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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상보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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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2-05T10:10:37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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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닐라 8차선 도로가 마비됐다 … 한류 때문에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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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2-05T10:10:37Z</updated>
	    <published>2009-12-05T10:10:3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40 border=0&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05.uf.daum.net/image/1903D21C4B19B29A898F1F&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4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4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 
&lt;P&gt;▲ 한국-필리핀 수교 60년 기념 콘서트가 지난달 27일 필리핀 국립극장에서 열렸다. 한국 그룹 샤이니를 보려는 팬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다. 주변 8차선 도로가 마비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lt;/P&gt;
&lt;P&gt;[필리핀 한인회 제공]&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TBODY&gt;&lt;/TBODY&gt;&lt;/P&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P&gt;
&lt;P&gt;#장면 1. 필리핀의 국민가수로 불리며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프레디 아귈라. 그는 28개 국어로 번안된 800만 장의 앨범을 팔면서 최고의 팝 아티스트로 추앙 받았다. 전설의 히트곡 ‘아낙’은 한국에서도 ‘아들아’란 곡으로 번안돼 음반 시장을 강타했다. 지난달 27일 밤 마닐라 시내의 한 뮤직 바에서 아귈라와 마주쳤다. 그는 스무 평 남짓한 그 바의 운영자라고 했다.“주말이면 가끔 카페 무대에도 오른다. 중·장년 아시아 관광객이 많이 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날도 그는 기타를 둘러메고 무대에 섰다. 입장료는 250 페소(약 6000원). 두 시간 가까이 공연이 이어졌지만, 관객은 스무 명을 채 못 넘겼다.&lt;BR&gt;&lt;BR&gt;#장면 2. 같은 날 오후 마닐라 중심가에 위치한 필리핀 국립극장. 주변 8차선 도로가 마비됐다. ‘한국-필리핀 수교 60주년 기념 콘서트’에 몰린 인파 때문이다. 아리랑TV와 필리핀 NBN 방송사가 공동 중계한 행사(5일 오후 4시 방송)는 한국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등장으로 절정에 달했다. 인터넷으로 공개 추첨한 티켓은 서버 다운을 거듭하며 이틀 만에 동이 났다. 이른 새벽부터 “표를 얻을 수 없느냐”며 아우성치는 팬들이 극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SHINEE’라고 새겨진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100여 명의 현지 팬클럽은 풍선을 흔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객석에선 “안녕하세요” “오빠” 등 어눌한 한국어 환호성이 들렸다.&lt;BR&gt;&lt;BR&gt;필리핀이 한국 대중문화에 열광하고 있다. 필리핀 언론 매체에서도 심심찮게 ‘hallyu(한류)’란 말이 흘러나온다. ‘천국의 계단’ 등 인기 한국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게 요즘 필리핀 방송가의 주된 트렌드다. 필리핀에서 활동하다 한국으로 무대를 옮긴 산다라 박(2NE1 멤버)을 시작으로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인기도 치솟았다. 현재 원더걸스(1위)·슈퍼주니어(3위)·샤이니(9위)는 필리핀 앨범차트 10위권을 장악했다. &lt;BR&gt;&lt;BR&gt;특히 올해는 한국과 필리핀이 수교한지 60년째 되는 해다. 두 나라의 60년사는 기막힌 문화의 역전극을 펼쳐내고 있다. 필리핀 국민가수 아귈라가 물러난 자리를 한국 아이돌 그룹 ‘샤이니’가 메우고 있는 풍경은 그 역전의 역사를 에둘러 보여준다.&lt;BR&gt;&lt;BR&gt;60년 전만 해도 필리핀은 한국에 원조를 하던 부국(富國)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에 7400여 명의 필리핀 군인들이 참전했다. 70년대엔 필리핀 정부가 한국의 똘똘한 학생들을 데려다 공부를 시켰다. 당시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경제력 2위를 달리던 필리핀은 아귈라 같은 대형 가수를 탄생시키며 문화적 파워도 과시했다.&lt;BR&gt;&lt;BR&gt;하지만 60년 세월은 양국의 ‘문화 파워’를 뒤바꾸어 놓았다. 27일 필리핀 국립극장 주변으로 몰려든 10대 팬들 가운데는 한국 음악을 따라 부르기 위해 한국어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곳곳에서 ‘필리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샤이니 짱’과 같은 한글 피켓이 눈에 띄었다.&lt;BR&gt;&lt;BR&gt;‘원더걸스’팬이라는 여고생 베르나데테(18)는 “코리안 팝이 너무 좋아서 대학 진로를 한국어과로 정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공연에서도 팬들이 한국어 가사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광경이 반복해서 펼쳐졌다. ‘샤이니’ 멤버 종현은 “처음 필리핀 무대에 올랐는데 관객들이 우리말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까지 똑같이 춰서 놀랐다”고 말했다.&lt;BR&gt;&lt;BR&gt;필리핀을 강타한 한류의 중심엔 영어로 제작된 우리 방송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필리핀에선 언어 장벽이 없는 영어 방송을 통해 우리 문화가 급속히 확산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현재 마닐라에서 국제방송인 아리랑TV를 시청하는 가구 수가 50만에 이른다. 최근엔 ‘아리랑TV 팬클럽’도 생겨났다. 특정 한류 스타가 아닌 방송 채널에 팬클럽이 생긴 건 해외에선 처음이다. 지난해 4월 출범해 비정기적으로 한국 드라마 등을 감상·분석하는 모임이다. 팬클럽 회장인 제시카(44)는 “필리핀도 한국과 비슷한 가족 중심의 문화여서 한국 대중문화가 낯설지 않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lt;BR&gt;&lt;/P&gt;
&lt;P&gt;&lt;BR&gt;&amp;nbsp;&lt;/P&gt;&lt;STRONG&gt;&lt;/STRONG&gt;
&lt;P&gt;&lt;STRONG&gt;“한국 드라마·음악 열풍에 한국어학원도 성황”&lt;BR&gt;필리핀 방송 인기 MC 한국인 그레이스 리&lt;/STRONG&gt;&lt;BR&gt;&lt;/P&gt;
&lt;TBODY&gt;&lt;/TBODY&gt;&lt;/P&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WORD-BREAK: break-all; PADDING-TOP: 0px&quot;&gt;&lt;!-- 기사 사진 시작--&gt;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align=right border=1&gt;
&lt;TBODY&gt;
&lt;TR&gt;
&lt;TD&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3.uf.daum.net/image/1967F91B4B19B26261E9C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25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25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필리핀 지상파 방송사 GMA TV 등에서 MC로 활약 중인 그레이스 리(27·사진·한국명 이경희). 그는 ‘한류’열풍이 불어닥친 필리핀 현지에서 또 다른 한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인기 방송인이다.&lt;BR&gt;&lt;BR&gt;그레이스는 열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 필리핀으로 이민 왔다. 우리말과 영어는 물론 현지어(타갈로그어)까지 완벽하게 구사한다. 현재 타칼로그어를 주로 사용하는 GMA TV와 영어 방송인 QTV·GMA 라디오 등에서 메인 MC로 뛰고 있다.&lt;BR&gt;&lt;BR&gt;그는 17년 필리핀 생활을 거치면서 ‘한류’의 힘을 실감했다고 했다. “맨 처음 마닐라에 왔던 1992년만 해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팽배했다”고 전했다. 때로 추한 모습을 보이곤 했던 한국인 관광객 때문이었다. &lt;BR&gt;&lt;BR&gt;그러나 ‘대장금’ 등 한국 드라마가 들어오면서 조금씩 한국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최근에 한국 드라마와 음악 열풍이 불면서 마닐라 시내에 한국어 학원이 성황을 이룰 정도입니다.” &lt;BR&gt;&lt;BR&gt;방송을 진행하면서도 한국인이란 사실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팬층도 더 두터워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와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팬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lt;BR&gt;&lt;BR&gt;그레이스는 “필리핀 방송사의 제안으로 한류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방송을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한류 스타를 직접 만나고, 한국 대중음악을 알리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필리핀판 한국 드라마에 출연해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lt;BR&gt;&lt;BR&gt;“필리핀에서 일하는 방송인으로서 한국인이기 때문에 주목을 더 받은 측면도 있어요. 한국 문화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죠.” &lt;BR&gt;&lt;BR&gt;[조인스닷컴 / 마닐라 글·사진=정강현 기자]&lt;/P&gt;
