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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자본주의2.0 : 신자유주의를 넘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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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7-10-27T11:46:3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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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동체 자본주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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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사랑진리</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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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7-10-27T11:46:39Z</updated>
	    <published>2007-10-27T11:46:3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B&gt;
&lt;DIV class=view style=&quot;FONT-SIZE: 9pt; FONT-FAMILY: 돋움&quot;&gt;
&lt;P&gt;&lt;A href=&quot;http://blog.naver.com/davidpaulkim&quot; target=&quot;_blank&quot;&gt;&lt;U&gt;&lt;FONT color=#800080&gt;http://blog.naver.com/davidpaulkim&lt;/FONT&gt;&lt;/U&gt;&lt;/A&gt; 에 계속 글을 적고 있습니다.&amp;nbsp;&lt;/P&gt;
&lt;P&gt;&lt;A class=con_link href=&quot;http://news.media.daum.net/economic/industry/200710/17/khan/v18508906.html&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10081&gt;&amp;nbsp;&lt;/FONT&gt;&lt;/A&gt;&lt;/P&gt;
&lt;P&gt;&lt;A href=&quot;http://news.media.daum.net/economic/industry/200710/17/khan/v18508906.html&quot; target=_blank class=&quot;con_link&quot;&gt;&lt;FONT color=#810081&gt;&amp;nbsp;&lt;/FONT&gt;&lt;/A&gt;&lt;/P&gt;
&lt;P&gt;&lt;A href=&quot;http://news.media.daum.net/economic/industry/200710/17/khan/v18508906.html&quot; target=_blank class=&quot;con_link&quot;&gt;&lt;FONT color=#810081&gt;-----------------------------------------------------------------------&amp;nbsp;&lt;/FONT&gt;&lt;/A&gt;&lt;/P&gt;
&lt;P&gt;&lt;A href=&quot;http://news.media.daum.net/economic/industry/200710/17/khan/v18508906.html&quot; target=_blank class=&quot;con_link&quot;&gt;&lt;FONT color=#810081&gt;&amp;nbsp;&lt;/FONT&gt;&lt;/A&gt;&lt;/P&gt;
&lt;P&gt;&lt;A href=&quot;http://news.media.daum.net/economic/industry/200710/17/khan/v18508906.html&quot; target=_blank class=&quot;con_link&quot;&gt;&lt;FONT color=#810081&gt;&amp;nbsp;&lt;/FONT&gt;&lt;/A&gt;&lt;/P&gt;
&lt;P&gt;&lt;A href=&quot;http://news.media.daum.net/economic/industry/200710/17/khan/v18508906.html&quot; target=_blank class=&quot;con_link&quot;&gt;&lt;FONT color=#810081&gt;&amp;nbsp;&lt;/FONT&gt;&lt;/A&gt;&lt;/P&gt;
&lt;P&gt;&lt;A href=&quot;http://news.media.daum.net/economic/industry/200710/17/khan/v18508906.html&quot; target=_blank class=&quot;con_link&quot;&gt;&lt;FONT color=#810081&gt;&amp;nbsp;&lt;/FONT&gt;&lt;/A&gt;&lt;/P&gt;
&lt;P&gt;&lt;A href=&quot;http://news.media.daum.net/economic/industry/200710/17/khan/v18508906.html&quot; target=_blank class=&quot;con_link&quot;&gt;&lt;FONT color=#810081&gt;http://news.media.daum.net/economic/industry/200710/17/khan/v18508906.html&lt;/FONT&gt;&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정세열 교수님과 만나 신자유주의의 대안인 공동체 자본주의와 공동체 자본주의를 위한&amp;nbsp;기업지배구조에&amp;nbsp;대해 열변을 토하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어느덧 1년이 지났다.&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드디어 교회에서 공동체 자본주의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게 된 것을 보고 감동을 느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아쉬움이 남는다. 언론에 발표된 자료만 보면 그 내용은 자발적 자선과 구제 그리고 마이크로 파이낸스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공동체 자본주의’에 대해 “다 같이 더 잘 사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개인의 인센티브가 최대한 보장되고, 창의적 방법에 의한 ‘자발적 나눔’이 이뤄지는 자본주의”라고 정의했다. 또 “공동체 자본주의의 이상을 가진 도덕적 엘리트의 선도 아래 사회적 기업이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기업이란 시장에서 창의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하되 수익의 일부 또는 전부를 사회공헌 활동에 쓰는 기업을 일컫는다. 라고 공동체 자본주의를 정의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쉬움이 많이 남는 공동체 자본주의에 대한 정의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발적 자선과 구제가 필요하고 사회적 기업도 필요하다. 그러나 메인스트림의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변두리만 울리는 변죽만 되어&amp;nbsp;대세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개인의 인센티브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인센티브와 이익이 공동체의 이익과&amp;nbsp;구조적으로 연결될때만이 진정한 공동체 자본주의의 구조가 될 수 있다. 그 개념이 주된 개념이 되어야하고 수익의 일부 또는 전부를 사회공헌 활동에 쓰는 것은 개인의 자발성에 맡기는 개념이 부 개념이 되어야한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사회구조적 희년제도라는 경제시스템과 개인의 자발적 자선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구조적인 문제와 개인의 자발성 개념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개인의 자발성 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한계가 있는 발상이며 시도라는 것을 알아야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발적 자선은 미국에서 사회적 기업은 유럽에서 특히 발달되어 있다. 그리고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방글라데시 같은 빈국에서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유럽도 점점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되고 있고 전세계적인 불균형의 규모는 국가간에 그리고 잘사는 국가들 안에서도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그 대안적인 시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격려 받아야 마땅한 좋은 노력이나 그것이 답이라면 미국과 유럽은 이미 변해가고 있어야하는데 왜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심해가는 것인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인간의 이기심을 생각할때 제도적으로 공동체로 묶어주는 구조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연구를 하는데 왜 성경에 나와 있는 자발적 구제만 보고 성서에서&amp;nbsp;강조한&amp;nbsp;경제구조 희년 제도와 같은 구조는 강조하지 않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블로그를 통해서 강조해왔던 것처럼 경제의 생산 단위에서 모든 생산 요소를 사유화 하는 시스템 만이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낼 수 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이길수 있는 이유이다. &lt;/P&gt;
&lt;P&gt;그러나 생산 요소중 경제의 생산 단위의 주권을 가지고 있는 생산요소 (기축생산요소)인 토지와 주식-수권자본등은 일반적인 노동과 자본에 비해 이익이 축적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므로 이 생산요소(기축생산요소)에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기축 생산요소를 사유화 하면서 동시에 공동체로 묶어줄 수 있는 새로운 기업 지배구조가 필요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이런 기업 지배구조가 메인스트림인 글로벌 스탠다드와 통합되지 않고서는 결코 메인스트림인 신자유주의 경제를 변화시킬수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통합을 위해서 상부구조를 새로운 기업지배구조로 하고 하부구조를 글로벌 스탠다드로 한 이중적 이지만 통합된 새로운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설계와 구현과 시행이 있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amp;nbsp;&lt;/P&gt;
&lt;P&gt;또한 우리는 점점 실업이 늘어나고 부익부 빈익빈이 되어가고 있는&amp;nbsp;것의 한가지 이유는 자본주의의 구조 위에&amp;nbsp;사회가 지식기반 사회로 크게 변화되고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산업혁명때 기계가 사람의 대신이 되었듯이 이제는 정보기술과 과학의 혁명이 새로운 지식기반 경제의 시대를 열어 시간과 공간을 압축시키고 사람의 단순노동을 전 생활에 걸쳐 대체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국은 산업 혁명때 나온 수권 자본의 주식회사 제도를 만들어&amp;nbsp;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그 주식회사는&amp;nbsp;부익부 빈익빈을 극대화 시키는 구조로 그로말미암아&amp;nbsp;세계는 파국을 경험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식 기반 경제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구조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될 수 밖에 없어서 더 큰 규모의 격차와 이에 따른 파국이 있는데도 그 구조의 핵심을 생각하지 않고 자선과 자발적 사회공헌의 사회적 기업 정도만 공동체 자본주의라고 정의하는 것은 너무 얄팍하고 피상적인 접근이 아닌가 생각한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 자발적 자선은 없었는가? 사회적 기업과 같은 이상적 대안 기업 운동은 없었는가? 그때도 있었지만 그것이 대세가 되지 못해서 역사는 파국을 경험하지 않았는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금은 양극화 격차의 폭발력이 더 커진 지식기반 사회 초입에 있으므로 더 더욱 자본주의 초기 시대보다 더 더욱 자발적 자선이나 구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amp;nbsp;인간의 이기심을 생각할때&amp;nbsp;엄청난 규모로 불어나는 자본주의의 양극화를 해결할 길이 없다. &lt;/P&gt;
&lt;P&gt;현재의&amp;nbsp;사회적 기업 운동과 마이크로 파이낸스와 같은 것으로는 결코 메인스트림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데 신자유주의의 메인스트림의 문제가 바뀌어지지 않는다면 인류역사의 경험을 비추어볼때 인류는 큰 파멸을 경험하게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전과는 다른 시대가 요구하는 접근법과 해결책을 가져야한다.이러한 새로운 구조와 개인적인 노력이 동시에 진행되어 현재의 문제가 구조적 차원에서 해결될때 우리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양극화로 말미암은 파멸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리고 이제&amp;nbsp;지식기반 경제의 혁명의 시대에&amp;nbsp;시대를 리드하기 위해서도&amp;nbsp;새로운 기업 구조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이런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만약 한국에서 지식기반 경제를 위한 새로운 기업지배구조를 창의적으로 만들고 그러한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상장 된다면&amp;nbsp;영국이 주식회사 수권 자본주의로 자본 주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한국은 지식기반 시대에 세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국가가 될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3가지 방면에 큰 진보가 있기를 기대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첫째 정부가 시도해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영국이 주식회사 수권 자본주의로 자본주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지식기반 사회를 위한 LPS 기반의 역지주회사와 같은 중소기업 연합기업 구조를 만들어야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둘째 기업가들이 시도해야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셋째 학자들이 연구해야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서의 희년 제도가 주식회사 제도에 적용된 제대로 된 새로운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를 기대 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글로벌 스탠다드 주식회사 제도를 하부구조로 하고 지식기반 경제 시대를 열수 있는 민주적인 사람중심의&amp;nbsp;지식자본구조를 상부구조로한 공동체 자본주의를 위한 기업 지배구조가 이 시대의 대안이 되어 민족을 살리고 세계를 살릴 것을 확신하고 또 기대해본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A class=con_link href=&quot;http://news.media.daum.net/economic/industry/200710/17/khan/v18508906.html&quot; target=_blank&gt;&lt;/A&gt;&amp;nbsp;&lt;/P&gt;&lt;/DIV&gt;&lt;/B&gt;
&lt;P style=&quot;MARGIN: 20px 0px 0px&quot;&gt;&lt;B&gt;&lt;/B&gt;&amp;nbsp;&lt;/P&gt;
&lt;P style=&quot;MARGIN: 20px 0px 0px&quot;&gt;&lt;B&gt;주제&lt;/B&gt; : &lt;A href=&quot;http://news.media.daum.net/economic/industry/200710/17/khan/v18508906.html&quot; target=_blank&gt;“공동체 자본주의가 시대의 대안”&lt;/A&gt; &lt;FONT class=d_999999&gt;[미디어다음]&lt;/FONT&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신자유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자유주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희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희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공동체자본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공동체자본주의&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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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서의 희년제도와 헨리조지 이론의 차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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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사랑진리</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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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7-08-23T01:37:2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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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SPAN onclick=&quot;copyUrl('http://blog.ohmynews.com/lovetruth/trbk/144924')&quot;&gt;&lt;A href=&quot;http://blog.ohmynews.com/lovetruth/144924&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blog.ohmynews.com/lovetruth/144924&lt;/A&gt;&lt;/SPAN&gt;&lt;A href=&quot;http://blog.ohmynews.com/lovetruth/owner/entry/edit/144924&quot; target=_blank&gt;&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이상적이며 현실적인 신자유주의의 대안경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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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사랑진리</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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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7-08-11T02:01:15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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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이상적이며 현실적인 신자유주의의 대안경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A href=&quot;http://econom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7594&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econom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7594&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본주의의 비합리성을 비판하고 있지만 필자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을 무시한 구조이기 때문에 이상적인 구조가 될수 없습니다. &lt;BR&gt;&lt;BR&gt;인간의 본성을 충분히 감안한 이상적인 구조는 희년 경제구조와 같이 사유재산 제도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구조이어야 하며 동시에 토지, 주식자본과 같이 생산단위(국가, 기업 등)의 주권을 가진 생산 요소도 사유화 시켜야 하지만 특별한 장치를 만들어놓아 버블과 불로소득이 주기적으로 꺼뜨려지는 시스템이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 한가지 더해서 그 주권을 가진 생산요소를 통해 생산 단위(기업, 국가 등) 전체가 공동체 의식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lt;BR&gt;&lt;BR&gt;그런데 이렇게 토지나 주식 등에 버블과 불로소득이 한계가 미리 정의된 이상적인 구조보다 불합리하지만 불로소득과 비합리적인 버블을 조장하면서 성장하는 모델의 경제 경영 시스템이 더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고 이는 너무도 당연합니다.&lt;BR&gt;&lt;BR&gt;그렇기 때문에 더 좋은 원리의 이상적인 대안 기업이 존재하고 자체적으로 성장한다 하더라도 이 대안기업은 현재 신자유주의 자본의 성장성 보다는 전체적인 경제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갈수록 작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lt;BR&gt;&lt;BR&gt;그렇다면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상적인 대안 기업을 더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을까? 