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xml-stylesheet href="http://pimg.daum-img.net/whsnake/css/atom.css?ver=1.0" type="text/css"?>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version="1.0" >
  <title>진리와 자유, 생명과 평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blog.daum.net/xml/atom/greatgabriel"/>
  <rights>ArchangelGabriel</rights>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uri>http://blog.daum.net/greatgabriel</uri>
  </author>
  <generator uri="http://blog.daum.net" version="1.0">Daum blog (blogmaster@daum.net)</generator>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id>
  <updated>2009-11-22T15:46:32Z</updated>

  		<entry>
	    <title>[의견] 2010년 한국경제 전망!</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47"/>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47</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11-22T15:46:32Z</updated>
	    <published>2009-11-22T15:46:32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스도의 평화&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10년 한국경제에 대해서 낙관적인 전망도 있고,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보면, 시장에 따라 전망도 달라질 것이므로, 이에 대해 전망해 본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1. 미국경제와 중국경제&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국경제는 수치상으로는 중국경제보다 수출의존도가 낮아서 의존도 2위이지만, 중국을 통한 우회수출을 고려하면 여전히 한국의 수출의존도 1위국이다. 미국경제는 이전글에서 이야기한 대로 올 하반기에 바닥을 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단, V형으로 급격한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바닥을 계속 다지는 과정으로서 구조조정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거품을 터트리면서 내실의 체력을 다지는 기간이 내년에도 지속되리라 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2009년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실업률은 10%을 훌쩍 넘을 수 있다. 구조조정은 앞으로도 더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바마는 금융과 에코기술을 중심의 성장에 기존 제조업의 활성화를 축으로 삼고 있다. 이것이 지금 오바마가 아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환율문제와 무역장벽문제를 건드리는 이유다. 약달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동시에 보호무역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UTSR를 전면에 내세워서.&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국이 금리를 내년에도 인상하지 않으리라 예상한다. 단, 미국 제조업의 약진의 정도에 따라서 이는 변동될 수 있을 것인데, 미국의 실업률이 1자리수로 되돌아오는 시점이 금리인상의 시점이 될 것으로 본다. 그래서 적어도 내년에는 금리인상은 없을 것이다.&amp;nbsp;이는 달러캐리드레이드가 상당기간 계속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중국은 위안화절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경쟁자로서 이제서야 드러나는 것 뿐이고, 진정한 경쟁가 되려면 수십년이 걸릴 것이다. 지금은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중국은 미국에 의존해야만 한다. 그래서 위안화절상은 필연적이라고 보아야 한다. 중국이 보유중인 미국채의 매도는 미국입장에서 오히려 환영할만한 일이지 불만스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이 위안화를 국제결재통화로 만들려면 경제규모를 지금보다 더 키워야 하고, 기술력과 제품력에서도 지금보다 2단계 이상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이러러면 '회기적인 기술혁신을 매년 이룬다'는 조건에서조차도 최소한 10년은 걸릴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2. 한국경제&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국이 미국과 중국경제에 대한 수출의존도는 70%정도다. 아마 2009년에는 더 놓아졌을 것이다. 무역의존도가 거의 90%로 2008년보다 30%정도 높아졌으니까 말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국의 달러 약세와 보호무역주의 그리고 위안화절상은 한국 경제에 좋은 것은 아니다. 수출이 하락할 것이고, 이는 무역수지 흑자폭을&amp;nbsp;상당히 낮출 것이다. 수입물가는 상승할 것이다. 수입에 있어서 중국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정부의 개입을 통해서 환율은 1,150원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1,050원대로 하락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물론 이 조건에서도 한국의 주력수출대기업들은 경쟁력이 있다. 이전글에서 이야기한 대로 과거 노무현정권시절 환율이 800-900원대에서도 대규모 이익을 얻은 한국의 수출대기업들이기 때문이다. 700원대이면 적자다. 그러나 원달러환율이 700원대를 기록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한국정부는 내년도 GDP성장률을 4%-5%대로 이야기하는데, 이는 올해 푼 대규모 유동성의 효과와 내년에 풀 대규모 정부지출규모를 감안한 것이다. 정부지출이 늘면 당연히 GDP성장률은 높아진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내년에도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몰락은 계속될 것이다. 무역의존도가 92.4%로 2008-2009년에 내수시장이 무너지는 임계점에 와있는 조건에서, 원달러환율의 하락과 위안화절상은 국내수입물가를 상승시킨다. 물가는 상승하는데,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오히려 하락할 것이므로(구조조정과 임금삭감, 임금동결 등)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2010년에도 시베리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대학등록금은 삭감조차 하지 않을 것이고, 일반 고등학교등록금(수업료+운영비 등)도 거의 연간 200만원 정도 수준인데 이것조차도 삭감할 의지가 대한민국의&amp;nbsp;현 정권이나&amp;nbsp;각 사립학교재단들에게는 전혀 없다. 심지어 종교집단이 운영하는 학교조차도. 사교육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사교육비는 줄지 않을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반면에 자산시장은 유동성버블의 극치를 겪지 않을까 싶다.&amp;nbsp;대규모 부동자금과&amp;nbsp;약 8조원에 이르는 4대강 토지보상금, 그리고 엔캐리와 달러캐리로 한국의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내년에 큰 버블을 나타낼 것이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강한 상승장이 나타날 것이다. 자산시장은 언제나 유동성의 함수다. 단, 우량주와 비우량주의 운명은 분명하게 갈라질 것이다. 부동산에서도 서울이 가장 상승할 것이고 수도권이 그 다음일 것이고 지방은 상승하지 않을 것이다. DTI규제와 같은 대출규제는 내년에 풀릴 가능성이 높고, 재건축에 대한 규제도 모두 풀릴 것이다. 지금의 개박정권의 의도가 자산가치상승을 통한 소비지출의 활성화와 건설과 부동산을 통환 내수 시장의 진작외에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금리는 2010년에도 인상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금리는 오히려 더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행의 이성태총재는 이미 기획재정부의 하수인에 불과하기 때문이고, 내년에는 임기가 끝나고 개박정권에 충성스런 개가 한국은행총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임명했던 이성태총재는 끝내 자신의 경제철학과 지조를 지키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사회안전망은 이미 무너졌다. 더 이상의 사회안전망의 강화도 없는 형편이다.&amp;nbsp;2010년은 아마도&amp;nbsp;서민들과 자산이 별도 없는 이들에게는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고, 자산을 가진 이들에게는&amp;nbsp;돈을 버는&amp;nbsp;시기가 될 것이다. 사회양극화는 더 심화될 것이고,&amp;nbsp;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지방과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3. 어떻게 살 것인가&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금은 분명 투쟁을 해야할 때이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전체적인 수준을 생각하면 오히려&amp;nbsp;고통의 시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야만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뉴타운해준다고 덮어놓고 자신의 주권을 팔아넘기는 국민들이 바로 대한민국 국민들의 수준이다. 빈민층이면서도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수 없이 많다.&amp;nbsp;자살율, 이혼율, 낙태율, 출산율은 거의 전세계에서 1-3위안에 든다. 생명에&amp;nbsp;대한 존중의식이 전세계에서 꼴지인 나라 수준이다. 이런 나라에서 인간의 존엄성,&amp;nbsp;타인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 사랑과&amp;nbsp;정의와 평화와 생명존중, 기회의 평등이라는 고귀한 철학은 내 팽겨쳐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amp;nbsp;절대진리 중 으뜸 진리인 생명존중을&amp;nbsp;우습게 여기고 직간접 살인을 밥먹듯이 하는 국민수준(자살율, 이혼율, 낙태율, 출산율)에서, 생명의 하위 진리인 사랑, 정의, 평화, 기회의 평등은 거부된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동이 트는 시간은 가까이 오는 법이다. 2010년은 분명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는 어둠의 기간이다. 2011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동은 반드시 터 온다. 그 방식이 폭력적인 방식이든, 일순간의 멸망의 방식이든, 순조로운 변화의 방식이든 간에 동은 반드시 터 오는 법이다. 이것은 절대진리의 관점에서도 그렇고, 자연의 법칙이며 우주의 법칙이기도 하다. 이 세상은 언제나 질서(COSMOS)로 수렴해 간다. 어둠이 깊으면, 골이 깊으면 그 다음에는 빛이 가득한 법이고 산이 높은 법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내년에 잔치를 즐길 자는 즐겨라. 그러나, 언제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가치를 잊어버리거나 후순위로 배치하는&amp;nbsp;순간, 그 삶은 동물의 삶과 같아진다. 개박이과 다를바 없는 삶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영신적 충만함이 없는 경제적 풍족은&amp;nbsp;게으른 동물의 삶과 같고,&amp;nbsp;참된 행복을&amp;nbsp;누릴 수 없다. 인간의 삶은 이미 없다.&amp;nbsp;영신적 충만함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amp;nbsp;대한 우선적 선택에만 존재한다. 그&amp;nbsp;외 다른 곳에서는&amp;nbsp;없다. 오직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에만 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므로,&amp;nbsp;참된&amp;nbsp;행복을 누리는 자는 성실하고, 근면하며, 탁월하게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이 가난하다.&amp;nbsp;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 모든 의사결정의 제 1순위 원칙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깨어있는 자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 속에서 더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더 강하게 요구되는 시기다. 사회 도처에서 고통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는 적극적인 노력(자선활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매우 소극적 행위이다. 자신의 직업과 사회생활속에서 일을 참되게 하고, 힘 없는 자들을 돌보는 것이 적극적인 실천이다)이 필요한 때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중국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중국경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한국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국경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주식시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주식시장&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경제전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경제전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부동산시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부동산시장&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미국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미국경제&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기사] 주식투자 성공비결 4가지!</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46"/>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46</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11-22T08:59:19Z</updated>
	    <published>2009-11-22T08:59:1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스도의 평화&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통신사인 연합뉴스에 대만 상업주간에 실린 기사의 요약 기사가 업로드 되었다. 내용이 좋아서 업로드한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U&gt;&lt;/U&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U&gt;&lt;STRONG&gt;주식투자로 돈버는 4가지 법칙!&lt;/STRONG&gt;&lt;/U&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상하이=연합뉴스) 김대호 특파원 = &quot;원하는 &lt;/SPAN&gt;만큼 다 얻으려고 하지 마라.&quot; &lt;BR&gt;반관영 통신인 중국신문사는 주식투자로 부자가 된 10명을 엄선해 공통점을 조사한 결과 많은 독서와 과거에 대한 성찰, 물욕에 대한 절제력, 사고의 단순화 등 4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다며 대만의 `상업주간'을 인용해 21일 보도했다. &lt;BR&gt;&lt;BR&gt;이들 주식의 달인이 공개한 투자의 성공비결은 투자교본의 첫 장에 나오는 기본 원칙들이었다. &lt;BR&gt;&lt;BR&gt;▲ 많이 읽고 생각하라 = 증권시장에 기업 관련 소문이 돌면 부화뇌동하지 않고 먼저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확인하고 주가수준을 평가한다. 억만장자 투자자 워렌버핏은 항상 사업보고서를 정독하며 하나하나의 숫자들이 가진 의미를 되새겼고, 독일 `주식의 신' 안드레 코스톨라니는 &quot;전업투자자는 95%의 시간을 도표를 해석하고 영업보고서를 보는데 할애한다&quot;고 말했다. &lt;BR&gt;&lt;BR&gt;유명한 주식투자 칼럼니스트 아이작은 많은 사람이 시간상으로 늦은 통계라고 평가한 미국의 2006년 3분기 국내총생산(GDP) 보고서를 자세히 분석, 부동산업에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보고서에 나타난 미국 부동산업은 같은 해 2분기 -4.5%로 마이너스 성장을 한 후 3분기 -11%, 4분기 -15.7% 등으로 감소폭이 확대돼 미국 경제에 큰 충격을 주었고 결국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연결됐다. &lt;BR&gt;&lt;BR&gt;▲ 미래를 보지만 과거에 대한 성찰을 더 중요시한다 = 시장은 변화가 많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 뮤추얼펀드의 전설 피터린치는&amp;nbsp;&quot;추세가 당신의 친구가 되도록 하라&quot;고 말했다. &lt;BR&gt;&lt;BR&gt;투자의 달인들이 추세를 읽는 비결은 간단하다. 신문을 정독하고 정부 발표에 귀 기울이며 역사를 공부한다. 한 인사는 &quot;현 세대가 선조보다 현명하다면 왜 역사가 반복되겠는가&quot;라며 역사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lt;BR&gt;&lt;BR&gt;외환투자로 많은 돈을 번 린광싱은 작년 10월 뉴질랜드와 호주 화폐를 매입해 큰돈을 벌었다. 그는 지난 수십년간 미국 경제가 쇠퇴기를 맞아 금리를 계속 내렸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화폐가치는 당연히 올라갈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외환분석사 리친은 은에 투자해 거액을 챙겼다. 그는 지난 20년간 금과 은의 가격비율이 1대 45~55배 사이에서 움직였는데 올해 갑자기 1대 70배 수준으로 은 값이 떨어져 은을 대량 매입했다고 말했다. &lt;BR&gt;&lt;BR&gt;▲ 적당히 벌자 = 투자의 달인들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겠다는 목표는 갖고 있지만 절대로 저점에 매입해 고점에 매도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버핏은 &quot;적당히 버는 게 딱 좋다&quot;고 말한다. 리친은 &quot;나는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quot;고 말했다. &lt;BR&gt;&lt;BR&gt;▲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화한다 = 투자의 달인들은 장기투자를 하고 시장의 잡음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일반 투자자들이 단기투자에 나서며 `저점매수 고점매도'를 추구하는 것과 다르다. &lt;BR&gt;&lt;BR&gt;결론적으로 볼 때 전문 투자가들은 모두 각자의 투자법이 있다. 이들은 모든 문제의 답을 찾아야만 만족하지 않고 하나의 문제에서만 답을 얻어도 만족한다. (연합뉴스, 2009-11-22)&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P&gt;