&lt;P&gt;&amp;nbsp;&lt;/P&gt;&lt;/TD&gt;&lt;/TR&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
	    </content>
	    	</entry>
    	<entry>
	    <title>'오직 일본에만 있는 것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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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證人</name>
	    </author>
	    <updated>2009-12-05T09:28:28Z</updated>
	    <published>2009-12-05T09:28:2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20 border=0&gt;
&lt;P&gt;◆&amp;nbsp;호주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라프가 '일본에만 있는 것들' 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독특한 모습들을 담은 사진들을 공개했다.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8.uf.daum.net/image/1144DE244B19A82341F81B&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전일본공수(ANA)의 피카츄 항공기&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20 border=0&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9.uf.daum.net/image/1344DE244B19A82343CED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
&lt;P&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키티 캐릭터 모양을 한 자동차 배기구&lt;/P&gt;
&lt;P&gt;&lt;/P&gt;&lt;/P&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20 border=0&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1.uf.daum.net/image/1244DE244B19A82342036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스모 복장으로 하는 스키점프 대회&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5.uf.daum.net/image/1444DE244B19A823446B6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일본의 한 유명디자이너가 디자인해 해외 토픽에도 소개된바있는 청바지&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9.uf.daum.net/image/1544DE244B19A82345AFD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4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오키나와의 한 절에서 키우는 합장하는 강아지 '코난'&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gt;&lt;/P&gt;
&lt;TBODY&gt;&lt;/TBODY&gt;&lt;/P&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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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탈북 여성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굵은 눈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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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證人</name>
	    </author>
	    <updated>2009-12-05T09:15:03Z</updated>
	    <published>2009-12-05T09:15:0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P&gt;4일 아침 신문들에 굵은 눈물 줄기를 선글라스 아래로 쏟아내며 흐느끼는 여인의 얼굴 사진이 크게 실렸다. 여인의 눈물은 쉼 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턱에 방울로 맺혀 있었다. 여인은 깊이 눌러쓴 모자와 큰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기자회견에 나와 북한의 처참한 인권상황을 증언한 탈북 여성이었다. &quot;중국으로 탈출해 한국 남자와 아들을 낳고 살다 2003년 4월 북한으로 끌려갔다. 보위부원들이 '한국 종자를 낳았다'며 벌을 세웠고, 하루 한 끼만, 그것도 죽을 줬다. 나는 먹지 않고 두 살 아들이 울 때 조금씩 먹이면서 아들을 살려야겠다는 각오로 버텼다.&quot; 다른 탈북 여성의 증언 때 회견장은 더욱 조용해졌다. &quot;2005년 8월 임신 7개월 때 중국에서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된 뒤 수용소에서 아들을 낳자 북한 관리자들이 '중국 아이를 낳았다'며 갓 태어난 아이를 엎어놓아 2시간 만에 질식사시켰다.&quot;&lt;BR&gt;&lt;BR&gt;3일 두 여인이 참석한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을 반(反)인도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려는 민간 조사위원회가 마련했다. 증언자들은 &quot;수용소에서 체계적인 고문과 구타를 당했고 여자들은 성적 수치와 폭행을 겪었다. 우리에게 가해졌던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한다&quot;고 말했다. 북한 권력을 고발하는 탄원서에는 북한 수용소의 모진 삶을 버텨낸 150명의 탈북자들이 서명했다.&lt;BR&gt;&lt;BR&gt;북한은 함남 요덕을 비롯한 6곳의 정치범 수용소에 15만4000여명을 가둬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북자들은 지난 몇년 한국·미국·유럽의 의회와 인권단체를 찾아다니며 북한 수용소에서 2차대전 때 나치 수용소보다 더한 고문과 강제노동, 성추행, 영아 살해가 자행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미국 피터슨연구소의 마커스 놀랜도 선임연구원이 중국 내 탈북자 1346명과 한국 내 탈북자 300명을 조사해 지난달 발표한 설문결과에서 탈북자의 55%가 &quot;북한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했다&quot;고 했다. &quot;신생아 살해를 경험했다&quot;는 응답자도 5%나 됐고, 30%는 1990년대 후반 북한 대기근 때 가족이 굶어 죽었다고 했다.&lt;BR&gt;&lt;BR&gt;우리는 북한 동포들의 비참한 삶을 너무도 많이 듣고 보았다. 그래서 어느새 그 끔찍하고 처참한 모습을 보고서도 감각이 무뎌졌고 이제는 체념한 채 외면하는 듯한 분위기까지 나타나고 있다. 북한 인권운동가 수전 숄티 여사는 &quot;훗날 역사는 북한 주민들이 고통받을 때 대한민국은 무엇을 했는지 물을 것&quot;이라고 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는 아무 대답도 할 것이 없다. 
&lt;P&gt;&amp;nbsp;&lt;/P&gt;
&lt;P&gt;[조선 社說 / 2009.12.05]&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1.uf.daum.net/image/1644CD244B19A5F13479F4&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3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3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amp;nbsp;&lt;/P&gt;&lt;/P&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
	    </content>
	    	</entry>
    	<entry>
	    <title>놀라울 정도로 무식한 大韓民國의 20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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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證人</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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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2-03T08:40:29Z</updated>
	    <published>2009-12-03T08:40:2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TOP: 5px&quot; vAlign=top width=18&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IMG src=&quot;http://www.chogabje.com/images/ball_news.gif&quot; align=absMiddle&gt;&lt;/SPAN&gt;&lt;/SPAN&gt;&lt;/TD&gt;
