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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07:37:23Z</updated>

  		<entry>
	    <title>[철학자의 서재] 류대영의 &lt;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gt;/&quot;당신은 '기독교인'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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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07:37:23Z</updated>
	    <published>2009-11-10T07:37:2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H4&gt;[철학자의 서재] 류대영의 &lt;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gt;/&quot;당신은 '기독교인'입니까?&quot;&lt;/H4&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class=inputdate&gt;&lt;FONT size=3&gt;&lt;!--end : #newsHEAD #col2--&gt;&lt;!--end : #newsHEAD--&gt;&lt;!-- 기사 본문 출력 start --&gt;&lt;BR&gt;&lt;/FONT&gt;
&lt;DIV class=ad_overT&gt;&lt;FONT size=3&gt;&lt;!-- ************ overture article top banner ************ --&gt;&lt;!-- ************ overture article top banner ************ --&gt;&lt;/FONT&gt;&lt;/DIV&gt;
&lt;DIV class=viewstep03 id=newsBODY&gt;&lt;!-- 본문 우측 광고 끝--&gt;&lt;!--DCM_BODY--&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기독교&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인이냐는 질문에 망설여진다는 사람이 있다. 먼저 기독교인이라는 테두리에 있는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집단&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이 한국에서 벌이는 사회적, 정치적 행위에 자신도 같이 묶이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기독교인다운 기독교인인가에 대한 의문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lt;BR&gt;&lt;BR&gt;내가 볼 때 이 두 가지는 기독교인에 대한 다른 함축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주류인 기독교인의 실제 모습과 기독교인에 대한 기대치이다. 사실 기독교인이라고 불리는 집단의 주류는 이런 우려와 상관없이 잘 돌아가는 듯하다. 기독교 서클 안의 안정성은 &quot;그들만의 리그&quot;로, &quot;기독교 집단 이기주의&quot;라고 불릴 수 있는 모습을 띈다.&lt;BR&gt;&lt;BR&gt;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자기 헌신을 보이기보다는 자기와 자기 가족의 복을 기원하는 열렬한 신앙 상태로 변질된 모습. 사실 이 경우 그 신앙이 기독교냐 샤머니즘이냐, 이런 문제는 크게 중요하진 않다. 이게 좀 확장되어 나와 같은 공동체,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교회&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그 이익에 목을 매는 모습이 현재 한국 기독교의 주류로 볼 수 있다.&lt;BR&gt;&lt;BR&gt;이런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내가 하는 변명이 있다. 기독교의 본질은 그게 아니라고.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예수의 길을 쫒아 가려는 사람들을 보라고. 저기 있다고. 사실 그 사람들은 수적으로 약세이고 처한 상황도 열악하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lt;BR&gt;&lt;BR&gt;&lt;B&gt;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lt;/B&gt;&lt;BR&gt;&lt;BR&gt;&lt;/FONT&gt;
&lt;TABLE style=&quot;BORDER-RIGHT: #ccc 1px solid; BORDER-TOP: #ccc 1px solid; BACKGROUND: #ffffff; MARGIN: 5px 15px 10px 0px; BORDER-LEFT: #ccc 1px solid; BORDER-BOTTOM: #ccc 1px solid&quot; cellSpacing=5 cellPadding=5 align=left&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270&gt;&lt;FONT size=3&gt;&lt;IMG class=resize3 height=401 alt=&quot;&quot; hspace=0 src=&quot;http://pic.pressian.com/images/2009/11/07/60091107091254.JPG&quot; width=270 border=1 name=img_resize&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FONT-SIZE: 11px; COLOR: #777; LINE-HEIGHT: 15px; LETTER-SPACING: -0.05em&quot; width=270&gt;&lt;FONT size=3&gt;▲ &lt;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gt;(류대영 지음, 푸른역사 펴냄). ⓒ프레시안&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 size=3&gt;류대영이 쓴 &lt;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gt;. 이 책은 그동안 내 머리 속을 헤집고 다녔던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답변을 줄 만한 역사적 사실들과 그에 대한 분석을 주는 책이다. 자신의 생각을, 소신을 열변하는 것보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분석하는 방식이 어떤 면에선 더욱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만이 지식인으로서 연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작업이야말로 연구자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작업일 것이다.&lt;BR&gt;&lt;BR&gt;이 책은 &quot;한국 기독교는 1880년대에서 최근까지 어떠했는가?&quot; 라는 질문을 가진 자들에게 그것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과 분석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저서는 기독교계의 보수, 진보적 진영 모두 같이 볼 수 있고 읽어볼 만하다. 애써서 역사적 사실과 사실 분석 위주로 저술한 듯한 이 저서는 그래도 한국 기독교의 과거를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진단&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하면서, 이것을 통해 한국 기독교의 미래의 방향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말하고 있다.&lt;BR&gt;&lt;BR&gt;&lt;B&gt;문명개화론과 기독교&lt;/B&gt;&lt;BR&gt;&lt;BR&gt;전 세계적으로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희귀&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한 현상, 서구 종교인 기독교는 어떻게 조선반도에서 그렇게도 빨리 전파되어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을까? 같은 유교 이념의 공동체국가였던 일본, 중국과도 대비해도 이것은 놀라운 상황이다.&lt;BR&gt;&lt;BR&gt;그것은 &quot;기독교가 서양 문명 수입의 중요한 통로요, 조선 개혁에 도움이 될 요소&quot;로 여겼기 때문이다(33쪽). 이것은 김옥균만이 아니라 이후 지식인들이 가졌던 생각이고 실제로 기독교는 서구 근대 문명의 가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런 지식인들의 각성만으로 조선반도에서 기독교의 부흥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지배층의 기독교에 대한 정서가 일본 민중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과는 달리, 이미 조선 지배층에 대한 존경심을 상실한 기층 민중은 스스로 기독교를 필요에 의해 받아들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개항기 조선에서는 기독교가 주로 서북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지방&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즉 조선의 정치 질서에서 소외되어 유교적 신분 질서와 사회체제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가졌던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다고 한다. 지배층과는 달리 서북 지역인들은 상업적, 현실적 가치관과 , 진취적이고 개방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고(55쪽), 이런 사람들을 통해 전혀 이질적이었던 서구종교인 기독교는 빠르게 흡수되었다.&lt;BR&gt;&lt;BR&gt;&lt;B&gt;대부흥 운동&lt;/B&gt;&lt;BR&gt;&lt;BR&gt;기독교는 이성적 각성이나 선진 문물의 대표자로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quot;유교가 배격 했던 민간 신앙이나 불교에서 개인적 차원의 종교적 욕구를 부분적으로 충족시켰는데&quot;, &quot;기독교가 높은 문명적 가치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사적 개인의 종교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었다는 사실&quot;(123쪽)이 중요하다.&lt;BR&gt;&lt;BR&gt;기독교의 한국적 정착화에서 지나칠 수 없는 종교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체험&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이 있다. 그것은 &quot;대부흥 운동&quot;인데 현재 한국 기독교 생활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한국의 대부흥 운동은 한국인의 원초적 종교성, 기독의 전통, 몰락해가는 왕조 속에서 극히 피폐해진 민중의 삶 등 복잡한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원인&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을 가지고 있다135쪽). 전체적으로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불안&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정한 사회 분위기와 붙들 수 있는 절대적 존재가 결여되어 있던 때에 이런 집단적 분위기는 유교적 공동체 윤리 대신 개인적 선택과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신과의 개인적, 초이성적 관계의 체험을 낳게 된다. 사회적 불안정이 인간에게 더욱 절대적인 존재를 갈구하게 된다는 점은 동서&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고금&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을 관통하는 진리일 것이다.&lt;BR&gt;&lt;BR&gt;다만 류대영의 분석처럼 한국 교인들이 일본인들을 증오한 일까지 회개하고, 고종 퇴위로 극도로 반일 감정이 상당히 고조되었을 때 길선주가 기독교적 원칙에 따라 그것을 진정시킨 현상 등은 종교계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민족적 분노까지 회개의 대상으로 삼거나 제어한 것이고 공동체적 감정마저 사적 차원의 회개거리로 인식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이런 사회관, 종교관은 1900년대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2000년대 한국 교회가 현실 정치에 무비판적인 모습으로까지 연장되는 듯하다.&lt;BR&gt;&lt;BR&gt;&lt;B&gt;다른 동양 전통과 기독교&lt;/B&gt;&lt;BR&gt;&lt;BR&gt;예전에 나는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미국&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인 여선교사에게 불교나 도교를 연구하는 박사 과정을 그만둬야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실제로 1900년대 초 기독교인 며느리가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제사&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관습을 거부하다 자살한 사건은 &lt;동아일보&gt;에 게재되면서 당시 열띤 논쟁을 일으킨 사회적 이슈였고,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덜하지만 아직도 기독교와 제사 문제는 충돌되기도 한다. 또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동양&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학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 않아서 현재도 내 주변의 동양학 연구자들 중 기독교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quot;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quot; 라는 십계명이 한국에선 이런 식의 배타적 분위기를 낳은 듯하다. 그러나 1890년대에서 1930년대 조선의 외국인 선교사들은 다른 동양 전통 사유나 종교에 대해 가치중립적이거나 우호적이었다.&lt;BR&gt;&lt;BR&gt;그들은 &quot;국가 이데올로기로서 조선의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법률&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교육&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예절, 사회경제, 도덕을 형성시킨 막강한 힘(178쪽)&quot;으로서 유교를 인정했고, 대승불교의 성격을 분석하고 동학의 종교성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런 그들의 노력은 오늘날 극단적 배타성을 지닌 기독교관을 설파하는 종교 지도층이나 기독교 기층에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lt;BR&gt;&lt;BR&gt;&lt;B&gt;기독교와 사회주의의 공존?&lt;/B&gt;&lt;BR&gt;&lt;BR&gt;내가 서구에서 만난 기독교인들은 기도&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드릴&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때 하나같이 좀 조용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통성기도는 서구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기이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들은 한국 기독교인이 참으로 부지런하다고 칭찬한다. 매일 새벽에 나와 함께 기도하고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예배&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드린다고 신기해한다. 한국 기독교가 서구 기독교와 다른 차별점으로, 새벽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기도회&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와 통성기도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한국인들의 원초적 종교성을 이루고 있었던 샤머니즘적 성격, 민간신앙적 관습과 한국인에게 익숙한 집단적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통곡&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행위가 기독교에 유입된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초 대부흥 운동 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126쪽).&lt;BR&gt;&lt;BR&gt;이것처럼 일견 안 어울리는 또 다른 조합은 기독교와 사회주의일 것이다. 종교적 욕구가 해소되어, 인민의 아편인 종교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사회주의국가에서조차 기독교가 현존한다. 더 나아가 공산주의의 집권층은 기독교를 공산주의 정권에 이롭게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기까지 한다.&lt;BR&gt;&lt;BR&gt;북한의 박승덕의 표현대로 &quot;압제와 예속을 반대하고 자유와 평등을 념원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식 삶의 길을 제시하는 인생관(254쪽)&quot;으로서 북한에서 기독교는 인정되고 있다. &quot;인간 해방과 민족 해방을 위한 현실적 공동 목표들이 존재하는 한, 주체 사상과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대화&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상대가 되는 기독교인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을 포용한다는 것(260쪽)&quot;이 북한 지도층의 기조를 이루는 한 이 둘의 대화는 계속될 것이다. 사회주의체제에서도 인간의 본성엔 절대자에 대한 열망이 있고, 자기 수련과 사회 통합 차원에서도 종교는 핵심적 부분으로 인류 사회에 요구될 것 같다.&lt;BR&gt;&lt;BR&gt;&lt;B&gt;2050년에 2000년대 한국 기독교는 어떻게 기억될까?&lt;/B&gt;&lt;BR&gt;&lt;BR&gt;이제 2000년대 대한민국 사회로 다시 돌아가 보자. 최근 개신교 복음주의 우파가 정치적 극우파와 손잡고 반공, 친미를 외치는 현상은 어떻게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해석&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해야 할 것인가? 류대영의 말대로 그들의 &quot;수세적 반응(376쪽)&quot;으로 이해해야 할까?&lt;BR&gt;&lt;BR&gt;현 한국 사회에서 보수 진영은 진보주의자들이 집권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구축해온 가치와 구조가 공격받고 있다고 느낀다. 현재 진보 진영, 보수 진영 어느 쪽도 한국 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하는 &quot;힘의 공백&quot;의 상황에서, 복음주의자 우파의 분노와 위기 의식도 근본적으로 이런 피해 의식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quot;앞으로의 정치 세력 판도에 따라 압도적인 정치적 힘 앞에 순종하는 관습을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유지&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했던 우리나라의 보수적 기독교인의 모습(379쪽)&quot;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lt;BR&gt;&lt;BR&gt;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lt;BR&gt;&lt;BR&gt;&lt;FONT color=#aa1a19&gt;&quot;한국의 보수 개신교계는 신학적, 정치사회적으로 균질한 집단이 아니다. (…) 그들의 신학적, 정치사회적 다양성을 생각할 때, 그들이 모든 문제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보일 가능성은 없다. (…) 한국의 기독교 뉴라이트가 정치적 집단으로서 앞으로 겪게 될 어려움의 본질은 국내의 정치사회와 관련된 모든 문제가 반공, 시장경제, 친미라는, 그들의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이 허락하는 차원으로 수렴될 수 없다는 데 있다.&quot; (382쪽)&lt;/FONT&gt;&lt;BR&gt;&lt;BR&gt;기독교 뉴라이트 운동에 대한 그의 통찰은 그들이 핵심으로 삼고 있는 반공, 시장경제, 친미라는 이데올로기로 모두 설명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복잡성에 대한 통찰과 맞닿아 있다. 이 사회에 대한 그들의 분석의 틀이 낡고 협소한데 그 세력의 영향력에 대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미국의 기독교 우파와는 달리 사회, 윤리적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못하고 오직 정치경제적 문제에 편중되어 드러나는 그들의 수세적 반응에 대해 기독교계가 함께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도매&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금으로 욕을 먹는 상황은 언제까지 지속될까.&lt;BR&gt;&lt;BR&gt;기독교계를 욕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양하다. 그에 못지않게 기독교계도 다양한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스펙트럼&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을 가진 집단이다. 기독교의 윤리로 도저히 설명되지 못하는 기독교계 종사자들, 신문 사회면을 장식할 만한 비윤리와 부패를 지닌 집단에서부터, 이런 범죄 집단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해 적어도 같이 비난을 받기에 억울한 기독교인들도 많다. 적어도 윤리와 부패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자부할 만한 개인 윤리의식을 가진 집단도 있다. 또 자신과 자기 집단의 안녕을 구복하면서 주변에 적당히 인심을 베풀며 사는 중산층의 모습이 기독교의 주류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실적 삶의 노곤함을 절대적 존재에 의지해서 잊거나 극복하려는 계층도 존재한다. 또 기독교의 사회복음(social gospel)을 외치고 꾸준히 분투하는 그룹도 현재는 미미해졌지만 아직 존재한다. 신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치사회적으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quot;&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하나님&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의 사람들&quot;, 기독교인으로 &quot;같이&quot; 불리운다. 이들을 한 가지 이데올로기로 묶는 것이 가능한 것일지, 요즘은 그런 의문까지 든다. 그들이 하나가 되는 게 가능할까. 최소한 기독교계 어떤 명망있는 지도자가 &quot;이것이 길이다&quot;라고 제시할 때 무조건 하나로 따를 수 있을까.&lt;BR&gt;&lt;BR&gt;최소한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한국사&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회 기독교계 사람들은 &quot;기독교&quot;란 이름으로 단일하게 묶이기엔 너무 복잡하다. 