 빠친코 기계에만 매달렸다. 주택복권이라도 사든가 아니면 백원짜리 고스톱이라도 치면 몰라도 그런 것에는 자리를 깔아주어도 규식 부친은 싫어한다고 했다. 큰 돈이든 작은 돈이든 돈만 생기면 달려가서 코인으로 바꿔서 기계 주둥이에 솔솔 넣어주는 그 맛만 찾는다고 했다. 사람은 때로 남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자신의 만의 집착을 가지는 모양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른 사람들은 그런 편집증적 행동을 중독이라고 나무라지만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어떤 모습의 중독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몸에 배 버릇이 중독이 아니고 달리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평가하여 반사회적인 행위에 기를 쓰며 매달리는 것을 '중독'이란 단어를 붙여 나무라는 것은 아닌지. 그렇담 담배피우는 것으로 자신의 울화를 다스리는 사람, 소주로 다스리는 사람, 그리고 부친과 같이 코인을 기계에 집어넣으며 다스리는 사람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돈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이 않은가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생각을 엄마와 나누다가는 엎친데 덮친격이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규식이는 혼자만의 생각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어느 순간에 엄마에게 털어놓느냐는 기회를 잡는 생각뿐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번의 결정은 이미 자신은 내렸기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모친에게 가해질 충격을 생각하면 그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지금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효도란 생각뿐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10-12&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10-12&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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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리시대(7-9)</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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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속사프레서</name>
	    </author>
	    <updated>2009-09-02T04:57:15Z</updated>
	    <published>2009-09-02T04:57:15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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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7.&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성식이는 장쇠네 모친을 얼른 뵙고 설탕 한포대를 두고 나왔다. 친구 모친을 구워삶는다고 그 쇠말뚝 장쇠가 마음을 바꾸랴마는 이것으로 장쇠와의 관계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내버려 두기로 했다. 웃는 낯에 침 뱉지 못한다고 어른 찾아 인사하는데 제깟 녀석이 책을 잡지는 않으리라.&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추석도 다가오니 미리 추석 인사한 셈을 치면 된다. 아이들을 풀어서 공개적으로 매장시키려는 계획도 수포로 돌아간 마당에 선제공격에 대한 미안함도 있으니 일종의 사면의식으로 찜찜한 관계를 좋게 마무리하려는 뜻으로 그 녀석이 받아주면 더욱 좋고.&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녀석과 함께 마신 낯술도 있고 장쇠네 집에도 들르고 나니 어느덧 밤 9시가 다 되어간다. 호텔 뒤편에 조용히 자리잡은 적산가옥인 집으로 돌아오니 이제야 조용한 기운이 느껴진다. 골목길만 벗어나도 이렇게 조용할 줄이야. 골목에서 해안도로로 연결되는 해수욕장 입구는 아직도 밤피서객으로 시끌벅적하다. 입추가 지났어도 아직 양력으로는 팔월의 마지막 주간이라 언제나 지겨웠던 여름도 끝무렵이면 이상하게 서운한 것이 남아 사람들은 가는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아직도 한여름의 열기를 느끼려는 묘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더울땐 척척 감기는 더위가 무던히도 지겹다가도 귀뚜라미 소리가 길섶에서 들리면 '아차, 올 여름도 이렇게 가는가보다.'며 지겨운 애인이 떨어져라 푸대접하다가도 마지막 한마디 남기고 돌아서면 '그래도 괜찮은 여자였는데...'하는 미련이 밀려오듯 야릇한 이중성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철제 대문은 늘 열려 있었다. 보나마나 아버지는 동네 유지들 아니면 지역구 관리 정당사람들 만나느라 집에 없을 터이고 성애는 연애질하러 남포동에 나가 있을게다. 어머닌 새로 들여놓은 칼러 TV 연속극보느라 사람이 드나드는 소리도 듣지 못할 것이고.