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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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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행함(Doing)과 존재함(Being)</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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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30px; LINE-HEIGHT: 180%; PADDING-LEFT: 30px; PADDING-RIGHT: 30px; PADDING-TOP: 30px&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행함(Doing)과 존재함(Being)&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독일의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890) 교수의 『소유와 존재』란 책이 있다. 인간이 행복을 누리며 인간답게 사는 길이&amp;nbsp; ‘소유(Having)’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다운 사람으로 ‘존재함’에 있다는 내용이 그 책의 요지이다. 옳은 말이다. 우리들 크리스천들에게는 더 할 나위 없이 지당한 말이다.&lt;BR&gt;&amp;nbsp;&lt;BR&gt;언젠가 이 땅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많이 소유하고 살았던 삶이 무슨 뜻이 있겠는가? 어떤 사람으로 살았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살았느냐? 그렇지 못하고 가지고 누리는 데에 머물러 살았느냐?는 물음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lt;BR&gt;&amp;nbsp;&lt;BR&gt;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되는 일보다 일하는 데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끊임없이 일하고 일하며 일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다운 사람 크리스천으로서의 향기를 발하는 삶의 모습에서는 점점 멀어져 간다. 결국은 일만 남고 사람은 망가지게 된다. 사람 자체가 망가진 후에 소용이 있겠는가?&lt;BR&gt;&amp;nbsp;&lt;BR&gt;그런 점에서 구약성서의 욥기에 등장하는 욥이란 인물이 우리들에게 마땅한 본보기가 되는 인물이다. 욥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고 욥기는 일러준다. 그런데 욥이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던가?&amp;nbsp; 무엇을 행함으로나 많은 것을 가짐으로서가 아니었다. 욥기 1장과 2장에서 욥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던 삶의 내용을 3번에 걸쳐 다음 같이 일러 준다.&lt;BR&gt;&amp;nbsp;&lt;BR&gt;“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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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벽 앞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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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8T08:20:5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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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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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30px; LINE-HEIGHT: 180%; PADDING-LEFT: 30px; PADDING-RIGHT: 30px; PADDING-TOP: 30px&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벽 앞에서&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되매...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열왕기하 20장 1,2절)&lt;BR&gt;&lt;BR&gt;실존철학에서 쓰는 용어 중에 한계상황(限界狀況, Boundary Situation)이란 말이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을 일컫는다. 그런 한계상황을 4가지로 꼽는다.&lt;BR&gt;&lt;BR&gt;첫째는 생로병사이다. 어느 누구도 태어나고 늙어 병들어 죽는데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한계상황이다.&lt;BR&gt;&lt;BR&gt;둘째는 고독이다. 인간은 홀로 있을 때나 무리 속에 있을 때나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고독이 나의 고향이다”고 했다.&lt;BR&gt;&lt;BR&gt;셋째는 투쟁이다. “The man is war.”란 말이 있듯이 인간 삶에서 투쟁은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다.&lt;BR&gt;&lt;BR&gt;넷째는 죄(罪)이다. 인간은 숨 쉬는 한 죄를 지으며 산다는 데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죄는 한계상황이다.&lt;BR&gt;&lt;BR&gt;구약성경 열왕기하 20장에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된 상황에 처하였다. 요즘 말로하자면 악성 피부암 쯤 되는 병이다.&lt;BR&gt;&lt;BR&gt;그 때 그는 다른 수단 방법에 의지하려들지를 않고 낯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히스기야가 마주하였던 벽이 바로 죽음이란 한계상황의 벽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lt;BR&gt;&lt;BR&gt;“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라.”(열왕기하 20장 5절)&lt;BR&gt;&lt;BR&gt;사노라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벽에 부딪히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때에 우리가 선택할 길이 바로 히스기야의 선택이다. 