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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진형의 세상 들여다보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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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조진형</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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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8-30T17:36:1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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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연극 &lt;수업&gt;을 보고 느낀 '소통 불능'</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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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조진형</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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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08-30T17:36:19Z</updated>
	    <published>2009-08-30T17:36:1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어제 여자친구와 함께 대학로에서 연극 &lt;수업&gt;을 보게 되었다.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배웠던 외젠 이오네스크의 작품이었는데, 인간의 소통 불능에 대한 왜곡과 그로 인한 폭력의 필연적 발생에 대해 심도있게 다룬 작품이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이가 아프다'며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과 이를 무시하며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 서로의 바람과 표현방식이 다르기에 마찰은 끝이 날 수가 없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우리 현실의 폐해이기도 하다.&amp;nbsp;좁게 보면 가족 내 인간관계의 마찰,&amp;nbsp;넓게 보면 노조 충돌이라는 사회적 문제까지… 예를 들어&amp;nbsp;얼마나 많은 사주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이해해주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주려고 할까? 자본주의자의 입장에선, 회사의 피해를 줄이고 적절한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 규모를 줄이는 것이 그들의 살 길이라 할 수 있겠다. 회사는 꾸준한, 그리고 적정한 이윤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서 노조의 아픔이 보이기는 할까? 연극에서도 마찬가지로 수시로 치통(&quot;I have a toothache&quot;)을 호소하는 학생의 고통을-의도적인 지 아닌 지-외면하며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의 입장에선 그저 얼른 수업을 마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그것이 교수 나름의&amp;nbsp;성찰 방식인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서로를 이해하려는 진심과 배려가 결여되고 자신의 입장만 관철시킨다면, 결국 &lt;수업&gt;의 언어학적 폐해는 비단 무대 위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외젠 이오네스크는 이런 부분을 작품에서 의도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끊임없는 왜곡과 충돌은 결국 폭력으로 마무리되며, 이러한 사태는 너무나도 흡사하게 현실 속에서 종종 목격되곤 한다. 사소하든, 아니든,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의 고통이 무엇이고 내 표현방식이 행여나 소통의 문제는 일으키지는 않을지 진심으로 성찰해보아야 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3.uf.daum.net/image/110F640E4A9A392170ECE3&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23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23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연극은 내가 읽었던 각본과 크게 차이가 있었다. 한국 관객의 입맛에 맞추기 위함이었는 지, 곳곳에 성적 유머와 폭언이 발견되었던 것 같다.&amp;nbsp;때문에 간간이&amp;nbsp;공연의 작품성이 떨어지는 느낌도 나곤 했다. 결과적으로도&amp;nbsp;외젠 이오네스크가 다루고자 했던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듯도 했다. 물론 각본에서처럼 반복적으로 엇갈리는 언어학적 '말장난'을 몸동작으로의 승화를 통해 작품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싼 값'으로 예술작품의 진면모를 보기는 역시 힘들었던 것 같다. (참고로 연극 티켓값은 단돈 만원.) 무대 디자인도 그렇고, 의상이나 연출에 그다지 공을 들인 것 같지는 않았다. 너무도 티가 나는 메이크업에 남루하다 못해 성의가 부족해보이는 무대 장치들. 그러나 이런 열악한 환경을 차치해서라도 작품을 즐기고 싶다면 굳이 말리진 않는다. &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수업&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수업&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외젠 이오네스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외젠 이오네스크&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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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당분간 블로그활동을 중단합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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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12-03T23:44:10Z</updated>
	    <published>2008-12-03T23:44:1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스스로의 미련함을 깨닫고 블로그활동을 당분간 중단합니다. 어차피 앞으로 블로그할 시간도 없지만, &lt;/P&gt;
&lt;P&gt;무엇보다 뭘 모르고 쓰는 것보다 그냥 쓰지 않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제까지 썼던 글들을 되돌아보았습니다.&amp;nbsp;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면.. 내 글의 요지가 단순하고 요점이 없어도&amp;nbsp;방향 자체가 시대의 주류와 비슷하게 돌아가면 칭찬을 받는다는 것이죠.&amp;nbsp;예를 들어보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에서는&amp;nbsp;그에게 아무리 &quot;부족한&quot; 논거의 비판을 날려도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곤 글쓴이인 나를 철저히&amp;nbsp;영웅화시키지요.&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면 난 마치 내 글이 잘 쓴 줄 알고 이해하다가 나중에 '악플'을 받을 때면 그게 이유 없는 질타인 줄로 착각을 해왔습니다.&amp;nbsp;이것은 병이고 죄악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실 이제까지 내 주변인 중 그 누구도 내 글에 대한 비판을 해준 적이 없습니다. 그저 &quot;글 좀 쓰네?&quot; 이 정도의 표면적인 칭찬을 해준 것이죠. (물론 그런 마음에 대해 감사하지만..) 하지만 결국 그것이 내 콧대를 세워주고 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수많은 지인들의 칭찬 백마디보다 모르는 이들의 정곡을 찌르는 질타가 나에겐 쓴 약이 됩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혹자의 말이 맞습니다. 필력과 문장력이 되면 차라리 소설가가 되야 합니다. 아니, 어쩌면 풍부한 경험과 시야를 확보해야 하는 소설가에 근처도 못 갈 수도 있지요. 그저 글 나부랭이로 전락할 것입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줏대, 기준, 객관성 없이 난 정체없는 붕 뜬 섬이 될 것이고 내 사고의식은 꼬인 상태에서 굳어버릴 것입니다. 이제까지 내가 쓴 글을 돌이켜보면 상당수가 편협했고 내 경험이 전부인양 온갖 시사적 이슈 안에 쑤셔 집어넣느라 노력했습니다. 정말 헛고생 많았습니다.&amp;nbsp;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당분간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도 글을 안 쓰고 공부를 할 생각입니다.&amp;nbsp;특히 모자란 부분에 있어 책을 읽을 필요성을 느낍니다. 최근들어&amp;nbsp;많은 걸 배웠습니다. &quot;바닥까지 내려갔으니 이제 올라갈 시간이 아닌가?&quot; 라는 생각도 들고요. 나의 부족함을 아는 것, 이것은 언론인을 꿈꾸는 나에게 터닝포인트이자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반성, 반성, 또 반성....&lt;/P&gt;
&lt;P&gt;결국 웃고 있을 그 날을 기다리며..&lt;/P&gt;
&lt;P&gt;&lt;STRONG&gt;&lt;/STRONG&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블로그는 다시 돌아온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블로그는 다시 돌아온다&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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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캐나다외교정책'에서 썼던 정책 페이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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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12-01T02:49:14Z</updated>
	    <published>2008-12-01T02:49:1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align=left&gt;&lt;FONT face=Tahoma size=2&gt;&lt;STRONG&gt;Jinhyung Cho (Eric)&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STRONG&gt;&lt;FONT face=Tahoma size=2&gt;Poli363A 2007/8 Winter 2nd term&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left&gt;&lt;STRONG&gt;&lt;FONT face=Tahoma size=2&gt;Canadian Foreign Policy&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left&gt;&lt;STRONG&gt;&lt;FONT face=Tahoma size=2&gt;Instructor: Allen Sens&lt;/FONT&gt;&lt;/STRONG&gt;&lt;/P&gt;
&lt;P align=left&gt;&lt;STRONG&gt;&lt;FONT face=Tahoma size=2&gt;&lt;/FONT&gt;&lt;/STRONG&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face=Tahoma size=2&gt;&lt;STRONG&gt;&lt;/STRONG&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face=Tahoma size=2&gt;&lt;STRONG&gt;&lt;/STRONG&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face=Tahoma size=2&gt;&lt;STRONG&gt;Canada should withdraw the combat forces only on the condition that ANA is fully prepared&lt;/STRONG&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FONT face=Tahoma size=2&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face=Tahoma size=2&g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FONT face=Tahoma size=2&gt;Security against terrorism has emerged as a hot potato since Al-Qaeda's attack on the World Trade Centre in the United States on Sep.11, 2001. In order for Canada to eliminate any&amp;nbsp; sources that would pose future threat to global security, the appropriate action in Afghanistan, which was known to be the operational base of Al-Qaeda, had to be taken. After the fall of Taliban regime, however, how Canada should operate the activity in Kandahar is on debate. Thus, Foreign Affairs and International Trade Canada has prepared the following paper in order to stimulate discussion of how best to move forward in context of&amp;nbsp;Canada's military activity in Afghanistan. This paper recommends that Canadian military&amp;nbsp;force should extend its mandate up to 2011 and withdraw forces only on the condition that&amp;nbsp; ANA is prepared for running the nation's security. Also, Ottawa should consider the military personals be composed of combat soldiers and trainers together, not the trainers only.&lt;BR&gt;&lt;BR&gt;&lt;STRONG&gt;&quot;The territory of Afghanistan be never used as an operational base for Al- Qaeda again&quot;&lt;/STRONG&gt;&lt;BR&gt;&lt;BR&gt;Canada's commitment to Afghanistan initiated in its response to the terrorist attack on WTC in the United States on Sep.11, 2001. The attack on WTC was believed to be proposed by the&lt;BR&gt;Al-Qaeda organization which controlled Taliban regime as a base of operation [in Afganistan].[1] In order to prevent further ongoing attacks from Al-Qaeda, there was a need to take a pre-emptive action and root out the terrorist forces in Afghanistan. Canada, along with its allies including US and NATO, fully committed to the war against terrorism. Remarkably, in order to establish firm security, it is important that the territory of Afghanistanshould never be used again as an operational base for Al-Qaeda and its supporter, Taliban. Only through rebuilding and reconstructing the state, Afghanistan would be no more accusedof being affiliated with terrorists.&lt;BR&gt;&lt;BR&gt;Furthermore, Canada's mission in Kandahar bears particular significance in two ways.&lt;BR&gt;&lt;BR&gt;First, the mission proves Canada's commitment to NATO, demonstrating it's healthy partnership with its members. For Canadian foreign policy, multilateralism has been major conditions. For instance, Canada was committed not to support near- unilateral intervention of US in Iraq since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failed to pass a resolution authorizing military intervention.[2] In this way, Canada has maintained its full commitment tomultilateralism since the Korean War. The military and construction activity in Kandahar would not only prove its healthy partnership with NATO members, but also give the opportunity for Canada to have a strong voice in the matter.&lt;BR&gt;&lt;BR&gt;Second, the participation in Afghanistan activity was an opportunity for Ottawa to recover the relationship with Washington. The relationship between Canada and the United States has&lt;BR&gt;been fragile over past years. For instance, despite his favor of Canadian participation in BMD, Martin rejected the American invitation to join the Ballistic Missile Defense (BMD) scheme&lt;BR&gt;because of the anti-American sentiment in his caucus and the strong anti- BMD attitudes among his Quebec MPs.[3] Also, Martin, in the 2004 and 2006 election, scored political points&lt;BR&gt;by publicly excoriating the Bush administration for its stance on the Kyoto Accords. [4]&amp;nbsp;Although there two events demonstrate the unstable relationship between two states, however, Canada's consistent cooperation with US on the activity in Afghanistan has been consistently remained. It was evidenced when Martin announced a 5,000-person increase in the size of the CF, and embraced a more robust mission with the U.S.-led Operation Enduring Freedom in Afghanistan in 2005.[5] Following to that, Harper's decision to continue the mission provided strong support to the United States.&lt;BR&gt;&lt;BR&gt;Before embarking upon an analysis of the options, we will briefly examine the general feature of the issue.&lt;BR&gt;&lt;BR&gt;&lt;STRONG&gt;The need for recovery in Afghanistan after the fall of Taliban regime&lt;/STRONG&gt;&lt;BR&gt;&lt;BR&gt;In counter to the 9/11 terrorist attack on the World Trade Centre in 2001, Canada and its NATO allies, led by the United States, succeeded in throwing down Taliban government, who supported Al-Qaeda by providing an operational base. However, since the fall of Taliban in 2001, the security in Afghanistan has been at risk. Under Taliban regime, disorder and extremism without stable security created an environment where the Taliban insurgency could regroup, and increase its small attacks towards civilians and ISAF forces. Certainly, simply throwing over the terrorist-affiliated regime would not necessarily mean that security was ensured. In order to completely root out any potential threats in the nation, there had to be a sufficient number of forces from the allies, especially from the NATO/ISAF counterinsurgency forces.