&lt;TD class=title2&gt;&lt;B&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유치(幼稚)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반미(反美)적이고, 좌파(左派)적이었다. &lt;/SPAN&gt;&lt;/SPAN&gt;&lt;/B&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중제목 끝--&gt;&lt;!-- 기사요약 시작--&gt;&lt;!-- 기사요약 끝--&gt;&lt;!-- 글쓴이 시작--&gt;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align=right&gt;&lt;FONT color=#0066cc&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金成昱&lt;/SPAN&gt;&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amp;nbsp;&amp;nbsp;&lt;/SPAN&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글쓴이 끝--&gt;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3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lt;IMG src=&quot;http://www.chogabje.com/images/bignews_line.gif&quot;&gt;&lt;/SPAN&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 소제목 시작--&gt;&lt;!-- 소제목 끝--&gt;&lt;!-- 기사내용 시작--&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WORD-BREAK: break-all; PADDING-TOP: 0px&quot;&gt;&lt;!-- 기사 사진 시작--&gt;&lt;!-- 기사 사진 끝--&gt;&lt;SPAN class=subArtcl id=articleBody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대한민국의 20대는 놀라울 정도로 무식(無識)하다. 지난 1년 전국 방방곡곡 최소 100여 곳의 군대, 교회, 기관에서 청년들을 강연하며 발견한 사실은 이렇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FONT color=navy&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1. 상당수가 미국산 쇠고기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산 쇠고기 먹고 광우병 걸린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물론 모른다.&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2. 상당수가 촛불집회가 폭동으로 전개돼왔다는 사실을 모른다. 만일 시위대의 폭력이 있었다면, 경찰이 강경, 과잉진압을 한 결과 우발적으로 벌어진 정도로 알고 있다.&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3. 상당수가 올 초 「용산사건(용산방화사건)」, 올 여름 「쌍용사태(쌍용 평택공장 점거농성사태)」 역시 경찰이 강경, 과잉진압을 하다 문제가 된 사고로 알고 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4. 상당수가 2008년 광우병 PD수첩 등 MBC의 끊임없는 과장, 왜곡, 날조 보도 사실을 모른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5. 대부분이 「친북좌파」라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6. 절대다수가 6.25사변 당시 미군이 100만 명 이상(177만 명) 참전했고, 5만여 명 이상 전사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7. 절대다수가 주한미군이 왜 한국에 있어야 하는지 모른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 등을 통해 한국인을 괴롭히는 게 주한미군이라는 식으로 인식한다.&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8. 절대다수가 90년 대 중후반 북한에서 300만 명이 굶어죽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9. 절대다수가 북한에서 사람들이 굶어죽은 게 아니라 사실상 김정일에 의해 굶겨 죽여졌다는 사실을 모른다. ( 김정일이 해외에 숨겨놓은 비자금 50억 달러를 식량수입에 한 푼도 쓰지 않았고, 연간 3억 달러의 비자금을 옥수수에 구입에 썼더라면 굶어죽은 300만 명을 살릴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lt;/SPAN&gt;&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강연은 취재(取材)다. 쉴 새 없이 물어본다. 제대로 된 대답을 하도록 상금(물론 1~2만 원 정도의 소액으로)과 선물(기자가 쓴 책)까지 건다. 종합해 보면 대한민국의 20대는 놀라울 정도로 무식하다. 절대다수가 「연방제」라는 단어도 모른다. 6.15선언과 10.4선언도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다. 평화, 화해, 협력 같은 단어는 알고 있으니 대충 좋은 게 아니냐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이승만, 박정희와 김일성, 김정일 모두를 비슷한 수준의 독재자 정도로 인식한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기자가 만난 20대 청년들은 현대사에 대한 A, B, C조차 몰랐고, 주한미군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으며, 「광우병난동」 「용산사건」 「쌍용사태」 등 각종 이슈에서 좌경(左傾)방송의 선동에 세뇌(洗腦)돼 있었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이들의 의식은 2시간 남짓 강연을 통해 180도 생각이 바뀔 정도로 유치(幼稚)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반미(反美)적이고, 좌파(左派)적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기자가 강연한 병사들 대부분 「6.25가 북한의 남침」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김정일에 대한 거부감과 기초적인 정훈교육 탓에 친북(親北)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9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amp;nbsp;20대의 「유치한」 반미, 좌파적 의식은 TV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대부분 책이나 신문은 읽지 않고, 감각적 영상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 듯했다. 이러다보니 좌익권력의 50% 이상은 사실상 TV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TV의 공정성 확보, 이것은 대한민국 정상화는 물론 자유통일과 일류국가 완성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lt;/SPAN&gt;&lt;/SPAN&gt;&lt;/SPAN&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출처 : &lt;A href=&quot;http://www.chogabje.com/&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www.chogabje.com/&lt;/A&gt;]&lt;/P&gt;
&lt;P&gt;&amp;nbsp;&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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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삶의 향기] 눈물 젖은 빵 한 조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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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證人</name>
	    </author>
	    <updated>2009-12-03T08:31:30Z</updated>
	    <published>2009-12-03T08:31:30Z</published>
	    <content typ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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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굶주림은 새벽 미군부대에서 구걸하는 꿀꿀이죽 깡통 속에 천 조각 만 조각으로 찢겨져 있었다. 전쟁 피란민들은 누더기 옷차림의 DDT 뒤집어쓴 핼쑥한 얼굴들. 눈은 쏟아지는데 양말도 신지 못한 아이들은 맨발을 동동 구르며 미군 지프 지나갈 때마다 달려들어 깡통을 내밀었다. 나는 그해 겨울 열한 살이었다. 사흘을 꼬박 굶었을 때 미군 병사가 던져준 빵 한 조각을 입에 물자 왈칵 목메어 넘기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1950년대 한국은 밥이라도 실컷 먹는 게 모두의 꿈이었다.&lt;BR&gt;&lt;BR&gt;인류는 항상 꿈을 꾸며 살아왔다. 기독교는 지상에 신의 나라 건설을 약속하고, 폭군과 교활한 자가 아닌 선한 사람이 통치하는 세상을 약속한 거룩한 꿈이다. 이성의 힘을 통해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사회악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 18세기 유럽 계몽주의도 하나의 꿈이었다. 지난 100년 동안 공산주의 운동은 빈곤과 불의로부터 해방된 영광스러운 세상이라는 꿈을 향해 지상의 모든 억압받는 사람들을 이끌었다. 현실에서 공산주의는 혁명, 학살, 관료주의, 인종 박해, 독재를 낳았지만 사람들은 꿈과 희망의 이름으로 붉은 깃발을 계속 따랐다. 현실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마비시킬 정도로 꿈과 희망의 위력은 그렇게 위대했다.&lt;BR&gt;&lt;BR&gt;권력을 향한 격렬한 욕망에 따라 행동하고 권력을 얻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들은 높은 지위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높은 이상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흔히들 미치거나 어리석은 짓이라고 단정하는 위대한 일을 한다. 물리학·천문학 창조자인 뉴턴은 위대한 과학자였을 뿐 아니라, 천체와 자연에서 신의 계획을 찾고자 한 신비주의자 연금술사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시아를 정복한 다음 그리스인과 아시아인이 단일 정치적 공동체를 이루는 보편 제국을 창조하려 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가 정복한 영토를 똑같은 법의 지배를 받는 단일 제국으로 만들기를 원했다. 이러한 비전을 지닌 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얻어야만 스스로 위대한 존재라고 느끼는 야심가와는 차원이 전혀 다르다. 이들은 통치하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창조하기를 원한다. 창조하려는 욕구는 소유가 아닌 베풂의 영역에 속하며, 이기주의 아닌 이타주의 영역에 속한다.&lt;BR&gt;&lt;BR&gt;대통령의 권력 또한 세상에 기여하는 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창조적 건설자, 즉 꿈을 지닌 자는 자신의 권력 앞에 사람들이 무릎 꿇음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모두에 이익 됨을 함께 이루기 위해 따름을 요구한다. 그들은 명령을 ‘호소’로, 복종을 ‘동의’로 이해한다. 모든 창조자는 천성적 지도자다. 창조자는 다른 사람이 변화하기를 바라며, 그들을 새로운 길로 인도해 아직까지 아무도 꿈꿀 수 없었던 가능성을 그들이 접하게 되기를 원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세상 건설을 바라기 때문이다.&lt;BR&gt;&lt;BR&gt;밀가루 원조라도 받아야 목숨을 연명하고 살아가던 나라가 이제 원조를 해 주는 나라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독립한 140여 국가 중 오직 한국뿐이라 한다.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고, 치자(治者)는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 만고의 진리다. 우리 시대에 꿈이 있는 창조적 지도자,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을 내려준 하늘에 감사한다.&lt;BR&gt;&lt;BR&gt;[고정일 /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lt;!-- s : 아티클 하단 섹션 바로가기 링크 추가 --&gt;
