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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추맥정 * 조화통일안보전략연구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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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6T09:07:1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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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편물 찾아가라는 문자가 왔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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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6T09:07:14Z</updated>
	    <published>2009-11-26T09:07:1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11월 25일 15:04 배달시도했으나 미배달 수취인 수령 대기라고 문자 왔다.&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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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명박의 리더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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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6T08:39:45Z</updated>
	    <published>2009-11-26T08:39:4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View.jsp?id=607&quot; name=focus_li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이명박&lt;/FONT&gt;&lt;/U&gt;&lt;/A&gt; 대통령에 대해 'CEO 리더십'이라고 말하지만 최근 여권(與圈)에서는 &quot;CEO가 아니라 그룹 오너를 보는 것 같다&quot;는 말을 하고 있다. 대형 국가 현안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것이 마치 70년대 재벌 총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대형 사업을 벌이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 현안별로 책임자를 정해서 일을 맡기는 것 역시 CEO들을 활용해 경쟁과 효율을 추구하는 그룹 오너의 경영 방식을 연상시킨다고 말한다.&lt;BR&gt;&lt;BR&gt;◆&lt;B&gt;하루 걸러 쏟아내는 대형 현안들&lt;/B&gt;&lt;BR&gt;&lt;BR&gt;25일 예산 심사를 위해 국회를 찾은 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quot;요즘 대통령이 지시하는 일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quot;면서 &quot;각 수석실 모두가 다른 방에서는 무슨 일 하는지 관심도 못 가질 정도&quot;라고 했다.&lt;BR&gt;&lt;BR&gt;국회와 여당도 마찬가지다.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issue/issueView.jsp?id=295&quot; name=focus_li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세종시&lt;/FONT&gt;&lt;/U&gt;&lt;/A&gt; 수정, 4대강 사업 착공, 행정체제 개편, 개헌, 남북 정상회담 등은 대통령 임기 내내 한 가지만 제대로 하기도 쉽지 않은 '헌법적 이슈'들이다. 그 밖에도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 문제, '과외와의 전쟁', 특보 출신 인사의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org/orgView.jsp?id=374&quot; name=focus_link&gt;&lt;U&gt;&lt;FONT color=#0000ff&gt;KBS&lt;/FONT&gt;&lt;/U&gt;&lt;/A&gt; 사장 임명, 신규 방송사업자 선정 등 역시 하나하나가 간단치 않은 사안들이다. 25일에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 조정과 복수국적 허용 등 저출산 문제도 나왔다. 내년에는 G20 정상회의도 열린다. 여기에다 국제 경제위기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다.&lt;BR&gt;&lt;BR&gt;◆&lt;B&gt;업무별 책임CEO 시스템?&lt;/B&gt;&lt;BR&gt;&lt;BR&gt;이 대통령은 이런 현안에 대해 자신은 방향을 잡아주고 실행은 책임자들에게 맡기고 있다. 재벌 총수가 목표를 정해주고 실행은 CEO에게 맡기는 것과 비슷하다.&lt;BR&gt;&lt;BR&gt;세종시 'CEO'는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View.jsp?id=810&quot; name=focus_li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정운찬&lt;/FONT&gt;&lt;/U&gt;&lt;/A&gt; 국무총리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quot;최근에 대통령을 만났는데 세종시에 관한 한 정 총리 이외에 누가 하는 말도 믿지 말라고 하더라&quot;고 전했다. 여당의 종합적 관리는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View.jsp?id=796&quot; name=focus_li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정몽준&lt;/FONT&gt;&lt;/U&gt;&lt;/A&gt;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org/orgView.jsp?id=402&quot; name=focus_link&gt;&lt;U&gt;&lt;FONT color=#0000ff&gt;한나라당&lt;/FONT&gt;&lt;/U&gt;&lt;/A&gt; 대표의 임무다. 비주류, 소장파, 영남·충청·수도권 등 복잡하게 얽힌 당 내부를 정리하는 것이다.&lt;BR&gt;&lt;BR&gt;이 대통령은 선진국을 위한 중요 과제로 공직 기강 확립과 부패 척결을 꼽는데 이 분야에는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을 내세웠다. 또 4대강 사업과 내년도 예산 등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은 안상수 원내대표에게 거의 전권이 위임돼 있다고 한다. 경제 정책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핵심 'CEO'라고 한다.&lt;BR&gt;&lt;BR&gt;이들이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한다. 한 고위 인사는 조기전당대회를 언급했다가 그날로 &quot;당신이 뭔데 나서느냐&quot;는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lt;BR&gt;&lt;BR&gt;◆&lt;B&gt;측근들 &quot;MB 스타일 그대로&quot;&lt;/B&gt;&lt;BR&gt;&lt;BR&gt;여당에서는 &quot;하나도 하기 힘든 과제를 한꺼번에 어쩌려고 저러느냐&quot;고 말하는 의원들이 많다. 