벽 앞에서 무릎을 굻고 기도드리는 선택이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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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꽃밭길과 가시밭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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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7T09:09:48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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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0px; LINE-HEIGHT: 180%; PADDING-LEFT: 30px; PADDING-RIGHT: 30px; PADDING-TOP: 30px&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꽃밭길과 가시밭길&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린도후서 8장 9절)&lt;BR&gt;&amp;nbsp;&lt;BR&gt;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 중에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의 『인간경영』이란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이에야스가 삶을 쓰는 용인술(用人術)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한 사람에게 부를 주든지 권력을 주든지 명예를 주든지 어느 한 가지만 주었다고 하였다. 부와 명예와 권력까지 모두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용심을 내다가는 결국은 모든 것을 잃게 된다.&lt;BR&gt;&amp;nbsp;&lt;BR&gt;그렇다면 예수를 따르는 크리스천들의 경우는 어느 경우일까? 부를 따를 것인가? 명예를 다를 것인가? 아니면 권력을 다를 것인가?&lt;BR&gt;&amp;nbsp;&lt;BR&gt;한국교회에는 신학적으로 두 가지 흐름이 공존하고 있다. 첫째는 ‘번영신앙’이라 할 수 있겠고 둘째는 ‘고난신학’이라 할 수 있겠다. 번영신앙은 주로 부흥사들이나 은사(恩賜)주의 목회자들이나 대교회 목회자들이 주도한 흐름이다.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마땅한 축복으로서 부와 건강과 행복을 누림이 복음이라고 말한다. 이런 신앙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성공신앙’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lt;BR&gt;&amp;nbsp;&lt;BR&gt;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도 물론 있지만 “자신의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도 있다. “하나님과 재물 중에 어느 한 가지를 섬기라”는 말씀도 있고&amp;nbsp;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라”는 말씀도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먼저 고난을 선택하라”는 말씀이 있다. 이런 흐름을 일컬어 ‘고난신앙’이라 할 것이다. 고난신앙은 다른 말로는 ‘십자가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다.&lt;BR&gt;&amp;nbsp;&lt;BR&gt;번영신앙을 꽃밭길이라 한다면 고난신앙은 가시밭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천들이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번영신앙을 품고 꽃밭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고난신앙을 품고 가시밭길을 갈 것인가? 고린도후서 8장 9절에서 정답을 일러 준다. 부요한 자이지만 그리스도와 이웃을 위하여 가난의 길, 고난의 길을 선택하는 가시밭길을 가라고 일러 준다. 그 길이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길이라 일러 준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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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죽음에 이르는 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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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6T09:05:3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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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0px; LINE-HEIGHT: 180%; PADDING-LEFT: 30px; PADDING-RIGHT: 30px; PADDING-TOP: 30px&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죽음에 이르는 병&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사람이 한 평생을 사노라면 예상치 못한 절망에 빠져드는 경우가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진지하면 할수록, 정직하고자 하면 할수록 우리는 약한 자신에 대하여 절망케 된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엘게골(S. A. Kierkegaard, 1813~1855)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책을 남겼다. 이 책에서 그는 말한다.&lt;BR&gt;“인간 육체의 질병은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육체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두려워하여야 할 죽음에 이르는 질병은 정신의 질병 곧 절망의 병이다.”&lt;BR&gt;&lt;BR&gt;그는 절망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무엇에 대하여” 절망하는 것과 “자기 자신에 대하여”절망하는 것이다. 치명적인 절망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는 것이라 지적하였다. 성경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절망에 있었던 사람들을 많이 발견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선지자 엘리야이다. 그는 그는 절망에 빠져 사막 한 가운데로 들어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였다. 지난 날 한 때 탁월한 영권(靈權)으로 온 나라를 흔들었던 그였지만 다시 곤두박질하여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여 죽기를 탄원하였다.&lt;BR&gt;&lt;BR&gt;그러나 우리가 엘리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그가 절망에 처하여 세상으로 가지 않고, 자기 자신 속으로 숨은 채 절망을 회피하려들지를 않고, 자신의 절망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은 점이다. 이것이 보통 사람 엘리야를 위대한 사람 엘리야로 만든 것이다.&lt;BR&gt;우리도 사노라면 절망의 자리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절망 자체는 악이 아니다. 절망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밖에서 딩굴게 하면 그 절망이 우리를 찌르는 악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계기가 되면 절망이 변하여 축복이 된다.&lt;BR&gt;&lt;BR&gt;문제는 절망의 자리에 처할 때에 우리가 “어디에 서는가?”가 문제이다. “하나님 밖에 서는가?” “하나님 안에 서는가?”