그래서 이상적인 기업이 대세가 되게 할 수 있을까요? &lt;BR&gt;&lt;BR&gt;그 해답은 성장성 있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주식자본주의 구조를 하부구조로 하고 이상적인 대안기업을 상부구조로 하는 이중구조를 가진 기업지배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lt;BR&gt;&lt;BR&gt;이세상을 이상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이상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lt;BR&gt;&lt;BR&gt;그리고 실제로 이세상의 모든 완벽한 구조물은 이중구조로 되어있습니다. DNA도 이중구조로 되어있으며 모든 생물과 자연은 양과 음의 이중구조의 통합체로 되어 있습니다.&lt;BR&gt;&lt;BR&gt;참여정부가 실수한 것 중 가장 큰 것은 정치는 좌로 경제는 우로 방향을 잡은 것입니다. 좌와 우를 유기적으로 통합했어야 하는 데 좌우를 섞어놓았는데 그렇게 해서는 더 큰 혼란만 생기게 됩니다.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설계가 필요했는데 너무 단순하게 생각해서 바른 해답을 내어놓지 못한 것입니다. &lt;BR&gt;&lt;BR&gt;상극적인 것의 진정한 통합은 창조를 이루어 내는 예를 좀더 설명합니다. 이상적인 것이 불에 해당된다면 현실적인 것은 물에 해당되듯이 서로 상극적인 성질의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서로 다른 것을 그냥 섞어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불은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물은 아래로 떨어지려 하듯이 서로 갈라지고 등지고 싸우게 됩니다. 이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것을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은 상태로 섞어놓으면 갈등과 파괴가 나타납니다.&lt;BR&gt;&lt;BR&gt;그러나 이 양극단의 통합이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 안에서는 양극단인 불과 물의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성질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생명과 창조가 나타납니다. &lt;BR&gt;자연계의 원리가 그렇고 그것을 본떠서 만드는 모든 인공물의 정교한 설계가 그렇습니다.&lt;BR&gt;&lt;BR&gt;자연계에서는 태양이라는 불이 위로 가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 큰 바다의 물을 빨아들일 때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수증기가 되어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비를 내려 대지에 적실 때 생명의 창조가 나타납니다.&lt;BR&gt;&lt;BR&gt;이와 같이 이상적인 구조와 현실적인 신자유주의의 글로벌 스탠다드 기업지배구조를 정교하게 통합시킨다면 신자유주의의 자본의 성장성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구조가 빠르게 퍼져나갈 것입니다.&lt;BR&gt;&lt;BR&gt;그런데 두가지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50%,50%씩 통합해서는 통합할 수가 없습니다. 100% 신자유주의 스탠다드와 100% 이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의 우선순위와 순서도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합니다.&lt;BR&gt;&lt;BR&gt;만약 이렇게 주기적으로 시스템적으로 버블과 불로소득을 꺼뜨리는 시스템이 현재의 신자유주의 구조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버블의 붕괴와 양극화에 의한 갈등과 체제 충돌에 따라 인류전체의 큰 위험에 처하는 수준까지 처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가 가르쳐준 자유 자본주의의 공황과 전쟁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공황과 전쟁 등의 붕괴 전까지는 인류는 결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인주의적인 노력에 대한 집중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lt;BR&gt;&lt;BR&gt;그러므로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적인 자유주의의 에너지를 꺼뜨리지 않으면서도 호혜적이되며 불합리한 버블이 시스템안에 주기적으로 자동적으로 제거되는 기업단위에 내재되어있는 정의롭고 효율적인 구조가 필요합니다. &lt;!-- update : 2007-08-10 오후 3:16:57--&gt;&lt;!-- update : --&gt;&lt;!-- 관련기사 시작 --&gt;&lt;!-- 관련기사 끝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신자유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자유주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대안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안경제&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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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시생각해보는 자본주의(1)-노동의 유연성 vs 자본의 유연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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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사랑진리</name>
	    </author>
	    <updated>2007-08-09T21:15:03Z</updated>
	    <published>2007-08-09T21:15:0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A href=&quot;http://econom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6535&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econom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6535&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랜드 사태와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에는 신자유주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동자에게 노동의 유연상이라는 말로 노동자의 기득권을 포기 당하게 한다. 기업들이 전세계적인 범위에서 벌어지는 성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하기 위해서이다. 전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은 노동의 유연성이 보장 안되면 투자를 안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으며 노동자가 기업을 통해 삶의 안정된 기반을 가지고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노동자의 권리는 이윤 창출을 위해 언제든지 해고되거나 다른 노동자로 바뀔 수 있는 상태가 정당화 된 것이다. &lt;BR&gt;&lt;BR&gt;그렇다면 이런 성장을 위해서 생산의 요소(토지, 노동, 자본) 중 자본도 이런 유연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당연한 질문이다. 최고의 효율을 내기 위해 생산의 요소 중 자본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특히 주식 자본은 어떠한가? &lt;BR&gt;&lt;BR&gt;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몇 년 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강의실 유연화(강의실 공개념이라고도 신문에서 언급했었음)에 대한 제도를 언급하고 싶다 &lt;BR&gt;&lt;BR&gt;강의실을 어떤 한 학과에서 계속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율과 상황에 따라서 탄력적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강의실을 한 학과에서 기득권으로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lt;BR&gt;&lt;BR&gt;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직접금융의 시대인 신자유주의 경제 주식회사의 주식자본은 어떠한가? 과연 주식 자본은 더 나은 효율을 위한 유연성이 적용되는가를 본질적 차원에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유연성을 가지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기득권이 포기되어야 한다. 이 기득권이 고수될 때는 결코 유연성을 가져올 수 없다.&lt;BR&gt;&lt;BR&gt;우리는 주식자본에 있는 기득권적 특성을 고찰해야 하고 그 특성을 자연스럽게 가지는 것에 대한 제고를 역사적 관점에서 할 필요가 있다.&lt;BR&gt;&lt;BR&gt;원래 주식 자본이라고 하는 것이 생긴 유래는 은행이 모험 자본에 투자할 수 없는 하이리스크한 사업에 직접 금융으로 하이리턴을 하는 발행시장에서 유래가 되었다. 예를 들어서 항해나 모험사업을 몇 년 안에 성공하면 그 투자한 자본의 몇 배나 몇 %를 보상하는 형태로 주식이 발행되었고 처음에는 유통시장이 없거나 미약했기 때문에 대부분은 프로젝트 파이낸싱처럼 투자한 사람들은 일정 기간 이후에 원금과 투자 이익을 돌려받는 형태로 투자와 그 회수가 진행되었다. 유한 시간에 유한 한정된 이익의 리턴이며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lt;BR&gt;&lt;BR&gt;그런데 주식을 유통하는 유통시장이 생기면서 소위 주식자본의 무한대의 제한 없는 이익과 같은 속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자본에 비해 몇 배의 이익이 생기는 만큼 주식자본이 부풀려지는 의제 자본적 성격과 미래가치가 현재화되는 개념도 생기게 되면서 미래가 예측하기 어려운 속성에 의해 투기성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주식자본의 비합리성이 고착화되었다. &lt;BR&gt;&lt;BR&gt;실제로 주식 자본은 자본이 처음 회사에 투입되었을 때 시장가치에 의해 하이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유한 시간동안의 최고 한도 이익이 정해지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한대의 이익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시간을 무시한 예측 불가능한 비합리성인 것이다. &lt;BR&gt;&lt;BR&gt;합리적으로 모든 경제활동이 분배되기 위해서는 자본이 처음 주식으로 투입되었을 때 유한 한정된 시간 동안의 이윤이 계산이 되어야 하고 그것이 주식자본의 몫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무한대 시간 동안 최고 이익의 한계가 없는 자본의 이익은 합리적인 것 같지만 유한 시간 안에서 합리성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lt;BR&gt;&lt;BR&gt;주식 시장에 의한 직접금융의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이 제한 없는 힘을 가지는 이유의 근본을 들여다보면 주식회사 내의 주식자본에서 제한 없는 이익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lt;BR&gt;&lt;BR&gt;그렇다면 이런 비합리적인 경제에 대안은 없는가? 성서에서 제공하는 희년 경제제도는 노동의 유연화와 자본의 유연화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답을 가지고 있다 (계속) &lt;!-- update : 2007-08-07 오후 4:09:52--&gt;&lt;!-- update : --&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신자유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자유주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노동의유연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노동의유연성&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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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시생각해보는 자본주의(2)-노동의 유연성 vs 자본의 유연성(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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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사랑진리</name>
	    </author>
	    <updated>2007-08-09T21:12:52Z</updated>
	    <published>2007-08-09T21:12:52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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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amp;nbsp;&lt;/P&gt;
&lt;P&gt;&lt;A href=&quot;http://econom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6913&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econom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6913&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시스템이 합리적이지 못할 때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비합리성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알게 되고 좀더 합리적으로 바뀌게 된다.&lt;BR&gt;&lt;BR&gt;기계 시스템 같은 것은 금방 바꿀 수 있지만 사람이 모여 만들어지는 정치 경제 시스템 등은 그것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고치는 것은 생각보다 쉽게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역사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정치, 경제 시스템은 좀더 정의롭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 &lt;BR&gt;&lt;BR&gt;그리고 자연과학과 공학의 발전은 세상을 좀더 합리적으로 만드는데 속도를 더하고 있다. 생각을 적어서 인터넷상에서 자본주의의 합리성에 대해서 빠른 속도로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시스템이 합리적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lt;BR&gt;&lt;BR&gt;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렇게 발전된 자연과학과 공학은 사회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하는데 도움을 주어 좀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인류가 생각하는 것보다 의외로 빨리 현 사회와 경제시스템의 불합리한 부분이 해소된 사회구원을 이룰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lt;BR&gt;&lt;BR&gt;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유연성의 핵심에는 기득권의 제한에 있으며 이것은 합리적이지만 상당히 불공평하고 비 합리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많은 개념이다.&lt;BR&gt;&lt;BR&gt;지난번에 언급한 것처럼 한 기업 단위에서 노동의 유연성에 상대적으로 자본의 유연성 있어야하지만 노동의 유연성만 강요하고 있으며 자본의 유연성은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다.&lt;BR&gt;&lt;BR&gt;그런데 국가 단위에서는 국제간에 자본의 유연성을 과다하게 적용하려 하고 있다. 이유는 약소국이 가지고 있는 자본의 기득권을 제한 해야지만 강대국의 자본이 자유롭게 유린할 수 있기 때문에 초국적 자본이 자본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lt;BR&gt;&lt;BR&gt;그러나 국제간의 노동의 유연성에서는 강대국들은 노동의 유연성에 철저하게 제한을 가한다. 왜냐하면 국가간 노동의 유연성을 가지게 되었을 때는 상대적으로 비싼 임금을 가진 자국민이 실업에 빠지고 국부가 흘러가게 되기 때문에 국가간 노동의 유연성은 초 저임금 영역 등에 제한 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lt;BR&gt;&lt;BR&gt;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된 IT시스템등으로 인터넷으로 저개발국의 값싼 고급 인력의 노동력이 선진국의 일자리를 빼앗아 실업을 유발하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사실 이것은 다음 글에서 언급할 과학기술이 가져올 혁명 2.0에서 자세히 언급하려고 한다.&lt;BR&gt;&lt;BR&gt;그러므로 우리는 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침입하기에 유리한 자유만을 강요하고, 국가 안에서는 자본가나 기득권이 유리한 자유만을 강요하는 정의롭지 못한 자유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lt;BR&gt;&lt;BR&gt;이번 한미 FTA에서도 우리가 모든 것을 내어준다고 하더라도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만 보장된다면 우리나라는 FTA를 해도 미국과 전혀 손해날 것이 없게 된다. 그러나 미국이 그런 FTA를 체결할 리가 없다.&lt;BR&gt;&lt;BR&gt;그렇다면 진정한 대안은 있는가? 그리고 대안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거대한 신자유주의의 자본의 비합리성을 이기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경제체제를 인류는 만들 수 있을까? 현재의 문제는 문제를 근원 적으로 분석하면 대안은 있으며 깨어있는 선각자와 수많은 민초들에 의해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듯이 경제 민주화도 반드시 이루리라고 믿는다. &lt;BR&gt;&lt;BR&gt;문제를 해결하려면 세가지 방향에서 접근을 해야 한다. 하나는 자세히 문제를 분석해서 가장 작은 단위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알아야 하고 그 작은 단위들이 서로 연결될 때의 문제와 , 최종적으로 전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통합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작은 단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근원을 해결 할 때 근본적인 해결을 볼 수 있다. &lt;BR&gt;&lt;BR&gt;신자유주의 전체 시스템에서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생산의 최소단위인 기업 내에서 비합리성이 제거된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구조가 되어야 자본주의의 현재의 비합리적이고 몰 인간적인 부분이 해결되고 민주화되고 합리적인 경제가 될 것이다.&lt;BR&gt;&lt;BR&gt;우리에게는 이런 구조를 만들 수 있는 핵심적인 개념이 필요한데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희년 사상이 해답이 될수 있다. 이 정의롭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경제개념은 자세히 모든 면을 살핀다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다.&lt;BR&gt;&lt;BR&gt;성서에 나와 있는 희년 경제제도는 당시의 경제 시대가 토지 생산력을 기반으로 한 토지의 시대이지만 생산 및 분배구조가 놀랍도록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며 정의롭게 설계되어있다. 그런데 지금의 시대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시대이므로 이 개념을 현재에 맞게 상황화 하여 적용시켜야 한다. 실제로 홍준표의원의 반값아파트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일부는 성서에 나와있는 토지 정책의 핵심개념을 응용하여 적용한 것이다. &lt;BR&gt;&lt;BR&gt;이 희년 경제제도의 개념을 기업 구조에 적용 시킨다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정의롭게 설계된 기업이 되고 현재 신자유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업연합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으로 믿는다. &lt;!-- update : 2007-08-09 오전 9:58:12--&gt;&lt;!-- update : --&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신자유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자유주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노동의유연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노동의유연성&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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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시 생각해보는 자본주의(3)- 신자유주의의 대안경제개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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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사랑진리</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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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7-08-09T20:08:46Z</updated>
