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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요엘의 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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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7T14:15:28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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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십자가와 태극</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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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7T14:15:28Z</updated>
	    <published>2009-11-07T14:15:2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십자가와 태극&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인류가 사는 세계를 크게 두 개의 분류를 한다면 동양과 서양이라는 분류입니다. 이 두 분류는 인간이 사는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사상과 철학과 종교를 두루 포함을 하고 있는데, 근세 역사에서 동양보다는 서양의 모든 것이 우월하다고 하는 인식이 대두된 것이 사실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즉 서양의 모든 것이 동양의 모든 것보다 우월하다고 하는 것은 눈에 보여지는 힘과 능력으로 인하여 인식되어온 현상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서양의 과학이나 사상이나 철학이나 종교가 마치 진리인 것처럼 보여졌고, 반면에 동양적인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라는 것은 철저한 현실세계적인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 예로서, 근세에 서양이 동양을 점령하고 식민지를 만들었음에 그들의 사고방식과 모든 형태가 동양적인 어떤 것보다 더 강하다는 인식에서 생긴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 서양의 것만이 진리라는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서양의 것이 인간세계와 자연의 파괴로 인한 인류 존재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동양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내가 이런 관심을 가진 동기 중에 하나는 이은봉 교수가 지은 “종교와 상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는 칭황첸(Tsing Fang Chen) 교수의 “우주적인 접근. 동서양의 수렴은 임박했는가?”라는 책을 참조하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는 이글을 쓰면서 나도 철저하게 서양적인 것에 물들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는 동양적인 것을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여기에 신학적인 문제나 종교적인 구원관이라는 것을 연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가 믿는 종교의 신앙과 구원관을 나는 진리라고 믿고 그것을 전파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다만 동. 서양의 사상이나 철학이나 종교를 살펴봄으로서 더 넓은 폭으로 사람들과 시대를 포용하고자 하는 의도임을 밝힙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동양사상은 원(circle)을 중심으로 한 음양사상을 근간으로 합니다. 동양적인 사고에서 음양문제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정치. 사회. 문학. 경제. 과학. 역사. 철학. 종교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음양사상을 동양사상의 문화적 원형(cultural archetype)이라고 부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를 도형화 한다면 음과 양이 운행하는 모양의 태극도로 나타납니다. 이를 상징이라고 해도 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와 반면에 서양사상은 선(line)에 기초한 십자가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그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서양사상이 십자가라는 상징으로 나타지만, 기독교이전의 서양문화의 형태를 살펴보면, 고대문명의 하나인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에서 상징되듯이 삼각형이 문화적 원형이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삼각형의 꼭지점은 모든 것을 수렴하는 정점이 되는데, 형이상학적인 의미는 기하학적. 집단적. 부동적. 위계적 질서인 단호하고 완고한 성격을 나타냅니다.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밀한 계산과 기하학적인 지식이 필요하고, 그것을 만들기 위하여 동원된 인력과 시간은 강력한 왕권과 그 힘에 의하여 백성이 동원된 집단적인 힘의 축적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므로 피라미드는 불굴의 힘으로 우뚝 선 부동의 자세, 정치적 위계질서를 무언중에 나타내고, 더 나가서 어떤 영원성을 지향하는 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즉 이집트라는 국가와 그 문화와 정치와 철학과 종교가 삼각형이라는 상징으로 응축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또 다른 문명인 그리스 헬라 문화를 상징하는 것은 하늘로 우뚝 서 있는 균형적인 기둥들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한다면 헬라 신전에 있는 둥근 기둥을 연상해도 됩니다. 여러 개의 둥근 기둥들이 서서 연결하므로 웅장한 신전이나 건축물이 되듯이 기둥은 각각 개인적이고 민주적인 표현을 상징한다고 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기에 자유와 명료성, 민주주의와 웅변을 사랑하고, 균형 있는 아름다움과 조화를 좋아하며 이상과 완전을 추구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로마문화를 상징하는 것은 아치(arch)로 나타나는데, 로마의 건축물이나 성전이나, 그들이 살아가는 현장에서 아치형태의 문양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는 거대한 로마제국을 통일하기 위한 포용하고 감싸주는 형태를 보게 됩니다. 행정이나 조직에서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기 위한 아치형태가 그들을 상징해주고 추구하는 목적과 이상을 통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렇다면 서양을 대표하는 상징이나 도형은 십자가인데 십자가가 가르치는 의미와 상징은 무엇일까? 십자가의 형태는 수직적인 선인 하늘을 향해 무한히 뻗어 올라가는 선과, 수평적인 선인 가로로 펼쳐지는 선이 만나는 것으로 십자가가 형성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를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하나는 시간적으로 영원히 뻗어 올라가는 선이요, 하나는 공간적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선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십자가는 선과 선이 만나는 점 중간지점에 인간이 위치한다고 봅니다. 십자가는 시간과 공간에서 무한을 향한 진취적인 도상이며 사방의 밖을 향하여 뻗어가는 형상이지만, 그곳에는 원이나 태극의 도형처럼 어느 한 곳으로 모여지는 형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서양의 십자가는 기독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기독교 초기에는 관심이 수직적인 세로에 두었습니다. 예수로 인한 가르침과 그 제자들의 전도활동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 복음전파에 대한 헌신, 박해로부터의 순교 등을 통하여 적극적인 하나님과의 관계 중심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기독교 초대역사를 집약하는 것이라고 보여 집니다. 초대 기독교역사를 보면 절대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기 위한 피눈물 나는 역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다가 중세에 이르면서 르네상스를 통하여 수직적이고 세로적이며 하나님 중심적인 사상과 흐름이 수평적인 가로의 문제로 전환이 되는데, 그것은 인간중심적인 사상이며 휴머니즘적인 것으로 나타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로 인하여 인간이 초인적인 존재로 부각이 되며, 신은 죽었다고 외치며 신의 자리에 인간을 놓게 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즉 초기 십자가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적의 천재성을 강조하는데 비해, 중세 이후의 십자가는 인간과 군중과 집단적인 형태로 바뀌어 지게 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나 이 두 가지 사상과 관점은 아직도 존재하면서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수직적인 면을 강조하다가도 수평적인 면을 강조하고, 혹은 그 반대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우리는 이것을 이 시대적인 표현으로 한다면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보수라는 사상은 수직적인 관계중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개인과 자유를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보라는 것은 수평적인 평등과 공동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 문제는 십자가가 주는 수직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로 바뀐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계(과학)라고 하는 것으로 대체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국에는 하나님도 인간도 사라진 자리에 기계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인간을 통제하고 인간을 종속시키는 단계까지 왔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인간이 통제되고 비인격적인 존재에 의하여 조작되거나 억압을 받는 것으로 인하여 오늘에 이른 서구 문명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동양사상의 상징인 태극(太極)은 음(陰)과 양(陽)이 운행하는 형태로서 서로가 영원한 순환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삼각형이나 직선이나 십자가와 같은 일정한 고정적인 형태가 아닙니다. 이는 양은 항상 양일 수 없으며, 또한 음은 항상 음일 수 없다는 것으로서, 음속에 양이 배태되어 있고, 양속에 음이 배태되어 있는 형상을 보여줍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므로 태극사상은 십자가와 같이 시간과 공간에서 영원 무한함을 향해 뻗어 가는 외향적인 자세가 아니라, 안으로 향하는 내향적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음양으로 본다면 외향을 양이라 한다면, 내향은 음이 되고, 서양은 양이면 동양은 음이 되는 이치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것은 재미있게 본다면 국가와 민족을 표현하는 대부분의 서양의 국기는 선을 중심으로 합니다. 그러나 동양은 원을 중심으로 국기를 만든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또한 이런 사상이 이루어지게 되는 동기 중에 하나는 서양은 고대사회에서 목축업적인 생활양식을 취한 까닭이기에 끝없는 초원을 향하여 전진하고, 자연과 투쟁을 하고, 정복하고 경영하는 것이었다면, 동양은 특히 중국은 외부와의 담을 쌓고 오랜 세월동안 농경사회를 구성한 것이라고 봅니다. 동양은 사시사철이 되돌아오고 농사를 지으면서 반복이 되고, 교류가 없으니 동족끼리의 생활이 이루어지게 됨으로 인한 순환적인 사상이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고 봅니다. 이것을 울타리 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서양의 십자가의 문화가 원심성(divergence)문화라고 한다면, 동양의 태극문명은 구심성(convergence)의 문화라고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동양의 원(圓)문화는 그것 자체로 완결된 형태를 이루고 있는 반면에 서양의 선(線)문화는 아직도 진행 중인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처럼 동.서양의 문화를 비교하는 것이 십자가와 태극이라는 상징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면서, 흥미를 갖게 만듭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좀 더 비교한다면,&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 선(線)의 관점에서 보면 음양이 안으로 끄는(attractive)힘이 있다면, 십자 가는 밖으로 공격하는 힘&amp;nbsp;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amp;nbsp;&amp;nbsp; (aggressive)이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 중심(中心)의 관점에서 보면 태극은 두 개의 중심이 있다면, 십자가는 오 직 하나의 중심만이 있다. 이는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amp;nbsp; 태극은 짝수적인 개념이지만, 십자가는 홀 수적인 개념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3. 관계(關係)의 관점에서 보면 태극은 조화를 추구하며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결합을 추구하&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amp;nbsp; 는 인간에게 관점을 둔다면, 십자가는 자유를 추구하고,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 완성된 인간보다는 추상&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amp;nbsp; 적인 법률과 민 주주의를 발전시킨다. 그 까닭은 십자가는 사방으로 뻗는 것이고, 태극은 원안에서의 조&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amp;nbsp; 화를 이상으로 하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4. 축(軸)의 관점에서 본다면 태극은 범신론적(汎神論, pantheism)이라면, 십 자가는 유일신론(唯一神論,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amp;nbsp;&amp;nbsp; monotheism)적이다. 즉 십자가는 영원을 행해 외길로 뻗고 있는데 반해, 태극은 서로 감싸고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5. 방향(方向)의 관점에서 보면, 태극은 구심적이고, 십자가는 원심적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6. 인간생활에 미치는 경향의 관점에서 보면 태극은 영원히 순환하는 운명론 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반면&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amp;nbsp; 에, 십자가는 무한한 진보의 환상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7. 주관과 객관의 관점에서 보면 태극은 비분리를 이상으로 하고, 십자가는 분리로 인한 논리와 과학의 발&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amp;nbsp;&amp;nbsp; 전을 준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8. 영적(靈的)인 형태로 본다면, 태극은 원만무애의 원, 깨닭음, 충만. 정적을 나타내는 반면에 십자가는 영&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amp;nbsp; 원을 향한 구원을 나타낸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결론적으로 보면, 동양의 음(陰)의 문화는 닫혀진 울타리 안에서의 원으로 순환하는 형상으로, 주어진 범위 안에서 완성을 이상으로 하며, 자연과의 일치, 주관과 객관의 비분리, 종교와 윤리와의 비분리, 과학과 예술의 비분리를 추구했다면, 서양의 양(陽)의 문화는 활동적이고, 실용적이고 자유를 사랑하고 제도와 법률을 세우기를 좋아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논리와 이성을 바탕한 서양 문화는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하고, 주관과 객관을 분리하였고, 원죄와 인간성의 악함을 의식하므로 초월을 추구했습니다. 즉 영원한 구원을 향한 끝없는 노력인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서양의 정신은 합리적인 사고, 수학적인 추상화, 방법적인 실험, 분석적인 객관성을 추구하므로 오늘의 서양문명을 만들어 냈고, 동양은 직관적, 종합적, 구체적, 주관적인 방식으로 동양문화를 만들어 왔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래서 동양은 존재(be)의 경향을 띠고, 서양은 소유(have)에 경향이 있다고 비교하기도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런 구분이나 평가가 모두 옳고 정확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참조한다면 동.서양을 이해하며 21세기에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사상의 고착을 통하여 오는 피해는 막심합니다. 나와 다르거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을 적대시하거나 분리적인 충동으로 투쟁하는 모습들이 아니라, 서로가 다름이 인정되고 이해하고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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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퇴계이황과 매화사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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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9-10-30T21:33:4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퇴계 이황과 매화사랑&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번 주간에 어느 잡지를 읽는 중에 한시(&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漢詩)&lt;/SPAN&gt;가 실려 있는 글을 보았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예전에는 그리 관심이 가지 않은 것이기에 눈에 띄지 아니했지만, 근간에는 한시에 관심을 갖다보니 유난히 눈에 들어왔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퇴계 이황 선생이 지은 매화에 대한 시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불시일번한철골. 쟁득매화박비향)이란 시로서 “뼈가 부러지는 듯한 추위를 겪지 않고서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를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표현해도 되는 것 같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면서 자연히 이 글을 쓴 퇴계 선생에 대하여 알아보는 중에 그의 사상이나 업적이나 학문이나 그런 것은 논하지 않고, 참으로 멋있었던 선비라고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런 면에서 보면 요즘 학자나 지도자들은 그런 멋을 알지 못하기에 살벌하고 독선적이고 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한 투쟁꾼들이 되는가 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자연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지식만 추구한다면, 참으로 멋없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퇴계는 자연을 지극히 사랑하여 자연 풍경과 철따라 피는 꽃나무에까지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 많은 시를 남겼으며, 그가 살던 집에는 항상 솔· 대나무· 매화· 국화 등을 심어 벗 삼고 즐겼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이 50세 때 한서암을 짓고 뜰에다 소나무· 대나무· 매화· 국화· 오이를 심어 지조의 표상으로 삼았고, 이듬해는 계상서당으로 옮겨서도 방당을 만들고 연을 심고, 솔· 대· 매화· 국화· 연(&lt;SPAN style=&quot;FONT-SIZE: 12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松&lt;/SPAN&gt; ·竹·梅·菊·蓮)을 다섯 벗으로 삼아, 자신을 포함하여 여섯 벗이 한 뜰에 모인 육우원(六友園)을 이루어 어울리는 흥취를 즐겼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61세 봄에는 도산서당 동쪽에 절우사의 단을 쌓고, 솔· 대· 매화· 국화를 심어 즐겼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특히 매화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서울에 두고 온 매화분을 손자 안도편에 부쳐 배에 싣고 왔을 때 이를 기뻐하여 시를 읊기도 하는 등 매화는 그의 가장 가까운 벗이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매화분 하나를 마주하고 주고받으며 화답하는 시를 읊조리는 모습은 매화와 퇴계가 하나가 되어가는 경지를 느끼게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또한 퇴계는 산림에 묻혀 사는 선비로서 산사를 찾아 독서하거나 산을 찾아 노닐기를 즐겨 했습니다. 그는 독서하는 것과 산에서 노니는 것이 서로 같은 점을 들어 독서와 산놀이를 일치시키기도 했습니다. 가장 즐겨 찾아 노닐었던 산은 청량산으로 도산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그 이름이 경관과 어울리지 않으면 이름을 새로 짓기도 하였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산놀이뿐만 아니라 물놀이도 그의 운치있는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었는데, 고향 선배인 농암 이현보을 모시고 분천에 가서 뱃놀이를 하였고, 단양군수로 있으면서 제자 황준량과 함께 귀담에서 뱃놀이하였습니다.&amp;nbsp; 퇴계가 가장 즐겨 뱃놀이하던 곳은 도산서원 앞에 있는 탁영담이었는데, 62세 때에는 소동파가 적벽에서 뱃놀이를 한 해로부터 8갑주(480년) 되는 날이기에 퇴계도 여러 제자들과 풍월담에서 뱃놀이를 하려고 준비하였으나 전날 큰 비가 내려 이루지 못하여 못내 아쉬워했다고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퇴계가 사랑한 매화는 장미과(薔薇科 Rosaceae)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매실나무라고도 하는데, 키는 5m 정도 자라고, 줄기는 굵고 거칠며 검은색이나 어린가지는 초록색입니다. 꽃은 이른 봄(2~4월)에 잎보다 먼저 나와 흰색 또는 연분홍색으로 피는데 향기가 강하며, 잎겨드랑이에 1~2송이씩 달립니다. 꽃자루가 거의 없으며 5장의 꽃잎은 난형이고, 수술이 많으며 암술은 1개이나 씨방이 털로 덮여 있습니다. 열매인 매실은 핵과(核果)로, 처음에는 초록색이었다가 7월쯤이면 노란색으로 변하며 매우 신게 특징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황(李滉) 퇴계(退溪)선생은 매화(梅花)를 매우 사랑했기에, 매화에 관한 시가가 1백수가 넘는데, 이렇게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의 사랑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고, 관기였던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처신이 빳빳했던 퇴계 선생이었던 지라 한 동안은 두향의 애간장은 녹였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두향은 시(詩) 서(書)와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퇴계 선생이 경상도로 가게 되어 끝나게 되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변고였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향이에겐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밤은 깊었으나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퇴계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운 뿐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 때 어느 듯 술 다 하고 님 마져 가는 구나. 