가 문제이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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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우라 아야꼬의 애송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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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BODY&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0px; LINE-HEIGHT: 180%; PADDING-LEFT: 30px; PADDING-RIGHT: 30px; PADDING-TOP: 30px&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미우라 아야꼬의 애송시&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일본의 여류 소설가 미우라 아야꼬(三浦綾子)는 ‘빙점(氷点)’이란 제목의 소설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이다. 그녀는 일본에서는 드물게 보는 크리스천이다. 크리스천 중에서도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녀가 크리스천이 된 것은 지독한 질병 중에서였다. 20대 나이에 결핵과 척추카리에스에 걸려 병석에 누워 있게 되면서 성경을 접하고 크리스천이 되었다. 20대 한창 나이에 남다른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고통이 오히려 축복이 된 셈이다.&lt;BR&gt;&lt;BR&gt;미우라 아야꼬가 애송하였다는 신앙 시가 있다. 작자 미상의 시이다.&lt;BR&gt;&lt;BR&gt;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lt;BR&gt;아프지 않으면 믿지 못할 기적이 있다.&lt;BR&gt;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lt;BR&gt;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다.&lt;BR&gt;이프지 않으면 우러러 뵙지 못할 성안이 있다.&lt;BR&gt;아, 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조차 없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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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람을 살리는 책, 성경</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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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4T09:36:39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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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0px; LINE-HEIGHT: 180%; PADDING-LEFT: 30px; PADDING-RIGHT: 30px; PADDING-TOP: 30px&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사람을 살리는 책, 성경&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기독교를 일컬어 책의 종교라 한다. 책 중의 책인 성경을 신앙생활의 중심에&amp;nbsp;두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야말로 사람을 만드는 책이요, 사람을 살리는 책이다. 숱한 사람들이 성경을 만났기에 새로운 삶을 살 수있게 되었다. 성경을 만나지 못하였더라면 망가졌거나 평생을 그늘에서 살았을 사람이 성경을 만나게 되었기에 변화되어 희망을 품고 새로운 삶을 살았다.&lt;BR&gt;&amp;nbsp;&lt;BR&gt;대표적인 경우가 일본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三浦綾子)의 경우이다. 그녀는 20대 나이에 결핵과 척추카리에스(Spinal Caries)에 걸려 병상에 누워 살아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누운 병상에서 성경을 만나게 되었다. 성경을 만남으로 삶에 새로운 빛이 비치게 되었다. 영혼에 빛이 비치게 되고 삶에의 희망과 용기를 지닐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성경을 만남으로 변하게 된 일에 대하여 다음같이 쓰고 있다.&lt;BR&gt;&amp;nbsp;&lt;BR&gt;“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가르쳐 주는 책이다. 내가 성경과 마주친 것은 하나님의 아들과 마주친 것이다. 성경이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책이 되고 나서 바로 나의 삶의 목표는 정하여졌다.&amp;nbsp;성경의 말씀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여야겠다는 목표이다. 내가 소설을 쓰는 작업도 이 일의 연장일 뿐이다. 그 후로 오늘날까지 나는 나름대로 성경에 바탕을 두고 계속 글을 쓰고 있다.”&lt;BR&gt;&amp;nbsp;&lt;BR&gt;미우라 아야꼬는 고난의 자리에 임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성경 속에서 만난 사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경은 우리들에게 살아 있는 책으로 다가온다. 우리들의 영혼을 깨우치고, 열심히 살아야 할 용기를 심어주며 내일에의 희망을 일깨워 준다. 오늘도 내일도 성경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성경으로 하루를 마감할 수있는 나날을 보내자.&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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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어나라, 빛을 발하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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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3T10:22:58Z</updated>
	    <published>2009-11-03T10:22:58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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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30px; LINE-HEIGHT: 180%; PADDING-LEFT: 30px; PADDING-RIGHT: 30px; PADDING-TOP: 30px&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일어나라, 빛을 발하라&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온갖 시련이 있기 마련이고 좌절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때로는 침체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하는 때도 있다.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되면 낙오자가 되고 패배자가 된다.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그러하다.&lt;BR&gt;&lt;BR&gt;구약성경의 이사야서 60장은 그렇게 좌절과 침체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어둠이 자신을 엄습하고 있을 때에 오히려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르신다. 그렇게 빛을 발할 수 있는 이유인즉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기 때문이라 일러준다.