&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오로지 집에서 자신이 드나드는 기척을 알아주는 이는 식모 귀련이 뿐이다. 왜 여자아이 이름에 '귀'자를 붙였는지 모르겠다. 아마 귀할 귀자이겠지만 그래도 '귀'자라면 자꾸 귀신 귀(鬼)가 연상되어 어딘가 요기(妖氣)스런 분위가 느껴지는 아이였다. 아마 나이는 성식이보다는 서너살 아래이고 십년전만해도 웬만한 가정집에는 식모를 두고 살았는데 70년대 들어 각지에 수출공단이다 산업공단이다 들어서니 시골여자아이들이 식모질보다는 낫다고 전부 다 '공순이'가 된 마당이라 이제 집에서 식모노릇하는 여자아이가 드물어지는데 귀련이는 충청도 어느 산골에서 초등교를 마치고는 도회지로 나와 우리집에 오게 된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배움이 없는 아이치고는 명석하고 센스가 있어 모친은 그저 &quot;우리집에 귀련이 없었다면 우째 됐을꼬? 저 천둥벌겅숭이 성애를 믿고 살림하겄나?&quot;하는 소리를 달고 살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가스나가 이제 우리집에 온 지도 어언 5.6년이 되어가니 나이로 쳐도 대학생이 될 처녀인데 요즘들어서는 부쩍 편지쓰기에 매달려 있다. 처음에는 파월장병 위문편지를 잡지나부랭이에서 얻어듣고 시작하더니만 이젠 제법 편지 상대가 넓어졌는지 일이 없을 때면 이내 볼펜을 들고 편지지위에서 씨름을 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처음에만 해도 연필로 맞춤법도 서툴어서 내게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대필(代筆)시키더니 편지장난으로 이제는 곧잘 멋도 부리며 편지를 쓰는 모양이라 여기저기서 펜팔 친구들이 많은 모양이다.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내가 철제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마루에 엎드려 예의 편지쓰기를 하다가, &quot;오빠, 왔어예...&quot; 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성식이에게 인사를 하는 건지 아니면 건넌방에서 연속극을 보는 성식이 모친에게 알리는 지 모호한 그런 마중을 하고는 볼펜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향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귀련아, 저녁 필요없다. 지금 시간이 몇신데..&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술마시고 돌아치다 아무리 밤늦게 돌아와도 귀련이는 마치 서방을 맞이하는 새댁처럼 나의 밥심부름을 꼬박꼬박한다. 아마 내가 언젠가 장가를 들어도 귀련이만한 귀가맞이를 해줄 여자는 만나지 못하리라. &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성애는?&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아가씬 친구 전화받고..&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아버지는 의례 집안에 없는 사람이고 보면 여동생 성애라도 있어야 집안이 활기가 있지 성애가 없으면 그야말로 절간이 되는 집이었다. 다다미 방이 아래층 위층으로 여러칸이 있고 아래층 일부는 기와식 한옥으로 절충되어진 그런 집이었다. 그래도 이곳 인근에선 대가집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정원도 가꾸어진 훌륭한 적산가옥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부친은 해방이후 정치활동을 꾸준히 해왔던 정치꾼이었다. 이승만 정권때부터 자유당 지역구 활동을 하다가 잠시 지방자치가 실시된 2공화국 시절에 경상남도 의회 의원을 한 적이 있어 언제나 부친은 '도의원'님으로 호칭되었다. 지금도 그 명칭을 가지고 정치활동에 여념이 없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호텔건물 관리는 이제 외아들인 성식이의 몫이 되었고 지역개발하는 정책을 만들어낸다고 밤낮없이 사람들을 만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성식아, 호텔 인근에 별관을 지으려면 단디 해야할까다. 동네사람들 원성듣지 않고 땅부터 매입해야한데이..&quot;하며 은근히 재촉을 한다. 동네 땅 매입은 책임지고 해놓아야 나머지는 부친이 알아서 한다는 말인데 이 땅 매입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데 성식이의 고민이 있다. 땅 매입자금이 없어 그런 것도 아니고 도통 말귀를 들어먹지 않는 이곳 주민들의 정서가 문제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른바 대한민국은 '새마을 운동' 열풍에 쌓여 어른 아이 할것없고 도시 농촌 할것없이 새모습, 새단장을 하고는 '우리도 이참에 한번 확실히 해보자'며 검정고무신 팽개치고 흰운동화 갈아신고 신발끈부터 새로 매는데 이 똥골 동네 주민들은 산골 무지랭이보다 더 뒤떨어진 것같아 일이 좀처럼 진척이 없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그 정점에 친구놈이 장쇠가 버티고 있으니 부친은 언제나 그것이 불만이다. 친구하나 구슬리지 못한다며 은근히 눈총을 주며 말하는 것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성식아, 사람들 다루는 것은 의외로 쉽다. 3가지만 구분해라. 돈 좋아하는 놈은 돈 갖다주라, 술 좋아하는 놈은 술 사주라, 계집좋아하는 놈은 계집붙여 주라.&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렇게 자상(?)