꽃 지고 새 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날 밤의 이별은 결국 너무나 긴 이별로 이어졌다. 두 사람은 1570년 퇴계 선생이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1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퇴계 선생은 두향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매화를 두향을 보듯 사랑을 쏟았으며, 매화를 두향을 보듯 애지중지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선생이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퇴계 선생을 떠나보낸 뒤 두향은 간곡한 청으로 관기에서 빠져나와 퇴계 선생과 자주 갔었던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선생을 그리며 살았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퇴계 선생은 그 뒤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말년엔 안동에 은거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퇴계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매화에 물을 주어라”. 선생의 그 말속에는 선생의 가슴에도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였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선생의 시(詩)중에「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前身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퇴계 선생의 부음을 들은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두향의 사랑은 한 사람을 향한 지극히 절박하고 준엄한 사랑이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 때 두향이가 퇴계 선생에게 주었던 매화는 그 대(代)를 잇고 이어 지금 안동의 도산서원 입구에 그대로 피고 있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매화는 추운 겨울 한파를 견디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것으로 선비들의 지조와 사랑하는 이들의 절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징물이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퇴계 선생의 사랑이야기는 오늘날도 그 짙은 향기를 풍겨내는 듯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들도 잠시 자연 속으로 들어가서 사랑하는 사람이나 벗들과 함께 담소하며 거닐어 보는 여유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별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살아왔던 이야기들과 살아갈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가 정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생각해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면서 나도 시골에 귀향하여 매화를 심고 그 매화향기에 취해 보고픈 욕망이 솟아오르는 것은 옛 선비의 인품과 그의 삶의 멋 때문인가 봅니다.&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일중독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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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yoel</name>
	    </author>
	    <updated>2009-10-24T12:46:01Z</updated>
	    <published>2009-10-24T12:46:0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일 중심인가? 사람 중심인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요즘 내가 읽는 책 중에 “리더가 저지르기 쉬운 10가지 실수”(The top ten mistakes leaders make)란 책으로서 저자는 한스 핀젤(Hans Finzel)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 책을 읽으면서 흡사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감명이 깊었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의 내용과 나 자신을 비추어 보면 어찌 그리 딱 맞는지 놀랄 정도입니다.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고 엄청난 양의 일을 하며 좀처럼 긴장을 풀지 않는 이들을 일중독자라고 합니다. 그 부류에 나도 포함이 됩니다. 무슨 일을 하여도 남들보다 더 완벽하여야 하고 작은 실수나 흠을 내 스스로가 용납하지 않는 일중독자 같은 삶을 살아 왔습니다. 더욱이 남들과 대화를 나누어도 과정이나 설명보다는 결론을 듣기 원하고 그렇게 말하기를 원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일 중독증의 징조는 다음과 같다고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일을 하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사람을 제외한 채 해야 할 일이 엄청나다고 생각할 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사람들과 만나지 않은 채 사무실에서 일에 매달릴 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사람들을 무시하려는 경향에 대해 무감각해질 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조급한 심정으로 사람들에게 “그 일거리를 가지고 나가서 일해!”라고 말하려는 경향을 보일 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혼자 다른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외롭게 일하기 시작할 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업무성취에 기초해서 자기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할 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위와 같은 징조가 보이면 일중독자라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리더를 두 가지로 두고 분류하는데, 일에 기초한 사람인가 ? 아니면 사람에 기초한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를 알아내는 방법은, 누군가가 당신의 사무실 혹은 당신이 일하는 장소에 와서 당신과 대화를 나누려 합니다. 당연히 하는 일은 방해를 받게 마련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때 당신은 그 사람을 방해꾼으로 보겠는가? 아니면 새로운 기회라고 인식하는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를 향해 얼굴을 활짝 펴서 맞이하는가? 아니면 얼굴을 찌푸린 채로 바라보는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 때 당신이 긴장을 푼 채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면 당신은 사람에 기초한 사람이고, 어색해 한다면 일 중심의 사람입니다. 즉 일 중독증의 사람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만약 이런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서라도 다시 일에 매달리려고 한다면 일에 매인 사람이며, 이와는 달리 방해꾼을 방해꾼으로 보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차분히 대화를 이어간다면 그는 사람에 기초한 유형의 사람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많은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일에 기초한 유형의 사람들은 일을 해야만 합니다. 항상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고, 언제라도 업무에 매달릴 준비를 하는 이들은 심리학자들이나 정신과 의사들은 그를 강박성 성격장애(obsessive-compulsive)라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런 이들이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지도자들도 일 중독증에 걸리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교회가 경쟁화되고 성장이라는 멍에를 메고 있는 기독교지도자들은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에 매달리게 마련입니다. 특히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새벽5시에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낮에는 대부분 심방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수요일에 예배를 인도하고 금요일에 기도회를 인도하고 주일에는 낮 예배와 저녁예배를 인도하는데 일주일에 심방이나 외적인 설교 외에도 교회에서만 10번이 넘는 설교를 합니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곤함은 다른 무엇보다 심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로 인한 결과는 오늘날 많은 기독교 지도자와 교인들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정신과 인격은 파괴되고 있습니다. 결국은 지쳐서 탈진해 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지도자 하나가 탈진하여 쓰러지거나 실수를 한다면 그로 인한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몰려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교회 내에서도 문제가 발생하지만 사회적인 문제로 발전되어 가는 양상을 우리는 많이 보아옵니다. 일 중독증에 빠진 리더들 대부분이 육체적인 성인병이나 정신적인 강박관념에 붙잡혀 있는 경우를 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일에 대한 강한 동기를 가지고 산다면 그는 마치 불속에서 달구어진 수백 개의 쇳덩어리를 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 자신을 돌아보아도 일에 대하여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사람들은 나의 주의를 끌기를 원했는데, 여러 가지 바쁘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고, 공동체가 원하는 일을 하였지만 무형의 일인 사람관계는 무시한 것입니다. 즉, 사람과의 만남이라는 인간적인 요소를 간과한 것이 잘못입니다. 내게 주어진 일을 잘함으로 인하여 그들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생각이 늘 앞섰던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일을 통하여 그들에게 보상해 주면 된다는 일방적인 사고관념이 사람들을 멀리하게 된 것이고, 인간적인 관계를 설정하지 못한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리뿌칼로 마리아 쥐리니(Carlo Maria Giulini)라는 LA 필하모니 교향악단의 지휘자는 “나는 언제나 격의 없이 사람들과 만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음악가는 군대장교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음악의 위대한 신비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진실한 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모든 단원은 진심으로 내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우리나라의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일에 기초한 리더십의 성향을 보이는데 그 까닭은 교회나 환경이 일을 기초한 리더십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평가하는데 그 업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결과적으로 그 업적을 보여줌으로 인하여 대단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게 되고, 업적이 없으면 그가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시되지 않고 무능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버립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한국교회의 목사들의 대화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당신이 목회하는 교회에 교인들이 얼마인가? 혹은 재정은? 그리고 얼마만한 교회당을 가지고 있으며, 당신은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하여 무슨 프로그램으로 얼마만큼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가? 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리스도의 인격을 얼마나 닮아 가고 있으며, 교인들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성숙해 가고 있는가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즉 본질은 떠나고 외형만이 주류를 이루는 현상이 일 중심적이고 일 중독증에 걸리게 만드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예수 닮은 작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일 잘하고 외형적인 성장을 앞세우니 그에 부응하는 잘못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사실 리더십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뛰어난 지도자들은 사람과 함께하며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우리가 사는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경쟁이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조직은 더욱 복잡해지면서 가장 큰 이익을 요구합니다. 그러기에 지금은 일 중심적인 리더십 스타일을 원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나 문제는 리더들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은 받지 않고 있으며, 가르치는 곳이 매우 드뭅니다. 대개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이나 그 사람의 스타일이나 리더십을 흉내 내거나 따라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례는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많은 이들이 민주화라는 거대한 역사를 이루었지만 그 주역들이 리더십을 제대로 배우지 못함으로 오히려 혼돈과 무질서와 독재를 저주하면서도 또 다른 독재자를 만들어 내고 스스로 그리되었던 것은 훈련과 교육이 없이 앞선 사람들의 모습이나 리더십을 답습하였기 때문입니다. 옛 말에 시어머니를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군부 독재타도라는 명제를 가지고 앞장선 사람들이 더 큰 독재자가 되고 그런 것을 당연시 여기는 것은 리더십에 대한 부재이거나 무지에서 오는 결과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강박적으로 일을 중요시 여기고 어떤 성과를 내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붙잡혀 있는 이들은 점점 더 일 중독증에 빠져들게 되고, 누가 자신의 실패함을 지적하거나 책망을 하면 그것을 무시하거나 귀를 막습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탈진하여 쓰러지거나 패배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결과나 업적이 없거나 인정받을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면 그는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함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성경에서 예수님을 보면 그는 사람들을 대하시며 일중심의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시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예수님은 견디기 힘들 정도의 압력 속에서도 병자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대화를 하십니다. 누가복음 4:40에 보면 “해질 적에 각색 병으로 앓는 자 있는 사람들이 다 병인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시사 고치시니”라고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즉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람들을 알고 계셨고(요10:14), 그들에게 다가가셨고(눈4:40), 그들을 치유하셨고(마 15:30),그들을 감동시키셨으며(눅6:40), 그들의 멘토가 되셨습니다.(요13:15-17)&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기독교 지도자들의 사역이란 사람이지 일의 결과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사람들을 돕는데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일에 지쳐서 정작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는 등한시 여깁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기독교 리더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뜻하신 곳으로 움직이도록 그들에게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사역하도록 요청하시는 목적은 인격을 변화시키는데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같은 목적을 논한 사람이 위대한 사도 바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또는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권하고,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8-29)&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기독교의 리더들은 사람들의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영향을 끼쳐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도록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사람들은 크고 작은 많은 통로들을 통하여 영향을 받지만, 삶에 있어서 깊은 내면의 변화는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통하여 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성경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 가졌던 힘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사람은 개인적인 만남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훌륭한 리더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외면한 곳에는 결코 삶의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렇다면 일 중심에서 어떻게 벗어 날 수 있는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휴지통을 사랑하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일하는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점심식사를 하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아내와 자녀,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위의 사항들을 가지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동료들과 농담을 하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 나올 장소를 바꾸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더 많은 일을 위임하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다 읽으려하지 말고 “기억을 상기시키는 법”을 배우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사람을 가장 중요하게 보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주변을 살피며 관리하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일중심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광적인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언제나 먼 곳에 있는 목표를 위해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지금 이 자리에 여전히 이 모습으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은 내게는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위대한 미래의 날을 위하여 어떤 고난과 역경도 참고 견뎌냅니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미래로 끌어당기는 것 같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는 철저하게 그런 삶을 살아왔는데, 그러다 지금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혼자라는 것입니다. 미래를 향한 꿈과 비전으로 내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살아왔지만 그것을 이룬 후에 누구와 어떤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살아 갈 것인가는 답이 없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이 나의 삶속에 들어오도록 할 것이며, 그들을 위해 시간을 사용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그리고 미워하는 사람도, 지난날 감사했던 사람도 혹은 상처를 주었던 사람도 모두 품고 살아갈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것이 많은 고난과 고독과 아픔들을 통하여 뒤늦게 깨닭은 나의 본 모습인데, 바로 이 책에서 그 같은 지적을 하여 주니 더욱 겸허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lt;/SPAN&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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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창들의 모임</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dreamofjoel/18334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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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yoel</name>
	    </author>
	    <updated>2009-10-18T21:04:01Z</updated>