반면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org/orgView.jsp?id=299&quot; name=focus_li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청와대&lt;/FONT&gt;&lt;/U&gt;&lt;/A&gt;와 측근들은 &quot;본래 일하는 스타일&quot;이라고 말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quot;내년 지방선거가 지나면 정권의 추동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그전에 중요 과제를 모두 돌파하겠다는 시기적인 문제도 있다&quot;고 했다.&lt;BR&gt;&lt;BR&gt;서울시 부시장 출신의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people/peopleView.jsp?id=2991&quot; name=focus_link&gt;&lt;U&gt;&lt;FONT color=#0000ff&gt;이춘식&lt;/FONT&gt;&lt;/U&gt;&lt;/A&gt; 의원은 &quot;대통령의 원래 일하는 스타일 그대로 하고 있는 것&quot;이라며 &quot;서울시장 때도 청계천은 소관인 제2부시장에게, 교통은 교통전문가한테 맡기고, 인사는 제1부시장에게 맡겼다. 청계천과 교통체제 개편 등을 한꺼번에 추진할 때 '저러다 서울시 말아먹겠다'고들 했지만 결국 다 성공하지 않았느냐&quot;고 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온몸으로 부딪쳐라'에서 이런 용인술에 대해 &quot;일을 맡기려면 전폭적으로 맡겨야 한다. 의심하면 안 된다. &lt;FONT color=#e31600&gt;신뢰하고 신뢰하고 또 신뢰하라&quot;고 했다.&lt;/FONT&gt; 한 측근 출신 의원은 &quot;대신 결과에 대한 평가도 엄격하다. 실적을 내는 만큼 평가하지만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바로 일에서 배제한다&quot;고 했다. &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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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론] 21세기 한·미 전략동맹 청사진 작성법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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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목고</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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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5T17:35:03Z</updated>
	    <published>2009-11-25T17:35:0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9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3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9px; COLOR: #000000; LINE-HEIGHT: 30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시론] 21세기 한·미 전략동맹 청사진 작성법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중앙일보]&amp;nbsp; 2009.11.25 01:58 입력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한·미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짧은 방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공통 관심사에서 기대 이상의 결실을 거두었다. 특히 최대 현안인 북핵 문제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이 제의한 ‘그랜드 바긴’에 대한 항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12월 방북 일정을 공개함으로써 양국 간 긴밀한 대북 공조를 과시했다. 또 ‘2+2 회담’(외무·국방장관 연석회의)을 내년에 처음 열기로 하는 등 지난 6월 워싱턴 정상회담 때 합의한 한·미동맹 공동 비전(Joint Vision)을 구체화하기 위한 모멘텀도 확보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이제 남은 과제는 과연 한·미 간의 미래 동맹비전이 추구하는 ‘21세기 전략동맹’의 얼개를 어떻게 그릴 것이냐 하는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한국의 국익을 전제로 할 때 큰 틀에서 보면 세 가지 주요 현안이 떠오른다. 우선 발효된 지 55년이 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에 관한 것이다. ‘공동 비전’이 상징적으로 추구하는 목표가 한국이 한국 방위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 미국은 지원자적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무엇보다 조약의 불평등성이나 종속성부터 고쳐야 한다고 본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문제가 되는 조항은 방위조약 4조다. 사실상 미국이 한국 영토에 자국군을 주둔시키는 권리(駐兵權)만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주권국가인 한국의 주체적 결정권을 무색하게 하는 이 조항은 수정할 필요가 있다. 1960년에 체결된 미·일신안보조약은 이런 점을 보완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또한 “한반도 유사시 헌법적 절차에 따라 (미국이) 지원한다”고 교과서적으로 되어 있는 제3조도 나토식(Formula)인 “즉각적인 군사지원”으로 바꿔야 한다. 이는 북한·중국 간의 동맹조약인 조·중상호원조조약의 내용(“지체 없이 군사적 지원을 한다”)에 비추어 보더라도 타당하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전략적 유연성’도 현안 중의 하나다. 이는 미국의 글로벌 방위태세재편(GPR)에 따라 해외주둔 미군을 신속기동대응군 형태로 분쟁지역에 투입함으로써 작전 범위를 유연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우려되는 것은 양안 사태 유사시에 한국이 발진기지 역할로 해외 분쟁에 휘말리는 상황을 상정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다고 할 수 없으나 안보라는 것은 0.1%의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혹자는 그 같은 것은 기회비용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한다지만 우리로서는 피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피하는 것이 상지상책인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해결 방안은 1960년 1월 ‘분쟁지역 개입 자제’를 밝힌 아이젠하워-기시 공동성명 같은 방식을 따르거나, 미·일안보조약 부속 교환공문 형식으로 사전협의체제(consultation arrangements)를 도입해 사전 협의가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해 놓는 것이다. 물론 2006년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한국 국민의 의사에 반하여 주한미군을 분쟁지역에 파병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으나, 정상급 수준에서의 공약이 바람직함은 물론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세 번째 현안은 북·미관계 진전에 따른 유엔군사령부 위상이다. 