&lt;BR&gt;&lt;BR&gt;“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이사야 60장 1~3절)&lt;BR&gt;&lt;BR&gt;위의 말씀에서 시련 중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며 좌절을 승리로 변화 시킬 수 있는 삶을 4가지로 일러 준다.&lt;BR&gt;&lt;BR&gt;첫째는 어둠과 캄캄함에서 빛과 광명으로의 변화이다&lt;BR&gt;둘째는 버림받았던 자리에서 선택 받은 자로의 변화이다.&lt;BR&gt;셋째는 미천함과 빈곤함에서 고귀함과 풍요함으로의 변화이다.&lt;BR&gt;넷째로 황폐와 파멸에서 구원과 찬송으로의 변화이다.&lt;BR&gt;&lt;BR&gt;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렇게 변화시키시어 의롭게 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이사야서 60장 21절에서는 자기 백성에 대하여 하나님 자신이 손수 만드신 수제품(手製品)이라 이르셨고 직접 심은 꺾꽂이라 이르셨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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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독한 사람, 위대한 사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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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식사하세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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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2T20:28:30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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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0px; LINE-HEIGHT: 180%; PADDING-LEFT: 30px; PADDING-RIGHT: 30px; PADDING-TOP: 30px&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고독한 사람, 위대한 사람&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누가복음 5장 16절)&lt;BR&gt;&lt;BR&gt;레바논의 사상가였던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이 “가장 외로운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The loneliest man is the great man.)”고 하였다. 현대인들의 심리적인 특성 중의 하나가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는 점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혼자 있게 되면 자신을 감당치 못하여 안절부절못하며 TV를 켜거나 컴퓨터 앞에 앉거나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곤 한다. 모두가 바쁘고 산만하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지쳐 있다. 그러기에 자신의 참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lt;BR&gt;&lt;BR&gt;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신세계는 고독한 자리에 혼자 있을 때에 깊어지고 성숙되어진다. 홀로 있는 고독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다. 바쁘기만 하고 산만하기만 하여서는 절대로 정신적인 진보를 이루어 나갈 수 없다. 그래서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혼들은 한결같이 광야에서, 사막에서 혹은 산중에서 홀로 있으며 자신의 영혼을 갈고 닦은 사람들이다.&lt;BR&gt;&lt;BR&gt;히말라야 산 중에서의 석가모니의 7년간에 걸친 고독한 수행이나 마호메트의 사막 동굴에서의 수행 같은 경우가 두드러진 예이다.&lt;BR&gt;&lt;BR&gt;그런 점에서 성경은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홀로 40일간을 금식하였고 틈만 나면 홀로 산으로 가시거나 한적한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시거나 생각하셨다. 모세는 호렙산 기슭 인적이 드믄 곳에서 무려 40년에 걸쳐 고독한 세월을 보냈다. 엘리야도 호랩산 굴 속에서 자신의 혼을 갈고 닦았고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 사막 깊숙이 들어가 3년을 지나며 자신의 영혼을 순화시켰다.&lt;BR&gt;&lt;BR&gt;이런 점에 비추어 말한다면 요즘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너 나 할 것없이 너무나 바쁘고 산만하다. 그러기에 자신의 정신세계를 깊은 곳으로 심화(深化)시켜 나갈 겨를이 없다. 우리들 목회자들이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교회 전체의 장래가 자못 염려스러울 수밖에 없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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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을의 기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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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식사하세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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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1-01T08:26:44Z</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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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0px; LINE-HEIGHT: 180%; PADDING-LEFT: 30px; PADDING-RIGHT: 30px; PADDING-TOP: 30px&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가을의 기도&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다. 가을도 늦가을에 내리는 비는 우리로 숙연하게 만든다.&amp;nbsp; 마치 갈 길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는 알림처럼 느껴진다.&amp;nbsp; 그리고 헛바퀴를 돌리듯이 낭비하며 살아온 세월을 꾸지람하며 이제나마 제자리를 찾으라는 재촉으로도 느껴진다. 저녁나절 가을비 소리를 들으며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를 읽었다.&lt;BR&gt;.&lt;BR&gt;.&lt;BR&gt;...............가을의 기도...............&lt;BR&gt;. . . . . . . . . . . . . . . . . . . . . . 