	    <published>2007-08-09T20:08:4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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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amp;nbsp;&lt;/P&gt;
&lt;P&gt;&lt;A href=&quot;http://econom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7292&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econom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7292&lt;/A&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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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본주의 경제가 막 시작될 때 여러 학자들이 경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론을 내어놓으며 자본주의 경제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리카르도라는 경제학자도 당시 왕족과 귀족의 지주계급 대신에 새롭게 떠오르는 상공인 자본가층을 위한 경제학 이론을 만들었다. 그가 내어놓은 차액지대론은 지주계층이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공동노력의 산물을 빼앗아 가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론은 많은 경제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모든 경제 시스템 상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lt;BR&gt;&lt;BR&gt;그것을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lt;BR&gt;&lt;BR&gt;생산의 3요소(토지, 노동, 자본)의 주인이 되는 지주, 노동자, 자본가가 있다. 토지 주인인 지주에게 여러 명의 자본가가 돈을 주고 땅을 빌리고 자본가는 여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해서 경작을 시작하는데 토지의 비옥함이 똑같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지주에게 땅을 빌리려는 자본가가 충분히 있어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고 가정한다.&lt;BR&gt;&lt;BR&gt;이 상태에서 1번 토지를 임대한 A자본가는 노동자를 고용해 함께 아주 열심히 일해 땅을 비옥하게 해서 10만 원어치의 밀을 수확했는데 이것은 평균 수확량인 7만원보다 많은 수확량이다. 2번 토지를 임대한 B자본가는 7만 원어치의 밀을 수확했고 3번 토지에서는 C라는 자본가가 7만 원어치의 밀을 수확했다. &lt;BR&gt;&lt;BR&gt;그런데 첫해에 A, B, C 모두 지대(땅 임대료)가 2만원, 임금이 1만원, 기타비용이 1만원이라고 전체 비용이 같이 들었다고 한다면 A자본가는 10만원에서 비용 4만원을 뺀 6만원의 이익을 얻었고, B자본가도 3만원, C자본가도 3만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lt;BR&gt;&lt;BR&gt;그런데 머리 좋은 지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시장이 있으므로 그 다음해부터는 지대를 1만원에서 4만원으로 올려 받는다. 왜냐하면 땅을 빌리는 자본가에게 이익을 평균적으로 3만원의 이익을 보장하면 땅을 빌리려는 사람을 시장을 통해서 많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추가로 더 받을 수 있는 지대를 &quot;차액 지대&quot;라고 하는데 이 차액 지대는 사실 자본가와 노동가가 힘을 합쳐서 노력한 결과인데 그 결과를 토지의 주인이 다 가져가게 되는 합리적이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장기적인 목표 아래 열심히 일을 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lt;BR&gt;&lt;BR&gt;그런데 이런 차액지대가 생기는 원리를 보면 &quot;생산요소간의 희소성의 차이(공급의 탄력성의 차이)&quot;와 생산 요소들이 모여 형성되는 생산단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생산요소에 의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생산단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생산 요소는 그 가지고 있는 권력에 의해 이익이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생산 요소가 된다.&lt;BR&gt;&lt;BR&gt;이 문제는 희소하기 때문에 생기는 명품 효과나 튤립형 버블(이전부터 버블은 있었지만 세계 최초의 버블이라고 정의된 네덜란드의 튤립의 희소성 때문에 생긴 버블)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버블에서 생기는 불로소득에 대한 것도 문제지만 이런 것보다 더 경제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전체 경제 시스템 중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주체(즉 토지 기반 경제 시대의 토지나 자본주의 시대의 기업)에서 지속적으로 생기는 불로소득 및 비합리적인 차액지대 효과는 전체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고 생산 요소에 대한 비합리적인 투기가 발생하며, 독점에 의한 심각한 폐해가 나타나게 된다.&lt;BR&gt;&lt;BR&gt;그래서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이지만 새로운 용어를 정의하고자 한다.&lt;BR&gt;&lt;BR&gt;1. 기축 생산 요소(Key Factor of Production)의 정의(필자의 정의임)&lt;BR&gt;&lt;BR&gt;기축생산요소는 이 생산요소를 가지게 되면 이 생산요소에 쌓이는 이윤과 이 이윤을 바라는 미래가치의 거래로 말미암은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생산요소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지대효과를 가지는 생산 요소라고도 할 수 있다.&lt;BR&gt;&lt;BR&gt;1) 지본주의 시대의 기축 생산요소.&lt;BR&gt;&lt;BR&gt;자본주의 전 시대의 토지 생산력이 중요했을 때의 경제의 3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개념이 확실히 적용된다. 토지에서 사람이 자본으로 농기구를 사서 농사를 지었을 때 토지는 토지의 생산력이 농산물이나 축산물을 자라게 하고, 사람은 노동을 하며, 자본은 농기를 사서 생산력을 증대시키므로 각각의 기여분이 확실하게 나타난다.&lt;BR&gt;&lt;BR&gt;이 생산시스템에서 분배가 일어날 때는 각 기여한 부분만큼 분배가 노동시장에서, 자본시장에서, 토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거래가 일어나고 가격이 형성될 수 있다. &lt;BR&gt;&lt;BR&gt;그런데 이 생산요소를 각 시장에서 거래가 되는 것을 시뮬레이션해보면 노동 시장과 자본 시장은 공급이 이론적으로, 일반적으로 탄력적으로 공급될 수 있다. 그러나 토지는 시간이 가서 인구가 늘어나고 자본이 많이 생기면 생길수록 상대적으로 더욱 희소해지게 된다. 또한 토지는 생산단위의 주권을 정의하는 생산요소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토지에 계속해서 이익과 불로소득이 쌓이게 되어있다. 이런 토지의 소유권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허용하면 미래의 수익에 대한 기대 때문에 더욱 가수요(버블)가 생기게 된다.&lt;BR&gt;&lt;BR&gt;2)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기축 생산요소&lt;BR&gt;&lt;BR&gt;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있을 때 이 기업의 생산의 3요소를 주식자본, 일반 자본, 노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가상 토지인 주식자본에서 노동과 자본을 끌어들여 생산을 하게 될 때 주식 자본은 기축생산요소(Key Factor of Production)가 되어 토지 자본과 똑같은 효과가 일어나게 된다.&lt;BR&gt;&lt;BR&gt;3) 기축생산요소(Key factor of production)의 발전&lt;BR&gt;&lt;BR&gt;3-1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기축 생산요소 관계&lt;BR&gt;&lt;BR&gt;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놓고 볼 때 금융자본의 산업자본의 주기축생산요소(Primary Key factor of production)가 되며 산업자본은 금융자본의 부기축생산요소(secondary key factor of production)가 됨을 알 수 있게 된다.&lt;BR&gt;&lt;BR&gt;3-2 기축통화와 다른 통화와의 관계&lt;BR&gt;기축 통화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 다른 통화에 대해 세뇨리지 효과를 누리게 된다. &lt;BR&gt;&lt;BR&gt;3-3 네트워크의 기축생산요소 관계&lt;BR&gt;&lt;BR&gt;암웨이와 같은 네트웍 기업이나 큰 피라미드 조직에서 나타나게 되는 조직의 관계는 네트웍 상위 에 있는 포지션의 위치는 전체 생산에서 기축생산요소(Key factor of production)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포지션에 이익이 축적되고 쌓이며 불로 소득이 쌓이게 됨을 알 수 있다.&lt;BR&gt;&lt;BR&gt;3-4. 지식 자본 시대의 지적자본(Intellectual Capital)은 기축 생산요소가 될 수 있다.&lt;BR&gt;&lt;BR&gt;지식 자본이 강력할 때는 자본과 사람이 종속되고 지식 자본에 이익이 축적되고 불로소득이 쌓이게 됨을 알 수 있다.&lt;BR&gt;&lt;BR&gt;&lt;BR&gt;2. 모든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과 폭발의 근원&lt;BR&gt;&lt;BR&gt;인류 역사를 보면 기축 생산요소를 새롭게 계속 만들어내면서 토지의 집중, 자본의 집중, 금융자본의 집중, 지식의 집중을 유발하는 시스템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토지 없는 농노가 생기고, 노동의 유연성에 의한 실업과 양극화, 저성장하지만 기업의 이윤은 증가하고 금융자본으로 이익이 집중되어 양극화가 심화되는 문제를 낳고 있다.&lt;BR&gt;&lt;BR&gt;그리고 경제 시스템에서 생기는 불합리의 가장 큰 이유는 이 기축 생산요소의 자유 거래에 따른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이런 기축 생산 요소의 자유거래는 분배의 불균형과 양극화 그리고 버블을 만들어내면서 시스템을 파괴할 때까지 에너지를 폭발시킨다.&lt;BR&gt;&lt;BR&gt;3. 문제의 해결책&lt;BR&gt;&lt;BR&gt;우가 있으면 항상 좌가 있어왔다. 만약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기축 생산요소를 국유화, 공유화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그 시스템은 기축 생산요소를 사유화하는 시스템에 비해 에너지가 떨어져 궁극적으로는 경쟁에서 뒤지게 됨을 논리적으로 알 수 있고 역사발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개인 사유재산을 부인하는 공산주의는 역사상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기축 생산요소까지 완전히 사유화하여 자유롭게 사고팔면 소득 불균형과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 생긴다. &lt;BR&gt;&lt;BR&gt;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기축 생산요소를 사유화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정의롭게 나누어 주되 각 사람에게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며 독점을 막는 동시에 시장의 가치 측정이 일어나도록 하여 기축 생산요소에 대한 개인적인 인센티브의 동기를 꺼뜨리지 않도록 하는 정의롭고도 효율적인 특수 메커니즘의 적용이 필요하다.&lt;BR&gt;&lt;BR&gt;정의롭고 효율적인 특수메커니즘이 잘 설계되어있는 희년 토지제도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성서의 희년 토지 제도에는 토지의 공유와 사유의 절묘한 결합이 있다. 이에 비해 중국과 같은 나라는 국가가 토지를 소유하고 이것을 개인에게 임대하는 토지 공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중앙집권화한 시스템으로, 토지의 사유화가 이루어진 희년 토지 제도보다 시스템적으로 발전이 덜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서의 희년 제도는 토지 공개념보다 시스템적으로 훨씬 강력한 개념이다.&lt;BR&gt;&lt;BR&gt;먼저 성서의 희년 토지 제도가 어떻게 완전 사유를 하면서도 공유의 장점을 가질 수 있는 지를 토지의 소유권의 개념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소유권은 사용권, 수익권, 처분권으로 나누어지는데, 희년 토지 제도에서는 처분권을 제한하고 가족별로 영구 사용권을 주고 한정된 기간(희년 50년 단위, 안식년 7년 단위 등) 만큼 사용권을 팔 수 있도록 했다. 소유권이 있다면 소유권을 팔 권리도 있을 텐데 소유권을 팔 권리를 주지 않은 것이다. 영구 사용권과 이것을 한정된 기간에 사용권을 매매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수익권을 개인들에게 준 것이다.&lt;BR&gt;&lt;BR&gt;시스템이 강력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구성요소가 성숙되고 강력한 상태에서 완전한 자율성을 가지고 각 요소의 최대한의 자기 실현과 공동의 선의 최대한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구조여야 하는데 희년 사상의 경제 제도는 이런 요소를 완벽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각 개인에게 토지의 영구 사용권을 주어 자율성과 최대한의 자아 실현을 이룰 수 있도록 했으며 시장의 기능에 의해 일할 수 있는 토지를 얼마든지 늘려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토지를 매집할 때 불로소득의 수단이 될 수 있는 토지의 독점을 근원적으로 막았으며 개인의 생존권의 기본이 되는 토지를 빼앗을 수도 빼앗기지도 못하도록 하였다.&lt;BR&gt;&lt;BR&gt;성서의 희년 구조가 실제로 작동될 때의 예를 시나리오를 만들어 시뮬레이션 해보면 희년 구조의 장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lt;BR&gt;&lt;BR&gt;A라는 패밀리는 영구 사용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손이 많지 않았던 관계로 일부를 시장에 내어놓고 팔게 되었다. 성서에서는 소출에 근거해 거래하고 속이지 말고 팔라고 했는데 성서가 시장의 기능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출이 있을 때 소출에 근거해서 지대 200이 나온다고 하자. 물론 가격은 시장 에서 형성이 된 것이다. 이 지대 2000을 최대 50년만큼 곱한 가격으로 유통할 수 있다. &lt;BR&gt;&lt;BR&gt;이런 형성된 가격으로 B라는 사람은 10000(지대 200 곱하기 50)의 가격으로 토지의 사용권을 구매해서 토지 위에서 열심히 노동을 하고 이후에 10년 정도 일하고 나서 이것을 또 시장을 통해서 팔 수 있다. 마치 권리금을 파는 것과 같다. B라는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토지 더 많은 농산물을 얻기 위해 토지 가격을 올리기 위해 일하게 된다. B는 최선을 다해서 10년 동안 일을 해서 소출을 올려 시장가치 지대 1000이 나오게 된다. 이것을 B는 C라는 사람에게 지대 1000 곱하기 40의 가격으로 팔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희년(50년) 가까이 갈수록 토지가 유통되다가 희년 가까이 올수록 시장의 거품이 꺼지게 된다. &lt;BR&gt;&lt;BR&gt;왜냐하면 60년이라는 긴 기간이 있을 때는 예상 수익치에 의한 거품이 있을 수 있으나 1년 남은 땅에는 거품이 꺼진 실제 소출 가격으로 지대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체 유통 시장에서의 토지 지대 가격은 거품이 꺼진 가격으로 낮아져 거품에 의한 피해가 최소화된다. 거품이 생기지만 거품의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다. 그리고 희년이 되면 토지 사용 기산의 만료가 되어 늘어난 소출의 지대가격을 가진 땅이 다시 주인에게 돌아간다. 자본주의에서 불로소득과 거품의 근원이던 땅이 희년의 경제 제도에서는 땅을 통한 부의 재분배 효과가 나타나며 동시에 수고한 대로 토지의 지대 증가분을 가져 갈 수 있게 된다. &lt;BR&gt;&lt;BR&gt;이런 토지 제도는 버블이 주기적 자동적 시스템적으로 제거되면 개인으로 하여금 최대한 열심히 노동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점 외에 3가지 면에서 장점이 있다. &lt;BR&gt;&lt;BR&gt;첫 번째, 중압집중적인 복지 대신에 개인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팔아 복지를 이룰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난한 사람과 자손이 없는 약자가 토지를 긴급하게 유통함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땅에 가서 일할 수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엄청난 장점이 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법인세를 줄이고 개인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세금을 줄이는 것이 대세여서 복지 기금이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자율적 복지는 신자유주의 복지의 대안이 될 수 있다.&lt;BR&gt;&lt;BR&gt;두 번째, 생산의 원천인 토지를 통한 부의 재분배가 일어난다. &lt;BR&gt;&lt;BR&gt;세 번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토지를 모든 사람이 소유한 자유자로 평생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토지기반시대 토지가 없었던 농부들은 소작농, 농노였다. 이것이 현대자본주의에 와서는 일부 소수의 자본가 이외에 나머지 근로자들이 자본의 노예 상태로 사는 점이 있다.&lt;BR&gt;&lt;BR&gt;이에 비해 현재의 자본주의 구조는 불로소득과 거품을 촉진하며 성장을 촉진하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구조적 모순 속에서 불로소득이 촉진되어 자본의 집중이 심화되면 원격지 자본의 지배에 의한 인간성 상실로 연결되고 1주 1표제의 주식회사 제도에 의해 자본 독재, 곧 소수에 의한 경제적 지배가 심화될 것이다.&lt;BR&gt;&lt;BR&gt;그러므로 우리는 희년 토지 제도의 핵심적인 개념을 주식회사제도에 적용시킨 새로운 주식회사제도와 각 경제의 생산단위에 적용시킨 자율적이면서도 통합적이며 불로소득이 주기적으로 꺼트려지는 지속 가능한 경제시스템을 재설계하여야 한다. &lt;!-- update : 2007-08-09 오전 10:08:43--&gt;&lt;!-- update : --&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신자유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자유주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대안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안경제&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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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시 생각해보는 자본주의(3)-신자유주의의 대안경제개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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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사랑진리</name>
	    </author>
	    <updated>2007-08-09T20:06:49Z</updated>
	    <published>2007-08-09T20:06:4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오마이뉴스에 연재되는 기사입니다.&lt;/P&gt;