&lt;P&gt;&lt;BR&gt;&lt;/P&gt;&lt;/SPAN&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피터린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피터린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주식투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주식투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워렌버핏&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워렌버핏&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아이작&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아이작&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린광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린광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안드레 코스톨라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안드레 코스톨라니&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의견] 서민과 중산층의 붕괴!</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44"/>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44</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11-11T10:55:26Z</updated>
	    <published>2009-11-11T10:55:2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스도의 평화&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오늘자 한국신문들은 재정부와 통계청의 보고자료를 대서특필하고 있는데, 그것은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국민경제에서 대외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지표인 경상 국민소득 대비 수출입 비중이 지난해 92.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기존 2000년-2007년까지는 줄곧 50-60%대의 무역의존도가 작년에 엄청난 증가세로 무려 92.3%까지 높아졌다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지표가 의미하는 것은 국내내수시장의 붕괴를 의미한다. 자영업과 중소기업과 내수위주의 대기업들의 위축이 작년에 매우 심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고환율정책을 펼친 개박정권에 시장에 내리는 벌이다. 올해도 아마 90%대를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렇게 되면 한국의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은 이젠 버틸 여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해진다. 2010년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아무튼, 개박정권의 사악함 그대로 한국의 서민과 중산층은 지금 매우 험난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여기에 개박이가 하는 막대한 유동성 투입이 지금보다 더 가속화되면, 돈은 막대하게 풀렸지만, 중산층과 서민은 가난하게 되는 과거 일본의 모습이 되고 만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제 한국의 운명은 한국에 있지 않게 되었다. 한국의 운명은 미국토끼, 유럽토끼, 일본토끼, 중국토끼들의 손에 달렸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외부적인 공격이 가시화되면 한국은 털린다. 과거 IMF시절 한국은 30%정도만 털렸는데, 만약 지금의 상황에서 공격을 당하면 90%까지 털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포이즌필을 논의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포이즌필은 성사될 수 없다. 이미 토끼들의 사정권안에 한국은 들어와 버렸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들의 공격이 없기만을 바래야 한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지금 개박정권은 디플레이션을 통한 내부 체력의 비축과는 정반대로 인플레이션을 통한 자산가치의 상승과 무역수지흑자기조를 선택하고 있다. 개박이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진행할 것이다. 벌써 국민 대부분이 반대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을 시작하고 있고, 토지보상금도 1조원대에서 8조원으로 부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가 사기질로 일평생을 살아온 놈 답게 정부정책이 모두 사기질이고, 삐끼질이다. 이렇게 부풀리면 내년에 추가적으로 시장에 풀릴 돈만 50조원을 넘어갈 것 같다. 이 돈은 어디로 갈까? 답은 정해졌다. 개박정권 내내 아마도 한국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유동성을 경험할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러나, 이렇게 진행되면 한국경제의 위험도는 동시에 급격하게 높아진다. 이번에 무역의존도가 갑자기 1년만에 30% 업해서 92.3%를 기록하듯이. 그리고 그 댓가를 아주 참혹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참혹한 기간이 올해나 내년에 온다는 말이 아니다. 세계경제는 이제야 바닥을 치고 있고 회복 단계에 들어선 것은 맞지만 금융위기 전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P&gt;&lt;/SPAN&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한국사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국사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한국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국경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서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서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사회양극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사회양극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포이즌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포이즌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충산층&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충산층&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무역의존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무역의존도&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의견★] 세계 경제 위기는 끝났다!</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43"/>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43</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11-06T20:18:46Z</updated>
	    <published>2009-11-06T20:18:46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스도의 평화&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즈음 더블딥이 온다, 한국경제가 파산으로 치닫는다, 대공황이 시작되었다는 등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이 나오고 있다. 이전 글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이는 완전히 틀린 이야기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국경제를 바라볼 때 CIT의 파산으로 불거진 중소기업대출시장의 붕괴와 미국중소기업의 도산을 보고서 미국이 다시한번 제2차 금융위기에 빠질 것이고 이는 대공황으로 연결될 것이다거나 달러패권의 종말의 서막이라거나 하는 관점은 완전히 틀린 관점이다. 우선 '미국이 다시한번 2차금융위기에 빠질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의 충격은 1차 금융위기의 충격보다는 훨씬 덜하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U&gt;&lt;FONT color=#e31600&gt;지금 미국경제는 회생을 위한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lt;/FONT&gt;&lt;/U&gt;&lt;/STRONG&gt;&amp;nbsp;터질 것을 터트리면서(리먼의 파산, CIT의 파산, 중소금융기관의 파산, GM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등), 암덩어리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1차 금융위기로 부실의 약 50%정도는 정리를 했다. 이제 2차금융위기를 통해서 나머지 부실을 정리하는 과정이 언급되고 있다. 지금은 이 단계다. 1차단계에서 미국은 약 8,000억달러의 자금을 풀었고, 정리할 것을 정리했다. 이제 2차 단계로 3,000억달러~5,000억달러 정도를 거론하고 있다. 1차단계가 월스트릿과 대기업을 살리는 단계라면, 2차단계는 중소은행과 중소기업을 살리는 단계 즉, 고용과 소비를 살리는 단계라고 보아야 한다. 여기게 3차가 결합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 미국이 계속해서 언급하고 주장하고 있는 친환경버블말이다. 이 과정은 성공적으로 진행중이다. 그리고 성공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시점을 바닥의 시작으로 보아야 한다. 2차금융위기가 오면 약 1-2달간이 마지막 바닥의 정점이 되고, 이후에는 아주 줄기찬 상승장과 강한 버블상승장이 반드시 온다. 역사가 그랬고, 지금 미국의 수순이 그렇다. 미국정부를 이길 자는 지금의 세계에서는 없다. 중국도 미국을 이길 수 없다. 미국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물론 30-40년 후에 하나의 나라가 된 EU와 중국 정도가 될 것이지만. 그러나 이는 30-40년후에나 일어날 일이고, 그 사이 전쟁 등을 비롯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국경제는 미국경제 따라가는 법이다. 수출이 70%인 나라이므로. 분명 올 연말과 내년 상반기에 더블딥은 한번은 온다. 그러나 잠깐이다. 이 기간을 지나면 장기 회복 국면으로 진입할 것이다. 금리는 개박정권의 의도대로&amp;nbsp;상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임기내내&amp;nbsp;저금리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특히나 내년에 풀릴 4대강개발예산 30조원에, 수조원에 이를 보금자리 토지보상금 규모를&amp;nbsp;생각하면, 이 돈은 모두 투기자금으로 변신해서 주식과 부동산을 상승시킬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지금이&amp;nbsp;바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바닥 국면은 길어야 6개월 정도 갈 것이다. 그리고 이 기간은 마지막 바닥 기간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제 세계 경제의 위기는 끝났다. 새로운 친환경버블과,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강한 상승장을 마음껏 즐기기를 바란다. 현금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돈을 벌 기회가 지금부터 시작되고 있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010년에 한국의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연말까지 코스피는 2,000을 찍을 가능성이 크고, 부동산시장은 다시 대규모 상승장의 시작 국면을 맞을 것이다. 물론 부동산은 서울이다. 지방은 결코 상승하지 않는다. 수도권의 상승은 당연히 서울의 50%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왜 그런지는 바로 앞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올 연말이나 내년 1/4분기 중에 주식시장의 큰 조정이 있을 것이고, 환율이 일시적으로 1,400원대를 기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기간은 1-2달 정도로 매우 짧은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유의할 점 : 5년후는 모르겠다. 5년후부터 한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앞으로 5년 동안 한국이 1) 2009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일본의 과감한 공세(반도체, 자동차, LCD, 철강, IT 전분야)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2) 품질과 디자인의 중급화 수준은 이미 달성하고 고급화 수준으로 이전하고 있는 중국과의 격차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 3) 친환경에코시장에 선제적 투자를 어느 정도 하고 있는지 등을 잘 보아야 할 것이다. 이 3가지를 한국이 잘 해 낸다면 5년후에도 인구구조가 바뀌더라도 계속적인 성장을 할 것이지만, 이 3가지를 잘해내지 못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낭떠러지도 굴러 떨어질 뿐이다. 지금 개박정권이 예산을 추입할 분야가 바로, 3)번과 사회안전망의 강화 이 2가지인데, 4대강를 비롯해서 건설사업에만 올인하려고 하니 큰 문제다. 아마도 개박정권 5년은 잃어버린 5년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amp;nbsp;&lt;/SPAN&gt;&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부동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부동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주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주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한국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국경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미국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미국경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세계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세계경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CIT&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CIT&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의견] 유동성과 지속적인 버블!</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42"/>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42</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11-05T06:20:40Z</updated>
	    <published>2009-11-05T06:20:4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그리스도의 평화&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요즈음 더블딥이 다시 올거라는 주장이 많은 모양이다. 과연 더블딥이 올 것인가? 일시적으로 올 수도 있지만, 유동성장세는 계속 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 미국은 금리를 인상할 생각이 없다. 내년까지도 계속적인 저금리로 갈 것이다. 한국정부도 금리를 인상할 생각은 전혀 없다. 저금리로 계속 간다는 것은 곧 각국 정부가 유동성을 회수하지 않는다는 의미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동시에, 지금 미국에서는 새로운 경기부양책을 고려하고 있다. 내년에 다시 시행할 모양이다. 상업용부동산시장의 부실과 모기지연체율이 높아지고 있고, 미국내 중소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중소기업대출전문기업인 CIT가 파산하고, 실업률이 약 10%를&amp;nbsp;기록하고 있다는&amp;nbsp;이유에서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한국도 마찬가지다. 지금 개박정권이 구상하는 대로 진행되면 내년에 4대강개발에 쏟아붓는 돈이 약 30조에 달한다. 이 돈은 내년에 한국에서 유동성버블을 만들 돈이다. 전세계적으로 리먼사태이후 신규로 쏟아부은 돈만 4,000조원이다. 이 돈들이 각국의 증시와 채권, 원유, 원자재, 금, 부동산에 투자되고 있는 실정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시중에 풀린 돈이 회수될 조짐도 없고, 신규로 시장에 더 많은 유동성이 뿌려질 예정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예외적으로, 호주가 금리를 인상하고 있을 뿐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2. 더블딥이 일시적으로 오면 이는 매수의 시점이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더블딥을 겪는 기간은 매우 짧을 것이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1년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3. 언제나 이야기하지만 자산의 가치는 유동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라는 것도 결국은 유동성이다. 돈이 많이 풀리면 자산가치는 상승한다. 반대로 돈이 시중에 부족하면 자산가치는 하락한다. 지금은 돈이 풀리는 시점이고,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돈이 풀리는 형국이다. 그러므로 자산가치는 계속적인 상승 추세로 갈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주식시장은 일각에서는 1,440원대까지 조정이 될 것이라고 한다.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대세는 주식시장은 강한 상승장으로 갈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일시적인 조정의 기간이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부동산시장은 지금이 바닥이라고 본다. 돈이 너무나 많이 풀려있고, 이 돈은 언제나 주식과 예금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이제는 움직일 때가 된 것이다. 바람직한 방향은 시설투자와 신규사업에 대한 투자일 것이나, 대한민국에서 신규사업을 할만한 것은 거의 없기에 이 돈들이 움직이는 방향은 주식과 부동산이다. 