	    <published>2009-10-18T21:04:0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동창들의 모임&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신학대학원 동기들의 모임인 성목회가 제천에서 모였습니다. 그 이유는 제천에 있는 동기 목사를 만나기 위한 모임인데, 중요한 일은 두 가지였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하나는 그 친구 목사가 얼마 전에 40일 금식기도를 마쳤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겸 위로의 모임입니다. 축하한다는 것은 40일 금식기도를 한다는 것은 생명을 걸고 하는 기도인데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 친구의 믿음과 의지의 승리를 축하하는 것이고, 위로는 40일 금식기도를 마친 후 몸이 회복되기까지 고생스럽다는 것을 알기에 힘을 내라고 위로하는 것이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 친구를 보니 육체적으로는 쇠약해졌고 살이 빠져서 앙상해 보이지만, 그의 내면 속에 있는 영적인 힘은 충만해 보였습니다. 사실 말이 40일 금식이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기도를 한다는 것은 성령의 강력한 힘주심과 역사하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그리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성경에서 예수님이 40일 금식하셨다고 하셨듯이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 친구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나는 왜 금식을 하지 못하는지, 왜 한 끼만 굶으면 비틀거려 서 있기도 힘든지 부끄럽기도 하고 그가 존경스럽게도 보였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사실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20대 초반에 신학교를 다니면서 먹을 것이 없어 굶기도 많이 해봤지만, 작심하고 금식 기도한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중년이 넘으면서 당뇨병이 생기고 심장도 무리가 오고 난 후에는 금식이란 염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임에서 내가 한 말이 금식기도를 하게 하신 것도 은혜이지만, 금식 못하는 것도 은혜인가 보다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대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 목사가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고 나는 작아 보이니 그가 더 큰 은혜를 받은 것이 틀림없는 일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두 번째 모인 이유는 우리 모임의 회원 중에서 필리핀에 선교사로 간 친구 목사를 돕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번 필리핀에 엄청난 홍수가 일어나서 많은 이들이 죽기도하고 이재민도 생기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친구 선교사가 사는 동네가 집중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 친구의 소식을 들으니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 정전이 되어서 집안 및 주변이 모두 암흑과 같았는데, 1층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허리까지 물이 차올라서 다락방 같은 이층으로 올라가 피신을 하는데, 1층이 모두 잠기게 물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불은 들어오지 않으니 보이지는 않고 혹이나 2층까지 물이 차 오른다면 어디로 피신할 수도 없이 죽겠다는 두려움이 생겨서 부부가 손을 잡고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밤을 새웠다는 것입니다. 다음날 인근 마을이 모두 물이 잠겨서 난리법석이 났고, 도로에 걸어서 나갈 수 없고, 가재도구나 전기도구는 물에 잠겨서 사용할 수 없고, 정신없이 방안에 찬 물을 퍼서 밖으로 내버리는데 하루 종일 식사도 못하고 그리 지냈다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다가 지쳐서 쓰러지면 잠이 들고 깨어나면 물을 퍼내기를 반복하다보니 배는 고파서 힘은 없고 서글퍼서 눈물만 나더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전화를 하지도 못하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다가, 그 지역이 침수됐다는 소식을 들은 동료 선교사들이 스티로플로 대충 엮어서 배를 만들어 선교사 집에 와서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위로하고 인근 일대에 구호활동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 와중에도 생명을 보호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그 후에 나와 통화를 하니 자신은 그래도 나은 형편이지만 주변에 있는 현지인들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다는 안타까움을 말하는 것을 보고 선교사는 선교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동료 목사들이 그 친구를 돕고 그가 사역하는 지역의 교회와 현지인을 돕기 위한 방안을 의논하기 위하여 겸사겸사 모였습니다. 그 결과 모든 교회들이 그 선교사와 사역과 구호을 위하여 돕기로 결의를 하고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선교사들이 외국에 가서 사역을 하다보면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데, 아직은 내가 그들을 도울 힘이 부족하니 부끄러울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도울 수 있는 힘과 능력과 여건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모인 동료목사들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며, 그래도 힘이 되어 주고 기도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선교사들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친구 선교사가 모든 것이 회복되고 강건하고 담대하게 사역을 감당할 것을 기대해 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난 후에 6명의 친구들이 제천에 있는 호텔에 투숙을 하였습니다. 오후 늦게 만났고 오랜만에 만났기에 함께 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모처럼 만나니 서로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것이 흡사 초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온 기분일 것입니다. 다 비슷한 나이들이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이니 목사라는 직분을 떠나서 너와 내가 어릴 적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남자들의 수다도 대단합니다. 더욱이 목사들이니 말을 잘하고 이야기들을 얼마나 잘합니까? 웃느냐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들이 이어지는데, 피곤한 친구들은 옆에 쓰러져 잠을 자다가도 잠들지 많은 친구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 곧 깨어나서 웃다가 다시 잠들기도 하는 것이 개구쟁이들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는 어릴 적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당시 담임목사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은 당신이 친구들을 만나면 여관에 들어가서 편한 옷을 입고 뜨뜻한 방바닥에 뒹굴면서 이야기 하는 게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나는 왜 그런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나이드니 내가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방바닥에 눕기도 엎드리고 하면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이리 편하고 좋은지 알았습니다. 나이 들면 다 아는데.......&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가을의 단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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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yoel</name>
	    </author>
	    <updated>2009-10-10T17:34:19Z</updated>
	    <published>2009-10-10T17:34:1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가을의 단상&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가을이 깊어가면서 모든 만물들이 결실을 위하여 아름답던 자신들의 모습이 무너져도 개의치 아니하고 자연도리에 순응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우리가 보기에는 하찮은 존재같이 보이던 것들도 그 나름대로의 결실을 위하여 인내하면서 희생하는 모습들이 숭고해 보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가을에 떠오르는 옛글이 있어서 글을 써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 글은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로서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不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不踰矩” 이라는 글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 글의 내용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나이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그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어디에도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不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들으면 그 이치를 깨달아 곧바로 이해하게 되었고(六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不踰矩).&quot;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 글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글이지만, 이글을 쓴 공자는 노나라 곡부에서 아버지 숙량흘과 어머니 안징재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의 집안은 송나라 왕실에서 연유된 명문 가문이었으나 몰락하여 노나라에 와서 살게 되었으며, 공자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였으나 마을의 늙은 선생 밑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여, 17세 때부터 말단 관리가 되어 일을 보면서 노나라의 대학에서 《시경》과 《서경》 등을 배웠고, 또 여러 가지 의식을 맡아보는 관리에게서 예법도 배웠으며, 음악도 배웠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30세쯤 되자 관리로서의 지위도 오르고, 또한 학문도 많은 진전을 보였고, 정치는 법률보다는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과, 무슨 일이든지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이었으며, 주공이 다스리던 시대처럼 예의가 바르고 평화로운 세상이 그의 이상이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36세 때 노나라에 삼환(맹손·숙손·이손의 권세가)의 난이 일어나 노나라의 왕 소공이 신하인 계씨에게 쫓겨나 제나라로 도망가며, 공자도 그 뒤를 따라 기원전 517년에 제나라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공자는 제나라의 왕과 신하들에게도 여러 가지로 진리를 가르치며, 경공에게 정명주의적 정치 이상을 가르치니, 경공은 그를 고문으로 등용하여 이를 실시하려 했으나, 예절의 번잡함과 비현실적임을 지적하여 반대하는 대부 안영의 진언으로 좌절되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에 실망하여 2년 만에 귀국하여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46세 때 중도재가 라는 지위에 오르고, 52세가 되었을 무렵 대사구로 지위가 올랐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삼환씨의 세력을 꺾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계환자가 주위 나라의 계략에 속아 쾌락에 빠진 것을 만류하다가 대립하게 되자, 그의 큰 뜻을 이루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여 벼슬직을 사직한 후, 14년 동안 제자들과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위·송·조·정·진·태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하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공자를 등용하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당시 왕들은 올바른 길보다도 효과가 빠른 부국강병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공자는 자신의 이상이 지금 당장 실현되지 않을 것을 알자 정치가로서의 생활은 끝나고, 교육가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공자는 만년을 불행하게 지내다가(아들인 백어가 죽고, 그 후에 가장 사랑하는 제자인 안회와 자로도 잇달아 죽었으니, 공자는 &quot;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어졌다&quot;고 하며 슬퍼하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리고 72세가 된 해인 기원전 479년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습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은 스승이 남긴 어록을 모아서 《논어》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공자의 가르침은 유교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에 전해 내려와 천 수백 년에 걸쳐 중국 사회의 정치, 윤리 도덕의 규범이 되었던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위의 내용을 보면서 예전의 공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바라보고 생각하게 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십대 후반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는데, 어찌나 집안의 박해가 심했는지 눈물로 지새우며 기도하고, 나 같은 이들이 없기를 바라면서 핍박을 받고 어렵고 고독스러운 이들을 위한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리고 학교에 들어가고, 중퇴를 하고, 배고픔과 육신의 아픔을 얻어서 방황하다가, 20대에 군대에 입대를 하면서 다시금 사명감을 불러일으키고, 20대 후반에 다시 신학교에 들어갔고, 30대 초반에 교회를 개척하였고, 40대에는 자신감으로 뭉쳐져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겠다고 무모하리만큼 도전하고 돌파하고 혼신을 다하는 삶을 살았고, 50대 초반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죽음과 같은 시절과 일들을 만나서 허물어지고, 이제는 50대 후반이 되어 가는데 나는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위하여 살아왔고 지금은 어찌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음이 슬프게 만듭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아픔이 나를 병들게 하고, 마음을 축소시키고, 작은 일에 두근대는 소인배가 되었는데, 언제 나는 결실을 맺을 것인지 답답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공자의 말과 같이 이제는 하늘의 뜻을 알아 겸허하게 그 뜻을 이루어야 하는데, 가을에 핀 꽃이나 들판에 고개숙인 곡식들보다 못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우울하게 만듭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를 목회자로 세우시고 이제까지 손잡아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할진대, 지금의 내가 너무 작으니 두 손을 들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면서 위로를 받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혹은 설교를 하면서 앞서 간 믿음의 선배들이 걸어간 길이 어찌보면 내가 온 길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나를 위로해 줍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모세라는 인물은 젊었을 때는 자신의 능력과 힘과 지식과 명예로 하늘의 뜻을 이루겠다고 나섰다가, 꺽이면서 광야에 홀로 들어갑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는 그곳에서 고독하게 살면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혹은 무너뜨리면서 철저히 작은 자요 낮은 자로 전락해 버렸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이 들어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여길 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젊었을 때 꾸었던 대역사를 시작하게 되는데, 이제는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미의 능력에 붙잡혀서 승리자가 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렇다면 나는 아직도 무너져야 할 것이 남아 있고, 죽여야 할 것이 남아 있고, 더욱 고독하게 숨겨져야 할 것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나 이 날이 지나고 또 다른 날이 오면서 이 빈손에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질 것을 성경을 통해서 믿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때에는 오늘 보다 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사랑스럽고 함께 역사할 것입니다.&lt;/SPAN&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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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위내시경검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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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yoel</name>
	    </author>
	    <updated>2009-10-06T10:01:23Z</updated>
	    <published>2009-10-06T10:01:2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위내시경 검사&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몇 달전부터 식사량이 줄고 속이 편하지 않는 현상이 생겨서 약을 먹기도 하고 내 나름대로 조심을 해 왔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면서 곧 괜찮아 지리라는 생각으로 지냈는데, 시간이 지나도 좋아지지 않으니 한편으로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혹시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주변에서 흔희 암이라는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걸리는 것이 위암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아야겠다고 하지만, 선뜻 병원에 가지를 못하는 것은 혹시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내가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온다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이 병원을 향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런 생각은 나만이 가지는 생각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아도 자신들도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가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런 걱정을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 주에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하면서 위 내시경 검사를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검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 주간(9월21일부터 25일까지) 울산에서 내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가 모였을 때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화요일 저녁에 잘 알고 지내는 분이 식사접대를 한다고 해서 저녁식사를 울산 정자항으로 가서 회를 먹었습니다. 근래에는 음식을 많이 먹지 않기에 회를 조금씩 먹으니 접대하는 분이 그렇게 회를 먹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회를 듬뿍 집어서 상추에다 올려놓고 양념을 하여서 입안 가득히 넣어야 회 맛이 난다고 강권하기에 몇 차례 그리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포만감을 느끼며 과식을 하였는데, 그날 밤에 문제가 일어났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잠을 자다가 음식물을 토하고 고통을 당하기 시작을 하는데, 이튿날 약을 사 먹어도 계속되는 위통으로 인해 고생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약국에 가니 약사가 하는 말이 울산에서 회를 먹고는 탈이 나지 않는다 하는데 아마도 과식이 문제였던 같습니다. 그 과식이라고 하는 것도 예전에 음식을 먹을 때에 양에 비한다면 적은 양이지만 지금은 몸에 부담이 되는 것이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울산에 머무는 동안 계속해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통증은 계속되고, 혹 음식을 먹으면 토하기를 하였는데, 지난 몇 달간 소화의 문제가 있었는데 혹시나 이번 기회에 위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는가하는 의구심이 생겨났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온갖 추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고, 급기야는 내가 마치 환자인 듯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금요일 저녁에 올라와서도 음식을 제대로 먹지를 못하고 주일을 지냈습니다. 그리고는 월요일에 병원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문제가 있다면 있는 대로 대처를 하고, 없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 같은 결심을 하고는, 병원에 질문을 하니, 월요일 저녁식사 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다음날 일찍 오면 된다고 해서, 화요일 아침에 병원엘 방문했습니다. 위 내시경검사를 할 때 사람들이 수면내시경을 한다고 하는데, 그럴 마음이 없어 일반 내시경검사를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검사를 하는데 미리 먹는 약이나 내시경 관을 넣고 검사하는 일이나, 그 고통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검사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은 초조함이었는데, 결국은 의사가 내시경 검사한 사진들을 보여 주며, 다른 문제는 없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작은 노화현상이 일어나는 부분이 있지만 우려할 것이 아니고 매년 검사를 하라는 말을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리고는 일주일 분량의 약을 처방해 주었는데, 그 말이 참 고맙게 들리는 것은 인간의 약함과 간사함이 교차되기 때문일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작은 문제 앞에 두려워하기도 하고, 염려가 스스로를 결박하는 모습이 나의 모습이며, 모두의 모습들입니다. 인간들의 마음이 얼마나 약하고 또는 추한지를 알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건강하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 같이 살다가도, 이상이 오면 금방 무너지고 약해지는 것이 나의 모습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면서도 때로는 교만하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만에 빠지기도 하는 내가 우습게 여겨졌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우리들은 육체의 작은 문제 앞에서도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진정 우리의 가장 큰 문제인 영적인 문제 혹은 영생의 문제 앞에서는 무지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내 육체의 소중함을 느끼듯이 영적인 소중함도 느껴야 하고, 영원한 세상도 귀하게 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여 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한시 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내 영혼이 기도하지 않으므로 답답해하고, 예배드림에도 불구하고 심령 깊은 곳에서 드림이 아니기에 영혼이 갈급해하고, 말씀을 들어도 세상적인 문제나 이기심이나 탐욕으로 귀가 어두워서 제대로 들리지 않으므로 영혼이 탄식함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다는 것으로 인하여 문제없는 듯 지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는 중세에 수도사들이나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과 들과 광야에서 살아가던 성도들을 생각하면 어리석어 보이고 무식해 보이고 세상과 동떨어진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여기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 중세사회는 영적으로 어둡고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라고 하는데, 신앙인들이 나서서 사회를 개혁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여야지 왜 산속에 홀로 들어가 은둔하며 홀로 경건하고 영적인 깊이를 추구한다는 것이 못마땅했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현실 세계에서 부딪히며 선을 위하여 투쟁하고 개혁하고 선도에 서는 것이 믿는 이들의 도리라는 생각에 우를 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한계와 부패함을 보고서는 오히려 그들이 그리워지고 존경해 지고, 산같이 큰 인물들로 다가섭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사람이 누구나 세상과 연합하여 육적인 만족을 추구함이 대세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슬러 등지고 산다는 것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결단이 아닙니다. 거센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부패와 타락의 세상에서 그것에 동요되지 않고 홀로 고고히 사는 것만도 참으로 거인들이고 위대한 인물들이라고 머리 숙여집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는 작은 육체적인 고통이 두려워 떠는 소인배인데, 그들은 영적인 문제로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자들이니 나와 비교할 수 없지 않습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내가 내 몸을 위하듯이 내 영혼의 문제를 깊이 사랑하고 관찰하고 아낀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자책을 하면서, 병원을 나섰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아마 식사도 예전같이 잘 할 것 같고, 큰 걱정을 덜어낸 사람같이 살아갈 겁니다. 그게 내 한계가 되어서는 않되는데........&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94회장로교(합동)총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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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yoel</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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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9-26T14:39:00Z</updated>