최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북·미관계 정상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비핵화의 반대급부로 거론하고 있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유엔군사령부가 해체될 경우 유엔군후방사령부(UNRC)를 통한 일본의 주일미군 지원 중단 문제를 어떻게 보완할지, 군사분계선(MDL)은 여하히 중립적으로 관리할지 등이 핵심과제가 된다. 평화협정이 산고 끝에 나온다고 해도 역내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유럽에서와 같은 다자협력안보체제가 아태지역에서도 조성돼야 함은 물론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김경수 명지대 교수·국제정치학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16px;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한반도의 군비통제는 포괄적 접근 방법에 의해 실현 가능한 분야 부터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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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목고</name>
	    </author>
	    <updated>2009-11-24T11:34:15Z</updated>
	    <published>2009-11-24T11:34:1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justify&gt;(런던=연합뉴스) 이성한 특파원&lt;BR&gt;&amp;nbsp;&lt;BR&gt;&amp;nbsp; 한반도의 군비통제는 포괄적 접근 방법에 의해 실현 가능한 분야를 찾아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영국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전광호(42) 교수(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는 23일 오후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반도의 군축´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그는 &quot;군을 최우선시 하는 북한 선군정치가 한반도 군비통제 및 군축에 관한 논의를 근본적으로 어렵게 만든다&quot;면서 &quot;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의 군비통제는 시급한 사안중의 하나&quot;라고 말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전 교수는 &quot;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한반도 군비통제는 포괄적 접근 방법에 의해 실현 가능한 분야를 찾아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외부적인 조건으로 남북한 및 동북아 국가간 신뢰구축조치와 평화레짐의 균형적인 발전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quot;고 지적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전 교수는 실현 가능한 분야의 하나로 남북한 동시 오타와협약(대인지뢰금지협약) 가입을 제안해 참석자들 사이에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선전적이고 소극적인 자세에 대해 우려를 던지면서도 직접적인 병력이나 무기의 감축이 아닌 지뢰 제거 등을 통한 비교적 낮은 단계에서의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들이 한반도 군비통제 논의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이들은 또한 한반도 문제가 남북한 당사자간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6자회담의 재개와 같은 국제 평화공동체 구축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케임브리지대 동아시아학과 존 스벤슨 라이트 교수는 &quot;한반도에서의 군비통제는 실현가능성 보다는 당위성에 더욱 무게를 두어야 하며 그런 측면에서 국제사회의 보다 더 능동적인 자세가 절실하다&quot;고 말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전 교수는 군사 전략 및 안보 분야 전문가로 벨기에 루뱅대학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런던대 킹스칼리지의 안보학과(Defence Studies Department)교수를 맡고있으며 영국 국방대학교(Defence Academy of the UK)에서 각국의 장교들에게 군사전략, 국제정치 등을 강의하고 있다.&lt;BR&gt;&lt;BR&gt;&amp;nbsp;&amp;nbsp; 전 교수는 지난 6월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드물게 미국의 마르퀴즈 후즈후(Marquis Who´s Who), 미국 인명정보기관인 ABI(American Bibliographical Institute),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인 IBC (International Bibliographical Centre) 2009년판에 동시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lt;BR&gt;&lt;BR&gt;&lt;A href=&quot;mailto:ofcourse@yna.co.kr&quot;&gt;&lt;U&gt;&lt;FONT color=#0000ff&gt;ofcourse@yna.co.kr&lt;/FONT&gt;&lt;/U&gt;&lt;/A&gt;&lt;BR&gt;&lt;SPAN class=date&gt;2009/11/24&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2012년 12월21일 종말? 정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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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chumakjung.12782248</id>
	    <author>
		    <name>이목고</name>
	    </author>
	    <updated>2009-11-22T09:05:04Z</updated>
	    <published>2009-11-22T09:05:0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gt;2012년 12월21일 종말? 정말?&lt;/P&gt;
&lt;P class=바탕글&gt;영화 ‘2012’ 개봉 앞두고 종말론 확산 … 주역으로 보면 각성 촉구 ‘터닝 포인트’ &lt;/P&gt;
&lt;P class=바탕글&gt;장옥경 명리학연구가·해피올메이트 소장 (&lt;A href=&quot;http://blog.daum.net/writerjan&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blog.daum.net/writerjan&lt;/A&gt;)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영화 ‘2012’ 개봉을 앞두고 ‘2012년 지구 종말론’이 신종플루 최고 위기단계 격상과 맞물려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선생님, 2012년 12월21일에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10년 후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lt;/P&gt;
&lt;P class=바탕글&gt;“신종플루는 대재앙의 서막이 아닐까요? 발생한 지 한 달도 안 돼 전 세계로 퍼졌잖아요.” &lt;/P&gt;