&lt;P&gt;&lt;A href=&quot;http://econom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7292&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econom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7292&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자본주의 경제가 막 시작될 때 여러 학자들이 경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론을 내어놓으며 자본주의 경제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리카르도라는 경제학자도 당시 왕족과 귀족의 지주계급 대신에 새롭게 떠오르는 상공인 자본가층을 위한 경제학 이론을 만들었다. 그가 내어놓은 차액지대론은 지주계층이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의 공동노력의 산물을 빼앗아 가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론은 많은 경제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모든 경제 시스템 상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lt;BR&gt;&lt;BR&gt;그것을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lt;BR&gt;&lt;BR&gt;생산의 3요소(토지, 노동, 자본)의 주인이 되는 지주, 노동자, 자본가가 있다. 토지 주인인 지주에게 여러 명의 자본가가 돈을 주고 땅을 빌리고 자본가는 여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해서 경작을 시작하는데 토지의 비옥함이 똑같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지주에게 땅을 빌리려는 자본가가 충분히 있어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고 가정한다.&lt;BR&gt;&lt;BR&gt;이 상태에서 1번 토지를 임대한 A자본가는 노동자를 고용해 함께 아주 열심히 일해 땅을 비옥하게 해서 10만 원어치의 밀을 수확했는데 이것은 평균 수확량인 7만원보다 많은 수확량이다. 2번 토지를 임대한 B자본가는 7만 원어치의 밀을 수확했고 3번 토지에서는 C라는 자본가가 7만 원어치의 밀을 수확했다. &lt;BR&gt;&lt;BR&gt;그런데 첫해에 A, B, C 모두 지대(땅 임대료)가 2만원, 임금이 1만원, 기타비용이 1만원이라고 전체 비용이 같이 들었다고 한다면 A자본가는 10만원에서 비용 4만원을 뺀 6만원의 이익을 얻었고, B자본가도 3만원, C자본가도 3만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lt;BR&gt;&lt;BR&gt;그런데 머리 좋은 지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시장이 있으므로 그 다음해부터는 지대를 1만원에서 4만원으로 올려 받는다. 왜냐하면 땅을 빌리는 자본가에게 이익을 평균적으로 3만원의 이익을 보장하면 땅을 빌리려는 사람을 시장을 통해서 많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추가로 더 받을 수 있는 지대를 &quot;차액 지대&quot;라고 하는데 이 차액 지대는 사실 자본가와 노동가가 힘을 합쳐서 노력한 결과인데 그 결과를 토지의 주인이 다 가져가게 되는 합리적이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장기적인 목표 아래 열심히 일을 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lt;BR&gt;&lt;BR&gt;그런데 이런 차액지대가 생기는 원리를 보면 &quot;생산요소간의 희소성의 차이(공급의 탄력성의 차이)&quot;와 생산 요소들이 모여 형성되는 생산단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생산요소에 의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생산단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생산 요소는 그 가지고 있는 권력에 의해 이익이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생산 요소가 된다.&lt;BR&gt;&lt;BR&gt;이 문제는 희소하기 때문에 생기는 명품 효과나 튤립형 버블(이전부터 버블은 있었지만 세계 최초의 버블이라고 정의된 네덜란드의 튤립의 희소성 때문에 생긴 버블)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버블에서 생기는 불로소득에 대한 것도 문제지만 이런 것보다 더 경제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전체 경제 시스템 중에서 생산을 담당하는 주체(즉 토지 기반 경제 시대의 토지나 자본주의 시대의 기업)에서 지속적으로 생기는 불로소득 및 비합리적인 차액지대 효과는 전체의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고 생산 요소에 대한 비합리적인 투기가 발생하며, 독점에 의한 심각한 폐해가 나타나게 된다.&lt;BR&gt;&lt;BR&gt;그래서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이지만 새로운 용어를 정의하고자 한다.&lt;BR&gt;&lt;BR&gt;1. 기축 생산 요소(Key Factor of Production)의 정의(필자의 정의임)&lt;BR&gt;&lt;BR&gt;기축생산요소는 이 생산요소를 가지게 되면 이 생산요소에 쌓이는 이윤과 이 이윤을 바라는 미래가치의 거래로 말미암은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생산요소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지대효과를 가지는 생산 요소라고도 할 수 있다.&lt;BR&gt;&lt;BR&gt;1) 지본주의 시대의 기축 생산요소.&lt;BR&gt;&lt;BR&gt;자본주의 전 시대의 토지 생산력이 중요했을 때의 경제의 3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개념이 확실히 적용된다. 토지에서 사람이 자본으로 농기구를 사서 농사를 지었을 때 토지는 토지의 생산력이 농산물이나 축산물을 자라게 하고, 사람은 노동을 하며, 자본은 농기를 사서 생산력을 증대시키므로 각각의 기여분이 확실하게 나타난다.&lt;BR&gt;&lt;BR&gt;이 생산시스템에서 분배가 일어날 때는 각 기여한 부분만큼 분배가 노동시장에서, 자본시장에서, 토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거래가 일어나고 가격이 형성될 수 있다. &lt;BR&gt;&lt;BR&gt;그런데 이 생산요소를 각 시장에서 거래가 되는 것을 시뮬레이션해보면 노동 시장과 자본 시장은 공급이 이론적으로, 일반적으로 탄력적으로 공급될 수 있다. 그러나 토지는 시간이 가서 인구가 늘어나고 자본이 많이 생기면 생길수록 상대적으로 더욱 희소해지게 된다. 또한 토지는 생산단위의 주권을 정의하는 생산요소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토지에 계속해서 이익과 불로소득이 쌓이게 되어있다. 이런 토지의 소유권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허용하면 미래의 수익에 대한 기대 때문에 더욱 가수요(버블)가 생기게 된다.&lt;BR&gt;&lt;BR&gt;2)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기축 생산요소&lt;BR&gt;&lt;BR&gt;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있을 때 이 기업의 생산의 3요소를 주식자본, 일반 자본, 노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가상 토지인 주식자본에서 노동과 자본을 끌어들여 생산을 하게 될 때 주식 자본은 기축생산요소(Key Factor of Production)가 되어 토지 자본과 똑같은 효과가 일어나게 된다.&lt;BR&gt;&lt;BR&gt;3) 기축생산요소(Key factor of production)의 발전&lt;BR&gt;&lt;BR&gt;3-1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기축 생산요소 관계&lt;BR&gt;&lt;BR&gt;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놓고 볼 때 금융자본의 산업자본의 주기축생산요소(Primary Key factor of production)가 되며 산업자본은 금융자본의 부기축생산요소(secondary key factor of production)가 됨을 알 수 있게 된다.&lt;BR&gt;&lt;BR&gt;3-2 기축통화와 다른 통화와의 관계&lt;BR&gt;기축 통화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 다른 통화에 대해 세뇨리지 효과를 누리게 된다. &lt;BR&gt;&lt;BR&gt;3-3 네트워크의 기축생산요소 관계&lt;BR&gt;&lt;BR&gt;암웨이와 같은 네트웍 기업이나 큰 피라미드 조직에서 나타나게 되는 조직의 관계는 네트웍 상위 에 있는 포지션의 위치는 전체 생산에서 기축생산요소(Key factor of production)이 됨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포지션에 이익이 축적되고 쌓이며 불로 소득이 쌓이게 됨을 알 수 있다.&lt;BR&gt;&lt;BR&gt;3-4. 지식 자본 시대의 지적자본(Intellectual Capital)은 기축 생산요소가 될 수 있다.&lt;BR&gt;&lt;BR&gt;지식 자본이 강력할 때는 자본과 사람이 종속되고 지식 자본에 이익이 축적되고 불로소득이 쌓이게 됨을 알 수 있다.&lt;BR&gt;&lt;BR&gt;&lt;BR&gt;2. 모든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과 폭발의 근원&lt;BR&gt;&lt;BR&gt;인류 역사를 보면 기축 생산요소를 새롭게 계속 만들어내면서 토지의 집중, 자본의 집중, 금융자본의 집중, 지식의 집중을 유발하는 시스템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토지 없는 농노가 생기고, 노동의 유연성에 의한 실업과 양극화, 저성장하지만 기업의 이윤은 증가하고 금융자본으로 이익이 집중되어 양극화가 심화되는 문제를 낳고 있다.&lt;BR&gt;&lt;BR&gt;그리고 경제 시스템에서 생기는 불합리의 가장 큰 이유는 이 기축 생산요소의 자유 거래에 따른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이런 기축 생산 요소의 자유거래는 분배의 불균형과 양극화 그리고 버블을 만들어내면서 시스템을 파괴할 때까지 에너지를 폭발시킨다.&lt;BR&gt;&lt;BR&gt;3. 문제의 해결책&lt;BR&gt;&lt;BR&gt;우가 있으면 항상 좌가 있어왔다. 만약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기축 생산요소를 국유화, 공유화하는 시스템이 있다면 그 시스템은 기축 생산요소를 사유화하는 시스템에 비해 에너지가 떨어져 궁극적으로는 경쟁에서 뒤지게 됨을 논리적으로 알 수 있고 역사발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개인 사유재산을 부인하는 공산주의는 역사상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 기축 생산요소까지 완전히 사유화하여 자유롭게 사고팔면 소득 불균형과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 생긴다. &lt;BR&gt;&lt;BR&gt;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기축 생산요소를 사유화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정의롭게 나누어 주되 각 사람에게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며 독점을 막는 동시에 시장의 가치 측정이 일어나도록 하여 기축 생산요소에 대한 개인적인 인센티브의 동기를 꺼뜨리지 않도록 하는 정의롭고도 효율적인 특수 메커니즘의 적용이 필요하다.&lt;BR&gt;&lt;BR&gt;정의롭고 효율적인 특수메커니즘이 잘 설계되어있는 희년 토지제도를 설명해보고자 한다. 성서의 희년 토지 제도에는 토지의 공유와 사유의 절묘한 결합이 있다. 이에 비해 중국과 같은 나라는 국가가 토지를 소유하고 이것을 개인에게 임대하는 토지 공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중앙집권화한 시스템으로, 토지의 사유화가 이루어진 희년 토지 제도보다 시스템적으로 발전이 덜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서의 희년 제도는 토지 공개념보다 시스템적으로 훨씬 강력한 개념이다.&lt;BR&gt;&lt;BR&gt;먼저 성서의 희년 토지 제도가 어떻게 완전 사유를 하면서도 공유의 장점을 가질 수 있는 지를 토지의 소유권의 개념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소유권은 사용권, 수익권, 처분권으로 나누어지는데, 희년 토지 제도에서는 처분권을 제한하고 가족별로 영구 사용권을 주고 한정된 기간(희년 50년 단위, 안식년 7년 단위 등) 만큼 사용권을 팔 수 있도록 했다. 소유권이 있다면 소유권을 팔 권리도 있을 텐데 소유권을 팔 권리를 주지 않은 것이다. 영구 사용권과 이것을 한정된 기간에 사용권을 매매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수익권을 개인들에게 준 것이다.&lt;BR&gt;&lt;BR&gt;시스템이 강력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구성요소가 성숙되고 강력한 상태에서 완전한 자율성을 가지고 각 요소의 최대한의 자기 실현과 공동의 선의 최대한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구조여야 하는데 희년 사상의 경제 제도는 이런 요소를 완벽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각 개인에게 토지의 영구 사용권을 주어 자율성과 최대한의 자아 실현을 이룰 수 있도록 했으며 시장의 기능에 의해 일할 수 있는 토지를 얼마든지 늘려갈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토지를 매집할 때 불로소득의 수단이 될 수 있는 토지의 독점을 근원적으로 막았으며 개인의 생존권의 기본이 되는 토지를 빼앗을 수도 빼앗기지도 못하도록 하였다.&lt;BR&gt;&lt;BR&gt;성서의 희년 구조가 실제로 작동될 때의 예를 시나리오를 만들어 시뮬레이션 해보면 희년 구조의 장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lt;BR&gt;&lt;BR&gt;A라는 패밀리는 영구 사용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손이 많지 않았던 관계로 일부를 시장에 내어놓고 팔게 되었다. 성서에서는 소출에 근거해 거래하고 속이지 말고 팔라고 했는데 성서가 시장의 기능을 인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출이 있을 때 소출에 근거해서 지대 200이 나온다고 하자. 물론 가격은 시장 에서 형성이 된 것이다. 이 지대 2000을 최대 50년만큼 곱한 가격으로 유통할 수 있다. &lt;BR&gt;&lt;BR&gt;이런 형성된 가격으로 B라는 사람은 10000(지대 200 곱하기 50)의 가격으로 토지의 사용권을 구매해서 토지 위에서 열심히 노동을 하고 이후에 10년 정도 일하고 나서 이것을 또 시장을 통해서 팔 수 있다. 마치 권리금을 파는 것과 같다. B라는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토지 더 많은 농산물을 얻기 위해 토지 가격을 올리기 위해 일하게 된다. B는 최선을 다해서 10년 동안 일을 해서 소출을 올려 시장가치 지대 1000이 나오게 된다. 이것을 B는 C라는 사람에게 지대 1000 곱하기 40의 가격으로 팔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희년(50년) 가까이 갈수록 토지가 유통되다가 희년 가까이 올수록 시장의 거품이 꺼지게 된다. &lt;BR&gt;&lt;BR&gt;왜냐하면 60년이라는 긴 기간이 있을 때는 예상 수익치에 의한 거품이 있을 수 있으나 1년 남은 땅에는 거품이 꺼진 실제 소출 가격으로 지대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체 유통 시장에서의 토지 지대 가격은 거품이 꺼진 가격으로 낮아져 거품에 의한 피해가 최소화된다. 거품이 생기지만 거품의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다. 그리고 희년이 되면 토지 사용 기산의 만료가 되어 늘어난 소출의 지대가격을 가진 땅이 다시 주인에게 돌아간다. 자본주의에서 불로소득과 거품의 근원이던 땅이 희년의 경제 제도에서는 땅을 통한 부의 재분배 효과가 나타나며 동시에 수고한 대로 토지의 지대 증가분을 가져 갈 수 있게 된다. &lt;BR&gt;&lt;BR&gt;이런 토지 제도는 버블이 주기적 자동적 시스템적으로 제거되면 개인으로 하여금 최대한 열심히 노동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점 외에 3가지 면에서 장점이 있다. &lt;BR&gt;&lt;BR&gt;첫 번째, 중압집중적인 복지 대신에 개인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팔아 복지를 이룰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가난한 사람과 자손이 없는 약자가 토지를 긴급하게 유통함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땅에 가서 일할 수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엄청난 장점이 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법인세를 줄이고 개인의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세금을 줄이는 것이 대세여서 복지 기금이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자율적 복지는 신자유주의 복지의 대안이 될 수 있다.&lt;BR&gt;&lt;BR&gt;두 번째, 생산의 원천인 토지를 통한 부의 재분배가 일어난다. &lt;BR&gt;&lt;BR&gt;세 번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토지를 모든 사람이 소유한 자유자로 평생을 살 수 있다는 점이다. 토지기반시대 토지가 없었던 농부들은 소작농, 농노였다. 이것이 현대자본주의에 와서는 일부 소수의 자본가 이외에 나머지 근로자들이 자본의 노예 상태로 사는 점이 있다.&lt;BR&gt;&lt;BR&gt;이에 비해 현재의 자본주의 구조는 불로소득과 거품을 촉진하며 성장을 촉진하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구조적 모순 속에서 불로소득이 촉진되어 자본의 집중이 심화되면 원격지 자본의 지배에 의한 인간성 상실로 연결되고 1주 1표제의 주식회사 제도에 의해 자본 독재, 곧 소수에 의한 경제적 지배가 심화될 것이다.&lt;BR&gt;&lt;BR&gt;그러므로 우리는 희년 토지 제도의 핵심적인 개념을 주식회사제도에 적용시킨 새로운 주식회사제도와 각 경제의 생산단위에 적용시킨 자율적이면서도 통합적이며 불로소득이 주기적으로 꺼트려지는 지속 가능한 경제시스템을 재설계하여야 한다. &lt;!-- update : 2007-08-09 오전 10:08:43--&gt;&lt;!-- update : --&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신자유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자유주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희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희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대안기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안기업&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대안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안경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희년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희년경제&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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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약자의 기독교, 섬김의 기독교 (2)-진정한 선교 기업이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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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사랑진리</name>
	    </author>
	    <updated>2007-08-03T15:57:52Z</updated>
	    <published>2007-08-03T15:57:5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justify&gt;&lt;STRONG&gt;약자의 기독교, 섬김의 기독교 라는 글에 나오는 교회가 성육신화산 선교 기업의 정의에 대한 질문이 있어서 뉴스앤조이에 기고했던 글을 몇가지 수정해서 올립니다.&lt;/STRONG&gt;&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A href=&quot;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812&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812&lt;/A&gt;&lt;/STRONG&gt;&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교회가 기업으로 성육신한 선교 기업(예수 기업)의 정의&lt;/STRONG&gt;&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선교 기업은 선교라는 교회적인 영역과 기업이라는 다른 두 영역을 하나로 묶는 말입니다. 기업은 돈을 버는 영역이며, 선교는 이타적인 사랑을 전하는 영역입니다. 이렇게 다른 두 영역은 하나로 묶으면 게이트웨이적인 특성을 가집니다. 그런데 게이트웨이 중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는 완벽한 게이트웨이적인 특성을 가진 대표적인 존재입니다. &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나라라는 도메인과 죄 많은 인간이라는 도메인 두 개를 연결시키기 위해 하나님이면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을 보면 선교 기업이 어떠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을 섬기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세상을 구원할 선교 기업 패러다임을 예수 그리스도의 게이트웨이적인 특성과 선교 기업의 특성을 연결하여 설명하고자 합니다. &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완전한 인간이셨습니다. 50% 인간, 50% 하나님이었으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신 인간의 구세주가 아니라 괴물이었을 것입니다. &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그러므로 선교 기업도 완전히 100% 선교이면서 100% 기업적이어야 합니다. 상호 모순적인 A와 B가 있을 때 A이면서 동시에 B라고 하는 것은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현재 가장 유명한 경영학자 중의 하나인 Jim Collins가 그의 저서 &lt;Built To Last&gt;에서 위대한 기업의 공통점은 이 'And'의 천재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언급했습니다. 예를 들어 위대한 기업은 '이윤 추구를 초월한 목적' And '실질적 이윤 추구', '핵심 이념에 대한 보수 경향' And '활기 넘치는 변화와 개혁'과 같은 상반된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고 이룹니다. &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많은 관심을 끌었던 블루오션 방법론도 'And'를 연결시킨 것입니다. 전통적인 경영학에서는 현재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그 다음에 새로운 시장을 찾고자 한 것에 비해, 현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과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을 찾는 것을 'And'로 묶어서 생각한 것입니다. &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이와 같이 선교 기업도 선교적인 동시에 기업적인 생각을 하면서, 이 모두를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교 기업의 선교적인 것과 기업적인 것은 불과 물 같이 서로 다른 성질의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서로 다른 것을 그냥 섞어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상화하택이란 사자 성어는 위에는 불이요, 아래는 못이라는 뜻으로 서로 갈라지고 등지고 싸우는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불은 위로 올라가려고 하고 물은 아래로 떨어지려 합니다. 이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것을 정교하게 설계되지 않은 상태로 섞어놓으면 갈등과 파괴가 나타납니다.&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그에 비해 이세상의 모든 창조는 하나님의 '이타적 사랑'이라는 원리로 정교하게 설계된 것입니다. 정교한 시스템 안에서 불과 물의 서로 극단적으로 다른 성질이 사랑으로 서로 상호작용할 때 생명과 창조가 나타납니다. 