	    <published>2009-09-26T14:39:0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제94회 장로교(합동) 총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총회가 2009년 9월 21일(월)부터 25일(금)까지 울산의 우정교회당에서 개최되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전국 135개 노회에서 온 총대들의 숫자가 1,400여명에 이르고, 내가 속한 함중노회에서도 목사3인과 장로3인이 참석하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총회는 목사와 장로가 동수로 참석을 하는 장로교 최고 의결기관으로서, 한 해에 교단 최대의 행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전국 각지에 있는 노회에서 대표자적인 성격으로 참석하는 총대들은 모두 신앙과 인격에 경륜이 있고, 단체를 이끌어 갈 만한 실력들을 갖춘 분들이기에, 그 분들이 모여서 진행되는 총회는 대단한 열기와 토론과 혹은 격정을 토로하기도 하는 살아 있는 공동체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번 총회가 여러 가지 중대한 문제들을 결정하여야 하는 총회이기에 총회가 개회되기 이전부터 열기가 고조되기 시작을 하였는데, 그중에서 민감한 문제는 총회 임원들을 선출함에 있어서 본 교단은 제비뽑기를 통하여 선출하는데, 일부에서는 금번 총회에서 임원 선출 전에 직접투표로 전환되고자 하는 이들의 움직임이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제비뽑기란 우리 교단이 8년 전에 채택한 선거방식으로, 과거에 직접 선거를 통하여 총회 임원을 선출하던 제도를 개선한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아마도 이런 선거방식은 우리 교단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방식이라고 여겨지는데,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교회법에 위배되고 일반 사회법에서도 인정되지 않는 비민주적 방식이라고 강하게 거부하고, 해마다 이 문제를 문제화시키기도 하였으나, 본 교단 총대들의 의지가 분명하기에 그런 문제나 저항에도 계속 실시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자랑스러운 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스스로 정화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방식이기에 나는 지지하고 자랑스러워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지금 개신교라는 이름하에 일어나는 비리적인 모습들은 대부분이 선거에 의해 일어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한국 사회에서 목사들이 신뢰를 받지 못하고 개신교가 마치 비리집단처럼 회자되기에 신뢰는 떨어지고 지탄과 조롱을 받는 결과 복음전파와 교회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직접선거제도는 회원들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행사할 수 있다는 면에서 누구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성숙하고 민주화된 사회에서 이 제도를 배척할 이유는 없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나 우리나라는 선거로 인한 혼탁함을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한 나라이기에 법적으로 많은 규제와 제도와 법으로 공명선거가 되게 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폐해들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안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법과 제도를 개선한다고 하여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지키지 아니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제도가 완벽해 지거나 개선되어 지지 않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탐욕과 권력에 눈이 어두운 이들은 공명선거라는 이름하에서 은밀히 자행하는 문제점들은 어느 시대나 누구나 같은 것일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교회란 시대와 사회와 국가와 어떤 도덕 보다 더 정직하고 순결하고 깨끗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리해야만 구원의 진리를 전파하며 모든 인류와 시대를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죄로 인하여 부패하고 타락한다고 하여도 교회는 고고히 빛을 발하며 진리를 선포하여 구원의 방주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렇다면 교회가 모인 교단이라는 곳에서도 당연히 순수하고 정직하고 깨끗한 선거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금에 비추어지는 선거로 인한 많은 지탄과 손가락질과 비웃음은 무엇으로 항변할 수 있겠습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선거로 인한 다툼과 분열과 세상 법정에서 교회가 머리 숙이고 그 판결 앞에 굴복하는 모습들은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같이 만드는 이들이 평범한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단한 이름과 힘과 돈을 쥐고 있는, 소위 대형교회라고 하는 교회와 목사들의 문제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교회라는, 혹은 진리라는 이름하에 가장 많은 이익을 받고 있는 이들이, 교회를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드는 일에 앞장선다는 것이 문제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피 눈물을 흘리고, 작은 개척교회를 세우고 배고픔과 어려움 속에서도 진리를 전파하고자 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복음의 현장에서 전투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선거를 통하여 자신을 더욱 크게 하고, 자신이 속한 교회를 더욱 크게 하며, 자신의 권력을 추구하는 이들이 추앙을 받는다면, 주님은 어찌하시겠습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권력 있고 힘 있고 돈 있는 목사나 장로들의 웃음 뒤에 감추어진, 작은 돈에 울며, 먹을 것을 위하여 고뇌하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어진 목회 현장에서 오직 주님을 바라보면서도 주님 때문에 감사하고, 구원의 은총으로 인하여 나의 삶을 다 드려도 부족하여 눈물을 흘리며, 이 복음 위하여 가족들의 삶까지도 희생함에도 낙심하지 아니하는 개척교회 목사들과 그 교인들 앞에 무릎을 꿇어도 그 잘못을 다 용서할 수 없을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심지어 총회장이나 대표가 되기 위하여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의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그 돈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돈이라 해도 문제인데, 대부분이 교회의 돈이 투입이 된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 교회 교인들이 모두 재벌들이라서 헌금을 하여도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닐진대, 가난하고 작은 수입임에도 불구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헌금들인데, 그 헌금들은 눈물이 묻어 있고 땀이 묻어 있고 시간이 묻어 있고 정성이 묻어 있고 심지어 피가 묻어 있는 것들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것이 쓰고 남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여짐에 감사하는 이들의 순수한 신앙을 왜곡시키는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거듭 말하면 개척교회를 수 십개 세울 수 있고, 왠만한 교회당을 건축하여도 남을 돈들이 선거자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목사로서 분노와 절망감으로 인하여 슬퍼지고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런 폐단을 그래도 최소화 시키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한 방법이 현 법적체재 안에서는 조금은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우리 교단 총대들이 선택한 제비뽑기라는 제도입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자랑스러운 일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제비뽑기란 어느 직분을 감당하고자 하는 이를 선출하기 위하여 합당한 조건들을 세우고, 그 조건에 맞는 이들이 제비뽑아서 그 직분을 감당하는 제도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금번 94회 총회에서 개회가 되고 선거를 하기 전에 몇몇 분들이 나서서 직선제로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지만, 대다수의 총대들이 제비뽑기를 호응하였기에 그들의 주장은 미미했고, 선거를 진행하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총회 안에서 제비뽑기를 거부하고 직선제로 하자는 의견에 이유는, 총회장이나 기타 임원들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지도력이나 인물 검증이 되지 아니한 이들이 총회장에 선출되므로 인하여 총회 내 질서와 지도력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며, 이 제도는 법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총대들의 인격이나 신앙 양심에 맡겨도 금권선거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의견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합당한 이유도 있고,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제도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즉 내가 뽑은 지도자를 세우고자 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고, 제비뽑기는 법적인 하자를 들 수 도 있고, 다른 이유도 많을 수도 있고, 그 이유엔 타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럼에도 대다수의 총대들이 직선제를 거부함은, 인간의 타락성과 금권의 힘이 너무 크다는 것과, 그로 인한 불신앙적인 문제들을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는 여러 해 경험해 보는 것이지만 제비뽑기를 통하여 총회장이나 임원을 선택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에 합당한 이들이 선출된다고 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설령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 책임을 감당할 만한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신다고 믿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어느 제도가 좋고 어느 제도가 나쁘다는 흑백논리보다는 그것을 운영하는 인간들이 바르게 서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번 총회에서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조금이나마 바로 서겠다고 하는 이들이 많았음에 우리 교단을 향한 감사와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lt;/SPAN&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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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를 향한 청문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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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yoel</name>
	    </author>
	    <updated>2009-09-19T11:40:42Z</updated>
	    <published>2009-09-19T11:40:4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나를 향한 청문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가을을 맞이하여 정치계에서는 청문회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청문회란 행정 및 입법 기관이 법안의 심의, 행정처분, 소청의 재결 등을 위해 필요한 증언을 수집하는 절차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청문회는 미국 의회에서 대표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제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88년말 의정사상 처음으로 청문회가 열려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었습니다. 생소하지만 지난 권력자들이 청문회에 나와서 혼쭐나는 모습들이 흥미와 함께 많은 반향을 일으켰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청문회는 의회에서의 공청회와 그 시행목적이 달라 한국의 국회법 제65조에 의해 중요한 안건(국정감사 및 조사 포함)의 심사에 필요한 경우 증인·참고인·감정인으로부터 증언·진술청취와 증거채택을 위한 것으로 각 상임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고 청문회 5일 전 안건·일시·장소·증인이름을 공고해야 하며, 공개가 원칙으로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청문회는 성격상 조사청문회와 입법청문회로 나누어지는데 1988년 11월 한국 최초로 행한 일해청문회·광주민주화운동청문회·언론통폐합청문회 등은 모두 조사청문회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요즘에 벌어지고 있는 청문회는 국무위원 후보 등을 대상으로 한 인사청문회인데, 제16대 국회 때인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었고, 그 후 2005년 7월 인사 청문 대상이 국무위원으로 확대되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인사청문회의 본래 목적은 정부 고위공무원 임명 전에 후보에 대한 국가관이나 도덕성, 자질, 인격, 성품 등을 검증하기 위한 절차이며 더 나아가서는 해당자에게 자신의 사명과 국민의 공복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런 청문회를 바라보는 나는 몇가지 생각을 해 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첫째로, 인사청문회에서 개인적이거나 가족이거나 과거에 대한 지적을 받고 수모를 받는 이들이 왜 공직에 나서는가라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대부분이 재산증식에 문제가 있다. 자신의 병역에 문제가 있다. 자식들의 병역에 문제가 있다. 살아오면서 위장전입을 했다. 과거에 무슨 말을 했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들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즉 그 해당자가 알고 지은 잘못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범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이는 연약죄와 고범죄로 분류를 하는데, 연약죄는 인간은 누구나 살다보면 연약하기에 원치 아니하나 잘못을 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 연약성에 근거를 둔 잘못은 그래도 용서가 되어야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도피성이라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을 범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고 누가 무어라 해도 잘못임을 알면서도 행한 것은 용서받기가 힘든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지금 고위공직자가 되려는 이들이 무식하거나 무지해서 잘못을 범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지능적으로 잘못했다면 스스로가 남의 앞에 서지 않고 은인자중하여야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무지하고 무식하고 살아가기조차 힘들고 억눌리고 소리질러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서민들과 국민들 앞에서 나는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고위공직자에 자리에 들어가야 하겠다고 하는 것은 후안무치의 소치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고위공직자가 되려는 이들은 그들 스스로가 이같이 자위할 것입니다. 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이 직임을 감당하고자 한다. 혹은 나는 시대적인 소명을 갖고 그 직임을 감당하고자 하며, 내가 일생동안 추구하고 연구하고 쌓아 온 경륜과 철학과 모든 것을 펼침으로 인하여 국민들의 행복과 국가발전의 초석이 되고자 한다고 할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런 생각이나 포부는 마땅한 일이고, 그런 이들이 나라를 이끄는 일에 쓰임 받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지만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나 그들을 바라보는 공직자들이나 그리고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처신을 바르게 하고 주어진 직무에 최선을 다했어야 합니다. 자신이 흠이 있음에도 사양하지 못하고 물러설 줄 모른다면 그는 권력지향적인 인물이며, 자신과 자신의 가문의 영광을 추구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자신을 돌아보아 부끄럼 없고 떳떳한 이들이 앞장서서 국가를 이끄는 시대가 되어야, 알게 모르게 수고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수긍이 되고 정부가 힘 있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둘째는, 청문회를 진행하는 이들의 문제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청문회의 질문자들은 국회의원들로서 한 지역이나 주민들을 대표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행정부가 하는 일에 대하여 입법부로서 견제내지는 국가의 유익을 위하여 청문회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면서 질문을 하고 상대방의 허물을 들추어내서는 고함을 치고 윽박지르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과연 저런 질문이나 저런 태도가 합당한가고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무지식한 질문이나 해당 분야에 사전지식 없이 질문을 하고, 그런 이들이 상대방을 향하여는 인격과 경륜을 무시한 발언을 하기도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상대방의 비리와 허물을 들추어내서 그가 그 직무를 감당할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지만, 의도적으로 해당자와 그리고 그를 임명하고자 하는 정부나 대통령을 훼방함이 자신들의 존재목적으로 알고 있다면 문제이며, 혹은 상대방의 비리와 허물을 덮어주려고 하는 태도도 문제입니다. 당리당략에 의한 발언의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청문회가 존재할 의미가 있는지 의심이 갑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제까지 많은 청문회를 보면서 한결같은 답을 얻게 되고 이번에도 그리할 것으로 보여 지는데, 여당에서는 그만한 자질과 인격과 실력을 갖추었으니 직무를 잘 감당할 것이고 임명권자의 결정이 옳다는 평을 낼 것이고, 반대로 야당은 자질과 인격과 실력을 갖추지 못하고 비리와 연루된 자를 임명하는 임명권자나 정부의 잘못이기 반대한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여당이 야당 이 되어도 그렇고, 야당이 여당이 되어도 마찬가지 논리로 나타날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즉 상대방을 부정함으로 자신을 긍정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논리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셋째는, 상대방을 향하여 질문하고 판단하고 비난하는 이들은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들은 국회의원들로서 구성이 되는데, 국회의원들도 인사 공청회에 서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국민들이 직접선거를 통하여 선출되었기 때문에 그들 자신을 떳떳하고, 그들이 범한 과거의 모든 일은 면죄 받았고 여긴다면 잘못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들도 국가와 민족과 백성을 위하여 일한다고 하는 권력계층임에 분명한데, 그런 권력을 소유한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더 갖추어야 할 것이 많아야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들을 선출하는 지역 주민들이나 어느 일정한 틀 안에서 검증을 받고 출마를 하고 주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니 외국에서는 가장 무질서하고 무능하며 싸움이나 하는 일에는 세계에서 1등이 대한민국 국회라고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기업들이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하여 얼마나 혼신을 다하고, 운동선수들이 국위를 선양하기 위하여 피땀을 흘리고, 심지어 알아주지 않으나 묵묵히 자신이 가진 재능과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기능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들을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는 그들이 자랑스럽고 또는 그들에게 부끄럽고 눈물나게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권력을 소유하고 남다른 대접을 받으며 가문의 영광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추한 모습으로 세계에 회자된다는 것은 한탄할 일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런 이들이 청문회를 통하여 자신들의 자질과 인격과 도덕성을 검증 받는다면 그들은 떳떳하다고 하고 자신 있게 소리를 치고 거들먹거릴 수 있겠습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넷째는, 나를 돌아보아 나는 청문회에 설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해 봅니다. 