최소한 2009년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기독교인이 될 것인가, 이 문제가 기독교인이냐, 불교도냐, 무신론자인가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결단과 실천을 요구한다고 본다.&lt;BR&gt;&lt;BR&gt;사실 종교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기독교의 후진성에 대해 말해왔다. 미래의 종교는 불교처럼 열려있는 종교, 자기의 내부에서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구원&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는 종교, 타인에 대한 화해가 근본적으로 가능한 종교라고 말해 왔다. 나는 기독교 교리에 그런 모습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lt;BR&gt;&lt;BR&gt;한국 기독교의 주류는 하나님의 유일성이 배타적으로 강조되는 신앙을 참진리로 여긴다는 것이 문제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불교 등과는 달리 아주 대중적이고 간명한 교리로 대중 속을 파고 들었다. 기독교는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탄탄&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한 조직력과 대중적이고 간단한 신앙 원리로 인해 20세기 최대 세력의 종교로 부상했다. 기독교에 관한 역사적, 사회적 통찰은 이렇게 끝날 수도 있었다.&lt;BR&gt;&lt;BR&gt;그런데 이 책을 읽은 뒤 균형감각을 찾은 부분이 있다. 기독교는 유럽에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근대성을 심는 데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이바지&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했다. 1900년 전후 조선반도에서 기독교는 정치적 개화, 민권, 근면성, 조국애,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여권&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신장, 교육을 통한 개화를 전파하려고 했다. 당시 일부 지식인들에게 모든 학문과 문명 진보의 근원으로 여겨졌던 기독교는, 그렇게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삶을 개선하는데 이바지한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lt;BR&gt;&lt;BR&gt;사람들이 기독교에 몰려든 것은 기독교가 닦은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포장&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술과 조직력에만 있지 아니하다. 그 속에 사람들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사로잡고, 사회를 변혁시킨 요소가 존재한다. 2009년 이후 한국 기독교는 100년 전인 1900년처럼 인간 사회를 더 살만하게 만드는 종교로 기대할 수 있을까? 적어도 우리가 딛고 있는 이 한국사회에서는?&lt;BR&gt;&lt;BR&gt;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오해하고 있다고 보는가? 기독교의 탈만 쓰고 있는 이들로 인해서. 그렇다면 당신을 통해 기독교를 이해시켜라, 이 세계에. 참된 기독교가 무엇인지 여줘라.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예수님&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께서 말씀하신 길을 보여주는 건 쉽지 않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아니 내 몸만큼은 못하더라도 자신의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상식&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과 기준에 벗어난 부당한 경우를 당해도 참아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자기 자신의 욕망을 항상 다스리고 수련하면서 사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lt;BR&gt;&lt;BR&gt;&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십자가&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의 정신은 근본적으로 놀라운 변화이다. 구세주의 피로 새로 태어 난 인간으로서 자신의 새 삶을 믿고 그만큼 타인의 변화를 기대하고 믿는 삶은 얼마나 대단한 삶인가. 기독교인으로 사는 건 본디 어려운 일이었다. 이미 기독교인으로서 사는 것을 결단한 이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 대단한 사람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좀 더 인간적이고 인심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좋은&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곳으로 변하리라고 기대해본다. 기독교인이 진정으로 기독교인다울 때 각박하고 흉흉한 이 사회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lt;BR&gt;&lt;BR&gt;&lt;/FONT&gt;
&lt;TABLE style=&quot;BORDER-LEFT-COLOR: #cbd4e9; BORDER-BOTTOM-COLOR: #cbd4e9; MARGIN: 0px auto; BORDER-TOP-COLOR: #cbd4e9; BACKGROUND-COLOR: #eaeef7; TEXT-ALIGN: justify; BORDER-RIGHT-COLOR: #cbd4e9&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95%&quot; border=0&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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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10px; PADDING-LEFT: 10px; FONT-SIZE: 14px; PADDING-BOTTOM: 10px; LINE-HEIGHT: 23px; PADDING-TOP: 10px&quot;&gt;&lt;FONT color=#00309c size=3&gt;'철학자의 서재'는 &lt;프레시안&gt;과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서평 연재입니다. 매주 주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철학자들이 심사숙고해 선정한 책을, 철학자가 직접 심혈을 기울여 쓴 서평으로 소개합니다. &lt;편집자&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CM_BODY--&gt;
&lt;P class=author&gt;&lt;FONT size=3&gt;/강지연 KAIST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1107091254&amp;section=04&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교수&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lt;/FONT&gt;&lt;A href=&quot;mailto:tyio@pressian.com&quot; target=_blank&gt;&lt;FONT size=3&gt;&lt;IMG height=9 alt=메일보내기 src=&quot;http://www.pressian.com/images/article/article_ico_mail.gif&quot; width=12&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lt;/FONT&gt;&lt;A href=&quot;http://www.pressian.com/article/author_article_list.asp?article_num=60091107091254&quot; target=_blank&gt;&lt;SPAN class=another&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필자의 다른 기사&lt;/U&gt;&lt;/FONT&gt;&lt;/SPAN&gt;&lt;/A&gt;&lt;/P&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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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폭력, 우리를 위협하는 질병 / 신기섭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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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등대마루</name>
	    </author>
	    <updated>2009-11-10T07:33:15Z</updated>
	    <published>2009-11-10T07:33:1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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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headtitle01 colSpan=2&gt;&lt;FONT size=3&gt;폭력, 우리를 위협하는 질병 / 신기섭&lt;!--/DCM_TITLE--&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class=subtitle01 style=&quot;VERTICAL-ALIGN: top&quot; colSpan=2&gt;&lt;FONT size=3&gt;&lt;/FON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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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width=&quot;100%&quot;&gt;&lt;A href=&quot;http://www.hani.co.kr/arti/HKRONLY/&quot; target=_blank&gt;&lt;FONT size=3&gt;&lt;IMG alt=한겨레 hspace=5 src=&quot;http://img.hani.co.kr/section-image/05/news2/btn_hkr.gif&quot; border=0&gt;&lt;/FONT&gt;&lt;/A&gt;&lt;/TD&gt;
&lt;TD noWrap&gt;&lt;FONT size=3&gt;&lt;IMG hspace=10 src=&quot;http://img.hani.co.kr/section-image/05/news2/bullet03.gif&quot; align=absMiddle&gt; &lt;/FONT&gt;&lt;A href=&quot;mailto:marishin@hani.co.kr&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신기섭&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기자&lt;/FONT&gt;&lt;A href=&quot;http://blog.hani.co.kr/marishin/&quot; target=_blank&gt;&lt;FONT size=3&gt;&lt;IMG hspace=6 src=&quot;http://img.hani.co.kr/section-image/05/news2/btn_giljin.gif&quot; align=absMiddle&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lt;/FON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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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14px&quot;&gt;&lt;!--본문시작--&gt;&lt;!-- 폰트 크기조절--&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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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 사진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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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align=middle&gt;&lt;FONT size=3&gt;&lt;IMG src=&quot;http://img.hani.co.kr/imgdb/resize/2005/0727/1163484219_112236853869_20050727.JPG&quot; border=0&gt; &lt;/FONT&gt;&lt;/TD&gt;&lt;/T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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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class=movie_text style=&quot;WORD-BREAK: break-all&quot; bgColor=#8f8f8f&gt;&lt;FONT size=3&gt;» 신기섭 논설위원&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noWrap height=3&gt;&lt;FONT size=3&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사진설명 --&gt;&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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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kwdlink1&gt;&lt;FONT size=3&gt;“참으로 나는 암울한 세대에 살고 있구나! … 나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후손들에게’의 일부) &lt;/FONT&gt;&lt;/DIV&gt;
&lt;DIV class=kwdlink1&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IV&gt;
&lt;P class=kwdlink1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강화하던 1938년에 쓰인 이 시는, 나무 이야기를 할 때조차 현실을 회피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비극을 이야기한다. 독일로 치면 히틀러 같은 파시스트들을, 한국으로 치면 박정희 같은 독재자들을 거쳐온 21세기는 암흑의 시대와 거리가 멀다고 여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르게 느끼는 이들도 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lt;SPAN id=OV_CLK_POP3 style=&quot;Z-INDEX: 999&quot; =&quot;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quot;&gt;&lt;A class=kl_ov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9%CC%B1%B9&quot; target=_blank&gt;미국&lt;/A&gt;&lt;/SPAN&gt; 의사 폴 파머 등 한 무리의 의사와 학자들은 2006년 &lt;SPAN id=OV_CLK_POP1 style=&quot;Z-INDEX: 999&quot; =&quot;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quot;&gt;&lt;A class=kl_ov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0%C7%B0%AD&quot; target=_blank&gt;건강&lt;/A&gt;&lt;/SPAN&gt;과 폭력 문제를 토론하기에 앞서 브레히트의 이 시를 읽었다고 한다. &lt;/FONT&gt;
&lt;P class=kwdlink1 align=justify&gt;&lt;FONT size=3&gt;&amp;nbsp; &lt;/FONT&gt;
&lt;P class=kwdlink1 align=justify&gt;&lt;FONT size=3&gt;그들이 아프게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지금이 어느 때 못지않게 끔찍한 폭력의 시대인 탓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2002년까지 전세계에서 적어도 160건의 전쟁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숨진 사람만 24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민간인이다. 전쟁으로 다치고 병든 사람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폭력은 도처에 널려 있다. &lt;/FONT&gt;
&lt;P class=kwdlink1 align=justify&gt;&lt;FONT size=3&gt;&amp;nbsp; &lt;/FONT&gt;
&lt;P class=kwdlink1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이런 문제의식에서 파머 등이 지난달 내놓은 책 &lt;폭력의 시대 전세계의 건강&gt;(Global Health in Times of Violence)은 폭력에 대한 ‘정치적 무감각증’에 도전한다. 폭력은 그 무엇보다 위험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물론 상당수의 사람은 폭력의 위협에서 벗어나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특권이다. 이렇게 특권을 누리는 이들이 느껴야 할 가장 큰 불평등은 어쩌면 폭력 자체보다는 “누가 여전히 우리의 관심 대상이고 누구는 더 이상 아닌지를 우리 마음대로 결정하는 행위 바로 그것일지 모른다”고 이 책의 저자 가운데 한 명인 디디에 파생은 지적한다.(이 내용은 인터넷에 공개된 책의 초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lt;/FONT&gt;
&lt;P class=kwdlink1 align=justify&gt;&lt;FONT size=3&gt;&amp;nbsp; &lt;/FONT&gt;
&lt;P class=kwdlink1 align=justify&gt;&lt;FONT size=3&gt;파생이 요구하는 윤리의식을 지니지 않더라도, 한국인조차 전쟁의 폭력에 얽혀들고 있음을 인식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군대를 보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프간 &lt;SPAN id=OV_CLK_POP0 style=&quot;Z-INDEX: 999&quot; =&quot;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quot;&gt;&lt;A class=kl_ov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1%F6%B9%E6&quot; target=_blank&gt;지방&lt;/A&gt;&lt;/SPAN&gt;재건팀 보호를 위해 &lt;SPAN id=OV_CLK_POP4 style=&quot;Z-INDEX: 999&quot; =&quot;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quot;&gt;&lt;A class=kl_ov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6%C4%B0%DF&quot; target=_blank&gt;파견&lt;/A&gt;&lt;/SPAN&gt;되는 군인들은 ‘한국 민간인’을 위협하는 ‘아프간 &lt;SPAN id=OV_CLK_POP6 style=&quot;Z-INDEX: 999&quot; =&quot;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quot;&gt;&lt;A class=kl_ov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0%FC%BB%E7&quot; target=_blank&gt;전사&lt;/A&gt;&lt;/SPAN&gt;’뿐 아니라 어쩌면 ‘아프간 민간인’들에게도 총부리를 겨누게 될지 모른다. 이런 비극적 상황을 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다는 아니다. &lt;/FONT&gt;
&lt;P class=kwdlink1 align=justify&gt;&lt;FONT size=3&gt;&amp;nbsp; &lt;/FONT&gt;
&lt;P class=kwdlink1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전쟁에 찌든 땅에 희망을 심기 위한 재건 사업도 상황에 따라서는 분쟁을 부추기는 일이 된다. 현재 아프간 상황이 딱 그렇다. 미국의 침공으로 실각한 탈레반은 다시 힘을 모아 아프간 정부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의식해 파견되는 한국인들이 아프간 사람 모두의 환영을 받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부질없다. 공격 대상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lt;/FONT&gt;
&lt;P class=kwdlink1 align=justify&gt;&lt;FONT size=3&gt;&amp;nbsp; &lt;/FONT&gt;
&lt;P class=kwdlink1 align=justify&gt;&lt;FONT size=3&gt;한국의 개인들이 당장 아프간에 평화를 가져다줄 순 없더라도, 정부의 파병마저 방관해선 안 된다. &lt;폭력의 시대…&gt; 저자들은 “우리는 적어도 폭력을 유발하고 유지하는 세력들을 폭로하려 애씀으로써 우리 개인과 &lt;SPAN id=OV_CLK_POP2 style=&quot;Z-INDEX: 999&quot; =&quot;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quot;&gt;&lt;A class=kl_ov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C1%FD%B4%DC&quot; target=_blank&gt;집단&lt;/A&gt;&lt;/SPAN&gt;의 시선이 이 세력을 향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파병 반대 &lt;SPAN id=OV_CLK_POP5 style=&quot;Z-INDEX: 999&quot; =&quot;javascript:clear_pop_hidden_delay()&quot;&gt;&lt;A class=kl_ov_link style=&quot;FONT-WEIGHT: 700; COLOR: #173f8d; FONT-FAMILY: ;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href=&quot;http://sense.contentlink.co.kr/sense/clk_pop.php?code=datawave_kr_by_affiliate_keywordlink&amp;status=ing&amp;afd=hani2_web&amp;is_click=yes&amp;keyword=%B8%F1%BC%D2%B8%AE&quot; target=_blank&gt;목소리&lt;/A&gt;&lt;/SPAN&gt;들이 결국 파병을 막지 못하더라도 아프간 민중에게 고통을 가하는 세력들을 인식할 기회는 만들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폭력 세력들을 돌아보는 계기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lt;/FONT&gt;
&lt;P class=kwdlink1 align=justify&gt;&lt;FONT size=3&gt;&amp;nbsp; &lt;/FONT&gt;
&lt;P class=kwdlink1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신기섭 논설위원&lt;/FONT&gt;&lt;A href=&quot;mailto:marishin@hani.co.kr&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marishin@hani.co.kr&lt;/U&gt;&lt;/FONT&gt;&lt;/A&gt;&lt;FONT size=4&gt; &lt;/FONT&gt;&lt;/P&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과학기술만큼 인문사회정책도 급하다 [조지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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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dima0306.6996484</id>