태양이라는 불이 위로 가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 큰 바다의 물을 빨아들일 때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비를 내려 대지에 적실 때 생명의 창조가 나타나듯 우리는 선교 기업을 하나님의 '이타적 사랑'의 원리로 정교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선교 기업에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가 나타날 때 그 기업은 기존의 기업 시스템보다 훨씬 탁월한 기업으로 현재의 신자유주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대체하는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그러므로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제대로 된 선교 기업을 설계하고 그것을 현실화 하는 것입니다.&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예수의 삶 기업에 대입하기&lt;/STRONG&gt;&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그 사랑과 창조의 'And' 즉 100% 하나님, 100%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And'를 좀더 구체화해봅니다.&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으로 이 세상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보이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선교 기업은 100% 기업으로서 보여야 하며 종교 중립적인 위치에 있어야 효과적으로 기업을 통해서 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기업이 가지 있는 힘 때문에 종교를 강제한다면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직원들을 변화시키기보다는 겉모양의 그리스도인만 양산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기업이 다른 종교에 공정하지 못한 위치에 있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나는 일들이 생기게 됩니다. 더구나 기독교에 배타적인 모슬렘과 같은 지역에서는 기업이 기독교 색채가 나타날 때에는 기업 활동과 선교 활동에서 모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이랜드 홈에버 사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현재 대부분의 기독교 기업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에는 기업에서 교회와 기독교 색채를 확연하게 나타냄으로 인해서 생기는 많은 불협화음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기업&amp;nbsp;내에서 기독교 만을 유일하게 인정하는 회사는 종교 차별 회사가 됩니다. 이것은&amp;nbsp;발전된 서구 사회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될수 있는 차별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무었보다도&amp;nbsp;반 강제적으로, 물론 자발적으로 믿는다고는 하지만 승진등의 이익을 목적으로해서, 믿음을 가지게 되므로&amp;nbsp;진정한 내면에서 부터 변화가 일어나서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신앙을 가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그러므로 기업에서 선교적이고 교회적인 모든 체계는 기독교 색채가 전혀 나타나지 않지만 그 복음의 핵심을 성 육신화한 시스템과 체계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종교의 평화지대 C7- 상황화한 선교와 성육신화한 교회 시스템에서 계속 설명하고자 합니다. &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으로 이 세상을 사셨지만 인성을 언제나 신성에 복종시키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선교 기업적인 측면으로 보았을 때도 선교가 기업에 우위에 있어야 합니다. 선교가 기업에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말은 기업적인 사업을 희생하면서 선교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업 활동이 선교라는 더 큰 우위의 목적에 의해 지배를 받으면서 기업 활동의 목적인 선교를 이루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lt;/P&gt;
&lt;P align=justify&gt;그러므로 이랜드 홈에버 사태에서 이랜드가 했던 기업 행위는 선교 기업으로서 위치를 명백하게 상실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선교 기업이 선교적인 목적을 상실한 가운데 사업을 실행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눈앞에 아무리 좋은 사업 기회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업 기회가 하나님나라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고 걸림돌이 된다면 그 기회를 보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기회를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선교 기업에게는 필요합니다.&lt;/P&gt;
&lt;P align=justify&gt;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화한 인성으로 살면서 '신성의 능력'을 발휘 하셨습니다. 즉 신성의 능력이 인성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 기업적인 측면에서도 선교적인 핵심 능력과 가치가 기업적인 능력과 가치로 나타나야 합니다.&lt;BR&gt;&amp;nbsp;&lt;BR&gt;선교의 핵심 가치는 사랑이라는 가치이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사업의 핵심적인 가치도 고객 만족 고객 감동을 추구하는 기업 행위에서 볼 수 있듯이 그 핵심은 고객을 감동시키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두 사랑은 차이가 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사업과 세상은 사랑을 필요로 하고 모든 현 세대의 위대한 기업의 핵심 가치를 분석해보면 그 본질은 고객사랑, 임직원 사랑, 주주 사랑이라는 사랑에 귀결됩니다. &lt;/P&gt;
&lt;P align=justify&gt;최근 '착한 기업'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정보 공유가 빛의 속도로 진행되는 21C의 사업 환경에서는 기업의 이타성은 고객과 파트너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기업을 더 가치 있게 하며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게 할 수 있는 핵심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능력이 사업에 직접 나타난다면 사업의 핵심적인 가치에 부응하는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lt;/P&gt;
&lt;P align=justify&gt;20세기까지는 사업을 선교에 이용하려는 패러다임만 있었습니다. 이제 21C에는 그것보다 더 우선 되어야 할 것은 선교(사랑) 자체를 사업에 이용하는 것입니다. 선교적 사랑이 사업적 사랑에 사용된다면 사랑의 핵심 가치가 글루(Glue), 즉 접착제 역할을 하여 기업의 내재적 가치인 사랑을 고객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놀라운 효과를 낼 것입니다. &lt;/P&gt;
&lt;P align=justify&gt;현대 경영학의 추세는 사람의 외적인 행동의 규약에서 사람의 내면 변화와 조직의 내면 변화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성의 원형이 회복될 때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것이 나온다는 진리에 비추어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타적 사랑과 진리로 무장된 임직원이 하나가 되어 고객에게 서비스를 한다면 고객이 감동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모든 정보가 빠르게 흐르는 세상에 하나님의 강력한 이타적 사랑과 진실함으로 무장된 서비스는 빠른 속도로 고객에게서 고객에게로 전달되어 더 큰 사업을 불러올 것입니다.&lt;/P&gt;
&lt;P align=justify&gt;그러면 선교적인 사랑의 능력이 사업적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바로 성육신의 원리, 선교적인 사랑과 사업적인 사랑이 연결시키기 위한 성육신화한 사랑과 체계와 구체적인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선교적인 사랑이 사업적인 사랑으로 성육신화한다면 비즈니스 세계에서 놀라운 가치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lt;/P&gt;
&lt;P align=justify&gt;넷째, 예수 그리스도는 개인 인간으로 살면서 신성의 구조(이 땅에서 하나님나라의 구조: 교회)를 이 땅에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선교 기업에서는 교회의 체계를 성육신화한 기업체계를 세우며 기존의 신자유주의적인 피라미드적인 기업 체계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 부분은 성서적인 지배구조와 역 지주회사 등에서 계속 설명하고자 합니다. (계속)&lt;/P&gt;
&lt;P align=justify&gt;&amp;nbsp;&lt;/P&gt;
&lt;P align=justify&gt;&lt;STRONG&gt;&lt;FONT color=#333399&gt;김대영/ (주)솔트라이트 대표&lt;/FONT&gt;&lt;/STRONG&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선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선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이랜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랜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아프가니스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아프가니스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성육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성육신&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선교기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선교기업&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예수기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예수기업&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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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약자의 기독교, 섬김의 기독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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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사랑진리</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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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7-08-02T22:41:31Z</updated>
	    <published>2007-08-02T22:41:3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lt;A href=&quot;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6036&quot; target=_blank&gt;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426036&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약자의 기독교, 섬김의 기독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변종 강자의 기독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 문제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프간 인질 사태에 기독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적의가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기독교 신앙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하는 부분도 있으나 한국 기독교가 마땅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부분을 지적 받은 점이 많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프간에 억류되어있고 형제 자매들은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김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척박한 땅에 갔었던 아름다운 영혼들이다. 그 영혼들이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함께 욕을 먹는 것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lt;/P&gt;
&lt;P&gt;한국교회의 중진들이 아프간 사태를 맞아 문제를 인식하고 한국교회의 선교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역”과 같이 선행과 구제로 집중하고 좀더 토착화(상황화)된 방법을 사용하는등&amp;nbsp; 현재의 방향을 선회할 필요성에 대해 발표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데 문제들은 단순한 한국 기독교의 문제이기 이전에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해준 서구 기독교 권의 문제에서 비롯된 부분이 크다. 그것 중의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섬김을 받는 강자의 기독교” 라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아프간 전쟁 이전에, 석유메이저와 군수업체의 조정에 의해 일어난 이라크 전쟁과 이에 대한 역작용으로 일어난 9.11테러가 있었다. 만약 이라크 전쟁 때부터 미국 기독교계가 한 목소리를 내어서 전쟁을 일으킨 미국 행정부를 비난하고 적극 반대 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프간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런 기독교를 이슬람 국가들이 본다면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지금처럼 가지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설사 미국 주류 기독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일어났다 가정하면 아프간 인들은 미국은 적국이지만 기독교가 전쟁을 반대하고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며 자신의 종교 상황을 존중해주는 종교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역사가 반복된다면 전세계에 전쟁이 있는 어디에서도 평화의 깃발로 인식되는 적십자와 같이 기독교는 진정한 평화와 사랑과 희생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lt;/P&gt;
&lt;P&gt;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기독교는 선교에 대한 문제점의 핵심을 명확히 인식하여야 한다. 기독교 선교사가 이러한 분쟁 지역에 평화의 사자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기독교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노력을 동시에 할 때 진정한 선교의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lt;/P&gt;
&lt;P&gt;현재 이랜드 사태 및 아프간사태에 대한 국민의 비난의 핵심에는 “강자의 기독교”가 있다. 기독교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섬김을 받고 착취하는 이기적인 현재의 주류 기독교는 오리지널 기독교가 아닌 변종 기독교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증거는 역사에서 발견 할 수 있다.&lt;/P&gt;
&lt;P&gt;&lt;BR&gt;2. 역사상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역사상 초대 교회 순교자들의 피를 지나 오늘날 선교 현장에서 수많은 사랑과 희생의 피의 역사가 있어왔다. &lt;/P&gt;
&lt;P&gt;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는 세계에서 제일 큰 권력이었던 로마 시대에서 세상에서 유일신을 믿는 가장 강력한 종교성을 가진 유대교의 신자들의 힘과 분노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다.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amp;nbsp; 기독교는 세상의 힘을 가지지 못한 핍박 받는 종교였지만 사랑과 진리와 섬김과 희생으로 세상과 로마를 변화시켜 나갔다. 그 초대 교회에 속한 무수한 그리스도인들도 희생과 사랑으로 순교를 당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런데&amp;nbsp;섬김과 사랑과 희생의 기독교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문제의 근원은 주류 기독교의 변질에 있었다. 그 시작은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선언되면서 “핍박 받던 약자의 종교”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종교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변종 기독교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내면이 변화된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권력에 의해 생겨난 겉만 기독교 신자, 짝퉁 기독교 신자가 대거 양산되게 되어 기존의 진정 기독교인들보다 더 많아지게 되고 기독교 전체에 대한 변질이 오게 되었다.&amp;nbsp; 그리고 기독교가 “약자를 침략하는 강자의 종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2가지 방향에서 침략을 시작했다. 내부적으로 진정한 기독교 신자를 교리로 이단을 만들어 참혹하게 죽였으며 외부적으로 이슬람과의 십자군 전쟁등 정복과 침략 전쟁 그리고 식민지를 만들어 나가는데 적극 참여하게 되어 진정한 기독교의 가치를 일어버린 바벨론 교회가 되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종교개혁에 의해 생긴 개신교도 태생적으로 권력기관과 함께 함으로 이단 논쟁으로 무수히 많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카돌릭등 외부와 심각한 종교전쟁을 일으켰다. 개신교가 낳은 자본주의 경제의 폐혜가 심해질 때 공산주의가 생겨 종교를 말살하려고 한 것에는 이런 변종 기독교의 악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공산주의 시대가 사라진 신자유주의 시대에 와서도 기독교 지도자들과 주류 기독교는 달라진 것이 없다. 세계 최강 미국은 한 손에는 경제적 압박을 한 손에는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전쟁도 불사하고 있으며 또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것을 지지하고 있다.&lt;/P&gt;
&lt;P&gt;이런 변종 기독교 지도자들 아래의 순수한 평신도는 그들의 순수한 노력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기독교 구조 악에 의해 비난 받지 않아할 비난을 받으며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순수함을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 역사적 현실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변종 평가는 권력과 동일시되는 주류 기독교계의 힘있는 권력자들을 말하는 것이지 진정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며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간 예수그리스도의 사람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lt;/P&gt;
&lt;P&gt;&amp;nbsp;&lt;BR&gt;3. 문제의 해결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국기독교가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선교를 이루기 위해서는 개인구원과 동시에사회구원을 이룩하려는 통합적인 관점을 가져야 하며 그것을 실천할 사랑과 평화의 구체적 계획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서 “약자의 기독교”, “섬기는 기독교”로 새롭게 태어난 교회가 생겨나야 한다. 그리고 “약자의 기독교” “섬기는 사랑의 기독교” 교회가 교회를 세우는 교회 제자 사역을 하여 생명의 재생산을 이루어야 하고 새롭게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하여 기독교의 내부를 변화 시켜야 한다.&lt;/P&gt;
&lt;P&gt;동시에 초기 기독교가 로마를 정복했던 것처럼 거대한 신자유주의 내부구조를 “교회가 성육신한 기업”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시대는 국가주도의 시대였으며 로마의 시대였으나 지금은 신자유주의 시대요 기업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amp;nbsp;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가장 큰 구조악은 국가가 아닌 시장과 기업인 시대인데 신자유주의는 결코 위에서부터 아래로 변화시킬 수 없는 구조이다. 신자유주의의 시장 경제 구조악을 변화시키기 위해 “교회가 성육신한 예수기업”이 기업을 재생산 하여 공동체를 이루며 하나님이 알려주신 희년의 구조가 신자유주의 구조보다 탁월함을 증명하여 변화 시키는 내부로부터의 변화만이 신자유주의 구조악을 변화 시킬 수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변종 기독교는 권력기관에 의해 &quot;위에서 아래로&quot;, 겉만 신자인 짝퉁 기독교 인이 생기는 것에 의해 시작되었다면 진정 기독교가 거대 변종 기독교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 시키기 위해서는 이와 반대되는 정신과 방법이 필요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힘있는 구조악에 대항하여 악과 악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구조선을 내면으로부터, &quot;아래에서부터 위로&quot;, 제자 사역을 통해 만들어가신 예수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사랑과 진리를 선포하며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을 사용하여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의심을 가질 수 도 있으나 예수그리스도와 12제자가 전세계를 변화시켰듯이 진정한 예수그리스도의 12교회와 “진정한 교회가 성육신화한 12 기업”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을 믿는다. &lt;/P&gt;