이는 내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무슨 고위공직자가 된다는 것이 결코 아라, 내가 나를 청문회 한다면 어떻겠는가라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내가 청문회석에 서고 나의 양심과 나의 인격과 나의 신앙이 나를 향하여 지나온 날들에 대한 청문회를 열고, 내가 살아 온 과정이나 인격이나 자질이나 도덕적이거나 신앙적인 질문을 한다고 한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면서 핑계를 대며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항변을 할 것인가? 그럴 만한 무엇이라고 있는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다른 사람에게가 아닌 나 스스로에게 나를 속일 수 없기에 나는 오직 한마디 말뿐 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감히 다른 무슨 말로서 나를 호도하며 수많은 껍데기들로 둘러싸며 변명 혹은 변호할 수 있겠습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성경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lt;/SPAN&gt;&lt;U style=&quot;text-underline: #000000 single&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SIZE: 12pt&quot;&gt;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lt;/SPAN&gt;&lt;/U&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 하니, 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더라고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자기를 아는, 자기보다 위대하시고, 자기를 향하여 꿰뚫어 보시는 이 앞에서 할 말은 오직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말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도 나에게 할 말이 그것뿐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내가 무엇을 한다고 수고하고 떠들고 돌아다니고, 나는 무엇이라고 인정하던 모든 것들이 내게는 다 허물이며 부끄러움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내가 앉고 서는 것도, 내가 먹고 마시는 것도,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집착하던 것도, 내가 그렇게 추구하던 모든 것들이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움뿐인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사람에게도 자연에게도 나는 죄인입니다. 들에 익어가는 곡식들과 익어가는 벼들을 보아도, 하늘에 나는 미물들을 보아도 나는 죄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보기도, 사람들 앞에 서기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며 삽니다. 이 부끄러움을 언제 덮고 고개를 들 수 있을런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중세기의 수도사들이 가장 많이 부르던 말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란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수없이 되새기며,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살아간 그들이 오히려 부러울 뿐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하물며 나를 내가 돌아보아도 부끄러움뿐이라면, 하나님 앞에 서는 날엔 어찌할 것인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시고, 나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나를 아시는 분 앞에 나는 어찌 설 수 있겠는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계6:16)고 부르짖을 것 밖에는 없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럼에도 부끄럽고 추하고 우둔하며 허물로 가득찬 내가 절망하지 아니하고 소망을 갖고 감사하고 나의 길을 가는 것은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키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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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수산에 올라 복을 노래하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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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yoel</name>
	    </author>
	    <updated>2009-09-12T12:06:22Z</updated>
	    <published>2009-09-12T12:06:2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김포에서 강화도를 가려면 강화대교를 건너게 되는데, 그 바로 전에 우측으로 들어가면 문수산성 삼림욕장이라는 팻말이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곳에 주차를 하고 문수산을 올랐는데, 평일이라 등산객이 별로 없이 한적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문수산은 해발376m로 한남정맥 마지막 부분에 달하는 곳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한남정맥은 경기도 안성에 있는 칠장산(492m)에서 시작을 하여 북서쪽으로 뻗어 수원 광교산(582m)과 안양 수리산(395m)을 거쳐서 인천 계양산(395m)를 지나 김포의 가현산(215m)을 거쳐 김포 문수산에 이르고 문수산을 지나 강화도가 맞다은 해변으로 가면 보구곶리란 곳에서 끝이 나는 산맥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산맥은 한강 본류와 남한강 남부 유역의 분수령을 이루게 되는 데, 높은 산맥이 아니라 200m에서 500m 높이를 이루는 산맥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문수산을 감싸고 있는 산성이 문수산성이라 하는데, 이 산성은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포내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산성으로서, 사적 제139호로 지정되어 있고, 산성 둘레가 약 2,400m, 산성 면적이 약 208㎢가 되는 곳입니다. 김포시에서 가장 높은 문수산의 험준한 산줄기에서 시작해 해안지대를 연결하고 있는데, 강화도의 갑곶진(甲串鎭)과 마주보면서 강화도 입구를 지키던 산성으로 1694년(숙종 20)에 쌓고, 1812년(순조 12)에 대규모로 중수했습니다. 산성 안에 문수사(文殊寺)라는 절이 있어, 이로부터 문수산성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성벽은 다듬은 돌로 튼튼하게 쌓았고, 그 위에 성가퀴[女墻：낮은 담]를 둘렀으며, 성문은 취예루(取豫樓)·공해루(控海樓),홍애루란 3개의 문루와 3개의 암문(暗門)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취예루는 갑곶진과 마주보는 해안에 있었으며 강화에서 육지로 나오는 관문 구실을 했는데,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침입해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때의 전투로 해안 쪽의 성벽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어 없어졌고 지금은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이 남아 있고, 산성을 복원하는 공사가 문수산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병인양요란, 1866년 1월초 대원군은 쇄국양이 정책의 하나로 천주교 금압령을 내리고, 9명의 프랑스 신부와 수천 명의 조선인 천주교도를 처형함으로서 벌어진 사건으로, 프랑스에게 좋은 구실이 되었는데 무력으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하고 불평등한 통상조약을 맺고자 한 프랑스에게 빌미를 주게 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프랑스 제독인 로즈는 강화해협을 중심으로 한 서울까지의 뱃길을 탐사할 목적으로 3척의 군함을 이끌고 1866년 8월 10~22일에 서울의 양화진·서강까지 올라와 수로탐사를 한 뒤 물러갔습니다. 이에 조선 정부는 황해도와 한강 연안의 포대를 강화하고 의용군을 모집하는 등 프랑스의 침략에 대한 해안 방어대책을 강화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같은 해 9월 15일 로즈는 전함 3척, 포함 4척, 병사 1,000여 명을 동원하여 조선을 침략해 오면서, 통상조약을 맺게 하라고 조선 정부를 협박했습니다. 한편 조선 정부는 순무영을 설치하고, 이경하·이용희·양헌수를 각각 대장·중군·천총에 임명하여 강화를 수복하게 되지만, 9월 20일 문수산성에서 다시 패한 조선군은 우세한 프랑스군의 화력을 이겨내고 강화도를 수복하는 데에는 기습작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10월 1일 밤 양헌수가 549명의 군사를 이끌고 강화해협을 몰래 건너 정족산성에 들어가 잠복하여 10월 3일 정족산성을 공격해오는 프랑스군을 물리치게 됩니다. 프랑스 군은 10월 5일 강화도에서 철수했는데, 이때 대량의 서적·무기·금은괴 등을 약탈해가게 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위에서 말한대로 문수산성은 병인양요에 접전이 일어난 곳이기에 역사적인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산에 혼자 간다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닐지라도, 산에 오르면서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고, 지치면 주저앉아 올라온 길을 바라보고, 그리곤 목표점을 향하여 다시금 일어서는 것들은 그 나름대로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가파른 길을 오르면 나는 남들보다 자주 쉬어갑니다. 한번 잃은 건강이 예전과 같지가 안은 듯 숨이 차고 힘이 들고 땀이 빗물같이 쏟아집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하지만 목적한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쉬엄쉬엄 올라가다보면 정상에 이르게 되는데, 문수산 정상에 오르면 펼쳐지는 모습이 장관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산위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바다같이 보여지는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을 보게 되는데, 드넓은 물길들이 묵은 마음을 훌훌 털어 내기가 그만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가까이는 염하강이 흐르고, 조금 멀리는 강화도 연미정이 보입니다. 연미정은 제비꼬리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정자에 오르면 강화도를 휘어 흐르는 물길이 일품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산위에서 보면 동서남북을 바라보다가 강 건너편에 북한 땅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금방 알아 볼 수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푸른 나무들과 숲을 이룬 산들이 있는 곳은 남한 땅이고, 벌거숭이 같이 민둥산이 된 곳은 틀림없이 북한 땅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강 너머에 북한 땅의 논들이 보여 지는데 모든 것이 우리 땅에서 자라는 벼와 다름이 없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장 마을이라고 하는 곳도 보여집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산위에 올라서서 왜 남과 북이 강 하나 사이로 멀지 않는 곳인데, 풍요와 빈곤으로 나뉘어 지게 되었고, 푸른 산과 민둥산으로 나뉘어 지게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는 목사로서 신앙적인 접근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성경에서 유명한 롯과 아브람이 헤어지는 광경을 보게 되는데,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세기 13 : 8 - 12)&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즉 롯은 삼촌인 아브람 보다 먼저 눈에 보여지는 기름진 땅으로서 요단강이 흐르는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하고는 떠나게 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길게 뻗어난 산맥으로 형성되어 있고, 동편 골짜기에는 요단강이 흐르는 지형으로서 롯이 선택한 곳은 누가 보더라도 좋아 보이고 기름진 곳이고, 반대로 아브람이 머물 땅은 산맥지대로서 살기가 힘든 곳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세상적으로 본다면 손해 본 아브람이지만, 조카의 선택에 따라주는 담대함을 봅니다. 이로서 그들은 헤어지게 되는데 성경은 그 후를 말씀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창세기 13:14-18)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즉,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그 땅을 복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네가 밟고 있는 땅과 네가 바라보는 땅을 네게 주고 그 땅을 복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 땅에 복을 주시는가하면 복 있는 사람이 밟고 있는 땅이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창세기 12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세기 12: 1-3)고 하셨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즉,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고, 네가 있는 곳마다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복 있는 사람이 머물면 그 땅은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렇다면 문수산 정상에서 남과 북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 속에는 당연히 어느 누가 그 땅에 사는가에 따라서 그 땅이 복을 내기도 하고 저주를 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북쪽에는 해마다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먹을 양식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치고, 실제로 수많은 이들이 기아로 죽어간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나 남쪽에서는 쌀이 남아돌아가서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고 보관료도 엄청나게 들어가고, 올해 농사지은 것도 남아돈다고 하니 이것을 무슨 까닭이라고 보아야 합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남과 북이 강 하나로 헤엄치면 잠시 건너갈 곳인데 이런 차이를 무엇으로 설명해야 합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남쪽에는 복을 주는 이들, 복을 심는 이들, 복을 나누어 주는 이들, 복과 함께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 복은 인간 스스로 만드는 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서 남쪽에는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땅을 밟고 살면서, 이 땅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복을 심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남쪽에는 성도가 부르는 찬송소리에 하늘이 열리고 땅이 복을 받고, 기도소리에 복이 뿌려지고, 예배드림 속에 충만함이 넘치게 하는 이들이 있기에 풍요로움을 노래하게 되고, 북쪽에는 복을 부르고 복을 심어 주고 복을 위하여 사는 이들을 핍박하고 싸우고 저주하고 몰아내고 적대시하기에 그들의 기도가 울움 소리로 뿌려지고, 찬송소리가 탄식어린 호소로 들려지기에 하늘도 문을 닫고 땅도 그리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네가 밟는 곳마다 복이 넘치게 하리라는 약속을 바라보는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내가 밟고 있는 땅이 복을 내고, 그 복이 우리 후손에게 이르고, 주님 오실 때까지 복으로 사는 곳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한국교회신문 800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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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dreamofjoel.18334678</id>
	    <author>
		    <name>yoel</name>
	    </author>
	    <updated>2009-08-29T10:42:42Z</updated>
	    <published>2009-08-29T10:42:4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한국교회신문 800호에 붙여&lt;/SPAN&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8pt&quot;&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내가 존경하는 선배중에 한분이신 한강 려용덕 목사님이 운영하시는 한국교회신문이 지령 800호를 맞이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주간지로 발행하니 15년이란 세월이 지난 관록과 저력을 가지고 있는 신문으로서 많은 유익과 도전과 새로움을 주는 신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800호라는 기념적인 신문을 만드는 분들의 수고와 노력이 많음을 알기에 그들의 노고를 치하드리며 더욱 발전되기를 기원해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교계신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신문과 다르게 매우 열악한 환경에 있음을 한국교회신문사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게 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교계신문을 기독교계가 사랑하고 아끼고 협력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신문을 구독하면 구독료를 내어야 하는데, 으레히 교계신문은 무료지라고 여기며 동참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다 보니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많은 교계신문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데, 한국교회신문은 15년 이상을 지켜왔다는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기 위한 발행인과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인내와 사명감이 없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겨지며 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특집을 마련한다기에 내가 축하 글을 쓴다고 하니 흔쾌히 허락하셔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그대 빛이거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늘이 열리던 날부터&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세상에 존재한 빛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빛들로&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빛들과 함께&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빛 속에서 세상을 밝음이라 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로 인하여 어둠을 몰아내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행복해 지게하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아름답게 하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영원하게 하고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구원할 것이라고 노래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나 이천여년 전 이 땅에 오신 나사렛 예수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는 빛이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너희는 빛이 되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빛이 존재함에도 빛이 없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생명이 살아나지 아니하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너와 나와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리고 우리들 심연에 어둠이 깔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늘의 뜻을 거역하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부패하여 썩어지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므로&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빛이 있으되 넘어지는 세상&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빛이 있으되 빛이 없는 세상이기에&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는 빛이고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너는 빛이 되라 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어둠으로 이끄는 위선들의 빛 잔치&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밤을 비추는 십자가 네온의 빛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 빛만으로 빛의 세상이라 여기며&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내가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우리가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리고 우리들만이 빛이라며&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높은 성을 쌓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무리들로 자랑스러워하며&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매끄러운 말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쌓아둔 재물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겸손하지 않는 명예와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승리자 같은 목소리로 외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빛이되 빛이 없는 세상에서&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밝음의 빛&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진리의 빛&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생명의 빛이 필요하기에&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사렛 예수는 그리 살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너도 그리 살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빛이 되기 위해&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800개의 영롱한 알갱이를 빗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 넣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도공의 혼으로 자신을 불사른 곳&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빛이 됨으로 만족해하는 곳&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우린 그 비춤이 있기에 행복해 하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더 밝아지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횃불이 되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요원의 불길이 되고&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늘의 빛이 되어&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샬롬의 빛으로 일어나리라 박수를 보낸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분의 빛이 되기를 소망하며&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오직 한 길을 걸어 온 한국교회 신문이여!&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대 빛이 되거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대 진리를 비치거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LAYOUT-GRID-MODE: char; LINE-HEIGHT: 130%&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대 생명을 비치거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나마리의 추억</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dreamofjoel/18334677"/>