	    <author>
		    <name>등대마루</name>
	    </author>
	    <updated>2009-11-10T07:24:11Z</updated>
	    <published>2009-11-10T07:24:1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size=3&gt;과학기술만큼 인문사회정책도 급하다&lt;!--NewsAdTitleEnd--&gt; [조지형]&lt;/FONT&gt;&lt;/P&gt;
&lt;P&gt;&lt;!--DCM_TITLE_END--&gt;&lt;!-- LAYER begin --&gt;&lt;/P&gt;
&lt;DIV class=postscript&gt;&lt;FONT size=3&gt;&lt;BR&gt;&lt;/FONT&gt;&lt;/DIV&gt;
&lt;DIV class=postscript&gt;
&lt;DIV id=overDiv style=&quot;POSITION: absolute; visible: hidden&quot; onmouseout=nd() =&quot;clearTimeout(tid)&quot;&gt;&lt;/DIV&gt;&lt;/DIV&gt;&lt;!-- LAYER end --&gt;
&lt;DIV class=TITLE_NAME&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IV&gt;
&lt;DIV class=postscript id=LAYER_FONT onmouseout=&quot;hiddenLayer('LAYER_FONT')&quot; =&quot;showLayer('LAYER_FONT')&quot;&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IV&gt;
&lt;DIV class=postscript id=TIME_INFO&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IV&gt;
&lt;DIV class=postscript id=CONTEN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695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G14h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11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 vAlign=top&gt;&lt;B&gt;&lt;/B&gt;
&lt;DIV class=ArticleAll id=ct style=&quot;FONT-SIZE: 14px; LINE-HEIGHT: 1.5&quot;&gt;
&lt;TABLE cellSpacing=5 width=10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FONT size=3&gt;&lt;IMG src=&quot;http://news.donga.com/IMAGE/2009/11/10/24000370.2.jpg&quot; gid=&quot;24000370.2.1&quot;&gt;&lt;BR&gt;&lt;BR&gt;&lt;/FONT&gt;
&lt;DIV id=divBox&gt;
&lt;TABLE style=&quot;MARGIN-TOP: 10px&quo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gt;&lt;A href=&quot;http://www.myoverture.co.kr/regi_vic/esu_cm.asp?overurl=KR0272&quot; target=_blank&gt;&lt;FONT size=3&gt;&lt;/FONT&gt;&lt;/A&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BORDER-RIGHT: #e0e0e0 1px solid; PADDING-RIGHT: 3px; BORDER-TOP: #e0e0e0 1px solid; PADDING-LEFT: 3px; FONT-WEIGHT: bold; FONT-SIZE: 9pt; BACKGROUND: #f0f1f0; PADDING-BOTTOM: 3px; MARGIN-LEFT: 5px; BORDER-LEFT: #e0e0e0 1px solid; COLOR: #063f96; PADDING-TOP: 3px; BORDER-BOTTOM: #e0e0e0 1px solid;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돋움&quot;&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quot;100%&quo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OVERFLOW: hidden&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TD&gt;
&lt;TD align=middle width=15&gt;&lt;FONT size=3&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FONT size=3&gt;&lt;FONT class=&quot;&quot;&gt;2006년 ‘인문학 위기 선언’ 이후, 인문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환경을 타개하고자 다양한 국가정책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진흥책이 인문한국(Humanities Korea) 사업으로 이젠 연간 400억 원의 예산을 사용하는 거대 프로젝트가 됐다. 내년에는 인문한국의 신규사업을 중단한다고 한다. 인문학의 위기가 해소된 것일까? ‘인문학의 위기’와 ‘이공계의 위기’ 속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사회',event);&quot;&gt;사회&lt;/FONT&gt;과학의 진흥을 위해 내년에 100억 원의 예산으로 한국사회&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과학',event);&quot;&gt;과학&lt;/FONT&gt;(SOCIAL Sciences Korea)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토록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인문사회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교육역량을 과시했다. 영국의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대학',event);&quot;&gt;대학&lt;/FONT&gt;평가기관 QS의 ‘2009년도 세계대학평가’에 인문학 분야에서 서울대(33위) 연세대(79위) 고려대(119위)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서강대',event);&quot;&gt;서강대&lt;/FONT&gt;(154위)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이화여대',event);&quot;&gt;이화여대&lt;/FONT&gt;(171위)가 두각을 나타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우리 대학의 위치는 크게 다르지 않다. &lt;/FONT&gt;&lt;BR&gt;&lt;BR&gt;그러나 정작 인문사회에 대한 국가적인 학술연구정책을 살펴보면 허탈하기까지 하다. 작년 이명박 행정부는 과학기술기본계획(577전략)에서 2012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5%까지 연구개발(R&amp;D) 투자를 확대하고 7대 기술 분야를 집중 육성하며 7대 과학시스템을 선진화함으로써 과학기술 7대강국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역대 정부가 그러했듯 이명박 행정부도 포괄적인 인문사회 발전계획을 제시한 바 없다. &lt;BR&gt;&lt;BR&gt;&lt;B&gt;총리 주도로 국가위원회 설립해야&lt;/B&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지식기반사회에서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글로벌',event);&quot;&gt;글로벌&lt;/FONT&gt; 이슈에 적극 대응하고 국내외 현안에 대해 창의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며 신뢰와 법치에 근간한 새로운 국가 거버넌스를 창출하고 국제화를 추진하여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며 국격(&lt;/FONT&gt;&lt;SPAN class=hanja&gt;國&lt;/SPAN&gt;&lt;SPAN class=hanja&gt;格&lt;/SPAN&gt;)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인문사회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은 엄청나고 중대하다. 내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성공을 위해서도 경제논리를 넘어 문화를 통한 설득, 가치(&lt;SPAN class=hanja&gt;價&lt;/SPAN&gt;&lt;SPAN class=hanja&gt;値&lt;/SPAN&gt;&lt;FONT class=&quot;&quot;&gt;)의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혁신',event);&quot;&gt;혁신&lt;/FONT&gt;과 통합, 글로벌 연대의식이 필수불가결하다. &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글로벌 경쟁의 소프트&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0000ff;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파워',event);&quot;&gt;파워&lt;/FONT&gt;인 인문사회를 제대로 육성하고 포괄적인 발전계획을 마련하려면 여러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첫째, 인문사회의 국가적 정책추진이 가능하도록 적어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인문사회위원회(가칭)의 설립이 시급하다. 현재 과학기술분야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설립되어 과학기술정책의 최고의사결정기구로 운영하지만 인문사회분야는 교육과학기술부 인문사회연구과 산하의 자문기구인 인문사회 학술연구사업 추진위원회가 있을 뿐이다. 이런 홀대(&lt;/FONT&gt;&lt;SPAN class=hanja&gt;忽&lt;/SPAN&gt;&lt;SPAN class=hanja&gt;待&lt;/SPAN&gt;)로는 인문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lt;BR&gt;&lt;BR&gt;둘째, 학문 간 통섭과 국가정책의 융합이 가능하도록 학술연구 기획과 평가를 수행하는 국가출연기관으로서 인문사회정책연구원(가칭)의 설립이 필요하다. 과학기술분야에서는 국가 R&amp;D사업을 체계적으로 조사, 기획, 평가하는 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인문사회분야에서도 글로벌 어젠다와 국가적 이슈를 조사·발굴하여 우리의 지식문화자본을 극대화하도록 인문사회의 공공성과 글로벌 대응성을 강화하는 중장기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 각 부처의 연구 사업은 인문사회의 창의력과 융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설계해야 한다. 프랑스의 ‘지평(Horizon) 2020’이나 영국의 ‘전략적 선도연구 프로그램’에서 보듯이 선진국에서는 글로벌 이슈와 지역적 문제뿐 아니라 미래 사회의 문제에 대해 학문융합적 지향성을 갖는 각종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 &lt;BR&gt;&lt;BR&gt;셋째, 인문사회의 중장기 발전을 위한 법적, 제도적 기반을 갖추기 위해 인문사회기본법(가칭)의 제정이 필요하다. 과학기술분야는 이미 2001년에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하여 과학기술의 기반조성 및 혁신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제 인문사회의 방임시대는 지나갔다. 인문사회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과 근원적 문제를 탐구해야 함과 동시에 과학기술처럼 시대가 요청하는 체계적인 지식과 가치, 그리고 문화를 창출함으로써 국가발전과 인류사회에 기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문사회 기관의 협력체계글로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lt;BR&gt;&lt;BR&gt;&lt;B&gt;인간다운 삶, 경제·과학만으론 안돼&lt;/B&gt;&lt;BR&gt;&lt;BR&gt;우리가 세계 중심으로 진입하고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누리는 길은 경제나 과학기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기술기본법이 천명하듯이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이 상호 균형적으로 연계·발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글로벌 경쟁에서 인문사회의 도태가 시작되고 위기(&lt;SPAN class=hanja&gt;危&lt;/SPAN&gt;&lt;SPAN class=hanja&gt;機&lt;/SPAN&gt;)의 절규가 울려 퍼지기 전에 인문사회에 대한 균형발전계획을 조속히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lt;BR&gt;&lt;BR&gt;조지형 이화여대 교수·미국법제사&lt;/FONT&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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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훈범] 퀴 보노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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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등대마루</name>
	    </author>
	    <updated>2009-11-10T07:18:54Z</updated>
	    <published>2009-11-10T07:18:54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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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H2&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훈범] 퀴 보노&amp;nbsp;&lt;/SPAN&gt;&lt;/H2&gt;
&lt;H2&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H2&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BR&gt;&lt;!-- e : 기사 / 댓글탭 --&gt;&lt;!-- s : 기사 본문 --&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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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news.joins.com/component/photo_mmdata/200907/pho_2009070101593910001010-001.JPG&quot; name=photo&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lt;/SPAN&gt;
&lt;DD&gt;&lt;/DD&gt;&lt;/DL&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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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4&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H4&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BR&gt;&lt;/DIV&gt;&lt;!--replace1--&gt;&lt;!--replace2--&gt;&lt;/DIV&gt;&lt;!--img_tag_e--&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945년 11월 5일, 백범 김구는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임시정부 수뇌들과 함께 충칭(重慶)을 출발해 상하이(上海)에 기착한다. 13년 전 첫 임시정부가 수립된 땅으로, 일제의 압박을 피해 항저우(杭州·1932), 전장(鎭江·1935), 창사(長沙·1937), 광저우(廣州·1938), 류저우(柳州·1938), 치장((綦江·1938), 충칭(1940) 등지로 옮겨다니며 독립운동을 한 그로서는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었다. 항저우로 쫓겨갈 때에 비해 상하이에 거주하는 동포 수가 수십 배 늘어났다는 얘기를 듣고 백범은 말을 잇는다. “하지만 독립정신을 굳게 지키며 왜놈의 앞잡이가 되지 않은 사람은 10여 명뿐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왜 아니겠나. 백범 같은 위인이라면 모를까 광기 서린 일제의 총칼 아래서 민족 지조를 지키며 살 수 있었던 조선인들이 얼마나 됐겠나 말이다. 한두 해도 아니고 40년 가까이 방치된 세계사의 그늘 속에서 하루 살기를 걱정하는 범부로서 언감생심 광복의 꿈을 품을 수 있었을까 말이다. 백범은 다 이해하면서도 유독 한 사람만은 용서할 수 없었다. 백범일지에 이렇게 전한다. “민족 반역자로 변절한 안준생(安俊生)을 교수형에 처하라고 중국 관헌에 부탁했으나 그들이 실행하지 않았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안준생이 누군가. 우리가 자랑하는 독립운동가 중 부동의 1위 영웅인 안중근 의사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1939년 10월 15일 서울 장충단 공원, 지금의 신라호텔 자리에 있던 박문사(博文寺)를 찾는다. 이름 그대로 안 의사한테 사살된 조선총독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추모하려고 만든 절이었다. 준생은 이토의 영전에 향을 피우고 “아버지의 죄를 내가 속죄하며 보국의 정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한다. 다음날엔 이토의 둘째 아들인 일본광업공사 사장 분키치(文吉)를 만나 직접 사과했다. 이 만남을 담은 사진은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10월 18일자에 ‘극적인 대면, 여형약제(如兄若弟) 오월(吳越) 30년 영석(永釋)’ 즉, ‘형·동생으로 30년 원한을 영원히 풀다’라는 제목으로 대문짝만하게 실렸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937년 중일전쟁 발발 전만 해도 준생은 독립운동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국과 달리 학교 보내주고 집 구해준 일제의 책략에 끝내 굴복하고 이용되고 만 것이다. 백범은 호랑이한테서 난 ‘개’를 용서하기 어려웠겠지만 나는 그를 친일파로 모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안중근의 핏줄이었기에 불운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희생자였을 뿐이며, 죄가 있다면 그것은 거사를 치른 애국자의 친아들 하나 제대로 추스를 수 없었던 부끄러운 조국이었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다행히 최근 한 좌파 단체가 펴낸 이른바 ‘친일인명사전’에는 그의 이름이 들어 있지 않다. 하지만 내 생각과 같은 이유가 아닌 모양이다. 그보다 친일 행적이 덜한 사람들이 친일파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만주국 중위였다는 경력만으로 친일파가 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경우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夜放聲大哭)’으로 을사늑약을 규탄한 위암 장지연 같은 이도 친일적인 글 몇 편 탓에 더러운 이름이 되고 말았다. 반면 좌파 인사로 신문에 학병 권유문을 썼던 몽양 여운형 같은 이는 무슨 이유인지 명단에서 빠졌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런 중심 잃은 선정으로 누가 무엇을 얻는지 모르겠다. 식민지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후배 기자에게 떠넘기지 않고 주필로서 스스로 짐을 진 사람들을 을사오적과 같은 부류로 만들어 대한민국 국민 중 누가 득을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사전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미국 독립전쟁 뒤 조지 워싱턴 대통령과 찰스 톰슨 대륙회의 의장은 회고록을 쓰지 않기로 합의한다. 독립이라는 영광스러운 대의(大義)도 지도자들의 욕심 탓에 얼마나 자주 재앙을 맞을 뻔했는지 국민들이 알면 환멸을 느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쓰려던 사실이 우리처럼 왜곡된 가치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훈범 논설위원 &lt;/SPAN&gt;&lt;/DIV&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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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창혁]대한민국은 섬나라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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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등대마루</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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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01:09:41Z</updated>
	    <published>2009-11-10T01:09:41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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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FONT size=3&gt;[김창혁]대한민국은 섬나라다&lt;!--NewsAdTitleEnd--&gt; &lt;!--DCM_TITLE_END--&gt;&lt;!-- LAYER begin --&gt;&lt;BR&gt;&lt;/FONT&gt;&lt;/P&gt;
&lt;DIV id=overDiv style=&quot;POSITION: absolute; visible: hidden&quot; onmouseout=nd() =&quot;clearTimeout(tid)&quot;&gt;&lt;/DIV&gt;&lt;!-- LAYER end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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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class=G14h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11px; PADDING-BOTTOM: 0px; PADDING-TOP: 0px&quot; vAlign=top&gt;&lt;B&gt;&lt;/B&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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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ize=3&gt;&lt;IMG src=&quot;http://news.donga.com/IMAGE/2009/11/09/23978758.2.jpg&quot; gid=&quot;23978758.2.1&quot;&gt;&lt;BR&gt;&lt;BR&gt;&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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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OVERFLOW: hidden&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T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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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창극] Enough is Enough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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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등대마루</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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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01:03:16Z</updated>