&lt;SCRIPT src=&quot;http://news.joins.com/_include/javascript/set_article_section_link.js&quot; type=text/javascript&gt;&lt;/SCRIPT&gt;
&lt;!-- e : 아티클 하단 섹션 바로가기 링크 추가 --&gt;&lt;!-- s : 작성날짜 --&gt;
&lt;P&gt;출처 : 조인스닷컴&lt;/P&gt;
&lt;P&gt;&amp;nbsp;&lt;/P&gt;&lt;/P&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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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회고록 『누구 없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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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證人</name>
	    </author>
	    <updated>2009-12-03T08:10:41Z</updated>
	    <published>2009-12-03T08:10:4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P&gt;
&lt;P&gt;불교 조계종 종정인 법전(法傳·84) 스님이 회고록 『누구 없는가』(김영사)를 내놓았다. “누구 없는가?” 가슴 절절한 제목이다. 생전에 법당으로 들어서던 성철 스님이 기다리고 있던 수좌 대중을 향해 주장자를 휘두르며 종종 던졌던 말이다. 거기에는 “내 말 아는 이, 없나?” “내 마음 아는 이, 없나?” “눈 밝은 수행자, 어디 없나?”하는 목마름과 절박함, 그리고 허전함이 깊숙이 묻어있다. 법전 스님은 “나의 평생 스승은 성철 스님”이라고 말한다.&lt;BR&gt;&lt;BR&gt;법전 스님의 회고록에는 한국현대사와 한국불교사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다. 그 사이로 ‘법전’이란 수행승의 개인사가 줄을 타고 흘러내린다. 법전 스님은 열네 살 때 출가했다. 하루는 부친이 토굴로 찾아왔다. “모친이 위독하다. 막내(법전 스님)를 보고 눈을 감고자 한다”는 전갈이었다. 법전 스님은 부친에게 “집을 떠나온 출가자입니다. 부모 형제를 위해서는 그쪽으로 한 발도 옮길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결국 부친만 집으로 돌아갔다.&lt;BR&gt;&lt;BR&gt;얼마 후 조카에게서 편지가 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법전 스님은 그 편지를 아궁이에 넣어버렸다. “외아들이 벼락을 맞아 죽어도 청상과부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만큼 무서운 각오가 아니면, 이 공부할 생각 마라”던 성철 스님의 말씀을 뼛속에 새기고 살 때였다고 한다.&lt;BR&gt;&lt;BR&gt;성철 스님과 주고받은 문답도 있다.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다. 우째서 없다고 했노?”라는 물음에 법전 스님은 “일월동서별(日月東西別)하니 좌인기이행(坐人起而行)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일월이 동서를 구별하니, 앉았던 사람이 일어나 걸어가더라’는 뜻이다. 성철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lt;BR&gt;&lt;BR&gt;[조인스닷컴 / 백성호 기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lt;/P&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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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상봉의 기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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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證人</name>
	    </author>
	    <updated>2009-12-03T07:58:53Z</updated>
	    <published>2009-12-03T07:58: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4.uf.daum.net/image/196C0E014B16EF991280DD&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4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4.uf.daum.net/image/13546C034B16F06C1D2E18&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7.uf.daum.net/image/206C0E014B16EF9913352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20 border=0&gt;몽골 출신의 결혼이민자 뭉근치매그씨가 2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행정안전부와 새마을운동중앙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부모님을 만나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lt;P&gt;&lt;/P&gt;
&lt;TBODY&gt;&lt;/TBODY&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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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카자흐 '한국, 기적 아닌 기적'책자 발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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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證人</name>
	    </author>
	    <updated>2009-12-03T07:34:46Z</updated>
	    <published>2009-12-03T07:34:4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P&gt;“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강대국으로 성장한 동아시아의 진주, 동아시아의 호랑이”.&lt;BR&gt;&lt;BR&gt;카자흐스탄 최대 일간지인 카자흐스탄 프라브다 신문사가 최근 발간한 한국소개 책자 ’한국, 기적 아닌 기적’에 나오는 한국을 지칭한 표현들이다.&lt;BR&gt;&lt;BR&gt;카자흐스탄 프라브다 기자들은 물론 알렉산드르 타라코프 사장까지 한국을 직접 방문 취재해 쓴 이 책에는 한국의 빠른 발전에 대한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곳곳에 묻어난다.&lt;BR&gt;&lt;BR&gt;50년 전 1인당 국민 소득이 100달러도 되지 않았던 한국이 불과 몇십 년 만에 2만 달러까지 늘어날 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으며 흔히 ’한강의 기적’으로 부르는 한국의 경제 성장이야말로 바로 “기적 아닌 기적”이라는 것이다.&lt;BR&gt;&lt;BR&gt;타라코프 사장은 자신이 쓴 글에서 “현대중공업 시찰 중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조물을 보고 그야말로 혼이 쏙 빠졌다”며 “ 카자흐에 돌아와 냉장고, 전자레인지 그리고 얼마 전에 구입한 에어컨까지 삼성 로고가 새겨진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경탄했다”고 말했다.&lt;BR&gt;&lt;BR&gt;또한 한국은 IT분야의 진정한 리더라면서 IT관련 제품이 한국 전체수출의 30%를 차지하고 12세 이상이 되면 대부분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가정은 광대역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lt;BR&gt;&lt;BR&gt;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는 TV 없이 TV 보기가 가능해졌고 방송을 보다가 중간에’일시 정지’ 후 보고 싶은 장면을 또 볼 수 있는 IPTV에 대해 설명하면서 “과연 놀랄만하다”고 감탄하고 있다.&lt;BR&gt;&lt;BR&gt;세계 곳곳에 부는 한류와 관련, 한류는 엄청난 자금을 끌어들인다며 카자흐스탄에서도 ’인생은 아름다워’,’세 잎 클로버’, ’세 부인’, ’남자가 사랑을 할 때’, ’진정한 사랑’, ’도시의 흔적’, ’저 푸른 초원 위에’ 등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방송돼 많은 이들의 마음을 한국으로 쏠리게 했다고 지적했다.&lt;BR&gt;&lt;BR&gt;이 책에는 이외에도 한국의 경제현황 및 경제 발전 과정, 문화콘텐츠 산업과 주요관광지 등이 소개되어 있다.&lt;BR&gt;&lt;BR&gt;가로 15㎝ 세로 21㎝ 크기의 130쪽 분량의 비매품인 이 책자는 현지 각 도서관과 언론사, 주요대학, 유력인사들에게 배포된다.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TBODY&gt;&lt;/TBODY&gt;&lt;/P&gt;&lt;/TABLE&gt;
&lt;P&gt;[연합뉴스]&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水沒위기 베네치아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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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證人</name>
	    </author>
	    <updated>2009-12-03T07:17:45Z</updated>