		<id>tag:blog.daum.net,2009:dreamofjoel.18334677</id>
	    <author>
		    <name>yoel</name>
	    </author>
	    <updated>2009-08-20T22:34:28Z</updated>
	    <published>2009-08-20T22:34:2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나마리의 추억&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도시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넓은 들이 보이고 푸른 숲이 보이는 시골스러운 곳으로, 들녘에만 나가면 잠자리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닙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어렸을 적에는 잠자리 이름들을 꽤 많이 알았던 같았는데, 지금은 고추잠자리나 밀잠자리 같은 이름만 기억이 납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잠자리들이 날아다니는 한가로운 모습을 보면서 나의 기억을 스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 단어는 ‘나마리’라는 단어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마리란 잠자리를 뜻하는 사투리인데, 우리는 사투리하면 경상도나 전라도 말을 언뜻 떠오르지만, 내가 태어난 경기도 지방에도 사투리가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내가 태어나서 자란 동네는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이라는 곳입니다. 넓은 들판에 동네가 형성된 꽤 큰 읍내입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내가 초등학교 졸업을 할 당시 51회 졸업생이었으니, 아마 지금은 개교한지 100년이 넘었을 오랜 전통을 가진 곳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곳은 경기도와 충청북도 도 경계가 맞다은 곳인데, 동네 중앙에 청미천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개울이 흐르는 곳으로서, 개울 이편에는 경기도요 개울 건너편은 충청북도 음성군입니다. 개울 위로 큰 다리가 놓여 있는데 그 다리가 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누구나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고향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움을 품고 있는 곳이기에 모두가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나도 그 동네에서 뛰놀던 날들이 새삼스럽게 그리워집니다.&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렇게 오래전에 떠난 곳이지만, 문득 잠자리를 보고 나마리라는 말이 떠오른 것은 내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사전을 찾아보니 나마리란 충청북도와 강원도지방에서 잠자리를 일컫는 사투리라고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아마도 내가 경기도에서 태어났지만 충청북도와 맞다은 곳이며, 강원도가 인접해 있기에 그런 사투리를 사용했는가 봅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렇다 해도 왠지 정겹고 아름다운 말이 나마리란 단어 같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당시 동네 아이들의 놀이가 지금과 같이 다양하게 발달되지 않았기에 자연물들을 상대로 놀이를 하면서 자랐습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주변에 있는 모든 자연물들이 우리에게 더 없는 놀이감이고, 기쁨과 재미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맘때부터 시작해서 초가을까지 나마리는 우리들의 좋은 놀이감이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넓은 공터에 나마리들이 날아다니면 우리들은 그 나마리를 잡으려고 이리뛰고 저리 뛰었지만, 맨손으로 잡히지 않으니 집에서 만든 몽땅한 답싸리 빗자루를 들고 나마리를 잡으려고 한참을 달리면 어쩌다가 한 마리쯤 산채로 잡히기도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것을 잡아 다리를 실로 묶어서 날리면 부자연스런 날개짓으로 날아다니는 나마리를 쫓아 다녔습니다.&amp;nbsp;&amp;nbsp;&amp;nbsp;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다 심술이 나면 잡은 나마리 꼬리를 조금 잘라내고는 거기에 마른 풀잎이나 강아지풀을 꼿아서 날려 보내면 나마리는 힘겹게 날아가다가 땅에 떨어지고 우리는 다시 쫓아가던 다시 날리곤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지금 생각하면 못된 짓도 많이 했는데 어느 때는 생철조각을 직사각형으로 잘라서 한쪽 끝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다 실을 묶고는 실 끝을 잡고 팔을 휘저어 돌리기 시작하면 윙윙 소리가 나면서 돌아갑니다. 그것을 가지고 나마리들이 많은 곳에 가서 윙윙 소리를 내며 돌리면 때론 나마리가 그 회전하는 생철조각에 맞아서 두 동강이 나기도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어떨 때는 미루나무나 버드나무 가지를 꺽어 껍질을 벗겨내면 매끈하고 물기가 있어서 동네에 다니며 거 미줄을 보이는 대로 그 나뭇가지에 둘둘 말고는 침을 묻혀서 나뭇가지 끝으로 거미줄을 밀어 동그랗게 만듭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마치 끈적이 같이 만들어 나마리가 나뭇가지나 풀 위에 앉아 있으면 몰래가서 그 거미줄 끈끈이로 날개 쪽에다 대려하면 대부분의 나마리가 날아가고 거미줄 끈끈이는 말라서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것으로 잡겠다고 온종일 동네방네 돌아 다녔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또는 나뭇가지 끝을 둥그렇게 원형을 만들어 묶고는 거미줄 있는 곳을 다니면서 둘둘 말면 마치 진짜 거미줄과 같은 효과를 내서 잘 잡을 수 있다고 나마리를 쫒아 다녔고, 나마리가 나뭇가지나 풀 위에 앉았거나 고추대나 화초 끝에 앉으면 맨손으로 잡으려고 살금살금 까치발을 하고 다가가면 곧 잡힐 듯 하던 놈이 어느샌가 눈치를 채고는 날아가 버립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또는 나마리들이 날아다니다가 앉기도 하는데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손을 쳐들어 손가락 하나를 내밀고 숨을 죽이고 있으면 그곳에 나마리가 앉으면 잡을 수 있다 해서 한참을 그리하기도 하지만 나마리가 그곳에 앉을 리가 있겠습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런 나마리가 어릴 적 많은 추억을 심어 주었는데, 또 재미있는 것은 동네에 늪이라고 하는 큰 웅덩이가 있어서 그곳에는 물고기도 많았고 나마리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장수 나마리는 생김새가 일반 나마리보다 두배 정도 크고 몸 색깔도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것을 잡으려고 물에 빠지고 넘어지고 실수도 하면서 어쩌다가 잡게 되면 장수 나마리 발에다 실을 묶어서 나뭇가지에 매달고는 장수 나마리가 많이 날아다니는 곳으로 가서 잡은 장수 나마리를 매단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뛰어다니면 어쩌다가 다른 장수 나마리가 묶인 나마리에 붙는데 우리들은 나마리가 장가간다고 좋아라 했고, 잽싸게 붙은 나마리를 잡았는데, 이것은 하루 종일해도 한번 잡힐까 말까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신이나 뛰어다녔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깔깔거리며 뛰어다니던 까까머리 아이들은 어디로 가고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보면서 추억에 잠기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잠자리를 잡으려다가는 내가 잡힐 것 같은 것은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것일 겁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어디를 가도 잠자리를 잡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지만, 나의 눈 속에서는 그때 그 아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립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고향에 가서 뛰어 다녀봤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순박한 촌놈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곳에는 왠지 사랑스러운 어머니의 냄새가 가득 풍겨 나올 것 같습니다.&lt;/SPAN&gt;&lt;/P&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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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경제공황과 배후세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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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yoel</name>
	    </author>
	    <updated>2009-08-13T21:05:06Z</updated>
	    <published>2009-08-13T21:05:0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경제공황과 배후세력&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는 전에 읽었던 책들을 근간에 다시 펼쳐보면서 그 당시에 느끼지 못했던 사실들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특히 세계경제가 어려움을 당하면서 그 파급효과가 모든 국가에 미치는 것을 보면 경제태풍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도 그 파급효과에 예외는 아니기에 모두가 살기 힘들고 어렵다고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특히 한국은 1998년 IMF라고 하는 경제대란을 맞이했던 아픈 기억들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그 엄청난 힘이 내가 꿈꾸고 젊음을 다하고 힘과 정성을 다하였던 모든 것들도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내 삶속에 몰아붙였던 그 경제대란으로 인하여 어쩌면 내 삶 전체가 흔들리고 뿌리가 뽑힌 듯 했었습니다. 그러나 나만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수많은 국민들이 당했던 아픔들이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 아픔의 상처가 잊어지기도 전에 또 다시 전 세계를 흔드는 경제적 충격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누군가가 이 같은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에 대한 진실과 답을 제공해 주어 두렵고 떨리게 했던 책이 있습니다. ‘이리유카바 최’라는 이가 쓴 “세계경제를 조종하는 그림자 정부”라는 책으로 세권으로 이어지는데 ‘경제편, 정치편, 미래사회편’으로 구성되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의 책 내용을 보면서 거듭 두려움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그 까닭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엄청난 세력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가 쓴 ‘경제편’에 보면 서두에 신문지상이나 방송을 통하여 우리가 듣는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국채, 외채, 실업, 이자, 경제 공황이라는 것이 우연적 발생이 아니라 인위적이고 고의적으로 조작되어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사람들이 양극화라고 부르짖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어쩔 수 없는 경제의 흐름이며, 실업자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며 빚에 쪼들려 사는 사람은 본인이 무능하다고 스스로 여기거나 남들이 그렇게 몰아 부치면 그런 줄로 여깁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예전에는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특출한 사람을 일컬었으나,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시대라고 흔히 말합니다. 세상은 크게 발전되었고 경제가 부흥이 되어 국민소득이 얼마라고 외치고 문화생활이나 교통이 편리해 지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다고 하지만 과거보다 오늘이 더 살기 힘든 것은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 의하여 경제가 조종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들을 일컬어 ‘엘리트’라고 칭하면서 이들은 세계를 독점 경제체제로 몰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중앙은행을 소유하며, 세계의 중앙은행까지도 쥐락펴락하면서 거대한 조직으로 변모해가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심지어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어 가고 있는 “인권 문제”, “환경 문제”, “가난 퇴치 문제”등의 새로운 물결이 사람들이 살기 좋은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조해 세계적인 조류를 이루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나 이 운동의 배후 세력이 존재하는데, 그들이 곧 세계를 주무르는 ‘엘리트’들로서, 이들이 쓰는 수법은 고등 수법으로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면서 이 책에서는 그들의 수법을 지적하는데,&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 그들은 가난을 퇴치하는 데 앞장을 서면서도 실제로는 전 세계를 빈곤의 구렁텅이 속에 빠뜨리고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 그들은 지구의 환경을 정화하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존경을 받고 있지 만, 실제로는 가난한 나라에 자연을 황폐화 시키고 땅 전체를 빼앗는 일을 자행하고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3. 인권신장을 한다면서 인권문제로 포장을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나라에 정 치적. 군사적 위협까지 불사하며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을 조성하고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4. 평화를 소리높이지만 이면에서는 세계 도처에서 전쟁이 발발하기 위한 조 건을 만들고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키는 대량 학살을 조장하고 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5. 질병을 퇴치한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인위적으로 질병을 퍼뜨려 인구를 줄 이는 작업도 서슴치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와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이 화를 낼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본래의 정신이나 취지에 따라 일하고 있으나, 이런 내막을 움직이는 엘리트는 소수라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경제학자들은 경기순환(Business cycle) 이라고 하는 경제의 희비 곡선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인플레와 디플레의 반복순환을 일컫는 것인데, 이것이 자연 현상인지 아니면 인위적 현상인지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주기적으로 움직여서 막대한 이익을 취하는 집단이 ‘엘리트’들인데, 그들은 돈을 많이 풀어 모두가 정신없이 흥청망청 즐기게 하다가, 어느 정도가 되면 다시 거두어들임으로써 반복적으로 공황을 조작하고 있으며, 이들에게 농락당해 파멸한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고, 전쟁을 일삼는 양측에 돈을 대주며 막대한 이익을 취합니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와서는 공작 단위가 국가가 아니라 전 세계로 확대했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우리나라의 예를 든다면 어려웠던 경제가 7-80년대에 성장을 거듭하다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국민들이나 지도자들은 이제 우리나라가 대단한 나라가 되었고, 경제적으로 손색없는 부요한 나라라고 여기면서 모든 면에서 호화로워지고 사치와 향락이 몰려 왔습니다. 그러다 IMF라는 태풍 앞에 나라가 흔들리고 국민들은 기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엘리트들이 원하는 국가의 경제권이나 국가의 유익한 것들을 팔아서 최악의 상황을 면해야 했던 것입니다. 왜 그같이 해야 하는가 하면 그동안 누렸던 사치와 호화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중독되어 있기에 모든 것을 팔아서라고 그 수준의 삶을 유지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즉 경제발전이라는 그림자에 도취된 모습입니다. 그로 인하여 누가 이익을 보았습니까? 우리 모두가 아닌 보이지 않는 이들이 이익을 취한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런 현상들은 세계 어느 나라든 경제성장이 일어나서 소비가 늘고 호화로움에 물들면 어김없이 경제공황이 찾아와서 무너뜨리는 것을 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우리가 살면서 착각하는 것은 정치적 통치자가 전권을 가지고 국민들의 생활수준이나 경제활동을 조정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기에 지금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국민생활이 어려워지면 그 책임이 정치 지도자들의 정치능력 탓으로 여겨서 비판하고 저항하고 투쟁하면서 권력에서 물러나게 하기도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나 정치가 경제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정치를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정치가들은 국민에게 잘 보여야 선출될 수 있는 약점이 있기에 돈을 가진 ‘엘리트’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면서 대부분의 약소국가의 정치가들이 독재자가 되는 이유는, ‘엘리트’들에 의하여 막대한 자금지원을 받아 권력을 잡았기에, 그들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는 자기 국민을 착취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결과 자기편에 충성하는 소수의 잘사는 사람들과 다수의 핍박받는 국민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지금도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독재자들의 면모를 본다면 이해가 가능합니다. 자기 국민들을 기아상태에 몰아넣고도 자신들은 호의호식을 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유지가 당연하다 여기고, 국가의 자원을 몽땅 빼앗아 사유화하면서도 권력주변에 있는 소수의 무리들만이 모든 것을 누리는 현상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런 현상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를 알지도 못하면서 독재자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나는 이들이 수없이 많은 것도 또한 우리의 현실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경제학자 또는 경제 전문가는 두 종류인데, 하나는 경제의 룰을 만드는 사람과 다른 하나는 그 룰에 의해 플레이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나라든지 자신들이 살아남으려면 룰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국가나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없으면 빚에 허덕이게 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경제권를 빼앗으려는 엘리트들은 빚의 경제를 펼쳐, 자신들이 정복하고자 하는 사회나 나라나 심지어 개인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빚을 지게 만듭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지금 우리 사회도 집을 장만하거나 자동차를 장만하거나 심지어 작은 물건을 구입하려고 해도 빚을 지도록 유인합니다. 그러면서 빚을 많이 질수록 돈을 더 잘 버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작은 돈을 투자해서 될수록 많은 돈을 은행에서 대출받아 사업을 시작하면 더욱 높은 수익을 올릴 것이라고 유혹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아파트를 살 때도 자신의 능력보다 더 많은 돈을 대출받게 하는데, 그러면 얼마 있어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부자가 될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듭니다. 심지어 우리사회에 은행 신용카드를 몇 장 가지고 있는가가 자랑거리가 되는데 이는 빚을 지게 만드는 유혹인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런 것이 그럴 듯해 보이지만 결국은 빚의 노예가 되고, 돈 있는 이들의 노예로 전락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신용카드란 누구라도 소유하면 얼마간의 빚을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용해서 빚을 지게 만들고 결국은 그들을 무너지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우리사회에 신용카드 빚으로 인한 문제점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세상에서 가장 상위에 있는 힘이 돈이라는 것으로서, 세상은 돈을 가진 사람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으며, 그러한 세상에서는 민주주의 대신 실력의 대결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들을 잘 살게 만들어 준다는 정치가들의 약속이 대단해 보이고, 서민들을 위한다는 구호에 현혹되기도 하면서 그들에게 표를 몰아주고 힘을 실어 줍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면서 그들이 우리들을 잘 살게 해 줄 것이라고 믿으며 그들이 마치 전쟁터에서 자신들을 위하여 싸워주는 애국적인 군인과 같다고 여깁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안전할 것이고 내일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 편에 서고 때로는 반대편에 사람들을 증오하면서 우리가 못사는 것이 반대편에 있는 이들 때문이라고 맹신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편 가르기를 하고, 무서운 증오를 뿜기도 하고, 투쟁하고, 그것을 위하여 헌신함이 의로움으로 여기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 모습들 입니다. 