&lt;BR&gt;&lt;BR&gt;&lt;STRONG&gt;Canada's giving up its combat role and experience of NATO's lack of cooperation&lt;/STRONG&gt;&lt;BR&gt;&lt;BR&gt;Canada has been devoting its military and economic aids to Afghanistan, in Kabul and then Kandahar. In September 2006, the Canadian Forces led ISAF's Operation Medusa, made a major offensive against insurgents in Kandahar province. Since then, the casualty of Canadians [seemed] to be declined.[6] However, the insurgency regained some ground. Janice Stein and Eugene Lang, in their book The Unexpected War, describe the situation in following way:&lt;BR&gt;&lt;BR&gt;&lt;EM&gt;In 2006, suicide bombings more than quintupled, from 27 a year earlier to 139; roadside explosions more than doubled from 783 to 1,677; and direct attacks nearly tripled from 1,558 to 4,552. Thirty-six Canadian soldiers and one diplomat died that year...In the half of 2007, another 22 Canadian soldiers were killed...They [Taliban] attacked more widely in much smaller groups.[7]&lt;/EM&gt;&lt;BR&gt;&lt;BR&gt;According to the description, the rate of a number of Canadian soldiers killed accelerated in 2007. In response to these, there has been active dispute over whether to extend the mandate&lt;BR&gt;beyond 2010 as set by the Afghanistan Compact.&lt;BR&gt;&lt;BR&gt;On Feb.25 2008, the debate began in the House of Commons whether to extend the military mission to southern Afghanistan from 2009 to 2011 and to change the objective of the mission from combat to training ANA and providing security for reconstruction.[8] Further, the partnership with NATO was questioned due to the members' lack of cooperation with sending troops. The insufficiency of the number of troops and fragmented coordination among NATO make ISAF vulnerable to insurgent attack and destabilization. The poll revealed that in July 2007, 58% of Canadians thought the country is shouldering too much of the burden of NATO's mission in Afghanistan, and in January 2008, the number rose to 76%.[9]&lt;BR&gt;&lt;BR&gt;In the following sections, one policy recommendation and 2 additional policy alternatives will be presented. They will be analyzed in order to stimulate the discussion of how the government can best act in context of the situation.&lt;BR&gt;&lt;BR&gt;&lt;BR&gt;&lt;STRONG&gt;[Policy option 1]&lt;/STRONG&gt;&lt;BR&gt;&lt;BR&gt;Canadian military force should extend its mandate up to 2011, but withdraw forces only on the condition that ANA is prepared for the nation's own security by that time. Also, Canada should constantly provide the combat soldiers and training Afghan soldiers together, not the trainers only. Here, the point is not determining &quot;when&quot; to withdraw, but ensuring that ANA is able to secure Kandahar alone. Simply setting the timeline to withdraw forces would never guarantee ANA's military capacity.&lt;BR&gt;&lt;BR&gt;Since August 2006, the number of ANA increased from 300 in August 2006 to 2900 in February 2008 in Kandahar province.[10] This growth significantly added to the targeted strength of 70,000 in Feb. 2008. However, despite the remarkable growth, the increasing insurgencies such as roadside bomb attacks made the targeted strength of ANA short of supply. Recently, the Afghan government's defense ministry spokesman, Zahir Azimi revealed that at least 200,000 ANA is need to in order to overcome the threats from insurgencies and the projected strength of 70,000 will not be enough.[11]&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FONT face=Tahoma size=2&gt;&lt;BR&gt;&amp;nbsp;&lt;/P&gt;&lt;/FONT&gt;
&lt;P align=left&gt;&lt;FONT face=Tahoma&gt;&lt;FONT size=2&gt;&amp;nbsp;The insufficient number of forces is not only the problem that causes the instability in Kandahar. For instance, not only for bomb attacks on ISAF, the Taliban is now even taking advantage of a weak government, of a corrupt police force, dire poverty to recruit the dislocated, frustrated villagers as foot soldiers of the Taliban.[12] This proves that failing to ensure security in Kandahar would shift instability to the even governance level. Certainly, despite the growth of ANA, security would not be achieved because the frustrated situation in Kandahar now. Therefore, in order to stop the worsening situation, security should be ensured, and to ANA, the cooperation with the ISAF combat forces is essential to fight insurgencies. Thus, Canada should maintain the combat role in Kandahar and consider increasing the number of its troops in the region. Until ANA is fully prepared to fight insurgencies, Canada should supply more combat soldiers.&lt;BR&gt;&lt;BR&gt;More than that, Canada's withdrawal with ANA unprepared means that it would pass its responsibility to the United States, virtually speaking. The United States would take more proportionate burden without Canada, and Canada would lose confidence from its ally across the border. Since the activity in Afghanistan remained as a cornerstone for rebuilding the relationship with the United States, Canada should consistently devote to the activity.&lt;BR&gt;&lt;BR&gt;&lt;STRONG&gt;[Policy option 2]&lt;/STRONG&gt;&lt;BR&gt;&lt;BR&gt;Canada should focus on development and governance while ask other NATO members to take care of combat role in Kandahar. This option suggests that from now on, other NATO members should take care of security in Kandahar. Instead, Canada will focus more on development and governance. However, in&lt;BR&gt;reality, this option is undesirable due to the largely fragmented and uncoordinated nature of ISAF forces. For instance, there are numerous caveats on ISAF members' decision due to lack of effective control. For instance, some NATO states prohibit night fighting and refuse to authorize helicopter flight because it would let pilots to combats [while others do not].[13] Also, the readiness of ISAF troops is under suspicion. For instance, during Afghanistan operation in 2004, there were more than 2 million soldiers in NATO [including Canada] countries, compared to about half that in the United States. Yet, only less than 200,000 of 2million ISAF soldiers were readily deployable [to commit to operation].[14] This fact proves that even if NATO decides to send ISAF forces, the weak integration of diplomatic, military means and controls would cause the operation to inefficient. Thus, the situation would become worse than if Canada committed to the region alone.&lt;BR&gt;&lt;BR&gt;More than that, this option assumes that if ISAF members accept the combat role in Kandahar, the number of ISAF troops in the original region will be reduced; consequently, their&lt;BR&gt;originally assigned regions would be put at risk. Even if NATO members decide to send extra troops to Kandahar, they would still need time to learn about Kandahar while Canada&lt;BR&gt;is already well accustomed to the region.&lt;BR&gt;&lt;BR&gt;Therefore, not only for the fragility but also the unwillingness of ISAF make this option inapplicable. Clearly speaking, relying on other NATO members for security in Kandahar is unrealistic and thus, any attempts to pass over the responsibility for security to NATO would only make Canada irresponsible.&lt;BR&gt;&lt;BR&gt;&lt;STRONG&gt;[Policy option 3]&lt;/STRONG&gt;&lt;/FONT&gt;&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BR&gt;&lt;FONT face=Tahoma size=2&gt;&amp;nbsp;Canada should only focus on Kandahar's security while let NATO members to take care of governance. This option suggests that Canada should devote resources only on the security while let other countries to take care of development and governance in Kandahar. As mentioned in the policy option 1, concentrating on security does not mean that Canada should give up its responsibility for governance and development in Kandahar. Canada should try to understand the critical link between security, development and governance in Kandahar and take appropriate action. It can be done by following Axworthy's remark. Axworthy once argued that human needs were more paramount than state needs, and the preservation of human security can be achieved through the security against economic privation and a guarantee of fundamental human rights.[15] Undoubtedly, we should learn the lesson from his remark and apply it to the situation in Kandahar. The Taliban has attempted to detach the local people from the legal economy and weaken the governments at province and district level.[16] Here, it is evident that Afghan people are under the economic privation and their right is unprotected under weakened administrating ability of the government. Thus, by sticking to Axworthy's remark, only by providing security, the proper governance will be preserved, which, in turn, will protect the rights of people. Clearly speaking, the same degree of importance should be given to security and governance. In practice, in order to eliminate those threats from Taliban, ANA, and ANP must work closely, especially with the help from ISAF forces. This means that ISAF, including Canadian forces, must present comprehensive activity in Afghanistan until ANA and ANP are fully prepared for bringing the stable security and governance.&lt;BR&gt;&lt;BR&gt;&lt;BR&gt;Certainly, being lead in the south region of the most dangerous country in the world seems not very easy. However, Canada should keep in mind that what is the most important is not to&lt;BR&gt;calculate the timeline when to stop its mandate, but if the sacrifice Canada contribute can make difference. While contributing to Kandahar, the consistent cooperation with NATO is also vital. In fact, in the absence of NATO, there will be critical challenge to the &quot;process of regular political consultations in the North Atlantic Council; the extensive arrangements for multilateral cooperation in preparation for joint operations in and outside&lt;BR&gt;Europe; the infrastructure and basing options necessary to deal with future Middle Eastern crises; the framework for sharing military resources.&quot;[17] Only within the framework of NATO,&lt;BR&gt;Canada can intervene effectively in international matters, such as the peace-keeping operation in Kandahar and Palestine/Israel disputes. Thus, instead of questioning the existence of NATO, Canada and its members should study for more effective strategic control over ISAF forces. The failure to control the ISAF forces effectively does not necessarily mean that the presence of NATO is problematic. NATO should remain as a fundamental multilateral institution for Canada to wield its influences and speak out its voice.&lt;BR&gt;&lt;BR&gt;&lt;BR&gt;&lt;STRONG&gt;Bibliography&lt;/STRONG&gt;&lt;BR&gt;&lt;BR&gt;&amp;nbsp;Sean D. Murphy. Contemporary Practice of the United States Relating to International Law, Terrorist attacks on World Trade Center and Pentagon. The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Vol. 96, No. 1. (Jan., 2002), pp.237-255&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BR&gt;&lt;FONT face=Tahoma size=2&gt;&amp;nbsp;Srdjan Vucetic, Why did Canada sit out of the Iraq War? One constructivist analysis, Canadian Foreign Policy; 2006; 13,1; CBCA Reference. Pp.133-153&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BR&gt;&lt;FONT face=Tahoma size=2&gt;&amp;nbsp;Kim Richard Nossal, Defense Policy and the Atmospherics of Canada-U.S. Relations: The Case of the Harper Conservatives, The American Review of Canadian Sturdies; Spring 2007; 37, 1; CBCA Reference. Pp.23-34&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BR&gt;&lt;FONT face=Tahoma size=2&gt;&amp;nbsp;John Manley, &quot;Independent Panel on Canada's Future Role in Afghanistan&quot;, Global Issues Bureau, Foreign Affairs and International Trade in Canada, Ottawa.&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BR&gt;&lt;FONT face=Tahoma size=2&gt;&amp;nbsp;Janice Gross Stein and Eugene Lang, The Unexpected War: Canada in Kandahar (Toronto: Penguin Group, 2007)&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BR&gt;&lt;FONT face=Tahoma size=2&gt;&amp;nbsp;Angus Reid Strategies, &quot;Canadians Agree with Key Points in Manley Report on Afghan Mission&quot;, (Feb.2008, ) Angus Reid Global Monitor&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BR&gt;&lt;FONT face=Tahoma size=2&gt;&amp;nbsp;Ian Forbes, Minding the Gap, Foreign Policy, No.141. (Mar.-Apr.,2004), pp.76-77&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BR&gt;&lt;FONT face=Tahoma size=2&gt;&amp;nbsp;Axworthy, L (1997) Canada and human security: the need for leadership, International Journal, L11 (2), pp.183-196 IN Caroline Thomas, Global Governance, Development and Human Security: Exploring the Links, Third World Quarterly, Vol.22, No.2. (Apr., 2001), pp.159-175&lt;/FONT&gt;&lt;/P&gt;