하게 코치까지 해주는데 그 친구녀석 하나 삶지 못해서 일이 전혀 진전이 없는 것을 두고 부친은 늘상 불만이다. 어떨 땐 이렇게까지 말한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quot;친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나? 그럼 이 나이에 내가 글마를 불러 구슬리란 말이가?&quo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이런 소리를 듣는 날에는 그저 장쇠만 믿고 내튕기는 '곰보 할매'랑 '폐병장이 늙은이'가 떠오르다가는 마지막에는 장쇠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무슨 사람들이 말을 못 알아들으니 협상이라고 시도를 할 수가 있나, 이러니 사람들은 배워야하는 거야 하며 속으로 욕을 해대었다. 오늘은 이만큼 했으니 이제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다. 자다보면 무슨 묘수가 생기겠지하며 성식이는 방문을 열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
&lt;P&gt;&lt;BR&gt;8.&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단순하게만 살아오다가 이런 주위의 여태 겪어보지 못한 일에 시달릴 때면 장쇠가 찾는 곳이 있었다. 물론 소주 댓병 하나와 안주감은 챙기고 나서다. 멀리 있는 곳도 아닌 바로 인근의 '폐병장이' 최씨집이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어떤 이는 중늙은이라 했고 다른 이는 의외로 나이는 젊은데 월남가서 고생하고 귀국후 폐병까지 얻어 파싹 늙어보인다고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들 폐병장이라고 꺼렸지만 이제 60년대의 폐병이 고치지 못하는 '천형(天刑)'은 아닌 것이다. 아마 최씨 아저씨의 성질이 고약해서 폐병을 둘러대며 다들 대하기를 꺼려한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도 장쇠에게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현명한 사람의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폐병장이 최씨였던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웬일이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가까이 살면서도 대면할 기회가 없는 장쇠에게 최씨는 이렇게 물었다. 젊었을 적에, 막 월남에서 돌아온 후에 장가도 들었다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혼자사는 최씨였다. 월남에서 몸을 벌인 돈 몇푼을 보고 시집온 여자가 야반 도주를 했다는 말도 돌았지만 직접 들은 적은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저씨도 보고 요즘 돌아가는 일도 묻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요즘 무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데? 내가 세상돌아가는 일을 아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렇게 전개되는 대화도 소주 댓병이 바닥을 보일 쯤이면 열기를 띤다. 평소 사람 그리워도 만나지 않고, 만날 수도 없는 최씨로서는 유일하게 찾아온 장쇠가 동생처럼 여겨져서 마음껏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게 내 생각으론 다 개발업자끼고 벌이는 것이라. 촌동네서 일제시대 유산으로 받은 구식 호텔있다고 무슨 돈이 얼마나 있겠나. 개발자, 즉 건설업자 끼고 판을 벌이는 기라. 니도 신문봐서 알제. 그 모래섬 '여의도'가 개발된다는 말?&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서울 이야기지, 무슨 이 촌동네하고 관련이 있다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닌기라. 사막 한가운데라도 투자자와 바람만 있으면 벌이는 것이 개발업자라카이. 니 중동에 진출하는 수많은 건설회사 모르나?&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최씨 이야기인즉, 자기자금과는 관계없이 어떤 개발대상만을 찾는 건설업자와 짜고 벌이는 판이라고 했다. 개발수익은 지네들이 먹고 후발 참가자들이 자금을 대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개발이익이 나면 좋고 나지 않더라도 막차타는 놈들만 상투잡는 그런 투기성 개발을 도의원 어른이 어디서 주워듣고 혹해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일제시대에도 제일로 경치가 좋다는 평을 들은 자그마한 송도지역에 좋은 레저 여건을 꾸미면 도심에서 차로 불과 오분이면 되는 지역에 물과 산이 공존하지, 그런데다 막 몰려오는 기생관광의 일본놈들이 찾는 여자 공급이 쉽지 천혜의 요건을 다 갖추었다는 최씨의 확신에 찬 설명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렇게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다. 