끝없는 투쟁과 미움과 저주는 누가 만들어 내는 것입니까? 선량한 국민들인가? 아니면 어떤 목적과 의도를 가진 자들인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정치가들에게 무기를 대주는 격인 돈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정치가란 존재는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가들은 나만 정치를 해야 하고, 자신들만이 진정한 국가와 민족의 등불이라고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정치가들의 목적은 예외는 있으나 대부분이 자신의 부귀영화를 누리는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국가라는 이익과 국민들의 편익보다는 자신들의 당선과 자신들이 속한 집단인 당의 권력을 취하기 위하여 혼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금권의 힘이 막강하여 그 밑에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전제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여러 가지 형태의 이념이 속해 있으나, 그런 주의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체제가 가장 선하고 온전하고 완벽한 체제라고 주장을 한다 해도, 금권주의의 주체인 ‘누상 정부(樓上 政府)’ 즉 구름 위 정부의 한낮 이용물에 불과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지금 우리 시대에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돈과 연결된 사회라고 여기면서 투쟁을 하는 이들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체제라고 여기는 무서운 오해가 있습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도 분명히 돈이라는 금권위에 서 있는 인간들의 체제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세계의 부를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엘리트들에게는 전쟁과 분열과 갈등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적대 관계에 놓여 있는 두 진영이 있어야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공식을 만들어 지배했고, 국가간의 전쟁, 빈부의 대립, 사상의 대립, 노사간의 대립, 세대간의 갈등 더나가서는 종교간의 대립이나 지역간 대립이라는 두 개 이상의 이념을 만들고 서로가 반목하게 만듭니다. 그로 인하여 엘리트들이 누리는 이익은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지금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온갖 대립들의 양상을 본다면 그 밑바닥에 돈이라는 막강한 힘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하여 이끌려간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면 이런 엄청난 힘의 존재자들에게 이길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언제까지나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야 하는가?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아파하면서 머리를 맞대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lt;/SPAN&gt;&lt;/P&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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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체로키 인디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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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yoel</name>
	    </author>
	    <updated>2009-08-05T11:06:11Z</updated>
	    <published>2009-08-05T11:06:1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체로키 인디언&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포리스터 카터(Forrest Carter: 체로키 인더언의 혈통을 이어받은 미국의 작가.1925-1979년)가 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Education of Little Tree) 이란 책에는 인디언들이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책은 자기 자서전적인 내용으로 작가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살았는데 그 할아버지와 겨울 산에 야생칠면조를 잡으러 가는 모습이 그려 있습니다. 이른 새벽에 산에 올라가서 야생 칠면조들의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그 길에다가 구덩이를 파고, 파낸 흙들은 낙엽들 사이에 뿌렸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가장 자리를 볼 수 없을 만큼 구덩이가 깊어지자 나뭇가지들을 주워서 그 구덩이 위에 걸쳐놓고, 그 위에 나뭇잎 한 무더기를 뿌려놓습니다. 그리고는 야생 칠면조가 다니는 길에서 구덩이로 비스듬히 이어지는 작은 도랑을 판 후, 붉은 인더언 옥수수 알갱이들을 꺼내 도랑을 따라 쭉 뿌려 나갔고, 구덩이 속에도 옥수수 한 움큼을 던져 넣습니다. 그리고는 그곳을 떠난 후 한 낮이 되어서 그들이 판 함정에 가까이 다가가는데 구덩이에 빠진 칠면조 놈들이 꽥꽥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배를 깔고 엎드린 채 구덩이에 손을 집어넣고는 커다란 칠면조를 한 마리씩 꺼냈는데, 여섯 마리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어린 작가는 그 때 할아버지에게 입구가 꽉 막힌 것도 아닌데 그냥 머리만 숙이면 빠져 나올텐데 왜 갇혀 있는가를 물으니,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 ‘칠면조란 놈들도 사람하고 닮은 데가 있는데, 뭐든지 다 알고 있는 듯이 하면서, 자기 주위에 뭐가 있는지 내려다 보려고는 하지 않아. 항상 머리를 꼿꼿하게 쳐들고 있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 배우는거야’ 라고 대답을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리고는 여섯 마리의 다리를 묶고는 손자에게 ‘우리는 세 마리만 있으면 충분하니 네가 골라보렴. 부리 두께를 보면 나이를 알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손자는 이러저리 돌아보고 어느 것이 큰가를 살핍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구분한 큰 것과 작은 것을 보고 큰 놈들의 다리를 풀어주었더니 놈들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산속으로 달아납니다. 그들이 작은 것 세 마리를 할아버지가 두 마리 손자가 한 마리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마냥 행복해하며 콧노래를 부르면서......&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사냥에 관한 말을 합니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하면 안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흙표범인 파코들도 잘 알고 있단다’ 라고 손자에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더 나가서 그 할아버지는 ‘꿀벌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 두지......... 그러니 곰한테도 빼앗기고 너구리한테도 빼앗기고..... 우리 체로키한테 빼앗기기도 하지. 그 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것을 뺏어오고 싶어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 그리고 나면 또 길고 긴 협상이 시작되지.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더 늘리려고 말이다. 그들은 자기가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지.......... 그러니 사람들은 그놈의 말과 깃발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 셈이야......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 없어’&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우리와 동떨어진 세상과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이 느껴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삶의 지혜가 특별하거나 지식 사회이거나 부유한 물질사회이거나 문명사회에서거나 별다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삶의 방법이 옳다고 주장하고 투쟁을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어찌보면 오늘 우리는 가장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하면서도, 야생 칠면조 여섯 마리를 모두 잡아들고 와야( 비록 그것을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만족하다 하고, 가장 크고 힘센 놈을 잡아야 좋다고 하고, 쌓아두어도 먹지 못하고 버릴 것을 넘치도록 소유하여야 행복하다고 하는 파멸적인 삶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극단적인 예일지는 모르지만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무너지더라도 나의 삶이 중요하고 행복이 중요하고 인격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결국은 공멸로 가면서도 당장은 괜찮아 보이니 그리하다 여깁니다. 나보다 더 큰 틀을 깨트리면서도 나를 우선시 하는 어리석은 예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뿐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이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자기들은 노동자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그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터전인 기업을 상대로 무너뜨려가면서도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라고 외치는 무리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 자신들에게 소속된 노동자들만이 소중하고 소속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들은 나 몰라라 하면서 밀어 넘어지게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또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이나 정파의 이익을 위하여 국가와 민족과 국민들을 위선의 탈을 쓰고 농락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숲과 자연을 파괴하고 난 후에 인간이 행복할 거라고 외치는 이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함께하는 노동자들과 동고동락하기 보다는 자기 이익에 혈안이 된 기업주들도 얼마나 많습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사상도 자기가 추종하는 사상만이 옳다고 여기며 다른 이들을 향하여 무서운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뜯는 이들도 얼마나 많습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통달한 것 같은 사이비 지식인들과 그들과 어울려 사는 이들도 참으로 많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다 보니 으르렁 대는 싸움 소리와 비명과 탄식과 아픔만이 우리들을 혼돈으로 몰고 갑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럴 때에 체로키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이 지금의 우리 잣대로 본다면 어리석을 줄 모르나 진정한 자연과 함께 하는 순리적인 삶을 살아간 이들이라 여겨지며, 오래전 미국 그랜드 캐년에 갔을 때 가이드들이 알려준 골짜기 밑에 사는 인디언들이 생각났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백인들은 우월하다고 여겨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인더언들의 땅을 빼앗아 살면서 그들을 짐승 사육하듯이 그 골짜기 밑에서 그들만이 무리를 지어서 살게 하는 슬픈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지금도 남들을 골짜기로 몰아넣고는 자신은 승리자라고 우쭐대는 이들이 많아 보이니 작고 약한 자들이 살아 갈 길은 어디겠습니까?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리고 누가 누구를 문명인이며 진정한 가치있는 삶을 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조금은 비워 놓고,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고, 조금은 손해 보는 것 같은 이들이 사는 세상이 아름답지 않을런지.........&lt;/SPAN&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천둥벌거숭이들의 철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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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dreamofjoel.18334674</id>
	    <author>
		    <name>yoel</name>
	    </author>
	    <updated>2009-07-31T21:18:24Z</updated>
	    <published>2009-07-31T21:18:2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천둥벌거숭이들의 철렵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여름이 깊어 가면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옛적을 생각합니다. 푸르던 들과 산과 개울들이 그려지면서 언젠가 그 곁으로 가서 남은 날들을 살고 싶어짐은 촌에서 태어난 촌놈만이 가지는 감정일 겁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여름방학만 되면 논두렁에 나가서 고기를 잡으며 마음껏 웃고 즐기던 그런 날들이 아마도 행복함으로 기억되기 때문일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가난한 동네에 아이들 중에 체라고 하는 고기잡이 철망을 가진 이가 나 혼자였기에 이른 아침부터 친구들이 찾아와 물고기 잡으러 가지고 성화였고, 구멍난 런닝 셔츠에 팬티 겸 반바지를 입고 나가면 모든 것이 행복이었습니다. 논두렁에 나가서 체를 대고 발로 풀숲을 고기를 몰면 수초속에 있던 놀란 붕어나 미꾸라지가 걸려들게 되고, 그들의 빛난 비늘과 아름다운 색깔들이 어린아이들을 좋아라하게 만들고, 미꾸라지를 잡으려고 손아귀에 잡아넣으면 간질거리면서 삐져나가는 미꾸라지를 보며 깔깔거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때로는 다리에 붙은 거머리에 놀라기도 하지만 우리들은 그 거머리를 떼어내 가지고 손가락으로 돌돌만지면 거머리가 동그랗게 변하기도 하고, 피가 흐르는 정강이에 쑥을 이겨서 붙이기도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다가 물뱀이 체에 걸리거나 지나가면 어린마음에 얼마나 놀랬는지 체를 버리고 한참을 도망갔다가 진정하고는 그 자리에 돌아왔습니다. 까맣게 탄 얼굴과 삐적 마른 몸으로 들로 산으로 다니던 꼬맹이가 이제는 꽤 나이가 들어가니 과거의 날들이 새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지금도 누군가에게서 송사리. 붕어. 미꾸라지. 버들치. 구구락지, 쏘가리란 말만 들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그 날들이 머릿속에만 아니라 나의 몸 세포 속에 깃들여 있기 때문일 겁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천둥벌거숭이 같은 날들이 그리워짐은 이제 꿈을 꾸는 시간보다는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래서 나는 바다고기보다는 민물고기를 좋아 합니다. 여러 가지 작은 물고기들을 넣고 끓여 먹던 매운탕을 참 좋아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무더운 여름철에 그려보는 행복함입니다. 그런 행복함이 지금도 연결되어 있다면 좋으련만 삶에 휩쓸려가는 나나 우리들은 그런 날이 있었음만도 감사하다고 여겨야 할 겁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어제 몇 명의 목사들이 모였습니다. 모두가 바쁘고 힘든 목회의 길을 가는 이들입니다. 작은 교회에 시무하므로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우정을 나누며 친구처럼 여겨지는 사람들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 여름철에 휴가 간다는 것이 그리 용이하지 않기에 그들에게 시간을 낼 것을 부탁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전화로 약속을 하는데 왜 부르는지 몰랐다가 철렵을 가지고 하니 깜짝 놀라면서 하나같이 웃으면서 좋다고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보다 나이가 드신 분도 있고, 또는 또래 목사들이기에 나와 같은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라고 여겨서 불렀는데 역시 같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들에게 준비할 것은 반바지와 운동화와 속옷만 준비하면 된다고 통보를 하고, 나는 아침 일찍 집을 떠나면서 가방을 들고 나서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소풍가는 기분이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시내에 나가서 5명이 만나 수원을 향하여 출발을 하였습니다. 이 모임을 갖게 된 것은 수원에 있는 후배 목사가 물고기 잡는데 취미가 많아서 그는 시간만 나면 인근에 나아가서 물고기 잡는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 후배를 가리켜 예수님의 제자는 어부가 되어야 하는데 당신은 진짜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 껄껄 웃으며 언제든지 연락을 주고 오면 함께 물고기 잡으러 가자고 해서 연락을 하고 갔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가는 차안에서로 어릴 적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고 흥분한 아이들 같이 즐거움 그 자체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수원에 있는 ‘아름다운 교회’에 도착을 하고 반갑게 맞이하는 이들을 보면서, 이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중에 크게 부흥되기를 기도하면서 축복을 하였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후배목사가 앞장을 서서 차를 운전하고 우리 일행이 탄 차는 그 뒤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 앞차가 15인승 승합차인데 우리는 타지 말라고 하면서 그 목사 혼자만 타기에, 누가 매운탕을 끓여 주려고 우리만 가느냐고 물으니 그 후배 목사가 자기가 다한다고 하면서, 차 안을 보여주는데 차안에는 물고기를 잡는데 쓰이는 그물과 족대와 뜰채가 준비되어 있었고, 큰 생수병 여러 다발과 휴대용 가스 렌지와 부탄가스 통, 그리고 여러 가지 양념을 넣은 통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아마 그 후배는 이런 일을 많이 해 본 전문가 같아 보였습니다. 그 차의 인도함 따라 약 한시간정도 지방으로 내려가는데 알고 보니 용인 남사면이라는 곳의 개울가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옷들을 갈아입고 후배 목사가 준비한 모자들을 쓰고 개울가로 가서 본격적으로 고기를 잡기 시작하였는데, 물이 허리쯤 오르는 곳도 있고 얕은 곳도 있고 수초가 우거진 곳도 있어서 각자 자기 취향에 맞는 고기잡이 도구를 들고 들어갔습니다. 나는 족대를 들고 들어가서 고기를 잡는데 고기가 별로 잡히지 아니하고 잡힌다는 것이 아주 작은 붕어 같은 것만 잡혔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렇게 한동안 고기를 잡았으나 다른 이들도 그리 많은 고기를 잡지 못하고 수고만 하였는데, 그래도 후배 목사는 전문가답게 꽤 잡아서 우리 일행이 요리해 먹을 만큼은 잡게 되었습니다. 잡은 것을 모아 보는데 다른 이들은 큰 고기도 있는데 나는 모두 잔챙이 고기만 있기에 나는 유아반 전도사라고 웃으면서 말을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개울 옆에 자리를 잡고 매운탕을 끓이면서 둘러 앉아 있는 모습들이 개구쟁이들 같아 보였습니다. 물에 옷이 젖고 넘어져 흙이 묻어 꾀죄죄한 모습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서 매운탕을 먹는 모습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푸근함이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집이나 식당에서 파는 것만큼 양념이나 재료가 들어 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맛있다고 하면서 남김없이 먹었습니다. 실제로 맛도 있었지만 아마도 사랑과 추억과 하나됨이 더 맛있었을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식사를 한 후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모두가 행복하고 즐겁고 이런 일이 어떤 분은 10여년 만에, 아니면 5년만이라고 하면서 웃고 즐기는 시간이었습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물속에서 넘어지고 그 모습을 보면서 웃고, 고기를 잡으면 잡았다고 소리 지르고, 서로를 보면서 즐거워함이 쉬운 것 같으나 지금 우리 시대에는 그렇지 않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더우기 목사들도 마음을 터놓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서 하나가 된다는 것 또한 힘든 일입니다.&amp;nbsp;&amp;nbsp;어찌보면 한 길을 가는 동역자라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갈등도 존재하고 시샘도 있고, 잘났다고 여기는 교만도 있고, 자신을 들어 내지 않으려는 은폐함도 있고, 누가 더 성장하는가라는 경쟁심도 있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먼데 있는 이들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이들이 힘든 관계가 되는 것이 비일비재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예수님이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아야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이런 경우도 포함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서로가 이런 저런 가식과 허영과 욕망이라는 누더기를 걸치고 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이 시대와 목회자들에게 이런 시간을 가져본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예수님의 제자들이 서로가 다툰 것은 누가 큰 자인가란 문제였습니다. 내가 제일 먼저 예수님을 만났으니 내가 큰 자라고 하기도 하고, 우리는 형제가 제자이니 우리가 큰 자라 하기도 하고, 나는 좋은 가문에서 좋은 교육을 받았으니 큰 자라고 하기도 하고, 또는 내가 말을 잘 하니 큰 자라 하기도 하고, 혹은 힘이 제일 세니 큰 자라고 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하지만 큰 자는 그런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라야 하고 낮아진 자가 높은 자라고 하셨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그러나 제자들은 그 의미를 예수님이 떠나신 후 약속한 성령을 받은 후에 알게 됩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오늘의 우리 시대는 참으로 삭막한 세상이며 그 속에 존재하는 교회들도 삭막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잘났다는 소리와 크다는 소리는 많은데 작은 자요 섬김의 사람이라는 이들은 적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나는 이번 물고기를 잡는 철렵에서 모두 옷을 벗어 버리고 흙탕물 속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이들을 보며, 천국은 이런 이들에게, 그리고 이곳에 있음일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우리가 그리는 작은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언제 벌거숭이 된 어린아이로 돌아갈까? 언제 아무 욕심도 없이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웃음들이 우리를 행복감에 젖게 할까?&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amp;nbsp;이럴 때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노랫말이 귀에 스쳐 갑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quot;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는&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짚 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 섶 이슬에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함초롬 휘적시던 곳&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quo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