	    <published>2009-11-10T01:03:1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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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H2&gt;&lt;FONT size=3&gt;[문창극] Enough is Enough &lt;/FONT&gt;&lt;/H2&gt;
&lt;P&gt;&lt;FONT size=3&gt;&amp;nbsp;&lt;BR&gt;&amp;nbsp;&lt;BR&gt;&amp;nbsp;&lt;BR&gt;&lt;!-- e : 기사 / 댓글탭 --&gt;&lt;!-- s : 기사 본문 --&gt;&lt;/FONT&gt;&lt;/P&gt;
&lt;DIV id=joinskmbox&gt;&lt;!--cmpm--&gt;
&lt;DIV class=article04 id=articleBody&gt;&lt;!--img_tag_s--&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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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T&gt;&lt;FONT size=3&gt;&lt;IMG alt=&quot;&quot; src=&quot;http://news.joins.com/component/photo_mmdata/200905/pho_2009051301005210001010-001.JPG&quot; name=photo&gt; &lt;/FONT&gt;
&lt;DD&gt;&lt;FONT size=3&gt;&lt;/FONT&gt;&lt;/DD&gt;&lt;/DL&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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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4&gt;&amp;nbsp;&lt;/H4&gt;&lt;FONT size=3&gt;&amp;nbsp;&lt;BR&gt;&amp;nbsp;&lt;BR&gt;&lt;/FONT&gt;&lt;/DIV&gt;&lt;!--replace1--&gt;&lt;!--replace2--&gt;&lt;/DIV&gt;&lt;!--img_tag_e--&gt;&lt;FONT size=3&gt;세종시로 나라가 다시 시끄럽다. 여론도 갈린다. 양쪽이 내세우는 가치가 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한쪽은 나라의 책임자로서 뻔히 잘못된 길임을 알고도 그냥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국민과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둘 다 옳은 소리다. 그러니 국민들은 더 어지러운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때는 몰랐다가 대통령이 돼서야 그 계획이 잘못된 것인 줄 알았을까? 모르긴 해도 그때 이미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충청도 표 때문에 그런 약속을 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주장대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으면 그때 반대를 했어야 한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요즘처럼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있는 마당에 ‘정치인은 국민과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은 신선하다. 그녀의 원칙의 정치가 그래서 공감을 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대통령은 분명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lt;BR&gt;&lt;BR&gt;이런 상반된 주장을 놓고 어느 쪽을 따르겠는가. 이를 판단할 기준은 없는가. 나는 이 문제가 대통령과 예비후보라는 입장의 차이에서 온 것이라고 보고 싶다. 원칙이니 신뢰니 하는 말은 수사학처럼 들린다. 이 대통령도 후보일 적에는 이를 그대로 하겠다고 했다. 표 때문이었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박 전 대표 역시 대통령이 후보 때 갖던 마음을 지금 똑같이 갖고 있을 것이다. 2005년 당시 여야가 이 도시계획을 합의했을 때 박 전 대표는 지금 상황과 똑같이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다.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대통령을 노리는 후보다. 지금도 그때와 같이 선거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lt;BR&gt;&lt;BR&gt;나의 논리는 간단하다. 대통령 말을 더 믿을 것인가, 아니면 후보의 말을 더 믿을 것인가. 선거에 나설 사람과 선거에 다시 나서지 않을 사람 중 누구 말이 더 믿을 만한 것일까. 인기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 중에 누구를 더 신뢰할 것인가. 또 하나의 기준이 있다면 ‘누가 이 문제로 이득을 보는가’이다. 대통령은 “원안대로 하면 나는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후보로서 약속을 했으니까 그대로 가겠다고 했으면 이런 분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약속을 어긴다는 비판도 안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개인적 손해를 보면서 이를 수정하려 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원안을 수정하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원안을 고수해야 그녀에게는 이익이 온다. 나는 이렇게 공익이 걸린 문제에선 개인적으로 손해를 보는 쪽에 더 진실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lt;BR&gt;&lt;BR&gt;도시란 계획의 산물이 아니라 필요의 산물이다. 필요하면 자연스럽게 모이게 돼 있다. 그게 도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상호작용을 통해 더 많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창출한다. 큰 도시일수록 그래서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뉴욕, 런던, 상하이가 더 커지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계획도시가 사회주의적이라고 한다면 자연발생의 도시는 시장경제와 같다. 세종시의 문제는 계획도시라는 문제에다 한술 더 떠 정치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처음부터 세종시는 ‘표 놀음’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수도 이전으로 재미 좀 봤다”고 이미 고백하지 않았는가. 잘못된 것은 한나라당이었다. 표에 코가 꿰어서 줄줄 따라간 사람들이 아닌가. 결정 당시에도 행정부처를 옮겨 그 도시가 살아날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행정부처를 옮기고 거기다가 알파까지 보태라는 것 아닌가?&lt;BR&gt;&lt;BR&gt;대통령과 후보는 다르고 당연히 달라야 한다. 어느 대통령이든 임기 중에 대통령직에 책임을 진다. 대통령직을 어떻게 지켰느냐에 따라 대통령의 색깔이 달라진다. 우리는 그를 선택한 이상 자기 색깔의 대통령직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임기 초반부터 유력한 차기 후보가 자기 색깔을 칠하려고 한다면 지금의 대통령직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lt;BR&gt;&lt;BR&gt;지금 이 논의의 가장 큰 맹점은 정파 또는 개별 정치인의 이익에 매몰돼 있으면서 그렇지 않은 듯 국민을 호도하는 데 있다. 세종시의 근본 문제는 여와 야, 이명박과 박근혜의 싸움이 아니다. 국가 전체의 장래에 관한 문제다. 통일을 염두에 두고, 대륙으로 뻗어나갈 우리의 잠재력을 가늠하면서 과연 이 순간 지역정치에 얽매여 퇴행의 길을 걸을 것이냐, 아니면 이를 떨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냐의 문제다. 충청도의 이익보다 나라 전체의 이익이 더 크고 더욱 소중하기 때문이다. &lt;BR&gt;&lt;BR&gt;이 대통령은 자신이 겪었던 일이라 박 전 대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충청도 사람들에게 좌절을 주지 않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도 정치놀음의 희생자다. 박 전 대표 역시 그만하면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밝혔다. 다음 선거에서 충청도를 배반했다는 소리는 최소한 듣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분란을 접어야 한다. 그만하면 충분했다(Enough is Enough).&lt;BR&gt;&lt;BR&gt;문창극 대기자 &lt;/FONT&gt;&lt;/DIV&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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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술 말리는 사회/ 신예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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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등대마루</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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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00:57:27Z</updated>
	    <published>2009-11-10T00:57:27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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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FONT size=4&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술 말리는 사회/&amp;nbsp;신예리&lt;/SPAN&gt;&lt;BR&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BR&gt;&lt;FONT size=4&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BR&gt;&lt;FONT size=4&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FONT&gt;&lt;BR&gt;&lt;!-- e : 기사 / 댓글탭 --&gt;&lt;!-- s : 기사 본문 --&gt;&lt;/P&gt;
&lt;DIV id=joinskmbox&gt;&lt;!--cmpm--&gt;
&lt;DIV class=article04 id=articleBody&gt;&lt;!--img_tag_s--&gt;
&lt;TABLE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267 align=right border=0&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15&gt;&lt;FONT size=4&gt;&lt;/FONT&gt;&lt;/TD&gt;
&lt;TD align=middle&gt;&lt;FONT size=4&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IMG class=blb src=&quot;http://news.joins.com/component/htmlphoto_mmdata/200911/htm_2009111000235310001010-001.JPG&quot; width=130 border=0 name=photo&gt;&lt;/SPAN&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 width=0 colSpan=2&gt;
&lt;DIV class=addon_panel&gt;
&lt;H4&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H4&gt;&lt;/DIV&gt;&lt;!--replace1--&gt;&lt;!--replace2--&gt;&lt;/TD&gt;&lt;/TR&gt;
&lt;TR&gt;
&lt;TD colSpan=2 height=15&gt;&lt;U&gt;&lt;FONT size=4&gt;&lt;/FONT&gt;&lt;/U&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img_tag_s--&gt;&lt;FONT size=4&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중세 유럽에선 음주가 권장사항이었다. 샘과 우물이 오염돼 물을 마신 뒤 병에 걸리거나 죽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귀찮게 물을 끓여 마시느니 차라리 술과 친하게 지내는 편을 택했다. 18세기 중반엔 차와 커피가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카페인 과용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커피 금지령을 내리고 대신 술을 마실 것을 명했다고 한다(톰 히크먼, 『[술] 사용설명서』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과음의 해악이 갈수록 심각해지며 이후 역사는 ‘술과의 전쟁’으로 점철돼 왔다. 20세기 초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아메리카 대륙까지 곳곳에서 실시된 금주령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말리면 더 마시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미국에선 술 마시러 교회에 가는 사람들 탓에 성찬식용 포도주가 1922년 214만 갤런에서 2년 뒤엔 300만 갤런 가까이로 늘었다. 의사들이 치료용으로 처방한 위스키가 한 해 180만 갤런에 이르기도 했다. 이런 ‘합법적’ 꼼수 외에도 밀수며 밀주 제조 등 온갖 불법이 판을 친 건 물론이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85년 대대적으로 펼쳤던 금주 조치 역시 실패로 끝났다. 보드카 값을 올리고 생산·판매를 확 줄였지만 알코올 중독은 되레 더 늘었다. 술꾼들이 열악한 대용품을 엄청 마셔댔던 거다. 그 시절 성난 민심을 보여주는 우스개가 전한다. 보드카를 사려고 온종일 줄을 섰다 화가 난 남자가 고르바초프를 쏴 죽인다며 크렘린으로 향한다. 얼마 후 그가 되돌아와서 하는 말, “거기 줄은 여기보다 더 길어!”&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금주 정책은 이렇듯 인기가 없는 데다 주세 수입을 줄여 나라 살림에도 치명타를 입힌다. 그럼에도 국민 건강을 나 몰라라 하기 힘든 각국 정부가 울며 겨자 먹기로 술에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이 18L로 세계 선두인 러시아는 고르바초프 때와 비슷한 조치를 재추진 중이다. 술로 인한 사망자가 해마다 50만 명이나 나오는 걸 좌시할 수 없어서다. 프랑스에서도 급증하는 사고 때문에 노변 음주를 금지하는 도시가 확산되는 추세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우리나라는 신종 플루가 때아닌 절주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술을 삼가 면역력 키우기, 폭탄주 돌리지 않기 등 예방수칙 때문에 송년회 경기마저 썰렁하다는 소식이다. 나라님도 못 말리는 술꾼들을 과연 플루가 다스릴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신예리 논설위원&lt;/SPAN&gt; &lt;/FONT&gt;&lt;/DIV&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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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지하/4대강과 풍수, 그리고 세종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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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등대마루</name>
	    </author>
	    <updated>2009-11-10T00:46:26Z</updated>
	    <published>2009-11-10T00:46:26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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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P&gt;&lt;FONT size=3&gt;김지하/4대강과 풍수, 그리고 세종시&lt;BR&gt;&lt;/FONT&gt;&lt;/P&gt;
&lt;UL id=author&gt;
&lt;LI&gt;&lt;FONT size=3&gt;김지하·시인 &lt;/FONT&gt;&lt;A href=&quot;http:///&quot; target=_blank&gt;&lt;/A&gt;&lt;/LI&gt;&lt;/UL&gt;
&lt;P class=on id=art_tab1&gt;&lt;FONT size=3&gt;&amp;nbsp;&lt;BR&gt;&lt;/FONT&gt;
&lt;P class=on&gt;&lt;FONT size=3&gt;&amp;nbsp;&lt;BR&gt;&lt;/FONT&gt;
&lt;P class=on&gt;&lt;FONT size=3&gt;&amp;nbsp;&lt;BR&gt;&lt;!-- article --&gt;&lt;/FONT&gt;
&lt;DIV class=article id=article style=&quot;FONT-SIZE: 14px; LINE-HEIGHT: 23px&quot;&gt;
&lt;DL class=left_img style=&quot;WIDTH: 160px&quot;&gt;
&lt;DD&gt;&lt;FONT size=3&gt;&lt;IMG id=artImg0 height=200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11/09/2009110901478_0.jpg&quot; width=160&gt; &lt;/FONT&gt;
&lt;DT&gt;&lt;FONT size=3&gt;&lt;SPAN&gt;▲&lt;/SPAN&gt; 김지하·시인 &lt;/FONT&gt;&lt;/DT&gt;&lt;/DL&gt;
&lt;H3&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H3&gt;
&lt;H3&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H3&gt;
&lt;H3&gt;&lt;FONT size=3&gt;나도 더는 그 따위 몰상식한 정책을&lt;BR&gt;옳다 그르다 왈가왈부하지않겠다.&lt;BR&gt;다만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lt;BR&gt;참으로 하기 싫은 말 한마디를 한다.&lt;BR&gt;도대체 이 나라에 대한 國土觀이란 것을 가지고나 있는가?&lt;/FONT&gt;&lt;/H3&gt;&lt;FONT size=3&gt;&amp;nbsp;&lt;BR&gt;&amp;nbsp;&lt;BR&gt;&amp;nbsp;&lt;BR&gt;몇번이나 몇번이나 똑같은 말을 해야 되는 것인가?&lt;BR&gt;&lt;BR&gt;대운하니 사대강이니 사강나래니 말만 바꾸면서 끝없이 지치지도 않고 산천을 파헤치고 때려부수겠다고 나서는 그 까닭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lt;BR&gt;&lt;BR&gt;옛날 같으면 오역(五逆)이니 오사(五事)니, 한 술 더 떠 황극(黃極)이니 하며 온 나라가 시끄럽게 떠들고 일어나 그 정책 책임자를 최소 보름에서 한 달 보름 동안 단식하고 무릎 꿇어 하늘에 빌고 또 빌게 하고야 말았을 일들이다.&lt;BR&gt;&lt;BR&gt;모르겠는가? 하늘이 무엇인지 모르겠는가? 산과 강물과 숲과 모래밭이 하늘에 속하는 하늘의 영지, 즉 천지(天地)임을 아직도 모르겠는가? 당신들 소유물이던가?&lt;BR&gt;&lt;BR&gt;내 알기론 대통령은 하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사실이 아닌가? 유럽의 기독교도들은 그 성스러운 하늘의 영지를 그 따위로 때려부수는 사람들의 이름이던가?&lt;BR&gt;&lt;BR&gt;이 이상 나도 더는 그 따위 몰상식한 정책을 옳다 그르다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다만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그리고 하늘과 생명을 위해 참으로 하기 싫은 말 한마디를 아니 할 수 없어 한다.&lt;BR&gt;&lt;BR&gt;도대체 이 나라에 대한 국토관(國土觀)이란 것을 가지고나 있는가? 한국의 자생풍수(自生風水)에 대해 단 한 페이지의 지식이라도 섭취한 적이 있는가?&lt;BR&gt;&lt;BR&gt;우리의 국토, 우리의 산천은 애당초부터 간방(艮方)이라고 하여 그따위 제멋대로의 산천파괴를 못하게끔 돼 있다.&lt;BR&gt;&lt;BR&gt;&lt;/FONT&gt;
&lt;DL class=left_img style=&quot;WIDTH: 240px&quot;&gt;
&lt;DD&gt;&lt;FONT size=3&gt;&lt;IMG id=artImg1 height=518 alt=&quot;&quot; src=&quot;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0911/09/2009110901478_1.jpg&quot; width=240&gt; &lt;/FONT&gt;