요즘 일본놈들이 동경올림픽 이후의 급성장으로 떼돈을 벌어 이제 한국 여자들 맛을 보려 대거 상륙하여 전문적인 여성뿐 아니라 심지어 동네 미장원 여자애들까지도 돈 번다며 다들 몰려가는 것이 기생관광이라고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니 일제시대부터 존재해왔던 '청루(靑樓)'가 송도 윗길에 떡하니 존재하니 지금이라도 삼천궁녀가 매일 밤 대기하는 꼴이니 일본 단체관광객들이 찾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이 또한 바로 이곳이 아니냐는 침튀기는 최씨의 설명을 듣고 나니 왜 그리도 조급하게 성식이네 부자가 설레발을 치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언제나 단순하게 살아온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은 일도 최씨 아재를 만나면 확연히 드러날 때가 있어 사람들이 꺼리는 폐병장이라도 장쇠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현인(賢人)인 것이다. 누가 배움이 모자라는 자신에게 이리도 자세히 설명을 해주랴. 그러니 성식이 놈을 몇차례 만나보아도 밑도 끝도 없이 방해만 하지말라는 그런 모호한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고맙기 짝이 없지만 이렇게 술을 진탕 마신 날이면 최씨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버릇이 있어 동네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최씨 나름대로의 울분을 푸는 방법이랄까 목이 찢으지라 새벽에 고함치는 통에 더욱 괴짜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누구는 월남전의 상처 때문이라하기도 하고, 누구는 돈을 가지고 달아난 마누라를 향한 분노라기도 했지만 최씨 나름으로 그런 발산(發散)이 없다면 정말 폐인이 될 지도 모른다. 언젠가 월남전에서 어느 마을에서 행한 주민 학살에 대한 꿈이 나와서 괴롭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피아(彼我) 구분이 모호한, 적과 동지의 구분이 모호한 그 지랄같은 전쟁에서 낮이면 주민이다가 밤이면 베트콩으로 기습해오는 적으로 바뀌는 판에서 살아남으려면 낮에 그런 모호성을 없애버리는 수밖에 없는 데, 그러다가 저지른 일들이 마을 전 주민을 적으로 모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구덩이를 파서 여자 남자 구분없이 밀어넣는데 살려달라고 마구 울부짖다가 마지막에는 경멸에 찬 비웃음을 띠고 죽어가던 어는 할망구의 비웃는 표정이 자꾸 꿈에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런 날이면 고함을 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을 한 것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런 대화까지 이르려면 술이 곤드레 만드레되어야 되었기에 장쇠의 기억도 어슴푸레한 것이다. 전쟁의 상처, 그것도 남의 나라의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이 우리곁에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죄다 잊어버리고 있었고 또한 우리들의 전쟁에서 남의 나라 젊은이들에게도 많은 상처를 주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욱 없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국전쟁 끝난지가 언젠데, 월남전이 끝난지가 언젠데 하며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다는 듯 오늘도 먹고사는 일에만 골몰하는 사람들에게 폐병장이의 고통을 말한들 무엇하리 하는 생각이 들자 최씨의 얼굴이 더욱 늙어보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오늘도 만취하도록 했으니 동네사람들에게 새마을운동의 새벽종 대신에 최씨 아저씨 고래고래 지르는 새벽고함을 선사해야겠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일어나니 장쇠 자신의 몸도 기우뚱 기울어짐을 느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gt;9.&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한규 학생, 한규 학생..&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문지방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여름방학을 조금 일찍 끝내고 채 하숙생들이 돌아오지도 않은 8월 말이니 하숙집은 조용하기만 해서 한규는 더욱 좋았다. 이제 한여름의 더위도 아침 저녁으로는 수그러들어 책읽기가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이 평화도 직업이 하숙생이고 무늬만 학생인 별볼일없는 하숙생들이 다들 전국에서 올라오면 시끌벅적 새 술판이 벌어질 것이니 이 짧은 평화가 여간 소중한 것이 아니라서 방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데 하숙집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창호지 바른 미닫이 문을 조용히 여니 참외를 담은 접시를 내어 놓으며 아주머니가 말을 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방학은 부산집에서 잘 보냈어요? 오자마자 또 책벌레처럼 콕 들어앉았네.&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뭐 방학생활이란 것이 별스런게 있겠어요. 집이 부산이라 간 것이지 피서간 것도 아닌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한규 학생, 내 노파심에서 그러는데 요즘 하숙촌에도 정보과 형사들 들어온다는 말이 있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게 저하고 무슨 상관이..&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우리딸 정임이가 그러데, 한규 학생이 어려운 사회과학책을 본다고..