&lt;P&gt;이번 아프간 사태로 인해 한국교회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통합화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되어 한국교회의 내부가 새롭게 되고 한국교회가 선교하는 곳에 진정한 사랑과 평화와 희생의 복음이 전해져 개인과 사회가 동시에 구원되는 일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lt;BR&gt;&amp;nbsp;&lt;BR&gt;&amp;nbsp;&lt;BR&gt;&amp;nbsp;&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선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선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기독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기독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이랜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랜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아프가니스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아프가니스탄&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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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랜드사태와 한국교회의 부르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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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사랑진리</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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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7-07-19T20:35:31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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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A href=&quot;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680&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680&lt;/A&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개혁적인 온라인 기독교 매체 뉴스앤조이에서 기사화되었습니다.&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비정규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정규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이랜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랜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신자유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자유주의&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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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랜드 사태와 한국 교회의 부르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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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사랑진리</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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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7-07-17T22:29:42Z</updated>
	    <published>2007-07-17T22:29:4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들어가는 말 &lt;/P&gt;
&lt;P&gt;&lt;BR&gt;이랜드 사태가 이전의 여러 기업 분쟁에 비해 더 많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이랜드가 기독교 기업의 대명사로 불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형 마트는 소상공인과 비정규직 등 저급 노동임금자들의 눈물과 희생으로 커나가는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lt;/P&gt;
&lt;P&gt;&lt;BR&gt;신자유주의가 글로벌 스탠더드인 상황에서 이랜드 경영진을 지지하는 측과 노조를 지지하는 측으로 나뉜다. 의견 분열을 일으키는 현 상황에서 구조악에 대해 성서는 어떻게 가르치고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태도로 구조악을 대하여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한국교회가 이번 이랜드 사태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구조악에 대해서 선지자적 목소리를 외치고 구조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사명을 다하기를&amp;nbsp; 촉발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lt;/P&gt;
&lt;P&gt;&amp;nbsp;&amp;nbsp; &lt;/P&gt;
&lt;P&gt;1&amp;nbsp;구조 악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lt;BR&gt;&amp;nbsp;&amp;nbsp; &lt;/P&gt;
&lt;P&gt;성서는 개인의 선과 악에 대한 구원뿐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선과 악에 대해서도 정의한다. 그리고 개인의 구원과 사회의 구조적 구원을 이루어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한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다. &lt;/P&gt;
&lt;P&gt;&lt;BR&gt;구원의 문제에 있어 개인 경건을 넘어 사람이 모여서 만든 사회 구조적 구원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선하지도 그렇게 악하지도 않으며, 어떤 구조 안에 있느냐에 따라 더 선해지기도 하고 더 악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lt;/P&gt;
&lt;P&gt;&lt;BR&gt;하나님과 아담&#8226;하와의 한 가정에만 있었던 선한 구조는 인간의 타락과 그 후 늘어나는 인구수에 비례해서 변하게 된다.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생기는 거대한 피라미드 조직은 불로소득적인 구조로 구조악을 더욱 구체화&#8226;시스템화시켰다. 그리고 구조악이 더 구체화되는 만큼 개인의 구원과 사회의 구조선을 만드는 사회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해법이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구약 성서와 신약 성서는 구조악에 대한 해결법을 다르게 제시한다.&amp;nbsp; &lt;/P&gt;
&lt;P&gt;&lt;BR&gt;1.1&amp;nbsp;구약과 구조 악&lt;/P&gt;
&lt;P&gt;구약에서 요셉이 애굽 왕에게 7년 풍년, 7년 흉년의 해법을 제시한다. 요셉은 토지를 애굽 왕에게 몰아주는 방법을 제시해서 토지를 독점할 수 있는 구조악을 만든다. 만약 그때 희년의 해답을 제시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연히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lt;/P&gt;
&lt;P&gt;&lt;BR&gt;독점적 구조악과 불로소득을 조장하는 시스템이 일정 부분까지 더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으므로 요셉에 의해 만들어진 독점 시스템은 애굽 문화를 더 빠른 속도로 성장시켰을 것이다. 그 문화 안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더 빠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독점에 의해 만들어진 폐해는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하도록 만든다. &lt;/P&gt;
&lt;P&gt;&lt;BR&gt;절대자인 하나님과 달리 인간은 악을 경험하지 못하면 선이 진정한 선임을 알지 못하는 상대적 존재다. 그래서 애굽의 독점적 구조악을 체험한 이후에 가나안 땅에서 희년 구조를 이루며 살라고 하신 하나님의 법을 더욱 잘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 법의 우월성을 깊이 느끼도록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희년의 구조는 이스라엘이 국가화 되면서 더 체계화되고 시스템화되었다. &lt;/P&gt;
&lt;P&gt;&lt;BR&gt;그러나 독점적인 토지제도와 제왕제도는 이스라엘 희년 제도를 무너뜨리고 독립 국가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lt;/P&gt;
&lt;P&gt;1.2&amp;nbsp;신약과 구조 악&lt;/P&gt;
&lt;P&gt;신약에서는 국가를 포함한 세상적인 모든 조직을 뛰어넘는 하나님나라, 교회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고 하나님나라의 완전한 구조선이 이루어지는 모형을 이 땅에 보여주셨다. 거대한 구조 악 한 복판에서 작지만 완전한 구조 선 모델을 만들어 큰 구조 악의 내부를 변화시켜 나가는 모델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할 모델이다.&lt;/P&gt;
&lt;P&gt;&lt;BR&gt;1.3&amp;nbsp;구조 선 모델링&lt;/P&gt;
&lt;P&gt;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구약의 구조악과 구조선의 개념은 세상의 국가와 기업의 구조선과 구조악에 주로 적용할 수 있으며 신약은 주로 교회의 구조선과 구조악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왜냐하면 신약의 사랑의 범위와 정죄의 범위는 눈에 보이는 세상을 넘어 영원 세상을 추구하며 완전한 정죄와 사랑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서의 구약과 신약의 개념을 이해한다면 구약과 신약이 모두 오늘을 살아가며 구조악에 대항하며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lt;/P&gt;
&lt;P&gt;&lt;BR&gt;구조악을 대항하고 구조선을 만들기 위한 성서적 모델링은 구약적 모델링과 신약적 모델링으로 나눌 수 있다. 구약에는 구조악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전쟁을 포함한 폭력적인 수단이 들어가 있는데 비해 신약적 모델링에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구조악을 대항하고 구조선을 확장하여 교회를 세우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국가 등에 관해서는 구조악의 정의와 선포를 하셨지만 구체적 대항을 하지 않으시는 상태에서 구조선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독립 등 국가 구조악에 대해 정의와 선포는 하셨지만 대항하지 않으신 것은 그분의 사명이 교회를 세우시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구조악에 대한 대항 방법으로 구조악과 폭력적으로 투쟁하기보다는 구조선을 만드는데 더 집중하는 것이 신약적 모델링이라고 할 수 있다. &lt;/P&gt;
&lt;P&gt;&amp;nbsp;&amp;nbsp; &lt;/P&gt;
&lt;P&gt;2&amp;nbsp;성서 모델링의 현실 적용 &lt;/P&gt;
&lt;P&gt;&lt;BR&gt;우리가 신약 시대에 산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신약적인 구조 악에 대항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은 성서의 가르침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다 교회가 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교회를 세우는 사명뿐 아니라 교회가 아닌 세상에 구조선을 세우는 사명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lt;/P&gt;
&lt;P&gt;&lt;BR&gt;예를 들어 크리스천 군인이 있다. 그가 외침에서 국가를 지키는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의 직업(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아니며 군인이라는 직업을 그만 두고 자신의 부르심에 맞는 직업으로 바꾸어야 한다. &lt;/P&gt;
&lt;P&gt;&lt;BR&gt;우리나라 독립운동을 했던 수많은 독립투사들 중에는 진실한 신앙인이 많았다. 그들이 신약적 모델을 따르지 않았던 것은 그의 부르심이 구약적 모델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lt;/P&gt;
&lt;P&gt;&lt;BR&gt;신자유주의의 시대에 노조들이 불법으로 파업을 할 때가 있다. 그리스도인 중에 구약적인 부르심으로 노조 위원장이 되어 압제 받는 노동자를 위해 투쟁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비록 실정법을 어기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신약적 모델링으로서의 성서적 가르침에는 순종하지 못했지만 구약적 모델링으로서는 구조악에 대항하는 그들의 사명을 감당했다고 볼 수 있다. &lt;/P&gt;
&lt;P&gt;&lt;BR&gt;그러나 구조악을 바꿀 수 있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구조악을 옹호하고 구조악을 더 공고히 하는 것은 교회의 사명이 아니다. 그러므로 회사의 사주로서 구조악을 바꿀 수 있는 위치임에도 오히려 구조악을 견고케 한다면 그것은 겉으로 법을 지키는 것이지만 구조악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amp;nbsp; &lt;/P&gt;
&lt;P&gt;&lt;BR&gt;2.1&amp;nbsp;이랜드 사태의 예 &lt;/P&gt;
&lt;P&gt;&lt;BR&gt;방선기 목사는 기업의 영리 추구와 소외자로서 비정규직 사이에 갈등을 풀 수 있는 성경적 해법이 있느냐는 &lt;뉴스앤조이&gt; 기자의 인터뷰 질문에, “풀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교만”이라고 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도저히 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항상 고민하고 노력은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갈등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방 목사의 답변이었다. &lt;/P&gt;
&lt;P&gt;&lt;BR&gt;방선기 목사의 답변은 기업의 영리추구와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이라는 사회 구조적 차원의 질문을 신자유주의 전체 구조에 대한 개인적 차원으로 답을 한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영리 추구와 소외자로서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을 풀 수 있는 성경적인 구조적 해법은 있다. &lt;/P&gt;
&lt;P&gt;&lt;BR&gt;개인적 경건과 선행만으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문제점 중에 하나로 신자유주의의 악한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기도와 선행 등의 개인적 경건의 차원으로 문제의 해법을 제시한다. &lt;/P&gt;
&lt;P&gt;&lt;BR&gt;실제로 세상에서는 구조적으로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그 구성원이 악하기 때문에 갈등은 결코 완전히 없어질 수가 없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악하다 할지라도 구성원들이 완전히 선하며 이타적이라면 갈등은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땅에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 구원과 동시에 사회적 구원이며 개인구원에 대한 성서적 답을 가지고 노력하듯이 사회 구조악에 대한 성서적 해답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lt;/P&gt;
&lt;P&gt;&lt;BR&gt;이랜드 비정규직 구조는 구약 성서의 기준으로 보아 악한 구조다. 또한 기업의 영리 추구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이랜드의 과도한 자본의 집중과 불합리한 불로소득적인 자본의 이익 또한 악한 구조다. 두 악한 구조를 성서적 선한 구조로 바꾸면 해법이 되는 것이다. &lt;/P&gt;
&lt;P&gt;&lt;BR&gt;구조적 해법으로 구약성서의 모델을 적용하여 차별적 노예제도와 같은 비 정규직을 만들지 않고 차별을 없애는 데 생기는 비용을 구약적인 수준의 희년 자본 구조를 만들어 충당한다면 얼마든지 영리 추구와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이 생기지 않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lt;/P&gt;
&lt;P&gt;&lt;BR&gt;비정규직은 회사와 정규직으로 보았을 때는 나그네와 이방인이다 그들은 구약적 수준에서는 적어도 차별을 받지 말아야 하며 신약적 수준에서는 짧은 한정된 시간을 근무하는 그들은 더 호의를 받아야 한다. 실제로 선진 기업 중 사회적 책임을 잘 지키는 기업을 보면 비정규직이 같은 일을 할 경우 회사의 정직원으로서 가지는 혜택을 받지 못하는 만큼 더 많은 월급을 준다. &lt;/P&gt;
&lt;P&gt;&lt;BR&gt;그리고 영리 추구적인 면에서는 신자유주의의 구조는 자본 독점의 악한 구조이다. 우리는 이 제도 대신에 좀더 합리적인 자본의 이익 분배책을 성서적 희년 경제&#8226;경영의 고조의 핵심 개념을 적용하여 만들 수 있으며 이 구조는 장기적으로는 영리적으로도 훨씬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박 회장과 그 가족의 지분이익과 배당이익만 일부 포기하더라도 문제는 쉽게 풀린다고 말한다. 전체 회사 구조 차원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단기간에 자본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만으로도 문제 해결을 볼 수 있다. &lt;/P&gt;
&lt;P&gt;&lt;BR&gt;희년의 제도적 구조적 해법보다 더 부족한 구조적 선도 현실 기업세계에서 얼마든지 해결책이 된 예가 너무도 많다. 아니 이런 구조선이 없다 하더라도 따뜻한 기업가의 마음만 있어도 해결된 예가 많다. 김우중 회장이 대우조선 노사분규를 해결하기 위해 회장으로 직접 거제도에 내려가서 노동자들과 같이 생활하며 살며 노사 분규를 해결하여 오늘날의 세계적인 대우조선해양을 만들었다. 이러한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일반 사람들도 가지고 있는데 박 회장은 문제가 터지면 미국에서 소환을 명령하는 법을 어기며 들어오지를 않았었고 지금도 해외에 있다. &lt;/P&gt;
&lt;P&gt;&lt;BR&gt;이 세상에 하나님나라의 구조를 만들지만 그 완전함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개인의 경건적 노력 이외에 구조악에 대한 구조선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동시에 해나갈 때 개인의 경건과 구원도 완성 될 수 있으며 그것으로 구조도 더욱 선해줄 수 있다. 그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이다. &lt;/P&gt;
&lt;P&gt;&lt;BR&gt;내가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은 교만한 말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명이 자본주의 구조악에 대항하여 선한 구조를 만들고 자본주의의 구조적 악을 바꾸려는 사명을 받고 최선을 다하여 기도하며 노력하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이루실 것을 굳게 믿는 것은 교만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요, 모든 하나님의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바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3&amp;nbsp;구조 악과 한국 교회 &lt;/P&gt;
&lt;P&gt;3.1&amp;nbsp; 교파 분류&lt;/P&gt;
&lt;P&gt;구조 악에 대처하는 한국 개신교회를 나름대로 크게 3가지 부류로 분류해본다. &lt;/P&gt;
&lt;P&gt;&lt;BR&gt;1) 구조적 악에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부류 &lt;/P&gt;
&lt;P&gt;&lt;BR&gt;2) 영적인 기적과 과 부흥 그리고 개인과 교회의 세상적 축복을 동시에 추구하며 사회의 구조악에는 무관심하고 오히려 교회의 구조악을 쌓아가는 부류 &lt;/P&gt;
&lt;P&gt;&lt;BR&gt;3) 1)번과 2)번의 사이를 회색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부류 &lt;/P&gt;