&lt;DT&gt;&lt;FONT size=3&gt;&lt;SPAN&gt;▲&lt;/SPAN&gt;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lt;/FONT&gt;&lt;/DT&gt;&lt;/DL&gt;&lt;FONT size=3&gt;신경준(申景濬)의 산경표(山經表)를 읽은 적이 있는가? 산경표는 김정호(金正浩)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의 '속갈피'라 불리는, 지리서(地理書)가 아닌 지질서(地質書)다. 읽은 적이 없는가?&lt;BR&gt;&lt;BR&gt;&lt;/FONT&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142&quot; target=_blank name=focus_li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일본&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인 대지질학자 마치무라 세이요(重村世勳)는 산경표를 '신의 지표'라고 칭송했고, 저 유명한 스코필드 박사는 이를 두고 &quot;예루살렘의 나침판 같다&quot;고 여러 번 혀를 내둘렀다. 무엇을 뜻하는가?&lt;BR&gt;&lt;BR&gt;단순한 과학서가 아니란 뜻이겠다.&lt;BR&gt;&lt;BR&gt;산경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골짜기의 높낮이는 천 가지 만 가지로 서로 다르고, 물굽이의 복잡하기와 그 물속 사정의 서로 다르기가 그야말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그만큼 복잡한 삼천대천 세계라는 말이다. 그래서도 고려 말 나옹화상(懶翁和尙)은 우리 국토는 문자 그대로 작은 화엄세계라 당나라 해충국사의 표현에 따르면 '무봉탑(無縫塔)'이 적절하다고 말한 바 있다.&lt;BR&gt;&lt;BR&gt;'무봉탑'이 무엇인가?&lt;BR&gt;&lt;BR&gt;누덕누덕 바느질할 수 없는 타고난 유리궁전(琉璃宮殿)이라는 뜻이다. 하늘만이 바꿀 수 있는 땅인 것이다. 그것을 지금 어떻게 하겠다고?&lt;BR&gt;&lt;BR&gt;19세기 말 서세동점 시대 같으면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처럼 산천개조의 필요성에 약간 솔깃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 생태계 혼돈이 극에 달하고 입만 열면 녹색을 떠들며 문명의 대세가 동아시아로 중심이동하고 있는 중에 이곳 전통 중의 우주생명사상으로부터 새 시대의 녹색당, 인격-비인격, 생명-무생명 등 일체 존재를 다같이 거룩한 우주공동 주체로 들어올리는 모심의 문화, 모심의 생활양식으로 현대 인류의 삶 전체를 변혁하지 않으면 지금의 대혼돈은 극복할 길이 전혀 없다는 전문 유럽 생태학자들의 새로운 동아시아 녹색당 요구가 머리를 쳐드는 이 즈음에 뭘 어찌하겠다고? 운하? 보? 댐? 준설?&lt;BR&gt;&lt;BR&gt;준설이 녹색인가?&lt;BR&gt;&lt;BR&gt;모래통 나를 백수는 요즘 한국엔 없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를 데려와 쓸 건가? 그게 뉴딜인가? 정부의 환경평가기관이 세 차례나 수질오염 가능성을 경고했는데도 뭐라고? 예산을 많이 투입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지금 장난을 하는 건가?&lt;BR&gt;&lt;BR&gt;&lt;/FONT&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issue/issueView.jsp?id=276&quot; target=_blank name=focus_li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신종플루&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는 분명 수질오염으로 시작된 것이고, 그 진원지인 &lt;/FONT&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45&quot; target=_blank name=focus_li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멕시코&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라 글로리아'에는 또 다른 진녹색의 독성 수질이 쉬쉬하는 속에서도 대유행이다. &lt;/FONT&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193&quot; target=_blank name=focus_li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프랑스&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lt;/FONT&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98&quot; target=_blank name=focus_li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스페인&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lt;/FONT&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190&quot; target=_blank name=focus_li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포르투갈&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앞바다에 '타발타바라풀'이라는 죽지 않는 해조류에 의한 수질오염 가능성, 페르시아만 일대의 '악마의 향기'라는 이름의 썩은 어패류에 의한 수질오염 가능성, &lt;/FONT&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30&quot; target=_blank name=focus_li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러시아&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극지 사모아 발란까 지역의 극도의 뜨거운 독성 액체의 분출, &lt;/FONT&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nation/nationView.jsp?id=146&quot; target=_blank name=focus_li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중국&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여러 곳에 지금 막 퍼지고 있는 시뻘건 짐승꽃 '가홍(可弘)'이란 이름의 기괴한 수질오염 식물에 대해 듣지도 못했는가?&lt;BR&gt;&lt;BR&gt;도대체 &lt;/FONT&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org/orgView.jsp?id=366&quot; target=_blank name=focus_li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환경부&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lt;/FONT&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org/orgView.jsp?id=398&quot; target=_blank name=focus_li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국토부&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의 그 잘난 체하는 전문가들은 전문 관계 지식은 고사하고 수질오염으로 인한 피해가능성에 대해 눈도 귀도 감각도 일절 닫은 것인가?&lt;BR&gt;&lt;BR&gt;어쩔 작정이란 말인가? 오늘의 글로벌 세계에서 그것이 모두 남의 일인가? 마치 죽지 않는 해파리들처럼 4대강에 그것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몰려온다면?&lt;BR&gt;&lt;BR&gt;나는 &lt;/FONT&gt;&lt;A href=&quot;http://focus.chosun.com/issue/issueView.jsp?id=285&quot; target=_blank name=focus_li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정운찬&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 총리의 세종시 견해를 지지한다. 계룡산은 철저한 남향의 피난 풍수다. 우리는 지금 북으로 대륙으로, 그리고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한 전문 풍수인의 말처럼 수도를 열린 교하(경기도 파주시)로 밀고 나가도 모자랄 이때 뭐가 어째?&lt;BR&gt;&lt;BR&gt;그래서 최소한의 국토관은 당연히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아직도 모르겠는가?&lt;BR&gt;&lt;BR&gt;정 총리가 앞에 직접 나서서 다시금 장기적이고 전국민적인 공청회와 토론, 수많은 전문가들의 여러 가지 의견 청취를 통해 '물'과 '물길'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도출된다면 그때는 내 견해를 바꿀 수도 있다.&lt;BR&gt;&lt;BR&gt;그러나 그렇지 않고 순 무식쟁이들 깡통 두들기는 차원이라면 나는 아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lt;BR&gt;&lt;BR&gt;그래도 좋은가? &lt;/FONT&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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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장준하 선생 아들이 박지만씨에게 보내는 편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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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등대마루</name>
	    </author>
	    <updated>2009-11-10T00:39:55Z</updated>
	    <published>2009-11-10T00:39:5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size=3&gt;&lt;FONT color=#00689e&gt;&lt;STRONG&gt;장준하 선생 아들이 박지만씨에게 보내는 편지&lt;BR&gt;&lt;/STRONG&gt;(블로그 '보림재' / 정운현 /&amp;nbsp;2009-11-09)&lt;BR&gt;&lt;/FONT&gt;&amp;nbsp;&lt;BR&gt;&lt;/FONT&gt;&lt;FONT color=#00689e size=3&gt;&amp;nbsp;&lt;BR&gt;&lt;BR&gt;&lt;BR&gt;&lt;/FONT&gt;&lt;/P&gt;
&lt;DIV style=&quot;BORDER-RIGHT: #ccc 1px solid; PADDING-RIGHT: 10px; BORDER-TOP: #ccc 1px solid; PADDING-LEFT: 10px; PADDING-BOTTOM: 10px; BORDER-LEFT: #ccc 1px solid; PADDING-TOP: 10px; BORDER-BOTTOM: #ccc 1px solid; BACKGROUND-COLOR: #f2f9ed&quot;&gt;&lt;FONT size=3&gt;&lt;STRONG&gt;정 선생님&lt;/STRONG&gt; &lt;BR&gt;저는 고 장준하 선생님의 삼남으로서 현재 미국 커네티컷에서 유학생들과 함께하는 작은 교회를 돌보고 있는 장호준 목사입니다. &lt;BR&gt;최근 박지만씨가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게재 및 배포금지 신청을 제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첨부한 내용과 같은 서신을 작성했습니다. &lt;BR&gt;졸필이나마 친일인명사전을 통해 민족의 역사가 바로 서는 길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 선생님께 편지를 전합니다. &lt;BR&gt;정 선생님의 귀한 글에 늘 감사를 드리며 &lt;BR&gt;커네티컷에서 &lt;BR&gt;장호준 올림&lt;BR&gt;&lt;/FONT&gt;&lt;/DIV&gt;
&lt;P&gt;&lt;FONT size=3&gt;&amp;nbsp;&lt;BR&gt;&amp;nbsp;&lt;BR&gt;지난 토요일 낯모르는 이에게서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이메일을 열어보니 발신지는 미국이었고요, 보낸 이는 놀랍게도 장준하 선생의 3남 장호준씨였습니다. &lt;BR&gt;그는 현재 미국 커네티켓에서 작은 교회의 목사로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장 목사는 “최근 박지만씨가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게재 및 배포금지 신청을 제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첨부한 내용과 같은 서신을 작성했다“고 밝히고는 “졸필이나마 친일인명사전을 통해 민족의 역사가 바로 서는 길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 선생님께 편지를 전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고는 ‘박지만씨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편지를 첨부해 보내왔습니다.&lt;BR&gt;&amp;nbsp;&lt;BR&gt;&lt;/FONT&gt;
&lt;TABLE width=80 align=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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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gt;&lt;FONT size=3&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909/1099870698.jpg&quot;&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FONT color=#808080 size=3&gt;▲ '숙명의 두 사람' 장준하(왼쪽)와 박정희. 사진속의 장준하는 광복군 제3지대 소속 육군 중위 시절이며,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 졸업 후 만주군 육군 소위 임관 직전의 모습임.&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FONT size=3&gt;&amp;nbsp;&lt;BR&gt;&amp;nbsp;&lt;BR&gt;젊은 세대들에겐 다소 낯선 이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장준하(張俊河, 1918~1975) 선생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lt;BR&gt;일제 말기인 1944년 1월 20일 학도병으로 끌려가 중국땅에 체류 중이던 선생은, 김준엽 등 동지들과 목숨을 걸고 일본군을 탈출하여 수천 리 길을 걸어 마침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머물고 있던 중경으로 가 광복군에 합류하였습니다.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제하 전력과는 극적 대비를 보이는 대목입니다. 아시다시피 박 전 대통령은 문경서 교사로 있다가 만주로 건너가 만주군 장교가 되었죠. &lt;BR&gt;해방 후 귀국한 선생은 전쟁 와중인 1953년 &lt;사상계&gt;를 창간해 정론을 펴나갔으며, 1967년 정계에 입문, 제7대 국회의원(신민당)으로 당선됐으나, 4년 뒤엔 탈당하였습니다. &lt;BR&gt;그 무렵 선생은 박 정권에 대해 누구도 하기 어려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1974년엔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등을 통하여 박 정권을 통렬히 비판했고, 나아가 야권과 범민주 세력의 통합에 진력하였으나 큰 성과를 이루진 못했습니다. &lt;BR&gt;그러던 중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군 소재 약사봉에서 의문사로 생을 마감하셨는데요, 저는 선생을 우리 현대사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이라고 기록하고 싶습니다. &lt;BR&gt;이번에 선생의 3남 장호준 목사가 제게 보내온 편지 제목이 예사롭지 않군요. 이는 1974년 장 선생이 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연상시킵니다. 편지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전문을 통해 보시기 바랍니다. &lt;BR&gt;참고로, 장 목사께서 이 편지를 보낼 당시는 법원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이었으나, 그 다음날 법원이 박씨가 낸 '게재금지 가처분'에 대해 기각 결정이 내려졌음을 밝혀둡니다. 그래서 결국 친일인명사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은 포함이 됐고요.&lt;BR&gt;편지 가운데 '가처분' 관련 대목은 시점이 지나 무의미한 얘기가 돼버렸습니다만, 나머지 내용은 박씨가 새겨들을만한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lt;BR&gt;&amp;nbsp;&lt;BR&gt;&lt;/FONT&gt;
&lt;TABLE width=80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gt;&lt;FONT size=3&gt;&lt;IMG src=&quot;http://blogimg.ohmynews.com/attach/6909/1318836895.jpg&quot;&gt;&lt;/FONT&gt;&lt;/TD&gt;&lt;/TR&gt;
&lt;TR&gt;
&lt;TD&gt;&lt;FONT color=#808080 size=3&gt;▲ 박정희 전 대통령 일가 모습. 가운데가 박근혜씨이며, 오른쪽 끝이 박지만씨.&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FONT size=3&gt;&amp;nbsp;&lt;BR&gt;&amp;nbsp;&lt;BR&gt;&amp;nbsp;&lt;BR&gt;&lt;/FONT&gt;&lt;/P&gt;
&lt;P align=center&gt;
&lt;TABLE style=&quot;BORDER-RIGHT: #ccc 1px solid; BORDER-TOP: #ccc 1px solid; BACKGROUND: #ffffff; MARGIN: 5px auto 10px; BORDER-LEFT: #ccc 1px solid; BORDER-BOTTOM: #ccc 1px solid&quot; cellSpacing=5 cellPadding=25 align=center&gt;
&lt;TBODY&gt;
&lt;TR&gt;
&lt;TD width=650&gt;
&lt;P style=&quot;FONT-SIZE: 14px;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23px; FONT-FAMILY: '굴림체';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굴림체';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size=3&gt;&lt;STRONG&gt;[박지만씨에게 보내는 공개편지]&lt;/STRONG&gt; &lt;BR&gt;박지만씨, &lt;BR&gt;&lt;/FONT&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지만씨의 이름이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아버님의 의문사 이후 학업을 중단하고 낮에는 가게 점원으로 밤에는 포장마차에서 일을 하면서 살아가던 시절, 동창들의 입을 통해 중앙고등학교를 다니던 지만씨의 이름이 들려지면서부터 였다고 생각됩니다. &lt;BR&gt;&lt;/FONT&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그 후 그리도 잔인했던 1980년 5월을 훈련소에서 보내고 전방에서 사병생활을 하던 때,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가 되었다는 지만씨의 소문을 심심치 않게 들었었고, 한동안 듣지 못했었던 지만씨의 이름을 내가 다시 듣게 되었던 것은 싱가폴에서 마약중독자 상담원으로 일을 하던 당시 지만씨가 마약중독으로 치료감호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통해서였습니다. &lt;BR&gt;&lt;/FONT&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그리고 이제 지만씨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된 것은 최근 지만씨가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게재금지 가처분과 배포금지 신청을 법원에 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였습니다. &lt;BR&gt;박지만씨, &lt;BR&gt;&lt;/FONT&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지만씨와 나는 너무도 다른 삶의 공간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나는 지만씨와는 스쳐 지나갈 기회조차도 없었고 또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지만씨가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게재금지 가처분과 배포금지 신청을 법원에 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제서야 지만씨에게 이런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같은 역사 속을 헤치며 살아야만 했었던 한 사람으로서 역사를 향해 다하지 못한 책임에 대한 고백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lt;BR&gt;박지만씨, &lt;BR&gt;&lt;/FONT&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나는 지만씨의 아버지는 일황에게 충성을 바쳤던 일본군이었고 내 아버지는 일제와 맞서 싸웠던 독립군이었다거나, 지만씨의 아버지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독재자였고 내 아버지는 민주와 통일을 위해 목숨 바친 민족주의자였다는, 또는 지만씨의 아버지는 부정한 재산을 남겨 주었지만 내 아버지는 깨끗한 동전 한 닢 남겨준 것이 없었다는 이야기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역사는 역사가 스스로 평가하도록 맡겨 두라는 것입니다. &lt;BR&gt;&lt;/FONT&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역사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몫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있었던 역사를 그대로 남겨두는 것입니다. 혹자는 역사는 승자에 의한 기록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내가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인류 역사는 사필귀정이라는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신념뿐 아니라 부정한 권력에 의해 조작되었던 인혁당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역사의 현장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lt;BR&gt;&lt;/FONT&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자식 된 입장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친일인명사전에 오르는 것을 막고자 하는 마음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결코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 번지게 되는 것이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만씨가 자신에게 수치스러운 또는 불리한 사실이라는 이유로 역사를 지우고자 한다면 역사는 지만씨의 이와 같은 행동을 또 다른 수치스러운 역사로 기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기 바랍니다. &lt;BR&gt;박지만씨, &lt;BR&gt;&lt;/FONT&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내 아버님은 의문의 죽임을 당하시기 불과 수개월 전에 지만씨의 아버지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t;BR&gt;&lt;/FONT&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이 지구 상에는 수백억의 인간이 살다 갔습니다. 그중에 ‘가장’되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죽으면 내 집이 어찌 되겠는가’ 하는 걱정을 안고 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발전하여 왔습니다. 우리들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lt;BR&gt;&lt;/FONT&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지만씨나 나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민족은 발전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한민족의 역사는 기록되어 남겨져야 하며 또한 전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은 역사입니다. 역사가 평가하도록 남겨두어야 할 역사인 것입니다. 역사를 지우려는 오류를 범하지 말기를 다시 당부합니다. &lt;BR&gt;&lt;/FONT&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수용소 소장으로서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한 아몬 게트(Amon Goeth)의 딸은 ‘내가 과거를 바꿀 수 없다면 미래를 위해 무언가는 해야 한다’라고 다짐하면서 생존자 중 한 사람을 만나 잔혹하고 치욕스러운 아버지의 과거를 듣고 용서를 빌게 됩니다. &lt;BR&gt;박지만씨, &lt;BR&gt;&lt;/FONT&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이제 우리는 살아서 오십 대 초반을 보내고 있습니다. 짧지만 길었던 삶 속에서 또한 우리는 지나온 역사가 결코 우리의 손에 의해 바뀌어 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확실히 믿는 것은 치욕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lt;BR&gt;&lt;/FONT&gt;