&lt;P class=바탕글&gt;‘10년 후 나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던 중학교의 한 교실은 종말론 얘기로 후끈 달아올랐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성경에도 선과 악의 최후 대결이 예언돼 있어요. 신종플루의 전염력과 조류독감의 치사율을 가진 바이러스가 나오면 세계 인구의 절반이 한순간에 사라질 거예요.”&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영화 ‘2012’ 개봉을 앞두고 사이버 상에서 시작된 ‘2012년 지구 종말론’이 신종플루 최고 위기단계 격상과 맞물려 일파만파 퍼져가고 있다. 지구 종말론이 나온 근거는 크게 네 가지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 근거가 모두 2012년 지구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첫 번째 근거는 기원전 3114년 마야인들이 만든 달력으로, 이 달력이 2012년 12월21일까지밖에 안 만들어져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역경(易經)을 연구해온 미국 철학자 테렌스 매케나의 역경분석 그래프인 타임 웨이브로, 이것이 2012년 12월21일에 제로 점을 찍고 인류 역사의 존재를 부정했다는 것.&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세 번째는 400년간 로마에 숨겨져 있다가 발견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로, 지구 종말이 지금까지 알려진 1999년이 아닌 2012년으로 기술돼 있다는 것. 네 번째는 ‘바이블 코드’의 저자 마이클 드로스닌의 성경 암호 해독설로, 하나님이 지구를 2012년 멸망시킨다고 증언하고 있다는 것 등이다. 그 밖에 각종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미국 뉴욕의 월가 컴퓨터 프로그램 ‘웹봇’이 2012년에 종료된다는 설도 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마야인 달력·매케나 등 공통 예언&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명리학을 비롯한 역경을 공부한 필자는 이 가운데 매케나의 역경분석 그래프에 나타난 2012년 종말론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주역이라고도 불리는 역경은 만물이 나고 죽는 것에 관한 질서를 기호로 설명한다. 64개 상징기호를 통해 우주 변화의 진리를 포괄하는 구조다. 한자의 한 일자처럼 죽 그은 선인 양효(-)와 가운데가 끊어진 모양을 한 음효(--) 두 가지가 6개씩 모여 64괘를 구성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매케나는 6개의 효를 나타내는 줄, 그리고 효의 64개 괘들이 64번 반복되는 4096개 변화율을 수리과학으로 분석해 시간의 흐름을 형상화한 프랙털(부분이 전체의 패턴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 함수를 고안하고 이를 ‘타임 웨이브’라고 지칭했다. 매케나는 타임 웨이브가 4000년에 걸친 인류 역사의 변동 폭과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타임 웨이브의 곡선이 상승한 시기에는 영웅이 등장하거나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으며 하강한 시기에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놀랍게도 2012년 12월21일 이 하강곡선이 제로 점을 찍는다는 것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계속)&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그렇다면 서양 역경 연구가가 떠들썩하게 지구 종말론을 연구하는 동안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많은 동양 역경 연구가들은 이를 몰랐을까.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주역 대가들을 인터뷰해보니 그들 대부분이 “몰랐다”고 대답했다. 내친김에 역경으로 본 2012년의 괘상을 물으니 한 학자는 “‘천풍구’가 이효 동(動)을 해서 세계의 멸망이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자는 “2012년의 괘상이 ‘지천태’로 오히려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고 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지천태는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어, 하늘의 마음은 땅을 살피기 위해 내려와 있고 땅의 마음은 하늘을 돕기 위해 위로 올라간 형상의 괘다. 같은 해에 대해 전혀 다른 괘상이 나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당연한 일이다. 역경 체계 자체가 심오해 학자마다 다르게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2차 세계대전과 2001년 미국 9·11테러 발발 날짜 등을 유사하게 맞췄다는 이유만으로 매케나 가설을 신봉하는 것은 위험하다. 게다가 그의 이론엔 결정적 하자가 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매케나 그래프의 결정적 하자&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역경에는 ‘삼의(三義)’라는 일관된 이치가 있다. 삼의는 변역(變易), 불역(不易), 이간(易簡) 세 가지로 표현된다. 첫 번째 이치인 ‘변역’은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는 원리다. 해와 달, 사시, 더위와 추위, 밤낮이 늘 교차한다. 모든 존재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끝없이 반복한다. 변역은 역경의 핵심 이치다. 두 번째 이치인 ‘불역’은 바뀌는 것이 없다는 뜻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새벽과 저녁은 같은 어둠이지만, 새벽에는 일하러 밖으로 나가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와 쉰다. 따라서 모든 것이 변하지만 본질적으로 보면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바뀌는 것 역시 하나도 없다고 본다. 세 번째 이치인 ‘이간’은 변역이 불역이고, 불역이 변역이라는 의미다. 복잡하게 보이는 그 길이 바로 변하지 않는 하나의 길이다. 삼의를 통해 보면 천국이 바로 지옥이 되고, 지옥이 바로 천국이 된다. 음양은 서로 반발하고 의존하며 천지의 법칙을 형성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또한 역경의 64괘 배열에서 마지막 괘의 이름은 ‘미제(未濟)’다. 글자 그대로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제’괘 바로 앞에 있는 괘의 이름은 ‘기제(旣濟)’다. 이는 ‘완성됐다’는 뜻으로, 두 괘만 보더라도 역경에 내재된 ‘무한한 순환원리’를 읽을 수 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재앙 시한폭탄은 째깍거릴 수도&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므로 2012년 12월21일에 만물이 끝난다는 매케나의 ‘타임 웨이브 제로’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끝이 끝으로만 끝나는 불식(不息)은 역경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임 웨이브 제로라니! 이 점에 대해 매케나에게 묻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는 2000년 세상을 떠났다. 매케나의 타임 웨이브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들어 패턴의 반복이 잦아지는 양상을 보였고 이는 기원전 500년 무렵보다 64배 빠른 속도라고 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2010년에 이르러서는 그 속도가 64배 더 빨라지고 2012년이 되면 또다시 64배 빨라진다. 