개박정권의 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물론 부동산이나 주식 모두 우량주와 비우량주로 확실하게 구분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부동산은 서울이 1순위이고, 수도권이 2순위이고, 지방은 초토화된다고 보면 된다. 개박정권이 세종시를 백지화 혹은 수정을 주장하는 것에 거의 올인하다시피하는 것은 바로 서울과 수도권을 잡고 골수꼴통들인 경상도와 결합하면 정권을 항상 재창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극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이미 컨센서스를 이룬 사항으로 보인다. 그래서 조중동이나 조갑제, 김동길이나 극우보수원로란 놈들이 광분하면서 지원사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의 정당성을 떠나서(당연히 이놈들의 의도는 파탄나야 한다), 부동산시장은 서울이냐 아니냐로 더더욱 확실하게 재편될 모양새다. 지금같은 암흑의 시대에서는 지방에 산다는 것 자체가 돈 벌기 더 힘든 상황을 만든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주식도 우량주와 비우량주의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4. 대공황은 오지 않는다. 대공황이 오더라도 이는 아주 길고도 긴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올 것이다. 달러의 휴지조각화도 30년후라면 모를까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국의 달러패권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소비력에서 나오는 것이지,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 미국과 대적을 하려면 앞으로 지금 같은 상황이 30년은 더 지속되어야 겨우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달러패권의 종말이나 대공황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5. 시장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as it is) 보아야 한다. 물론 주권자로서의 정책적 판단을 하는 것과는 별도다. 이것이 자본주의를 사는 지혜다. 주권자로서 정의에 대한 판단은 판단대로 하고 실천하면서, 동시에 '시장을 있는 그대로 보고 대응'하는 것이 지혜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대로 시장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큰 착각이다. 시장은 이기심으로 가득찬 경제적 동물들의 움직임만이 있을 뿐이다. 시장은 적자생존의 논리대로만 움직인다. 시장은 관용이 없고, 자비가 없다. 그게 시장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6. 한국경제는 망하지 않는다. 한국경제가 완전 파산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이유는 지금의 한국의 주력대기업들의 경쟁력이 전세계 1-5위안에 들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 기업들의 경쟁력은 노무현정부시절 과거 원달러 환율이 900원일 때에도 막대한 이익을 냈었다. 여기에 미국의 압력으로 환율이 조금 떨어진 지금의 상황(1,180-1,190원대)도 이들 대기업에게는 매우 유리한 환율조건이다. 미국의 압력이 강해져서(보호무역주의와 환율조작국에 대한 조사), 원달러환율이 900원으로 떨어져도 이들 기업은 무너지지 않는다. 한국의 주력 대기업들이 견뎌낼 수 있는 환율의 마지노선은 원달러환율 700원대다. 원달러환율 700원대가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한국경제의 붕괴를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7. 염려되는 것과 분노하는 것은 '극한의 사회 양극화'다. 이번의 금융위기가 모두 극복되고 난 후에 한국사회는 '극한의 사회 양극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이미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더 강화될 것이다. 사회안전망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한국사회에서 오히려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개박정권은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더 강화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펀더멘탈의 부실이다. 4대강 사업에 추진할 예산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국가미래성장사업에 투자되어서 성장동력을 강화하는 데에 쓰여야 할 돈이다. 이 분야에 예산을 삭감하면서 아무 소용도 없는 4대강에 돈을 쏟아붓는 것은 낭비이고 버블만을 양산할 뿐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8. Anyway, 더블딥이 한 차례는 온다. 바로 이 시점이 달러가치가 강화되고 원달러환율이 높아지는 시점이다. 그러나 길지는 않다. 역으로 더블딥이 오는 바로 이 시점이 투자의 시점이 될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9. 앞으로는 더욱더 집을 사더라도 서울에 사야하고, 사업을 하더라도 서울에서 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양극화는 이젠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단순한 분배구조상의 사회양극화가 아니라, 정치, 경제, 지역, 문화, 예술, 교육, 보건, 과학기술, 시장&amp;nbsp;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양극화는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도 이런 추세였지만 앞으로는 분명히 더 심해질 것이고, 이젠 고착화단계로 갈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데, 장년때까지 서울에 집중하고 노후가 되어서야 지방으로 내려가는 패턴이 한국 사회의 한 개인의 인생 주기의 주된 패턴이 될 것이다. 극우보수들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노인은 기본적으로 보수화되는 법이므로, 세종시를 막고 혁신도시를 모두 막은 다음, 서울과 수도권에 경제를 집중시키고,&amp;nbsp;경상도를 잡고, 지방을 노후화시키면 말 그대로 '지속적인 정권 재창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0. 지금의 시기는 어려운 시기다. CIT파산은 매우 중요한 사건임에도 면역력이 생겨버렸다. 한국국민들에게도 말이다. 심리적인 여파가 작다는 것은 분명한 시그널이다. 어려운 시기는 언제나 기회를 준다. 현금을 풍부하게 준비한 자에게는 매우 좋은 투자의 기회다. 버핏이 미국의 철도회사에 자신의 회사 자금의 1/3를 쏟아붓는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회를 잘 잡았다고 본다. 경제는 언제나 회복되어 왔다. 1930년대 만큼의 대공황은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위기를 탈출하는 과정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화는 위기극복의 기간도 짧아지게 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11. 경제를 볼때는 1) 시장을 있는 그대로 보는 시각과 2) 각 플레이어들의 움직임을 보는 시각, 3) 가장 막강한 플레이어인 정부의 정책적 흐름을 보는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위기의 시기에는 3)번이 중요하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정부 정책을 이용해서 투자를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양손에 쥐는 것이 현명하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부동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부동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투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투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주식&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주식&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버블&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버블&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한국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한국경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금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금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유동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유동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미국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미국경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세계경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세계경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더블딥&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더블딥&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의견] 최고의 차, 도요타 캠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39"/>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39</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10-22T01:49:14Z</updated>
	    <published>2009-10-22T01:49:1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2pt&quot;&gt;†그리스도의 평화&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내가 좋아하는 차인 도요타의 캠리가 한국시장에 출시된다. 기존에도 구입할 수 있었지만, 도요타의 본격적인 한국 시장 진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도요타의 캠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quot;Global Best Car!&quot; 라고 이름 붙일만한 전 세계 유일한 차다. 전 세계 중산층이 가장 많이 타는 차이고, 가장 많이 타고 싶어하는 차다. 안정성, 내구성, 스피드 모든 면에서 현대의 그랜저나 소나타와는 비교를 거부하는&amp;nbsp;매우 우수한 차다. 이미 검증이 될대로 된 차로서, 그냥 아무거나 사도 문제가 없는 차다. 캠리는 20만km를 몰아도 잔 고장이 거의 없는 그런 차다. 디자인도 좋고, 스피드도 좋고, 안정성도 좋은 최고의 차다. 말 그대로 &lt;STRONG&gt;&lt;U&gt;&quot;10년을 타도 1년을 탄 듯한 차!&quot;&lt;/U&gt;&lt;/STRONG&gt;다. 2009년 10월에 한국에 본격 출시하는 가격도 착하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현대기아자동차는 수출은&amp;nbsp;덤핑가격으로, 국내에서는 수출가격보다 무려 1,500만원-3,000만원 정도 폭리를 취하는 구조로 사업을 운영해 왔다.&amp;nbsp;차 한대당. 예를들어, 현대의 제네시스를 미국에서 대폭할인판매를 할때 20,000불에 팔았다. 그것도 최고 사양으로. 현재의 고환율로 보아도, 2,380만원대에 팔았던 것이다. 국내에서는? 최고사양이 6천2백만원(취등록세 별도)이니,&amp;nbsp;말을 하지 말자. 해외에서 2천4백만원짜리인 차를 국내에서는 무려 6천2백만에 팔았으니, 국내소비자는 바보처럼 미국소비자보다 무려 3천8백만원을 더 주고 차를 사고 있는 셈이다. 국내소비자는 완전 봉이었던 셈이다. 현대기아차는 이렇게 나쁜 기업이다. 국내 소비자는 봉으로 여기고 독점적 지위(약 70%의 시장점유율)를 이용하여 국내 소비자들의 돈을 사실상 강도질해 온 기업이라 할 수 있다.&amp;nbsp;아주 철저하게 응징을 받아야 할 부도덕한 기업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번 기회에 도요타가 현대기아차의 버릇을 확 뜯어고칠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 캠리는 최고의 차고, 가격도 착하니까. ^^ 너무나 통쾌하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또 한가지, 애국심의 광풍에 현혹되지 말라! 현대기아차는 틀림없이 애국심에 호소할 것이나, 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선의를 가장한 짓이니, 매우 비윤리적인 행위로서 소비자 주권의 관점에서 좌시해서도 안된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현대기아차가 그간 국내 소비자들에게 등을 쳐서 강도질 한 돈만도 수십조에 이를 것이다. 이 돈이면 대한민국의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할 수 있고, 대한민국의 모든 의료를 무상으로 할 수 있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개그맨 허경환 버전으로, 현대기아자동차는 망해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U&gt;캠리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lt;/U&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국에서 승용차 부분 1위의 판매량을 가진 차, 캠리!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을까. 아마 10년 연속 미국내 1위로 알고 있다. (아래의 표에서 1위에 있는&amp;nbsp;Ford F-Series P/U은 픽업 트럭이니까 승용차부분으로 순위를 매길&amp;nbsp;때는 제외해야 하고, 그러면 승용차부분은 당연히 도요타 캠리가 압도적인 1등이다. 자동차의 본고장인,&amp;nbsp;성인이 되기만 하면 무조건 자동차를 사야만 하는, 그래서 빠삭한 &amp;nbsp;바로 그&amp;nbsp;미국 국민들 사이에서)&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src=&quot;http://cfile214.uf.daum.net/image/13261E1C4AE078601D7C86&quot; class=&quot;tx-daum-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ctualwidth=&quot;400&quot; hspace=&quot;1&quot; width=&quot;400&quot; vspace=&quot;1&quot; border=&quot;0&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이 표를 보면서 열 받는 것은 현대기아차의 모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amp;nbsp;20위권에도 끼지 못하는 현대기아차다. 더군다나 국내차와 수출차의 품질이 현격히 차이가 나서 국내 소비자들을 우롱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가 자동차의 본고장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미국에 가서는 국내보다 1) 훨씬 좋은 품질과 사양에, 2) 해외 가격은 국내가 대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최소 30%-최대 50%로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헐&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값에 팔면서, 그래서 국내 소비자들에게서 폭리를 취하고 밖에 나가서는 알아서 밑바닥을 기면서도,&amp;nbsp;20위권에 드는 모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정말&amp;nbsp;분개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도 수십년동안. 국내소비자들에게서 수십년동안 돈을 강도질해다가 해외소비자들을 살찌우면서도, 거의 구걸 수준으로 마케팅하면서도 20위권에는 하나도 없는 현대기아자동차! 참 나쁜 기업이다. 이제 이런 비윤리적인 행위에 응징을 받아야 할 때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현대기아차는&amp;nbsp;내수용 차를 수출용 차와 동일한 품질과 사양으로,&amp;nbsp;현재 수출하는 가격으로 국내에서 팔아야만(앞으로 줄곧)&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 도덕적 정당성이 생기는 것이고,&amp;nbsp;그래야만 그간 수십년을 우롱당한 국민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다시 선택해 줄 것이다.&amp;nbsp;아마 이렇게 하려면 지금 국내 차 값을 거의 반값으로 내려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amp;nbsp;현대기아차는 수십년 동안의&amp;nbsp;비윤리적 행위에 대해서 한국국민들에게&amp;nbsp;오체투지로&amp;nbsp;진심으로 사과하고, 정도를 걸어야 할 것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장담하건데, 올해부터 도요타는 한국 시장을 서서히 점령해 갈 것이다.&amp;nbsp;캠리는 10년을 타도 잔고장이 1-2번 정도 밖에는 안나는 차이니까 말이다.&amp;nbsp;참 좋은 일이다. 본격적으로 한국시장에 캠리가&amp;nbsp;착한 가격에 한국에 본격 상륙하다니. 한국은 좁아서 1년이면 캠리의 승리로 결판 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캠리를 앞세운 도요타가 아마도 국내 1위 자동차업체가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캠리의 우수성에 매료될 것이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U&gt;10년을 타도 1년된 듯한 차! 캠리!&lt;/U&gt;&lt;/STRONG&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U&gt;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캠리로 바꿀 것을 권하고 있다.&lt;/U&gt;&lt;/STRONG&gt; 가격이 착하고, 본격적인 도요타의 한국 시장 진입이므로. AS도 걱정없다. 잔고장이 거의 0인 차니까 말이다. 현대기아차가 수출용 차량과 동일한 품질과 사양으로, 국내 가격을 50% 정도 할인할 경우에만 현대기아차를 지지해 주겠다. 그 전에는 절대로 현대기아차를 권하지 않겠다. 그런데 현대기아차가 바뀔까? ^^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부도덕한&amp;nbsp;마인드를 바꾸어야 하는데, 수십년을 해 온 관행이 모든 시스템에 스며들어 있을 것이므로 바뀌려면&amp;nbsp;최소한 10년은 걸려야 할 것이다.&amp;nbsp;금형기술 부족해, 모듈화기술도 부족해, 부품 재질이 안 좋은 것 쓰지, 무상보증기간 끝나면 바로 고장이지. 내구성 개판이란 말이다. 부품 값은 아주 비싸지. 연간 수리비 장난 아니게 나가지. 손실나면 부품업체에 떠 넘기지. 기타 등등. 그러니 쉽게 바뀌겠는가?&amp;nbsp;여기에&amp;nbsp;한국내수시장에서 그간 얻은&amp;nbsp;부당이익을 다 토해내고 나면 해외에서 덤핑칠 수 없을 것이니, 아마 사면초가일 것이다. 이번에 한번 호되게 당해 봐라. 아주 고소하구나.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STRONG&gt;&lt;U&gt;현대기아차가 가장 무서워해야 할 것은 그간은 알 사람만 알았는데, 이제 도요타가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들어오면서 한국 국민들 대다수가 알게 될 거라는 것이다.&lt;FONT color=#c8056a&gt; &lt;FONT color=#e31600&gt;무엇을?