	    <published>2009-12-03T07:17:4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P&gt;&lt;FONT color=#474747&gt;이탈리아의 명품 도시 베네치아(영어로는 베니스)를 수식하는 말은 ‘물의 도시’에서 ‘아드리아 해(&lt;SPAN class=hanja&gt;海&lt;/SPAN&gt;&lt;FONT class=ct_font1&gt;)의 여왕’까지 끝이 없다. 118개 작은 섬들을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놓은 베네치아는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도시’ ‘가장 낭만적인 유럽 도시’라는 찬사를 들을 정도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베네치아를 다른 ‘물의 도시’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바다의 도시’라고 불렀다. 베네치아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고색창연한 건물 사이로 난 수로에서 곤돌라를 타고 산마르코 광장에서 맥주를 마신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ct_font1&gt;▷5세기경 베네토 주민들이 훈족의 침략을 피해 갈대만 무성한 개펄에 이주하면서 베네치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동서 중개무역과 외교술로 부를 쌓은 베네치아는 1797년 나폴레옹에게 정복될 때까지 유럽의 문화적 중심도시로 번성했다. 베네치아가 ‘사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고향이며 셰익스피어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과 ‘오셀로’의 무대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베네치아는 영화 건축 미술 디자인 등에 관한 국제적인 축제로 과거의 영광을 이어가고 있다.&lt;/FONT&gt;&lt;BR&gt;&lt;BR&gt;▷‘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1년에 60번 이상 물에 잠기는 상습 침수 도시가 된 지 오래됐다. 원래 개펄에 수많은 나무말뚝을 박아 만든 지반이 서서히 침하돼온 터에 해수면까지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6년 대규모 수재 이후 다양한 대책이 모색됐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베네치아가 침수 위기 때문에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존폐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베네치아가 2030년이면 해수면이 상승해 더는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내놓았다.&lt;BR&gt;&lt;BR&gt;&lt;FONT class=ct_font1&gt;▷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위기에 처한 곳은 베네치아뿐이 아니다. 몰디브와 방글라데시는 물론이고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는 2050년이면 완전히 물에 잠길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수몰(&lt;/FONT&gt;&lt;SPAN class=hanja&gt;水&lt;/SPAN&gt;&lt;SPAN class=hanja&gt;沒&lt;/SPAN&gt;) 위기에 처한 베네치아는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인간의 무절제와 탐욕으로 인한 환경파괴 때문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보낸다. &lt;BR&gt;&lt;BR&gt;[권순택 / 동아일보 논설위원]&lt;/FONT&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TBODY&gt;&lt;/TBODY&gt;&lt;/P&gt;&lt;/TABLE&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메모)&lt;/P&gt;
&lt;P&gt;첫째, 지구 인구가 너무 많다. 지금의 반이상 줄여야 할 것이다.&lt;/P&gt;
&lt;P&gt;인구가 계속 늘어난다면 녹색사업이니 뭐니 아무리 좋은 환경정책을 편다해도 재앙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lt;/P&gt;
&lt;P&gt;이대로 가다가는&amp;nbsp;결국 지구는 파멸에 이를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6.uf.daum.net/image/134C16114B16E56A2F89E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4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4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amp;nbsp;&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0.uf.daum.net/image/174C16114B16E56B341299&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3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3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2.uf.daum.net/image/194C16114B16E56C359C9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3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3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9.uf.daum.net/image/204C16114B16E56C36443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3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3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9.uf.daum.net/image/124C16114B16E56C3814C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3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3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9.uf.daum.net/image/124C16114B16E56D3A6912&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3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3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0.uf.daum.net/image/144C46134B16E59A16334B&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38&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38&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면면히 이어지는 반대의 추억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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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證人</name>
	    </author>
	    <updated>2009-12-03T06:48:12Z</updated>
	    <published>2009-12-03T06:48:1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P&gt;
&lt;P&gt;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작년 11월 당선 후 첫 방송인터뷰에서 “FDR(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대통령)에 관한 신간을 읽고 있다”고 밝혔다. 그 책 중 하나가 마셜대 교수 진 에드워드 스미스가 쓴 ‘F.D.R.’이었는데, 스미스는 올 9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루스벨트는 화합자(Uniter)가 아니라 위대한 분열자(The Great DIVIDER)였다”고 규정했다.&lt;BR&gt;&lt;BR&gt;“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초당적 화합과 지지 속에서 추진했다는 것은 미신이다. 대통령에게 은행폐쇄권을 부여한 긴급은행법을 제외한 1930년대의 주요 법안은 대부분 공화당의 강경한 반대 속에서 통과됐다. 루스벨트는 ‘다수결 원칙이란 반대파의 허락을 받는 게 아니다’고 믿었다. 그는 반대파를 무시하거나 내버려두고, 오히려 반대파의 증오심을 자신에 대한 국민지지도를 높이는 데 활용했다. 국정은 결국 선택이며 선택엔 반대가 따른다는 것을 알고, 그 반대까지도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다만 국민의 절반 이상이 자기편이 되도록 힘썼으며, 여당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여당 사람들에게) 비굴하게 굽실거리기까지 했다.”&lt;BR&gt;&lt;BR&gt;스미스는 “오바마 역시 공화당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의료개혁을 하더라도 그것은 국가에 남을 의미 있는 개혁(법)이다”고 덧붙였다.&lt;BR&gt;&lt;BR&gt;&lt;B&gt;반대에 굴복했다면 기적 없었다&lt;/B&gt;&lt;BR&gt;&lt;BR&gt;오바마가 국정 핵심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미국 의료개혁은 공공의료보험(퍼블릭 옵션) 도입이 최대 쟁점인데, 세금부담 증가를 싫어하는 계층과 공화당(야당)의 반대가 심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 때문에 야당이 국회를 마비시키는 일은 없다. 이것이 우리 여의도 국회의사당 풍경과 다른 점이고, 미국의 데모크라시와 한국의 민주주의가 100% 동의어(&lt;SPAN class=hanja&gt;同&lt;/SPAN&gt;&lt;SPAN class=hanja&gt;義&lt;/SPAN&gt;&lt;SPAN class=hanja&gt;語&lt;/SPAN&gt;)가 아님을 말해준다.&lt;BR&gt;&lt;BR&gt;&lt;FONT class=ct_font1&gt;‘반대의 추억’은 우리나라에도 셀 수 없이 많다. 정치적 반대의 전통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 건설 구상을 밝힌 뒤에 쏟아진 반대 주장을 다시 들춰보는 것은 진부하지만, 지금도 40여 년 전 수준의 상투적 반대가 판을 친다.&lt;/FONT&gt;&lt;BR&gt;&lt;BR&gt;그때도 편 가르기 수법의 반대론이 있었다. ‘소수 귀족들의 자가용 향락을 위한 도로’라는 것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전국 고속도로망 시대를 열어젖히고, 자동차산업을 비롯한 산업화와 수출대국화의 동맥이 됐으니 가소로운 반대론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부자들이 기생 태우고 놀러 다니는 꼴이나 보란 말이냐’ 하는 원초적 선동의 혹세무민 효과가 적지 않았다.&lt;BR&gt;&lt;BR&gt;“쌀도 모자라는데 웬 고속도로냐”와 같은 반대론도 당장 한 끼가 급한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엔 상당한 호소력이 있었다. 더 많은 쌀(국부·&lt;SPAN class=hanja&gt;國&lt;/SPAN&gt;&lt;SPAN class=hanja&gt;富&lt;/SPAN&gt;&lt;FONT class=ct_font1&gt;)을 창출하기 위해서도 고속도로가 필요하다는 설명은 감성적인 반대 구호를 압도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복지 대신 4대강이 웬 말이냐”는 식으로 들이대니 헷갈려하는 국민이 생긴다. 