&lt;P align=left&gt;&lt;BR&gt;&lt;FONT face=Tahoma size=2&gt;&amp;nbsp;Stanley R. Sloan, US Perspectives on NATO's Future, International Affairs (Roy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 1944-), Vol. 71, No. 2. (Apr., 1995), pg.217-231&lt;BR&gt;&lt;BR&gt;&quot;U.S. military urges Canada to maintain combat role&quot; The Globe and Mail, February 25 2008&lt;BR&gt;Afghanistan army to reach targeted strength by March&quot; Reuters, Dec.2 2007&lt;BR&gt;&lt;BR&gt;----------------------- [1] Sean D. Murphy. Contemporary Practice of the United States Relating to International Law, Terrorist attacks on World Trade Center and Pentagon. The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Vol. 96, No. 1. (Jan., 2002), pg.246 [2] Srdjan Vucetic, Why did Canada sit out of the Iraq War? One constructivist analysis, Canadian Foreign Policy; 2006; 13,1; CBCA Reference. Pg.133 [3] Kim Richard Nossal, Defense Policy and the Atmospherics of Canada-U.S. Relations: The Case of the Harper Conservatives, The American Review of Canadian Sturdies; Spring 2007; 37, 1; CBCA Reference. Pg.25 [4] Kim Richard Nossal, Defense Policy and the Atmospherics of Canada-U.S. Relations: The Case of the Harper Conservatives, The American Review of Canadian Sturdies; Spring 2007; 37, 1; CBCA Reference. Pg.26 [5] Kim Richard Nossal, Defense Policy and the Atmospherics of Canada-U.S. Relations: The Case of the Harper Conservatives, The American Review of Canadian Studies; Spring 2007; 37, 1; CBCA Reference. Pg.25 [6] John Manley, &quot;Independent Panel on Canada's Future Role in Afghanistan&quot;, Global Issues Bureau, Foreign Affairs and International Trade in Canada, Ottawa. Pg.26 [7] Janice Gross Stein and Eugene Lang, The Unexpected War: Canada in Kandahar (Toronto: Penguin Group, 2007),pg.287 [8] &quot;U.S. military urges Canada to maintain combat role&quot; The Globe and Mail, February 25 2008, pg.1 [9] Angus Reid Strategies, &quot;Canadians Agree with Key Points in Manley Report on Afghan Mission&quot;, Angus Reid Global Monitor, Feb.2008, pg.8 [10] John Manley, &quot;Independent Panel on Canada's Future Role in Afghanistan&quot;, Global Issues Bureau, Foreign Affairs and International Trade in Canada, Ottawa. Pg.24 [11] &quot;Afghanistan army to reach targeted strength by March&quot; Reuters, Dec.2 2007 [12] Janice Gross Stein and Eugene Lang, The Unexpected War: Canada in Kandahar (Toronto: Penguin Group, 2007),pg.213 [13] John Manley, &quot;Independent Panel on Canada's Future Role in Afghanistan&quot;, Global Issues Bureau, Foreign Affairs and International Trade in Canada, Ottawa. Pg.14 [14] Ian Forbes, Minding the Gap, Foreign Policy, No.141. (Mar.-Apr.,2004), pp.76 [15] Axworthy, L (1997) Canada and human security: the need for leadership, International Journal, L11 (2), pg. 184 IN Caroline Thomas, Global Governance, Development and Human Security: Exploring the Links, Third World Quarterly, Vol.22, No.2. (Apr., 2001), pg.161 [16] Janice Gross Stein and Eugene Lang, The Unexpected War: Canada in Kandahar (Toronto: Penguin Group, 2007),pg.217 [17] Stanley R. Sloan, US Perspectives on NATO's Future, International Affairs (Royal Institute of International Affairs 1944-), Vol. 71, No. 2. (Apr., 1995), pg.228 &lt;/FONT&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캐나다 강사, &quot;한국대학에 4학년 2학기는 없다&quo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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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11-28T22:08:25Z</updated>
	    <published>2008-11-28T22:08:2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주말이면 종종 만나 맥주도 마시며 회포를 푸는 캐나다 친구가 하나 있다. 나이는 나보다 조금 많지만, 모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며 한국문화를 배우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괜찮은 녀석이다. 한번은 둘이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대뜸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캐나다강사: 요즘 한국학생들에게 컴플레인이 많이 들어와. 학기말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 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캐나다강사: 아니, 내가 너무 취업시기에 딱 맞춰 강의를 하는 게 불만인 것 같아. 4학년 학생들 몇몇이 글쎄 수업시간에 면접을 보러 간다고 그걸 메꿔달라지 뭐야?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 그렇구나. 사실 한국대학의 풍토상 취업상황이 열악한 걸 알기에 교수님들이 조금씩 여유를 보여주는 게 아닐까? 너도 조금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캐나다강사: 아니, 그건 말도 안돼.(That makes no sense at all.) 수업은 수업이고, 취업은 취업이야. 나 또한 내 학생들이 좋은 기업에 취직하는 걸 왜 말리겠어? 그런데 이 친구들이 내 수업에 들어왔다는 건 뭐야? 그건 최소한 나와의 약속이라고. 더 나아가 나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존중이 아니겠어?&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01.uf.daum.net/image/12111C0849301C44023519&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400&quot; width=&quot;40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 그렇구나. 조금 구체적인 예가 있어? 가장 황당했던 경험이 있다면?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캐나다강사: 수업에 단 한번도 출석하지 않은 4학년 학생이 있었는데, 시험기간이 다가오니깐 정장 차림으로 오면서 취직하느라고 수업에 나타나지 못했다고 하더라고? 이 친구는 수업 반 이상 결석이었어. 그러더니 리포트와 시험은 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군. 그래서 내가 &quot;안돼, 넌 F를 받게 될 거야&quot;(No, you're auto-F.)라고 했더니, 마치 인생이 끝난 것처럼 표정을 짓더라고. 졸업에 제약을 받는 다면서 말이야. 마치 내가 그 사람 발목을 잡는 것처럼 여겨지니 참 씁쓸하더라고..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 그건 좀 심한 경우이긴 하지. 그래도 전반적으로 한국 학생들이 모두 그런 건 아니잖아?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캐나다강사: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진 않어. 하지만 내 학부조교가 귀띔을 해주는 바에 의하면, 그런 내 룰이 학생들에게 밉상으로 보이나봐. 다음 수업에는 몇 명이나 수강할 지 궁금하네. 내가 한국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국의 취업적 여건 때문인 지 몰라도 4학년이 들어선 대학생들이 취업에 민감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4학년을 캐나다에서 마치고 온 나, 그리고 그 캐나다강사가 경험한 것에 의하면, 미국과 캐나다 같은 사회에서는 아무리 취업이 힘들다 할지라도 '수업'과 '취업'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졸업하는 위치에서 타 학생과 마찬가지로-학년을 가리지 않고-모든 시험을 잘 마치고 왔다. 아니, 오히려 4학년이라서 학업에 대한 책임을 절실히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1~3학년에 비해 모범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지 몰라도 취업에 열중한 나머지 아직까지 '학생'이라는 신분에 대해 선을 분명히 긋지 못하는 한국의 교육사회는 어떤 모습인 것일까?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분명 한국과 캐나다는 이런 점과 관련해 큰 차이가 있고, 어느 문화가 더 낫다고 꼭 집어 말하기는 힘들다. 더 나아가 한국의 '막 학기'가 갖고 있는 이점 또한 있을 수 있다. 한국의 낮은&amp;nbsp;취업률과 이른 사회진출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의 특징상 '막 학기'가 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융통성'으로 인해 수많은 오해와 학업적 부진함이 생겨나기도 한다. 해외교수 영입과 교환학생 프로그램 등을 통해&amp;nbsp;세계적인 학업적&amp;nbsp;풍류와 맞닿들이게 될 상황에 직면했을 때,&amp;nbsp;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 또한 전혀 문제가 아닐 수는 없는 것이다. 캐나다강사의 경우가 좋은 예다.&amp;nbsp;'취업우선주의'가 팽배해져가는 한국의 교육사회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학업의 가치는 어느 정도 인지 의심이 들게 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이메일이나 미니홈피로도 알려주세요.&lt;/P&gt;
&lt;P&gt;이메일: &lt;A style=&quot;COLOR: #333333&quot; href=&quot;mailto:enish27@hanmail.net&quot; target=_blank&gt;enish27@hanmail.net&lt;/A&gt;&lt;/P&gt;
&lt;P&gt;미니홈피: &lt;A style=&quot;COLOR: #333333&quot; href=&quot;http://www.cyworld.com/enish27&quot; target=_blank&gt;www.cyworld.com/enish27&lt;/A&gt; &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타블로의 &lt;당신의 조각들&gt;이 시사하는 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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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11-20T16:37:53Z</updated>
	    <published>2008-11-20T16:37: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타블로의 &lt;당신의 조각들&gt;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각기 다른 개성의 에피소드 뒤에 숨어있다. 에피소드가 입고 있는 겉옷은 다르지만, 그 안에는 타블로의 격동적이고 한편으로는 외로운 스무 살이 숨겨져 있다. 책의 맨 처음 페이지에서 타블로는 이렇게 밝힌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quot;모두가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사다리 따위는 걷어차고 당신 옆에 남겠습니다.&quot;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이 말은 매 에피소드마다 되풀이된다. 타블로는 그저 상처받고 의기소침해져있는 영혼들에게 단순한 위로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다양한 유학 경험을 통해 겪어왔던 의사소통의 방식과 맥락을 통해 간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물론 몇몇 부분에는 타블로 본인도 넘어서지 못했던 문화적 장벽과 갓 스무 살로서의 그만의 부족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가 의도하고자 하는 것은, 비슷한 아픔을 겪었을 십대와 이십대 초반, 혹은 어렸을 때의 상처를 짊어지고 사는 수많은 장년층의 애로를 덜어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것은 해결책 제시도 아니다. 본인의 부족함을 털어놓음으로서 애써 상대적 위로를 느끼게 해주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같은 입장으로 이해하고 포용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서로가 서로를 안고, 무거운 짐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해결책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class=txc-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hspace=1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18/blog/2008/11/20/16/34/492512fed204d&quot; width=240 vspace=1 border=0 actualwidth=&quot;240&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20대에 갓 들어섰던 타블로가 짊어지었던 짐은 그래서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은 그래서 '이해소통의 장'으로 승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가족과의 마찰, 인종차별, 심지어는 일상에서의 스트레스 등을 펜대 하나로 독자들과 나누고, 혹은 그런 경험을 통한 상처를 '공유'하고 이해함으로서 타블로는 우리와 하나가 된다. &lt;당신의 조각들&gt;에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살펴보기로 하자.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안단테&gt;는 붕괴된 가족 간 애정이 되살아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조나단은 음악을 그만둔 아버지에 대한 불신으로 말미암아 그와의 소통을 점차 거부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손가락'을 가져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조나단은 점차 힘을 잃어가는 가족의 유대관계에 절망을 느낀다. 그런 상황 속에 타블로가 제시했던 해결책은 바로 음악이다. 가족 간에 구태여 &quot;사랑한다&quot;고, &quot;그리워한다&quot;는 구태의연한 표현을 쓸 필요가 있을까? 조나단이 격렬히 치기 시작하는 '안단테'에 아버지는 '엘리제를 위하여'로 화답한다. 이미 음악에 대한 관심이 꺼져버린 아버지를 자극시키는 것은 음악이었고, 그를 통해 조나단은 아버지의 숨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이것이 그들 간의 소통방식이었다. &lt;쉿&gt;에서도 마찬가지다. 불알친구인 윌과 종종 마약을 접하게 된 마이크는 곧 대학 진학을 위해 어머니와 작별을 하게 된다. 과다중독이었는지, 뜻하지 않게 마이크는 쓰러지게 되지만, 그를 회생시킨 것은 119도 아니었고 옆에 있어준 윌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노래였다. 과거 가수 출신이었던 어머니의 따뜻한 노래자락이 외로웠던 그의 가슴에 불을 지펴준다. 떠남에 대한 불안함, 그리고 외로움의 끝자락 앞에 어머니의 노래는 하나의 위안이 되어준다. 레코드 속에 묻혀 있던 음악은 그렇게 되살아나 한 영혼을 되살려주는 위대한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안단테&gt;와 &lt;쉿&gt;에서 타블로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바로 음악이다. 이것은 그만의 방식으로, 때로는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불편한 관계에서도 음악은 하나의 치유 약처럼 상처 사이로 스며들어온다. 아마 음악으로 매사를 답하게 되는 뮤지션으로서의 타블로의 본모습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의 철학은 음악이라는 맥락 속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붕괴되어 가는 오늘날의 핵가족, 그 위기 앞에서 타블로는 일반 대중과 하나가 되기 시작한다. 음악을 통해 가족을 다시 만나고, 음악을 통해 곪은 상처를 다듬는 과정을 통해 대중은 하나 둘 씩 타블로의 '음악'이 음악 그 이상의 것임을 인지하게 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class=txc-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hspace=1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2/blog/2008/11/20/16/34/4925131ab9f9d&quot; width=391 vspace=1 border=0 actualwidth=&quot;391&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누군가에 대해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 상실감과 상대적 박탈감 앞에 무릎을 꿇고 밤이 새도록 피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 &lt;승리의 유리잔&gt;은 수많은 '열등감'의 마음을 따뜻이 보살펴준다. 팻은 주인공에게 부러움과 질투심의 대상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제치고 학생회장이 되었던 것이다. 이후 팻은 의사가 되어 부러울 것이 없는 단란한 가정을 가지고 있다. 그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옆자리에는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와이프 뿐이다. 어디서부터가 잘못이었을까? 시작의 정확한 근원은 알 수 없지만, 주인공이 기억하는 '불행'의 시발점은 바로 학생회장 선거일 것이다.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상대적 박탈감과 모멸감에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주인공의 해결책은 단순하다 못해 유치하다. 바로 학생회장 배지를 빼앗는 것이다. 여기서 이 배지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상징성을 지닌다. 햄, 고기, 계란 반찬이 들어가 있는 고급 도시락을 보며 군침을 흘려야 했던 서민 가정 출신의 비즈니스맨들, 이쁜 여자친구와 스포츠카를 갖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단돈 천원을 아끼고자 오늘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많은 20대들, 단 몇 점 차이로 1,2등의 희비가 엇갈리는 현실을 배우고 있는 오늘날의 10대들, 이 모든 이들이 &lt;승리의 유리잔&gt;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하지만 &lt;안단테&gt;와 다르게 타블로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마땅히 없다. 사회적 빈곤 속에서 상대방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비열한 현실 속에서 타블로는 이야기를 '유치하게' 끝냄에 따라, 결국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하는 현실이 우리 자신에게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세상에는 수많은 '팻'들이 살고 있지만, 동시에 몇 배, 몇 십 배에 달하는 숫자의 '열등감'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타블로는 말한다. 애써 우리는 '팻'이 되지 못하기에 자책할 필요가 없다고. 격한 현실 속에 울다 지친 영혼들은 &lt;승리의 유리잔&gt;을 통해 만나게 되고, 서로를 다듬어주며 진심의 위로를 얻게 된다. 끝내 '배지'를 얻지 못하는 그들은 결국 패배자가 아니라, 공감과 이해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마지막으로 &lt;증오 범죄&gt;는 외국생활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에피소드이다. 출생에 앞서 자신의 인종을 알게 된다면 우린 어떤 느낌일까? 사회화를 통해 다문화사회에서 우리는 백인 중심적인 사회에서 얼마나 유색인종들이 상대적 차별을 당하게 되는지 알게 된다. 주인공인 준석 또한 마찬가지다. 백인친구인 제니의 사랑을 얻지 못해 낙심한 그 앞에, 같은 아시아인이기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한 베트남인과 같은 '대우'를 받는 준석은 자신이 겪는 현실이 넘지 못할 장애물임을 알게 된다. 수세기 동안 사회는 서구 중심적으로 흘러왔고, 이를 통해 남게 된 백인중심사회라는 유산, 그 거대한 파도 앞에 수많은 유색인종은 실망과 낙담을 거듭하게 된다. 준석도 예외는 아니다. 더 나아가 이 아픔은 학교에서만 끝이 아닌, 직장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끊이지 않을 다문화사회에서의 숙제인 것이다. 타블로도 아마 직접 경험했었을 런지 모른다. 인종차별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없는 주류사회의 깊이와 골을. 그 밑바닥에서 타블로는 피부의 색깔 차이로 아픔을 겪는 이들을 이해하고자 애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타블로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대신, 차별을 통한 아픔을 민족을 거쳐 '증폭'시킨다. 이것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함의를 지니는데, 백인이 베트남인을 깔보는 것처럼, 우리는 마치 우리나라의 동남아시아인 혹은 소수민족에 대한 모멸감을 지니고 있지 않는가? 상대적 모멸감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차별에 대해 우리는 애써 사다리를 타고 주류사회로 편입하려고 하지만, 결국 타블로의 글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은, 우리 민족이 아닌 또 다른 '우리'에 대한 무자비함과 차별에 있다. 우리 앞에 사다리가 있다면, 애써 그것을 타고 올라갈 필요가 없다. 이제는 우리보다 '뒤진' 이들을 위해 그들을 포용해주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타블로가 전해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스무 살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그래서 매혹적이고 격렬하다.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끼리 서로를 다듬어주고 아픔을 이해해주는 것. 그것이 이 한치의 양보 없는 사회의 &quot;칼날&quot;에 맞서 용기있게 살아갈 수 잇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타인이 보기에는 간단한 것이지만, 우리는 간단한 매개체-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고, 넘어설 수 없는 장애물 앞에 앉아 동지들을 만나 눈물을 흘리게 되고, 때로는 위를 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갈 수도 있는 포용력을 지니어야 한다고 타블로는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스무살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순수하고 맑으며 호소력이 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하는 우리는 결국 스무살의 그 때로 돌아가 서로가 안고 있던 짐과 마음의 상처를 털어놓는다. 그래서 &lt;당신의 조각들&gt;은 소통의 장이 되며, 우리가 스무살의 마음으로 솔직해질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는 것이다. 아무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타블로가 더 많은 에피소드를 전해주길 바란다. 그게 글이든, 음악이든…&lt;/P&gt;