&lt;/FONT&gt;&lt;/FONT&gt;&lt;/U&gt;&lt;/STRONG&gt; 캠리 좋은 것을 말이다.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현대기아차가 수십년 동안 수출용에 비해서도 매우 떨어지는 허접한 차를 국내에서 고가로 팔아먹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속았다는 것을! 그러면 한국국민들이 가만히 당할까? 계속 당할까? 매우 우수한 대체제가 바로 코 앞에 있는데? 안 당한다.&amp;nbsp;이것이 바로 현대기아차가 당할&amp;nbsp;인과응보다. &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FONT color=#e31600&gt;&lt;STRONG&gt;&lt;U&gt;자동차도 LG냉장고처럼 10년을 써도 고장한번 안난다는 것을 이제 한국민들이 거의 대다수가 알게 된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다. 도요타 캠리를 통해서 말이다. 중고차 값이 캠리와 그랜저는 하늘과 땅이 될 것이다. 캠리가 하늘이면 그랜저는 땅이다.&lt;/U&gt;&lt;/STRONG&gt; &lt;/FONT&gt;소나타는&amp;nbsp;아예 말도 꺼내지 말아야 하고. ^^ 축하해! 현다이. 사면초가에 몰리겠구만.&amp;nbsp;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군다나 전기자동차, 수소자동차, 태양열자동차 모두에서 이미 기술적으로 한참을 밀리고 있으니... ㅉㅉ (현대기아차의 차세대 기술수준이라는 것이 가솔린+LPG를 하이브리드라고 이야기하는&amp;nbsp;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니까, 한심하기 그지없다.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일주일간 보도된 적이 있었다. ^^ 수십년간 폭리를 취해 번&amp;nbsp;돈 다 어디다 사용했지? 그것이 알고 싶다!)&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1pt&quot;&gt;&lt;U&gt;&lt;STRONG&gt;도요타 캠리의 탁월한 안정성을 보여주는 충돌실험!&lt;/STRONG&gt;&lt;/U&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A class=con_link href=&quot;http://www.carz.co.kr/board/board006/view.asp?board_index=5124&amp;page=1&quot; target=_blank&gt;&lt;U&gt;&lt;FONT color=#0000ff&gt;http://www.carz.co.kr/board/board006/view.asp?board_index=5124&amp;page=1&lt;/FONT&gt;&lt;/U&gt;&lt;/A&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토요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토요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도요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도요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캠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캠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최고의 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최고의 차&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토요타 캠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토요타 캠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Camry&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Camry&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의견] 결혼과 아이 출산을 가로막는 한국!</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37"/>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37</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10-02T15:50:19Z</updated>
	    <published>2009-10-02T15:50:19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그리스도의 평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추석이다. 한가위라는 명절도 앞으로 20년 정도면 의미가 없는 명절이 될 것이다. 농경시대의 관습 중 마지막까지 남을 관습이 바로 추석일 것인데, 2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1) 농경시대의 완전한 문화적 종말, 2) 기존 농경세대의 역사적 퇴장(죽음), 3) 저출산과 1인가구, 2인가구, 많아야 3인가구의 정착, 4) 매장문화의 후퇴와 화장문화의 성황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할 것이다. 그저 휴일의 형태로만 존재할 것이다. 이미 지금도 추석은 떨어져 있는 가족들과 만나는 의미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수확의 의미는 사라진지 오래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금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앞으로도 신자유주의가 지속되는 한, 한국 사회의 저출산비율은 끊임없이 높아만 갈 것이다. 아이를 부양할 토양이 안되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에게는 자신의 삶 마저도 벅찬 실정에 결혼도 버겁고, 아이 출산은 가히 모험에 가까운 도박이다. 더군다나 레비아탄 한국 사회에서, 잔인하고 사기꾼 천지인 시대가 된 조건에서 공교육은 무너지고, 기회의 평등도 무너지고, 사교육이 기승을 부리고, 대학등록금은 현재 1,000만원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처럼 일년에 3,000만원~7,000만원 정도 들어갈 것이 눈에 불을 보듯 명백한데, 아이를 '동물처럼 기르는 것'이 아니라,&amp;nbsp;'훌륭한 교육과&amp;nbsp;좋은 의식주와 부모가 많은 시간을 내어서 사랑으로 돌보아 주는 것'과 같은&amp;nbsp;'존엄한&amp;nbsp;인간의&amp;nbsp;부양'이라는 것은&amp;nbsp;서민들에게는 불가능한 세상이 이미 되었고, 앞으로 가속화 될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금 아이를 낳는 것은 서민들에게는 새로운 노비를 생산해서 사회에 공급하는&amp;nbsp;것에 불과하다. 기회의 평등이 무너졌다는 것은 이렇게 절대적인 해악을 미친다. 진실로 말하거니와, 절대진리가 무너지면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인 해악이 발생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금의 시대에서 서민이라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출산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충분한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었다면 아이를 많이 낳아라. 단, 아이들을 노예로 만들 염려가 없는 선에서. 낳았으면 길러야 하는 것이 부모의 마땅한 천부적 책무이다. 낳아두면 알아서 큰다는 것은 사악한 이데올로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일부 종교집단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이를 무조건 낳아라는 것은 매우 잘못된 주장이다. 이들은 우선순위에 대한 고민없이 단순히 노비의 생산만을 독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나서서 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뜯어고치려는 예언자적인 행위는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배권력들의 노비, 비정규직집단의 양산으로 임금을 더 낮추려는 의도만을 가지고 아이를 낳으라고 '그럴싸한 종교적 미명'을 앞세워서 주장하는 셈이니, 이들의 주장은 선후가 틀렸다. 우선순위가 틀렸고 이는 앞뒤를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와 같은 주장이다. 그래서 서민들에게는 더 큰 해악을 가져오니, 분명 악한 주장이다.&amp;nbsp;먼저 사회를 뜯어고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것이 최우선 순위다. 생명 창조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는 투쟁을 가장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말을 듣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이를 분명히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신자유주의와 더하여 사회안전망이 극히 희박한 한국사회는 '생명의 창조라는 인간 본연의 창조 행위'를 가로막는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은 이미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투쟁이다. 신자유주의의 배후에는 악이 존재한다. 신자유주의는 '생명을 거스를 뿐만아니라 생명을 파괴하는' 죽음의 문화만을 양산시켰고 양산산시키고 있다.&amp;nbsp;그러므로 악이다. 제거해야할 대상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현재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2명이다. 이 수치가 2-3년안에 0점대로 내려올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패턴대로라면. 나아가 이 수치가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의 20대와 30대초반은 아이를 많이 낳아봐야 1명정도만 낳을 것이고, 낳지 않을 것을 선택하는 경향도 크며, 나아가 결혼을 하지 않는 자들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시중에 도는 우스개 소리를&amp;nbsp;적어 보려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아이의 미래는 부모의 정보와 조부모의 재력이다.&quot; (15년전부터 나온 이야기)&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돈 없으면 아이 낳지 마라. 아이 많이 낳는 자는 최고의 노비 생산 공장 노동자다. 아이들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자들이다.&quot; (5년전부터 나온 이야기)&lt;/P&gt;
&lt;P&gt;&amp;nbsp;&lt;/P&gt;
&lt;P&gt;&quot;최고의 재테크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quot; (5년전부터 나온 이야기)&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지금은 투쟁을 해야 할 때다. 신자유주의와 이에 결탁한 모든 세력과의 전쟁을 해야 할 때다. 서민과 중산층이 모두 일어나야 할 때이고, 생명을 사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모든 종교집단도 이 싸움의 전면에 나서야 할 때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결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결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전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전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출산&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출산&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투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투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신자유주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신자유주의&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인간의 존엄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인간의 존엄성&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안셀름 그륀,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36"/>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36</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10-01T17:39:08Z</updated>
	    <published>2009-10-01T17:39:0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그리스도의 평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책명 :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마라&lt;/P&gt;
&lt;P&gt;저자 : 안셀름 그륀 (성베네딕도수도회 수사신부)&lt;/P&gt;
&lt;P&gt;출판사/역자 : 성서와함께/한연희&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최근에 나온 책들은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에서 통찰력이 있는 책들이 매우 적다. 뿐만아니라 가볍고, 말초적인 책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신자유주의는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거대한 사악한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지가 세상을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은 느낌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래서 요즈음에는&amp;nbsp;주로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서 읽고 있다. 그 중에서 6-7년전에 성바오로딸수도회를 통해서 읽고 무척이나 감명을 받았던 안셀름 그륀의 책을 평가하고 또 소개하고자 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안셀름 그륀은 많은 책을 썼다. 내 서재에 꽂혀있는 것만 해도 7권 정도 된다. 다작가인데,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지금 서평하고 있는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를 꼽을 수 있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책은 콘스탄티노플의 주교였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가 약 400년 경에 쓴 글에서, &quot;자기가 자신을 상처 내는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도 상처받을 수 없다&quot;는 문장을 중심화제로 삼아서 글을 전개하고 있다. 안셀름 그륀의 주제의식은 '내적 자유'에 있다. 내적 자유의 본질과 내적 자유에 이르는 길을 밝히는 데에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글을 중심 바탕으로,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안셀름 그륀은 그리스도인은 외부로부터 받는 고통에 전혀 좌우되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한다. 세상이 아닌, 오직 하느님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존재 =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자유로운 존재이고, 자유인이며, 이 길은 '하느님을 오롯이 신뢰하는 것과 낡은 삶의 틀을 버리고 하느님의 삶을 신중하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부수적으로 과거의 자신의 역사,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이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도 이야기 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안셀름 그륀이 이 저작은 내적 자유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매우 유익한 작품이다. 적극 추천하며, 많은 이들이 읽어보기를 권한다. 번역도 잘 되어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러나, 안셀름 그륀 신부의 다른 저서들의 경우에는 많은 부분, 일부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것은 심리학적인 기반에 너무 치중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향심기도(혹은 마음기도, centering prayer)의 개발자로 알려진 토마스 키팅 신부의 글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는 분명하게 문제다. 심리학은 인간 심리에 대해서 아직 아무 것도 밝힌 것이 없다. 그저 거의 모든 것이 가설에 불과하고 실증주의적 실험 방법도 아주 작은 부분에 대해서 제한된 조건에서만, 실증한 것으로 보편적 진실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이 태반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동시에, 상처에 집착하는 경향도 문제다. 이런 경향은 아마도 두 신부 모두 수사신부라서 그런 모양인데, 상처에 집착하고 내적인 것이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nyway, 지금 서평하는 이 책은 그의 저서 중에서도 신앙과 이성의 balance가 신앙을 중심으로 이성이 결합된 형태로 잘 잡혀진 책이므로, 추천하는 것이다. 읽어보기를 바란다. 책값보다 수만배의 유익함을 얻을 것이기에. 그리고 소장할만한 책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안셀름 그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안셀름 그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성베네딕도수도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성베네딕도수도회&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수사신부&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수사신부&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성서와 함께&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성서와 함께&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서평]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왕자!</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35"/>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35</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09-29T21:59:33Z</updated>
	    <published>2009-09-29T21:59:3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그리스도의 평화&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책명 : 어린 왕자&lt;/P&gt;
&lt;P&gt;저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1900-1944)&lt;/P&gt;