그러나 고속도로가 경제발전의 기반이 돼 국민의 먹을거리를 제공했듯이, 전국 강의 재생이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로 이어진다면 ‘복지와 4대강’은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쌀이냐, 고속도로냐’ 하던 것이 어불성설이었듯이 ‘복지냐, 4대강이냐’ 하는 것도 선택의 문제가 아님을 국민이 꿰뚫어볼 때가 됐다.&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ct_font1&gt;40여 년 전에도 지역 불균형론이 경부고속도로 추진의 발목을 잡았다. 이 주장의 선두에 섰던 김대중 당시 신민당 의원은 “서울∼강릉 영동고속도로를 먼저 놓자”고 대안을 제시했지만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재를 뿌리기 위한 제안에 불과했다. 실제로 영동고속도로가 경부고속도로보다 국가적 효용이 클 것으로 봤다면 안목 없음을 증명할 뿐이다. 지역발전을 둘러싸고 요즘 벌어지고 있는 ‘제로섬식 싸움’도 국민 전체의 ‘파이 키우기’를 해치는 요인이 된다.&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ct_font1&gt;우리나라에서 대학교수들은 아는 게 가장 많은 지식인으로 분류된다. 경부고속도로에 대해서도 상당수 교수들이 ‘반대의 권위’를 높여주었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뿐 아니라 지난날 교수들이 반대한 많은 국책사업들이 결국은 오늘의 번영을 이끌었다. 더구나 작금엔 전공 분야를 가리지 않고 거의 파당화(&lt;/FONT&gt;&lt;SPAN class=hanja&gt;派&lt;/SPAN&gt;&lt;SPAN class=hanja&gt;黨&lt;/SPAN&gt;&lt;SPAN class=hanja&gt;化&lt;/SPAN&gt;)한 교수들이 떼 지어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사례가 많다 보니, 진짜로 뭘 알고 그러는지 의문이 생길 지경이다.&lt;BR&gt;&lt;BR&gt;&lt;B&gt;변화 거부가 곧 &lt;SPAN class=hanja&gt;守&lt;/SPAN&gt;&lt;SPAN class=hanja&gt;舊&lt;/SPAN&gt;다&lt;/B&gt;&lt;BR&gt;&lt;BR&gt;박 대통령은 하루 두 끼 먹던 국민이 세 끼 먹을 수 있도록 세계 최빈국을 부강한 나라로 바꾸려 했다. 이를 위해 숱한 불가능에 도전했다. 그야말로 진보(&lt;SPAN class=hanja&gt;進&lt;/SPAN&gt;&lt;SPAN class=hanja&gt;步&lt;/SPAN&gt;)다. 반면 박 대통령이 주도한 산업화 과정의 핵심 프로젝트에 사사건건 반대한 세력은 현상 유지에 안주하려 했다는 점에서 수구(&lt;SPAN class=hanja&gt;守&lt;/SPAN&gt;&lt;SPAN class=hanja&gt;舊&lt;/SPAN&gt;)세력이었다. 그 세력에 줄서온 사람들이 지금 진보라고 자칭하면서 이명박식 개혁과 변화를 방해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진보이고, 누가 수구인가.&lt;BR&gt;&lt;BR&gt;[배인준 / 동아일보 논설주간]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메모)&lt;/P&gt;
&lt;P&gt;옳은 말이긴 하나 4대강 사업은 재고해야 한다.&lt;/P&gt;
&lt;P&gt;정화(淨化)도 중요하지만 오염원(汚染源)을 차단하거나 줄이는게 더 중요하다. 사업의 초점(焦點)을 바꿔야 할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TBODY&gt;&lt;/TBODY&gt;&lt;/P&gt;&lt;/TABLE&gt;
	    </content>
	    	</entry>
    	<entry>
	    <title>천마총서 기마인ㆍ새 그림 찾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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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證人</name>
	    </author>
	    <updated>2009-12-02T07:36:24Z</updated>
	    <published>2009-12-02T07:36:2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520 border=0&gt;
&lt;P&gt;&amp;nbsp;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1973년 경주 천마총 발굴 때 천마도 장니(흙받이)와 같은 장소에서 출토된 채화판(彩畵板)이라는 유물에서 말을 탄 인물 그림 7점과 상상 속의 새 그림 5점을 추가로 찾아냈다. &lt;BR&gt;&lt;BR&gt;천마총 출토품을 소장 중인 국립중앙박물관은 최근 한국박물관 100주년 기념특별전에 출품한 천마도 장니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부장곽(주검을 위한 물건을 넣어두는 나무상자)에서 수습한 채화판을 적외선 촬영 등을 통해 조사한 결과 이런 성과를 얻었다고 1일 말했다. &lt;BR&gt;&lt;BR&gt;채화판은 자작나무 혹은 산벗나무 껍질인 백화수피(白樺樹皮) 2장을 겹쳐 누빈 개별 판을 마치 팔찌 모양으로 만든 다음, 그 윗면에는 구간을 나누어 서조도(瑞鳥圖.상스로운 새 그림)와 기마인물도(騎馬人物圖.말탄 사람 그림)를 그려넣고, 아랫면에는 이렇다 할 만한 구획이 없이 초화문(草花文.풀이나 꽃 그림)이나 능형문(菱形文.마름모꼴)을 그려넣은 유물을 말한다. [조선닷컴]&lt;/P&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9.uf.daum.net/image/173ED30C4B1598AE1B630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9.uf.daum.net/image/183ED30C4B1598AE1CE73C&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3.uf.daum.net/image/193ED30C4B1598AE1D2D8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1973년 경주 천마총 출토 당시 채화판. 기마인물도가 희미하게 보인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26.uf.daum.net/image/123ED30C4B1598AF1F319C&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35.uf.daum.net/image/113ED30C4B1598AF1EF3C5&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2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52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1973년 경주 천마총 출토 당시 채화판. 서조 그림이 완연하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TBODY&gt;&lt;/TBODY&gt;&lt;/P&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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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느 재벌가의 원정 출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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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證人</name>
	    </author>
	    <updated>2009-12-02T07:17:25Z</updated>
	    <published>2009-12-02T07:17:2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H3&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무엇이 모자라고 무엇이 더 필요해 이렇게까지 하는가 &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이들 탐욕스러운 일부 상류층이야말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자유민주 최대의 적(敵)&lt;/SPAN&gt;&lt;/H3&gt;
&lt;P&gt;국내 최대 재벌가의 한 사람과 TV 유명 여자 아나운서 출신 부부가 첫째 아들에 이어 둘째 아들까지 미국에서 낳았다. 첫째 아들은 결혼 후 유학차 미국에 가서 낳았다. 얼마 전 둘째 아들을 낳을 때는 출산 두 달 전에 미국에 갔다고 한다. 원정 출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lt;BR&gt;&lt;BR&gt;원정 출산을 하는 것은 아이에게 미국 시민권을 주자는 것이다. 재벌가 부부가 미국 시민권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이 탐나서 원정 출산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들의 자식이 미국 시민권으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는 선택권이다.&lt;BR&gt;&lt;BR&gt;대한민국 국군은 어쩌면 자신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라를 지키려 모인 젊은이들이다. 6·25 전쟁 때 맨몸으로 적을 막다 쓰러져 이 땅 어딘가에 뼈를 묻은 20만 장병의 손자들이고, 나라의 부름에 따라 이역만리 월남 땅에서 목숨을 바친 5000여 청춘의 아들들이고, 서해 바다에 피를 뿌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의 동생들이다. 국군은 병역을 피하려 미국 시민권을 얻는 사람들은 필요하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들 부부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 상류층 일부의 탐욕과 이기심, 교활함, 그 천박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lt;BR&gt;&lt;BR&gt;이 부부가 첫 아이를 낳은 뒤 얼마 안 돼 귀국했고, 이번 둘째 때도 곧 귀국한다는 것을 보면 미국에서 살 생각은 없는 듯하다.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지만 만약 대한민국이 위험하게 된다면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이 부부일 것이다. 이 부부의 그 많은 것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 바로 국군이다. 그저 남자로 태어나서, 나이가 차서, 신체가 건강해서,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따져보지도 않은 채 군에 들어간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이 부부의 그 '많은 것'들을 지켜주고 있다. 이 부부는 제 재산과 생명은 국가에서, 국군에게서, 남의 집 아들들에게서 보호받으면서 자신들이 나라에, 국군에, 다른 사람들에 해야 할 의무는 지지 않으려 만삭에 비행기 타고 미국까지 가서 아이를 낳았다. 