또 2012년을 지나면서는 변화 간격이 1개월에서 1주를 거쳐 1일 단위로 압축되며 대단히 빠른 속도로 0을 향해 움직인다고 한다. 필자는 매케나가 예견한 대로 2012년 12월21일 지구에 종말이 온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2012년 12월21일은 지구 종말일이 아니라, 가속화한 세계에 각성을 불러올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호조로 전환되는 급격한 변화 시점)가 아닐까 생각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다만 매케나의 지적대로 재앙의 시한폭탄이 그 시점에 째깍거릴 수는 있다. 인간의 욕심이 커지고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지구 온난화, 핵무기 개발 등이 가속화되며, 자연재해와 치명적인 질병들이 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의 진보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능화된 로봇이 노동을 하고 인류는 또 다른 차원의 삶을 사는 시점이 2012년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인류 멸망을 그린 영화 ‘2012’를 만들고도 “나는 종말론을 믿지 않는다. 2012년 후에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마야력이란?&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20일을 한 달로 계산 … 13박툰 마지막 날이 12월21일&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마야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한 것으로 알려진 우주력 계산법을 갖췄다. 마야는 1500여 년 전 멕시코 유카탄 반도, 과테말라, 온두라스와 벨리즈의 일부 오지에서 출현한 문명으로 300~900년까지 황금기를 누렸으나 9세기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마야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정교한 것으로 알려진 우주력 계산법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 계산법은 25세기 이상 단 하루도 틀리지 않았을 만큼 지구와 우주의 시간을 정확히 셌다고 한다.&lt;/P&gt;
&lt;P class=바탕글&gt;마야력은 20일을 한 달로 1년이 13개월인 260일 셈법을 따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인간의 임신 기간인 9개월을 토대로 한다. 마야 철학과 천문학 연구가인 존 메이어 젠킨스에 따르면, 배아가 생겨나 개체로 발전하는 260일 주기는 원초적 생명의 주기이자, 인생의 주요 갈림길을 형성하는 패턴이 된다는 것. 마야인은 장기 산법이라는 계시 체계를 고안했는데, 이는 태양력으로 394.26년에 해당하는 14만4000일을 1박툰으로 해 13박툰인 187만2000일(51만2536년)에 끝을 맺는다. 장기 산법이 시작되는 0일은 기원전 3113년 8월12일로, 이 시기는 이집트 최초의 상형문자가 출현한 때와 비슷하다. 그런데 장기 산법이 끝나는 13박툰의 마지막 날이 바로 2012년 12월21일 동지다.&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래서 이날에 주목하는 것인데, 공교롭게도 13박툰의 대주기가 마감되는 이날 태양이 지구의 적도와 일직선으로 정렬하는 매우 희귀한 우주 현상이 예고되고 있어 두 시점의 묘한 일치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태양계 행성이 일직선으로 정렬하는 사건이 지구상에선 존재한 적 없기에 ‘인류 문명의 종말이 도래한다’는 비관적인 예측이 나오고 있는 것.&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런데 젠킨스는 마야력이 2012년을 종말의 해로 가리키고 있다는 것은 오해라면서, 그 오해는 13박툰 주기의 ‘마지막 날’이라는 용어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마야의 날짜 계산법은 주기로 구분될 뿐 한 주기의 마지막이 끝나면 다음 주기로 연결되는 게 당연하다는 것. 자정은 하루의 끝이지만, 그날 자정에 시간이 멈추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논리다.&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사실 지구 종말에 대한 예언은 끊임없이 있어 왔다. 새 1000년을 앞두고 1999년 대대적인 종말론이 있었으며, 2001년에도 중국과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아마겟돈 전쟁이 시작되고 지상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예언이 있었다.&lt;/P&gt;
&lt;P class=바탕글&gt;2003년 늦봄과 초여름 사이 3657년 주기를 가진 혜성의 꼬리 부분이 지구 옆을 지나면서 지구의 자전이 며칠간 멈추고 대재앙이 닥친다는 예언이 있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2004년 9월29일엔 소행성 토타티스가 지구와 충동할 정도로 가깝게 접근하고 그리스도가 재림하리라는 예언이 있었다. 2006, 2007, 2008년에도 비슷한 예언이 뒤따랐고 이번의 떠들썩한 2012년 종말론 이후에도 2014, 2017, 2020, 2028, 2038, 2047, 2076년 종말 예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예언은 저마다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운다. 종말론이 나올 때마다 호들갑을 떨면서 일희일비하기엔 우리에게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피곤한 일 아닌가.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 베르린 장벽 붕괴와 통일독일의 교훈(서울 산업대학교 신문 인터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chumakjung/12782247"/>
		<id>tag:blog.daum.net,2009:chumakjung.12782247</id>
	    <author>
		    <name>이목고</name>
	    </author>
	    <updated>2009-11-21T11:09:44Z</updated>
	    <published>2009-11-21T11:09:4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서울 산업대학교 신문 인터뷰&lt;/SPAN&gt; (2009.11.23)&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Q1. 독일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다음 해 10월 3일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통일을 이뤘습니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로써는 너무 부럽기도 하네요. 독일이 통일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에피소드 등 이야기 해주세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 독일 통일은 처음부터 유럽이라는 큰 틀 속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유럽 각국이 독일 통일에 우호적이지 않고서는 통일을 기대할 수 없는 일 이었습니다. 국제적 배경요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소련의 ‘고르바쵸프’의 개혁 개방정책과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폐기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영향으로 동구권 국가들이 민주화를 추진하게 되었고 동독도 같은 행보를 걷게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배경에는 미국의 국제정치적 역할이 또한 컷지요.