&lt;P&gt;출판사 : 반석출판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중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읽어 보았을 어린왕자라는 책은, '인생의 의미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찾고자'하는 생텍쥐페리의 문제 의식이 그대로 드러난 책이다. 책은 1943년에 출간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어린왕자와 여우와의 대화에서 나오는 'be tamed', 길들여진다는 것은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가 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보석을 발견하는 과정이라면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관계이고, 이 관계를 긍정적으로 바라 보는 것에 기쁨이 있다는 것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즉,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2가지인데, 1)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서로 본질적인 것을&amp;nbsp;바라볼 줄 알 때 비로서 맺어진다는 것이고 이를 서로간에 길들여진다고 표현했다. 단,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권력(왕 혹성), 허영(허풍쟁이 혹성), 이익이나 소유(기업가 혹성), 시키는대로 일을 하는 것(가로등 혹성), 술로 비관하는 것(술꾼 혹성)&amp;nbsp;등과 같아서는 이는 인간과 인간이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고&amp;nbsp;주장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다음으로, 2) 그 본질적인(눈에 보이지 않는 보석,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아는 것 - 저자의 표현)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amp;nbsp;것이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언제나 슬픔이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기쁨이 된다.&amp;nbsp;여기서 긍정적이라고 함은 본질적인 관계로 서로 길들여져서 서로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보석을 신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어린왕자를 만난 주인공이 어린왕자가 자기 별로 돌아간 이후&amp;nbsp;밤 하늘에 떠 있는 5억개의 별들은&amp;nbsp;그 본질적 관계를 기쁨으로 바라보면 찬란한 기쁨이 되지만, 불안함으로 바라보면 완전한 슬픔이 된다는 것이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2가지가 생텍쥐페리가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의 본질에 대해서!&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이 책은 정확히 이 것이 전부인 책이다. 그럼에도&amp;nbsp;꽤 유익한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인간과 관계를 맺을 때, 어른처럼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amp;nbsp;자기자신과 상대방 안에 있는 숨어 있는 보석(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것)을 찾으라는 메시지다. 매우 훌륭한 통찰력이라 하겠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앙투안 드 생텍쥐페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앙투안 드 생텍쥐페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어린 왕자&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어린 왕자&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생떽쥐베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생떽쥐베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Le Petit Prince&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Le Petit Prince&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The Little Prince&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The Little Prince&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생땍쥐베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생땍쥐베리&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서평]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33"/>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33</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09-28T23:52:50Z</updated>
	    <published>2009-09-28T23:52:50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A name=&quot;[문서의 처음]&quot;&gt;&lt;/A&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리스도의 평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책명 : 죄와 벌&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저자 : 도스토예프스키 (1821-1881)&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출판사/역자 : 꿈꾸는아이들/소담무&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1866년에 잡지에 발표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죄와 벌’은 소설이지만 희곡적인 요소가 다분한 책이다. 약간의 추가적인 작업만 하면 바로 희곡으로 편집될 수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주인공인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리니코프(이하 라스콜리니코프)는 가난한 대학생이다. 잡지에 논문도 싣기도 했다. 당시의 인텔리면서도 하숙비가 밀려서 고발당하는 처지에 놓일 정도로 가난한 대학생이다. 가난한 주인공은 1달 동안의 치밀한 사전 계획을 하고서, 전당포 노파인 알료나 이바노브나와 노파의 여동생은 리자베타를 도끼로 죽이고 노파의 물건을 훔친다. 그런데 훔친 물건은 노파의 지갑과 몇 가지 물건뿐으로, 노파의 금고 안의 큰 돈도 훔치지 못하고, 자기가 저당 잡힌 물건도 가져오지 못한 채로, 서둘러서 노파의 집에서 도망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라스콜리니코프는 처음으로 살인을 하고서는 치밀하게 준비한 사람답지 않게 가책을 한다. 그의 내면에서 울리는 소리는 2가지다. 한 가지는 ‘자신은 특별한 사람으로서, 평범한 사람을 위해서 마땅히 죽어 없어져야 할 사람(고리대금업자인 노파)을 죽였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다. 소설 어디에도 살인을 하게 되어서 전도유망한 자신의 미래가 파괴된 것에 대한 불안감은 전혀 서술되지 않는다. 이 2가지 내면의 소리 속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갈등한다. 심리적인 갈등의 정도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amp;nbsp;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심리적 내면 갈등을&amp;nbsp;매우 사실적으로(더 이상 사실적일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게 서술하고 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도중에 이런 저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절친한 친구인 라주민, 여동생 두냐, 어머니 알렉산드로브나, 루진, 예비판사 포르피리, 스비드리가일로프, 소냐 등. 이들 주변인물들간의 관계 혹은 주변인물과 주인공과의 관계를 통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의 내면의 심리적 갈등을 매우 사실적이면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라스콜리니코프는 이 심리적 갈등 속에서 스스로 탈출하지 못한다. 점점 갈등은 깊어간다. 그리고 주변에서 점차로 라스콜리니코프가 살인자라는 의혹이 커져간다. 예비판사인 포르피리는 이미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에게 고백하고 만다. 그렇다고 소냐에게 해결책을 구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2가지의 심리적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런 그에게, 소냐가 이야기 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지금 당장 광장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당신의 피로 더럽힌 대지에 입을 맞추세요. 그리고 사방으로, 온 세상을 향해 절하세요. 그리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내가 살인자입니다!’하고 외치세요. 그러면 하느님께서 새 생명을 주실 거예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의 해결책을 듣고서 빛을 본다. 그러나 고민한다. 어머니와 여동생 두냐의 문제다. 친구인 라주민과 여동생 두냐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고 있기에 라스콜리니코프는 어머니와 여동생 두냐를 친구인 라주민에게 부탁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런데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에게 한 고백을 옆방에 있던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엿듣는다. 그는 이전부터 사랑해 왔던 두냐를 차지하기 위해 이 비밀을 이용한다. 소설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두냐의 이야기로 미루어보건데,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두냐를 차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부인을 독살한 것으로 보인다. 돈 많은 자기 부인을 독살하고 나서 두냐를 찾아 온 것이다. 그러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두냐의 사랑을 얻지 못한다. 그는 독살을 한 살인 행위와 사랑을 잃은 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살인을 한 스비드리가일로프의 해결책은 자살이었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기 자신마저도 사랑하지 않았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라스콜리니코프도 살인 행위와 자신의 심리적 갈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살을 생각한다. 자살을 감행하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감행하지 못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수를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여동생 두냐를 만나러 간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자살한 저녁에 말이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의 자수의 이유는 회개가 아니다. 참회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양심의 가책보다는 자신의 행동이 의롭다고까지 여긴다. 단지 자수하는 이유는 자신의 무능함과 비열함을 참을 수 없어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미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는 두냐를 만난다. 두냐는 오빠인 라스콜리니코프를 꼭 껴안고 흐느껴 울면서 말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고통을 짊어지기 위해 간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죄의 절반은 용서받은 게 아닐까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말에 라스콜리니코프는 “죄? 뭐가 죄란 말이냐!”하면서 고함치며 말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내가 그 추악하고 백해무익한 종자를,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가난뱅이의 피를 빨아먹는 그 노파를 죽인 것이 죄란 말이냐? 나는 아직도 죄라고 생각하지 않아. 어째서 모두들 죄, 죄! 하는 거냐? 내가 자수하기로 결심한 것은 더 이상 나 자신의 무능함과 비열함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포르피리가 말한 것처럼 자수하는 게 앞으로 나에게 이롭기 때문이기도 하고!”&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제 양심을 대변하는 두냐가 소리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빠는 남에게 피를 흘리게 했잖아요!” 이는 소냐가 라스콜리니코프에게 해 준 말과 같은 말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에 라스콜리니코프는 다음과 같이 항변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피, 피라구? 피는 우리 모두 흘리고 있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려무나. 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려고 했던 거야. 하지만 내가 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지. 성공했으면 지금쯤 근사한 월계관을 쓰고 있을 텐데... 하지만 난 결국 함정에 빠지고 말았어. ... (이후 두냐가 틀린 생각이라고 말하자) ...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난 내가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말을 마치는 순간, 라스콜리니코프는 두냐의 괴로움이 가득 담긴 눈을 본다. 그리고 자신이 어머니와 두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적어도 어머니와 두냐에게 만큼은 죄를 지은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 순간에 ‘두냐의 눈을 통해서, 참된 사랑’을 본 것이다. 그리고는 소냐에게 가서 말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U&gt;&lt;/U&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color=#c84205&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소냐, 당신이 주는 십자가를 받고 싶소.”&lt;/SPAN&gt; &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리고 광장으로 나아가 소냐의 말대로 대지에 입을 맞춘다. 그 다음 자수를 하려고 (자신의 비열함과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두냐와의 만남을 통해서 약간 변화된 모습으로) 경찰서로 간다. 그런데 경찰서 사무장인 자묘토프가 전근을 갔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다시 경찰서를 나온다. 그 때 저 멀리 서 있는 소냐의 눈(양심과 사랑의 상징)과 마주친다. 그는 다시 경찰서 들어가서 나지막하고 천천히 또박 또박 말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내가 바로 알료나 이바노브타와 리자베타를 죽였습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시베리아 감옥에 수감된 라스콜리니코프를 소냐는 따라간다. 감옥 주변에서 산다. 그리고 친구인 라주민과 여동생 두냐는 결혼을 했고 소냐처럼 오빠인 라스콜리니코프가 수감되어 있는 시베리아로 와서 살기로 한다.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를 면회하고, 작업을 하러 밖으로 나올 때면 그 주변에 머문다. 다른 죄수들은 그런 소냐를 보고, 작업장에 가던 길에 소냐를 마주치는 경우에 모두들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하며 말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소피아 세뇨노브나, 당신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십니다. 인자하고 너그러우신 어머니!”&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러던 어느 날, 야외 작업장에서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 옆에 와 않는다. 소냐의 얼굴은 병색이 가시지 않아서 파리했다. 낡은 외투와 초록색 숄을 두른 그녀는 상냥하게 웃으며 말없이 손을 내민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의 발밑에 꿇어 엎드린다. 그리고는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소냐는 너무나 놀랐지만 그 순간, 모든 것을 깨닫는다.&amp;nbsp; 그녀의 눈은 한없이 행복감으로 빛났다. 그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는 것을 안 것이다. 두 사람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빛이, 새로운 생활에 대한 희망의 빛이 찾아들고 있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을&amp;nbsp;다음과 같이&amp;nbsp;끝맺음 하고 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두 사람을 부활시킨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의 마음이 서로의 마음을 적셔주는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 된 것이다. 이제 그들 앞에는 새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주인공인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수를 하는 순간에도 스스로 양심의 가책과 자신의 사상과의 갈등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동생 두냐를 만나서 약간의 변화가 있기는 했지만. 감옥에 갇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감옥에 갇혀서 벌을 받고 있는 동안에 소냐는 항상 옆에 있다. 감옥 주변에 이사를 와서 면회를 오고, 감옥 주변을 서성이며, 작업장에 가는 길이면 어김없이 소냐가 나타난다. 이제 이 소냐의 사랑 앞에 라스콜리니코프는 참다운 회개의 눈물을 흘린다. 자신의 오만함과 그릇된 이데올로지를 완전히 산산조각 내서 버려 버리고, 양심의 가책 앞에, 위대한&amp;nbsp;사랑 앞에&amp;nbsp;스스로 무릎을 꿇는다. 소냐는 고통 받는 양심의 상징이다. 동시에 고통 받고, 같이 고통을 겪어주는 사랑의 상징이다. 이 과정을 통해, 둘은 부활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라스콜리니코프만 부활한 것은 아니다. 소냐도 부활한다. 