김현승(金顯承)&lt;BR&gt;&lt;BR&gt;가을에는&lt;BR&gt;기도하게 하소서…&lt;BR&gt;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lt;BR&gt;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lt;BR&gt;&lt;BR&gt;가을에는&lt;BR&gt;사랑하게 하소서…&lt;BR&gt;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lt;BR&gt;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lt;BR&gt;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lt;BR&gt;&lt;BR&gt;가을에는&lt;BR&gt;호올로 있게 하소서…&lt;BR&gt;나의 영혼,&lt;BR&gt;굽이치는 바다와&lt;BR&gt;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lt;BR&gt;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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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동체 정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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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식사하세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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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31T09:07:57Z</updated>
	    <published>2009-10-31T09:07:57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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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D style=&quot;PADDING-BOTTOM: 30px; LINE-HEIGHT: 180%; PADDING-LEFT: 30px; PADDING-RIGHT: 30px; PADDING-TOP: 30px&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공동체 정신&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창세기 1장 26절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던 때의 말씀이 나온다.&lt;BR&gt;&amp;nbsp;“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lt;BR&gt;&amp;nbsp;&lt;BR&gt;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어떤 내용일까?&lt;BR&gt;신학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4가지로 든다.&lt;BR&gt;&amp;nbsp;&lt;BR&gt;첫째는 영이신 하나님이다.&lt;BR&gt;둘째는 사랑의 하나님이다.&lt;BR&gt;셋째는 창조하시는 하나님이다.&lt;BR&gt;넷째는 공동체로 계시는 하나님이다.&lt;BR&gt;&amp;nbsp;&lt;BR&gt;“하나님이 공동체로 계신다”는 말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일컫는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삼위가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일컫는다.&lt;BR&gt;하나님께서 공동체로 계시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들도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런 삶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영적인 삶이다.&lt;BR&gt;&lt;BR&gt;그러기에 기독교 신앙은 혼자 잘 믿는 그런 신앙은 바람직스럽지 못한 신앙이다.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올바른 신앙생활이다. 그런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신앙생활의 중심에 교회가 있다. 교회는 공동체적인 삶의 구체적인 표현이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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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광야(曠野)에서의 훈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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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식사하세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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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30T08:55:38Z</updated>
	    <published>2009-10-30T08:55:38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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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0px; LINE-HEIGHT: 180%; PADDING-LEFT: 30px; PADDING-RIGHT: 30px; PADDING-TOP: 30px&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광야(曠野)에서의 훈련&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누가복음 1장 80절)&lt;BR&gt;&amp;nbsp;&lt;BR&gt;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구원의 역사는 출애급(Exodus)에서 시작된다. 출애급 역사의 중심에는 모세가 있다. 모세가 일꾼으로 등장하기 전에 광야, 빈들에서 40년에 걸친&amp;nbsp;훈련과정이 있었다. 훈련을 시작하던 때의 모세의 나이가 40되던 때였다. 이집트 왕가의 공주의 아들로 당대에는 최고 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밟고 있을 때였다. 그에게 변화가 없었더라면 이집트 제국에서 고위직을 맡아 그의 삶이 평탄하였을 것이다.&lt;BR&gt;&amp;nbsp;&lt;BR&gt;그러나 그는 뜻하지 않게&amp;nbsp;공무를 집행 중인 공직자를 죽이고 도피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amp;nbsp;그는 사막을 걷고 걸어 호랩산 기슭으로 피신하였다. 젊은 날의 의분과 혈기로 인한 결과였다. 그로부터 그는 호랩산 기슭의 빈들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 시절이 그에게 얼마나 적막한 세월이었지 그의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에 나타나 있다.&amp;nbsp;‘게르솜’이란 이름이다. ‘게르솜’이란 이름의 뜻은 “나그네 길에 덧없는 세월이 흘러간다”는 뜻을 지닌 이름이다.&lt;BR&gt;&amp;nbsp;&lt;BR&gt;그러나 모세가 80이 되었을 때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이스라엘 민족을 종살이에서 해방 시키는 일에 지도자로 세우셨다. 그때의 사정을 출애굽기 3장에서 다음같이 쓰고 있다.