&lt;P&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타블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타블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당신의조각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당신의조각들&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고무신 여자친구를 둔 군인친구와 이야기해보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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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11-11T11:26:55Z</updated>
	    <published>2008-11-11T11:26:5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얼마 전, 경기도의 한 부대에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언제 휴가인 지 몰라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연락이 오는 그 친구를 만나 회포를 풀게 되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들어오자 그 친구에게서 문자가 한 통 왔다. 메신저에 접속할 수 있겠느냐고. 여자친구와 관련해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말이다. 이른바 '고무신' 여자친구를 둔 이 친구는 대략 1년 반 이상을 교제 중이다. 사귄 기간보다 떨어져 있던 기간이 더 많았던 이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던 것일까.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나 : 요즘 무슨 일 있냐? 여자친구하고?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친구 : 별 거는 아니고..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 : 말해봐, 무슨 일인데?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친구 : 안 그래도 나 여자친구랑 헤어지려고 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 : 아니, 왜 그래? 너희 어제만 해도 데이트 즐겁게 하지 않았냐?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는 거야?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친구 : 싸운 건 아냐. 오히려 너무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지. 오히려 그래서 문제야.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 : 행복에 겨운 녀석 같은데? 구체적으로 말해봐.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친구 : 내가 전역할 때까지 이렇게 지내면 내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 마치 결혼해야 할 것 같다고.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나 : 계속 말해봐.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친구 :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 것 같아. 입대할 때만 해도 기다려달라고 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꿋꿋히 내 곁&amp;nbsp;&amp;nbsp; &lt;/P&gt;
&lt;P&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을 지켜준 이 아이가 고맙긴 하지만 말야. 그런데 이렇게 기다려주니깐 내가 마음이 무겁다. 조만간 &lt;/P&gt;
&lt;P&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정리해야 할 것 같아. 아직 난 나이도 어린데 말야..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정도가 대화의 끝이었다. 그리고 복귀하기 하루 전, 이 커플은 헤어지고 말았다. 아무런 탈 없이 잘 지내던 '애정'은 이렇게 한순간 식어지고 말았다. 물론 여자친구 쪽에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겠지만, 끝내 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들어야 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class=txc-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hspace=1 src=&quot;http://cfs8.blog.daum.net/image/11/blog/2008/11/09/23/38/4916f5d75a111&quot; width=531 vspace=1 border=0 actualwidth=&quot;531&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물론 모든 고무신-군인 커플의 결과가 이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군인의 사랑을 기다리는 수많은 고무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애써 외면하는 이들을 보았을 때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분명히 몇몇 존재하는 상황일테니까 말이다. 군인 남자친구를 둔 여자들이 고무신을 꺾어 신었다고 우리가 그들을 비난해야 할까? 결국 꺾어 신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른 이성친구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결국 마음이 바뀌는 것은 한 순간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행여나 헤어지지는 않을까 상처받기 싫어하는 수많은 이들은 그래서 '롱디' 관계를 기피하고는 하지만, 결국 상처를 주는 쪽은 남자, 여자, 그 어느 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자친구를 사귀는 주위의 친구들을 보며 가슴앓이를 하다 끝내 실연을 당하는 여자 측도 상당히 안타까울 수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사람의 마음은 우주와도 같다고 한다. 깊고 깊어 본인 스스로도 어떻게 합리적으로 결정할 지&amp;nbsp;힘들 때가 많다는 것이다. 헌데 타인의 마음까지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일 것이다. 결국 '롱디' 관계이든, 그 어떤 관계이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진심 어린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의견이 있으시면 미니홈피나 이메일로도 알려주세요.&lt;/P&gt;
&lt;P&gt;미니홈피: &lt;A href=&quot;http://www.cyworld.com/enish27&quot; target=_blank&gt;www.cyworld.com/enish27&lt;/A&gt;&lt;/P&gt;
&lt;P&gt;이메일: &lt;A href=&quot;mailto:enish27@hanmail.net&quot;&gt;enish27@hanmail.net&lt;/A&gt;&amp;nbsp; &lt;/P&gt;
&lt;P&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군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군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고무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고무신&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목사가 된 이근안 씨와 샘물교회의 공통점을 살펴보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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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11-09T19:44:26Z</updated>
	    <published>2008-11-09T19:44:2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그는 고백했다. 그리고 빌었다. 그래서 그는 목사가 됐다. 과거 고문기술자였던 이근안 씨는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게 된 것이다. ('목사된 고문기술자가 안중근 의사를 들먹인 이유는…', 조선일보 11월 8-9일자) 보도에 의하면, 이 씨는 시대가 바뀜에 따라 '충신'에서 '역적'으로 몰락한 자신의 신세에 대해 한탄했다. 16년 간 수많은 피해자를 만든 이근안 씨는 신에게 빌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회개'하고 목사가 되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리고 작년 10월, 우리는 23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지켜봐야 했다. 몇달간 지속되는 피말리는 인질소동 속에 우리는 결국 몇명의 희생을 목격해야 했고, 정부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결국 희생자 외 모든 인질이 안전히 구출되었다. 해방된 피랍자들은 정부와 국민에게 걱정을 끼친 것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올렸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물론 이근안 씨와 샘물교회를 비교하는 데는&amp;nbsp;한가지 차이가 있다. 샘물교회는 대국민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피랍자 구출을 위해 들어간 막대한 비용에 견줄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의 진정성이 있을까? 우리가 샘물교회 피랍자들에 대한 기억을 잊기 약 1년도 지나기 전에, 지난 6월 샘물교회의 한 목사는 여행자제국 중 하나인 네팔에 대해 다시금 선교봉사를 시작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들은 다시금 '봉사활동'이라는 구실로 또 다른 선교인들을 보내게 된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image/33/blog/2008/11/09/19/42/4916be93d9c67&amp;filename=116289243482_20061108.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320&quot; width=&quot;32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FONT color=#3058d2&gt;출처: ‘고문기술자’ 이근안씨 어제 만기출소, 한겨레 2006/11/07&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한번 생각해보자. 이근안 씨가 과거 고문기술자라는 위치에서 오늘의 자리에 있게까지 그는 누구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을까? 신이었을까? 아니다. 바로 '사람'이다. 샘물교회는 어떨까? 물론 상당수 신도들은 정부와 국민들에게 사과와 감사의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롯하고 지속되었던, 무절제한 선교활동을 살펴보면 얼마만큼 샘물교회가 국민에게 잘못을 빌고 있을까? 그들이 용서를 빌고 회개하며 더 '정성'을 바칠 대상은 신이었을까? 아니다. 바로 '사람'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조선일보에 의하면 이근안 씨는 자신의 신앙간증을 강조하는 한편, 고문활동에 대해서는 위축발언하거나 애써 '정당화'시키려 했다. 설사 정부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도를 지나친 것이다. 게다가 진정 용서를 빌어야 할 유가족이 아닌 신에게 본인의 뜻과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세탁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김근태 전 의장에 대해서도 200볼트 전기가 아닌 배터리가 썼다는, 다소 어이가 없는 이 씨의 변명은 그래서 더 납득이 안 가기 마련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22/blog/2008/11/09/19/52/4916c0f7d33c1&amp;filename=cocochoi200810312232440.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width=&quot;259&quot; height=&quot;304&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 WIDTH: 259px; HEIGHT: 304px&quot; actualwidth=&quot;400&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FONT color=#3058d2&gt;사진 출처: 브레이크뉴스, 정연우 기자&lt;/FON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오늘도 정부는 애쓴다. 한명이라도 더 피해자를 구출하기 위해서… 이근안 씨와 샘물교회 피랍자들과 같은 '국민'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고마워하고 미안하게 느끼는 대상이 국민일까? 정부일까? 그래서 그런지 이번 이근안 씨의 '죗가' 세탁은 더 안타깝다. 그가 본인의 말대로 &quot;나이 칠십&quot;에 할 일이 없어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 같은 시간에 그가 피해를 준 유가족을 위해서라도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을 것이다. 하다 못해 일일이 용서를 빌어도 시간은 부족할 수 있다. 그게 아니면 '고문'과 관련해 유가족들-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았더라도-에게 봉사활동이라도 틈틈히 하는 것이 기본적인 상식이다. 샘물교회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방적인 선교 대신, 예전에 지나쳤던 주변인들에 대해 먼저 관심을 갖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몇몇 신도들은 선교 이외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네팔 재선교와 같은 사실은 그런 그들의 노력을 퇴색하게 만든다.&amp;nbsp; 게다가 그들이 과연 정부와 국민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지 의심도 만들게 한다.&amp;nbsp; 그래서 그들은 아직도 자중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잘못은 인간에게 저지르는데, 용서는 신에게 구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많은 국민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믿음과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이근안 씨와 샘물교회에게 돌아가는 비판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몰라도, 그들이 똑같은 곤경에 처한다면 다시금 정부와 국민은 그들을 위해 손을 뻗을 것이라는 사실을…&amp;nbsp; 도움을 주어도 진정성 있는 고마움을 받지 못하는 '바보' 같은 정부와 국민을 위해서라도, 이 씨와 몇몇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진심을 돌려야 하는 대상이 '신'인지 '사람'인지 분명히 분별해야 할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의견이 있으시면 미니홈피나 이메일로도 알려주세요.&lt;/P&gt;
&lt;P&gt;미니홈피: &lt;A href=&quot;http://www.cyworld.com/enish27&quot; target=_blank&gt;www.cyworld.com/enish27&lt;/A&gt;&lt;/P&gt;
&lt;P&gt;이메일: &lt;A href=&quot;mailto:enish27@hanmail.net&quot;&gt;enish27@hanmail.net&lt;/A&gt;&amp;nbsp; &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샘물교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샘물교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이근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근안&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개콘 '대화가 필요해'의 장수 비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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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09-15T02:10:50Z</updated>