가족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amp;nbsp;창녀의 삶을 살았던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를 사랑함으로써, 그 사랑을 묵묵히 실천함으로써 부활한다. 서로의 사랑이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 되고, 새로운 삶의 빛이 시작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U&gt;라스콜리니코프를 변화시킨 것은 그의 사상도 아니고, 그의 알량한 자존심도 아니다. 허상에 불과한 이론이나 이데올로지도 아니며, 미래의 사회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직업과 사회적 지위와 돈을 갖지 못할까봐 안절부절하는 그런 두려움도 아니고, 붙잡히거나 사형에 처해질 것 같은 두려움도 아니다. 라스콜리니코프를 진정으로 참회시킨 것은 오직 사랑이다. 가난한 집안 식구들을 위해 정략 결혼으로 몸을 팔 뻔했던 여동생 ‘두냐’와 한 때 가난한 집안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던 ‘소냐’의 사랑이다. 소냐는 죄수들의 고백처럼 “인자하고 너그러우신 어머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은 바로 이것이다.&lt;/U&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color=#e31600&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진정 사랑만이 영원하고,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고 부활의 원천이다!”&lt;/SPAN&gt;&lt;/STRONG&gt;&lt;/FONT&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FONT color=#e31600&gt;&lt;STRONG&gt;&lt;/STRONG&gt;&lt;/FON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quot;진정 사랑만이 회개를 시키는 것이며, 사랑외에 그 무엇도 사람을 근본적으로&amp;nbsp;변화시키지 못한다. 사랑이외에 나머지 모든 것은 허상에 불과한 것으로 인간 존재에 반하는 것이다!&quo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amp;nbsp;&lt;/STRONG&gt;&lt;/P&gt;&lt;/SPAN&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그리스도교 사상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amp;nbsp;도스토예프스키의&amp;nbsp;'죄와 벌'은 한 작품에 한꺼번에 소화시키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논제인 1) 인간의 본질과 2) 인간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3) 영원한 가치인 사랑과 생명과 부활을 하나의 스토리 속에 매우 사실적으로, 매우 감동적으로 담아 넣고 있다. 동시에 서술 방식에 있어서도 인간 내면의 심리적 갈등을 완벽한 Realism으로 보여준, Realism의 최고봉이라 할만하다.&amp;nbsp;진정 불후의 명작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도스토예프스키&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도스토예프스키&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죄와 벌&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죄와 벌&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의견] 인류 역사의 진보 속도에 대하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32"/>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32</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09-27T22:04:07Z</updated>
	    <published>2009-09-27T22:04:0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리스도의 평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오늘은 인류 역사의 진보 속도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결론은 거북이보다 느리고, 달팽이보다도 느리다는 것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수십만년의 인류 역사에서 여성이 사람대접을 받게 된 것은 지금부터 약 100년 정도에 불과하다. 여성은 지금부터 약 100년 전만해도 그저 아이를 낳는 동물에 불과했다. 물론 현대에도 여성의 자유가 엄격하게 제한되는 나라들도 많다. 이슬람지역은 여전히 여성들을 사고판다. 아주 공식적으로. 형식적인 자유가 보장된 곳이라도 여전히 인신매매는 활개를 치고 있고, 성매매도 여전하다. 심지어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남성조차도 성매매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성이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불과 100년도 채 안 된다. 그전에는 여성은 의사가 될 수 없었다. 기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수십만년의 인류 역사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 받게 된 것도 불과 몇 백 년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만 하더라도 지금 내 블로그에 쓴 글의 내용 정도라면, 지금부터 정확하게 20년 전으로만 되돌아가도 바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영장도 없이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솔제니친이 그린 바로 그 수용소의 사람들처럼. 노예제도가 폐지된 것도 불과 약 200년 전에 불과하다. 흑인이 참정권을 갖게 된 것도 불과 100년이 채 안 된다. 인간은 이렇게 잔인하며, 인간의 역사 발전의 속도는 너무나 너무나 느리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것이 위대한 지성을 자랑한다는 인류 역사의 실체다. 무려 수십만년을 살아오면서 인간은 여전히 자유의 언저리까지만 왔을 뿐이다. 동물 수준을 벗어나지도 못했다. 여전히 동물적 속성이 더 강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진전 방향은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이 방향으로 역사는 진보한다. 그 역으로 돌아 간 적은 일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 도 없었다. 도도한 주된 흐름에서는! 단, 그 속도는 정말로 더디다. 달팽이가 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달팽이가 만약 하루 24시간을 계속 기기만 한다면 아마도 1미터 정도 갈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달팽이보다 더 느린 것이 있다. 바로 인류 역사 발전의 속도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러니 2009년 현재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후퇴를 보면서 지나치게 슬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명심하자! 적어도 한번 쟁취한 것은 지켜야 되지 않겠는가? 그 맛, 민주주의의 훌륭한 맛을 보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달팽이 크기만한 정도의 아주 작은 진전만이라고 이루어 보자! 그래야 후손들에게 넘겨줄 때 미안함이 덜 할 것이니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인간의 존엄성&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인간의 존엄성&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인류 역사&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인류 역사&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진보 속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진보 속도&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인류 역사의 진보 속도&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인류 역사의 진보 속도&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서평] 솔제니친, 이반 데비소비치의 하루!</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31"/>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31</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09-27T22:02:27Z</updated>
	    <published>2009-09-27T22:02:27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A name=&quot;[문서의 처음]&quot;&gt;&lt;/A&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리스도의 평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책명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저자 : 솔제니친 (1918-2008, 1970년 노벨문학상수상자)&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출판사/역자 : 소담출판사/류필하&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책은 솔제니친의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이다. 자전적인 소설이다. 솔제니친 자신이 1945년 2월 포병대위로 근무 중에 ‘반소선동, 반소조직의 혐의로’ 수용소에 갇히게 되고, 이후 1956년 2월 6일까지 약 10년간 혹독한 추위가 매섭게 몰아치는&amp;nbsp;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이 책은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이하 슈호프)의 수용소의 하루 생활을 담담한 사실주의적 서술 방식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슈호프가 갇힌 정치범 수용소는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추위가 매섭게 몰아치고, 주변에 산이나 나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외딴 수용소다. 당시 스탈린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이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정당한 이유 없이’ 수감되었다.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고 수감되고, 하느님을 믿었다고 수감된다. 이 책은 슈호프 자신과 슈호프의 눈으로 공산주의 체제하에서의 수용소와 수용소 안의 인간의 삶을 ‘새벽 5시의 기상 시간’부터 ‘밤 10시 경 마지막 두 번째 점호를 끝내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를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수용소 안에서 인간의 삶은 단 하나로 동일하다. 이들은 ‘존엄한 인간’임에도, 벽에 걸린 못보다도 못하고, 방한복만큼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썩은 양배추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수용소안의 인간은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누구나 썩은 감자보다도 못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이들에게는 자유는 이미 마음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단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나 생존마저도 포기한 몸부림만 있을 뿐이다. 형기에 만기가 없기 때문(정해진 형기는 언제나 연장된다)이고, 수용소의 정해진 규칙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굶어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중 감옥에 갇혀져 15주 정도면 죽거나 하는 것이다. 수용소 안의 인간에게는 자유, 인간의 존엄성, 희망, 생명, 평화, 하느님과 같은 단어는 이미 완전하게 잊혀 진다. 극히 소수의 침례교신자를 제외하고(물론 이들도 10년을 넘어 오랜 기간을 투옥되다 보면 동일해 지겠지만).&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수용소 안에서 슈호프가 가지는 희망은 오직 하나다. “살아남으리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으리라!” 그래서 수용소 안에서의 생활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윤리와 도덕은 의미가 없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투쟁만이 있을 뿐이다. 수용소 규칙을 위반하고 속여서 죽을 두 그릇이나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수용소 규칙을 위반하여 작은 칼을 만들어서 돈 벌이도 해야 하고, 수용소 규칙을 위반해서 강제노역에서 빠질 수 있으면 빠져야 하고, 반장의 눈에 잘 들어야 하고, 간수의 눈에 잘 들어서 따뜻한 난로 옆에서 펜대만 잡을 수 있으면 최고이고, 수용소에 같이 수용된 자들과 영리하게 서로 거래를 해야 하고, 기타 등등. 물론 탈옥과 같은 엄청난 것은 하면 안 된다. 바로 사살되니까. 수용소의 규칙을 어기더라도 중감옥에 갈 정도가 되면 안 된다. 15주후면 누구나 죽으니까. 살아도 결핵에 걸려서 평생 골골해야 하니까. 경감옥도 안 된다. 이 같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수용소 안의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같이 수용소에 갇힌 이들 간에도 철저한 계급과 생존 투쟁이 존재한다. 아니 넘친다. 그러나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로 모두 동일하다. “살아남아야 한다!” 바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솔제니친은 스탈린공산주의의 악함과 악랄함을 아주 철저하게 고발하고 있다. 글은 흥분됨이 전혀 없는 매우 담담한 필체로 realistic하게 써져 있지만, 그 어떤 격정보다도 더 강한 고발을 하고 있다. 동시에 간간히 해학적인 요소마저 가미해서 참혹한 글을 읽으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지을 때도 있다. 솔제니친의 위대한 문학적 능력이다. 진정, 인간의 가장 참혹한 모습을, 인간의 존엄성이 떨어질 때로 떨어져서 가장 비참한 상태인 바로 그것을 이렇듯 담담하고 매우 사실적이며 동시에 해학적으로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책,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단순하게 스탈린공산체제의 악함과 악랄함만을 고발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생명의 존중 등의 절대 진리’의 측면에서 그 ‘정도’만 다를 뿐 현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은 수용소 안의 인간의 삶의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현대 사회를 수용소로 비유해 보고, 현대 사회 속의 개인을 수용소 안의 존재로 비유를 해보면, 유사한 점을 매우 많이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 조차도 그 사회가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간에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과 생명’은 여전히 억압 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생명과 평화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도록 강한 자극을 준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인류는 창조된 이래로 지금까지, ‘인간 존엄성의 실현을 위한 위대한 투쟁’을 해 오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서 가장 악랄하고 악한 체제인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사회 체제가 인간의 존엄성을 얼마나 해칠 수 있는 가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에도 스탈린공산체제보다 더 가혹한 악마의 체제가 존재한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 주민들의 삶은 스탈린공산체제의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보다 더 비참하다. 북한은 사라져야 할 대상이다. 지구에서 그리고 우주에서 영원히. 단, 북한에서 극한의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은 구원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선의를 가진 모든 인간들은 고통 받고 있는 그들에게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과 평화를 주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솔제니친은 위대한 문학가라 칭할 수 있다. 그리고 단순한 문학가를 넘어서, 솔제니친은 위대한 철학자이고, 역사가이며, 인권운동가이자 인본주의자다. 솔제니친의 문학은 인류의 문학사에서 길이길이 연구되고 보존될 가치가 충분하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읽어보기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특히 소담출판사의 번역은 매우 잘 되어 있다. 잘못 번역된 곳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번역자가 모스크바에서 유학을 오랜 기간 한 사람이라서 그런 모양이다. 물론 유학을 오랜 기간했다고 모두 이 정도의 러시아어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공부하면서 지내야만 가능하다. 훌륭한 번역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PS.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반드시 이 책을 읽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몰락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수준은 참혹한 중세 시대를 수십 배 뛰어넘는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이렇게 파괴된 시대를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폐기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사탄(악마)이라고 규정해도 좋다. 실제로 그러하다. 이것들은 모두 지구상에서 아니 우주 전체에서 제거해야 할 악 중의 악임을 명심하기 바란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노벨문학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노벨문학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솔제니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솔제니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이반 데비소비치의 하루&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반 데비소비치의 하루&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묵상] 참 자유인의 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30"/>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30</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09-25T23:32:43Z</updated>