&lt;BR&gt;&amp;nbsp;&lt;BR&gt;“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랩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애굽기 3장 1~10절)&lt;BR&gt;&amp;nbsp;&lt;BR&gt;모세의 광야 40년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훈련의 기간이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이런 훈련의 세월이 필요하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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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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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식사하세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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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9T08:54:59Z</updated>
	    <published>2009-10-29T08:54:59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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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0px; LINE-HEIGHT: 180%; PADDING-LEFT: 30px; PADDING-RIGHT: 30px; PADDING-TOP: 30px&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누가복음 11장 1,2절)&lt;BR&gt;&amp;nbsp;&lt;BR&gt;예수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요청하기를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하였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내용이 바로 누가복음 11장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11장을 기도장(祈禱章)이라 일컫는다. 또는 기도학교라고도 한다. 우리는 성령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성경을 교제로 삼아 기도를 학습하여야 한다. 기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삶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lt;BR&gt;&lt;BR&gt;기도를 배움에 첫째는 기도는 습관이 되어야 한다. 누가복음 22장에 예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를 드렸다”고 하였다. 기도생활의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정하여 기도드리기를 익혀야 한다.&lt;BR&gt;&amp;nbsp;&lt;BR&gt;둘째로 기도생활에는 뜻이 맞는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 드려야 한다. 합심기도(合心祈禱)가 중요하다. 개인기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합심기도는 더욱 중요하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 성령역사는 1장에서 합심기도가 뒷받침되어 일어난 역사이다. 1장 14절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하였다. 그런 합심기도의 응답으로 오순절 역사가 일어나고 교회가 시작되었다.&lt;BR&gt;&amp;nbsp;&lt;BR&gt;셋째로 기도는 전심(全心)을 기울여 드릴 수 있어야 한다. 누가복음 22장에서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기도드릴 때에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되어 떨어지도록 기도를 드렸다”하였다. 우리들이 기도드리는 분위기는 너무나 산만하고 집중되지를 못한다. 역대하 16장 9절에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를 택하여 능력을 베푸신다”하였다. 전심으로 집중하여 드리는 기도가 살아 있는 기도요 힘있는 기도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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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화 옆에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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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8T09:38:13Z</updated>
	    <published>2009-10-28T09:38:13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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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국화 옆에서&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가을이 깊어간다. 가을이라면 생각나는 것이&amp;nbsp;가을의 꽃, 국화이다.&amp;nbsp; 그리고 국화라면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가&amp;nbsp;떠오른다.&lt;BR&gt;나이들어 가면서 나는 이 시가 좋다. 고등학생 시절에 국어 교과서에 실렸기에 읽게 된 시인데 그간 세상살이에 분주하여 잊고 있다가 나이들어가며 다시 기억을 되살려 읊조리게 된다.&lt;BR&gt;&amp;nbsp;&lt;BR&gt;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lt;BR&gt;봄부터 소적새는&lt;BR&gt;그렇게 울었나 보다.&lt;BR&gt;&amp;nbsp;&lt;BR&gt;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lt;BR&gt;천둥은 먹구름 속에서&lt;BR&gt;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lt;BR&gt;&amp;nbsp;&lt;BR&gt;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lt;BR&gt;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lt;BR&gt;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lt;BR&gt;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lt;BR&gt;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lt;BR&gt;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lt;BR&gt;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lt;BR&gt;&amp;nbsp;&lt;BR&gt;오늘도 단풍이 짙어가는 산길을 다녀오며&amp;nbsp; 이 시를 읊조렸다.&lt;BR&gt;“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를 읊을 때엔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듯 하여 숙연하여지곤 한다. 그래서 가을은 생각이 깊어지게 하는 계절이라 하였을까?&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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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화의 힘, 신앙의 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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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식사하세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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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7T09:06:10Z</updated>