&lt;P align=justify&gt;&lt;FONT size=3&gt;얼마 전 아버지가 되었다는 지만씨에게 내 아버님께서 평생 가슴에 품었었고 이제는 내 가슴속에 품겨져 있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글귀를 전해 드립니다. 자식에게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게재금지 가처분과 배포금지 신청을 취소하십시오. 그리하는 것이 역사와 후손들 앞에서 지만씨의 모습을 부끄럽지 않게 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lt;BR&gt;우리 민족 통일을 위해 지만씨의 삶이 쓰여 지기를 빌어봅니다. &lt;BR&gt;&lt;BR&gt;미국 커네티컷에서 &lt;BR&gt;장호준&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COLOR: #000000; LINE-HEIGHT: 23px; FONT-FAMILY: '굴림체';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SPAN&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BR&gt;&lt;BR&gt;&lt;FONT size=3&gt;&lt;STRONG&gt;출처 :&lt;/STRONG&gt; &lt;/FONT&gt;&lt;A href=&quot;http://blog.ohmynews.com/jeongwh59/&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00ff size=3&gt;&lt;U&gt;http://blog.ohmynews.com/jeongwh59/&lt;/U&gt;&lt;/FONT&gt;&lt;/A&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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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뉴딜의 부활 / 유병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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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등대마루</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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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00:20:22Z</updated>
	    <published>2009-11-10T00:20:2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size=3&gt;뉴딜의 부활&lt;!-- TITLE END --&gt;&lt;!--NewsAdTitleEnd--&gt; /&amp;nbsp;&lt;FONT color=#8794a1&gt;&lt;SPAN class=name&gt;유병선&lt;/SPAN&gt;&lt;!-- &lt;span class=&quot;textBar&quot;&gt;ㅣ&lt;/span&gt;경향신문--&gt;&lt;/FONT&gt;&lt;/FONT&gt;&lt;/P&gt;
&lt;DD&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D&gt;
&lt;P&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P&gt;
&lt;P&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P&gt;
&lt;DIV class=clear&gt;&lt;FONT size=3&gt;&lt;/FONT&gt;&lt;/DIV&gt;&lt;!--NewsAdContentStart--&gt;
&lt;DIV class=article_txt id=NewsAdContent&gt;&lt;!-- BODY START --&gt;&lt;FONT size=3&gt;미국 ABC 방송의 인기 법률 드라마 &lt;보스턴 리걸&gt;의 한 장면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안락사를 법정에서 풀어보려 고민하는 변호사에게 친구 변호사는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제약사들이 그럴 듯한 안락사 약을 개발해야 끝이 날 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던진다. 안락사라는 심각한 사회적 현안도 의회 로비의 큰손인 제약사들의 이해에 달려 있을 뿐이라는 미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실로 씁쓸한 풍자인 셈이다. 미국인 7명 중 1명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현실도 미의학협회(AMA)라는 의료 권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lt;BR&gt;&lt;BR&gt;&lt;!--imgtbl_start_1--&gt;&lt;/FONT&gt;
&lt;DIV class=article_photo_right&gt;
&lt;DIV class=article_photo style=&quot;WIDTH: 334px&quot;&gt;&lt;FONT size=3&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news/2009/11/09/20091110.01100134000001.01M.jpg&quot;&gt;&lt;/FONT&gt;&lt;/DIV&gt;&lt;/DIV&gt;&lt;!--imgtbl_end_1--&gt;&lt;FONT size=3&gt;리처드 닉슨 대통령 행정부(공화당)는 가족지원제도(FAP)라는 획기적인 사회보장안을 추진했다. 공공부조 형식으로 모든 미국인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이 안은 1970년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의 벽을 넘지 못해 좌절됐다. 미국 역사가들은 FAP의 좌절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때 본격화된 ‘뉴딜’에 마침표를 찍은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정부가 어떤 미국인도 다시는 못 먹고, 못 입고 또 좋지 않은 집에서 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뉴딜은 동력을 잃었고, 이후 미국이 잘못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lt;BR&gt;&lt;BR&gt;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대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전국민 의료보장제도가 8부 능선을 넘었다. 미 하원이 2019년까지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3600만명에게 의료혜택을 확대한다는 내용의 건강보험 개혁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상원의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전국민 건강보험에 대해 거의 100년간 번번이 퇴짜만 놓던 미 하원의 통과처리는 특기할 만하다. 부자 나라 미국의 의료 사각지대가 줄어들 것이란 기대만이 아니다. 시장만능으로 치닫던 미국에서 뉴딜의 정신이 부활하고 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lt;BR&gt;&lt;BR&gt;희망의 인문학으로 유명한 얼 쇼리스는 &lt;천국의 정치&gt;란 책에서 미국의 역사를 ‘합류(合流)’라는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봤다. 미국의 역사는 시원이 다른 강물이 서로 합쳐져 더 큰 흐름을 이루듯 흘러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란 역사관이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의료개혁은 복류(伏流)하던 뉴딜의 정신이 배제가 아니라 포용을 필요로 하는 거대한 개인의 시대에 다시 솟구치며 새로운 합류의 흐름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lt;BR&gt;&lt;BR&gt;&lt;유병선 논설위원&gt;&lt;/FONT&gt;&lt;!-- BODY END --&gt; &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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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돈으로 입을 막는 나라 /이기수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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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등대마루</name>
	    </author>
	    <updated>2009-11-10T00:14:22Z</updated>
	    <published>2009-11-10T00:14:2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size=3&gt;돈으로 입을 막는 나라&lt;!-- TITLE END --&gt;&lt;!--NewsAdTitleEnd--&gt; /&lt;FONT color=#8794a1&gt;&lt;SPAN class=name&gt;이기수 &lt;/SPAN&gt;&lt;!-- &lt;span class=&quot;textBar&quot;&gt;ㅣ&lt;/span&gt;경향신문--&gt;&lt;/FONT&gt;&lt;BR&gt;&lt;/FONT&gt;&lt;/P&gt;
&lt;DD&gt;&lt;FONT size=3&gt;&amp;nbsp;&amp;nbsp;&lt;BR&gt;&amp;nbsp;&lt;BR&gt;&amp;nbsp;&lt;BR&gt;&lt;!--NewsAdContentStart--&gt;&lt;/FONT&gt;
&lt;DIV class=article_txt id=NewsAdContent&gt;&lt;!-- BODY START --&gt;&lt;!--imgtbl_start_1--&gt;
&lt;DIV class=article_photo_right&gt;
&lt;DIV class=article_photo style=&quot;WIDTH: 149px&quot;&gt;&lt;FONT size=3&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news/2009/11/09/20091110.01100134000003.01S.jpg&quot;&gt;&lt;/FONT&gt;&lt;/DIV&gt;&lt;/DIV&gt;
&lt;DIV class=article_photo_right&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IV&gt;
&lt;DIV class=article_photo_right&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IV&gt;&lt;!--imgtbl_end_1--&gt;&lt;FONT size=3&gt;흥미롭고 의미도 큰 재판이 개봉박두했다. ‘원고 대한민국’이 명예가 훼손됐다며 지난 9월14일 국가정보원의 민간사찰 의혹을 제기한 ‘피고 박원순’에게 2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소송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임채웅 부장판사)에 배당된 사건은 2주 전 원고 측(법무법인 하나)·피고 측(법무법인 한결) 답변서가 제출됐다. 통례상 1~2주 내 재판 기일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lt;BR&gt;&lt;BR&gt;국가가 명예·감정을 가지는 ‘원고’가 될 수 있을까. 재판은 일찍이 없던 물음표를 품고 있다. 친일파 재산이나 인혁당 소송처럼 ‘대한민국’이 1년에 수천번씩 원·피고석에 앉는 것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10억원 이하의 국가 소송을 자문하고 승인하는 한상대 서울고검장은 올 국정감사에서 “국가도 명예훼손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 법령을 심사·해석하는 이석연 법제처장은 “현실적·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봤다. 정부 쪽 2인의 판단부터 엇갈린다. 역사적인 첫 판례를 예고하는 셈이다.&lt;BR&gt;&lt;BR&gt;소송부터 뜻을 합친 법무부와 국정원은 앞뒤에서 총력전을 펼칠 기세다. 처음에 “소 취하가 최선”이라던 박 변호사도 이젠 “개인의 문제를 떠났다”고 말한다. “표현의 자유, 국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데 숱한 1인 시위보다 이 재판이 창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국정원과 박 변호사는 막다른 길에서 부딪쳤다. 박 변호사는 지난 3월 안국동에 있던 희망제작소 사무실을 평창동으로 옮겼다. “50평에서 20평으로 살림을 줄이는 것보다 몇몇 연구원이 떠나게 돼 더 아쉽다”고 곱씹는다. 희망제작소는 정부·기업과의 거버넌스(협치)와 파트너십(출연)에 아이디어를 접목시켜왔다. 그렇게 키워온 ‘소셜 디자이너’의 꿈을 국정원이 흔들고 막았다는 게 이번 소송의 요체다.&lt;BR&gt;&lt;BR&gt;재판의 함의는 ‘소송가액 2억원’에 응축돼 있다. 국가의 목표가 돈일까 싶고, 통상적인 명예훼손 소송액도 넘는다. 국정원이 ‘한 놈만 패고’ ‘재갈물리기’라는 비판대에 선 이유다. 민변 백승헌 회장은 “박 변호사가 영리활동을 멈춘 지 10년이 넘는다. 강연료도 거의 공적으로 돌려쓰고 있다”며 “실제 2억원의 충격이 컸다”고 전했다.&lt;BR&gt;&lt;BR&gt;미국에는 슬랩(SLAPP) 퇴치법이 있다. ‘공공의 참여에 반대하는 전략적 소송’을 막는 법이다. 슬랩은 영어로 뺨 맞는 소리이기도 하다. 표현의 자유가 논란이 된 ‘Gordon &amp; Marrone’ 사건에서 니컬러스 대법관은 “머리에 총 겨누는 것을 제외하고 이(국가의 전략적 소송)보다 표현의 자유에 더 위협이 되는 것은 없다”고 판결했다. “공공 이슈를 제기해온 사람도 보복(소송)을 겪거나 목격하면 장래에 침묵을 선택하기 쉽다”는 판례였다. &lt;BR&gt;&lt;BR&gt;한국 사회의 ‘슬랩’도 증가 일로다. 국가가 나선 집회시위자 손해배상 소송, &lt;PD수첩&gt;과 광고불매 운동에 대한 형사소송이 이 범주에 속한다. 정책집행권과 공권력을 쥔 정부가 사법의 족쇄까지 기대려는 ‘정치의 사법화’다. 대한변협 김평우 회장은 “누가 봐도 (국정원이) 급하게 소송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수사에 관이나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국민에게 사찰 의혹을 밝히는 게 먼저라는 뜻이다. 입을 돈으로 막으려는 국가의 민·형사소송 융단 폭격은 그래서 안타깝고 유감스럽다.&lt;BR&gt;&lt;BR&gt;&lt;이기수 | 사회부 차장&gt;&lt;/FONT&gt;&lt;/DIV&gt;&lt;/D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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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청소 아주머니와 고려대정신/ 박래용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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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등대마루</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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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10T00:06:02Z</updated>
	    <published>2009-11-10T00:06:0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size=3&gt;청소 아주머니와 고려대정신&lt;!-- TITLE END --&gt;&lt;!--NewsAdTitleEnd--&gt;/&amp;nbsp;&lt;FONT color=#8794a1&gt;&lt;SPAN class=name&gt;박래용 &lt;/SPAN&gt;&lt;!-- &lt;span class=&quot;textBar&quot;&gt;ㅣ&lt;/span&gt;경향신문--&gt;&lt;/FONT&gt;&lt;BR&gt;&lt;/FONT&gt;&lt;/P&gt;
&lt;DD&gt;&lt;FONT size=3&gt;&amp;nbsp;&amp;nbsp;&lt;BR&gt;&amp;nbsp;&lt;BR&gt;&amp;nbsp;&lt;BR&gt;&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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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article_txt id=NewsAdContent&gt;&lt;!-- BODY START --&gt;&lt;!--imgtbl_start_1--&gt;
&lt;DIV class=article_photo_right&gt;
&lt;DIV class=article_photo style=&quot;WIDTH: 128px&quot;&gt;&lt;FONT size=3&gt;&lt;IMG src=&quot;http://img.khan.co.kr/news/2009/11/09/20091110.01100134000004.01S.jpg&quot;&gt;&lt;/FONT&gt;&lt;/DIV&gt;&lt;/DIV&gt;
&lt;DIV class=article_photo_right&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IV&gt;
&lt;DIV class=article_photo_right&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IV&gt;
&lt;DIV class=article_photo_right&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IV&gt;&lt;!--imgtbl_end_1--&gt;&lt;FONT size=4&gt;&lt;FONT size=3&gt;설마 했더니 사실이었다. 고려대에서 청소 아주머니들이 청소하면서 나오는 이면지나 신문, 종이상자, 버려진 책을 모아 팔아오던 것을 앞으로 못하게 했다는 보도를 보고 반신반의했다. &lt;BR&gt;&lt;BR&gt;한두 달에 한 번 꼴로 걷힌 것을 팔면 1인당 2만~3만원 정도. 아주머니들은 이걸로 쌀을 사 아침과 점심 하루 두 끼 밥을 지어 먹었다고 한다. 그 쥐꼬리만한 부수입을 앞으로는 업체가 직접 챙기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학교는 뒷전에서 모르쇠다. &lt;BR&gt;&lt;BR&gt;믿겨지지 않았다. 그거 얼마나 된다고 그렇게 각박할까 싶었다. 학교를 찾아가봤다. 초겨울 을씨년스러운 날씨였지만 캠퍼스는 활기차고 윤기가 흘러 보였다. 곳곳에 LG-포스코 경영관, CJ인터내셔널하우스, 아산 이학관 등 기업 기부금으로 지어진 건물이 즐비했다. 100주년 기념관은 삼성이 낸 400억원으로 지은 건물이다. LG 창업고문, 피죤 회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 하나은행장, 삼성그룹 부회장의 이름을 표시한 강의실과 세미나실이 보였다. 의자와 책상에도 모모 하는 기업인들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학생들을 바른 교육으로 큰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게 기부 취지다. &lt;BR&gt;&lt;BR&gt;&lt;B&gt;학교는 뒷전에서 ‘모르쇠’ 일관&lt;/B&gt;&lt;BR&gt;&lt;BR&gt;캠퍼스 한 구석 학생회관 1층 끝 방에 핑크색 유니폼을 입은 청소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알아 보니 내용은 이랬다. 학교는 올 3월 폐기물 관리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교내 모든 쓰레기를 처리하되 폐지 같은 재활용품 판매대금까지 업체가 가져가는 조건이었다. 업체는 “등록금 동결로 용역비가 줄어 우리도 적자이니 재활용품에 손대지 말라”고 청소 용역업체에 통보했다. &lt;BR&gt;&lt;BR&gt;학교 청소원은 50~70대 아주머니 210명. 매일 새벽 첫 차를 타고 일하는 곳으로 달려오는 그들의 개개의 사연은 묻지 않아도 기구할 것이다. 주 6일 토요일까지 일하고 한 달 97만원을 가져간다. 구겨진 종이를 펴고, 물 묻은 신문지를 말려 흰 종이는 ㎏당 170원, 신문지 같은 누런 종이는 100원을 받는다. 폐기물업체는 재활용품에 손대지 않는 조건으로 청소 아주머니들에게 월 1만원씩을 주겠다고 했다가 1만5000원을 요구하자 없었던 일로 했다고 한다. &lt;BR&gt;&lt;BR&gt;이런 옥신각신하는 과정에 학교는 없었다. 단순하게 얘기하면 아주머니들에게 폐지 값으로 1만원씩을 더 주면 한 달에 210만원이 든다. 학교가 그 돈을 보전해준다면 청소원들과 업체 간의 ‘폐지 전쟁’은 진작에 종지부를 찍었을 것이다. 고려대 올해 예산은 5963억원. 지난 한 해 기부금만 352억여원을 거둬들인 부자 학교다. &lt;BR&gt;&lt;BR&gt;21년째 일해온 일흔살 최경순 할머니는 새벽 4시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출근해 해질 무렵 돌아간다고 했다. 최 할머니는 “폐지보다 못하게 취급받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 억울하고 분하다”고 했다. &lt;BR&gt;&lt;BR&gt;비즈니스 논리라면 폐기물업체와 청소원의 문제일 뿐 학교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학교 측은 “업체와 그렇게 계약을 했으니 학교가 나서 조율하고 말고 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학교 관계자는 “쓰레기도 엄연히 학교의 재산”이라고 했다. 쓰레기가 누구 거냐는 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 아웃소싱을 한 이유는 비용절감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lt;BR&gt;&lt;BR&gt;&lt;B&gt;돈에 매달리는 태도에 분노감&lt;/B&gt;&lt;BR&gt;&lt;BR&gt;하지만 사람 사는 이치가 그렇게 한두 푼 이문만으로 엮이지는 않는다. 비용 절감이 먹이사슬의 맨 아래 청소 아주머니들에게 전가되는 현실도 고약하지만, 이런 일이 상아탑에서 벌어졌다는게 더 놀랍다. 십시일반(十匙一飯),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요체로 하는 부자의 도리를 꺼낼 것도 없이 학교는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식을 가르치는 곳이다. 최소한 학교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정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향신문이 누차 ‘벼룩의 간을 빼먹는 폐지 전쟁’에 관심을 갖고 보도하는 이유다. &lt;BR&gt;&lt;BR&gt;이기수 총장은 새로 고대생이 된 김연아 선수가 세계대회를 우승하자 “고대 정신을 집어넣은 결과”라며 환호작약한 바 있다. 1년에 한두 번 학교를 나올까 말까 하는 김 선수보다 매일 학교를 쓸고 닦는 청소 아주머니들에게 고대 정신은 아니더라도 폐지 값은 돌려줘야 되는 것 아닌가.&lt;BR&gt;&lt;BR&gt;&lt;박래용 논설위원&gt;&lt;/FONT&gt;&lt;!-- BODY END --&gt; &lt;/FONT&gt;&lt;/DIV&gt;&lt;/DD&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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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종석의 언어학 카페 말들의 모험] &lt;7&gt; 촘스키 혁명 서로 다른 자연언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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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dima0306.6996473</id>