무엇을 더 챙기겠다고 이렇게까지 하는가.&lt;BR&gt;&lt;BR&gt;남편은 최대 재벌 계열사의 대표이고 부인은 한때 큰 인기를 얻었던 유명인이다. 이 공인(公人)들이 미국 가서 아이 낳으려고 계산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역겹기에 앞서 어떻게 이토록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지가 더 놀랍다. 공적인 의무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런 책임감 따위는 느껴본 적도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 이렇게 용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면 유력 대통령 후보의 자식도 원정 출산 논란에 휘말리고 전직 국방장관과 최고위 외교관의 손자들도 병역 비리에 연루되는 판에 뭐가 어떠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lt;BR&gt;&lt;BR&gt;일부 상류층의 돈에 대한 탐욕도 끝이 없다. 어느 또 다른 재벌가 3형제가 투자한 회사의 주식 가치가 8년 만에 100배가 됐다고 한다. 같은 그룹 내 다른 계열사가 돈 되는 사업을 집중적으로 넘겨줬기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나돈다. 땅 짚고 헤엄치기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작년엔 국내 여러 재벌들의 2세, 3세, 4세들이 주식 장난을 벌이다 모처럼 그 꼬리가 드러났다. 이들은 미공개 정보 이용, 허위 사실 유포, 치고 빠지기 등 갖은 방법으로 작게는 몇 천만원에서 크게는 수십억원까지 벌었다. 주식시장에선 재벌 자식들이 어느 기업에 투자했다는 소문만으로 주가가 몇 배가 뛴다. 두 재벌의 2, 3세가 투자했다는 철강회사의 주가는 한 달 만에 16배 뛰었다. 재벌로도 모자라 그 위세까지 이용해 돈을 번다. 무엇이 더 필요해 이렇게까지 하는가.&lt;BR&gt;&lt;BR&gt;원정 출산 부부에 관해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들 중 하나가 눈길을 잡는다. &quot;돈 있으면 나도 하겠다.&quot; 이 사람이 실제 원정 출산을 바란다기보다는 우리 사회에 대한 야유로 들렸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외고 문제를 제기한 이후 그의 홈페이지에 1만개의 댓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정 의원은 그중 하나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quot;아이들이 외고에 가고 싶다고 하자 아내가 '우리 집은 돈이 없어서 안 돼'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quot; 이 사람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quot;돈 있으면 나도 하겠다&quot;고 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lt;BR&gt;&lt;BR&gt;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있다. 그 반대편에서 일부 상류층은 이 정직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면서 999섬도 모자라 1섬까지 더 가지려 갖은 수를 쓰고 있다. 이 것이 우리 사회 불안의 근원이다. 이들 탐욕스러운 일부 상류층들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최대의 적(敵)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양상훈 / 조선일보 논설위원]&lt;/P&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
	    </content>
	    	</entry>
    	<entry>
	    <title>[상식]6·25는 `전쟁(戰爭)`이 아니다 (동란(動亂)이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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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證人</name>
	    </author>
	    <updated>2009-12-01T08:55:18Z</updated>
	    <published>2009-12-01T08:55:1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P&gt;동양적 정명론(正名論)에 입각해서 보면 ‘말(언어)’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만이 아니다. 그것이 곧 도덕적 정당성과 논리적 합리성 위에서 심오한 역사의식까지 내포하는 고도의 문화행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592년 선조 25년 임진년에 우리는 일본과 7년에 걸쳐 큰 전란을 치렀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조·일전’이나 ‘임진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임진왜란’이라 부르고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1627년 인조 5년 정묘년에 후금(後金)의 침입, 1636년 병자년에 청나라의 침입도 모두 ‘정묘호란’ ‘병자호란’이라 했지 ‘조·후금 전’이나 ‘조·청 전쟁’이라 부르지 않는다.&lt;BR&gt;&lt;BR&gt;왜 그랬을까?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정당성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戰)’이나 ‘전쟁(戰爭)’이라는 것은 피차 정통성 있는 나라끼리 무력으로 다투는 행위를 말한다. 요즘 말로 하면 서로가 당당히 선전포고를 하고 전투행위를 하는 것이다. 선전포고도 없이, 더구나 정통성도 없는 임의 집단이 정통성 있는 국가체제에 도전하는 행위는 ‘전쟁’이라는 이름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일러 ‘난’(亂)이라 하는 것이다.&lt;BR&gt;&lt;BR&gt;반대로 정통성 있는 국가권력이 정통성 없는 임의 집단을 응징하고 징벌하는 행위를 우리는 ‘벌(伐)’이라고 한다. 그래서 공비를 ‘토벌(討伐)’한다, 오랑캐를 ‘정벌(征伐)’한다고 하지 공비나 오랑캐와 전쟁을 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영어에는 이런 사리의 분별이 별로 없는 탓인지 범죄와도 ‘전쟁’한다 하고, 심지어 마약하고도 ‘전쟁’한다고 하지만 우리말로는 이런 것은 ‘벌(伐)’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소탕(掃蕩)’한다고 하는 것이다. 남의 말에서도 좋은 것, 나은 것은 배우고 받아들여야 하지만 우리보다 못한 것, 사리에도 맞지 않는 것까지 마구 모방하는 것은 역사와 문화에 죄를 짓는 것이다.&lt;BR&gt;&lt;BR&gt;내년(2010년)이 6·25동란 60주년이 되는 해다. 정부에서도 각종 기념행사를 다양하게 또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 잘하는 일이다. “천하가 비록 태평해도 항상 전쟁을 잊지 말아야 한다(天下雖平 不敢忘戰).” 중국 송(宋)대의 대문장가인 동파 소식(蘇軾)의 말이다. 6·25에 대한 전후세대의 올바른 인식과 참전국과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위해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하니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다. 그런데 각급 검인정 교과서뿐만 아니라 이제는 정부의 공식문서에서조차 말끝마다 6·25를 ‘전쟁’이라고 표기하고 있으니 이 어이 된 일인가?&lt;BR&gt;&lt;BR&gt;사실을 말하면, 6·25 발발 당시 우리는 이를 ‘사변’이라 불렀다. 졸지에 불법 남침을 당했으니 일단 이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 후 1953년 휴전이 되자 그동안의 여러 정황들을 종합 고려한 끝에 ‘6·25 동란’으로 명명(命名)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해서 정부나 민간에서나 모두 그렇게 명기해 왔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한국전쟁’ ‘6·25 전쟁’으로 둔갑해 버렸다. 그러면 남침을 도발한 북에서는 6·25를 어떻게 부르고 있을까? 그들은 언필칭 ‘조국통일성전(聖戰)’이라 하고, 김일성에 의한 남조선 ‘해방전쟁’이라고 공식화하고 있다.&lt;BR&gt;&lt;BR&gt;우리가 6·25를 ‘전쟁’으로 공식화한다면 이는 영어의 ‘war’를 맹목적으로 번역 추종하는 비주체적 망동이거나, 아니면 북측의 주장과 논리에 동조·영합하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더구나 저들은 지금 6·25를 조국통일의 성스러운 전쟁이라 하고, 이를 남측이 외국군까지 끌어들여 방해했다고 우겨대고 있는데, 우리 쪽에서 이를 ‘전쟁’으로 인정한다면 오늘의 위정자들은 그 결과가 가져올 무서운 역사성을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것인가?&lt;BR&gt;&lt;BR&gt;[홍일식 / ㈔한국인문사회연구원 이사장·전 고려대 총장] 
&lt;TBODY&gt;&lt;/TBODY&gt;&lt;/P&gt;&lt;/TABLE&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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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극일(克日) 대한민국'이 '친일파 나라'라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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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證人</name>
	    </author>
	    <updated>2009-12-01T08:18:17Z</updated>
	    <published>2009-12-01T08:18:1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3&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당신들은 도대체 '다른 편'의 말을 들어보기나 했는가?&lt;/SPAN&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quot;&gt;그런 마녀재판으로 아버지세대를 욕보이면 그게 항일인가?&lt;/SPAN&gt;&lt;/H3&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WORD-BREAK: break-all; PADDING-TOP: 0px&quot;&gt;&lt;!-- 기사 사진 시작--&gt;
&lt;TABLE style=&quot;MARGIN-BOTTOM: 10px; MARGIN-RIGHT: 15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100 align=left border=1&gt;