	    <published>2009-10-27T09:06:10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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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문화의 힘, 신앙의 힘&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다”(로마서 9장 3절)&lt;BR&gt;&amp;nbsp;&lt;BR&gt;다음 글은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긴 글이다.&lt;BR&gt;&amp;nbsp;&lt;BR&gt;“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lt;BR&gt;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바로 이것이라고 믿는다.”&lt;BR&gt;&amp;nbsp;&lt;BR&gt;칩십 평생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겨레 사랑에 바쳤던 김구 선생은 민족주의자요 크리스천이었다. 그는 우리 민족이 인의와 사랑을 나누는 문화민족이 되기를 열망하였다. 우리들 크리스천들은 다른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amp;nbsp;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여 나가는 일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들 크리스천들에게&amp;nbsp;한 가지 문제가 있다.&amp;nbsp;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라는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그릇 생각하기 쉬운 점이다.&lt;BR&gt;&amp;nbsp;&lt;BR&gt;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준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자신이 속한 겨레 역시 더욱 깊이 사랑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과 겨레사랑’이 하나로 깊어질 것을 가르쳐 준다.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이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에 대하여 말하기를 “자신이 비록 저주를 받아&amp;nbsp;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의 구원을 원한다”고 하였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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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교개혁 주간을 맞으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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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식사하세요</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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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09-10-26T10:48:24Z</updated>
	    <published>2009-10-26T10:48:24Z</pub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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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LETTER-SPACING: -1px; COLOR: #000000; FONT-SIZE: 10pt&quot;&gt;&lt;STRONG&gt;종교개혁 주간을 맞으며&lt;/STRONG&gt;&lt;BR&gt;&lt;BR&gt;&lt;BR&gt;&lt;/P&gt;
&lt;P&gt;이번 주는 종교개혁운동 492주년째를 맞는 주간이다. 종교개혁운동은 1517년 10월 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자신이 속하여 있던 가톨릭교회가 고쳐져야 할 점들, 새로워져야 할 점들 95개 조항을 공포하는데서 촉발되었다. 그 이전에도 교회가 개혁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이전에도 여러 곳에서, 여러 선각자들이 개혁운동을 주창하고 펼치려 하였으나 가톨릭의 완강한 교권에 짓눌려 사그라지곤 하였다가 16 세기에 이르러 개혁운동의 물꼬가 트여 개혁운동의 불길이 뻗어나가게 되었다.&lt;BR&gt;&lt;BR&gt;16세기 초반에 들어 독일에서 마틴 루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칼빈, 쥬리히에서 쯔빙글리 등이 개혁운동에 앞장서서 이끌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시절의 개혁운동을 종교개혁이라 부르지만 역사에서는 종교개혁이라 부르지를 않고 그냥 개혁운동, Reformation이라 부른다. 시작은 교회개혁, 기독교 개혁으로 시작 되었지만 그 파장과 결과는 정치, 경제, 사회 전체에 미쳤기에 종교개혁이라 국한시키지 않고 폭넓게 개혁운동이라 함이 옳을 것이다. 500여년전 당시에 그런 개혁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있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종교개혁운동은 세계사에 획을 그은 위대한 운동이었음을 인식케 된다.&lt;BR&gt;&lt;BR&gt;종교개혁주간을 맞으며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교회개혁이 500년 전 그때의 운동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시대, 우리 교회들에게도 현재형으로 진행되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500년 전의 개혁운동의 열매로 세워진 교회를 영어로 표현할 때에 Reformed Church라 쓴다. 이 표현에 다소 문제가 있다. Reformed라 하면 이미 개혁이 다 되어진 것처럼 들이기 쉽다. 개혁운동은 당시로 끝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어져야 할 운동이다. 그런 점에서 Reformed Church가 아니라 Reforming Church이다.&lt;BR&gt;요즘들어 우리 개혁교회인 개신교에 개혁정신이 실종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새삼스레 쓰며든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CENTER&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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