	    <author>
		    <name>등대마루</name>
	    </author>
	    <updated>2009-11-10T00:00:35Z</updated>
	    <published>2009-11-10T00:00:3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size=3&gt;[고종석의 언어학 카페 말들의 모험] &lt;7&gt; 촘스키 혁명&lt;!--/DCM_TITLE--&gt; 서로 다른 자연언어들 속에서 촘스키는 '보편문법' 수립 시도/변형생성문법 전세계 언어학 풍미… '다른 생각' 이론가도 좌표로 삼아&lt;BR&gt;&amp;nbsp;&lt;BR&gt;&amp;nbsp;&lt;BR&gt;&lt;/FONT&gt;&lt;/P&gt;
&lt;DIV class=subtitle id=GS_SubTitle&gt;&lt;FONT size=3&gt;서로 다른 자연언어들 속에서 촘스키는 '보편문법' 수립 시도&lt;BR&gt;변형생성문법 전세계 언어학 풍미… '다른 생각' 이론가도 좌표로 삼아&lt;/FONT&gt;&lt;/DIV&gt;
&lt;DIV class=subtitle&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IV&gt;
&lt;DIV id=GS_Reporter&gt;&lt;BR&gt;&lt;FONT size=3&gt;고종석 객원논설위원 &lt;/FONT&gt;&lt;A href=&quot;mailto:aromachi@hk.co.kr&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aromachi@hk.co.kr&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amp;nbsp;&amp;nbsp;&lt;/FONT&gt;&lt;A href=&quot;http://blog.hankooki.com/hk_aromachi&quot; target=_blank&gt;&lt;FONT size=3&gt;&lt;IMG src=&quot;http://img.hankooki.com/icon/blog.gif&quot; align=absMiddle border=0 4 2 0?&gt;&lt;/FONT&gt;&lt;/A&gt;&lt;/DIV&gt;
&lt;DIV id=GS_ContentGroup&gt;&lt;!-- 가운데 정렬 사진 사용--&gt;&lt;!-- 가운데 정렬 사진 끝 --&gt;&lt;!-- 관련 사진 --&gt;
&lt;DIV id=GS_RelPhoto style=&quot;WIDTH: 280px&quot;&gt;&lt;!-- 단일 사진 시작 --&gt;
&lt;DIV class=Rel_Photo id=GisaImgNum_1 style=&quot;DISPLAY: inline&quot;&gt;
&lt;DIV id=Sum_GisaImgNum_1 style=&quot;DISPLAY: none; WIDTH: 579px&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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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ToolBox id=Tool_GisaImgNum_1&gt;&lt;FONT size=3&gt;&lt;SPAN class=selPhoto id=ListNum_GisaImgNum_1 =&quot;ChangePhoto('GisaImgNum_1')&quot;&gt;1&lt;/SPAN&gt;&amp;nbsp;&lt;/FONT&gt;&lt;/DIV&gt;
&lt;DIV id=SmallPhoto&gt;&lt;FONT size=3&gt;&lt;IMG style=&quot;CURSOR: pointer&quot; alt=&quot;클릭하시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quot; src=&quot;http://photo.hankooki.com/newsphoto/2009/11/08/l391204200911082230280.jpg&quot; width=260 border=0&gt;&lt;/FONT&gt;&lt;/DIV&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P style=&quot;MARGIN-TOP: 5px&quot;&gt;&lt;FONT size=3&gt;&lt;BR&gt;&lt;/FONT&gt;&lt;/P&gt;&lt;/DIV&gt;&lt;!-- 단일 사진 끝--&gt;&lt;!-- 광고 --&gt;
&lt;DIV class=box id=divBox&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IV&gt;
&lt;DIV id=Gisa_NPMid_Ad26080 style=&quot;HEIGHT: 100px&quot;&gt;&lt;FONT size=3&gt;&lt;/FONT&gt;&lt;/DIV&gt;&lt;!-- //광고 --&gt;&lt;!-- 기획물 관련기사 --&gt;
&lt;DIV id=special_relgisa style=&quot;DISPLAY: inline; MARGIN: 10px 0px 0px&quot;&gt;
&lt;DL&gt;&lt;A href=&quot;http://news.hankooki.com/hotissue/gi_sr_view.php?mode=sr&amp;parent_id=414&quot; target=_blank&gt;
&lt;DT&gt;&lt;FONT size=3&gt;[고종석의 언어학 카페] 더보기&lt;/FONT&gt;&lt;/A&gt;&lt;FONT color=#000000 size=3&gt; &lt;/FONT&gt;
&lt;DD&gt;&lt;A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0121451086330.htm&quot; target=_blank&gt;&lt;SPAN id=Rel_GisaLine&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lt;6&gt; 랑그는 형식이지 실체가 아니다&lt;/U&gt;&lt;/FONT&gt;&lt;/SPAN&gt;&lt;/A&gt;&lt;BR&gt;&lt;A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0/h2009102521340086330.htm&quot; target=_blank&gt;&lt;SPAN id=Rel_GisaLine&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lt;5&gt; 번역이라는 고역 &lt;下&gt;&lt;/U&gt;&lt;/FONT&gt;&lt;/SPAN&gt;&lt;/A&gt;&lt;BR&gt;&lt;A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0/h2009101821382986330.htm&quot; target=_blank&gt;&lt;SPAN id=Rel_GisaLine&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lt;4&gt; 번역이라는 고역 &lt;中&gt;&lt;/U&gt;&lt;/FONT&gt;&lt;/SPAN&gt;&lt;/A&gt;&lt;BR&gt;&lt;A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0/h2009101121405384330.htm&quot; target=_blank&gt;&lt;SPAN id=Rel_GisaLine&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lt;3&gt; 번역이라는 고역(苦役) (上)&lt;/U&gt;&lt;/FONT&gt;&lt;/SPAN&gt;&lt;/A&gt;&lt;BR&gt;&lt;A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0/h2009100421142986330.htm&quot; target=_blank&gt;&lt;SPAN id=Rel_GisaLine&gt;&lt;FONT color=#0066cc size=3&gt;&lt;U&gt;&lt;2&gt; 랑그의 언어학과 파롤의 언어학&lt;/U&gt;&lt;/FONT&gt;&lt;/SPAN&gt;&lt;/A&gt;&lt;BR&gt;&lt;/DD&gt;&lt;/DL&gt;&lt;/DIV&gt;&lt;!-- // 기획물 관련기사 --&gt;&lt;/DIV&gt;&lt;!-- 관련 사진 --&gt;
&lt;DIV class=last id=GS_Content&gt;
&lt;DIV id=GS_Content_Top&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IV&gt;
&lt;DIV&gt;&lt;FONT size=3&gt;&amp;nbsp;&lt;/FONT&gt;&lt;/DIV&gt;
&lt;DIV&gt;&lt;FONT size=3&gt;소쉬르 얘기를 여러 차례 했으니, 오늘 하루는 겉핥기로라도 촘스키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촘스키는 소쉬르 이후 가장 중요한 언어학자라 할 만하니까요. 촘스키가 한국에 소개된 것은 꽤 일렀습니다. 출세작 &lt;통사구조론&gt;(Syntactic Structuresㆍ1957)이 &lt;변형생성문법의 이론&gt;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게 1966년입니다.&lt;BR&gt;&lt;BR&gt;뒤이어 1971년에는 &lt;데카르트 언어학&gt;(Cartesian Linguisticsㆍ1966)이, 1975년에는 &lt;통사이론의 양상&gt;(Aspects of the Theory of Syntaxㆍ1965)이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0822312686330.ht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 size=3&gt;&lt;U&gt;한국어&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판을 얻었습니다. &lt;통사이론의 양상&gt;은 흔히 '표준이론'(standard theory)이라 부르는 촘스키 초기언어학을 응집한 책입니다. 이 책이 번역된 1975년 이후, 한국에서 '촘스키'라는 이름은 현대언어학의 최전선을 가리키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 여러 곳에서 그렇듯 한국에서도, 이 이름은 지식인의 양심을 상징합니다.&lt;BR&gt;&lt;BR&gt;그런데 한국인들의 '촘스키 소비'는 시간축을 따라가며 크게 다른 양상을 보여왔습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촘스키의 한국인 독자들은 주로 영어영문학과의 영어학 전공 대학원생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촘스키의 언어학 책들만 게걸스럽게 읽었습니다.&lt;BR&gt;&lt;BR&gt;촘스키의 또 다른 영역, 다시 말해 정치비평에 그들은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어요. 지식인의 책임을 거론하며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0822312686330.ht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 size=3&gt;&lt;U&gt;베트남&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전쟁을 매섭게 비판한 촘스키의 첫 정치서 &lt;미국의 힘과 새 지배계급&gt;(American Power and the New Mandarins)이 나온 게 1969년이었고, 그 세 해 뒤에는 두 번째 정치서 &lt;아시아와 전쟁 중&gt;(At War with Asia)이 출간됐는데 말이죠.&lt;BR&gt;&lt;BR&gt;&lt;/FONT&gt;&lt;/DIV&gt;
&lt;DIV id=LEFT_MENU style=&quot;PADDING-RIGHT: 0px; PADDING-LEFT: 0px; PADDING-BOTTOM: 0px; MARGIN: 0px; PADDING-TOP: 0px&quot;&gt;
&lt;DIV id=Scroll_SPOS&gt;&lt;FONT size=3&gt;&lt;/FONT&gt;&lt;/DIV&gt;&lt;/DIV&gt;
&lt;DIV id=GS_Content_Bot&gt;&lt;FONT size=3&gt;정치참여적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0822312686330.ht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 size=3&gt;&lt;U&gt;글쓰기&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는 촘스키가 언어학의 제위(帝位)를 얻고 나서야 손댄 장년 이후 호사&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0822312686330.ht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 size=3&gt;&lt;U&gt;취미&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가 아니었습니다. 촘스키 언어학은 그 시작부터 정치학과 나란했지요. 물론 촘스키가 '혁명'을 일으킨 것은 언어학 특히 통사론에서고, 그 혁명은 주로 언어학의 다른 분야나 심리학, 논리학, 인류학, 인지과학 같은 인접과학으로 수출됐습니다. 정치학은 촘스키 혁명의 핵심인 수학모델을 수입하기엔 너무 '무른' 과학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어로 소개된 촘스키가 오직 '언어학자'였다는 사실은 그 즈음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0822312686330.ht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 size=3&gt;&lt;U&gt;한국사&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회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합니다.&lt;BR&gt;&lt;BR&gt;1980년대 말 이후 한국인들의 '촘스키 소비'는 완연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촘스키 독자들은 일반언어학이나 영어학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0822312686330.ht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 size=3&gt;&lt;U&gt;세미나&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에 참가하는 대학원생들이 아니라 일반인들이었습니다. 독서인이라면 누구나 촘스키를 거론할 만큼 그는 한국에서도 대중적 지식인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들 일반 독서인이 읽는 촘스키는 오직 정치비평일 뿐입니다. 그래서 언어학자 촘스키는 한국인들에게 점차 잊혀지고 있습니다. 아니 요즘의 한국 독자들 대부분에게 촘스키는 처음부터 '논객'으로, '지식인'으로 각인됐는지도 모르죠.&lt;BR&gt;&lt;BR&gt;오늘은 '언어학자' 촘스키를 살짝 들여다봅시다. 사실 살짝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 촘스키혁명을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어지간히 두툼한 텍스트로도 모자랄 텁니다. 흔히 촘스키 언어학을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변형생성문법이란 뭘까요? 그리고 그것이 극복했다고 주장하는 구조주의 언어학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다음 두 문장을 봅시다.&lt;BR&gt;&lt;BR&gt;(1) 존경하는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0822312686330.ht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 size=3&gt;&lt;U&gt;선생님&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께서 감격스럽게도 제게 꽃을 이만큼이나 보내 오셨어요.&lt;BR&gt;&lt;BR&gt;(2) 존경하는 제자들이 기특하게도 선생님께 꽃을 이만큼이나 보내 왔어요.&lt;BR&gt;&lt;BR&gt;이 두 문장은 구조적으로 완전히 같습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말이죠.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0822312686330.ht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 size=3&gt;&lt;U&gt;전통문&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법에서 흔히 주부(主部)라고 부르는 부분만 살핍시다. 동사의 현재관형형('존경하는')이 명사('선생님/제자들')를 수식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명사구에 주격표지('께서/이')가 붙어 주어 노릇을 합니다. 그런데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은 정말 같은 구조를 지녔을까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lt;BR&gt;&lt;BR&gt;그렇다는 것은 그 둘 다 현재관형형 동사(어간-'는') 뒤에 수식되는 명사가 이어진다는 점에서입니다. 명사(구)를 'NP'로 나타내고 동사의 현재관형형을 'V-는'으로 나타내면,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은 둘 다 [V-는 NP]라는 구조를 지닌 NP(명사구)입니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구조를 촘스키는 표면구조(surface structure)라고 불렀습니다. 촘스키에 따르면 표면구조는 음성해석 정보를 지녔습니다.&lt;BR&gt;&lt;BR&gt;그런데 촘스키는 이런 표면구조 '저 아래에 누워있는(underlie)' 또 하나의 구조를 가정합니다. 촘스키가 심층구조(deep structure)라고 부르는 이 층위에서는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의 구조가 서로 다릅니다. 심층구조에서 '존경하는 선생님'은 '선생님을 존경한다'입니다. 다시 말해 [NP 목적격표지 V-ㄴ다]의 구조를 지닌 S(문장)입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제자들'은 심층구조에서 '제자들이 존경한다'입니다. 다시 말해 [NP 주격표지 V-ㄴ다]의 구조를 지닌 S입니다. 즉 심층구조에서 '선생님'은 '존경하다'의 목적어인 데 비해, '제자들'은 '존경하다'의 주어입니다. 촘스키에 따르면 심층구조는 의미해석 정보를 지녔습니다.&lt;BR&gt;&lt;BR&gt;서로 다른 심층구조를 지닌 '존경하는 선생님'과 '존경하는 제자들'이 동일한 표면구조를 지니게 되는 것은, [NP 목적격표지 V-ㄴ다] 구조의 문장과 [NP 주격표지 V-ㄴ다] 구조의 문장을 [V-는 NP]라는 동일한 NP(명사구)로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0822312686330.ht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 size=3&gt;&lt;U&gt;유도&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하는 규칙이 한국어에 있기 때문입니다. 심층구조에서 표면구조를 유도하는 과정을 '변형'이라 하고, 그 변형에 쓰인 규칙을 변형규칙이라 합니다.&lt;BR&gt;&lt;BR&gt;촘스키 문법을 변형생성문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변형규칙이라는 장치를 사용하는 생성문법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성문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유한한 규칙들의 집합(구조)을 통해서 무한한 적격(well-formed) 문장들을 생성해내는 모국어 화자의 능력에 이 이론이 관심을 쏟기 때문입니다.&lt;BR&gt;&lt;BR&gt;촘스키에 따르면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은 &quot;존경하는 선생님&quot;과 &quot;존경하는 제자들&quot;의 구조적 다름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잘해 봐야 그 다름을 '관찰'하거나 '기술'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일반언어이론은 이런 관찰적 타당성(observational adequacy)이나 기술적 타당성(descriptive adequacy)을 넘어서는 설명적 타당성(explanatory adequacy)을 지녀야 한다고 촘스키는 말합니다. 물론 자신의 변형생성문법이야말로 그런 설명적 타당성을 지녔다는 거지요.&lt;BR&gt;&lt;BR&gt;표면구조가 다른데 심층구조는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quot;나는 노무현이 바보라고 생각했어&quot;와 &quot;나는 노무현을 바보로 생각했어&quot;는 표면구조가 다르지만 심층구조는 같습니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죠. &quot;I believed Roh was an idiot&quot;와 &quot;I believed Roh (to be) an idiot&quot;를 견줘보면 그렇습니다. 한국어에서고 영어에서고, 이 문장의 심층구조는 앞쪽 표면구조에 가깝습니다. 그 심층구조에 인상변형(Raising transformation)이라는 규칙이 적용되면 뒤쪽 표면구조가 유도됩니다. 또 능동문과 피동문도, 동일한 심층구조가 서로 다른 표면구조로 유도된 대표적 예입니다.&lt;BR&gt;&lt;BR&gt;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은 초기의 표준이론에서 확대표준이론(EST), 지배결속이론(GB), 최소주의프로그램(MP) 등으로 정교화하면서 한 세대 이상 세계 언어학계를 풍미했습니다. 영어권 학계만이 아니라 서유럽, 일본, 중국, 대만, 한국 등지에서 촘스키는 거의 동시에 읽혔습니다.&lt;BR&gt;&lt;BR&gt;촘스키를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은 이론(가)들도 촘스키를 준거로 삼은 다음에야 제 좌표를 확정할 수 있었지요. &lt;코끼리는 생각하지 마&gt;라는 정치&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0822312686330.ht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 size=3&gt;&lt;U&gt;팜플렛&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으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레이코프(George Lakoff)의 생성의미론(generative semantics), 동사를 중심에 놓고 표준이론의 결함을 보완하려 한 필모어(Charles Fillmore)의 격문법(case grammar), 언어학 너머 형식논리학의 전통을 계승한 몬터규(Richard Montague)의 범주문법(categorial grammar) 따위가 다 그렇습니다.&lt;BR&gt;&lt;BR&gt;촘스키 언어학이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 하나는 그 이론의 보편지향성에 있을 겁니다. 촘스키는 수많은 자연언어들의 문법이 표면구조에서는 달라도 심층구조에서는 같으리라 예상했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두드러진 욕망 하나는 보편문법을 수립하는 것이었지요. 이탈리아어나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0822312686330.ht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 size=3&gt;&lt;U&gt;프랑스어&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를, 일본어나 &lt;/FONT&gt;&lt;A class=dklink href=&quot;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911/h2009110822312686330.htm&quot; target=_blank&gt;&lt;FONT color=#800080 size=3&gt;&lt;U&gt;중국어&lt;/U&gt;&lt;/FONT&gt;&lt;/A&gt;&lt;FONT size=3&gt;나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은 언어학자들이 촘스키 이론을 자신의 가장 익숙한 언어에 적용해보고 싶어했던 것이 이해됩니다.&lt;/FONT&gt;&lt;/DIV&gt;&lt;/DIV&gt;&lt;/DIV&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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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을 사냥/한승원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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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등대마루</name>