	    <published>2008-09-15T02:10:5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quot;아버지, 그까짓 수영복 하나 못 사줍니꺼. 한달 용돈이 500원이 뭡니까예.&quo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장동민(아들 역)은 일주일에 한번 불평한다. 김대희(아버지 역)와 신봉선(어머니 역)은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quot;근데 이 녀석이..&quot;라며 호통을 친다. 개콘을 즐겨보는 이들에게는 벌써 익숙할 장면이다. 소통부재라는 패러다임 속에 절묘하게 녹아있는 서민들의 '유쾌하지 못한' 현실을 이들은 그려내고 있다. 어느덧 '대화가 필요해'(이하 '대필)가 방영된지도 몇년이 된 것 같다. 과연 이만한 장수 프로그램이 또 있었을까? 과연 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꾸준히 변하는 시나리오와 컨셉트 &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대필'의 인기는 우선 고정된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다른 개그프로만 살펴보아도 다른 설정일 뿐, 비슷한 시나리오와 컨셉트가 중간중간에 껴 있는 것을 시청자들은 분별하고 있다. 그런데 '대필'은 그때마다 다르다. 매번 같은 식단의, 매번 같은 식탁에서, 매번 같은 옷(예:교복)을 입고 있지만, 그들이 그려가고 이야기는 매번 다르다. 한번은 장동민의 어이없는 도둑질 사건, 신봉선의 첫사랑 이야기, 김대희의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회상 등이 바로 그러하다. 포인트는 이 모든 사건들을 웃음으로 변질시켜 시청자들에게 선사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평범한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시청자 모두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대필'의 시나리오는 매번 맛깔스럽고 정감 있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image/16/blog/2008/09/15/02/09/48cd455d3f04f&amp;filename=20071229115907_360_1.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550&quot; width=&quot;55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매번 색다른 컨셉트의 변신도 눈에 띈다. 오늘자 개콘에서도 보였지만, 장동민은 예전의 '경비' 역을 부활시키며 자연스레 '대필'로 이끌어오고 있다. 일반 개콘 프로에서 예전 캐릭터를 다시금 살려오는 건 '아이디어 고갈'로 보이기 십상이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사실 '대필'의 설정 자체에 자연스레 이식시킬 수 있는 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얄밉기까지 하지만, 똑같은 캐릭터도 또 다르게 표현해 그것을 서민 가정과 연결시킬 수 있는 장동민의 개그에도 갈채를 보낸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삼박자가 딱 맞아 떨어지는 개그맨들의 연기 &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하지만 무엇보다 '대필'의 인기가 유지되는 비결은 바로 배우들 자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봉선의 능청스러운 어머니 역, 김대희의 엄격하지만 다소 엉뚱한 아버지 역, 그리고 장동민의 마음 약하지만 꾀 잘 부리는 아들 역은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져 하나의 평범한 서민 가정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평범함이 무기가 되어 매주 찾는 시청자들도 질리지 않게 해준다. 마치 또 하나의 가족을 보는 느낌이랄까? 더 나아가 단순한 시나리오에 묶이는 것이 아니다. 신봉선의&amp;nbsp;외모 변신(예: 골룸, 환자)를 통해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는 오늘날 아줌마들의 걱정과 우려를 &amp;nbsp;유쾌하게 풍자해내기도 한다. 마치 &quot;나도 이렇게 잘 사는데, 너희는 왜 못 사냐&quot;는 화살을 쏘아올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동의하기 시작한다. 김대희와 장동민의 수많은 신봉선에 대한 외모 지적에도 불구하고, 능청맞게 그러나 떳떳하게&amp;nbsp;본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은 과연 신봉선만이 소화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모습을 매번 다른 시나리오에 다른 모습으로 소화해내니, 시청자들이 이것에 대해 신선하게 느끼는 것도&amp;nbsp;당연하지 않나 싶다. &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image/32/blog/2008/09/15/02/10/48cd4571a5776&amp;filename=04894198_20080218.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290&quot; width=&quot;29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앞으로도 변함없는'대필'을 기대한다 &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내 기억으로는 '달인'이 '대필'보다 최소 1년은 늦게 시작한 것 같다. 물론 현재 '달인'이 실감하는 인기가 '대필'의 그것보다 높아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만큼 시청자들의 불만과 우려도 높은 건 사실이다. 예컨대 매주 두 편씩 방영되는 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꽁트와 상황을 간신히 메꾸는 유행어(&quot;~해봤어요?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어&quot;)가 판쳐버리는 '달인'은 이제 신선함은 온데 간데 없다. 물론 '달인'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문제는 상당수의 인기 개그프로가 '달인'과 비슷한 운명에 처해져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필'은 다르다. 그리고 앞으로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대필'은 단순한 개그프로가 아니다. 한편은 우리의 모습이고, 또 다른 면에서는 중산층이나 부유층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서민층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서 개그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다. 서민층의 결코 '웃을 수 없는' 현실을 보고 웃는 우리는 그래서 이 현실을 그냥 보고 넘어갈 수 없다. 그래서 '대필'이 더 정감 가는 것이고, 우리가 뗄레야 뗄 수 없는 진정한 장수 프로그램인 것이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의견이 있으면 이메일이나 미니홈피로도 알려주세요.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메일: &lt;A href=&quot;mailto:enish27@hanmail.net&quot;&gt;enish27@hanmail.net&lt;/A&gt;&lt;/P&gt;
&lt;P&gt;미니홈피: &lt;A href=&quot;http://www.cyworld.com/enish27&quot; target=_blank&gt;www.cyworld.com/enish27&lt;/A&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개그콘서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개그콘서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대화가 필요해&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대화가 필요해&lt;/a&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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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국인이 '페일린 효과'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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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enish27.17130049</id>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09-15T01:45:03Z</updated>
	    <published>2008-09-15T01:45:0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미국정치에 역풍이 분다. 바로 '페일린' 효과 말이다. 알래스카 주지사 출신으로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우뚝&amp;nbsp;선 그녀가&amp;nbsp;뒷걸음질을 거듭하던 맥케인의 지지도에 힘을 불어넣었다. 특히, '하키 맘' 이미지가 여성들에게 부각됨으로 인해&amp;nbsp;사라 페일린은 대선 구도에&amp;nbsp;지속적인 영향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많은 사람들은 사라 페일린의 '강한 어머니' 이미지에 끌리거나, 혹은 힐러리를 대체할 '여성상'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이 대선구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s8.blog.daum.net/image/14/blog/2008/09/15/01/44/48cd3f61641e2&amp;filename=2008091300009_0.jpg&quot; border=&quot;0&quot; hspace=&quot;1&quot; vspace=&quot;1&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240&quot; width=&quot;24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제자 인터네셔널 헤럴드트리뷴지(IHT)에&amp;nbsp;실린 그녀의 ABC와의 인터뷰는 말 그대로 황당 그 자체였다. 우선 그루지야가 재침공당할 경우 '다자주의' 형태의 NATO를 이용한 집단적 움직임은 그럴 듯 했다. 그러나 곧 ABC 앵커가 &quot;부시 독트린에 대해 정의해보시오&quot;라고 묻자, 그녀는 곧 우물쭈물하며 &quot;부시의 선택에 믿음을 줘야 한다&quot;며 독트린과 부시의 세계관을 혼돈하기도 했다. 본인이 답습했던 현 대통령의 정치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또는 &quot;부시의 목표는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제거&quot;라고 했다. 물론 맞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까지나 미시적인 목표에 불과했다.&amp;nbsp;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깊은 경계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라크전의 명분이었던 WMD에 대해선 일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것이 공화당 제 2자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정치적으로 그녀를 평가하기 위해서 쓰여야 할 잣대는 성(性)이 아니다. 정치인에게는 정치인으로의 안목과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부시에 깊은 믿음을 둔다고 해놓고, 온갖 붕뜬 이야기로 원점을 파악 못하는 이 여자의 얘기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제대로 답습되지 않은 정치관은 오히려 혼돈만을 일으킬 것이다. 이러니 얼마나 더 많은 짐을 현재의 10대, 20대들에게 줄 것인가? 현재 미국이 이라크전으로 인한 비용이 3억 5천만 달러이고, 참전 군인들에게 가는 의료비만으로도 비슷한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차라리 맥케인은 나은 편이었다. 병력의 로테이션과 이라크 현지 전문가 양성까지 구체적으로 말했으니. 하지만 정말 공화당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 정도의 안목은 택도 없다. 페일린까지 더해진다면 문제는 더 심해진다.&amp;nbsp;단기, 장기적인 안목 없이 세계를 현실주의 차원의 안목으로 바라봐선 안된다. 또 단순히 '여성' 이미지로 유권자들의 표를 노린 것이라면 곤란하다.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미국의 갈 길은 아직 멀다. 우선 현재 직면한 이라크전이라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물론 나는 미국인이 아니지만, 올바른 판단이 배제된 상태에서 사라 페일린을 적극 지지할 미국민이 아쉬운 건 분명한 사실이다. 2009년 11월, 미국인들의 건승을 빈다. &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사라 페일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사라 페일린&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한국대학의 '리포트', 어떻게 생각하세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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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enish27.17091637</id>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09-09T02:58:53Z</updated>
	    <published>2008-09-09T02:58:5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최근 들어 학생들 간의 논문 표절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학부생들이 리포트를 서로 베끼거나 인터넷 웹사이트를 카피하는 행위가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지요. 한국대학을 1년 정도 다녔던 필자 역시 '리포트'를 작성할 기회가 수 차례 있었고, 제가 다니는 한 북미대학에서도 한국의 리포트와 흡사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우 다른 페이퍼라는 것을 작성할 기회가 많았지요. 어느 대학에나 풍성한 경험을 했다고 딱 잡아 말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과연 표절적발 프로그램으로 표절을 근절할 수 있을지, 리포트가 오히려 학생들의 표절을 간접적으로 유도하는 게 아닌지 살펴보겠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표절을 적발할 수 있는 메카니즘 부재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일부 북미권 대학에서는 '턴잇인'이라는 표절검증 프로그램을 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페이퍼를 작성한 이후에는 수업에서 제출하기 전에 온라인으로 첨부파일로 제출해야 합니다. 그러면 프로그램에서 인터넷 상 문서와 대조, 비교해 비슷한 부분의 내용을 잡아내지요. 그래서 북미에서는 표절을 생각하는 학생은 참 간이 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class=txc-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hspace=1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33/blog/2008/09/03/11/46/48bdfa90e8a7d&quot; width=584 vspace=1 border=0 actualwidth=&quot;588&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3058d2&gt;&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3058d2&gt;※ 북미학계에서 유명한 페이퍼 표절검증프로그램, Turnitin.com &amp;nbsp;&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한국은 어떨까요? 우선 리포트라는 학술적 도구에 있어 채점기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뒤에서 말하겠지만, 페이퍼처럼 채점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고, 그저 다다익선 식의 정보덩어리를 말하는 거라 오히려 표절이 용이할 수 있지요. 게다가 일부 한국대학에서는 리포트의 온라인검증시스템이 아예 부재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얼마 전에 서울대에서 프로그램을 도입해 논문 표절을 근절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이것도 특정대학의 이야기이지, 얼마나 많은 한국대학에 도입될지 모르는 일이지요. 한 한국대학의 교수는 &quot;시험 삼아 온라인으로 제출된 리포트를 프로그램에 돌려봤는데, 80% 이상의 내용이 똑같았다&quot;고 하기도 했습니다. 또 블로거뉴스에 떴던 한 호주강사의 한국학생의 표절과 관련된 글에 한 네티즌은 표절을 적발해 몇몇 학생에게 낮은 학점을 줬다가 다음학기에 자신의 수업을 아무도 수강신청하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지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사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그렇다면, 표절 관련 메카니즘이 도입되면 한국학생들은 표절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리포트가 그 성질상 표절을 야기하는 건 아닐까요?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한국교수들 가이드라인 제시하고 있나?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한국대학에 다니며 느낀 점 한 가지. 리포트를 쓸 때마다 그 어느 교수도 어떻게 써야 표절을 피할 수 있고, 창의적인 리포트를 쓸 수 있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저 질문 한 가지 휙 던져놓으시고 이것에 대해 답해라, 이 정도 수준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한국, 캐나다대학의 예를 토대로 가상질문을 만들어보겠습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gt;한국: UN의 최근 대외활동을 논하라.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gt;캐나다대학: UN의 최근 해외지원활동은 효과적이었나? 어느 부분에서 그랬나? 왜 그렇게 생각하나?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STYLE: italic&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물론 모든 한국, 캐나다교수님들이 저렇게 질문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다익선을 표방하는 리포트와 합리적 사고를 지향하는 페이퍼에는 큰 차이가 있지요. 예컨대 UN의 최근 대외활동을 논하라고 한다면, 사실 그 누가 좁은 폭으로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까요? 일부 한국교수님들이 내는 리포트 주제는 대부분 굉장히 광범위합니다. 거시적으로 현상에 대해 쓰기를 원하니 학생들 입장에서는 교수님들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안전빵'으로 생각해 모든 정보를 긁어보아 제한된 지면에 압축시키는 것뿐이지요. 여기에 표절 검증 시스템까지 부재하니, 어쩌면 나날이 불어가는 표절사태가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표절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것은 범죄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없이 그저 '정보 박스'를 요구하는 오늘날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안일한 사고방식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사실 한국 인문학부에서 종종 제출하게 되는 쪽글, 팩트북, 리포트, 논문 등 다 마찬가지입니다. 석박사 수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어디에나 많은 교수님들이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주장을 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리포트라는 것을 작성할 때마다 '정보 제공' 수준에 머물러 있지, 어떤 현상을 어떤 도구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서, 어떻게 논술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지침을 받지 않습니다. 그저 정보가 더덕더덕 붙여진 리포트를 작성해야 하는 것이 한국대학생들의 현실입니다. 이러고 학생들의 책임의식만을 탓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지요. 한국대학의 한 친구는 리포트 문제가 &quot;A에 대해 아는 대로 쓰라&quot;였답니다. '아는 것'의 정의를 교수가 조금 명확히 내려줬다면 학생들의 리포트는 좀 다르게 쓰일 수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교수님들이 무분별한 표절을 불러일으키시는 게 아닐까요?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캐나다대학의 페이퍼는 어떠한가?&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캐나다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해보겠습니다. 우선 1학년부터 표절에 대한 교육이 철저한 북미권 대학에서는 한국의 리포트와 유사한 페이퍼라는 것을 매 과목마다 제출해야 합니다. 이것은 석박사 수준의 페이퍼(논문)와 조금 차이가 나는데, 위에 예로 들었던 구체적인 질문을 자신의 주장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페이퍼 하나 당 10가지 정도의 소스를 교수님들은 요구하는데, 4학년 페이퍼 제출시기에도 교수님들은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학생들에게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3000자의 페이퍼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 어떻게 주장을 첫 문단에 고정할 것인지, 어떻게 증거를 주장 내 묶어 풀어나갈 것인지, 어떻게 소스를 다양하고 유용하게 이용할 것인지, 어떻게 반론을 제공하며 결론으로 이끌어나가야 할 것인지 양식이 제공되지요.&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class=txc-image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hspace=1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8/blog/2008/09/03/10/03/48bde27b26989&quot; width=549 vspace=1 border=0 actualwidth=&quot;549&quot;&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FONT color=#3058d2&gt;※캐나다대학의 한 강좌의 페이퍼에 대한 가이드라인. 주장,&amp;nbsp;이론적 틀, 증거 논거까지&amp;nbsp;구체적으로 나와있다.&amp;nbsp;&lt;/FONT&gt;&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하나의 질문에도 몇 십 개의 완전히 다른 내용의 페이퍼가 제출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주제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교수님들이 유도하기 때문이지요. 단순히 정보나열이 아닌, 논술형태로 서로 다른 생각을 다르게 풀이하는 사고방식을 캐나다대학에서는 원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표절검증 프로그램이 오래 전부터 도입해왔으니, 학교 내에서도 컨닝, 표절 자체는 상상 조차 할 수 없지요.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결국 학생 뿐 아니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단순히 표절 방지 교육을 시킨다고 한국학생들이 완전히 표절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저 정보나열 수준에 머물러 있는 리포트의 '악순환'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페이퍼가 리포트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캐나다교육이 한국교육이 낫다는 확대해석은 더더욱 피하고 싶고요. 다만, 단순히 검증 시스템 만으로 학생들의 학문적 윤리를 개선시킬 수 있느냐는 겁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quot;A의 최근 경향에 대해 쓰라&quot;, &quot;B의 인권활동에 대해 논하시오&quot; 라는 광범위한 질문만 딱 던져놓으면, 한국대학 뿐 아니라 그 어떤 대학의 학생들의 답안은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남들과 다르게 쓰려고 다른 소스에 의존하다가는 혼자 튀었다는 '죄목'으로 낮은 학점을 받을 수도 있지요. 그런 공포감 때문에 학생들이 더 똑같이 쓰려고 하는게 아닐까요? 다시 말하자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는, 공중에 붕 뜬 리포트주제가 학생들의 창의력을 파괴시키는 게 아닐까요?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요즘 불거지는 표절사태는 학생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학생, 교직원, 더 나아가 학교 전체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캐나다대학의 페이퍼도 대안일 수는 있지만, 진정으로 한국대학사회가 표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리포트라는 학문적 도구의 근본적인 문제도 한번은 생각해보아야겠지요. &lt;/P&gt;