&lt;P&gt;&lt;BR&gt;2)번과 3)번의 부류들은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 후에 많은 교회들이 구조악에 대항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했으나 가장 신사참배를 많이 한 교단이 가장 큰 교단으로 살아남아 이후에 독재정권의 구조악에 가장 둔감했던 교단이 되었으며 사회 구조악에 가장 둔감한 교회일수록 대형 교회를 만들어 교회의 구조악을 가장 크게 만들었다. &lt;/P&gt;
&lt;P&gt;&lt;BR&gt;2)번과 3)번 부류들이 내세우는 성서적인 원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본대로 윗 권세에 순복 하라는 말씀을 내세우며 친일 신사 참배를 했으며 독재 권력에 아부하고 있으며 지금은 신자유주의의 구조악에 아부하고 있다. &lt;/P&gt;
&lt;P&gt;&lt;BR&gt;교회 자체가 교회의 구조악을 더 크게 한 2) 3)번의 대형 교회는 비록 그 안의 구원 받은 영혼을 늘렸다 할지라도 하나님나라의 구조선과는 거리가 있는 그들만의 나라를 이 땅에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lt;/P&gt;
&lt;P&gt;&lt;BR&gt;물론 1)번 부류도 예수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투쟁보다는 구조선을 만드는 것에 더 노력했어야 하는데 구약적인 투쟁 일변도의 구조악 대항에도 보완이 필요하다. 좀더 신약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영적 수준을 높여야 한다. &lt;/P&gt;
&lt;P&gt;&lt;BR&gt;3.2&amp;nbsp; 교회의 구조악 &lt;/P&gt;
&lt;P&gt;&lt;BR&gt;원래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리더가 섬기는 역 피라미드 구조이어야 하지만 현대교회의 대부분은 세상의 피라미드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 특히 대형 교회일수록 애굽의 피라미드 안에서 불로소득을 누리고 있다. &lt;/P&gt;
&lt;P&gt;&lt;BR&gt;예수님의 구조선을 만드신 실례를 보자. 예수님은 피라미드와 반대되는 역 피라미드 구조의 위가 섬기는 교회를 만드셨다 &lt;/P&gt;
&lt;P&gt;&lt;BR&gt;그리고 예수님의 승천 후 성령 강림 시 120명의 성도가 모여 기도한 것을 보면 주님은 120명의 성도의 교회를 만들어놓으신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이 땅에 오셔서 목회를 하셨다고 예수님의 경제는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본다.&amp;nbsp; 120명의 십일조를 모아 교회가 생활한다고 한다고 하고 그 10%정도를 예수님이 취하셨다고 한다면, 정확하게 성도들의 120%정도의 평균적인 수입으로 성도들의 중간 정도의 경제생활을 하실 수 있게 된다. &lt;/P&gt;
&lt;P&gt;&lt;BR&gt;&amp;nbsp;이것은 레위지파가 각 지파로부터 십일조를 받아서 생활할 때 12지파 (요셉 지파가 둘로 갈라져 에브라임 므낫세 지파가 되어 레위지파를 제외하고 12지파가 됨)로부터 10%, 전체 합하여 120%로 살아간 것과 일치한다. &lt;/P&gt;
&lt;P&gt;&lt;BR&gt;이에 대비되는 대형 교회의 피라미드 불로소득의 구조악의 한 예를 보자 &lt;/P&gt;
&lt;P&gt;&lt;BR&gt;지금도 성도 수 120명 정도의 규모의 목회자들의 삶의 수준을 보면 성도들의 평균의 삶을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교회로부터 공급 받는다. 그러나 120명의 성도가 늘어나 1000명이 되고 1만 명이 되면 피라미드 구조에 의해 생기는 불로소득 부분이 발생한다. 120명을 넘어 1000명, 1만 명이 되면 많은 사람의 십일조가 교회에 쌓이고, 재정이 커지면서 담임 목회자의 생활이 성도들의 평균을 넘어서 부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성도들의 평균을 넘어서는 부를 불로소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120명을 목회자가 직접적인 노동으로 성도들을 돌볼 수 있는 최대의 수라고 정의 할 수 있으며, 120명이 넘어서는 1000명, 1만 명은 다른 사람의 돌봄이 없으면 성도들이 돌봄을 받기 어렵고 교회가 성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lt;/P&gt;
&lt;P&gt;&lt;BR&gt;자신의 직접 노동 이외의 다른 사람들의 노동의 대가를 자신이 소유하는 것에는 불로소득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데 교회에는 기업에서 적용하는 지적 자본이나 자본의 이익의 개념을 적용하지 않고 노동의 대가만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lt;/P&gt;
&lt;P&gt;&lt;BR&gt;자본의 이익이 인정되는 기업과 달리 교회는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요,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amp;nbsp; 개념이 노동의 대가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담임 목회자의 영성, 헌신과 실력이 교회를 부흥케 하는 요소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토지나 주식과 같이 지대나 자본의 이익의 발생이 허용 되는 단위가 아니기 때문에 지적 자본과 같은 기업적인 원리가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만약 기업과 같은 원리로 지적 자본의 이익을 적용한다면 교회는 이미 교회이기를 포기하고 기업이 되어버린다라고 볼 수 있다. &lt;/P&gt;
&lt;P&gt;&lt;BR&gt;교회가 커질 때는 목회자 한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부교역자와 성도들의 노력이 합해져서 교회가 커지게 되는데, 이 교회를 자신의 사유재산화하는 것은 죄악이며 성도들의 평균적인 삶 이상의 부를 누리는 즉 120명 정도를 위한 자신의 직접 노동의 대가이상의 것을 소유하는 것은 불로소득의 죄악의 개념이 있다. 그리고 이런 분석을 떠나서 직관적으로도 교회의 머리인 주님의 본을 받아 유형 교회의 리더이며 주님의 제자 격인 성도를 섬기고 살아야할 담임 목회자가 성도들의 평균이상을 넘어 부하게 사는 것은 양심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부담감으로 작용한다. 이 영적 부담감은 죄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구조악에 기인한 것이다. &lt;/P&gt;
&lt;P&gt;&lt;BR&gt;대형 교회가 없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대형 교회로서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구조적 선을 가진 교회가 된다면 그 교회는 세상의 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대부분의 대형 교회는 세상의 구조보다 더 악한 구조로 되어 있다. &lt;/P&gt;
&lt;P&gt;&lt;BR&gt;4&amp;nbsp; 신자유주의 구조 악에 대한 구조 선 &lt;/P&gt;
&lt;P&gt;&lt;BR&gt;신자유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는 기업과 시장이며 신자유주의의 구조악의 출발점은 시장이기 이전에 기업이다. &lt;/P&gt;
&lt;P&gt;&lt;BR&gt;무한 탐욕의 기업이 신자유주의 시장에서 무제한으로 커져서 전 세계가 수술도 못할 정도로 중증의 암환자처럼 되어 파멸로 치닫고 있는 상태가 현재의 신자유주의 시대다. &lt;/P&gt;
&lt;P&gt;&lt;BR&gt;정부가 개입하여 세금을 많이 걷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강제적인 수술과 같은 방법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 법인세 인하 경쟁이 유럽으로 시작하여 미국으로 그리고 전 세계로 번지고 있으며 정부 개입의 여지는 WTO, FTA 등에 의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lt;/P&gt;
&lt;P&gt;&lt;BR&gt;수술이 어려운 암 환자의 치료법은 단 하나이다.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나 대체의학 그리고 기타 여러 과학적인 방법으로 암세포를 정상적인 세포로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세포에 해당되는 기업을 중심으로 구조악을 구조선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신자유주의 구조악을 구조선으로 바꾸는 가장 중요한 해법이다. &lt;/P&gt;
&lt;P&gt;&lt;BR&gt;그러므로 기독교 기업이 적어도 구약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구조선까지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 되어 신자유주의 구조악을 가진 기업과의 대결에서 이긴다면 구약적 희년 경제의 구조선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것이며 기독교 기업은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해결책을 제시하게 되는 것이다. &lt;/P&gt;
&lt;P&gt;&lt;BR&gt;그러므로 신자유주의의 구조악에 대항하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 중에 하나는 신자유주의의 구조악을 극복한 구조선을 가지는 강한 기독교 기업을 많이 탄생 시키도록 성도들을 하나님의 진리로 바르게 인도하는 것이다. &lt;/P&gt;
&lt;P&gt;&lt;BR&gt;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기독교 기업은 신자유주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한 복판에서 신자유주의 구조악과 대결하여야하는데 그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 되신 것처럼&amp;nbsp; 희년적인 기업지배구조가 신자유주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성육신하여 합리적인 분배와 신자유주의적인 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기심과 탐욕의 압축 성장대신에 이기심과 이타심이 적절하게 조화된 압축 성장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의 내부가 바뀐다면 자본가와 경영자, 노동자 모두가 잘 될 수 있는 구조를 가질 수 있다. &lt;/P&gt;
&lt;P&gt;&lt;BR&gt;그러므로 이 세상에 하나님나라가 임하게 하기 위해 진정한 기독인이라면 신자유주의적인 지배구조를 가진 거대 기업이 아닌 성서의 희년 경제의 지배구조를 가진 거대 기업의 탄생을 대망해야 한다. &lt;/P&gt;
&lt;P&gt;희년 경제의 기업이 바알의 경제 기업을 이기는 것이 인류의 파멸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영적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은 볼 줄 믿는다. &lt;/P&gt;
&lt;P&gt;&lt;BR&gt;5&amp;nbsp;이랜드 사태에 대한 교회의 사명 &lt;/P&gt;
&lt;P&gt;&lt;BR&gt;이랜드 사태에 교회의 지도자들은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여 성서적 하나님나라의 진리를 선포하고 신자유주의의 구조악을 ‘악’이라고 말해야 한다. &lt;/P&gt;
&lt;P&gt;&lt;BR&gt;그러나 이번 사태에 있어서 대부분 교계 지도자들의 반응은 선지자이기를 포기한 바알의 추종자와 같이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옹호하며 구조악에 대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박성수 회장을 옹호하는 실망스러운 행태를 많이 보인다. &lt;/P&gt;
&lt;P&gt;&lt;BR&gt;특히 박성수 회장 주변의 영적 리더들은 선지자적 야성을 회복 하여 박성수 회장의 믿음 없음을 준엄하게 꾸짖어야 자신의 믿음 없음과 죄악을 회개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이랜드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독교 기업적 구조선을 가진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박성수 회장에게서 오는 단물만을 바라고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지 못하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 피 값을 갚아야 할 것이다. &lt;/P&gt;
&lt;P&gt;&lt;BR&gt;IMF를 계기로 이랜드가 기독교 기업으로 죽고 신자유주의 적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었다. 그때에 진정한 기독교 기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면 이번의 기회는 놓치면 안 될 것이다. &lt;/P&gt;
&lt;P&gt;&lt;BR&gt;홈에버 비정규직 사태를 계기로 이랜드 전체가 회개하고 이전의 이랜드는 죽고 진정한 하나님의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 진정으로 하나님의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lt;/P&gt;
&lt;P&gt;&lt;BR&gt;그리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형 교회 목회자들을 포함한 교회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교회가 먼저 신자유주의 구조악에 반대되는 구조선으로 가득차야 한다. 교회 안의 기독 기업의 회장&#8226;사장 등 경영자들이 교회의 아름다움과 올바른 가르침을 듣고 배워 기업을 구조선으로 무장한 진정한 기독 기업이 돼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무너져가는 세상에 하나님나라가 임하게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lt;/P&gt;
&lt;P&gt;&amp;nbsp; &lt;/P&gt;
&lt;P&gt;맺는 말 &lt;/P&gt;
&lt;P&gt;&lt;BR&gt;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적 구조선과 신약적 구조선의 현실 세계에서 적용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하나님께서는 부르심을 통해서 각자에게 구조악을 대항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구조선 즉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도록 지금도 성령님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 &lt;/P&gt;
&lt;P&gt;&lt;BR&gt;우리는 이번 이랜드 사태를 계기로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신자유주의의 구조악 앞에 이랜드를 대안 없이 비판하기 이전에 어떻게 구조선을 만들어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할 것인지를 각자의 부르심에 맞추어 깊이 기도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네 들보를 뽑고 형제 눈에 티끌을 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이다. &lt;/P&gt;
&lt;P&gt;&lt;BR&gt;그리고 이랜드 사태가 전화위복이 되어 박성수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노동자가 모두 회개하고 새롭게 되어 이랜드가 신자유주의 애굽에서 출애굽하여 가나안 복지로 들어갈 수 있도록,&amp;nbsp;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하나님의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위해 기도합시다. &lt;/P&gt;
&lt;P&gt;&lt;BR&gt;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박성수 회장과 경영진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임해서 노동자들의 눈물과 고통을 닦아줄 사태 해결이 이루어지고 이랜드가 하나님의 구조선을 가진 더욱 강한 기업이 되어 바알의 구조악으로 무장한 기업과의 경쟁에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lt;/P&gt;
&lt;P&gt;&lt;BR&gt;또한 우리 모두 신자유주의의 구조악을 물리칠 죽으면 죽으리라는 정신과 하나님의 희년 경영으로 무장된 에스더와 같은 기업이 계속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며 노력합시다. &lt;/P&gt;
&lt;P&gt;&amp;nbsp;&amp;nbsp; &lt;/P&gt;
&lt;P&gt;김대영/ (주) 솔트라이트 대표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개혁적인 기독교 온라인 매체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입니다.&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비정규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정규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이랜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랜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신자유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자유주의&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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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랜드 비정규직 사태 바라보며  - 뉴스앤조이 기고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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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사랑진리</name>
	    </author>
	    <updated>2007-07-05T17:29:16Z</updated>
	    <published>2007-07-05T17:29:1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amp;nbsp;&lt;/P&gt;
&lt;P&gt;&lt;A href=&quot;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37&quot; target=&quot;_blank&quot;&gt;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537&lt;/A&gt;&lt;BR&gt;&lt;/P&gt;
&lt;P&gt;이전의 블로그 글이 기사화되었습니다.&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비정규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비정규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이랜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랜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신자유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자유주의&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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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랜드 홈에버 사태를 보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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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사랑진리</name>
	    </author>
	    <updated>2007-07-04T01:55:35Z</updated>
	    <published>2007-07-04T01:55:3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박성수 회장의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를 보며&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랜드가 기독교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에 있어서 전혀 기독교 기업답지 않게 처리를 하는 것을 보고 많은 양심있는 기독인들이&amp;nbsp;분노하며 안타까와 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amp;nbsp;많은&amp;nbsp;진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일컫는 사람들이 박성수회장의 결정을 지지하고 있다. 과연 이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랜드는 이번 사건&amp;nbsp;이전에 이미 IMF를 기점으로 기독교적인 원리를 선택하기보다는 철저하게 돈의 원리 세상의 원리를 선택하며 기업을 확장시켜와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실망시켜왔었기 �문에 이랜드의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lt;/P&gt;
&lt;P&gt;박성수 회장 이랜드 회장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점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lt;/P&gt;
&lt;P&gt;성서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는 불합리한 독재 체제를 만든 사람도 있었고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다른 나라에서 왕을 섬기며 체제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한&amp;nbsp;사람들도 있었다. 요셉은 애굽의 경제&amp;nbsp;체제를 만들었고 다니엘등은 바사 바벨론의 체제를 확고히 하는 역할을 했으며 그것은 그들에게 주었던 하나님의 사명이었다.&lt;/P&gt;
&lt;P&gt;그러나 그들의 체제 강화는 결코 이땅에서의 하나님의 최종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이땅에서 불합리한 체제는 무너뜨리시고 그 체제 대신에&amp;nbsp;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좀더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이땅에 이루어진 새로운 체제를 이루게 하셨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성서에서 하나님의 사람 요셉이 7년풍년,7년흉년을 통해 애굽의 왕에게 토지의 독점을 만들어주는 역사적 사실을 알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 독점의 권력으로 힘이 세진 애굽의 왕때문에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애굽을 탈출해 가나안을 향하게 된다.&lt;/P&gt;