	    </author>
	    <updated>2009-11-09T23:51:57Z</updated>
	    <published>2009-11-09T23:51:5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size=3&gt;가을 사냥/한승원&lt;!--NewsAdTitleEnd--&gt; &lt;/FONT&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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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 class=view_setting id=view_body style=&quot;FONT-SIZE: 14px; LINE-HEIGHT: 22px&quot; align=justify name=&quot;view_body&quot;&gt;&lt;!-- google_ad_section_end --&gt;&lt;!-- google_ad_section_start --&gt;&lt;!-- 키워드 링크 광고 적용 div 20090515 by 김명준 --&gt;&lt;!--NewsAdContentStart--&gt;
&lt;DIV id=NewsAdContent&gt;&lt;FONT size=3&gt;&lt;FONT class=&quot;&quot;&gt;뒷산 기슭으로 황금색의 쑥국화를 꺾으려고 억새, 실망초, 쇠무릎풀, 도깨비바늘풀 들을 헤치며 간다. 나는 늦가을 산기슭에 피는 쑥국화의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향기',event);&quot;&gt;향기&lt;/FONT&gt;를 좋아한다. 쑥향과 국화 향과 분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쑥국화, 도깨비바늘이나 쇠무릎의 씨들이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바지',event);&quot;&gt;바지&lt;/FONT&gt; 자락에 달라붙기 때문에 미리 목이 긴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장화',event);&quot;&gt;장화&lt;/FONT&gt;를 신고 간다. 멀리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쓰는 그놈들이 귀찮다.&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쑥국화의 꽃송이들은 콩알만큼씩 하다. 그것들이 가지 끝에 촘촘히 달려 있다. 그것의 향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꽃을 따다가 말려서 차처럼 우려 마신다. 그것을 가제로 만든 자루에 담아 방안에 걸어 두기도 한다. 나는 차처럼 우려 마시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병에 꽂아서 서재에 놓아 둔다. 그 꽃은 향기를 서재 안에 뿜어 놓는다. 나는 운감(殞感)하는 귀신처럼 킁킁 향기를 맡곤 한다. 꽃의 향기를 맡는다는 것은 사랑하기다. 꽃의 처지에서 본다면 그것은 성적인 폭력행위다. 꽃이란 것은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식물',event);&quot;&gt;식물&lt;/FONT&gt;들의 음부니까.&lt;/FONT&gt;&lt;BR&gt;&lt;BR&gt;가을 남자들은 싱그러운 여자를 그리워하고, 여자가 없으면 꽃향기라도 맡는다. 가을에는 여자와 남자가 다 외로움을 탄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단풍 때문이고, 우수수 떨어지는 갈색의 낙엽 때문이고, 소슬한 바람 때문이다.&lt;BR&gt;&lt;BR&gt;오래 전에,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은사인 장 그리니에의 ‘섬’이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많이 읽혔다. 이 땅에도 인간의 존재를 섬에 비유한 시들이 많이 쓰였다. 여기서 섬은 인간의 절대고독을 말해주는 것이다.&lt;BR&gt;&lt;BR&gt;김소월은 인간의 절대고독을 가장 잘 노래한 시인이다. 사람들은 계절 따라 산으로 바다로 몰려간다. 계절의 변화는 사람들을 들뜨게 한다. 들뜨면 자기를 잃어버리게 된다. 가을은 사람들을 유랑하게 한다. 나는 내 영혼이 흔들릴 때, 쓸쓸할 때 김소월의 ‘산유화’를 읊는다.&lt;BR&gt;&lt;BR&gt;‘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lt;BR&gt;&lt;BR&gt;김소월의 시는 쉽다. 쉬운 언어들 속에 잔잔하면서도 깊은 슬픔과 절대고독의 아픔과 삶의 순리가 담겨 있다.&lt;BR&gt;&lt;BR&gt;이태백의 시 ‘산중문답’도 마찬가지의 경지를 노래한 것이다.&lt;BR&gt;&lt;BR&gt;‘…왜 혼자 산에 사느냐고 물으면 그냥 웃어버리고 대답하지 않지만 마음은 한가롭다.(笑而不答 心自閑·소이부답 심자한)’&lt;BR&gt;&lt;BR&gt;그 어떤 사람도 잔인한 시간 앞에 홀로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모두들 늙어가고 죽어간다. 우리 삶의 공간을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의 초연한 담담함은 얼마나 유현한 것인가.&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모든 사람이 들썽거릴 때 나는 조용히 침잠하고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명상',event);&quot;&gt;명상&lt;/FONT&gt;하며 김소월의 ‘산유화’를 읊는다. 산유화를 읊으면서는 늘 하얀 들국화를 떠올린다. 들국화는 구절초라고도 불린다. 구절초는 여자들의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생리통',event);&quot;&gt;생리통&lt;/FONT&gt;을 치유하는 데 소문난 명약이다. 어린 시절 나는 늙은 아낙들이 자기 며느리나 딸의 생리통과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자궁',event);&quot;&gt;자궁&lt;/FONT&gt;의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월경',event);&quot;&gt;월경&lt;/FONT&gt;불순을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치료',event);&quot;&gt;치료&lt;/FONT&gt;할 목적으로 구절초를 캐러 다니는 것을 보곤 했다.&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그것을 솥에 넣고 푹 고면 새까만 물이 나오는데, 그것을 여성에게 장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찬 자궁이 따뜻해지면서 생리가 원활해진다. 하얀 들국화 풀이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생리불순',event);&quot;&gt;생리불순&lt;/FONT&gt;에 명약이라는 사실은 아무래도 신통하다.&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서재에서 쑥국의 향기에 취해 있다가 밖으로 나간다. 하늘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하늘은 나목이 되어 있는 늙은 감나무의 검은 가지들 저편에서 눈을 초롱초롱 뜨고 있다. 지신(地神)의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머리털',event);&quot;&gt;머리털&lt;/FONT&gt;들이 저 감나무의 잔가지들처럼 생기지 않았을까.&lt;/FONT&gt;&lt;BR&gt;&lt;BR&gt;하늘은 짙푸르다. ‘짙푸르다’는 말로는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돌멩이를 던지면 팽 소리가 날 듯싶은 하늘이다. 하늘의 색깔은 향기로운 맑음이다. 아니 형형하다.&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한없이 깊은 그 하늘의 텅 비어 있음은 나를 늘 놀라게 한다. 그것은 나의 시원이다. 나는 하늘의 저 텅 비어 있음 속에서 왔다. 죽으면 그 텅 비어 있음 속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내세를 믿지 않지만, 나는 죽을지라도 소멸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들 가운데 영적인 것은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분해',event);&quot;&gt;분해&lt;/FONT&gt;되어 나의 시원으로 회귀할 거고, 육체적인 것은 비와 안개 되어 삼라만상에 뿌려질 거라고 믿는다. 강물과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지하수',event);&quot;&gt;지하수&lt;/FONT&gt;로 흘러 사람과 짐승들이 마시게 되고, 수목과 꽃나무에 뿌려져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무량수각(无量壽閣)이라는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현판',event);&quot;&gt;현판&lt;/FONT&gt;이 있다. 없을 ‘無(무)’를 ‘无(무)’로 쓴 것에 나는 주목했다. ‘없을 无’는 ‘하늘 天(천)’자를 닮았다. 글자를 만든 사람들이 왜 그 두 글자를 닮게 만들었을까. 무심(無心)은 천심(天心)이라 그렇게 만든 것 아닐까. 텅 빈 마음은 하늘의 마음이고 하늘의 마음은 가난한 마음이고 가난한 마음은 순백의 마음이다.&lt;/FONT&gt;&lt;BR&gt;&lt;BR&gt;가을 들면서 나는 고독을 생각하고, 내 고독한 존재를 생각하면서 늘 하늘을 동경한다. 아마 김현승 시인도 그래서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라고 노래했을 터이다.&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청청 푸른 하늘과 이야기한다. 하늘은 나에게 회귀할 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나는 하늘에게 나의 계절이 늦가을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수확해야 할 작물들이 남아 있다고. 잎사귀들은 무서리로 인해 시들어졌지만, 땅 속에 들어 있는 나의 사랑하는 &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구근',event);&quot;&gt;구근&lt;/FONT&gt;들은 고이 숨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고.&lt;/FONT&gt;&lt;BR&gt;&lt;BR&gt;나는 그 구근들을 다 수확하기 전에는 하늘로 회귀할 수 없습니다. 부디 이 밭의 구근들을 다 수확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그래, 그래 하며 하늘은 웃는다.&lt;BR&gt;&lt;BR&gt;[[한승원 / 소설가]]&lt;/FONT&gt;&lt;/DIV&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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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판 르네상스/이신우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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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등대마루</name>
	    </author>
	    <updated>2009-11-09T21:23:26Z</updated>
	    <published>2009-11-09T21:23:2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FONT size=4&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한국판 르네상스/이신우&lt;/SPAN&gt;&lt;!--NewsAdTitleEnd--&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lt;/SPAN&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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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bgColor=#ffffff&gt;&lt;FONT size=4&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IMG src=&quot;http://image.munhwa.com/www/people/series_976_b.jpg&quot;&gt;&lt;/SPAN&gt;&lt;/FON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 class=view_setting id=view_body style=&quot;FONT-SIZE: 14px; LINE-HEIGHT: 22px&quot; align=justify name=&quot;view_body&quot;&gt;&lt;!-- google_ad_section_end --&gt;&lt;!-- google_ad_section_start --&gt;&lt;!-- 키워드 링크 광고 적용 div 20090515 by 김명준 --&gt;&lt;!--NewsAdContentStart--&gt;
&lt;DIV id=NewsAdContent&gt;&lt;FONT size=4&gt;&lt;FONT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얼마전 시인 김지하씨가 한 조간 신문에 재미있는 글을 썼다. ‘천만원짜리 개망신’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칼럼',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칼럼&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었다. &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정운찬 총리 청문회를 전후해서 야당이 정 총리의 1000만원 수수건을 빌미로 삼아 비판의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목소리',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목소리&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를 높여가자 ‘자기네들은 지난 5년간의 집권 기간 동안 도대체 얼마나 많은 나랏돈을 해먹었는데 이제와서 1000만원을 갖고 이 난리냐’는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요지',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요지&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였다. 한 쪽에서 보자면 참으로 통쾌하기 그지없는 일갈이었고, 당하는 쪽에서 보자면 이제 와서 진보·좌파에 찬물을 끼얹느냐며 분통을 터뜨릴 만한 글이었다.&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지만 필자가 이 칼럼에서 정작 관심을 기울인 대목은 ‘촌지의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다과',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다과&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多寡)’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었다. 김 시인도 인정했듯 한국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사회',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사회&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에 번지는 막말 신드롬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 스스로도 글 한 가운데에 “X 같아서 얼굴 돌린 것 뿐이지!”라고 써대며 막말 퍼레이드에 동참하고 있으니 사회 전반적으로 증세가 심각한 것은 사실인 것같다.&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런데 이런 막말 신드롬에 대한 김 시인의 진단이 상당히 독특하다. 약간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보자. &lt;/SPAN&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나 15세기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피렌체',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피렌체&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와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베네치아',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베네치아&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는 막말 천지였다.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르네상스',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르네상스&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의 도화선이었다. 지금 이 나라에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네오',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네오&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르네상스가 오고 있다는 증거다. 르네상스가 없었다면 오늘까지 세계를 잡아 흔든 유럽 권력과 서구문명은 없다. 그런데 그 네오 르네상스가 다가오는 발자국이 곧 막말이니 지우지 말기 바란다는 말이다.”&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런 전망이나 통찰에 대해, 요즘 한국 사회에서 말싸움꾼으로 통하는 진중권씨는 “뿜을 뻔했다”며 단숨에 평가절하해 버렸다. 과연 그런가? 필자로서는 그렇게 단칼에 베어버릴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15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특히 피렌체 등에서는 유달리 막말로 시끄럽던 시절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르네상스 문화가 활짝 개화하기 직전에 벌어진 사태였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우리나라에 이미 오래전에 소개돼 있는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살펴봐도 이같은 사례는 널려 있다.&lt;/SPAN&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단테야말로 경멸의 표현에서는 세상의 어느 시인보다 앞서 있었다.” “특정 시기에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그리스',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리스&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인 사이에서 패러디를 유발시킨 것과 똑같은 문화적인 성숙이 이곳 이탈리아에서도 패러디를 꽃피게 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볼테르 시대의 프랑스에도 없었던 비방의 학교가 되었다.” “마키아벨리는 눈에 띄게 도덕성이 침몰하는 원인으로 일상에 만연한 비방 풍조를 들었고, 그를 중상하는 자들에게는 자기 역시 비방에 일가견이 있다고 위협하였다.” “피렌체의 젊은 남성들에 대해… 능숙하게 남한테 독설을 퍼붓는 사람은 현명한 자였고 존경받는 사람이었다.”&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위의 문장들을 각각 주어만 빼놓고 다시 읽어보라. 마치 오늘날의 한국사회를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묘사',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묘사&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만하다. 좌와 우의 저명인사들은 물론이요, 일반 네티즌들까지도 한국판 르네상스를 준비하는 주인공들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지 않는가. &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럼 한국판 르네상스는 이미 준비 중이라고 믿어도 좋은 것일까. 아직은 모른다. 부분적 현상이 반드시 전체를 규정짓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새벽에 길을 나서다,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성경책',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성경책&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을 옆에 끼고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교회',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교회&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를 가는 사람들 모두 할머니나 할아버지임을 목격하고 나서 ‘아, 교회는 노인들만 다니는 곳이구나’라는 판단 오류를 범할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수도',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수도&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있다는 이야기다.&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FONT class=&quo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김 시인의 전망에 전적으로 기댈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요즘 &lt;/SPAN&gt;&lt;FONT style=&quot;CURSOR: hand; COLOR: #3d46a8; TEXT-DECORATION: underline&quot; onmouseout=mouseOut(); =&quot;mouseOver(this,'미국',even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미국&lt;/SPAN&gt;&lt;/FON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막말 현상이다. 매스컴에서도 벌써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분열을 확대시키는 ‘분노로 얼룩진 미국 사회’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반대자와 논쟁하거나 타협점을 찾으려하지 않는다. 단지 그를 침묵시키고자 하며, 소리쳐 굴복시키려고 한다.”(파이낸셜타임스 10월4일자) 심지어 언론끼리도 막말싸움으로 바람잘 날이 없다.&lt;/SPAN&gt;&lt;/FONT&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미국도 한국과 똑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니 미국에서도 역시 네오 르네상스가 도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에 참이라면 미국에도 참이어야 하고, 그런 판단이 오류라면 양쪽 또한 마찬가지여야 마땅하다.&lt;/SPAN&gt;&lt;BR&gt;&lt;BR&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신우 / 논설위원]]&lt;/SPAN&gt;&lt;BR&gt;&lt;/FONT&gt;&lt;/DIV&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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