&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전공이 그러니 당연하죠. 학생이 책보는 것도 죄가..&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그런 뜻이 아니라 접때 요밑 하숙집에도 불온서적이 나와서 난리쳤다우.&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불온서적?'&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책에도 불온한 책이 있나? 도대체 불온서적이란 어디서 나온 말일까? 예수님 당시에도 요한계시록은 유대율법주의자들에게는 불온한 서적이었을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도대체 70년대 들어 학생운동이 격렬해질 조짐을 보이자 학원담당 정보과 형사들이 학교 인근에 죽을 치고 읽지못하게 하는 책들의 리스트는 늘어가고 듣지말라는 음악 리스트가 늘어만 간다. 나는 학생들의 반정부 운동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데 아마 단과대학 다니는 하숙집 딸 정임이가 내게 관심을 갖더니 지네 엄마에게 어려운 책을 본다고 말을 한 모양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먹통같은 기집애. 책 구분도 못하면서 그저 어려운 책 읽는다면 무조건 사회주의 책인줄 알고. 쳇'&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속으로 기막혔지만 인심좋은 아주머니 앞이라 &quot;정임이가 무슨 착각한 모양이네. 아줌마, 난 그럴 재목감이 아닙니다. 내가 학생운동이라도 하는..&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쉿!&quo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학생운동'이라는 말만 나와도 소심한 아줌마는 덩치와는 다르게 펼쩍 뛴다. 아저씨가 말단 공무원이라 더욱 조심스런 모양이다. 이곳은 학교도 가깝지만 뒷편으로 중앙정보부 분실이 위치하여 도둑도 없다는 마을인지라 더욱 긴장하며 살고 있는 모양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가 종로서적에 나가서 관심있는 사회운동가의 자서전 비슷한 책을 구입하여 읽은 적은 있지만 나같은 서생에게 그런 무리한(?) 임무를 부여하는 뚱보 하숙집 아줌마가 우습기도 하고 세월이 이리도 조심스레 살아야만 하는지 한심하기도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학교에 가도 밑으로 군사정권들어선지도 이제 10년이 넘어가니 교수나 학생이나 활기가 없기는 매한가지다. 우선 경제가 활력을 얻었다고 하지만 경제보다 상위개념인 정치가 숨을 못쉬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메이지유신'을 본딴 '유신체제'란 듣도 보도 못한 정치체제 속에서 살고 배우고 해야만 하니 그런 정치감각이 민감한 국민에게 있어선 정말로 꿀먹은 벙어리 시늉만 할 뿐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대폿집에서 선소리 한번 하다가 그 어떤 시인도 잡혀갔다지 않은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니 하숙생들의 책장에서 불그죽죽한 서적 한권이라도 나오는 날이면 하숙집도 문을 닫을 판인 모양이다. 아줌마가 요주의 1호로 책벌레인 나를 지목한 것을 보면.&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평소에 술 담배를 하지 못하는 한규는 유일한 취미이지 학생의 본분인 독서까지 정부의 입김이 와닿는 것같은 불괘감을 느꼈다. '권불십년(權不十年)'이라더니 십년을 넘어가니 권력이 썩다못해 미쳐가는 모양이다. 토목공사 준공식만 보여주는 정치뉴스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었고 그래도 사회과학도이니 전공공부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독서를 하는 것이 그만 주의를 요하는 학생으로 찍히는 살벌한 세상인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민족주의자에 관심을 가지면 학생들이 &quot;너 파쇼냐? 파시스트구나.&quot; 하고 빈정대고 분배에 무게를 둔 사회이론가의 책을 보면 &quot;그래 같이 공평하게 나눠 먹자 이거지. 참 좋은 이야기아냐?&quot; 하며 색안경을 낀다. 그러면 공부하는 학생이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비치된 정부홍보물만 보란 말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얼마나 시대가 앞으로 험하게 될 지 하숙집 아줌마가 지레 하숙생들의 정치이념까지 챙기고 난후에 하숙생을 받을 모양이다. 애써 깎아서 내어놓은 참외를 배어무니 별로 단맛을 느끼지 못할만큼 그 무언가 묵직한 무게가 짓누르는 느낌을 한규는 받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주일 일찍 올라와서 평화롭고 여유로와서 좋다했는데 이제 오는 하숙생마다 아줌마가 점검을 하는 모양이다. 첫번째로 내가 가장 일찍 올라와서 개강 준비를 하니 내가 먼저 받은 모양이다. 다음에 정임이가 꼬리를 치면 그 꼬리나 한번 세게 밟아주련다고 생각하며 한규는 이불을 일찌감치 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OKJk&amp;amp;tagName=우리시대7-9)&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시대7-9)&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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