&amp;nbsp; 두 번째로는 동독의 민주혁명과 조속한 통일의 결정을 들 수 있습니다. 동독 주민들은 서독으로의 탈출과 반정부 시위를 통해서 동독 정부를 압박했으며,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서 조속한 통일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독일통일의 실질적인 원동력은 동독 주민들에게서 나왔지요. 그들은 목숨을 걸고 독재에 항거하고 자유를 쟁취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동서독간의 끊임없는 인적, 물적, 사회 경제적, 문화적 교류덕분입니다. 분단 40년간 동서독은 정치적으로는 분단되어 있었으나, 경제 사회적으로는 한번도 교류가 끊어진 일이 없었습니다. 동서독은 동족 간에 전쟁을 치른 경험도 없고 상대방을 중상모략 해 본 일도 없었습니다. 동서독은 기본조약을 통하여 서로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고 주변상황이 어려울 때나 기회 있을 때마다 정상들이 만나 진지하게 대화하며 모든 분야에 걸쳐 교류와 협력을 지속해 왔습니다. 네 번째는 흡수통일로서 서독의 월등한 경제적 우월성이 그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다섯 번째로는 오랜 독일 연방국가적 전통을 들 수 있습니다. 독일은 역사적으로 지방분권국가였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연방정부에 가입하거나 탈퇴해왔던 경험을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서독 기본법에서도 동독지역의 연방가입이 가능하도록 그 길을 열어두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동독 주민들이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연방에 가입하기로 결정 한 것은 독일 역사에서 볼 때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며 자존심 상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Q2. 통일 후 독일에선 어떤 긍정적 효과가 일어났나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 가장 크고 핵심적인 것으로는 통일로 인하여 막대했던 군비(軍備)에 대한 부담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동서독 양측에서 쏟아 부었던 군사비가 대폭적으로 줄어들었고 이것을 다른 긴급한 분야에 쓸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서독의 발달된 기술과 동독의 노동력이 만나면서 경제적으로 큰 효과를 창출했습니다. 통일로 경제규모는 더 커졌고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무엇보다 큰 효과는 국민이 통합되었다 하는 점입니다. 그동안 분단되어 있었고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다르게 살아가다가 하나의 게르만 민족으로서 본질적인 정체성을 찾았습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독일국민들에게 국민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켜 준 대회였습니다. 이 월드컵에서 동서독 통일 축구팀은 우승을 하면서 그 들은 ‘우리(Wir)’라고 외쳤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Q3. 독일의 통일은 주변국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 프랑스와 영국이 많은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독일이 통일되면 또다시 나찌 독일처럼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아예 국가가 양분되어 있어야 안심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미국은 이를 강력히 밀어 부쳣고 통일 후 지금까지 그러한 징후는 없었고 오히려 유럽연합(EU) 추진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Q4.&amp;nbsp; 통일 후 긍정적인 효과 말고도 서독과 동독의 경제･문화 등에 걸쳐 많은 문제가 들어났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떠한 문제가 나타났고 이유는 무엇인가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 우선 가장 큰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첫 번째지요. 독일통일은 초기에 맛보았던 행복감이 채 식기도 전에 통일된 양 지역은 불안과 걱정, 그리고 괴로움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통일 독일이 이제는 동서독 지역간의 정신적, 사회적 분열로 갈등을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통일된 지 수년이 지나도록 내적 통일은 요원하기만 하였는데 그 핵심은 양측 국민들의 상반된 인식 차이였습니다. 동독 사람들은 서독의 40% 수준에 불과한 낮은 임금과 서독 자본에 의한 식민지화를 원망하였고 서독 사람들은 급증하는 세금과 경제침체, 그리고 불황을 못 견디어 했습니다. 두 번째는 동서독인들의 심리적 갈등을 들 수 있는데요 통일된 독일이 갖고 있는 문제 중에서 경제적 격차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인간적인 거리감 이었습니다. 바로 오시스(ossis)와 베시스(wessis) 문제인데요, ‘시골뜨기’ 또는 ‘촌놈’라는 경멸의 의미를 가진 오시스 또는 초니스(zonis)라는 말은&amp;nbsp; 서독지역 인들이 열심이 이루어낸 부를 게으름 피우는 동독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데에 대한 반감이 깔려있고 ‘졸부’를 의미하는 베시스라는 말은 동독 주민들이 자신들은 비스마르크 시대와 바이마르공화국 시대에 베르린을 중심으로 유럽을 주도했던 문화민족의 정통 후계자임을 자처하는 한편, 서독 지역 주민들은 자본주의 경제 덕택으로 세련되고 열심히 일을 하기는 하지만 이기적이고 신뢰성 없는 사람들이라는 경멸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동독지역 주민들이 과거 동독시절의 생활을 경시하면서 서독지역 주민들에 대해 갖는 ‘2등시민’이란 열등감(의식)으로서 사회 문화적 박탈감입니다.&amp;nbsp; 이렇듯 통일 후 사회적 이질감으로 나타난 문제점은 범죄의 증가, 극우세력의 대두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핵심은 두말할 것도 없이 경제력 격차와 시장경제체제의 적응 단계에서 오는 과정적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Q5.&amp;nbsp;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 많은 정책적 노력을 통해 동독지역 경제성장과 사회적 박탈감을 상당부분 해소 하였다고 봅니다. 통일 20여년이 지난 지금 신세대로 대체된 양 지역 국민들은 거의 그러한 문제는 이제 과거 이야기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갈수록 그러한 문제는 그냥 교훈으로 자리매김 하겠지요. 통독 교훈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에 따라서는 부정적 영향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헤겔의 역사발전 법칙이 있지 않습니까. 정-반-합으로 역사는 발전하는 겁니다. 긍정적으로 보아야지요.&amp;nbsp;&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Q6. 