	    <published>2009-09-25T23:32:43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리스도의 평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예전의 묵상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존엄성의 자유의&amp;nbsp;1단계는 경제적 자유(의식주)와 신체적 자유(육체적인 건강,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는 것)에 있다. 각 종교집단도 이를 알기에,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기본적인 이러한 요구를 완전하게 충족시켜준다. 그래서 이들은 이런 경제적, 신체적 자유를 획득하는 투쟁을 하지 않는다. 대신 각 종교의 교리와 위계질서에 대한 철저한 순응을 요구 받는다. 자유를 얻는 대신 희생을 요구받는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평신도나 무신론자들의 삶은 이들과 다른 방식과 단계를 밞아나가야 한다. 이들은 먼저 경제적인 자유와 신체적인 자유를 획득해야 한다. 이를 획득하면 자유인이 되는 1차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다. 그러나 아직 자유인은 아니다. 경제적인 자유는 일하지 않아도 평생(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하면 80세) 동안 의식주에 대해서 1%의 염려도 없는 삶이다. 몸이 아프면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마음껏 받을 수 있고, 스스로 만족한 정도의 품위 있는 의식주와 여가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의 돈을 확보하면 경제적인 자유를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일하고 싶으면 일을 하고, 여가를 보내고 싶으면 여가를 보내고, 취미를 하고 싶으면 취미를 하고. 즉, 돈벌이가 안 되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경제적 상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신체적 자유는 2가지 측면의 자유다. 질병이 발생했을 때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자유(물론, 현대자본주의에서는 이는 돈으로 해결된다)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자유(한국의 법에서는 자력구제를 용납하지 않는다. 정당방위를 제외하고는. 이는 분명하게 신법에 반하는 것으로, 법전에서 삭제해야 할 조항이다)이다. 전자는 돈으로 해결하면 되지만, 후자는 신체적인 단련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싸울 줄 아는 능력, 즉 ‘신체를 단련하고 싸움이 벌어질 때는 상대를 강제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확보해야&amp;nbsp;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동안 기초적인 이 2가지 자유를 획득하지 못하고 죽어간다. 이는 불행한 일이다. 국가와 사회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기구여야 한다면, 국가와 사회는 이 2가지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의 사회안전망 수준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사법과 경찰제도는 무전유죄인 불의한 국가이므로, 대한민국에서는 이 2가지 자유를 개인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동시에 국가와 사회의 제도를 주인된 자격으로 이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미국의 오바마의 의료제도개혁 프로그램은 이 같은 ‘자유의 흐름’ 안에 있는 것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늦어도 나이 50이 되기 전에, 이런 경제적/신체적 자유를 획득하기를 바란다. 가장 확실한 것은, 사회 제도를 뜯어 고치는 것이다. 누구나 이와 같은 경제적/신체적 자유를 획득하도록 말이다. 국민 모두가 각성하면 가능하다. 그러나 이기적인 인간은 ‘사회 뜯어 고치기’ 작업에 동참하지 않는다. 극히 일부만 동참하는 법이다. 국민 전체가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야만 비로서 국민들의 1/4정도가 이 작업에 동참한다. 그것도 일시적으로만. 이를 고상하게 이야기하면, ‘어둠은 오래가지만, 새벽이 오면 사라진다.’ 사회 제도를 뜯어 고칠 용기가&amp;nbsp;없으면,&amp;nbsp;스스로 이러한 기초적인 1차 자유의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고생을 많이 해야 한다.&amp;nbsp;이렇게 고생하다보면 사회제도의 불합리를 고쳐야 한다는&amp;nbsp;것을 동시에 깨닫게 될 것이다.&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누구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동시에 사회의 노예가 되지 않고서도,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경제적인 자유를 얻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는 소수이지만.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1)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깨달음이 있고, 2)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3) 불퇴전의 용기와 끈기가 있고, 4) 치열하게 공부하고 동시에 치열하게 노력한다는 점이다. 경제적 자유를 얻기까지 쾌락적 요소를 기꺼이 포기할 줄 안다. 일하는 것 자체를 즐긴다. 다른 아이들은 workaholic이라고 비아냥거리겠지만.&lt;/SPAN&gt; 머슴으로 살면서 경제적인 자유를 얻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심리적, 영적, 정신적, 이성적 자유를&amp;nbsp;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 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깝다.&amp;nbsp;머슴으로 번 돈의 대부분을 토해내지 않는 한, 익숙한 머슴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지 않는 한. 이유는 간단하다. 어둠이 정신과 이성에 너무나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 어둠의 자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경제적/신체적 자유를 얻었다 하더라도 자유인이 된 것은 아니다. 자유인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 충족되었을 뿐이다. 만약 이런 자유를 얻었더라도 ‘머리와 마음이&amp;nbsp;비어있다면’ 그는 여전히 사회와 관습의 종이요, 머슴이다. 사회가 돌아가는 모든 시스템을 알아야 하고, 역사를 자기만의 통찰력으로 꿸 줄 알아야 하며, 적어도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대한 오랜 기간의 깊은 사색과 독서는 필수적인 요소다. 경제적/신체적 자유는 ‘참된 자유’를 얻기 위한 전 단계일 뿐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참된 자유는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보여주셨고 가르쳐 주셨다. 지금도 그리스도께서 눈앞에 있어야 믿겠다는 사람은 ‘어차피 가르쳐줘도 실천하지 않을 자’이므로 이런 주장은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눈앞에 나타나서 다시 가르쳐줘도, 절대로 실천하지 않는다!’ 실천하지 않는 것은 신앙이 아니므로, 아무 의미가 없다. 신약성서로 모든 계시는 완성되었다. 더 이상의 계시는 없다. 예수님 이후의 계시가 있다면 이는 다시 ‘신약성서로 돌아가라! 즉,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대로 살아라!’는 것이다. 그 외의 것은 없다. 예수님을 살아보면 이를 확신하게 된다. 누가 가르쳐주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확신하게 된다! 절대적으로!&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참된 자유는 ‘사랑과 정의, 생명과 평화’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중 어느 하나만을 산다는 것은 거짓이다. 사랑과 정의와 평화와 생명은 같은 것이다. 항등식이다. 즉,&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사랑 ≡ 정의 ≡ 생명 ≡ 평화 ≡ 참된 자유’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 삶의 본질을 처음으로 완전하게 가르쳐 주시고, 처음으로 완전하게 살아가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 = 예수님을 입는 삶 =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 바로 참된 자유를 사는 삶이다. 이 삶을 살아가야만 참된 자유를 얻게 된다. 참된 자유인이 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은 자유인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즉, 경제적/신체적 자유를 획득하지 못해도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을 살면 누구나 참된 자유인이 된다. 실제로 소수이지만, 이런 삶을 사는 분들이 역사적으로 있었다. 극히 소수이지만.&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인간의 자유는 경제적/신체적/정신적/이성적/영적, 이렇게 5가지 측면에서 모두 자유로와야 ‘충분한 자유’를 누린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완전한 자유’에 이른 것은 아니다. 완전한 자유는 죽음을 극복해야만 한다. 죽음으로부터의 자유와 영원으로의 자유는 오로지 하느님과의 일치 속에서만 이루어진다. 즉, 하느님과의 일치가 완전한 자유다. 그리고 이 일치는 바로&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U&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에만 있다!&lt;/SPAN&gt; &lt;/U&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TRONG&gt;&lt;U&gt;&lt;/U&gt;&lt;/STRONG&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TRONG&gt;&lt;U&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것이 유일한 “참 자유의 길, 참 자유에로 이르는 길, 참 자유인의 길”이다!&lt;/SPAN&gt; &lt;/U&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참 자유의 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참 자유의 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참 자유에로 이르는 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참 자유에로 이르는 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참 자유인의 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참 자유인의 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참 자유&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참 자유&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서평] 알베르 카뮈, 이방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29"/>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29</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09-25T23:30:34Z</updated>
	    <published>2009-09-25T23:30:34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gt;&lt;A name=&quot;[문서의 처음]&quot;&gt;&lt;/A&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리스도의 평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책명 : 이방인&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저자 : 알베르 카뮈 (1913-1960, 1957년 노벨문학상수상자)&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출판사/역자 : 청목사/임해진&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수십 년 전에 읽어 보았을 때는 ‘미친 놈 이야기구만’이라고 생각했었던 소설이 바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라는 책이었다. 최근에 시간이 나서 다시 읽어보는 지금은 감상이 완전히 다르다. 한마디로 인류 역사에서 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다.&lt;/SPAN&gt;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현대 사회의 마녀 사냥'으로 아주 잘 '고발'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카뮈의 이방인은 “인간에게 있어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고 있고,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는 근본적으로 대립 관계’임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방인에서 주인공인 뫼르소는 단지 (검사가 이야기한 대로)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프랑스법정과 배심원에 의해서 광장에서 참수되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합리적인 이성으로 소설에 드러난 사건만 보면 뫼르소는 아랍인이 칼로 공격을 해 왔기 때문에 권총으로&amp;nbsp;쏴서 아랍인을 죽였으므로 분명하게 정당방위였지만, 프랑스법정은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광장에서 참수시키는 형을 선고하고 만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소설 속에 등장하는 뫼르소는 자기 감정에 충실한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amp;nbsp;다만 그는 사회적 관습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는 사람이 아닐 뿐이다. 만약 뫼르소가 사회적 관숩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사형에 처해지지 않았을 것이고 그는 정당방위로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무죄로 인정받았을 것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결국 뫼르소는 단지 ‘사회적 관습으로, 도덕적 윤리에 의하면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는 반드시 슬퍼해야 함에도 슬퍼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형에 처해진다. 사형에 처하는 이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이며 불법적인 판결이 옹호하는 것은 단지 하나이다. ‘개별적인 인간의 존엄성은 없다. 사회적 관습에 철저하게 순응하는 자는 살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죽음이다. 사회적 관습에 철저하게 순응하지 않는 자는 이방인이며, 이방인은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는 허상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카뮈의 이방인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그는 인간에게 있어서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요구하고 있으며, 사회와 인간의 존엄성과의 근본적인 대립 관계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 주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소설의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카뮈의 이방인은 묘사 중심의 실존주의적 서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심리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실존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다. 뫼르소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에서 ‘실존주의적 표현 방식’은 찬란한 빛을 발휘한다. 이방인에서 서술 방식으로서의 대화는 거의 없다. 뫼르스의 심리에 대한 실존주의적 표현 방식은 사회의 부조리를 아주 극명하게 드러나게 해 준다. 이런 점에서도 카뮈의 이방인은 기법에서도 탁월함을 보여준다. 실존주의적 표현 방식은 카뮈가&amp;nbsp;언급한&amp;nbsp;무관심과 아주 잘 어울리고 있다.&lt;/SPAN&gt;&amp;nbsp;카프카의 실존주의 표현 방식과는&amp;nbsp;공통점이 있지만&amp;nbsp;동시에 서로 다른 매우&amp;nbsp;창의적인&amp;nbsp;서술 방식이다.&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카뮈의 문제의식은 더 나아간다. 이방인의 마지막 단락에서 카뮈는 뫼르소를 통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모든 나의 고통을 순화시켜 주고, 희망을 없애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이 징후들과 별들이 가득 찬 이 밤 앞에서 처음으로 이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이 세계가 이렇게도 나와 비슷하고 사실상 형제 같음을 느끼게 되니, 나는 행복했었고 또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카뮈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는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것이므로,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뫼르소로 대표되는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amp;nbsp;평범하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우처럼,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에 무관심하고, 사회도 인간에게는 본질적으로 무관심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나아가 사회적 관습에 순응한 자에게도 사회는 무관심하고, 사회적 관습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대로 살아가는 자에게도 사회는 ‘정다운 무관심 =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라고 카뮈는 주장한다. 