&lt;P&gt;&lt;/P&gt;
	    </content>
	    	</entry>
    	<entry>
	    <title>한국 앰뷸런스 양보문화, 캐나다와 비교해보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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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enish27.16863031</id>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08-15T08:32:14Z</updated>
	    <published>2008-08-15T08:32:1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 align=left&gt;서울 사람들이야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막힐 때는 꽉 막히고, 좀 빠진다 싶어도 차들 간격이 촘촘한 게 낮 시간 서울지역 고속도로의 특징이다. 그래서 좀 더 급한 용무가 있어도 다른 차들과 호흡을 맞춰 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물론 어느 나라나 제멋대로 도로에서 운전하는 법규가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간혹 예외적인 상황도 있을 때도 있다. 바로 구급차를 맞이할 때이다. 쌩쌩 달리는 구급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면, 누구나 드는 생각, &quot;아, 누가 다쳤구나, 심한 부상을 당했나보구나&quot;하는 생각을 들게 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쳐가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환자의 몸 상태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하게 되지만, 우리가 반응하는 행동은 어떨까? 내가 경험했던 한국과 캐나다는 굉장히 차이가 컸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9/blog/2008/08/15/08/29/48a4bff0310b1&amp;filename=msnbc.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9/blog/2008/08/15/08/29/48a4bff0310b1&amp;filename=msnbc.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0021b0&gt;출처: MSNBC&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작년 한국에 1년쯤 있었을 때, 서울에 갈 일이 있어 고속도로를 탄 적이 있다. 일산에서 여의도 쪽 가는 방향이라 4차선 도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공간이 캐나다 고속도로와 비교해 터져 있어 차들의 여유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가 달려왔다. 누구나 소리를 듣고 위급한 상황에 대해 파악하게 되지만, 차들은 변함없이 가던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캐나다 생활에 익숙했던 나에게 이것은 엄청난 문화적 충격이었다. 구급차가 환자를 싣고 혹은 환자를 싣기 위해 달려야 하는데, 차들이 양보를 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quot;너는 떠들어라, 나는 갈 길 간다&quot;라는 태도로 일관하는 것 같았다. 물론 한두 차량이 구급차에게 길을 터주긴 하지만, 그 정도로 충분할 수는 없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안 그래도 좁은 여유에 구급차는 갈 길이 꽉 막혔고, 정체되지도 않은 도로에서 앞뒤, 양옆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곡예운전을 하며 그나마 비켜나가려 시도를 했다. 그런데 도리어 몇몇 차가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왜 자기 도로에 끼어드느냐는 식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던 점이었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린다는 것은 곧 누군가가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어떻게 태연하게 길을 양보하지 않고 자기 길들을 가는 것일까? 눈으로 직접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을 겪어도 그럴 수 있을까? 어쨌든 그날 앰뷸런스는 무려 10분 이상을 내 눈 앞에서 지그재그로 차들을 비껴나가 운전했고, 이것이 한국의 양보문화인가, 라는 씁쓸한 마음을 가지고 난 서울로 향해야 했다. 그날 환자가 무사히 치료를 받았을런 지는 생각하기 싫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캐나다나 미국에 와본 사람들은 공감할 지 모르지만, 몇몇 지역은 고령인구가 집중되어 있어 종종 앰뷸런스(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흔히 들리는 것 같다. 내가 사는 밴쿠버도 유독 사이렌 소리가 자주 들리는 건 사실이다.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관광도시로 유명하니깐. 어쨌든 운전을 할 기회는 매일 같이 있는데, 나갈 때면 최소한 한 두 번은 사이렌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앰뷸런스, 소방차 등 요란한 소리를 내며 현장으로 출동하는 장면을 보면 한국과 비교해 색다름을 느낀다. 우선 캐나다에서는 굉장히 일관된 운전자들의 태도를 볼 수 있는데, 구급차가 어디선가 사이렌이나 경적을 울려대며 오기 시작하면, 도로의 사이드로 차를 빼기 시작한다. 중간에 구급차가 가기 위한 공간을 터주기 위해서다. 마치 '모세의 기적'을 보는 것 같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차선과 반대 차선의 차들이 모두 양쪽 사이드로 차들을 몰아주니 중간의 넓은 도로로 앰뷸런스는 달릴 수 있다. 난 운전을 하면서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꼿꼿이 운전을 하는 운전자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사회적 규범으로 캐나다사회에 자리 잡은 것 같다. 만약 한 차가 구급차가 달려오는데 멈추지 않고 같이 달렸다? 그러면 다른 차량들이 그 차에 대놓고 경적을 누르기 일쑤다. 위급한 상황일 수 있는데 구급차의 길을 막지 말라는 신호다. 그리고 구급차가 완전히 떠나고 나면, 그때서야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반적인 경우 구급차가 나타나서 사라지기까지 대략 10~15초 정도 걸린 것 같다. 한국과는 굉장히 비교되는 경우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28/blog/2008/08/15/08/30/48a4c01b0658c&amp;filename=HertfordshireLifesavers.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28/blog/2008/08/15/08/30/48a4c01b0658c&amp;filename=HertfordshireLifesavers.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0021b0&gt;출처: Hertfordshire Lifesavers&lt;/FON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심리학적인 용어로 'bystander effect'라는 말이 있다 특정 상황에서 도움이 요구될 경우,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책임이 분산되고 흩어져 결국 그 누구도 쉽게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한국의 구급차 양보문화에 견주어 말하긴 좀 그렇지만, &quot;저 사람도 안 하는데 내가 왜 하나&quot;, &quot;내 갈 길이 더 중요하다&quot;라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인해 결국 그 누구도 섣불리 도움을 줄 수 없는 게 아닐까?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캐나다 사람들은 공통된 사회적 규범으로 그러한 심리적 장애물을 이겨낸다. 결국 심리적이 아닌 문화적 차이라는 것이다. 정이 많고 삶을 중시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유교적 문화가 결국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남과 함께 사는 공동체 문화 역시 개개인의 이기심 아래 무너져버린다. 오히려 동양인이 볼 때는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고 본인 위주의 삶인 서양인들의 공통된 사회규칙이 우리와 비교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굳이 나라끼리 서로의 차이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한국에서 구급차에게 길을 양보해주지 않는 우리들의 일관적 태도와 그로 인한 사회적 대가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생각된다. &quot;누군가는 양보해주겠지&quot;라는 안일한 생각에 젖었다가는, 결국 그 누구도 길을 터주지 않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룰이나 법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엄연히 도덕적 윤리와 사고방식으로 일어나는 행동이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적게나마 캐나다인들처럼 위급한 상황에 현명하게, 그리고 협력적으로 대응하는 법을 우리가 알았으면 좋겠다. &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캐나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캐나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구급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구급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양보의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양보의식&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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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진이 서인영에게 배워야 할 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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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08-15T08:28:36Z</updated>
	    <published>2008-08-15T08:28:3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무더운 여름이 지나가며 예능계의 두 스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전진과 서인영이 바로 그들이다. 전진은 10년 장수 댄스그룹 신화의 랩퍼로, 서인영은 쥬얼리의 싱어로 활동하며 가요계와 예능계에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둘 다 연예계에 오랫동안 활동한 사람이긴 하지만, 둘 사이의 공통점은 바로 올해 들어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14/blog/2008/08/15/08/26/48a4bf197e13c&amp;filename=전진서인영.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14/blog/2008/08/15/08/26/48a4bf197e13c&amp;filename=%EC%A0%84%EC%A7%84%EC%84%9C%EC%9D%B8%EC%98%81.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전진은 솔로 발표 후 'Wa'로 시작해 '무한도전' 정기 출연 등 가요계와 예능계를 왔다갔다 하고 있고, 서인영은 '서인영의 카이스트'와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호감 이미지를 시청자 사이에서 축적, 가요계에 돌아와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 둘 사이를 가만히 지켜보면 수많은 공통점 외에도 뚜렷한 차이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인영이 엄정화, 이효리와 삼각구도를 벌이며 '맞짱'을 뜨는 한편, 전진은 스스로의 이미지 확립에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서인영이 영리했던 이유, &quot;예능에서 확보한 팬, 가요계까지&quot;&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작년까지만 해도 서인영은 '팬'보다는 '안티'가 더 어울렸던 것 같다. 물론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연예인으로 특별히 잘못한 행동을 한 것도 없다. 그러나 무대에서의 노출과 '물쇼'와 같은 반복되는 섹시 컨셉으로 인해 보는 시청자로 하여금 불편함을 자아낸 적이 종종 있었고, 그 와중에서 가요계 이외로 시청자들에게 서인영이 누구인지를 보여주기는 충분치 않았다. 서인영에겐 기회가 필요했다. 시청자와 '의사소통'하기 위해선 가요계에서 노래부르는 서인영으로는 불충분했다. 그래서 필요했던 것이 예능프로이다. 사실 서인영 또한 여러 예능 프로에 출연해왔지만, 그를 지금의 호감 이미지를 상승시켜줄 수 있었던 것은 '서인영의 카이스트'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그 프로가 런칭했을 때, 시청자들의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quot;가수가 과학기술원 같은 곳을 견딜 수 있을까&quot;, &quot;연예활동은 제대로 하려나&quot; 등 일반적인 반응으로부터 시작해 &quot;부족해보이는 이미지로 뭘 하겠냐&quot; 등 '저주'에 가까운 악담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서인영은 기죽지 않았다. 사실 필자도 '서인영의 카이스트'를 보며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가수로써의 서인영이 더 본인에게 익숙한 부분도 있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하지만, 기대는 어긋났다. 연예인으로 학우들과의 굳건한 우정, 지각인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하는 출석, 교수한테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하는 대담함까지. 답답해 보이고 공부만 할 것 같았던 카이스트의 분위기는 그렇게 바뀌어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인영이 있었다. 사실 많은 시청자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라 서인영의 이미지는 그렇게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바뀌어갔다. 물론 '신상 타령'이라는 컨셉은 몇몇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막판에는 약속으로 받기로 했던 신상품을 운동화로 바꿔 학우들에게 나눠주는 따뜻함에서 서인영은 팬층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결혼했어요'로 까지 이어지는 솔직함과 대담함, 그리고 발랄함까지 곁들이며 서인영은 꾸밈없는 자신의 모습을 만천하에 나타내기 시작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28/blog/2008/08/15/08/26/48a4bf37ca558&amp;filename=coming200805282031590.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28/blog/2008/08/15/08/26/48a4bf37ca558&amp;filename=coming200805282031590.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동안 가요계로 묻혀만 왔던 자신의 모습을 서인영은 예능을 통해 똑똑히 세상에 알린 것이다. 그리고 그 두 프로로 하여금 점점 안티층 또한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한 가지 더. 사실 서인영이 엄정화, 이효리와 함께 데뷔한 것이 '무모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삼각구도를 서인영이 형성한 것이 그녀의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서인영의 'Cinderella' 안무를 보면 중간중간 '신상'과 관련된 퍼포먼스가 나온다. 그리고 1집 '너를 원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악동' 특유만의 끈적끈적한 보이스가 노래 코러스에서 울려 퍼진다. 그렇다. 그녀는 예능프로에서 쌓아왔던 '서인영'이라는 브랜드를 가요계까지 이끌고 간 것이다. 만약 서인영이 엄정화, 이효리와 동시에 무대에 나서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그녀가 올해 심어놓았던 이미지는 뒤로 퇴색했을 런지 모른다. 오히려 꾸준히 심어놓은 자신만의 이미지를 통해, '서인영의 카이스트'와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이끌어온 팬층을 '가수' 서인영의 팬으로 감싸버린 것이다. '예능계'-&gt;'가요계'로의 급전환을 통해 서인영은 안정적으로 컴백할 수 있었고, 그 뿐 아니라 튼튼한 가창력과 춤 솜씨로 인해 많은 네티즌들로부터 이효리나 엄정화보다도 한편으로는 낫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분명 예전의 서인영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녀는 영리했던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전진의 '붕' 떠버린 이미지, 이제는 확립해야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전진은 경우가 다르다. 장수그룹인 신화를 통한 입지에도 불구, 전진은 그동안 많은 예능 프로에 출연했지만 자신만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사실 전진이 올해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네티즌·인터넷 폐인 등으로부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스틴 진버레이크' '무탈 춤' 등 웃대나 디시인사이드에서 전진의 춤동작과 특이한 머리모양, 중독성 강한 노래는 일반 가요청취자들보다 네티즌들에게 더욱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전진에 대한 패러디가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진이 '무한도전'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PD의 센스 탓인지는 몰라도, 전진이 출연할 때 그를 지칭하는 자막은 '전스틴 진버레이크'로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에 네티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상당수의 네티즌들이 '무도'의 팬인 걸 감안하면, 전진의 예능 프로그램으로의, 그것도 가장 인기가 많은 예능프로의 안착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무도'에서 나오는 전진만의 돌출적인 행동, 엉뚱한 이미지, 그리고 준수한 외모는 점점 '무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그렇게 전진의 '제대로 된' 예능 안착은 시작해 보이는 듯 했다.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20/blog/2008/08/15/08/27/48a4bf54a18b4&amp;filename=0807diam7.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20/blog/2008/08/15/08/27/48a4bf54a18b4&amp;filename=0807diam7.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러나 얼마 후에 우리는 전진의 새로운 프로 소식을 들었다. 바로 '전진과 여고생4'가 그것이다. 자칭 '노는' 여고생 4명과 동고동락하며 아빠로써 조언을 주겠다는, 그런 '건전한' 의도로 시작한 프로로 보이지만, 그러기에 전진의 출연은 너무나 무모했다. 일례로, 욕설과 상소리가 난무하는 고등학생들의 사이에서 우유부단하는 그의 모습은 차마 보기가 안쓰러웠다. 굳이 그런 프로를 출연해야 했을까? 전진이 자신의 이미지-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를 확립하기 위해선 자신만의 어젠다에 맞춘 프로에 출연했어야 맞다. 가요계의 '전스틴 진버레이크'가 예능계의 '무도'로 진출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전진은 '무도' 이후 어찌 할 줄을 몰랐던 것 같다. 서인영이 자신의 꾸준한 이미지를 본인과 맞는 두 프로그램에 맞춰 입지를 맞추는 한편, 전진은 의도와 배경이 완전히 다른 두 프로그램에 출연함에 따라 본인의 입지를 흐리게 해놓았다. 붕 뜬 구름처럼 되버렸다. 물론 전진이 어떤 프로에 출연하느냐가 대수는 아니다. 어쨌든 예능프로에 출연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겠지만, 결국 그는 프로를 지켜보는 시청자들과 그들의 입맛을 고려해야 하는 연예인인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서인영 &quot;예능계-&gt;가요계&quot;, 전진 &quot;가요계-&gt;예능계&quot;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물론 서인영이 본인의 이미지 어젠다를 형성했다고 그녀의 성공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전진이 케이블 프로에 출연했다고 그의 앞길에 장애물이 놓인 것이라 단정하기도 이르다. 문제는, 시청자와 가까워지기 위한 연예인이라면 본인과 어떤 프로그램이 맞는지, 그리고 어떻게 팬 층을 확보하는 게 최선의 지름길인 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최소한 현재까지 서인영은 옳은 선택을 했다. 그러나 전진은 조금 비틀거리는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사실 무도 출연까지만 해도 상승했던 그의 이미지가 많은 네티즌들의 안타까움 속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전진과 여고생4'를 통해 어떤 모습을 보일 지 예측하기는 너무 이르지만, 최소한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전진은 자신이 속해야 할 곳에 있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아쉬움이 크다. 오히려 그 자리에는 김구라와 같은 독설 연예인이 어울린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아직 갈 길이 먼 두 연예인이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과제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서인영은 예능을 통해 축적했던 그녀의 이미지를 이제는 가수의 모습으로 보여야 한다. 그래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흔들림 없는 라이브와 엄정화, 이효리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퍼포먼스가 우선이다. 예능에서는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 본업인 가수에 충실해야겠다. 전진은 그 반대다. 오랜 세월동안 신화를 통해 형성한 카리스마 이미지를 둥글게 만들고 있는 과정이니, '무작위' 예능은 곤란하다. 이제는 그가 예능을 통해 덮어져 왔던 그의 이미지를 공개할 차례다. 어떤 프로를 고르느냐에 따라 '어떤 전진'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그는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 그것이 전진이 팬 층을 더욱 두텁게 확보하는 길이다.&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gt;