이런 독일의 통일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통일을 위해 배워야 할 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 첫째, 통일은 때가되면 어느 순간엔가 갑자기 올 수 있는 문제로서 미리미리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중의 일로 미루어 두어서도 않됩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필요한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는 평화적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흡수통일은 전쟁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며 통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개념입니다. 평화 우선이 되어야 하며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4강에 의해 둘러싸여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많은 굴곡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어엿한 중견 강국으로서 위상을 확보하였습니다. 따라서 외세의 입김이나 강요 없이 우리 주도로 국가가치 구현을 위한 통일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네 번째는 국제적으로 주변국들의 지지와 협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독일 통일과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Q7. 독일 통일여건과 우리나라 통일여건의 차이를 비교해 주신다면?&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 독일의 통일은 우리와 여건이 3가지가 차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분단 이전의 역사는 서로 공유되었습니다. 교과서의 내용도 같았고 역사를 다루는 다른 분야에서도 이 점은 같았습니다. 두 번째는 상호 교류협력을 들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만 분리되어 있었지 경제, 사회, 문화, 및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했었습니다. 세 번째는 서로 상호간 동족간의 전쟁을 하지 않았지요. 알다시피 2차대전 후 소련에 의해서 점령되고 분단되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우리와 북한은 이 세가지점에서 차이가 나고 그것이 핵심적인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교류 협력이 중요하지요. 일부에서는 퍼주기라고 지난 정권의 정책들을 비판하고 있는데 엊그제 국회에서 국무총리를 상대로 현 정부의 ‘그랜드 바겐’ 정책이 과거의 햇볕정책과 무엇이 다르냐고 물으니 총리께서 ‘다른 것이 없다’고 답하였습니다. 결국 퍼주기다, 일괄타결이다, 뭐라 말하던 그것은 한마디로 대북정책은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류협력 정책이지요. 일부 흡수통일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무모한 주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Q8. 독일에 있는 NATO 스쿨에서 교육을 받으신 것으로 아는데 소개 좀 해 주시죠. 또한 국가안보정책, 군비통제 전문가로서 책도 여러 권 쓰셨는데 북한 핵문제 전망과 대책방향에 대해서 고견 한 말씀 부탁합니다.&amp;nbsp;&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 네 나토스쿨에 두 번 다녀왔습니다. 유럽 군비통제 고급과정과 핵사찰과정을 다녀왔습니다. 나토스쿨은 원래 소련을 중심으로 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지역 안보동맹 기구였는데 소련이 해체된 후로는 유럽의 공동안보체제 구축을 위한 협력기구로 성격이 변하였습니다. 독일의 작은 시골마을 ‘오버아마가우(oberamagau)’에 있었는데요, 이곳에서 유럽 국가들의 고위급 군 장교들이 모여 교육을 받고 상호 교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유엔 유럽본부의 “전면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에서 ‘국제사찰관’ 교육과정도 이수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제가 국방부에서 핵정책 담당으로서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정책을 입안한 실무자였습니다. 저의 기획안이 국방부 안으로 채택되었고 당시 노태우 대통령께 보고 되었지요. ‘한반도 비핵화 정책’이 바로 그겁니다.&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 북한 핵문제는 쉽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김일성이 죽기 전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이구나’하며 감탄하였다는 절묘한 수이지요. 김일성은 이를 통한 조기 남북화해 협력 정책을 추구한데 반하여 김정일은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노선 즉 무모한 벼랑 끝 전술을 추구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김정일은 결국 세월만 허비한 셈인데 20여 년 전보다 모든 조건이 더욱 악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쫒기는 입장이 되었지요. 국제사회가 김정일의 건강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결국 김정일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안전과 정권의 보장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체제안전 확보입니다. 핵 공갈로 그것을 다 이루기에는 너무 무모하고 시간도 없습니다. 시간은 우리 편인데 안타까운 것은 북한 동포들의 굶주림과 고통, 그리고 실향민들과 탈북자들의 절박한 소망이지요.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포용정책을 해야 되고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급변사태 등 유사시 대비책을 동시에 강구해야 하고요. 저는 북한 핵문제가 시간은 걸리지만 긍정적으로 해결 되어 갈 것 이라고,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부강해지고 북한은 허약 해 집니다. 그랜드 바겐을 할 경우 북한은 20년 내에 굶주림을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나토스쿨 소재지: 독일 오버아마가우의 기적)&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 오버아마가우는 독일의 아주 작은 시골마을 입니다. 처음에 갔을 때는 몰랐읍니다. 왠 시골 마을에 호텔들이 그렇게 많은지, 그리고 웬 상점들(특히 목공예 상점들, 아예 목공예 학교도 있었습니다)이 많은지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방문 때에는 이곳에 얽힌 사연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amp;nbsp; 14세기 중엽 흑사병이 발생해서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얼마나 흑사병이 심하였는지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흑사병으로 죽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염병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347년 처음으로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더니 흑사병은 약 300여년간 주기적으로 발생하였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그 때 독일 남쪽 바바리아 지방에 오버아마가우(Oberamagau)라는 외딴 마을에서 이 마을에 살던 한 사람이 이웃마을에 갔다 흑사병에 감염되어 돌아왔습니다. 