그래서 카뮈는 뫼르소를 통해서 뫼르소로 대표되는 인간과 사회는 형제와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다운 무관심의 형제!’ 여기서 ‘정다운’이란 단어를 빼면, 인간과 사회는 무관심한 형제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이방인이다. 모든 사회도 이방인이다. 무관심이라는 동질성을 가진.&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카뮈는 전쟁을 겪으면서 아마도 인간의 집단광기를 보았을 것이다. 카뮈는 인간의 집단광기의 표현이 바로 사회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올바른 인식일 수 있다. 사회적 관습이라는 것은 결국 집단광기의 표현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도 카뮈의 인식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나의 블로그의 My meditation에서 항상 이야기 하듯이, 인간은 허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사실 사회적 관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허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도 말이다. 사회가 산을 물이라고 하면 물이라는 데에 동의하고, 사회가 물은 산이라고 하면 산이라는 데에 동의하는 그런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의 삶의 양식 말이다. 이는 허상이고, 거짓된 삶이다. 이런 삶을 고발한 카뮈의 이방인은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인간은 인간이고,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니 말이다. 본질은 변화하지 않는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존엄함과 고귀함은 영원하니까 말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오랜 만에 다시 읽어 보면서, 처음 읽었을 때의 역겨움과는 완전히 다른 즐거움을 느낀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몰입해 보기도 오랜만이다. 아마도 카뮈 식으로 생각하면, 나의&amp;nbsp;학창 시절은 사회적 관습에 몰입했던 때였던 모양이고, 지금은 그 모든 것을 겪고서 사회적 관습에서 해탈한 때인 모양이다. 그러면 사회는 나에게 ‘정다운 무관심’을 선언하는가? 사회의 선언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리고 사회가 정다운 무관심을 선언해도 나에게는 어떤 해도 미치지 못한다. 이미 사회적 관습에 의해 좌지우지되는&amp;nbsp;지위에서 해방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카뮈의 이방인은 그리고 다른 카뮈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그 중심점이 ‘고발’에 있다. 인간과 사회의 대립 관계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이 중심이다. 카뮈의 문제의식의 정점을 보여준 책이 바로 이 ‘이방인’이라는 책이다. 카뮈는 이제 고발을 넘어서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해야 할 시점에서 교통사고로 죽는다. 47세의 젊은 나이에. 그는 아마도 자유로의 도약으로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이방인을 뛰어넘은 자유인을 그리고 싶어 했을 것이다. 이방인의 마지막 단락에서 그는 그 단초를 보여주었으니까.&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또한 카뮈는 관심과 무관심의 실체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이는 카뮈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이 심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뮈는 모든 인간은 그리고 모든 사회는 무관심하다고 이야기를 한다. 관심을 나와 다른 것(사람이든, 사회든, 자연이든)에 이성과 감정을 시간과 노력과 지속성을 가지고 투입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보통 사회과학에서는 이렇게 정의한다. 그러나 이는 틀렸다. 참된 관심을 상대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키워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자식이 있어서,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과 같이 있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고 오랜 기간 대화가 단절되고,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서 어머니의 질병에 대해서 치료를 해 줄 수 없다면, 그런데 요양원에 가면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운동도 할 수 있고, 질병에 대한 치료를 할 수 있다면, 가장 중요하게 어머니가 요양원에 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면, 자식의 입장에서 어머니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은 ‘요양원에 보내 드리는 것’이다. 카뮈의 글에서는 이에 대한 분명한 서술이 없다. 그저,&amp;nbsp;감정에 충실한 무기력한 평범한 인간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주제의식에 초점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들지만.&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사랑의 본질, 관심의 본질은 무조건적인 자기희생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키워주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과 관심의 본질이다. 카뮈는 이것의 일부를 건드렸지만, 비본질적인 측면이었고, 사랑과 관심의 실체에 다가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카뮈가 이야기하는 무관심은 오직 마지막 단락에서만 잠깐 나타나는 것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PS. 중고등학생/대학생/대학원생들이 이 책을 읽을 경우에는 카뮈의 평전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고한다. 카뮈의 사상에 대해서 수 없이 많은 평론가들이 쓴 글이 있지만, 카뮈 스스로 자신의 관점과 철학을 쓴 글도 많이 있다. 이를 먼저 읽어 보고 이 책을 읽는다면, 지금 ‘열심히 사회적 관습과 사회에서 요구한 대로의 인생을 준비하는 학생’의 틀을 뛰어 넘어서 책을 볼 수 있을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P&gt;&lt;/SPAN&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이방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이방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노벨문학상&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노벨문학상&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알베르 카뮈&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알베르 카뮈&lt;/a&gt;
	    </content>
	    	</entry>
    	<entry>
	    <title>[서평] 앙드레 지드, 좁은 문!</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blog.daum.net/greatgabriel/8869628"/>
		<id>tag:blog.daum.net,2009:greatgabriel.8869628</id>
	    <author>
		    <name>ArchangelGabriel</name>
	    </author>
	    <updated>2009-09-25T00:16:58Z</updated>
	    <published>2009-09-25T00:16:58Z</published>
	    <content type="html">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리스도의 평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책명 : 좁은 문 (Strait Is the Gate)&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저자 : 앙드레 지드 (1869-1951, 1947년 노벨문학상수상자)&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출판사/역자 : 꿈꾸는아이들/윤수진&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앙드레지드의 ‘좁은 문’은 걸작이라고 할만하다.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은 그리스도교신앙을 가진 자들에게는 낯선 것이 아니다. 일단의 평론자들이 이야기하듯이 ‘좁은 문’을 포함하여 앙드레지드의 문학을 '그리스도교의 이상과 현실의 인간의 요구를 양 극단으로 대립시켜 놓고서,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절충을 하는 것'으로 평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1952년 로마교황청에서 앙드레지드의 모든 작품을 금서로 지정한 것에는 실소를 금치 못하겠다. 아직도 금서라는 것이 있단 말인가? ^^. 우습기 그지없다.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의 전인격적 존엄함을 교황청 스스로 부인하고 있다니. ㅉㅉ.&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좁은 문’에서 앙드레지드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좁은 문이라는 소설 자체가 독자들에게 서술자가 회상을 하는 형식으로 담담하게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을 설명하는 형식이다. 알리사는 하느님께만 속한 자이고 싶어 했고, 성인들이 이야기하는 그런 덕성(성스러움)을 키우고 싶어 했다. 그 사이에 어린 시절 자기 집에 얹혀 살기 위해 들어 온 외사촌동생인 제롬에 대한 사랑이 자라난다. 이 두 가지는 알리사에게 갈등이었던 것처럼 묘사되지만 알리사는 이 갈등을 통해 성숙해져 가고 있고, 이 모습을 앙드레지드는 보여주고 있다. 물론 거창한 하늘로의 승천은 아니지만. 알리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롬을 사랑했고, 제롬도 이를 이해했다. 알리사의 독특한 사랑의 방식은 한결같았기에 제롬은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니다. 제롬도 어려서부터 이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자연히 독특한 사랑 방식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알리사의 독특한 사랑의 방식은 바로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자신이 목숨처럼 사랑하는 제롬과 하느님 사랑이라는 이 순례의 길을 손 잡고 같이 가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순례의 길에서 육체적인 사랑의 욕구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많은 심적 고통을 겪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알리사 나름의 방식으로 이겨내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제롬의 알리사에 대한 사랑은 알리사와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제롬이 알리사에 대해서 느끼는 사랑은 알리사가 제롬에게 느끼는 사랑과 같았다. 제롬이 알리사에게 결정적인 순간마다 동의를 해 주었던 것과 자기절제를 하는 것은 제롬이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알리사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도 아니다. 제롬이 알리사 죽음 이후 10년 이후에도 혼자 살아가면서 알리사의 기대에 동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 증거다. 동시에 제롬은 알리사에게 육체적인 사랑을 추구한 것도 아니다. 이 2가지 의미에서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은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제롬의 알리사에 대한 사상은 알리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간다. 제롬은 알리사를 통해서 덕성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것이 차이점이다. 알리사는 제롬에게는 어찌 보면 선생이다. 사랑의 관계 속에서.&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이 단순한 플라토닉러브인가? ^^ 그렇지 않다. 소설 속에서 앙드레 지드가 이야기 하듯이, 이들 사이에서는 약혼이나, 결혼이나, 섹스나, 아이 출산이나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이런 욕구들로 인해서 내적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지만.&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나는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 방식을 이해는 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다. 알리사는 차라리 수도자가 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고, 둘 사이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형제적 사랑으로 승화되었으면 둘 다 덕성애서 높은 차원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제롬도 수도자가 되는 편이 더 나았으리라. 그러나 인생은 사람 수의 수 백배 만큼 다양하다. 이런 사랑의 방식도 인생의 다양성 중의 하나다. 물론 소설이지만.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7pt; COLOR: #000000; LINE-HEIGHT: 14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현실에서 앙드레지드는 자신의 사촌누이 마들렌느와 26살에 결혼했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Anyway,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알리사가 죽고 10년 후에, 제롬이 줄리엣&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7pt; COLOR: #000000; LINE-HEIGHT: 14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알리사의 동생, 소설에서는 줄리엣이 제롬을 사랑하는 것을 안 알리사가 ‘자기희생’의 덕과 줄리엣에 대한 애정으로 알리사가 제롬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적혀 있다. 그런데 실은 포기한 것이 아니다. 알리사의 입장에서는)&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의 집을 방문했을 때 제롬과 줄리엣 간의 대화 내용 중 일부분이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럼,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사랑이 그처럼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되라고 믿으시는 거예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그렇단다, 줄리엣.”&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일상의 나날이 계속된다 해도 그 사랑은 꺼지지 않는다는 건가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자!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안 돼요.”&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울고 있는 것 같았다...&lt;/SPAN&gt; &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인간의 사랑은 ‘좁은 문’의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처럼, 1) 일상의 나날이 계속되고, 계속 변화되어도, 나이가 먹어가면서 수십 년 동안 변해 가면서도, 2) 온전한 결합이라는 결혼과 가정 그리고 자녀라는 희망이 전혀 없음에도, 사랑이 그처럼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될 수 있다. 앙드레지드는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0pt; COLOR: #000000; LINE-HEIGHT: 21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lt;BR&gt;&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8pt; COLOR: #000000; LINE-HEIGHT: 17px; FONT-FAMILY: '한컴바탕'; LETTER-SPACING: 0px; TEXT-ALIGN: justify&quot;&gt;PS. 참고로 소설을 평함에 있어서 갈등의 구조를 파악하고 갈등의 해소 방향을 파악하는 것이 소설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 얼마나 단편적인 방식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즘 고등학생들에게도 소설을 이런 방식으로 가르치는 모양인데, 어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 똑 같은가? ^^. 이런 교육을 받고 있는 한국의 학생들이 참 불쌍하다. 이런 방식으로 앙드레지드의 소설을 분석하면, 대부분의 평론가들의 분석과 동일한 방식으로 분석하게 된다. 갈등을 찾아내야만 하니까(우스운 말이지만), 인간의 내면과 당시의 종교적 가치관(사회구조 중의 일부)과의 갈등으로, 사회적인 인습과 종교적인 구속과 인간의 자유로운 욕망에의 실현사이의 갈등이다. 이 갈등 구조에서 인간의 선택은 2가지인데, 1) 하나는 사회적 인습과 종교적 구속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인간의 욕망을 마음껏 실현하는 것이고, 2)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모든 욕망을 사회적 인습과 종교적 구속에 순응하는 것(덕성이라는 이름으로)이다. 뭐 이런 식의 분석밖에는 안 된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좁은 문’이라는 소설의 주제 의식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FONT-SIZE: 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FONT-SIZE: 8pt; MARGIN: 0px; COLOR: #000000;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lt;br&gt;&lt;br&gt;tag : &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좁은 문&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좁은 문&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앙드레 지드&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앙드레 지드&lt;/a&gt;,&amp;nbsp;&lt;a href=&quot;/_blog/tagArticleList.do?BLOGID=0I27h&amp;amp;tagName=Strait Is the Gate&quot; rel=&quot;tag&quot; target=&quot;_blank&quot;&gt;Strait Is the Gate&lt;/a&gt;
	    </content>
	    	</entry>
      </feed>