&lt;P class=바탕글&gt;따로 의견이 있으면 이메일이나 미니홈피로도 알려주세요.&lt;/P&gt;
&lt;P class=바탕글&gt;이메일: &lt;A href=&quot;mailto:enish27@hanmail.net&quot;&gt;enish27@hanmail.net&lt;/A&gt;&lt;/P&gt;
&lt;P class=바탕글&gt;미니홈피: &lt;A href=&quot;http://www.cyworld.com/enish27&quot; target=&quot;_blank&quot;&gt;www.cyworld.com/enish27&lt;/A&gt; &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서인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서인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우리 결혼했어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우리 결혼했어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전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전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서인영의 카이스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서인영의 카이스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전진과여고생4&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전진과여고생4&lt;/a&gt;
	    </content>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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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도피유학 잘못했다가 ‘20대 고등학생’ 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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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08-13T08:31:05Z</updated>
	    <published>2008-08-13T08:31:0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해마다 수많은 학생들이 미국&#8231;캐나다 등 영어권 나라로 유학을 온다. 80,90년대야 유학파들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요새는 여유가 되는 가정에서는 누구나 자녀들을 좀 더 좋은 여건에서 교육을 시키기 위해 유학을 택한다.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도 수많은 한인 학생들을 찾을 수 있다. 그 중 태반은 유학생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물론 유학을 오는 의도와 목적은 다양하겠지만, 그 중 몇몇은 ‘도피성’으로 보인다. 물론 도피성 유학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신물을 느껴 자녀가 해외교육에 좀 더 맞지 않을까 고려하는 부모님들도 계실 수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그리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현지 교육에는 잘 적응해 현지 대학에 입학하는 등 성공적인 케이스를 난 여럿 봐왔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16/blog/2008/08/13/08/42/48a21fdb20e59&amp;filename=file_down.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1.blog.daum.net/image/16/blog/2008/08/13/08/42/48a21fdb20e59&amp;filename=file_down.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그런데 개중엔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좀 있다. 아니, 생각보다 꽤 많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캐나다의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1~2년을 꿇고 입학하는 경우가 가능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오는 학생들이 이런 길을 택한다. 그런데, 이렇게 캐나다에서 몇 년을 낮춰 들어가는 도피성 혹은 ‘늦깎이’ 학생들에게 종종 큰 문제가 생기곤 한다.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그래, 외국 가면 달라지겠지”, “어차피 공부 못할 것, 외국물 좀 먹어봐라”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다 큰 코 다친다. 몇 가지 예를 소개하고자 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 1. 밴쿠버 시에 한 공립학교를 입학했던 A 군. 한국에서는 고1까지 마쳤지만, 현지에서 10학년, 그러니까 고1과정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해 2년을 낮춰 입학했다. 그런데 A군이 유학을 시작했던 이유는 딱히 외국에서의 공부를 생각했었기 때문이 아니다. 남들 다 하니깐, 한국보다 해볼 만하겠지, 라는 생각에 유학을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11,12학년이 닥치자 A군에게 벼락이 떨어졌다. 한국 중고등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 3년을 ‘무사히’ 지내면 졸업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캐나다는 달랐다. 고2, 고3과정 영어가 필수였던 것이다. 그 두 과목을 정상적으로 ‘패스’하지 못하면 졸업은 어림도 없는 것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벌-써 졸업했을 나이인 19세인 A군은 지금 아직도 고2과정의 영어를 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현지 학생들에게는 고2,고3과정의 영어 학점을 따기가 어렵지 않겠지만, 애초에 공부에 관심이 없던 A군에게 캐나다 고등과정 영어과목을 이수하기란 지옥 같았다. 그리고 A군은 어느새 20대를 바라보고 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 2. 친구의 동생이었던 B군. 한국에 있을 때부터 겉멋 부리는 걸 좋아하고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아이였다. 부모님의 등에 떠밀려 어떻게 유학이라는 결정을 내리긴 했지만, A군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필수학점을 성공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캐나다고등교육에 발목을 잡혔다. “언젠가는 졸업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1년, 2년을 비슷한 부류의 학생들과 함께 낮추다보니 어느새 20대가 되었다. 현재 학교에서는 그 학생에게 나이가 너무 많으니 더 이상 받을 수 없다고 한단다. 흥미로운 사실은, B군과 같은 학생들을 받아주는 사립학교들이 캐나다 내에 많다는 것이다. 또래 친구들은 벌써 새내기 대학생 혹은 사회인이 되었지만, 캐나다고등교육의 규정에 발이 묶여 졸업은 못하고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는 ‘늙은 고딩’, B군 앞에 내 가슴도 저렸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4/blog/2008/08/13/08/42/48a21ff6bef21&amp;filename=file_downl.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4/blog/2008/08/13/08/42/48a21ff6bef21&amp;filename=file_downl.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 3. “몇 년생이세요?”, ”88년생이요.“ C양의 친구들은 지금쯤 한국에서 막 대학교 2학년을 끝내고 있지만, 이 학생은 놀쓰 밴쿠버 지역의 한 사립 고등학교 졸업반에 있다. 고3때, 수능을 준비하던 도중 학교를 자퇴하고 제 발로 캐나다의 고 1과정에 입문한 C양. 캐나다의 고등교육과정을 맛보고 싶어 학년을 낮추고 보았지만, 캐나다 고등학생이 된지 얼마 안되어 후회가 밀려왔다. 고3 수능과정을 거치지 않고 내신만으로도 진학하고자 희망하던 캐나다대학교에 충분히 진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뜬 구름 같은 소리이고, 캐나다에서 공부를 계속하자니 만족할 성적을 얻어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지 걱정이다. 이게 바로 한국에 있을 때 캐나다대학 진학에 대해 제대로 조사해보지 않은 결과다.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앞선 예를 조금 살펴보자면,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학생이 공부에 의지가 없는 경우다. 한국처럼 결석 없이 꼬박꼬박 출석해서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캐나다 고등학교에서 졸업요건으로 요구하는 과목들은 대개 현지 학생들도 어려워하는 고2,고3과정 영어, 영문학 등이 즐비하다.(학교,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래서 만약 학생이 공부에 흥미가 없는 상황에서 유학을 시작한다면, 그만큼 졸업에 대한 리스크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미국, 캐나다대학 진학에 있어 꼭 현지 고등학교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압박감에 유학을 시작할 때이다. 물론 좋은 생각일 수도 있지만, 한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충분히 북미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데, 섣불리 조바심을 갖다가 2,3년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등학생으로 지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예 중 C양은 무려 6년을 고등학교에서만 지낸 셈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조금 냉정한 조언을 하자면, 공부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우선 고등학교라도 한국에서 졸업하고 유학을 나중에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또래들은 앞서 나가고 있지만, 학문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 해외로 나오다보니 비싼 학비와 홈스테이 비용, 그리고 시간이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년을 낮추는 것이 ‘대세’인 것처럼 생각하는 몇몇 철없는 학생들로 하여금 주변 유학생들에게까지 유행이 되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유학을 시작할 때는 다들 외국교육이라는 환상에 젖지만, 미래에 대한 분석이 결여된 상황에서 한국 고교에 자퇴서를 제출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이것은 도피성 유학이거나, 늦깎이 유학을 시작하는 고등학생들 모두에게 포함된다. 유학을 고민하고 시작하는 학생, 가족도 “일단 외지에 도착하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할 지 모르지만, 대책 없는 준비로 하여금 낭패를 보는 경우가 굉장히 많이 생겨나고 있다. 고등학교 유학을 생각하는 많은 이들에게 조금의 시행착오를 줄이고자 하는 바람에 글을 올린다. &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유학&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유학&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캐나다 여자친구, “한국군대는 여성을 ‘차별’한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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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08-11T08:43:06Z</updated>
	    <published>2008-08-11T08:43:0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대한민국에서 성차별 문제가 관련된 이슈를 언급할 때마다 종종 사람들은 얼굴을 붉히곤 한다. 군대, 여성부, 가산점… 남녀평등은 서구사회에서 유래한 개념인 게 틀림없지만, 각 나라에서 이해되는 바는 다른 것 같다. 나는 얼마 전 친한 캐나다인 친구(여자)와 한국과 관련된 이유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친구는 일부 정책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인상을 주었다. 논란이 큰 병역의무와 관련해서는, 의무가 여성에게 부과되지 않는 것이 한국여성이 차별을 받는 것이라는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간단하게 기억나는 대로 대화를 소개한다. 친구의 이니셜은 T로 한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T: 왜 한국군대는 여성이 가지 않는 거지?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야?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나: 한국 내에서 여성이 병역의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 이유로는 종종 신체적으로 남성에 비해 군 의무가 맞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곤 해. 그래서 남자들만 가게 되는 거지.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T: 그래도 한국에 여군이 있을 거 아냐?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나: 그건 사실이지. 보통 대학 졸업 후&amp;nbsp;부사관으로 지원하는 친구는 몇몇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1/blog/2008/08/11/08/41/489f7ca903da4&amp;filename=D4111-17.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1/blog/2008/08/11/08/41/489f7ca903da4&amp;filename=D4111-17.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T: 그러면 말이야. 여성 본인이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군대 내 훈련이나 기강을 받아들일 조건이 된다는 거 아냐? 부적합해서 지원을 못하는 게 아니라, 너희 나라가 여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거 아냐?&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나: 그런 건 아니야. 행정사병 쪽으로도 얼마든지 여성군인들이 있다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T: 이봐, 내 말은 그런 쪽이 아니야. 남성들에게는 ‘의무’이지만, 여성들에게는 ‘선택’인 거 아냐? 이거는 분명히 차별이라고.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나: 그래… 차별일 수 있지. 한국남자들도 그런 점을 알고는 있지만, 법이 그러니 묵묵히 군대를 갔다 오게 되는 거지.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T: 내 말은, 남성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거야.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나: 응? 무슨 말이야?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T: 한국여성들이 뭐가 부족해서 의무병으로 남성처럼 뛸 수 없는 거지? ‘선택’이 가능하다는 말은 곧 여성들에게도 남성처럼 의무가 부과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거야.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나: 계속 말해봐.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T: 한국여성들은 이 점에 대해 굉장히 자존심 상할 것 같은데? 한국여자가 뭐가 못나서 군대에 갈 의무를 부과 받지 못하는 건데?&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대화가 이 쯤 되자 머리가 ‘땡’하고 울렸다. 사실 대한민국의 몇몇 남자들에게 군대에 관해-남녀평등이란 관점에서-생각할 때는 2년이란 세월을 남자라는 이유로 군에서 낭비(?)한다는 피해의식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런 피해의식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히려 여자를 보호받아야 할 대상, 군대에 비 적합한 대상으로 분류함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남자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T: 캐나다군대는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지원을 하고 훈련을 받는 걸로 알고 있어. 지원제라 그런지 남녀가 공평하게 선택의 자유를 얻게 되는 거지. 만약 우리도 징병제였다면, 남녀가 함께 의무를 이행해야지 공평한 거야. 우리가 뭐가 남자보다 못난 게 있다고 군 의무를 면제받아야 하지?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사실 징병제인 우리나라 말고도 이스라엘에서는 남녀에게 함께 병역의 의무를 부과한다. 이스라엘이 ‘서구사회’인지는 몰라도, 어느 샌가 모르게 ‘평등’이라는 개념은 한국사회에서는 편의적으로 이해되는 건지 모르겠다. 더 나아가 한국남자들의 피해의식(?)이 쟁점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여성이 왜 남자보다 신체적으로 열등한지, 그렇다면 왜 지원을 통해 군인이 될 수 있는 지 의아해하는 이 친구 앞에 나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17/blog/2008/08/11/08/42/489f7cc8252e3&amp;filename=D4111-11.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17/blog/2008/08/11/08/42/489f7cc8252e3&amp;filename=D4111-11.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교정을 거쳐 학교운동장을 거치니 들판 위에 캐나다 현지 남학생, 여학생들이 몸을 부대끼고 축구를 하고 있다. 분명 축구는 몸싸움을 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스테미나가 필요로 하는 운동이지만, 그런 ‘변명’ 따위는 현지 여학생들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학생들이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이 여학생들에게는 남학생들에게 뒤지기 싫은 욕심과 열정이 있었다. 이것이 캐나다사회의 ‘남녀평등‘이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그리고는 들판 뒤쪽에도 축구를 하는 한인학생들이 있었다. 비형식적인 놀이에도 불구하고 남학생들은 거칠게 몸싸움을 즐기고, 여학생들은 근처에서 응원을 하고 있었다. 한국사회에서는 굉장히 익숙한 장면이지만, 캐나다학생들과 비교할 때는 굉장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한국에서는 흔해 빠진 여 학생회, 혹은 여성부와 같은 학내, 정부기관들이 북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성폭력 관련기관은 분명 있다.) T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여성의 권익을 찾기 위한 조치들은 “여성을 약하게 만들어버리는” 역설적인 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없으면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지 못하나? 힘을 잃어버리나?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혹자는 전통적으로 한국이 가부장적인 제도가 역사적으로 심어져 있어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진출이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한국이나 서구사회나 역사적으로 가부장제는 어디든지 존재했다. 결국 여성이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할 때 진정한 약자가 되는 것이라고 T는 보는 것이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실력과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곳이면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일하게 대우를 받길 원하는 걸까? 꼭 캐나다여서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한국에서의 고유한 남성상, 여성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만의 풍습이 서구사회에서 흘러온 ‘남녀평등’이라는 개념을 우리식대로 풀이한 걸 수도 있다. 여성이 신체적으로 나약하다는 이유가 곧 보호받아야 할 대상, 병역의 의무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이것을 T와 같은 친구들은 “여성들이 자존심 상해야 할 일”이라고 부른다. &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T:&amp;nbsp;군 입대가&amp;nbsp;어차피 의무적이라면, 한국여성으로는 남성들을 얄미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amp;nbsp;결국 한국여성들이 병역의 의무를 공평하게 바라보지 않는 거야. 자신들에게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에 화를 내지도 않는다는 거지. 참 우스꽝스럽지 않아? 여성들에 대한 ‘차별’에 대해?&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군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군대&lt;/a&gt;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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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try>