&lt;P class=바탕글&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또 다른 민주주의</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dreamofjoel/18334673"/>
		<id>tag:blog.daum.net,2009:dreamofjoel.18334673</id>
	    <author>
		    <name>yoel</name>
	    </author>
	    <updated>2009-07-25T17:19:41Z</updated>
	    <published>2009-07-25T17:19:41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StartFragmen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 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20pt&quot;&gt;또 다른 민주주의&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우리가 사는 시대는 모든면에서 발전되고 문명화되고 인간의 권리가 보장되어지는 완벽하지 않지만 최선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더욱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자유라는 것을 과거 어떤 경우보다도 마음껏 누리면서 살고 있는 국가이며, 세계적으로도 교육열이 높고 각종 지식산업에서 첨단을 가고 있는 곳도 대한민국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의 시대가 마치 폭력에 도취된 나라같다고 여겨짐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즉 이상한 나라에 와 살고 있는 느낌입니다. 투쟁하는 용사들만이 날뛰고 상대방을 향한 증오의 말들이 난무하고, 살상 무기들이 공공연하게 사용되어짐에도 불구하고 방관자 또는 옹호자들이 늘어나고, 자신들의 의견만이 진리라고 여기며 격투기 선수 흉내를 내는 이들이 가득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는 언제나 인간이라면 부패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에 완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제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즉 인간이 사는 세상에는 어떤 제도나 체제나 사상이나 학문이나 옳다고 여기는 주장이나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고 여기는 극단적인 싸움에서도 분명히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로인하여 각종 부패와 타락과 싸움이 이어지는 것이지만 그래도 서로가 계약에 의한 사회가 존재한다면 그 계약을 존중해야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우리가 사는 나라는 여러 민주주의 체제가 있지만 그래도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고는 그 계약을 기반으로 출발을 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민주주의란 몇가지 유형을 갖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첫째는 정치적 의사결정권이 다수지배의 원칙에 따라 전체 시민에 의하여 행사되는 통치형태로서 흔히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직접 민주주의&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라고 알려져 있는 체제입니다. 이 민주주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들 도시국가에서는 전체 시민이 직접 입법부를 구성했는데, 인구수가 1만 명을 넘지 않고 여성과 노예들의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이였는데, 모든 시민들에게는 각종 행정·사법기구에서 활동할 자격이 부여되어 있었으며 일부는 선출되고 일부는 추첨에 의하여 공직에 취임했습니다. 권력분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고, 모든 공직자는 행정·사법·입법권을 총괄하는 민회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역사적으로 볼 때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으며, 도시국가의 붕괴로 인하여 과거에 존재한 체제로 현대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둘째는 정치적 의사결정권이 일반 시민들이 선출하고 일반 시민들에 대해 책임을 지는 대표자들에 의해서 행사되는 이른바 '대의제 민주주의'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대의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대부분의 정부 정책에 대해 직접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대표자를 선출하여 정부나 의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대신하기 때문에 대의 민주주의라 불리는 것입니다. 대표자들은 전적으로 유권자들에 의해서 선출되거나, 특별한 부분집합(통상 지역적으로 또는 선거구)을 대표하여 선출되거나 또는 그 둘을 절충한 형태로 선출되게 되는데, 대부분의 대의민주주의는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선출된 자에게 권한을 위임하여 유권자들의 뜻이 반영되도록 정부나 의회에서 활동할 권리는 주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셋째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반 요소와 더불어 국민들이 언론· 출판· 종교의 자유와 같은 기본적인 인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헌법상의 제한이 마련되고 있는 자유주의적·입헌주의적 민주주의 체제입니다. 자유 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 Liberal democracy)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정치원리 또는 정부형태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을 세우고 민주적 절차 아래 다수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이 법치주의의 틀 내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체제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헌법은 기본권, 법 앞에서의 평등, 재산권, 사생활 보호권, 적법절차의 원리,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을 보장합니다.. 민주적인 선거 절차와 의회 제도를 갖춤으로써 다수가 그 정치적 의사를 실현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한편, 핵심적인 권리의 헌법적 보장을 통하여 다수의 횡포에 의해 소수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제어하는 정치 체제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래리 다이아몬드(Larry Diamond) 교수는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와 입헌적 자유주의의 결합으로 보면서 11가지의 요소를 들고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 선거의 결과가 불확실하고 반대표도 상당하며 헌법 원리를 부정하는 정치적 세력은 정당의 설립과 선거의 참여가 부정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2. 군을 비롯하여 민주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기관은 선거에 의해 선출된 기관에 복종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3. 시민은 자유롭게 만들고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하고 독자적인 결사와 같이 그들을 표현하고 대표하는 여러 경로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4. 개개인에게 실질적인 신념의 자유, 의견의 자유, 토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청원의 자유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5.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독립된 언론과 같이 정보를 구득할 수 있는 여러 경로가 있어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6. 행정권력은 독립된 사법부, 의회, 다른 공적 기관 등에 의하여 견제되어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7. 시민의 자유는 독립되고 평등한 법적용을 하는 사법부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사법부의 결정은 존중받고 공권력에 의하여 강제될 수 있어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8. 시민은 법 앞에 정치적으로 평등하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9. 소수자는 억압받지 아니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0. 법의 지배 원리는 시민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11. 헌법의 최고규범성이 보장되어야 한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기 때문에 프리덤 하우스는 자유민주주의를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대의 민주주의로 정의하기도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넷째는 사유재산의 불공정한 분배에서 파생하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최소화시키는 데 촛점을 맞춘 정치적·사회적 체제로서의 민주주의로서, 이 유형의 경우는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라고 알려져 있지만, 위의 3가지 유형이 갖고 있는 의미의 민주주의 원칙은 배제되어 있습니다. 간혹 공산주의를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말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으나, 공산당 일당독재의 공산주의 국가들도 독일민주공화국(옛날 동독),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처럼, 나라 이름에 민주주의라는 말을 넣음으로써 스스로를 민주국가로 규정하거나 표현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지만 공산국가에서는 명백하게, 민주 집중제와 전위 정당의 지도 원리에 따르는 집권 공산당의 구성원 또는 그 일부에게 정치권력을 부여합니다. 그들은 생산수단의 공유가 인민의 의지 관철에 충분한 전제조건이 된다고 보았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위의 경우에서 보듯이 우리나라가 취하고 있는 정치적인 체제는 자유민주주의로서,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는 &quot;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준다 함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ㆍ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의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서 구체적으로는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의 내부체제를 파괴ㆍ변혁시키려는 것&quot;이라고 정의하므로서 분명한 국가의 체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독일연방 헌법재판소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Freiheitliche demokratische Grundordnung)’를 &quot;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그때의 다수의 의사와 자유 및 평등에 의거한 국민의 자기결정을 토대로 하는 법치국가적 통치질서&quot;라고 규정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러므로 우리가 선택한 민주주의는 의사 결정시 (통상 시민권을 가진) 모두 또는 대다수에게 열려 있는 선거 또는 국민투표 등의 방법을 통하여 전체적인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사상 또는 정치 체제이며, ‘국민(國民)이 주권(主權)을 행사하는 사상이나 체제’라고도 표현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같은 사상과 정치체제는 인류가 이루어 낸 모든 것에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서, 우리나라 국민은 마땅히 이 제도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 체제안에서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대표자를 선출하고 국가라는 틀 안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자신들의 뜻을 반영하고자 세금을 내고 스스로 법질서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부는 제약을 받는 것을 동의한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여기서 중요한 것은 선출된 대표자는 국민들이 선택한 것이라는 분명한 인식이며, 그러하기에 선출된 자는 그들을 위하여 모든 권한을 사용하여야 하고, 질서를 따라서 모두에게 공유되는 자유를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물론 민주주의가 모든 것에서부터 완전함이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는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절대로 모두에게 완전함이 아니라 최선의 선택이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에게는 이 민주주의가 틀렸다거나 모순이 있다거나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도 인정하여야 하지만 그 틀을 깨는 권한은 일부에게가 아닌 모든 국민들의 선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런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우리는 극단적인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과 틀린 것을 보면, 상대방을 적대시하면서 싸워서 굴복하여야 할 상대로 여기는 폭력적 사고방식과 행동들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자신에게 고통이 따르는 것에 저항하는 것은 누구나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그 것을 위하여 사회 또는 국가의 질서를 깬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생명이건 생명을 앗아갈 정도의 폭력과 투쟁은 정당화 되어서는 안되며, 그것을 조장하거나 부추기는 이들은 민주주의 국민으로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더욱이 국민들의 대표로 선출된 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향하여 투쟁하는 모습은 근본이 잘못 된 것입니다. 상대방을 향하여 전투하듯이 돌진하면서 무너뜨리는 것이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는 예수가 태어날 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상황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 상황은 억압과 슬픔과 아픔들의 시간들이었는데, 유대인들이 바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능력있는 다윗과 같은 왕이었습니다. 그가 오면 즉 메시야가 오면 우리는 다시 힘을 얻고 국가를 회복하고 이방민족들 위에 군림할 것을 꿈꾸었던 시대입니다. 즉 정치적인 메시야였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하지만 예수는 그런 메시야로의 삶을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으로 살아가는 체제를 가르치셨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수 있고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성경적이고 예수적인 삶을 적용하는 체제를 말한다면 공동체적인 체제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성경에서 하나님이 분명하게 제시하는 인간들이 사는 체제는 공동체라는 인식을 우선시 하면서, 나 혼자만의 사회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살리는 체제를 강조하셨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중요한 사상은 ‘고엘제도‘(본인이 쓴 논문임)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어떤 주장이나 상황이나 이익관계나 체제나 사상보다도 먼저 우리라는 공동체를 중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 공동체가 무너지면 곧 내가 무너짐이며, 공동체가 위협을 받는 것은 나와 가족이 받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공동체가 유지되는 근간은 공동의 목표입니다. 그 목표라는 것은 우리는 하나라는 의식으로서 이것이 발전되어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으로 변질되기도 했지만, 하나라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또 나나 너나 연결된 운명으로 내가 무너지면 네가 무너지고 네가 무너지면 내가 무너진다고 하는 연대감입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또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모든 재능이나 소유는 본질적으로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청지기 사상입니다. 즉 살아 있는 동안에 나에게 맡기신 위탁물로서 언제가 하나님에게 반납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이라는 원칙아래서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리고 모든 판단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와 하나님에게 맡긴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생명은 이어지는 것으로서 결코 생명의 대가 끊기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그것을 당연히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며, 약자들을 향한 배려와 베풂이 근간을 이루는 체제가 성경적인 모습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는 경제학자나 정치학자가 아니기에 아직은 분명한 제시를 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사는 문제들을 공동체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신약에서는 바울사도가 설명하는 공동체적인 사상은 몸과 지체라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즉 우리는 모두가 몸에 붙어 있는 지체라고 하는 것으로서 몸의 한 부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 지거나 혹은 보여 지지 않는 모든 지체들이 연합하여서 한 몸을 이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지체로서 죽으면 다른 지체도 죽고, 다른 지체가 죽으면 내가 죽는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같은 사상이 정치체계 속으로 또는 경제체계 속으로 들어간다면 다른 이들이 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지체로 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도식적인 민주주의 체계가 옳다고 하더라도 그 근간에 사랑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없다면 그 사회는 메마르고 투쟁하고 증오하고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것을 지금의 사회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에 독재가 성행할 때 민주화가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행복의 나라가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결과는 더 큰 증오와 다툼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왜 민주화가 되었다면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하다 해야 하는데, 불평과 다툼이 만연합니까? 사회가 발전하고 물질적인 풍요함이 넘쳐나도 하나가 되지 못함이 무엇인가 한다면 우리 속에 가장 중요한 사랑이라는 공동체적 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무너져야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힘을 잡아야만 모든 것이 평안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권력투쟁은 바뀌고 또 바뀌어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인간이 만든 어떤 체제로도 모두가 만족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랑이 결여된 까닭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자신의 지역적인 사랑을 강조하면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미워하고, 자신의 사상이라는 테두리는 사랑하면서 다른 사상의 존재를 부인하고, 자신의 배부름을 통하여 만족하면서 다른 이들의 배고픔을 등한시 여기고,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서 온갖 힘을 기울이면서 남의 기득권은 철저히 부수어 버려야 하는 곳에서 참된 평화가 존재하지 못합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베풂과 사랑의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조금만 눈을 넓히면 사랑해야 하고 사랑을 주어야 하고 사랑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자신을 조금만 비우면, 자신을 조금만 낮추면, 그리고 자신이 조금만 희생하면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욕망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소망이 없습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공동체를 향하여, 공동체원들을 향하여 손을 내밀어 주는 사회를 건설하여야 하고, 받는 자 보다 주는 자가 복 있다는 성경말씀과 같이 서로가 베풀기 원한다면 우리 사회는 행복이라는 말을 써도 될 것입니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MARGIN-BOTTOM: 1.6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나는 감히 새로운 민주주의 대안으로서 사랑의 민주주의 혹은 베풂의 민주주의 또는 공동체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혼자서 써 봅니다.&lt;/SPAN&gt;&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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