&lt;P&gt;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경제제도를 가나안 땅에 이루도록 하나님의 법을 주시고 40년동안 광야생활을 통해 그 법을 따라 살수 있도록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시고 때가 되어 가나안에 하나님 나라의 이상적인 경제를 이루게 하신다. &lt;/P&gt;
&lt;P&gt;역사 발전이 말해주듯이 언제나 역사는 독점과 분산을 반복하며 좀더 나은 시스템으로 발전하도록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볼수 있는데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 였다.&lt;BR&gt;&lt;BR&gt;독점 경제의 애굽을 탈출해서 한달이면 넘어갈수 있는 길을 40년동안 유랑하면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새로운 경제법을 비롯한 하나님의 법을 받고 그 법에 따라 사는 법을 교육 받았다.&amp;nbsp; 그리고 그 법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는데 하나님의 사람들이여 이 법을 분석해보라.&amp;nbsp;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할 핵심개념이 하나님의 법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것이다.&lt;BR&gt;&lt;/P&gt;
&lt;P&gt;많은 신앙의 리더들이 자신의 교회를 하면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라는 말씀을 잘못적용하며 철저하게 돈의 논리로 목회하고 목회를 사업처럼 하고 있다.&lt;/P&gt;
&lt;P&gt;그들은 자신들이 목회에 적용하는&amp;nbsp;돈의 논리로 성도들에게 경제문제를 풀어야하고 사업을 해야된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amp;nbsp;가르친다. &lt;/P&gt;
&lt;P&gt;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이겠는가? &lt;/P&gt;
&lt;P&gt;그&amp;nbsp; 가르침은 삯꾼 목사에게서 나온 거짓 가르침임을을 성경을 신앙양심을 가지고 읽으면 누구나 알수 있다.&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애굽적이고 바알적이고 바벨론적인 신자유주의 경제때문에 길거리로 내몰린 수많은 직장인과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을 보라. 그들의 눈물과 땀과 피로 배불리는 대기업과 대기업을 찬양하며 대기업적 사고방식을 교회에 도입시키는 삯꾼 목사들이 판을 치는 것이 현재 바벨론적인 교회의 현실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애굽의 때가 있으면 출애굽의 �가 있으며 가나안의 때가 있다.&lt;/P&gt;
&lt;P&gt;애굽의 독점의 폐혜가 아구까지 차면 출애굽의 때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시고, 가나안을 예비하시고, 가나안에 들어갈 하나님의 사람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시고 가나안을 정복하며 가나안시대를 여신다.&lt;/P&gt;
&lt;P&gt;작금의 애굽적이고 바벨론적이고 바알적인 신자유주의 경제구조하에 신음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보라.&lt;/P&gt;
&lt;P&gt;이제 전세계 경제는 신자유주의의 애굽의 경제체제를 떠나 가나안의 하나님의 경제제도로 떠나는 출애굽을 할때가 되었다.&amp;nbsp;&amp;nbsp;&lt;/P&gt;
&lt;P&gt;이제는 요셉 박성수 회장 대신에 모세와 여호수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할때가 된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나님의 뜻이 이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모으고 힘을 모아 하나님의 경제 시스템이 이땅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개혁적 기독교 온라인 매체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입니다.-&lt;/P&gt;&lt;!-- //포스팅 --&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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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KOSPI 1800과 삼성의 초조함을 바라보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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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사랑진리</name>
	    </author>
	    <updated>2007-06-19T01:43:07Z</updated>
	    <published>2007-06-19T01:43:0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종합주가지수가 1800을 돌파하는 오늘(2007년 6월 18일 월요일) 우리나라 대표 기업 삼성과 관련된 두 뉴스가 묘한 어울림을 이루며 현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현상 을 설명해주고 있다. &lt;BR&gt;&lt;BR&gt;&lt;BR&gt;&lt;BR&gt;두 뉴스 중 하나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양극화의 원인은 생계형 아마추어 창업의 과잉 때문이라는 보고서를 냈다는 뉴스인데 연구소의 손민중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40~50대 실직자들이 새 직장을 찾지 못하고 영세한 음식점이나 점포를 열어 경쟁하다 보니 웬만한 급여 생활자보다 형편이 못한 '사장님'이 속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해결책으로 &quot;정부가 실직자의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자영업주를 늘리기 보다 40~50 대 실직자를 위한 일자리를 늘리는데 주력해야 자영업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quot;고 주장했다.&lt;BR&gt;&lt;BR&gt;&lt;BR&gt;&lt;BR&gt;그리고 또 다른 뉴스는 삼성 전자는 삼성전자의 2사분기에도 실적 부진이 예상되자 이에 따른 대규모 임원 감축을 앞두고 있다 인심이 흉흉하는 뉴스가 있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삼성전자의 주가가 이번의 종합주가지수 상승에 많이 소외되어왔다가 최근에 회복되고 있는 중이지만 여전히 여러가지 면에서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lt;BR&gt;&lt;BR&gt;&lt;BR&gt;&lt;BR&gt;두 뉴스가 같은 날 나온것은 우연의 일치겠지만 마치 두 가지 뉴스를 연결해보면 삼성전자가 임원 수를 감축하고 그 감원된 임원들이 일할 장소를 마련하는 것을 정부에 떠넘기는 것 같았다.&lt;BR&gt;&lt;BR&gt;&lt;BR&gt;&lt;BR&gt;양극화의 원인이 생계 형 아마추어 창업이라는 주장은 아주 표면적인 주장이다. 좀더 심층적인 원인은 자본의 이익 추구를 위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감원과 기업 인수 합병을 하도록 만드는 경제구조와 시스템 즉 주식시장과 월 스트리트 사람들로 대표되는 금융가 사람들과 자본가들이다..&lt;BR&gt;&lt;BR&gt;&lt;BR&gt;&lt;BR&gt;삼성경제 연구소가 신자유주의 핵심에 있는 자본가 입장에서 양극화의 원인을 정부의 실책으로 떠 넘기는 연구 보고를 내기 전에 신자유주의 양극화의 문제를 기업 내에서 창의적으로 해결할 새로운 기업 구조를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lt;BR&gt;&lt;BR&gt;&lt;BR&gt;&lt;BR&gt;물론 기업은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이 필연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삼성이 진정으로 전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양극화 문제를 기업 내에서 해결하는 구조를 가져야 할 것이다. &lt;BR&gt;&lt;BR&gt;&lt;BR&gt;&lt;BR&gt;왜냐하면 갈수록 기업의 영향력은 거치고 정부의 영향력은 약화되어, 다가오는 미래의 지식기반 사회는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조직이 될것이며 그 시대의 글로벌 선두 기업은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기업 내부 구조에서 해결하는 기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lt;BR&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주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주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삼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삼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양극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양극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구조조정&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구조조정&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신자유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자유주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기업지배구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기업지배구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대안기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안기업&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대안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안경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종합주가지수 1800&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종합주가지수 1800&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웹 2.0 에서 공동체 자본주의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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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사랑진리</name>
	    </author>
	    <updated>2007-06-17T19:20:40Z</updated>
	    <published>2007-06-17T19:20:4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gt;&lt;?xml:namespace prefix = o ns = &quot;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quot; /&gt;&lt;o:p&gt;&lt;FONT face=바탕 color=#000000 size=2&gt;&amp;nbsp;&lt;/FONT&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000000&gt;&lt;FONT face=바탕&gt;웹&lt;SPAN lang=EN-US&gt;2.0&lt;/SPAN&gt;은 양극화 되어가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정화하기 위한 흐름의 하나다 라는 주장을 한적이 있다&lt;SPAN lang=EN-US&gt;. &lt;A class=con_link href=&quot;http://blog.naver.com/davidpaulkim.do?Redirect=Log&amp;logNo=140031973070&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10081&gt;http://blog.naver.com/davidpaulkim.do?Redirect=Log&amp;logNo=140031973070&lt;/FONT&gt;&lt;/A&gt;&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gt;&lt;o:p&gt;&lt;FONT face=바탕 color=#000000 size=2&gt;&amp;nbsp;&lt;/FONT&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000000&gt;&lt;FONT face=바탕&gt;이 주장은 인류 역사에서 기술과 과학의 발전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바탕과 동력을 제공해왔다는 일반적인 사실에 근거를 둔 것이다&lt;SPAN lang=EN-US&gt;. &lt;/SPAN&gt;인간의 이성이 방향을 정한다면 인간의 이성의 산물인 과학기술은 그 동력을 제공하면서 인류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고 할 수 있다&lt;SPAN lang=EN-US&gt;. &lt;/SPAN&gt;과학 기술이 새 시대를 여는 동력을 제공한다는 말은 과학기술에 의해 구체화된 시스템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동감된 에너지를 보내게 된다는 말과 같은 말로서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느끼고 피부에 와 닿도록 해주는 것은 과학 기술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에 의해 사회전체적인 에너지가 실제로 일어날수 있다는 의미이다&lt;SPAN lang=EN-US&gt;.&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gt;&lt;SPAN style=&quot;mso-spacerun: yes&quot;&gt;&lt;FONT face=바탕 color=#000000 size=2&gt;&amp;nbsp;&lt;/FONT&gt;&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000000&gt;&lt;FONT face=바탕&gt;실제로 역사를 살펴보면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시대에도 과학 기술의 발달이 동력이 되었고 최근의 역사를 보면 미국이 일본을 추격을 따돌리고 세계 경제의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신경제의 지식기반 경제는 웹과 인터넷과 소프트웨어로 과학기술이 동력이 되었다&lt;SPAN lang=EN-US&gt;.&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gt;&lt;o:p&gt;&lt;FONT face=바탕 color=#000000 size=2&gt;&amp;nbsp;&lt;/FONT&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000000&gt;&lt;FONT face=바탕&gt;과학기술이 동력이라면 그 동력이 구체화된 사회변혁으로 일어나는 데는 사회적인 시스템이 필요한데 이러한 사회적인 시스템을 동력에&amp;nbsp;대한 엔진이라고 할 수 있다&lt;SPAN lang=EN-US&gt;.&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gt;&lt;o:p&gt;&lt;FONT face=바탕 color=#000000 size=2&gt;&amp;nbsp;&lt;/FONT&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000000&gt;&lt;FONT face=바탕&gt;산업혁명시대에 엔진이 되었던 것은 경제제도에서는 주식회사제도였으며 정치제도에서는 민주화된 정치제도였다고 할 수 있다&lt;SPAN lang=EN-US&gt;.&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gt;&lt;o:p&gt;&lt;FONT face=바탕 color=#000000 size=2&gt;&amp;nbsp;&lt;/FONT&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000000&gt;&lt;FONT face=바탕&gt;그렇다면 자본주의의 다음시대라고 하는 지식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사회적 시스템은 무엇이 될까&lt;SPAN lang=EN-US&gt;? &lt;/SPAN&gt;과연 현재의 주식회사제도가 새 시대에도 여전히 가져가야 할 사회적 시스템인지 인류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lt;SPAN lang=EN-US&gt;.&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gt;&lt;o:p&gt;&lt;FONT face=바탕 color=#000000 size=2&gt;&amp;nbsp;&lt;/FONT&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000000&gt;&lt;FONT face=바탕&gt;웹&lt;SPAN lang=EN-US&gt; 2.0&lt;/SPAN&gt;은 과학 기술에 대한 용어적인 면이 있지만 기술을 좀 아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 단어는 새로운 사회 체제적 흐름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중적인 면이 있다&lt;SPAN lang=EN-US&gt;.&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gt;&lt;o:p&gt;&lt;FONT face=바탕 color=#000000 size=2&gt;&amp;nbsp;&lt;/FONT&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000000&gt;&lt;FONT face=바탕&gt;그러므로 우리는 웹&lt;SPAN lang=EN-US&gt; 2.0&lt;/SPAN&gt;의 흐름에서 사회 변혁의 새로운 사회시스템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lt;SPAN lang=EN-US&gt;.&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gt;&lt;o:p&gt;&lt;FONT face=바탕 color=#000000 size=2&gt;&amp;nbsp;&lt;/FONT&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000000&gt;&lt;FONT face=바탕&gt;가장 개인적인 것을 표방하지만 그 개인이 집단으로 어울려 전체를 이루어가는 전체성과 평등성은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시스템을 여는 한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lt;SPAN lang=EN-US&gt;. &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gt;&lt;o:p&gt;&lt;FONT face=바탕 color=#000000 size=2&gt;&amp;nbsp;&lt;/FONT&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000000&gt;&lt;FONT face=바탕&gt;그러나 이런 흐름도 중요하지만 만약 체계적인 사회시스템으로 구체화 되지 않으면 이 흐름은 새로운 사회를 이룰 수 있는 동력은 되지 못할 것이다&lt;SPAN lang=EN-US&gt;.&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gt;&lt;o:p&gt;&lt;FONT face=바탕 color=#000000 size=2&gt;&amp;nbsp;&lt;/FONT&gt;&lt;/o:p&gt;&lt;/SPAN&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FONT size=2&gt;&lt;FONT color=#000000&gt;&lt;FONT face=바탕&gt;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시스템을 새로운 시도들이 있어야 한다&lt;SPAN lang=EN-US&gt;. &lt;/SPAN&gt;그리고 그 시도들에 의해 구체화될 사회적 시스템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lt;/FON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Times New Roman'; mso-asci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lt;FONT face=바탕&gt;공동체 자본주의&lt;/FON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Times New Roman'; mso-ascii-font-family: 바탕&quot;&gt;”&lt;/SPAN&gt;&lt;FONT face=바탕&gt;&lt;SPAN lang=EN-US&gt; &lt;/SPAN&gt;라고 일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lt;SPAN lang=EN-US&gt;.&lt;/SPAN&gt;&lt;/FONT&gt;&lt;/FONT&gt;&lt;/FONT&gt;&lt;/P&gt;
&lt;P class=MsoNormal style=&quot;MARGIN: 0cm 0cm 0pt&quot;&gt;&lt;SPAN lang=EN-US&gt;&lt;o:p&gt;&lt;FONT face=바탕 color=#000000 size=2&gt;&amp;nbsp;&lt;/FONT&gt;&lt;/o:p&gt;&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웹2.0&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웹2.0&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양극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양극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신자유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자유주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기업지배구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기업지배구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대안기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안기업&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대안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안경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4WoY&amp;amp;tagName=공동체 자본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공동체 자본주의&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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