흑사병은 삽시간에 전체 마을로 번졌습니다. 아무런 대책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무덤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저희들을 죽음의 흑사병에서 구원해 주시면 앞으로 10년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연극을 만들어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그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기도는 응답이 있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 이후 단 한 명도 흑사병으로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1634년 오순절에 첫 연극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후 350년이 지난 오늘까지 약속한대로 매 10년마다 그리스도의 수난극(Passion Play)이란 이름의 연극을 공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더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곳에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이&amp;nbsp; 몰려드는지 매년 공연을 연중으로 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인구 5천 명 정도 마을인데 최근 연극에서는 5천명 주민 중에 절반 정도가 연극에 배우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1,855명이 배우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2002년 부터는 아침 9시에 시작하여 점심시간을 빼고 저녁 6시까지 하루종일 연극이 계속됩니다. 다섯 달 동안 110번 공연하는데 1년 전에 표가 매진되고 있습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그 마을은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농사도 되지 않는 지역이었습니다. 가파른 지형 때문에 농사도 짓지 못하는 작은 마을입니다. 이 마을의 입장료와 숙박비 수입이 8천만 달러가 넘었습니다. 960억원입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 사람 일년 수입이 2천만원 가량 되고 있습니다. 4식구면 8천만원입니다. 농사나 짓고 공예품이나 깎아 팔았다면 그 마을은 이름도 없는 시골동네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마을은 기독교 신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성지가 되었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6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6px; COLOR: #000000; LINE-HEIGHT: 26px;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3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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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EMS 발송</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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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목고</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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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21T11:02:33Z</updated>
	    <published>2009-11-21T11:02:3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인한!&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국제특급우편&amp;nbsp; EMS 가 11월 21일 01시49분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고 문자연락이 왔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t&quot;&gt;소화물 번호는&amp;nbsp; EM 955560724 KR 이란다.&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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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지유도무기체계 발전방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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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이목고</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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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5T15:18:01Z</updated>
	    <published>2009-11-15T15:18:01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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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DIV id=imghtml&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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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align=middle&gt;&lt;A href=&quot;http://www.moazine.com/user/sviewer.asp?sid=21&amp;articleid=u34dD04V33t4EdcDm44FBaO0&quot; target=_blank&gt;&lt;FONT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0000ff; LINE-HEIGHT: 16px&quot;&gt;&lt;U&gt;&lt;B&gt;국방과기술&lt;/B&gt; 국방과 기술 2006년 1월호&lt;/U&gt;&lt;/A&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middle&gt;[ &lt;B&gt;대지유도무기체계 발전 방향 / 李浩逸 외&lt;/B&gt; ]&lt;BR&gt;&lt;BR&gt;&lt;/TD&gt;&lt;/TR&gt;
&lt;TR&gt;
&lt;TD align=middle&gt;&lt;A href=&quot;http://www.moazine.com/user/sviewer.asp?sid=21&amp;articleid=u34dD04V33t4EdcDm44FBaO0&quot; target=_blank&gt;&lt;IMG height=267 src=&quot;http://image.moazine.com/Acover/000072/0000066854.jpg&quot; width=207 border=0&gt;&lt;/A&gt; &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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