&lt;TBODY&gt;
&lt;TR&gt;
&lt;TD&gt;
&lt;P&gt;&lt;img src=&quot;http://cfile234.uf.daum.net/image/115A74044B145273381F70&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16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16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gt;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친일파'로 낙인찍히면 갈 곳이 없다. 그야말로 세세대대로 '주홍글씨'가 새겨진 옷을 입고 살아야 한다. 연례행사처럼 이루어지는 대통령의 사면 대상도 될 수 없을뿐더러 그렇다고 일본이 &quot;자신들보다도 더 일본을 사랑했던 한국인&quot;이라고 하여 받아주는 것도 아니다.&lt;BR&gt;&lt;BR&gt;더욱이 친일의 굴레를 쓴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 곁에 있지 못해 자기 변호조차 할 수 없으니 영락없이 부관참시를 당하는 판국이다. 그렇기에 민간기구도 아닌 국가기관이 친일 여부를 가늠할 때는 그야말로 역사와 민족 앞에 무한책임을 진다는 결연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당사자 본인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는 일인 동시에 민족공동체가 이미 받은 깊은 상처에 소금까지 뿌리는 비열한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lt;BR&gt;&lt;BR&gt;최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모두 1005명의 친일행위자 명단을 발표했는데, 특징이라면 과거 반민특위가 작성한 명단에 교육계, 문화·종교계, 군 원로인사들을 대거 추가했다는 점이다. 이 명단을 보면서 드는 의구심이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재판에 임하는 재판관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인 &quot;다른 편의 말을 들어라(audi alteram partem)&quot;라고 하는 철칙을 왜 그토록 무시했을까 하는 점이다. 위원들이 편향된 역사의식과 특정이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을까. 이번처럼 부정확하고 제한된 자료에 의존하면서도 유족들의 이의제기를 대부분 묵살한다면 고발자만 있고 자기변호를 할 수 없었던 중세기의 마녀재판과 무엇이 다른가.&lt;BR&gt;&lt;BR&gt;식민통치 35년이란 긴 세월이었다. 그랬기에 이 땅에 봄이 와도 '우리의 봄'이 아니라 '일제의 봄'이었고 하늘이 파래도 '우리의 하늘'이 아니라 '일제의 하늘'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땅과 하늘은 빼앗겼지만, 영혼까지 잃지는 않았다. 한 민족이 영혼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56&quot; name=focus_link&gt;&lt;U&gt;&lt;FONT color=#0000ff&gt;미국&lt;/FONT&gt;&lt;/U&gt;&lt;/A&gt;은 남북전쟁을 치른 후 노예해방을 했지만, 정작 남부의 많은 노예들은 그 자유를 반기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걱정이 앞섰던 그들은 몸만 노예가 아니라 마음도 노예였던 것이다. 아무리 하늘을 힘차게 날던 독수리도 긴 세월 닭장에 가두어 놓으면 닭처럼 되어 날기를 거부하게 마련이다.&lt;BR&gt;&lt;BR&gt;그러나 우리 민족은 그렇지 않았다. 몸은 묶여 있었으나 마음은 자유를 갈구하고 있었다. 일본말을 쓰고 창씨개명을 하며 신사참배를 하고 학도병이나 정신대에 끌려 나갈 수밖에 없었지만 일제가 패망하자 한결같이 약속이나 한 듯 &quot;만세&quot;를 부르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신사참배를 했건 창씨개명을 했건 &quot;천황 만세&quot;를 외치며 할복자살한 한국인은 없었다.&lt;BR&gt;&lt;BR&gt;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혹독한 일제하에서도 민족혼이 살아 숨쉬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디선가 그 민족혼을 끊임없이 불어넣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들이 누구인가. 그들이야말로 대부분 언론인과 교육자, 종교인과 문인으로 활동한 사람들인데, 규명위는 일제시대를 살아남은 사람들이라고 하여 친일로 규정한 것이다.&lt;BR&gt;&lt;BR&gt;조선의 지도급 인사였던 그들에 대해 일제는 더욱더 삼엄한 감시를 했고 특정행위를 강요했다. 그 결과 한두 개의 행적을 남겼을는지 모르나, 친일 부역자는 아니었다. 드러내놓고 저항은 하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민족혼을 고취했던 사람들이며, 일제에 무력으로 맞선 전사는 아니었으나, 수모를 당하면서도 민족혼이 잠들지 않도록 노심초사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해방이 되자 해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과 더불어 극일의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키는 데 크게 헌신할 수 있었다.&lt;BR&gt;&lt;BR&gt;그런데 이제 와서 규명위가 이들을 친일파로 단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quot;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승리했다&quot;는 좌파들의 해묵은 주장을 두둔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혼미한 해방정국에서도 대한민국을 일구어낸 건국 세력을 모욕하기 위함인가.&lt;BR&gt;&lt;BR&gt;옛날에 형제들이 싸우면서 서로 &quot;병신&quot;이라고 욕하면 어른들이 타이르던 말이 있다. &quot;형이 병신이면 동생은 뭐지?&quot; 하는 되물음이었다. 아버지 세대를 친일파로 낙인찍으면 후손들은 항일 세대가 될 수 있는가. 가혹한 식민통치 아래 신음하던 아버지 세대는 형언할 수 없는 상처를 받은 피해자인데 &quot;일제가 얼마나 악랄했으면 그렇게 했겠느냐&quot;라는 말을 하기보다 마치 가해자처럼 &quot;너 때문에 우리 민족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아느냐&quot;라는 식으로 몰아붙인다면 인민재판식 '아버지 죽이기'에 다름 아니다.&lt;BR&gt;&lt;BR&gt;고대 로마인들은 나라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quot;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quot; 라는 뜻의 '퀴 보노(cui bono)'라는 질문을 했다. 한창 민족의 역량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서 식민시대를 살았다고 하여 친일의 굴레를 씌워 건국·호국세력을 욕보이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 규명위에 묻고자 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박효종 / 서울대교수·윤리교육과 ]&lt;/P&gt;
&lt;P&gt;&amp;nbsp;&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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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운명을 바꿀 3가지 방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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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證人</name>
	    </author>
	    <updated>2009-12-01T08:09:40Z</updated>
	    <published>2009-12-01T08:09:4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00 border=0&gt;
&lt;P&gt;
&lt;P&gt;타고난 운명(運命)을 바꾸는 데에는 3가지 방법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풍수지리(風水地理)이고 둘째는 독서(讀書), 셋째는 자선(慈善)이다. 풍수지리는 일을 도모함에 있어 환경을 살펴보고 가능한 한 나쁜 것은 피하고 유리한 쪽에서 진행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독서는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통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니 둘 다 운명을 바꾸는 그럴 듯한 방법이다. 그런데 자선은 어떤 의미에서 운명을 바꾼다고 하는 걸까?&lt;BR&gt;&lt;BR&gt;내가 아는 오토바이 퀵 서비스맨 한 분은 세계 재난지역 어린이를 1:1 결연으로 후원하는 구호단체의 후원자이다. 배송을 하러 행사장에 갔다가 구호현장을 찍은 사진전을 보고 그 자리에서 후원자로 등록하셨다. 막내를 대학에 입학시키고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새삼 바다 건너 공부시킬 아이들이 생겼다며 흐뭇해하신다.&lt;BR&gt;&lt;BR&gt;그분은 전보다 훨씬 더 건강을 챙기고 안전운행에도 신경 쓴다. 자신이 무사해야 그들이 잘 자랄 수 있다며 마치 십여년 전 젊은 아빠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한다. 그분은 집을 나설 때 후원 어린이의 사진을 꼭 보고 나온다고 한다.&lt;BR&gt;&lt;BR&gt;어쩌면 자선이란 남을 살피는 일이 아니라 타인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살피는 일이 아닐까?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과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되고,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운명이 바뀌는 모양이다.&lt;BR&gt;&lt;BR&gt;이제 12월이다. 거리엔 구세군 종소리가 울리고 하루건너 자선행사가 열릴 것이다. 운명을 바꿀 절호의 기회다. 내년에는 새로운 운명으로 행복해진 사람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 해를 보내는 나의 작은 바람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하민회 / 와우에이지 대표]&lt;/P&gt;
&lt;P&gt;&lt;A href=&quot;http:///&quot; target=&quot;_blank&quot;&gt;&lt;/A&gt;&amp;nbsp;&lt;/P&gt;&lt;/P&gt;
&lt;TBODY&gt;&lt;/TBODY&gt;&lt;/TABLE&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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