	    <title>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캐나다대의 '몰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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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ag:blog.daum.net,2009:enish27.16817048</id>
	    <author>
		    <name>조진형</name>
	    </author>
	    <updated>2008-08-10T06:56:55Z</updated>
	    <published>2008-08-10T06:56:55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엘리트 사관학교'라며 유명세를 얻으며 서울대가 자유전공학부의 런칭을 기대하고 있다. 이르면 2009학년부터 운영해 서울대 내 엘리트 양성소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김샌 소리를 할 수는 없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한 쪽에서는 로스쿨이나 의학전문대학원을 위한 '통로'로 변질 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서울대 내 학생들 간의 위화감을 조성할 수도 있다는 걱정 섞인 말도 오가고 있다. 한국의 뛰어난 학생들을 모으려 하는 서울대의 노력이 성공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로 예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우선적으로 내가 다니는 캐나다대학의 자유전공학부(Interdisciplinary)의 '몰락'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물론 내 경험에 한정되어 말하는 것이기에 어두운 점이 좀 더 부각될 수 있고, 혹자는 필자의 편견이 다분하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내 주변에서 자유전공학부를 기피하는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 왜 그 학부의 인기가 설립 이후 몇 년 만에 떨어졌는지 다뤄보고 싶다. 이를 통해 서울대 뿐 아니라 자유전공학부에 대해 만연한 기대를 하거나 지나치게 긍정적·부정적으로 보는 입시생들에게 조금이나마 가치가 실린 정보를 제공하고 싶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28/blog/2008/08/03/11/47/48951c47e7910&amp;filename=서울대.jpg')&quot;&gt;&lt;IMG style=&quot;WIDTH: 492px; HEIGHT: 392px&quot; height=516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28/blog/2008/08/03/11/47/48951c47e7910&amp;filename=%EC%84%9C%EC%9A%B8%EB%8C%80.jpg&quot; width=686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center&gt;&amp;nbsp;&lt;FONT color=#0021b0&gt;서울대학교 홈페이지 캡쳐&lt;/FONT&gt;&lt;/P&gt;&lt;/SPAN&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한국대학과 캐나다대학의 자유전공학, 어떻게 다른가?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서울대가 어느 대학을 벤치마킹했을 지는 모르지만, 캐나다의 UBC는 약 몇 년 전부터 자유전공학과에 대한 선전을 국내외로 해왔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학문으로의 접근을 통해 학생들에게 폭넓은 시야를 제공해 '글로벌 엘리트'로 양성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비슷한 의도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UBC 자유전공학부'는 말이 안 된다. 이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 차이를 미리 숙지해야 &quot;UBC의 결과가 안 좋았으니 서울대도 안 좋을 것&quot;이라는 허황된 기대를 차단할 수 있다. 언제까지나 '자유전공'이라는 틀 내에서 써내려가는 글이므로 그만큼 균형 잡힌 정보를 얻는 것도 네티즌들의 몫일 것이다. 이 두 대학의 차이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기에, 유사점에 집중해 알아보기로 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먼저 한 가지 매우 중요한 다른 점이 있다면, 서울대가 1학년 때부터 학부 자체를 새로 개설하는 반면, UBC는 자유전공'학과'이다. 캐나다대학에선 일반적으로 3학년부터 전공이 시작되기에 그 때부터 여러 학부의 학생들이 자유전공학과로 진입해 전공 선택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UBC학생들에게는 1,2학년 동안 자유전공학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지만, 서울대학생들의 경우는 입학 때 결정이 되어버리기에 조금은 대입시기에 신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1.blog.daum.net/original/26/blog/2008/08/03/11/49/48951cd0062be&amp;filename=UBC.jpg')&quot;&gt;&lt;/A&gt;&lt;/P&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2.blog.daum.net/original/32/blog/2008/08/03/11/51/48951d3d82c35&amp;filename=중앙일보.jpg')&quot;&gt;&lt;IMG hspace=0 src=&quot;http://cfs12.blog.daum.net/image/32/blog/2008/08/03/11/51/48951d3d82c35&amp;filename=%EC%A4%91%EC%95%99%EC%9D%BC%EB%B3%B4.jpg&quot;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0021b0&gt;출처: 중앙일보 2008년&amp;nbsp;7월 15일자&amp;nbsp;'서울대 '엘리트 사관학교' 내년 출범&quot;&lt;/FON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amp;nbsp;&lt;/P&gt;
&lt;P align=left&gt;&lt;/SPAN&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비슷한 점을 살펴보자면, 서울대와 UBC가 2~3개 이상의 전공을 한 번에 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비슷하다. 기존의 단수/복수 전공의 차원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학문을 다양하게 맛보는 것이다. 게다가 하나의 단일한 학부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대·인문대·사회과학대 등의 연대를 통해 학생들의 학문을 책임진다. 다양한 학부 출신의 교수들이 강좌를 맡는 것은 당연하다. 전공에 상관없이 인문학·과학 등 서로 상반되는 학문을 동시에 전공할 수 있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형식. 이렇게 큰 틀에서 보면 서울대와 UBC의 자유전공학부/학과는 기초적인 이상에서 흡사한 점이 많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left&gt;
&lt;P class=바탕글 align=left&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전공/소속 불분명'+'대학원 걱정'+'타학부와 교류↓' = '자유전공학과'의 어두운 단면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먼저 밝히 건데, 나는 캐나다대학의 자유전공학과가 실패했다고 단언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설립 때부터 몰아왔던 인기에 비해 학생들로부터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저조했고, 더 나아가 설립된 지 몇 년 만에 전공진입 요구학점이 UBC 내 학과 중 최하위로 떨어져버렸다. (※일반적으로 캐나다대학에서 전공 진입키 위해선 1~2학년 평균학점이 B 이상이 되어야 한다. 초창기에는 흡사하거나, 추가 원서를 요구하는 등 입학조건이 까다로웠던 이 자유전공학과의 전공진입 학점은 이제 C-대로 떨어져 버렸다.) 학교 내 몇몇 자존심 강한 학생들에게 이 캐나다 자유전공학과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으로 전락되어 버렸다. 처음 기대했던 '엘리트 양성소'라는 기대와는 완전히 딴판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더 나아가 이미 3학년에 전공을 선택해버려 학점을 자유전공학과에서 이수한 몇몇 학생들은 뒤늦게 전공을 바꾸려 해도 시기가 늦어버려 추가 학기를 다녀야 하는 부담을 안기도 한다. 이 점은 학부 차원에서 시작하는 서울대와 다른 점인데, 만약 2009학년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로 입학 이후 전과를 원하는 1학년 학생들에게는 조금 덜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자연대·인문대·사회과학대처럼 하나의 독립된 학부에서 타 학부로 옮겨야 한다는 사실은 한국학생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짐일 수 있다. 그래서 초기의 결정이 매우 중요하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에너지·시간·학점 등에서 여러 가지 희생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내가 듣고 보았던 경험을 구체적으로 제공하고자 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 1. 재작년 경제학과에 다니는 한 선배를 만났을 때, 2학년이었던 나는 전공 진입을 위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당시는 캐나다대학 내 자유전공학과가 런칭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지만, 생각보다 주위에 그 전공을 택한 사람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한 때는 자유전공학과를 통해 인문학·과학을 한 번에 전공해 경제학·통계학 쪽으로 공부하기를 생각했던 선배. 그러나 그는 결국 인문학 내 경제학 전공으로 발길을 옮겼다. 입학한 지 1년만에 편입한 것이다. 우선적으로 초기 런칭에서 자유전공학과의 인지도는 국내에서-선전에도 불구하고-미비했었다. 더 나아가 막상 자유전공학이라고 하면 본인의 전공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되어 보인다는 이미지가 강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quot;뭐 전공하세요?&quot;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전공이름보다 설명이 먼저 들어가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공부를 하면서도 자신의 학문에 대한 애정·전문성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아 결국 경제학으로 편입해야 했다는 그 선배. 한 우물이라도 깊게 파자, 라는 생각에 단일 전공을 선택했다는 그 선배에게 자유전공학이란 붕 뜬 이야기 같았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 2. 필자가 전공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자유전공학과를 전공했던 선배가 대학원 시험을 두고 안절부절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대학원 면접을 목전에 두고 있는데, 입학을 희망하고자 하는 대학원에는 자유전공학부가 존재조차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을 고려할 때, 학부와 비교해 명성·퀄리티·교수진 등에서 우월한 학교를 생각하게 되는데, 만약 그 학교에서 자유전공학과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해당 학과생들의 부담이 커지게 된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
&lt;P align=left&gt;&lt;A href=&quot;javascript:realImgView('http://cfs13.blog.daum.net/original/29/blog/2008/08/03/11/53/48951da821a8a&amp;filename=UBC.jpg')&quot;&gt;&lt;IMG style=&quot;WIDTH: 558px; HEIGHT: 285px&quot; height=298 hspace=0 src=&quot;http://cfs13.blog.daum.net/image/29/blog/2008/08/03/11/53/48951da821a8a&amp;filename=UBC.jpg&quot; width=644 border=0&gt;&lt;/A&gt;&lt;/P&gt;
&lt;P align=center&gt;&lt;FONT color=#0021b0&gt;&amp;nbsp;캐나다 UBC 자유전공학과 홈페이지. 선전에도 불구, 학생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아보인다.&lt;/FONT&gt; &lt;/P&gt;&lt;/SPAN&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더 나아가 자유전공학과, 라는 학부 때 전공이 특정전공으로 좁혀져야 한다는 기대 아래 그 선배는 대학원 면접에서 타 학생들에 비교해 포인트가 떨어졌다고 한다. 그 학생들에게는 스스로의 '소속감'·'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특정단일전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본인이 떨어진 이유가 본인이 '자유전공학'이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기는 싫다지만, 하나의 단일 전공을 본인이 가졌더라면, 면접에서 좀 더 확립적인 본인의 정체성,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게 아니겠냐는 게 선배의 설명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이 예는 아이로니컬하게도-일각에서 제기됐던-자유전공학부가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을 위한 지름길이 아니냐는 의혹을 잠재우기도 한다. 입시에는 어차피 타 대학의 단일전공 학생과 '맞붙는' 것이기에 아무리 전공 선택의 폭이 넓다한들 대학원에게 익숙치 않은 전공일 경우, 본인의 전문성이 '희미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학원에 유리한다고 기대했더니, 오히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lang=EN-US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fareast-font-family: 굴림&quot;&gt;# 3. 캐나다대학의 경우 자유전공학과는 인문학부에서 설립의지가 있었고, 지금도 인문학부를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짜여있다. 물론 Humanities, Social Sciences, Creative and Performing Arts, Science 등의 다양한 학문을 맛볼 수 있지만, 우선적으로 타 학부/학과와의 교류가 미진하다. 학생 수가 적어 인기가 없다보니 생겨난 결과다. 또 학과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학생회조차 타 학생회와 비교해 구체적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단순히 학생회·학과·학부 등과의 교류가 없다고 자유전공학과의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초창기의 자유전공학과의 선전과 그를 위해 쏟아 부은 인프라와 비교해 학생들의 부응이 낮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전공진입 요구학점이 대폭 낮아진 것이 그 반증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 align=center&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 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결국 선택도, 책임도 본인의 것이다&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끝으로, '대입'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아무리 좋은 대학에 입학한다 한들,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여러모로 고생을 하는 새내기 학생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이 점은 캐나다 뿐만 아니라 한국학생들도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자유전공학과의-한국 이상의 선전에도 불구하고-학생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직전에 '수소문'해서 찾아야 했고, 얼마 전부터 그나마 알고 지내던 그 학과 학생들도 결국 편입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결론적으로,&amp;nbsp;외부에서 몰라주는 독립적인 '섬'을 택하느니, 좀 더 안정적이고 '전공'과 관련해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싫다는 것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자유전공에 익숙해 온 몇몇 캐나다학생들의 의견이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물론 강의의 질도 하나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고, 서울대가 UBC와 비교해 성공적인 케이스로 발돋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할지라도 선택은 결국 본인이 내리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광고·선전 등에 몰두하면 안된다고 본다. 지나치게 우려·의심을 하는 것도 야심차게 자유전공학부를 준비해 온 서울대에게 예의가 아니지만, 결국에 책임은 학생들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몇몇 캐나다학생들의 몇몇 경험을 한번 고려해보기를 권한다. &lt;/SPAN&gt;&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class=바탕글&gt;&lt;SPAN style=&quot;FONT-FAMILY: 굴림; mso-hansi-font-family: 굴림; mso-ascii-font-family: 굴림&quot;&gt;※ 캐나다대학의 Interdisciplinary studies는 '융합학'이라고 해석해야 하지만, 기본 커리큘럼과 틀을 살펴보았을 때 한국대학과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 '자유전공학'으로 통일했습니다.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서울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서울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UBC&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UBC&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A5jg&amp;amp;tagName=자유전공학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자유전공학부&lt;/a&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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